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張儀列傳

第十. 張儀列傳(장의열전)

덕치/이두진 2021. 7. 20. 18:59

           史記 列傳

 

   第十.  張儀列傳(장의열전)

 張儀者, 魏人也.  始嘗與蘇秦俱事鬼谷先生, 學術, 蘇秦自以不及張儀.  張儀已學而游說諸侯. 

 嘗從楚相飮, 已而楚相亡璧, 門下意張儀曰 : 「 儀貧無行, 必此盜相君之璧. 」
 (장의자, 위인야.  시상여소진구사귀곡선생, 학술, 소진자이불급장의.  장의이학이유세제후. 

 상종초상음, 이이초상망벽, 문하의장의왈 : 「 의빈무행, 필차도상군지벽. 」)


 ['장의'는 위나라 사람이다.  일찍이 '소진'과 함께 '귀곡'선생을 모시고 학술을 배웠다. 

 '소진'은 스스로 자기의 재주가 '장의'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장의'는 학업을 마치고 제후들을 찾아 다니며 유세하였다.  한 번은 초나라 재상을 따라 연회에 참석했는데

 도중에 재상이 갖고 있던 구슬옥을 도둑맞은 일이 발생했다.
 재상의 문하인들이 장의를 의심하며 말하기를 : “ 장의는 가난하고 행실이 좋지 않으니,

 틀림없이 이 자가 우리 재상의 구슬옥을 훔쳤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

 

 共執張儀, 掠笞數百, 不服, 醳之.  其妻曰 : 「 嘻 ! 子毋讀書游說, 安得此辱乎 ? 」 

 張儀謂其妻曰 : 「 視吾舌尙在不 ? 」  其妻笑曰 : 「 舌在也. 」  儀曰 : 「 足矣. 」
 (공집장의, 약태수백, 불복, 역지.  기처왈 : 「 희 ! 자무독서유세, 안득차욕호 ? 」 

 장의위기처왈 : 「 시오설상재불 ? 」  기처소왈 : 「 설재야. 」  의왈 : 「 족의. 」)


 [그래서 문하인들 모두가 '장의'를 붙잡아 수백 번 채찍질을 하였으나, '장의'가 한사코 불복하자 결국 풀어 주었다.

 그의 처가 말하기를 : “ 아, 당신이 책만 읽고 유세를 하지 않았더라면 어찌 이런 치욕을 당했겠습니까 ? ”하자,
 '장의'가 그 처에게 말하기를 : “ 내 혀가 아직 붙어 있는지 한 번 보시오 ! ”라고 하였다.
 그 처가 웃으며 말하기를 : “ 아직 혀는 붙어 있어요. ”라고 하자.  

 '장의'가 말하기를 : “ 그렇다면 됐소. ”라고 하였다.] 

   

 蘇秦已說趙王而得相約從親, 然恐秦之攻諸侯, 敗約後負, 念莫可使用於秦者,

 乃使人微感張儀曰 : 「 子始與蘇秦善, 今秦已當路, 子何不往游, 以求通子之願 ? 」
 (소진이설조왕이득상약종친, 연공진지공제후, 패약후부, 염막가사용어진자,

 내사인미감장의왈 : 「 자시여소진선, 금진이당로, 자하불왕유, 이구통자지원 ? 」)


 [그때 소진은 이미 조나라 왕을 설득하여 합종의 맹약을 맺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진나라가 제후국들을 공격한다면 합종이 깨지고 제후들이 배반하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진나라에 보내 등용시킬 만한 사람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이에 '소진'은 몰래 사람을 시켜 '장의'를 자극시킬 목적으로 말하기를 :
 “그대는 처음부터 '소진'과 사이가 좋았으며, 지금 '소진'은 조나라에 들어가 조왕에 의해 중용되어 재상의 

 자리에 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조나라에 가서 그를 통하여 원하는 바를 얻지 않는 것이오 ? "라고 하였다.]

 

 張儀於是之趙, 上謁求見蘇秦.  蘇秦乃誡門下人不爲通, 又使不得去者數日. 

 已而見之, 坐之堂下, 賜僕妾之食.
 (장의어시지조, 상알구견소진.  소진내계문하인불위통, 우사불득거자수일. 

 이이견지, 좌지당하, 사복첩지식.)


 [이에 '장의'는 조나라로 가서 '소진'에게 명함을 올리고 만나보기를 청했다. 

 '소진'은 문하인들에게 일러서 '장의'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지시하고, 또 며칠 동안 떠나지 못하게 붙잡아 두도록

 했다.  이렇게 한 후에 '소진'은 '장의'를 불러 접견하면서 그를 당하에 앉게 하고 종들이 먹는 음식을 주었다.]

 

 因而數讓之曰 : 「 以子之材能, 乃自令困辱至此.  吾寧不能言而富貴子, 子不足收也. 」 謝去之.
 (인이수양지왈 :  「 이자지재능, 내자령곤욕지차.  오녕불능언이부귀자, 자부족수야. 」 사거지.)


 [그리고는 '장의'에게 그 잘못을 하나하나 들어가며 꾸짖기를 : "자네같이 훌륭한 재능을 지닌 사람이 어쩌다가

 스스로를 이처럼 곤궁에 빠뜨려 수모를 겪고 있는 것인가 ?
 내가 자네를 부귀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자네를 거두어 쓸 수 없을 것 같네 !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소진"은 "장의"를 떠나게 했다.]

 

 張儀之來也, 自以爲故人, 求益, 反見辱, 怒, 念諸侯莫可事, 獨秦能苦趙, 乃遂入秦.
 (장의지래야, 자이위고인, 구익, 반견욕, 노,  념제후막가사, 독진능고조, 내수입진.)


 ['장의'가 올 때에는 '소진'이 옛 친구라고 생각하여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는데 오히려 모욕을 당했으니

 치밀어오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제후들 중에 섬길만한 자가 없었으므로,

 오직 진나라 만이 조나라를 괴롭힐 수 있겠다고 여겨 그 즉시 진나라로 들어갔다.]

 

 蘇秦已而告其舍人曰 : 「張儀天下賢士, 吾殆弗如也. 今吾幸先用, 而能用秦柄者, 獨張儀可耳.

 然貧, 無因以進. 吾恐其樂小利而不遂, 故召辱之, 以激其意. 子爲我陰奉之.」
 (소진이이고기사인왈 : 「장의천하현사, 오태불여야.  금오행선용, 이능용진병자, 독장의가이. 

 연빈, 무인이진.  오공기락소리이불수, 고소욕지, 이격기의.  자위아음봉지. 」)


 [소진은 그전에 시종에게 일러두기를 : “ '장의'는 천하의 보기 드문 현명한 선비며, 나는 그에게 미치지 못할 

 정도다. 지금 내가 다행히 먼저 등용되었지만, 능히 진나라의 권력을 잡고 좌우할 사람은 오직 '장의'뿐이다. 

 그러나 그는 가난한 사람이라 아직까지 등용될 기회를 얻지 못했다. 

 나는 그가 작은 이익에 만족하여 큰 것을 이루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일부러 그를 불러다가 욕을 보임으로써

 그를 격앙케 하였다.  그대는 나를 위하여 몰래 그를 보살펴 주기 바란다. ”라고 하였다.]

 

 乃言趙王, 發金幣車馬, 使人微隨張儀, 與同宿舍, 稍稍近就之,

 奉以車馬金錢, 所欲用, 爲取給, 而弗告.
 (내언조왕, 발금폐거마, 사인미수장의, 여동숙사, 초초근취지,

 봉이거마금전, 소욕용, 위치급, 이불고.)


 [이에 '소진'은 조나라 왕에게 말해서 금전과 비단을 실은 거마를 마련해서 사람을 시켜 '장의'를 따르게 하고,

 함께 숙박을 하면서 서서히 접근하도록 시켰다. 시종은 거마와 금전을 '장의'에게 제공하고,

 그가 쓰고 싶어 하는 대로 쓰게 해주되, 그 비용이 '소진'에게서 나왔음을 알리지 못하게 했다.]

 

 張儀遂得以見秦惠王.  惠王以爲客卿, 與謀伐諸侯.  蘇秦之舍人乃辭去. 

 張儀曰 : 「 賴子得顯, 方且報德, 何故去也 ? 」
 (장의수득이현진혜왕.  혜왕이위객경, 여모벌제후.  소진지사인내사거. 

 장의왈 : 「 뢰자득현, 방차보덕, 하고거야 ? 」)


 ['장의'는 드디어 진나라 '혜왕'을 뵐 수 있게 되었다. 

 혜왕이 그를 객경으로 삼아, 제후들을 정벌 할 계획을 세웠다.

 '소진'의 시종이 조나라로 돌아가려고 작별인사를 하자.  

 '장의'가 말하기를 : “ 내가 그대의 덕택으로 출세하여 이제 그 은혜에 보답하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돌아간다고 하시오 ? "라고 하자.]

 

 舍人曰 : 「 臣非知君, 知君乃蘇君.  蘇君憂秦伐趙敗從約, 以爲非君莫能得秦柄, 故感怒君,

 使臣陰奉給君資, 盡蘇君之計謀.  今君已用, 請歸報. 」
 (사인왈 : 「 신비지군, 지군내소군.  소군우진벌조패종약, 이위비군막능득진병, 고감노군,

 사신음봉급군자, 진소군지계모.  금군이용, 청귀보. 」)


 [시종이 대답하기를 : “ 선생님의 지혜를 알아본 사람은 제가 아니라, '소진' 어른이십니다. 

 '소진' 어른께서는 진나라가 조나라를 정벌하면 합종책이 깨질 것을 염려하여, 

 그런 사태를 막을 있는 유일한 방법은 누군가가 진나라의 권력을 잡아 방지해 주어야 하는데, 

 선생님이 아니면 진나라의 권력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래서 선생을 격분시켜 분노케 하고 저를 시켜 몰래 선생님께서 필요한 경비를 모두 대주게 하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은 소진 어른의 계책입니다. 지금 선생께서 이미 진나라에 중용되셨으니 돌아가서

 '소진' 어른께 보고하도록 해 주십시오. ” 라고 하였다.]

 

 張儀曰 : 「 嗟乎, 此在吾術中而不悟, 吾不及蘇君明矣 !  吾又新用, 安能謀趙乎 ? 

 爲吾謝蘇君, 蘇君之時, 儀何敢言.  且蘇君在, 儀寧渠能乎 ! 」
 (장의왈 : 「 차호, 차재오술중이불오, 오불급소군명의 !  오우신용, 안능모조호 ? 

 위오사소군, 소군지시, 의하감언.  차소군재, 의녕거능호 ! 」)


 ['장의'가 말하기를 : “ 아 !  이 모두 내가 '소진'의 술책에 놀아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으니, 

 나는 '소진'의 지혜에 미치지 못함이 분명하구나 ! 내가 또 그의 도움에 의지하여 새롭게 진나라에 중용되었는데,

 어찌 조나라를 도모하겠소 ? 그대는 나를 대신해서 '소진'에게 사례하고, '소진'의 시대에 이 '장의'가 어찌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소.  또 '소진'이 살아 있는데 이 '장의'가 무엇을 능히 할 수 있겠소 ! ”라고 하였다.]


 張儀旣相秦, 爲文檄告楚相曰 : 「 始吾從若飮, 我不盜而璧, 若笞我. 

 若善守汝國, 我顧且盜而城 ! 」
 (장의기상진, 위문격고초상왈 : 「 시오종약음, 아불도이벽, 약태아.  약선수여국, 아고차도이성 ! 」)


 ['장의'는 이윽고 진나라의 재상이 되자, 초나라 재상에게 격문을 지어 알리기를 : “ 일찍이 내가 그대를 따라

 연회에 참석했다가, 내가 구슬옥을 훔치지도 않았는데, 그대는 나에게 채찍질을 하였소. 

 그대는 나라를 잘 지키시오, 내가 그대의 성을 빼앗으려고 생각하고 있으니 ! ”라고 하였다.]

 

 苴·蜀相攻擊, 各來告急於秦.  秦惠王欲發兵以伐蜀, 以爲道險狹難至, 而韓又來侵秦,

 秦惠王欲先伐韓, 後伐蜀, 恐不利, 欲先伐蜀, 恐韓襲秦之敝, 猶豫未能決.
 (저·촉상공격, 각래고급어진.  진혜왕욕발병이벌촉, 이위도험협난지, 이한우래침진,

 진혜왕욕선벌한, 후벌촉, 공불리, 욕선벌촉, 공한습진이폐, 유예미능결.)


 [이때에 저나라와 촉나라가 서로 싸우다가 각기 위급함을 진나라에 알려왔다. 

 진나라 '혜왕'은 군대를 출동시켜 촉나라를 정벌하려고 했으나, 촉나라로 가는 길이 험하고 좁아서 가기 어렵고, 

 또 한나라가 진나라를 침범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진나라 혜왕은 먼저 한나라를 공격한 뒤에

 촉나라를 정벌하려고 했으나, 이번에는 한나라와의 싸움에서 패하지나 않을까 걱정했다. 

 먼저 촉나라를 치자니 한나라가 지친 틈을 이용해 공격할까 두려워 주저하며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司馬錯與張儀爭論於惠王之前, 司馬錯欲伐蜀, 張儀曰 :「 不如伐韓. 」  王曰 :「 請聞其說. 」
 (사마조여장의쟁논어혜왕지전, 사마조욕벌초, 장의왈 : 「 불여벌한. 」  왕왈 : 「 청문기설. 」)


 [어느 쪽을 먼저 공격해야 하는지를 놓고 '사마조'와 '장의'가 '혜왕' 앞에서 논쟁을 벌였다. 

 '사마조'가 촉을 먼저 정벌해야한다고 주장하였다.
 장의가 말하기를 : " 촉나라를 정벌하는 것이 한나라를 정벌하는 것보다 못합니다. ”라고 하자. 

 진'혜왕'이 말하기를 : " 그 설명을 들어 봅시다. "라고 하였다.]

 

 儀曰 : 「 親魏善楚, 下兵三川, 塞什谷之口, 當屯留之道, 魏絶南陽, 楚臨南鄭, 秦攻新城·宜陽,

 以臨二周之郊, 誅周王之罪, 侵楚·魏之地.  周自知不能救, 九鼎寶器必.

 據九鼎, 案圖籍, 挾天子以令於天下, 天下莫敢不聽, 此王業也. 今夫蜀, 西僻之國而戎翟之倫也,

 敝兵勞衆不足以成名, 得其地不足以爲利.  臣聞爭名者於朝, 爭利者於市. 

 今三川·周室, 天下之朝市也, 而王不爭焉, 顧爭於戎翟, 去王業遠矣. 」

 (의왈 : 「 친위선초, 하병삼천, 색십곡지구, 당둔류지도, 위절남양, 초임남정, 진공신성·의양,

 이임이주지교, 주주왕지죄, 침초·위지지.  주자지불능구, 구정보기필.

 ​거구정, 안도적, 협천자이령어천하, 천하막감불청, 차왕업야. 금부촉, 서벽지국이융적지륜야,

 폐병로중불족이성명, 득기지부족이위리.  신문쟁명자어조, 쟁리자어시. 

 금삼천·주실, 천하지조시야, 이왕불쟁언, 고쟁어융적, 거왕업원의.」)


 ['장의'가 말하기를 : “ 위나라, 초나라와 화친을 맺은 후에 군대를 한나라 "삼천"에 내려 보내 "십곡"의 입구를 

 막고 둔류의 길을 차단하고, 위나라를 시켜 "남양"을 끊게 하고, 초나라를 시켜 "남정"으로 진격하게 하면서, 

 진나라는 그 사이에 "신성"과 "의양"을 공격하고, 동주와 서주의 외곽을 지키면서, 주왕의 잘못을 벌하고,

 초나라와 위나라의 땅을 침입합니다. 주나라는 스스로 방어할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천자를 상징하는 보물인 

 구정을 반드시 우리 진나라에 내놓을 것입니다. 구정의 권위와 주나라 강역의 지도 및 호적을 조사하여 

 천자를 빌미로 천하에 호령을 내린다면, 천하에 감히 따르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며 그것이 바로 왕업입니다.

