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平原君 虞卿列傳

第十六. 平原君 虞卿列傳(평원군 우경열전)

덕치/이두진 2021. 7. 27. 19:27

 

              史記 列傳

 

    第十六. 平原君 虞卿列傳(평원군 우경열전)

 ​平原君趙勝者, 趙之諸公子也.  諸子中勝最賢, 喜賓客, 賓客蓋至者數千人.    

 平原君相趙惠文王及孝成王, 三去相, 三復位, 封於東武城.
 
(평원군조승자, 조지제공자야.  제자중승최현, 희빈객, 빈객개지자수천인. 

 평원군상조혜문왕급효성왕, 삼거상, 삼부위, 봉어동무성.)


 [평원군 '조승'은 조나라 여러 공자 중의 한 사람이다. 공자들 중 가장 현명하고 빈객들을 좋아해서

 그를 찾아온 빈객들의 수가 대략 수천 명에 달하게 되었다.
 '평원군'은 조나라의 '혜문왕'과 '효성왕'의 양대에 걸쳐 재상을 지냈으나 세 차례 재상자리를 떠났다가

 다시 세 차례 재상자리에 올라 "동무성"을 봉지로 받았다.] 

 

 平原君家樓臨民家.  民家有躄者, 槃散行汲.  平原君美人居樓上, 臨見, 大笑之. 

 明日, 躄者至平原君門, 請曰 : 「 臣聞君之喜士, 士不遠千里而至者, 以君能貴士, 而賤妾也.  

 臣不幸有罷癃之病, 而君之後宮臨.  而笑臣, 臣願得笑臣者頭. 」
 
(평원군가루임민가.  민가유벽자, 반산행급.  평원군미인거루상, 임견, 대소지.

 명일, 벽자지평원군문, 청왈 : 「 신문군지희사, 사불원천리이지자, 이군능귀사, 이천첩야. 

 신불행유파륭지병, 이군지후궁임.  이소신, 신원득소신자두. 」)  

 

 ['평원군'의 집에는 민가를 내려다볼 수 있는 높은 누각이 있었다. 

 그 민가에는 절뚝발이가 살고 있는데 그는 쟁반을 들고 절룩거리며 물을 긷고 다녔다.
 '평원군'의 애첩이 누각 위에서 그 절뚝발이가 절룩이며 물을 길어 나르는 모습을 보고 크게 웃었다.

 다음날, 그 절름발이가 '평원군'의 집 대문 앞에 와서 '평원군'을 불러 말하기를 : " 제가 듣기에 군께서는

 선비들을 좋아한다고 했는데, 그 선비들이 천리길도 멀다하지 않고 군을 찾아온 이유는 군께서 선비들을

 귀하게 여기고 첩들을 천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제가 불행하게도 다리를 절룩거리고 등이 굽는 병이 있는

 이런 저의 모습을 군의 애첩이 누각에서 내려다보고 비웃었습니다. 

 소인은 원컨대, 저를 비웃은 애첩의 머리를 베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 

 

 平原君笑應曰 : 「 諾.」  躄者去, 平原君笑曰 : 「 觀此豎子 !  乃欲以一笑之, 故殺吾美人,  

 不亦甚乎 ? 」  終不殺.  居歲餘, 賓客門下舍人稍稍引去者, 過半.
 
(평원군소응왈 : 「 락.」  벽자거, 평원군소왈 : 「 관차수자 !  내욕이일소지, 고살오미인,

 불역심호 ? 」  종불살.  거세여, 빈객문하사인초초인거자, 과반.)


 ['평원군'은 웃으면서 대답하기를 : " 그렇게 하겠소 ! "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절름발이가 물러가자

 '평원군'은 웃으면서 주위의 빈객들을 보고 말하기를 : " 저런 푼수같은 놈을 보게나 ! 

 자기를 보고 한 번 웃었다고 하여 나의 사랑하는 애첩을 죽이라고 하다니 너무 심하지 않은가 ? "라고 하며.
 '평원군'은 결국 그의 애첩을 죽이지 않았다.  이어서 1년여가 지나자 문하의 빈객들이 점점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그 수가 반 밖에 남지 않았다.] 

 

 平原君怪之曰 : 「 勝所以待諸君者, 未嘗敢失禮, 而去者何多也. 」   

 門下一人前對曰 : 「 以君之不殺笑躄者, 以君爲愛色而賤士, 士卽去耳. 」
 
(평원군괴지왈 : 「 승소이대제군자, 미상감실례, 이거자하다야. 」 

 문하일인전대왈 : 「 이군지불살소벽자, 이군위애색이천사, 사즉거이. 」)


 ['평원군'은 이를 이상하게 여겨 묻기를 : " 나는 여러 선비들을 대접하는데 아직까지 예를 잃은 적이 
없는데

 어찌하여 많은 빈객들이 나의 문하를 떠났는가 ? "라고 하자.
 문객 중의 한 사람이 앞으로 나와 대답하기를 :  " 그것은 군께서는 절름발이 선비를 비웃은 애첩을

 죽이지 않음으로 해서, 선비들은 천하게 여기고 애첩은 귀하게 여기고 있다고 생각해서입니다. 

 그래서 선비들이 군의 문하에서 떠난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美人頭, 自造門進躄者, 因謝焉.  其後門下乃復稍稍來. 

 是時齊有孟嘗, 魏有信陵, 楚有春申, 故爭相傾以待士.
 
(미인두, 자조문진벽자, 인사언.  기후문하내부초초래. 

 시시제유맹상, 위유신릉, 초유춘신, 고쟁상경이대사.)


 ['평원군'은 애첩의 목을 베어 자신이 직접 들고 절름발이의 집 대문 앞에 가서 그 목을 주면서 사과하였다.

 그후 '평원군'의 문하에 선비들이 다시 점점 몰려들었다.
 이때 제나라에는 '맹상군', 위나라에는 '신릉군', 초나라에는 '춘신군'이 있었는데 이들은 서로 다투어

 선비들을 정성껏 예우하였다.]

 

 秦之圍邯鄲, 趙使平原君求救, 合從於楚.  約與食客門下, 有勇力文武備具者, 二十人偕.

 平原君曰 : 「 使文能取勝, 則善矣, 文不能取勝, 則歃血於華屋之下, 必得定從而還,  

 士不外索, 取於食客門下足矣. 」
 
(진지위한단, 조사평원군구구, 합종어초.  약여식객문하, 유용력문무비구자, 이십인해.

 평원군왈 : 「 사문능취승, 즉선의, 문불능취승, 즉삽혈어화옥지하, 필득정종이환,

 사불외색, 취어식객문하족의. 」)


 [진나라가 "한단"을 포위하자 조나라는 '평원군'을 사자로 보내 초나라와 합종을 맺고 구원을 요청하려 하였다. 

 '평원군'은 식객과 문객 중에서 뛰어난 역량과 문무를 두루 겸비한 사람 20명을 뽑아 함께 가기로 하였다.

 '평원군'이 말하기를 : " 예의를 다하여 합종을 성취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고,

 예의를 다하여도 합종을 성사시킬 수 없다면,  화려한 초나라의 궁전 아래에서 희생의 피를 마시며

 반드시 합종을 이루어낸 다음 돌아와야 될 것이오. 같이 갈 선비들은 바깥에서 찾을 필요가 없고,

 우리의 식객과 문객 중에서 뽑아도 충분할 것이오. "라고 하였다. ]  

 

 得十九人, 餘無可取者, 無以滿二十人.  門下有毛遂者前, 自贊於平原君曰 :  

「 遂聞君將合從於楚, 約與食客門下二十人偕, 不外索, 今少一人.  願君卽以遂備員而行矣. 」
 
(득십구인, 여무가취자, 무이만이십인.  문하유모수자전, 자찬어평원군왈 :

「 수문군장합종어초, 약여식객문하이십인해, 불외색, 금소일인.  원군즉이수비원이행의. 」)

 ['평원군'은 식객과 문객 중에서 19명을 얻었으나 나머지 한 명은 뽑을 만한 사람이 없어 20명을

 ​다 채우지 못하였다. 문객 중에 '모수'라는 사람이 '평원군' 앞으로 나오더니 스스로 자기를 천거하며

 말하기를 : " 이 '수'가 듣기에 군께서 합종을 맺으려고 초나라에 가시려고 하는데,
 함께 갈 사람을 밖에서 찾지 않고 식객과 문객 중에서 찾았으나 지금 한 사람이 부족하다고 들었습니다.
 원컨대 군께서 이 '수'를 그 일행에 끼워 20명을 채워 데려가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
 

 

 平原君曰 : 「 先生處勝之門下幾年於此矣 ? 」  毛遂曰 : 「 三年於此矣. 」 

 平原君曰 : 「 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 今先生處勝之門下三年於此矣.   

 左右未有所稱誦, 勝未有所聞, 是先生無所有也.  先生不能, 先生留. 」
 
(평원군왈 : 「 선생처승지문하기년어차의 ? 」  모수왈 : 「 삼년어차의. 」

 평원군왈 : 「 부현사지처세야.  비약추지처낭중, 기말입견, 금선생처승지문하삼년어차의. 

