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

덕치/이두진 2021. 6. 22. 18:39

 

        報任少卿書(보임소경서)


                                          司 馬 遷 .  

 

 

중국 전한의 역사가 '사마천'이 자신의 친구인 '임안'에게 보낸 유명한 답서이며, 
이 서신은 《한서》의 〈사마천전〉및 〈문선〉 권 41에 수록되어 있으며, 〈보임안서〉라고도 한다.  

'임안'의 자는 '소경'이다. "감숙성 농서"에서 태어나 청년시절은 매우 가난했으나 기마와 궁사에 능하였다. 
BC 92년 한'무제'는 병으로 눕게 되자 그 원인이 무당의 주술 때문이라고 믿고,  

'강충'에게 명하여 많은 사람을 옥사시켰다. 
이때 '강충'과 반목하고 있던 황태자인 '여태자'(유거)는 화가 자신에게 미칠 것을 두려워하여, 

BC 91년 7월 먼저 '강충'을 체포하고 병사를 일으켜, 5일간 "장안성"에서 시가전을 벌였으나  

실패하여 자살하는 ‘무고의 난’이 발생하였다. 

당시 '임안'은 "경성" 금위군의 북군을 관리하는 장수로 있었는데, 그는 '여태자'의 출동 명령을 받고도  

군대를 동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뜻밖에 그는 북군의 한 말단 관리의 모함으로 이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처형될 상황이 되었다.  '임안'은 처형되기 전에 자신의 억울한 옥살이를 호소하며 '사마천'이 중서령이라는 관직을 이용하여 자신이 선처되도록 힘 써줄 것을 부탁하는 편지를 보냈다. 
당시 사마천은 흉노에 항복하고 선우의 딸을 아내로 맞아들여, 우교왕으로 봉해져 선우의 군사작전과 정치를 돌보며 고문으로 활약하고 있는 '이릉'을 변호한 탓으로, 한'무제'의 미움을 사서 투옥되어 궁형이라는  

치욕스런 형벌에 처해졌다가 겨우 석방되어 궁중의 중요한 직책으로 보이는 중서령이란 관직에 임명되었지만

실제로는 일개 환관의 신분에 지나지 않아 내정에서 시중이나 들었으므로,  일반 사대부들의 멸시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사마천'은 자신의 처지 때문에 답장마저도 제때에 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사마천'은 친구인 '임안'이 일단 처형되고 나면 영원히 답장할 기회를 잃을 것이고, 
이것이 또 다른 평생의 한으로 남게 될까 걱정하여 답장을 썼는데,  

그 해 겨울, '임안'은 허리가 잘리는 요참형에 처해지고 말았다. 
'사마천'은 궁형을 받은 후 역사서의 완성을 위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조차 없었던 고뇌에 찬 심정을  

<보임소경서>라는 편지글에서 술회하였다. 

 


 史公牛馬走.
 (사공우마주. )

 

 司馬遷再拜言少卿足下 曩者辱賜書 敎以順於接物 推賢進士爲務, 

 意氣懃懃懇懇 若望僕不相師 而用流俗人之言 僕非敢如此也.  
 (사마천재배언소경족하 낭자욕사서 교이순어접물 추현진사위무, 

 의기근근간간 약망복불상사 이용류속인지언 복비감여차야. )


 ['사마천'이 삼가 '소경' 족하께 재배하며 말씀드립니다.  지난 번에 서신을 보내셔서 교우 관계를 원만히 하고

 현명한 인사를 천거해 달라는 가르침을 주셨는데 말씀하시는 뜻이 너무도 간곡하셔서  

 제가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속된 사람들의 말에 따른다고 생각하시고 책망하시는 듯합니다만,
 세상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시면  제가 감히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 

 

 僕雖罷駑 亦嘗側聞長者之遺風矣.  顧自以爲身殘處穢 動而見尤 欲益反損.   

 是以獨鬱悒而與誰語 諺曰 誰爲爲之 孰令聽之.
 (복수파노 역상측문장자지유풍의. 고자이위신잔처예 동이견우 욕익반손.  

 시이독울읍이여수어 언왈 수위위지 숙령청지.)


 [제가 비록 보잘 것 없는 사람이기는 하지만 어른들의 유풍을 어렴풋이나마 들은 바가 있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제 스스로 궁형을 당한 비천한 몸으로 홀대를 받는 처지여서 행동을 하기만 하면  

 남의 비난을 받으며, 더 나아지려 하나 도리어 더 나빠질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홀로 울울하고 절망하여 함께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없습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으면 누구를 위해 일하고 또 누구에게 귀를 기울이겠는가 ! ” 

 라고 했습니다.] 

 

 蓋鍾子期死 伯牙終身不復鼓琴 何則 士爲知己者用 女爲說己者容.   

 若僕大質已虧缺矣 雖才懷隨和 行若由夷 終不可以爲榮 適足以見笑而自點耳.
 (개종자기사 백아종신불복고금 하칙 사위지기자용 여위설기자용.  

 약복대질이휴결의 수재회수화 행약유이 종불가이위영 적족이견소이자점이. )


 ['종자기'(음감의 명수)가 죽자 '백아'(거문고의 명수)는 죽을 때까지 거문고를 타지 않았는데  

 그 까닭은 무엇이었겠습니까 ?
 선비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행하고 여자는 자기에게 기쁨을 주는 이를 위해 화장합니다. 

