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本紀(사기본기) 14

史記 本紀

史記 本紀 옛날 황제 헌원씨(軒轅氏)는 하늘과 땅의 이치를 법칙으로 본 받았고, 네 성인은 각기 그 순서에 따라 황제가 만든 법도를 이루었다. 당요가 임금의 자리를 물려주었으나 우순은 기뻐하지 않았다. 이에 제왕들의 공덕을 찬미하여 덕을 찬미해 만세토록 전할 것이다. 이에 제일편인 를 지었다. 우임금의 가장 큰 공적은 구주에 두루 혜택을 주어, 요순 시대를 빛내고 그 공덕이 후세들에게 이르게 한 것이다. 하나라의 마지막 왕 걸왕(桀王)이 음탕하고 교만하여 이어서 명조(鳴條)로 추방되었다. 이에 제이편인 를 지었다. 설(薛)은 상을 세웠고 이어서 성탕에 이르러 하왕조를 대신하였다. 태갑은 동(桐)에 살았으며, 그 공덕을 깨달아 아형(阿衡)의 도움으로 세상에 덕을 펼칠 수 있었다. 무정(武丁)이 부열(傅說)..

한무제(漢武帝) 연표(전140-87년)

한무제(漢武帝) 연표 한무제 원년 기원전 140년, 건원(建元) 원년 1. 전해인 한경제가 16년만인 기원전 139년에 죽자 황태자 유철이 16세이 나이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한문제 23년 (前157年)6월에 한경제와 모후 왕씨 사이에 태어난 유철(劉徹)은 한경제 전원(前元) 4년(전153년) 황자의 신분으로 교동왕(胶东王)에 책봉되었다. 그때 경제의 장자는 율황후(栗皇后)의 소생 유영(劉榮)이 태자로 있었다. 한경제 7년(전150년) 율태자(栗太子) 유영을 태자의 자리에서 폐하여 임강왕(临江王)으로 만든 한경제는 유철의 모친 왕씨를 황후로 세우고 유철을 황태자로 세웠다. 2. 승상직에서 물러난 위관(衛綰)의 후임으로 두영(竇嬰)을 임명하고 왕태후의 이부동생 전분(田蚡)은 태위에 임명했다. 두 사람은..

第 十二. 孝武本紀(효무본기)

史記 本紀 第 十二. 孝武本紀(효무본기) ​ ​ ​孝武皇帝者, 孝景中子也. 母曰王太后. 孝景四年, 以皇子為膠東王. 孝景七年, 栗太子廢為臨江王, 以膠東王為太子. (효무황제자, 효경중자야. 모왈왕태후. 효경사년, 이황자위교동왕. 효경칠년, 율태자폐위임강왕, 이교동왕위태자.) [효무황제는 효경황제의 열번째 아들이며, 그의 어머니는 왕태후라고 불렸다. 효경제 4년, 황자의 신분으로 교동왕에 봉해졌다. 효경제 7년, 율태자가 폐위되어 임강왕으로 봉해지자, 교동왕이 태자의 자리에 올랐다.] ​ ​孝景十六年崩, 太子即位, 為孝武皇帝. 孝武皇帝初即位, 尤敬鬼神之祀. (효경십육년붕, 태자즉위, 위효무황제. 효무황제초즉위, 우경귀신지사.) [효경제가 즉위한 지 16년 만에 서거하자, 태자가 제위에 올라, 효무황제가 되었다..

第 十一. 孝景本紀(효경본기)

史記 本紀 ​ 第 十一. ​孝景本紀(효경본기) ​ ​ ​孝景皇帝者, 文之中子也. 母竇太后. 孝文在代時, 前后有三男, 及竇太后得幸, 前后死, 及三子更死,故孝景得立. (효경황제자, 효문지중자야. 모두태후. 효문재대시, 전후유삼남, 급두태후득행, 전후사, 급삼자경사, 고효경득립.) [효경황제는 효문황제의 둘째 아들로서, 모친은 두태후이다. 효문제가 "대" 땅에 있었을 때, 이전 왕후에게는 세 아들이 있었다. 그 후 두태후가 총애를 받게 되면서, 이전 왕후가 죽고, 그의 세 아들도 연달아 죽었으므로 효경이 황제의 제위를 계승하게 되었다.] ​ ​元年四月乙卯, 赦天下. 乙巳, 賜民爵一級. 五月, 除田半租, 為孝文立太宗廟. 令群臣無朝賀. 匈奴入代, 與約和親. (원년사월을묘, 사천하. 을사, 사민작일급. 오월, 제전..

第 十. 孝文本紀(효문본기)

史記 本紀 第 十. 孝文本紀(효문본기) 孝文皇帝, 高祖中子也. 高祖十一年春, 已破陳豨軍, 定代地, 立為代王, 都中都. 太后薄氏子. (효문황제, 고조중자야. 고조십일년춘, 이파진희군, 정대지, 입위대왕, 도중도. 태후박씨자. ) [효문황제 '유항'은 '고조'의 여덟 아들중에 넷째 아들이다. '고조' 11년 봄, '진희'가 이끄는 반란군을 격파한 '고조'는 "대" 땅을 평정한 뒤, '유항'을 대왕으로 세워 "중도"에 도읍을 정하였다. '유항'은 태후 박씨의 아들이다.] ​ ​即位十七年, 高后八年七月, 高后崩. 九月, 諸呂呂產等欲為亂, 以危劉氏, 大臣共誅之, 謀召立代王, 事在呂后語中. (즉위십칠년, 고후팔년칠월, 고후붕. 구월, 제여여산등욕위난, 이위유씨, 대신공주지, 모소립대왕, 사재여후어중. ) ​ [그가..

