史記 書(사기 서)/4. 歷書

​第 四. 歷書

덕치/이두진 2021. 6. 27. 17:21

 

        史記 書

 

 

   第 四. 書(역서)

 

昔自在古,歷建正作於孟春. 於時冰泮發蟄,百草奮興,秭鳺先滜.  物乃歲具,生於東,次順四時,卒于冬分.
時雞三號, 卒明. 撫十二[月]節, 卒于丑. 日月成, 故明也明. 者孟也幽, 者幼也, 幽明者雌雄也.
雌雄代興, 而順至正之統也. 日歸于西, 起明於東;月歸於東, 起明于西.

正不率天, 又不由人, 則凡事易壞而難成矣. 

王者易姓受命, 必慎始初, 改正朔, 易服色, 推本天元順, 承厥意.

[​오랜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고대의 역법(曆法)에는 정초(正初)가 초봄이 시작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
초봄에는 눈과 얼음이 녹아버리고,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이 모두 활동하기 시작하며,  

초목들이 쏙쏙 싹을 틔우고 성장하기 시작하며, 소쩍새가 먼저 울음을 터뜨린다.
만물이 세시(歲時)와 더불어 생육하고, 생명의 눈을 뜨는 때가 바로 봄이며,  

네 계절을 차례로 돌아 마침내는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이다.
그때에 수탉이 세 번 울음을 터뜨리는 것을 필두로 새해의 새날이 밝아온다.

열두 달의 절기는 순서대로 돌다가 건축(建丑) 월에 열두 달이 모두 끝난다.

해와 달이 제 모습을 갖춤에 따라 밝음이 있게 된다.  

밝음이 어른이면, 어두움은 어린이이고, 밝음이 암컷이라면 어두움은 수컷인 그런 관계에 있는 것이다.  

암수가 차례로 교차해 작용을 함으로써 바른 계통을 형성하게끔 되는 것이다.
해는 서쪽으로 돌아가니, [해의] 밝음은 동쪽에서 시작되며, 달은 동쪽으로 돌아가니,  

[달의] 밝음은 서쪽에서 비롯된다. 세수를 정하는 것이 하늘[자연 법칙]을 따르지 아니하고,  

사람들이 일상적인 규범에서 벗어나면, 모든 일이 쉽사리 망가져버릴 뿐만 아니라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다.
왕의 성이 바뀌어 하늘의 명을 받을 때에는 반드시 개국의 기초를 굳건히 하기 위해 정삭(正朔)의 역법을 고치며,  

복식(服飾)의 색깔을 달리하고, 하늘의 원기운행(元氣運行) 법칙을 살피어 그것에 따른다.] 

 

 

太史公曰

神農以前尚矣. 蓋黃帝考定星歷, 建立五行, 起消息, 正閏餘, 於是有天地神祇物類之官, 是謂五官.

各司其序, 不相亂也. 民是以能有信, 神是以能有明德.

民神異業,敬而不瀆,故神降之嘉生,民以物享,災禍不生, 所求不匱.

[태사공은 말한다.

“신농씨(神農氏) 이전의 일은 까마득한 옛 일이 되고 말았다. 황제(黃帝)가 성력(星曆)에 대해 정확하게 관측한  

이후로 오행으로 만물을 구성하는 이론 체계를 세우고, 천지만물이 생기고 소멸되는 신진대사의 이치를 발견하고,  

윤달을 설치함으로써 1년의 12달 외에 남는 시간을 처리해, 추운 계절과 더운 계절의 차이를 바로잡았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를 받들고, 각종 관직을 설치했는데, 이를 일러 5종 관직이라 했다.  

각 직책을 맡은 사람들이 자신의 직분을 다함으로써 서로 미루거나 다투는 일이 없게 되었다.  

따라서 백성들은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 지낼 줄 알게 되어 성실히 살고 남을 속이는 일이 없었다.  

그리고 하늘과 땅의 신은 음양을 조화시키고 백성들에게 복을 내리어 완전한 덕성을 갖추도록 해주었다.
백성들 및 하늘과 땅의 신은 각기 맡은 바 직책이 있었다. 백성들이 맡은 바 직책을 엄격히 지키어  

소홀함이 없었기에 하늘 신과 땅 신이 그들로 하여금 농작물을 가꿀 수 있게 해주었으며,  

백성들은 제물을 바침으로써 재화(災禍)가 생기지 않았고 바라는 바의 수확 역시 거둘 수 있게 되었다.”

 

少暤氏之衰也,九黎亂德,民神雜擾,不可放物,禍菑薦至,莫盡其氣. 

