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蘇秦列傳

第九. 蘇秦列傳(소진열전)

덕치/이두진 2021. 7. 19. 19:20

       史記 列傳

 

  第九 蘇秦列傳(소진열전)

 

 蘇秦者, 東周雒陽人也.  東事師於齊, 而習之於鬼谷先生.  出游數歲, 大困而歸.
 (소진자, 동주락양인야.  동사사어제, 이습지어귀곡선생.  출유수세, 대곤이귀.)


 ['소진'( ? ~ BC 284)은 동주의 "낙양" 사람이다. 

 스승을 찾아 동쪽의 제나라로 들어가 '귀곡'선생에게서 배웠다. 
 제후들에게 유세를 위해 몇 해를 떠돌아다녔지만 큰 어려움만 겪고 집으로 돌아왔다.]

 

 兄弟嫂妹妻妾竊皆笑之, 曰 : 「 周人之俗, 治産業, 力工商, 逐什二以爲務. 

 今子釋本而事口舌, 困, 不亦宜乎 ! 」
 (형제수매처첩절개소지, 왈 : 「 주인지속, 치산업, 력공상, 축십이이위무. 

 금자석본이사구설, 곤, 불역의호 ! 」)


 [형제와 형수, 누이, 처첩 등이 모두 은근히 그를 비웃으며 말하기를 :

 “ 주나라 사람들의 풍속은 농업을 주로하고 공업과 상업에 힘을 써서 2할의 이익을 추구하는데,
 지금 당신은 본업을  팽개치고 입과 혀를 놀리는 일만을 추구하고 있으니,

 곤궁한 처지를 당함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 "라고 하였다.]

 

 蘇秦聞之而慙, 自傷, 乃閉室不出, 出其書徧觀之. 

 曰 : 「 夫士業已屈首受書, 而不能以取尊榮, 雖多亦奚以爲 ! 」
 (소진문지이참, 자상, 내폐실불출, 출기서변관지. 

 왈 : 「 부사업이굴수수서, 이불능이취존영, 수다역해이위 ! 」)

 
 ['소진'이 그 말을 듣고 부끄럽게 여기며 스스로 상심하여 방안에 들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책들을 꺼내 모두 읽어보고 말하기를 : “ 무릇 선비라는 자가 머리를 숙여가면서 글을 배우고서도

높은 지위나 영예를 얻을 수 없다면 비록 많은 책을 읽었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 ” 하였다.]

 

 於是得周書《陰符》, 伏而讀之.  期年, 以出揣摩, 曰 :「 此可以說當世之君矣. 」

 求說周顯王.  顯王左右素習知蘇秦, 皆少之.  弗信.
 (어시득주서《陰符》, 복이독지.  기년, 이출췌마, 왈 : 차가이세당세지군의.  

 구설주현왕.  현왕좌우소습지소진, 개소지. 불신.)


 [그러던 중에 《주서》의 〈음부경(태공 '여상'이 지은 병법서)〉을 구하여 열심히 읽었다. 

 일 년이 지나서 남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는 법을 터득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 “ 이것으로써 나는 당대의 군주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는 우선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주나라 '현왕'을 유세하려고 했다.
 현왕의 측근들은 평소에 '소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 그를 대단치 않게 여기고 믿으려 하지 않았다.]

 

 西至秦.  秦孝公卒.  說惠王曰 : 秦四塞之國, 被山帶, 東有關河, 西有漢中, 南有巴蜀,

 北有代馬, 此天府也.  以<秦>士民之衆, 兵法之敎, 可以呑天下, 稱帝而治. 」 
 (내서지진.  진효공졸.  세혜왕왈 :「 진사색지국, 피산대위, 동유관하, 서유한중, 남유파촉,

 북유대마, 차천부야.  이<진>사민지중, 병법지교, 가이탄천하, 칭제이치. 」)

 

 [이에 주나라에서 박대를 받은 '소진'은 서쪽의 진나라로 갔다.  진나라는 '효공'이 죽었으므로

 그 아들 진 '혜왕'이 뒤를 잇고 있었다.
 '소진'은 '혜왕'을 만나 유세하기를 : “ 진나라는 사방이 막힌 나라로, 산이 둘러싸고 "위수"가 띠를 둘러

 동쪽에는 "함곡관"과 황하가 있고, 서쪽에는 "한중"이 있으며, 남쪽에는 "파"와 "촉"이 있고,

 북쪽에는 "대읍"과 "마읍"이 있어 이는 천연의 보고입니다. 

 이러한 천혜의 지리적인 이점을 이용하여 진나라의 백성과 선비들에게 병법을 가르친다면,

 가히 천하를 병탄하여 제왕이라 칭하며 다스릴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秦王曰 : 「 毛羽未成, 不可以高蜚 ; 文理未明, 不可以幷兼. 」 方誅商鞅, 疾辯士, 弗用. 

 乃東之趙.  趙肅侯令其弟成爲相, 號奉陽君.  奉陽君弗說之.
 (진왕왈 : “ 모우미성, 불가이고비 ; 문리미명, 불가이병겸. ”  방주상앙, 질변사, 불용. 

 내동지조.  조숙후령기제성위상, 호봉양군.  봉양군불열지.)


 [진왕이 대답하기를 : “ 새도 날개가 다 자라기 전에는 높이 날지 못하오 ;

 우리도 아직 문명의 이치가 밝지 못해 다른 나라를 병합하는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소. ”라고 했다.

 진나라는 이 무렵 '상앙'을 죽이고 변설에 능한 세객들을 미워하던 시기였으므로 '소진'을 등용하지 않았다. 

 이에 '소진'은 진나라를 떠나 동쪽의 조나라로 갔다. 
 당시 조나라는 '숙후'가 그 아우 '성'을 재상으로 삼고 '봉양군'이라 불렀다. 

 '봉양군'도 유세객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去游燕, 歲餘而後得見.  說燕文侯曰 : 「 燕東有朝鮮·遼東, 北有林胡·樓煩, 西有雲中·九原,

 南有嘑沱·易水, 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車六百乘, 騎六千匹, 粟支數年.

 南有碣石鴈門之饒, 北有棗栗之利, 民雖不佃作, 而足於棗栗矣.  此所謂天府者也. 

 夫安樂無事, 不見覆軍殺將, 無過燕者.  大王知其所以然乎 ?

 (거유연, 세여이후득현.  세연문후왈 : “ 연동유조선·요동, 북유림호·루번, 서유운중·구원,

 남유호타·역수, 지방이천여리, 대갑수십만, 거육백승, 기육천필, 속지수년.

 ​남유갈석안문지요, 북유조율지리, 민수불전작, 이족어조율의.  차소위천부자야. 

 부안락무사, 불견복군살장, 무과연자.  대왕지기소이연호 ?

 

 [조나라를 떠나 연나라에 들어간 '소진'은 일 년여가 지난 후에 연나라의 '문후'를 만날 수 있었다.

 '소진'이 연 '문후'에게 유세하기를 : “ 연나라는 동쪽으로 "조선"과 "요동"이 있고,

 ​북쪽으로는 "임호"와 "누번"이 있으며, 서쪽으로는 "운중"과 "구원"이 있고,

 남쪽으로는 "호타"와 "역수"가 있습니다.  땅은 사방 2천여 리요,  무장한 군사들은 수십 만에 달하고,

 6백 승의 병거에 6천기의 기병과 수년 치의 식량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남쪽으로는 "갈석"과 "안문"의 비옥한 평야가 있고, 북쪽으로는 대추와 밤의 수확이 있어서

 백성이 비록 밭 갈지 않아도 대추와 밤으로 풍족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하늘에서 준 부고(府庫)입니다.  대체로 안락하고 무사하여 전쟁에 패하여

 장수를 전사케 한 적이 없는 나라는 연나라 말고는 없습니다. 대왕께서는 그 연유를 아십니까 ?

 

 夫燕之所以不犯寇被甲兵者, 以趙之爲蔽其南也.  秦趙五戰, 秦再勝而趙三勝. 

 秦趙相斃, 而王以全燕制其後, 此燕之所以不犯寇也. 且夫秦之攻燕也, 踰雲中·九原, 過代·上谷,

 彌地數千里, 雖得燕城, 秦計固不能守也.  秦之不能害燕亦明矣.  

 (부연지소이불범구피갑병자, 이조지위폐기남야.  진조오전, 진재승이조삼승. 

 진조상폐, 이왕이전연제기후, 차연지소이부범구야. 차부진지공연야, 유운중·구원, 과대·상곡,

 미지수천리, 수득연성, 진계고불능수야.  진지불능해연역명의.  


 [무릇 연나라가 외적에 침범되지 않고 전화를 입지 않은 이유는 조나라가 연나라의 남쪽을 막아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나라와 조나라는 다섯 번 싸워 진나라가 두 번 이기고 조나라가 세 번 이겼습니다

 그래서 진나라와 조나라는 전쟁으로 인해 서로가 피폐해졌습니다.
 그러므로 왕께서는 온전한 연나라의 국력에 의지하여 조나라의 후방을 제압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연나라가 외적으로부터 침략을 당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대체로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려면 "운중"과 "구원"을 넘어서 "대읍"과 "상곡"을 통과하여

 연나라까지 수천리나 되는데, 비록 연나라 성을 얻는다고 하더라도 진나라에서는 도저히 지켜낼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진나라가 연나라를 침범할 수 없다는 또 하나의 명백한 이유입니다.

 

 今趙之攻燕也, 發號出令, 不至十日而數十萬之軍軍於東垣矣.  渡嘑沱, 涉易水,

 不至四五日而距國都矣.  故曰秦之攻燕也, 戰於千里之外 ; 趙之攻燕也, 戰於百里之內. 

 夫不憂百里之患, 而重千里之外, 計無過於此者.  

 是故願大王與趙從親, 天下爲一, 則燕國必無患矣.」

 (금조지공연야, 발호출령, 불지십일이수십만지군군어동원의.  도호타, 섭역수,

 불지사오일이거국도의.  고왈진지공연야, 전어천리지외 ; 조지공연야, 전어백리지내.

 부불우백리지환, 이중천리지외,  계무과어차자. 

 시고원대왕여조종친, 천하위일, 즉연국필무환의.)

 

[그러나 지금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할 경우에는 일단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열흘도 못되어 수십만의 군사를 "동원"에 집결시켜 "호타하"를 건너서 "역수"를 거쳐
 출발한지 4-5일 만에 연나라의 도성에 도달할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는 행위는 천리 밖에서 싸움을 하는 것이고,
 조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하는 행위는 백리 안에서 하는 싸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릇 조나라의 백리 안의 근심을 걱정하지 않고 진나라의 천리 밖의 근심을 걱정하는 것은

 이보다 더 큰 과오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로 해서 대왕께서는 조나라와 합종으로 친교를 맺어 천하가 합종책으로 하나가 되면

 연나라는 필시 외적으로부터 근심하는 일은 없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文侯曰 : 「 子言則可, 然吾國小, 西迫彊趙, 南近齊. 

 齊·趙彊國也, 子必欲合從以安燕, 寡人請以國從. 」
 (문후왈 : 「 자언즉가, 연오국소, 서박강조, 남근제. 

 제·조강국야, 자필욕합종이안연, 과인청이국종. 」)


 [연나라 '문후'가 말하기를 : “ 그대의 말이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작은나라이고,

 서쪽으로는 강한 조나라에 가깝고, 남쪽은 제나라에 근접해 있소.
 제나라와 조나라는 모두 강대국이오,  그대가 합종책으로 연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다고 한다면,

 과인은 나라를 그대에게 맡겨 그대의 말에 따르겠소. ”라고 했다.]  

 

 於是資蘇秦車馬金帛以至趙.  而奉陽君已死, 卽因說趙肅侯曰 : 

「 天下卿相人臣及布衣之士, 皆高賢君之行義, 皆願奉敎陳忠於前之日久矣.

 雖然, 奉陽君妬而君不任事, 是以賓客游士莫敢自盡於前者. 

 今奉陽君捐館舍, 君乃今復與士民相親也, 臣故敢進其愚慮.

 (어시자소진차마금백이지조.  이봉양군이사, 즉인세조숙후왈 :

 “ 천하경상인신급포의지사, 개고현군지행의, 개원봉교진충어전지일구의.

 수연, 봉양군투이군불임사, 시이빈객유사막감자진어전자. 

 금봉양군연관사, 군내금복여사민상친야, 신고감진기우려. 

 

 [이에 연 '문후'는 '소진'에게 거마와 황금과 비단을 주어 조나라에 가게 했다. 

 그때 조나라에는 '봉양군'이 이미 죽었으므로, '소진'은 즉시 조나라 '숙후'를 만나 유세하기를 :

 “ 천하의 공경대부와 재상, 남의 신하된 자, 벼슬하지 않은 선비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대왕의 정의로움을 높고 현명하다고 생각하여 모두가 앞에 나가 가르침을 받들어

 충성스러운 마음을 바치려고 원한지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비록 그러하나 '봉양군'이 어진 이를 질투하고 대왕께서 정사를 맡지 않아서 

 빈객이나 유세하는 선비가 감히 스스로 어전에 나와 의견을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봉양군이 세상을 떠남으로 해서 대왕께서 드디어 선비와 백성들과 친하게 되었으므로

 비로소 신이 감히 어리석은 의견이나마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竊爲君計者, 莫若安民無事, 且無庸有事於民也. 

 安民之本, 在於擇交, 擇交而得則民安, 擇交而不得則民終身不安.

 請言外患, 齊秦爲兩敵而民不得安, 倚秦攻齊而民不得安, 倚齊攻秦而民不得安. 

 故夫謀人之主, 伐人之國, 常苦出辭斷絶人之交也.  願君愼勿出於口. 

 (절위군계자, 막약안민무사, 차무용유사어민야. 

 안민지본, 재어택교, 택교이득즉민안, 택교이불득즉민종신불안. 

 청언외환, 제진위양적이민불득안, 의진공제이민불득안, 의제공진이민불득안. 

 고부모인지주, 벌인지국, 상고출사단절인지교야.  원군신물출어구. 


 [가만히 생각해 보면 대왕을 위한 계책으로는 백성을 편안히 하고 무사하게 하는 것보다 더 이상은 없습니다. 

 그러니 일을 벌려 백성들을 번거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백성들을 안정시키는 일이 외교의 근본입니다.  외교를 잘 선택하면 백성은 편할 수 있지만,

 외교를 잘못 선택하면 백성이 종신토록 평안하지 못할 것입니다.

 외환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제나라와 진나라 양국이 조나라의 적이 된다면 백성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진나라에 의지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과, 제나라에 의지하여 진나라를 공격하는 것 등은

 다 백성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 군주를 도모하거나 다른 나라의 

 영토를 정벌할 때는 항상 비밀이 새어 나가서 다른 나라와의 국교가 단절되어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그러니 입에서 비밀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조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請別白黑, 所以異陰陽而已矣.  君誠能聽臣, 燕必致旃裘狗馬之地, 齊必致魚鹽之海,

 楚必致橘柚之園, 韓·魏·中山皆可使致湯沐之奉, 而貴戚父兄皆可以受封侯. 

 夫割地包利, 五伯之所以覆軍禽將而求也 ; 封侯貴戚, 湯武之所以放弑而爭也. 

 今君高拱而兩有之, 此臣之所以爲君願也. 

 (청별백흑, 소이이음양이이의.  군성능청신, 연필치전구구마지지, 제필치어염지해,

 초필치귤유지원, 한·위·중산개가사치탕목지봉, 이귀척부형개가이수봉후. 

 부할지포리, 오백지소이복군금장이구야 ; 봉후귀척, 탕무지소이방시이쟁야. 

 금군고공이양유지, 차신지소이위군원야.


 [그리고 제가 대왕을 위해 이해득실을 흑백이나 음양(합종과 연횡)으로 분명히 구분해 드리겠습니다.

 만일 대왕께서 진실로 저의 충언을 들어주신다면, 연나라는 반드시 모직과 가죽, 개와 말을 생산하는 땅을

 바칠 것이고, 제나라는 물고기와 소금을 생산하는 그들의 해안 지방을 드릴 것이고,
 초나라에서는 귤과 유자가 나는 동산을 얻고, 한나라와 위나라와 중산등의 나라는 대왕과 비빈들을 위한

 탕목금(황제와 그 일족들을 위해 사용되는 경비)으로 그 땅을 떼어 바칠 것입니다. 

 그러면 대왕의 일족이나 부형들은 모두 봉읍을 받아 제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무릇 다른 나라의 땅을 빼앗아 그 이익을 거두는 것은, 오백(춘추오패)이 적군을 무찌르고 적장을 사로잡아서

 요구할 수 있었고 ; 임금의 일가족을 재후로 하는 것은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이 전왕조의 왕을 내쫓거나

 죽이고서 쟁취한 것입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이 두 가지를 팔짱을 낀 채로 가만히 앉아서 취할 수 있을 것이니,

 ​이래서 신이 대왕께 합종하기를 권하는 이유입니다.

 

 今大王與秦, 則秦必弱韓魏 ; 與齊, 則齊必弱楚魏.  魏弱則割河外, 韓弱則效宜陽,

 宜陽效則上郡絶, 河外割則道不通, 楚弱則無援.  此三策者, 不可不孰計也. 

 夫秦下軹道, 則南陽危 ; 劫韓包周, 則趙氏自操兵 ; 據衛取卷, 則齊必入朝秦. 

 秦欲已得乎山東, 則必擧兵而嚮趙矣.  秦甲渡河踰漳, 據番吾, 則兵必戰於邯鄲之下矣.  

 (금대왕여진, 즉진필약한위 ; 여제, 즉제필약초위.  위약즉할하외, 한약즉효의양,

 의양효즉상군절, 하외할즉도불통, 초약즉무원.  차삼책자, 불가불숙계야.   

 부진하지도, 즉남양위 ; 겁한포주, 즉조씨자조병 ; 거위취권, 즉제필입조진. 

 진욕이득호산동, 즉필거병이향조의.  진갑도하유장, 거파오, 즉병필전어한단지하의.

 

 [지금 대왕이 진나라와 함께하면 진나라는 반드시 한나라와 위나라를 약화시킬 것이고,

 제나라와 함께하면 제나라도 반드시 초나라와 위나라를 약화시킬 것입니다. 위나라가 약해지면

 황하 외곽의 땅을 진나라에 떼어줄 것이고, 한나라가 약해지면 "의양"을 진나라에 바칠 것입니다.  

 "의양"을 주면 조나라의 "상군"으로 가는 길이 끊어지고, 황하 외곽의 땅을 떼어주면 길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초나라가 약해지면 조나라를 도울 수가 없습니다.
 이 세 가지 방책에 대해서 심사숙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대체로 진나라가 "지도"(장안 동남쪽)로 내려오면 한나라 "남양"이 위태롭고, 한나라를 위협하고

 주나라를 포위한다면 그때는 조나라는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무기를 들고 일어서야만 합니다 ; 

 진나라가 위나라를 점거하여 "권성"을 취하게 되면 제나라는 반드시 진나라에 입조하게 될 것입니다.
 진나라가 "산동"에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조나라를 향해 군사를 진격시킬 것입니다.

 진나라의 무장한 군사들이 황하를 건너고 "장수"를 지나서 "파오"에 근거지를 두면

 병사들은 조나라 도성 "한단" 부근에서 싸우게 될 것입니다.

 

 此臣之所爲君患也.  當今之時, 山東之建國莫彊於趙.  趙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車千乘,

 騎萬匹, 粟支數年.  西有常山, 南有河漳, 東有淸河, 北有燕國. 燕固弱國, 不足畏也. 

 秦之所害於天下者莫如趙, 然而秦不敢擧兵伐趙者, 何也 ? 

 畏韓·魏之議其後也.  然則韓魏, 趙之南蔽也. 

 (차신지소위군환야.  당금지시, 산동지건국막강어조.  조지방이천여리, 대갑수십만, 거천승,

 기만필, 속지수년.  서유상산, 남유하장, 동유청하, 북유연국. 연고약국, 불족외야. 

 진지소해어천하자막여조, 연이진불감거병벌조자, 하야 ? 

 외한·위지의기후야.  연즉한위, 조지남폐야. 


 [이것이 제가 대왕을 위해 걱정하는 바입니다.  지금 산동 지역에는 조나라보다 강대한 나라는 없습니다. 