 저와 같이 몸뚱이가 일그러져버린 사람은 재능이 비록  

 '수후'(춘추시대 수나라의 군주로 큰 뱀의 병을 고쳐주고 야광주를 얻음)나  

 '변화'(전국시대 초나라의 玉人으로  화씨벽이라는 보옥의 원석을 려왕에게 헌상)와 같고  

 '허유'(초야에 묻혀 사는 전설 속의 인물)· '백이'(주나라 초기의 의인)처럼 성질이 굳고 깨끗할지라도  

 끝내 영예를 얻지 못할 것이며, 도리어 남의 비웃음이나 당하고, 스스로 부끄러워하기에나 족할 뿐입니다.] 

 

 書辭宜答 會東從上來 又迫賤事 相見日淺 卒卒無須臾之閒 得竭志意.  

 今少卿抱不測之罪 涉旬月 迫季冬. 僕又薄從上雍 恐卒然不可爲諱.
 (서사의답 회동종상래 우박천사 상견일천 졸졸무수유지한 득갈지의.  

 금소경포불측지죄 섭순월 박계동. 복우박종상옹 공졸연불가위휘.)


 [마땅히 당신의 서신에 대해 회답을 드려야 했는데 동쪽에서 "장안"으로 황제 폐하를 수행한데다가  

 또 잡다한 일이 생겨 서로 만나 뵌지 오래지는 않았으나 너무나 바빠서 틈을 내어 저의 마음을 털어놓을   

 틈도 없었습니다. 지금 소경께서는 불측한 죄를 안고 계시는데 열흘이나 달포쯤 지나면 형을 집행하는

 겨울이 임박할 것입니다.  저는 또 천자를 좇아 "옹"지역으로 가야 하는데

동안 당신께서 차마 말 못할 일을 당하시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是僕終已不得舒憤懣以曉左右 則長逝者魂魄 私恨無窮. 請略陳固陋  闕然久不報 幸勿爲過.
 (시복종이불득서분만이효좌우 즉장서자혼백 사한무궁. 청략진고루 궐연구불보 행물위과.)


 [이로 인해 저의 마음속에 있는 분노와 고민을 가까운 사람에게 말할 수도 없게 된다면   

 저 세상으로 간 당신의 혼백에 저는 한없이 유감스러울 것입니다. 대략이나마 저의 고루한 생각을 말씀드리오니

오랫동안 답신 드리지 못한 것을 지나치다고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다행이겠습니다.] 

 

 僕聞之 脩身者 智之符也, 愛施者 仁之端也, 取與者 義之符也, 恥辱者 勇之決也,   

 立名者 行之極也.  士有此五者 然後可以託於世 而列於君子之林矣.
 (복문지 수신자 지지부야, 애시자 인지단야, 취여자 의지부야, 치욕자 용지결야,   

 입명자 행지극야.  사유차오자 연후가이탁어세 이열어군자지림의.)


 [제가 듣기로는 자신의 몸을 수양하는 것은 지혜로움의 증거이며,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것은 인의 실마리이며, 주고받는 것을 엄격히 하는 것이 드러나는 바이며,
 수치를 알고 욕된 것을 참는 것이 용기 있다는 증거이며,

 출세하여 세상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 행동의 극치라고 들었습니다. 

 선비는 이 다섯 가지를 갖추고 그렇게 된 뒤에 세상에 몸을 맡길 수 있고 군자의 대열에 설 수 있을 것입니다.] 

 

 故禍莫憯於欲利 悲莫痛於傷心 行莫醜於辱先 詬莫大於宮刑.  刑餘之人 無所比數 非一世也. 

 所從來遠矣 昔衛靈公與雍渠同載 孔子適陳.
 (고화막참어욕리  비막통어상심 행막추어욕선 후막대어궁형.  형여지인 무소비수 비일세야. 

 소종래원의 석위령공여옹거동재 공자적진.)


 [그러므로 재앙 중에서 이익을 탐하는 것보다 더 참혹한 화는 없으며, 상심하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슬픔은 없으며,

 조상을 욕되게 하는 것보다 더 추한 행동은 없으며, 궁형을 받는 것보다 더 큰 치욕은 없습니다. 

 형을 받은 사람이 보통 사람과 비교될 수 없는 것은 한 세대에만 있었던 게 아니라 오래 전부터 그렇게 해 왔습니다.

 옛날 위'영공'과 환관인 '옹거'가 수레를 함께 타자 '공자'는 못마땅하여 그곳을 떠나 진나라로 갔습니다.]

  

 商鞅因景監見 趙良寒心 同子參乘 袁絲變色.  自古而恥之 夫以中才之人 事有關於宦竪 莫不傷氣,  而況於慷慨之士乎 ?  如今朝廷雖乏人 奈何令刀鋸之餘 薦天下豪俊哉.
 (상앙인경감견 조양한심 동자삼승 원사변색.  자고이치지  부이중재지인 사유관어환수 막불상기,  

 이황어강개지사호 여금조정수핍인 내하령도거지여 천천하호준재.)


 ['상앙'이 환관인 '경감'의 주선으로 군주를 알현하자 '조량'이 한심하게 여겼고,   

 환관인 '조담'이 한'문제'를 모시고 수레에 오르자 '원사'는 화가 나 안색이 변했습니다.
 이처럼 예로부터 사람들은 환관과 관계를 가지는 것을 수치로 여겼습니다.    

 대체로 평범한 사람들도 모든 일에 환관이 연관되면 기분이 상한다고 여기는데
 하물며 기개 있는 선비야 어떻겠습니까 ?  지금 비록 조정에 인재가 모자란다고 하지만,   

 어찌 저같이 궁형을 받고 살아남은 자가 천하의 호걸을 천거할 수 있겠습니까 ? ] 

 

 僕賴先人緖業 得待罪輦轂下 二十餘年矣. 所以自惟 上之 不能納忠效信 有奇策才力之譽 自結明主 

 次之 又不能拾遺補闕  招賢進能 顯巖穴之士.
 (복뢰선인서업 득대죄연곡하 이십여년의.  소이자유 상지 불능납충효신 유기책재력지예 자결명주.   