 좌우미유소칭송, 승미유소문, 시선생무소유야.  선생불능, 선생류. 」)


 ['평원군'이 묻기를 : 선생은 이 사람의 문객으로 계신지 얼마나 되셨습니까 ? "라고 하자.  

 '모수'가 대답하기를 : " 지금까지 3년이 되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평원군'이 말하기를 : " 대체로 어질고 현명한 선비가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마치 자루 속의 송곳과 같아 당장에 그 끝이 드러나 보이는 법입니다.
 그러나 선생은 3년이나 이 사람의 집에서 기거했음에도 내 측근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선생에 대한 

 칭찬 한 마디 없었고 나 또한 들은 적이 없습니다. 이는 선생이 가진 재주가 없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니

 선생은 나와 함께 같이 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같지 않으니 이곳에 남아 있으시오. "라고 하였다.]  

 
 
毛遂曰 : 「 臣乃今日請處囊中耳.  使遂蚤得處囊中, 乃穎脫而出.  非特其末見而已 ? 」
 平原君竟與毛遂偕.  十九人相與目笑之, 而未廢也.  毛遂比至楚, 與十九人論議, 十九人皆服.
 
(모수왈 : 「 신내금일청처낭중이.  사수조득처낭중, 내영탈이출.  비특기말견이이 ? 」

 평원군경여모수해.  십구인상여목소지, 이미폐야.  모수비지초, 여십구인논의, 십구인개복.)


 ['모수'가 말하기를 : " 이 사람은 지금에야 군의 주머니 속에 들어가기를 부탁드리는 것입니다.
 이 '수'가 군의 주머니 속에 일찍부터 들어가 있었더라면 송곳 지루까지 다 드러났을 것입니다. 

 어찌 송곳의 그 끝만 보였겠습니까 ? "라고 하였다.

 '평원군'은 결국은 '모수'도 같이 동행하는 것을 허락했다. 19명의 선비는 서로 눈짓을 하며 '모수'를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모수'가 초나라에 가는 도중에 나머지 19사람과 서로 의견을 나누었는데

 모두가 '모수'의 식견에 탄복하였다.]

 

 平原君與楚合從, 言其利害, 日出而言之, 日中不決, 十九人謂毛遂曰 : 「 先生上. 」

 毛遂按劍歷階而上, 謂平原君曰 : 「 從之利害, 兩言而決耳, 今日出而言從, 日中不決, 何也 ? 」
 
(평원군여초합종, 언기리해, 일출이언지, 일중불결, 십구인위모수왈 : 「 선생상. 」

 모수안검력계이상, 위평원군왈 : 「 종지리해, 양언이결이, 금일출이언종, 일중불결, 하야 ? 」)


 ['평원군'이 이윽고 초왕을 만나 합종의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아침에 해 뜰 때에 시작해서 해가 중천에 이르도록 결론을 내지 못했다.
 19명의 선비들이 모수에게 말하기를 : " 선생께서 올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모수'는 허리에 칼을 차고 한 걸음에 계단을 뛰어 올라가 '평원군'을 향해 말하기를 :

 " 합종의 이해는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만 말하면 그만인데, 오늘 아침 해 뜰 때부터 지금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어도 결론이 안 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 "라고 하자.]

 

 楚王謂平原君曰 : 「 客何爲者也 ? 」  平原君曰 : 「 是勝之舍人也. 」   

 楚王叱曰 : 「 胡不下, 吾乃與而君言, 汝何爲者也 ? 」
 
(초왕위평원군왈 : 「 객하위자야 ? 」  평원군왈 : 「 시승지사인야. 」 

 초왕질왈 : 「 호불하, 오내여이군언, 여하위자야 ? 」)


 [초왕이 '평원군'에게 묻기를 : "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 "라고 하자. 

 '평원군'이 대답하기를 : " 이 사람의 문객입니다. "라고 하였다.
 초왕이 듣고 "모수"를 향해 큰 소리로 호통치기를 : " 당장 내려가지 못할까 ? 내가 그대의 주인 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중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이처럼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인가 ? "라고 하였다.]  

   

 毛遂按劍, 而前曰 : 「 王之所以叱遂者, 以楚國之衆也.  今十步之內, 王不得恃楚國之衆也.   

 吾君在前, 叱者何也 ?  且遂聞湯以七十里之地, 王天下, 文王以百里之壤, 而臣諸侯.

 豈其士卒衆多哉 ? 誠能據其勢, 而奮其威.  今楚地方五千里, 持戟百萬, 此霸王之資也.

 (모수안검, 이전왈 : 「 왕지소이질수자, 이초국지중야.  금십보지내, 왕불득시초국지중야. 

 오군재전, 질자하야 ?  차수문탕이칠십리지지, 왕천하, 문왕이백리지양, 이신제후.

 개기사졸중다재 ? 성능거기세, 이분기위.  금초지방오천리, 지극백만, 차패왕지자야. 

 

 ['모수'는 칼을 움켜 잡고 초왕 앞으로 다가서서 말하기를 : " 대왕께서 이 '모수'를 보고 호통치는 것은

 곁에 있는 신하들과 호위병들을 믿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대왕이 계시는 곳에서 

 열 걸음 내에는 믿을 수 있는 신하나 호위병이 없다는 사실을 아셔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대왕의 목숨은 저의 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제가 우리 주인의 앞에 있는데 대왕은 어째서 다른 사람의 신하를 꾸짖는 것입니까 ?

 또 제가 듣기로 은나라를 세운 '탕'임금은 사방 70리의 땅을 가지고도 천하의 왕이 되었고, 

 주나라의 '문왕'은 100리의 땅을 가지고 제후들을 복종시켰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어찌 많은 군사들 때문만 이라고 하겠습니까 ? 그것은 진실로 그 세력에 의지해서 위엄을 떨쳤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초나라는 사방 5천리의 땅에 창으로 무장한 군사가 백만을 헤아리고 있어

 이것은 분명 패왕이 될 수 있는 바탕인 것입니다.  

 

 以楚之彊, 天下弗能當.  白起, 小豎子耳, 率數萬之衆, 興師以與楚戰, 一戰而擧鄢郢, 

 再戰而燒夷陵, 三戰而辱王之先人.  此百世之怨, 而趙之所羞.

 而王弗知惡焉, 合從者爲楚, 非爲趙也.  吾君在前, 叱者何也 ?」
 
(이초지강, 천하불능당.  백기, 소수자이, 솔수만지중, 흥사이여초전, 일전이거언영,

 재전이소이릉, 삼전이욕왕지선인.  차백세지원, 이조지소수.

 이왕불지오언, 합종자위초, 비위조야.  오군재전, 질자하야 ? )


 [이처럼 강한 초나라에 대적할 수 있는 나라는 천하에 없습니다.  그런데 진나라의 '백기'라는 보잘것 없는 

 장수가 수만의 군사를 거느리고 초나라를 공격하여, 한 번 싸움에 "언"과 "영"을 함락시켰고,

 두 번 싸움에서 "이릉"을 불태웠으며, 세 번 싸움에서 초나라 조상들을 욕보였습니다.

 이것은 초나라로서 백세대가 지나도 잊을 수 없는 원통한 일이며, 우리 조나라조차도 수치로 여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이것을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계십니다.

 합종을 행하고자 하는 이유는 초나라를 위해서이지, 우리 조나라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대왕께서는 제 주인 앞에서 어찌하여 저를 호통치시는 것입니까 ? "라고 하였다.]

   

 楚王曰 : 「 唯唯,  誠若先生之言.  謹奉社稷而以從. 」  毛遂曰 : 「 從定乎 ? 」   

 楚王曰 : 「 定矣 」  毛遂謂楚王之左右曰 : 「 取雞狗馬之血來. 」

 毛遂奉銅槃, 而跪進之楚王曰 : 「 王當歃血而定從, 次者吾君, 次者遂. 」
 
(초왕왈 : 「 유유,  성약선생지언.  근봉사직이이종. 」  모수왈 : 「 종정호 ? 」 

 초왕왈 : 「 정의 」  모수위초왕지좌우왈 : 「 취계구마지혈래. 」

 모수봉동반, 이궤진지초왕왈 : 「 왕당삽혈이정종, 차자오군, 차자수. 」)


 [초왕이 말하기를 : " 지당한 말씀이오.  선생의 말씀이 참으로 옳소. 

 삼가 사직을 받들어 합종을 행하겠소. "라고 하였다.
 '모수'가 묻기를 : " 그럼 대왕께서는 합종을 따르기로 마음을 정하셨습니까 ? "라고 하자.  

 초왕이 대답하기를 : " 정하였소. "라고 하였다.
 '모수'는 초왕의 좌우 측근들에게 말하기를 : " 서둘러 닭과 개와 말의 피를 가져오시오 ! "라고 하였다.