 ​조나라는 땅이 사방 2천 여리이고 무장 병력이 수십만에 달하며, 병거가 천승, 군마가 만필,

 군량은 수년을 버틸 수 있을 만큼 넉넉합니다.  서쪽에는 "상산"이 있고, 남쪽에는 황하와 "장수"가 있으며,

 동쪽에는 "청하"가 있고, 북쪽에는 연나라가 있습니다. 연나라는 본래 약한 나라로 두려워할 게 없습니다. 

 진나라는 천하통일에 해를 끼칠 나라로서 조나라 만한 나라가 없다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진나라가 군대를 일으켜 조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 

 그것은 한나라와 위나라가 그 배후를 위협할까 두려워서입니다.  
 그러고 보면 한나라와 위나라는 조나라의 남쪽 장벽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秦之攻韓魏也, 無有名山大川之限, 稍蠶食之, 傅國都而止.  韓魏不能支秦, 必入臣於秦. 

 秦無韓魏之規, 則禍必中於趙矣.  此臣之所爲君患也. 

 臣聞堯無三夫之分, 舜無咫尺之地, 以有天下 ; 禹無百人之聚, 以王諸侯 ;

 湯武之士不過三千, 車不過三百乘, 卒不過三萬, 立爲天子 : 誠得其道也.  

 (진지공한위야, 무유명산대천지한, 초잠식지, 부국도이지.  한위불능지진, 필입신어진. 

 진무한위지규, 즉화필중어조의.  차신지소위군환야.

 신문요무삼부지분, 순무지척지지, 이유천하 ; 우무백인지취, 이왕제후 ;

 탕무지사불과삼천, 거불과삼백승, 졸불과삼만, 입위천자 : 성득기도야. 


 [진나라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하는데 명산이나 대천 같은 장애물이 없으므로 서서히 그들의 국토를 잠식하여

 두 나라의 도성에 이르러야 그칠 것입니다. 한나라와 위나라가 진나라의 공격에 버틸 수 없음으로

 틀림없이 입조해서 진나라의 신하노릇을 할 것입니다 .
 진나라가 한나라와 위나라의 위협이 사라지게 되면 그 재앙은 반드시 조나라에 집중될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대왕을 위해 걱정하는 바입니다. 제가 듣기로는 요임금은 세 사람분의 땅인 삼백무도 없었고,

 순임금은 그나마 지척의 땅도 없었지만 천하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

 ​우임금은 백 사람 정도 사는 작은 촌락도 없었으나 제후들을 거느린 왕이 될 수 있었고 ;

 탕왕과 무왕은 무사가 3천에 지나지 않았고,  병거는 3백 대에 지나지 않았으며,

 병졸은 3만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천자가 되었습니다. 이들은 진실로 왕으로서의 참된 도리를 얻은 사람들입니다.

 

 是故明主外料其敵之彊弱, 內度其士卒賢不肖, 不待兩軍相當, 而勝敗存亡之機固已形於胸中矣,

 豈揜於衆人之言, 而以冥冥決事哉 !  臣竊以天下之地圖案之, 諸侯之地五倍於秦,

 料度諸侯之卒十倍於秦, 六國爲一, 幷力西鄕而攻秦, 秦必破矣.  今西面而事之, 見臣於秦. 

 (시고명주외료기적지강약, 내도기사졸현불초, 불대양군상당, 이승패존망지기고이형어흉중의,

 기엄어중인지언, 이이명명결사재 !  신절이천하지지도안지, 제후지지오배어진,

 요탁제후지졸십배어진, 육국위일, 병력서향이공진, 진필파의.  금서면이사지, 견신어진. 


 [그런 까닭으로 현명한 군주는 밖으로는 적의 강함과 약함을 헤아리고, 안으로는 자국의 사졸들의 어질고

 불초함을 분간하여 양군이 서로 충돌하기도 전에 승패와 존망의 기미가 이미 가슴 속에 떠오르는 것이니,

 어찌 일반 대중의 여론에 가려 분명하지 못한 태도로 국가의 대사를 결정할 수 있겠습니까 ?

 ​제가 가만히 천하의 지도를 보고 형세를 살펴보건대, 제후들의 땅은 진나라보다 다섯 배나 되고,

 제후들의 군졸을 헤아려 보니 진나라보다 열 배나 됩니다. 여섯 나라가 하나로 힘을 합하여 서쪽을 향해

 진나라를 공격한다면 진나라는 반드시 깨뜨릴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서쪽을 향해 섬긴다면 진나라의 신하가 될 것입니다.

 

 夫破人之與破於人也, 臣人之與臣於人也, 豈可同日而論哉 !  夫衡人者, 皆欲割諸侯之地以予秦.

 秦成, 則高臺榭, 美宮室, 聽竽瑟之音, 前有樓闕軒轅, 後有長姣美人, 國被秦患而不與其憂. 

 是故夫衡人, 日夜務以秦權恐愒諸侯以求割地, 故願大王孰計之也.

 (부파인지여파어인야, 신인지여신어인야, 기가동일이론재 !  부횡인자, 개욕할제후지지이여진.

 진성, 즉고대사, 미궁실, 청우슬지음, 전유루궐헌원, 후유장교미인, 국피진환이불여기우. 

 시고부횡인, 일야무이진권공개제후이구할지, 고원대왕숙계지야.

 

 [무릇 적을 쳐부수는 것과 적에 의해 파괴 당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신하로 삼는 것과

 다른 사람의 신하가 되는 것, 모두를 어찌 동시에 논할 수 있겠습니까 ? 

 ​대체로 여섯 나라가 진나라를 섬기자는 연횡론자는 모두 제후의 땅을 쪼개어 진나라에 바치고자 하는 자들입니다.

 진나라가 성공하게 되면 그들은 누대와 정자를 높이 짓고 화려하게 꾸민 궁실에서 생황과 거문고로 연주되는

 음악을 감상하면서 앞에는 누각과 수레가 있으며, 그 뒤에는 교태가 넘치는 미인들을 거느리고

 호사스러운 생활을 영위하게 됩니다.  제후의 나라들은 진나라에 의해 화를 입지만

 연횡론자들은 켤코 근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연횡론을 주장하면서 진나라의 권세에 기대어

 밤낮으로 제후들을 협박하여 그들로 하여금 땅을 떼어 바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대왕께서 이점을 깊이 생각해보시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臣聞明主絶疑去讒, 屛流言之迹, 塞朋黨之門, 故尊主廣地彊兵之計臣得陳忠於前矣. 

 故竊爲大王計, 莫如一韓魏齊楚燕趙以從親以畔秦.

 令天下之將相會於洹水之上, 通質, 刳白馬而盟. 

 要約曰 : 秦攻楚, 齊魏各出銳師以佐之, 韓絶其糧道, 趙涉河漳, 燕守常山之北. 

 (신문명주절의거참, 병류언지적, 색붕당지문, 고존주광지강병지계신득진충어전의. 

 고절위대왕계, 막여일한위제초연조이종친이반진.

 령천하지장상회어원수지상, 통질, 고백마이맹. 

 요약왈 : 진공초, 제위각출예사이좌지, 한절기량도, 조섭하장, 연수상산지북. 


 [제가 듣기로 현명한 군주는 일단 결심하면 의심하지 않고 참소를 물리치며 유언비어의 유포를 금지시키며

 붕당의 문을 막는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그 임금을 존중하고 영토를 넓히고 군대를 강하게 하는 

 계책을 신하들이 어전에서 충성스럽게 개진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신이 대왕을 위해 계책을 말씀드리자면, 한나라, 위나라, 제나라, 초나라, 연나라, 조나라가 합종하여

 진나라에 대항하는 그 이상의 방책은 없을 것입니다.

 천하의 재상과 장군들에게 명을 내려 "원수" 부근에 모이게 하여 서로 인질을 교환하고 백마를 베어

 그 피로 다음과 같이 맹세하도록 하십시오.
 즉 요점을 말하자면 : ‘진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한다면 제나라와 위나라는 각각 정예부대를 출동시켜 초나라를 

 돕고, 한나라는 진나라 군대의 군량 조달로를 끊으며, 조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황하"와 "장수"를 건너 

 진격시키고, 연나라는 "상산"의 북쪽을 굳게 지키도록 하면 될 것입니다.

 

 秦攻韓魏, 則楚絶其後, 齊出銳師而佐之, 趙涉河漳, 燕守雲中. 

 秦攻齊, 則楚絶其後, 韓守城皐, 魏塞其道, 趙涉河漳·博關, 燕出銳師以佐之.

 秦攻燕, 則趙守常山, 楚軍武關, 齊涉勃海, 韓魏皆出銳師以佐之. 

 秦攻趙, 則韓軍宜陽, 楚軍武關, 魏軍河外, 齊涉淸河, 燕出銳師以佐之.

 (진공한위, 즉초절기후, 제출예사이좌지, 조섭하장, 연수운중. 

 진공제, 즉초절기후, 한수성고, 위색기도, 조섭하장박관, 연출예사이좌지.

 진공연, 즉조수상산, 초군무관, 제섭발해, 한위개출예사이좌지. 

 진공조, 즉한군의양, 초군무관, 위군하외, 제섭청하, 연출예사이좌지.


 [만일 진나라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공격한다면 초나라는 진군의 배후를 끊고, 제나라는 정예군을 보내

 한나라와 위나라를 돕고, 조나라는 황하와 장수를 건너며, 연나라는 "운중"을 지키게 합니다.

 또 만약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한다면 초나라는 역시 진군의 배후를 끊고, 한나라는 "성고"를 굳게 지키며,

 ​위나라는 그 길을 막고, 조나라는 그 군사를 일으켜 장수와 하수를 건너 "박관"으로 출동시키며

 연나라는 정예군을 출동시켜 제나라를 돕도록 합니다.

 또한 만일 진나라가 연나라를 공격한다면 조나라는 "상산"을 지키고, 초나라는 "무관"에 군영을 세우며,

 제나라는 발해를 건너고, 한나라와 위나라는 정예군을 보내 연나라를 돕습니다. 

 다시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면, 한나라는 "의양"에 진을 치고, 초나라는 "무관"에 진을 치며,
 위나라는 황하 외곽에 군대를 주둔시키고, 제나라는 "청하"를 건너 군대를 주둔시키며,

 연나라는 정예부대를 보내 조나라를 도울 것입니다.

 

 諸侯有不如約者, 以五國之兵共伐之.  六國從親以賓秦, 則秦甲必不敢出於函谷以害山東矣. 

 如此, 則霸王之業成矣. 」
 (제후유불여약자, 이오국지병공벌지.  육국종친이빈진, 즉진갑필불감출어함곡이해산동의. 

 여차, 즉패왕지업성의. 」)


 [제후들 중에 맹약을 이행치 않는 자가 있다면 나머지 다섯 나라는 공동으로 군사를 일으켜 토벌할 것입니다.

 여섯 나라가 합종을 행하여 공동으로 진나라에 대항한다면,
 진나라의 군대는 필경 "함곡관"을 나와 "산동"을 침범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된다면 패왕의 위업은 성취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趙王曰 :「 寡人年少, 立國日淺, 未嘗得聞社稷之長計也.  今上客有意存天下, 安諸侯,

 寡人敬以國從. 」  乃飾車百乘, 黃金千溢, 白璧百雙, 錦繡千純, 以約諸侯.

 是時周天子致文武之胙於秦惠王.  惠王使犀首攻魏, 禽將龍賈, 取魏之雕陰, 且欲東兵. 

 蘇秦恐秦兵之至趙也, 乃激怒張儀, 入之于秦. 

 (조왕왈 : 「 과인년소, 입국일천, 미상득문사직지장계야.  금상객유의존천하, 안제후,

 과인경이국종. 」  내식차백승, 황금천일, 백벽백쌍, 금수천순, 이약제후.

 시시주천자치문무지조어진혜왕.  혜왕사서수공위, 금장용고, 취위지조음, 차욕동병. 

 소진공진병지지조야, 내격노장의, 입지우진.)


 [조왕(숙후)이 듣고 말하기를 : " 과인은 나이가 어리고,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되므로 아직 사직을 지킬 수 있는

 장기 계획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지금 상객께서 천하를 보존하고 제후국들을 안정시키려고 하시니

 과인은 이 나라를 대신해 공경히 그대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조'숙후'는 '소진'에게 장식한 수레 백승, 황금 천일, 백옥 백쌍, 수를 놓은 비단 천 필을 주고,

 제후들에게도 선물하여 합종을 맹약하게 하였다.

 이때 주나라 천자는 선조 '문왕'과 '무왕'의 제사에 쓴 고기를 진나라 '혜왕'에게 하사하고

 진나라를 특별히 대우하였다.  '혜왕'은 '서수'를 시켜 위나라를 공격하여 장군 '용고'를 사로잡고

 위나라의 "조음"을 점령한 후 계속 동쪽으로 진격하려고 하였다.  '소진'은 진나라 군대가 조나라를 공격할 경우

 합종이 와해 될 것을 우려하여, 이에 '장의'를 격분케 하여 진나라에 들어가도록 했다.]


 於是說韓宣王曰 : 「 韓北有鞏成臯之固, 西有宜陽商阪之塞, 東有宛穰洧水, 南有陘山,

 地方九百餘里, 帶甲數十萬, 天下之彊弓勁弩皆從韓出. 谿子·少府時力·距來者, 皆射六百步之外.

 韓卒超足而射, 百發不暇止, 遠者括蔽洞胸, 近者鏑弇心.

 (어시세한선왕왈 : 「 한북유공성고지고, 서유의양상판지새, 동유완양유수, 남유형산,

 지방구백여리, 대갑수십만, 천하지강궁경노개종한출. 계자·소부시력·거래자, 개사육백보지외. 

 한졸초족이사, 백발불가지, 원자괄폐동흉, 근자적엄심. 

 ['소진'이 한나라에 들어가 한'선왕'을 보고 합종의 필요성에 대하여 유세하기를 :" 한나라는 북쪽에 

 "공"과 "성고"라는 견고한 요새지가 있고, 서쪽에는 "의양"과 "상판" 같은 험지의 요새가 있으며, 

 동쪽에는 "완"과 "양" 두 읍과 "유수"가 흐르고,  남쪽에는 "형산"이 있으며, 면적은 사방이  9백여 리에 달하고,

 ​무장한 병사는 수십만에 이르며, 세상에서 제일 강한 활과 쇠뇌는 모두 한나라에서 만들어집니다.

 계자족의 쇠뇌와 "소부"에서 생산되는 시력(양궁)과 거래(양궁)의 쇠뇌는 모두 6백보 밖을 쏠 수 있을 정도로

 성능이 좋습니다.  또 한나라 군사들은 다리 받침대를 이용하여 연속해서 100발의 화살을 쇠뇌에서

 발사할 수 있습니다. 원거리에 맞힌 것도 화살 끝이 갑옷을 뚫고 가슴에 박히고,

 ​가까이 있는 적을 향해 발사하면 화살은 적군의 심장을 관통하여 화살 끝이 보이지 않게 됩니다.

 

 韓卒之劍戟, 皆出於冥山棠谿墨陽合賻鄧師宛馮龍淵太阿, 皆陸斷牛馬, 水截鵠鴈,

 當敵則斬堅甲鐵幕, 革抉, 瞂芮, 無不畢具. 以韓卒之勇, 被堅甲, 蹠勁弩, 帶利劍, 一人當百,

 不足言也.  夫以韓之勁與大王之賢, 乃西面事秦, 交臂而服, 羞社稷而爲天下笑, 無大於此者矣. 

 是故願大王孰計之. 

 (한졸지검극, 개출어명산당계묵양합부등사완풍룡연태아, 개육단우마, 수절곡안,

 당적즉참견갑철막, 혁결, 벌예, 무불필구. 이한졸지용, 피견갑, 척경노, 대리검, 일인당백,

 불족언야.  부이한지경여대왕지현, 내서면사진, 교비이복, 수사직이위천하소, 무대어차자의. 

 시고원대왕숙계지. 


 [한나라 병사들이 소지하고 있는 칼과 창은 "명산", "당계", "묵양", "합부", "등사", "완풍", "용연", "태아"에서

 만들어지며, 모두 육지에서는 소와 말을 자르고, 물에서는 고니나 기러기를 베며,

 적병을 만나면 견고한 갑옷이나 쇠 방패를 쪼개고, 가죽 활걸이, 방패끈 등 구비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용감한 한나라 병사가 견고한 갑옷을 입고 강력한 쇠뇌를 메고 날카로운 칼을 차고 있으면

 한 사람이 백명을 당해 낼 수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닙니다.
 무릇 한나라의 강한 군사력과 대왕의 현명함에도, 서쪽을 향해 진나라를 섬겨 두 팔을 마주잡고 복종하는 것은

 나라의 수치이며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이니 이보다 더 큰 치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컨대 대왕께서는 깊이 헤아리기 바랍니다.

  

 大王事秦, 秦必求宜陽成皐.  今玆效之, 明年又復求割地. 

 與則無地以給之, 不與則弃前功而受後禍. 且大王之地有盡而秦之求無已,

 以有盡之地而逆無已之求, 此所謂市怨結禍者也, 不戰而地已削矣. 
 (대왕사진, 진필구의양성고.  금자효지, 명년우복구할지. 

 여즉무지이급지, 불여즉기전공이수후화. 차대지지유진이진지구무이,

 이유진지지이역무이지구, 차소위시원결화자야, 불전이지이삭의.

 [만일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긴다면, 진나라는 반드시 "의양"과 "성고"를 요구할 것입니다. 

 금년에 이것을 주면 내년에는 또 다른 땅을 요구할 것입니다.
 계속 땅을 주다보면 결국 줄 땅이 없어질 것이고, 주지 않으면 예전의 공은 모두 없어지고,

 오히려 뒷날 침략의 화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장차 대왕의 토지는 점점 줄어들기만 할 것이며 진나라의 요구는 끝이 없을 것이니,

 한정된 땅을 가지고 끝없는 진나라의  요구에 응하는 것이야 말로, 이른바 원한을 사고 재앙을 불러들이게

 되는 일입니다. 결국 한나라는 싸워보지도 못하고 땅만 줄어들 것입니다.

 

 臣聞鄙諺曰 : ‘寧爲雞口, 無爲牛後.’  今西面交臂而臣事秦, 何異於牛後乎 ? 

 夫以大王之賢, 挾彊韓之兵, 而有牛後之名, 臣竊爲大王羞之. 」

 於是韓王勃然作色, 攘臂瞋目, 按劍仰天太息曰 :

「 寡人雖不肖, 必不能事秦.  今主君詔以趙王之敎, 敬奉社稷以從. 」 

 (신문비언왈 : ‘녕위계구, 무위우후.’  금서면교비이신사진, 하이어우후호 ? 

 부이대왕지현, 협강한지병, 이유우후지명, 신절위대왕수지. 」

 어시한왕발연작색, 양비진목, 안검앙천태식왈 :

「 과인수불초, 필불능사진.  금주군조이조왕지교, 경봉사직이종. 」)


 [신이 들은 속담에 이르기를 ‘차라리 닭의 부리가 될 지언정 소의 꼬리는 되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서쪽을 향해 두 손을 맞잡고 진나라를 신하의 예로서 섬긴다면,

 이것이 바로 소의 꼬리가 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 

 대체로 대왕의 현명함과 한나라의 강력한 군사력를 가지고 소의 꼬리가 된다는 오명을 쓰는 것은,

 신이 가만히 생각하기에 이는 대왕께서도 부끄러워 해야 할 일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한나라 왕은 발끈하며 얼굴을 붉히고, 팔을 걷어 부치고 눈을 부라리며, 칼을 어루만지고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쉬며 말하기를 : “과인이 비록 못났지만 결코 진나라를 섬기지는 않을 것이오.

 이제 그대로부터 조왕의 가르침을 들었으니 한나라 사직을 받들어 그대가 주창하는 합종을 따르기로 하겠소. ”

 라고 하였다.

 

 又說魏襄王曰 : 「 大王之地, 南有鴻溝陳汝南許郾昆陽召陵舞陽新都新郪, 東有淮潁煮棗無胥,

 西有長城之界, 北有河外卷衍酸棗, 地方千里. 地名雖小, 然而田舍廬廡之數, 曾無所芻牧. 

 人民之衆, 車馬之多, 日夜行不絶, 輷輷殷殷, 若有三軍之衆.  臣竊量大王之國不下楚.  