 그러나 지금 촉나라는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나라로서 오랑캐인 융적의 한 무리입니다. 

 따라서 촉나라를 정벌한다 해도 군사들을 피로하게 하고 백성들을 수로롭게 하는 것일뿐,

 ​그 어떠한 명분도 얻기 어렵고 그 땅을 얻는다고 해도 이로울 게 없습니다.

 ​신은 듣기에 명성은 조정에서 다투고 이익은 시장에서 다툰다고 했습니다. 

 지금 "삼천" 지방과 주나라 왕실의 땅은, 천하의 조정이기도 하며 시장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이것을 상대로 다투지 않고 도리어 오랑캐의 땅을 다투려고 하시니,

 왕업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


 司馬錯曰 : 「 不然.  臣聞之, 欲富國者務廣其地, 欲彊兵者務富其民, 欲王者務博其德,

 三資者備而王隨之矣.  今王地小民貧, 故臣願先從事於易.  夫蜀, 西僻之國也, 而戎翟之長也,

 有桀紂之亂.  以秦攻之, 譬如使豺狼逐羣羊.  得其地足以廣國, 取其財足以富民繕兵,

 不傷衆而彼已服焉. 拔一國而天下不以爲暴, 利盡西海而天下不以爲貪, 是我一擧而名實附也,

 而又有禁暴止亂之名.

 (사마조왈 : “ 불연.  신문지, 욕부국자무광기지, 욕강병자무부기민, 욕왕자무박기덕,

 삼자자비이왕수지의.  금왕지소민빈, 고신원선종사어이. 부촉, 서벽지국야, 이융적지장야,

 유걸주지란.  이진공지, 비여사시랑축군양. 득기지족이광국, 취기재족이부민선병,

 불상중이피이복언.  발일국이천하불이위폭, 리진서해이천하불이위탐, 시아일거이명실부야,

 이우유금폭지란지명.


 [이에 '사마조'가 말하기를 : "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듣기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고 하는 자는

 ​그 영토를 넓히는 일에 힘쓰고, 그 군대를 강병으로 만들려고 하는 자는 그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는 데 힘쓰며,

 왕이 되려고 하는 자는 그 덕을 넓히기에 힘을 써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세 조건이 갖추어지면 왕업은 자연히 따라오는 것입니다. 지금 대왕의 땅은 작고 백성들은 가난합니다.

 그런 까닭에 신은 먼저 쉬운 일부터 하시기를 원합니다. 무릇 촉이라는 나라는 으로 멀리 떨어진 나라로서

 융적의 우두머리 나라입니다. 그 군주는 하나라 '걸왕'과 은나라 '주왕' 같은 폭군으로 난행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우리 진나라가 공격한다면 그것은 마치 승냥이나 이리를 시켜 순한 양떼를 쫓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결과 촉 땅을 얻게 된다면 나라를 넓힐 수도 있으며,  재물을 취하면 백성을 부유하게 할 수 있고 

 병기를 수리하여, 우리 백성들을 상하게 하지 않고도 그들을 쉽게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한 나라를 점령했다고 천하는 우리를 난폭하다고 하지 않을 것이며, 촉 땅의 이익를 모두 차지한다고 해서

 천하는 우리보고 탐욕스럽다는 비난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한번에  명분과 실리를 얻는 바가 

 될 것이고, 또한 촉나라의 폭정과 혼란을 멈추게 하는 명분까지 얻게 될 것입니다.

 

 今攻韓, 劫天子, 惡名也, 而未必利也, 又有不義之名, 而攻天下所不欲, 危矣. 

 臣請謁其故 : 周, 天下之宗室也 ; 齊, 韓之與國也. 周自知失九鼎, 韓自知亡三川, 將二國幷力合謀,

 以因乎齊趙而求解乎楚·魏, 以鼎與楚, 以地與魏, 王弗能止也.  此臣之所謂危也.  不如伐蜀完. 」

 (금공한, 겁천자, 악명야, 이미필리야, 우유불의지명, 이공천하소불욕, 위의. 

 신청알기고 : 주, 천하지종실야 ; 제, 한지여국야. 주자지실구정, 한자지망삼천, 장이국병력합모,

 이인호제이구해호초·위, 이정여초, 이지여위, 왕불능지야.  차신지소위위야.  불여벌촉완. 」)


 [그런데 지금 우리가 한나라를 공격하고 천자를 위협하는 일은 나쁜 평판을 얻게 되므로, 

 반드시 이익이라고 할 수도 없으며, 또 정의롭지 못하다는 평판을 남기면서 까지 천하가 원하고 있지 않은 

 주나라를 공격하는 것는 위험합니다. 신이 그 까닭을 아뢰기를 청합니다. 주나라는 천하의 종실이며 ; 

 제, 한나라는 주나라의 동맹국입니다. 주나라가 구정(천자의 보물)을 잃게 됨을 알고, 

 한나라가 "삼천"의 땅을 잃게 되는 일을 각자가 스스로 알게 되면, 장차 두 나라가 힘을 합치고 계략을 함께 하여

 제나라와 조나라를 통해서 초나라와 위나라에 구원을 청할 것입니다.

 그래서 주나라는 구정을 초나라에 주고 그 땅은 위나라에 준다고 해도, 대왕께서는 결코 이것을 막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신은 한나라를 공격하는 행위는 위험하다고 말씀드리는 까닭입니다.

 그리하여 촉나라를 정벌하는 방책보다 더 나은 방법은 없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惠王曰 :「善,  寡人請聽子.」 卒起兵伐蜀, 十月, 取之, 遂定蜀, 貶蜀王更號爲侯, 

 而使陳莊相蜀. 蜀旣屬秦, 秦以益彊, 富厚, 輕諸侯.

 (혜왕왈 : 「 선,  과인청청자. 」  졸기병벌촉, 십월, 취지, 수정촉, 폄촉왕갱호위후, 

 이사진장상촉. 촉기속진, 진이익강, 부후, 경제후.)


 [진'혜왕'이 말하기를 : " 좋소 !  과인은 그대의 말을 따르겠소. "라고 하고, 

 ​마침내 진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촉나라를 정벌하여 그해 10월에 촉나라를 얻었다.
 드디어 촉나라를 평정한 진나라는 촉왕의 지위를 촉후로 낮추고 '진장'을 촉나라로 보내 재상으로 삼았다. 

 이에 촉나라가 진나라의 속국이 되자, 진나라는 더욱 강해지고 매우 부유해져 제후들을 가벼이 보게 되었다.]

 

 秦惠王十年, 使公子華與張儀圍蒲陽, 降之.  儀因言秦復與魏, 而使公子繇質於魏. 

 儀因說魏王  曰 : 「 秦王之遇魏甚厚, 魏不可以無禮. 」
 (진혜왕십년, 사공자화여장의위포양, 강지.  의인언진복여위, 이사공자요질어위. 

 의인세위왕왈 : 「 진왕지우위심후, 위불가이무례. 」)

 
 [진나라 혜왕 10년에 공자 '화'와 '장의'로 하여금 위나라 "포양"을 포위하여 항복을 받았다. 

 이때에 '장의'가 진왕에게 말해서 위나라에 "포양"을 돌려주고, 공자 '요'를 인질로 보내자고 했다.

 '장의'가 위왕에게 유세하기를 : “ 진왕의 위나라에 대한 대우가 매우 두텁습니다.

 위나라에서도 예가 없어서는 안 되겠지요. ”라고 하였다.]

 

 魏因入上郡少梁, 謝秦惠王.  惠王乃以張儀爲相, 更名少梁曰夏陽.  儀相秦四歲, 立惠王爲王. 

 居一歲, 爲秦將, 取陜.  築上郡塞.
 (위인입상군소량, 사진혜왕.  혜왕내이장의위상, 경명소량왈하양.  의상진사세, 입혜왕위왕. 

 거일세, 위진장, 취섬.  축상군새.)


 [그래서 위왕은 "상군"과 "소량"을 진나라에 바쳐 진'혜왕'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 

 위'혜왕'은 '장의'를 재상으로 삼고 "소량"의 지명을 "하양"으로 바꾸었다.
 '장의'는 진나라 재상이 된지 4년 만에 공이라고 일컫던 '혜왕'을 이때부터 왕이라고 하였다.
 다시 1년 후에, '장의'는 진나라 장수가 되어 위나라를 공격하여 "섬"을 빼앗고 "상군"에 요새를 쌓았다.]

 

 其後二年, 使與齊·楚之相會齧桑東, 還而免相, 相魏以爲秦, 欲令魏先事秦而諸侯效之. 

 魏王不肯聽儀.  秦王怒, 伐取魏之曲沃·平周, 復陰厚張儀益甚.
 (기후이년, 사여제·초지상회설상동, 환이면상, 상위이위진, 욕령위선사진이제후효지. 

 위왕불긍청의.  진왕노, 벌취위지곡옥·평주, 복음후장의익심.)


 [다시 2년 뒤에 사신이 되어 제나라와 초나라의 재상과 설상(교상)의 동쪽에서 회합을 하고 돌아와서

 진나라 재상을 그만두고, 위나라의 재상이 되어, 진나라를 위해서 일했다. 

 우선 위나라로 하여금 진나라를 섬기게 하여 제후들이 이를 따르게 하려 했으나,

 위나라 왕이 '장의'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진나라 왕이 노하여 위나라를 쳐서 "곡옥"과 "평주"를 점령하고,

 더욱 은밀하게 장의를 후대함이 갈수록 심해졌다.]

 

 張儀慙, 無以歸報.  留魏四歲而魏襄王卒, 哀王立.  張儀復說哀王, 哀王不聽. 

 ​於是張儀陰令秦伐魏.  魏與秦戰敗.  明年, 齊又來敗魏於觀津.

 ​秦復欲攻魏, 先敗韓申差軍, 斬首八萬, 諸侯震恐.  
 (장의참, 무이귀보.  류위사세이위양왕졸, 애왕입.  장의복설애왕, 애왕불청. 

 어시장의음령진벌위.  위여진전패.  명년, 제우래패위어관진.

 진부욕공위, 선패한신차군, 참수팔만, 제후진공.)


 [이에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가 보고할 만한 공적이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장의'는 어쩌는 수 없이 위나라에 머물기 4년만에 위나라 '양왕'이 죽고 '애왕'이 즉위했다.  

 '장의'가 다시 '애왕'에게 진나라를 섬기도록 설득했으나 '애왕'도 역시 듣지 않았다. 

 그래서 '장의'는 몰래 진나라에 연락하여 위나라를 공격하도록 했다. 위나라는 진나라와 싸워 패했다. 

 다음 해에 또 제나라가 침범하여 "관진"에서 위군을 크게 무찔렀다. 이에 진나라가 다시 위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먼저 한나라의 장수 '신차'의 군대를 대파하고, 그 군사 8만 명을 베어 버리자 제후들은 떨며 겁을 내었다.]

 

而張儀復說魏王曰 :「 魏地方不至千里, 卒不過三十萬.  地四平, 諸侯四通輻湊, 無名山大川之限.

從鄭至梁二百餘里, 車馳人走, 不待力而至. 梁南與楚境, 西與韓境, 北與趙境, 東與齊境, 卒戍四方,

守亭鄣者不下十萬.  梁之地勢, 固戰場也.  梁南與楚而不與齊, 則齊攻其東 ; 東與齊而不與趙,

則趙攻其北 ; 不合於韓, 則韓攻其西 ; 不親於楚, 則楚攻其南 : 此所謂四分五裂之道也.

(이장의부세위왕왈 : 「 위지방불지천리, 졸불과삼십만.  지사평, 제후사통부주, 무명산대천지한.

 종정지량이백여리, 거치인주, 불대력이지.  량남여초경, 서여한경, 북여조경, 동여제경, 졸수사방,

 수정장자불하십만.  량지지세, 고전장야. 량남여초이불여제, 즉제공기동 ; 동여제이불여조,

 즉조공기북 ; 불합어한, 즉한공기서 ; 불친어초, 즉초공기남 : 차소위사분오열지도야.

 ['장의'는 다시 위왕에게 유세하기를 :  " 위나라의 땅은 사방 천리가 못 되고, 그 군사는 30만에 불과합니다.

 ​지세는 사방이 평탄해서 제후들이 사면에서 모여들 수 있으며, 명산대천으로 경계를 이룬 곳도 없습니다. 

 ​한나라의 도성 "신정"에서 위나라의 "대량"까지 2백여 리 길은 수레나 사람이 달려도 힘들이지 않고 수월하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양(위)나라는 남쪽으로는 초나라, 서쪽으로는 한나라, 북쪽으로 조나라, 동쪽으로는 제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위나라 군사들은 사방을 지켜야 하지만, 변방의 보루를 지키는 군사들은 10만이 채 안됩니다. 

 위나라의 지세는 옛부터 싸음터가 되기에 알맞습니다. 우리 양(위)나라가 남쪽으로 초나라와 동맹하고

 제나라와 동맹하지 않으면 제나라가 그 동쪽을 칠 것이고 ;

 동쪽으로 제나라와 동맹하고 조나라와 동맹하지 않으면 조나라가 그 북쪽을 공격할 것이며 ;

 한나라와 연합하지 않으면 한나라가 그 서쪽을 공격할 것이며 ; 초나라와 친하지 않으면 

 초나라가 그 남쪽을 공격할 것입니다 : 이것이야말로 소위 사분오열의 형세라는 것입니다.

 

 且夫諸侯之爲從者, 將以安社稷尊主彊兵顯名也. 今從者一天下, 約爲昆弟, 刑白馬以盟洹水之上,

 以相堅也.  而親昆弟同父母, 尙有爭錢財, 而欲恃詐僞反覆蘇秦之餘謀, 其不可成亦明矣. 

 大王不事秦, 秦下兵攻河外, 據卷衍燕酸棗, 劫衛取陽晉, 則趙不南, 趙不南而梁不北,

 梁不北則從道絶, 從道絶, 則大王之國欲毋危不可得也.

(차부제후지위종자, 장이안사직존주강병현명야.  금종자일천하, 약위곤제, 형백마이맹원수지상,

 상견야. 이친곤제동부모, 상유쟁전재, 이욕시사위반복소진지여모, 기불가성역명의.

 대왕불사진, 진하병공하외, 거권연산조, 겁위취양진, 즉조불남, 조불남이량불북,

 량불북즉종도절, 종도절, 즉대왕지국욕무위불가득야.


 [또한 제후들이 합종을 추진하는 것은 장차 국가를 편안하게 하고 군주를 존엄하게 하며 군대를 강하게 하여

 명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 합종을 주장하는 자는 천하의 제후들이 하나로 뭉쳐 천하를 통일하여

 의를 맺어 백마를 희생으로 잡아 "원수"에서 회맹을 행하여 서로 굳게 결속하려 합니다.

 ​그러나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형제 사이에도 금전과 재물을 서로 다툴 때가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과 속임수를 반복한 '소진'의 계책을 믿으려고 하시니 그것이 성공할 수 없음은 

 분명합니다. 대왕께서 맹약에 따라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출병하여 황하 외곽을 공격하고,

 ​우리의 "권", "연", "산조"를 근거지로 하여, 위(衛)나라를 위협하면서 "양진"을 취한다면, 

 조나라는 남쪽으로 내려와서 우리 양(魏)나라를 도울 수 없게 되고, 

 조나라가 남쪽으로 내려오지 못하면 우리 양(魏)나라도 북상하지 못합니다. 

 양나라가 북상하지 못하면 합종의 길을 끊어지고 합종의 길이 끊어지면,
 대왕의 위나라는 아무리 위태로움이 없기를 바란다고 해도 이루어질 수 없을 것입니다.

 

 秦折韓而攻梁, 韓怯於秦, 秦·韓爲一, 梁之亡可立而須也.  此臣之所爲大王患也. 

