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國策(전국책) /戰國策 秦策 1

戰國策 秦策 1

덕치/이두진 2021. 6. 26. 16:54

 

                       秦策 

 

 【 序文 】

진나라는 원래 전욱(顓頊)의 후예가 세운 나라이다. 순임금 때 조수(鳥獸)를 관리하는 직책을 맡다가

공을 세워 영(嬴)이라는 성을 하사받았다. 이후 비렴(蜚廉), 여방(女防)을 거쳐 비자(非子)에 이르렀을 때

주효왕(周孝王)이 그에게 말을 길러 바치도록 했다. 비자가 견위(汧渭: 섬서성 농현과 미현 일대) 근처에서 말을 길러 크게 번식시키자 주효왕이 이를 크게 칭송하고 부용국(附庸國)으로 삼아 진(秦: 감숙성 천수현)에 도읍하게 하였다.

이에 진영(秦嬴)으로 불리게 되었다.
진장공(秦莊公)을 거쳐 진양공(秦襄公: 기원전 777~766)에 이르렀을 때 주유왕(周幽王)이 포사(褒姒)로 인해

견융의 침입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진양공이 견융을 막아내고 주왕실의 천도를 돕는 공을 세웠다.

이에 동주의 주평왕(周平王)이 진양공을 백작에 봉하고 기(岐: 섬서성 기산현 동북쪽)와 풍(豊: 섬서성 호현 동쪽)의

땅을 하사했다. 이로써 열후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진문공(秦文公)과 진영공(秦寧公), 진출공(秦出公), 진무공(秦武公), 진덕공(秦德公), 진성공(秦成公)을 거치는 동안 영토를 점차 확장해 지금의 섬서성 중부와 감숙성 동남부 일대를 장악케 되었다.

뒤를 이은 진목공(秦穆公: 기원전 659~620) 때에 이르러 망명중인 진문공의 등극을 적극 도와 주어 대대로

진(晉)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케 되었다. 진목공은 백리해(百里奚)와 맹명(孟明)과 같은 뛰어난

장상(將相)을 통해 활발한 정복활동을 전개하고 진혜공(晉惠公)의 배신행위를 토벌함으로써

패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도읍은 원래 옹(雍: 섬서성 봉상현)이었으나 진효공(秦孝公) 12년(기원전 350)에

상앙의 변법을 채택해 함양(咸陽: 섬서성 함양현)으로 천도했다. 후에 다시 영토를 크게 확장해

파(巴: 사천성 동부와 호북성 서부 일대)와 촉(蜀: 사천성 서부)를 판도에 흡수시켰다.

진혜문왕(秦惠文王) 13년(기원전 325)에 처음으로 칭왕하였다.

진시황 26년(기원전 221)에 산동 6국을 병탄해 천하일통의 위업을 이루게 되었다.

     ​秦策 一 .

 

衛鞅亡魏入秦,孝公以為相,封之於商,號曰商君.

商君治秦,法令至行,公平無私,罰不諱強大, 賞不私親近,法及太子,黥劓其傅.

(위앙망위입진, 효공이위상, 봉지어상, 호왈상군.

상군치진, 법령지행, 공평무사, 벌불휘강대, 상불사친근, 법급태자, 경의기부. )

 

[위(衛)나라 공족 출신인 상앙(商鞅)은 위(魏)나라에서 도망쳐 진(秦)나라로 왔다.

진효공은 상앙을 재상으로 삼고, 오(於)와 상(商)의 지역을 봉지로 하사하였으므로 호를 상군(商君)이라 하였다.
상군이 진나라를 다스릴 때 법령이 잘 시행되었고, 매사에 공평(公平)하고 사사(私事)로움이 없었다.
벌을 줄 때에는 힘이 세거나 지위가 높다고 하여 꺼리는 경우가 없었으며, 상을 줄 때에도 친하거나 가깝다고 하여

사사로운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상군이 변법을 시행한 초기에 태자가 법을 어기는 일이 발생하였다.

러나 태자는 임금의 대를 이을 사람이므로 태자의 몸에 직접적으로 형을 가할 수 없어

공자'건'의 사부를 처형하고 그 스승인 '공손고'는 경형에 처하였다.]

期年之後,道不拾遺,民不妄取,兵革大強,諸侯畏懼. 然刻深寡恩,特以強服之耳.

孝公行之八年,疾且不起,欲傳商君,辭不受.

(기년지후, 도불습유, 민불망취, 병혁대강, 제후외구. 연각심과은, 특이강복지이.

효공행지팔년, 질차불기, 욕전상군, 사불수. )

 

[법을 시행한 지 1년이 지나자, 길바닥에 떨어진 물건도 줍는 사람이 없었고,

남의 물건을 함부러 취하는 일이 없어졌으며, 군대와 무기도 강해지자, 다른 제후들은 무서워하며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법이 너무 가혹하며 은덕을 베푸는 일이 적어지고 특별히 강압적으로 법을 적용하여 
백성들을 복종시킨

것일 뿐이었다. 진효공이 정사를 돌본지 8년이 지나자, 병이 들어 일어 날 수가 없어

상군에게 태자의 사부가 되어 국정을 이끌어 주기를 바랬으나, 상군은 사양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孝公已死, 惠王代後, 蒞政有頃, 商君告歸. 人說惠王曰:「 大臣太重者國危, 左右太親者深危.

今秦婦人嬰兒皆言商君之法, 莫言大王之法. 是商君反為主, 大王更為臣也.

且夫商君, 固大王仇讎也, 願大王圖之. 」 商君歸還, 惠王車裂之, 而秦人不憐.
(효공이사, 혜왕대후, 리정유경, 상군고귀. 인세혜왕왈 : 「 대신태중자국위, 좌우태친자심위.

금진부인영아개언상군지법, 막언대왕지법. 시상군반위주, 대왕경위신야.

차부상군, 고대왕구수야, 원대왕도지. 」 상군귀환, 혜왕거열지, 이진인불련.)

 

[진효공이 죽고, 태자가 뒤를 이어 즉위하니 이 이가 바로 의형에 처해졌던 태자 건, 혜왕이다.
혜왕이 국정을 살핀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군은 고향으로 돌아갈 뜻을 밝혔다.

이때 어떤 사람이 혜왕에게 유세하기를 : " 대신들이 너무 커지면 나라가 위태로워지며,

주위의 신하들을 너무 친압하면 임금은 위험에 처해지게 됩니다.

지금 진나라는 부녀자에서 어린아이들까지 상군의 변법은 말하면서 대왕의 법은 말하지 못하고 있으니,
이는 상군이 나라의 주인이고, 대왕께서는 신하가 된 형국입니다.

또한 저 상군은 예전에 대왕께서 태자 시절에 원수로 생각하고 있던 자입니다.

원컨데 대왕께서는 이점을 숙지하시어 대책을 세우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한편 위나라로 도망간 상군은 위나라 사람들에게 체포되어 진나라로 송환되던 중에 자신의 봉지로 달아났으나,

진나라의 군사들에 의해 정나라 민지에서 죽음을 당하자, 진 '혜왕'은 '상군'의 시신을 가져와 거열형에 처하였다.
그러나 진나라 백성은 그 누구도 상군을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蘇秦始將連橫, 說秦惠王曰:「 大王之國, 西有巴、蜀、漢中之利, 北有胡貉、代馬之用,

南有巫山、黔中之限, 東有餚、函之固. 田肥美, 民殷富, 戰車萬乘, 奮擊百萬, 沃野千里,

蓄積饒多, 地勢形便, 此所以天府之, 天下之雄國也. 以大王之賢, 士民之眾, 車騎之用,

兵法之教, 可以並諸侯, 吞天下, 稱帝而治, 願大王少留意, 臣請奏其效. 」
(
소진시장연횡, 설진혜왕왈 : 「 대왕지국, 서유파、촉、한중지리, 북유호맥、대마지용,

남유무산、검중지한, 동유효、함지고. 전비미, 민은부, 전거만승, 분격백만, 옥야천리, 축적요다,

지세형편, 차소이천부지, 천하지웅국야. 이대왕지현, 사민지중, 거기지용, 병법지교,

가이병제후, 탄천하, 칭제이치, 원대왕소류의, 신청주기효. 」

 

[소진은 처음으로 연횡(連橫: 진나라와 연결해 나라를 유지하려는 계책)을 꾀하려고 진혜문왕에게 유세하기를 : 

“진나라는 서쪽으로 파(巴: 사천성 동부와 호북성 서부 일대), 촉(蜀: 사천성 서부), 한중(漢中) 등의

비옥한 땅의 이로움이 있고, 북쪽으로 호(胡), 맥(貊), 대(代), 마(馬) 등지로부터 조달하는 전비(戰備)가 있고,

남쪽으로 무산(巫山: 사천성 무산현 이동), 검중(黔中: 호남성 서북부와 귀주성 동부 일대)의 천험(天險)이 있고,

동쪽으로 효산(肴山 : 하남성 낙녕현 북쪽)과 함곡관(函谷關: 효산과 潼關, 하남성 영보현)의 견고한 요새가 있습니다.

또 농지는 비옥하고 백성은 은부(殷富)하여 날로 번창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병거가 1만 승, 정예병이 1백만 명,

옥야(沃野)가 1천 리인 데다가 비축한 식량이 풍부하며, 지세와 지형도 방어에 편리해 한번 지키기로 마음먹으면

점령할 길이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소위 천부(天府: 자연산물이 풍부한 천혜의 창고)라는 것입니다.

더구나 대왕의 총명함과 많은 사민(士民)들의 인적 자원, 거기(車騎: 전차병과 기병)의 운용,

병법의 가르침으로 본다면 장차 제후들을 합병하고 천하를 통일해 칭제(稱帝)하며 다스릴 만합니다.

원컨대 대왕은 부디 주의를 기울여 신이 앞날의 계책을 진술토록 허락해주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秦王曰:「 寡人聞之, 買羽不豐滿者不可以高飛, 文章不成者不可以誅罰,

道德不厚者不可以使民, 政教不順者不可以煩大臣. 今先生儼然不遠千里而庭教之, 願以異日. 」
(진왕왈 : 「 과인문지, 매우불풍만자불가이고비, 문장불성자불가이주벌, 도덕불후자불가이사민,

정교불순자불가이번대신. 금선생엄연불원천리이정교지, 원이이일. 」)

 

[그러자 진혜문왕이 말하기를 : “과인이 듣건대, ‘깃털이 많지 않은 새는 높이 날 수 없고,

문장(文章: 국가의 법령제도)이 정비되어 있지 않으면 능히 정벌에 나설 수 없고,

백성에게 은혜를 충분히 베풀지 못하는 군주는 백성을 동원해 싸움을 할 수 없고,

정교(政敎: 정치교화)가 인심에 따르지 못하면 대신들을 전쟁에서 제대로 운용할 수 없다’고 했소.

지금 선생은 엄연(儼然: 엄숙하고 정중한 예를 갖춤)히 불원천리(不遠千里)하여 찾아와서는 가르침을 주고자 하나

과인 또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하니 후일 그대의 가르침을 받고자 하오.”라고 하자.] 

 

蘇秦曰:「 臣固疑大王不能用也. 昔者神農伐補遂, 黃帝伐涿鹿而禽蚩尤, 堯伐驩兜, 舜伐三苗,

禹伐共工, 湯伐有夏, 文王伐崇, 武王伐紂, 齊桓任戰而伯天下. 由此觀之, 惡有不戰者乎?

古者使車轂擊馳, 言語相結, 天下為一;約中連橫, 兵革不藏;文士並餝, 諸侯亂惑;

萬端俱起, 不可勝理;科條既備, 民多偽態;書策稠注, 百姓不足, 上下相愁, 民無所聊;

明言章理, 兵甲愈起;辯言偉服, 戰攻不息;繁稱文辭, 天下不治;舌弊耳聾, 不見成功;

行義約信, 天下不親. 於是, 乃廢文任武, 厚養死士, 綴甲厲兵, 效勝於戰場.  夫徒處而致利,

安坐而廣地, 雖古五帝、三王、五伯, 明主賢君, 常欲佐而致之, 其勢不能, 故以戰續之.
寬則兩軍相攻, 迫則杖戟相橦, 然後可建大功. 是故兵勝於外, 義強於內;武立於上, 民服於下. 

今欲並天下, 凌萬乘, 詘敵國, 制海內, 子元元, 臣諸侯, 非兵不可! 今之嗣主, 忽於至道,

皆惛於教, 亂於治, 迷於言, 惑於語, 沈於辯, 溺於辭. 以此論之, 王國不能行也. 」
(소진왈 : 「 신고의대왕불능용야. 석자신농벌보수, 황제벌탁록이금치우, 요벌환두, 순벌삼묘, 우벌공공,

탕벌유하, 문왕벌숭, 무왕벌주, 제환임전이백천하. 유차관지, 오유불전자호 ? 고자사거곡격치, 언어상결,

천하위일 ; 약중연횡, 병혁부장 ; 문사병식, 제후난혹 ; 만단구기, 불가승리 ; , 요조기비, 민다위태 ;,
서책조주, 백성부족, 상하상수, 민무소료 ; 명언장리, 병갑유기 ; 변언위복, 전공불식 ; 번칭문사, 천하불치 ;

설폐이롱, 불견성공 ; 행의약신, 천하불친. 어시, 내폐문임무, 후양사사, 철갑려병, 효승어전장.

부도처이치리, 안좌이광지, 수고오제、삼왕、오백, 명주현군, 상욕좌이치지, 기세불능, 고이저녹지.
관즉양군상공, 박즉장극상동, 연후가건대공. 시고병승어외, 의강어내 ; 무립어상, 민복어하.

금욕병천하, 릉만승, 굴적국, 제해내, 자원원, 신제후, 비병불가 ! 금지사주, 홀어지도,

개혼어교, 난어치, 미어언, 혹어어, 침어변, 약어사. 이차논지, 왕국불능행야. 」)

[이에 소진이 대답하기를 : “ 신 또한 대왕께서 신의 계책을 간단히 채용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옛날 신농씨(神農氏)는 보수(補遂: 전설상의 고대 부족)를 토벌하고,

황제(黃帝: 헌원씨)는 탁록산(涿鹿山: 하북성 탁록현 서남쪽)에서 치우(蚩尤: 九黎 부족의 추장)를 포로로 잡고,

요임금은 사도(司徒) 환두(驩兜)가 작란하자 그를 유배보내고, 순임금은 묘족(苗族)을 토벌해 이주시키고,

우임금은 수관(水官) 공공(共工)을 토벌해 쫓아내고, 은나라의 탕왕은 하걸(夏桀: 하나라 마지막 왕)을 토벌해

남소(南巢: 안휘성 소현 동북쪽)로 쫓아내고, 문왕은 숭(崇: 섬서성 호현)나라를 토벌하고,

주무왕은 은주(은나라 마지막 왕)를 목야(牧野: 하남성 급현 북쪽)에서 토발하고,

제환공은 임전(任戰: 무력을 동원해 싸움)하여 백천하(伯天下: 패천하)하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알 수 있듯이 옛날 뜻을 이룬 사람치고 전쟁을 치루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또 옛날에는 사거곡격(使車轂擊: 사자들이 탄 수레의 굴대가 서로 충돌할 정도로 외교가 활발했음을 의미)하며

유세로써 결맹하여 천하가 하나인 듯이 보였으나 실은 종횡으로 결탁해 무력을 사용치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문사병칙(文士幷飭: 외교와 군사활동의 병행)으로 제후들이 혼란에 빠져 온갖 예측치 못한 일들이 일거에 터져나와

수습할 길이 없었습니다. 법령은 완비되어 있었으나 백성들은 오히려 간사(奸詐)해져 정령이 번잡해질수록

백성들은 이를 더욱 따르지 않게 되었습니다. 상하가 서로 원망하게 되자 백성들은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습니다.

명언장리(明言章理: 공허한 이론을 드러냄)가 기승을 부릴수록 전쟁은 더욱 자주 일어나고

변언위복(辯言偉服: 교묘한 언변과 기이한 복장을 하여 법제를 뛰어넘음)이 횡행할수록 전쟁은 그칠 줄 몰랐습니다. 글과 말이 번잡해질수록 천하는 오히려 다스려지지 않고, 혀가 닳고 귀머거리가 되도록 떠들어대도

일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신의를 내세우며 맹약해도 천하의 제후들은 친목할 줄 모릅니다.

이에 마침내 폐문임무(廢文任武: 글로 다스리는 것을 버리고 오로지 힘으로 다스림)하여

사사(死士: 결사대)를 크게 양성하고 군비를 확충함으로써 전장에서의 승리를 꾀하게 된 것입니다.

대체로 싸우지 않고 이익을 거두거나 앉아서 영토를 넓히는 일은 옛날의 오제(五帝: 黃帝, 顓頊, 帝嚳, 堯, 舜)와

삼왕(三王: 夏禹, 商湯, 周文, 武), 오패(五伯: 齊桓公, 晉文公, 秦穆公, 宋襄公, 楚莊王)과 같은

명주현군(明主賢君) 역시 바라던 바이기는 했으나 사실상 불가능해 전쟁으로 이를 추구했던 것입니다.

전쟁은 여유가 있으면 양군이 군진을 정연히 하여 다투지만 사세가 절박해지면 칼과 창을 마주치는 혈전으로

치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만 대공을 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밖에서 승리를 거둬야만 안에서도

도의를 확립할 수 있고 위에서 위엄을 갖춰야만 아래에서도 백성들이 복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만승(萬乘)의 제후국에 승리를 거둬 천하를 병탄하고, 적대국을 굴복시켜 해내(海內)를 제압하고,

원원(元元: 백성)을 자식처럼 애호하고 제후들을 신하로 삼고자 하면 무력 이외의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군주가 된 자들은 이같이 지극한 도리를 소홀히 하고 가르치는데 어두운 나머지 정치를 문란케 하고,

미혹된 언어(言語)에 현혹되고, 간교한 변사(辯辭)에 빠져 있습니다.

따라서 이같이 말한들 군왕 역시 사실 신의 계책을 실행치는 못할 겁입니다.”라고 하였다.]

 

說秦王書十上而說不行. 黑貂之裘弊, 黃金百斤盡, 資用乏絕, 去秦而歸. 

羸滕履蹻, 負書擔橐, 形容枯槁, 面目犁黑, 狀有歸色.  歸至家, 妻不下紉, 嫂不為炊, 父母不與言. 
(설진왕서십상이설불행. 흑초지구폐, 황금백근진, 자용핍절, 거진이귀.

리승리교, 부서담탁, 형용고고, 면목리흑, 상유귀색.  귀지가, 처불하인, 수불위취, 부모불여언. 

 

[소진은 진왕을 설득키 위해 서신을 10통이나 올렸으나 그의 헌책은 채택되지 않았다.

이에 입고 있던 검은 담비 갖옷은 온통 해지고 1백 근의 황금도 모두 비용으로 없어졌다.

결국 생활비를 해결할 길이 없어 진나라를 떠나 고향인 낙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등리교(羸縢履蹻 :각반을 치고 짚신을 신었다는 뜻으로 ‘羸’는 ‘累’와 통함)하고

부서담탁(負書擔橐 : 등에 책꾸러미를 이고 어깨에 짐을 멤)한 형용(形容)이 고고(枯槁: 앙상할 정도로 수척함)하기

그지없었다. 게다가 얼굴은 까맣게 그을려 귀색(歸色: 부끄러운 기색)이 완연했다.
집에 돌아왔으나 아내는 베틀작업을 계속한 채 거들떠보지도 않고, 형수는 밥 지을 준비도 하지 않고,

부모 역시 말조차 건네려 하지 않았다.]