顓頊受之,乃命南正重司天以屬神,命火正黎司地以屬民,使復舊常,無相侵瀆.
其後三苗服九黎之德,故二官咸廢所職,而閏餘乖次,孟陬殄滅,攝提無紀,歷數失序.

堯復遂重黎之後,不忘舊者,使復典之,而立羲和之官.

[소호씨(少皞氏)가 쇠망하고, 구려족(九黎族)이 질서를 파괴시키자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고 신은 사람들에게  

복을 내리지 않았다. 각자의 직책과 피차의 관계를 모르게 되어 재화가 연달아 발생해 끊임이 없었고,  

하늘에 대해 제사를 받들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전욱(顓頊)이 제왕의 자리에 올라서는 남정(南正)의 자리에  

중(重)이라는 사람을 임명해 천문을 주관하게 하고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 지내는 일을 잘 봉행하게 당부했다.  

화정(火正)의 자리에 여(黎)라는 사람을 임명해 지리에 관한 일을 주관하고 백성들의 일을 잘 처리하게 당부했다.  

그렇듯 그들로 하여금 과거의 전통을 부흥시키게 함으로써 더 이상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그 후에 삼묘족(三苗族)이 구려족의 못된 행적을 본떠 두 관직을 없애자, 윤달이 성차(星次)에 부합되지 않고  

정월이 세수(歲首)에 맞지 않게 되었으며 섭제(攝提)라는 별이 혼란되어 절기와 기후가 상규를 벗어나게 되었다.  

당요(唐堯)가 중(重)과 여(黎)의 후손을 다시 임용해 그들로 하여금 그 일을 관장하게 하고  

희씨(羲氏)와 화씨(和氏)라는 관직을 설치, 운영했다.]

 

明時正度, 則陰陽調, 風雨節,茂氣至, 民無夭疫. 年耆禪舜, 申戒文祖, 云「天之歷數在爾躬」.

舜亦以命禹. 由是觀之,王者所重也.  夏正以正月,殷正以十二月,周正以十一月.

蓋三王之正若循環,窮則反本. 天下有道,則不失紀序;無道,則正朔不行於諸侯.

[​천시(天時)의 변화가 객관적인 법칙에 부합하게 조정하자 추위와 더위가 조화를 이루고 비와 바람이 적절하게 

되자, 장엄하고 왕성한 기운이 되살아났고 백성들이 단명에 그치는 일이 없었으며, 병해도 당하지 않게 되었다.

당요(唐堯)는 자신의 몸이 노약해지자 우순(虞舜)에게 선양(禪讓)했다.  

그는 문조묘(文祖廟)에서 우순에게 고계(告誡)해 말하기를 “하늘의 역수(曆數)가 그대의 몸에 있노라.”라 했다.  

우순도 당요에게 들은 그 말을 똑같이 하우(夏禹)에게 고계해주었다.  

이로 보건대, 이상과 같은 일을 제왕들이 중요하게 다루었음을 알 수 있다.
하(夏)나라 때에는 정월(正月)에 세수(歲首)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은(殷)나라 때에는 12월에,  

그리고 주(周)나라 때에는 세수가 11월에 각각 시작되었다. 원래 삼대(三代)의 정삭(正朔)은 순환되어  

마지막에 이르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천하에 도가 있으면 세시절후도 조화를 잃지 않으며,  

도가 없으면, 즉 정치가 혼란하면 왕이 반포한 역법을 제후의 나라들이 실행하지 않게 된다.]

 

幽、厲之後, 周室微, 陪臣執政, 史不記時, 君不告朔, 故疇人子弟分散, 或在諸夏,或在夷狄,

是以其禨祥廢而不統.  周襄王二十六年閏三月,而春秋非之.  先王之正時也,履端於始,

舉正於中,歸邪於終.  履端於始,序則不愆;舉正於中,民則不惑;歸邪於終,事則不悖.

[​주나라의 유왕(幽王), 여왕(厲王) 이후에는 주 왕조의 세력이 쇠약해져서 제후의 대부들이

각 나라의 정치 대권을 장악했고, 사관이 대사를 기록할 때 월과 일을 분명히 적어놓지 않았으며,

군주가 고삭(告朔)을 거행하지 않자 역법 전문가의 후예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그중에 어떤 이는 화하(華夏)의 각 지방에 흩어져 있었으나,  

어떤 이는 외족(外族)의 땅으로 가버렸다. 그러므로 천상(天象)을 관측하고,

신지(神祗)에게 기도하고, 길흉을 예보하는 일이 더 이상 수행되지 않았다.
주 양왕(周襄王) 26년에 윤 3월을 두었는데, 『춘추(春秋)』에는 그 잘못이 지적되어 있다.  