 '모수'는 희생의 피가 담긴 구리 쟁반을 받쳐 들고 무릎을 꿇은채 초왕에게 바치며 말하기를 :  

 " 대왕께서는 삽혈을 행하여 합종을 따르기로 맹세하셔야 합니다.
 그 다음은 우리 주인께서 하시고 그 다다음은 이 '수'가 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遂定從於殿上, 毛遂左手持槃血, 而右手招十九人曰 : 「 公相與歃此血於堂下,   

 公等錄錄, 所謂因人成事者也. 」
 
(수정종어전상, 모수좌수지반혈, 이우수초십구인왈 : 「 공상여삽차혈어당하,

 공등록록, 소위인인성사자야. 」)


 [드디어 합종의 맹약이 전각 위에서 이루어졌다.  이어서 '모수'는 왼손으로 희생의 피가 든 쟁반을 들고

 오른손으로 단하에 있던 19명의 수행원들을 불러 모아 말하기를 : " 그대들은 전각 아래에서 삽혈을

 ​행하도록 하시오.  그대들은 무능하고 재주도 변변치 못하면서 소위 남에게 의지하여 일을 이루려는 

 사람들입니다."라고 하였다.] 

 

 平原君已定從而歸, 歸至於趙曰 : 「 勝不敢復相士, 勝相士多者千人, 寡者百數,  

 自以爲不失天下之士, 今乃於毛先生而失之也.   毛先生一至楚, 而使趙重於九鼎大呂.

 毛先生以三寸之舌, 彊於百萬之師, 勝不敢復相士. 」  遂以爲上客.

 (평원군이정종이귀, 귀지어조왈 : 「 승불감부상사, 승상사다자천인, 과자백수,

 자이위불실천하지사, 금내어모선생이실지야.  모선생일지초, 이사조중어구정대여. 

 모선생이삼촌지설, 강어백만지사, 승불감부상사. 」  수이위상객.)


 ['평원군'이 초나라와 합종을 성사시키고 조나라에 돌아와 말하기를 : " 나는 다시는 감히 선비들을 
가리지 않겠소.

 나는 지금까지 많게는 수천 명에서 적게는 수백 명의 선비들을 가려 천하에 뛰어난 선비라면 한 명도 놓치지

 않았다고 자부해 왔는데,  이번에 '모수' 선생의 경우에는 실수를 하여 '모수' 선생을 잃을 뻔하였소. 

 '모수' 선생이 한 번 초나라에 가서 조나라를 구정이나 대려보다 더 무겁게 만들었소.

 ​'모수' 선생의 세 치 혀는 백만 대군보다 더 강했소. 나는 다시는 선비를 가리지 않겠소. "라고 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모수'를 상객으로 삼았다.]

 

 平原君旣返趙, 楚使春申君將兵赴救趙.  魏信陵君亦矯奪晉鄙軍往救趙.   

 皆未至, 秦急圍邯鄲, 邯鄲急, 且降.  平原君甚患之.
 
(평원군기반조, 초사춘신군장병부구조.  위신릉군역교탈진비군왕구조. 

 개미지, 진급위한단, 한단급, 차항.  평원군심환지.)


 ['평원군'이 조나라에 돌아가자, 초나라는 즉시 춘신군 '황헐'을 장수로 삼아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조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  위나라 신릉군 '위무기'도 역시 장군 '진비'를 속여 가면서 군권을 빼앗아

 조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왔다. 두 나라 군사들이 미처 이르기 전에 진나라가 재빨리 "한단"을 포위하자, 

 "한단"이 위급하게 되어 항복할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평원군"은 크게 걱정하고 있었다.]
 
 
邯鄲傳舍吏子李同說平原君曰 : 「 君不憂趙亡邪 ? 」     

 平原君曰 : 「 趙亡, 則勝爲虜, 何爲不憂乎 ? 」
 
(한단전사리자이동설평원군왈 : 「 군불우조망야 ? 」 

 평원군왈 : 「 조망, 즉승위로, 하위불우호 ? 」)

 
 ["한단"의 전사(숙소)를 관리하는 아전의 아들인 '이동'이 '평원군'을 찾아와 말하기를 :

 " 군께서는 조나라가 망하는데 걱정되지 않습니까 ?"라고 하자.  '평원군'이 말하기를 : " 조나라가 망하게 되면,

 나는 진나라의 포로가 될 것인데 어찌 걱정되지 않겠느냐 ?"라고 하였다.]  

  

 李同曰 : 「 邯鄲之民, 炊骨易子而食, 可謂急矣.  而君之後宮以百數, 婢妾被綺縠, 餘粱肉.     

 而民褐衣不完, 糟穅不厭.  民困兵盡, 或剡木爲矛矢.  而君器物鍾磬自若.

 使秦破趙, 君安得有此.  使趙得全, 君何患無有.  今君誠能令夫人以下, 編於士卒之閒, 分功而作. 

 家之所有盡散以饗士, 士方其危苦之時, 易德耳. 」
 (이동왈 : 「 한단지민, 취골역자이식, 가위급의.  이군지후궁이백수, 비첩피기곡, 여량육. 

 이민갈의불완, 조강불염.  민곤병진, 혹염목위모시.  이군기물종경자약.

 사진파조, 군안득유차.  사조득전, 군하환무유.  금군성능령부인이하, 편어사졸지한, 분공이작. 

 가지소유진산이향사, 사방기위고지시, 이덕이. 」)


 ['이동'이 말하기를 : " "한단"의 백성들은 땔감이 없어 사람의 해골을 주어다 불을 지피고,

 먹을 것이 없어 서로 자식들을 바꾸어 먹고 있는 매우 위급한 처지 입니다.
 그런데 군께서는 수백 명에 달하는 후궁을 거느리고 그 비첩들은 모두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좋은 곡식과 고기는 남아 돌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갈포로 만든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지게미와 쌀겨 조차도

 없어서 못 먹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곤궁하고 병사들은 거의 죽을 지경에 놓여 있으며,
 어떤 병사들은 병기조차 갖추지 못해 나무를 깎아 창과 화살을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군께서는 기물을 모우고 종경을 치며 예전 그대로 입니다.

 만일 진나라가 조나라를 쳐부순다면 군께서는 어찌 이런 것들을 얻고 또한 즐길 수 있겠습니까 ? 
 또한 조나라가 안전하게 보전된다면 군께서는 이러한 것들이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군께서는 진실된 마음으로 희첩들과 아랫사람들에게 명하여 한단을 지키는 병졸들에게 속하게 하여

 일을 나누어 맡게 하시고, 집안에 있는 기물들을 모두 내어 군사들에게 베풀어주신다면

 위태롭고 어려움을 당한 군사들은 쉽게 군의 은혜에 감격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於是平原君從之, 得敢死之士三千人.  李同遂與三千人赴秦軍, 秦軍爲之卻三十里.   

 亦會楚·魏救至, 秦兵遂罷, 邯鄲復存.  李同戰死, 封其父爲李侯.
 
(어시평원군종지, 득감사지사삼천인.  이동수여삼천인부진군, 진군위지각삼십리. 

 역회초·위구지, 진병수파, 한단부존.  이동전사, 봉기부위이후.)


 ['평원군'은 '이동'의 말대로 하여 죽음을 각오한 용맹스런 병사 3천 명을 얻었다. 

 '이동'은 마침내 이 3천 명을 이끌고 진나라 진영으로 돌격하자,

 진군은 "한단"의 포위망을 풀고 30리를 물러났다.  또 초나라와 위나라의 구원군이 당도하자,

 진나라 군사들은 물러가고 다시 "한단"을 보존할 수 있었다.
 '이동'은 싸움 중에 전사하자, 조왕은 '이동'의 아버지를 '이후'로 봉하였다.]
 

 

 虞卿欲以信陵君之存邯鄲, 爲平原君請封.  公孫龍聞之, 夜駕見平原君曰 :  

「 龍聞虞卿欲以信陵君之存, 邯鄲爲君請封, 有之乎 ? 」  平原君曰 : 「 然. 」
 
(우경욕이신릉군지존한단, 위평원군청봉.  공손룡문지, 야가견평원군왈 :

「 룡문우경욕이신릉군지존, 한단위군청봉, 유지호 ? 」  평원군왈 : 「 연. 」)


 ['우경'은 '신릉군'이 위나라 군사를 이끌고 출병하여 "한단"을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은 "평원군"의 
공이라고 

 생각하여 그 봉지를 더 해 줄 것을 조왕에게 청했다. '공손룡'은 이 소식을 듣고 밤새 수레를 몰고 와서

 '평원군'을 만나 말하기를 : " 이 사람이 듣기에 '신릉군'이 "한단"을 보전한 것이, 군의 공이라고

 생각한 '우경'은 군을 위해 봉읍을 더해 줄 것을 조왕에게 청했다는데 그 소문이 사실입니까 ? "라고 하자. 

 '평원군'이 말하기를 : " 그렇소. "라고 하였다.]  

 

 龍曰 : 「 此甚不可.  且王擧君而相趙者, 非以君之智能爲趙國無有也.   

 割東武城而封君者, 非以君爲有功也.  而以國人無勳, 乃以君爲親戚故也.

 君受相印不辭無能, 割地不言無功者, 亦自以爲親戚故也.   

 今信陵君存邯鄲而請封, 是親戚受城而國人計功也.  此甚不可.

 且虞卿操其兩權, 事成, 操右券以責, 事不成, 以虛名德君.  君必勿聽也. 」 平原君遂不聽虞卿.

 (룡왈 : 「 차심불가.  차왕거군이상조자, 비이군지지능위조국무유야. 