 

蘇秦喟歎曰:「 妻不以為為夫, 嫂不以我為叔, 父母不以我為子, 是皆秦之罪也. 」

乃夜發書, 陳篋書事, 得《太公陰符》之謀, 伏而誦之, 簡練以為揣摩. 讀書欲睡,

引錐自刺其股, 血流至足.  曰:「 安有說人主不能出其金市錦繡, 取卿相之尊者乎?」

(소진위탄왈 : 「 처불이위위부, 수불이아위숙, 부모불이아위자, 시개진지죄야. 」  

내야발서, 진협서사, 득《태공음부》지모, 복이송지, 간련이위췌마. 독서욕수,

인추자자기고, 혈류지족.  왈 : 「 안유설인주불능출기금시금수, 취경상지존자호 ? 」)

 

[소진은 위연(喟然: 크게 한숨을 지음)히 탄식하며 말하기를 : “ 아내는 나를 남편으로 생각지도 않고,

형수는 시동생으로 생각지도 않고, 부모님은 자식으로 생각지도 않는구나. 이 모든 것이 진나라 때문이 아닌가."

라고 하며, 이에 이날 저녁 책을 찾기 위해 10개의 책상자를 모두 뒤적인 끝에 마침내 태공(太公: 강태공)이 지은 

병서 「음부(陰符)」를 찾아냈다. 소진은 곧바로 머리를 싸매고 이 책을 숙지할 때까지 끊임없이 읽고는

마침내 췌정마의(揣情摩意: 鬼谷子가 지은 췌편과 마편의 요체로 시세를 헤아리고 군주를 설득하는 비술을 의미)의

이치를 깨우쳤다. 그는 잠이 오면 송곳으로 넓적다리를 찔러 피가 발까지 흘러내릴 정도로 책을 열심히 읽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다짐하기를 : “제후들을 설득해 금옥금수(金玉錦繡)를 내놓게 하지도 못하면서

어찌 경상(卿相)의 높은 자리를 얻어낼 수 있단 말인가? ”라고 하였다.]

 

期年揣摩成, 曰:「 此真可以說當世之君矣!」
使用乃摩燕烏集闕, 見說趙王於華屋之下, 抵掌而談. 趙王大悅, 封為武安君. 

受相印, 革車百乘, 綿繡千純, 白壁百雙, 黃金萬溢, 以隨其後, 約從散橫, 以抑強秦.

故蘇秦相於趙而關不通.
(기년췌마성, 왈 : 「 차진가이설당세지군의 !」

사용내마연오집궐, 견설조왕어화옥지하, 저장이담. 조왕대열, 봉위무안군.

수상인, 혁거백승, 면수천순, 백벽백쌍, 황금만일, 이수기후, 약종산횡, 이억강진.  고소진상어조이관불통.)

 

[1년 후 체마술의 깊은 뜻을 터득하자 이같이 소리쳤다.
“이야말로 참으로 당세의 군왕을 설득시킬 만한 것이다.”라고 하며, 이내 연오집궐(燕烏集闕: 요새의 이름)로

난 길을 더듬어 나아가 마침내 조왕(趙王)을 화옥(華屋: 웅장한 궁전을 의미)에서 알현하면서

손바닥을 쳐가며 통쾌하게 그를 설득했다. 조왕이 크게 기뻐하며 곧 그에게 무안(武安: 하북성 무안현 서남쪽) 땅을

봉지로 내리면서 무안군(武安君)으로 봉하고 상국의 인수(印綬)까지 건네주었다.

이에 소진은 외출할 때 병거 1백 승과 금수(錦繡) 1천 돈(純: ‘1돈’은 2척4촌), 백벽(白璧) 1백 쌍,

황금 1만 일(鎰)을 대동하는 고귀한 신분이 되었다.

소진은 제후들 사이를 오가며 마침내 합종을 성사시켜 연횡(連橫)을 깨뜨림으로써 강국인 진나라를 고립시켰다.

이로써 소진이 조나라의 상국이 된 후로는 진나라에서 조나라로 가는 함곡관의 통행이 뚝 그치게 되었다.]

 

當此之時, 天下之大, 萬民之眾, 王侯之威, 謀臣之權, 皆欲決蘇秦之策.

不費斗糧, 未煩一兵, 未張一士, 未絕一弦, 未折一矢, 諸侯相親, 賢於兄弟.

夫賢人在而天下服, 一人用而天下從.  故曰:式於政, 不式於勇;式於廊廟, 不式於四境之外.

當秦之隆, 黃金萬溢為用, 轉轂連騎, 炫熿於道, 山東之國, 從風而服, 使趙大重.
(당차지시, 천하지대, 만민지중, 왕후지위, 모신지권, 개욕결소진지책.
불비두량, 미번일병, 미장일사, 미절일현, 미절일시. 제후상친, 현어형제. 

부현인재이천하복, 일인용이천하종. 고왈 : 식어정, 불식어용 ; 식어랑묘, 불식어사경지외. 

당진이륭, 황금만일위용, 전곡연기, 현황어도, 산동지국, 종풍이복, 사조대중.) 

 

[당시 광대한 천하와 수많은 백성, 위세 있는 제후들, 권세 있는 모신 등이 모두 소진의 계책을 좇아 일을 결정하고자

했다. 이에 단 한 말의 군량도 허비하지 않고, 한 명의 병력도 번거롭게 하지 않고, 한 명의 장수도 출전치 않고,

한 줄의 활시위도 끊지 않고, 한 대의 화살도 쓰지 않은 채 제후들은 서로 형제 이상으로 절친하게 되었다.
모름지기 현인이 나타나자 천하가 복종하고 한 사람을 등용하자 천하가 따르게 된 셈이다. 이에 세상에서 말하기를, ‘정치로 해결하니 무력을 쓸 필요가 없고, 조정에서 일을 처리하니 변경에서 전쟁을 할 이유가 없다’고 하는 것이다. 소진의 전성시기에는 1 만 일(鎰)의 황금을 비용으로 쓰고 수많은 거마가 그 뒤를 이어 지나는 길이 휘황하기

그지없었다. 이에 산동(山東)의 제후국들은 모두 바람을 좇아 가듯 그를 추종하면서 조나라를 크게 받들었다.]

 

且夫蘇秦特窮巷掘門、桑戶棬樞之士耳, 伏軾撙銜, 橫歷天下, 廷說諸侯之王, 杜左右之口,

天下莫之能伉.  將說楚王路過洛陽, 父母聞之, 清宮除道, 張樂設飲, 郊迎三十里.

妻側目而視, 傾耳而聽;嫂蛇行匍伏, 四拜自跪謝.
(차부소진특궁항굴문、상호권추지사이, 복식준함, 횡력천하, 정설제후지왕, 두좌우지구, 천하막지능항.
장설초왕로과낙양, 부모문지, 청궁제도, 장악설음, 교영삼십리. 

처측목이시, 경이이청 ; 수사행포복, 사배자궤사. ) 

 

​[원래 소진은 토굴 같은 누항(陋巷: 뒷골목)에 있는 뽕나무 지게문에 나무로 만든 돌쩌귀로 된 집안 출신의

초라한 선비에 불과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같이 성공하여 호화로운 수레에 고삐를 잡히고 천하를 마음대로 역방하며

제후들에게 유세할 때면 좌우 대신들의 입을 다 막자 천하의 그 누구도 그를 당할 길이 없었다.
소진이 초왕에게 유세하러 가던 길에 고향인 낙양을 지나게 되었다.

이때 그의 부모는 이 소문을 듣고 집 안팎을 말끔히 청소하고 길까지 쓸었다.

이어 풍악을 준비하고 음식을 장만해 30리나 되는 교외까지 마중을 나갔다.

그의 아내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귀만 기울여 그의 말을 들었다 ;

형수는 뱀처럼 구불구불 기어 네 번이나 공손하게 절을 하며 꿇어앉아 과거의 무례를 사죄했다.]

 

蘇秦曰:「 嫂, 何前倨而後卑也?」 嫂曰:「 以季子之位尊而多金. 」

蘇秦曰:「 嗟乎! 貧窮則父母不子, 富貴則親戚畏懼. 人生世上, 勢位富貴, 盍可忽乎哉!」
(소진왈 : 「수, 하전거이후비야 ? 」 수왈 : 「 이계자지위존이다금. 」
소진왈 : 「 차호 ! 빈궁즉부모부자, 부귀즉친척외구. 인생세상, 세위부귀, 합가홀어재 ! 」)

 

[이에 소진이 묻기를 : “ 형수는 지난번에 그리 거만하더니 이번에는 어찌하여 이처럼 겸손한 것입니까?”라고 하자.
형수가 대답하기를 : “ 시숙이 출세하고 부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소진이 이 말을 듣고 말하기를 : “ 아 ! 빈궁할 때는 부모조차 자식으로 여기지 않더니

부귀해지자 먼 친척까지 다 두려워하는구나.

그러니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어찌 세위부후(勢位富厚: 권세와 부귀)를 가벼이 여길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秦惠王謂寒泉子曰:「 蘇秦欺寡人, 欲以一人之智, 反覆東山之君, 從以欺秦.

趙固負其眾, 故先使蘇秦以幣帛約乎諸侯. 諸侯不可一, 猶連雞之不能俱止於棲之明矣.

寡人忿然, 含怒日久, 吾欲使武安子起往喻意焉. 」

寒泉子曰:「 不可. 夫攻城墮邑, 請使武安子. 善我國家使諸侯, 請使客卿張儀. 」

秦惠王曰:「 受命. 」
(진혜왕위한천자왈 : 「 소진기과인, 욕이일인지지, 반복산동지군, 종이기진.

조고부기중, 고선사소진이폐백약호제후. 제후불가일, 유연계지불능구지어서지명의.

과인분연, 함노일구, 오욕사무안자기왕유의언.」
한천자왈 : 「 불가. 부공성타읍, 청사무안자. 선아국가사제후, 청사객경장의. 」 진혜왕왈 : 「 수명. 」) 

 

[진혜문왕이 처사 한천자(寒泉子)에게 일러 말하기를 : “ 소진은 우리 진나라를 속이고 자신의 재주로

산동의 제후들을 반복(反覆)하게 하여 합종을 맺게 함으로써 우리 진나라를 속이려 하고 있소.

조나라는 무리가 많은 것을 믿고 먼저 소진을 시켜 폐백으로 제후들과 합종을 맺게 하고 있소.

그러나 제후가 한데 뭉칠 수 없을 것이오. 이는 마치 하나의 끈으로 묶인 닭들일지라도 각자 사방으로 흩어지려

하는 까닭에 구상어서(俱上於棲: 하나의 홰에 들어감)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분명한 일이오.

과인이 분연히 노기를 품은지 오래 되었으니 이번에 무안군 백기를 파견해 제후들을 깨우쳐줄 생각이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한천자가 말하기를 : “ 안됩니다. 무릇 성을 공격하거나 읍을 함락시키는 일이라면 무안군을 시켜야 하나

우리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자를 제후들에게 보내는 일이라면 청컨대 객경인 장의를 보내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진혜문왕이 대답하기를 : “ 공경히 그대의 가르침을 따르겠소.”라고 하였다.]

 

泠向謂秦王曰:「 向欲以齊事王, 使攻宋也. 宋破, 晉國危, 安邑王之有也.

燕、趙惡齊、秦之合, 必割地以交欲王矣. 齊必重於王, 則向之攻宋也, 且以恐齊而重王.

王何惡向之攻宋乎? 向以王之明為先知之, 故不言. 」
(령향위진왕왈 : 「향욕이제사왕, 사공송야. 송파, 진국위, 안읍왕지유야.

연、조오제、진지합, 필할지이교욕왕의. 제필중어왕, 즉향지공송야, 차이공제이중왕.

왕하오향지공송호 ? 향이왕지명위선지지, 고불언. 」)

 

[진나라 대신 영향(泠向)이 진소양왕에게 아뢰기를 : “ 저는 제나라가 대왕을 섬기도록 만들겠습니다.

이에 그들을 시켜 송나라를 치도록 하겠습니다. 송나라가 패하면 진국(晉國: 위나라)은 위태롭게 되고,

도읍인 안읍(安邑: 산서성 하현)은 대왕의 차지가 될 것입니다. 연나라와 조나라는 제나라와 진나라가

결탁하는 것이 두려운 나머지 필시 땅을 떼어 바치고 대왕과 친교를 맺고자 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제나라는 대왕을 공경하게 될 것입니다. 제가 송나라를 치려는 것은 제나라에게 겁을 주어

대왕을 더욱 중히 여기도록 만들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왕은 어찌하여 송나라 공격을 꺼려하는 것입니까 ?

저는 대왕이 영명하여 이미 알고 있을 것으로 여기고 이제까지 말씀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張儀說秦王曰:「 臣聞之, 弗知而言為不智, 知而不言為不忠. 為人臣不忠當死, 言不審亦當死.

雖然, 臣願悉言所聞, 大王裁其罪. 臣聞天下陰燕陽魏, 連荊固齊, 收余韓成從, 將西南以與秦為難.

臣竊笑之.  世有三亡, 而天下得之, 其此之謂乎!

臣聞之曰:『 以亂攻治者亡, 以邪攻正者亡, 以逆攻順者亡 』

(장의세진왕왈 : 「 신문지, 불지이언위부지, 지이불언위불충. 위인신불충당사, 언불심역당사.

수연, 신원실언소문, 대왕재기죄. 신문천하음연양위, 연형고제, 수여한성종, 장서남이여진위난.

신절소지. 세유삼망, 이천하득지, 기차지위호 !

신문지왈 : 『 이난정치자망, 이사공정자망, 이역공순자망 』

 

[장의가 진왕에게 유세하기를 : “ 신이 듣건대 알지 못하면서 말을 하는 것은 부지(不智)이고,

알고서 말하지 않는 것은 불충이라고 했습니다. 신하된 몸으로 불충이면 죽어 마땅하고,

상황을 잘 살펴 말을 하지 않는 것 또한 죽어 마땅합니다.

비록 그렇다고는 하나 신은 들어서 알고 있는 것을 모두 대왕에게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대왕께서는 신의 죄를 판단해 주기 바랍니다. 신이 듣기로 ‘산동의 6국은 북쪽으로 연나라, 남쪽으로 초나라와 연합해 제나라를 견고히 한 후 나머지 한나라까지 회유해 합종을 이루고 장차 서쪽으로 진나라와 대항코자 한다고 합니다.

신은 이 얘기를 듣고 속으로 웃었습니다. 세상에는 망국의 길이 3 가지 있는데 산동 6국은 이를 모두 갖추고 있으니

이는 바로 이같은 경우를 두고 이르는 것입니다.
신이 듣건대 ‘이란공치(以亂攻治: 혼란한 나라가 잘 다스려지는 나라를 침)와

이사정공(以邪攻正: 사악한 것으로 바른 것을 침)과

이역공순(以逆攻順: 역리로써 순리를 침)은 망한다’라고 했습니다.

 

今天下之府庫不盈, 囷倉空虛, 悉其士民, 張軍數千百萬, 白刃在前, 斧質在後, 而皆去走, 不能死.

罪其百姓不能死也, 其上不能殺也. 言賞則不使, 言罰則不行, 賞罰不行, 故民不死也.

今秦出號令而行賞罰, 不攻無攻相事也. 出其父母懷衽之中, 生未嘗見寇也, 聞戰頓足徒裼, 犯白刃, 蹈煨炭, 斷死於前者比是也. 夫斷死與斷生也不同. 而民為之者是貴奮也.

一可以勝十, 十可以勝百, 百可以勝千, 千可以勝萬, 萬可以勝天下矣.

(금천하지부고불영, 균창공허, 실기사민, 장군수천백만, 백인재전, 부질재후, 이개거주, 불능사.
죄기백성불능사야, 기상불능살야. 언상즉불사, 언벌즉불행, 상벌불행, 고민불사야.

금진출호령이행상벌, 불공무공상사야. 출기부모회임지중, 생미상견구야, 문전돈족도석, 범백인,

도외탄, 단사어전자비시야. 부단사여단생야부동. 이민위지자시귀분야.

일가이승십, 십가이승백, 백가이승천, 천가이승만, 만가이승천하의.

 

[지금 천하의 부고(府庫)가 부실하고 균창(囷倉: 곳집)이 비어 있는데도 제후들은 부질없이 모든 사민(士民)을 동원해

수십 만에서 1백 만이라는 군사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이에 군사들은 백인(白刃: 시퍼런 칼날)이 앞에 있고

부질(斧質: 腰斬用 형구로 ‘부’는 허리를 끊는 작두, ‘질’은 작두받침)이 뒤에 있을지라도 도망갈 궁리만 할 뿐,

나라를 위해 죽을 각오로 싸울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백성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려 하지 않는다고

죄를 줄 수 있겠습니까. 말로만 상을 준다고 해 놓고 이를 시행치 않고, 말로만 벌을 주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이를 시행치 않으니 상벌에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백성이 나라를 위해 죽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금 진나라는 호령을 발포하여 상벌을 엄히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에 공이 있든 없든 모두 기꺼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자 하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부모의 품안을 떠나 아직 적을 구경하지 못한 상황에서조차

전쟁이 있다는 얘기를 들으며 맨발도 뛰어나가며 웃통을 벗어 젖히고 시퍼런 칼날에 맞서며

시뻘건 숯불도 밟아버릴 기세를 보입니다. 이들 모두 나라를 위해 죽기를 각오한 자들 뿐입니다.

무릇 단사(斷死: 죽기를 각오함)와 단생(기필코 살고자 함)은 그 근원이 다른 것입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이 단사를 택하는 것은 나라가 그들의 분전(奮戰)을 귀히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한 사람이 열 사람을 이기고, 열 사람이 백 사람을 이기며, 백 사람이 천 사람을 이기고,

천 사람이 만인을 이기며, 만인이 천하를 이겨 낼 수 있는 것입니다.

 

今秦地形, 斷長續短, 方書千里, 名師數百萬, 秦之號令賞罰, 地形利害, 天下莫如也.

以此與天下, 天下不足兼而有也. 是知秦戰未嘗不勝, 攻未嘗不取, 所當未嘗不破也. 

開地書千里, 此甚大功也. 然而甲兵頓, 士民病, 蓄積索, 田疇荒, 囷倉虛, 四鄰諸侯不服,

伯王之名不成, 此無異故, 謀臣皆不盡其忠也.

(금진지형, 단장속단, 방서천리, 명사수백만, 진지호렬상벌, 지형이해, 천하막지야.

 이차여천하, 천하부족겸이유야. 시지진전미상불상, 공미상불취, 소당미상불파야. 

개지서천리, 차심대공야. 연이갑병돈, 사민병, 축적색, 전주황, 균창허, 사린제후불복,

패왕지명불성, 차무이고, 모신개불진기충야.

 

[지금 진나라의 땅은 단장속단(斷長續短: 긴 것을 잘라 짧은 것에 이음)하면 사방 수천 리나 되고,

뛰어난 군사만도 수백만 명이나 됩니다. 진나라의 호령과 상벌, 지형의 이해로 볼 때 천하에 따를 나라가 없습니다.

이로써 천하의 제후들을 상대하면 천하를 모두 겸병할지라도 오히려 부족할 지경입니다.

이에 진나라는 싸워서 이기지 못한 예가 없고, 공격해 함락치 못한 적이 없고, 대적하는 것을 모두 깨뜨리지 않은 적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국토를 수천 리나 넓히는 일은 실로 커다란 업적입니다. 그러나 지금 군사는 지쳐 있고,

백성은 병들고, 저장한 식량은 바닥이 나고, 전답은 황폐해지고, 곡물창고는 비어가고, 사방의 제후들은 복종치 않고,

패왕(伯王)의 명성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는 다름이 아니라 대왕의 모신들이 충성을 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臣敢言往昔. 昔者齊南破荊, 中破宋, 西服秦, 北破燕, 中使韓、魏之君, 地廣而兵強, 戰勝攻取,

詔令天下, 濟清河濁, 足以為限, 長城鉅坊, 足以為塞. 齊五戰之國也. 一戰不勝而無齊. 