고대의 선왕들은 세시를 정할 때 연력(年曆)의 시작을 정확하게 추산하고,

역법의 오차를 바로잡는 것은 연중(年中)에 두었으며, 남는 시간을 윤달에 귀속시켰다.

연력의 시작을 정확하게 추산함에 따라 시서(時序)가 바로잡혔으며,

오차를 연중에서 바로잡음에 따라 백성들이 미망에 빠지지 않았고,  

남는 시간을 윤달에 귀속시킴에 따라 일의 어그러짐이 없었다.]

 

其後戰國并爭, 在於彊國禽敵, 救急解紛而已, 豈遑念斯哉!

是時獨有鄒衍, 明於五德之傳, 而散消息之分, 以顯諸侯. 

而亦因秦滅六國,兵戎極煩,又升至尊之日淺,未暇遑也. 

而亦頗推五勝,而自以為獲水德之瑞,更名河曰「德水」,而正以十月,色上黑.

然歷度閏餘,未能睹其真也.

[​그 후 전국시대(戰國時代) 때에는 각 제후국이 서로 다투는 전쟁이 해마다 끊임이 없었고,  

나라의 근본 목적이 오로지 국력을 키우는 데에 있었기에 위기에서 헤어나고 ,

분쟁을 없애는 일에 급급했을 따름이었으니, 어찌 이 일을 염두에 둘 짬인들 있었으랴!

그 시기에는 오로지 추연(鄒衍)만이 오덕지전(五德之傳)에 밝았으며,  

생명이 나고 죽는 이치와 물질 상호간의 관계에 대한 이치를 세상에 전파함으로써 제후들에게 그 이름을 떨쳤다. 

그래서 또한 진(秦)나라가 6국(六國)을 멸망시킬 때 전쟁이 가장 심했으며,

지존(至尊)의 자리에 머문 시간이 오래되지 않았던 관계로 역법 문제에 심혈을 기울일 여가가 없었다.

그러나 오행(五行) 상극(相克)을 상당히 신봉해 그 자신이 수덕(水德)의 서응(瑞應)을 얻었노라고 자인했고,

황하의 이름을 ‘덕수(德水)’라고 고쳐 불렀다.  

그리고는 10월을 정월로 삼았으며, 모든 색 가운데 검정색을 가장 귀히 여겼다.

그러나 역법에 따라 윤달을 두기는 했으나, 그 근본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漢興,高祖曰「北畤待我而起」,亦自以為獲水德之瑞. 雖明習歷及張蒼等,咸以為然. 

是時天下初定,方綱紀大基,高后女主,皆未遑,故襲秦正朔服色.
至孝文時,魯人公孫臣以終始五德上書,
言「漢得土德,宜更元,改正朔,易服色. 當有瑞,瑞黃龍見」.

事下丞相張蒼,張蒼亦學律歷,以為非是,罷之.

[한(漢)나라가 흥하자 고조는 “북치(北峙)가 나를 기다렸다가 비로소 세워졌도다.”라고 말하고는

수덕의 서응을 얻었노라고 자인했다. 그 자신이 비록 역법에 밝았지만 그에 관한 일로 장창(張蒼) 등에게

자문을 구하자 모두들 그의 말이 옳다고 대답했다. 당시 천하가 갓 평정된 터라 나라의 기강이 막 잡혀질

즈음이었으나, 고후(高后)가 여주(女主)로서 황제의 대권을 장악해 질서가 어지럽혀졌기 때문에  

역법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틈이 없어 진(秦)나라의 정삭과 복색을 그대로 답습할 따름이었다.
효문(孝文)때에 이르러서는 노(魯)나라 사람인 공손신(公孫臣)이 ‘오덕종시설(五德終始說)’에 입각해

황제에게 글을 올려 이르기를 “한나라는 토덕(土德)을 얻었으니 마땅히 다시 건원(更元)하고, 정삭을 바꾸며,  

복색도 바꾸어야 합니다. 마땅히 길조가 있을 것이오며, 그것은 황룡이 출현하는 것이옵니다.”라고 하자,  

황제가 그 일에 관해서 승상인 장창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장창은 그 자신이 율력(律曆)에 관해서

배운 바가 있었으므로 그것이 옳지 않다고 아뢰었다. 그래서 황제는 그 일을 없었던 것으로 했다.]

 

其後黃龍見成紀,張蒼自黜,所欲論著不成. 