 (우세위양왕왈 : 「 대왕지지, 남유홍구진여남허언곤양召소릉무양신도신처, 동유회영자조무서,

 서유장성지계, 북유하외권연산조, 지방천리.  지명수소, 연이전사려무지수, 증무소추목. 

 인민지중, 거마지다, 일야행불절, 횡횡은은, 약유삼군지중.  신절량대왕지국불하초.  


 [또 '소진'이 위나라로 들어가 위'양왕'에게 합종의 필요성에 대하여 유세하기를 :

 " 대왕의 땅은 남쪽으로 "홍구", "진", "여남", "허", "언", "곤양", "소릉", "무양", "신도", "신처"가 있고,

 동쪽으로는  "회수"와 "영수"와 "자조"와 "무서"가 있고,  서쪽으로는 "장성"을 경계로 하고,
 북쪽으로는 "하외", "권", "연", "산조"에 이르러 그 넓이는 사방으로 천리에 뻗쳐 있습니다.

 비록 지역이 좁다고 하지만 마을과 집들이 밀집해 있어 목축을 할 땅이 없을 정도입니다.

 백성들도 많고 수레와 말이 많아서 밤낮으로 왕래하여 끊이질 않고,
 그 지나가는 소리는 마치 삼군이 행군할 때 내는 굉음과 같습니다. 

 신이 가만히 헤아려보니 대왕의 나라는 결코 초나라와 비교해 봐도 뒤지지 않습니다.

 

 然衡人怵王交彊虎狼之秦以侵天下, 卒有秦患, 不顧其禍. 

 夫挾彊秦之勢以內劫其主, 罪無過此者.  魏天下之彊國也 ; 王天下之賢王也. 

 今乃有意西面而事秦, 稱東藩, 築帝宮, 受冠帶, 祠春秋, 臣竊爲大王恥之. 

 臣聞越王句踐戰敝卒三千人, 禽夫差於干遂 ; 武王卒三千人, 革車三百乘, 制紂於牧野 :

 (연횡인출왕교강호랑지진이침천하, 졸유진환, 불고기화. 

 부협강진지세이내겁기주, 죄무과차자.  위천하지강국야 ; 왕천하지현왕야.

 금내유의서면이사진, 칭동번, 축제궁, 수관대, 사춘추, 신절위대왕치지. 

 신문월왕구천전폐졸삼천인, 금부차어간수 ; 무왕졸삼천인, 혁거삼백승, 제주어목야 :

 

 [그러나 진나라와의 연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왕을 유혹하여 호랑이나 이리처럼 흉악한 진나라가 천하를

 침략하려는데도 그런 진나라를 받들라 하며, 마침내는 진나라의 침략을 받을 우환이 있는데도그 재앙을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완강한 진나라의 세력을 업고 안으로 그 군주를 위협하니 이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위나라는 천하의 강국이고 대왕은 천하의 어진 임금입니다.

 그런데 지금 위나라는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기고 그 동쪽 울타리가 되어 황제의 궁궐을 짓고,

 진나라의 의관과 속대를 받아서, 진나라 종묘의 봄 가을 제사를 받들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신이 대왕을 위해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 여겨집니다. 

 신이 듣기로는 월왕 '구천'은 전투에 지친 군졸 3천명을 이끌고 오왕 '부차'를 "간수에"서 사로잡았고,

 주나라 '무왕'은 군사 3천명과 병거 3백승을 가지고 은나라 '주왕'을 "목야"에서 제압했다고 합니다.

 

 豈其士卒衆哉, 誠能奮其威也.  今竊聞大王之卒, 武士二十萬, 蒼頭二十萬, 奮擊二十萬,

 廝徒十萬, 車六百乘, 騎五千匹.  此其過越王句踐武王遠矣. 今乃聽於羣臣之說而欲臣事秦. 

 夫事秦必割地以效實, 故兵未用而國已虧矣. 凡羣臣之言事秦者, 皆姦人, 非忠臣也.  

 (개기사졸중재, 성능분기위야.  금절문대왕지졸, 무사이십만, 창두이십만, 분격이십만,

 시도십만, 거육백승, 기오천필.  차기과월왕구천무왕원의. 금내청어군신지설이욕신사진. 

 부사진필할지이효실, 고병미용이국이휴의. 범군신지언사진자, 개간인, 비충신야.


 [이것이 어찌 군사의 수가 많아서 이긴 것이겠습니까 ?  이는 바로 자신들의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신이 가만히 대왕의 군사들을 헤아려보건대 무장한 군사가 20만, 무적의 창두군이 20만,

 돌격부대가 20만, 잡역부가 10만이며, 병거가 6백승이고 군마는 오천필을 보유하시고 계십니다. 

 ​이것은 월왕 '구천'이나 주'무왕'의 병력을 훨씬 능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대왕께서는 군신들의 말을 듣고 신하의 신분으로 진나라를 받들려고 하십니다. 

 무릇 진나라를 받들게 된다면 진나라는 필시 대왕께 땅을 분할해 바쳐 성의를 표시토록 할 것입니다.

 이는 싸움을 해보지도 않고 국토가 쪼개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나라를 섬기자고 말하는 신하들은 모두 다 간신이지 충신이 아닙니다.

 

 夫爲人臣, 割其主之地以求外交, 偸取一時之功而不顧其後, 破公家而成私門,

 外挾彊秦之勢以內劫其主, 以求割地, 願大王孰察之.  周書曰 : 『 緜緜不絶, 蔓蔓柰何 ? 

 豪氂不伐, 將用斧柯. 』  前慮不定, 後有大患, 將柰之何 ?  大王誠能聽臣, 六國從親,

 專心幷力壹意, 則必無彊秦之患.  故敝邑趙王使臣效愚計, 奉明約, 在大王之詔詔之. 」 

 (부위인신, 할기주지지이구외교, 투취일시지공이불고기후, 파공가이성사문,

 외협강진지세이내겁기주, 이구할지, 원대왕숙찰지.  주서왈 : 『 면면불절, 만만내하 ? 

 호리불벌, 장용부가. 』  전려불정, 후유대환, 장내지하 ?  대왕성능청신, 육국종친,

 전심병력일의, 즉필무강진지환. 고폐읍조왕사신효우계, 봉명약, 재대왕지조조지. 」)  


 [무릇 신하된 자가 그 군주로 하여금 자기 나라의 땅을 쪼개주고 외교를 구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일시적인

 공만을 취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후환은 돌아보지 못하며, 그들은 공실을 무너뜨려 사사로운 가문의 성공을 꾀하고,

 외부의 강력한 진나라의 위세에 의지하여 안으로 자신의 임금을 위협하여 땅을 쪼개 주자고 하니,

 ​원컨대 대왕께서는 깊이 살피시기 바랍니다.

  《주서》에 이르기를, ‘미미할때 끊지 못하면 덩굴진 후에 어찌하리 ? 

 터럭같이 작을때 베지 못하면 장차 도끼를 써야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사전에 생각을 정하지 않으면 후에 큰 근심이 될 것이니 그 때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 

 대왕께서는 진실로 신의 말을 받아들이신다면, 여섯 나라가 합종으로 친교를 맺어 전심전력으로 한 뜻이 된다면

 그때는 틀림없이 강한 진나라에 대한 걱정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왕께서는 신을 보내어 어리석으나마 계책을 바치고 맹약을 맺어 받들고자 하여

 대왕의 분명한 의사를 듣고 오도록 하셨습니다. "라고 하였다.] 

 

 魏王曰 :「 寡人不肖, 未嘗得聞明敎.  今主君以趙王之詔詔之, 敬以國從. 」
 
(위왕왈 : 「 과인불초, 미상득문명교.  금주군이조왕지조조지, 경이국종. 」


 [위왕이 말하기를 : " 과인이 불초하여 아직 이와 같은 훌륭한 가르침을 받아 본 적이 없었소.  지금 그대를 통해

 조왕의 말씀을 들었으니 내 나라의 백성을 대신하여 공경히 그대의 권고를 따르겠소. ”라고 하였다.]
 

 因東說齊宣王曰 : 「 齊南有泰山, 東有琅邪, 西有淸河, 北有勃海, 此所謂四塞之國也. 

 齊地方二千餘里, 帶甲數十萬, 粟如丘山. 三軍之良, 五家之兵, 進如鋒矢, 戰如雷霆, 解如風雨.

 卽有軍役, 未嘗倍泰山, 絶淸河, 涉勃海也, 臨菑之中七萬戶. 

 (인동세제선왕왈 : 「 제남유태산, 동유낭야, 서유청하, 북유발해, 차소위사새지국야. 

 제지방이천여리, 대갑수십만, 속여구산.  삼군지량, 오가지병, 진여봉시, 전여뢰정, 해여풍우. 

 즉유군역, 미상배태산, 절청하, 섭발해야, 임치지중칠만호. 


 [위나라를 떠난 '소진'은 이어서 동쪽의 제나라로 들어가서 제'선왕'을 만나 합종에 대해 유세하기를 :

 " 제나라의 남쪽에는 "태산"이 있고, 동쪽에는 "낭야산"이 있으며, 서쪽에는 "청하"가 있고,

 ​북쪽에는 "발해"가 있어 이것은 이른바 사방이 모두 요새인 나라입니다. 제나라의 땅은 사방 2천 여리에 달하고,

 무장한 군사들은 몇 십만에 달하고, 군량미는 마치 산더미처럼 많이 비축되어 있습니다.

 삼군의 정예군과 오가(예비병)의 병은 전진할때에는 화살처럼 빠르며, 싸움에 임해서는 천둥과 번개 같고,

 흩어질 때는 비바람처럼 신속하게 후퇴합니다.  곧 전쟁이 난다해도 "태산"을 넘거나

 "청하"와 "발해"를 건너지는 못할 것입니다.  또한 제나라 도읍 "임치"에는 7만호가 살고 있습니다.

 

 臣竊度之, 不下戶三男子, 三七二十一萬, 不待發於遠縣, 而臨菑之卒固已二十一萬矣. 

 臨菑甚富而實, 其民無不吹竽鼓瑟, 彈琴擊筑, 鬪雞走狗, 六博蹋鞠者. 

 臨菑之塗, 車轂擊, 人肩摩, 連衽成帷, 擧袂成幕, 揮汗成雨, 家殷人足, 志高氣揚. 

 夫以大王之賢與齊之彊, 天下莫能當.  今乃西面而事秦, 臣竊爲大王羞之. 

 (신절탁지, 불하호삼남자, 삼칠이십일만, 불대발어원현, 이임치지졸고이이십일만의. 

 임치심부이실, 기민무불취우고슬, 탄금격축, 투계주구, 육박답국자. 

 임치지도, 거곡격, 인견마, 연임성유, 거몌성막, 휘한성우, 가은인족, 지고기양. 

 부이대왕지현여제지강, 천하막능당.  금내서면이사진, 신절위대왕수지. 


 [제가 가만히 헤아려보니 매 호마다 남자 세 명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21만이 됩니다. 

 구태여 멀리 떨어져 있는 현이나 읍에서 군사를 징발하지 않아도 "임치"의 백성들만으로 21만 명의 군사를

 동원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임치"는 매우 부유하고 성실하여 백성들은 생황을 불고 비파를 타며 

 거문고를 연주하고 축을 두들기며 즐깁니다.  

 또한 닭싸움과 개의 경주 즐기며 윷놀이와 공차기 등을 하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

 "임치성"의 거리는 수레는 서로 지나가다 바퀴통이 서로 부딪치고, 사람들은 어깨를 스칠 정도로 번잡하며

 사람들의 옷깃은 서로 이어져 휘장을 이루고, 옷소매를 들면 장막이 되고 사람들이 흘리는 땀은

 비가 오는 것 같으며, 가정은 번창하고 사람마다 만족하여 사기가 올라 있습니다. 

 무릇 대왕의 현명함과 제나라의 강성함은 천하에 능히 당할 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 대왕께서 서쪽을 바라보며 진나라를 섬기려 하는 것은,
 신이 가만히 생각할 때 대왕께서도 수치스러움을 느낄 것이라 여겨집니다.

 

 且夫韓魏之所以重畏秦者, 爲與秦接境壤界也.  兵出而相當, 不出十日而戰勝存亡之機決矣. 

 韓魏戰而勝秦, 則兵半折, 四境不守 ; 戰而不勝, 則國已危亡隨其後.

 是故韓魏之所以重與秦戰, 而輕爲之臣也.  今秦之攻齊則不然. 

 倍韓·魏之地, 過衛陽晉之道, 徑乎亢父之險, 車不得方軌, 騎不得比行, 百人守險, 千人不敢過也.

 (차부한위지소이중외진자, 위여진접경양계야.  병출이상당, 불출십일이전승존망지기결의. 

 한위전이승진, 즉병반절, 사경불수 ; 전이불승, 즉국이위망수기후.

 시고한위지소이중여진전, 이경위지신야.  금진지공제즉불연. 

 배한·위지지, 과위양진지도, 경호항보지험, 거불득방궤, 기불득비행, 백인수험, 천인불감과야.


 [한나라와 위나라가 진나라를 두렵게 생각하는 이유는 진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인데,

 양국의 군대가 출병하여 전쟁을 벌인다면 불과 열흘도 되지 않아 승패가 결정되어 국가 존망이 결정될 것입니다. 

 또한 한나라와 위나라가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다 해도 병력의 절반이 꺾이게 되어,

 ​사면의 국경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더욱이 두 나라가 싸움에서 지기라도 한다면 곧 두 나라는 위태롭게 되고

 멸망이 그 뒤를 따를 것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한나라와 위나라가 진나라와 전쟁을 벌리기에는 그 처지가 매우 곤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진나라의 신하가 되는 일을 쉽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는 행위는 한나라의 경우와 다릅니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공격하려면 진나라는 한나라와 위나라의 땅을 뒤로 하고 위나라의 "양진"으로 가는 길을 지나

 "항보"의 험준한 지역을 질러 가야 하는데, 그 곳은 좁은 길로 인해 병거는 서로 교차할 수 없으며,

 ​기병은 나란히 서서 행군할 수 없으므로, 백 명의 군사가 그 험준함을 이용하여 지킨다면 천 명의 군사라도

 감히 통과하지 못 할 것입니다.

 

 秦雖欲深入, 則狼顧, 恐韓魏之議其後也.  是故恫疑虛猲, 驕矜而不敢進, 則秦之不能害齊亦明矣.

 夫不深料秦之無柰齊何, 而欲西面而事之, 是羣臣之計過也.

 今無臣事秦之名而有彊國之實, 臣是故願大王少留意計之. 」 

 ​齊王曰 :「 寡人不敏, 僻遠守海, 窮道東境之國也, 未嘗得聞餘敎. 

 今足下以趙王詔詔之, 敬以國從.」

 (진수욕심입, 즉랑고, 공한위지의기후야.  시고통의허갈, 교긍이불감진, 즉진지불능해제역명의. 

 부불심료진지무내제하, 이욕서면이사지, 시군신지계과야.

 금무신사진지명이유강국지실, 신시고원대왕소류의계지. 」

 제왕왈 : 「 과인불민, 벽원수해, 궁도동경지국야, 미상득문여교.  금족하이조왕조조지, 경이국종. 」


 [진나라가 비록 제나라 깊숙이 침입하고 싶어도, 후퇴할 때를 생각하여 이리처럼 뒤를 돌아보게 되고

 한나라와 위나라가 그 배후에서 공격하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런 까닭에 진나라는 속으로 두렵고 의심스러우면서도 겉으로는 허세를 부리고 공갈을 일삼으며

 교만하게 굴면서도 감히 전진하지 못합니다. 이를 보아도 진나라가 제나라를 침략하지 못할 것은 명백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나라가 제나라를 어찌할 수 없다는 명백한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서쪽을 향해 진나라를 섬기자고 간하는 신하들의 계책은 분명히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제나라는 진나라를 섬긴다는 오명을 쓰지 않고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실리를 얻을 수 있으니,
 신은 원컨데 대왕께서 조금만 유의하시어 이해를 따져 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제나라 왕이 말하기를 : “ 과인이 둔하고 어리석어 멀리 떨어진 변방에서 바다만 지키며,

 더 갈 데도 없는 동쪽의 나라라 아직까지 그대와 같은 고매한 사람의 가르침을 얻어 들을 수 없었소.

 지금 그대를 통해 조왕의 말씀을 들었으니 내 나라의 백성을 대신하여

 공경히 그대의 권고를 따르겠소. ”라고 하였다. ]
 

 乃西南說楚威王曰 : 「 楚, 天下之彊國也 ; 王, 天下之賢王也. 

 西有黔中巫郡, 東有夏州海陽, 南有洞庭蒼梧, 北有陘塞郇陽.  

 地方五千餘里, 帶甲百萬, 車千乘, 騎萬匹, 粟支十年.  此霸王之資也. 

 夫以楚之彊與王之賢, 天下莫能當也. 今乃欲西面而事秦, 則諸侯莫不西面而朝於章臺之下矣.

 (내서남세초위왕왈초 : 「 초, 천하지강국야 ; 왕, 천하지현왕야. 

 서유검중무군, 동유하주해양, 남유동정창오, 북유형색순양.

 지방오천여리, 대갑백만, 차천승, 기만필, 속지십년.  차패왕지자야. 

 부이초지강여왕지현, 부이초지강여왕지현.  금내욕서면이사진, 즉제후막불서면이조어장대지하의. 


 ['소진'은 이어서 서남쪽의 초나라로 가서 초'위왕'을 만나 합종에 대해 유세하기를 :

 " 초나라는 천하의 강국이며 ; 대왕께서는 천하의 현명한 임금이십니다.
 서쪽에는 "검중"과 "무군"이 있고, 동쪽에는 "하주"와 "해양"이 있으며,

 남쪽에는 "동정"과 "창오"가 있고, 북쪽에는 "형색"와 "순양"이 있습니다.

 영토는 사방 오천 여리에 달하고, 무장 병력은 백만이며, 병거는 천 승에다 기마는 만필로 비축한 식량은

 10년을 버틸 수 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패왕이 되기에 충분한 자산입니다. 

 무릇 초나라의 강함과 대왕의 현명함으로 초나라에 대항할 나라는 천하에 없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대왕께서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기려 한다면,

 천하의 제후들도 서쪽을 향해 감히 진나라 "함양"의 장대궁에 입조하지 않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秦之所害莫如楚, 楚彊則秦弱, 秦彊則楚弱, 其勢不兩立.  故爲大王計, 莫如從親以孤秦. 

 大王不從[親], 秦必起兩軍, 一軍出武關, 一軍下黔中, 則鄢郢動矣.

 臣聞治之其未亂也, 爲之其未有也.  患至而后憂之, 則無及已.  故願大王蚤孰計之.
 (진지소해막여초, 초강즉진약, 진강즉초약, 기세불양립.  고위대왕계, 막여종친이고진. 

 대왕불종친, 진필기양군, 일군출무관, 일군하검중, 즉언영동의.

 신문치지기미난야, 위지기미유야.  환지이후우지, 즉무급이.  고원대왕조숙계지.

 [진나라의 장래에 방해가 될 나라로는 초나라보다 더한 나라는 없습니다. 

 초나라가 강하게 되면 진나라는 약하게 되고, 진나라가 강하게 되면 초나라는 약해지므로,
 두 나라의 세력은 결코 양립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은 대왕을 위하여 여섯 나라가 합종의 친교를 맺어서

 진나라를 고립시키자는 계책을 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대왕께서 합종에 따르지 않으신다면,

 진나라는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일개 부대는 "무관"으로 나오고, 또 다른 일개 부대는 "검중"으로 내려올 

 것입니다. 그러면 초나라 도읍인 "언"과 "영"은 동요할 것입니다. 신은 듣기에 어지러워지기 전에 다스려야 하고,

 일어나기 전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환이 닥친 후에 근심한들 이미 소용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원컨대 대왕께서 이 점을 빠른 시일내로 심사숙고하시어 계획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大王誠能聽臣, 臣請令山東之國奉四時之獻, 以承大王之明詔, 委社稷, 奉宗廟,

 ​練士厲兵, 在大王之所用之.  大王誠能用臣之愚計, 則韓魏齊燕趙衛之妙音美人必充後宮,

 燕代橐駝良馬必實外廏.  故從合則楚王, 衡成則秦帝. 

 今釋霸王之業, 而有事人之名, 臣竊爲大王不取也.