 할동무성이봉군자, 비이군위유공야.  이이국인무훈, 내이군위친척고야.

 군수상인불사무능, 할지불언무공자, 역자이위친척고야. 

 금신릉군존한단이청봉, 시친척수성이국인계공야.  차심불가.

 차우경조기양권, 사성, 조우권이책, 사불성, 이허명덕군.  군필물청야. 」  평원군수불청우경. )


 ['공손룡이' 말하기를 : " 이것은 매우 옳지 않은 일입니다.  옛날 조왕께서 군을 추천하여 상국에 임명한 것은

 당시 조나라에 지혜와 능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이 군 한 사람만이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동무성"을 나누어 군에게 봉한 것은 당시 군께서 나라를 위해 세운 공을 포상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나라를 위해 아무런 공훈도 세우지 못했음에도 조나라의 상국이 되고 '동무성'에 봉해진 것은

 단지 왕실의 친척이라는 이유 때문입니다. 군께서 상국의 인장을 받을 만한 능력이 없는데도 마다 않고 받은 것과,

 공이 없음에도 "동무성"을 나누어 봉한 것에 아무말 하지 못한 것은, 

 역시 군께서 스스로 왕실의 친척임을 인정한 것입니다. 지금 군의 요청으로 구원군을 이끌고 온 '신릉군'이 

 진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한단"을 보전시켰다고 해서 그 공으로 봉읍을 더 해달라고 청하는 행위는 

 친척의 신분으로 성을 받고 또 조나라 사람의 신분으로 공을 계산하는 것입니다. 

 이는 옳지 않은 일입니다. 이것은 '우경'이 양쪽의 권한을 가지고 있으면서 일이 이루어지면 우권을 쥐고서

 그 절반의 보답을 요구할 것이며,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군을 위해 봉읍을 청했다는 헛된 이름을 가지고

 군에게 생색을 내려고 할 것입니다. 군께서는 결코 더해 주는 봉읍은 받지 말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평원군'은 끝내 '우경'의 말을 듣지 않았다.]

 

 平原君以趙孝成王十五年卒.  子孫代, 後竟與趙俱亡.   

 平原君厚待公孫龍, 公孫龍善爲堅白之辯.  及鄒衍過趙言至道, 乃絀公孫龍.
 
(평원군이조효성왕십오년졸.  자손대, 후경여조구망. 

 평원군후대공손룡, 공손룡선위견백지변.  급추연과조언지도, 내출공손룡.)

 ['평원군'은 '효성왕' 15년( BC 251 )에 죽었다. 그 자손이 뒤를 이었다가 조나라가 망할 때

 ​ 운명을 함께 하였다.  '평원군'은 평소에 '공손룡'을 후하게 대접하였고,

 그의 견백지변(옳은 것을 그른 것이라고 하고, 같은 것을 다르다고 말함)의 궤변이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 
 후에 '추연'이라는 사람이 조나라를 지나가다 지극한 도에 대해 언급하자, 
'평원군'은 결국 '공손룡'을 내쳤다.] 

 
 
太史公曰:「 平原君, 翩翩濁世之佳公子也, 然未睹大體.   

 鄙語曰 『 利令智昏 』  平原君貪馮亭邪說, 使趙陷長平兵四十餘萬眾, 邯鄲幾亡. 」   
 
(태사공왈 : 「 평원군, 편편탁세지가공자야, 연미도대체.

 비어왈 『 이령지혼 』  평원군탐풍정사세, 사조함장평병사십여만중,한단기망.)


 ['태사공'이 말하기를 : " '평원군'은 혼란한 시대에 새가 하늘 높이 나는 것처럼 뛰어난 재주 있는 공자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다스리는 커다란 도리를 보지 못했다. 

 속된 말로 '이익이라고 하는 것은 지혜를 어둡게 만든다 '라고 하였다. 

 '평원군'은 '풍정'의 사악한 유세를 좋아하여, 조나라로 하여금 "장평"에서 40여만 명의 군사를

 산 채로 매장되어 죽게 하였고 이어서 조나라의 도성 '한단'을 거의 함락 일보 직전까지 몰고 갔다.] 

 

​ 虞卿者, 游說之士也.  躡蹻檐簦趙孝成王.  一見, 賜黃金百鎰, 白璧一雙.       

 再見, 爲趙上卿, 故號爲虞卿.  秦·趙戰於長平, 趙不勝, 亡一都尉.
 (우경자, 유세지사야.  섭교첨등조효성왕.  일현, 사황금백일, 백벽일쌍.     

 재현, 위조상경, 고호위우경.  진·조전어장평, 조불승, 망일도위.)


 ['우경'은 유세객이다.  '우경'은 짚신을 신고 어깨에 우산을 걸치고 먼 길을 걸어 조나라에 와서 

 ​'효성왕'을 한 번 알현하자,  조왕은 그에게 백벽 한 쌍과 황금 백 일(1일 = 20냥)을 하사했고, 

 두 번 알현하자 '효성왕'은 그를 상경으로 임명하면서 '우경'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진나라와 조나라는 "장평"의 싸움에서 조나라는 이기지 못하고 도위 한명을 잃었다.] 

  

 趙王召樓昌與虞卿曰 : 「 軍戰不勝, 尉復死.  寡人使束甲, 而趨之, 何如 ? 」        

 樓昌曰 : 「 無益也, 不如發重使爲媾. 」 虞卿曰 :「昌言媾者, 以爲不媾軍必破也. 

 而制媾者在秦, 且王之論秦也. 欲破趙之軍乎 ? 不邪 ?」

 王曰 : 「 秦不遺餘力矣, 必且欲破趙軍.」

 (조왕소루창여우경왈 : 「 군전불승, 위부사.  과인사속갑, 이추지, 하여 ? 」   

 루창왈 : 「 무익야, 불여발중사위구. 」 우경왈 : 「 창언구자, 이위불구군필파야. 

 이제구자재진, 차왕지논진야.  욕파조지군호 ?  불야 ? 」 

 왕왈 : 「 진불유여력의, 필차욕파조군. 」)


 [조왕이 '루창'과 '우경'을 불러 말하기를 : " 우리 군사들이 전투에서 이기지 못하고 또 도위가 전사했소.
 과인이 무장한 모든 병사들을 이끌고 진군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시오 ? "라고 하자. 
 '루창'이 대답하기를 : " 아무런 이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중신을 진나라에 사자로 보내 화친을 맺는 

 것보다 못합니다. "라고 하였다. '우경'이 말하기를 : " '루창'의 말은 진나라와 화친을 맺지 않으면 

 우리 군대가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화친을 맺느냐 맺지 않느냐는 진나라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대왕께서 진나라를 언급 하시는 것은 진나라가 조나라 군대를 깨뜨리려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
 아니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십니까 ? "라고 하자. 
 '조왕'이 말하기를 : " 진나라는 모든 힘을 다해 반드시 우리 조나라 군대를 깨뜨리려 할 것이오. "하였다.] 

 

 虞卿曰 : 「 王聽臣, 發使出重寶以附楚· 魏.  楚· 魏欲得王之重寶, 必內吾使.         

 趙使入楚· 魏, 秦必疑天下之合從, 且必恐,. 如此, 則媾乃可爲也. 」
 (우경왈 : 「 왕청신, 발사출중보이부초·위.  초· 위욕득왕지중보, 필내오사. 

 조사입초· 위, 진필의천하지합, 차필공.  여차, 즉구내가위야. 」)


 ['우경'이 말하기를 : "대왕께서 제 의견을 들으시고 사신을 통해 많은 보화를 초나라와 위나라에 보내 우리 편으로

 끌어 들이십시오.  초나라와 위나라 왕은 많은 보화가 탐이 나 틀림없이 우리의 사신을 받아 들일 것입니다. 

 조나라의 사신이 초나라와 위나라에 들어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진나라는 필시 천하가 합종을 행할 것이라고

 의심하게 되어 두려운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대왕께서는 진나라와 화친을 맺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趙王不聽, 與平陽君爲媾, 發鄭朱入秦.   

 秦內之, 趙王召虞卿曰 : 「 寡人使平陽君爲媾於秦, 秦已內鄭朱矣, 卿以爲奚如. 」
 (조왕불청, 여평양군위구, 발정주입진.     

 진내지, 조왕소우경왈 : 「 과인사평양군위구어진, 진이내정주의, 경이위해여. 」)


['조왕'은 '우경'의 말을 듣지 않고 '평양군'과 상의하여 화친을 맺기로 하고 '정주'를 진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진나라는 '정주'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조왕'은 '우경'을 불러 말하기를 : " 과인이  

 '평양군'에게 진나라와의 화친을 추진하도록 명하자 '평양군'은 '정주'를 사신으로 진나라에 보냈소.
 그러자 진나라는 '정주'를 받아들였소.  경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하시오. "라고 하자.] 

 

 虞卿對曰 : 「 王不得媾, 軍必破矣.  天下賀戰勝者, 皆在秦矣.  鄭朱, 貴人也. 入秦, 秦王與應侯,

 必顯重以示天下.  楚· 魏以趙爲媾, 必不救王.  秦知天下不救王, 則媾不可得成也.」

 應侯果顯鄭朱以, 示天下賀戰勝者, 終不肯媾.  長平大敗, 遂圍邯鄲, 爲天下笑.