而新垣平以望氣見,頗言正歷服色事,貴幸,後作亂,故孝文帝廢不復問.
至今上即位,招致方士唐都,分其天部;而巴落下閎運算轉歷,然後日辰之度與夏正同.
乃改元,更官號,封泰山.

[​그런데 후에 황룡이 성기(成紀) 땅에 출현해 장창은 스스로 승상의 자리에서 물러났고,

그가 편찬하고 싶었던 논저는 책으로 엮어지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고 신원평(新垣平)이란 방사(方士)가

황제를 알현하고는 망기(望氣)를 근거로 역법과 복색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장광설을 펼쳐서 총애를 받게 되었으나,

후에 그의 말이 사기임을 알게 된 후로는 효문제가 그 일을 더 이상 입에 담지 않았다.
현재의 황상(皇上) 즉위해 방사인 당도(唐都)를 초빙해 28수(宿)들 간의 거리를 측량하고 계산(測算)하게 했다.  

그리고 파군(巴郡) 낙하(落下)의 굉(閎)이란 사람을 시켜 전력(轉曆) 역법을 추산해내도록 했다.
그런 후로 일진(日辰)의 도(度)가 하력(夏曆)의 천문 현상과 일치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개원(改元)을 단행하고, 관직의 명칭을 고쳤으며, 태산(泰山)에서 봉제(封祭)를 올렸다.]


因詔御史曰:「乃者,有司言星度之未定也,廣延宣問,以理星度,未能詹也.

蓋聞昔者黃帝合而不死,名察度驗,定清濁,起五部,建氣物分數。然蓋尚矣.

書缺樂弛,朕甚閔焉. 朕唯未能循明也,紬績日分,率應水德之勝. 

今日順夏至,黃鐘為宮,林鐘為徵,太蔟為商,南呂為羽,姑洗為角.

自是以後,氣復正,羽聲復清,名復正變,以至子日當冬至,則陰陽離合之道行焉.

[그리고 어사(御史)를 불러 이르기를 : " 예전 성도(星度)를 분명하게 알지 못했기 때문에 널리 인재를 초빙해

의견을 공개적으로 수렴함으로써 그것을 바로 인식하게 되었다고 주관 관리가 말하더라.

듣자하니 예전에 황제때 이미 역법을 제정한 바 있는데, 

그것은 끝없이 순환되는 것이므로 무궁무진하게 활용할 수 있었고,

천체의 명칭을 명확하게 분간할 수 있었으며, 천체의 위치와 운행 규칙이 정확함을 알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악률(樂律)의 청탁(淸濁)을 확정짓고, 오부(五部)의 학설을 창안했으며,

기(氣)와 물(物) 그리고 분수(分數)를 명확하게 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필경 지금으로부터 아득한 옛날의 일이로다! 문자로 기록해놓은 것이 없고 그 악률도 폐지되어  

더 이상 쓰이지 않으니 짐은 그것을 애석해할 따름이노라!
짐은 한(漢) 왕조가 역법을 완벽하게 갖추지 못하고 있으니 일분(日分)을 처리할 수 있는 방도와

수덕(水德)을 극복할 수 있는 토덕(土德)에 귀의할 방도를 생각하고 있도다.

오늘 태양의 운행이 바로 하지(夏至)에 상당하니 황종(黃鐘)으로 궁(宮)을 삼고, 임종(林鐘)으로(徵)를 삼고,

태주(太簇)로 상(商)을 삼고, 남려(南呂)로 우(羽)를 삼고, 선(姑洗)으로 각(角)을 삼는다.

이후로 24절기가 정상을 되찾고, 우성(羽聲)이 맑은 소리를 회복하며, 명(名)이 정상과 변이의 주기성을 되찾으며,

이로부터 자(子)에 해당하는 날을 동지(冬至)로 삼는다면 음양이 떨어지고 합치는 이치가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

 

十一月甲子朔旦冬至已詹,其更以七年為太初元年.
年名『焉逢攝提格』,月名『畢聚』,日得甲子,夜半朔旦冬至.」

[​11월갑자(甲子) 삭일(朔日) 새벽에 동지가 관측되었으니, 마땅히 원봉(元封) 7년을 태초(太初) 원년으로

고쳐야 할 것이다. 연명(年名)을 ‘언봉섭제격(焉逢攝提格)’이라 하고,  

월명(月名)을 ‘필취(畢聚)’라고 부르며, 날은 갑자(甲子)라고 하며, 야반(夜半) 삭단(朔旦)이 동지가 된다.

 

歷術甲子篇太初元年,歲名「焉逢攝提格」,月名「畢聚」,日得甲子,夜半朔旦冬至.

