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모란이 피기까지는 - 김영랑 -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 오르.. 詩. 2020.01.05
♠ 와사등 / 김광균 와사등 -김광균- 차단-한 등불이 하나 비인 하늘에 걸려 있다. 내 호올로 어델 가라는 슬픈 신호냐. 긴-여름 해 황망히 날애를 접고 늘어선 고층 창백한 묘석같이 황혼에 젖어 찬란한 야경 무성한 잡초인 양 헝크러진 채 사념 벙어리 되어 입을 다물다. 피부의 바깥에 스미는 어둠 낯설.. 詩. 2020.01.05
♠ 광야(廣野) / 이육사 광야(廣野) - 이육사 -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山脈)들이 바다를 연모(戀慕)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犯)하던 못 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서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 詩. 2020.01.05
♠ 겨울 바다 / 김남조 겨울 바다 - 김남조 -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海風)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허무의 불 물 이랑 위에 불 붙어 있었네. 나를 가르치는 건 언제나 시간…….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詩. 2020.01.05
♠ 그날이 오면 / 심 훈 그날이 오면 - 심 훈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 詩. 2020.01.05
♠ 나의 침실로 / 이상화 나의 침실로 - 이상화 - 마돈나, 지금은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련도다. 아, 너도 먼동이 트기 전으로 수밀도(水蜜桃)의 네 가슴에 이슬이 맺도록 달려 오너라. 마돈나, 오려무나. 네 집에서 눈으로 유전(遺傳)하던 진주는 다 두고 몸만 오너라. 빨리 가자. 우리는 밝.. 詩. 2020.01.05
♠ 바위 / 유치환 바위 - 유치환 -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 詩. 2020.01.05
♠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당신을 보았습니다 - 한용운 -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秋收)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 詩. 2020.01.05
♠ 석문(石門) / 조지훈 석 문(石門) - 조지훈 - 당신의 손끝만 스쳐도 소리 없이 열릴 돌문이 있습니다. 뭇사람이 조바심치나 굳이 닫힌 이 돌문 안에는, 석벽 난간 열두 층계 위에 이제 검푸른 이끼가 앉았습니다. 당신이 오시는 날까지는, 길이 꺼지지 않을 촛불 한 자루도 간직하였습니다. 이는 당신의 그리운 .. 詩. 2020.01.05
♠ 거울 / 이상 거울 - 이상 -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요.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내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딱한귀가 두 개나 있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요.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요. 거울 때문에 거울속의 나를 만져보지.. 詩. 2020.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