 (우경대왈 : 「 왕불득구, 군필파의.  천하하전승자, 개재진의.  정주, 귀인야. 입진, 진왕여응후,

 필현중이시천하. 초·위이조위구, 필불구왕.  진지천하불구왕, 즉구불가득성야. 」 

 응후과현정주이, 시천하하전승자, 종불긍구.  장평대패, 수위한단, 위천하소. )

 

 ​['우경'이 대답하기를 : " 대왕께서는 진나라와 결코 화친을 맺지 못하고 종내에는 우리 조나라 군대는 진군에게

 패배할 것입니다. 천하 제후의 사신들이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모두 진나라에 있습니다.

 ​'정주'는 조나라의 귀척 신분입니다.  그가 진나라에 도착하면 진왕과 승상 '응후'는 틀림없이 그를 사절로

 받아들이고 정중하게 접대하여 천하에 과시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초나라와 위나라는 조나라가 진나라와

 강화를 맺는다고 생각하여 결코 조나라에 구원병을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진나라는 천하의 제후들이 조나라에

 구원군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결국 우리의 화친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응후'는 과연 '정주'를 이용하여 진나라가 전쟁에서 승리했음을 과시하고 결국은 화친을 맺지 않았다. 
 그리고 "장평"에서 벌어진 큰 싸움에서 조나라 군대는 대패하고 이어서 도성 "한단"이 포위되어,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秦旣解邯鄲圍, 而趙王入朝, 使趙郝約事於秦, 割六縣而媾. 

 虞卿謂趙王曰 : 「 秦之攻王也, 倦而歸乎 ?  王以其力尙能進, 愛王而弗攻乎 ? 」
 (진기해한단위, 이조왕입조, 사조학약사어진, 할육현이구.   

 우경위조왕왈 : 「 진지공왕야, 권이귀호 ?  왕이기력상능진, 애왕이불공호 ? 」)
 [진나라가 "한단"의 포위를 풀고, 조왕의 입조를 원하자 '조학'을 사신으로 보내 진나라와 강화를 맺고,  

 조나라의 6개 현을 떼어 주려고 하였다.'우경'이 이 소식을 듣고 조왕에게 말하기를 :

 "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해 놓고 철수하려고 하는 이유는 진의 군대가 피로하기 때문에 철수하려는 것일까요 ? 

 ​아니면 진격할 힘이 남았는데도 대왕을 아끼는 마음에서 공격하지 않는 것일까요 ? "라고 하자.] 

 

 王曰 : 「秦之攻我也, 不遺餘力矣, 必以倦而歸也.」  虞卿曰 : 「秦以其力攻其所不能取, 

 倦而歸, 王又以其力之所不能取以送之.  是助秦自攻也, 來年秦復攻王, 王無救矣.」
 (왕왈 : 진지공아야, 불유여력의, 필이권이귀야.」  우경왈 : 「진이기력공기소불능취,      

 권이귀, 왕우이기력지소불능취이송지.  시조진자공야, 래년진부공왕, 왕무구의.」)


 ['조왕'이 말하기를 : " 진나라가 우리를 공격하다가 이제 그 힘이 남아 있지 않아 틀림없이 군사들이 피로에 지쳐

 철수하려는 것이오. "라고 하였다.
 '우경'이 말하기를 : " 진나라가 그들의 힘으로 조나라를 공격하다가 원하는 바를 취하지 못하고

 군사들이 피로에 지쳐 철수하려고 하는데, 대왕께서는 오히려 그들의 힘으로 취하지 못한 것을 

 대신 주려고 합니다. 이것은 바로 진나라가 우리를 공격하라고 도와 주는 꼴입니다.

 내년에 진나라가 다시 공격해 온다면, 그때 대왕께서는 막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王以虞卿之言告趙郝.  趙郝曰 : 「 虞卿誠能盡秦力之所至乎 ?

 誠知秦力之所不能進, 此彈丸之地弗予.  令秦來年復攻王, 王得無割其內而媾乎 ? 」

 王曰 : 「 請聽子割矣, 子能必使來年秦之不復攻我乎 ? 」
 (왕이우경지언고조학.  조학왈 : 「 우경성능진진력지소지호 ?     

 성지진력지소불능진, 차탄환지지불여.  령진래년부공왕, 왕득무할기내이구호 ? 」

 왕왈 : 「 청청자할의, 자능필사래년진지불복공아호 ? 」)
 ['조왕'이 '우경'의 말을 '조학'에게 전했다. '조학'이 말하기를 : " '우경'이 조나라 땅 중에 진나라의 군사가

 미치지 못하는 곳이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  진실로 진나라가 그들의 힘으로 진격하지 못하는 곳이 있다면

 손바닥 만한 아주 좁은 땅일지라도 할양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만일 내년에 다시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해

 온다면 왕께서는 그때도 땅을 할양하지 않고 내지의 땅에 의지해서 강화를 이루어낼 수 있겠습니까 ? "하였다.

 '조왕'이 묻기를 : "그대의 말을 듣고 우리가 진나라에 땅을 할양하면, 그대는 내년에 진나라로 하여금 

 틀림없이 우리를 다시 공격하지 않도록 할 수 있겠소? "라고 하자.]

 

 趙郝對曰 : 「 此非臣之所敢任也. 他日三晉之交於秦, 相善也.  今秦善韓·魏而攻王, 

 王之所以事秦必, 不如韓·魏也.  今臣爲足下解負親之攻, 開關通幣, 齊交韓·魏.

 至來年而王獨取饱於秦, 此王之所以事秦必在韓·魏之後也.  此非臣之所敢任也. 」 王以告虞卿.
 (조학대왈  : 「 차비신지소감임야.   타일삼진지교어진, 상선야.  금진선한·위이공왕,       

 왕지소이사진필, 불여한·위야.  금신위족하해부친지공, 개관통폐, 제교한·위.

 지래년이왕독취포어진, 차왕지소이사진필재한·위지후야.  차비신지소감임야. 」 왕이고우경.)

 

 ['조학'이 대답하기를 : "그것은 신이 감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지난날 삼진이 함께 진나라와 수호를 맺고

 ​서로 우호적으로 지냈습니다.  지금 진나라는 한나라, 위나라와 친선을 맺고 조나라를 공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께서는 필히 진나라 받들기를 한나라, 위나라가 하는 정도로 지극히 해야 합니다.

 ​지금 신은 대왕께서 친선관계를 파기함으로 해서 야기된 진나라의 공격을 막아보려고 관문을 열고 

 사신을 왕래시켜 예물들을 서로 교환하여 진나라와의 관계를 한나라, 위나라와 똑같이 하려고 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내년에 유독 대왕 혼자만이 진나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면,    

 그것은 대왕께서 한과 위 두 나라보다 진나라를 더 극진하게 받들지 않아서 일것입니다. 
 신은 그래서 감히 그때의 결과를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조왕은 '조학'에게 '우경'을 찾아가서 자기의 의견을 말하도록 했다. ] 

 

 虞卿對曰:「 郝言 『 不媾, 來年秦復攻王, 王得無割其內而媾乎 』    

 今媾, 郝又以不能必秦之不復攻也.  今雖割六城, 何益!來年復攻, 又割其力之所不能取而媾,

 此自盡之術也, 不如無媾.  秦雖善攻, 不能取六縣;趙雖不能守, 終不失六城.  秦倦而歸, 兵必罷.

 (우경대왈:「 학언 『 불구, 내년진부공왕, 왕득무할기내이구호 』 

 금구, 학우이불능필진지불부공야. 금수할육성, 하익!내년부공, 우할기력지소불능취이구,

 차자진지술야, 불여무구.  진수선공, 불능취육현;조수불능수, 종불실육성.  진권이귀, 병필파.


 ['조학'의 말을 들은 '우경'은 조왕에게 말하기를 : " '조학'의 말로는 ' 이번에 강화를 맺지 못하면 진나라가 내년에

 ​다시 쳐들어오게 될 것인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지금 바로 6개의 성을 떼어 바쳐 강화를 맺지 않고

 다시 내년에 내지의 성에 의지하여 강화를 맺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지금 당장 강화를 맺더라고 진나라가 또다시 조나라를 공격하지 않으리라고 '조학'은 보장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비록 6개의 성을 떼어내 진나라에 바친들 우리나라에 무슨 이득이 있겠습니까 !

 ​내년에 다시 공격을 받을 때 다시 진나라의 역량으로 취하지 못하는 바에 따라 다시 강화를 맺는다면, 

 이것은 스스로를 해치는 결과입니다.  강화를 추진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진나라가 비록 싸움에 능하지만 그들의 힘으로 우리의 6개의 현을 취하지 못했으며 ;
 조나라가 비록 지키지 못했지만 결국 6개의 성은 잃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피로에 지친 진나라가 군사를 물리쳐 휴식을 취하려하고 있습니다. 

   

 我以六城收天下以攻罷秦, 是我失之於天下而取償於秦也. 吾國尚利, 孰與坐而割地, 自弱以彊秦哉 ? 