 차지 우불능습유보궐  초현진능 현암혈지사.)


 [저는 선친의 유업으로 인해 임금의 수레바퀴 아래에서 벼슬하면서 죄 받기를 기다린 지 20여 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생각하건대, 위로는 충성과 신의를 다해 훌륭한 계책을 세우고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칭송을 들으면서도 현명하신 임금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정치의 잘못을 바로잡고 결여된 것을 메우며 어질고 유능한 사람을 천거하거나  

 초야에 은거하고 있는 훌륭한 선비를 조정에 드러나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外之 又不能備行伍 攻城野戰 有斬將搴旗之功. 下之不能積日累勞 取尊官厚祿 以爲宗族交遊光寵. 

 四者無一遂 苟合取容 無所短長之效 可見如此矣.
 (외지 우불능비행오 공성야전 유참장건기지공.  하지 불능적일루로 취존관후록 이위종족교유광총.   

 사자무일수 구합취용 무소단장지효 가견여차의.)


 [대외적으로 또 전쟁에 참여하여 성을 공격하며 들에서 싸워 적장의 목을 베고 기를 빼앗는 공도 없습니다.
 아래로는 오랫동안 공을 쌓아서 높은 관직이나 두터운 봉록을 얻어 친척이나 벗들에게 영광과 은총을  

 가져다준 적도 없습니다.  저는 이 네 가지 중에서 하나도 성취하지 못하고 남의 비위나 맞추고 영합해서   

 아무런 공로도 세우지 못한 바가 이와 같습니다.] 

 

 嚮者 僕亦常廁下大夫之列 陪外廷末議.  不以此時引維綱 盡思慮 今已虧形 爲掃除之隸, 

 在闒茸之中 乃欲仰首伸眉 論列是非 不亦輕朝廷 羞當世之士邪 ? 
 (향자 복역상측하대부지열  배외정말의.  부이차시인유강 진사려 금이휴형 위소제지례, 

 재탑용지중 내욕앙수신미 론열시비 불역경조정 수당세지사야 ? )


 [이전에 제가 하대부 서열에 끼여 있을 때 군왕이 국정을 듣는 말석에 참여하였습니다.
 그때 올바른 기강을 바로잡지 못하고, 생각도 깊이 하지 못하고, 지금 몸도 온전하게 보존하지 못하고  

 소나 하는 노예처럼 천하고 어리석은 사람에 속하게 되었는데 이제서야 머리를 들고 눈썹을 펴면서   

 시비를 논하는 것은 조정을 가벼이 여기고 당대의 재능 있는 선비를 부끄럽게 만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嗟乎 !  嗟乎 !  如僕尙何言哉 尙何言哉 ?  且事本末 未易明也 僕少貧不羈之材 長無鄕曲之譽. 

 主上幸以先人之故 使得奏薄伎 出入周衛之中.
 (차호! 차호! 여복상하언재 상하언재 ?  차사본말 미역명야 복소빈불기지재 장무향곡지예.   

 주상행이선인지고 사득주박기 출입주위지중.)


 [아!  아!  저와 같은 천한 인간이 이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  이제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 

 게다가 일의 본말도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도 젊었을 때에는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을 만한  

 재능이 있다고 자부했으나 장성하고 난 후로는 시골에서 조차 칭찬을 받은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황제께서 저의 선친과 연고가 있으셔서 태사의 일을 이어 받게 하시어   

 궁중을 출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僕以爲戴盆何以望天 故絶賓客之知 亡室家之業.  日夜思竭其不肖之才力 務一心營職,
 

 以求親媚於主上 而事乃有大謬不然者夫.  僕與李陵 俱居門下 素非能相善也.
 (복이위대분하이망천 고절빈객지지 망실가지업.  일야사갈기불초지재력 무일심영직, 

 이구친미어주상 이사내유대류불연자부.  복여이릉 구거문하 소비능상선야.)


 [저는 그릇을 머리에 인 사람은 하늘을 볼 수 없듯 두 일을 겸직해서 할 수 없다고 여기고  

 빈객과의 사귐도 끊고 집안의 일도 돌보지 않았습니다.
 밤낮으로 미미한 재능을 다하고 한마음으로 직무에 힘써 황제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했습니다만  

 결국 나의 뜻과는 전혀 달리 일이 크게 잘못되어 그렇지 못했습니다
 저와 '이릉'은 같은 문하시중으로 있었지만 평소 서로 친하지는 않았습니다.] 

 

 趣舍異路 未嘗銜盃酒 接慇懃之餘懽.  然僕觀其爲人 自守奇士, 

 事親孝 與士信 臨財廉 取與義 分別有讓 恭儉下人.  常思奮不顧身 以徇國家之急 其素所蓄積也.
 (취사이로 미상함배주 접은근지여환.  연복관기위인 자수기사,  

 사친효 여사신 임재렴 취여의 분별유양 공검하인.  상사분불고신 이순국가지급 기소소축적야.)


 [취향이 각기 달라서 함께 술을 마신 적도 없고 친밀한 교제의 즐거움을 나눈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그 사람됨을 살펴보니 선비의 품위를 스스로 지키며 부모를 효성스럽게 모시며,  

 선비들과의 사귐에 신의가 있고, 재물에 대해서는 청렴하고, 주고받는 데는 공정함을 지키고,  

 상하의 분별함에 있어서는 겸양하였고 공손하고 검소하며 남에게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항상 분발해 일을 하고 나라가 어려울 때는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나라의 위급함에 몸을 바칠 것을  

 항상 생각하는 마음은 평소에 쌓은 바였습니다.] 