 爲大王計, 莫如事秦.  事秦則楚·韓必不敢動 ; 無楚·韓之患, 則大王高枕而臥, 國必無憂矣. 

 且夫秦之所欲弱者莫如楚, 而能弱楚者莫如梁.

 (진절한이공량, 한겁어진, 진·한위일, 량지망가입이수야. 

 차신지소위대왕환야.  위대왕계, 막여사진.


 [진나라가 한나라를 꺾고 양(위)나라를 공격한다면, 한나라는 진나라를 두려워하여 진나라와 한 편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위나라는 가만히 서서 망하는 일만을 기다려야만 합니다. 

 ​이것이 신이 대왕을 위해 근심하는 바입니다.
 대왕을 위해 말씀드린다면 진나라를 섬기는 일보다 좋은 계책은 없습니다. 

 

 事秦則楚·韓必不敢動 ; 無楚·韓之患, 則大王高枕而臥, 國必無憂矣. 

 且夫秦之所欲弱者莫如楚, 而能弱楚者莫如梁. 楚雖有富大之名而實空虛 ;

 其卒雖多, 然而輕走易北, 不能堅戰.  悉梁之兵南面而伐楚, 勝之必矣. 

 割楚而益梁, 虧楚而適秦, 嫁禍安國, 此善事也.

 (사진즉초·한필불감동 ; 무초·한지환, 즉대왕고침이와, 국필무우의. 

 차부진지소욕약자막여초, 이능약초자막여량. 초수유부대지명이실공허 ;

 기졸수다, 연이경주이패, 불능견전. 실량지병남면이벌초, 승지필의. 

 할초이익량, 휴초이적진, 가화안국, 차선사야.


 [위나라가 진나라를 섬긴다면 초나라와 한나라는 감히 움직이지 못하게 되고 ; 초나라와 한나라로 인한 근심이

 없어진다면, 대왕께서는 베개를 높이하고 편안히 잠을 이룰 수 있으며 나라에는 모든 근심이 사라지게 됩니다. 
 또 대체로 진나라가 약화시키고자 하는 나라는 초나라 외는 없으며, 그 초나라를 약화시킬 수 있는 나라는

 위나라 밖에 없습니다.초나라가 비록 부유하고 강대하다는 명성이 알려졌 있으나 실질은 허약합니다.

 그 병졸이 비록 많다고 하나 싸움이 벌어지면 쉽게 패하며 도망하기 바빠 끈질기게 싸우질 못합니다.

 위나라 군대를 모두 결집시켜 남쪽으로 향해 초나라를 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초나라는 땅을 쪼개어 위나라에 보태주어, 그 결과 초나라의 땅이 줄어 들어 국력이 쇠퇴해지면

 진나라를 따르게 되며, 위나라는 화를 초나라에 돌리고 안정을 취할 수 있습니다.
 이야말로 위나라에게는 최선의 방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大王不聽臣, 秦下甲士而東伐, 雖欲事秦, 不可得矣.  且夫從人多奮辭而少可信,

 說一諸侯而成封侯, 是故天下之游談士, 莫不日夜搤腕瞋目切齒以言從之便, 以說人主.

 人主賢其辯而牽其說, 豈得無眩哉.  臣聞之, 積羽沈舟, 羣輕折軸, 衆口鑠金, 積毁銷骨,

 故願大王審定計議, 且賜骸骨辟魏. 」

 (대왕불청신, 진하갑사이동벌, 수욕사진, 불가득의.  차부종인다분사이소가신,

 세일제후이성봉후, 시고천하지유담사, 막불일야액완진목절치이언종지변, 이설인주.

 인주현기변이견기설, 개득무현재. 신문지, 적우심주, 군경절축, 중구삭금, 적훼소골,

 고원대왕심정계의, 차사해골피위.」)


 [대왕께서 신을 말을 듣지 않으신다면, 진나라는 무장한 군대를 동쪽으로 보내 위나라를 칠 것이니,

 그때 비로소 진나라를 섬기려 해도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무릇 합종을 주장하는 자들은 큰소리만 쳤지 믿을 만한 말은 적습니다. 

 제후 한 사람에게만 유세에 성공해도 봉후가 되기 때문에 천하의 유세가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팔을 걷어 부치고 부릅뜬 눈에 이를 악물고 합종의 이익을 설파하며 남의 군주를 설득하려고 합니다.

 남의 군주가 된 자로 그 변설이 현명하다고 하여 마음이 끌리게 되면 어찌 현혹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신이 듣기로는 가벼운 깃털도 많이 쌓이면 배를 가라앉힐 수 있고, 비록 가벼운 물건이라도 많이 싣게 되면

 수레의 심대는 부러지게 되고, 여러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이며, 여러 사람의 비방은 사람의 뼈도 깎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계책을 신중하게 살피시어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신은 잠시 동안 위나라를 떠나 쉬려고 하니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

 

 哀王於是乃倍從約, 而因儀請成於秦.  張儀歸, 復相秦.  三歲而魏復背秦爲從. 

 秦攻魏, 取曲沃.  明年, 魏復事秦.  秦欲伐齊, 齊·楚從親, 於是張儀往相楚.
 (애왕어시내배종약, 이인의청성어진.  장의귀, 부상진.  삼세이위부배진위종. 

 진공위, 취곡옥.  명년, 위부사진.  진욕벌제, 제·초종친, 어시장의왕상초. )


 [위'애왕'은 마침내 '장의'의 말을 따라 합종을 배반하고 '장의'를 통하여 진나라에 화해를 청했다.

 '장의'가 진나라도 돌아가 다시 재상의 자리에 앉았다. 

 3년 후에 위나라는 다시 진나라를 배반하고 합종에 참가했다.

 그러자 진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곡옥"을 점령했다. 다음 해에 위나라는 다시 진나라를 섬기게 되었다.

 진나라가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했으나, 제나라와 초나라는 합종하였으므로,

 이에 '장의'는 초나라에 들어가 재상이 되어 연횡을 추진하려고 했다.]

 

 楚懷王聞張儀來, 虛上舍而自館之曰 : 「 此僻陋之國, 子何以敎之 ? 」
 (초회왕문장의래, 허상사이자관지왈 : 「 차벽루지국, 자하이교지 ? 」


 [초나라 '회왕'은 '장의'가 온다는 말을 듣고,  상객들이 묶는 고급 관사를 모두 비우도록 하고

 '장의'를 친히 안내하며 말하기를 : “ 이처럼 외지고 누추한 나라에,

 선생께서는 어떤 가르침을 주려고 이와 같이 먼 길을 오셨습니까 ? ”라고 하자.

 

  楚懷王聞張儀來, 虛上舍而自館之曰 : 「 此僻陋之國, 子何以敎之 ? 」

 儀說楚王曰 :「 大王誠能聽臣, 閉關絶約於齊, 臣請獻商·於之地六百里,

 使秦女得爲大王箕帚之妾, 秦·楚娶婦嫁女, 長爲兄弟之國.  此北弱齊而西益秦也, 計無便此者. 」
 (초회왕문장의래, 허상사이자관지왈 : 「 차벽루지국, 자하이교지 ? 」

 의설초왕왈 : 「 대왕성능청신, 폐관절약어제, 신청헌상·어지지육백리,

 사진여득위대왕기추지첩, 진·초취부가녀, 장위형제지국.  차북약제이서익진야, 계무편차자.」)

  

 [초나라 '회왕'은 '장의'가 온다는 말을 듣고, 상객들이 묶는 고급 관사를 모두 비우도록 하고 

 '장의'를 친히 안내하며 말하기를 : “ 이처럼 외지고 누추한 나라에, 선생께서는 어떤 가르침을 주려고 

 이 먼 길을 오셨습니까 ? ”라고 하자.

 '장의'가 초왕에게 말하기를 : “ 대왕께서 진심으로 신의 말을 받아 들이고, 관문을 닫아 제나라와 합종의 맹약을

 끊을 수 있다면, 신은 "상"과 "오"의 땅 6백리를 바치고, 진나라 공주를 대왕의 첩으로 보내 빗자루를 들고

 대왕의 궁전을 청소하면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면 진나라와 초나라는 아내를 얻어오고 딸을 시집보내어

 오래도록 형제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북쪽으로 제나라를 약하게 하고 서쪽으로 우리 진나라를 이웃으로

 갖게 되는 이익을 취할 수 있으니, 이보다 편리한 계책은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楚王大說而許之.  羣臣皆賀, 陳軫獨弔之. 

 楚王怒曰 : 「 寡人不興師發兵得六百里地, 羣臣皆賀, 子獨弔, 何也 ? 」

 陳軫對曰 : 「 不然, 以臣觀之, 商·於之地不可得而齊·秦合, 齊·秦合則患必至矣. 」 

 楚王曰 : 「 有說乎 ? 」    

 (초왕대열이허지.  군신개하, 진진독조지. 

 초왕노왈 : 「 과인불흥사발병득육백리지, 군신개하, 자독조, 하야 ? 」

 진진대왈 : 「 불연, 이신관지, 상·오지지불가득이제·진합, 제·진합즉환필지의. 」 

 초왕왈 : 「 유설호 ? 」)

 

 [초왕은 크게 기뻐하며 장의의 제안을 허락했다. 이에 초나라의 군신들이 모두 경하의 말을 올렸으나

 유독 '진진'만이 마음 아파하였다.  
 초왕은 노하여 말하기를 : " 과인은 군사를 움직이지 않고도 6백리의 땅을 얻어서, 군신들이 모두 축하하는데

 그대만이 홀로 마음 아파하니 무슨 까닭이오 ? ”라고 하자.

 '진진'이 대답하기를 : “ 그렇지 않습니다. 신이 보건대는 "상"과 "오"의 땅은 얻을 수 없을 것이며, 

 오히려 제나라와 진나라는 연합할 것입니다. 제나라와 진나라가 연합한다면 

 초나라에 반드시 우환이 닥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초왕이 말하기를 : “ 어찌하여 그런 말을 하는 것이오 ? ”라고 하자.

 

  陳軫對曰 : 「 夫秦之所以重楚者, 以其有齊也.  今閉關絶約於齊, 則楚孤. 秦奚貪夫孤國,

 而與之商·於之地六百里 ?  張儀至秦, 必負王, 是北絶齊交, 西生患於秦也, 而兩國之兵必俱至. 

 善爲王計者, 不若陰合而陽絶於齊, 使人隨張儀. 

 苟與吾地, 絶齊未晩也 ; 不與吾地, 陰合謀計也.」 

 (진진대왈 : 「 부진지소이중초자, 이기유제야.  금폐관절약어제, 즉초고. 진해탐부고국,

 이여지상·오지지육백리 ? 장의지진, 필부왕, 시북절제교, 서생환어진야, 이양국지병필구지.

 선위왕계자, 불약음합이양절어제, 사인수장의. 

 구여오지, 절제미만야 ; 불여오지, 음합모계야. 」)

 

 [진진이 대답하기를 : “ 무릇 진나라가 초나라를 중요시하는 까닭은 초나라가 제나라와 친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관문을 닫고 제나라와 맹약을 끊으면 초나라는 고립됩니다.  진나라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고립된 초나라를

 탐내서 "상"과 "오"의 땅 6백리를 주겠습니까 ? '장의'가 진나라에 돌아가면 반드시 대왕과의 약속을 저버릴 

 것이니, 이렇게 되면 북쪽으로 제나라와 국교를 끊게 되고 서쪽으로 진나라와의 사이에 우환이 생길 것입니다.

 ​그러면 제나라와 진나라의 군대가 반드시 공격해 들어올 것입니다. 대왕을 위한 가장 좋은 계책은 말씀드린다면

 몰래 사람을 보내 제나라와는 친선관계를 유지하면서 겉으로는 외교관계를 단절하는 것처럼 보이고 '장의'에게

 사람을 딸려 진나라로 보내는 것입니다.  진실로 우리에게 땅을 준다면 그때 제나라와 절교해도 늦지 않습니다.
 만일 우리에게 땅을 주지 않는다면 은밀히 제나라와 연합하여 계책을 꾀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楚王曰 : 「 願陳子閉口毋復言, 以待寡人得地. 」 

 乃以相印授張儀, 厚賂之.  於是遂閉關絶約於齊, 使一將軍隨張儀.
 (초왕왈 : 「 원진자폐구무부언, 이대과인득지. 」 

 내이상인수장의, 후뢰지.  어시수폐관절약어제, 사일장군수장의.)


 [초왕이 말하기를 : “ 바라건대 '진자'여 그대는 입을 닫고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마시오. 

 그리고 과인이 땅을 얻을 때까지 기다리시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장의'에게 재상의 인장과 많은 재물을 주어 환대했다. 이에 초나라는 제나라로 통하는 관문을 닫고

 합종을 파기한후 장수 한 사람을 시켜 '장의'를 따라가게 하였다.]

 

 張儀至秦, 詳失綏墮車, 不朝三月.  楚王聞之曰 : 「 儀以寡人絶齊未甚邪 ? 」 

 乃使勇士至宋, 借宋之符, 北罵齊王.   齊王大怒, 折節而下秦, 秦·齊之交合.
 (장의지진, 상실수타거, 불조삼월.  초왕문지왈 : 「 의이과인절제미심사 ? 」 

 내사용사지송, 차송지부, 북매제왕.   제왕대노, 절절이하진, 진·제지교합.)


 ['장의'는 진나라에 이르자, 수레를 탈 때 잡아당기는 줄을 일부로 놓쳐 수레에서 떨어져 부상을 입은 것 처럼 꾸며

 석 달 동안 조회에 나가지 않았다.  초왕이 이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 “ '장의'는 과인이 제나라와 절교하는 방법이

 미흡하다고 해서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것인가 ? ”라고 하고. 용사를 송나라에 보내어 송나라의 사신의 

 부절을 빌려 북쪽으로 제나라에 가서 제왕을 꾸짖게 했다.  제왕이 크게 노하여 맹약의 부절을 꺾어버리고

 ​진나라에 무릎을 끓었으므로 진나라와 제나라의 국교가 맺어졌다.]

 

 張儀乃朝, 謂楚使者曰 : 「 臣有奉邑六里, 願以獻大王左右. 」 

 楚使者曰 : 「 臣受令於王, 以商·於之地六百里, 不聞六里 」 還報楚王, 楚王大怒, 發兵而攻秦.
 (장의내조, 위초사자왈 : 「 신유봉읍육리, 원이헌대왕좌우. 」 

 초사자왈 : 「 신수령어왕, 이상·오지지육백리, 불문육리 」 환보초왕, 초왕대노, 발병이공진.)


 ['장의'는 조정에 나와 그때까지 '장의'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던 초나라 사자에게 말하기를 :

 " 내가 가지고 있는 봉읍의 땅 6리가 있으니, 이것을 예로써 대왕의 측근에게 바치고자 합니다.”라고 하자.

 초나라 사신이 말하기를 : " 제가 우리 대왕으로부터 받은 명은 "상", "오"의 6백리 땅이지,

 6리의 땅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초나라 사자가 돌아와서 이 사실을 초왕에게 보고하자

 초왕이 크게 노하여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陳軫曰 : 「 軫可發口言乎 ?  攻之不如割地反以賂秦, 與之幷兵而攻齊, 是我出地於秦,

 取償於齊也, 王國尙可存. 」
 (진진왈 : 「 진가발구언호 ?  공지불여할지반이뢰진, 여지병병이공제, 시아출지어진,

 취상어제야, 왕국상가존. 」)


 ['진진'이 말하기를 : " 신이 입을 열어 한 마디 해도 되겠습니까 ?  진나라를 공격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초나라의

 땅을 떼어 진나라에 뇌물로 바치고, 진나라와 군사를 합쳐 제나라를 공격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땅을 진나라에

 내주었지만 제나라에서 보상을 받게 되는 것이니 대왕의 나라는 보존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다.]