今郝曰 『 秦善韓·魏而攻趙者, 必以為韓魏不救趙也而王之軍必孤有以, 王之事秦不如韓·魏也』

 是使王歲以六城事秦也, 即坐而城盡.  來年秦復求割地, 王將與之乎?
 (아이육성수천하이공파진, 시아실지어천하이취상어진야.  오국상리, 숙여좌이할지, 자약이강진재 ?

 금학왈 『 진선한·위이공조자, 필이위한·위불구조야이왕지군필고유이, 왕지사진불여한·위야』,   

 시사왕세이육성사진야, 즉좌이성진.  내년진부구할지, 왕장여지호?

 

 이때 우리는 6개의 성으로 천하의 제후들을 규합하여, 피로에 지친 진나라 군사들을 공격한다면,

 우리는 천하를 규합하기 위해 사용한 6개의 성에 해당하는 땅을 진나라로부터 대신 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이익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서 땅만 떼어 준다면
 이는 진나라를 강하게 하고 우리 스스로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지금 '조학'의 말로는 ‘진나라는 한나라, 위나라와 친하게 지내고 그렇지 않은 조나라를 공격하고 있기 때문에

 반드시 우리 왕께서는 진나라 받들기를 한나라와 위나라처럼 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대왕께서 6개의 성을 바치고 다시 진나라를 극진히 받들어야 하며,

 ​그렇게 되면 진나라는 가만히 앉아서 우리의 성읍을 야금야금 모두 먹어 치울 것입니다.

 ​내년에 진나라가 다시 우리의 땅을 요구한다면 대왕께서는 그들에게 땅을 또 떼어 주시겠습니까 ?
 
 弗與, 是棄前功而挑秦禍也;與之, 則無地而給之.  語曰 『 彊者善攻, 弱者不能守 』. 
 

 今坐而聽秦, 秦兵不獘而多得地, 是彊秦而弱趙也. 以益彊之秦而割愈弱之趙, 其計故不止矣.

 且王之地有盡而秦之求無已, 以有盡之地而給無已之求, 其勢必無趙矣. 」

 (불여, 시기전공이도진화야;여지, 즉무지이급지.  어왈 『 강자선공, 약자불능수 』.   

 금좌이청진, 진병불폐이다득지, 시강진이약조야.이익강지진이할유약지조, 기계고불지의.

 차왕지지유진이진지구무이, 이유진지지이급무이지구, 기세필무조의.」)

 

 [만일 떼어 주지 않는다면 그때는 이전에 힘들게 맺어 놓은 관계를 포기하고 진나라의 전의를 도발하는 꼴이 되어

 우리에게 재앙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그렇다고 만일 진나라의 요구대로 땅을 또다시 떼어 주려한다면

 그때는 이미 떼어줄래야 줄 땅이 없게 될 것입니다.
 속담에 ‘강한 자는 잘 싸우지만, 약한 자는 자기 것도 잘 지키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그저 진나라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다면 진나라 군사들은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많은 땅을 얻을 수 있으니 이것이야 말로 진나라를 강하게 만들고 조나라를 약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본래 강했던 진나라를 더욱 강해지고 땅을 떼어 준 조나라는 더욱 약하게 만드는 그런 계책을 어찌하여

 중지하지 않으십니까 ?  또 대왕의 땅은 유한하고 진의 요구는 무한하니, 유한한 땅으로는 무한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노릇이니 그 결과는 반드시 조나라는 멸망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趙王計未定, 樓緩從秦來.  趙王與樓緩計之, 曰:「 予秦地(何)如毋予, 孰吉?」 

 緩辭讓曰:「 此非臣之所能知也. 」  王曰:「 雖然, 試言公之私. 」
 (조왕계미정, 루완종진래.  조왕여루완계지, 왈:「 여진지(하)여무여, 숙길?」  

 완사양왈:「 차비신지소능지야. 」  왕왈:「 수연, 시언공지사. 」)


 ['조왕'이 계책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데 진나라에 사자로 갔던 '누완'이 돌아왔다. 
 '조왕'은 '누완'과 계책을 의논하며 말하기를 : " 진나라에게 우리 땅을 떼어 바쳐야겠소 ?   

 아니면 바치지 말아야겠소 ?  어느 것이 우리 조나라에 좋겠소 ? "라고 하자. 
 '누완'이 겸양하며 말하기를 : " 그것에 대해서는 신이 아는 바가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조왕'이 말하기를 : " 비록 그렇다하더라도 개인적인 생각이라도 한 번 말해 보시오. "라고 하자.] 

  

 樓緩對曰:「 王亦聞夫公甫文伯母乎? 公甫文伯仕於魯, 病死, 女子為自殺於房中者二人.    

 其母聞之, 弗哭也.  其相室曰:『 焉有子死而弗哭者乎?』

 ​其母曰:『 孔子, 賢人也, 逐於魯, 而是人不隨也.

 ​今死而婦人為之自殺者二人, 若是者必其於長者薄而於婦人厚也. 』

 (누완대왈:「 왕역문부공보문백모호? 공보문백사어노, 병사, 여자위자살어방중자이인. 

 기모문지, 불곡야.  기상실왈:『 언유자사이불곡자호?』 

 기모왈:『 공자, 현인야, 축어노, 이시인불수야. 

 금사이부인위지자살자이인, 약시자필기어장자박이어부인후야. 』


 ['누완'이 대답하기를 : " 대왕께서는 옛날 '공보문백'의 모친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     

 '공보문백'이 노나라에서 벼슬하던 중에 병이 들어 죽자,  그 뒤를 따라 두 사람의 여인이 자살했습니다.

 '문백'의 어머니는 아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곡을 하지 않았습니다. '문백'의 집안일을 하는 여인이

 그 어머니에게 묻기를 ' 어찌하여 자식이 죽었음에도 곡을 하지 않습니까? '라고 하자.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 '공자'는 현인이었으나 노나라에서 쫓겨날 때 사람들은 '공자'를 따라가지 않았다. 

 지금 아들이 죽었는데 두 여인이 그를 위해 자살했다. 이와같이 그는 장자에게는 박하게 대하고

 부녀자들에게는 후하게 대한 것인데 어찌 내가 그런 자식을 위해 곡을 하겠는가 ? ‘라고 했습니다. 

 

 ​故從母言之, 是為賢母;從妻言之, 是必不免為妒妻.  故其言一也, 言者異則人心變矣. 

 今臣新從秦來而言勿予, 則非計也;言予之, 恐王以臣為為秦也:故不敢對.     

 使臣得為大王計, 不如予之. 」  王曰:「 諾. 」
 (고종모언지, 시위현모;종처언지, 시필불면위투처.  고기언일야, 언자이즉인심변의. 

 금신신종진래이언물여, 즉비계지;언여지, 공왕이신위위진야:고불감대.    

 사신득위대왕계, 불여여지. 」  왕왈:「 락. 」)

 [그런 말을 모친이 했음으로 그 모친은 현모인 것이고 ; 만일 그 말을 그의 처가 했다면

 필시 그 처는투기를 한다는 의심을 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말이라도 말하는 사람에 따라 사람의 마음이 다르게 변하는 것입니다.

 그런 연유로 지금 신은 진나라에서 방금 돌아온 처지여서 말씀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즉 좋은 계책이 아닙니다 ; 만약 신이 진언을 올린다면 대왕께서는 혹시 제가 진나라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의심하실 것입니다 : 그래서 감히 대답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신으로 하여금 대왕을 위해서 계책을 드리자면 땅을 떼어 진나라에 주는 편이 좋습니다. "라고 하자.

 ​'조왕'이 말하기를 : " 알았소. "라고 하였다.] 

  

 虞卿聞之, 入見王曰:「 此飾說也, 王慎勿予!」 樓緩聞之, 往見王.  王又以虞卿之言告樓緩.   

 樓緩對曰:「 不然.  虞卿得其一, 不得其二.  夫秦·趙構難而天下皆說, 何也? 

 曰 『 吾且因彊而乘弱矣 』.  
 (우경문지, 입현왕왈:「 차식설야, 왕신물여!」  누완문지, 왕현왕.  왕우이우경지언고루완.

 ​누완대왈:「 불연.  우경득기일, 불득기이.  부진·조구난이천하개설, 하야?

 ​왈 『 오차인강이승약 』

 

 ['우경'은 이 소식을 듣고 입궐하여 '조왕'을 알현하고 말하기를 : " 누완'의 말은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입니다.

 대왕께서는 절대로 땅을 떼어 주면 안 됩니다. "라고 하였다.
 '누완'도 이 소식을 듣고 역시 왕을 뵈러 왔다.  왕은 또 '우경'이 한 말을 '누완'에게 전하였다.

 '누완'이 대답하기를 : " '우경'의 말은 옳지 않습니다.  '우경'은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고 있습니다.

 ​대체로 진나라와 조나라가 서로 원수가 되어 극렬하게 싸우면 천하 제후들은 모두 기뻐할 것입니다.

 ​어째서 이겠습니까 ?  말하자면 '그것은 강한 나라에 의지하여 약한 나라를 업신여기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今趙兵困於秦, 天下之賀戰勝者則必盡在於秦矣.  故不如亟割地為和, 以疑天下而慰秦之心.  
 不然, 天下將因秦之(彊)怒, 乘趙之獘, 瓜分之.  趙且亡, 何秦之圖乎?     