故由此觀之, 夫戰者萬乘之存亡也. 且臣聞之曰:『 削柱掘根, 無與禍鄰, 禍乃不存. 』

(신감언왕석. 석자제남파형, 중파송, 서복진, 북파연, 중사한、위지군, 지광이병강, 전승공취,

조령천하, 제청하탁, 족이위한, 장성거방, 족이위새. 제오전지국야. 일전불승이무제.

고유차관지, 부전자만승지존망야. 차신문지왈 : 『 삭주굴근, 무여화린, 화내부존. 』

 

[신이 감히 지난 일을 예로 들겠습니다. 옛날 제나라는 남쪽으로 형(荊: 초)나라를 격파하고, 도중에서 송나라를 치고, 서쪽으로 진나라를 굴복시킨 뒤 다시 북쪽으로 연나라를 격파하고, 도중에 한, 위 두 나라의 군왕까지 부렸습니다.

이에 땅은 넓어지고 군사는 강성해져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빼앗아 마침내 천하를 호령하게 되었습니다.

청제탁하(淸濟濁河: 맑은 제수와 탁한 황하)는 천혜의 방어벽으로 삼기에 족하였고,

장성거방(長城鉅坊: 장성과 거대한 제방을 뜻하는 말로 제나라의 장성은 원래 제방과 연접해 건립된 것임)은

천혜의 요새로 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그러나 제나라 역시 5전 전승을 거둔 나라였음에도 단 한 번만이라도

패배했다면 결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로써 보건대 본래 전쟁이란 만승지국의 존망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신이 듣건대 ‘나무를 없애기 위해서는 뿌리를 파내듯이 재난을 이웃하지 않으면 재난은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秦與荊人戰,大破荊,襲郢,取洞庭、五都、江南.  荊王亡奔走,東伏於陳.

當是之時,隨荊以兵,則荊可舉.  舉荊,則其民足貪也,地足利也.  東以強齊、燕, 中陵三晉.

然則是一舉而伯王之名可成也, 四鄰諸侯可朝也.  而謀臣不為, 引軍而退, 與荊人和.

今荊人收亡國, 聚散民, 立社主置, 宗廟, 令帥天下西面以與秦為難, 此固已無伯王之道一矣.

(진여형인전, 대파형, 습영, 취동정、오도、강남. 형왕망분주, 동복어진.

당시지시. 수형이병, 즉형가거.  거형, 즉기민족탐야, 지족리야. 동이강제、연, 중릉삼진.

연즉시일거이패왕지명가성야, 사린제후가조야.  이모신불위, 인군이퇴, 여형인화.

금형인수망국, 취산민, 입사주치, 종묘, 금수천하서면이여진위난, 차고이무백왕지도일의.

 

[진나라가 초나라와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둔 뒤 초나라 도읍인 영(郢: 호북성 강릉현 동북쪽)을 습격해

동정호(洞庭湖)와 5도(五都), 강남(江南: 동정호 일대)을 취하자 초왕은 도망쳐 동쪽 진성(陳城)에 피신했습니다.

이때 군사를 몰아 초나라를 밀어붙였다면 아마도 초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초나라 백성들을 진나라를 위해 활용하고 그 땅 또한 진나라의 전유물로 삼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동쪽으로 제, 연 두 나라와 대적하면서 중간에 있는 3진을 공벌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 했더라면 일거에 패왕의 이름을 드높여 사방의 제후들로부터 조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왕의 모신들은 그리 하지 않고 군사를 퇴각시켜 초나라와 강화를 맺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초나라로 하여금 망해 가는 나라를 부흥시켜 사방으로 흩어졌던 백성들을 다시 모으고,

사직과 종묘를 세우고, 천하 제후들의 군사를 끌어모아 서쪽 진나라와 싸우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패왕이 될 기회를 놓친 천 번째 이유입니다.

 

天下有比志而軍華下, 大王以詐破之, 兵至梁郭, 圍梁數旬, 則梁可拔.

拔代碼, 則魏可舉. 舉魏則荊、趙之志絕. 荊、趙之志絕, 則趙危. 趙危而荊孤.

東以強齊、燕, 中陵三晉, 然則是一舉而伯王之名可成也, 四鄰諸侯可朝也.

而謀臣不為, 引軍而退, 與魏氏和, 令魏氏收亡國, 聚散年, 立社主, 置宗廟, 此固已無伯王之道二矣.

(천하유차지이군화하, 대왕이사파지, 병지량곽, 위량수순, 즉량가발.
발대마, 즉위가거. 거위즉형、조지지절. 형、조지지절, 즉조위. 조위이형고. 

동이강제、연, 중릉삼진, 연즉시일거이패왕지명가성야, 사린제후가조야.

이모신불위, 인군이퇴, 여위씨화, 령위씨수망국, 취산년, 입사주, 치종묘, 차고이무패왕지도이의.

 

[천하의 제후들이 뜻을 합쳐 화양(華陽: 하남성 신정현 동남쪽) 아래에 포진했을 때

대왕은 사술(詐術)로 이들을 격파하고 대량(大梁: 위나라 도읍)의 외곽까지 쳐들어갔습니다.

그때 대량을 수십 일만 더 포위했더라면 대량을 함락할 수 있었고, 위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위나라를 멸망시켰으면 초나라와 조나라의 연락이 두절되고, 그리되면 조나라는 위험해지고,

조나라가 위태로워지면 초나라는 고립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동쪽의 제, 연 두 나라와 대치하면서 중간에 있는 3진을 능히 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랬으면 일거에 패왕의 이름을 이루고 사방 제후들의 조회를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왕의 모신들은 그리 하지 않고 군사를 철수시켜 위나라와 강화를 맺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위나라는 망해 가는 나라를 부흥시켜 사방으로 흩어졌던 백성들을 다시 모으고,

사직과 종묘를 세우게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패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두 번째 이유입니다.

 

前者穰侯之治秦也, 用一國之兵, 而欲以成兩國之功. 是故兵終身暴靈於外,

士民潞病於內, 伯王之名不成, 此固已無伯王之道三矣.

(전자양후지치진야, 용일국지병, 이욕이성양국지공. 시고병종신포령어외,

사민로병어내, 패왕지명불성, 차고이무패왕지도삼의.

 

[예전에 양후(穰侯: 선태후의 동복동생)는 진나라를 다스리면서 진나라만의 군사로 조나라를 돕고

제나라를 공격하는 두 나라 몫의 공을 세우고자 했습니다. 이에 병사들은 오랫동안 햇볕에 그을리고,

백성들은 안에서 병들고 지쳐 마침내 패왕의 이름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패왕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세 번째 이유입니다.

 

趙氏, 中央之國也, 雜民之所居也. 其民輕而難用, 號令不治, 賞罰不信, 地形不便, 上非能盡其民力.

彼固亡國之形也, 而不憂其民氓. 悉其士民, 軍於長平之下, 以爭韓之上黨, 大王以詐破之, 拔武安.

當是時, 趙氏上下不相親合, 貴賤不相信, 然則是邯鄲不守, 拔邯鄲, 完河間,

引軍而去, 西攻修武, 逾羊腸, 降代、上黨.

(조씨, 주앙지국야, 잡민지소거야. 기민경이난용, 호령불치, 상벌불신, 지형불편,

상비능진기민력. 피고망국지형야, 이불우기민맹. 실기사민, 군어장평지하, 이쟁한지상당, 대왕이사파지,

발무안. 당시시, 조씨상하불상친합, 귀천불상신, 연즉시한단불수, 발한단, 완하간,

인군이거, 서공수무, 유양장, 항대、상당.

 

[조나라는 중앙에 위치한 나라로 각 국 백성들이 뒤섞여 살고 있습니다. 조나라는 백성들이 경망해 부리기 어렵고,

법령은 잘 지켜지지 않으며, 상벌을 내려도 백성들이 잘 믿지 않고, 지형 또한 이웃 5국에 둘러싸여 있는데도

험조한 요새가 없어 불리한 나라입니다. 윗사람들은 민력을 십분 활용치 못하고 있으니 바로 망국의 형국입니다.

그런데도 백성을 돌보지 않고 모든 백성들을 총동원해 장평(長平: 산서성 고평현 서북쪽) 아래에 포진한 채

한나라와 상당(上黨) 땅을 다투었습니다. 이에 대왕이 사술로써 이를 깨뜨리고 무안(武安)을 함락시켰습니다.
당시 조나라는 상하가 상호 불목(不睦)하고 귀천이 서로 불신했습니다. 이에 한단을 지키지 못할 것이 확실했습니다. 당시 한단을 점령했더라면 하간(河間: 하북성 하간현 동남쪽) 땅을 온전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군사를 돌려 서쪽으로 수무(修武)를 쳤으면 양장(羊腸)을 넘어 대(代)와 상당까지 항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代三十六縣, 上黨十七縣, 不用一領甲, 不苦一民, 皆秦之有也. 代、上黨不戰而已為秦矣,

東陽河外不戰而已反為齊矣, 中呼池以北不戰而已為燕矣.

然則是舉趙則韓必亡, 韓亡則荊魏不能獨立. 荊、魏不能獨立, 則是一舉而壞韓, 蠹魏, 挾荊,

以東弱齊、燕, 決白馬之口, 以流魏氏. 一舉而三晉亡, 從者敗.

大王拱手以須, 天下遍隨而伏, 伯王之名可成也. 而謀臣不為, 引軍而退, 與趙氏為和.

(대삼십육현, 상당십칠현, 불용일령갑, 불고일민, 개진지유야. 대、상당부전이이위진의,

동양하외부전이이반위제의, 중호지이북부전이이위연의.

연즉시거조즉한필망, 한망즉형위불능독립.  형、위불능독립, 즉시일거이괴한, 두위, 협형,

이동약제、연, 결백마지구, 이류위씨. 일거이삼진망, 종자패.
대왕공수이수, 천하편수이복, 패왕지명가성야. 이모신불위, 인군이퇴, 여조씨위화.

 

[대 땅은 36개 현, 상당은 17개 현이나 되니 당시 이같이 했으면 무기 하나 잃지 않고,

병사 하나 수고롭게 하지 않고도 이 넓은 땅을 진나라 소유로 만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와 상당을 손에 넣으면 동양(東陽: 산동성 은성진)과 하외(河外: 제나라 북부지역)는 제나라가 싸우지 않고도

얻을 수 있었고, 중산과 호지(呼池: 하북성 내의 호타하) 이북은 연나라가 싸우지 않고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또 조나라를 쳐 멸망시켰으면 한나라도 틀림없이 망하게 되고, 한나라가 망하면 초나라와 위나라도 독립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두 나라가 독립하지 못하면 일거에 한나라를 궤멸시킨 뒤 위나라를 조금씩 잠식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어 초나라를 끼고 동쪽의 제, 연 두 나라를 약화시켜 백마진(白馬津: 하남성 활현 동북쪽)의둑을 무너뜨려

위나라를 물바다로 만들면 일거에 3진을 멸망시키는 것은 물론 합종책도 쉽게 무산시킬 수 있었을 것입니다.

대왕은 팔짱을 낀 채 기다려도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승복함으로써 쉽게 패왕의 이름을 이룰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왕의 모신들은 그리하지 않고 조나라와 싸우던 중 군사를 철수해 조나라와 강화하고 말았습니다.

 

以大王之明, 秦兵之強, 伯王之業, 地尊不可得, 乃取欺於亡國, 是謀臣之拙也.

且夫趙當亡不亡, 秦當伯不伯, 天下固量秦之謀臣一矣.

乃復悉卒乃攻邯鄲, 不能拔也, 棄甲兵怒, 戰慄而卻, 天下固量秦力二矣. 

軍乃引退, 並於李下, 大王並軍而致與只顧, 非能厚勝之也, 又交罷卻, 天下固量秦力三矣.

(이대왕지명, 진병지강, 패왕지업, 지존불가득, 내취기어망국, 시모신지굴야.

차부조당망불망, 진당백불백, 천하고량진지모신일의.

 내복실졸내공한단, 불능발야, 기갑병노, 전율이각, 천하고량진력이의. 

군내인퇴, 병어리하, 대왕병군이치여지고, 비능후승지야, 우교파각, 천하고량진력삼의.

 

[대왕의 영명과 진나라 군사의 강견(强堅)으로도 패업을 이루지 못하고 이내 멸망 직전의 나라들로부터

비웃음을 산 것은 바로 모신들이 졸렬했기 때문입니다. 무릇 조나라는 필히 망했어야 함에도 망하지 않고,

대왕은 패자가 되어야 했음에도 그리 되지 못했으니 이는 천하의 제후들이 진나라 모신들의 역량을 헤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천하가 진나라의 역량을 헤아린 첫 번째 이유입니다. 또다시 전군을 동원해 한단을 공격하다가

공략이 불가능해지자 갑주(甲冑)와 노(弩)를 내던진 채 잔뜩 겁을 집어먹고 퇴군했습니다. 이것이 천하의 제후들이

진나라의 역량을 헤아린 두 번째 이유입니다. 대왕은 퇴각한 군사를 이하(李下: 산서성 분성 부근) 땅에 모아 놓고,

다시 온 힘을 다해 조군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후승(厚勝: 대승)을 거두지 못한 가운데 병사들이 모두 크게 지친데다 패잔병들인 까닭에 이내 무기를 거두고 철수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천하의 제후들이 진나라의 역량을 헤아린 세 번째 이유입니다.

 

內者量吾謀臣, 外者極吾兵力. 由是觀之, 臣以天下之從, 豈其難矣.

內者吾甲兵頓, 士民病, 蓄積索, 田疇荒, 囷倉虛, 外者天下比志甚固. 願大王有以慮之也.

且臣聞之, 戰戰慄栗, 日慎一日. 苟慎其道, 天下可有也. 何以知其然也?

茜者紂為天子, 帥天下將甲百萬, 左飲於淇谷, 右飲於洹水, 淇水竭而洹水不流, 以與周武為難.

武王將素甲三千領, 戰一日, 破紂之國, 禽其身, 據其地, 而有其民, 天下莫不傷.

​(내자량오모신, 외자극오병력. 유시관지, 신이천하지종, 기기난의. 내자오갑병돈, 사민병, 축적색, 전주황,

균창허, 외자천하비지심고. 원대왕유이려지야. 차신문지, 전전율률, 일신일일. 구신기도, 천하가유야.

하이지기연야 ? 천자주위천자, 수천하장갑백만, 좌음어기곡, 우음어원수, 기수갈이원수하류, 이여주무위난.
무왕장소갑삼천령, 전일일, 파주지국, 금기신, 거기지, 이유기민, 천하막불상.

 

[안으로는 우리 모신들의 역량을 헤아리고 밖으로는 우리 병력의 강약을 제대로 파악했어야 했습니다.

이로써 보건대 천하의 제후들이 합종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지금 안으로는 우리의 군사가 지쳐 있고, 백성들은 병들어 있으며, 쌓아둔 재물은 바닥이 나고, 전답은 황폐해지고, 곳간은 비어 있습니다.

또한 밖으로는 천하의 제후들이 서로 결속을 다지고 있으니 부디 대왕은 이를 깊이 헤아리기 바랍니다.
신이 듣건대 ‘전전긍긍하여 하루하루를 조심하라, 올바른 원칙을 견지하면 천하를 얻을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무엇으로 이같은 이치를 알 수 있겠습니까. 옛날 은주(殷紂)는 천자가 되어 천하의 백만 대군을 이끌고 나아가

왼쪽 기곡(淇谷: 하남성 淇河)과 오른쪽 원수(洹水: 淇河 북쪽)에서 군마에게 물을 먹였습니다.

이에 기수(淇水)가 고갈되고 원수 또한 흐르지 않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은주는 수많은 군마를 이끌고

주무왕과 대적하였습니다. 당시 주무왕은 불과 소갑(素甲: 가까스로 갑주를 걸친 군사) 2천 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주무왕은 단 하루의 교전 끝에 은나라 군사를 격파하고 은주를 사로잡습니다.

이로써 그 땅과 백성을 차지했으나 천하에 그 누구도 은주를 동정하지 않았습니다.

 

智伯帥三國之眾, 以攻趙襄主於晉陽, 決水灌之, 三年, 城且拔矣.  

襄主錯龜, 數策占兆, 以視利害, 何國可降, 而使張孟談.

於是潛行而出, 反智伯之約, 得兩國之眾, 以攻智伯之國, 禽其身, 以成牒子之功.

(지백수삼국지중, 이공조양주어진양, 결수관지, 삼년, 성차발의.

양주착구, 수책점조, 이시이해, 하국가항, 이사장맹담. 

어시잠행이출, 반지백지약, 득양국지중, 이공지백지국, 금기신, 이성첩자지공.

 

[또 지백은 3국(三國: 智氏, 韓氏, 魏氏)의 군사를 이끌고 가 진양에서 조양주(趙襄主: 조양자)를 공격했습니다.

이때 진수(晉水)를 터 진양성으로 물을 흘려보내기를 3년 동안 하자 진양성이 거의 함락될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양주는 거북등을 태우고 시초(蓍草: 산가지)를 헤아려 점을 침으로써 이해관계를 살폈습니다.

이에 어느 나라가 동맹국이 될 수 있을 것인지를 알아낸 뒤 대신 장맹담(張孟談)을 사자로 보내 일을 꾸몄습니다.

장맹담이 몰래 성을 빠져나가 한, 위 두 나라로 하여금 지백의 맹약을 깨고 조양주 쪽으로 가담케 한 뒤 함께

지백을 쳐 마침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이로써 그는 조양주로 하여금 대공을 이루게 한 것입니다.

 

今秦地斷長續短, 方數千里, 名師數百萬, 秦國號令賞罰, 地形利害, 天下莫如也.

以此與天下, 天下可兼而有也.  臣昧死望見大王, 言所以即著破天下之從, 舉趙亡韓, 臣荊、魏,

親齊、燕, 以成伯王之名, 朝四鄰諸侯之道.  大王試聽其說, 一舉而天下之從不破, 趙不舉, 韓不亡,

荊、魏不臣, 齊、燕不親, 伯王之名不成, 四鄰諸侯不朝, 大王斬臣以徇於國, 以主為謀不忠者. 」)

​(금진지단장속단, 방수천리, 명수수백만, 진국호령상벌, 지형이해, 천하막여야.

이차여천하, 천하가겸이유야.  신매사망견대왕, 언소이즉저파천하지종, 거조망한, 신형、위,

친제、연, 이성패왕지명, 조사린제후지도.대왕시청기설, 일거이천하지종불파, 조불거, 한불망,

형、위불신, 제、연불친, 패왕지명불성, 사린제후불조, 대왕참신이순어국, 이주위모불충자. 」

 

[지금 진나라의 땅은 속단단장(長)하면 사방 수천 리에 달하고 뛰어난 군사만도 수백 만입니다.

진나라의 법령과 상벌제도, 지형의 유리함은 천하에 당할 나라가 없습니다.

이로써 천하의 제후들과 다툰다면 능히 천하를 겸병하고도 남을 것입니다.
신이 죽음을 무릅쓰고 대왕을 알현한 것은 일거에 천하의 합종을 깨고, 조나라를 들어낸 뒤 한나라를 멸망시키고,

초나라와 위나라를 신하로 삼고, 제, 연 두 나라와는 친교를 맺어 마침내 패왕의 이름을 성취해 사방의 제후들로부터 조회를 받는 방책을 건의키 위한 것입니다. 대왕이 만일 저의 건의를 좇았는데도, 일거에 천하 제후들의 합종을

깨지 못하거나, 조나라를 함락시키지 못하거나, 한나라가 망하지 않거나, 초나라와 위나라가 신복(臣服)하지 않거나, 제, 연 두 나라와 친교를 맺지 못하거나, 패왕의 이름을 이루지 못하거나, 사방의 제후들이 입조하지 않거나 하면

대왕은 소신의 목을 베어 국내에 돌림으로써 불충한 계책을 낸 자를 징계키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張儀欲假秦兵以救魏. 左成謂甘茂曰:「 子不予之. 魏不反秦兵, 張子不反秦.