 

 楚王不聽, 卒發兵而使將軍屈匃擊秦.  秦·齊共攻楚, 斬首八萬, 殺屈匃, 遂取丹陽·漢中之地. 

 楚又復益發兵而襲秦, 至藍田, 大戰, 楚大敗, 於是楚割兩城以與秦平.
 (초왕불청, 졸발병이사장군굴개격진.  진·제공공초, 참수팔만, 살굴개, 수취단양·한중지지. 

 초우부익발병이습진, 지남전, 대전, 초대패, 어시초할양성이여진평.)

 
 [그러나 초왕은 진진'의 말을 듣지 않고 결국은 군사를 일으켜 '굴개'를 장군으로 삼아 진나라를 공격했다. 

 동맹을 맺은 진나라와 제나라는 함께 초군에게 반격을 가하여 군사 8만을 베어 죽이고 

 장수 '굴개'를 살해한 후 "단양"과 "한중"의 땅을 탈취했다. 

 이에 초나라가 다시 더 많은 군사를 동원하여 진나라를 기습하여 "남전"에서

 ​진나라와 크게 싸웠으나 초군이 대패하고 말았다. 초나라는 진나라에게 두 개의 성을 나누어 주고 화친을 .]

 

 秦要楚欲得黔中地, 欲以武關外易之.  楚王曰 : 「 不願易地, 願得張儀而獻黔中地.」 

 秦王欲遣之, 口弗忍言.  張儀乃請行.  惠王曰 :「 彼楚王怒子之負以商·於之地, 是且甘心於子.」

 (진요초욕득검중지, 욕이무관외역지.  초왕왈 : 「 불원역지, 원득장의이헌검중지 . 」 

 진왕욕견지, 구불인언.  장의내청행.  혜왕왈 : 「 피초왕노자지부이상·상오지지, 시차감심어자.」)


 [진나라는 초나라에 요구해서 "검중"의 땅을 얻으려 하여 "무관"의 외곽에 있는 "상", "오"로 바꾸자고 하였다.  

 초왕이 말하기를 : “ 땅을 바꾸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장의'를 보내주면 "검중"의 땅을 드리겠습니다. ”라고 했다.
 진왕은 '장의'를 보내고 싶었으나 차마 입 밖으로 말할 수 없었다. '장의'가 스스로 초나라에 가겠다고 청하였다.

  진'혜왕'이 말하기를 : “ 저 초왕이 화가 난 이유는 그대가 "상", "오" 땅을 바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대에게 보복하려는 것이오. ”라고 하자.]

 

 張儀曰 : 「 秦彊楚弱, 臣善靳尙, 尙得事楚夫人鄭袖, 袖所言皆從. 

 且臣奉王之節使楚, 楚何敢加誅.  假令誅臣而爲秦得黔中之地, 臣之上願. 」
 (장의왈 : 「 진강초약, 신선근상, 상득사초부인정수, 수소언개종. 

 차신봉왕지절사초, 초하감가주.  가령주신이위진득검중지지, 신지상원.」)


 ['장의'가 말하기를 : “ 진나라는 강하고 초나라는 약합니다. 신은 초왕의 총신 '근상'과 친하며

 '근상'은 초왕의 부인 '정수'를 섬기고 있습니다. '정수'의 말이라면 초왕은 모두 들어줍니다. 

 그리고 저는 대왕의 부절을 받들고 초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것인데 초나라가 어찌 신을 감히 죽이겠습니까.

 ​가령 신이 죽는다할지라도 진나라가 "검중"의 땅을 얻는다면 그것은 신이 바라는 바입니다. ”라고 하였다.] 

 

 遂使楚.  楚懷王至則囚張儀, 將殺之.  靳尙謂鄭袖曰 : 「 子亦知子之賤於王乎 ? 」 

 鄭袖曰 : 「 何也 ? 」 靳尙曰 : 「 秦王甚愛張儀而不欲出之, 今將以上庸之地六縣賂楚,

 以美人聘楚, 以宮中善歌謳者爲媵.  楚王重地尊秦, 秦女必貴而夫人斥矣.  不若爲言而出之. 」

 (수사초.  초회왕지즉수장의, 장살지.  근상위정수왈 : 「 자역지자지천어왕호 ? 」 

 정수왈 : 「 하야 ? 」 근상왈 : 「 진왕심애장의이불욕출지, 금장이상용지지육현뢰초,

 이미인빙초, 이궁중선가구자위잉.  초왕중지존진, 진녀필귀이부인척의.  불약위언이출지.」)


 [마침내 '장의'가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다. 초나라 회왕은 '장의'가 도착하자 옥에 가두어 장차 죽이려고 하였다.  

 '근상'은 '정수'에게 찾아가 말하기를 : “ 당신은 앞으로 왕에게 천대를 받게 될 것을 알고 있습니까 ? ”라고 하자.

 '정수'가 말하기를, “ 어째서입니까 ? ”라고 하였다.

  '근상'이 말하기를 : “ 진왕은 '장의'를 몹시 총애하므로 반드시 그를 구원해 내려고 할 것입니다. 

 지금 "상용"의  6개 현을 초나라에 뇌물로 주고, 초나라에 미인을 보내어, 궁중의 가희들 중에 선발하여

 초왕의 잉첩으로 삼으려 하고 있습니다. 초왕이 땅을 중요시하고 진나라를 존중하므로

 진나라 여자는 반드시 귀하게 되고, 부인께서는 멀리 내쳐저 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대왕께 말씀드려 '장의'를 석방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於是鄭袖日夜言懷王曰 : 「 人臣各爲其主用.  今地未入秦, 秦使張儀來, 至重王. 

 王未有禮而殺張儀, 秦必大怒攻楚. 妾請子母俱遷江南, 毋爲秦所魚肉也. 」
 (어시정수일야언회왕왈 : 「 인신각위기주용.  금지미입진, 진사장의래, 지중왕. 

 왕미유례이살장의, 진필대노공초. 첩청자모구천강남, 무위진소어육야.」)

 
 [이에 정수는 밤낮으로 회왕에게 말하기를 : “ 남의 신하된 자는 각각 그 주인을 위해 힘을 다하는 것입니다. 

 지금 약속한 "검중"의 땅을 아직 진나라에 주지도 않았는데, 

 진나라가 '장의'를 보내온 것은 대왕을 지극히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대왕께서 예의도 없이 '장의'를 죽인다면 진나라가 반드시 크게 노하여 초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

 이 첩은 대왕께 청하건대 우리 모자가 강남으로 옮겨가 사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우리들은 진나라의 물고기밥이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懷王後悔, 赦張儀, 厚禮之如故.  張儀旣出, 未去, 聞蘇秦死,

 乃說楚王曰 : 「 秦地半天下, 兵敵四國, 被險帶河, 四塞以爲固. 虎賁之士百餘萬, 車千乘, 

 騎萬匹, 積粟如丘山, 法令旣明, 士卒安難樂死, 主明以嚴, 將智以武, 雖無出甲, 席卷常山之險,

 必折天下之脊, 天下有後服者先亡. 且夫為從者, 無以異於驅群羊而攻猛虎, 虎之與羊不格明矣. 

 今王不與猛虎而與群羊, 臣竊以為大王之計過也.  凡天下彊國, 非秦而楚, 非楚而秦, 兩國交爭,

 其勢不兩立. 大王不與秦, 秦下甲據宜陽, 韓之上地不通.  下河東, 取成皋, 韓必入臣,

 梁則從風而動.  秦攻楚之西, 韓·梁攻其北, 社稷安得毋危?

 (회왕후회, 사장의, 후례지여고.  장의기출, 미거, 문소진사,

 내세초왕왈 : 「 진지반천하, 병적사국, 피험대하, 사색이위고. 호분지사백여만, 거천승, 기만필,

 적속여구산, 법령기명, 사졸안난락사, 주명이엄, 장지이무, 수무출갑, 석권상산지험,

 필절천하지척, 천하유후복자선망. 차부위종자, 무이이어구군양이공맹호, 호지여양불격명의.  

 금왕불여맹호이여군양. 신절이위대왕지계과야. 범천하강국, 비진이초, 비초이진, 양국교쟁,

 기세불양입. 대왕불여진, 진하갑거의양, 한지상지불통.  하하동, 취성고, 한필입신,

 량즉종풍이동.  진공초지서, 한·량공기북, 사직안득무위?

 

 [회왕은 뉘우치고 '장의'를 용서하여 예전처럼 두텁게 예우했다. '장의'는 석방이 되었어도 초나라를 떠나지 

 않다가 '소진'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초왕에게 유세하기를 : " 진나라는 영토는 천하의 반을 차지하고

 군사력은 4개국을 대적할 수 있으며, 그 영토는 험지로 둘러싸여 있고 황화를 마치 띠처럼 두르고 있으며,
 사방은 견고한 요새에 의지하여 외적을 막고 있습니다.

 용기있는 무사들은 백만이 되고 병거는 천승에 기병은 만 필이며 곡식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습니다.

 또한 나라의 법령은 밝아서, 군사들은 모두가 어려움도 편안하게 여기고 죽음도 피하지 않습니다. 

 왕은 사리에 밝고 위엄이 있으며 장수는 지혜와 무용을 갖추고 있어, 비록 지금은 무장한 군사들을 출동시키지는

 않고 있지만 장차 "상산"의 험한 땅을 점령하면 천하의 등골을 꺾을 것이며,
 천하 제후로서 뒤늦게 진나라에 복종을 해온 나라들은 기필코 먼저 망하게 될 것입니다. 

 무릇 합종을 행하는 나라는 일부러 양떼를 몰아 호랑이를 공격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으니,

 양과 호랑이는 그 격이 다르다는 사실을 명백히 알아야 합니다. 지금 대왕께서는 호랑이의 편에 서지 않고

 양떼의 편에 섰으니 신이 가만히 생각해 보건데 이같은 대왕의 계책은 잘못되었습니다. 

 ​무릇 천하의 강국이라 함은 진나라가 아니라면 초나라이며, 또한 초나라가 아니면 진나라입니다.

 두 나라가 서로 싸우게 되면 그 세력은 양립할 수 없습니다. 대왕께서 만일 진나라와 함께 하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무장한 군사들을 남쪽으로 보내 "의양"을 차지하여 한나라의 "상군" 땅과 통하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다시 군사를 황하를 따라 동쪽으로 남하하여 "성고"를 점령하면 한나라는 어쩔 수 없이 진나라에 입조하여

 신하의 예를 취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되면 위나라도 어쩔 수 없이 한나라의 뒤를 따라야만 합니다. 

 한나라와 위나라를 복종시킨 진나라가 초나라의 서쪽을 공격하면, 한, 위나라는 초나라의 북쪽을 공격하게 되어,

 초나라 사직의 안전를 어떻게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

 

 且夫從者聚群弱而攻至彊, 不料敵而輕戰, 國貧而數舉兵, 危亡之術也. 

 臣聞之, 兵不如者勿與挑戰, 粟不如者勿與持久.  夫從人飾辯虛辭, 高主之節, 言其利不言其害.

 ​卒有秦禍, 無及為已.  是故願大王之孰計之. 秦西有巴蜀, 大船積粟, 起於汶山, 浮江已下,

 至楚三千餘里. 舫船載卒, 一舫載五十人與三月之食, 下水而浮, 一日行三百餘里, 里數雖多,

 然而不費牛馬之力, 不至十日而距扞關.  扞關驚, 則從境以東盡城守矣, 黔中· 巫郡非王之有.

 (차부종자취군약이공지강, 불료적이경전, 국빈이수거병, 위망지술야. 

 신문지, 병불여자물여도전, 속불여자물여지구.  부종인식변허사, 고주지절, 언기리불언기해.

 ​졸유진화, 무급위이.  시고원대왕지숙계지. 진서유파촉, 대선적속, 기어문산, 부강이하,

 지초삼천여리. 방선재졸, 일방재오십인여삼월지식, 하수이부, 일일행삼백여리, 리수수다,

 연이불비우마지력, 불지십일이거한관.  한관경, 즉종경이동진성수의, 검중· 무군비왕지유.

 

 [대체로 합종론자들은 약한 제후국들을 모아 강한 진나라를 공격하자고 하니,

 그것은 바로 상대국의 강약도 헤아리지 않고 경솔하게 전쟁을 일으키는 무모한 행위이며,
 가난한 나라가 빈번하게 군사를 일으키는 경우이니 그것은 바로 나라를 위험에 빠뜨려 망하게 하는 술책입니다. 

 ​신이 듣기로 병력이 적은 군대는 정면으로 싸움을 해서는 안 되고, 군량미가 충분치 않은 군대는

 지구전을 벌리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합종론자들은 말만 그럴듯하게 꾸미고 헛된 의견만을 주장하며,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 것을 절조라 하여 높이 받들고 합종의 이익만을 말할 뿐 손해됨은 말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갑자기 진나라로부터 화를 입게 되어도 그때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원컨대 대왕께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진나라는 서쪽에 "파군"과 "촉군"을 차지하고 

 있어 큰 배에 식량을 가득 싣고 "문산"에서 출발하여 "강수"를 따라 3천 여리를 내려가면 초나라에 이르게 됩니다.

 배를 늘어 세워 군사를 싣는데 두 척의 배를 한 조로 삼아 한 척의 배에는 50명의 군사를, 다른 배에는 3개월 치의

 양식을 실어 강수를 따라 떠내려가게 되면 하루 동안 갈 수 있는 거리는 300여 리가 넘기 때문에, 

 비록 거리가 멀다고 하지만 소와 말의 힘을 빌리지 않더라도 열흘 안에 "한관"에 닿을 수 있습니다.
 "한관"이 위험하고 다급해지면 초나라의 동쪽 국경은 모두 성 안에서 지키기에 급급하게 되며, 

 이렇게 되면 "검중"과 "무군"은 이미 대왕의 땅이 아니게 됩니다.

 

 秦舉甲出武關, 南面而伐, 則北地絶.  秦兵之攻楚也, 危難在三月之內, 而楚待諸侯之救,

 在半歲之外, 此其勢不相及也. 夫待恃弱國之救, 忘彊秦之禍, 此臣所以為大王患也. 

 大王嘗與吳人戰, 五戰而三勝, 陣卒盡矣 ; 偏守新城, 存民苦矣.  臣聞功大者易危, 而民敝者怨上.

 夫守易危之功而逆彊秦之心, 臣竊爲大王危之. 且夫秦之所以不出兵函谷, 十五年以攻齊趙者,

 陰謀有合天下之心.  楚嘗與秦構難, 戰於漢中, 楚人不勝, 列侯執珪死者七十餘人, 遂亡漢中. 

 楚王大怒, 興兵襲秦, 戰於藍田.  此所謂兩虎相搏者也.

 (진거갑출무관, 남면이벌, 즉북지절. 진병지공초야, 위난재삼월지내, 이초대제후지구,

 재반세지외, 차기세불상급야. 부대약국지구, 망강진지화, 차신소이위대왕환야. 

 대왕상여오인전, 오전이삼승, 진졸진의 ; 편수신성, 존민고의.  신문공대자이위, 이민폐자원상.

 부수이위지공이역강진지심, 신절위대왕위지. 차부진지소이불출병함곡, 십오년이공제조자,

 음모유합천하지심. 초상여진구난, 전어한중, 초인불승, 열후집규사자칠십여인, 수망한중. 

 초왕대노, 흥병습진, 전어람전.  차소위양호상박자야.


 [진나라가 "함양"에서 군사를 일으켜 "무관"을 나와서 남쪽을 향해 공격하면 초나라는 북쪽지방과 교통이 끊어져

 고립되고 맙니다. 진군이 초나라를 공격하려 하면 3개월이면 위험에 빠뜨릴 수 있지만 제후국들의 구원군은

 반 년 이상이 걸리므로 그 형세는 초나라가 필요할 때 미치지 못합니다.

 대체로 약한 제후국들의 구원을 믿으면서 강한 진나라의 화를 잊어버리는 것은 대왕을 위해 걱정하는 바입니다. 