[​역술(曆術) 「갑자편(甲子篇)」태초(太初) 원년, 연명(年名) 언봉섭제격(焉逢攝提格), 월명(月名) 필취(畢聚),

날은 갑자(甲子)이고, 야반(夜半) 삭단(朔旦)이 동지가 된다.


正北十二無大餘,無小餘;無大餘,無小餘;焉逢攝提格太初元年.

[​정북(正北)······(第1章首, 冬至가 子時에 있음)
태초(太初) 원년(BC 104) 갑인(甲寅) 12개월= 0일, 0분 : 0일, 0분= 0일, 0분 : 0일, 0분.

 

十二大餘五十四,小餘三百四十八;大餘五,小餘八;端蒙單閼二年.

[태초2년(BC 103) 을묘(乙卯) 12개월 54일, 348분 : 5일, 8분.

 

閏十三大餘四十八,小餘六百九十六;大餘十,小餘十六;游兆執徐三年.

[태초3년(BC l02) 병진(丙辰) 윤년13개월 48일, 696분 10일, 16분.

 

二大餘十二,小餘六百三;大餘十五,小餘二十四;彊梧大荒落四年.

[태초4년(BC 101) 정사(丁巳) 12개월 12일, 603분 15일, 24분.

 

十二大餘七,小餘十一;大餘二十一,無小餘;徒維敦牂天漢元年.

[천한(天漢) 원년(BC 100) 무오(戊午) 12개월 7일, 11분 21일, 0분.

 

十三大餘一,小餘三百五十九;大餘二十六,小餘八;祝犁協洽二年.

[천한2년(BC 99) 기미(己未) 윤년13개월 = 1일, 359분 26일, 8분.

 

二大餘二十五,小餘二百六十六;大餘三十一,小餘十六;商橫涒灘三年.

[​천한3년(BC 98) 경신(庚申) 12개월 =25일, 266분 : 31일, 16분.

 

大餘十九,小餘六百一十四;大餘三十六,小餘二十四;昭陽作鄂四年.

[천한4년(BC 97) 신유(辛酉) 12개월 19일, 614분 36일, 24분.

 

十三大餘十四,小餘二十二;大餘四十二,無小餘;橫艾淹茂太始元年.

[태시(太始) 원년(BC 96) 임술(壬戌) 윤년13개월 =14일, 22분 : 42일, 0분.

十二大餘三十七,小餘八百六十九;大餘四十七,小餘八;尚章大淵獻二年.

[태시2년(BC 95) 계해(癸亥) 12개월= 37일, 869분 47일, 8분.

 

閏十三大餘三十二,小餘二百七十七;大餘五十二,小餘一十六;焉逢困敦三年.

[태시3년(BC 94) 갑자(甲子) 윤년13개월= 32일, 277분 52일, 16분.

 

十二大餘五十六,小餘一百八十四;大餘五十七,小餘二十四;端蒙赤奮若四年.

[태시4년(BC 93) 을축(乙丑) 12개월 56일, 184분 57일, 24분.

 

十二大餘五十,小餘五百三十二;大餘三,無小餘;游兆攝提格征和元年.

[정화(征和) 원년(BC 92) 병인(丙寅) 12개월 50일, 532분 3일, 0분.

 

閏十三大餘四十四,小餘八百八十;大餘八,小餘八;彊梧單閼二年.

[정화2년(BC 91) 정묘(丁卯) 윤년13개월 44일, 880분 8일, 8분.

 

二大餘八,小餘七百八十七;大餘十三,小餘十六;徒維執徐三年.

[정화3년(BC 90) 무진(戊辰) 12개월 8일, 787분 13일, 16분.

 

十二大餘三,小餘一百九十五;大餘十八,小餘二十四;祝犁大芒落四年.

[정화4년(BC 89) 기사(己巳) 12개월 3일, 195분 18일, 24분.

 

閏十三大餘五十七,小餘五百四十三;大餘二十四,無小餘;商橫敦牂後元元年.

[후원(后元) 원년(BC 88) 경오(庚午) 윤년13개월 57일, 543분 2일, 8분.

 

二大餘二十一,小餘四百五十;大餘二十九,小餘八;昭陽汁洽二年.

[후원2년(BC 87) 신미(辛未) 12개월 21일, 450분 29일, 8분.

 

十三大餘十五,小餘七百九十八;大餘三十四,小餘十六;橫艾涒灘始元元年.

[시원(始元) 원년(BC 86) 임신(壬申) 윤년13개월 15일, 798분 34일, 16분.