 

 僕以爲有國士之風.  夫人臣出萬死不顧一生之計 赴公家之難 斯以奇矣.   

 今擧事一不當 而全軀保妻子之臣 隨而媒糵其短 僕誠私心痛之.
 (복이위유국사지풍.  부인신출만사불고일생지계 부공가지난 사이기의.   

 금거사일부당  이전구보처자지신 수이매얼기단 복성사심통지.)


 [저는 그가 본디 마음속에 쌓아둔 바는 한 나라의 큰 선비로서의 기풍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릇 신하된 자로서 만 번의 죽음을 돌보지 않고 일생의 계책을 내어 나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구하려 하는것 이야말로 뛰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가 행한 일 중에 하나가 잘못되었다고 해서 자신과 처자식만 보호하기에 급급할 뿐인  

 신하들이 그의 잘못을 날조하고 있으니 저는 진실로 마음속 깊이 이런 일을 통탄스럽게 생각합니다.] 

 

 且李陵提步卒不滿五千, 深踐戎馬之地 足歷王庭 垂餌虎口 橫挑彊胡, 

 仰億萬之師 與單于連戰十有餘日, 所殺過當 虜救死扶傷不給.
 (차이릉제보졸불만오천, 심천융마지지 족력왕정 수이호구 횡도강호, 

 앙억만지사 여선우련전십유여일, 소살과당 로구사부상불급.)


 [또 '이릉'이 지휘하고 있었던 보병은 5천 명이 채 되지 않았는데, 오랑캐의 땅에 깊숙히 들어가  

 흉노의 왕궁까지 활보하였으니 이는 마치 호랑이 입에 미끼를 들이대는 것과 같고,  

 막강한 오랑캐에게 도전하여 수십만 군사를 맞이하여 선우와 싸움을 계속한 지 10여일 만에 죽인 오랑캐의 수가

 죽은 아군의 수보다 훨씬 많았지만 오랑캐는 사상자를 구조할 수도 없었습니다.] 

 

 旃裘之君長咸震怖 乃悉徵其左右賢王 擧引弓之人 一國共攻而圍之.   

 轉鬪千里 矢盡道窮 救兵不至 士卒死傷如積 然陵一呼勞軍 士無不起 躬自流涕.
 (전구지군장함진포 내실징기좌우현왕 거인궁지인 일국공공이위지.   

 전투천리 시진도궁 구병불지 사졸사상여적 연릉일호로군 사무불기 궁자류체.)


 [털옷을 입은 흉노의 군장들이 모두 두려워 떨었으며 좌우의 현왕을 소집하고,  

 궁수들을 모두 불러내어 온 나라가 함께 '이릉'의 군대를 공격하여 포위하였습니다.
 '이릉'의 군대는 천리 길을 옮겨 다니며 싸우다 화살이 다 떨어지고 막다른 길에 이르렀으나  

 원병은 이르지 않고 병졸의 사상자는 쌓이기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릉'이 군사들을 큰 소리로  위로하자

 군사들은 몸을 일으켜 저절로 감격해 눈물을 흘리지 않는 군사가 없었습니다. ] 

 

 沫血飮泣 更張空弮 冒白刃 北嚮爭死敵者.  陵未沒時 使有來報 漢公卿王侯皆奉觴上壽.   

 後數日 陵敗書聞 主上爲之食不甘味 聽朝不怡 大臣憂懼 不知所出.
 (말혈음읍 경장공권 묵백인 북향쟁사적자  릉미몰시 사유래보 한공경왕후개봉상상수.   

 후수일 릉패서문 주상위지식불감미, 청조불이 대신우구 부지소출.)


 [군사들은 온 얼굴에 피눈물을 뒤집어쓰고 눈물을 삼키며 다시 맨주먹을 불끈 쥐고

 시퍼런 칼 날은 흉노의 선우가 있는 북쪽을 향하여 목숨을 걸고 적과 싸웠던 것입니다.
 '이릉'이 아직 적에게 함락 되지 않았을 때에 사자가 조정에 보고하자 한나라 공경대부와 왕후가 술잔을 들어

 황제께 축하를 드렸습니다.  그후 며칠 뒤에 '이릉'이 패배했다는 소식을 듣자 황제는 식사해도 맛을 모르시고

 조회에 참석해도 기뻐하지 않아 대신들도 걱정과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僕竊不自料其卑賤 見主上慘愴怛悼 誠欲效其款款之愚.  以爲李陵素與士大夫絶甘分少  

 能得人死力 雖古之名將不能過也.  身雖陷敗 彼觀其意 且欲得其當而報於漢.
 (복절부자료기비천 견주상참창달도 성욕효기관관지우.  이위이릉소여사대부절감분소  

 능득인사력 수고지명장불능과야.  신수함패 피관기의 차욕득기당이보어한.)


 [저는 자신이 비천하다는 것도 잊고 황제께서 몹시 슬퍼하시는 것을 뵙자 저의 우둔한 충성이나마  

 다하려 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건대 '이릉'은 평소에 사대부들과 어려움을 함께 하고 작은 것도 나누어 가져,

 그들의 사력을 다한 도움을 받을 수 있게 했으니 비록 옛날의 명장이라 할지라도

 그보다 더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몸은 비록 패했으나 그 뜻을 보자면 장차 적당한 기회를 얻어 한나라에 보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事已無可奈何 其所摧敗 功亦足以暴於天下矣.  僕懷欲陳之而未有路 適會召問,  

 卽以此指推言陵之功  欲以廣主上之意 塞睚眦之辭 未能盡明.
 (사이무가내하 기소최패 공역족이폭어천하의.  복회욕진지이미유로 적회소문, 

 즉이차지추언릉지공 욕이광주상지의 색애자지사 미능진명.)