 ​대왕께서는 일찌기 오나라와의 전투에서 다섯 번 싸워 세번을 이겼으나, 싸움에서 군사들을 모두 잃고 ;

 겨우 새로 얻은 성을 지키느라 백성들은 고통 받았습니다.  신은 듣기로 공이 큰 자는 위태해지기 쉽고,

 피폐해진 백성들은 그 군주를 원망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무릇 위태로워지기 쉬운 공을 지키느라

 강대한 진나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은, 신이 가만히 생각건대 대왕께서는 위태로운 처지에 있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대체로 진나라가 15년 동안 함곡관 밖으로 군사를 진격시켜 제나라와 조나라를 공격하지 않은 이유는

 천하를 병합하려는 음모를 몰래 꾸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나라가 일찍이 진나라에 난을 일으켜 "한중"에서

 싸웠으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집규(봉국의 군주)의 높은 작위에 있던 70여 명의 장수들이 전사하고, 

 결국은 "한중"마저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한중"을 잃자 대왕께서는 더욱 노하여 군사를 다시 일으켜 진나라를

 습격하여 "남전"에서 싸웠습니다. 이것을 이른바 두 호랑이가 서로 겨루는 것과 같은 것이 라고 합니다.
 
 夫秦·楚相敝而韓·魏以全制其後, 計無危於此者矣.  願大王孰計之. 

 秦下甲攻衛陽晉, 必大關天下之匈, 大王悉起兵以攻宋, 不至數月而宋可擧.

 擧宋而東指, 則泗上十二諸侯盡王之有也.  凡天下, 而以信約從親相堅者蘇秦. 

 封武安君, 相燕, 卽陰與燕王謀伐破齊而分其地.  乃詳有罪出走入齊, 齊王因受而相之.

 (부진·초상폐이한·위이전제기후, 계무위어차자의.  원대왕숙계지. 

 진하갑공위양진, 필대관천하지흉, 대왕실기병이공송, 불지수월이송가거.

 거송이동지, 즉사상십이제후진왕지유야.  범천하, 이이신약종친상견자소. 

 봉무안군, 상연, 즉음여연왕모벌파제이분기지.  내상유죄출주입제, 제왕인수이상지.


 [이로써 진나라와 초나라가 서로 피폐해졌을때 한나라와 위나라가 전력을 기울여 초나라의 배후를 공격한다면,

 초나라의 계책은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며이보다 더 위험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  진나라가 무장 병력을 출동시켜 위나라의 "양진"을 공격하여

 점령한다면 그것은 필시 천하의 심장에 해당하는 요충지를 봉쇄하는 행위와 같으며, 그 틈을 이용하여 대왕께서

 전군을 동원하여 송나라를 공격한다면, 몇 개월 내에 송나라를 공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어서 송나라를 이끌고 동쪽을 겨냥하여 진격하면 "사수" 주변의 12제후국(노, 송, 거, 추, 담, 비(費), 비(邳),

 설, 등, 예, 임, 위)들의 땅은 대왕께서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무릇 천하 제후들은 서로 믿음으로써

 합종을 견고히 해야 한다고 주장한 자는 '소진'입니다. '소진'은 조나라로부터 '무안군'에 봉해지고,

 ​이어서 연나라로 가서는 그곳의 상국이 되었고, 그는 아무도 몰래 연왕과 함께 모의하여 제나라를 무찔러

 그 땅을 나누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소진'은 연나라에 죄를 지은 척 꾸며서 제나라로 달아났는데, 

 '소진'을 총애한 제나라 왕은 그를 받아들여 상국으로 삼았습니다.

 

 居二年而覺, 齊王大怒, 車裂蘇秦於市.  夫以一詐僞之蘇秦, 而欲經營天下,

 混一諸侯, 其不可成亦明矣.  今秦與楚接境壤界, 固形親之國也.

 大王誠能聽臣, 臣請使秦太子入質於楚, 楚太子入質於秦.  請以秦女爲大王箕帚之妾,

 效萬室之都以爲湯沐之邑, 長爲昆弟之國, 終身無相攻伐, 臣以爲計無便於此者.」

 (거이년이각, 제왕대노, 거열소진어시.  부이일사위지소진, 이욕경영천하,

 혼일제후, 기불가성역명의.  금진여초접경양계, 고형친지국야.

 대왕성능청신, 신청사진태자입질어초, 초태자입질어진.  청이진녀위대왕기추지첩,

 효만실지도이위탕목지읍, 장위곤제지국, 종신무상공벌, 신이위계무편어차자.」)


 [그리고 2년 뒤에 '소진'의 음모가 발각되어 제왕이 대노하여 '소진'을 저자거리에서 거열형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따라서 일개 사기꾼에 불과한 '소진' 따위가 천하를 경영하기 위해 제후들을 하나로 모아 합종이란 명목으로

 그들을 속였으니, 결국 그 뜻을 이룰 수 없었음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 진나라와 초나라는 서로 경계를 맞대고 있으며, 본래부터 친하게 지내온 나라입니다 .

  대왕께서 진실로 신의 말에 귀를 기우리신다면, 신은 청컨대 진나라의 태자를 초나라에 볼모로 데려오고,

 초나라에서도 태자를 진나라에 볼모로 보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대왕을 위해 진나라 공주를 보내 청소나 하는

 첩으로 삼게 해드리겠으며, 만호에 달하는 성읍을 바쳐 대왕의 탕목읍으로 삼아 오랫동안 형제의 나라가 된다면,

 ​종신토록 서로 공격하는 일이 없을 것이므로, 신은 이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하였다.]

 

 於是楚王已得張儀, 而重出黔中地與秦, 欲許之. 

 屈原曰 : 「 前大王見欺於張儀, 張儀至, 臣以爲大王烹之.  今縱弗忍殺之, 又聽其邪說, 不可.」

 ​懷王曰 : 「 許儀而得黔中, 美利也.  後而倍之, 不可. 」  故卒許張儀, 與秦親.
 (어시초왕이득장의, 이중출검중지여진, 욕허지. 

 굴원왈 : 「 전대왕견기어장의, 장의지, 신이위대왕팽지.  금종불인살지, 우청기사설, 불가. 」

 ​회왕왈 : 「 허의이득검중, 미리야.  후이배지, 불가. 」  고졸허장의, 여진친.)


 [이에 초왕은 '장의'를 이미 얻었음으로 약속대로 "검중"의 땅을 진나라에 주고 '장의'의 요청을 허락하려고 했다.

 이때 '굴원'이 초회왕'에게 말하기를 : " 예전에 대왕께서 '장의'에게 속임을 당해 그가 초나라에 오면

 대왕께서 그를 삶아서 죽일 것이라고 신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를 죽이지 않고 놓아 주고,

 다시 그의 요사스러운 말을 들으려고 하시니 그것은 결코 좋지 못한 일입니다. ”라고 하였다.

 ​회왕이 말하기를 : " '장의'의 청을 허락하고 "검중"을 얻음은 대단한 이익이오. 

 약속을 하고 나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그것도 좋지 못한 일이오. "라고 하면서 

 초회왕'은 마침내 '장의'의 제안을 허락하고 진나라와 화친을 맺었다.]


 張儀去楚, 因遂之韓, 說韓王曰 : 「 韓地險惡山居, 五穀所生, 非菽而麥, 民之食大抵飯菽飯藿羹.

 一歲不收, 民不饜糟穅.  地不過九百里, 無二歲之食. 料大王之卒, 悉之不過三十萬. 

 而廝徒負養在其中矣, 除守徼亭鄣塞, 見卒不過二十萬而已矣. 

 秦帶甲百餘萬, 車千乘, 騎萬匹, 虎賁之士跿跔科頭貫頤奮戟者, 至不可勝計.

 (장의거초, 인수지한, 세한왕왈 : 「 한지험악산거, 오곡소생, 비숙이맥, 민지식대저반숙반곽갱. 

 일세불수, 민불염조강.  지불과구백리, 무이세지식. 료대왕지졸, 실지불과삼십만. 

 이시도부양재기중의, 제수요정장색, 견졸불과이십만이이의. 

 진대갑백여만, 거천승, 기만필, 호분지사도구과두관이분극자, 지불가승계.


 ['장의'는 초나라를 떠나 한나라에 들려서 한왕에게 유세하기를 : " 한나라의 땅은 험한 산악지대로 둘러 쌓여

 주민들이 대부분 산에서 살며 농사짓는 곡식은 콩 아니면 보리뿐이라 백성들의 조석 끼니는 대개가 콩밥에

 명아주국입니다. 또 일 년만 수확을 못해도 백성들은 술지게미와 쌀겨조처도 제대로 먹지 못합니다. 

 영토는 사방 9백 리에 지나지 않고,  2년 정도 먹을 양식도 없습니다. 대왕의 군사들을 헤아려 보건대

 모두 모아도 30만에 불과 합니다. 그 가운데는 잡일하는 일꾼과 군수물자를 나르는 짐꾼을 포함한 숫자이며,
 그리고 변방의 요정(역참)과 요새를 지키는 군사들을 제외하면 실제 병력은 20만 명에 불과합니다.

 반면에 진나라는 무장 병력이 백만을 넘고, 병거는 천승, 기병은 만 기, 그리고 날쌘 동작으로 

 투구도 쓰지 않은 체 돌격하는 자, 화살이 날아오는데 창을 휘두르며 적에게 달려가는 자등 

 호분의 용사는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秦馬之良, 戎兵之衆, 探前趹後蹄閒三尋騰者, 不可勝數.  山東之士被甲蒙冑以會戰,

 秦人捐甲徒裼以趨敵, 左挈人頭, 右挾生虜. 夫秦卒與山東之卒, 猶孟賁之與怯夫, 以重力相壓,

 猶烏獲之與嬰兒. 夫戰孟賁烏獲之士以攻不服之弱國, 無異垂千鈞之重於鳥卵之上, 必無幸矣.

 (진마지량, 융병지중, 탐전결후제한삼심등자, 불가승수. 산동지사피갑몽주이회전, 

 진인연갑도석이추적, 좌설인두, 우협생로. 부진졸여산동지졸, 유맹분지여겁부, 이중력상압,

 유오획지여영아. 부전맹분오획지사이공불복지약국, 무이수천균지중어조란지상, 필무행의.


 [진나라의 말은 훌륭하고 병사들은 많으며, 말이 달릴 때에는 앞발을 쳐들고 뒷발로 땅을 차면 한 번에 세 길을

 내닫는 기병의 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습니다. "산동"의 군사들은 갑옷과 투구로 무장하고 싸우지만

 진나라의 군사들은 오히려 갑옷을 벗고 맨발에 웃통을 들어내며 적진을 향해 돌진하여, 왼손에는 적의 목이 

 잘린 머리채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포로를 사로잡아 겨드랑에 끼고 달릴 만큼 아주 용감합니다.

 진나라 군사들과 산동의 군사들을 비교하면 마치 살이있는 소의 뿔을 뽑을 만큼 용맹한 '맹분'이 두려움에 떠는

 겁이 많은 아이와 대결하는 것 같고, 진나라 군사가 산동 군사를 눌러 내리는 중압감은 마치 힘이 장사인 '오획'이

 어린아이를 다루는 일과 같습니다. '맹분'이나 '오획'과 같은 용사들로 하여금 복종하지 않는 약소국들을 공격하게

 하는 일은 마치 천균의 무게로 새알 위를 누르는 경우와 같으니 기필코 요행은 없을 것입니다.

 

 夫羣臣諸侯不料地之寡, 而聽從人之甘言好辭, 比周以相飾也, 皆奮曰, 聽吾計可以彊霸天. 

 夫不顧社稷之長利而聽須臾之說, 詿誤人主, 無過此者. 大王不事秦, 秦下甲據宜陽, 斷韓之上地,

 東取成皐滎陽.  則鴻臺之宮桑林之苑非王之有也. 夫塞成皐, 絶上地, 則王之國分矣. 

 先事秦則安, 不事秦則危. 夫造禍而求其福報, 計淺而怨深.  逆秦而順楚, 雖欲毋亡, 不可得也. 

 (부군신제후불료지지과, 이청종인지감언호사, 비주이상식야, 개분왈, 청오계가이강패천하. 

 부불고사직지장리이청수유지세, 괘오인주, 무과차자. 대왕불사진, 진하갑거의양, 단한지상지,

 동취성고형양.  즉홍대지궁상림지원비왕지유야. 부색성고, 절상지, 즉왕지국분의. 

 선사진즉안, 불사진즉위. 부조화이구기복보, 계천이원심.  역진이순초, 수욕무망, 불가득야. 

 

 [대개의 군주와 제후들은 자기들 나라의 국력이 약하다는 처지도 헤아리지 못하며, 합종론을 주장하는 유세객들의

 감언이설에 현혹되고,  유세객들은 그들과 한패가 되어 사리사욕을 취하면서 모두에게 격려하듯 말하기를

 ‘우리들의 계책을 따른다면 천하의 패자가 될 수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대체로 국가의 먼 앞날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이익을 헤아리지 않고, 눈에 보이는 면만을 강조한 유세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이것은 그 나라의 군주를 그르치게 하는 행위이니 이 보다 더 나쁜 계책은 없을 것입니다.

  대왕께서 진나라를 받들지 않으신다면, 진나라는 갑옷으로 무장한 군사들을 "의양"에 주둔시켜 

 한나라의 "상당"과 통하는 길을 끊고, 다시 동쪽으로 나아가 "성고"와 "형양"을 취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나라 "홍대"의 궁전과 "상림"의 동산은 더 이상 대왕의 소유가 아닐 것입니다.
 무릇 "성고"가 봉쇄를 당하면 하수 이북지역과는 두절되어 대왕의 나라는 쪼개지고 말 것입니다.
 그래서 미리 진나라를 섬기는 일은 한나라를 안정시키는 일이 되고,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다면 한나라는 위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무릇 스스로 화를 만들어 내면서 복으로 보답 받기를 바라는 것은 계략으로는 얕은 것이며

 진나라의 원한만 깊어질 뿐입니다. 진나라를 거역하고 초나라에 순종한다면 아무리 망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친다고 해도 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故爲大王計, 莫如爲秦.  秦之所欲莫如弱楚, 而能弱楚者莫如韓.  非以韓能彊於楚也, 其地勢然也.

 今王西面而事秦以攻楚, 秦王必喜.  夫攻楚以利其地, 轉禍而說秦, 計無便於此者. 」  

 韓王聽儀計, 張儀歸報.  秦惠王封儀五邑, 號曰武信君.
 (고위대왕계, 막여위진. 진지소욕막여약초, 이능약초자막여한.  비이한능강어초야, 기지세연야.

 금왕서면이사진이공초, 진왕필희.  부공초이리기지, 전화이열진, 계무편어차자.」  

 한왕청의계, 장의귀보.  진혜왕봉의오읍, 호왈무신군.)

 

 [그래서 대왕을 위해 계책을 올린다면 나라의 안전을 위해서 진나라를 섬기는 수밖에 달리 좋은 방책은 없습니다.

 진나라가 바라는 것은 초나라를 약화시키는 일이며, 실제적으로 초나라를 약화시킬 수 있는 나라는 한나라보다

 더한 나라가 없습니다. 한나라 없이는 초나라를 약화시킬 수 없음은 한나라가 초나라보다 강해서가 아니라, 

 지리적인 형세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이제 대왕께서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기고 초나라를 공격한다면

 진왕는 필시 기뻐할 것입니다. 초나라를 공격하여 그 땅을 빼앗고, 화를 돌려 진나라를 기쁘게 하는 일이니

 이 보다 더 좋은 계책은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한왕이 '장의'의 계책을 따르겠다고 하였으므로,

 '장의'는 진나라로 돌아와 보고하자, 진'혜왕'은 '장의'를 다섯 읍의 영주로 봉하고, '무신군'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使張儀東說齊湣王曰 : 「 天下彊國無過齊者, 大臣父兄殷衆富樂. 然而爲大王計者, 皆爲一時之說,

 不顧百世之利. 從人說大王者, 必曰, 『齊西有彊趙, 南有韓與梁. 齊負海之國也, 地廣民衆,

 兵彊士勇, 雖有百秦,  將無柰齊何.』 大王賢其說而不計其實.  夫從人朋黨比周, 莫不以從爲可. 

