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列傳(사기열전)

史 記 列 傳

덕치/이두진 2021. 7. 14. 17:06

 

                    史 記 列 傳    

                                       司馬遷

 

 70편으로 왕과 제후 외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영웅, 정치가, 학자, 군인, 일반서민등

다양한 인물들의 활동을 통해 인간 삶의 문제를 집요하게 추구한 개인 전기이다.

 

* 第一編 : 伯夷列傳(백이열전)

伯夷, 叔齊(숙제)는 商나라 孤竹國의 후계자로 아버지는 왕위를 동생 숙제에게 양위 하려 하자,

숙제는 형 백이에게 양여 하려한다. 세상이 말세가 되면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이익을 다투게 되나,

오로지 백이와 숙제만은 의를 추구하여 나라의 군주 자리도 마다하고 수양산에 들어가 결국은 굶어 죽었으니,

천하 사람들이 그들을 칭송하였다. 

[求仁得仁] : 인을 구하려고하여 인을 얻었다 .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다 .
[讀書亡羊] : 책을 읽다가 양을 잃었다. 다른일에 정신을 팔다가 중요한 일을 소흘히 한다 .

* 第二編 : 管晏列傳(관안열전)

管仲( ? ~ BC 645 ) 春秋시대, 齊나라 桓公을 覇者로 만든 名 宰相 .
晏子( 晏嬰 ? ~ BC 500 ) 春秋시대 齊나라 靈(영), 莊(장), 景(경), 3대를 섬긴 宰相. 《晏子春秋》.

​안자(晏子) 평중(平仲)은 검소했으며 관자(管子) 이오(夷吾)는 사치스러워 두 사람은 서로 행하는 바가 달랐으며,

이오는 제환공을 패자로 만들었고 평중은 제경공으로 하여금 치세를 이루게 만들었다.  
[管鮑之交] : 관중과 포숙의 사귐 . 서로 이해하고 믿고 정답게 지내는 깊은 우정 .
[轉禍爲福] :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된다 .
[晏子之御] : 안자의 마부 . 보잘것 없는 지위를 믿고 잘난체 하는 기량이 작은 사람 .

* 第三編 : 老子韓非列傳(노자 한비열전)

老子(春秋, 楚나라 철학자). 도가의 일인자.
韓非子(戰國末期 韓나라 사상가) .형법학의 대표적인 인물. 

노자(老子) 이이(李耳)는 무위(無爲)를 주장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선하게 만들게 하고 
마음을 깨끗하게 가짐으로써 스스로 올바른 마음을 갖게 만들었으며,
한비자는 각기 사물과 시세의 정황을 헤아려 세력과 도리가 움직이는 이치에 따랐다.     

[良賈深藏(양고심장)] : 지혜로운 사람은 학덕을 자랑하지 않는다.

* 第四編 : 司馬穰苴列傳(사마양저열전)

司馬襄苴(春秋, 齊나라 경공(26대)때 병법가).

재상 안영의 추천으로 장군에 임명. 《司馬法》.

옛날 왕들에게도 <사마법>이라고 있었으나, 사마양저가 그 병법의 쓰임새 넓히고 분명히 밝혔다.

* 第五編 : 孫子吳起列傳(손자 오기열전) 

孫武(春秋, 齊나라 전략가), 吳王 '闔閭'(합려 BC 515 ~ 496 )때 등용.

《孫子兵法》.
吳起(춘추전국 衛나라 ⇒ 魯나라 장군⇒ 魏나라⇒ 楚나라 宰相). 《吳子兵法書》.

​신(信), 염(廉), 인(仁), 용(勇)이 아니고는 병법과 검술에 대해 논할 수 없으며 부절이 서로 맞듯이

그 이론이 도에 부합해야만 안으로는 스스로 자기 몸을 다스릴 수 있고, 밖으로는 그 변화에 대해 대처할 수 있다. 
군자가 이것에 더하여 같이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덕이라고 했다.  

[吮‍疽之仁(연저지인)] : 장수가 자기부하의 종기를 입으로 빨아서 고쳐 나았다 .
[孫龐鬪智(손방투지)] : "손빈과 방연이 지혜를 다투다".

대등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지모를 다하여 경쟁하다.

* 第六編 : 伍子胥列傳(오자서열전)

伍子胥(春秋, 楚나라 出. 楚平王이 부친과 형을 죽이자 吳로 망명.

손무와 함께 楚를 격멸. 태자건(太子建)이 비무극으로부터 참소를 당해 그 화가 오사(伍奢)의 몸에 미쳤다. 
오상(伍尙)은 그 부친을 위해 목숨을 버렸으며 그 동생 오자서는 오나라로 달아나 
 부친과 형의 원수를 갚았다.   
[掘墓鞭屍(굴묘편시)] :"묘를 파헤쳐 시체에 매질하다". 통쾌한 복수나 지나친 행동을 일컫는다 .
[吳越同舟] : 서로 미워하면서 공통의 어려움이나 이해에 대해서는 서로 협력 .
[臥薪嘗膽(와신상담)] 가시가 많은 나무에 누워 자고 쓰디쓴 곰 쓸개를 씹으며 굴욕을 되새김.

* 第七編 : 仲尼弟子列傳(중니제자열전)

孔丘( BC 551 ~ 479 ).(春秋末期 魯나라 정치, 사상가).

제자 73인에 관한 내용으로 공자는 학문과 문학을 논하고 그 제자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세상에 널리 번창시켰으며,

그들은 모두 사람들의 스승이 되어, 사람들로 하여금 인을 숭상하고 의를 행하게 하였다.  

* 第八編 : 商君列傳(상군열전)

商盎(公孫 BC ? ~ 338 ) 戰國시대, 秦나라 정치가, 宰相.

토지제도와 군현제를 시행하는 대개혁 단행 .