第 九. 呂太后本紀(여태후본기)

史記 本紀 第 九. ​呂太后本紀(여태후본기) 呂太后者,高祖微時妃也,生孝惠帝、女魯元太后. 及高祖為漢王,得定陶戚姬,愛幸,生趙隱王如意 (여태후자, 고조미시비야, 생효혜제· 여노원태후. 급고조위한왕, 득정도척희, 애행, 생조은왕여의. ) ​ ['여태후'는 '고조'가 미천할 때의 부인으로 '효혜제'와 딸 '노원태후'를 낳았다. '고조'가 한나라의 왕이 된 뒤 "정도"의 '척희'를 또 아내로 맞이해 총애했고, '척희'는 척부인으로 불리며 조은왕 '여의'를 낳았다. ] ​ ​孝惠為人仁弱,高祖以為不類我,常欲廢太子,立戚姬子如意,如意類我. 戚姬幸,常從上之關東,日夜啼泣,欲立其子代太子. (효혜위인인약, 고조이위불류아, 상욕폐태자, 입척희자여의, 여의류아. 척희행, 상종상지관동, 일야제읍, 욕립기자대태자. ) ['효혜제'는 사..

第 八. 高祖本紀(고조본기)

史記 本紀 第 八. 高祖本紀(고조본기) ​高祖, 沛豐邑中陽裏人, 姓劉氏, 字季. 父曰太公, 母曰劉媼. 其先劉媼嘗息大澤之陂, 夢與神遇. (고조, 패풍읍중양리인, 성유씨, 자계. 부왈태공, 모왈유온. 기선유온상식대택지피, 몽여신우.) ​[고조 '유방'은 패현 풍읍 중양리 사람으로, 성은 '유'이고 자는 '계'이다. 부친은 '태공'이고 모친은 '유온'이다. 일찍이 '유온'이 큰 연못가에서 쉬고 있다가 잠이 들어 꿈속에서 神을 만났다.] 是時雷電晦冥, 太公往視, 則見蛟龍於其上. 已而有身, 遂產高祖. (시시뇌전회명, 태공왕시, 즉견교룡어기상. 이이유신, 수산고조.) ​ [그때 뇌성벽력이 치고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여 어두워졌고, '태공'이 가서 보니 교룡이 '유온'의 배 위에 있었다. 곧이어 '유온'의 몸에 태기가..

第 七. 項羽本紀(항우본기)

史記 本紀 第 七. 項羽本紀(항우본기) 項籍者, 下相人也, 字羽. 初起時, 年二十四. 其季父項梁, 梁父即楚將項燕, 為秦將王翦所戮者也. 項氏世世為楚將, 封於項, 故姓項氏. (항적자, 하상인야, 자우. 초기시, 년이십사. 기계부항량, 량부즉초장항연, 위진장왕전소육자야. 항씨세세위초장, 봉어항, 고성항씨.) ​ ['항적'은 "하상" 사람으로 자는 '우'라고 하며 처음 군대를 일으켰을 때의 나이가 24세였다. 그의 막내 삼촌은 '항량'이며 '항량'의 부친은 초나라의 장수 '항연'으로 진나라 장수 '왕전'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다. 항씨는 대대로 초의 장수로서 항의 제후로 봉해졌으므로 성을 항씨로 하였던 것이다. ] ​ 項籍少時, 學書不成, 去學劍, 又不成. 項梁怒之. 籍曰:“ 書足以記名姓而已. 劍一人敵, 不足學..

第 六. 秦始皇本紀(진시황본기)

史記 本紀 第 六. 秦始皇本紀(진시황본기) ​ 秦始皇帝者, 秦莊襄王子也. 莊襄王爲秦質子於趙, 見呂不韋姬, 悅而取之, 生始皇. 以秦昭王四十八年正月生於邯鄲 . (진시황제자, 진장양왕자야. 장양왕위진질자어조, 견여불위희, 열이취지, 생시황. 이진소왕사십팔년정월생어한단. ) ['진시황'은 진나라 '장양왕'의 아들이다. '장양왕'이 인질로 趙나라에 있을 때 '여불위'의 애첩 '조희'를 보고 반하여 취하였다, 이어 시황을 낳았다. 진시황은 진소왕 48년(기원전 259년) 정월에 趙나라 수도 "한단"에서 태어났다. ] 及生, 名爲政, 姓趙氏. 年十三歲, 莊襄王死, 政代立爲秦王. (급생, 명위정, 성조씨. 년십삼세, 장양왕사, 정대립위진왕. ) ​ [태어남과 더불어 이름을 '정', 성은 '조'라고 하였다. ​시황이 1..

第 五. 秦本紀(진본기)

史記 本紀 第 五. 秦本紀(진본기) ​ ​秦之先, 帝顓頊之苗裔孫曰女修. 女修織, 玄鳥隕卵, 女修吞之, 生子大業. 大業取少典之子, 曰女華. 女華生大費, 與禹平水土. (진지선, 제전욱지묘예손왈여수. 여수직, 현조운란, 여수탄지, 생자대업. 대업취소전지자, 왈여화. 여화생대비, 여우평수토. ) [진나라의 원조는 오제 가운데 한사람인 '전욱'의 피를 이어 받은 후손 '여수'를 말한다. '여수'가 베를 짜고 있을때 제비 한마리가 날아와 알을 떨어뜨리자 '여수'는 그 알을 얼른 집어 삼키고 아들 '대업'을 낳았다.'대업'은 동이족 '소전'의 딸에게 장가를 들었으며 그녀의 이름은 '여화'라고 불렸다. '여화'는 '대비'를 낳았으며, '우'와 함께 물과 땅을 관리하였다.] ​ ​已成, 帝錫玄圭. 禹受曰:“ 非予能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