 (대왕성능청신,신청령산동지국봉사시지헌, 이승대왕지명조, 위사직, 봉종묘,

 련사려병, 재대왕지소용지. 대왕성능용신지우계, 즉한위제연조위지묘음미인필충후궁,

 연대탁타량마필실외구. 고종합즉초왕, 횡성즉진제. 

 금석패왕지업, 이유사인지명, 신절위대왕불취야.

 

 [대왕께서 신의 계책을 진실로 들으신다면, 신은 산동의 열국들을 설득하여 사계절에 따라 공물을 바치게 하고

 대왕의 밝은 명령을 받들도록 하여, 그들의 종묘와 사직을 대왕께 맡기게 하고 병사들을 훈련시켜

 대왕의 뜻대로 움직이게 하겠습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저의 어리석은 계책을 따라 주신다면,

 한, 위, 제, 연, 조, 위나라의 훌륭한 음악과 미녀들로 반드시 대왕의 궁전은 가득 찰 것이고,

 ​연나라와 대나라에서 생산되는 낙타와 좋은 말은 틀림없이 대왕의 마구간을 채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합종을 행한다는 것은 즉 초나라가 천하의 왕이 됨을 의미하고 연횡이 이루어지면

 진나라는 제왕이 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지금 패왕의 업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남을 섬기려는

 오명을 뒤집어 쓰는 계책을 취하는 것은 신이 생각하기에 대왕을 위해서 제가 취할 수 없는 일입니다.

 

 夫秦, 虎狼之國也, 有呑天下之心.  秦天下之仇讎也. 衡人皆欲割諸侯之地以事秦,

 此所謂養仇而奉讎者也. 夫爲人臣, 割其主之地以外交彊虎狼之秦, 以侵天下, 卒有秦患, 不顧其禍.

 夫外挾彊秦之威以內劫其主, 以求割地, 大逆不忠, 無過此者.

 (부진, 호랑지국야, 유탄천하지심.  진천하지구수야. 횡인개욕할제후지지이사진, 

 차소위양구이봉수자야. 부위인신, 할기주지지이외교강호랑지진, 이침천하, 졸유진환, 불고기화. 

 부외협강진지위이내겁기주, 이구할지, 대역불충, 무과차자.

 

 [무릇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흉악한 나라로 항상 천하를 삼키려는 야심을 품고 있습니다. 

 진나라는 천하의 원수입니다.  그런데도 연횡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제후들로 하여금 땅을 떼어 주고

 진나라를 섬기고자 하니, 이것은 소위 원수를 길러서 받드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무릇 남의 신하가 되어 주군의 땅을 쪼개서 밖에 있는 사나운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진나라와 교섭하여

 천하를 침범하게 하고 끝내 진나라의 우환이 있어도 그 재앙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무릇 밖으로는 강한 진나라의 위세를 끼고 안으로는 주군을 위협하여 땅을 쪼개어 주려고 하는 것은

 대역불충도 이보다 지나치지 않습니다.

 

 故從親則諸侯割地以事楚, 衡合則楚割地以事秦, 此兩策者相去遠矣, 二者大王何居焉 ? 

 故敝邑趙王使臣效愚計, 奉明約, 在大王詔之. 」
 (고종친즉제후할지이사초, 횡합즉초할지이사진, 차양책자상거원의, 이자대왕하거언 ? 

 고폐읍조왕사신효우계, 봉명약, 재대왕조지. 」)


 [그러므로 만일 합종으로 친교를 맺으면 제후들이 땅을 쪼개어 초나라를 섬기게 되고,

 연횡이 이루어지면 초나라가 땅을 쪼개어 진나라를 섬기게 되니, 이 두 계책은 차이가 매우 큽니다.

 둘 중에서 대왕은 어느 쪽을 택하시렵니까 ? 그래서 조나라 왕께서 신을 사신으로 보내 어리석은 계책이나마 올려,

 대왕의 밝고 확실한 공약을 받들어 오라고 하셨습니다. 대왕의 조서가 있기를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楚王曰 : 「 寡人之國西與秦接境, 秦有擧巴蜀幷漢中之心.  秦, 虎狼之國, 不可親也. 

 而韓·魏迫於秦患, 不可與深謀, 與深謀恐反人以入於秦, 故謀未發而國已危矣.

 寡人自料以楚當秦, 不見勝也 ; 內與羣臣謀, 不足恃也.  寡人臥不安席, 食不甘味,

 心搖搖然如縣旌而無所終薄.  今主君欲一天下, 收諸侯, 存危國, 寡人謹奉社稷以從. 」

 (초왕왈 : 「 과인지국서여진접경, 진유거파촉병한중지심.  진, 호랑지국, 불가친야. 

 이한·위박어진환, 불가여심모, 여심모공반인이입어진, 고모미발이국이위의.

 과인자료이초당진, 불견승야 ; 내여군신모, 불족시야.  과인와불안석, 식불감미,

 심요요연여현정이무소종박.  금주군욕일천하, 수제후, 존위국, 과인근봉사직이종. 」) 


 [초왕이 말하기를 : “ 과인의 나라는 서쪽으로 진나라와 국경을 접했는데, 진나라는 "파"와 "촉"을 물리치고

 "한중"까지 넘보고 있습니다.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아주 흉악한 나라라 결코 가까이 지낼 수 없습니다. 

 한· 위나라는 진나라의 우환에 맞닥뜨려 있으므로 깊은 모의를 할 수 없고 만일 깊은 모의를 하더라도

 우리를 배반하고 진나라에 우리의 계책을 폭로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면 계책을 시행도 해보기 전에 우리 초나라는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과인도 스스로 생각해 보았으나 초나라만으로는 진나라에 대항한다면 이기기 어렵소. 

 내부에서 여러 신하들과 계책을 의논해 보지만 그들을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과인은 편안히 누워 잠도 자지도 못하고, 무엇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하며,

 마음은 황량해져 공중에 매달린 깃발처럼 흔들려 의지할 만한 곳도 없었습니다.
 지금 그대가 천하를 하나로 제후들을 집결시켜서 위태로운 나라를 존속시키려 하니,

 과인은 백성을 대신하여 공경히 그대의 권고를 따르겠소. ”라고 하였다. ]

 

 於是六國從合而幷力焉,  蘇秦爲從約長, 幷相六國.  北報趙王, 乃行過雒陽, 車騎輜重,

 諸侯各發使送之甚衆, 疑於王者.  周顯王聞之恐懼, 除道, 使人郊勞.

 蘇秦之昆弟妻嫂側目不敢仰視, 俯伏侍取食.  蘇秦笑謂其嫂曰 :「 何前倨而後恭也 ? 」 

 嫂委蛇蒲服, 以面掩地而謝曰 : 「 見季子位高金多也. 」

 (어시육국종합이병력언,  소진위종약장, 병상육국.  북보조왕, 내행과낙양, 차기치중,

 제후각발사송지심중, 의어왕자.  주현왕문지공구, 제도, 사인교로.

 소진지곤제처수측목불감앙시, 부복시취식.  소진소위기수왈 :「 하전거이후공야 ? 」 

 수위사포복, 이면엄지이사왈 : 「 견계자위고금다야. 」)


 [이에 여섯 나라가 합종의 맹약을 맺고 힘을 합치게 되었다. 

 '소진'은 합종의 맹약을 맺은 우두머리가 되어 여섯 나라의 재상을 겸임하였다. 
 '소진'이 합종이 성사 되었음을 조왕에게 고하기 위해 북쪽으로 올라가다가 중도에 "낙양"을 들르게 되었는데,

 이때 '소진'의 뒤를 따르는 수레에는 제후들이 사신을 통해 보내온 물건으로 가득 차서 마치 임금의 행차인가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주'현왕'이 그 소식을 듣고 해를 입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여 사람들 시켜 도로를 청소케 하고

 다시 사신을 보내 '소진'의 일행을 교외에서 영접하고 노고를 위로하게 하였다.

 ​'소진'의 형제, 처, 형수 등은 모두 곁눈으로 볼뿐 감히 고개를 들고 그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모두 고개를 숙이고 엎드려 '소진'이 식사하는 것을 시중들었다.
 '소진'이 웃으면서 그의 형수에게 말하기를 : " 예전에 제가 집에 있을 때는 저에게 그렇게 거만하게 행세하시더니,

 지금은 어찌 이렇게 공손하신 것입니까 ? "라고 하자.
 형수는 넙죽 업드려서 얼굴을 땅에 대고 사과하며 말하기를 : " 나는 지금 '계자'(소진의 字)의 지위가 높고

 부귀한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다.]

 

 蘇秦喟然歎曰 : 「 此一人之身, 富貴則親戚畏懼之, 貧賤則輕易之, 況衆人乎 ! 

 且使我有雒陽負郭田二頃, 吾豈能佩六國相印乎 ! 」  於是散千金以賜宗族朋友.

 初蘇秦之燕, 貸人百錢爲資, 及得富貴, 以百金償之.  徧報諸所嘗見德者. 

 其從者有一人獨未得報, 乃前自言.

 (소진위연탄왈 : 「 차일인지신, 부귀즉친척외구지, 빈천즉경이지, 황중인호 ! 

 차사아유락양부곽전이경, 오개능패육국상인호 ! ”  어시산천금이사종족붕우.

 초소진지연, 대인백전위자, 급득부귀, 이백금상지.  편보제소상견덕자. 

 기종자유일인독미득보, 내전자언.)


 ['소진'은 길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 “ 나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 같은 사람인데, 부귀할때는 일가친척도

 나를 높이 받들며 두려워하고, 가난할 때는 업신여기니, 하물며 일반 백성들이야 오죽하겠는가 ! 

 만약 내가 "낙양" 근처에 밭 두어 뙈기만 있었던들 어찌 여섯 나라 재상의 인장을 찰 수 있었으랴 ! ”라고 하였다.
 이에 '소진'은 천금을 풀어서 종친, 친족들과 벗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처음 '소진'이 연나라로 들어갈 때

 남에게 백전을 꾸어서 노자로 사용하였는데 부귀를 얻게 되자 백금으로 갚았다.

 ​또한 이전에 그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들에게는 모두 보답을 했다. 

 그런데 시중들던 한 사람이 '소진'으로부터 보답을 받지 못하자 '소진'을 찾아와 그 사실을 말하였다.]

 

 蘇秦曰 :「 我非忘子.  子之與我至燕, 再三欲去我易水之上, 方是時, 我困, 故望子深, 是以後子.

 子今亦得矣. 」蘇秦旣約六國從親, 歸趙.  趙肅侯封爲武安君, 乃投從約書於秦. 

 ​秦兵不敢闚函谷關十五年. 其後秦使犀首欺齊魏, 與共伐趙, 欲敗從約.  齊魏伐趙, 趙王讓蘇秦. 

 (소진왈 :「 아비망자.  자지여아지연, 재삼욕거아역수지상, 방시시, 아곤, 고망자심, 시이후자. 

 자금역득의. 」 소진기약육국종친, 귀조.  조숙후봉위무안군, 내투종약서어진. 

 진병불감규함곡관십오년.  기후진사서수기제위, 여공벌조, 욕패종약.  제위벌조, 조왕양소진.) 


 ['소진'이 말하기를, “나는 너를 잊은 것이 아니다. 네가 나와 함께 연나라로 갔을 때 너는 "역수" 근방에서

 여러 번 나를 버리고 떠나려 하였다. 그때 나는 처지가 너무나 곤란했었기에 너를 매우 원망했었다.

 그래서 너에게 보상하는 것을 제일 뒤로 미루었다. 이제 너에게도 보상을 해 주겠다. ”라고 하였다.

 '소진'이 육국의 합종을 위해 맹약을 맺고 조나라로 돌아왔다. 

 조나라의 '숙후'가 그 공으로 그를 '무안군'으로 봉했다. 그리고 합종의 맹약서를 진나라에 보냈다.
 이로 인해 15년 동안 진나라 군대는 감히 "함곡관"으로 부터 중원을 넘보지 못했다. 

 그 후에 진나라는 '서수'를 시켜 제·위나라를 속이고, 그들로 하여금 조나라를 공격하도록 함으로 해서

 합종을 깨트리려고 했다. 제·위나라가 조나라를 치니 조왕이 '소진'에게 책임을 추궁하였다.]

 

 蘇秦恐, 請使燕, 必報齊.  蘇秦去趙而從約皆解.  秦惠王以其女爲燕太子婦. 

 是歲, 文侯卒, 太子立, 是爲燕易王.  易王初立, 齊宣王因燕喪伐燕, 取十城.

 易王謂蘇秦曰 : 「 往日先生至燕, 而先王資先生見趙, 遂約六國從.  今齊先伐趙, 次至燕,

 以先生之故爲天下笑, 先生能爲燕得侵地乎 ? 」  蘇秦大慙曰 :「 請爲王取之. 」 

 (소진공, 청사연, 필보제.  소진거조이종약개해.  진혜왕이기녀위연태자부. 

 시세, 문후졸, 태자입, 시위연역왕.  역왕초입, 제선왕인연상벌연, 취십성.

 이왕위소진왈 : 「 왕일선생지연, 이선왕자선생현조, 수약육국종.  금제선벌조, 차지연,

 이선생지고위천하소, 선생능위연득침지호 ? 」  소진대참왈 : 「 청위왕취지. 」)


 [소진은 두려워서 연나라에 사신으로 가기를 자청하여 반드시 제나라에게 보복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소진'이 조나라를 떠나자 합종의 맹약은 결국 와해되고 말았다.
 진나라 '혜왕'이 그의 딸을 연나라의 태자비로 시집보냈다. 

 이 해에 연나라 '문후'가 죽고 태자가 즉위했는데, 이가 연나라 '이왕'이다. '이왕'이 막 즉위하자,

 제나라 '선왕'은 연나라가 상중인 것을 틈타 연나라를 공격하여 열 개의 성을 빼앗았다.

 연나라'이왕'이 '소진'에게 말하기를 : “ 지난날 선생이 연나라에 왔을 때, 선왕께서 선생에게 자금을 주어

 조나라에 가게 하여 드디어 여섯 나라의 합종 맹약을 맺게 했소. 그런데 지금 제나라가 앞장서서 조나라를

 공격하더니 계속 진격하여 우리 연나라를 공격하고 있소. 연나라는 선생 때문에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으니,

 ​선생은 연나라를 위해 빼앗긴 땅을 찾을 수 있겠소 ? ”라고 하자.

 '소진'은 매우 수치스러워하며 말하기를 : “ 바라건대, 대왕을 위하여 빼앗긴 땅을 찾아오겠습니다. ”라고 했다. 

 

 蘇秦見齊王, 再拜, 俯而慶, 仰而弔.  齊王曰 : 「 是何慶弔相隨之速也 ? 」

 蘇秦曰 : 「 臣聞飢人所以飢而不食烏喙者, 爲其愈充腹而與餓死同患也.

 今燕雖弱小, 卽秦王之少壻也.  大王利其十城而長與彊秦爲仇.  今使弱燕爲鴈行而彊秦敝其後,

 以招天下之精兵, 是食烏喙之類也. 」 

 (소진현제왕, 재배, 부이경, 앙이조.  제왕왈 : “ 시하경조상수지속야 ? ” 

 소진왈 : “ 신문기인소이기이불식오훼자, 위기유충복이여아사동환야.

 금연수약소, 즉진왕지소서야.  대왕리기십성이장여강진위구.  금사약연위안행이강진폐기후,

 이초천하지정병, 시식오훼지류야. 」) 

 

 ['소진'은 제나라로 들어가 제'선왕'을 뵙고 재배를 하고 일어나더니 허리를 굽혀 경하의 말을 올리고

 다시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보며 애도를 표시했다.
 제왕이 의아해 하며 묻기를 : " 경하와 애도의 표시를 연속해서 행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 "라고 하자.
 '소진'이 말하기를 : " 사람이 아무리 굶주려도 오훼라고 하는 독초만은 먹지 않은 이유는 그것으로 배를 채우면

 굶어 죽는 것과 같은 고통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연나라가 비록 약소하지만 진나라 왕의 젊은 

 사위 나라입니다. 대왕께서는 연나라의 열 개 성을 취하였으니 오랫동안 강대한 진나라의 원수가 될 것입니다.

 지금 약한 연나라가 기러기 떼의 선두처럼 선봉이 되고 강한 진나라가 그 뒤를 지키게 하면서

 천하의 정병을 불러들이는 것은 오훼를 먹는 것과 유사합니다. ”라고 하였다.]

 

 齊王愀然變色曰 :「 然則柰何 ? 」

 蘇秦曰 :「 臣聞古之善制事者, 轉禍爲福, 因敗爲功.  大王誠能聽臣計, 卽歸燕之十城. 

 燕無故而得十城, 必喜 ; 秦王知以己之故而歸燕之十城, 亦必喜. 此所謂弃仇讎而得石交者也. 

 夫燕秦俱事齊, 則大王號令天下, 莫敢不聽. 是王以虛辭附秦, 以十城取天下.  此霸王之業也.」 

 王曰 :「 善. 」 於是乃歸燕之十城. 

 (제왕초연변색왈 : 연즉내하 ?  

 소진왈 :「 신문고지선제사자, 전화위복, 인패위공.  대왕성능청신계, 즉귀연지십성. 

 연무고이득십성, 필희 ; 진왕지이기지고이귀연지십성, 역필희. 차소위기구수이득석교자야. 

 부연진구사제, 즉대왕호령천하, 막감불청. 시왕이허사부진, 이십성취천하.  차패왕지업야. 」 

 왕왈 :「 선.  어시내귀연지십성.)

 ​[제나라 왕이 근심스런 표정으로 말하기를 : “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 ”라고 하자.

 '소진'이 말하기를, “ 신이 듣기로 옛날부터 일처리에 능숙한 사람은 화를 돌려서 복으로 삼고 실패로 인하여

 성공을 했다고 합니다. 대왕께서 진실로 저의 계략을 들으신다면 지금 즉시 연나라의 열 개 성을

 돌려주어야만 합니다. 연나라가 이유없이 열 개의 성을 얻게되면 반드시 기뻐할 것입니다.
 진나라 왕도 자신의 덕택으로 연나라가 열 개 성을 돌려받은 것을 알면 역시 기뻐할 것입니다.

 이것은 이른바 원수를 버리고 반석과 같은 굳은 우의의 친구를 얻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연나라와 진나라가 함께 제나라를 섬기게 되면,
 대왕의 호령은 천하에서 감히 듣지 않을 자가 없을 것입니다. 

 이것이 대왕께서 빈말로써 진나라를 구스르고 열 개 성을 미끼로 천하를 얻게 되니,
 이것은 패왕의 업을 이루게 되는 일입니다 ”라고 하였다.  

 제나라 왕이 말하길 :「 좋다.하고,  이에 연나라의 열 개 성을 되돌려 주었다. ]

 

 人有毁蘇秦者曰 :「 左右賣國反覆之臣也, 將作亂.   蘇秦恐得罪歸, 而燕王不復官也. 

 蘇秦見燕王曰 : 臣東周之鄙人也, 無有分寸之功, 而王親拜之於廟而禮之於廷.

 今臣爲王卻齊之兵而攻得十城, 宜以益親.  今來而王不官臣者, 人必有以不信傷臣於王者. 

 臣之不信, 王之福也.  臣聞忠信者, 所以自爲也 ; 進取者, 所以爲人也.

 (인유훼소진자왈 :「 좌우매국반복지신야, 장작란. ”  소진공득죄귀, 이연왕불복관야. 

 소진현연왕왈 :「 신동주지비인야, 무유분촌지공, 이왕친배지어묘이례지어정. 

 금신위왕각제지병이공득십성, 의이익친.  금래이왕불관신자, 인필유이불신상신어왕자. 

 신지불신, 왕지복야.  신문충신자, 신문충신자 ; 진취자, 소이위인야. 