​상앙은 위(衛) 땅을 떠나 진나라로 들어가 그가 배운 술법을 능히 펼칠 수 있어, 
진효공(秦孝公)을 패자로 만들었음으로 후세 사람들이 그가 펼친 법술을 따랐다. 

[道不拾遺(도불습유)] : "길에 떨어진 것을 줍지 않는다". 법을 잘 지켜 나라가 태평하다 .
[移木之信(이목지신)] : "나무 옮기기로 백성을 믿게한다". 남을 속이지 않고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 .

* 第九編 : 蘇秦列傳(소진열전)

蘇秦(戰國시대. 東周 유세가 ⇒ 燕나라 관료로 趙, 韓, 魏, 齊, 楚 6국 합종에 성공하였으나

훗날 張儀의 연횡책에 패배하였다. 

천하가 근심하고 있었던 것은 진나라의 연횡과 그칠 줄 모르는 욕심이었다. 
소진은 제후국들을 존립하게 하고  합종의 맹약을 맺게 하여 탐욕스러운 강국 진나라를 제어 하였다.  

[前倨後恭(전거후공)] : 과거에는 거만했는데 나중에는 공손하다. 상대의 입지에 따라 태도가 돌변 .

* 第十編 : 張儀列傳(장의열전)

張儀( BC ? ~ 309 ) 戰國시대. 魏나라 謀士.⇒ 秦나라 혜문왕때 재상 ⇒ 魏나라 宰相 1년후 사망. 連衡派(연횡파).

​육국이 서로 합종을 맺어 친하게 지내게 되자 장의는 그 잘못을 지적할 수 있어 
다시 합종책을 깨고 제후들을 해산시킬 수 있었다.

 

* 第十一編 : 樗里子甘茂列傳(저리자 감무열전)

樗里疾(戰國시대. 秦나라 27대 武王때, 左丞相. )
甘茂(戰國시대. 右丞相. )

​진나라가 동쪽의 제후들을 물리치고 천하에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은, 저리질(樗里疾)과 감무(甘茂)의 계책 덕분이었다.

 

* 第十二編 : 穰侯列傳(양후열전)

魏冉(위염 : 戰國시대. 秦나라 昭陽王의 숙부. 宰相).

白起를 장수로 삼아 韓, 趙, 魏,, 楚를 차례로 격멸.

황하와 태산을 차지하고 대량(大梁)을 포위하여 제후들로 하여금 두 손을 모으고 진나라를 섬기게 한 것은

위염(魏冉)의 공로였다.   

* 第十三編 : 白起王翦列傳(백기 왕전열전) 

白起(=公孫起) (戰國시대. 秦나라 장수로 昭王때 무안군 임명).

范雎(범수)의 시기로 자결 .王翦(秦始皇 時 장수로 아들 왕분과 함께 진의 통일에 일조).
戰國時代 4대 名將: 王翦, 白起, 廉頗(염파), 李牧(이목).

진(秦)이 남쪽으로는 초나라의 도성 영(郢)를 함락시키고, 북쪽으로는 장평에서 조나라 군사 40만을 몰살시켰으며

이어서 조나라의 수도 한단을 포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무안군 백기가 지휘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또한 초나라와 조나라를 멸하여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 할 수 있었던 것은 
왕전의 계책에 따랐기 때문이었다.

* 第十四編 : 孟子荀卿列傳(맹자 순경열전)

孟子(戰國, 魯나라 사상가, 性善說). 《孟子 7편》.
荀子(戰國, 趙나라 사상가, 性惡說). 楚의 春申君에의해 장관직에 임명. 제자로는 李斯.

유가(儒家)와 묵가(墨家)가 남긴 문헌을 섭렵한 맹자는 예의를 행하는 데 필요한 기강을 밝혔고, 
양혜왕(梁惠王)의 이익에만 집착한 마음을 끊게 만들어 지난 옛날의 흥망성쇠를 열거했다. 

* 第十五編 : 孟嘗君列傳(맹상군열전)

田文(戰國, 齊나라 왕족. 秦, 齊, 魏 宰相. 〈戰國四公子〉.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은 문객과 선비를 좋아하니 천하의 많은 선비들이 설(薛) 땅으로 모여들었다. 
그는 그 선비들을 이용하여 제나라를 위해 초나라와 위나라의 침략을 막아 낼 수 있었다.

[鷄鳴狗盜(계명구도)] : 닭의 울음소리를 잘 내고 개의 흉내를 잘 내어 좀도둑질을함 .
[名不虛傳] "이름은 헛되이 전해지지 않는다". 명성이 널리 알려진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

* 第十六編 : 平原君虞卿列傳(평원군 우경열전)

趙勝(戰國, 趙나라 惠文王의 동생. 宰相).
虞卿( 趙나라 관리). 〈戰國四公子〉.

조나라의 평원군은 풍정(馮亭)과 권력을 다투다가 초나라로 가서 구원군을 얻어 한단의 포위를 풀고, 
그 군주로 하여금 제후들 사이에 이름을 드높이게 했다.

* 第十七編 : 魏公子列傳(위공자열전)

信陵軍, 魏無忌(魏나라 魏昭王의 아들).

〈후영: 모략가, 주해: 무사 ⇒ 馬夫 자청〉. 〈戰國四公子〉.

부귀한 신분이면서 가난하고 천한 자들을 우대했고, 현능하면서도 불초한 자들에게 능히 몸을 숙일 수 있었으니, 

이는 오로지 신릉군만이 할 수 있었다.

* 第十八編 : 春申君列傳(춘신군열전)

黃歇(황헐 : 戰國末期, 楚나라 考烈王때 令尹(=宰相). 〈戰國四公子〉.

그 모시던 군주를 위해 몸을 바침으로 결국은 강포한 진나라로부터 고열왕을 탈출시키고, 
유세하던 선비들을 남쪽의 초나라로 발길을 돌리게 한 것은 황헐의 의로운 마음에서 였다. 