魏若反秦兵, 張子得志於魏, 不敢反於秦矣. 張子不去秦, 張子必高子. 」

司馬錯與張儀爭論於秦惠王前.  司馬錯欲伐蜀,張儀曰:「 不如伐韓.」 王曰:「請聞其說. 」
(장의욕가진병이구위. 좌성위감무왈 : 「 자불여지. 위불반진병, 장자불반진.

위약반진병, 장자득지어위, 불감반어진의. 장자불거진, 장자필고자. 」
(사마조여장의쟁론어진혜왕전. 사마조욕벌촉, 장의왈 : 「 불여벌한. 」 왕왈 : 「 청문기설. 」) 

 

[장의(張儀)가 진나라 군사를 빌려 위나라를 구해 주려 하자, 진나라 대신 좌성(左成)이 장군 감무(甘茂)에게

말하기를 : “ 그대는 장의의 요청에 동의하도록 하십시오. 만일 진나라 군사의 손실이 커 위나라가 진나라 군사를

돌려보내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장의는 죄를 얻을까 두려운 나머지 감히 진나라로 돌아오지 못할 것입니다.

또 설령 위나라가 진나라 군사를 돌려보내게 될지라도 장의는 이미 위나라에서 득지(得志)한 만큼 진나라로

돌아오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장의가 진나라를 떠나지 않는 한 그의 지위는 필시 그대 위에 있을 것입니다.”하였다.

주신정왕 5년(기원전 316), 진나라 대신 사마조(司馬錯)이 장의와 진혜문왕(秦惠文王) 앞에서 논쟁을 벌였다.

사마조가 촉(蜀)을 치자고 주장하자, 장의가 반대하며 말하기를 : “한나라를 치느니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진혜왕이 묻기를 : “청컨대 그 이유를 말해주기 바라오.”라고 하자.]

 

對曰:「 親魏善楚,下兵三川,塞轘轅、緱氏之口,當屯留之道,魏絕南陽,楚臨南鄭,

秦攻新城、宜陽,以臨二周之郊,誅周主之罪,侵楚、魏之地. 周自知不救, 九鼎寶器必出.

據九鼎, 安圖籍, 挾天子以令天下, 天下莫敢不聽, 此王業也. 今夫蜀, 西辟之國, 而戎狄之長也,

弊兵勞眾不足以成名, 得其地不足以為利.  臣聞:『 爭名者於朝, 爭利者於市. 』

今三川、周室, 天下之市朝也. 而翁不爭焉, 顧爭於戎狄, 去王業遠矣. 」
(대왈 : 「 친위선초, 하병삼천, 새환원、구지지구, 당둔류지도, 위절남양, 초임남정,

진공신성、의양, 이임이주지교, 주주주지죄, 침초、위지지. 주자지불구, 구정보기필출.

거구정, 안도적, 협천자이령천하, 천하막감불청, 차왕업야. 금부촉, 서피지국, 이융적지장야,

폐병로중부족이성명, 득기지부족이위리. 신문 : 『 쟁명자오조, 쟁리자어시. 』

금삼천、주실, 천하지시조야. 이옹불쟁언, 고쟁어융적, 거왕업의.」)

 

[그러자 장의가 대답하기를 : “ 우선 위, 초 두 나라와 친선하여 한나라의 삼천(三川)으로 군사를 보내

환원산(轘轅山: 하남성 언사현), 구씨산(緱氏山: 하남성 언사현)에 있는 험도(險道)의 입구를 봉쇄합니다.

이어 둔류(屯留: 산서성 둔류현)에서 양장(羊腸)으로 나가는 길을 차단해 위나라가 남양으로 진출하는 길을 끊은 뒤 초나라가 한나라의 남정(南鄭: 하남성 신정현)에 임하면 진나라는 신성(新城: 하남성 낙양시)과

의양(宜陽: 新城과 연접한 지역)을 칩니다. 그리고는 양주의 교외까지 진출해 양주군(兩周君)의 죄를 문책한 뒤

초, 위 두 나라가 점령했던 한나라의 땅을 치면 주나라도 어쩔 도리가 없음을 깨닫고 구정과 보물을 필시 내놓고

말 것입니다. 구정을 손에 넣은 후 지도와 호적에 의거해 협천자영천하(挾天子令天下: 천자를 끼고 천하를 호령함)

하면 천하의 제후들이 감히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왕업입니다.
그런데 지금 촉은 서쪽 구석의 나라로 융적(戎狄)의 두목 노릇을 하고 있는데 불과할 뿐입니다.

그런 나라를 치기 위해 군사를 피폐시키고 백성들을 수고롭게 한들 패왕의 명성을 얻을 수 없습니다.

나아가 그 땅을 취한들 진나라에 전혀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신이 듣건대 ‘명성을 다투는 자는 조정으로, 이익을 다투는 자는 시장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지금 삼천(三川)과 주왕실은 바로 천하의 시조(市朝: 시장과 조정)입니다.  그런데 이를 취할 생각을 하지 않고

한낱 융적과 다툴 생각을 하니 이는 왕업과 너무 동떨어진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司馬錯曰:「 不然, 臣聞之, 欲富國者, 務廣其地;欲強兵者, 務富其民;欲王者, 務博其德.

三資者備, 而王隨之矣. 今王之地小民貧, 故臣願從事於易. 夫蜀, 西辟之國也, 而戎狄之長,

而有桀、紂之亂.  以秦攻之, 譬如使豺狼逐群羊也. 取其地, 足以廣國也;得其財, 足以富民;

繕兵不傷眾, 而彼以服矣. 故拔一國, 而天下不以為暴;利盡西海, 諸侯不以為貪.

是我一舉而名實兩附, 而又有禁暴正亂之名, 今攻韓劫天子, 劫天子, 惡名也, 而未必利也,

又有不義之名, 而攻天下之所不欲危! 臣請謁其故:周, 天下之宗室也;齊, 韓、周之與國也.

周自知失九鼎, 韓自知亡三川, 則必將二所並力合謀, 以因於齊、趙, 而求解乎楚、魏.

以鼎與楚, 以地與魏, 王不能禁. 此臣所謂危, 不如伐蜀之完也. 」
(사마조왈 : 「 불연, 신문지, 욕부국자, 무광기지 ; 욕강병자, 무부기민 ; 욕왕자, 무박기덕. 

삼자자비, 이왕수지의. 금왕지지소민빈, 고신원종사어이. 부촉, 서피지국야, 이융적지장, 이유걸、주지난.

이진공지, 비여사시랑축군양야. 취기지, 족이광국야 ; 득기재, 족이부민 ; 선병불상중, 이피이복의.
고발일국, 이천하불이위폭 ; 이진서해, 제후불이위탐. 시어일거이명실양부, 이우유금폭정란지명,

금공한겁천자, 겁천자, 악명야, 이미필리야, 우유불의지명, 이공천하지소불욕위 !

신청알기고 : 주, 천하지종실야 ; 제, 한、주지여국야. 주자지실구정, 한자지망삼천, 즉필장이소병력합모,

이인어제、조, 이구해호초、위. 이정여초, 이지여위, 왕불능금. 차신소위위, 불여벌촉지완야. 」)

 

[사마조가 반박하며 말하기를 :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듣건대 ‘나라를 부유케 하려면 그 땅을 넓히는데 힘쓰고 ;  

군사를 강하게 하려면 백성을 부유케 만드는데 힘쓰고, 왕업을 이루려면 그 덕을 넓히는 데 힘써야 한다.

이 3 가지를 갖추면 왕업은 저절로 성취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대왕의 땅은 좁고 백성은 가난합니다.

이에 저는 먼저 쉬운 일부터 추진키를 권합니다. 무릇 촉은 서쪽 구석의 약소국이고, 융적의 두목에 불과한 데다가

현재 걸주(桀紂)와 같이 무도한 자들이 어지러운 정사를 펼치고 있습니다. 우리 진나라가 이를 공격하면 마치

시랑(豺狼)을 몰아 양떼를 쫓는 것과 같습니다. 그 땅을 얻으면 국토가 넓어지는 것은 물론 그곳의 재물로 백성을

부유하게 하면서 병사들을 훈련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백성들이 크게 피해를 입지 않고도 촉을 쉽게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또한 작은 나라 하나를 취했다고 하여 천하가 우리를 포악하다고 여기지도 않을 것이며,

서해(西海: 巴蜀)의 이익을 우리가 취했다고 하여 제후들이 우리를 탐욕하다고 여기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한번의 거동으로 명실(名實)을 동시에 취할 수 있으니 금포정란(禁暴正亂: 포악을 금하고 난을 평정함)했다는 명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를 치는 것은 곧 겁천자(劫天子: 천자를 위협함)하는 셈이 됩니다.

겁천자는 악명만 얻게 할 뿐 별다른 실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불의(不義)의 악명만 얻게 되니

천하가 공격하기를 꺼리는 곳을 우리가 먼저 치는 것은 매우 위험합니다.
신이 그 이유를 보다 자세히 설명하자면 주나라는 원래 천하의 종실이고 제나라는 한나라의 동맹국입니다.

만일 주나라가 스스로 구정을 지키지 못할 것을 알고, 한나라가 삼천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두 나라는 장차 틀림없이 병력합모(幷力合謀: 힘을 합쳐 공모함)할 것입니다.

이에 두 나라는 제, 조 두 나라를 통해 위, 초 두 나라에게 위를 풀어달라고 청할 것입니다.

이에 구정은 초나라, 그 땅은 위나라에게 주어버릴 것이 확실합니다.

그리 되면 대왕은 이를 막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 신이 위험하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를 지적한 것입니다.

그러니 촉을 쳐서 만전을 기하느니만 못합니다.”라고 하였다.]

  

惠王曰:「 善! 寡人聽子. 」 卒起兵伐蜀, 十月取之. 遂定蜀, 蜀主更號爲侯, 而使陳莊相蜀.

張儀之殘樗裡疾也, 重而使之楚. 因令楚王為之請相於秦.
(혜왕왈 : 「 선! 과인청자. 」 졸기병벌촉, 십월취지. 수정촉, 촉주경호위후, 이사진장상촉. 

장의지잔저리질야, 중이사지초. 인령초왕위지청상어진. )

 

[진혜왕이 말하기를 : “ 옳은 말이오. 과인은 그대의 말을 따르도록 하겠소.”라고 하였다.
이에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촉을 정벌하였다. 10 달 만에 촉을 취하여 촉주(蜀主)의 작위를 후(侯)로 격하시킨 뒤

장수 진장(陳莊)을 촉의 상국으로 보내 다스리도록 했다. 촉이 진나라에 귀속되자 진나라는 더욱 부강해져

천하의 제후들을 가벼이 보아도 좋을 지경이 되었다.

장의가 저리질을 해칠 생각으로 먼저 저리질의 지위를 크게 높여 초나라에 사자로 보낸 뒤 곧 초회왕으로 하여금

저리질을 진나라의 상국으로 삼길 바라는 청을 넣도록 했다.]

 

張子謂秦王曰:「 重樗裡疾而使之者, 將以為國交也. 今身在楚, 楚王因為請相於秦.

臣聞其言曰:『 王欲窮儀於秦乎? 臣請助王. 』

楚王以為然, 故為請相也. 今王誠聽之, 彼必以國事楚王. 」 秦王大怒, 樗裡疾出走.
(장자위진왕왈 : 「 중저리질이사지자, 장이위국교야. 금신재초, 초왕인위청상어진.
신문기언왈 : 『 왕욕궁의어진호 ? 신청조왕. 』 초왕이위연, 고위청상야. 금왕성청지, 피필이국사초왕. 」 

진왕대노, 저리질출주. )

 

[그리고는 곧 진혜문왕에게 말하기를 : “ 저리질을 높여 초나라에 사자로 보낸 것은 두 나라의 우호를 다지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초왕은 그가 초나라에 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를 진나라의 상국으로 삼아달라고

청하고 있습니다.  제가 그의 말을 듣고 전하자면 : ‘초왕은 장의가 진나라에서 궁지에 몰리기를 바라십니까.

제가 대왕을 도와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합니다. 이에 초왕은 그의 말을 그럴 듯하게 여겨 그를 진나라의 상국으로 삼아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대왕이 초왕의 말을 따르게 되면 저리질은 틀림없이 진나라를 들어

초왕을 섬기고야 말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진혜문왕이 대노하자, 저리질은 귀국도 못한 채 달아나고 말았다.]

 

張儀欲以漢中與楚, 請秦王曰:「 有漢中, 蠹. 種樹不處者, 人必害之;家有不宜之財, 則傷本.

漢中南邊為楚利, 此國累也. 」

甘茂謂王曰:「 地大者, 國多憂乎! 天下有變, 王割漢中以為和楚, 楚必畔天下而與王. 

王今以漢中與楚, 即天下有變, 王何以市楚也?」
(장의욕이한중여초, 청진왕왈 : 「 유한중, 두. 종수불처자, 인필해지 ; 가유불의지재, 즉상본. 

한중남변위초리, 차국루야. 」
감무위왕왈 : 「 지대자, 국다우호 ! 천하유변, 왕할한중이위화초, 초필반천하이여왕. 

왕금이한중여초, 즉천하유변, 왕하이시초야 ? 」) 

 

[장의가 한중(漢中)을 초나라에 넘겨주고자 하면서, 진혜문왕에게 청하기를 :
“한중을 보유하고 있는 것은 마치 좀을 가지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나무를 제 장소에 심지 않으면

사람들이 손상을 입히고, 집안에 깨끗치 못한 재산이 있으면 인의(仁義)를 손상키 마련입니다.

한중은 남쪽으로 치우쳐 있어 초나라에 이익이 될 수는 있으나 우리 진나라에게는 해가 될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감무가 진왕에게 아뢰기를 : “반드시 지대다우(地大多憂: 땅이 크면 우환 또한 많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천하에 변고가 있을 때 대왕이 한중을 떼어 초나라와 강화하면 초나라는 필시 천하의 제후들을 등지고

대왕 편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미리 한중을 초나라에 줘 버리면 훗날 변고가 있을 때

대왕은 과연 무엇을 갖고 가 초나라와 흥정하려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주난왕 4년(기원전 311)]

 

楚攻魏. 張儀謂秦王曰:「 不如與魏以勁之, 魏戰勝, 復聽於秦, 必入西河之外;

不勝, 魏不能守, 王必取之.」王用儀言, 取皮氏卒萬人, 車百乘, 以與魏.

犀首戰勝威王, 魏兵罷弊, 恐畏秦, 果獻西河之外.
(초공위. 장의위진왕왈 : 「불여여위이경지, 위전승, 복청어진, 필입서하지외 ; 불승, 위불능수, 왕필취지.」

왕용의언, 취피씨졸만인, 거백승, 이여위. 서수전승위왕, 위병파폐, 공외진, 과헌서하지외. ) 

 

[초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자, 장의가 진혜문왕에게 아뢰기를 : “위나라를 도와 병력을 강화시켜주느니만 못합니다. 위나라는 싸움에 이기면 다시 진나라의 명을 받들 것입니다.

그리되면 필시 서하지외(西河之外: 황하 이서 지역으로 섬서성 동북부 일대)가 우리 진나라의 손에 들어 올 것입니다. 만일 위나라가 패해 이 땅을 지켜지 못할 상황이 되면 우리 진나라가 대신 이를 취하면 그뿐입니다.”라고 하자.
진혜문왕이 장의의 말에 따라 위나라 피씨(皮氏: 산서성 하진현) 땅의 군사 1만 명과 병거 1백 승을 취해

위나라를 지원했다. 위나라 장수 서수(犀首)가 이에 힘입어 과연 초위왕(楚威王)을 무찌르기는 했으나

위나라 병사들은 매우 지친 나머지 오히려 진나라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에 결국 서하지외를 진나라에 헌납하게 되었다.] 주현왕 39년(기원전 330)

 

田莘之為陳軫說秦惠王曰:「 臣恐王之若郭君. 夫晉獻公欲伐郭, 而憚舟之僑存.

荀息曰:『 《周書》有言, 美女破舌. 』 乃遺之女樂, 以亂其政. 舟之僑諫而不聽, 遂去.

因而伐郭, 遂破之. 又欲伐虞, 而憚宮之奇存, 荀息曰:『 《周書》有言, 美男破老. 』 乃遺之美男,

教之惡宮之奇. 宮之奇以諫而不聽, 遂亡. 因而伐虞, 遂取之. 今秦自以為王, 能害王者之國者,

楚也. 楚智橫君之善用兵, 用兵與陳軫之智, 故驕張儀以五國. 來必惡是二人. 願王勿聽也. 」
(전신지위진진설진혜왕왈 : 「 신공왕지약곽군. 부진헌공욕벌곽, 이탄주지교존.

순식왈 : 『 《주서》유언, 미녀파설. 』 내유지여악, 이난기정. 주지교간이불청, 수거.

인이벌곽, 수파지. 우욕벌우, 이탄궁지기존, 순식왈 : 『 《주서》유언,미남파노. 』

내유지미남, 교지오궁지기. 궁지기이간이불청, 수망. 인이벌우, 수취지. 금진자이위왕, 능해왕자지국자,

초야. 초지횡군지선용병, 용병여진진지지, 고교장의이오국. 래필오시이인. 원왕물청야. 」)

 

[대신 전신(田莘)이 세객 진진(陳軫)을 변호하기 위해 진혜문왕에게 유세하기를 :
“신은 대왕께서 옛날 곽(郭)나라 군주처럼 되지나 않을까 염려됩니다. 진헌공은 곽나라를 치려고 했으나

곽나라에 대부 주지교(舟智僑)가 있는 것을 꺼렸습니다. 그런데 진나라의 순식(荀息)이 진헌공에게 진언하기를,

‘「주서」에 '미녀파후(美女破后: 미녀는 군주를 해침)' 라고 쓰여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진헌공은 곽나라 왕에게 미녀를 선물로 주어 곽나라의 정치를 문란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지교는 이를 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침내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에 진헌공은 곽나라를 공격해 마침내 멸하고 말았습니다.
또 진헌공은 우(虞)나라도 치려 했으나 우나라에 대부 궁지기(宮之奇)가 있는 것을 꺼렸습니다.

이때 또 순식이 진언키를, ‘「주서」에 ' 미남파로(美男破老: 광대는 대신을 해친다는 뜻으로 미남은 광대를 지칭) '

라고 쓰여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진헌공은 우나라에 광대를 선물로 주어 궁지기에 대한 나쁜 말만 하도록

시켰습니다. 궁지기는 우나라 군주에게 간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마침내 떠나고 말았습니다.

이에 진헌공은 우나라를 공격해 마침내 이를 취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스스로 천하의 제왕을 자처하고 있으나 대왕의 나라를 해칠 수 있는 나라로는 초나라가 있습니다.

초나라는 진나라 장수 횡문군(橫門君)의 용병과 진진(陳軫)의 계책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나라는 장의에게 5국(五國: 3진과 연, 초)의 재상을 겸임시키려고 총애하고 있는 것입니다.

장의가 진나라로 돌아오면 틀림없이 횡문군과 진진을 헐뜯을 것입니다.