 ['소진'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어 말하기를 : “ 소진은 여기저기를 왕래하며 나라를 팔아먹는 사람이니,

 장차 반란을 일으킬 것입니다. ”라고 하자. '소진'은 죄 지은 것이 두려워 제나라에서 연나라로 돌아왔지만,

 연왕은 그를 복직시키지 않았다. '소진'이 연왕을 뵙고 말하기를 :“ 신은 동주의 비천한 사람으로, 

 조그마한 공도 세우지 못하였지만 대왕께서는 종묘사직 앞에서 저에게 관직을 수여하시고

 조정에서는 저를 예로써 대했습니다.  지금 신은 대왕을 위해 제나라의 군대를 물러가게 했으며

 또한 제나라에 빼앗긴 10개의 성을 회수해 왔으니 마땅히 대왕께서는 저를 더욱 친근하게 대하셔야 마땅하거늘,

 지금 연나라로 돌아온 신에게 관직을 내리시지 않음은 틀림없이 누군가 신을 불충한 죄명으로 대왕께 중상모략을

 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신의 불신은 대왕께 복입니다.  신은 듣건대 충성된 자는 스스로 자신을 위하고 ;

 진취한 자가 분발하는 이유는 남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且臣之說齊王, 曾非欺之也.  臣弃老母於東周, 固去自爲而行進取也. 

 今有孝如曾參, 廉如伯夷, 信如尾生.  得此三人者以事大王, 何若 ? 」  王曰 :「 足矣. 」
 (차신지설제왕, 증비기지야. 신기노모어동주, 고거자위이행진취야. 

 금유효여증삼, 렴여백이, 신여미생.  득차삼인자이사대왕, 하약 ? ”  왕왈 : 족의. )


 [또 신이 제나라 왕을 설복한 것은 결코 제왕을 속인 것은 아닙니다. 

 제가 노모를 동주에 버려두고 이 나라에 온 것은 신의 개인적인 명성을 세우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진취하는 자가 되기로 결심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만약 '증삼'과 같은 효자와 '백이'와 같은 청렴한 인물과 '미생'과 같은 신의 있는 인물이 있어,
 이 세 사람으로 하여금 대왕을 섬기도록 하면 대왕께서는 어떠하겠습니까 ? ”라고 하니, 

 왕이 말하기를 : “ 만족스럽게 생각하겠소. ”라고 하였다.]

 

 蘇秦曰 :「 孝如曾參, 義不離其親一宿於外,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而事弱燕之危王哉 ? 

 廉如伯夷, 義不爲孤竹君之嗣, 不肯爲武王臣, 不受封侯而餓死首陽山下. 

 有廉如此,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而行進取於齊哉 ?

 信如尾生, 與女子期於梁下, 女子不來, 水至不去, 抱柱而死. 

 有信如此, 王又安能使之步行千里卻齊之彊兵哉 ?  臣所謂以忠信得罪於上者也. 」

 (소진왈 :「 효여증삼, 의불리기친일숙어외, 왕우안능사지보행천리이사약연지위왕재 ? 

 렴여백이, 의불위고죽군지사, 불긍위무왕신, 불수봉후이아사수양산하. 

 유렴여차, 왕우안능사지보행천리이행진취어제재 ? 

 신여미생, 여여자기어량하, 여자불래, 수지불거, 포주이사. 

 유신여차, 왕우안능사지보행천리각제지강병재 ?  신소위이충신득죄어상자야. 」

 

 ['소진'이 말하기를 : “ '증삼'과 같이 효성스런 사람은 결코 하루 밤도 부모의 곁을 떠나 밖에서 잠을 자지 

 아니하였는데, 대왕께서는 또 어떻게 그로 하여금 천리나 걸어가게 하여 약한 연나라의 위기에 빠진 대왕을

 섬기게 할 수 있겠습니까 ? '백이'와 같이 청렴한 사람은 의를 지켜 "고죽국"의 후계자 자리도 마다했으며, 

 주'무왕'의 신하가 되는 것도 달갑게 여기지 않고,  제후의 봉작도 받아들이지 않은채 결국은 "수양산" 아래서

 굶어 죽고 말았습니다. 이와 같이 청렴한 사람을 대왕께서는 무슨 방법으로 천리 밖의 제나라에 까지 가게 해서

 진취의 행동을 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 '미생'과 같이 신의 있는 사람은 여자와 다리 아래서 만나기로 약속하여

 여자가 올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하고 강물이 불자 교각을 끌어 안은채 결국은 익사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신의 있는 사람을 대왕께서는 또한 무슨 방법으로 그를 천리 밖의 제나라 까지 가게 해서

 강대한 제나라의 군대를 물러가게 할 수 있겠습니까 ?
 이른바 신은 대왕께 충성스럽고 성실했기 때문에 죄를 얻은 것입니다. ”라고 했다.

 

 燕王曰 : 「 若不忠信耳, 豈有以忠信而得罪者乎 ? 」

 蘇秦曰 : 「 不然.  臣聞客有遠爲吏而其妻私於人者, 其夫將來, 其私者憂之,

 妻曰『勿憂, 吾已作藥酒待之矣』.  居三日, 其夫果至, 妻使妾擧藥酒進之.
 (연왕왈 : 「 약불충신이, 개유이충신이득죄자호 ? 」

 소진왈 : “ 불연.  신문객유원위리이기처사어인자, 기부장래, 기사자우지,

 처왈『물우, 오이작약주대지의』.  거삼일, 기부과지, 처사첩거약주진지.

 

 [연나라 왕이 말하기를 : “ 그대는 충성스럽지 못하고 성실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어찌 충성스럽고 신의가 있는데 죄를 물을 수가 있겠소 ? ”라고 하자.

 ​'소진'이 말하기를 : “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들은 이야기에 어떤 사람이 관리가 되어 먼 지방으로 가고 없는 

 사이에 그 처가 다른 사내와 간통을 했는데, 얼마 뒤에 남편이 돌아온다는 말을 듣고, 

 간통한 사내가 걱정을 하자, 그 처가 말하기를 ‘근심할 것 없습니다. 

 나는 이미 독약 넣은 술을 준비하고 기다리니까.’라고 했습니다.  

 사흘이 지나고 과연 남편이 돌아왔습니다. 그 처는 첩을 시켜서 독이 든 술을 남편에게 마시게 하였습니다.

 

 妾欲言酒之有藥, 則恐其逐主母也 ; 欲勿言乎, 則恐其殺主父也.  於是乎詳僵而弃酒. 

 主父大怒, 笞之五十. 故妾一僵而覆酒, 上存主父, 下存主母, 然而不免於笞,

 惡在乎忠信之無罪也 ? 夫臣之過, 不幸而類是乎 ! 」 燕王曰 : 「 先生覆就故官. 」益厚遇之.

 (첩욕언주지유약, 즉공기축주모야 ; 욕물언호, 즉공기살주부야.  어시호상강이기주.

 주부대노, 태지오십. 고첩일강이복주, 상존주부, 하존주모, 연이불면어태,

 악재호충신지무죄야 ? 부신지과, 불행이류시호 ! 」 연왕왈 : 「 선생복취고관. 」 익후우지. )

 

 [첩이 술에 독약을 탄 것을 말하려 했으나, 그러면 그 부인이 내쫓기게 될까 두려웠고, 말을 안 하려고 하니

 그 주인이 죽게 될 것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첩은 일부러 넘어져 독주를 엎질러 버렸습니다. 

 주인은 크게 성을 내어 첩에게 매 50대를 때렸습니다.

 그리하여 첩이 한번 거짓으로 쓰러지면서 독이 든 술을 엎어, 위로는 그 주인의 목숨을 보존케 했고

 아래로는 그 부인이 쫓겨나지 않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첩 자신은 그런 공을 세우고도 

 매를 면할 수 없었으니, 어떻게 충성스럽고 성실했음에도 어찌 죄를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무릇 신의 잘못은 불행하게도 이것과 비슷합니다. ”라고 하였다. 

 연왕이 말하기를 : “ 선생은 다시 옛 관직에 복직하시오. ”라고 하고, 더욱 후하게 대우했다.]

 

 易王母, 文侯夫人也, 與蘇秦私通.  燕王知之, 而事之加厚. 

 蘇秦恐誅, 乃說燕王曰 : 「 臣居燕不能使燕重, 而在齊則燕必重. 」

 燕王曰 :「 唯先生之所爲. 」  於是蘇秦詳爲得罪於燕而亡走齊, 齊宣王以爲客卿.
 (이왕모, 문후부인야, 여소진사통.  연왕지지, 이사지가후. 

 소진공주, 내설연왕왈 : 「 신거연불능사연중, 이재제즉연필중. 」

 연왕왈 :「 유선생지소위. 」  어시소진상위득죄어연이망주제, 제선왕이위객경.) 

 [연나라 '이왕'의 모친은 전왕 '문후'의 부인인데 소진과 사통했다. 

 ​'이왕'은 그것을 알면서도 그를 더욱 극진히 대접했다.
 '소진'은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연나라 왕을 설득해 말하기를 :

 “ 신이 연나라에 머물러 있으면 연나라의 지위를 중요하게 만들 수 없으나, 신이 제나라에 가있게 된다면, 

 연나라의 지위를 중요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연나라 왕이 말하기를 : “ 그렇다면 선생이 하고 싶은 대로 하시오. ”라고 하였다. 

 이에 '소진'은 연나라에서 죄를 지은 것처럼 속이고 제나라로 도망을 갔다.
 제나라의 '선왕'은 그를 객경(다른 나라에서 와서 경상의 자리에 오른 사람)으로 대우하였다.] 

 

 齊宣王卒, 湣王卽位, 說湣王厚葬以明孝, 高宮室大苑囿以明得意, 欲破敝齊而爲燕. 

 燕易王卒, 燕噲立爲王.  其後齊大夫多與蘇秦爭寵者, 而使人刺蘇秦, 不死, 殊而走.
 (제선왕졸, 민왕즉위, 설민왕후장이명효, 고궁실대원유이명득의, 욕파폐제이위연. 

 연이왕졸, 연쾌입위왕.  기후제대부다여소진쟁총자, 이사인자소진, 불사, 수이주. )


 [제나라 '선왕'이 죽고 '민왕'이 즉위했다.  '소진'은 '민왕'을 설득하여 후한 장례를 치르게 하여

 효성을 밝히고 궁궐을 높이 짓고 정원을 넓게 조성하여 스스로 만족하는 뜻을  명백하게 하였으니,

 이는 제나라를 경제적으로 피폐하게 하여 연나라를 돕고자 하는 것이었다. 

 연나라 '이왕'이 죽고 뒤를 이어 '쾌'가 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 후에 제나라의 많은 대부들이 '소진'과 민왕의 총애를 다투다가 자객으로 하여금 '소진'을

 찔러 죽이려고 하였으나, 죽이지는 못하고 중상을 입히고 달아났다.

 

 齊王使人求賊, 不得.  蘇秦且死, 乃謂齊王曰 :

臣卽死, 車裂臣以徇於市,曰『 蘇秦爲燕作亂於齊 』, 如此則臣之賊必得矣. 」 
 (제왕사인구적, 불득.  소진차사, 내위제왕왈 :

「 신즉사, 차열신이순어시, 왈 『 소진위연작란어제 』, 여차즉신지적필득의. 」


 [제왕이 사람을 시켜 자객을 찾게 하였으나 잡지 못하였다. 

 '소진'은 죽어 가면서 제왕에게 말하기를 : “ 신이 죽게 되면 대왕께서는 신의 시신을 거열형에

 처하여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저자거리에서 여러 사람들에게 구경을 시키면서 말하기를 

  ‘ '소진'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에서 모반을 하였다. ’라고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신을 찌른 자객을 반드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於是如其言, 而殺蘇秦者果自出, 齊王因而誅之.  燕聞之曰 :「 甚矣, 齊之爲蘇生報仇也 ! 」 

 蘇秦旣死, 其事大泄.  齊後聞之, 乃恨怒燕, 燕甚恐.
 (어시여기언, 이살소진자과자출, 제왕인이주지.  연문지왈 :「 심의, 제지위소생보구야 ! 」 

 소진기사, 기사대설.  제후문지, 내한노연, 연심공. )


 [이에 제'민왕'은 '소진'의 말대로 하였더니 '소진'을 죽인 자가 과연 스스로 나타났으므로

 제왕은 그 자를 잡아서 죽였다.  연나라에서 이 소식을 듣고 이르기를 : “ 참으로 심하구나, 

 제나라가 '소진'을 위해 원수를 갚다니 ! ”라고 하였다. 
 '소진'이 죽은 뒤 '소진'이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를 피폐케 한 일이 크게 알려졌다.

 제나라에서 뒤늦게 알고 연나라에 대해 분노했다.  연왕은 보복을 매우 두려워하였다. ]

 

 蘇秦之弟曰代, 代弟蘇厲, 見兄遂, 亦皆學.  及蘇秦死. 

 代乃求見燕王, 欲襲故事曰 : “ 臣東周之鄙人也.  竊聞大王義甚高, 鄙人不敏, 釋鉏耨而干大王.
 (소진지제왈대, 대제소려, 견형수, 역개학.  급소진사. 

 대내구현연왕, 욕습고사왈 : “ 신동주지비인야.  절문대왕의심고, 비인불민, 석서누이간대왕. 

 
 ['소진'의 아우는 '대'라고 하며, 대의 아우는 '려'라고 하였다. 

 두 형제는 '소진' 형의 뒤를 따라 유세학을 공부했다. '소진'이 죽은 뒤 '소대'가 연왕을 알현하고

 '소진'하던 일을 물려받고 싶다고 하면서 말하기를 : " 저는 "동주"에서 태어난 천한 사람입니다.

 가만히 들으니 대왕께서 품은 뜻이 높고 정의를 행하신다기에 이 천한 사람이 불민함을 무릅쓰고

 호미와 괭이를 놓아두고 대왕을 섬기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至於邯鄲, 所見者絀於所聞於東周, 臣竊負其志.  及至燕廷, 觀王之羣臣下吏, 王天下之明王也. 」
 (지어한단, 소견자출어소문어동주, 신절부기지.  급지연정, 관왕지군신하리, 왕천하지명왕야. 」


 [도중에 조나라 도성 "한단"에 들렸습니다만, 눈에 띄는 것이 "동주"에서 듣던 소문과는 달라

 신은 마음속으로 매우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그래서 연나라 조정에 와서 대왕의 여러 신하와

 하급 관리들을 보니 대왕께서는 천하의 현명한 군주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燕王曰 : 「 子所謂明王者何如也 ? 」  對曰 : 「 臣聞明王務聞其過, 不欲聞其善,

 臣請謁王之過.  夫齊趙者, 燕之仇讎也 ; 楚魏者, 燕之援國也.
 (연왕왈 : 「 자소위명왕자하여야 ? 」  대왈 : 「 신문명왕무문기과, 불욕문기선,

 신청알왕지과.  부제조자, 연지구수야 ; 초위자, 연지원국야.


 [연왕이 말하기를 : “ 그대가 말하는 이른바 현명한 왕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는가 ? ”라고 하니,
 '소대'가 대답하기를 : “ 신이 듣기로는 현명한 왕은 그 잘못을 듣기에 힘쓰고, 그의 훌륭한 점에

 대해서는 듣기를 원치 않는다고 하였는데, 청하오니 신에게 대왕의 허물을 말씀하게 하여 주십시오.

 무릇 제나라와 조나라는 연나라의 원수이며, 초나라와 위나라는 연나라를 지원하는 나라입니다.

 

 今王奉仇讎以伐援國, 非所以利燕也.  王自慮之, 此則計過, 無以聞者, 非忠臣也. 」
 (금왕봉구수이벌원국, 비소이리연야.  왕자려지, 차즉계과, 무이문자, 비충신야. 」


 [지금 대왕께서 원수의 나라를 받들어 지원국을 친다는 것은 연나라에 이로울 게 없습니다. 

 대왕께서도 이 점을 고려해 보시면 곧 잘못된 계책이라는 것을 아실터인데,
 이러한 사실을  대왕께 아뢰는 자가 없는 것은 충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다.]

 

 王曰 :「 夫齊者固寡人之讎, 所欲伐也, 直患國敝力不足也.  子能以燕伐齊, 則寡人擧國委子. 」
 (왕왈 : 「 부제자고과인지수, 소욕벌야, 직환국폐력불족야.  자능이연벌제, 즉과인거국위자. 」

 
 [연왕이 말하기를 : “ 무릇 제나라는 본래 과인의 원수 나라로서 정벌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우리 연나라의 국력이 피폐해져 근심만 할 뿐이다. 그대가 가히 연나라의 국력으로 제나라를

 정벌할 수 있다면 과인은 이 나라를 받들어 그대에게 맡겨 보겠다. ”라고 하였다. ]

 

 對曰 : “ 凡天下戰國七, 燕處弱焉.  獨戰則不能, 有所附則無不重. 

 南附楚, 楚重 ; 西附秦, 秦重 ; 中附韓魏, 韓魏重.  且苟所附之國重, 此必使王重矣.
 (대왈 : “ 범천하전국칠, 연처약언.  독전즉불능, 유소부즉무불중. 

 남부초, 초중 ; 서부진, 진중 ; 중부한위, 한위중.  차구소부지국중, 차필사왕중의.

 
 ['소대'가 대답하기를 : “ 대략 천하에 전력을 갖춘 나라가 일곱이 있는데,

 연나라는 약한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연나라가 단독으로 전쟁을 한다면 이길 수가 없고,
 다른 나라에 붙으면 그 비중이 무거워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연나라가 남쪽의 초나라에 붙는다면

 초나라가 강해질 것이고 ; 서쪽의 진나라에 붙는다면 진나라가 강해지며 ;  

 중간의 한나라와 위나라에 붙는다면 한나라와 위나라가 강해질 것입니다. 

 또한 진실로 의지하게 된 나라가 강해지면, 거기에 따라 대왕의 지위도 반드시 높아질 것입니다.

 

 今夫齊, 長主而自用也.  南攻楚五年, 畜聚竭 ; 西困秦三年, 士卒罷敝 ;

 北與燕人戰, 覆三軍, 得二將.  然而以其餘兵南面擧五千乘之大宋, 而包十二諸侯.
 (금부제, 장주이자용야.  남공초오년, 축취갈 ; 서곤진삼년, 사졸파폐 ;

 북여연인전, 복삼군, 득이장.  연이이기여병남면거오천승지대송, 이포십이제후.

 
 [지금 저 제나라는 나이 많은 군주가 스스로 결정합니다. 

 남쪽으로 5년간 초나라를 공격하여 비축해 둔 군량과 재물이 모두 고갈되었고 ;
 서쪽으로 3년간 진나라를 괴롭혀서 사졸이 피로에 지쳐있으며 ;

 북쪽으로 연나라와 싸워서 그 연나라의 삼군을 뒤집고 두 장수를 사로 잡았습니다.
 그러고도 그 남은 병력을 가지고 남쪽으로 향하여 병거 5천승을 보유하고 있는

 대국 송나라를 격파하고, 열두 제후를 병합하였습니다.

 

 此其君欲得, 其民力竭, 惡足取乎 !  且臣聞之, 數戰則民勞, 久師則兵敝矣. 」  

 燕王曰 : 「 吾聞齊有淸濟濁河可以爲固, 長城鉅防足以爲塞, 誠有之乎 ? 」
 (차기군욕득, 기민력갈, 오족취호 !  차신문지, 삭전즉민로, 구사즉병폐의. 」  

 연왕왈 : 「 오문제유청제탁하가이위고, 장성거방족이위새, 성유지호 ? 」


 [이로써 그 군주는 얻고자 한 것은 얻었으나 백성의 힘은 다했으니 어찌 취하기에 족한

 방법이었겠습니까 !  또 신이 듣기에 전쟁을 자주 일으키면 백성들이 피로에 지치고,

 오래 싸우면 병사들이 피패해진다고 했습니다. ”라고 하였다.
 연왕이 말하기를 : “ 내가 듣기로 제나라에는 "청하", "제수", "탁수"가 있어 견고한 방어가 되며,

 장성과 거방은 요새지로 충분하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러한가 ? ”라고 하니.

 

 對曰 : 「 天時不與, 雖有淸濟濁河, 惡足以爲固 !  民力罷敝, 雖有長城·鉅防, 惡足以爲塞 ! 

 且異日濟西不師, 所以備趙也 ; 河北不師, 所以備燕也.
 (대왈 : 「 천시불여, 수유청제탁하, 오족이위고 !  민력파폐, 수유장성거방, 오족이위새 ! 

 차이일제서불사, 소이비조야 ; 하북불사, 소이비연야.


 ['소대'가 대답하기를 : “ 천시가 제나라를 돕지 않으면 비록  "청하", "제수", "탁수"가 있다하나

 어찌 그런 것들로 족히 견고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백성의 힘이 피폐해지면 비록 장성이나

 거방이 있다하나 어찌 그런 것들로 족히 요새를 삼을 수 있겠습니까 !
 또 일찍이 제나라가 제수 서쪽을 징발하지 않은 것은 조나라에 대비한 까닭이고,

 황하 북쪽을 징발하지 않은 것은 연나라에 대비한 까닭입니다.