 [일은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지만 그가 적을 무찌른 공로는 세상에 드러내기에 충분합니다.   

 저는 이러한 생각을 아뢰고자 했으나 방법이 없었는데 마침 황제께서 하문하시므로 '이릉'의 공적을 말씀드려

 주상의 뜻을 넓혀 드리고 다른 신하들의 비방을 막아보려 했지만 제 생각을 명백히 설명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明主不曉 以爲僕沮貳師 而爲李陵遊說 遂下於理 拳拳之忠 終不能自列.  

 因爲誣上 卒從吏議 家貧貨賂不足以自贖 交遊莫救 左右親近 不爲一言.
 (명주불효 이위복저이사 이위이릉유설 수하어리 권권지충 종불능자열.   

 인위무상 졸종리의 가빈화뢰불족이자속 교유막구 좌우친근 불위일언.)


 [황제께서는 제 뜻을 이해하지 않으시고 제가 '이사' 장군을 비방하고 '이릉'을 위해 유세한다고 여기셔서 

 결국 저는 하옥되었고 간절한 저의 충성심을 끝내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황제를 속였다는 죄로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저의 집이 가난하여 형벌을 면할 수 있을 만큼의 재물이 없었고 
 뿐만 아니라 그때 사귀던 벗들은 아무도 나를 구하려 하지 않았으며 황제 좌우의 측근인물들은 

 나를 위해 한마디 말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身非木石 獨與法吏爲伍 深幽囹圄之中 誰可告소者 此眞少卿所親見 僕行事豈不然乎 ?   

 李陵旣生 降 隤其家聲 而僕又佴之蠶室 重爲天下觀笑.  悲夫 悲夫. 
 (신비목석 독여법리위오 심유령어지중 수가고소자 차진소경소친견 복행사기불연호 ?   

 이릉기생강 퇴기가성 이복우이지잠실 중위천하관소 비부 비부.)


 [이 몸은 목석처럼 감정이 없는 것도 아닌데 홀로 법정에 끌려가 옥중에 깊이 갇히고 말았는데  

 저의 이 비통한 심정을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었겠습니까 ?
 이것은 '소경'께서도 직접 겪어보신 바와 같은 것으로, 저의 처지가 어찌 이렇지 않겠습니까 ?   

 '이릉'이 이미 살아서 적에게 항복함으로써 그 가문의 명성을 무너뜨렸고 저도 궁형을 시행하는 밀실로 끌려가

 거세가 되어 거듭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슬프고 슬플 뿐입니다.] 

  

 事未易一二爲俗人言也 僕之先 非有剖符丹書之功 文史星歷 近乎卜祝之閒,   

 固主上所戱弄 倡優所畜 流俗之所輕也.  假令僕伏法受誅 若九牛亡一毛  與螻蟻何以異.  
 (사미이일이위속인언야 복지선 비유부부단서지공 문사성력 근호복축지한.   

 고주상소희롱 창우소축 유속지소경야.  가령복복법수주 약구우망일모  여루의하이이.)


 [이런 일이란 세상 사람들에게 사정을 일일이 설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의 선친께서는 부부나 단서를 받은 공적도 없었으며, 천문과 역법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는데  

 이러한 일은 점치는 일과 비슷하여 본래 황제께서 장난삼아 노시던 것으로, 광대를 양성하는 것에 불과하여
 세상 사람들이 경시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령 제가 법의 심판에 굴복하여 처형된다 해도   

 세상 사람들은 아홉 마리 소에 털 한가닥이 빠진 것처럼 하찮게 여길 뿐이니
 저와 같은 존재는 땅강아지나 개미같은 미물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   

 

 而世又不與能死節者 特以爲智窮罪極 不能自免卒就死耳.  何也 ?   

 素所自樹立使然也人固有一死 或重於太山 或輕於鴻毛 用之所趨異也.
 (이세우불여능사절자 특이위지궁죄극 불능자면졸취사이. 하야 ?   

 소소자수입사연야  인고유일사 혹중어태산 혹경어홍모 용지소추이야.) 


 [게다가 세상 사람들은 저를 절개를 지켜 죽은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지혜가 모자라고  

 죄는 너무나 커서 면할 수 없게 되어 마침내 죽었다고 여길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  제가 평소에 세워놓은 바가 그렇게 여기게끔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차피 한번은 죽게 마련인데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터럭만큼이나 가벼우니 이는 죽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太上不辱先 其次不辱身, 其次不辱理色 其次不辱辭令, 其次詘體受辱 其次易服受辱,   

 其次關木索 被箠楚受辱, 其次剔毛髮, 嬰金鐵受辱, 其次毁肌膚 斷肢體受辱. 
 (태상불욕선 기차불욕신, 기차불욕리색 기차불욕사령, 기차굴체수욕 기차역복수욕,  

 기차관목색 피추초수욕, 기차척모발 영금철수욕, 기차훼기부 단지체수욕.)


 [사람에게 가장 훌륭한 죽음은 선조를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다음은 자신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이치에 어긋나거나 얼굴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자신의 언사와 교령을 욕되지 않게 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몸이 결박당하는 치욕을 당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죄수복을 입는 치욕을 당하는 것이며,
 그 다음은 손발이 밧줄로 묶여서 곤장을 맞으며 치욕을 받는 것이며,  

 그 다음은 삭발당하고 목에 쇠사슬을 두르고 치욕을 받는 것이며,
 그 다음은 살갗이 찢기고 몸뚱이와 손발이 잘리는 치욕을 당하는 것입니다.] 