 故曰虞卿得其一, 不得其二.  願王以此決之, 勿復計也. 」
 (금조병곤어진, 천하지하전승자즉필진재어진의.  고불여극할지위화, 이의천하이위진지심.

 불연, 천하장인진지(강)노, 승조지폐, 과분지.  조차망, 하진지도호?   

 고왈우경득기일, 불득기이.  원왕이차결지, 물복계야. 」)

 

 [지금 조군은 진군에 의해 곤경에 처해 있기 때문에 천하의 모든 나라는 진나라가 전쟁에서 이길 것으로

 알고 축하를 위해 모두 진나라에 당도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서둘러 땅을 떼 주어 화의를 맺어야만 

 천하의 모든 나라로 하여금 의심하여 주저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고 진왕의 마음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천하의 각 나라는 분노한 진왕의 마음을 이용하여 피폐한 조나라에 달려들어  

 참외를 쪼개듯이 서로 나누어 갖게 될 것입니다.
 조나라는 결국 망하고 말 것인데 무슨 방법으로 진나라가 도모하는 바를 막을 수 있단 말입니까 ? 
 그러므로 '우경'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고 말한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 결단을 내리시기 바라며, 이보다 더 나은 계책은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虞卿聞之, 往見王曰:「 危哉樓子之所以為秦者, 是愈疑天下, 而何慰秦之心哉?

 獨不言其示天下弱乎?  且臣言勿予者, 非固勿予而已也.

 秦索六城於王, 而王以六城賂齊.  齊·秦之深讎也, 得王之六城, 并力西擊秦,  

 齊之聽王, 不待辭之畢也.  則是王失之於齊而取償於秦也.

 (우경문지, 왕현왕왈:「 위재루자지소이위진자, 시유의천하, 이하위진지심재?  

 독불언기시천하약호?  차신언물여자, 비고물여이이야.

 진색육성어왕, 이왕이육성뢰제. 제·진지심수야, 득왕지육성, 병력서격진,  

 제지청왕, 불대사지필야.  즉시왕실지어제이취상어진야.

 ['우경'이 듣고 다시 조왕을 뵙고 말하기를 : " '루완'이 진나라를 중심으로 생각한 그와 같은 방법은  

 매우 위태로울 뿐만 아니라,  천하의 각 나라로 하여금 우리 조나라를 더욱 의심하게 만들 것인데,  

 어떻게 그것이 진나라의 마음을 위로하는 행위가 될 수 있던 말입니까 ?
 그리고 '루완'의 말은 우리가 땅을 떼어 진나라에 바치는 행위는 천하의 모든 나라에게 조나라가 허약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닙니까 ? 더군다나 신은 땅을 바치지 말라고만 했지 무조건 주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진나라가 대왕께 요구한 6개의 성을 대왕께서는 차라리 제나라에 주십시오.

 제나라와 진나라는 원한관계가 매우 깊어 제나라 왕이 우리 조나라부터 6개의 성을 얻는다면 함께 군사를  모아

 진나라를 향해 서쪽으로 진격할 것이며, 제왕은 대왕의 말이 끝나기 전에 그 제안에 동의할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제나라에 떼어준 6개의 성에 해당하는 땅을 진나라로부터 보상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而齊· 趙之深讎可以報矣, 而示天下有能為也. 

 王以此發聲, 兵未窺於境, 臣見秦之重賂至趙而反媾於王也.

 從秦為媾, 韓· 魏聞之, 必盡重王;重王, 必出重寶以先於王.    

 則是王一舉而結三國之親, 而與秦易道也. 」
 (이제·조지심수가이보의, 이시천하유능위야.  왕이차발성, 병미규어경, 신견진지중뢰지조이반구어왕야.

 종진위구, 한·위문지, 필진중왕;중왕, 필출중보이선어왕.  즉시왕일거이결삼국지친, 이여진이도야. 」)

 

[아울러 제나라와 조나라 사이에 있었던 원한 관계도 이것으로 해소할 수 있어,

 천하에 조나라가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다는 능력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이로써 대왕께서 목소리를 높이신다면 제나라와 조나라의 군대가 진나라 변경에 도착하여 주위상황을  

 살피기도 전에, 신이 보건데 오히려 진나라가 많은 재물을 들고 조나라에 당도하여     

 반대로 진나라가 먼저 화의를 맺자고 대왕께 간청할 것입니다.

 진나라의 요청에 따라 화의를 맺은 사실을 들은 한나라와 위나라는 틀림없이 대왕을 존중할 것이고 ;

 ​대왕께서 존중받게 되면 두 나라는 필시 많은 재물과 보물을 대왕께 바칠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대왕께서

 ​일거에 3국(제, 위, 한)과 친선을 맺고 진나라와는 강화를 쉽게 체결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라고 하였다.] 

 

 ​趙王曰:「 善. 」  則使虞卿東見齊王, 與之謀秦.  虞卿未返, 秦使者已在趙矣. 

 樓緩聞之, 亡去.  趙於是封虞卿以一城.  居頃之, 而魏請為從.  趙孝成王召虞卿謀. 

 過平原君, 平原君曰:「 願卿之論從也. 」 虞卿入見王. 王曰:「 魏請為從. 」對曰:「 魏過.」

 (조왕왈:「 선. 」  즉사우경동견제왕, 여지모진.  우경미반, 진사자이재조의. 

 루완문지, 망거.  조어시봉우경이일성. 거경지, 이위청위종.  조효성왕소우경모. 

 과평원군, 평원군왈:「 원경지논종야. 」 우경입현왕.  왕왈:「 위청위종. 」 대왈:「 위과. 」)

 ['조왕'은 말하기를 : " 좋소. "라고 하고.  그 즉시 '우경'을 사신으로 삼아 제나라 왕을 알현하게 하고  

 두 나라가 힘을 합쳐 진나라에 대항하는 제안을 모색하게 하였다.
 '우경'이 조나라로 돌아오기도 전에 진나라의 사신이 강화를 맺자고 조나라에 당도했다.  

 '루완'이 듣고 도망쳐 버렸다.  조나라는 '우경'에게 성 하나를 봉지로 주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위나라에서 합종을 맺자고 제안해 왔다. 

 조'효성왕'은 '우경'을 불러 이 제안을 상의하려고 하였다.

 '우경'은 지나는 길에 '평원군'을 방문하자, 
 '평원군'이 말하기를 : "원컨대 부디 위나라와 합종을 맺는것이 좋다고 대왕께 말씀드려 주시오. "하였다. 

 이윽고 '우경'이 입궐하여 '조왕'을 알현하였다.  조왕이 말하기를 : " 위나라가 합종을 요청해왔소 ! "라고 하자.  

 '우경'이 대답하기를 : " 위나라는 잘못한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王曰:「 寡人固未之許. 」  對曰:「 王過. 」 
 

 王曰:「 魏請從, 卿曰魏過, 寡人未之許, 又曰寡人過, 然則從終不可乎?」
 (왕왈:「 과인고미지허. 」  대왈:「 왕과. 」   

 왕왈:「 위청종, 경왈위과, 과인미지허, 우왈과인과, 연즉종종불가호?」)


 [조왕이 말하기를 : " 과인은 아직 위나라의 요청을 허락하지 않았소. "라고 하자. 

 '우경'이 대답하기를 : " 대왕께서 잘못하셨습니다. "라고 하였다.
 조왕이 따져 묻기를 : " 위나라가 합종을 요청해 왔다고 하니 경은 위나라가 잘못했다고 말하더니,  

 다시 내가 합종을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니 또 내 잘못이라고 말했소.
 그렇다면 합종을 해야 하오 ?  아니면 하지 말아야 하오 ? "라고 하자. ]  

  

 對曰:「 臣聞小國之與大國從事也, 有利則大國受其福, 有敗則小國受其禍.   

 今魏以小國請其禍, 而王以大國辭其福, 臣故曰王過, 魏亦過.  竊以為從便. 」
 (대왈:「 신문소국지여대국종사야, 유리즉대국수기복, 유패즉소국수기화.   

 금위이소국청기화, 이왕이대국사기복, 신고왈왕과, 위역과.  절이위종변. 」)


 ['우경'이 대답하기를 : " 신이 듣기로 소국이 대국과 합종을 하게 되면 대국에게는 유리하여 복이 되고,

 ​소국에게는 손해가 되어 화가 된다고 했습니다.  지금 소국인 위나라가 합종을 요청한 일은 화를 불러들인 것이고,

 대국인 조나라에게는 복이 굴러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신은 합종을 아직 허락하지 않은 왕께서 잘못하셨고 소국인 위나라 역시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대왕께서는 슬그머니 합종을 허락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王曰:「 善. 」  乃合魏為從.  虞卿既以魏齊之故, 不重萬戶侯卿相之印, 與魏齊閒行,   

 卒去趙, 困於梁.  魏齊已死, 不得意, 乃著書, 上採春秋, 下觀近世,

 曰節義·稱號·揣摩·政謀, 凡八篇. 以刺譏國家得失, 世傳之曰虞氏春秋.