 

 今濟西河北盡已役矣, 封內敝矣.  夫驕君必好利, 而亡國之臣必貪於財. 

 王誠能無羞從子母弟以爲質, 寶珠玉帛以事左右, 彼將有德燕而輕亡宋, 則齊可亡已. 」 
 (금제서하북진이역의, 봉내폐의.  부교군필호리, 이망국지신필탐어재. 

 왕성능무수종자모제이위질, 보주옥백이사좌우, 피장유덕연이경망송, 즉제가망이. 」 )


 [그런데 지금 제의 서쪽과 황하 북쪽은 군사를 모두 징발하여 나라 안이 피폐해지고 말았습니다 

 대체로 교만한 군주는 반드시 이익을 좋아하고, 망해가는 나라의 신하는 반드시 재물을 탐하게

 되어있습니다. 대왕께서 성의를 다하여 아들, 모친, 동생들을 인질로 보내고,

 보석과 비단을 선물하여 제왕의 좌우 근신에게 비위를 맞추는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지 않으신다면
 저들은 장차 연나라는 덕이 있는 나라로 알고 송나라를 가벼이 여겨 멸망시키려고 할 것이니,

 그렇게 하면 장차 제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燕王曰 :「 吾終以子受命於天矣. 」 燕乃使一子質於齊.  而蘇厲因燕質子而求見齊王. 

 齊王怨蘇秦, 欲囚蘇厲.  燕質子爲謝, 已遂委質爲齊臣.
 (연왕왈 : 「 오종이자수명어천의. 」 연내사일자질어제.  이소려인연질자이구현제왕. 

 제왕원소진, 욕수소려.  연질자위사, 이수위질위제신. )


 [연왕이 말하기를 : “ 나는 마침내 그대로 말미암아 하늘의 명을 받았구나. ”라고 하면서. 

 연나라는 이내 왕의 아들중 한 명을 제나라에 인질로 보냈다.
 그리고 '소려'는 인질을 이용하여 제나라 왕을 뵈려고 했다.  제나라 왕은 '소진'이 제나라의 경제를

 피폐하게 만든것에 대해 원망하고 있었으므로 '소려'를 가두고자 했으나,  연나라에서 인질로 온

 공자가 '소려'를 위해 용서를 빌고, '소려' 지신도 또한 예물을 바쳐서 제나라의 신하가 되었다. ]

 

 燕相子之與蘇代婚, 而欲得燕權, 乃使蘇代侍質子於齊. 

 齊使代報燕, 燕王噲問曰 :「 齊王其霸乎 ? 」曰 :「 不能. 」曰 :「 何也 」曰 :「 不信其臣. 」 
 (연상자지여소대혼, 이욕득연권, 내사소대시질자어제. 

 제사대보연, 연왕쾌문왈 :「 제왕기패호 ? 」 왈 :「 불능. 」 왈 :「 하야 」 왈 :「 불신기신. 」 )


 [연나라 재상 '자지'는 '소대'와 혼인으로 맺고, 연나라의 실권을 차지하기 위해, '소대'로 하여금

 제나라에 볼모로 간 왕자의 시종을 들게 하였다.
 제나라에서는 '소대'를 시켜 연나라에서 온 인질이 무사하다고 보고하게 하였다. 

 연나라 왕 '쾌'가 묻기를 : “ 제나라 왕은 패왕이 될 수 있겠는가 ? ”라고 하자,
 '소대'가 말하기를 : “ 될 수 없습니다. ”라고 했다. 연왕이 재차 묻기를 : “ 어째서 그런가 ? ”하니, 

 '소대'가 대답하기를 : “ 신하들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다. ]

 

 於是燕王專任子之, 已而讓位, 燕大亂.  齊伐燕, 殺王噲子之. 

 燕立昭王, 而蘇代蘇厲遂不敢入燕, 皆終歸齊, 齊善待之.  蘇代過魏, 魏爲燕執代.
 (어시연왕전임자지, 이이양위, 연대란.  제벌연, 살왕쾌자지. 

 연입소왕, 이소대소려수불감입연, 개종귀제, 제선대지.  소대과위, 위위연집대. )


 [이에 연나라 왕은 '자지'에게 정사를 맡기고 얼마 후에 왕위까지 사양하였으므로

 연나라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그 사이에 제나라는 연나라를 쳐서 연왕 '쾌'와 '자지'를 죽였다. 

 연나라는 공자 '직'을 추대하여 연왕으로 세우니 이가 연'소왕'이다.
 이 일로 인해 '소대'와 '소려'는 끝내 연나라로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 제나라에 귀순했다. 

 제나라에서는 이들을 잘 대접해 주었다. 
 '소대'가 위나라를 지나갈 때 위나라가 연나라를 위해 '소대'를 붙잡아 두었다. ]

 

 齊使人謂魏王曰 : 「 齊請以宋地封涇陽君, 秦必不受. 

 秦非不利有齊而得宋地也, 不信齊王與蘇子也.  今齊·魏不和如此其甚, 則齊不欺秦, 秦信齊.
 (제사인위위왕왈 : 「 제청이송지봉경양군, 진필불수. 

 진비불리유제이득송지야, 불신제왕여소자야.  금제·위불화여차기심, 즉제불기진, 진신제.

 
 [제나라가 사신을 보내 위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 “ 제나라가 새로 차지한 송나라 땅을

 '경양군'(진나라 왕의 아우)의 봉지로 바치려 해도 진나라는 필시 받지 않을 것입니다.
 진나라가 제나라와 우호하여 송나라 땅을 얻는 것을 이익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제나라 왕과 '소대'가 연나라와 제휴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나라와 위나라의 불화가 이처럼 심하면 제나라는 진나라를 속이지 않으며,

 진나라도 제나라를 믿을 것입니다.

 

 齊秦合, 涇陽君有宋地, 非魏之利也.  故王不如東蘇子, 秦必疑齊而不信蘇子矣. 

 齊秦不合, 天下無變, 伐齊之形成矣. 」  於是出蘇代.  代之宋, 宋善待之.
 (제진합, 경양군유송지, 비위지리야.  고왕불여동소자, 진필의제이불신소자의. 

 제진불합, 천하무변, 벌제지형성의.   어시출소대.  대지송, 송선대지.


 [제나라와 진나라가 합치고 '경양군'이 송나라 땅을 차지하게 되면 위나라에 이로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소대'를 동쪽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면 진나라는 반드시 제나라를 의심하고 '소대'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제나라와 진나라가 화합하지 않으면 천하의 형세에는 변화는 없으며,
 위나라가 제나라를 칠 기회가 생기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래서 위나라는 '소대'를 풀어주었다.  '소대'는 송나라로 갔는데, 송나라는 그를 잘 대접하였다.

 

 齊伐宋, 宋急, 蘇代乃遺燕昭王書曰 : 夫列在萬乘而寄質於齊, 名卑而權輕 ;

 奉萬乘助齊伐宋, 民勞而實費 ; 夫破宋, 殘楚淮北, 肥大齊, 讎彊而國害 : 此三者皆國之大敗也.
 (제벌송, 송급, 소대내유연소왕서왈 : 부열재만승이기질어제, 명비이권경 ;

 봉만승조제벌송, 민로이실비 ; 부파송, 잔초회북, 비대제, 수강이국해 : 차삼자개국지대패야.

 
 [제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자 위급하게 된 송나라는 '소대'로 하여금 연'소왕'에게 글을 써서 보내

 이르기를 : 무릇 연나라가 만승의 대국으로 있으면서 제나라에 인질을 보냈다는 것은 명성이

 실추되고 권위를 가볍게 하는 일입니다. 또한 만승의 나라 대왕께서 만승의 제나라 왕을 도와

 송나라를 치게 되면 백성은 피로에 지치고 재물은 낭비됩니다.  무릇 송나라를 점령한 제나라는

 초나라의 "회하" 북쪽지역을 차지하여 더욱 나라가 비대해 질 것이고, 이로인해 원수의 나라가

 강해 지면 연나라는 피해를 입을 것입니다 . 이 세 가지 계책은 모두 연나라에게는 큰 재앙입니다.

 

 然且王行之者, 將以取信於齊也.  齊加不信於王, 而忌燕愈甚, 是王之計過矣. 

 夫以宋加之淮北, 强萬乘之國也, 而齊幷之, 是益一齊也.
 (연차왕행지자, 장이취신어제야.  제가불신어왕, 이기연유심, 시왕지계과의. 

 부이송가지회북, 강만승지국야, 이제병지, 시익일제야.

 
 [그런데도 대왕께서 이 일을 행하려는 것은 장차 제나라로부터 신임을 얻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제왕은 더욱 더 대왕을 믿지 않을 것이고, 연나라를 싫어하는 마음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대왕의 이런 계책은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릇 송나라땅에 "회하" 북쪽지역을 더하면 만승의 강국이 될 것이고,

 제나라가 이를 병합하면 또 하나의 제나라가 생기게 되는 일입니다.

 

 北夷方七百里, 加之以魯衛, 彊萬乘之國也, 而齊幷之, 是益二齊也. 

 夫一齊之彊, 燕猶狼顧而不能支, 今以三齊臨燕, 其禍必大矣.
 (북이방칠백리, 가지이노위, 강만승지국야, 이제병지, 시익이제야. 

 부일제지강, 연유랑고이불능지, 금이삼제임연, 기화필대의.


 [북방 오랑캐의 땅은 사방 칠백 리인데, 여기에 노나라와 위나라를 더하면 만승의 강국이 될 것이고,

 만약 제나라가 이를 병합하면 두 개의 제나라를 더하는 것입니다.
 무릇 하나의 제나라도 연나라는 마치 겁먹은 이리가 머뭇거리듯 지탱하기 어려운데,

 이제 세 개의 제나라가 연나라를 덮치려고 한다면 그 재앙은 반드시 대단할 것입니다.

 

 雖然, 智者擧事, 因禍爲福, 轉敗爲功.  齊紫, 敗素也, 而賈十倍 ;

 越王句踐棲於會稽, 復殘彊吳而霸天下 : 此皆因禍爲福, 轉敗爲功者也.
 (수연, 지자거사, 인화위복, 전패위공.  제자, 패소야, 이가십배 ;

 월왕구천서어회계, 복잔강오이패천하 : 차개인화위복, 전패위공자야.

 
 [비록 그러할지라도 지혜로운 자가 일을 하면 화를 복으로 돌리고 실패를 성공으로 이끕니다. 

 제나라의 자주 비단은 못쓰는 흰 비단에 물들인 것이지만, 그 가격은 다른 비단보다 열 배나 비싸게

 팔립니다.  월왕 '구천'은 "회계산"에 갇혀 살았지만 다시 강한 오나라를 깨트리고 천하의 패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모두 화를 복으로 만들고 실패를 돌려서 성공을 만든 것들입니다.

 

 今王若欲因禍爲福, 轉敗爲功, 則莫若挑霸齊而尊之, 使使盟於周室,

 焚秦符曰 :「 其大上計, 破秦 ; 其次, 必長賓之. 」  秦挾賓以待破, 秦王必患之.
 (금왕약욕인화위복, 전패위공, 즉막약도패제이존지, 사사맹어주실,

 분진부왈 : 기대상계, 파진 ; 기차, 필장빈지.   진협빈이대파, 진왕필환지.

 
 [지금 대왕께서 만약 화를 복으로 돌리고 실패를 성공으로 만들고 싶다면 제나라를 도와

 패자를 만들고 높여주는 것 만한 것이 없으며,  사신을 주나라 왕실에 보내 제나라를 맹주로

 받든다는 맹세를 하고, 진나라와 맺은 맹약서를 태워버리며 말하기를 :

 “ 가장 좋은 묘안으로는 진나라를 깨트리는 것이고, 그 다음은 오랫 동안 진나라를 배척하는 일이다.”

 라고 하십시오. 진나라가 배책을 당해 파멸을 기다리게 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면,

 진나라 왕은 반드시 근심할 것입니다.

 

 秦五世伐諸侯, 今爲齊下, 秦王之志苟得窮齊, 不憚以國爲功. 

 然則王何不使辯士以此言說秦王曰 :「 燕趙破宋肥齊, 尊之爲之下者, 燕趙非利之也.
 (진오세벌제후, 금위제하, 진왕지지구득궁제, 불탄이국위공. 

 연즉왕하불사변사이차언설진왕왈 :「 연조파송비제, 존지위지하자, 연조비리지야.

 
 [진나라의 군주들은 다섯 대에 걸쳐 제후들을 정벌해왔으나 지금은 제나라 밑에 있게 되니,

 진나라 왕의 뜻은 어떻게든지 제나라를 궁지에 몰아 넣을 수만 있다면, 국력을 다하여 성공하기를

 꺼리지 않을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말 잘하는 유세객을 진왕에게 보내서 이런 말로

 설득하지 않으십니까 : “ 연나라와 조나라가 송나라를 깨트리고 제나라를 비대하게 하여 제나라를

 높이고 그 아래 위치에 서는 것은 연나라와 조나라에게 이로운 일이 아닙니다.

 

 燕·趙不利而勢爲之者, 以不信秦王也.  然則王何不使可信者接收燕趙, 今涇陽君高陵君先於燕趙,

 秦有變, 因以爲質, 則燕趙信秦.  秦爲西帝, 燕爲北帝, 趙爲中帝, 立三帝以令於天下. 
 (연·조불리이세위지자, 이불신진왕야.  연즉왕하불사가신자접수연조, 금경양군고릉군선어연조,

 진유변, 인이위질, 즉연조신진.  진위서제, 연위북제, 조위중제, 입삼제이령어천하.   


 [연·조나라에게 유리하지도 않은데도 형세가 그렇게 된 것은 진나라 왕을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믿을 만한 자를 연나라와 조나라에 보내어 진나라 편으로

 끌어들이지 않는 것입니까. 지금 진왕의 아우인 '경양군','고릉군'을 우선 연나라와 조나라에 보내어 
 진나라가 변심할 경우를 대비하여 이들을 인질로 삼게 한다면 연·조나라는 진나라를 믿을 것입니다.

 진나라는 서쪽의 제왕이 되고 연나라는 북쪽의 제왕이 되며 조나라는 중앙의 제왕이 되어

 세 제왕이 천하를 호령할 수 있습니다. 

 

 韓魏不聽則秦伐之, 齊不聽則燕趙伐之, 天下孰敢不聽 ? 

 天下服聽, 因驅韓·魏以伐齊, 曰『 必反宋地, 歸楚淮北. 』 
 (한위불청즉진벌지, 제불청즉연조벌지, 천하숙감불청 ?

 천하복청, 인구한위이벌제, 왈,『 필반송지, 귀초회북. 』 


 [한나라와 위나라가 듣지 않으면 진나라가 이를 정벌하고, 제나라가 듣지 않으면 연나라와 조나라가

 정벌하면 천하에 어떤 나라가 감히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  천하가 진나라에 복종하면 한나라와

 위나라를 이끌고 제나라를 정벌하면서 말하기를 ' 송나라 땅을 반드시 돌려주고 "회하"의 북쪽 땅을

 초나라에 돌려주십시오'라고 하십시오.

  

 反宋地, 歸楚淮北, 燕趙之所利也 ; 並立三帝, 燕趙之所願也. 

 夫實得所利, 尊得所願, 燕趙弃齊如脫躧矣.
 (반송지, 귀초회북, 연조지소리야 ; 병립삼제, 연조지소원야. 

 부실득소리, 존득소원, 연조기제여탈사의.

 
 [제나라가 송나라 땅을 돌려주고 "회하"의 북쪽 땅을 초나라에 돌려주는 것은 연나라와 조나라에

 이익이 되는 일입니다.  또 세 제왕이 병립하는 것은 연나라와 조나라도 바라는 일입니다.

 무릇 실리로서는 토지를 얻고 원하는 바의 존귀한 지위를 얻는다면 연나라와 조나라는

 제나라 버리기를 마치 헌신짝 처럼 버릴 것입니다.

 

 今不收燕趙, 齊霸必成.  諸侯贊齊而王不從, 是國伐也 ; 諸侯贊齊而王從之, 是名卑也. 

 今收燕趙, 國安而名尊 ; 不收燕趙國危而名卑.  夫去尊安而取危卑, 智者不爲也.  
 (금불수연조, 제패필성.  제후찬제이왕불종, 시국벌야 ; 제후찬제이왕종지, 시명비야. 

 금수연조, 국안이명존 ; 불수연조국위이명비.  부거존안이취위비, 지자불위야. 」

 
 [지금 진나라가 연나라와 조나라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면 제나라의 패업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제후들이 제나라를 따르고 있는데도 대왕만이 따르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제후들에게 정벌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후들이 제나라를 따르는데 대왕께서도 따른다면 명성이

 낮아질 것입니다. 지금 연나라와 조나라를 끌어들이면 나라도 안정되고 명성도 높일 수 있으나,

 연나라와 조나라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나라도 위태로워지고 명성도 낮아질 것입니다.
 대체로 존경과 안정을 버리고 위험하고 낮은 것을 취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의 행동이 아닙니다.

 

 秦王聞若說, 必若刺心然.  則王何不使辯士以此若言說秦 ? 

 秦必取, 齊必伐矣.  夫取秦, 厚交也 ; 伐齊, 正利也.  尊厚交, 務正利, 聖王之事也. 」
 (진왕문약세, 필약자심연.  즉왕하불사변사이차약언세진 ? 

 진필취, 제필벌의.  부취진, 후교야 ; 벌제, 정리야.  존후교, 무정리, 성왕지사야. 」 )


 [진나라 왕이 이 유세를 들으면 반드시 마음에 찔리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유세하는 사람에게 이런 논법으로 진왕을 유세 하지 않으십니까 ?
 유세를 하면 진나라는 반드시 이를 취할 것이며 제나라는 반드시 정벌을 당할 것입니다. 

 무릇 진나라를 끌어 들이는 것은 견실한 외교이고 ; 제나라를 치는 것은 정당한 나라의 이익입니다.

 견실한 외교를 존중하고 정당한 이익에 힘쓰는 것은 성왕의 사업입니다. "라고 하였다. ]

 

 燕昭王善其書曰 : 「 先人嘗有德蘇氏, 子之之亂而蘇氏去燕.  燕欲報仇於齊, 非蘇氏莫可. 」 

 乃召蘇代, 復善待之, 與謀伐齊.  竟破齊, 湣王出走.
 (연소왕선기서왈 : 「 선인상유덕소씨, 자지지란이소씨거연.  연욕보구어제, 비소씨막가. 」 

 내소소대, 부선대지, 여모벌제.  경파제, 민왕출주. )


 [연'소왕'은 그 편지가 훌륭하다고 하며 말하기를 : “ 선왕은 일찍이 소씨들에게 덕을 베풀었으나

 '자지'의 난으로 소씨들은 연나라를 떠났다. 연나라가 제나라에 복수하고자 하는데 소씨들의

 도움이 없이는 안될 것이다. ”라고 하여.  연왕은 이내 '소대'를 불러 다시 그를 후대하고,
 함께 제나라를 정벌할 계획을 모의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제나라를 격파하니 제나라 '민왕'은 나라 밖으로 달아났다. ]

 

 久之, 秦召燕王, 燕王欲往, 蘇代約燕王曰 : 「 楚得枳而國亡, 齊得宋而國亡,

 齊楚不得以有枳宋而事秦者, 何也 ?  則有功者, 秦之深讎也.  秦取天下, 非行義也, 暴也.
 (구지, 진소연왕, 연왕욕왕, 소대약연왕왈 : 「 초득지이국망, 제득송이국망,

 제초불득이유지송이사진자, 하야 ?  즉유공자, 진지심수야.  진취천하, 비행의야, 폭야.

 
 [그리고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진왕이 연왕을 부르자, 연왕은 가려고 하였으나 '소대'가 만류하면서

 말하기를 : " 초나라는 "지" 땅을 얻어서 나라가 망했고, 제나라는 송나라 땅을 얻은 후에 나라가

 망했습니다. 제나라와 초나라가 "지" 땅과 송나라를 차지하고서도 진나라를 섬길 수 없었던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 그것은 공이 있는 자라면 진나라에게는 깊히 경계해야 할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진나라가 천하를 취하는 것은 정의를 행하는 것이 아니고 폭력을 행하는 것입니다.
 