 

 最下腐刑極矣.  傳曰 刑不上大夫 此言士節不可不勉勵也.    

 猛虎在深山 百獸震恐 及在檻穽之中 搖尾而求食 積威約之漸也. 
 (최하부형극의.  전왈 형불상대부 차언사절불가불면려야.   

 맹호재심산 백수진공 급재함정지중 요미이구식 적위약지점야.) 


 [가장 나쁜 것이 음부를 도려내는 궁형을 받는 것입니다.   

 전하는 말에 이르기를 '형벌은 상대부에게까지는 미치지 않는다 '라고 했는데,
 이 말은 선비는 절개를 지키기 위해 힘쓰지 않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사나운 호랑이가 깊은 산중에 있을 때는 온갖 짐승들이 두려워하지만,  함정에 빠지게 되면 꼬리를 흔들며 

 먹이를 구하게 되는데 이는 굴복 당해 호랑이의 위엄이 점점 적어지기 때문입니다.] 

 

 故士有畵地爲牢 勢不可入, 削木爲吏 議不可對  定計於鮮也.  今交手足 受木索 暴肌膚, 

 受榜箠幽於圜牆之中, 當此之時 見獄吏則頭槍地 視徒隷則正心惕息 何者 ?
 (고사유화지위뢰 세불가입, 삭목위리 의불가대  정계어선야.  금교수족 수목색 폭기부, 

 수방추유어환장지중, 당차지시 견옥리칙두창지 시도례칙정심척식 하자 ? )


 [그러므로 선비는 땅 위에 선을 그어 감옥으로 삼는다 해도 기세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지 않고,   

 나무를 깎아 형방의 아전으로 삼는다 해도 그에 대해 논의하지 않는 것이니,
 이것은 형벌을 받기 전에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손발이 묶이고 머리에는 형구를 쓰고  

 몸을 다 드러내어 채찍을 맞으며 옥중에 갇혀 있는데, 이러한 때를 당해 옥리를 보면 땅에 머리를 대어 조아리고

 감옥을 지키는 옥리를 보면 두려워 숨이 막힐 지경인데 왜 그렇겠습니까 ?  ]

 

 積威約之勢也.  及以至是 言不辱者 所謂强顔耳.  曷足貴乎 ?    

 且西伯伯也 拘於羑里, 李斯相也 具于五刑, 淮陰王也 受械於陳, 彭越張敖 南面稱孤 繫獄抵罪. 
 (적위약지세야.  급이지시 언불욕자 소위강안이.  갈족귀호 ?   

 차서백백야 구어유리,  이사상야 구우오형,  회음왕야 수계어진, 팽월장오 남면칭고 계옥저죄.)

 
 [그것은 오랫동안 감옥에 갇혀 기세가 눌렸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치욕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소위 뻔뻔스러운 사람일 뿐입니다. 
 그러니 이를 어찌 귀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서백'은 제후의 우두머리였으나 "유리"에 갇혔었고   

 '이사'는 재상이었으나 오형을 당하였습니다. 회음왕은 진나라에서 형틀에 묶이는 신세가 되었고,  

 '팽월'과 '장오'는 스스로 왕이라고 칭하다가 감옥에 갇혀 죗값을 치렀습니다.] 

 

 絳侯誅諸呂  權傾五伯  囚於請室  魏其大將也  衣赭衣  關三木.  

 季布爲朱家鉗奴  灌夫受辱於居室  此人皆身至王侯將相  聲聞隣國.       
 (강후주제려  권경오백  수어청실  위기대장야  의자의  관삼목. 

 계포위주가겸노  관부수욕어거실  차인개신지왕후장상  성문린국.)


 [강후로 봉하여진 '주발'은 여씨 일족을 평정하여 권력이 오패를 능가했으나  

 청실(죄가 있는 관리를 가두는 감옥)에 갇혔고, 위기후 '두영'은 대장이었으나

 ​죄수복을 입고 목과 수족에 고랑이 채워졌습니다.   

 '계포'는 주씨 가문에 의탁해 목에 칼을 쓴 노예가 되었고, '관부'는 거실(감옥)에서 치욕을 당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황제, 제후, 장군, 제상 출신으로 명성을 이웃나라에까지 떨쳤던 사람들이었습니다.]   

  

 及罪至罔加 不能引決自裁 在塵埃之中.  古今一體  安在其不辱也.   

 由此言之 勇怯勢也 强弱形也 審矣 何足怪乎 ? 
 (급죄지망가 불능인결자재 재진애지중.  고금일체  안재기불욕야.    

 유차언지  용겁세야  강약형야 심의 하족괴호 ? )


 [그러나 죄를 지어 법에 저촉되었는데도 우유부단하여 자결하지 못하고 세속에서 구차하게 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가지로 그것이 어찌 욕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견지에서 말한다면 용감한 것과 비겁한 것은 정세에 좌우되는 것이고,  

 강하고 약한 것은 형세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니, 살펴보건데 이것이 어찌 괴이한 일이겠습니까 ?] 

  

 夫人不能早自裁繩墨之外  以稍陵遲  至於鞭箠之間  乃欲引節  斯不亦遠乎 ?   

 古人所以重施刑於大夫者  殆爲此也  夫人情莫不貪生惡死  念父母顧妻子.
 (부인불능조자재승묵지외  이초릉지  지어편추지간  내욕인절  사불역원호 ?   

 고인소이중시형어대부자  태위차야  부인정막불탐생오사  염부모고처자.)


