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孟嘗君列傳

第十五. 孟嘗君列傳(맹상군열전)

덕치/이두진 2021. 7. 27. 19:12

 

               史記 列傳

 

 

     第十五.     孟嘗君列傳(맹상군열전) 

 

 孟嘗君名文, 姓田氏.  文之父曰靖郭君田嬰.  田嬰者, 齊威王少子而齊宣王庶弟也.   

 田嬰自威王時任職用事, 與成侯鄒忌及田忌將而救韓伐魏.
 
(맹상군명문, 성전씨.  문지부왈정곽군전영.  전영자, 제위왕소자이제선왕서제야.
 

 전영자위왕시임직용사, 여성후추기급전기장이구한벌위.)


 [맹상군의 이름은 '문'이고 성은 '전'씨다.  '문'의 아버지 정곽군 '전영'은 제나라 '위왕'의 막내아들이며
 

 제'선왕'의 이복 동생이다.  '전영'은 제'위왕' 때부터 조정에 나가 정사에 참여했으며  

 성후 '추기'와 '전기'는 함께 군대를 이끌고 출전하여 한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위나라를 정벌하였다.] 

 

 成侯與田忌爭寵, 成侯賣田忌.  田忌懼, 襲齊之邊邑, 不勝, 亡走. 

 會威王卒, 宣王立, 知成侯賣田忌, 乃復召田忌以爲將. 
 
(성후여전기쟁총, 성후매전기.  전기구, 습제지변읍, 불승, 망주.   
 

 회위왕졸, 선왕립, 지성후매전기, 내부소전기이위장.)


 ['추기'와 '전기'는 제왕의 총애를 다투다가 마침내 '추기'가 '전기'를 모함했다.
 

 '전기'는 두려워하여 제나라의 "변읍"을 습격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나라 밖으로 달아났다. 

 '위왕'이 죽고 그 뒤를 이은 '선왕'은 '추기'가 '전기'를 모함한 사실을 알고 그를 다시 불러들여 장군으로 삼았다.] 

 

 宣王二年, 田忌與孫臏·田嬰俱伐魏, 敗之馬陵, 虜魏太子申而殺魏將龐涓.   

 宣王七年, 田嬰使於韓·魏, 韓·魏服於齊.  嬰與韓昭侯, 魏惠王會齊宣王東阿南盟而去.
 
(선왕이년, 전기여손빈·전영구벌위, 패지마릉, 로위태자신이살위장방연.  
 

 선왕칠년, 전영사어한·위, 한·위복어제.  영여한소후, 위혜왕회제선왕동아남맹이거.)

 [선왕 2년( BC 341 ), '전기'와 '손빈', 그리고 '전영'이 위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전하여

 "마릉"에서 위군을 크게 무찌르고 위나라의 태자'신'은 포로로 잡고 장수 '방연'을 죽였다.   

 선왕 7년,  '전영'이 사자가 되어 한나라와 위나라를 차례로 방문하자 두 나라는 제나라에 복종하였다.
 '전영'은 한'소후'와 위'혜왕'을 만나 제나라 남쪽 "동아"로 데리고 가서 
제'선왕'을 만나 맹약을 맺게하고 떠났다.] 

 

 明年, 復與梁惠王會甄.  是歲, 梁惠王卒.  宣王九年, 田嬰相齊.  

 齊宣王與魏襄王會徐州而相王也.  楚威王聞之, 怒田嬰.
 
(명년, 부여양혜왕회견.  시세, 양혜왕졸.  선왕구년, 전영상제.  
 

 제선왕여위양왕회서주이상왕야.  초위왕문지, 노전영.)

 
 [다음해에 다시 '전영'과 양'혜왕'이 "견"에서 만났다. 이 해에 양'혜왕'이 죽었다.     
 

 선왕 9년,  '전영'이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제'선왕'은 위'양왕'을 "서주"에서 만나 위양왕'이 왕호를 칭하는 것을 허락 하였다. 
 

 초'위왕'은 이 소식을 듣고 '전영'에 대해 매우 분노하였다.]
 
 明年, 楚伐敗齊師於徐州, 而使人逐田嬰.  田嬰使張丑說楚威王, 威王乃止.
 

 田嬰相齊十一年, 宣王卒, 湣王即位.  即位三年, 而封田嬰於薛.
 
(명년, 초벌패제사어서주, 이사인축전영.  전영사장축세초위왕.  위왕내지.       
 

 전영상재십일년, 선왕졸, 민왕즉위.  즉위삼년, 이봉전영어설.)

 [다음해 초나라가 제나라를 정벌하여 "서주"에서 제군을 무찌르고 사자를 제왕에게 보내 '전영'을  

 ​쫓아내라고 하였다. '전영'이 '장축'을 사신으로 보내 초'위왕'을 유세하여 위기를 막았다.  

 '전영'은 제나라의 재상 자리에 11년 동안 있었으며, 제'선왕' 19년, '선왕'이 죽고, '민왕'이 즉위하였다. 

 '민왕' 즉위 3년, '전영'에게 "설" 땅에 봉지를 하사하였다.] 

 

 初, 田嬰有子四十餘人.  其賤妾有子名文, 文以五月五日生.   

 嬰告其母曰:「 勿舉也. 」  其母竊舉生之.  及長, 其母因兄弟而見其子文於田嬰. 
 (초, 전영유자사십여인.  기천첩유자명문, 문이오월오일생.  
 

 영고기모왈 : 「물거야. 」  기모절거생지.  급장, 기모인형제이견자문어전영.)


 [처음 '전영'에게는 아들이 40여 명이나 있었다.  그 중 천한 첩에게서 태어난 '문'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는 5월 5일 생이었다. '전영'이 '전문'의 생모에게 말하기를 : " 저 아이를 밖에 내다 버리라 ! "하였다. 

 그러나 그 모친은 '전문'을 거두어 몰래 길렀다.
 이윽고 '전문'이 자라자, 그 모친은 '전문'의 형제들을 통해 그를 '전영'에게 보였다.]
 

 

 田嬰怒其母曰:「 吾令若去此子, 而敢生之, 何也? 」 

 文頓首, 因曰:「君所以不舉五月子者, 何故?」 嬰曰:「五月子者, 長與戶齊, 將不利其父母.」
 
(전영노기모왈 : 「 오령약거차자, 이감생지, 하야 ? 」
 

 문돈수, 인왈 : 「 군소이불거오월자자, 하고 ? 」  영왈 : 「 오월자자, 장여호제, 장불리기부모. 」)


 ['전영'은 화를내며 그 모친에게 말하기를 : " 내가 이 놈을 내다 버리라고 말했거늘,   
 

 어찌 감히 내 명을 어기고 몰래 기른 것인가 ? "라고 하자.
 '전문'이 머리를 조아리며 '전영'에게 말하기를 : " 부친께서는 제가 5월 5일 날 태어났다고 해서  
 

 키우지 말라고 하셨다고 하던데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 "라고 하자.
 '전영'이 말하기를 : " 5월에 태어난 아기는 그 키가 지게문 높이와 같아지게 되면,

 장차 그 부모에게 해를 끼친다고 하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文曰:「 人生受命於天乎? 將受命於戶邪?」  嬰默然. 

 文曰:「 必受命於天, 君何憂焉.  必受命於戶, 則可高其戶耳, 誰能至者!」 嬰曰:「 子休矣.」
 
(문왈 : 「 인생수명어천호 ?  장수명어호야 ? 」  영묵연.   
 

 문왈 : 「 필수명어천, 군하우언.  필수명어호, 즉가고기호이, 수능지자 ! 」  영왈 : 「 자휴의.」)


 ['전문'이 말하기를 :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서 정해준 것입니까 ? 아니면 지게문이 정해준 것입니까 ? 
"하자.

 '전영'은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전문이 다시 말하기를 : "사람의 운명을 하늘이 정해주는 것이라면 아버님께서는 아무 것도 걱정할 것 

 없을 것이며, 또한 지게문이 정해준 것이라면 그 높이를 계속 높이면 그만 입니다, 

 ​ 누가 높은 지게문을 따라 계속 클 수가 있겠습니까 ? "라고 하자. 

 ​'전영'이 말하기를 : " 그만 하거라. "라고 하였다.]

 

 久之, 文承閒問其父嬰曰:「 子之子爲何? 」 曰: 「 爲孫 .」 「 孫之孫爲何?」   

 曰:「 爲玄孫.」  「 玄孫之孫爲何?」  曰:「 不能知也.」
 
(구지, 문승한문기부영왈 : 「 자지자위하 ? 」  왈 : 「 위손.」  「 손지손위하 ?」
 

 왈 : 「 위현손.」  「 현손지손위하 ?」  왈 : 「 불능지야.」)


 [그리고 얼마 지나서, '전문'은 한가한 틈을 이용해 그 부친 '전영'에게 묻기를 : "아들의 아들은
 무엇이라 합니까?

 "라고 하자.  '전영'이 말하기를 : " 손자라고 한다. "라고 하였다. 

 '전문'이 묻기를 : " 그렇다면 손자의 손자는 무엇이라고 합니까 ? "라고 하자.
 '전영'이 대답하기를 : " 현손이라 한다. "라고 하였다. 
 

 '전문'이 묻기를 : " 현손의 현손은 무엇이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 "라고 하자.  
 '전영'이 대답하기를 : " 모르겠다. "라고 하였다.] 
 

 

 文曰:「 君用事相齊, 至今三王矣, 齊不加廣而君私家富累萬金, 門下不見一賢者.   

 文聞將門必有將, 相門必有相. 今君後宮蹈綺縠而士不得裋褐, 僕妾餘粱肉而士不厭糟糠.   

 今君又尚厚積餘藏, 欲以遺所不知何人, 而忘公家之事日損, 文竊怪之. 」

 (문왈 : 「 군용사상제, 지금삼왕의, 제불가광이군사가부루만금, 문하불견일현자. 

 문문장문필유장, 상문필유상. 금군후궁도기곡이사불득수갈, 복첩여양육이사불염조강.   