* 第十九編 : 范睢蔡澤列傳(범수 채택열전)

范雎(戰國시대. 魏나라 ⇒ 秦나라 宰相, 張祿, 應侯. )
〈中大夫 '須賈'曰: 靑雲直上, 一寒如此(매우 가난함을 이르는 말.)〉

범수는 위제(魏齊)로부터 당한 치욕을 참아내고 강한 진나라에서 신임을 얻어 위엄을 떨쳤다. 

물러날 때가 되자 어진 사람을 대신 추천하고 자기의 자리를 양보해 주니 범수와 채택 모두 미덕을 갖출 수 있었다.

* 第二十篇 : 樂毅列傳(악의열전)

樂毅(戰國시대. 魏나라. ⇒ 燕나라 昭王때 상장군. ⇒ 燕,趙의 客卿(公卿. )

군대를 이끌고 자신의 계책에 따라 실행하였으며 이웃 다섯 나라의 군사들과 연계하여, 
국력이 약한 연나라를 위해 강성한 제나라에 원수를 갚게 함으로써 그 모시던 군주의 치욕을 씻었다.

* 第二十一篇 廉頗藺相如列傳(염파 인상여열전)

廉頗(戰國시대. 趙나라 혜문왕때, 名將. )
藺相如(戰國시대. 趙나라 혜문왕때, 名臣. ) 

인상여는 강한 진나라에 맞서 자기의 의지를 분명히 나타내었고, 또한 염파에게는 몸을 낮추어 
그 군주에게 충성을 바칠 수 있게끔 하였다. 마침내 두 사람은 천하의 제후들로부터 중시되었다.     

[刎頸之交(문경지교)] : 목을 벨 수 있는 벗이라는 뜻으로,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매우 소중한 벗.

* 第二十二編 : 田單列傳(전단열전)

田單(戰國시대. 齊나라 將帥). 

제민왕이 이미 임치성을 빼앗기고 제나라를 떠나 거(莒) 땅으로 도망쳤다. 
전단은 즉묵을 굳게 지키다가 연나라 장수 기겁(騎劫)을 격파하여 마침내 제나라의 사직을 보존했다.        

[火牛之計] : 여러 마리의 황소 뿔에 칼을 매고 꼬리에는 기름 뭉치나 갈대 다발을 매단 다음

불을 놓아 적진으로 쫓음.

* 第二十三編 : 魯仲連鄒陽列傳(노중연 추양열전)

魯仲連(戰國시대. 齊나라 公卿. )
鄒陽(戰國시대. 韓나라 학자.)

노중연과 추양은 달변과 궤변으로 진나라 군사들에 의해 포위된 성의 포위망을 풀고,

작위와 봉록도 가볍게 여기고 단지 자기들의 뜻한 바를 마음껏 펼치는 것 만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 第二十四編 : 屈原賈生列傳(굴원 가생열전)

屈原(戰國, 楚나라 懷王때 左徒(=左相), 시인).

《懷沙(회사)》: 멱라수에 투신자살 직전 작품.

​초사(楚辭)라는 시부를 창조하여 정치를 풍자하여 간하고 그와 비슷한 것들을 비유함으로써 정의를 주장했다. 

그가 지은 <이소>라는 시가는 이러한 것들을 지니고 있다.
[衆醉獨醒(중취독성)] : 모두 취하여 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있다. 《漁父辭》
[與世推移(여세추이)] : 세상의 변화에 맞추어 융통성있게 적응해 간다.
[黑白顚倒(흑백전도)] : 검은것과 흰것이 거꾸로 되었다 . 

* 第二十五編 : 呂不韋列傳(여불위열전)

呂不韋(戰國末期 秦나라 宰相, 相國 , 文信侯).

秦始皇 '영정'의 生父. 《呂氏春秋》. 

조나라의 포로가 된 자초(子楚)와 친분을 맺고, 제후들로 하여금 서로 다투어 진나라를 섬기도록 했다. 
[一字千金] : 매우 빼어난 글자나 시문 .
[奇貨可居(기화가거)] : 진기한 물건이나 사람은 당장 쓸 곳이 없다 하여도 훗날을 위하여 잘 간직하는 것이 옳다 .

* 第二十六編 : 刺客列傳(자객열전)

荊軻(형가) : 魏나라 出, 燕나라 태자 '丹'의 부탁으로 진시황 암살 시도.

專諸(전제) : 오나라 공자 '光'을 도와 요리사로 분장. 오왕 '요'를 살해. '光'이 오왕 '합려' 이다
豫讓(예양) : 晉나라 智伯을 섬겼으나 趙襄子가 韓, 魏 와 공모하여 지백을 멸하자 복수를 다짐.

​조자(조말(曺沫)는 비수를 가슴에 품고 회맹장에 들어가 제환공을 위협하여 노나라의 빼앗긴 땅을 되찾고,
제환공으로 하여금 그 말을 지켜 신의라는 것을 밝히게 했으며, 
예양은 의리를 지켜 결코 두 마음을 품지 않았다. 
[瞋目裂疵(진목열자)] : 눈이 찢어질 듯이 부릅뜨고 노려보다 .
[傍若無人(방약무인)] : 주위의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다 .
[圖窮匕首見(도궁비수현)] : 지도를 펼치자 비수가 나타나다 . 일이 탄로가 나다 .

* 第二十七編 : 李斯列傳(이사열전)

李斯(戰國末期 楚나라.⇒ 秦나라 客卿.⇒ 丞相. 郡縣制, 焚書坑儒 주도.

조고의 讒訴로 투옥, 처형.

​진나라를 위해 그림을 그리듯 그 계책을 명확히 세웠고, 시기를 가려가며 진(秦)에서 그 뜻을 실천함으로써, 
마침내 진이 천하를 주도할 수 있게 하니 이사가 그런 모사의 으뜸이었다. 