 臣聞之, 齊與魯三戰而魯三勝, 國以危亡隨其後.  雖有戰勝之名, 而有亡國之實. 

 是何也, 齊大而魯小也. 今秦之與齊也, 猶齊之與魯也.  秦·趙戰於河漳之上, 再戰而趙再勝秦. 

 戰於番吾之下, 再戰又勝秦.  四戰之後, 趙之亡卒數十萬, 邯鄲僅存.

 

 (사장의동세제민왕왈 : 「 천하강국무과제자, 대신부형은중부락. 연이위대왕계자, 개위일시지설,

 불고백세지리. 종인세대왕자, 필왈, 『제서유강조, 남유한여량.  제부해지국야, 지광민중,

 병강사용, 수유백진, 장무내제하.』  대왕현기설이불계기실. 부종인붕당비주, 막불이종위가. 

 신문지, 제여로삼전이로삼승, 국이위망수기후. 수유전승지명, 이유망국지실. 

 시하야, 제대이로소야. 금진지여제야, 유제지여로야.  진·조전어하장지상, 재전이조재승진. 

 전어번오지하, 재전우승진.  사전지후, 조지망졸수십만, 한단근존.


 [다시 진'혜왕'은 '장의'를 동쪽 제나라에 보내어 '민왕'에게 유세하게 하기를 : " 천하의 강국으로서는 제나라에

 미칠 나라가 없습니다. 대신들과 부형들은 수 없이 많고 모두 살림이 번성하여 부귀와 안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대왕을 위해 계책을 바치는 자는 모두 일시적인 이야기에 마음이 끌려서 백세에 누릴 이익은

 돌아보지 않습니다. 합종론을 가지고 대왕께 유세했던 자들은 반드시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제나라의 서쪽에는 강한 조나라가 있고, 남쪽에는 한나라와 위나라가 있습니다. 제나라는 바다를 점하고 있고

 그 땅은 넓어 백성들은 많으며 군대는 강하고 병사들은 용감합니다. 비록 진나라가 백 개가 있다 한들

 제나라를 어찌할 수 있겠습니까 ? ’라고. 대왕께서는 그 말이 매우 현명하다는 점만을 아시고 실세적인 정황을

 헤아리지 못하고 계십니다. 무릇 합종론자들은 붕당을 만들어 사리사욕을 꾀하고 다른 의견들은 모두 배척하였기

 때문에 합종을 따른다면 아무 것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신이 듣기에 일찍이 제나라와 노나라가 세 번 싸워

 모두 노나라가 이기고도, 그 후 나라가 위태하게 되어 마침내 망했습니다. 비록 전쟁에서 이긴 명성만 있었지

 현실적으로는 나라가 망한 결과가 생겼습니다. 이것은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 

 제나라 대국이요 노나라는 소국이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진나라와 제나라의 경우를 비교해 본다면

 그것은 마치 제나라나 노나라의 경우와 같습니다. 진나라와 조나라는 하수와 장수의 근방에서 두 번 싸워

 조군이 모두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후에 다시 "번오"의 성 아래에서 두 번 교전하여 모두 조나라가 이겼습니다.
 그러나 4번의 싸움에서 조나라는 수십 만의 군사를 잃고 간신히 도성인 "한단"만 지킬 수 있었습니다.

 

 雖有戰勝之名而國已破矣.  是何也.  秦彊而趙弱.  今秦楚嫁女娶婦, 爲昆弟之國. 

 韓獻宜陽, 梁效河外, 趙入朝澠池, 割河閒以事秦. 大王不事秦, 秦驅韓· 梁攻齊之南地,

 悉趙兵渡淸河, 指博關.  臨菑卽墨非王之有也. 國一日見攻, 雖欲事秦, 不可得也. 

 是故願大王孰計之也. 」 齊王曰 : 「 齊僻陋, 隱居東海之上, 未嘗聞社稷之長利也. 」乃許張儀. 

 (수유전승지명이국이파의.  시하야.  진강이조약.  금진초가녀취부, 위곤제지국. 

 한헌의양, 량효하외, 조입조민지, 할하간이사진. 대왕불사진, 진구한· 량공제지남지,

 실조병도청하, 지박관.  임치즉묵비왕지유야. 국일일견공, 수욕사진, 불가득야. 

 시고원대왕숙계지야. 」제왕왈 : 「 제벽루, 은거동해지상, 미상문사직지장리야. 」 내허장의.)

 

 [비록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조나라는 그 명성은 천하에 알렸으나, 결국은 나라의 경제는 파국을 맞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어째서 이겠습니까 ? 그것은 바로 진나라는 강하고 조나라는 약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진나라와 초나라는 서로 시집보내고 부인으로 맞아들여 형제의 나라가 되었습니다.
 한나라는 진나라에 "의양"의 땅을 바치고, 위(魏)나라는 "하외"의 땅을 주었으며 조나라 왕은 "민지"에 들어가

 진왕에게 조현을 올리고, "하간"의 땅을 나누어 바치면서 진나라를 섬기기로 하였습니다.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한나라와 위나라를 앞장세워 제나라의 남쪽 땅을 공략하게 하고,

 다시 조나라의 병력 모두 이끌고 "청하"를 건너, "박관"을 향해 진격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임치"와 "즉묵" 땅은 더 이상 대왕의 소유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제나라가 진나라로부터 한번 공격을 받게 된다면  그때는 제나라가 진나라를 섬기고 싶어도 섬길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제왕이 말하기를 : " 제나라는 구석지고 보잘 것 없는 동해 근방에 숨어 있는 나라라, 과인은 지금껏 사직을 위해

 장구한 이익에 관해 들어보지 못했소. "라고 하면서, 제왕은 '장의'의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張儀去, 西說趙王曰 : 「 敝邑秦王使使臣效愚計於大王.  大王收率天下以賓秦,

 ​秦兵不敢出函谷關十五年, 大王之威行於山東.  敝邑恐懼懾伏, 繕甲厲兵, 飾車騎, 習馳射.

 ​力田積粟, 守四封之內, 愁居懾處, 不敢動搖, 唯大王有意督過之也. 

 今以大王之力, 擧巴蜀, 幷漢中, 包兩周, 遷九鼎, 守白馬之津.

 (장의거, 서세조왕왈 : 「 폐읍진왕사사신효우계어대왕.  대왕수솔천하이빈진,

 진병불감출함곡관십오년, 대왕지위행어산동. 폐읍공구섭복, 선갑려병, 식거기, 습치사.

 ​역전적속, 수사봉지내, 수거섭처, 불감동요, 유대왕유의독과지야. 

 금이대왕지력, 거파촉, 병한중, 포양주, 천구정, 수백마지진.


 ['장의'는 제나라를 떠나 서쪽의 조나라로 가서 조왕에게 유세하기를 : " 우리 진나라 왕께서는 신을 사자로 삼아

 대왕께 어리석은 계책이나마 올리라고 명하셨습니다. 대왕께서는 천하의 제후들을 이끌고 우리 진나라를

 배척하였기에 우리 진나라 군사들은 감히 "함곡관" 밖으로 나오지 못한지가 벌써 15년이나 되었으며,

 ​대왕의 위엄은 산동에 두루 미치고 있습니다. 우리 진나라는 이를 두려워하여 땅에 엎드려 갑옷과 무기를 

 수선하고 군사를 단련시켰으며 또한 병거와 기마를 손질하여 말타기와 활쏘기를 연습시켰습니다.

 힘써 농사를 지어 양식을 비축하고 사방의 나라 안을 지키며 근심과 두려움 속에 살면서도 

 감히 동요하지 않은 것은, 오직 대왕께서 우리 진나라의 허물을 꾸짖는 조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대왕께서 우리의 국력을 신장시켜주신 덕분에 우리 진나라는 "파", "촉"을 얻고, "한중"을 병합하였으며

 동주와 서주를 포용하여, 천자를 상징하는 보물인 구정을 옮기기 위해 "백마"의 나루터를 지키게 되었습니다.


 秦雖僻遠, 然而心忿含怒之日久矣.  今秦有敝甲凋兵, 軍於澠池, 願渡河踰漳, 據番吾,

 會邯鄲之下, 願以甲子合戰, 以正殷紂之事.  敬使使臣先聞左右. 凡大王之所信爲從者恃蘇秦,

 蘇秦熒惑諸侯, 以是爲非, 以非爲是, 欲反齊國, 而自令車裂於市.  夫天下之不可一亦明矣.

 (진수벽원, 연이심분함노지일구의.  금진유폐갑조병, 군어민지, 원도하유장, 거번오,

 회한단지하, 원이갑자합전, 이정은주지사.  경사사신선문좌우. 범대왕지소신위종자시소진,

 소진형혹제후, 이시위비, 이비위시, 욕반제국, 이자령거열어시. 부천하지불가일역명의. 


 [진나라가 비록 외지고 먼 변방의 나라이지만, 오랫동안 마음에 분함과 원한을 품고 지내왔습니다. 

 지금 진나라의 무장한 군사들이 비록 피곤하고 쇠퇴해 보이지만, 그 군사들을 "민지"에 주둔시켜 잠시 휴식을 

 취하게 한 다음, 바라는 것은 "하수"를 건너고 "장하"를 넘어 "번오"를 근거지로 하여 "한단"성 아래에 모여서,

 ​갑자일에 조군과 대전하여 결판을 내려고 하는 것이므로, 이는 마치 주나라의 '무왕'이 은나라의 '주왕'을 

 정벌하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진왕께서는 신을 사신으로 보내 미리 좌우 측근에게 알려드리는 것입니다.

 무릇 대왕께서 합종의 유리함을 믿고 따른 것은 '소진'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진'은 제후들을 현혹시켜 옳은 것을 옳지 않다 하고 옳지 않은 것을 옳다고 하여,
 제나라에 들어가 반역을 꾀하려다 일이 발각되자 자청하여 저잣거리에서 거열형에 처해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런 '소진'의 합종론으로는 천하를 하나로 만들 수 없었음은 처음부터 명백한 일이었습니다.

 

 今楚與秦爲昆弟之國, 而韓·梁稱爲東藩之臣, 齊獻魚鹽之地.  此斷趙之右臂也. 

 夫斷右臂而與人鬪, 失其黨而孤居, 求欲毋危, 豈可得乎 ? 今秦發三將軍, 其一軍塞午道,

 告齊使興師渡淸河, 軍於邯鄲之東.  一軍軍成皐, 驅韓·梁軍於河外.  一軍軍於澠池,

 約四國爲一以攻趙, 趙服, 必四分其地. 是故不敢匿意隱情, 先以聞於左右, 臣竊爲大王計,

 莫如與秦王遇於澠池, 面相見而口相結.  請案兵無攻, 願大王之定計.」

 (금초여진위곤제지국, 이한·량칭위동번지신, 제헌어염지지.  차단조지우비야. 

 부단우비이여인투, 실기당이고거, 구욕무위, 개가득호 ? 금진발삼장군, 기일군색오도,

 고제사흥사도청하, 군어한단지동. 일군군성고, 구한·량군어하외.  일군군어민지,

 약사국위일이공조, 조복, 필사분기지. 시고불감익의은정,선이문어좌우, 신절위대왕계,

 막여여진왕우어민지, 면상견이구상결. 청안병무공, 원대왕지정계.」)


 [이제 초나라와 진나라는 형제 나라가 되었고, 한, 위나라는 진나라의 동쪽을 지키는 신하의 나라라고 칭했으며, 

 ​제나라는 물고기와 소금이 생산되는 땅을 진나라에 헌상하였습니다. 이는 조나라의 오른 팔이 되기를

 거절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릇 오른 팔이 잘리고도 다른 사람과 싸우기를 계속하고,

 자기편을 잃고 고립에 처해 있으면서도 위태롭지 않기를 바란다면 어찌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겠습니까 ?

 이제 진나라는 세 장군을 보내서, 그 한 부대는 "오도"의 통행을 막고, 제나라에 통고하여 그들로 하여금

 군사를 일으켜 "청하"를 건너, 조나라 "한단" 동쪽으로 진격시키고, 다른 한 부대의 병력은 "성고"에 주둔하면서

 한나라와 위나라 군대로 하여금 조나라를 황하 외곽으로 몰아낼 것입니다. 나머지 한 개 부대의 병력은 "민지"에

 주둔시키고, 이어서 진, 제, 한, 위나라는 서로 연합하여 조나라를 공격하여 굴복시킨 후에 반드시 그 땅을 넷으로

 나누어 가지려고 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우리는 감히 그 계획을 숨기지 않고 먼저 측근에게 알려드리는 이유는,

 신이 진심으로 대왕을 위한 계책으로, 진왕과 "민지"에서 회맹하여 서로 얼굴을 맞대어 직접 구두로써

 서로 친선을 맺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청컨대 진나라 군사들이 먼저 공격하는 일이 없도록 대왕께서 결정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趙王曰 : 「 先王之時, 奉陽君專權擅勢, 蔽欺先王, 獨擅綰事.  寡人居屬師傅, 不與國謀計. 

 先王弃羣臣, 寡人年幼, 奉祀之日新, 心固竊疑焉. 以爲一從不事秦, 非國之長利也. 

 乃且願變心易慮, 割地謝前過以事秦. 方將約車趨行, 適聞使者之明詔. 」 趙王許張儀.

 (조왕왈 : 「 선왕지시, 봉양군전권천세, 폐기선왕, 독천관사.  과인거속사부, 불여국모계. 

 선왕기군신, 과인년유, 봉사지일신, 심고절의언. 이위일종불사진, 비국지장리야. 

 내차원변심역려, 할지사전과이사진. 방장약거추행, 적문사자지명조. 」 조왕허장의.)


 [조왕이 말하기를 : " 선왕 '숙후' 때 아우 '봉양군'이 제멋대로 권력을 휘둘러 선왕을 속이고 정사를 독단하였소. 

 ​과인은 당시 궁궐에 기거하면서 스승으로부터 공부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함께 계책을 꾀할 수 없었소. 

 선왕께서 작고하시자 과인은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고, 종묘에 제사를 받든 지가 얼마 되지 않아 합종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 마음속으로 의심하는 바가 없지 않았었소. 그러나 합종책만을 쫓아 진나라를 받들지

 않는 것은 국가의 먼 장래에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었소. 그래서 마음을 바꿔 의심을 털어 버리고

 ​조나라의 영토를 나누어 옛날의 과오를 사과하고 진나라를 섬기기를 원하였소. 그리하여 마침 수레를 마련하여

 진나라로 들어가 죄를 청하려고 하는 차제에 사자로 온 그대의 밝은 가르침을 받게 된 것이오."라고 하면서. 

 조왕은 '장의'의 연횡책을 승낙하였다.]

 

 張儀乃去, 北之燕, 說燕昭王曰 : 「 大王之所親莫如趙, 昔趙襄子嘗以其姊爲代王妻. 

 欲幷代, 約與代王遇於句注之塞, 乃令工人作爲金斗, 長其尾, 令可以擊人. 

 與代王飮, 陰告廚人曰, 『 卽酒酣樂, 進熱啜, 反斗以擊之. 』 於是酒酣樂, 進熱啜, 廚人進斟, 因反斗以擊代王, 殺之. 

 王腦塗地. 其姊聞之, 因摩笄以自刺.  故至今有摩笄之山, 代王之亡, 天下莫不聞. 

 夫趙王之很戾無親, 大王之所明見.  且以趙王爲可親乎.

 (장의내거, 북지연, 세연소왕왈 : 「 대왕지소친막여조, 석조양자상이기자위대왕처. 

 욕병대, 약여대왕우어구주지새, 내령공인작위금두, 장기미, 령가이격인.