 금군우상후적여장, 욕이유소불지하인, 이망공가지사일손, 문절괴지. 」) 


 ['전문'이 묻기를 : " 아버지께서는 권세를 잡고 제나라의 재상이 된 이래 지금까지 위왕, 선왕, 민왕 세 분의 

 왕을 섬겼지만, 제나라를 위해서는 그 영토를 한 뼘도 넓히지 못한 반면에 아버님은 오히려 그 사재만 늘려

 천만금의 부를 쌓으셨지만, 문하에는 한 사람의 현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제가 듣기로 장군의 집에는 필시 장군의 재목이 있고, 재상의 집에는 필시 재상의 제목이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 아버님의 첩실들은 비단 옷을 밟고 다니지만, 선비들은 거친 베옷도 얻어 입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버님의 첩과 종들은 하얀 쌀밥에 고기 반찬을 다 먹지도 못하고 남기지만,   

 선비들은 지게미나 쌀겨조차 없어서 못 먹고 있습니다.
 지금 아버님께서는 아직도 저장한 재물들이 많이 남아 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더욱 많은 재산을 축적하여 까마득한 훗날 알지도 못하는 자손에게 유산으로 물려주려는 욕심만 있을뿐,
 나라의 정세가 날이 갈수록 쇠약해 지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계십니다.
 

 저는 이 점을 마음속으로 의심쩍어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   

 

 於是嬰迺禮文, 使主家待賓客.  賓客日進, 名聲聞於諸侯.   

 諸侯皆使人請薛公田嬰以文爲太子, 嬰許之.  嬰卒, 謚爲靖郭君.  而文果代立於薛, 是爲孟嘗君.
 
(어시영내례문, 사주가대빈객.  빈객일진, 명성문어제후.  
 

 제후개사인청설공전영이문위태자, 영허지.  영졸, 일위정곽군.  이문과대립어설, 시위맹상군.)


 [이에 '전영'은 비로소 '전문'을 예를 갖추어 대하고, 그에게 집안의 일을 주재하고 빈객들을 
접대하도록 했다.

 이윽고 빈객들의 내왕이 날이 갈수록 많아지게 되자, '전문'의 명성은 천하의 제후들 사이에 떨치게 되었다. 

 제후들은 모두 사신을 보내 '전문'을  설공 '전영'의 후계자로 삼을 것을 청하자 '전영'은 허락하였다.

 '전영'이 죽자 그 시호를 '정곽군'이라 하였다. '전문'이 마침내 '전영'의 대를 이어 "설" 땅을 이어 받았으니,

 이 사람이 바로 '맹상군'이다.] 

 

 孟嘗君在薛, 招致諸侯賓客及亡人有罪者, 皆歸孟嘗君.  孟嘗君舍業厚遇之, 以故傾天下之士.   

 食客數千人, 無貴賤一與文等. 孟嘗君待客坐語, 而屏風後常有侍史, 主記君所與客語, 問親戚居處.

 客去, 孟嘗君已使使存問, 獻遺其親戚.  孟嘗君曾待客夜食, 有一人蔽火光. 

 (맹상군재설, 초치제후빈객급망인유죄자, 개귀맹상군.  맹상군사업후우지, 이고경천하지사. 

 식객수천인, 무귀천일여문등. 맹상군대객좌어, 이병풍후상유시사, 주기군소여객어, 문친척거처.   

 객거, 맹상군이사사존문, 헌유기친척.  맹상군증대객야식, 유일인폐화광.) 


 ['맹상군'이 "설"에 있을 때 제후들과 빈객과 죄를 짓고 도망다니던 사람들을 불러들이자

  그들은 모두 '맹상군'에게 모여 들었다. '맹상군'은 숙사를 짓고 그들을 매우 후하게 대접하였고,  

 그로 인하여 천하의 어진 선비들이 모두 그에게 모여 들었다. 그 식객이 수천 명에 달하게 되었지만,   

 모두에게 귀천을 구분하지 않고 한결 같이 자기와 동등하게 대접하였다.

 ​맹상군은 기다리던 손님과 앉아서 대화를 나눌 때는 항상 병풍 뒤에 그 대화를 기록하는 사람을 두어, 

 손님과 나눈 대화와 그 친척이 있는 곳 등을 묻고 기록하게 하였다.
 손님이 가고 난 후에 '맹상군'은 사람을 시켜서 그가 말한 친척들을 방문하여 선물을 주었다.
 '맹상군'이 이전에 손님을 대접하며 저녁 식사를 하고 있을 때 한 사람이 불빛을 가리고 있었다.]  
 

 

 客怒, 以飯不等, 輟食辭去.  孟嘗君起, 自持其飯比之.  客慚, 自剄.  士以此多歸孟嘗君.   

 孟嘗君客無所擇, 皆善遇之.  人人各自以爲孟嘗君親己.  秦昭王聞其賢, 乃先使涇陽君爲質於齊,

 以求見孟嘗君.  孟嘗君將入秦, 賓客莫欲其行, 諫, 不聽.  
 (객노, 이반부등, 철식사거.  맹상군기, 자지기반비지.  객참, 자경.  사이차다귀맹상군.
 

 맹상군객무소택, 개선우지.  인인각자이위맹상군친기. 진소왕문기현, 내선사경양군위질어제,

 이구견맹상군.  맹상군장입진, 빈객막욕기행, 간, 불청.)


 [손님은 화를 내며 '맹상군'과 자기의 밥상이 같지 않다고 생각하여 밥을 먹다 말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고 하였다. '맹상군'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가 먹던 음식과 그 손님이 먹던 음식을 비교해 보이니 

 그 손님은 부끄러워 어쩔줄 몰라 하며 스스로 목을 베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에 천하의 어진 선비들이 더욱 '맹상군'에게 모여들었다.
 

 '맹상군'은 오는 손님들을 가리지 않고 누구든지 똑같이 잘 대접하였다.
 손님들은 저마다 자기는 '맹상군'과 절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다.

 ​진나라 '소왕'은 '맹상군'이 어질고 현명하다는 소문을 듣고 즉시 자기의 동생 '경양군'을 제나라에 볼모로 보내고,

 '맹상군'을 만나 보고 싶어 하였다. '맹상군'이 진나라에 가려고 하자,  

 빈객들 중 그가 진나라로 가기를 바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그로 하여금 진나라에 가지 말도록 간했으나 '맹상군'은 듣지 않았다.] 

 

 蘇代謂曰:「 今旦代從外來, 見木禺人與土禺人相與語.   木禺人曰:『 天雨, 子將敗矣. 』 

 土禺人曰:『 我生於土, 敗則歸土.  今天雨, 流子而行, 未知所止息也. 』

 今秦, 虎狼之國也, 而君欲往, 如有不得還, 君得無爲土禺人所笑乎 ? 」  孟嘗君乃止.

 (소대위왈 : 「 금단대종외래, 견목우인여토우인상여어.  목우인왈 : 『 천우, 자장패의. 』

 토우인왈 : 『 아생어토, 패즉귀토.  금천우, 류자이행, 미지소지식야. 』

 금진, 호랑지국야, 이군욕왕, 여유부득환, 군득무위토우인소소호 ? 」  맹상군내지.)

 ['소대'가 '맹상군'에게 말하기를 : " 오늘 아침에 이 '소대'가 제나라로 오던 중에

 나무 허수아비와 흙 허수아비가 서로 나누고 있는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나무 허수아비가 말하기를 ‘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면 너는 부서져 없어질 것이다. ’라고 하자.
 흙 허수아비가 말하기를 ‘나는 본디 흙에서 태어난 몸이라 빗물에 부서진다면 원래의 흙으로 돌아가지만,
 지금 하늘에서 비가 내리면 너는 강물에 떠내려가 멈추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했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호랑이나 이리와 같은 나라인데, 군께서 그곳에 굳이 가려 하시니, 

 만약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흙 인형의 비웃음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라고 하자.
 '맹상군'은 '소대'의 말을 듣고 진나라에 들어가려는 생각을 그만 두었다.] 
 

 

 齊湣王二十五年, 復卒使孟嘗君入秦, 昭王即以孟嘗君爲秦相. 

 人或說秦昭王曰:「孟嘗君賢, 而又齊族也. 今相秦, 必先齊而後秦, 秦其危矣.」於是秦昭王乃止.
 
(제민왕이십오년, 부졸사맹상군입진, 소왕즉이맹상군위진상.  
 

 인혹설진소왕왈 : 「 맹상군현, 이우제족야.  금상진, 필선제이후진, 진기위의. 」  어시진소왕내지.)


 [제'민왕' 25년,  제왕은 결국 '맹상군'을 다시 진나라로 들어가게 하였다.  
 

 진'소왕'은 진나라에 온 '맹상군'을 재상에 임명하려고 하였다.
 그때 어떤 사람이 진'소왕'에게 말하기를 : " '맹상군'은 어진 사람이긴 해도 제나라 출신입니다.
 지금 그를 진나라의 재상으로 임명하면 필시 제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진나라는 나중에 생각할 것이므로,
 

 그리되면 진나라가 위험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진'소왕'은 '맹상군'을 재상에 임명하려는 생각을 그만 두었다.]
 

 

 囚孟嘗君, 謀欲殺之.  孟嘗君使人抵昭王幸姬求解.  幸姬曰:「 妾願得君狐白裘.」   

 此時孟嘗君有一狐白裘, 直千金, 天下無雙, 入秦獻之昭王, 更無他裘.
 
(수맹상군, 모욕살지.  맹상군사인저소왕행희구해.  행희왈 : 「 첩원득군호백구.」 

 차시맹상군유일호백구, 직천금, 천하무쌍, 입진헌지소왕, 경무타구.)


 [그리고는 '맹상군'을 역관에 가두고 계략을 꾸며서 죽이려고 하였다.  
 

 '맹상군'은 사람을 시켜 '소왕'이 총애하는 첩에게 자신을 풀어 주기를 청하도록 하였다.
 '소왕'의 애첩이 말하기를 : "이 첩은 군이 갖고 있던 호백구(여우 겨드랑이의 흰털로 만든 가죽옷)를
 갖고 

 싶습니다."라고 하였다.  그 당시 '맹상군'은 호백구 한 벌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 호백구의 값은 천금을 호가하는 천하의 둘도 없는 진귀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진나라에 들어올 때 '소왕'에게 바쳤기 때문에 애첩에게 줄 호백구가 없었다.] 

 

 孟嘗君患之, 遍問客, 莫能對.  最下坐有能爲狗盜者, 曰:「 臣能得狐白裘.」   

 乃夜爲狗, 以入秦宮臧中, 取所獻狐白裘至, 以獻秦王幸姬.
 
(맹상군환지, 편문객, 막능대.  최하좌유능위구도자, 왈 : 「 신능득호백구.」  
 

 내야위구, 이입진궁장중, 취소헌호백구지, 이헌진왕행희.)