[慈母有敗子] : 자식에 대한 사랑이 지나치면 자식이 방자하고 버릇없는 사람이 된다.
[泰山不辭土壤] : 사소한 의견이나 인물을 수용할수 있는 자만이 큰 인물이 될 수있다

* 第二十八編 : 蒙恬列傳(몽염열전)

蒙恬(秦나라 장군). BC 215 匈奴정벌. 萬里長城 완성.

趙高와 李斯의 흉계로 투옥, 자살.

​진나라를 위해 영토를 더욱 넓혀 백성들을 늘렸으며, 북으로는 흉노를 쳐부수고,

황하를 거점으로 삼아 요새를 구축했다. 또한 산을 의지해 더욱 견고한 방어를 구축하기 위해 유중을 건설했다. 
[聲名狼藉(성명낭자)] : 악명으로 평판이 나빠져서 명성이 땅에 떨어진다 .

* 第二十九編 : 張耳陳餘列傳(장이 진여열전)

張耳(趙나라 대신⇒ 韓나라 武將 ⇒ 趙王.)
陳餘(趙나라 대신, 상장군. 한신의 공격으로 사망.)

조나라를 지키고 상산(常山)에 요새를 세웠으며 이윽고 그 세력을 하내군(河內郡)까지 확장하고,  
초나라의 세력을 약화시켜 한왕(漢王)의 신의를 천하에 밝혔다.

* 第三十編 : 魏豹彭越列傳(위표 팽월열전)

魏豹(魏나라 왕실의 일족, ⇒ 서위왕).
彭越( 유방의 부하 장수).

​위표(魏豹)는 서하(西河)와 상당의 병사들을 이끌고 한왕을 따라 항우를 공격해 팽성에 이르렀다. 
팽월(彭越)은 양(梁)을 침략하여 항우를 괴롭혔다.  

[乞骸骨] : 재상이 나이가 들어 조정에 나오지 못하게 되었을때 주군에게 관직에서 물러나기를 주청 하는말.

* 第三十一編 : 黥布列傳(경포열전)

黥布(楚나라 장수).

​경포는 회남의 땅을 차지했다가 초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에 귀의했다.
한나라는 그를 이용하여 초나라의 대사마 주은(周殷)을 얻고 마침내 항우를 해하(垓下)에서 격파했다. 

[獨當一面] : 독자적으로 한 부분이나 한 방면을 담당 .

* 第三十二編 : 淮陰侯列傳 (회음후열전)

韓信(漢나라 장수). ⇒ 楚나라 項羽 신하. ⇒ 漢나라 劉邦 신하.

"陳稀"의 난 연루 참살.

​초나라가 한나라를 경현(京縣)과 삭성(索城)에서 압박할 때 한신은 그 뒤를 돌아 위(魏)와 조(趙)를 점령하고, 

다시 연나라와 제나라를 평정했다. 천하는 한신에 의해 삼 분 되었으나 그 중 하나를 한나라에 바쳐 

한나라는 그 둘을 차지하게 되어 그 힘으로써 항우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兎死狗烹(토사구팽)] : 교활한 토끼가 죽고나면 사냥개도 삶아진다 .
[捷足先得(첩족선득)] : 행동이 신속한 사람이 가장 먼저 목적을 달성한다 .
[千慮一失(천려일실)] : 천가지 생각중에 한가지 실수는 있을수 있다 .

* 第三十三編 : 韓信盧綰列傳(한신 노관열전) 

盧綰(漢高祖때 諸侯). 유방을 도와 長安侯. ⇒ 燕王.

"陳稀(진희)"의난으로 동호에 투항.

초나라와 한나라가 공성(鞏城)과 낙읍(洛邑)에서 대치하고 있을 때 한왕 신(信)은 영천(潁川)의 길을 메워

퇴로를 차단하고 노관은 항우 군대의 식량 노선을 끊었다.

* 第三十四編 : 田擔列傳(전담열전)

田擔(齊나라 宗室인 田氏 一族).

동생 田橫, 田榮과 함께 秦에 반기를 들어 齊를 다시 일으킴.

제후들이 항우를 배반했을 때 오직 제왕만이 성양에 있으면서 항우와 연계하였다. 
한왕(유방)은 이 틈을 타서 마침내 팽성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第三十五編 : 樊酈藤灌列傳(번 역 등 관열전)

樊噲(번쾌 : 漢 高祖때 ⇒ 좌승상, 相國, 舞陽侯).
酈商(역상 : 曲周侯. 漢나라 丞相). * 酈(땅이름).
灌嬰(관영 : 휴양의 비단상인 ⇒ 漢나라 기마술이 뛰어난 장수 ⇒ 승상, 경陰侯).

​성을 공략하고 야전에서 적군과 싸움에 임하여 공을 세우고 돌아와 보고하기 까지에는

번쾌(樊噲)와 역상(酈商)이 가장 큰 힘을 발휘했다.

그들은 단지 한왕을 위해 말채찍을 잡고 달렸을 뿐만 아니라 함께 난관을 벗어나기도 했다. 
[羞與噲伍(수여쾌오)] : 번쾌와 대오를 함께하는 것을 부끄러워 하다 .
[斗酒不辭(두주불사)] : "말 술을 사양하지 않는다". 주량이 세다 .

* 第三十六編 : 張丞相列傳(장승상열전)

張蒼(장창 : 관영의 뒤를 이어 丞相)

한나라는 초기에 안정을 이루었으나 문치의 이치는 밝히지 못했다.
장창(張蒼)이 계획을 맡아 도량형을 정비하여 통일하고 법률과 역법을 바로 잡았다.

* 第三十七編 : 酈生陸賈列傳(역생 육고열전)

酈食其(역이기 : 秦나라.⇒ 漢高祖의 參謀 이자 說客(세객). ⇒ 丞相, 曲周侯). 