대왕은 절대 그의 말을 들어서는 안됩니다.”라고 하였다.] 주신정왕 3년(기원전 318) 

 

張儀果來辭, 因言軫也, 王怒而不聽. 張儀又惡陳軫於秦王, 曰:「 軫馳楚、秦之間,

今楚不加善秦而善軫, 然則是軫自為而不為國也. 小軫欲去秦而之楚, 王何不聽乎?」

王謂陳軫曰:「 吾聞子欲去秦而之楚, 信乎?」 陳軫曰:「 然. 」 王曰:「 儀之言果信也. 」
(장의과래사, 인언진야, 왕노이불청. 장의우오진진어진왕, 왈 :「 진치초、진지간,

금초불가선진이선진, 연즉시진자위이불위국야. 소진욕거진이지초, 왕하불청호 ? 」

왕위진진왈 :「 오문자욕거진이지초, 신호 ? 」 진진왈 : 「 연. 」 왕왈 : 「 의지언과신야. 」)

 

[장의는 과연 진나라로 돌아와 시종 진진에 대한 악평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진혜문왕은 화를 내면서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장의가 또 진혜문왕 앞에서 진진을 헐뜯으며 말하기를 : “진진이 지금 진, 초 두 나라 사이를 분주히 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나라는 진나라에 대해서는 조금도 잘 대해 주지 않으면서 진진에 대해서는 후대하고 있습니다.

이는 진진이 분주한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 진나라를 위한 것은 아닙니다.

진진은 진나라를 버리고 초나라로 가려 합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이를 깊이 살피지 않는 것입니까.”라고 하였다.
이에 진혜문왕이 진진에게 묻기를 : “그대가 진나라를 버리고 초나라로 가려 한다는 말이 있는게 그게 사실이오.”하자.
진진이 대답하기를 : “그렇습니다.”라고 하였다.
진혜문왕 말하기를 : “장의가 말한 것이 과연 사실이었군.”이라고 하였다.]

 

曰:「 非獨儀知之也, 行道之人皆知之曰 :『 孝己愛其親, 天下欲以為子;

子胥忠乎其君, 天下欲以為臣. 賣僕妾售乎閭巷者, 良僕妾也;出婦嫁鄉曲者, 良婦也. 』

吾不忠於君, 楚亦何以軫為忠乎 ?  忠且見棄, 吾不之楚, 何適乎?」

秦王曰:「 善. 」 乃必之也. 陳軫去楚之秦.
(왈 : 「 비독의지지야, 행도지인개지지왈 : 『 효기애기친, 천하욕이위자 ; 자서충호기군, 천하욕이위신. 

매복첩수호려항자, 량복첩야 ; 출부가향곡자, 량부야. 』 오불충어군, 초역하이진위충호 ?

충차견기, 오불지초, 하족호 ? 」 진왕왈 : 「 선. 」 내필지야. 진진거초지진. ) 

 

[그러자 진진이 아뢰기를 : “ 이는 장의만 아는게 아니라 길 가는 사람조차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라고 하며 

말하기를 ' 은나라 고종(高宗)의 아들 효기(孝己)는 대단한 효자여서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효기와 같은 사람을

아들로 삼고 싶어 했습니다.

오자서(伍子胥)는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자 천하의 군주가 모두 오자서와 같은 사람을 신하로 삼고 싶어 했습니다.

머슴과 여종을 팔 때 그 마을을 벗어나기도 전에 다시 사줄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선량하다는 증거입니다.

쫓겨온 여인이 같은 마을에서 재혼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여인이 선량하다는 증거입니다.'

만일 신이 대왕에게 충성스럽지 못했다면 초나라가 역시 저를 신하로 여기겠습니까.?

신은 충성을 다했는데도 오히려 버림을 받게 되었으니 초나라로 가지 않고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하자.
진혜문왕 말하기를 : “옳은 말이오.”라고 하며, 그리고는 이내 진진을 머물게 했다.

진진이 초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돌아왔다.]

 

張儀謂秦王曰:「 陳軫為王臣, 常以國情輸楚. 儀不能與從事, 願王逐之. 即復之楚, 願王殺之.」

王曰:「 軫安敢之楚也. 」 王召陳軫告之曰:「 吾能聽子言, 子欲何之? 請為子車約. 」

對曰:「 臣願之楚. 」 王曰:「 儀以子為之楚, 吾又自知子之楚. 子非楚, 且安之也!」

(장의위진왕왈 : 「 진진위왕신, 상이국정수초. 의불능여종사, 원왕축지. 즉복지초, 원왕살지. 」

왕왈 : 「 진안감지초야. 」왕소진진고지왈 : 「 오능청자언, 자욕하지 ? 청위자거약. 」 대왈 : 「 신원지초. 」 

왕왈 : 「 의이자위지초, 오우자지자지초. 자비초, 차안지야 ! 」) 

 

[이에 장의가 진혜문왕에게 아뢰기를 : “진진은 대왕의 신하인데도 늘 진나라 사정을 초나라에 고해 바치고 있습니다.

신은 그와 함께 일할 수 없으니 대왕은 그를 쫓아내 주시기 바랍니다.

만일 그가 다시 초나라로 가려 한다면 죽여 버리기 바랍니다.”라고 하자.
진혜문왕이 말하기를 : “ 진진이 어떻게 감히 초나라로 가려 하겠소.”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진진을 불러 묻기를 : “과인이 그대의 말을 들어주겠소. 그대는 어디로 가고 싶소?

내가 그대를 위해 수레를 준비해 주겠소.”라고 하자.
진진이 대답하기를 : “ 신은 초나라로 가고자 합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진혜문왕이 말하기를 : “장의는 그대가 초나라로 갈 것이라고 했소.

과인 역시 그대가 초나라로 가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소. 그대가 초나라 이외에 과연 어디로 갈 수 있겠소!”라고 하자.]

 

軫曰:「 臣出, 必故之楚, 以順王與儀之策, 而明臣之楚與不也. 楚人有兩妻者, 人挑其者, 詈之;

挑其少者, 少者許之. 居無幾何, 有兩妻者死. 客謂挑者曰:『 汝取長者乎? 少者乎?』

『 取長者. 』 客曰:『 長者詈汝, 少者和汝, 汝何為取長者?』

曰:『 居彼人之所, 則欲其許我也. 今為我妻, 則欲其為我詈人也. 』今楚王明主也, 而昭陽賢相也.

軫為人臣, 而常以國輸楚王, 王必不留臣, 昭陽將不與臣從事矣. 以此明臣之楚與不. 」

(진왈 : 「 신출, 필고지초, 이순왕여의지책, 이명신지초여불야. 초인유량처자, 인도기자, 이지 ;

도기소자, 소자허지. 거무기하, 유량처자사. 객위도자왈 : 『 여취장자호 ? 소자호 ? 』 『 취장자. 』

객왈 : 『 장자이여, 소자화여, 여화위취장자 ? 』 왈 : 『 거피인지소, 즉욕기허아야.

금위아처, 즉욕기위아이인야. 』 금초왕명주야, 이소양현상야. 진위인신, 이상이국수초왕,

왕필불류신, 소양장불여신종사의. 이차명신지초여불. 」)

 

[그러자 진진이 대답하기를 : “신은 본래 진나라를 떠나면 반드시 초나라로 가려 했습니다.

이는 대왕과 장의의 술책에 순응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신이 과연 초나라와 한통속이었는지를 증명해 보이기

위해서라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초나라에 어떤 사람이 두 부인을 거느리며 살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사람이 큰 부인을 유혹하다가 면박만 듣고 말았습니다. 다시 작은 부인을 유혹하자 그녀가 응해 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그녀들의 남편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때 한 세객이 부인들을 유혹한 사람에게 말하기를,

‘당신은 두 부인 중 누구를 아내로 삼았으면 좋겠소’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가 말하기를, ‘큰 부인이 좋소’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세객이 묻기를, ‘큰 부인은 그대에게 면박만 주었고 작은 부인은 그대를 받아들이지 않았소.

런데도 어찌하여 큰 부인이 좋다고 하는 것이오’라고 했습니다. 이에 그 자가 대답하기를, ‘남의 아내라면

내게 응해 주는 것이 좋소. 그러나 내 아내가 된다면 나를 위해 유혹하는 자를 꾸짖는 여인이 좋소’라고 했습니다.

지금 초왕(楚王: 초회왕)은 명주(明主)이고 영윤 소양(昭陽)은 뛰어난 재상입니다.

신이 일국의 신하된 몸으로 다른 나라에 머물며 항상 자국의 사정을 밀고했다면

아마도 초왕 역시 신을 초나라에 머물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소양 또한 신과 함께 일하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신이 다시 초나라로 갈 수 있는지 여부가 충분히 증명되었을 것으로 봅니다.”라고 하였다.] 

 

軫出長官儀入, 問王曰:「 陳軫果安之?」 

王曰:「 夫軫天下之辯士也, 孰視寡人曰:『 軫必之楚. 』 寡人遂無奈何也.

寡人因問曰:『 子必之楚也, 則儀之言果信矣!』 軫曰:『 非獨儀之言也, 行道之人皆知之.

昔者子胥忠其君, 天下皆欲以為臣;孝己愛其親, 天下皆欲以為子.

故賣僕妾不出里巷而取者, 良僕妾也;出婦嫁於鄉里者, 善婦也.

 臣不忠於王, 楚何以軫為 ? 忠尚見棄, 軫不之楚, 而何之乎?』 王以為然, 遂善待之. 」
(진출장관의입, 문왕왈 : 「 진진과안지 ? 」) 

왕왈 : 「 부진천하지변사야, 숙시과인왈 : 『 진필지초. 』 과인수무내하야.
과인인문왈 :『 자필지초야, 즉의지언과신의 ! 』 진왈 :『 비독의지언야, 행도지인개지지. 석자자서충기군,

천하개욕이위신 ; 효기애기친, 천하개욕이위자. 고매복첩불출리항이취자, 량복처야 ; 출부가어향리자,

선부야. 신불충어왕, 초하이진위 ? 충상견기, 진불지초, 이하지호 ? 』 왕이위연, 수선대지. 」)

 

[진진이 나가자 뒤따라 장의가 들어와 진혜문왕에게 묻기를 : “진진이 과연 어디로 간다고 했습니까.”라고 하자.
이에 진혜문왕이 대답하기를 : " 진진은 천하의 변사(辯士)요. 그는 과인을 응시하다가 말하기를,

‘저는 반드시 초나라로 가겠습니다.’라고 했소. 과인은 마침내 어찌할 길이 없어 그에게 묻기를,

‘그대가 정말 초나라로 가면 장의의 말이 사실이 되오.’라고 했소.

그러자 그가 응답하기를, ‘이는 장의만이 아니라 길 가는 사람까지 알고 있는 일입니다.

옛날 오자서가 군주에게 충성을 다하자 천하의 제후들이 모두 그같은 자를 신하로 삼고 싶어 했고,

효기가 부모에게 효도하자 천하의 어버이들이 모두 그같은 자를 자식으로 두고 싶어 했습니다.

복첩(僕妾)이 여항(閭巷)을 벗어나기 전에 살 사람이 나타나면 선량하다는 증거이고,

출부(出婦: 소박맞은 여인)가 향리(鄕里)에서 재혼하면 선량하다는 증거입니다.

제가 대왕에게 불충했다면 초왕인들 어찌 저를 신하로 삼으려 하겠습니까.

신은 충상견기(忠尙見棄: 충성을 다하고 오히려 버림을 받음)를 당하니 초나라로 가지 않고

과연 어디로 가겠습니까?'라고 했소.”라고 하였다.  진혜문왕은 진진의 말을 옳게 여겨 그를 후대했다.]

 


     秦策 二 .

 

齊阻力楚攻秦, 取曲沃. 其後, 秦欲伐齊, 齊、楚之交善, 惠王患之,

謂張儀曰:「 吾欲伐齊, 齊楚方歡, 子為寡人慮之, 奈何?」

張儀曰:「 王其為臣約車並幣, 臣請試之. 」
(제조력초공진, 취곡옥. 기후, 진욕벌제, 제、초지교선, 혜왕환지,

위장의왈 : 「 오욕벌제, 제초방환, 자위과인려지, 내하 ? 」

장의왈 : 「 왕기위신약거병폐, 신청시지. 」

 

[제나라가 초나라를 도와 진나라를 공격하여 곡옥의 땅을 빼앗아 버렸다.

그 후 진혜문왕은 제나라를 정벌하고 싶었지만 제나라와 연합한 초나라가 걱정이었다.

진혜문왕은 장의에게 묻기를 : " 내가 제나라를 정벌하고 싶지만 제, 초 두나라가 서로 가까운 관계이니

그대는 과인을 위해 계책을 낸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라고 하자.

장의가 대답하기를 : " 대왕께서는 저에게 수레에 재물을 가득 실어 주십시오.

제가 청컨대 초나라에 가서 제, 초 두나라 사이를 시험해 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張儀南見楚王曰:「 弊邑之王所說甚者, 無大大王;唯儀之所甚願為臣者, 亦無大大王.

弊邑之王所甚憎者, 亦無先齊王. 唯儀甚憎者, 亦無大齊王. 今齊王之罪, 其於弊邑之王臣厚,

弊邑欲伐之, 而大國與之歡, 是以弊邑之王不得事令, 而儀不得為臣也.

大王苟能閉關絕齊, 臣請使秦王獻商於之地, 方六百里.  若此, 齊必弱, 齊弱則必為王役矣.

則是北弱齊, 西德於秦, 而私商於之地以為利也, 則此一計而三利俱至. 」
(장의남견초왕왈 : 「 폐읍지왕소설심자, 무대대왕 ; 유의지소심원위신자, 역무대대왕.

폐읍지왕소심증자, 역무선제왕. 유의심증자, 역무대제왕. 금제왕지제, 기어폐읍지왕신후,

폐읍욕벌지, 이대국여지환, 시이폐읍지왕부득사령, 이의부득위신야.

대왕구능폐관절제, 신청사진왕헌상어지지, 방육백리. 약차, 제필약, 제약즉필위왕역의.

 즉시북약제, 서덕어진, 이사상어지지이위리야, 즉차일계이삼리구지. 」)

 

[장의는 남쪽 초나라로 가서 초왕을 알현하고 아뢰기를 : " 우리 진나라의 왕이 가장 훌륭하게 생각하는 인물은

대왕밖에 없으며 ; 이 장의도 오로지 모시고 싶은 군주는 역시 대왕밖에 없습니다.

또한 진나라 왕은 예전부터 제나라 왕을 가장 싫어하였으며 저 또한 제나라 왕을 가장 싫어 합니다.   

지금 제나라 왕의 죄는 우리의 왕과 신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었기에 우리 진나라는 제나라를 정벌하려 하는데

대왕의 초나라와 제나라의 관계가 아주 긴밀하여 진왕께서 대왕을 섬길 수 없으며

신 또한 대왕의 신하가 될 수 없습니다. 만약에 대왕께서 제나라와 국경을 봉쇄하고 외교 관계를 단절해 주신다면

신은 진왕에게 상(商)과 오(於)의 땅 6백 리를 대왕께 바치도록 청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제나라는 틀림없이 약해질 것이고, 제나라가 약해지면 그들은 대왕을 위해 어떤 일이든 시키는 대로

행할 것입니다. 이로써 북쪽으로 제나라가 약해지고, 서쪽으로는 진나라에 은덕을 베풀며,

사사롭게 상(商)과 오(於)의 땅을 취한다면 이야말로 한번의 계획으로 세가지 이득을 챙기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楚王大說, 宣言之於朝廷, 曰:「 不谷得商於之田, 方六百里.」群臣聞見者畢賀, 陳軫後見, 獨不賀.

楚王曰 :「不谷不煩一兵不傷一人, 而得商於之地六百里, 寡人自以為智矣!

諸士大夫皆賀, 子獨不賀, 何也?」
(초왕대설, 선언지어조정, 왈 : 「 불곡득상어지전, 방육백리. 」 군신문견자필하, 진진후견, 독불하.

초왕왈 ;「불곡불번일병불상일인, 이득상어지지육백리, 과인자이위지의 ! 제사대부개하, 자독불하,하야?」)

 

[초나라 왕은 크게 기뻐하며 조정에서 선언하며 말하기를 : " 내가 상과 오의 땅 6백 리를 얻었노라."라고 하였다.

군신들은 모두 그 말을 듣고 축하하였지만 나중에 들어 온 진진만은 아무런 축하의 말을 하지 않았다.

초왕이 묻기를 : " 내가 단 한명의 군사들도 번거롭게 하지 않고 한 사람도 다치지 아니하면서 상과 오의 땅

6백 리를 얻게 되었으니 과인 스스로도 지혜로운 일이란 생각이 드는구려! 그래서 모든 사대부들이 축하하는 마당에

오직 그대만이 축하의 말 한마디 없는데 그 까닭이 무엇이오?"라고 하자.]

  

陳軫對曰:「 臣見商於之地不可得, 而患必至也, 故不敢妄賀. 」 王曰:「 何也?」

對曰:「 夫秦所以重王者, 以王有齊也. 今地未可得而齊先絕, 是楚孤也, 秦又何重孤國?

且先出地絕齊, 秦計必弗為也. 先絕齊後責地, 且必受欺於張儀. 受欺於張儀, 王必惋之.

是西生秦患, 北絕齊交, 則兩國兵必至矣. 」
(진진대왈 : 「 신견상어지지불가득, 이환필지야, 고불감망하. 」 왕왈 : 「 하야?」
(대왈 : 「 부진소이중왕자, 이왕유제야. 금지미가득이제선절, 시초고야, 진우하중고국 ? 

차선출지절제, 진계필불위야. 선절제후책지, 차필수기어장의. 수기어장의, 왕필완지.

시서생진환, 북절제교, 즉양국병필지의.」)

 

[진진이 대답하기를 : " 신이 보기에 상과 오의 땅은 초나라가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반드시 우환만 찾아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히 망령된 축하를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초왕이 묻기를 : " 그 말이 무슨 뜻이오."라고 하자.

진진이 대답하기를 : " 대체로 진왕이 대왕을 조심스럽게 여기는 것은 대왕께서 제나라와 가깝게 지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상과 오의 땅도 얻지 못한 상태에서 먼저 제나라와 외교 관계를 단절해 버린다면

우리 초나라만 고립될 것인데 진나라가 무엇 때문에 고립된 우리 초나라를 소중하게 여기겠습니까?

그러니 먼저 상과 오의 땅을 내 놓으라 하시고 그 땅을 취하신 다음에 제나라와 단교를 하게 되면

진나라의 계획은 반드시 수포로 돌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제나라와 먼저 단교를 하고 나서 나중에 땅을 요구한다면

이는 반드시 장의의 속임수에 당하는 꼴이 될 것입니다. 장의의 속임수에 당하게 되면

대왕께서는 틀림없이 장의를 원망할 것이며 그로 인해 서쪽의 진나라와는 원수 사이가 되고

북쪽의 제나라도 단교의 원한으로 두 나라가 모두 우리의 적이 되어 반드시 쳐들어 올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楚王不聽, 曰:「 吾事善矣! 子其弭口無言, 以待吾事. 」 楚王使人絕齊, 使者未來, 又重絕之.

張儀反, 秦使人使齊, 齊、秦之交陰合. 楚因使一將軍受地於秦.
(초왕불청, 왈 : 「 오사선의 ! 자기미구무언, 이대오사. 」 초왕사인절제, 사자미래, 우중절지.

장의반, 진사인사제, 제、진지교음합. 초인사일장군수지어진. ) 

 

[초왕은 진진의 말을 듣지 않고 말하기를 : " 내가 하는 일이 옳소! 그대는 아무 말 하지 말고 내 뜻에 따르시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지켜 보시오."라고 하였다. 이에 초왕은 사신을 제나라에 보내 단교를 알렸고,

그것으로도 부족하여 사신이 돌아 오기도 전에 재차 사신을 보내 단교를 확인하였다.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와 비밀리에 사신을 제나라로 보내 제나라를 진나라 편으로 끌어 들여

은밀히 외교 관계를 맺었다. 이때 초왕은 장군 한 사람을 진나라로 보내 상과 오의 땅을 받아 오도록 하였다.]