 ['맹상군'이 이를 근심하며 그의 문객들에게 대책을 물었지만 아무도 시원하게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가장 아래쪽 자리에 개의 흉내를 내어 도적질을 하는 사람이 '맹상군'을 향해 말하기를 :
 

 " 제가 가서 호백구를 가져 오도록 해보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윽고 밤이 되자 그 사람은 개 흉내를 내며 진나라 궁중의 재물창고로 잠입해 들어가 
전날 '맹상군'이 '소왕'에게

 바친 호백구를 훔쳐냈다. '맹상군'은 훔친 호백구를 사람을 시켜 진'소왕'의 애첩에게 바쳤다.] 

 

 幸姬爲言昭王, 昭王釋孟嘗君.  孟嘗君得出, 即馳去, 更封傳, 變名姓以出關. 

 夜半至函谷關.  秦昭王後悔出孟嘗君, 求之已去, 即使人馳傳逐之.
 
(행희위언소왕, 소왕석맹상군.  맹상군득출, 즉치거, 경봉전, 변명성이출관.  
 

 야반지함곡관.  진소왕후회출맹상군, 구지이거, 즉사인치전축지.)


 [진'소왕'의 애첩이 '맹상군'을 위해 석방을 간곡히 요청하자 '소왕'은 '맹상군'을 풀어 줬다.
 '맹상군'은 석방되자,

 그는 즉시 말을 타고 달아났다,  그는 봉전(통행증)을 가짜로 만들고 이름과 성을 바꾸어 관문을 통과했다. 

 '맹상군'의 일행이 한밤중에 "함곡관"에 당도했다.

 한편 '맹상군'을 석방한 일을 후회하게 된 진'소왕'은 다시 잡아들이려고 했으나,     

 이미 '맹상군' 일행이 도성 밖으로 빠져나간 후였다. 

 진'소왕'은 즉시 사람을 시켜 말을 타고 그 뒤를 추격하도록 하였다. ] 

 

 孟嘗君至關, 關法雞鳴而出客, 孟嘗君恐追至, 客之居下坐者有能爲雞鳴, 而雞齊鳴, 遂發傳出.   

 出如食頃, 秦追果至關, 已後孟嘗君出, 乃還.
 
(맹상군지관, 관법계명이출객, 맹상군공추지, 객지거하좌자유능이계명, 이계제명, 수발전출.  
 

 출여식경, 진추과지관, 이후맹상군출, 내환.)

 [맹상군 일행이 "함곡관"에 도착하였으나, 당시 관의 규정에 첫 닭이 울어야 관문을 열어 

 ​사람들을 통행시켰기 때문에 '맹상군'은 추격군에게 붙잡히게 되지나 않을까 매우 두려워하였다.  

 그때 '맹상군'의 말단 식객 중에 닭우는 소리를 잘 내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한 번 닭 우는 소리를 내자, 

 주변의 닭들이 일제히 따라서 울었다. 드디어 '맹상군'의 일행은 가짜 봉전을 보이고 관문을 통과하여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들이 관을 빠져 나온 다음 한 식경 쯤 되었을 때 마침내 진'소왕'이 보낸 추격군이 "함곡관"에

 당도했다. 그러나 이미 '맹상군' 일행이 관문을 빠져나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진왕의 추격군은 되돌아갔다.] 

 

 始孟嘗君列此二人於賓客, 賓客盡羞之, 及孟嘗君有秦難, 卒此二人拔之.  自是之後, 客皆服.

 孟嘗君過趙, 趙平原君客之.  趙人聞孟嘗君賢, 出觀之,  

 皆笑曰:「 始以薛公爲魁然也, 今視之, 乃眇小丈夫耳.」

 (시맹상군열차이인어빈객, 빈객진수지, 급맹상군유진난, 졸차이인발지. 자시지후, 객개복.

 맹상군과조, 조평원군객지.  조인맹상군현, 출관지,  

 개소왈 : 「 시이설공위괴연야, 금시지, 내묘소장부이.」)


 [처음 '맹상군'이 천한 재주를 가진(계명구도) 두 사람을 빈객으로 대우하자,

 여러 빈객들은 그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 해야 한다는 처사에 수치로 여겼었다.
 진나라에서 '맹상군'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때 이 두 사람의 도움으로 위기를 벗어났다.
 

 그후로 빈객들은 모두 마음속 깊이 '맹상군'을 따르게 되었다. '맹상군'이 진나라를 빠져나와 제나라로 가던 중

 조나라에 들러 평원군 '조승'의 빈객이 되었다. 조나라 사람들은 '맹상군'이 어질다는 소문을 듣고 밖으로 나와

 그를 보며 모두들 비웃으며 말하기를 : " 이전에는 '설공'의 아들이라 체구가 우람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아주 볼품없는 졸장부에 불과할 뿐이로구나 ! "라고 하였다.] 

 

 孟嘗君聞之, 怒.  客與俱者下, 斫擊殺數百人, 遂滅一縣以去. 齊湣王不自得, 以其遣孟嘗君. 

 孟嘗君至, 則以爲齊相, 任政. 孟嘗君怨秦, 將以齊爲韓·魏攻楚, 因與韓·魏攻秦, 而借兵食於西周.  
 (맹상군문지, 노.  객여구자하, 작격살수백인,  수멸일현이거. 제민왕불자득, 이기견맹상군. 

 맹상군지, 즉이위제상, 임정. 맹상군원진, 장이제위한·위공초, 인여한·위공진, 이차병식어서주.)


 ['맹상군'이 듣고 노하였다.  그는 문객들과 함께 수레에서 내려 그를 구경하던 조나라 사람들 수백 명을
 

 베어 죽여 버리고 마침내 한 고을을 멸한 뒤에 제나라로 떠났다.

 제'민왕'은 '맹상군'을 진나라에 보내 어려움을 겪게 하여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맹상군이 돌아오자 즉시 제나라의 재상에 임명하고 정사를 맡겼다. '맹상군'은 진나라에 원한을 품고 있었는데,

 마침 제나라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돕기 위해 초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을 기회로 삼아,

 한나라, 위나라와 함께 진나라를 공격하기로 하고 "서주"에서 병력과 식량을 빌리기로 하였다.] 

 

 蘇代爲西周謂曰:「 君以齊爲韓·魏攻楚九年, 取宛·葉以北以彊韓·魏, 今復攻秦以益之. 

 韓·魏南無楚憂, 西無秦患, 則齊危矣.  韓·魏必輕齊畏秦, 臣爲君危之. 

 君不如令敝邑深合於秦, 而君無攻, 又無借兵食. 
 (소대위서주위왈 : 「 군이제위한·위공초구년, 취완섭이북이강한·위, 금부공진이익지.
 

 한·위남무초우, 서무진환, 즉제위의. 한·위필경제외진, 신위군위지. 

 군불여령폐읍심합어진, 이군무공, 우무차병식.

 

 ['소대'가 "서주"를 위해 '맹상군'을 찾아와 말하기를 : " 군께서는 제나라의 힘을 이용하여 한나라와 위나라를

 돕기 위해 초나라를 공격한지 이미 9년이 지났으며, 그 동안 "완"과 "섭" 이북의 땅을 빼앗아 한나라와 위나라의

 국력을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지금 다시 두 나라를 위해 진나라를 공격하여 더욱 강한 나라로 만들려고 합니다. 

 한나라와 위나라는 그 남쪽의 초나라 때문에 근심이 없어지고, 서쪽으로는 진나라 때문에 걱정하는 일이 없어지게

 된다면 그때는 제나라가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 한나라와 위나라는 틀림없이 제나라를 가볍게 보는 대신

 진나라를 두렵게 여길 것이며, 그리되면 제가 보기에 군께서 위험에 빠질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군께서는 차라리 서주에 명하여 진나라와의 관계를 긴밀히 하고 서주를 공격하지 말고

 또한 군량도 빌리려고 하지 마십시오.  

 

 君臨函谷而無攻, 令敝邑以君之情謂秦昭王曰 『 薛公必不破秦以彊韓·魏. 

 其攻秦也, 欲王之令楚王割東國以與齊, 而秦出楚懷王以爲和. 』

 君令敝邑以此惠秦, 秦得無破而以東國自免也, 秦必欲之.   

 楚王得出, 必德齊.  齊得東國益彊, 而薛世世無患矣.  秦不大弱, 而處三晉之西, 三晉必重齊.」

 (군임함곡이무공, 령폐읍이군지정위진소왕왈 『 설공필불파진이강한위.

 기공진야, 욕왕지령초왕할동국이여제, 이진출초회왕이위화. 』

 군령폐읍이차혜진, 진득무파이이동국자면야, 진필욕지.   

 초왕득출, 필덕제.  제득동국익강, 이설세세무환의.  진불대약, 이처삼진지서, 삼진필중제. 」)


 [군께서는 다만 "함곡관"에 임하기만 하고 절대 진나라를 공격하지 마십시오.     

  그런 다음 "서주"로 하여금 군의 마음을 '소양왕'에게 다음과 같이 전하게 하십시오.
 ' ‘설공'은 진나라를 공격하여 한나라와 위나라를 강하게 하려는 마음이 없습니다.    
 

 '설공'이 진나라를 공격하려는 목적은 초'회왕'을 설득하여 초나라 동쪽 땅을 제나라에 떼어 주게 하고,    

 현재 진나라에 억류되어 있는 초'회왕' 풀어 주어 제나라와 진나라가 화목하게 지내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라고

 한다면. 군께서는 우리 서주로 하여금 진나라에 은혜를 베풀게 해준다면, 

 진나라는 초나라 동쪽 땅을 떼어 주게 한 댓가로 자기나라의 군대를 손상시키지 않고도 

 제나라의 공격을 면할 수 있으니 반드시 그렇게 하기를 바랄 것입니다.

 한편 초왕도 군의 도움으로 진나라의 억류에서 풀려 난다면 반드시 제나라에 은혜를 갚으려고 할 것입니다. 

 제나라가 초나라 동쪽 땅을 손에 넣으면 더욱 강해지고 군의 영지인 "설"땅은 대대로 안정될 것이므로

 근심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진나라가 크게 약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 조, 위 세나라의 서쪽에 있으면

 이 세나라는 반드시 제나라를 중히 여길 것입니다 "하였다.] 

 

 薛公曰:「 善.」  因令韓·魏賀秦, 使三國無攻, 而不借兵食於西周矣. 

 是時, 楚懷王入秦, 秦留之, 故欲必出之.  秦不果出楚懷王.
 
(설공왈 : 「 선.」  인령한위하진, 사삼국무공, 이불차병식어서주의.
 