 [무릇 사람이 법에 의해 처벌되기 전에 일찌감치 스스로 결단하지 못하고 주춤거리다가 매를 맞고서야  

 절개를 지키려고 한다 해도 이는 역시 때늦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 
 옛 사람들이 대부에게 형벌을 내리는 것을 어렵게 여긴 까닭은 이 때문인 듯합니다.   

 대체로 인간의 본심은 살려고 애쓰며 죽기를 싫어하고 부모를 생각하며 처자를 돌보는 것입니다.] 

 

 至激於義理者不然  乃有所不得已也  今僕不幸  早失父母  無兄弟之親 獨身孤立. 

 少卿視僕於妻子何如哉  且勇者不必死節  怯夫慕義  何處不勉焉.
 (지격어의리자불연  내유소불득이야  금복불행  조실부모  무형제지친 독신고립.   

 소경시복어처자하여재  차용자불필사절  겁부모의  하처불면언.)


 [그러나 의리를 직언하는데 힘쓴 사람은 그렇지 않으니 이는 부득이한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불행하게도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가까운 형제도 없이 홀로 외롭게 살아왔습니다.   

 소경께서 보시기에 제가 처자를 대하는 것이 어떻다고 보십니까 ? 
 또 용기있는 자라고 해서 반드시 절개를 지켜 죽는 것도 아니며,

 겁이 많은 사내라도 능히 義를 사모하면 어찌 힘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 

 

 僕雖怯懦 欲苟活 亦頗識去就之分矣.  何至自沈溺縲紲之辱哉 ?   

 且夫臧獲婢妾 由能引決 況僕之不得已乎 ?
 (복수겁나  욕구활 역파식거취지분의.  하지자침익류설지욕재 ? 

 차부장획비첩  유능인결  황복지불득이호 ? )


 [제가 비록 겁이 많고 나약하여 구차하게 목숨을 유지하고 있지만 거취의 분별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몸이 구속받는 감옥 안에 갇힌 채 치욕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을 수 있었겠습니까 ?
 또한 저 천한 노복이나 하녀 조차도 능히 자결할 수 있는데,  

 하물며 저와 같은 사람이 어째서 자결 할 수 없었겠습니까 ? ] 

 

 所以隱忍苟活 幽於糞土之中而不辭者,  恨私心有所不盡 鄙陋沒世 而文采不表於後世也.   

 古者 富貴而名摩滅 不可勝記,  唯倜儻非常之人稱焉.
 
 (소이은인구활  유어분토지중이불사자  한사심유소불진  비루몰세  이문채불표어후세야.  

 고자  부귀이명마멸  불가승기  유척당비상지인칭언.)


 [제가 욕됨을 참고 더러운 치욕 속에서 구차하게 목숨을 보존하며 감옥에 갇혀서도  오히려 사양하지 않은 까닭은,

 제 마음속에 있는 것을 다 드러내지 못한 채 비루하게 세상에서 사라져버리면 

 후세에 아름다운 모습이 드러나지 못할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부귀하면서도 이름을 내지 못한 인물이 이루 다 기록할 수 없이 많았지만,  

 뜻이 크고 기개 있는 비범한 인물들은 칭송을 받았습니다.] 

 

 蓋文王拘而演周易, 仲尼厄而作春秋.  屈原放逐 乃賦離騷,  在丘失明 厥有國語,   

 孫子臏脚 兵法脩列,  不韋遷蜀 世傳呂覽. 
 (개문왕구이연주역,  중니액이작춘추.  굴원방축 내부이소,  재구실명 궐유국어,   

 손자빈각 병법수열,  불위천촉 세전여람.)
 ['문왕'(서백 창)은 구금된 뒤에 《주역》을 풀이하셨고, '공자'는 곤궁하셨을때 《춘추》를 저술하셨습니다.
 '굴원'은 추방 당하고 나서 《이소》를 지었고, '좌구명'은 눈이 먼 후에 《국어》를 편찬했으며,  

 '손빈'은 다리가 잘린 뒤에 《손빈 병법》을 정리하였고,
 '여불위'는 촉으로 유배되고 난 뒤에 《여씨춘추》가 세상에 전해지게 되었습니다.] 

 

 韓非囚秦 說難孤憤,  詩三百篇,  大抵聖賢發憤之所爲作也.   

 此人皆意有鬱結 不得通其道 故述往事 思來者. 
 (한비수진 세난고분,  시삼백편,  대저성현발분지소위작야.   

 차인개의유울결 불득통기도 고술왕사 사래자.)


 ['한비자'는 진나라에 갇힌 뒤에 《세난》, 《고분》을 저술하였으며,  

《시경》의 300편 시는 대개 성현께서 발분하여 지은 것입니다. 
 이러한 분들은 모두 뜻이 있었으며 가슴에 맺힌 바가 있어 자기의 견해와 도리를 전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후세의 사람들이 자신의 뜻을 알아줄 것을 생각했던 것입니다.] 

 

 乃如左丘無目,  孫子斷足 終不可用,  退而論書策 以舒其憤 思垂空文以自見. 
 (내여좌구무목  손자단족  종불가용  퇴이논서책  이서기분  사수공문이자견.)


 ['좌구명'과 같이 눈이 멀고, '손빈'과 같이 발이 잘린 사람은 끝내 세상에서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물러나 책으로써 꾀하는 바를 논하여 울분을 풀면서 이론적인 문장을 세상에 남겨 자신의 견해를 드러냈습니다.] 

 

 僕竊不遜  近自託於無能之辭,  網羅天下放失舊聞  略考其行事  綜其終始  稽其成敗興壞之紀.
 (복절불손 근자탁어무능지사,  망라천하방실구문 약고기행사 종기종시 계기성패흥괴지기.) 