 

西十二大餘三十九,小餘七百五;大餘三十九,小餘二十四;尚章作噩二年.

[정서(正西) 시원(始元) 2년(BC 85) 계유(癸酉) 12개월 39일, 795분 39일, 24분.

 

十二大餘三十四,小餘一百一十三;大餘四十五,無小餘;焉逢淹茂三年.

[시원3년(BC 84) 갑술(甲戌) 12개월 34일, 113분 45일, 0분

 

十三大餘二十八,小餘四百六十一;大餘五十,小餘八;端蒙大淵獻四年.

[시원4년(BC 83) 을해(乙亥) 윤년13개월 28일, 461분 50일, 8분.

 

二大餘五十二,小餘三百六十八;大餘五十五,小餘十六;游兆困敦五年.

[시원​5년(BC 82) 병자(丙子) 12개월 52일, 368분 55일, 16분.

 

十二大餘四十六,小餘七百一十六;無大餘,小餘二十四;彊梧赤奮若六年.

[​시원6년(BC 81) 정축(丁丑) 12개월 46일, 716분 0일, 24분.

 

閏十三大餘四十一,小餘一百二十四;大餘六,無小餘;徒維攝提格元鳳元年.

[​원봉(元鳳) 원년(BC 80) 무인(戊寅) 윤년13개월 41일, 124분 6일, 0분.

 

十二大餘五,小餘三十一;大餘十一,小餘八;祝犁單閼二年.

[원봉​2년(BC 79) 기묘(己卯) 12개월 5일, 31분 11일, 8분.

 

十二大餘五十九,小餘三百七十九;大餘十六,小餘十六;商橫執徐三年.

[​원봉3년(BC 78) 경진(庚辰) 12개월 59일, 379분 16일, 16분.

 

閏十三大餘五十三,小餘七百二十七;大餘二十一,小餘二十四;昭陽大荒落四年.

[원봉4년(BC 77) 신사(辛巳) 윤년13개월 53일, 727분 21일, 24분.

十二大餘十七,小餘六百三十四;大餘二十七,無小餘;橫艾敦牂五年.

[원봉​5년(BC 76) 임오(壬午) 12개월 17일, 634분 27일, 0분.

 

閏十三大餘十二,小餘四十二;大餘三十二,小餘八;尚章汁洽六年.

[원봉6년(BC 75) 계미(癸未) 윤년13개월 12일, 42분 32일, 8분.

 

十二大餘三十五,小餘八百八十九;大餘三十七,小餘十六;焉逢涒灘元平元年.

​[​원평(元平) 원년(BC 74) 갑신(甲申) 12개월 35일, 889분 37일, 16분.

 

十二大餘三十,小餘二百九十七;大餘四十二,小餘二十四;端蒙作噩本始元年.

[​본시(本始) 원년(BC 73) 을유(乙酉) 12개월 30일, 297분 42일, 24분.

 

閏十三大餘二十四,小餘六百四十五;大餘四十八,無小餘;游兆閹茂二年.

[본시​2년(BC 72) 병술(丙戌) 윤년13개월 24일, 645분 48일, 0분.

 

十二大餘四十八,小餘五百五十二;大餘五十三,小餘八;彊梧大淵獻三年.

[본시​3년(BC 71) 정해(丁亥) 12개월 48일, 552분 53일, 8분.

 

十二大餘四十二,小餘九百;大餘五十八,小餘十六;徒維困敦四年.

[본시​4년(BC 70) 무자(戊子) 12개월 42일, 900분 58일, 16분.

 

閏十三大餘三十七,小餘三百八;大餘三,小餘二十四;祝犁赤奮若地節元年.

[​지절(地節) 원년(BC 69) 기축(己丑) 윤년13개월 37일, 308분 3일, 24분.

 

十二大餘一,小餘二百一十五;大餘九,無小餘;商橫攝提格二年.

[지절​2년(BC 68) 경인(庚寅) 12개월 1일, 215분 9일, 0분.

 

閏十三大餘五十五,小餘五百六十三;大餘十四,小餘八;昭陽單閼三年.

[지절​3년(BC 67) 신묘(辛卯) 윤년13개월 55일, 563분 14일, 8분.

 

正南十二大餘十九,小餘四百七十;大餘十九,小餘十六;橫艾執徐四年.

[​정남(正南) 지절(地節) 4년(BC 66) 임진(壬辰) 12개월 19일, 470분 19일, 16분.

 

十二大餘十三,小餘八百一十八;大餘二十四,小餘二十四;尚章大荒落元康元年.

[​원강(元康) 원년(BC 65) 계사(癸巳) 12개월 13일, 818분 24일, 24분.