 시시, 초회왕입진, 진유지, 고욕필출지.  진불과출초회왕.)


 ['설공'이 말하기를 : " 훌륭한 생각입니다. "라고 하고. '설공'은 한나라와 위나라에게 진나라로 하례의 
사절을

 보내도록 하고,  제를 포함한 한, 조, 위 세나라가 진나라를 공격하는 일이 없도록 하였으며 "서주"로부터 

 군량을 빌리는 일도 그만두었다.  그때 진나라는 자기 나라를 방문했던 초'회왕'을 억류시키고 있었기 때문에 

 '소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초'회왕'을 석방시키려고 하였다.
 모든 일이 이처럼 진행이 되자 진나라는 마침내 초'회왕'을 풀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孟嘗君相齊, 其舍人魏子爲孟嘗君收邑入, 三反而不致一入.   

 孟嘗君問之, 對曰:「 有賢者, 竊假與之, 以故不致入.」  孟嘗君怒而退魏子.  

 (맹상군상제, 기사인위자위맹상군수읍입, 삼반이불치일입. 

 맹상군문지, 대왈 : 「 유현자, 절가여지, 이고불치입.」  맹상군노이퇴위자.)

 ['맹상군'이 제나라의 재상으로 있을 때, 그의 가신 '위자'로 하여금 '맹상군'을 대신하여

 봉읍의 조세를 거두게 하였으나, 세 번이나 봉읍을 왕복하면서 한 번도 걷은 세금을 가져오지 않았다.
 '맹상군'이 그 이유를 묻자, '위자'가 대답하기를 : " 이곳으로 오다가 어진 사람이 있어서 걷은 세금을 
 

 그 사람에게 빌려 주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맹상군'은 화를 내며 '위자'를 해고시켜 버렸다.] 

 

 居數年, 人或毀孟嘗君於齊湣王曰:「 孟嘗君將爲亂.」

 ​及田甲劫湣王, 湣王意疑孟嘗君, 孟嘗君迺奔.
 
(거수년, 인혹훼맹상군어제민왕왈 : 「 맹상군장위란.」   

 급전갑겁민왕, 민왕의의맹상군, 맹상군내분.)
 [그리고 몇 년 뒤, 어떤 사람이 '맹상군'을 제'민왕'에게 모함하며 말하기를 : " '맹상군'이 자기의 봉읍에서  

 반란을 일으키려 하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때 마침 '전갑'이 난을 일으켜 제'민왕'을 위협 했던 

 사건이 일어나 '민왕'은 마음속으로 '맹상군'을 더욱 의심하게 되었다.

 이를 눈치챈 '맹상군'은 생명의 위험을 느끼고 나라 밖으로 달아났다.] 

 

  魏子所與粟賢者聞之, 乃上書言孟嘗君不作亂, 請以身爲盟, 遂自剄宮門以明孟嘗君.

 湣王乃驚, 而蹤跡驗問, 孟嘗君果無反謀, 乃復召孟嘗君.  孟嘗君因謝病, 歸老於薛.  湣王許之.
 
(위자소여속현자문지, 내상서언맹상군불작난, 청이신위맹, 수자경궁문이명맹상군.

 민왕내경, 이종적험문, 맹상군과무반모, 내부소맹상군.  맹상군인사병, 귀노어설.  민왕허지. )

 [옛날 '위자'로부터 돈을 받았던 어진 사람이 그 소식을 듣고 '민왕'에게 글을 올렸다.   

 '맹상군'은 결코 반란을 도모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자기의 생명을 담보로 맹세하면서 곧바로 도성으로 올라가

 궁문 앞에서 목을 찔러 죽음으로써 '맹상군'의 결백을 밝히려 하였다.

 '민왕'이 놀라 사람을 시켜 '맹상군'의 행적을 조사 하였으나 '맹상군'은 과연 반란을 도모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즉시 '맹상군'을 불러 재상의 자리를 돌려주려고 했다.  그러나 '맹상군'은 병이 났다는 핑계를 대고 

 봉읍인 "설"로 돌아가 노년을 보내겠다고 청했다. '민왕'은 허락하였다.] 

 

 其後, 秦亡將呂禮相齊, 欲困蘇代.  代乃謂孟嘗君曰:「 周最於齊至, 厚也, 而齊王逐之, 

 而聽親弗相呂禮者, 欲取秦也.   齊·秦合, 則親弗與呂禮重矣.  有用齊·秦必輕君.

 ​君不如急北兵, 趨趙以和秦·魏, 收周最以厚行且, 反齊王之信, 禁天下之變.  

 齊無秦, 則天下集齊, 親弗必走, 則齊王孰與爲其國也 !」於是孟嘗君從其計, 而呂禮嫉害於孟嘗君.

 (기후, 진망장여례상제. 욕곤소대.  대내위맹상군왈 : 「 주최어제지, 후야, 이제왕축지,  

 이청친불상여례자, 욕취진야.  제·진합, 즉친불여여례중의.  유용제·진필경군.

 군불여급북병, 촉조이화진·위, 수주최이후행차, 반제왕지신, 금천하지변.

 제무진, 즉천하집제. 친불필주, 즉제왕숙여위기국야 ! 」  어시맹상군종기계, 이여례질해어맹상군.)


 [그 후 진나라 장군으로 있다가 제나라로 망명하여 재상이 된 '여례'가 '소대'를 곤경에 빠트리려 하였다.
 '소대'가 '맹상군'을 찾아가 말하기를 : " '주최'는 제나라에서 아주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었으나, 
 

 제왕이 '주최'를 쫓아내고 '친불'의 말을 들어, '여례'를 제나라의 재상으로 삼은 이유는 진나라에  

 의지하기 위한 것입니다.  제나라와 진나라가 마음을 합치면 '친불'과 '여례'는 중용될 것입니다.   

 그들이 중용되면 제나라와 진나라는 틀림없이 군을 하찮게 여길 것입니다.군께서는 서둘러 군사를 이끌고

 북쪽으로 진격하여 조나라를 핍박하고 조나라로 하여금 진나라가 위나라와 화친을 맺게 하고,  쫓겨난 '주최'를

 거두어 후하게 대접하여 제왕이 진나라와 합치려던  마음을 돌리도록 하여 제왕의 신임을 다시 찾도록 하십시오. 
 이로써 천하 제후들이 제나라를 등지는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제나라가 진나라와 친교를

 맺지 않는다면 천하의 제후들은 모두 제나라로 모여 들 것이고, '친불'은 틀림없이 다른 나라로 도망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제왕은 군 말고 누구와 함께 나라의 일을 해 나가겠습니까 ?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맹상군'이 '소대'의 계책을 따르자, '여례'는 '맹상군'을 투기하며 해치려고 하였다.] 
 

 

 孟嘗君懼, 乃遺秦相穰侯魏冉書曰:「 吾聞秦欲以呂禮收齊, 齊天下之彊國也, 子必輕矣.   

 齊·秦相取以臨三晉, 呂禮必并相矣, 是子通齊以重呂禮也. 若齊免於天下之兵其, 讎子必深矣. 

 子不如勸秦王伐齊.  齊破, 吾請以所得封子. 齊破, 秦畏晉之彊, 秦必重子以取晉. 

 晉國敝於齊而畏秦, 晉必重子以取秦. 是子破齊以爲功, 挾晉以爲重;是子破齊定封, 秦·晉交重子. 

 若齊不破, 呂禮復用, 子必大窮.」 於是穰侯言於秦昭王伐齊, 而呂禮亡.

 (맹상군구, 내유진상양후위염서왈 : 「 오문진욕이여례수제, 제천하지강국야, 자필경의.   

 제·진상취이임삼진, 여례필병상의, 시자통제이중여례야.  약제면어천하지병기, 수자필심의. 

 자불여권진왕벌제.  제파, 오청이소득봉자. 제파, 진외진지강, 진필중자이취진. 

 진국폐어제이외진, 진필중자이취진. 시자파제이위공, 협진이위중 ; 시자퍼제정봉, 진·진교중자. 

 약제불파, 여례부용, 자필대궁. 」 어시양후언어진소왕벌제, 이여례망.)

 

  ['맹상군'은 두려움을 느끼고, 진나라의 재상 양후 '위염'에게 글을 써서 이르기를 :

  " 내가 듣기로 진나라는 '여례'의 힘을 빌려 제나라와 친선을 맺으려고 한다고 했소. 

 제나라는 천하의 강국이오. '여례'가 진나라의 환심을 산다면 그대는 반드시 진나라로부터 하찮은 존재가 

 될 것이오. 제나라와 진나라가 서로 손을 잡고 삼진에 맞서려고 한다면 '여례'는 틀림없이 두 나라의 

 재상을 겸직하게 될 것이오. 이는 그대로 인해 '여례'가 제나라에서 중하게 여김을 받게 만드는 일이오. 

 만약 진나라와 제나라가 친선을 맺어 제나라가 천하로부터 전쟁을 면하게 된다면,  

 옛날에 당한 전쟁이 모두 그대 때문이라고 생각한 제나라는 그대를 원수로 여길 것이오. 

 그대는 차라리 진왕에게 권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도록 하시오. 

 나는 진나라가 제나라의 군사를 무찌르고   얻은 땅을 그대의 봉지로 주라고 진왕에게 요청하겠소. 

 진나라는 싸움에서 패한 제나라와 수호를 맺고, 강해지는 삼진을 두려워하는 진나라는 그대를 중용하여

 삼진과의 관계를 개선하려고 할 것이오. 한편 제나라와 싸워 국토가 황폐해진 삼진은 진나라가 쳐들어 올 것을

 두려워하여, 반드시 삼진은 그대를 통하여 진나라의 환심을 사려고 할 것이오.

 ​이리하면 그대는 제나라를 무찌르는 공을 세움과 동시에,  삼진을 끼고 진나라에서 중하게 여겨질 것이오;
 또한 그대는 제나라를 무찌른 공으로 새로운 봉지를 얻게 되고 진나라와 삼진은 동시에 그대를 중용하게 

 될 것이오. 만약 그대가 제나라를 공격하여 싸움에서 이기지 못한다면 '여례'는 다시 중용될 것이고, 

 그대의 운명은 매우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될 것이오. "라고 하였다.  

 이에 양후 '위염'이 진'소왕'에게 진언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이로써 '여례'는 제나라에 더 이상 머물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後齊湣王滅宋, 益驕, 欲去孟嘗君.  孟嘗君恐, 迺如魏. 