 

張儀至, 稱病不朝. 楚王曰:「 張子以寡人不絕齊乎?」 乃使勇士往詈齊王.

張儀知楚絕齊也, 乃出見使者曰:「 從某至某, 廣從六里. 」

使者曰:「 臣聞六百里, 不聞六里. 」 儀曰:「 儀固以小人, 安得六百里?」 
(장의지, 칭병불조. 초왕왈 : 「 장자이과인불절제호 ? 」 내사용사왕리제왕.

장의지초절제야, 내출견사자왈 : 「 종모지모, 광종육리. 」

사자왈 : 「 신문육백리, 불문육리. 」 의왈 : 「 의고이소인, 안득육백리 ? 」)

 

[그러자 장의는 진나라에 도착하여 병을 핑계로 조회에도 나가지 않았다.

초조해진 초왕이 말하기를 : " 장의는 내가 아직 제나라와 단교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가?"라고 하며.

이내 용사들을 제나라로 보내 제나라 왕을 꾸짖기 까지 하였다.

장의는 초나라와 제나라가 완전히 단교가 이루어진 사실을 알고 나서 마침내 조정에 나타나 초나라 사신을 불러

말하기를 : " 아무 곳에서부터 아무 곳까지 가로 세로 6리의 땅을 가져 가시오."라고 하자.

초나라 사신이 말하기를 : " 제가 듣기로 6백 리란 말은 들었어도 6리 라는 말은 들어 보지 못하였소."라고 하였다.

그러자 장의가 말하기를 : " 나는 고루한 소인으로서 무슨 땅이 있어 6백 리나 줄 수 있겠소?"라고 하였다.]

 

使者反報楚王, 楚王大怒, 欲興師伐秦. 陳軫曰:「 臣可以言乎?」 王曰:「 可矣. 」

軫曰 :「 伐秦非計也, 王不如因而賂之一名都, 與之伐齊, 是我亡於秦而取償於齊也.

楚國不尚全事.  王今已絕齊, 而責欺於秦, 是吾合齊、秦之交也, 必大傷. 」

楚王不聽, 遂舉兵伐秦. 秦與齊合, 韓氏從之. 楚兵大敗於杜陵.

故楚之土壤士民非削弱, 僅以救亡者, 計失於陳軫, 過聽於張儀. 楚絕齊,齊舉兵伐楚.
(사자반보초왕, 초왕대노, 욕흥사벌진. 진진왈 : 「 신가이언호 ? 」 왕왈 : 「 가의. 」 ) 

진왈 : 「 벌진비계야, 왕불여인이뢰지일명도, 여지벌제, 시아망어진이취상어제야. 초국불상전사.

왕금이절제, 이책기어진, 시오합제、진지교야, 고필대상. 」
초왕불청, 수거병벌진. 진여제합, 한씨종지. 초병대패어두능.

고초지토양사민비삭약, 근이구망자, 계실어진진, 과청어장의. 초절제, 제거병벌초. )

 

[사신은 초나라로 돌아와 이같은 사실을 초회왕에게 보고하자, 초회왕은 크게 노하여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이때 진진이 만류하며 묻기를 : " 신이 말씀 좀 아뢰어도 되겠습니까?"라고 하자.

초회왕이 대답하기를 : " 해 보시오."라고 하였다.

진진이 아뢰기를 : " 진나라를 정벌하려는 계획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나라에 도읍 하나를 뇌물로 주고

진나라와 연합하여 제나라를 정벌하느니만 못합니다. 이는 진나라에서 잃은 것을 제나라에서 보상받는 것으로써

우리는 아무런 손실없이 온전히 나라를 보존하는 것입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제나라와 단교된 상태에서

진나라에게 속임을 당한 책임을 묻게 된다면 이는 우리가 진나라와 제나라를 사이를 더욱 연합하게 만들어 주는

모양새가 되어 오히려 우리가 크게 다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초회왕은 듣지 않고 마침내 군대를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자. 진나라는 제나라와 연합하였고

게다가 한나라까지 가세하였다. 결국 초나라 군대는 두릉에서 크게 패하였다.

그리하여 초나라는 국토와 백성들이 깍여 나가 국력이 쇠약해져 간신히 멸망만 면할 수 있게 된 것은

초왕이 진진의 충간은 듣지 않고 장의의 말만 과신해서 들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초나라가 제나라와의 단교를 선언하자, 제나라는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를 정벌하였다.]

 

陳軫謂楚王曰:「 王不如以地東解於齊, 西講於秦. 」  楚王使陳軫之秦,

秦王謂軫曰:「 子秦人也, 寡人與子故也, 寡人不佞, 不能親國事也, 故子棄寡人事楚王.

今齊、楚相伐, 或謂救之便, 或謂救之不便, 子獨不可以忠為子主計, 以其餘為寡人乎?」
(진진위초왕왈 : 「 왕불여이지동해어제, 서강어진. 」

초왕사진진지진, 진왕위진왈 : 「 자진인야, 과인여자고야, 과인불녕, 불능친국사야, 고자기과인사초왕.
금제、초상벌, 혹위구지편, 혹위구지불편, 자독불가이충위자주계, 이기여위과인호 ? 」) 

 

[진진이 초왕을 위해 아뢰기를 : " 대왕께서는 동쪽으로 제나라에게 땅을 떼어 주고,

서쪽으로는 진나라와 강화를 서두르니만 못합니다."라고 하자.

초왕은 진진을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자, 진혜문왕이 진진에게 묻기를 : 그대는 원래 진나라 사람으로

나와는 친구 사이나 마찬가지요, 그러나 내가 총명하지 못해 나라의 큰 일을 그대에게 자세히 묻지 못하였소

그래서 그대는 과인을 버리고 초왕을 섬기러 간 것입니다. 지금 제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전쟁 중인 모양인데

어떤 사람은 도와 주어야 한다고 하고 , 어떤 사람은 도와 주어도 좋을 것이 없다고 하오,

그대는 오직 초왕을 위해 충성을 하는 일 외에 과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이 있으면 들려 줄 수 있겠소?"하자.]

 

陳軫曰:「王獨不聞吳人之遊楚者乎? 楚王甚愛之病, 故使人問之, 曰:『 誠病乎? 意亦思乎?』

左右曰:『 臣不知其思與不思, 誠思則將吳吟:今軫將為王吳吟. 王不聞管與之說乎?』

有兩虎諍人而斗者, 管莊子將刺之. 管與止之曰:『 虎者, 猁蟲;人者甘餌也. 今兩虎諍人而鬥,

小者必死, 大者必傷. 子待傷虎而刺之, 則是一舉而兼兩虎也. 無刺一虎之勞, 而有刺兩虎之名. 』

齊、楚今戰, 戰必敗. 敗, 王起兵救之, 有救齊之利, 而無伐楚之害. 計聽知覆逆者, 唯王可也.

計者, 事之本也;聽者, 存亡之機. 計失而聽過, 能有國者寡也.

故曰:『 計有一二者難悖也, 聽無失本末者難惑. 』」

(진진왈 : 「 왕독불문오인지유초자호 ? 초왕심애지병, 고사인문지, 왈 : 『 성병호 ? 의역사호 ? 』
좌우왈 : 『 신불지기사여불사, 성사즉장오음 : 금진장위왕오음. 왕불문관여지설호 ? 』

유량호쟁인이두자, 관장자장자지. 관여지지왈 : 『 호자, 리충 ; 인자감이야. 금량호쟁인이투,

소자필사, 대자필상. 자대상호이자지, 즉시일거이겸량호야. 무자일호지로, 이유자량호지명. 』
제、초금전, 전필패. 패, 왕기병구지, 유구제지리, 이무벌초지해. 계청지복역자, 유왕가야. 

계자, 사지본야 ; 청자, 존망지기. 계실이청과, 능유국자과야.
고왈 : 『 계유일이자난패야, 청무실본말자난혹. 』 」)

 

[진진이 말하기를 : " 대왕께서는 오나라 사람이 초나라에서 벼슬하였던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습니까?

초왕은 그를 무척이나 아꼈는데 그만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사람을 시켜 문병까지 하면서 좌우 신하에게

묻기를 : ' 그가 정말 병이 든 걸까? 아니면 고향이 그리워서 그러는 것일까?'라고 하자.

좌우 대신들이 말하기를 : ' 신들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가 정말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라면

고향인 오나라 노래를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 또 관여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셨습니까?'

두 마리의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 먹겠다고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관장자라는 장사가 그 두 마리의 호랑이를

찔러 죽이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때 옆에 있던 관여가 말리면서 말하기를 : " 범이란 놈은 포악한 짐승으로

사람은 그의 달콤한 먹이가 된다. 지금 그 두 마리가 사람을 놓고 싸우다 보면 작은 놈은 틀림없이 죽을 것이고

큰 놈 역시 상처를 입을 것이다. 그대는 기다렸다가 상처 입은 놈만 죽인다면 일거에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는 것이다

한 마리를 더 죽이는 고생을 하지 않고서도 두 마리 호랑이를 잡았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지'라고 말입니다. 

제나라와 초나라가 지금 전쟁을 하고 있으니, 반드시 둘 중에 하나는 패할 것입니다.

패한 이후에 대왕께서 군대를 일으켜 구원해 주시면 제나라를 구원하는데도 이롭고 초나라를 정벌하는데도

손해가 없을 것입니다. 이 계책을 듣고 복역(覆逆)할 나라가 어디인지 알아낼 수 있는 이는 오직 대왕밖에 없습니다.

계획은 일의 근본이며 말을 알아 듣는 것은 존망의 기틀입니다. 계획도 실패하고 말도 알아 듣지 못하면서

나라를 보존할 수 있는 자는 적습니다. 그래서 말하기를 : ' 계획을 반복 생각하는 자는 어그러뜨리기 어렵고,

남의 말을 들을 때 본말을 잃지 않는 자는 그를 미록에 빠뜨리기 어렵다.'라고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秦惠王死, 公孫衍欲窮張儀. 李讎謂公孫衍曰:「 不如召甘茂於魏, 召公孫顯於韓, 起樗裡子於國. 

三人者, 皆張儀之讎也, 公用之, 則諸侯必見張儀無秦矣!」
(진혜왕사, 공손연욕궁장의.  이수위공손연왈 : 「 불여소감무어위, 소공손현어한, 기저리자어국.

삼인자, 개장의지수야, 공용지, 즉제후필견장의무진의 ! 」)

 

[진혜문왕이 죽자, 평소에 장의와 사이가 나빴던 공손연(서수)은 장의를 궁지에 몰아 넣으려고 벼르고 있었다.

이때 이수가 공손연을 위해 말하기를 : " 감무를 위나라에서 불러 들이고, 공손현도 한나라에서 불러 들이며,

은거하고 있는 저리질도 나라에서 기용하십시오. 이 세 사람은 모두 장의와 원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만약 공께서

이들을 등용하시면 제후들은 장의가 진나라에서 쓸모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義渠君之魏, 公孫衍謂義渠君曰:「 道遠, 臣不得復過矣, 請謁事情. 」 義渠君曰:「 願聞之. 」

對曰:「 中國無事於秦, 則秦且燒爇獲君之國;中國為有事於秦, 則秦且輕使重幣,

使事君之國也.」 義渠君曰:「 謹聞令. 」
(의거군지위, 공손연위의거군왈 : 「 도원, 신부득복과의, 청알사정. 」 의거군왈 : 「 원문지. 」
(대왈 : 「 중국무사어진, 즉진차소설획군지국 ; 중국위유사어진, 즉진차경사중폐, 사사군지국야. 」 

의거군왈 : 「 근문령.」)

 

["의거"(서융의 일족)의 군주가 조현을 올리기 위해 위나라에 들어왔다. 

공손연이 의거국 임금을 위해 말하기를 : "군주님의 나라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다시 오기 힘들 것 같으니,

청컨대 중원의 정세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중원의 제후국들이 진나라를 정벌하는 일이 없다면

진나라는 분명 군주님의 나라를 파괴하고 집들을 불사를 것입니다. 그러나 중원의 제후국들이 진나라를 정벌하게

된다면 진나라는 빠르게 막대한 예물과 함께 사자를 보내 군주님을 달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의거군이 말하기를 : " 삼가 잘 알아 들었습니다."라고 하였다.]

 

居無幾何, 惡果伐秦.  陳軫謂秦王曰:「 義渠君者, 蠻夷之賢君, 王不如賂之以撫其心. 」

秦王曰:「 善. 」 因以文繡千匹, 好女百人, 遺義渠君.

​義渠君致群臣而謀曰:「 此乃公孫衍之所謂也. 」 因起兵襲秦, 大敗秦人於李帛之下.
(거무기하, 악과벌진.  진진위진왕왈 : 「 의거군자, 만이지현군, 왕불여뢰지이무기심. 」

진왕왈 : 「 선. 」 인이문수천필, 호여백인, 유의거군.

의거군치군신이모왈 : 「 차내공손연지소위야. 」 인기병습진, 대패진인어이백지하.

 

[얼마 지나지 않아 다섯 나라가 합종을 맺고 진나라를 공격했다. 

때마침 '진진'이 진왕에게 말하기를 : "의거"의 군주는 오랑캐 나라의 현명한 군주이므로,
뇌물을 보내어 달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진왕은 말하기를 : "좋소." 하며.  "의거"의 군주에게 수 놓은 채색비단 천 필과 미녀 백명을 보냈다.

 "의거"의 군주는 신하들을 불러서 계책에 대해 말하기를 : " 이것이야말로 전에 '공손연'이 예언했던 바가 아닌가 ?

 "라고 하며.  즉시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기습하여 진군을 '이백'의 성 아래에서 크게 무찔렀다.]

 

扁鵲見秦武王, 武王示之病, 扁鵲請除. 

左右曰:「 君之病, 在耳之前, 目之下, 除之未必已也, 將使耳不聽, 目不明. 」 君以告扁鵲.

扁鵲怒而投其石:「 君與知之者謀之, 而與不知者敗之. 使此知秦國之政也, 則君一舉而亡國矣. 」
(의편작견진무왕, 무왕시지병, 편작청제.

좌우왈 : 「 군지병, 재이지전, 목지하, 제지미필이야, 장사이불청, 목불명. 」 군이고편작.
편작노이투기석 : 「 군여지지자모지, 이여부지자패지. 사차지진국지정야, 즉군일거이망국의. 」

 

[명의로 이름난 편작이 진나라 무왕을 만났다, 무왕이 자기의 병을 설명하자, 편작이 치료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좌우의 대신들이 말하기를 : " 대왕의 병은 귀의 앞과 눈의 아래에 있습니다.

치료를 하려다가 잘못하면 오히려 귀가 멀거나 눈이 보이지 않게 될 지도 모릅니다."라고 하였다.

임금은 걱정이 되어 이 말을 편작에게 전하였다. 편작은 화를 내며 석침을 내동댕이치면서 말하기를 :

" 임금이 지혜로운 자와 더불어 의논을 잘 해놓고는 나중에 지혜롭지 못한 자의 말을 듣고 일을 그르쳤으니

이것으로 보아 진나라의 정치도 그럴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니,

그러다가 일거에 나라를 망치고 말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秦武王謂甘茂曰:「 寡人欲車通三川, 以窺周室,而寡人死不朽乎?」

甘茂對曰:「 請之魏, 約伐韓. 」 王令向壽輔行.

甘茂至魏, 謂向壽:「 子歸告王曰:『 魏聽臣矣, 然願王勿攻也. 』 事成, 盡以為子功. 」

向壽歸以告王, 王迎甘茂於息壤. 甘茂至, 王問其故. 
(진무왕위감무왈 : 「 과인욕거통삼천, 이규주실, 이과인사불후호 ? 」

감무대왈 : 「 청지위, 약벌한. 」 왕령상수보행.
감무지위, 위상수 : 「 자귀고왕왈 : 『 위청신의, 연원왕물공야. 』 사성, 진이위자공. 」 

상수귀이고왕, 왕영감무어식양. 감무지, 왕문기고. ) 

 

[진무왕이 감무에게 말하기를 : " 과인이 수레를 몰아 한나라 삼천 땅을 지나 주나라 왕실을 한번 살펴 볼 수 있다면

과인이 죽고 나서도 그 명성이 소멸되지 않을 텐데 ?"라고 하자.

감무가 대답하기를 : " 청컨대 신이 위나라에 가서 함께 한나라를 정벌할 약정을 맺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상수를 부사로 삼아 감무를 위나라로 보냈다. 감무는 위나라에 도착하자, 상수에게 이르기를 :

" 그대는 진나라로 돌아가서 왕에게 이렇게 고하라 ' 위나라가 우리의 약속을 모두 승락하였습니다,

그러나 대왕께서는 아직 공격을 하지 말아 주십시오'라고,

나중에 일이 성사되고 나면 모두 그대의 공으로 해줄 것이다."라고 하였다.

상수가 진나리로 돌아와 왕에게 보고하자, 왕은 나중에 돌아온 감무를 식양 땅까지 나와서 맞이하였다.

감무가 도착하자, 왕은 그 까닭을 물었다.]

 

對曰:「 宜陽, 大縣也, 上黨、南陽積之久矣, 名為縣, 其實郡也. 今王倍數限, 行千里而攻之,

難矣. 臣聞張儀西並巴蜀之地, 北取西河之外, 南取上庸, 天下不以為多張儀而賢先王.

魏文侯令樂羊將, 攻中山, 三年而拔之, 樂羊反而語功, 文侯示之謗書一篋, 樂羊再拜稽首曰:

『 此非臣之功, 主君之力也. 』今臣羈旅之臣也, 樗裡疾、公孫衍二人者, 挾韓而議, 王必聽之,

是王欺魏, 而臣受公仲侈之願也.  昔者曾子處費, 費人有與曾子同名族者而殺人,

人告曾子母曰:『 曾參殺人. 』 曾子之母曰:『 吾者不殺人. 』 置自若.

有頃焉, 人又曰:『 曾參殺人. 』 其母尚置自若也.  頃之, 一人又告之曰:『 曾參殺人. 』

其母懼, 投杼逾牆而走. 夫以曾參之賢, 與母之信也, 而三人疑之, 則慈母不能信也.

今臣賢不及曾子, 而王之信臣又未若曾子之母也, 疑臣者不適三人, 臣恐王為臣之投杼也.」

(대왈 : 「 의양, 대현야, 상당、남양적지구의, 명위현, 기실군야. 금왕배수한, 행천리이공지, 난의.

신문장의서병파촉지지, 북취서하지외, 남취상용, 천하불이위다장의이현선왕. 위문후령악양장, 공중산,

삼년이발지, 악양반이어공, 문후시지방서일협, 악양재배계수왈 : 『 차비신지공, 주군지력야. 』
금신기려지신야, 저리질、공손연이인자, 협한이의, 왕필청지, 시왕기위, 이신수공중치지원야.

석자증자처비, 비인유여증자동명족자이살인, 인고증자모왈 : 『 증삼살인. 』

증자지모왈 : 『 오자불살인. 』 치자약. 유경언, 인우왈 : 『 증삼살인. 』 기모상치자약야.

경지, 일인우고지왈 : 『 증삼살인. 』 기모구, 투저유장이주. 부이증삼지현, 여모지신야, 이삼인의지,

즉자모불능신야. 금신현불급증자, 이왕지신신우미약증자지모야, 의신자부적삼인, 신공왕위신지투저야. 」)

 

[이에 감무가 대답하기를 : " 한나라의 "의양"은 큰 현이고 "상당"과 "남양"에도 재물과 양곡을 비축해서 

굳게 지키기 시작한지 오래 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고을은 이름은 현이지만 실은 군에 해당합니다.   

