楚 策 [序文] 초나라는 춘추전국시대 전 기간에 걸쳐 흔히 비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형(荊)나라로 별칭되었다. 이는 초나라가 비록 열국 중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니고 있었으나 작위가 겨우 자작(子爵)에 불과한데도 멋대로 칭왕한데 따른 멸시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초나라의 성씨는 미성(芈姓)이다. 전욱의 후손 중려(重黎)가 제곡(帝嚳) 때 화정관(火正官)이 되어 축융(祝融)으로 불렸다. 중려가 죽은 뒤 그의 동생 오회(吳回)가 계속해 축융을 지냈고, 그 후손 육종(陸終), 육(六), 계련(季蓮)을 거쳐 육웅(鬻熊) 때 주문왕에게 귀의해 주무왕을 도와 묘족(苗族)을 격파했다. 이에 웅(熊)을 성으로 삼은 뒤 주성왕 때 육웅의 증손인 웅역(熊繹)이 자작에 봉해져 단양(丹陽: 호북성 자귀현)에 도읍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