 魏昭王以爲相, 西合於秦·趙, 與燕共伐破齊.  齊湣王亡在莒, 遂死焉.  

 齊襄王立, 而孟嘗君中立於諸侯, 無所屬.  齊襄王新立, 畏孟嘗君, 與連和, 復親薛公.   

 文卒, 謚爲孟嘗君.  諸子爭立, 而齊·魏共滅薛.  孟嘗絕嗣無後也.
 
(후제민왕멸송, 익교, 욕거맹상군.  맹상군공, 내여위.   

 위소왕이위상, 서합어진·조, 여연공벌파제.  제민왕망재거, 수사언.

 제양왕립, 이맹상군중립어제후, 무소속.  제양왕신립, 외맹상군, 여연화, 부친설공.    

 문졸, 시위맹상군.  제자쟁립, 이제위공멸설.  맹상절사무후야.)


 [그후 제'민왕'은 송나라를 멸하고 나서 더욱 교만해져 '맹상군'을 제거하려고 하였다. 

 '맹상군'은 두려워서 제나라를 떠나 바로 위나라로 갔다. 위'소왕'은 '맹상군'을 재상으로 삼고, 

 서쪽의 진나라 , 조나라와 힘을 합치고 연나라 군대와 함께 제나라를 정벌하였다. 
 제'민왕'은 달아나 "거성"에 머물다가 결국 그곳에서 죽었다.

 제'양왕'이 즉위하자, '맹상군'은 제후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며 어느 제후들에게도 속하지 않게 되었다. 

 새로이 왕위에 오른 제'양왕'은 '맹상군'을 두려워하며 그와 화친을 맺고 다시 '설공'의 지위를 인정했다. 

 이윽고 '전문'이 죽자 시호를 '맹상군'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맹상군'의 아들들이 서로 후계를 다투자  

 위나라와 제나라가 힘을 합하여 "설"을 멸했다. 이에 '맹상군'은 후사가 없어져서 대가 끊어지고 말았다. ] 

 

 初, 馮驩聞孟嘗君好客, 躡蹻而見之.  孟嘗君曰 : 「 先生遠辱, 何以教文也?」 

 馮驩曰:「 聞君好士, 以貧身歸於君.」孟嘗君置傳舍十日, 孟嘗君問傳舍長曰:「 客何所爲?」

 答曰:「 馮先生甚貧, 猶有一劍耳, 又蒯緱.  彈其劍而歌曰 『 長鋏歸來乎, 食無魚.』」
 
(초, 풍환문맹상군호객, 섭교이견지.  맹상군왈 : 「 선생원욕, 하이교문야 ? 」 

 풍환왈 : 「 문군호사, 이빈신귀어군.」 맹상군치전사십일, 맹상군문전사장왈 : 「 객하소위 ?」      

 답왈 : 「 풍선생심빈, 유유일검이, 우괴구.  탄기검이가왈 『 장협귀래호, 식무어.』」)

 [전에, '풍환'은 '맹상군'이 선비를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고, 짚신을 신고 먼길을 걸어와 '맹상군'을 만났다.
 '맹상군'이 묻기를 : " 선생은 먼 길을 오느라고 고생이 많았습니다. 이 '문'에게 어떤 가르침을 주시려고 하는

 것입니까 ? "라고 하자.  '풍환'이 말하기를 : " 제가 들으니 군께서는 선비를 좋아하신다고 해서 가난한 이몸을

 맡기고자 하여 찾아왔습니다. "라고 하였다.   '맹상군'은 '풍환'을 전사(하숙)에 묵게 하였다.

 그리고 10여 일이 지나서 전사장에게 묻기를 : " 지난번에 새로 온 손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가 ? "라고 하자.
 전사장이 대답하기를 : " 풍선생은 워낙 가난하여 몸에는 단지 칼 한 자루 밖에 가진 것이 없는데,
 

 그나마 칼집마저 없이 새끼줄로 묶어 허리에 차고 다닙니다. 풍선생은 매일 그 칼을 풀어 식탁 위에 놓고 두드리며

 노래 부르기를 ' 장검아, 돌아가자꾸나 ! 식탁에는 생선요리도 올라오지 않는구나.'라고 합니다."라고 하였다.]  

  

 孟嘗君遷之幸舍, 食有魚矣.  五日, 又問傳舍長. 

 答曰:「 客復彈劍而歌曰 『 長鋏歸來乎, 出無輿.』」
 (맹상군천지행사, 식유어의.  오일, 우문전사장. 

 답왈 : 「 객부탄검이가왈 『 장협귀래호, 출무여.』 )


 ['맹상군'은 '풍환'을 행사로 옮겨 지내도록 하고 생선 요리를 먹을 수 있도록 하였다.  
 

 닷새가 지나자 또 전사장에게 '풍환'의 근황에 대해 물었다.
 전사장이 대답하기를 : " 풍선생은 다시 칼을 두드리며 ‘ 장검아 ! 돌아가자꾸나 ! 

 나에게 수레도 내 주지 않는구나 ! ’라고 노래를 부릅니다."라고 하였다. ]  

 

 孟嘗君遷之代舍, 出入乘輿車矣.  五日, 孟嘗君復問傳舍長.  舍長答曰:「 先生又嘗彈劍而歌曰

『 長鋏歸來乎, 無以爲家.』」  孟嘗君不悅.  居期年, 馮驩無所言.  孟嘗君時相齊, 封萬戶於薛. 

 其食客三千人.  邑入不足以奉客, 使人出錢於薛.  歲餘不入, 貸錢者多不能與其息, 客奉將不給.

 (맹상군 천지대사, 출입승여거의.  오일, 맹상군부문전사장.  사장답왈 : 「 선생우상탄검이가왈

『 장협귀래호, 무이위가.』」  맹상군불열.  거기년, 풍환무소언. 맹상군시상제, 봉만호어설. 

 기식객삼천인.  읍입부족이봉객, 사인춘전어설. 세여불입, 대전자다불능여기식, 객봉장불급.)


 ['맹상군'은 '풍환'을 대사로 옮겨 머물게 하고 출입시에 수레를 타고 다니게 했다.  

 그리고 다시 5일 후에 맹상군이 전사장에게 풍환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물었다.
 전사장이 대답하기를 : " 풍선생은 여전히 칼을 식탁 위에 풀어 놓고 두드리며 ‘ 장검아 ! 돌아가자꾸나 ! 
 

 나에게 집도 한 칸 마련해 주지 않는구나 !’라고 노래합니다. "라고 하자.         

 '맹상군'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1년이 지나도록 '풍환'은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다.  

 '맹상군'이 제나라의 재상에 임명되어 설읍의 1만 호에 봉해지고 그 식객은 3천 명에 달하게 되었다. 
 이어서 봉읍에서 나오는 부세만으로는 식객을 모두 먹일 수 없게 되자, 사람을 시켜 설읍의 주민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이자를 받도록 했다.  해가 바뀌어도 빌려 준 돈과 이자가 들어오지 않고 돈을 빌려간 사람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자를 갚을 수 없게 되자, 식객들을 모두 먹이는데 비용이 부족하게 되었다.] 

 

 孟嘗君憂之, 問左右:「 何人可使收債於薛者?」 

 傳舍長曰:「 代舍客馮公形容狀貌甚辯, 長者, 無他伎能, 宜可令收債.」
 
(맹상군우지, 문좌우 : 「 하인가사수채어설자 ?」
 

 전사장왈 : 「 대사객풍공형용상모심변, 장자, 무타기능, 의가령수채.」)


 ['맹상군'이 근심하여 측근에게 묻기를 : " 누가 "설읍"에 가서 빌려준 돈과 이자를 받아 오겠는가? "하자.
 전사장이 말하기를 : " 대사에 묶고 있는 풍공은 용모도 훌륭하고 언변 또한 뛰어납니다. 나이는 많지만 별다른

 재능이 없으니 마땅히 이번에 봉읍에 가서 돈을 걷어오도록 하는게 좋을듯 합니다."라고 하였다.] 

 

 孟嘗君乃進馮驩而請之曰:「 賓客不知文不肖, 幸臨文者三千餘人, 邑入不足以奉賓客,  

 故出息錢於薛.  薛歲不入, 民頗不與其息.  今客食恐不給, 願先生責之.」
 
(맹상군내진풍환이청지왈 : 「 빈객부지문불초, 행임문자삼천여인, 읍입부족이봉빈객, 
 

 고출식전어설.  설세불입, 민파불여기식.  금객식공불급, 원선생책지.」)


 ['맹상군'이 즉시 '풍환'을 불러 이일을 부탁하며 말하기를 : " 빈객들이 이 '전문'의 불초함을 알지 못하고
 

 찾아온 사람의 수가 3천 명이 넘게 되었습니다.  내 봉지의 읍인들이 내는 부세만으로는 빈객들을 먹여 

 살릴 수 없어 내가 백성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이자를 받아 그 부족한 식대를 보충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해가 바뀌어도 설읍의 백성들에게 빌려준 돈에 대한 이자가 들어오지 않아 아마도 그들은 빌려간 

 돈에 대해 이자를 지불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빈객들에게 음식을 공급할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니 원컨데 선생께서는 이 일을 책임지고 돈을 받아 오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馮驩曰 : 「 諾.」  辭行, 至薛, 召取孟嘗君錢者皆會, 得息錢十萬. 

 迺多釀酒, 買肥牛, 召諸取錢者, 能與息者皆來, 不能與息者亦來, 皆持取錢之券書合之.

 齊爲會, 日殺牛置酒.  酒酣, 乃持券如前合之, 能與息者, 與爲期;貧不能與息者, 取其券而燒之. 
 
(풍환왈 : 「 락.」 사행, 지설, 소취맹상군전서자개회, 득식전십만.   

 내다양주, 매비우, 소제취전자, 능여식자개래, 불능여식자역래, 역지취전지권서합지.

 제위회. 일살우치주.  주감, 내지권여전합지, 여능식자, 여위기 ; 빈불능여식자, 취기권이소지.)


 ['풍환'이 말하기를 : " 그리 하겠습니다. "라고 하고는,  인사를 마치고 길을 떠나 "설읍"에 당도했다. 
 '풍환'은 '맹상군'의 돈을 빌려간 백성들을 불러 모두 모이게 하여 그 이자로 10만 전의 돈을 받았다. 
 그리고 그 돈으로 많은 술을 담그고 살찐 소를 사서 잔치 준비를 하고 돈을 빌려간 사람들을 모두 불렀다.
 이자를 낼 수 있는 사람이거나, 낼 수 없는 사람들 모두가 와서 채무증서를 대조하였다.