 秦之行暴, 正告天下.  告楚曰 :『 蜀地之甲, 乘船浮於汶, 乘夏水而下江, 五日而至郢. 

 漢中之甲, 乘船出於巴, 乘夏水而下漢, 四日而至五渚.
 (진지행폭, 정고천하.  고초왈 : ‘촉지지갑, 승선부어문, 승하수이하강, 오일이지영. 

 한중지갑, 승선출어파, 승하수이하한, 사일이지오저.

 
 [진나라가 폭력을 행사할 때는 바로 천하에 알립니다.  예를 들면 진나라가 초나라에 고하기를 :  

 ‘ "촉" 땅의 무장병력이 배를 타고 "문수"를 떠나서, 여름의 불어난 물을 타고 장강으로 내려가면

 닷새만에 초나라 도성 "영"에 이를 것이오.  또 "한중"의 무장병력이 배를 타고 "파"를 출발하여
 여름의 불어난 물을 타고 한수로 내려가면 나흘이면 초나라의 "오저"에 이를 것이오.

 

 寡人積甲宛東下隨, 智者不及謀, 勇士不及怒, 寡人如射隼矣. 王乃欲待天下之攻函谷,不亦遠乎!』 
 (과인적갑완동하수, 지자불급모, 용사불급노, 과인여사준의.  왕내욕대천하지공함곡, 불역원호 ! 』

 
 [또한 과인이 친히 무장병력을 이끌고 "완현"의 동쪽에서 나와 "수읍"으로 진격한다면,

 어떤 지모있는 자라도 미처 계책을 세울 수 없고, 아무리 용맹한 사람이라도 성낼 틈이 없는 사이에

 과인은 쏜살같은 매처럼 재빨리 공격할 것이오.  그러함에도 초왕은 천하의 제후들이 "함곡관"을

 공격하고 진나라를 토벌하기를 기다린다니 그것은 너무 아득한 일이 아니겠소 ? '라고 하니.

 

 楚王爲是故, 十七年事秦.  秦正告韓曰 :『 我起乎少曲, 一日而斷太行. 

 我起乎宜陽而觸平陽, 二日而莫不盡繇.  我離兩周而觸鄭, 五日而國擧.』 韓氏以爲然, 故事秦.
 (초왕위시고, 십칠년사진.  진정고한왈 : 아기호소곡, 일일이단태항. 

 아기호의양이촉평양, 이일이막불진요.  아리양주이촉정, 오일이국거.  한씨이위연, 고사진.


 [초왕은 이런 까닭으로 17년이나 진나라를 섬겼습니다.  또 진나라는 바로 한나라에 경고하기를 :

 ‘나의 군대가 "소곡"에서 출발하면 하루만에 "상당"으로 통하는 "태항산"의 길을 차단할 수 있으리라,

 나의 군대가 "의양"에서 출병하여 한나라의 "평양"에 닿으면, 이틀이면 한나라 땅은 동요하지 않는

 곳은 없게 되오. 나의 군대가 "양주"를 통과하여 정나라에 닿으면, 닷새만에 한나라를 점령할

 것이오. ’라고 하니.  이에 한나라는 그렇다고 생각하여 진나라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秦正告魏曰 :『 我擧安邑, 塞女戟, 韓氏太原卷.  我下軹, 道南陽, 封冀, 包兩周. 

 乘夏水, 浮輕舟, 彊弩在前, 錟戈在後, 決滎口, 魏無大梁 ; 決白馬之口, 魏無外黃濟陽 ; 
 (진정고위왈 : ‘ 아거안읍, 색녀극, 한씨태원권.  아하지, 도남양, 봉기, 포양주. 

 승하수, 부경주, 강노재전, 담과재후, 결형구, 위무대량 ; 결백마지구, 위무외황제양 ; 

 
 [또 진나라가 바로 위나라에 경고하기를 : ‘ 우리의 군대가 "안읍"을 점령하고, "여극"의 길을 막으면,

 한나라의 "태원"은 사방이 막히게 될 것이오.  우리가 "지읍" 땅을 내려와 "남양"을 지나 "기읍"를

 봉쇄하고 동주와 서주를 포위할 수 있소.  여름에 불어난 물을 이용하여 빠른 배를 띄어

 강력한 쇠뇌부대를 앞세우고, 예리한 창을  든 부대를 뒤에 세워 "형택"의 제방 입구를 터 버리면,

 위나라의 도성 "대량"이 없어질 것이고 ; "백마진"의 제방을 터 버리면,

 위나라의 "외황"과 "제양"은 없어질 것이오.

 

 決宿胥之口, 魏無虛頓丘.  陸攻則擊河內, 水攻則滅大梁. 』  魏氏以爲然, 故事秦.
 (결숙서지구, 위무허돈구.  육공즉격하내, 수공즉멸대량. 』  위씨이위연, 고사진.


 [다시 "숙서"의 제방을 터 버리면 "허"와 "돈구"는 없어지고 말 것이오.
 육지로 공격하면 "하내"를 칠 것이고, 물길로 공격하면 "대량"을 멸할 것이오. '라고 하자. 

 위나라는 그렇다고 생각하여 진나라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秦欲攻安邑, 恐齊救之, 則以宋委於齊.  曰 :『 宋王無道, 爲木人以寫象寡人, 射其面. 

 寡人地絶兵遠, 不能攻也.  王苟能破宋有之, 寡人如自得之. 』 
 (진욕공안읍, 공제구지, 즉이송위어제.  왈 :『 송왕무도, 위목인이사상과인, 사기면. 

 과인지절병원, 불능공야.  왕구능파송유지, 과인여자득지.』 


 [진나라가 위나라의 "안읍"을 공격하려 하였으나 제나라가 위나라를 도울 것을 두려워하여, 

 송나라를 제나라에 맡기면서 이르기를 : ‘송나라 왕이 무도하여 나무 인형을 과인의 모양대로 만들어

 놓고 그 얼굴을 쏜다고 합니다. 과인이 파병을 하려 해도 거리가 너무 멀어서 공격하지 못하니,
 대왕께서 만일에 송나라를 무찌르고 제나라 땅으로 소유할 수 있다면,

 과인이 얻은 것 같이 여기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已得安邑, 塞女戟, 因以破宋爲齊罪.  秦欲攻韓, 恐天下救之, 則以齊委於天下. 
 (이득안읍, 색녀극, 인이파송위제죄.  진욕공한, 공천하구지, 즉이제위어천하.

 

 [그런데 진나라는 "안읍"을 얻고 "상당"으로 통하는 길목인 "여극"도 막음으로써 목적을 달성하자,

 이제는 송나라를 쳐부순 것을 제나라의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 
 또 진나라는 한나라를 공격하려고 했으나 천하의 제후들이 한나라를 도울 것을 염려하여

 제나라에 대한 처리를 제후들에게 맡기었습니다.

 

 曰 :『 齊王四與寡人約, 四欺寡人, 必率天下以攻寡人者三.

 有齊無秦, 有秦無齊, 必伐之, 必亡之. 』 已得宜陽· 少曲, 致藺· 離石, 因以破齊爲天下罪.
 
(왈 : ‘ 제왕사여과인약, 사기과인, 필솔천하이공과인자삼. 

 유제무진, 유진무제, 필벌지, 필망지. 』  이득의양· 소곡, 치린· 리석, 인이파제위천하죄.


 [그러면서 이르기를 : '제나라 왕은 과인과 네번 약속하여 네번 속였으며,

 분명히 천하의 제후들을 이끌고 우리 진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던 일이 세 번이나 있었소.
 제나라가 있으면 진나라가 없고, 진나라가 있으면 제나라는 있을 수 없으므로,  
반드시 제나라를

 쳐서 반드시 멸망시켜야 하오. ’라고 했습니다.  진나라는 이미 한나라의 "의양"과 "소곡",

 "인"과 "석"을 빼앗아 가고는 오히려 제나라를 정벌한 죄를 천하 제후의 죄로 만들었습니다.  

 

 秦欲攻魏重楚, 則以南陽委於楚. 曰 :『 寡人固與韓且絶矣. 

 殘均陵, 塞鄳阨, 苟利於楚, 寡人如自有之. 』  魏弃與國而合於秦, 因以塞鄳阨爲楚罪.
 (진욕공위중초, 즉이남양위어초. 왈 : 과인고여한차절의. 

 잔균릉, 색맹액, 구리어초, 과인여자유지.   위기여국이합어진, 인이색맹액위초죄.

 
 [또 진나라는 위나라를 치려고 할 때 초나라가 부담이 되자 한나라의 옛 땅 "남양"을 초나라에

 맡기면서 이르기를 : ‘ 과인은 본디  한나라와 절교하려고 했습니다. 만약 초나라가 한나라의

 "균릉"을 쓸어버리고 "맹액"을 막는 일이 초나라에 이익이 된다면, 과인이 그곳을 가진 것처럼

 여길 것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이 때문에 위나라는 합종했던 동맹국을 버리고 진나라와 연횡하자,

 진나라는 "맹액"의 요새를 막은 일에 대해 초나라의 잘못으로 돌렸습니다.

 

 兵困於林中, 重燕趙, 以膠東委於燕, 以濟西委於趙.  已得講於魏, 至公子延, 因犀首屬行而攻趙.
 (병곤어림중, 중연조, 이교동위어연, 이제서위어조.  이득강어위, 지공자연, 인서수속행이공조.


 [진나라 군사들이 위나라를 공격하다가 "임중"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연나라와 조나라를 두려워하여, 연나라에는 "교동"을 맡기고, 조나라에는 "제서"를 맡겼습니다.
 곧이어 위나라와 화해한 진나라는 위나라의 공자 '연'을 인질로 잡고, '서수'로 하여금

 진의 군대를 거느리고 조나라를 공격하게 했습니다.

 

 兵傷於譙石, 而遇敗於陽馬, 而重魏, 則以葉蔡委於魏. 

 已得講於趙, 則劫魏, 魏不爲割.  困則使太后弟穰侯爲和, 嬴則兼欺舅與母.
 (병상어초석, 이우패어양마, 이중위, 즉이섭채위어위. 

 이득강어조, 즉겁위, 위불위할.  곤즉사태후제양후위화, 영즉겸기구여모.


 [다시 진나라 군사들이 "초석"에서 조나라 군사들에게 다치고,

 다시 "양마"에서 조나라 군대와 조우하여 패하자, 위나라를 염려하여 "섭"과 "채" 땅을 맡겼습니다.
 곧이어 조나라와 화해를 하고서, 다시 위나라를 협박하여 주기로 한 땅을 떼어 주지 않았습니다. 
 싸우다가 져서 곤란한 지경에 이르면 태후의 아우 '양후'를 보내어 화친을 맺게 하고,

 이겨서 유리하면 모후와 외삼촌을 속였습니다.

 

 適燕者曰 以膠東, 適趙者曰 以濟西, 適魏者曰 以葉·蔡, 適楚者曰 以塞鄳阨, 適齊者曰 以宋. 

 此必令言如循環, 用兵如刺蜚, 母不能制, 舅不能約.
 (적연자왈 이교동, 적조자왈 이제서, 적위자왈 이섭·채, 적초자왈 이색맹액, 적제자왈 이송. 

 차필령언여순환, 용병여자비, 모불능제, 구불능약.

 
 [연나라의 잘못을 꾸짖을 때는 "교동"을 빼앗아간 일을 구실로 삼고,

 조나라의 잘못을 꾸짖을 때는 "제서"를 빼앗아 간 일을 구실로 삼고,
 위나라를 꾸짖을 때는 "섭"과 "채"를 빼앗아 간 일을 구실로 했으며,

 제나라를 꾸짖을 때는 송나라의 일을 구실로 삼았습니다.
 진왕이 남을 꾸짖을 때의 말은 둥근 고리처럼 돌고 돌아 말의 끝과 시작이 없게 만들었으며,

 용병을 할 때는 마치 바퀴벌레를 찔러 죽이듯이 악랄하여,
 모친도 그 행동을 제지하지 못했으며, 외삼촌도 그의 행동을 멈추게 할 수 없었습니다.

 

 龍賈之戰, 岸門之戰, 封陵之戰, 高商之戰, 趙莊之戰, 秦之所殺三晉之民數百萬,

 今其生者皆死秦之孤也.  西河之外, 上雒之地, 三川晉國之禍, 三晉之半, 秦禍如此其大也.  
 (용가지전, 안문지전, 봉릉지전, 고상지전, 조장지전, 진지소살삼진지민수백만,

 금기생자개사진지고야.  서하지외, 상락지지, 삼천진국지화, 삼진지반, 진화여차기대야.

  
 [위나라 장수 '용가'와의 전투, 한나라 "안문"에서의 전투, 위나라 "봉릉"에서의 전투,

 "고상"에서의 전투, 조나라 장수 '조장'과의 전투 등 진나라 군대가 죽인 삼진(한, 위, 조나라)의

 백성은 수백 만 명에 달하고, 지금 살아있는 자는 모두 진나라 군대와의 전투에서 죽은 사람의

 고아입니다.  진(秦)나라로부터 전화를 입은 삼진(晉)의 땅은 "서하" 이외도 "상락", "삼천" 등

 삼진의 영토 절반에 이릅니다. 진나라로 받은 재앙은 이처럼 큽니다.  

 

 而燕·趙之秦者, 皆以爭事秦說其主, 此臣之所大患也. 」
 (연·조지진자, 개이쟁사진설기주, 차신지소대환야. 」

 

 [그러함에도 진나라에 들어간 연나라와 조나라의 유세가들은 모두 자국의 왕들에게 앞 다투어

 진나라를 섬기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신이 크게 근심하는 바입니다. ”라고 하였다. ] 

 

 

 燕昭王不行.  蘇代復重於燕.  燕使約諸侯從親如蘇秦時, 或從或不, 而天下由此宗蘇氏之從約. 

 代·厲皆以壽死, 名顯諸侯.
 (연소왕불행.  소대복중어연.  연사약제후종친여소진시, 혹종혹불, 이천하유차종소씨지종약. 

 대·려개이수사, 명현제후. ) 


 [그래서 연'소왕'은 '소대'의 말대로 진나라에 가지 않았다.  소대는 다시 연나라에서 중용되었다. 

 연나라는 '소진' 살아있었을 때처럼 제후들과 합종을 시도했으나,
 제후들 중에 어떤 자는 따르고 어떤 자는 따르지 않았으니,

 이로써 천하는 소씨들로 인하여 합종책을 중요시 생각하게 되었다.
 '소대'와 '소려'는 모두 천수를 누리다가 죽었으며, 그 명성은 제후들 사이에 드러났다. ] 


 

 太史公曰 : 蘇秦兄弟三人, 皆游說諸侯以顯名, 其術長於權變. 

 而蘇秦被反閒以死, 天下共笑之, 諱學其術.  然世言蘇秦多異, 異時事有類之者皆附之蘇秦.
 (태사공왈 : 소진형제삼인, 개유세제후이현명, 기술장어권변. 

 이소진피반간이사, 천하공소지, 휘학기술.  연세언소진다이, 이시사유류지자개부지소진. 


 ['태사공' 말한다 : “ 소진의 형제 세 사람은 모두 제후들에게 유세하여 이름을 드러냈다. 

 그들의 변론술은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뛰어났다. 그러나 '소진'은 반간(간첩)의 명분으로 죽음을

 당하였음으로 천하의 사람들은 모두 이를 비웃었으며, 그의 유세술을 배우기 꺼려하였다.

 그러나 세상에는 '소진'을 다르게 평가하는 말이 많다.

 다른 시대에 발생한 일이라도 비슷한 것은 모두 소진에게 끌어다 붙인 까닭이다.

 

 夫蘇秦起閭閻, 連六國從親, 此其智有過人者.  吾故列其行事, 次其時序, 毋令獨蒙惡聲焉.
 (부소진기여염, 연육국종친, 차기지유과인자.  오고열기행사, 차기시서, 무령독몽악성언.
 [무릇 '소진'이 백성들의 살림집이 많이 모여 사는 곳에서 평민의 신분으로 태어나 여섯 나라를

 연결하여 합종의 맹약을 맺게 한 것은, 그의 지혜가 평범한 사람보다 뛰어난 점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행한 사실을 늘어놓고 그 때와 순서를 맞추어서 오직 악평만을 받지 않도록 하였다. ] 

 

 

【 각주 】 

1) 귀곡선생(鬼谷先生) : 전국 때 제나라의 출신의 종횡가로 이름은 전하지 않는다.  

    일설에는 초나라 출신이라고도 한다. 지금의 하남성 방성(方城) 부근의 영천(穎川) 양성(陽城)의 귀곡이라는  

    곳에 은거하여 살았기 때문에 귀곡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했다. 귀곡은 일설에는 지금의 섬서성 경양(涇陽)의      부풍(扶風)의 지양(池陽) 부근이라고도 한다. 그의 사상은 황노(黃老)의 <심술(心術)>에서 출발했다.  

    세상의 일을 논하여 일을 도모함에 있어서 우선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반응(反應)> 단계를 거쳐,  

    자기의 마음으로써 미루어 상대방의 마음을 읽는 <췌마(揣摩)>에 이르러, 마침내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게하는 <비합(俾闔)>의 술로 발전시키여 한다고 함으로 해서 전국시대 유세가들의 조종(祖宗)이 되었다.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은 그의 제자이며 <귀곡자(鬼谷子)> 3편이 수서(隋書) 경적지(經籍志)에 실려있으나  

    일설에는 소진이 저술하고 신비감을 보태기 위해 그의 이름을 빌린 것이라고도 한다.  

2) 음부경(陰符經) : 전국책(戰國策)에 태공 여상(呂尙)이 지은 병법서라고 전해지나 실전되어 전해지지 않는다.  

    지금 전해지는 음부경이라는 책은 황제가 저술했다고 하며 후에 태공(太公), 범려(范蠡), 귀곡자(鬼谷子),  

    장량(張良), 제갈량(諸葛亮), 이전(李筌) 등의 주가 달려있는 병법서라기 보다는 일종의 도가서이다.  

   이전(李筌)은 입산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당나라 때의 도가(道家)다.  

3) 주현왕(周顯王) : 기원전 396년부터 321년까지 즉위한 전국시대 동주의 군주다.  

    주열왕(周列王)의 동생으로 이름은 편(扁)이다.  

4) 진혜왕(秦惠王) : 재위 기원전 337-311년이다. 진효공으로 아들로 태자시 상앙에게 원한을 품고 있다가  

    효공이 죽고 진왕의 자리에 오르자 상앙을 반역으로 몰아 거열형에 처했다.  

5) 마(馬) : 지금의 산서성 삭현(朔縣)이다.

6) 조숙후(趙肅侯) : 재위 기원전 349-326년 이름은 어(語)다. 조성후(趙成侯)의 태자로 성후가 죽자  

    공자 설(紲)과 후계자 자리를 놓고 싸워 이김으로써 기원전 349년 조나라 군주의 자리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 제(齊)와 위(魏) 등의 나라와 빈번하게 싸움을 벌렸고 북쪽의 운중(雲中)과 대(代)를 잇는 장성을  

    축조했다. 재위 24년 만에 죽고 아들 무령왕(武寧王)이 즉위했다.  

7) 연문후(燕文侯) : 기원전 361년에 즉위하여 333년까지 재위한 전국시대 때 연나라 군주로 소진을 기용하여  

    합종을 행하여 진나라에 대항했다.  

8) 갈석(碣石) : 원래 지금의 하북성 창려(昌黎) 북쪽에 있는 갈석산을 말하나 소진이 말하는 갈석은 사기색은에  

    의하면 상산(常山) 구문현(九門縣)에 있다고 했다. 구문현은 지금의 하북성 호성(蒿城) 서북에 있는  

    태항산맥 줄기에 해당한다.  

9) 응문(應門) : 지금의 산서성 북부지방의 대동 일대를 말한다.

10) 소진이 연나라에 들어가 연문후를 만난 해는 문후 즉위 28년 즉 기원전 334년의 일이다.  

      당시에는 진(秦)나라가 본격적으로 동진정책을 추진하기 전으로써 조나라와는 직접적인 교전은 없었다.  