​말로서 결맹을 맺고 사신을 통하여 제후들과 조약을 맺어 품에 안았다. 
제후들은 모두 한나라에 대해 가까운 감정을 가지고 한에 귀의해 속국으로서 도움을 주었다. 

[兩雄不俱立(양웅불구립)] : 두 영웅(유방,항우)이 함께 설수 없으며,

어느 한쪽이 쓰러지거나 둘 다 쓰러진다.

* 第三十八編 : 傅靳蒯成列傳(부근괴성열전)

陽陵侯, 傅寬(양능후, 부관. )
信武侯, 靳歙(신무후, 근흡. )
蒯成侯, 周緤(괴성후, 주설. )

진나라 말기 한과 초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진 일을 상세하게 알고자 한다면 
오직 주설만이 한시도 떠나지 않고 고조 곁을 붙어 다니며 제후들을 평정한 것을 보았다.

* 第三十九編 : 劉敬叔孫通列傳(유경 숙손통열전)

劉敬(齊나라).
叔孫通(齊나라 出生. ⇒ 秦나라 문학가 ).

​강성한 호족들을 다른 곳으로 이주시키고 관중에 도읍을 정했으며 흉노와는 평화조약을 맺었다. 
조정의 예를 밝히고 종묘에 제사 지내는 의식을 법으로 정해 황실의 존귀함을 높였다.  

[不足置齒牙間(부족치치아간)] : "치아 사이에 두기는 부족하다". 대꾸할 만한 가치가 없다.

* 第四十編 : 季布樂布列傳(계포 난포열전)

季布(楚나라 出, 항우의 武將. ⇒ 漢나라 河東太守. )
樂布(梁나라 出, 漢나라 彭越 일가).

​계포(季布)는 강직한 성격을 유순하게 고칠 수 있어 마침내 한나라의 열후에 반열에 설 수 있었고,  
난포(欒布)는 한고조의 위협에 굴하지 않고 팽월을 위해 죽음도 불사하고 변호했다. 

[季布一諾(계포일낙)] : "계포가 한번한 약속".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
[一諾千金(일낙천금)] : "한번 승락한 약속은 천금과 같다". 약속을 중하게 여긴다 .
[人生感意氣] : 사람은 살면서 의지와 용기에 감동한다.

* 第四十一編 : 遠盎晁錯列傳(원앙 조조열전)

遠盎 (楚나라 出, 한나라 정치).
晁錯 (漢나라 御史大夫, 제후의 영지삭감, 吳楚七國난 유발.)

​감히 천자의 뜻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을 펼쳤으니 이는 자기 일신상의 몸도 돌보지 않으며
나라를 위해 백년대계의 계책을 세운 것이다. 

[朝令暮改(조령모개)] : 아침에 내린 명령을 저녁에 고침 . 일관성이 없이 갈팡질팡 .
[赴湯蹈火(부탕도화)] : 어떤 괴로움이나 위험한 일을 피하지 않는 태도 .

* 第四十二編 : 張釋之馮唐列傳(장석지 풍당열전)

張釋之(漢나라 文帝때 廷尉. ) 

법을 지켰으나 대의를 잃지 않았으며 옛날 현인들의 고사를 인용하여 자기 군주의 지혜를 더욱 밝게 만들었다.   
[(沾沾不休(첩첩불휴)] : "쉴새없이 재잘거리다" . 수다스러움. 

* 第四十三編 : 萬石張叔列傳(만석 장숙열전) 

萬石君(趙나라 出, 漢나라 文帝때 張相如 太子太傅. )
張叔(漢武帝때 御史大夫.

성격이 너그럽고 두터우며 자애롭고 효성이 지극했다. 말을 함에는 어눌했으나 행동을 옮김에는 민첩했으며, 
몸을 낮춰 남을 존중하려고 노력하여 군자나 장자의 면모를 갖추려고 애를 썼다.

* 第四十四編 : 田叔列傳(전숙열전)

田叔(趙나라 出, 孝文帝때. )

절개를 지키고 강직했으며 의로운 기상은 청렴을 말하기 충분했다.
행동은 세상의 현자들을 격려하기에 충분했다. 막중한 자리에 임명되어도 옳지 않으면 행하지 않았다.

* 第四十五編 : 扁鵲倉公列傳(편작 창공열전)

扁鵲(姓:秦, 名:越人 : 春秋, 전설적인 名醫. )
倉公(편작과 같은 神醫. ) 

​편작은 의술을 말하여 의자(醫者)들의 종주(宗主)가 되었다. 그의 의술은 정밀하고 고명하여
후세의 사람들은 그 치료의 순서를 따랐을 뿐 결코 바꿀 수 없었다. 창공은 편작에 가까운 명의였다.

[用管窺天(용관규천)] :"대롱의 구멍으로 하늘을 엿본다".

좁은 식견으로 광대한 사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
[提潰蟻穴(제궤의혈)] : "개미굴이 둑을 무너뜨린다". 사소한 실수로 큰일을 망쳐 버리는것 .
[護疾忌醫(호질기의)] : "병을 숨겨 의원에게 보이기를 꺼린다". 잘못이 있어도 남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

* 第四十六編 : 吳王濞列傳(오왕비열전)

吳나라王 '濞' : "吳楚七國의 亂" 주도.

​유중(劉仲)은 흉노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여 작위와 녹봉을 빼앗겼으나, 그 아들 유비(劉濞)는 오왕에 봉해졌다. 
한나라가 처음 개국하여 나라의 안정을 취해가고 있는 와중에 그는 강수와 회수 사이 지역을 잘 다독였다.  

[舐糠及米(지강급미)] : "겨를 다 먹고나면 쌀까지 먹는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없다.

* 第四十七編 : 魏其武安侯列傳(위기 무안후열전) 

魏其侯, 竇纓(두영: 두태후 조카, 漢武帝때 太子太夫⇒丞相. 景帝 밀서사건으로 요참. )
武安侯, 田蚡(전분: 漢武帝의 외삼촌, 두태후 사망후 승상). 

