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本紀(사기본기)

史記 本紀

덕치/이두진 2021. 6. 27. 12:18

 

                     史記 本紀

 

 

옛날 황제 헌원씨(軒轅氏)는 하늘과 땅의 이치를 법칙으로 본 받았고,
네 성인은 각기 그 순서에 따라 황제가 만든 법도를 이루었다.
당요가 임금의 자리를 물려주었으나 우순은 기뻐하지 않았다.
이에 제왕들의 공덕을 찬미하여 덕을 찬미해 만세토록 전할 것이다.
이에 제일편인 <오제본기(五帝本紀)>를 지었다. 

 

우임금의 가장 큰 공적은 구주에 두루 혜택을 주어, 요순 시대를 빛내고 그 공덕이 후세들에게 이르게 한 것이다.
하나라의 마지막 왕 걸왕(桀王)이 음탕하고 교만하여  이어서 명조(鳴條)로 추방되었다. 
이에 제이편인 <하본기(夏本紀)>를 지었다.  

 

설(薛)은 상을 세웠고 이어서 성탕에 이르러 하왕조를 대신하였다. 태갑은 동(桐)에 살았으며, 그 공덕을 깨달아 
아형(阿衡)의 도움으로 세상에 덕을 펼칠 수 있었다.  무정(武丁)이 부열(傅說)을 등용하여 치세를 이루었으며, 
무정은 은나라를 부흥시킨 공으로 후세들로부터 고종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상나라의 마지막 왕 주왕(紂王) 신(辛)은 주색에 빠졌기 때문에 천하의 제후들이 와서 받들지 않았다. 
이에 제삼편인<은본기(殷本紀)>를 지었다. 

 

기(棄)가 자라 순임금 때 후직(后稷)이 되어 덕을 베풀자, 그 후손이 번성하여 서백(西伯)이 되었다. 
서백의 아들 무왕은 목야(牧野)에서 승전하여 천하를 위무하고 주나라를 세웠다. 
유왕(幽王)과 려왕(厲王)이 아둔하여 정사를 어지럽힌 결과 풍호(酆鎬 : 풍읍과 호경)를 잃었다. 
주나라는 차츰 쇠약해지더니 난왕(赧王) 때 이르러 낙읍에서 사직이 끊기게 되었다. 
이에 제사편인 <주본기(周本紀)>를 지었다. 

 

진나라의 선조는 백예인데 하나라를 세운 우임금을 보좌했다. 진목공(秦穆公)은 의(義)를 생각하여
효산(崤山)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넋을 애도하였으나, 목공이 죽으면서 사람으로 순장을 지내게 하니 
그 두려움을 <황조(黃鳥)>라는 시가로 노래했고 후에 소양왕 때에 이르러서야 제업(帝業)을 이루었다.  
이에 제오편인 <진본기(秦本紀)>를 지었다. 

 

진시황이 즉위하여 나머지 육국을 차례로 병합하고 무기를 녹여 쇠북을 만들어 군사들을 쉬게 하며 전쟁을 막고, 
호칭을 높여 제(帝)라 칭하며 무력을 과시하며 폭력을 휘둘렀다. 
이세에 이르자 그 운이 다하여 자영(子嬰)은 항복하여 포로가 되었다. 
이에 제육편인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를 지었다.  

 

진나라가 그 도를 상실하자 천하의 호걸들이 한꺼번에 일어나더니 항량이 제일 먼저 공업을 세우고

항우가 그 뒤를 계승하였다.
이어서 항우는 조나라를 구한 다음 경자관군(慶子冠軍) 송의를 죽이자, 제후들이 그를 왕으로 세웠다.
이어서 항우는 진나라의 왕 자영(子嬰)을 죽이고 초 회왕을 배신하자, 천하 사람들은 그의 행위를 비난하였다.
이에 제칠편인 <항우본기(項羽本紀)>를 지었다.

 

항우는 포학하였으나 한왕 유방은 공을 세우고 덕을 베풀었으며 촉과 한 땅에서 분발하여
관중으로 나와 삼진(三秦)을 평정하고 항우를 죽이고 제왕의 업을 이루자  천하는 비로소 안정되었고
엄혹한 진나라의 법제를 고치고 백성들의 풍속을 바꾸었다. 
이에 제팔편인 <고조본기(高祖本紀)>를 지었다.

 

고조의 뒤를 이은 혜제가 일찍 죽은 뒤 여씨들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
여록(呂祿)과 여산(呂産)을 높여 강력한 권력을 손에 쥐자 제후들이 도모하려고 하였다.
여태후가 조나라의 은왕(隱王) 여의(如意)와 유왕(趙幽王) 우(友)를 죽이자 
모든 대신들이 여씨들을 의심하게 되어 결국은 그 종족들이 멸족의 화를 입게 되었다.
이에 제구편인 <여태후본기(呂太后本紀)>를 지었다.

 

한나라가 처음 일어났을 때 제위를 잇는 순서가 확실하지 않아 대왕(代王 : 유항)을 모셔 와 천자로 옹립하니,
비로소 천하의 인심이 안정이 되었다. 신체를 훼손하는 육형을 없애고,
통행의 요로에 설치한 관(關)과 나루터를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 그 은혜를 널리 베풀자
세상에서 그를 일컫어 태종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에 제십편인 <효문본기(孝文本紀)>를 지었다.

 

제후들이 교만 방자해진 결과 오왕이 앞장서서 반란을 일으켰다.
황제가 군사를 보내어 반란자들을 주살하니 7국이 그 죄에 굴복하였다.
천하는 화평하게 되었고 백성들의 생활은 크게 안정이 되어 풍요롭게 되었다. 
이에 제십일편인 <효경본기(孝景本紀)>를 지었다.



한나라가 흥기한 지 5대가 지나 건원(建元)에 이르러 융성해졌다.
나라 밖으로는 이적을 물리치고, 나라 안으로는 법규를 정비하였고 
봉선을 행했으며 역법을 개정하고 복장의 색을 바꾸었다.  
이에 제십일편인 금상본기(今上本紀) 즉 <효무본기(孝武本紀)>를 지었다.

 

                          

          

    資料  編輯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