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表(사기 표)

史記 表

덕치/이두진 2021. 6. 27. 16:26

 

               史記   表

 

 

 

하, 상, 주(夏商周) 삼대는 너무 먼 옛날의 일이라 구체적인 연대기를 고찰할 수 없어, 
대체로 보첩(족보)과  옛날 문헌에 근거하여 대략적인 추측으로,
제일편 <삼대세표(三代世表)>를 지었다. 

 

주나라의 려왕(厲王)과 유왕(幽王) 이후에 주나라 왕실이 쇠미해지자 제후들이 그 정치를 스스로 행하였는데
《춘추》에도 기록되지 않은 것이 있다. 그러나 보첩에 기록된 경략을 보면 오패가 번갈아 가며 흥하고 망했다. 
그래서 주나라 시대에 제후들의 흥망성쇠를 살펴보고자, 제이편 <십이제후연표(十二諸侯年表)>를 지었다.

 

춘추시대 이후로 권신들이 정권을 잡고 강국이 되어 서로 왕호를 칭했다.
이윽고 진나라에 이르러 중원의 제후국들을 모조리 병합하고 그들의 봉지를 없앤 다음 호칭을 제멋대로 했다.
이에 제삼편 <육국연표(六國年表)>를 지었다.

 

진나라가 이미 폭정을 행하므로 초나라 사람이 일어나 난을 일으켰다. 항우가 그 뒤를 이으니 한나라는 의를 내세워
정벌군을 일으켰다. 그 팔 년 동안 천하는 주인이 세 번 바뀌었으며 사건의 양상은 매우 복잡하고 변화가 많았다. 
이에 상세하게 기록한, 제사편 <진초지제월표(秦楚之際月表)>를 지었다.

 

한나라가 흥기한 이래 태초(太初)연간에 이르기까지 백년이 지나는 동안 제후들의 책봉과 폐위
그리고 영토 분할과 삭감이 있었지만, 그 보첩(報牒)의 기록이 분명하지 않은 것은
담당 관리가 그 행적을 쫓지 못하고 강약의 원리를 계속 규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에 제오편 <한흥이래제후연표(漢興以來諸侯年表)>를 지었다.

 

고조(高祖)가 천하를 얻었을 때, 팔다리처럼 보좌한 창업공신들은 모두가 신임을 받아 봉록과 작위를 얻어
그 은혜와 혜택이 후세에 전해졌으나 그 중에는, 가깝고 먼 친분관계를 망각한 결과
그 중에 어떤 제후들은 생명을 잃기도 하고 혹은 나라를 잃기도 했다.
이에 제육편 <고조공신후자연표(高祖功臣侯者年表)>를 지었다.

 

혜제와 경제 연간에 공신과 종친에게 작위와 영토를 추가해 내려주었다. 
이에 제칠편 <혜경간후자연표(惠景閒侯者年表)>를 지었다.

 

북쪽으로는 강성한 흉노를 토벌하고, 남쪽으로는 억센 월인들을 죽였으며 다시 동이와 남만의 오랑캐를 정벌했다. 
그때 세운 무공의 순서에 따라 열후에 봉해졌다.
이에 제팔편 <건원이래제후연표(建元以來侯者年表)>를 지었다. 

 

제후들이 강성해지자 7국이 연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제후들의 자제는 늘어나고 그들에게 나누어 줄 작위에 봉지가 부족하게 되었다.
이에 은혜를 베풀어 의를(추은령) 행하도록 하여 그 세력을 약화시키자, 덕은 모두 황실로 향하게 했다.
이에 제구편 <건원이래왕자후자연표(建元以來王子侯者年表)>를 지었다.

 

나라에 어진 재상과 훌륭한 장수가 있음은 백성들의 본보기다.
한나라가 흥기한 이래 장군과 재상 그리고 명신 연표를 보고 어진 사람에 대해서는
그 치적을 기록하고 어질지 못할 자에게는 그가 저지른 잘못을 기록하여 널리 알렸다.
이에 제십편 <한흥이래장상명신연표(漢興以來將相名臣年表)>를 지었다.  

 

 

                         

            資料  編輯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