​오초가 연합하여 난을 일으켰을 때 황실의 외척들 중에 오직 두영(竇嬰)만이 어질고 선비들을 좋아했으며
선비들 역시 그를  따르니 군사를 인솔하고 나아가 산동의 형양(滎陽)에서 오초의 반란군을 막았다. 

[沾沾自喜] : "경망스럽게 스스로 즐거워하다". 우쭐거리며 뽐내는 모습.    

* 第四十八編 : 韓長孺列傳(한장유열전)

韓安國(漢文帝 차남인 梁나라 孝王때 內史 ⇒ 漢武帝때 御史大夫. )

​지혜는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기에 족하고 너그러운 마음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에 충분했다.
[死灰復然(사회부연)] : "꺼진 재에 다시 불이 붙다". 세력을 잃었던 사람이 다시 세력을 얻다 .
[然卽溺之(연즉뇨지)] : "다시 불이 타오르면 오줌을 싸서 끄겠다" .
[强弩之末(강노지말)] : "강한 화살도 나중에 힘이 떨어짐". 한 군사도 원정을 가면 지쳐서 군력이 약화됨 .

* 第四十九編 : 李將軍列傳(이장군열전)

李廣(이광 : 漢文帝 ~ 武帝의 장군으로 흉노족은' 飛將軍'이라 호칭.

​적을 만나면 용감했고 휘하의 군졸들을 자애로운 마음으로 사랑했다. 
또한 호령은 번거롭지 않고 간결하여 장수들이나 군졸들이 모두 그를 따랐다.

[飛將數奇(비장수기)] : "이광 은 운수가 사납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 불행한 처지에 놓임.
[中石沒鏃(중석몰촉)= 射石爲虎= 金石爲開] 정신을 집중하여 전력을 다하면 어떤일도 이룰 수 있다.

* 第五十編 : 匈奴列傳(흉노열전)

匈奴(BC3세기 말부터 AD1세기 말까지 몽골고원, 만리장성지대를 중심으로 활약한 遊牧騎馬民族. )

삼대 이래로 흉노는 항상 중국에 해를 끼치는 우환의 대상이었다. 
흉노의 세가 강하고 약할 때의 시기를 알기 위해 만반의 준비 끝에 정벌하고자 했다. 

* 第五十一編 : 衛將軍驃騎列傳(위장군 표기열전)

衛靑(漢武帝때 將軍, 누이 위자부 도움으로 大中大夫⇒ 大將軍 ⇒ 大司馬. )
藿去病(곽거병) : 衛靑의 조카, 漢武帝때 驃騎將軍, 冠軍侯에 책봉. 역병으로 요절.

구불구불한 요새의 길을 똑바르게 했으며 하남의 땅을 넓혔다.
또한 기련산에서 적을 무찌르고 서쪽의 나라들과 길을 통하게 만들었으며 북방의 오랑캐를 물리쳤다.

* 第五十二編 : 平津侯主父列傳(평진후 주보열전) 

公孫弘(漢武帝때 賢良 ⇒ 內史,御史大夫 ⇒ 丞相. )

조정대신들과 황실의 종친들이 서로 다투어 사치를 일삼았으나, 
오직 공손홍만이 의복과 음식을 절약하여 백관들의 솔선수범이 되었다. 

* 第五十三編 : 南越列傳(남월열전)

南越(秦,末期 ~ 漢, 初期의 혼란을 틈타 趙陀(조타)가 廣東, 廣西와 베트남 북부에 세운 나라. )

한나라가 중국을 평정하자 남월왕(南越王) 조타(趙佗)는 양월(楊越)에 흩어진 세력들을 수습하여 
이를 기반으로 한나라의 속국(屬國)이 되었며 황실에 공물을 바쳤다.  

* 第五十四編 : 東越列傳(동월열전)

東越(秦 ~ 漢 시대때 福建省, 浙江省 일대를 본거지로 한 나라).

오나라가 반역을 일으키자 구인들은 오왕 비의 머리를 베어 한나라에 바쳤다. 
이어서 봉우산을 지키고 보존하여 한나라의 신하가 되었다.

* 第五十五編 : 朝鮮列傳(조선열전)

朝鮮王 "滿" 은 燕나라 사람이며 성은 "위"씨.

연나라 태자(太子) 단(丹)이 진나라에 쫓겨 요동으로 달아난 틈을 이용하여 위만은 도망나온 유민들을 거두어 

발해 동쪽으로 데리고 가서 진번에 이르러 한나라 황실의 변방을 지키는 외신이 되었다. 

* 第五十六編 : 西南夷列傳(서남이열전)

唐蒙(漢나라 사신으로 야량국으로 가서 통로개척). 주변국 통치.

당몽(唐蒙)을 사자로 보내 야랑(夜郞)국으로 통하는 길을 열었다. 
공(邛)과 작(笮)의 군장들이 내신이 되고자 청하였으므로 한나라에서 보낸 관리들을 받아 들였다. 

* 第五十七編 : 司馬相如列傳(사마상여열전)

司馬相如(漢景帝 ~ 武帝때의 文人).

저서 : 《子虛賦(자허부)》. 《上林賦(상림부)》. 《封禪文(봉선문)]》.

<자허부>에 실린 일과 <대인부>에 실린 글은 아름답기 그지없으나 지나치게 과장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풍자하며 간언을 올려 무위(無爲)로 귀의하려는 생각에서 였다. 

* 第五十八編 : 淮南衡山列傳(회남 형산열전)

劉長(회남왕으로 유방의 막내아들).

劉勃(유발 : 유장의 둘째 아들)

경포가 반역을 일으키자, 고조의 아들 유장(劉長)이 그 땅을 봉지로 삼고 장강과 회수 남쪽을 평정했다. 
유안(劉安)은 사납기로 이름난 초나라 백성들을 안정시켰다.