 

閏十三大餘八,小餘二百二十六;大餘三十,無小餘;焉逢敦牂二年.

[원강​2년(BC 64) 갑오(甲午) 윤년13개월 8일, 226분 30일, 0분.

 

十二大餘三十二,小餘一百三十三;大餘三十五,小餘八;端蒙協洽三年.

[원강​3년(BC 63) 을미(乙未) 12개월 32일, 133분 35일, 8분.

 

十二大餘二十六,小餘四百八十一;大餘四十,小餘十六;游兆涒灘四年.

[원강​4년(BC 62) 병신(丙申) 12개월 26일, 481분 40일, 16분.

 

閏十三大餘二十,小餘八百二十九;大餘四十五,小餘二十四;彊梧作噩神雀元年.

[​신작(神爵) 원년(BC 61) 정유(丁酉) 윤년13개월 20일, 829분 45일, 24분.

 

十二大餘四十四,小餘七百三十六;大餘五十一,無小餘;徒維淹茂二年.

[신작​2년(BC 60) 무술(戊戌) 12개월 44일, 736분 51일, 0분.

 

十二大餘三十九,小餘一百四十四;大餘五十六,小餘八;祝犁大淵獻三年.

[신작​3년(BC 59) 기해(己亥) 12개월 39일, 144분 56일, 8분.

 

閏十三大餘三十三,小餘四百九十二;大餘一,小餘十六;商橫困敦四年.

[​신작4년(BC 58) 경자(庚子) 윤년13개월 33일, 492분 1일, 16분.

 

十二大餘五十七,小餘三百九十九;大餘六,小餘二十四;昭陽赤奮若五鳳元年.

[​오봉(五鳳) 원년(BC 57) 신축(辛丑) 12개월 57일, 399분 6일, 24분.

 

閏十三大餘五十一,小餘七百四十七;大餘十二,無小餘;橫艾攝提格二年.

[오봉​2년(BC 56) 임인(壬寅) 윤년13개월 51일, 737분 12일, 0분.

 

十二大餘十五,小餘六百五十四;大餘十七,小餘八;尚章單閼三年.

[오봉​3년(BC 55) 계묘(癸卯) 12개월 15일, 654분 17일, 8분.

 

十二大餘十,小餘六十二;大餘二十二,小餘十六;焉逢執徐四年.

[오봉​4년(BC 54) 갑진(甲辰) 12개월 10일, 62분 22일, 16분.

 

閏十三大餘四,小餘四百一十;大餘二十七,小餘二十四;端蒙大荒落甘露元年.

[​감로(甘露) 원년(BC 53) 을사(乙巳) 윤년13개월 4일, 410분 27일, 27분.

 

十二大餘二十八,小餘三百一十七;大餘三十三,無小餘;游兆敦執二年.

[감로​2년(BC 52) 병오(丙午) 12개월 28일, 317분 33일, 0분.

 

十二大餘二十二,小餘六百六十五;大餘三十八,小餘八;彊梧協洽三年.

[감로​3년(BC 51) 정미(丁未) 12개월 22일, 665분 38일, 8분.

 

閏十三大餘十七,小餘七十三;大餘四十三,小餘十六;徒維涒灘四年.

[감로​4년(BC 50) 무신(戊申) 윤년13개월 17일, 73분 43일, 16분.

 

十二大餘四十,小餘九百二十;大餘四十八,小餘二十四;祝犁作噩黃龍元年.

[​황룡(黃龍) 원년(BC 49) 기유(己酉) 12개월 40일, 920분 48일, 24분.

 

閏十三大餘三十五,小餘三百二十八;大餘五十四,無小餘;商橫淹茂初元元年.

[초원(初元) 원년(BC 48) 경술(庚戌) 윤년13개월 35일, 328분 54일, 0분.

 정동(正東)······(第4章首, 冬至가 卯時에 있음) 초원(初元).

  

正東十二大餘五十九,小餘二百三十五;大餘五十九,小餘八;昭陽大淵獻二年.

[​초원2년(BC 47) 신해(辛亥) 12개월 59일, 235분 59일, 8분.

 

十二大餘五十三,小餘五百八十三;大餘四,小餘十六;橫艾困敦三年.

[초원3년(BC 46) 임자(壬子) 12개월= 53일, 583분 4일, 16분.

 

閏十三大餘四十七,小餘九百三十一;大餘九,小餘二十四;尚章赤奮若四年.

[초원4년(BC 45) 계축(癸丑) 윤년13개월= 47일, 931분 9일, 24분.