 여대왕음, 음고주인왈, 『 즉주감락, 진열철, 반두이격지. 』 어시주감락, 진열철, 주인진짐, 인반두이격대왕, 살지. 

 왕뇌도지. 기자문지, 인마계이자자.  고지금유마계지산, 대왕지망, 천하막불문. 

 부조왕지흔려무친, 대왕지소명견.  차이조왕위가친호.


 ['장의'는 다시 조나라를 떠나 북쪽의 연나라로 가서 연나라 '소왕'에게 유세하기를 : " 대왕께서 가장 친하게

 교제하는 나라 중에 조나라보다 더 한 나라는 없습니다. 그러나 조나라는 옛날 '조양자'(무휼) 때에

 그의 누이를 왕의 부인으로 대신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대나라를 병합하려는 욕심으로 대나라 왕과

 "구주산"의 성채에서 만나 회맹하기로 약속하면서 한편으로는 공인에게 명하여 쇠로 된 국자를 만들게 하고

 그 자루를 길게 하여 사람을 공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조양자'가 대나라 왕과 술을 마시면서 아무도 몰래

 요리사에게 말하기를 '술자리가 한창 흥겨워질 때 뜨거운 국을 올린다고 하면서, 국자의 자루를 거꾸로 잡아
 대나라 왕을 공격하라' 라고 했습니다.  이윽고 술자리가 거나하게 흥이 올랐을 때 요리사가 뜨거운 국을 올리고

 다시 술을 따르다가 국자의 자루를 거꾸로 잡고 대나라 왕을 내리쳐 죽였습니다. 대나라 왕의 머리는 깨져

 골수가 땅에 쏟아졌습니다. '조양자'의 누이는 그 소식을 듣고 비녀를 날카롭게 갈아서 목을 찔러 자결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마계"라는 이름의 산이 있습니다. 대나라 왕이 그렇게 죽은 것은 천하에 모르는 자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조왕이 포악하고 인정이 없다는 사실은 대왕께서 분명히 아시고 계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물며 그런 조왕과 어떻게 친하게 지낼 수 있겠습니까 ?

 

 趙興兵攻燕, 再圍燕都而劫大王, 大王割十城以謝.  今趙王已入朝澠池, 效河閒以事秦. 

 今大王不事秦, 秦下甲雲中九原, 驅趙而攻燕, 則易水長城非大王之有也.

 ​且今時趙之於秦猶郡縣也, 不敢妄擧師以攻伐.  今王事秦, 秦王必喜, 趙不敢妄動. 

 是西有彊秦之援, 而南無齊·趙之患, 是故願大王孰計之. 」

 (조흥병공연, 재위연도이겁대왕, 대왕할십성이사.  금조왕이입조민지, 효하간이사진. 

 금대왕불사진, 진하갑운중구원, 구조이공연, 즉이수장성비대왕지유야.

 ​차금시조지어진유군현야, 불감망거사이공벌.  금왕사진, 진왕필희, 조불감망동. 

 시서유강진지원, 이남무제·조지환, 시고원대왕숙계지.」


 [일찍이 조나라는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공격하여 두 번이나 "연도"(북경)를 포위함으로 해서 대왕을 

 위협했으므로 대왕께서는 10개의 성을 떼어 주고 사죄를 했습니다. 

 지금 조왕은 이미 진나라에 들어가 "민지"에서 진왕에게 조현을 올리며 "하간"의 땅을 바치고 

 진나라를 섬기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만약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기지 않는다면,

 진나라는 무장 군사를 "운중"과 "구원"으로 내려 보내서 조나라를 내세워 연나라를 공격하게 하면 

 "이수"와 "장성"은 결코 대왕의 영토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지금 조나라의 처지는 진나라의 군· 현과 같아서

 진나라의 허락 없이는 감히 함부로 군사를 일으켜 연나라를 침략할 수 없습니다.  

 이제 대왕께서 진나라를 섬긴다면 진왕은 틀림없이 기뻐할 것이고 조나라도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서쪽에는 강력한 진나라의 지원이 있을 것이며, 

 남쪽으로는 제나라와 조나라로부터 근심이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대왕께서는 이 계책(연횡)에 대해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燕王曰 : 「 寡人蠻夷僻處, 雖大男子裁如嬰兒, 言不足以采正計. 

 今上客幸敎之, 請西面而事秦. 」  獻恆山之尾五城, 燕王聽儀.
 (연왕왈 : 「 과인만이벽처, 수대남자재여영아, 언불족이채정계. 

 상객행교지, 청서면이사진. 」  헌긍산지미오성, 연왕청의.)


 [연왕이 말하기를 : " 과인은 외지고 궁벽한 오랑캐 땅에 살고 있어, 비록 신체는 장부와 같으나 그 분별력은

 마치 어린아이와 같아 올바른 계책을 분간할 수가 없었소. 이제 상객께서 가르침을 주셨으니 바라건대

 서쪽을 향하여 진나라를 섬길 것이오.”라고 하였다. 이어 연왕은 "항산" 기슭에 있는 5개의 성을 진나라에 바치고,

 '장의'의 연횡책을 따르기로 하였다.]

 

 儀歸報, 未至咸陽而秦惠王卒, 武王立.  武王自爲太子時不說張儀, 及卽位,

 羣臣多讒張儀曰 : 「 無信, 左右賣國以取容, 秦必復用之, 恐爲天下笑. 」
 (의귀보, 미지함양이진혜왕졸, 무왕입.  무왕자위태자시불열장의, 급즉위,

 군신다참장의왈 : 「 무신, 좌우매국이취용, 진필부용지, 공위천하소. 」)


 ['장의'는 보고를 하려고 진나라로 돌아왔는데, 미처 "함양"에 도착하기 전에 진'혜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였다. 무왕은 태자시절부터 장의를 좋아하지 않았으므로, 무왕이 즉위하자 

 여러 군신들이 '장의'를 비방하며 말하기를 : " 장의는 신의가 없고, 여기저기에 나라를 팔며 

 자기의 출세를 위해 남의 환심을 사려는 데만 힘썼으므로, 만일 진나라가 다시 그를 등용한다면, 

 아마도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라고 하였다.]

 

 諸侯聞張儀有卻武王, 皆畔衡, 復合從.  秦武王元年, 羣臣日夜惡張儀未已. 

 而齊讓又至, 張儀懼誅, 乃因謂秦武王曰 : 「 儀有愚計, 願效之. 」
 (제후문장의유각무왕, 개반횡, 부합종.  진무왕원년, 군신일야오장의미이. 

 이제양우지, 장의구주, 내인위진무왕왈 : 「 의유우계, 원효지. 」)


 [제후들은 '장의'와 '무왕' 사이에 틈이 생겼다는 사실을 듣고 모두 연횡을 반대하며 다시 합종을 하기에 이르렀다.

 ​진'무왕' 원년에 대신들이 밤낮으로 '장의'를 비방하며 욕하기를 그치지 않은 상태에서 제나라가 사자를 보내

 '장의'를 질책하였다. '장의'는 혹시라도 죽음을 당하지 않을까 겁내며 무왕에게 말하기를 :

 " 신에게 어리석으나마 한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원컨대 대왕께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라고 하였다.]

 

 王曰 : 「 柰何. 」  對曰 : 「 爲秦社稷計者, 東方有大變, 然後王可以多割得地也. 

 今聞齊王甚憎儀, 儀之所在, 必興師伐之.  故儀願乞其不肖之身之梁, 齊必興師而伐梁.

 梁· 齊之兵連於城下, 而不能相去.  王以其閒伐韓, 入三川, 出兵函谷而毋伐, 以臨周, 祭器必出. 

 挾天子, 按圖籍, 此王業也. 」 秦王以爲然, 乃具革車三十乘, 入儀之梁.

 (왕왈 : 「 내하. 」  대왈 : 「 위진사직계자, 동방유대변, 연후왕가이다할득지야. 

 금문제왕심증의, 의지소재, 필흥사벌지.  고의원걸기불초지신지량, 제필흥사이벌량.

 ​량· 제지병연어성하, 이불능상거.  왕이기한벌한, 입삼천, 출병함곡이무벌, 이임주, 제기필출. 

 협천자, 안도적, 차왕업야. 」 진왕이위연, 내구혁거삼십승, 입의지량. )


 [진왕이 말하기를 : " 무엇이오 ? "라고 하자.  
 '장의'가 대답하기를 : " 진나라의 사직을 위한 계책이온데, 동쪽에서 큰 변란이 일어난다면 대왕께서는 제후들의

 많은 토지를 거두어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들리는 바로는 제왕이 이 '장의'를 매우 미워하는 모양입니다. 

 그래서 '장의'가 있는 곳이라면 제왕은 틀림없이 군사를 보내 그 곳을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원하옵건데 이 불초한 몸이 위나라에 가는 것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제나라는 반드시 신이 머물고 있는 위나라를 공격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위나라와 제나라 군사가 성 밑에서 서로 밀고 당기고 하면서 떠날 수 없을 것입니다. 

 대왕께서 이를 이용하여 한나라를 정벌하고 "삼천"으로 들어가 군사를 "함곡관" 밖으로 끌어내 굳이 

 싸울 것도 없이 주나라에 들어가게 되면, 천자의 제기들을 반드시 진나라에 가져다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천자를 끌어안고  천하의 지도와 호적 정리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제왕의 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진'무왕'은 '장의'의 말을 옳다고 생각하여 그에게 가죽으로 장식한 수레 30승을 내어주며 위나라로 가게 하였다.]

 

 齊果興師伐之.  梁哀王恐, 張儀曰 : 「 王勿患也, 請令罷齊兵. 」 

 乃使其舍人馮喜之楚, 借使之齊, 謂齊王曰 : 「 王甚憎張儀, 雖然, 亦厚矣王之託儀於秦也. 」

 ​齊王曰 : 「 寡人憎儀, 儀之所在, 必興師伐之,  何以託儀. 」
 (제과흥사벌지.  량애왕공, 장의왈 : 「 왕물환야, 청령파제병. 」 

 내사기사인풍희지초, 차사지제, 위제왕왈 : 「 왕심증장의, 수연, 역후의왕지탁의어진야.」

 ​제왕왈 : 「 과인증의, 의지소재, 필흥사벌지,  하이탁의. 」)


 [그러자 제나라가 과연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공격하였다. 위'애왕'이 두려워하자, '장의'는 말하기를 :

 " 대왕께서는 너무 근심하지 마십시오. 신이 제나라의 군대가 물러가도록 청해 보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장의'는 곧바로 자기의 집사로 있는 '풍희'를 초나라에 보내, 초왕의 사자 명의를 빌려 제나라로 들여보내

 제왕에게 말을 전하기를 : " 대왕께서는 '장의'를 대단히 미워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왕께서는

 진왕보다도 더 많이 '장의'에게 의탁하고 계십니다. "라고 하였다.

 제왕이 묻기를 : " 과인은 '장의'를 미워하오, 그래서 '장의'가 있는 곳은 어디를 막론하고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그를 공격하고 있는데, 어째서 과인이 '장의'에게 의탁하고 있을거라 말하는 것이오."라고 하자.]

 

 對曰 : 「 是乃王之託儀也.  夫儀之出也, 固與秦王約曰,『 爲王計者, 東方有大變,

 然後王可以多割得地.  今齊王甚憎儀, 儀之所在, 必興師伐之. 故儀願乞其不肖之身之梁,

 齊必興師伐之, 齊梁之兵連於城下, 而不能相去. 王以其閒伐韓, 入三川, 出兵函谷而無伐, 以臨周,

 祭器必出.  挾天子, 案圖籍, 此王業也. 』秦王以爲然, 故具革車三十乘, 而入之梁也. 今儀入梁,

 王果伐之. 是王內罷國而外伐與國, 廣鄰敵以內自臨, 而信儀於秦王也. 此臣之所謂, 託儀也. 」

 (대왈 : 「 시내왕지탁의야.  부의지출야, 고여진왕약왈,『 위왕계자, 동방유대변,

 연후왕가이다할득지.  금제왕심증의, 의지소재, 필흥사벌지. 고의원걸기불초지신지량,

 제필흥사벌지, 제량지병연어성하, 이불능상거. 왕이기한벌한, 입삼천, 출병함곡이무벌, 이임주,

 제기필출.  협천자, 안도적, 차왕업야. 』진왕이위연, 고구혁거삼십승, 이입지량야. 금의입량,

 왕과벌지. 시왕내파국이외벌여국, 광린적이내자임, 이신의어진왕야. 차신지소위, 탁의야.」)

 

 [이에 '풍희'가 대답하기를 : " 그것이 바로 대왕께서 '장의'에게 의탁하고 있음입니다. 

 무릇 '장의'가 진나라에서 위나라로 떠날 때 진왕과 약속하며 말하기를 '대왕을 위한 계책을 올리자면,

 동방에 큰 변란이 일어나게 되면 대왕께서는 많은 땅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지금 제나라 왕이 신을 매우 미워하여

 이 '장의'가 있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던지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공격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은 바라옵건대

 불초한 이 몸을 위나라에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제나라는 반드시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공격할 것이고,
 제나라와 위나라의 군사가 위나라의 성 아래에서 서로 밀고 당기며 떠날 수 없게 되면 대왕께서는 그 틈을 

 이용하여 한나라를 공격하여 "삼천"으로 들어가 군사를 "함곡관" 밖으로 끌어내 굳이 싸울 것도 없이 

 주나라에 들어가서, 천자의 제기들을 반드시 진나라에 가져다 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천자를 끌어안고 천하의 호적과 지도를 정비한다면 그것이 바로 왕업을 이루게 되는 일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진왕이 '장의'의 말이 옳다고 여겨 가죽으로 장식한 수레 30승을 주어 위나라로 보냈습니다. 

 지금 '장의'가 위나라에 머물자 대왕께서는 과연 군사를 일으켜 위나라를 공격하고 계시니, 

 이것은 대왕께서는 안으로는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고 밖으로는 이웃의 우호국을 쳐서 적국의 영토를 넓혀주는데

 스스로 가담함으로 해서 진왕이 '장의'를 신임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은 대왕께서 ‘장의'의 말에 의탁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齊王曰善, 乃使解兵. 張儀相魏一歲, 卒於魏也. 

 ​陳軫者, 游說之士, 與張儀俱事秦惠王, 皆貴重, 爭寵.
 (제왕왈선, 내사해병.  장의상위일세, 졸어위야. 

 진진자, 유세지사, 여장의구사진혜왕, 개귀중, 쟁총.)


 [제왕은 '풍희'의 말을 옳다고 여겨 즉시 군사들을 해산시켰다. '장의'는 위나라의 재상으로 있다가

 1년 후에 그곳에서 죽었다. '진진'은 제후들을 찾아다니며 유세를 일로 하는 사람이었으며, 

 '장의'와 함께 진'혜왕'을 섬기면서 두 사람 모두 중용되어 서로 왕의 총애를 다투었다.]

 

 張儀惡陳軫於秦王曰 : 「 軫重幣輕使秦·楚之閒, 將爲國交也. 

 今楚不加善於秦而善軫者, 軫自爲厚而爲王薄也.  且軫欲去秦而之楚, 王胡不聽乎 ? 」
 (장의오진진어진왕왈 : 「 진중폐경사진·초지한, 장위국교야. 

 금초불가선어진이선진자, 진자위후이위왕박야.  차진욕거진이지초, 왕호불청호 ? 」)


 ['장의'가 진혜왕 앞에서 '진진'을 헐뜯으며 말하기를 : " '진진'이 예물을 정중히 마련하여 진나라와 초나라 

 사이를 사자의 임무를 띠고 자주 왕래하고 있음은 두 나라의 수교에 공헌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초나라는 진나라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으면서도 '진진'에게는 잘 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즉 '진진'이 자신을 위해서는 후하게 하고  대왕을 위해서는 박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진진'은 진나라를 떠나 초나라에 가려고 하는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진진'에게 그 이유를 묻지 않으십니까 ? "라고 하였다.]