 이어서 백성들이 모일 수 있는 날을 다시 약속하고, 이윽고 그 날이 되자 소를 잡고 술자리를 마련했다. 
 잔치에 참여한 사람들이 술이 거나하게 되었을 때 백성들이 소지하고 있던 채무증서를 다시 확인한 다음 

 이자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사람은 그 기일을 다시 정하고 ; 

 가난하여 도저히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의 채무증서는 불에 태워버렸다.] 

  

 曰:「 孟嘗君所以貸錢者, 爲民之無者以爲本業也;所以求息者, 爲無以奉客也. 

 今富給者以要期, 貧窮者燔券書以捐之.  諸君彊飲食.  有君如此, 豈可負哉 !」

 坐者皆起, 再拜.  孟嘗君聞馮驩燒券書, 怒而使使召驩. 
 
(왈 : 「 맹상군소이대전자, 위민지무자이위본업야 ; 소이구식자, 위무이봉객야.     

 금부급자이요기, 빈궁자번권서이연지.  제군강음식.  유군여차, 기가부재 ! 」

 좌자개기, 재배.  맹상군문풍환소권서, 노이사사소환.)


 ['풍환'이 말하기를 : " '맹상군'께서 여러분들에게 돈을 빌려 준 것은 돈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 또한 이자를 받고자 한 것은 문하의 빈객들의 식비에 보태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그 기한을 다시 정하고, 가난하여 갚을 길이 없는 사람은

 그 채무증서를 불에 태워 없애 버렸습니다. 여러분은 아무 걱정 마시고 준비한 음식을 마음껏 드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을 대하는 '맹상군'과 같은 주인이 있으니 어찌 그의 은혜를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 "라고 하자.

 연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 일어나 '풍환'에게 재배를 올렸다. '맹상군'은 '풍환'이 채무증서를 거두어

 모두 불에 태워버렸다는 소식에 화가 치밀어 사람을 보내 '풍환'을 소환하였다.] 

  

 驩至, 孟嘗君曰:「 文食客三千人, 故貸錢於薛.  文奉邑少, 而民尚多不以時與其息, 

 客食恐不足, 故請先生收責之.  聞先生得錢, 即以多具牛酒而燒券書, 何 ? 」 
 
(환지, 맹상군왈 : 「 문식객삼천인, 고대전어설.  문봉읍소, 이민상다불이시여기식, 
 

 객식공부족, 고청선생수책지.  문선생득전, 즉이다구우주이소권서, 하 ? 」)


 ['풍환' 도착하자, 맹상군이 말하기를 : " 이 '문'에게는 식객이 3천 명이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식비를 다소나마 충당하기 위해 설읍의 백성들에게 돈을 빌려주어 이자를 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 '문'의 봉읍은 매우 적어 돈을 빌려간 많은 백성들이 때가 되어도 이자를 내지 않아, 

 객사의 빈객들에게 공급하는 식사가 부족할것 같아서 선생에게 책임을 지고 걷어 오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내가 들으니 선생이 걷은 돈으로 소와 술을 사고 이어서 채무증서를 수거하여 불에 태웠다고 하는데, 

 어찌 된 일입니까 ? "라고 하자.]  

 

 馮驩曰:「 然.  不多具牛酒即不能畢會, 無以知其有餘不足.  

 有餘者, 爲要期.  不足者, 雖守而責之十年, 息愈多, 急即, 以逃亡自捐之.

 若急, 終無以償, 上則爲君好利不愛士民, 下則有離上抵負之名, 非所以厲士民彰君聲也.  

 焚無用虛債之券, 捐不可得之虛計, 令薛民親君而彰君之善聲也, 君有何疑焉!」
 
(풍환왈 : 「 연.  불다구우주즉불능필회, 무이지기유여부족.        

 유여자, 위요기.  부족자, 수수이책지십년, 식유다, 급즉, 이도망자연지.

 약급, 종무이상, 상즉위군호리불애사민, 하즉유리상저부지명, 비소이려사민창군성야. 

 분무용허채지권, 연불가득지허계, 령설민친군이창군지선성야, 군유하의언 ! 」)


 ['풍환'이 말하기를 : "그렇습니다. 술과 소고기를 준비하지 않았다면 많은 사람들을 같은 시간에 

 한 장소에 모이게 할 수 없으므로, 여유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들을 구분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여유가 있는 사람에게는 기일을 다시 정하여 주고, 여유가 없는 사람은 비록 10년을 기다린다

 해도 그 이자는 더욱 불어나 이윽고 사정이 급하게 되면 다른 고을로 달아나고 말 것입니다.  

 만약 그 이자를 갚으라고 성급하게 다그친다면 돈도 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위로는 군께서 돈만 좋아하고 백성들을 사랑하지 않는 모양으로 비쳐질 것이고, 
 아래로는 백성들이 돈을 갚지 않으려고 군을 떠난다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선비와 백성들을 격려하고 군의 명성을 드높이는 일이 아닌 것입니다.
 쓸모없는 채무증서를 불태워 받을 수 없는 빚을 없애 줌으로해서 "설"땅의 백성들이 군을 가까이 하고   
 

 군의 명성을 널리 칭송하게 하려고 한 일인데, 군께서는 어찌하여 이것을 의심하는 것입니까 ? "라고 하였다.]   

 

 孟嘗君乃拊手而謝之.  齊王惑於秦·楚之毀, 以爲孟嘗君名高其主而擅齊國之權, 遂廢孟嘗君.   

 諸客見孟嘗君廢, 皆去. 馮驩曰:「 借臣車一乘, 可以入秦者, 必令君重於國而奉邑益廣, 可乎?」

 孟嘗君乃約車幣而遣之.
 
(맹상군내부수이사지.  제왕혹어진·초지훼, 이위맹상군명고기주이천제국지권, 수폐맹상군. 

 제객견맹상군폐, 개거. 풍환왈 : 「 차신거일승, 가이입진자, 필령군중어국이봉읍익광, 가호 ? 」 

 맹상군내약거폐이견지.)


 ['맹상군'은 마침내 손뼉을 치면서 '풍환'이 한 일을 칭찬하며 감사하다는 말을 하였다.
 제'민왕'은 진나라와 초나라가 '맹상군'을 비방하는 소리에 현혹되어 '맹상군'의 명성이 왕인 자기보다 

 더 높고 제나라의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른다고 여겨, 마침내 '맹상군'을 재상의 자리에서 내쫓았다. 

 ' 맹상군'의 빈객들은 그가 재상의 자리에 쫓겨난 것을 보고 모두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풍환'이 이를 보고 말하기를 : " 저에게 수레 한 대만 내 주시면 진나라에 가서 반드시 군을

 제나라에 중용되도록 하고 봉읍을 더욱 넓히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시겠습니까 ? "라고 하자.

 '맹상군'은 수레와 재물을 준비하여 '풍환'에게 보내 주었다.] 

 

 馮驩乃西說秦王曰:「 天下之游士馮軾結靷西入秦者, 無不欲彊秦而弱齊; 

 馮軾結靷東入齊者, 無不欲彊齊而弱秦.  此雄雌之國也, 勢不兩立爲雄, 雄者得天下矣. 」
 
(팽환내서세진왕왈 : 「 천하지유사빙식결인서입진자, 무불욕강진이약제 ;   
 

 빙식결인동입제자, 무불욕강제이약진.  차웅자지국야, 세불양립위웅, 웅자득천하의. 」)

 ['풍환'은 곧바로 서쪽의 진나라로 달려가 진왕에게 유세하기를 : " 천하의 유세하는 선비들이 수레를 몰아  

 서쪽의 진나라에 의지하려고 들어오는 이유는, 그들 모두가 진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제나라를 약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며 ;  수레를 동쪽으로 몰아 제나라에 의지하려고 들어가는 이유는, 또한 제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진나라를 약하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진나라와 제나라는 싸워서 승패를 내야 할 자웅과 같은 나라이므로

 두 나라의 세력은 양립할 수 없고, 그 중 이기는 나라가 천하를 얻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秦王跽而問之曰:「 何以使秦無爲雌而可?」 

 馮驩曰 :「 王亦知齊之廢孟嘗君乎?」 秦王曰 :「 聞之.」
 (진왕기이문지왈 : 「 하이사진무위자이가 ? 」
 

 풍환왈 : 「 왕역지제지폐맹상군호 ? 」  진왕왈 : 「 문지.」)


 [진왕이 꿇어 앉으며 '풍환'에게 묻기를 : " 선생은 진나라가 어떻게 하면 쇠약한 국가가 되지 않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고 계십니까 ? "라고 하자. 
 '풍환'이 말하기를 : " 대왕께서는 혹시 제나라가 '맹산군'을 재상의 자리에서 파면한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 "

 라고 되물었다.  그러자 진왕이 말하기를 : "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馮驩曰:「 使齊重於天下者, 孟嘗君也.  今齊王以毀廢之, 其心怨, 必背齊; 

 背齊入秦, 則齊國之情, 人事之誠, 盡委之秦, 齊地可得也, 豈直爲雄也!

 君急使使載幣陰迎孟嘗君, 不可失時也.  如有齊覺悟, 復用孟嘗君, 則雌雄之所在未可知也.」

 秦王大悅, 迺遣車十乘黃金百鎰以迎孟嘗君.
 
(풍환왈 : 「 사제중어천하자, 맹상군야.  금제왕이훼폐지, 기심원, 필배제 ;     

 배제입진, 즉제국지정, 인사지성, 진위지진, 제지가득야, 기직위웅야 !

 군급사사재폐음영맹상군, 불가실시야.  여유제각오, 부용맹상군, 즉자웅지소재미가지야. 」     

 진왕대열, 내견거십승황금백일이영맹상군.)


 ['풍환'이 말하기를 : " 제나라가 천하의 제후들로부터 존중함을 받는 이유는 바로 '맹상군'이 제나라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제왕은 '맹상군'을 비방하는 말에 현혹되어 그를 재상의 자리에서 파면시켰으니 

 '맹상군'은 마음속으로 제왕을 원망하며 틀림없이 제나라를 등질 것입니다 ;
 그가 제나라를 등지고 진나라에 들어온다면 제나라의 모든 정세와, 위로는 군왕에서 아래로는 관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정황은 모두 진나라에 의해 장악될 것이며, 

 그리되면 제나라의 땅을 진나라가 거둘 수 있는데 어찌 진나라가 이기는 것으로만 그칠 수 있겠습니까 ? 