 

十二大餘十一,小餘八百三十八;大餘十五,無小餘;焉逢攝提格五年.

[초원5년(BC 44) 갑인(甲寅) 11개월 11일, 838분 15일, 0분.

 

十二大餘六,小餘二百四十六;大餘二十,小餘八;端蒙單閼永光元年.

[​영광(永光) 원년(BC 43) 을묘(乙卯) 12개월 6일, 246분 20일, 8분.

 

閏十三無大餘,小餘五百九十四;大餘二十五,小餘十六;游兆執徐二年.

[영광​2년(BC 42) 병진(丙辰) 윤년13개월 0일, 594분 25일, 16분.

 

十二大餘二十四,小餘五百一;大餘三十,小餘二十四;彊梧大荒落三年.

[영광​3년(BC 41) 정사(丁巳) 12개월= 24일, 501분 30일, 24분.

 

十二大餘十八,小餘八百四十九;大餘三十六,無小餘;徒維敦牂四年.

[영광​4년(BC 40) 무오(戊午) 12개월 18일, 849분 36일, 0분.

 

閏十三大餘十三,小餘二百五十七;大餘四十一,小餘八;祝犁協洽五年.

[영광​5년(BC 39) 기미(己未) 윤년13개월 13일, 257분 41일, 8분.

 

十二大餘三十七,小餘一百六十四;大餘四十六,小餘十六;商橫涒灘建昭元年.

[​건소(建昭) 원년(BC 38) 경신(庚申) 12개월= 37일, 164분 46일, 16분.

 

閏十三大餘三十一,小餘五百一十二;大餘五十一,小餘二十四;昭陽作噩二年.

[건소​2년(BC 37) 신유(辛酉) 윤년13개월= 31일, 512분 51일, 24분.

 

十二大餘五十五,小餘四百一十九;大餘五十七,無小餘;橫艾閹茂三年.

[건소​3년(BC 36) 임술(壬戌) 12개월= 55일, 419분 57일, 0분.

 

十二大餘四十九,小餘七百六十七;大餘二,小餘八;尚章大淵獻四年.

[건소​4년(BC 35) 계해(癸亥) 12개월= 49일, 767분 2일, 8분.

 

閏十三大餘四十四,小餘一百七十五;大餘七,小餘十六;焉逢困敦五年.

[​건소5년(BC 34) 갑자(甲子) 윤년13개월= 44일, 175분 7일, 16분.

 

十二大餘八,小餘八十二;大餘十二,小餘二十四;端蒙赤奮若竟寧元年.

[​경녕(竟寧) 원년(BC 33) 을축(乙丑) 12개월= 8일, 82분 : 12일, 24분.

 

十二大餘二,小餘四百三十;大餘十八,無小餘;游兆攝提格建始元年.

[​건시(建始) 원년(BC 32) 병인(丙寅) 22개월 2일, 430분 18일, 0분.

 

閏十三大餘五十六,小餘七百七十八;大餘二十三,小餘八;彊梧單閼二年.

[건시2년(BC 31) 정묘(丁卯) 윤년13개월 56일, 778분 13일, 8분.

十二大餘二十,小餘六百八十五;大餘二十八,小餘十六;徒維執徐三年.

[건시​3년(BC 30) 무진(戊辰) 12개월= 20일, 685분 28일, 16분.

 

閏十三大餘十五,小餘九十三;大餘三十三,小餘二十四;祝犁大荒落四年.

[건시​4년(BC 29) 기사(己巳) 윤년13개월= 15일, 93분 33일, 24분. 

 

右歷書:大餘者,日也. 小餘者,月也. 端(旃)蒙者,年名也.

支:丑名赤奮若,寅名攝提格. 干:丙名游兆. 


正北,冬至加子時;正西,加酉時;正南,加午時;正東,加卯時.

[​이상이 「역서」이다.

대여(大餘)는 남은 일의 수를 가리키고, 소여(小餘)는 남은 분의 수를 가리킨다.  

단몽(端蒙)은 연명(年名)이다. 지지(地支)는 세양(歲陽)에 상당하고, 축(丑)은 적분약(赤奮若)이라고도 하며,  

인(寅)은 섭제격(攝提格)이라고도 한다. 천간(天干)은 세음(歲陰)에 상당하고, 병(丙)은 유조(游兆)라고 한다.  

정북[부수(蔀首)]에서는 동지가 자시(子時)에, 정서[제2장수(章首)]에서는 동지가 유시(酉時)에,  

정남[제3장수]에서는 동지가 오시(午時)에, 정동[제4장수]에서는 동지가 묘시(卯時)에 있다.]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