 (왕왈:「 선. 」  내합위위종.  우경기이위제지고, 불중만호후경상지인, 여위제한행,

 졸거조, 곤어량. 위제이사, 불득의, 내저서, 상채춘추, 하관근세,

 왈절의·칭호·췌마·정모, 범팔편.  이자기국가득실, 세전지왈우씨춘추.)

 

 ['조왕'이 말하기를 : " 알겠소. "라고 하고.  즉시 위나라와 합종을 맺었다. 
 '우경'은 위나라 재상 '위제'의 일로 만호의 제후와 경상의 인장도 내던져 버리고

 사람의 눈을 피해 '위제'와 함께 조나라를 떠났다가 "대량"에서 곤궁한 삶을 살았다.

 ​'위제'가 죽은 후에 '우경'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저술에 전념하여 위로는 춘추에서 수집하고,

 ​밑으로는 근세의 역사를 인식하여, 〈절의〉, 〈칭호〉, 〈췌마〉, 〈정모〉등 모두 8편을 지었다.

 ​국가의 이해득실을 풍자한 내용으로 세상에 전해졌는데 〈우씨춘추〉라고 하였다.] 

 

 太史公曰:

 平原君, 翩翩濁世之佳公子也, 然未睹大體.   

 鄙語曰 「 利令智昏 」,  平原君貪馮亭邪說, 使趙陷長平兵四十餘萬眾, 邯鄲幾亡.
 (태사공왈:평원군, 편편탁세지가공자야, 연미도대체.  

 비어왈 「 리령지혼 」,  평원군탐풍정사세, 사조함장평병사십여만중, 한단기망.


 ['태사공'은 말한다.:

 '평원군'은 새가 하늘 높이 날듯 혼탁한 세상에서 벗어나 재능과 지혜가 뛰어난 훌륭한 공자였다. 

 ​그러나 그는 세상을 다스리는 커다란 도리를 보지 못했다.     

 항간에 떠도는 속담중에 '이익에 사로잡히면 지혜가 흐려진다 '는 말이 있듯이,
 '평원군'은 '풍정'의 사악한 유세를 좋아하여 조나라로 하여금 "장평"에서 40여만 명의 군사를 산 채로 매장해

 죽게 하였고, 이어서 조나라의 도성 "한단"을 거의 멸망시킬 뻔하였다.  

 

 虞卿料事揣情, 為趙畫策, 何其工也! 及不忍魏齊, 卒困於大梁, 庸夫且知其不可, 況賢人乎?   

 然虞卿非窮愁, 亦不能著書以自見於後世云.
 (우경료사췌정, 위조화책, 하기공야! 급불인위제, 졸곤어대량, 용부차지기불가, 황현인호?   

 연우경비궁수, 역불능저서이자견어후세운.)


 ['우경'은 일의 사태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사정을 잘 살핌으로서, 조나라를 위해 꾸민 그의 책략이 어찌 그리

 주도면밀했는가 !  그러나 '위제'의 불행을 차마 볼 수 없어 마침내는 "대량"에서 곤궁한 삶을 살았으니

 그것은 평범한 사람도 그것이 옳지 않음을 알 수 있었는데, 하물며 '우경'과 같은 현명한 사람이 몰랐겠는가 ?

 그러나 '우경'에게 고통과 근심이 없었다면 책으로 저술한 자기의 생각을 후세에 드러낼 수 없었을 것이다.]

【 각주 】

1) 평원군은 조무령왕(趙武靈王)의 막내들이고 효문왕의 동생이다.

2) 동무성(東武城) : 지금의 하북성 청하현(淸河縣)으로 평원군 조승의 봉지다.

3) 파륭병(罷癃病) : 허리가 굽어서 몸이 앞으로 구부러진 병.

4) 언영지전(鄢郢之戰) : 기원전 279년 진나라 소양왕의 명을 받은 백기는 무관(武關)을 통해 나와

    초나라의 별도(別都)인 언(鄢)을 주위의 강물을 끌어 들여 십여 만의 수비군과 함께 언성을 수장시켰다.

    ​이어서 계속 남진하여 남전(藍田)과 초나라의 도성이었던 영성(郢城)을 함락시켰다.

   ​ 백기는 서진하여초나라 선대의 왕릉이 있던 이릉(伊陵)을 불태우고 다시 동진하여 경릉(竟陵), 안릉(安陵),

   ​ 서릉(西陵)을 점령하고그 곳에 남군(南郡)을 설치하고 진나라의 군현으로 삼았다.

   ​ 영은 초문왕이 기원전 670년 경 천도한 이래 오자서가 이끌던 오나라 군사들에게 의해 점령당한 것 외에는

   ​ 한 번도 400년 가까이 외군의 침입을 받지 않았던 난공불락의 요새였었다.

    이로써 초나라는 동쪽의 진현(陳縣)으로 옮겨야만 했고 이후로는 진나라와의 패권 다툼에서 탈락하게 되었다. 

5) 삽혈(歃血) : 고대 중국의 회맹을 하고 맹세하는데는 신분에 따라 각각 다른 희생물을 사용했다. 

    천자는 말을, 제후는 수퇘지나 개를, 대부들은 닭을 잡아 그 피로 맹세했다.  

6) 전사(傳舍) : 고대에 있어서 관에서 제공하여 왕래하는 행인들이 머물게 했던 여사(旅舍)를 말한다.

7) 종경(鐘磬) : 북채를 말하는 것으로 종(鍾)은 동으로, 경은 옥으로 만든 북채이다.

8) 이후(李侯) : 이(李)는 지금의 하남성 온현(溫縣) 서남의 고을이다.

9) 전국책과 내용이 다르다. 사기(史記)에는 「今信陵郡存邯鄲而請封, 是親戚受城而國人計功也. 此甚不可」로

    되어 있으나 전국책(戰國策)에는 「夫君封以東武城, 不讓無功, 佩趙國相印, 不辭無能. 一解國患, 欲求益地,

    ​是親戚受封而國人計功也, 爲君計者 不如勿受便 (도대체 군께서는 동무성에도 봉해져도 공이 없다고

    사양하지도 않았고, 조나라의 재상의 인장을 주어도 능력이 없다고 고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일단 나라의 우환이 풀리자 봉지를 더해 달라고 청하는 것은 봉읍은 친척의 신분으로 받고

    공(功)은 조나라 국인(國人)의 신분으로 꾀하는 것입니다. 군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받지 마시기 바랍니다.」  

10) 우권(右券) : 고대 중국에서 계약을 할 때 계약서를 둘로 나누어 채무자와 채권자가 각각 보관했다. 

      채권자는 계약서의 오른쪽이나 왼쪽 중 한 쪽을 가지고 채무자에게 돈의 변제를 요구했다.  

11) 견백지변(堅白之辯) : 전국시대 때 공손룡이 주장한 궤변이다. 즉, 눈으로 돌을 보면 희다는 것을 알 수 있으나 

    견고하다는 것은 알 수 없다. 또 손으로 돌을 만져보면 견고하다는 것은 알 수 있으나 희다는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견고한 흰 돌’이라는 것은 동시에 성립될 수 없는 개념이라는 논법을 사용하여,

      ​옳은 것을 그른 것이라고 하고 같은 것을 다르다고 말하는 변설을 말하는 것이다.  

12) 추연(鄒衍)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240년에 죽었다.전국 때 직하학사(稷下學士) 중의 한 사람.

   ​   음양가의 대표적인 학자로써 추자(鄒子)라 한다. 제나라 출신으로 위혜왕(魏惠王)이 어진 선비들을 세상에서 

     ​ 널리 구할 때 위(魏)나라로 가자 위혜왕이 도성 밖 교외에까지 나가 맞이하고 갈석궁이라는 집을 지어

     ​ 그곳에 살게 하고 스승으로 모셨다. 후에 제선왕이 추연을 제나라로 초빙하여 직하(稷下)에 머물게 하고 

      ​상대부의 봉록을 내리고 신선(神仙)의 일에 대해 연구하도록 시켰다.

      연소왕(燕昭王)이 즉위하자 그는 또다시 제나라에서 연나라로 들어가 소왕(昭王)의 신임을 받았다.

      만년에 제나라를 위해 조나라에 사신으로 가자 조나라의 평원군(平原君)이 그를 접대하면서

      감히 그와 마주 대하며 앉지 못했다.

      ​그의 학설은 오행상생(五行相生)을 근거로 하여 저술한 <오덕종시(五德終始)> 56편이 있었으나

     ​ 모두 일실되어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13) 지도(至道) : 지극한 도의 뜻으로 추연이 음양오행설에 입각하여 주장한 설이다.

14) 풍정(馮亭)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전 262년에 죽은 전국시대 한(韓)나라의 상당군 태수다.

     ​ 주난왕(周赧王) 52년, 전 263년, 진나라가 한나라의 상당군을 공격하여 본국으로 통하는 태행산 길을

      끊었기 때문에 스스로 상당군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한 풍정은 성을 들어 조나라에 항복했다.

      ​조나라는 그를 화양군(華陽君)에 봉했다.

      다음 해인 기원전 262년, 조괄과 함께 장평에서 진나라와 벌어진 싸움에서 전사했다.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