지금 대왕께서 "함곡"이나 "오곡"등 여러 곳의 험지를 배후에 두고, 천리의 먼 길을 달려가 공격하는 경우라

많은 난관이 놓여 있을 것입니다. 신이 듣기로 지난날 장의가 서쪽으로는 파,촉의 땅을 병탄하고,

북쪽으로는 서하(西河) 밖까지 취하고, 남쪽으로는 상용까지 취하였지만 세상이 장의를 칭찬하지 않고

선왕이신 혜왕을 훌륭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위문후가 악양을 장군으로 삼아 중산을 공격할 때

3년 만에 겨우 탈취하고 악양이 돌아오자, 논공행상 때 위문후는 악양을 비방하는 많은 상소문을 모아 두었던

상자를 꺼내 열어 보이자, 악양은 결국 머리를 조아리고 재배하며 말하기를 : " 이는 저의 공이 아닙니다,

모두가 임금님의 힘입니다.'라고 해야 했습니다. 하물며 지금 신은 기려지신(羈旅之臣)입니다.

지금 저리질과 공손연 두 사람은 한나라를 믿고 의지하며 이 나라의 국정을 의논하는 형편이니 대왕께서는 틀림없이

그들의 말만 듣고 위나라를 속이게 될 터인즉 그렇게 되면 신은 한나라의 공중치에게 원한을 사게 될 것입니다.

옛날에 증자가 노나라 비읍에 거주할 때, 비읍의 사람중에 증자와 같은 이름을 가진 자가 살인을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증자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 ' 증삼이 사람을 죽였소.'라고 하자,

증자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 ' 내 아들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라고 하며, 태연하게 베를 짰습니다.

조금 지나 또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 ' 증삼이 사람을 죽였소.'라고 하자, 그래도 어머니는 아들을 믿기에

태연히 앉아 베를 짰습니다. 잠시 후에 또 어떤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 ' 증삼이 사람을 죽였소.'라고 하자,

그의 어머니는 북(杼 ; 베틀에서, 날실의 틈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씨실을 푸는 기구)을 내던지고 담장을 넘어

달아 났습니다.  무릇 증삼과 같이 어진 사람을 믿는 어머니의 굳은 믿음도 세 사람이 같은 말을 할 때는

아무리 어진 어머니일지라도 그 아들에 대한 믿음을 지켜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물며 지금 신은 그 증자만큼 어질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왕께서 신에 대한 믿음이 증자의 어머니 만큼 굳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신을 의심하게 하는 자가

세 사람에게 그치는 것도 아니니, 신은 대왕께서 신에게 그 북(杼)을 내던질까 두렵습니다."라고 하였다.]

 

王曰:「 寡人不聽也, 請與子盟. 」 於是與之盟於息壤. 果攻宜陽, 五月而不能拔也.

樗裡疾、公孫衍二人在, 爭之王, 王將聽之, 召甘茂而告之.

甘茂對曰:「 息壤在彼. 」 王曰:「 有之. 」 因悉起兵, 復使甘茂攻之, 遂拔宜陽.
(왕왈 : 「 과인불청야, 청여자맹. 」 어시여지맹어식양. 과공의양, 오월이불능발야.

저리질、공손연이인재, 쟁지왕, 왕장청지, 소감무이고지.
감무대왈 : 「 식양재피. 」 왕왈 : 「 유지. 」 인실기병, 부사감무공지, 수발의양.)

 

[무왕이 이 말을 듣고 감무에게 말하기를 : " 과인은 절대로 그대를 비방하는 자의 말은 듣지 않겠소,

우리 이 자리에서 맹세합시다."라고 하면서, 그 식양 땅에서 맹세의 의식까지 치렀다.

과연 의양 땅을 공격하였으나 5개월이 넘도록 빼앗지 못하였다.

저리질과 공손연 두 사람은 지금이 기회라 생각하고 다투어 왕에게 감무를 비방하자,

무왕이 듣고 '감무'를 불러들여 군사행동을 중지시키려고 하였다. 

감무가 대답하기를 : " 대왕과 신이 맹세한 "식양"이 아직도 저기에 있습니다 "라고 하자.  

'무왕'이 말하기를 : "아 ! 그래, 맹세한 적이 있지 "라고 하며,

국내의 군사를 대거 징발하여 '감무'에게 더하여 주고 "의양성"을 공격하도록 했다.

'감무'는 미침내 한나라 군사 6만의 목을 베고 "의양성"을 점령했다.] 

 

宜陽之役, 馮章謂秦王曰:「 不拔宜陽, 韓、楚乘吾弊, 國必危矣! 不如許楚漢中以歡之.

楚歡而不進, 韓必赴, 無奈秦何矣!」 王曰:「 善. 」 果使馮章許楚漢中, 而拔宜陽. 

楚王以其言責漢中於馮章, 馮章謂秦王曰:「 王遂亡臣, 固謂楚王曰:『 寡人固無地而許楚王.』」
(의양지역, 풍장위진왕왈 : 「 불발의양, 한、초승오폐, 국필위의 ! 불여허초한중이환지. 

초환이불진, 한필부, 무내진하의 ! 」 왕왈 : 「 선. 」 과사풍장허초한중, 이발의양. 

초왕이기언책한중어풍장, 풍장위진왕왈 : 「 왕수망신, 고위초왕왈 : 『 과인고무지이허초왕. 』 」)  

 

[의양에서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풍장이 진왕에게 아뢰기를 : " 만약 아군이 의양을 함락시키지 못하면

한, 초 두 나라가 우리의 피폐한 틈을 타서 공격해 올 것인데, 그리되면 진나라는 분명히 위험에 직면할 것입니다!

그러니 한중 땅을 초나라에 되돌려 준다고 허락하여 초나라의 환심을 사두느니만 못합니다. 

그리하면 초나라는 고마움을 느끼고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며, 한나라는 틀림없이 고립되어

우리 진나라를 어쩌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진왕이 말하기를 : " 좋은 생각이오."라고 하였다.

마침내 풍장을 초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한중 땅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였고 진나라는 의양을 함락시키게 된 것이다.

그러자 초왕은 풍장에게 약속대로 한중 땅을 달라고 요구하자, 풍장은 진왕에게 아뢰기를 : " 대왕께서는 신을

내쫓았다고 하십시오, 그리고 초왕에게 ' 나는 애당초 한중 땅을 초나라에게 줄 뜻이 없었다.'하십시오."라고 하였다.]

  

甘茂攻宜陽, 三鼓之而卒不上. 秦之右將有尉對曰:「 公不論兵, 必大困. 」

甘茂曰:「 我羈旅而得相錢者, 我以宜陽餌王. 今攻宜陽而不拔, 公孫衍、樗裡疾挫我於內,

而公中以韓窮我遇外, 是無伐之日已!請明日鼓之而不可下, 因以宜陽之郭為墓. 」
(감무공의양, 삼고지이졸불상. 진지우장유위대왈 : 「 공불논병, 필대곤. 」
(감무왈 : 「 아기려이득상전자, 아이의양이왕. 금공의양이불발, 공손연、저리질좌아어내,

이공중이한궁아우외, 시무벌지일이 ! 청명일고지이불가하, 인이의양지곽위묘. 」) 

 

[감무가 의양성을 공격할 때 세 번이나 북을 울려 공격 신호를 보냈으나 병사들이 성벽을 기어 오르지 않았다.

이때 우장군 휘하의 한 위관이 말하기를 : " 공께서 병사들에게 상벌을 밝혀서 사기를 높여주지 않으면

틀림없이 큰 곤란을 당할 것입니다."라고 하자.  감무가 말하기를 : " 나는 기려지신(羈旅之臣)인데도 불구하고

진나라에서 재상의 자리까지 내어 준 것은 왕이 나를 이 의양 땅으로 하여금 미끼로 삼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의양을 공략하여 함락시키지 못하면, 안에서는 공손연과 저리질이 나를 꺽고 올라 설 것이며,

밖에서는 한나라 공중치가 나를 궁지로 몰아 넣을 것인데, 정벌하지 않고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겠는가!

청컨대 내일 다시 북을 울려 함락시키지 못한다면 저 의양의 성곽을 나의 묘로 삼겠다."라고 하였다.]

 

於是出私金以益公賞. 明日鼓之, 宜陽拔. 宜陽未得, 秦死傷者眾, 甘茂欲息兵.

左陳謂甘茂曰:「 公內攻於樗裡疾、公孫衍, 而外與韓侈為怨, 今公用兵無功, 公必窮矣.

公不如進兵攻宜陽, 宜陽拔, 則公之功多矣. 是樗裡疾、公孫衍無事也, 秦眾盡怨之深矣. 」
(어시출사금이익공상. 명일고지, 의양발. 의양미득, 진사상자중, 감무욕식병.
좌진위감무왈 : 「 공내공어저리질、공손연, 이외여한치위원, 금공용병무공, 공필궁의.

공불여진병공의양, 의양발, 즉공지공다의, 시저리질、공손연무사야, 진중진원지심의.」) 

 

[이에 감무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원래 나라에서 주는 상금에 보태었다. 다음날 북을 울려 의양을 공략하였다.

의양이 미처 함락되지 않은 상태에서 진나라의 사상자가 늘어나자, 감무는 병사들을 휴식시키려 하였다.

이때 좌진이 감무에게 말하기를 : " 공에게 안으로는 저리질과 공손연이 비방을 하고 있고,

밖으로는 한나라의 공중치와 원한 관계에 놓여 있는데, 지금 공께서 군사를 이끌면서 아무 공도 세우지 못한다면,

공께서는 틀림없이 궁지에 몰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공께서 전력을 다해 의양을 공략하여 함락시킨다면

공의 공로는 더욱 커질 것입니다. 그리되면 저리질과 공손연은 할 일이 없어지고, 진나라의 사상자 가족들은

전쟁을 도모한 그 두 사람에게 깊은 원한을 갖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宜陽之役, 楚畔秦而合於韓.  秦王懼. 甘茂曰:「 楚雖合韓, 不為韓氏先戰;

韓亦恐戰而楚有變其後. 韓、楚必相御也. 楚言與韓, 而不餘怨於秦, 臣是以知其御也. 」

秦王謂甘茂曰:「 楚客來使者多健, 與寡人爭辭, 寡人數窮焉, 為之奈何?」

甘茂對曰:「 王勿患也! 其健者來使者, 則王勿聽其事;其需弱者來使, 則王比聽之.

然則需弱者用, 而見其者不用矣! 王因而制之. 」
(의양지역, 초반진이합어한.  진왕구. 감무왈 : 「 초수합한, 불위한씨선전 ;

한역공전이초유변기후. 한、초필상어야. 초언여한, 이불여원어진, 신시이지기어야.」
진왕위감무왈 : 「 초객래사자다건, 여과인쟁사, 과인수궁언, 위지내하 ? 」
감무대왈 : 「 왕물환야 ! 기건자래사자, 즉왕물청기사 ; 기수약자래사, 즉왕비청지. 

연즉수약자용, 이견기자불용의 ! 왕인이제지. 」) 

 

[의양에서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때, 초나라는 진나라를 배반하고 한나라와 연합하였다.

진왕은 크게 두려워하였다. 이때 감무가 진왕에게 말하기를 : " 초나라가 비록 한나라와 연합하였지만,

한나라는 먼저 우리에게 싸움을 걸어 오지 않을 것입니다. 한나라 또한 전쟁이 발발했을 때 초나라가 뒤에서

변심하지 않을까 두려워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이 한나라와 초나라는 틀림없이 서로 눈치만 살필 것입니다.

초나라는 한나라와 말로는 연합을 하였다고 했지만, 우리 진나라에게도 원한을 사고 싶지 않기 때문에

신은 그래서 서로 눈치만 살피고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진왕이 감무에게 묻기를 : " 초나라에서 오는 사신들은 대부분 달변가여서 과인과 논쟁이 벌어지면

과인이 자주 궁색해지는데 이를 어쩌면 좋겠소?"라고 하자.

감무가 대답하기를 : " 대왕께서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달변가들이 사신으로 오면 대왕께서는 아예

그들의 말을 들어 주지 마십시오 ; 그러나 부드럽고 약한 자들이 사신으로 오면 그들의 말은 들어 주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부드럽고 약한 자들은 초나라에서 중용(重用)할 것이며, 달변가들은 중용하지 않을 것이니,

대왕께서는 그렇게 해서 그들을 제압하시면 됩니다."라고 하였다.] 

 

甘茂亡秦, 且之齊, 出關遇蘇子, 曰:「 君聞夫江上之處女乎?」 蘇子曰:「 不聞. 」

曰:「 夫江上之處女, 有家貧而無燭者, 處女相與語, 欲去之. 家品行無燭者將去矣,

謂處女曰:『 妾以無燭, 故常先至, 掃室布席, 何愛余明之照四壁者? 幸以賜妾, 何妨欲處女?

妾自以有益於處女, 何為去我?』 處女相語以為然而留之.

今臣不肖, 棄遂於秦而出關, 願為足下掃室布席, 幸無我遂也. 」
(감무망진, 차지제, 출관우소자, 왈 : 「 군문부강상지처녀호 ? 」 소자왈 : 「 불문. 」
(왈 : 「 부강상지처녀, 유가빈이무촉자, 처녀상여어, 욕거지. 가품행무촉자장거의,

위처녀왈 : 『 첩이무촉, 고상선지, 소실포석, 하애여명지조사벽자 ? 행이사첩, 하방욕처녀 ?

 첩자이유익어처녀, 하위거아 ? 』 처녀상어이위연이류지.

 금신불초, 기수어진이출관, 원이족하소실포석, 행무아수야. 」)

 

[감무는 진나라에서 제나라로 도망가려고 함곡관을 나서다가 소대를 만났다,

'소대'는 제나라의 사신이 되어 진나라로 가려던 중이었다. 감무가 묻기를  : " 그대는 강가의 처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소대가 대답하기를 : " 그런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감무가 이야기하기를 : " 어느 강가에 여러 처녀가 함께 살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처녀가 몹시 가난하여

불을 밝힐 양초조차 없었습니다. 그러자 나머지 처녀들이 서로 상의한 끝에 그녀를 쫓아 내려고 하였습니다.

집안이 가난하여 양초가 없어 쫓겨나야 할 처지에 놓인 처녀가 나머지 처녀들에게 말하기를 :

" 나는 가난해서 촛불조차 없기 때문에 항상 집에 일찍 들어와 집안 청소며 자리도 깔고 이렇게 봉사했는데 

너희들은 어찌하여 네 벽에 비치는 남는 불빛까지 아까워 하는가?

그 남는 빛을 나에게 준다고 해서 너희들에게 방해될 것이 뭐가 있는가?

내가 너희들에게 주는 이익이 더 많을진대 어째서 나를 내쫓아야만 하는가?'라고 하자,

나머지 처녀들이 서로 상의한 끝에 그 말이 맞다고 여겨 다시 그녀를 머물게 하였다는 겁니다.

지금 저는 불초하여 진나라에서 쫓겨나 함곡관까지 나왔으니, 원컨대 족하께서 저에게 집안 청소나

자리를 까는 일이라도 주셔서 쫓아내지만 않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라고 하였다.]

 

蘇子曰:「 善. 請重公於齊. 」 乃西說秦王曰:「 甘茂賢人, 非恆士也. 其居秦累世重矣,

自殽塞· 谿谷, 地形限易盡知之. 彼若以齊約韓· 魏, 反以謀秦, 是非秦之利也. 」

秦王曰:「 然則奈何?」

蘇代曰:「 不如重其贄, 厚其祿以迎之. 彼來則置之槐谷, 終身勿出, 天下何從圖秦. 」
(소자왈 : 「 선. 청중공어제. 」 내서설진왕왈 : 「 감무현인, 비항사야. 기거진루세중의, 자효새、계곡,

지형한이진지지. 피한이제약한、위, 반이모진, 시비진지리야. 」 진왕왈 : 「 연즉내하?」
소대왈 : 「 불여중기지, 후기록이영지. 피래즉치지괴곡, 종신물출, 천하하종도진. 」)

 

[소대가 말하기를 : " 좋습니다. 그대를 진나라보다 더 중한 대접을 받도록 제나라에 청해 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서쪽의 진나라로 가서 진왕에게 유세하기를 : " 감무는 어질고 총명하며 보통 선비가 아닙니다.

그는 진나라에 살면서 몇 대에 걸쳐 중용되었습니다.     

그는 "효산"의 요새부터 "귀곡"에 이르기까지 그 지형의 험하고 평탄함에 대해 훤히 꿰뚫고 있습니다.
그가 만일 제나라에 있으면서 한과 위 두 나라와 동맹을 맺은 후에 진나라를 공격할 대책과 방법을 세운다면 

그것은 결코 진나라에 이롭지 않은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진왕이 묻기를 : "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겠소 ? "라고 하자. 

'소대'가 대답하기를 : " 대왕께서는 많은 예물을 보내고 봉록을 후하게 하여 '감무'를 맞아들여 

가 돌아오면 "귀곡"에 머물게 하고 죽을 때까지 나오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천하의 그 누구도 진나라를 넘보지 못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秦王曰:「 善. 」 與之上卿, 以相迎之齊.  甘茂辭不往, 蘇秦偽謂王曰:

「 甘茂, 賢人也. 今秦與之上卿, 以相迎之, 茂德王之賜, 故不往, 願為王臣.

今王何以禮之 ? 王若不留, 必不德王. 彼以甘茂之賢得擅用強秦之眾, 則難圖也!」

齊王曰:「 善. 」 賜之上卿, 命而處之.
(진왕왈 : 「 선. 」 여지상경, 이상영지제. 감무사불왕, 소진위위왕왈 :

「 감무, 현인야. 금진여지상경, 이상영지, 무덕왕지사, 고불왕, 원위왕신.
금왕하이예지 ? 왕약불류, 필부덕왕. 피이감무지현득천용강진지중, 즉난도야 ! 」

제왕왈 : 「 선. 」 사지상경, 명이처지.)

 

[진왕이 말하기를 : " 좋소. "라고 하고는, 즉시 '감무'에게 상경 벼슬을 주고, 재상 인장을 보내어 

제나라로부터 맞이하려고 하였다. '감무'가 진왕의 부름을 사양하며 가지 않자, 

소진은 다시 제'민왕'에게 말하기를 : " '감무'는 현인입니다. 지금 진나라가 '감무'에게 상경 벼슬을 주고

재상 인장을 보내어 맞이해 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감무'는 대왕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로 인해 기꺼이

대왕의 신하가 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진왕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감무'를 예우하지 않으십니까 ? 대왕께서 만약 그를 잘 붙잡지 않으시면

그는 틀림없이 대왕께서 덕이 없는 것으로 여겨 진나라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감무의 현능함과

진나라의 강한 군대가 함께 밀려 온다면 제나라는 어려운 지경에 빠질 것입니다."라고 하자.

민왕이 말하기를 : " 좋소. "라고 하며, 즉시 그에게 상경의 벼슬을 주고 제나라에 머물게 했다.]

  

甘茂相秦. 秦王愛公孫衍, 與之間有所立, 因自謂之曰:「 寡人且相子. 」

 甘茂之吏, 道而聞之, 以告甘茂.

甘茂因入見王曰:「 王得賢相, 敢再拜賀. 」

王曰:「 寡人托國於子, 焉更得賢相?」 對曰:「 王且相犀首. 」

王曰:「 子焉聞之?」 對曰:「 犀首告臣. 」 王怒於犀首之洩也, 乃逐之.
(감무상진. 진왕애공손연, 여지간유소립,

인자위지왈 : 「과인차상자. 」 감무지리, 도이문지, 이고감무. 감무인입견왕왈 :「 왕득현상, 감재배하. 」

왕왈 : 「 과인탁국어자, 언경득현상?」 대왈 : 「 왕차상서수. 」

왕왈 : 「 자언문지?」 대왈 : 「 서수고신. 」 왕노어서수지설야, 내축지. )

 

[감무가 진나라의 재상으로 있을 때, 진왕은 공손연(서수)을 아끼고 있었기 때문에 공손연과 단 둘이 만나는 기회를

틈타 공손연을 재상으로 세우기 위해 왕이 말하기를 : "과인은 장차 그대를 재상으로 삼으려 하오."라고 하였다.