      단지 진(秦)이 위(魏)와 하서(河西)와 하동(河東)의 땅을 다투는 과정에서 조(趙)가 위(魏)를 위해 원군을 보내        진군을 퇴각시킨 일이 2번 정도 있었을 뿐이다. 기원전 364년 진(秦)이 위의 석문(石門)을 공격하여  

      위군(魏軍) 6만의 목을 벴다. 이에 조(趙)가 군사를 일으켜 구원군을 보내자 진군이 퇴각했다.  

      다시 다음 해인 기원전 363년 진(秦)이 위(魏)의 소량(少梁)을 공격하자 조나라가 다시 구원을 보내 도왔다.  

      즉 진과 조가 다섯 번 싸웠다는 말은 소진의 말은 잘못이다.  

11) 동원(東垣) : 지금의 하북성의 성도였던 석가장시(石家庄市) 경내에 있었던 고을로 중산국(中山國) 령이었다.

12) 탕목금(湯沐金) : 황제와 그 일족들을 위해 사용되는 경비를 말한다.

13) 지도(軹道) : 지금의 하남성 제원현(濟源縣) 경내에 있었던 고대의 도로의 이름이다.  

      산서성 고원지대와 예북(豫北) 평원을 잇는 도로로써 옛날부터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또한 섬서성 서안 북쪽에 지도정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진나라의 자영이 항복의 의식을 행한 곳이다.  

14) 권(券) : 하남성 원양현(原陽縣) 서북의 고을로 전국 때 위나라 령이다.

15) 파오(番吾) : 지금의 하북성 자현(磁縣)에 있던 고을로 전국 때 조나라 령이다.

16) 청하(淸河) : 산동성 관도(館陶)에서 출원하여 북으로 흘러 하북성 위현(威縣)을 경유하여 다시 동쪽으로 꺾여  

      흐르다 다시 산동성의 무성(武城)의 경계에서 황하로 합류했던 강으로 옛 하천명은 기수(淇水)다.  

17) 무(畝) : 전한 시대 이전의 1무는 지금의 약 60평에 해당한다. 즉 300무란 18,000평을 의미한다.

18) 지척(咫尺) : 주나라 때 길이를 재는 단위로 지(咫)는 소척으로 8촌 즉 18cm의 길이를,  

      척은 대척으로 10촌 즉 22.5cm의 길이를 말하는 것으로써 대단히 짧은 길이를 의미한다.  

19) 원수(洹水) : 지금의 하남성 북쪽의 임현(林縣)의 융려산(隆慮山)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안양시(安陽市)를 지나 내황현(內黃縣) 북쪽에서 황하에 유입되었던 하천을 말한다.  

20) 박관(博關) : 춘추 때 제나라가 지금의 산동성 임평현(荏平縣)인 박릉(博陵)에 설치했던 관문이다.

21) 일(鎰) : 고대 중국의 중량의 단위로서 20량 혹은 24량에 해당 한다. 춘추전국 시대 때의 한 량은 16 그람으로  

      한 일은 약 300그람 혹은 400그람에 해당 함. 따라서 천일(千鎰)은 300키로 혹은 400키로의 중량을 말한다.  

22) 서수(犀首) : 전국 때 위(魏)나라의 고위직의 금위(禁衛) 무관직 이름이다. 후대에 이르러 왕의 근위대였던  

      호분장군(虎奮將軍)에 해당한다. 전국 때 대표적인 유세가 중의 한 사람이었던 공손연(公孫衍)이 위나라에서        있을 때 역임했던 관계로 그를 지칭한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공손연의 성은 희(姬)이고, 씨는 공손(公孫),  

      이름은 연(衍)이다. 위나라 음진(陰晉 : 지금의 섬서성 화음현(華陰縣) 사람이며 위나라 혹은 진(秦)나라  

      공족 출신이라고도 한다. 처음에 진나라에 들어가 진혜왕(秦惠王)에게 유세하여 신임을 얻어 중용되었다.  

      진혜왕 5년 기원전 333년 대량조(大良造)에 임명되어 진나라의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공격하여  

      그 장군 용고(龍賈)를 사로잡고 조음(雕陰 : 지금의 섬서성 감천(甘泉) 서)을 점령했다.  

      다시 진나라를 위해 제(齊)와 위(魏)나라에 유세하여 세 나라가 힘을 합쳐 조나라를 공격하여 소진(蘇秦)의  

      합종책(合縱策)을 무너뜨렸다. 후에 장의(張儀)와 사이가 벌어져 위나라로 들어가자 위혜왕(魏惠王)은  

      그를 위나라의 대장으로 삼았다. 그는 한(韓), 조(趙), 위(魏), 연(燕), 중산(中山) 등의 5국의 재상이 되어  

      합종을 이끌고 진나라의 세력에 대항했다. 이어서 위혜왕(魏惠王) 후원년(後元年) 16년 기원전 319년 위(魏),        조(趙), 한(韓), 연(燕), 초(楚) 등의 5국의 군사를 일제히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고 다시 진나라의 서쪽에  

      자리잡은 의거(義渠)의 군주와 통하여 진나라의 배후를 기습하도록 하여 동서 양쪽에서 진나라를 공격하여  

      곤경에 처하도록 했다. 새로 즉위한 진무왕(秦武王)은 장의(張儀)를 쫓아내어 죽도록 하고 공손연을 불러들여        재상으로 삼았다. 공손연을 진나라의 재상이 된 후에도 허리에는 5국의 재상인을 차고 다니며 연횡(連橫)의  

      약장(約長) 노릇을 했다. 진무왕 4년 기원전 307년 감무(甘茂)에 의해 참소 당하여 진나라에서 다시 쫓겨나  

      위나라로 돌아갔다. 이어서 얼마 안 있어 어떤 사람에게 모함을 당하여 위왕에게 살해당했다.  

23) 조음(雕陰) : 지금의 섬서성 감천현(甘泉縣) 남쪽에 있었던 고을로 위(魏)나라가 황하 이서 지역에 설치한  

      상군(上郡)의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24) 한선왕(韓宣王) : 선혜왕(宣惠王)이라고도 한다. 기원전 332년에 즉위 312년에 죽은 전국 때 한나라 군주다.  

      재위 기간 중 합종과 연횡을 수시로 바꿔 진나라로부터 빈번히 침략을 받다가 만년에 진나라와 함께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나라를 대패시켰다.  

25) 계자(谿子) : 고대 중국의 남방에 거주하던 이민족 이름으로 산뽕나무로 만든 쇠뇌로 유명했다.  

      여기서는 한나라가 계자족의 것을 모방하여 만든 쇠뇌를 지칭한다.  

21) 소부(少府) : 산과 바다, 땅과 소택지에서 산출되는 재화와 황실과 왕실의 수공업과 제조업을 관장하는  

      관청 이름이다. 전국시대에 설치되기 시작해서 진한시대로 이어져 9경에 포함되었다.  

22) 시력(時力), 거래(距來) : 한나라의 소부에서 생산되는 쇠뇌의 이름들이다. 모두 양궁의 명칭이다.  

26) 계자(溪子) : 고대 남방의 만이(蠻夷)의 부족명으로 그곳에서 산출되는 산뽕나무와 대나무로 만든 활은  

      강궁으로 이름이 있었다. 후에 강궁을 지칭하는 말로 쓰이기 시작했다.  

28) 명산(冥山) : 지금의 하남성 신양시(信陽市) 동남에 있었던 고을로 초나라와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전국 때 견고한 철제품의 산지로 유명했다.  

29) 묵양(墨陽) : 하남성 석천현(淅川縣) 북쪽으로 묵산(山)의 남쪽으로 전국 때 명검의 산출지로 유명했다.

30) 합부(合賻) : 합백(合伯)이라고도 하며 역시 전국 때 한나라의 철검 산지로 유명했다.  

      지금의 하남성 서평현 서쪽에 있었다.  

31) 등사(鄧師) : 전국 때 등이라는 제후국의 고지였던 등(鄧) 땅은 철검을 주조했던 공장이 있었던 곳으로 

       유명했다. 등이라는 곳에서 산출되는 명검의 이름을 말한다.  

32) 완풍(宛馮) : 풍지(馮池)라는 곳에서 완인(宛人)이 주조했던 검의 명칭이다.

33) 용연(龍淵), 태아(太阿)/ 모두 검의 이름이다. 이상 명산(冥山)에서 태아(太阿)까지 모두 그 날이 예리한 검의  

      이름으로 산지의 이름이거나 혹은 만들었던 사람으로 이름을 붙였다.  

34) 혁결(革抉) : 활을 쏠 때 오른손의 손가락에 끼워 시위를 당기는데 사용했던 

       일종의 골무처럼 생긴 것을 말한다. 

35) 발예(㗶芮) : 발(㗶)은 방패를 예는 방패를 잇는 끈을 말한다.

36) 위양왕(魏襄王) : 전국 때 위나라 군주로 성은 희(姬)고 위(魏) 씨에 이름은 사(嗣)다.  

      혜왕(惠王)의 아들로 기원전 334년에 즉위하여 319년에 죽었다. 즉위 초에 제후들과 서주(徐州)에서 회맹을  

      행하고 왕호를 칭하기 시작했다. 진나라와의 싸움에서 계속 패한 결과 서하(西河), 분음(汾陰), 곡옥(曲沃),  

      상군(上郡) 등을 모두 상실하고 다시 음진(陰晉)의 땅을 진나라에 바쳤다. 초나라를 공격하여 형산(陘山)의  

      땅을 점령했으나 얼마 후에 양릉(襄陵)에서 초군과 싸워 패했다. 명가(名家) 출신의 혜시(惠施)를 기용하여  

      재상으로 삼아 친제정책을 취했다. 후에 혜시를 쫓아내고 장의롤 대신 재상으로 삼았다.  

      장의가 진나라를 받들라고 권하자 듣지 않고 다시 장의를 재상에서 파면했다.  

      일설에는 기원전 기원전 319년에서 296년 사이에 재위했으며 그의 사적 중 일부는 

       위애왕의 것이라고도 한다.  

37) 홍구(鴻溝) : 전국 때 위나라가 건설한 운하로 지금의 하남성 형양시(滎陽市) 북쪽에서 황하의 물을 끌어들여  

      동쪽으로 흐르게 했다가 위나라의 도성인 대량(大梁 :지금의 개봉(開封))을 관통한 다음 남쪽으로 꺾어져  

      회양시(淮陽市)에서 영수(潁水)와 합류시켰다. 홍구는 이후로 황하유역과 회수(淮水) 사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수상교통로가 되었다.  

38) 진(陳) : 춘추시대 진(陳)나라의 옛 땅으로 대부분은 초나라에 속하고 일부가 위나라에 속했다.  

      기원전 278년 진나라의 장군 백기(白起)에 의해 영성(郢城)을 점령당한 초나라가 나라를 이곳으로 옮겼다.  

39) 여남(汝南) : 여수(汝水)의 남쪽 땅으로 지금의 하남성 상채시(上蔡市) 일대를 말한다. 참고로 여수는 지금의  

      하남성 서쪽의 복우산(伏牛山)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흘러 안휘성 회빈(淮濱)에서 회수와 합류한다.  

40) 허(許) : 지금의 하남성 허창시(許昌市)에 있던 고을로 춘추 때 허나라의 옛 땅으로 대부분의 영토는  

      초나라에 병탄되었다.  

42) 곤양(昆陽) : 지금의 하남성 엽현(葉縣)에 있었던 고을로 후에 후한을 세운 광무제가 이곳에서  

      왕망(王莽)의 45만 대군을 물리친 곳으로 유명하다.  

43) 소릉(召陵) : 지금의 하남성 언성현 동쪽 30리에 소릉채라고 있다. 기원전 656년 초나라의 사자로 온 굴완이  

      제후의 군과 소릉에서 회맹을 행했다( 춘추 회공 4년조).  

      사기 진본기에 기원전 311년 진군이 초나라를 공격하여 소릉을 점령했다(진본기 혜문왕 후원년 14년)  

47) 영수(潁水) : 지금의 하남성 숭산(嵩山)에서 발원하여 허창시(許昌市)와 주구시(周口市)를 지나  

      안휘성 영상현(潁上縣)에서 합류하는 회수의 가장 큰 지류이다.  

55) 간수(干遂) : 지금의 강소성 소주시 북쪽으로 이곳에서 월왕 구춘과의 싸움에서 패한 오왕 부차가 자살했다.

56) 창두군(蒼頭軍) : 전국 때 위(魏)나라가 용맹한 무사들로만 뽑아 구성한 부대이름으로 그 표시로 머리에  

      푸른 두건을 둘렀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무적의 군대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진말 진승이 기의할 때 동양(東陽)의 젊은이들이 호응하여 무적의 군대라는 뜻으로 창두군이라고 칭했다.  

57) 오가지병(五家之兵) : 춘추 때 관중이 창시한 일종의 군제로써 그 내용은 오가(五家)를 궤(軌), 10궤를 리(里),  

      4리(里)를 연(連), 10련(連)을 향(鄕) 3향에 1사(師)를 둔다는 것이다.  

      여기서의 뜻은 삼군(三軍)의 경우는 정규군, 오가지병의 경우는 일종의 예비군을 의미한다.  

      일설에는 6국 중 제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5국의 군사를 지칭한다는 설도 있다.  

61) 초위왕(楚威王) : 기원전 339년 즉위하여 329년에 죽은 초나라 왕으로 이름은 웅상(熊商)이다.  

      기원전 336년 제나라를 공격하여 서주(徐州)에서 제군(齊軍)을 격파했다.  

62) 하주(夏州) : 지금의 호북성 성도인 무한(武漢) 일대를 말하며 한수가 장강과 합류되는 지점이다.

63) 해양(海陽) : 장강이 황해로 유입되는 강어귀의 북안으로 지금의 강소성 태주시(泰州市) 일대를 말한다.

64) 창오(蒼梧) : 지금의 호남성 영원현(寧遠縣) 남쪽에 있는 구의산(九疑山) 일대를 말한다.  

      순임금이 순행 나갔다가 죽어 묻혔다는 전설이 깃든 곳으로 유명하다.  

65) 형색(陘塞) : 지금의 하남성 탑하시 동쪽에 있는 형산(陘山)에 건설한 관문을 말한다. 전국 때 한나라 영토였다.

67) 언영(鄢郢) : 언(鄢)과 영(郢)을 말한다. 언(鄢)은 지금의 호북성 의성현(宜城縣)이고 영(郢)은 초나라의 수도로 

      강릉시(江陵市)를 말한다. 기원전 278년 과연 소진의 예측대로 무관을 나온 진나라의 장군 백기가 검중 및  

      무군(巫郡) 등에서 초나라로 진격한 진군과 협동 작전을 펼쳐 초나라의 언(鄢)과 영(郢)을 함락시키고  

      그곳에 남군(南郡)을 설치했다. 초나라는 이에 하남성 진성(陳城)으로 나라를 옮겨야만 했다.  

68) 경(頃) : 일경(一頃)은 백 무(畝)에 해당하고 춘추전국 시대 때 한 무(畝)는 55평(약 180a)이다.  

      즉 일경은 5,500 평임으로 2경의 단위는 지금의 평수로 계산하면 만 평 정도를 말한다.  

69) 전국 시대 때 일금은 만전에 해당한다. 소진이 갚은 100금을 전으로 환산하면 백만금에 해당한다.  

      즉 빌린 돈을 만 배로 갚았다는 뜻이다.  

70) 오훼(烏喙) : 오두(烏頭) 혹은 부자(附子)라고하는 한방의 약초로 쓰이는 독초의 이름이다.  

      그대로 말린 것을 생부자(生附子), 소금물에 담갔다가 석회가루를 뿌려서 말린 것을 백하부자(白河附子),  

      약 120 ℃로 가열하여 다소 유효성분이 변질한 것을 포부자(炮附子)라고 하며, 모두 약용으로 쓰인다.  

71) 미생(尾生) : 춘추 때 노(魯)나라 사람으로 신의로 유명한 고대 전설상의 인물이다.  

      <장자(莊子). 도척(盜拓)> 편에 ‘ 미생이 한 여인과 다리 밑에서 기한을 정해 만나기로 약속했다.  

      여자는 오지 않고 강물이 불어났으나 미생은 여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리밑을 떠나지 않아  

      물에 익사하고 말았다.’라는 기사가 있다.  

72) 제민왕(齊湣王) : 기원전 300년부터 284년까지 재위한 전국 때 제나라의 군주다.  

      전(田) 성에 이름은 지(地)이고 제선왕의 아들이다. 재위 기간 중, 진소왕과 함께 제(帝)를 칭하다가  

      후에 제호를 버리고 왕호를 다시 사용했다. 제나라의 강한 군사력에 의지하여 빈빈히 주위의 제후국들을  

      침략하여 남쪽으로는 초나라의 회수(淮水) 이북의 땅을 빼앗고, 서쪽으로는 삼진(三晋)을 공격하여  

      다시 주나라의 영토를 병합하여 천자가 되려고 시도했다. 다시 군사를 대거 일으켜 송나라를 멸하여  

      병탄함으로 해서 진소왕의 분노를 샀다. 이에 진소왕은 연(燕), 초(楚) 및 삼진과 연합하여 제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 장수 악의(樂毅)를 5국 연합군의 대장으로 삼았다. 임치(臨淄)에서 악의의  

      연군에게 참패한 제민왕은 도주하여 거성(莒城)으로 달아났으나 초나라 장수 요치(淖齒)에게 살해되었다.  

73) 청하(淸河) : 전국 때 조나라와 제나라 사이에 흐르던 강 이름이다.  

      발원지는 하남성 내황(內黃) 남이나 하류는 미상이다.  

74) 탁하(濁河) : 황하의 별칭이다.

75) 장성(長城) : 춘추전국 때 제나라가 태산 남쪽에 오와 초의 침략을 대비하여 건설한 장성을 말한다. 

       제장성이다. 

76) 거방(鉅防) : 제수 강안에 건설한 관문으로 지금의 산동성 장청현(長淸縣)에 있었다.

77) 경양군(涇陽君) : 진공자 불(芾)의 봉호다. 진선태후(秦宣太后) 미팔자(羋八子)의 아들로 진소양왕의 동모제다.

78) 문강(汶江) : 민강(岷江)의 별칭이다.

79) 오저(五渚) : 상수(湘水), 원수(沅水), 자수(資水), 풍수(灃水) 등의 네 줄기의 강물이 동정호(洞庭湖)의  

      북쪽에서 만나 다섯 번 째의 큰 물줄기를 이룬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라고했다. - 수경주(水經注) 상수(湘水).  

      일설에는 완(宛)과 등(鄧) 사이의 한수 강심에 있는 다섯 군데의 모래섬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했다.(사기색은)  

80) 소곡(少曲) : 소수지곡(少水之曲) 즉 소수가 꺾이는 곳의 지명으로 지금의 하남성 제원현(濟源縣) 서쪽,  

      태항산 서남이다.  

81) 용가지전(龍賈之戰) : 기원전 314년에 일어난 진나라와 위나라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주난왕(周赧王) 원년 진혜왕(秦惠王)이 장수 서수(犀首)와 공자앙(公子卬)을 시켜 위나라를 공격하자  

      위나라는 용가에게 4만 5천의 대군을 주어 막도록 했다. 용가는 진군과 지금의 섬서성 감천(甘泉) 남쪽의  

      조음(雕陰)에서 싸워 대패하고 자신은 포로가 되었다.  

82) 안문지전(岸門之戰) : 기원전 338년 (周顯王 31년) 진나라와 위나라 사이에 지금의 산서성 하진(河津) 남쪽의  

      안문(岸門)에서 벌어진 전쟁. 이 싸움에서 위군은 대패하고 그 대장 위조(魏錯)는 진군의 포로가 되었다.  

83) 봉릉지전(封陵之戰) : 봉릉은 현 삼서성 예성(芮城) 남으로 황하의 북안 도시다. 전국 때 위나라 성읍으로  

      6국 연표에 위애왕(魏哀王) 16년(전296년) “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포판(蒲坂), 진양(晉陽),  

      봉릉(奉陵)을 빼앗아 갔다.”라는 기사가 있다. 6국 연표의 위애왕은 위양왕(魏襄王)의 잘못이다.  

84) 조장지전(趙莊之戰) : 조무령왕(趙武靈王) 13년 (전313년)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여 인(藺)을 점령하고

      조군대장 조장(趙莊)을 포로로 잡아간 싸움을 말한다. 인(藺)은 지금의 산서성 이석(離石) 서다.

 

 

                                 전국시대형세도

 

                                 소진과 장의의 유세도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