* 第五十九編 : 循吏列傳(순리열전)

循吏= 淸官 : 일을 맑고 투명하게 처리하는 관리. 온정주의 .
孫叔敖(손숙오) ; 楚나라 宰相. "금지법이 없는 나라로 단순한 정치가 이지만 위대한 정치를 주창".
子産 ; 春秋, 鄭나라의 宰相. 중국 최초의 성문법을 정하여 귀족정치를 배격.
公儀休 ; 魯나라 宰相. "생선 일화" 아무리 작은 뇌물이라도 배척하라.
石奢(석사) ; 楚나라 昭王때 宰相. "아버지가 살인범" 고대에는 법보다 부모가 더 가까웠다.
李離 ; 晉나라 文公때 옥관(죄인을 판결하는 직책). 잘못 내린 판결로 스스로 자진.

법을 받들어 도리를 밝히는 관리들은 자기들이 세운 공로와 재능을 스스로 자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한 백성들로부터 그들의 공적에 대한 칭찬도, 그들의 과실에 대한 비난도 받지 않는다. 

* 第六十編 : 汲鄭列傳(급 정열전)

汲黯(급암: 漢景帝 ~ 武帝때 太子洗馬, 원칙주의자.
鄭莊(漢나라 孝文帝, 孝景王때 太子舍人, 漢武帝때 大司農 ⇒大吏.)

​의관을 단정히 하고  조정에 서면 여러 신료들이 이를 보고 두려워하여 허튼 소리를 하지 못했다.
장유(長孺 , 급암)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인재를 즐겨 천거하여 사람들로부터

자(長子)라고 칭송을 받은 것은 장유에게 그런 기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重足側目] : "발을 겹쳐 모으고 곁눈질하다". 남의 위세에 눌려 두려워하는 모습.
[發蒙振落] : "먼지를 떨어낸다" . 떨어버릴 만큼 보잘것없는 천박한 인간을 경멸.
[後來居上] : "나중에 온것이 위로 올라간다 ". 나중에 발탁된 사람이 윗자리에 오르다.

* 第六十一編 : 儒林列傳(유림열전)

轅固(원고 : 漢景帝때 「詩經」에 능통해 博士, ⇒太夫. 武帝때 현량.
[曲學阿世] : 자기가 배운것을 올바로 펴 볼 생각은 않고 굽혀가며 세상의 비위에 맞춰 출세하려는 태도나 행동 .

공자가 죽은 이래 집정자들은 아무도 학교 교육의 필요성을 중시하지 않았다.
다만 건원(建元)과 원수(元狩) 연간에 학문이 일어나 찬란하게 빛나게 되었다.

* 第六十二編 : 酷吏列傳(혹리열전)

長湯(장탕 ; 漢武帝때 太中大夫, ⇒ 御士大夫가 된지 7년만에 자살). 

趙禹(조우 ; 漢武帝때 刀筆吏 ⇒太中大夫⇒ 中尉. 가혹하고 무자비한 관리의 대명사. )

​백성들이 본업을 저버리고 재주를 부리며, 간교함을 일삼아 법률을 농단하니 아무리 선인들일지라도
그들을 교화할 수 없었다. 오직 모든 것을 엄격한 형벌로 다스림으로써 바로 잡을 수 있었다. 

[一意孤行] : 남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의 고집대로 일을 해나감 .

* 第六十三編 : 大苑列傳(대원열전)

張騫(장건 : 武帝와 同門受學, 실크로드 개척으로 東西간의 교역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

한나라가 대하(大夏)에 사절을 보내 길을 트니, 저 서쪽 끝의 오랑캐들도 모두 중국의 안쪽으로 목을 늘이고

중원의 땅을 살펴보고자 했다.

* 第六十四編 : 遊俠列傳(유협열전)

郭解(곽해: 漢武帝 時 俠客. 어린시절 살인, 도적질, 도굴등을 자행, 후일 의로운 일에 전념. )

朱家(魯, 俠客. 항우의 무장 '계포'를 구해주었으나 후일 도움을 거절하고 청빈낙도. )

재난에 빠진 사람을 구하고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을 구휼하니 어진 사람이라 불릴만 하다.
또한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자기가 한 약속을 어기지 않으니 이 역시 의로운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 第六十五編 : 佞行列傳(녕행열전)

登通(등통 : 孝文帝 時 황두랑(뱃사공), 문제는 꿈속의 등통을 보고 총애.

"종기의 고름을 입으로 빨다".
李延年(이연년 : 漢武帝 時 宦官(환관)으로 狗中(사냥개를 돌보는 일), 춤, 노래, 아첨등에 능한 예술인.

군주를 모시고 그 눈과 귀를 즐겁게 할 수 있으며 임금의 얼굴에 즐거움이 깃들게 하여
그 군주를 가까이 모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단지 미색으로 총애를 받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재능이 남보다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 第六十六編 : 滑稽列傳(골계열전)

淳于髡순우곤) : 戰國, 齊나라 해학가. 익살과 기지 넘치는 辯說로 유명. 宰相역임.

​세속에 휩쓸리지 않고 권력과 이익을 다투지도 않았으며, 윗사람이나 아랫사람들에게 모두 걸림이 없이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은 것은 그것도 나름대로의 방법을 운용했기 때문이다.   

[杯盤狼藉(배반낭자)] : 술잔과 그릇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난잡한 모습.
[豚蹄一酒(돈제일주)] : "돼지 발굽과 술 한잔" . 작은 성의로 많은 것을 구하다 .

* 第六十七編 : 日者列傳(일자열전)

賈誼(가의 : 漢文帝 시 최연소 박사. 문인겸학자. )

제, 초, 진, 조의 점복가들은 각기 그 나라의 풍속을 이용하여 점을 치는 방법도 달랐다. 