감무의 부하가 길을 가다 이 말을 듣고 감무에게 알렸다.  감무는 이를 계기로 왕을 알현하고 말하기를 :

" 대왕께서 어질고 총명한 재상을 얻으셨다니 감히 재배하며 축하드립니다."라고 하였다.

진왕은 깜짝 놀라며 묻기를 : " 과인은 그대에게 이 나라를 맡겨 어진 재상이 필요없는데 그게 무슨 말이오."라고 하자.

감무가 대답하기를 : " 대왕께서 장차 서수(공손연)를 재상으로 삼으려 하시는걸 알고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왕은 더욱 놀라 묻기를 : " 누가 그런 말을 들려 주던가요?"라고 하자.

감무가 대답하기를 : " 서수가 신에게 직접 알려 주었습니다."라고 하였다.

왕은 서수가 비밀을 누설한 것으로 믿고 크게 노하여 서수를 내쫓아 버렸다.]

 

甘茂約秦、魏而攻楚, 楚之相秦者屈蓋, 為楚和於秦, 秦啟關而聽楚使.

甘茂謂秦王曰:「 怵於楚而不使魏制和, 楚必曰:『 秦鬻魏 』 不悅而合於楚, 楚、魏為一,

國恐傷矣.  王不如使魏制和, 魏制和必悅. 王不惡於魏, 則寄地必多矣. 」 

(감무약진、위이공초. 초지상진자굴개, 위초화어진, 진계관이청초사.
감무위진왕왈 : 「 출어초이불사위제화, 초필왈 : 『 진육위 』 불열이합어초, 초、위위일, 국공상의. 

왕불여사위제화, 위제화필열. 왕불오어위, 즉기지필다의. 」

 

[감무가 진, 위 두 나라의 연합을 성사시킨 뒤 초나라를 공격했다. 주난왕 3년(기원전 312),

진나라의 공격을 저지하고 있던 초나라 대부 굴개(屈蓋)가 초나라를 위해 진나라와 화친을 맺고자 했다.

이에 진나라가 관문을 열고 굴개를 맞아들였다.

이때 감무가 진무왕에게 아뢰기를 : “초나라를 두려워한 나머지 위나라로 하여금 강화를 주도하게 하지 않으면

초나라는 틀림없이 진나라가 위나라를 팔아먹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 되면 위나라는 불쾌하게 여겨

초나라와 연합해 버릴 것입니다. 초, 위 두 나라가 연합해 하나가 되면 진나라가 크게 다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대왕께서는 위나라를 시켜 강화를 주도하게 하느니만 못합니다.

위나라는 자신이 주도하여 강화를 이룬 것에 틀림없이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되면 대왕은 위나라의 미움도 사지 않게 되고, 두나라 또한 많은 땅을 할양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陘山之事, 趙且與秦伐齊. 齊懼, 令田章以陽武合於趙, 而以順子為質.

趙王喜, 乃案兵告於秦曰:「 齊以陽武賜弊邑而納順子, 欲以解伐. 敢告下吏. 」秦王使公子他之趙,

謂趙王曰:「 齊與大國救魏而倍約, 不可信恃, 大國不義, 以告弊邑, 而賜之二社之地, 以奉祭祀.

今又案兵, 且欲合齊而受其地, 非使臣之所知也. 請益甲四萬, 大國裁之.」
(형산지사, 조차여진벌제. 제구, 령전장이양무합어조, 이이순자위질. 

조왕희, 내안병고어진왈 : 「 제이양무사폐읍이납순자, 욕이해벌. 감고하리. 」진왕사공자타지조,

위조왕왈 : 「 제여대국구위이배약, 불가신시, 대국불의, 이고폐읍, 이사지이사지지, 이봉제사.

금우안병, 차욕합제이수기지, 비사신지소지야. 청익갑사만, 대국재지.」)

 

[형산( 하남성 신정현 서남쪽 형산진)의 전투 당시 조나라는 장차 진나라와 연합해 제나라를 공격하고자 했다.

제선왕이 두려운 나머지 장수 전장(田章)을 시켜 양무(陽武: 하남성 원양현) 땅을 떼어 조나라와 강화토록 하면서

공자 순자(順子)를 인질로 보냈다. 조혜문왕이 크게 기뻐하여 곧 진격을 멈추게 한 후 진나라에 말하기를 :
“ 제나라가 양무의 땅을 우리 조나라에 주고 순자까지 인질로 보내 우리가 공격을 풀어주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에 감히 하리(下吏: 여기서는 폐하와 같은 종류의 군주에 대한 존칭어임)에게 정황을 보고하는 바입니다.”하였다.
그러자 진소양왕이 공자 타(他)를 조나라로 보내 조혜문왕에게 말하기를 :
“ 제나라는 일찍이 귀국과 함께 위나라를 구해주기로 하고 귀국과의 약속을 어긴 적이 있습니다.

제나라는 믿지 못할 나라입니다. 그때 귀국은 제나라의 행동을 옳지 않다고 여겨 폐읍에 이를 알려주었습니다.

이에 우리 진나라는 2사지지(二社之地: ‘1사’는 25호를 지칭하는 말로 약 1 리에 해당)를 귀국에게 주어

제사를 받들도록 도와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진격을 멈추고 도리어 제나라와 연합해 땅을 받고자 하니

이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길이 없습니다. 청컨대 우리는 갑사 4만 명을 증원해 보낼 생각이니

귀국이 알아서 결정하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주난왕 14년(기원전 301),


蘇代為齊獻書穰侯曰:「 臣聞往來之者言曰:『 秦且益趙甲四萬人以伐齊, 』

臣竊必之弊邑之王曰:『 秦王明而熟於計, 穰侯智而習於事, 必不益趙甲四萬人以伐齊. 』

是何也? 夫三晉相結, 秦之深讎也. 三晉百背秦, 百欺秦, 不為不信, 不為無行.

今破齊以肥趙, 趙、秦之深讎, 不利於秦. 一也. 秦之謀者必曰:『 破齊弊晉, 而後制晉楚之勝. 』

夫齊, 罷國也, 以天下擊之, 譬猶以千鈞之弩潰癰也. 秦王安能制晉、楚哉! 二也.

秦少出兵, 則晉、楚不信;多出兵, 則晉、楚為制於秦. 齊恐, 則必不走於秦且走晉、楚. 三也.

齊割地以實晉、楚, 則晉、楚安. 齊舉兵而為之頓劍, 則秦反受兵. 四也.

是晉、楚以秦破齊, 以齊破秦, 何晉、楚之;智而齊、秦之愚!五也.

秦得安邑, 善齊以安之, 亦必無患矣. 秦有安邑, 則韓、魏必無上黨哉.

夫取三晉之腸胃與出兵而懼其不反也, 孰利? 故臣竊必之弊邑之王曰:

『 秦王明而熟於計, 穰侯智而習於事, 必不益趙甲四萬以伐矣. 』」

(소대위제헌서양후왈 : 「 신문왕래지자언왈 : 『 진차익조갑사만인이벌제. 』 

신절필지폐읍지왕왈 : 『 진왕명이숙어계, 양후지이습어사, 필불익조갑사만인이벌제. 』

시하야 ? 부삼진상결, 진지심수야. 삼진백배진, 백기진, 불위불신, 불위무행.

금파제이비조, 조、진지심수, 불리어진. 일야. 진지모자필왈 : 『 파제폐진, 이후제진초지승. 』

부제, 파국야, 이천하격지, 비유이천균지노궤옹야. 진왕안능제진、초재 ! 이야.
진소출병, 즉진、초불신 ; 다출병, 즉진、초위제어진. 제공, 즉핑불주어진차주진、초. 삼야.

제할지이실진、초, 즉진、초안. 제거이병위지돈검, 즉진반수병. 사야.

시진、초이진파제, 이제파진, 하진、초지 ; 지이제、진지우! 오야.
진득안읍, 선제이안지, 역필무안의. 진유안읍, 즉한、위필무상당제.

부취삼진지장위여출병이구기불반야, 숙리 ? 고신절필지폐읍지왕왈 :

『 진왕명이숙어계, 양후지이습어사, 필불익조갑사만이벌제의. 』 」) 

 

[이에 소대(蘇代)가 제나라를 위해 진나라의 양후(穰侯: 선태후의 동복동생)에게 이같은 편지를 보냈다.
“ 제가 최근 진나라를 왕래하는 자들의 말을 들으니 이들이 말하기를,

‘진나라가 조나라를 위해 갑사 4만 명을 증원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려 한다.’고 합니다.

이에 저는 폐읍의 군왕에게 반드시 이르기를, ‘진왕은 영명하고 빈틈이 없어 계책을 세우는데 뛰어나고,

양후는 지혜롭고 일처리에 능해 결코 조나라에 4만 명을 증파해 우리 제나라를 공격하는 일을 없을 것입니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3진이 결속하면 진나라의 깊은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3진은 이미 여러 차례 진나라를 배반하고 속여 왔습니다. 그런데도 진나라는 오히려 그들이 신의 없다거나,

그들의 행위가 비열하다고 생각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귀국이 조나라를 도와 제나라를 깨뜨려

조나라를 증강시켜 줄지라도 조나라는 진나라의 대적(大敵)인 까닭에 결코 진나라에 도움이 될 리 없습니다.

이것이 조나라를 도와주어서는 안 될 첫 번째 이유입니다.
진나라의 모사들은 틀림없이 말하기를, ‘제나라를 꺾으면 조, 초 두 나라 또한 지친 나머지 버티기 어려울 것이니,

연후에 단 한번의 싸움으로 조, 초 두 나라에 승리를 거둘 수 있다’고 할 것입니다.

무릇 우리 제나라는 이미 크게 지쳐 있는데 천하의 제후들을 모아 공격하는 것은

비유컨대 마치 1천 균(鈞)의 쇠뇌로 다 썩은 종기를 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 되면 진왕이 어찌 능히 조, 초 두 나라를 제압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진나라가 약간의 군사만 출동시키면 조, 초 두 나라는 귀국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많은 군사를 출동시키면 조, 초 두 나라는 귀국에게 제압당할 것입니다.

제나라는 두려움을 느끼면 진나라가 아니라 조, 초 두 나라로 달려갈 것입니다. 이것이 세 번째 이유입니다.
또 우리 제나라가 땅을 떼어주면 조, 초 두 나라는 제나라로 진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때 제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돈검(頓劍: 칼이 부러질 때까지 죽기를 각오하고 싸움을 의미)의 자세로 대적하면

귀국은 도리어 병화를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네 번째 이유입니다.
다음으로 조, 초 두 나라가 귀국을 동원해 제나라를 깨뜨리거나 제나라를 동원해 귀국을 깨뜨리려 하면

조, 초 두 나라는 어찌 그렇게 지혜로울 수 있으며 제, 진 두나라는 어찌 그처럼 어리석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다섯 번째 이유입니다.
귀국이 위나라로부터 안읍(安邑)을 얻고, 우리 제나라와 친선하여 제나라를 안정시키면 아무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진나라가 안읍을 취하면 한, 위 두 나라는 필시 상당(上黨)을 잃고야 말 것입니다.

무릇 3진의 장위(腸胃: 요해처)인 안읍과 상당을 취하는 이익과 이번과 같이 조나라를 도와 출병하여

제나라와 싸움으로써 퇴병조차 할 수 없는 걱정 중에 어느 쪽이 귀국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폐읍의 군왕에게 ‘진왕은 영명하고 빈틈이 없어 계책을 세우는데 뛰어나고,

양후는 지혜롭고 일처리에 능해 결코 조나라에 4만 명을 증파해 우리 제나라를 공격하는 일을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하겠다고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秦宣太后愛魏丑夫. 太后病將死, 出令曰:「 為我葬, 必以魏子為殉. 」 魏子患之.

庸芮為魏子說太后曰:「 以死者為有知乎?」 太后曰:「 無知也. 」

曰:「 若太后之神靈, 明知死者之無知矣, 何為空以生所愛, 葬於無知之死人哉!

若死者有知, 先王積怒之日久矣, 太后救過不贍, 何暇乃私魏丑夫乎?」 太后曰:「 善. 」乃止.
(진선태후애위축부. 태후병장사, 출령왈 : 「 위아장, 필이위자위순. 」 위자환지. 

용예위위자설태후왈 : 「 이사자위유지호?」 태후왈 : 「 무지야. 」
왈 : 「 약태후지신령, 명지사자지무지의, 하위공이생소애, 장어무지지사인재 ! 

약사자유지, 선왕적노지일구의, 태후구과불섬, 하가내사위축부호 ? 」태후왈 : 「 선. 」 내지.)

 

[진나라의 선태후(宣太后: 진소양왕의 생모)는 위나라 출신 대부 위추부(魏醜夫)를 극히 총애했다.

선태후가 오랫 동안 병석에 누웠다가 임종이 가까워지자 하명하기를 :
“ 내가 죽게 되면 반드시 위추부를 순장(旬葬)토록 하라.”라고 하였다.  위추부가 이 말을 듣고 크게 걱정했다.

이때 대부 용예(庸芮)가 위추부를 위해 태후에게 묻기를 : “사자(死者)에게도 지각이 있다고 생각합니까?”라고 하자.
선태후가 대답하기를 : “지각 같은 것은 없을 것이오.”라고 하였다.
용예가 묻기를 : “ 태후께서는 신령하여 죽은 사람에게는 지각이 없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

어찌하여 헛되이 생전에 총애했던 사람을 지각도 없는 사자를 위해 순장시키려는 것입니까.

만일 사자에게 지각이 있다면 선왕(先王: 진무왕)의 노여움은 매우 오랫동안 쌓였을 것입니다.

태후는 잘못을 속죄하기에도 바쁠 터인데 어느 겨를에 위추부를 총애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선태후가 대답하기를 : “그 말이 옳소.”라고 하며, 이내 이 일을 없는 일로 했다.]  진소양왕 42년(기원전 265),

 

 

※ 單 語 帳 .

 

劓[yì]코 벨 ; 의. 1. 코 베다 2. 베다 3. 자르다 4. 코 베는 형벌. [부수 刂 선칼도방]
拾[shí, jiè, shè]주울 ; 습. 열 ; 십. 바꿀 ; 겁. 오를 ; 섭. [부수 扌 재방변]
蒞[lì]다다를 리, 이. 1. 다다르다 2. 지위 3. 녹 4. 수목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 [부수 艹 초두머리]
餚[yáo]섞일 ; 효. 1. 어지럽다 2. 본받다 3. 안주 4. 뼈 붙은 살 [부수 飠 밥식변]
稠[chóu]빽빽할 ; 조. 많을 ; 주. 1. 농후하다 2. 움직이다 3. 고르다. [부수 禾 벼화]
聊[liáo]애오라지 ; 료 1. 부족하나마 그대로 2. 귀울다(이명나다) 3. 편안하다. [부수 耳 귀이]
聾[lóng]귀먹을 ; 롱. 1. 무지하다 2. 캄캄하다 3. 어리석다 4. 귀머거리. [부수 耳 귀이]
貂[diǎo]담비 ; 초. 1. 담비(족제빗과의 동물) 2. 담비 가죽 3. 담비 꼬리 [부수 豸 갖은돼지시변]
羸[léi]파리할 ; 리. 1. 핏기가 전혀 없다 2. 고달프다 3. 괴로워하다 4. 약하다. [부수 羊 양양]
橐[tuó]전대 ; 탁. 1. 주머니 2. 풀무(바람을 일으키는 제구) 3. 절구질 하는 소리. [부수 木 나무목]
紉[rèn]새끼 ; 인. 꼴 ; 근. 1. 볏집으로 꼬아 만든 줄 2. 실을 꿰다 3. 묶다 4. 찢다. [부수 糸 실사]
篋[qiè]상자 ; 협. 1. 상자 2. 좁고 긴 네모난 상자 [부수 竹 대죽]
樞[shū]지도리 ; 추. 나무 이름 ; 우. 1. 근원 2. 관건 3. 천자의 지위. [부수 木 나무목]
銜[xián]재갈 ; 함. 1. 직함 2. 관 3. 입에 물다 4. 마음에 품다 5. 느끼다 6. 원망하다. [부수 金 쇠금]
匍[pú]길 ; 포. 1. 기다 2. 기어가다 3. 갈다 4. 문지르다 5. 힘을 다하다. [부수 勹 쌀포몸]
棲[qī, xī]깃들일 ; 서. 1. 거처하다 2. 휴식하다 3. 저장하다 4. 침상 5. 바쁜 모양. [부수 木 나무목]
喻[yù]깨우칠 ; 유. 1. 깨우치다 2. 기뻐하다. [부수 口 입구]
煨[wēi, yù]묻은 불 ; 외. 1. 불씨 2. 재 3. (재에 묻어서)굽다 4. 익히다 5. 불타다. [부수 火 불화]
潞[lù]강 이름 ; 로. 1. 고을 이름 2. 지치다, 피로해지다 3. 여위다. [부수 氵 삼수변]
蠹[tán, dù]좀 ; 두. 1. 나무좀(좀먹어 해독을 끼치는 것) 2. 쐐기(애벌레) 3. 해치다. [부수 虫 벌레훼]
慄[lì]떨릴 ; 률. 1. 두려워하다 2. 비통해 하다 3. 소름이 끼치다. [부수 忄 심방변]
茜[qiàn, qiān, xī]꼭두서니 ; 천. 1. 꼭두서니 2. 빨강. [부수 艹 초두머리]
豺[chái]승냥이 ; 시. 1. 승냥이(갯과의 포유동물). [부수 豸 갖은돼지시변]
詈[lì]꾸짖을 ; 리. 1. 꾸짖다 2. 매도하다 3. 빗대어 욕하다. [부수 言 말씀언]
惋[wǎn]한탄할 ; 완. 1. 한하다 2. 탄식하다 3. 놀라다 4. 답답하다. [부수 忄 심방변]
弭[mǐ]활고자 ; 미. 그칠 ; 미. 1. 각궁 2. 잊다 3. 편안히 하다 4. 따르다. [부수 弓 활궁]
猁[lì]스라소니 ; 리. 1. 시라소니. [부수 犭 개사슴록변]
爇[ruò, xué]불사를 ; 설. 1. 불사르다 2. 사르다 3. 불타다. [부수 灬 연화발]
杼[zhù, shù]북 ; 저. 상수리나무 ; 서. 1. 북(베틀) 2. 벽, 담 3. 얇다 4. 말하다. [부수 木 나무목]
贄[zhì, zhí]폐백 ; 지. 움직이지 아니할 ; 얼. 1. 폐백 a. 움직이지 아니하다. [부수 貝 조개패]
怵[chù, xù]두려워할 ; 출. 꾈 ; 술. 1. 슬퍼하다 2. 달리다, 분주하다 a. 유혹하다. [부수 忄 심방변]
鬻[zhòu, lù ]죽 ; 죽. 팔 ; 육. 어릴 ; 육. 1. 묽은 죽 a. 팔다 b. 뽐내다 c. 양육하다. [부수 鬲 다리굽은솥력]
潰[kuì, huì]무너질 ; 궤. 바다 기운 ; 해. 1. 흩어지다 2. 어지럽다 3. 성취하다 4. 성내다. [부수 氵 삼수변]
癰[yōng]악창 ; 옹. 1. 고치기 힘든 부스럼 2. 종기 3. 등창 4. (코가)냄새를 맡지 못하다. [부수 疒 병질엄]

 

 

 

原 文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