 대왕께서 서둘러 사자를 통해 아무도 모르게 폐백을 실어 '맹상군'에게 보내 그를 맞이할 수 있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만일 제나라에서 이 사실을 깨닫고 '맹상군'을 다시 불러 쓰게 된다면 

 누가 자웅이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진왕이 크게 기뻐하며 곧바로 수레 10승에 황금 백일을 실어 보내 '맹상군'을 영접해 오도록 하였다. ] 

 

 馮驩辭以先行, 至齊, 說齊王曰:「 天下之游士馮軾結靷東入齊者, 無不欲彊齊而弱秦者; 

 馮軾結靷西入秦者, 無不欲彊秦而弱齊者. 夫秦·齊雄雌之國, 秦彊則齊弱矣, 此勢不兩雄. 
 (풍환사이선행, 지제, 세제왕왈 : 「 천하지유사빙식결인동입제자, 무불욕장제이약진자 ;
 

 빙식결인서입진자, 무불욕강진이약제자.  부진·제웅자지국, 진강즉제약의, 차세불량웅.


 ['풍환'이 진왕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진나라의 사자보다 앞서 달려 제나라에 도착하여 
제왕에게 유세하기를 :

 " 천하의 유세객들이 수레의 방향을 동쪽으로 돌려 제나라에 들어와 의지하려는 이유는 제나라를 강하게 하고

 진나라를 약화시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 또한 그 수레를 서쪽으로 돌려 진나라에 들어와 의지하려는 이유는

 진나라를 강하게 하고 제나라를 약하게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무릇 진나라와 제나라는 자웅을 겨루어야 할

 나라이며, 진나라가 강해지면 제나라는 약해질 수 밖에 없으므로 제나라와 진나라의 세력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今臣竊聞秦遣使車十乘載黃金百鎰以迎孟嘗君. 孟嘗君不西則已, 西入相秦則天下歸之,

 秦爲雄而齊爲雌.  雌則臨淄·即墨危矣.  王何不先秦使之未到, 復孟嘗君而, 益與之邑以謝之?  

 孟嘗君必喜而受之.  秦雖彊國, 豈可以請人相而迎之哉! 折秦之謀, 而絕其霸彊之略.」 

 (금신절문진견사거십승재황급백일이영맹상군. 맹상군불서즉기, 서입상진즉천하귀지,

 진위웅이제위자.  자즉임치·즉묵위의.  왕하불선진사지미도, 부맹상군이, 익여지읍이사지 ? 

 맹상군필희이수지.  진수강국, 기가이청인상이영지재 !  절진지모, 이절기패강지략.」)    

 
 [지금 신이 가만히 듣기로 진나라가 황금 100일을 실은 수레 10대와 함께 사자를 보내 '맹상군'을 모셔가려

 한다고 합니다. '맹상군'이 서쪽의 진나라에 들어가지 않는다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혹시 진나라에 들어가

 그곳의 재상이 된다면 천하는 모두 진나라에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리되면 진나라는 승리자가 되고

 제나라는 패배자가 될 것입니다. 제나라가 패배자가 된다면 "임치"와 "즉묵"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진나라의 사자가 설읍에 당도하기 전에 '맹상군'을 다시 불러 그의 봉읍을 더 넓혀주고

 그를 재상의 자리에서 쫓아낸 일을 사과하지 않습니까 ?  대왕께서 그리하신다면 '맹상군'은 틀림없이 기뻐하며  

 대왕의 명을 받들 것입니다.  진나라가 비록 강하지만 어찌 남의 나라 재상을 청하여 맞이해 갈 수 있겠습니까 ?  

 '맹상군'을 기용하여 진나라의 음모를 꺾어 그들이 강한 패자가 되려는 책략을 막으시기 바랍니다."하였다.]  

 

 齊王曰:「 善.」 乃使人至境候秦使.  秦使車適入齊境, 使還馳告之,  

 王召孟嘗君而復其相位, 而與其故邑之地, 又益以千戶.  秦之使者聞孟嘗君復相齊, 還車而去矣.
 
(제왕왈 : 「 선.」  내사인지경후진사.  진사거적입제경, 사환치고지,
 

 왕소맹상군이부기상위, 이여기고읍지지, 우익이천호.  진지사자문맹상군부상제, 환거이거의.)


 [제왕이 말하기를 : "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하고는  제'민왕'은 즉시 사람을 국경으로 보내 
과연 진나라의

 사자가 오는지 살펴보게 하였다.  마침 제나라의 국경에 당도한 진나라 사자 일행의 수레를 본 제왕의 사자가

 곧바로 "임치성"으로 달려가 제'민왕'에게 고했다. 제'민왕'이 즉시 '맹상군'을 불러 다시 재상의 자리에 앉히고

 이어서 그의 옛날 봉읍에 천 호를 더해 돌려 주었다.  진나라의 사자는 '맹상군'이 이미 제나라의 재상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수레의 방향을 돌려 진나라로 돌아갔다.] 

 

 自齊王毀廢孟嘗君, 諸客皆去.  後召而復之, 馮驩迎之.  未到, 孟嘗君太息歎曰:

「 文常好客, 遇客無所敢失, 食客三千有餘人, 先生所知也. 客見文一日廢, 皆背文而去, 莫顧文者.

 今賴先生得復其位, 客亦有何面目復見文乎?  如復見文者, 必唾其面而大辱之.」   

 (자제왕훼폐맹상군, 제객개거.  후소이부지, 풍환영지. 미도, 맹상군태식탄왈 :

「 문상호객, 우객무소감실, 식객삼천유여인, 선생소지야.  객견문일일폐, 개배뭉이거, 막고문자. 

 금뢰선생득부기위, 객역유하면목부견문호 ?  여부견문자, 필타기면이대욕지.」)      


 [처음에 제왕이 '맹상군'을 파면하고 봉읍마저 빼앗자, 그의 식객들 은 모두 그의 곁을 떠나버리고 말았다. 

 후에 '맹상군'이 다시 복직하자 '풍환'이 그들을 다시 불러들였다. 식객들이 미처 '맹상군'의 객사에 모이기 전에

 '맹상군'이 알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 " 이 '문'은 항상 식객들을 좋아해서 그들을 대접하는데 허물없이 

 지내다 보니 3천 명이 넘는 식객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선생은 이미 아시고 계시는 일입니다.

 식객들은 내가 하루 아침에 파면 당하고 봉읍도 잃게 되자, 모두가 나를 등지고 떠나면서 나를 돌아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이제 선생의 노력에 힘입어 내가 재상의 자리와 봉읍을 다시 찾게 되었으나, 

 그들은 도대체 무슨 면목으로 나를 다시 보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다시 그들을 보게 되면 반드시 그들의 얼굴에 침을 뱉어 크게 욕일 보이고야 말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馮驩結轡下拜.   孟嘗君下車接之, 曰:「 先生爲客謝乎?」   

 馮驩曰:「 非爲客謝也, 爲君之言失.  夫物有必至, 事有固然, 君知之乎?」 

 ​孟嘗君曰:「愚不知所謂也.」
 
(풍환결비하배.  맹상군하거접지, 왈 : 「 선생위객사호 ?」 

 풍환왈 : 「 비위객사야, 위군지언실.  부물유필지, 사유고연, 군지지호 ? 」   

 맹상군왈 : 「 우불지소위야. 」)


 ['풍환'은 말의 고삐를 메어 놓고 수레에서 내려 '맹상군'에게 절을 하였다. '맹상군'도 수레에서 내려 

 그를 맞으며 말하기를 : " 선생께서 어찌하여 식객들을 위해 대신 사죄하는 것입니까 ? "라고 하자. 

 '풍환'이 말하기를 : " 제가 식객들을 위해 사죄를 올리는 것이 아니라,  군께서 실언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무릇 만물에는 모두가 필연적으로 그렇게 되는 결과가 있고 모든 일에는 당연히 그렇게 되는 도리가 있는

 것입니다. 군께서는 알고 계십니까 ? "라고 하자.

 '맹상군'이 대답하기를 : " 저는 어리석어 선생께서 말씀하시려는 바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曰:「 生者必有死, 物之必至也;富貴多士, 貧賤寡友, 事之固然也.  君獨不見夫朝趣市者乎?

 明旦, 側肩爭門而入;日暮之後, 過市朝者掉臂而不顧.  非好朝而惡暮, 所期物忘其中.   

 今君失位, 賓客皆去, 不足以怨士而徒絕賓客之路.  願君遇客如故.」

 孟嘗君再拜曰:「 敬從命矣.  聞先生之言, 敢不奉教焉. 」 
 (왈 : 「 생자필유사, 물지필지야 ; 부귀다사, 빈천과우, 사지고연야. 군독불견부조취시자호 ?

 명단, 측견쟁문이입 ; 일모지후, 과시조자도비이불고.비호조이오모,소기물망기중.  

 금군실위, 빈객개거,부족이원사이도절빈객지로.원군우객여고.」

 맹상군재배왈 : 「 경종명의.  문선생지언, 감불봉교언. 」)


 ['풍환'이 말하기를 : " 살아 있는 사람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사물의 필연적인 결과이며 ; 

 사람이 부귀하게 되면 많은 선비가 몰려오고, 가난하고 천하게 되면 친구가 적게 되는 것은 세상일의 당연한  

 결과인 것입니다. 군께서는 어찌하여 아침에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시장에 모이는 것을 보지 못하십니까 ? 

 내일 아침이면 사람들이 어깨를 비비며 다투어 시장통의 문안으로 들어갔다가 해가 저물면 시장을 지나가던 

 사람도 어깨를 늘어뜨리며 돌아보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저녁을 싫어해서가 아니라,

 찾는 물건이 그 시장 안에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지금 군께서 파직을 당한다면 빈객들이 떠나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군의 곁을 떠난 빈객들을 원망하며, 그들이 돌아오는 길을 구태여 막으려고 하시는 것입니까 ?
 원컨대 군께서는 빈객들을 옛날과 마찬가지로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맹상군'은 풍환에게 재배하며 말하기를 : " 삼가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선생의 말씀을 듣고 감히 가르침을 받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라고 하였다.

 

 

 太史公曰:吾嘗過薛, 其俗閭里率多暴桀子弟, 與鄒·魯殊.  

 問其故, 曰:「 孟嘗君招致天下任俠, 姦人入薛中蓋六萬餘家矣.」  

 世之傳孟嘗君好客自喜, 名不虛矣.
 