 [저도 감히 겸손치 못하게도 쓸 줄 모르는 문장에 스스로를 맡기려고 예부터 세상에 전해 내려오는 

 누락된 이야기를 망라하여 행해진 일을 간략하게 고증하고 시작과 결말을 종합하여 성공과 실패,

 흥성함과 쇠망함의 이치를 살펴보고자 했습니다.] 

 

 上計軒轅 下至于玆,  爲十表 本紀十二 書八章 世家三十 列傳七十 凡百三十篇,  

 亦欲以究天人之際  通古今之變  成一家之言.
 (상계헌원 하지우자,  위십표 본기십이 서 8장 세가삼십 열전칠십 범백삼십편,   

 역욕이구천인지제 통고금지변 성일가지언.)
 [그리하여 위로는 '헌원'(황제(黃帝))에서 아래로는 지금에 이르기까지〈표〉10편,〈본기〉12편, 

〈서〉8장, 〈세가〉 30편, 〈열전〉70편 등 무릇 130편을 지어 하늘과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고

 고금의 변화를 살펴 일가의 문장을 이루고자 했습니다.] 

 

 草創未就 會遭此禍,  惜其不成 是以就極刑而無慍色.   

 僕誠以著此書 藏諸名山,  傳之其人 通邑大都,  則僕償前辱之責  雖萬被戮  豈有悔哉 ?
 (초창미취 회조차화,  석기불성 시이취극형이무온색.   

 복성이저차서 장제명산,  전지기인 통읍대도,  즉복상전욕지책 수만피륙 기유회재 ?)


 [그러나 초고를 아직 쓰기도 전에 이런 화를 당했는데, 나의 작업이 완성되지 못할 것을  안타까이 여긴 까닭에

 극형을 당하고도 부끄러워할 줄 몰랐던 것입니다. 
 저는 진실로 이 책을 저술하여 명산에 간직해 두었다가,  저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에게 전하여  

 모든 고을과 도회지에 알려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제가 이전에 치욕을 참고 자결하지 않았다는 책망을 보상받게 될 것이니    

 비록 수만 번 죽임을 당한다 해도 어찌 후회스러움이 있겠습니까 ? ] 

 

 然此可爲智者道  難爲俗人言也.  且負下未易居 下流多謗議.    

 僕以口語遇遭此禍  重爲鄕里所戮笑 以汚辱先人  亦何面目復上父母丘墓乎 ?
 (연차가위지자도  난위속인언야  차부하미역거  하류다방의. 

 복이구어우조차화  중위향리소륙소 이오욕선인  역하면목복상부모구묘호 ? )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지만 일반 사람에게는 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죄를 지은 자는 처신하기가 쉽지 않고 천한 사람은 비방받기가 쉬운 법입니다.
 제가 말을 삼가지 못하여 이러한 화를 입고 거듭 마을 사람들의 조소거리가 되어 선조를 욕되게 했으니  

 또 무슨 면목으로 부모님의 묘소를 다시 찾을 수 있겠습니까 ? ] 

 

 雖累百世 垢彌甚耳.  是以腸一日而九廻 居則忽忽若有所亡 出則不知其所往.   

 每念斯恥 汗未嘗不發背沾衣也.  身直爲閨閤之臣 寧得自引於深藏岩穴邪 ?
 (수루백세 구미심이.  시이장일일이구회 거즉홀홀약유소망 출즉불지기소왕.   

 매념사치 한미상불발배첨의야.  신직위규합지신 영득자인어심장암혈야 ? )


 [비록 수많은 세월이 흐른다 해도 저의 수치로움만 심해 질 뿐입니다.   

 이로 인해 하루에도 수없이 애간장이 타고, 집안에 있으면 망연자실하여 무엇인가를 잃어버린 듯하며  

 문을 나서면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르겠습니다.
 매번 이러한 치욕을 생각할 때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려내려 옷을 적시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지금 이몸은 궁중에서 임금을 가까이 모시고 있는 신하로써 어찌 스스로 깊은 바위굴 속에 숨어   

 은거생활을 할 수 있겠습니까 ? ] 

  

 故且從俗浮沈  與時俯仰  以通其狂惑  今少卿乃敎以推賢進士 無乃與僕私心刺謬乎 ?   

 今雖欲自雕琢曼辭以自飾  無益於俗不信  適足取辱耳.  
 (고차종속부심  여시부앙  이통기광혹  금소경내교이추현진사 무내여복사심자류호 ?  

 금수욕자조탁만사이자식 무익어속불신 적족취욕이.)


 [그래서 잠시 세상이 성하면 성한대로 쇠하면 쇠한대로 처신하며 시대의 파고를 따라 행동하며  

 미치고 어리석은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습니다. 지금 소경께서 저에게 현인을 추천해 달라는 가르침을 주셨는데

 이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과 상반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 
 지금 비록 제가 스스로를 가다듬어 미사여구로 제 자신을 꾸미려 한다고 해도,  

 아무런 유익함이 없고 사람들도 믿지 않을 것이니 도리어 스스로 부끄러움을 취할 뿐입니다. ]  

  

 要之 死日然後是非乃定.  書不能悉意 略陳固陋.  謹再拜.
 (요지 사일연후시비내정.  서불능실의 약진고루.  근재배.)
 [요약해서 말씀드리자면 죽은 후에나 옳고 그름이 가려질 것입니다. 
 글로써는 저의 뜻을 다 전할 수는 없어 고루한 생각을 간략하게 적는 바입니다.  삼가 재배합니다.] 

 


                                                                                                                       

                          2 0 0   .     .     .

                                                                                                  

 

                          原 文   飜 譯 者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