예로부터 천명을 받아 왕이 되었고, 왕이 일어날 때는 점복으로 천명을 결정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그것이 주나라 때 특히 심했고, 진()나라에 이르러서도 볼 수가 있다.

대왕()이 장안으로 들어 올 때도 점에 맡겼다. 태복()은 한나라가 일어났을 때부터 있었다.

 

* 第六十八編 : 龜策列傳(귀책열전)

거북 껍질로 점을 치다. 삼대에 있어서 거북등으로 점을 치는 방법은 서로 달랐으며,

사방 오랑캐들도 각기 다른 방법으로 점을 쳤다. 그러나 길흉을 판단하기는 다 마찬가지였다.  

* 第六十九編 : 貨殖列傳(화식열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마치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과 같다 .

벼슬이 없는 일반 백성 신분으로 정치로부터 해를 입지 않고, 귀족들의 일을 방해를 하지 않으며, 
때에 맞추어 재산을 증식하여 부를 쌓았다. 지혜있는 자라면 이것들로부터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 

* 第七十編 : 太史公自序(태사공자서)

우리 한나라는 오제의 뒤를 이었으며 삼대의 위업을 계승하였다. 주나라의 도가 실추되고  

진나라가 들어서 옛날의 고적들을 없애고 <시(詩)>와 <서(書)>를 불살라 없애버렸다.

그 결과 조정과 왕실 도서관 석실과 금궤에 보관되어 있던 옥판의 지도와 서적들이 모두 흩어져 엉망이 되어버렸다. 

이어서 한나라가 흥기하자 소하가 율령을 다듬고, 한신(韓信)은 군법을 밝혔으며 장창은 제도를 기초했다.  

그리고 숙손통은 예의를 제정하니 인품과 학식을 겸비한 학자들이 점차 등용되었으며,  

『시』와 『서』도 왕왕 이곳저곳에서 나돌기 시작했다.

조참은 개공을 무제에게 천거하여 황제와 노자의 사상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또한 가의와 조조는 신불해와 상앙의 법가사상을 밝혔다. 공손홍은 유학으로써 세상에 빛을 발하고  

그 백년 사이에 천하에 남아 있던 서적이나 고문서가 태사공에게 수집되지 않은 것들이 없었다.  

태사공의 직책은 사마담과 사마천 부자가 계속해서 맡게 되었다.

사마천이 말하기를. “ 아 아! 나의 선조들께서 이 일을 맡은 이래 요순 때 이미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여  

주대에 이르러 또다시 그 직무를 수행했다. 이런 연고로 사마씨는 대대로 천문의 관직을 맡아 왔고  

그것이 나에게까지 이르지 않았던가 ! 이에 경건한 마음을 갖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미 없어진 구문들을 천하에서 모아서 왕들의 사적을 통해서 그 흥함의 처음을 찾고 끝을 살펴서

흥망성쇠를 보고자 하였으며 그 일의 진행을 사실적으로 고찰하여 삼대의 일을 간략히 추정하였으며,  

진한시대의 기록에 유추하여 위로는 황제 헌원으로부터 기록하여 아래는 금상폐하(한무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12본기를 지은 것은 모두 조목별로 만들어 그 틀 안에서 설명하였다.
사적에는 시대가 같은 것도 있고, 다른 것도 있어 그 연대의 차이가 확실하지 않아 모두 10개의 연표를 
만들었다.  

예와 악은 없어지거나 혹은 더하여지기도 하였으며 달력은 새로 바뀌어 졌고, 또한 병사와 권모의 일, 지방제도, 

제사에 관한 일, 하늘과 인간과의 관계 등에 대해 그 폐단을 밝혀 변화에 통하는 내용으로 <서(書)> 팔편을 지었다. 

스물여덟 별자리 28 수가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고 있고, 30개의 바퀴살이 모두 한 개의 속바퀴에 집중되어 있으나 

운행의 법측은 무궁하듯이 천자를 보필하던 고굉지신들을 이에 비유해 그들이 충신의 도리로써 

천자를 받드는 모습을 내용으로 세가 30편을 지었다. 

정의롭게 행동하고 기개가 있어 남에게 억눌리지 않으며 세상에 처하여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명을 천하에 세운 사람들의 일들을 내용으로  0명에 대한 열전을 지었다.
모두 130편, 52만6천5백자로  <태사공자서>라고 이름 짓는다. 

서문의 대략적인 내용은 흩어져 있는 것을 모으고 육경을 보충해 나름대로 일가의 말을 이루고자 한 것이다. 

요컨대 육경에 대한 다른 견해들을 모아서 취사 선택한 다음 백가와 잡어의 이런저런 말들을 고른 것이다.  

정본은 명산에 보관하고 부본은 도읍에 두어 후세의 성인군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자 한다.  

이것으로 열전 70을 마지막으로 삼는다.  

태사공이 말한다.
" 내가 황제로부터 태초연간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여 130편의 역사서를 지었다.“ 

 

 

행정구역 간쑤성, 광둥성, 광시좡족자치구, 구이저우성, 네이멍구자치구, 닝샤후이족자치구, 랴오닝성, 마카오, 베이징, 산둥성, 산시성, 산시성, 상하이, 신장웨이우얼자치구, 쓰촨성, 안후이성, 윈난성, 장시성, 장쑤성, 저장성, 지린성, 충칭, 칭하이성, 톈진, 티베트, 푸젠성, 하이난성, 허난성, 허베이성, 헤이룽장성, 홍콩, 후난성, 후베이성
주요도시 광저우, 구이린, 난징, 다롄, 다리, 라싸, 란저우, 베이징, 상하이, 선양, 선전, 시안, 쑤저우, 우루무치, 주자이거우, 청두, 충칭, 칭다오, 쿤밍, 하얼빈, 항저우


 

 

     資 料   編 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