(태사공왈 : 오상과설, 기속여리솔다폭걸자제, 여추·노수.  
 

 문기고, 왈 : 「 맹상군초치천하임협, 간인입설중개육만여가의.」   

 세지전맹상군호객자희, 명불허의.)


 [태사공이 말하기를 : 내가 일찍이 "설읍"을 지날 때 그곳의 풍속은 마을에 사납고 흉폭한 젊은이들이 

 몰려 다녀 '맹자'의 추나라나 '공자'의 노나라 풍속과는 많이 달랐다.        

 내가 그 연유를 묻자, 사람들이 말하기를 : " '맹상군'이 천하의 협객들과 간사한 자들을 불러들여 

 "설"땅에는 그들의 수가 대충 6만여 호나 되었기 때문이오. "라고 하였다.

 세상에 전하는 말에 의하면 '맹상군'이 빈객을 좋아하여 스스로 즐겨했다고 하던데, 

 ​그 이름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구나 ! ] 

 

 

【 각주 】 

1) 추기(鄒忌) : 전국 때 제나라의 대신으로 제환공(齊桓公) 때 대부로 임명되었다.  

    환공 5년 기원전 370년 진(秦)과 위 두 나라가 합세하여 한나라를 공격하자 환공은 한나라를 구원하려고 하자 

    추기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한나라를 구원하는 대신 연나라를 기습하자고 했다.  

    환공이 추기의 계책을 받아 들여 연나라를 공격하여 지금의 하북성 보정시 북쪽의 상구(桑丘)를 점령했다.

    환공이 죽고 이어서 제위왕이 즉위하여 제나라를 개혁하려는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추기는 거문고를  

    타며 설득하여 위왕의 신임을 받게 되었다. 위왕 21년 기원전 358년 제나라의 상국이 되었고  

    다음해에 지금의 강소성 비현(邳縣)에 봉해지고 성후(成侯)라 불리웠다. 

    그는 정치를 혁신하고, 법률을 실정에 맞게 고치며, 어질고 능력있는 사람들을 임용하여, 

    군제를 정비하고 정치의 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나라는 이로써 점점 강성해졌다. 또한 위나라를 공격하여 조나라를 구원해야 한다고 하여  

    기원전 353년 제나라 군대는 계릉(桂陵)에서 위나라 군대를 대파했다. 전기와 불화하여 여러 차례에 걸쳐  

    전기를 모함하여 결국은 전기는 초나라로 도망쳐야 했다. 제위왕 34년 기원전 345년에 노환으로 죽었다.  

    일설에 의하면 제선왕 2년 기원전 341년에 죽었다고도 했다.  

2) 전기(田忌) : 전국(戰國) 시대 때 제나라 장수. 사서(史書)에는 전기(田期) 혹은 전기사(田期思)라고도 했으며  

    서주(徐州 : 지금의 산동성 등주시(滕州市) 남)에 봉해져 서주기자(徐州期子)라고 불리웠다.  

    제위왕(齊威王) 26년 (기원전 353년) 손빈(孫臏)과 함께 위(魏)나라의 공격으로부터 조(趙)나라를 구원하고  

    계릉(桂陵: 지금의 하남성 장원현(長垣縣) 서북) 에서 방연이 거느리던 위군을 크게 무찔렀다.  

    제선왕(齊宣王) 2년 (기원전 341년)에 다시 전영(田嬰), 전반(田盼), 손빈(孫臏)과 함께  

    마릉(馬陵: 지금의 하남성 범현(范縣) 서남)에서 위군을 대파하고 위나라의 대장 방연을 죽이고  

    태자신(太子申)은 포로로 하였다. 후에 제나라의 상국(相國) 추기(騶忌)의 참소로 초나라로 도망쳤다.  

    초나라는 전기를 강남(江南)에 봉했다.  

3) 마릉(馬陵) : 전국 때인 기원전 341년 제나라의 장군 전기(田忌)와 전영(田嬰)이 군사 손빈(孫臏)의 계책에 따라  

    방연(龐涓)이 이끌던 위(魏)나라의 대군을 물리친 곳을 말하며 지금의 하남성 북쪽의 접경지역인  

    산동성 범현(范縣)설과 산동성 남쪽의 담성(郯城) 설 2가지 설이 있다.  

    위나라 대군이 이 싸움에서 전멸됨으로 인해서 위나라는 패권을 상실하고 중원의 2류국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4) 동아(東阿) : <전제세가(田齊世家)> 및 <육국연표(六國年表)>에는 평아(平阿)로 되어있다.  

    평아는 지금의 산동성 양곡현(陽谷縣) 동북으로, 일설에는 안휘성 회원현(懷遠縣)이라고도 하나     

    당시 회원현은 제나라 령에 속해 있지 않아 취하기 어렵다.  

5) 견(甄) : 지금의 산동성 견성현(甄城縣) 동북으로 전국 때 제나라 땅이다.

6) 서주(徐州) : 지금의 산동성 등현(滕縣) 동남으로 후에 설읍(薛邑)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7) 서주상왕(徐州相王) : 기원전 341년에 당시의 패권국 위나라의 대군을 마릉에서 전멸시킨 제위왕은 7년 뒤  

    기원전 334년에 위혜왕과 한소왕을 서주로 불러 그들로부터 조현을 받았다. 위와 한 두 왕은 서주의 회견에서  

    당시 왕호를 칭하고 있지 않았던 제위왕을 왕으로 높여 칭하자 제위왕도 위(魏)와 한(韓) 두 군주가 왕호를  

    칭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를 역사상 서주상왕이라고 한다.  

8) 설(薛) : 지금의 산동성 등현(滕縣) 남쪽

9) 호백구(狐白裘) : 여우 겨드랑의 하얀 가죽을 이용하여 만든 가죽 옷이다.

10) 봉전(封傳) : 당시 진나라가 시행하던 통행증제도이다. 나무판을 사용하여 만든 것으로 윗면에 이름 등의  

      인적사항을 쓰고 다시 나무판을 이용하여 봉한 뒤 인장을 찍었다. 때문에 봉전(封傳)이라 한 것이다.  

11) 서(徐) : 지금의 안휘성 사홍현(泗洪縣) 남쪽에 있었던 회하(淮河) 강안의 동이족(東夷族)이 세운 나라로  

      서주 초 때 서언왕(徐偃王)이 주목왕(周穆王)에게 반기를 들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멸망당했다.  

      후에 다시 복국되었다가 기원전 512년에 오나라에 병합되었고 오나라는 다시 월나라에,  

      또한 월나라는 초나라에 병합되어 서국은 초나라 령이 되었다. 전국 때 제나라 령인 서주(徐州)는 맹상군의  

      봉지인 설읍(薛邑)을 말하는 것으로 서국과는 다른 지명이다.  

12) 위염(魏冉) : 전국 때 진나라 대신으로 시호(諡號)는 양후(穰侯)다. 초나라 사람으로 진소양왕(秦昭襄王)의  

      모후인 선태후의 이부(異父) 동생이다. 혜왕(惠王), 무왕(武王) 때부터 중책을 맡아 진나라의 정사를 돌봤다.  

      무왕이 후사가 없이 죽자 그 형제들이 진왕의 자리를 놓고 서로 다투었다. 

       위염이 소양왕을 진왕의 자리에 올렸다. 

       소양왕 2년 기원전 305년 무왕의 동생인 서장(庶長) 장(壯)이 반란을 일으키지 위염이 군사를 거느리고 

      나아가 진압하고 장(壯)과 그를 따르던 대소 신료와 공족들을 살해하고 무왕의 부인을 위나라로 쫓아냈다.  

      이후로 위염의 위세는 진나라를 진동시켰다. 소양왕 7년 기원전 300년 진나라의 재상에 임명되었으며  

      15년 기원전 292년 지금의 하남성 등현인 양(穰)에 봉해지고 다시 지금의 산동성 정도(定陶)를 더하고  

      양후라는 봉호를 받았다. 전후로 4번에 걸쳐 진나라의 재상을 역임했으며 한 번은 조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일찍이 친히 군사를 이끌고 세 번이나 위나라를 공격하여 하내에 있던 크고 작은 성 60여 개를 점령했으며 

      위나라에 압박을 가하여 하동의 땅 400리를 진나라에 바치게 했다. 위나라의 도성 대량성을 포위했으며, 

      조(趙)와 위(魏) 두 나라 연합군을 화양(華陽 : 지금의 하남성 신정(新鄭) 북)에서 대파했다.  

      다시 군사를 일으켜 제나라를 공격하여 강(剛)과 수(壽) 등의 땅을 점령하여 그의 봉지인 도읍의 영지를  

      넓혔다. 백기(白起)를 발탁하여 대장으로 삼았다. 한 때 그의 권력이 강해지자 그를 따르던 무리들이 

       무수히 많았으며 그의 사가의 부는 왕실보다도 더 컸다. 결국은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며 발호하다가  

      소양왕 41년 기원전 266년 재상의 자리에 파직되었다. 다음 해 선태후가 죽고 그는 봉읍인 도읍으로     

      돌아가 그곳에서 죽었다.  

14) 송나라의 멸망 : 제민왕이 송나라를 정벌하고 그 폭군 언왕(偃王)을 죽여 멸한 해는 기원전 286년의 일이다.

15) 객사(客舍) : 맹상군은 문객들이 거처하는 객사(客舍)를 세 등급으로 나누었다. 상등의 객사는 대사(代舍),  

      중등의 객사는 행사(幸舍), 그리고 하등 객사를 전사(傳舍)라고 불렀다. 상등객사를 대사(代舍)라고 한 것은   

      가히 맹상군을 대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객사라는 뜻에서였으며,     

      상객들을 거주하게 하여 고기를 먹게 하고 수레를 내주어 타고 다니게 했다.  

      행사(幸舍)란 ‘ 가히 믿고 일을 맡길만한 사람들이 살고있는 객사’라는 뜻으로 중객(中客)들을 머물게 하고  

      음식으로 고기를 먹게 했으나 수레는 내주지 않았다. 전사(傳舍)란 껍질을 벗겨 지은 밥이나마 내주어  

      기아(飢餓)나 면하게 해주며, 출입 시에는 자기들 스스로 해결해야하며, 하객(下客)들을 머물게 했다.  

      옛날 진나라에 갔을 때 계명구도(鷄鳴狗盜)한 사람과 역권(驛券)을 위조하여 자기를 위기에서

      구해준 사람들은  모두 대사(代舍)에 거주하는 상객들의 반열에 세웠다.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