 

 王謂陳軫曰 : 「 吾聞子欲去秦之楚, 有之乎 ? 」  軫曰 : 「 然. 」  王曰 : 「 儀之言果信矣. 」
 (왕위진진왈 : 「 오문자욕거진지초, 유지호 ? 」  진왈 : 「 연. 」  왕왈 : 「 의지언과신의. 」)


 [진왕이 '진진'을 불러 묻기를 : " 내가 듣기로 그대는 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간다는데 사실이요 ? "라고 하자. 

 '진진'이 대답하기를 : “ 사실입니다. ”라고 하였고.  

 이에 진왕이 말하기를 : " '장의'의 말이 과연 사실이었구나 !"라고 하였다.]

 

 軫曰 : 「 非獨儀知之也, 行道之士盡知之矣.  昔子胥忠於其君, 而天下爭以爲臣,

 曾參孝於其親, 而天下願以爲子.  故賣僕妾不出閭巷而售者, 良僕妾也. 出婦嫁於鄕曲者, 良婦也.

 今軫不忠其君, 楚亦何以軫爲忠乎 ? 忠且見弃, 軫不之楚何歸乎 ? 」 王以其言爲然, 遂善待之.

 (진왈 : 「 비독의지지야, 행도지사진지지의.  석자서충어기군, 이천하쟁이위신,

 증삼효어기친, 이천하원이위자.  고매복첩불출여항이수자, 량복첩야. 출부가어향곡자, 량부야. 

 금진불충기군, 초역하이진위충호 ? 충차견기, 진불지초하귀호 ? 」 왕이기언위연, 수선대지.)


 ['진진'이 말하기를 : " 이 일은 유독 '장의' 혼자만 알고 있는 일이 아니라, 길 가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옛날 '오자서'는 그 임금에게 충성을 바쳤기 때문에 천하의 제후들은 그를 신하로 삼기 위해 다투었으며, 

 '증삼'은 그 부모에게 효성스웠기 때문에 천하 사람들은 모두 '증삼'과 같은 아들을 두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 이유로 사내 종이나 계집 종을 팔려고 할 때도 마을을 벗어나기도 전에 팔리는 종은 좋은 종입니다.

 시댁에 쫓겨난 며느리가 같은 마을에서 다른 남자와 재혼할 수 있으면, 좋은 여인입니다. 

 지금 '진진'이 충성을 다히지 못했다면, 초나라가 어찌 이 사람을 충성스럽다고 해서 불러서 쓰려고 하겠습니까 ?

 충성을 다했음에도 버림 받을 지경에 놓였으니, 이 '진진'이 초나라에 가지 않으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 "하자.

 진왕은 그 말을 듣고 과연 옳은 말이라 여겨 마침내 그를 잘 후대하였다.]

 

 居秦期年, 秦惠王終相張儀, 而陳軫奔楚.  楚未之重也, 而使陳軫使於秦. 

 過梁, 欲見犀首, 犀首謝弗見.  軫曰 : 「 吾爲事來, 公不見軫, 軫將行, 不得待異日. 」
 (거진기년, 진혜왕종상장의, 이진진분초.  초미지중야, 이사진진사어진. 

 과량, 욕견서수, 서수사불견.  진왈 : 「 오위사래, 공불견진, 진장행, 불득대이일. 」
 [진나라에 머문지 일 년이 지나자 진'혜왕'은 마침내 '장의'를 재상으로 삼았음으로 '진진'은 초나라로 달아났다. 

 초나라는 '진진'을 미처 중용하기도 전에 '진진'을 진나라에 사자로 보냈다. 

 '진진'이 위나라를 지나가다 '서수'를 만나려고 하였으나, '서수'는 만날 필요가 없다고 사절하였다.
 '진진'이 말하기를 : " 나는 일을 위해 왔는데 공께서 이 '진진'을 만나려고 하지 않으니 저는 이만 이곳을 떠나,

 부득이 후일을 기다릴 수밖에 없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犀首見之, 陳軫曰 : 「 公何好飮也 ? 」  犀首曰 : 「 無事也. 」 

 曰 : 「 吾請令公厭事可乎 ? 」  曰 : 「 柰何. 」
 (서수견지, 진진왈 : 「 공하호음야 ? 」  서수왈 : 「 무사야. 」 

 왈 : 「 오청령공염사가호 ? 」  왈 : 「 내하. 」)


 ['서수'가 이 말을 듣고 만나자 '진진'이 말하기를 : " 공은 어찌하여 술만 마십니까 ? "라고 하자. 

 '서수'는 말하기를 : " 할 일이 없기 때문이오. "라고 하였다.
 '진진'이 말하기를 : " 청컨대 제가 공으로 하여금 일에 싫증이 나도록 만들어드려도 되겠습니까 ? "라고 하자. 

 '서수'는 말하기를 : " 어떻게 말이오 ? "라고 하였다. 

 

 曰: 「 田需約諸侯從親, 楚王疑之, 未信也. 公謂於王曰 『 臣與燕趙之王有故, 數使人來曰,

 無事何不相見.  願謁行於王. 』王雖許公, 公請毋多車. 以車三十乘, 可陳之於庭, 明言之燕·趙.」

 燕·趙客聞之, 馳車告其王, 使人迎犀首.

 (왈: 「 전수약제후종친, 초왕의지, 미신야. 공위어왕왈 『 신여연조지왕유고, 수사인래왈,

 무사하불상견.  원알행어왕. 』 왕수허공, 공청무다거.  이거삼십승, 가진지어정, 명언지연·조. 」 

 연·조객문지, 치거고기왕, 사인영서수.)


 ['진진'이 말하기를 : " 위나라 재상 '전수'는 제후들과 합종을 맺으려고 하였으나 초왕이 그를 의심하여

 아직 신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께서 위왕에게 ‘ 신은 연나라와 조나라의 왕과 오래 동안 친분이 있어 왔습니다. 

 ​두 왕이 여러 번 신에게 사자를 보내 그대는 하는 일도 없으면 어찌하여 과인에게 오지 않느냐고 하였습니다. 

 원컨대 신이 연나라와 조나라의 왕들을 배알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시옵소서 ! ’라고 말하십시오.

 위왕이 비록 공에게 허락을 내려도 공은 결코 많은 거마를 청하지 마시고 30승만을 뜰에 늘어 세워,

 연나라와 조나라에 가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십시오. "라고 하였다. 
 위나라에 머물고 있던 연나라와 조나라의 사람들은 이 소문을 듣고 수레를 몰아 각기 자기나라로 달려가

 그들의 왕에게 보고하고는 사자를 보내 '서수'를 영접하도록 했다. ]

 

 楚王聞之大怒曰 : 「 田需與寡人約, 而犀首之燕·趙, 是欺我也. 」 怒而不聽其事. 

 齊聞犀首之北, 使人以事委焉.  犀首遂行, 三國相事皆斷於犀首. 軫遂至秦, 韓·魏相攻, 期年不解. 

 秦惠王欲救之, 問於左右.  左右或曰救之便, 或曰勿救便. 惠王未能爲之決, 陳軫適至秦.

 (초왕문지대노왈 : 「 전수여과인약, 이서수지연·조, 시기아야. 」 노이불청기사. 

 제문서수지북, 사인이사위언.  서수수행, 삼국상사개단어서수. 진수지진, 한·위상공, 기년불해.

 진혜왕욕구지, 문어좌우.  좌우혹왈구지편, 혹왈물구편. 혜왕미능위지결, 진진적지진.)

 

 [초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 " '전수'는 과인과 약속을 하였는데, '서수'를 연나라와 조나라에

 보냈으니 이는 나를 속이는 것이다. ”라고 하고. 분개하여 그의 합종설을 따르지 않았다. 

 제나라는 '서수'가 북쪽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사자를 보내어 제나라의 국사를 위임하려고 하였다.
 '서수'는 드디어 제나라, 연나라, 조나라의 재상이 되어 모든 일은 그에 의해 결정되었다.

 '진진'은 진나라에 도착하였으나, 한나라와 위나라가 싸움을 벌여 1년이 지나도 해결이 나지 않은 때였다.  

 진'혜왕'이 이를 구원하기 위해 좌우의 측근들에게 물었다. 어떤 자는 구원 하는 것이 이익이라 하고,

 또 어떤 자는 구원하지 않는 것이 이익이라고 말하였다. 혜왕이 아직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데,

 마침 '진진'이 진나라에 도착한 것이었다.]

 

 惠王曰 :「 子去寡人之楚, 亦思寡人不. 」 陳軫對曰 :「 王聞夫越人莊舃乎 ? 」王曰 :「不 聞.」
 (혜왕왈 : 「 자거과인지초, 역사과인불. 」  진진대왈 : 「 왕문부월인장석호 ? 」  왕왈 : 「 불문. 」)


 [혜왕이 '진진'에게 말하기를 : " 그대는 과인을 떠나서 초나라에 갔으면서도,

 ​아직까지 과인을 생각하고 있었다니 모르겠소. ”라고 하였다.
 '진진'은 묻기를 : " 대왕께서는 월나라 사람 '장석'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 "라고 하자.
 혜왕이 대답하기를 : " 들어 본적이 없소. "라고 하였다.

 

 曰 : 「 越人莊舄仕楚執珪,  有頃而病, 楚王曰 『 舃故越之鄙細人也, 今仕楚執珪, 貴富矣,

 亦思越不. 』 中謝對曰 『 凡人之思故, 在其病也, 彼思越則越聲, 不思越則楚聲. 』 

 使人往聽之, 猶尙越聲也.  今臣雖弃逐之楚, 豈能無秦聲哉. 」

 (왈 : 「 월인장석사초집규,  유경이병, 초왕왈 『석고월지비세인야, 금사초집규, 귀부의, 역사월불.』

 중사대왈 『범인지사고, 재기병야, 피사월즉월성, 불사월즉초성.』 

 사인왕청지, 유상월성야. 금신수기축지초, 개능무진성재.」)

 

 ['진진'이 말하기를 : " 월나라 사람 '장석'은 초왕을 섬겨 집규가 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병이 났습니다. 

 초왕이 묻기를 ‘장석은 본디 월나라에서 보잘것 없이 비루하게 살던 사람으로, 이제 초나라를 섬기어

 집규의 직책에 올라 부귀한 신분이 되었는데 아직까지도 월나라를 생각하는 것은 그릇되지 않은가 ? ’하고 하자, 
 초왕의 시종관 '중사'가 대답하기를 ‘ 무릇 사람이 고향을 생각할 때는 몸에 병이 들었을 때입니다. 

 그가 월나라를 생각하고 있다면 월나라 말을 할 것이고, 월나라를 잊고 있다면 초나라 말을 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초왕이 사람을 보내 그가 사용하는 말을 들어보게 하니, 그는 여전히 월나라 말을 사용하고 있었답니다. 

 지금 신이 비록 버림받아 쫓기어 초나라에 의탁하였지만, 어찌 진나라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하였다.]

 

 惠王曰 : 「 善,  今韓·魏相攻, 期年不解.  或謂寡人救之便, 或曰勿救便, 寡人不能決. 

 願子爲子主計之餘, 爲寡人計之. 」
 (혜왕왈 : 「 선,  금한·위상공, 기년불해.  혹위과인구지편, 혹왈물구편, 과인불능결. 

 원자위자주계지여, 위과인계지. 」 )


 [혜왕이 말하기를 : "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싸워 1년이 넘도록 해결이 되지 않고 있소.

 어떤 자는 과인에게 구하라 하고, 어떤 자는 구하지 말라고 하오.
 과인은 어찌할 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원컨대 그대는 왕을 위한 계책 중에 중요한 것이 있으면,

 과인을 위해서 그 계책을 알려주기 바라오. "라고 하였다. ]

 

 陳軫對曰 : 「 亦嘗有以夫卞莊子刺虎聞於王者乎? 莊子欲刺虎, 館豎子止之曰

『兩虎方且食牛, 食甘必爭, 爭則必鬪, 鬪則大者傷, 小者死, 從傷而刺之, 一擧必有雙虎之名』
 (진진대왈 : 「 역상유이부변장자자호문어왕자호 ?  장자욕자호, 관수자지지왈

『 양호방차식우, 식감필쟁, 쟁즉필투, 투즉대자상, 소자사, 종상이자지, 일거필유쌍호지명. 』


 ['진진'이 말하기를 : " 혹시 대왕께서는 일찍이 '변장자'가 호랑이를 찔러 죽이려고 했던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으십니까 ?  '장자'가 호랑이를 찔러 죽이려고 하자, 

 객사의 어린 종놈이 말리면서 말하기를 ‘두 호랑이가 장차 소를 먼저 먹으려고 하는데,
 일단 맛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반드시 서로 다투게 되고, 다투면 반드시 싸우게 되고,

 싸우게 되면 큰 놈은 부상을 입게 되고 작은 놈은 죽게 될 것이니,

 그때를 기다렸다가 부상을 입은 놈을 찔러서 잡으면 한 번에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았다는 명성을

 얻게 될것입니다. ’라고 하였답니다.

 

 卞莊子以爲然, 立須之.  有頃, 兩虎果鬪, 大者傷, 小者死. 

 莊子從傷者而刺之, 一擧果有雙虎之功.  今韓·魏相攻, 期年不解, 是必大國傷, 小國亡.
 (변장자이위연, 입수지.  유경, 양호과투, 대자상, 소자사. 

 장자종상자이자지, 일거과유쌍호지공.  금한·위상공, 기년불해, 시필대국상, 소국망.


 ['변장자'는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서서 호랑이를 기다렸습니다. 

 얼마 안 되어  과연 두 호랑이가 서로 싸우더니 큰 놈은 상처를 입고 작은 놈은 죽었습니다.
 '변장자'는 상처 입은 호랑이에게 달려들어 칼로 찔러 죽여, 한 번에 두 마리의 호랑이를 잡는 공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싸워 일 년이 지나도 해결이 나지 않았다면

 반드시 큰 나라는 상처를 입고 작은 나라는 망할 것입니다.

 

 從傷而伐之, 一擧必有兩實.  此猶莊子刺虎之類也, 臣主與王何異也. 」 

 惠王曰 : 「 善. 」 卒弗救.  大國果傷, 小國亡.  秦興兵而伐, 大剋之, 此陳軫之計也.
 (종상이벌지, 일거필유양실.  차유장자자호지류야, 신주여왕하이야. 」 

 혜왕왈 : 「 선. 」 졸불구.  대국과상, 소국망.  진흥병이벌, 대극지, 차진진지계야. )


 [상처를 입은 나라를 정벌하시면 반드시 한꺼번에 두 나라를 얻는 실리를 취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변장자'가 호랑이를 잡는 방법과 같은 계책으로, 신이 왕을 위해 바치는 계책과

 초왕을 위해 바치는 계책이 어찌 다르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라고 하였다.
 혜왕이 말하기를 : “ 옳은 말이오. "라고 하면서.  결국 두 나라를 구해 주지 않았다. 

 과연 큰 나라는 상처를 입고, 작은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이에 진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대국을

 정벌하여 크게 이겼다.  이 일은 바로 '진진'의 계책에 따른 것이었다. ]


 犀首者, 魏之陰晉人也, 名衍, 姓公孫氏.  與張儀不善.  張儀爲秦之魏, 魏王相張儀. 

 犀首弗利, 故令人謂韓公叔曰 : 「 張儀已合秦·魏矣, 其言曰 『 魏攻南陽, 秦攻三川. 』
 (서수자, 위지음진인야, 명연, 성공손씨.  여장의불선.  장의위진지위, 위왕상장의. 

 서수불리, 故令人謂韓公叔曰 : 「 장의이합진·위의, 기언왈 『 위공남양, 진공삼천. 』


 ['서수'는 위나라 "음진" 사람으로 이름은 '연' 성은 공손씨이다.  장의와는 사이가 좋지 않았다.

 '장의'가 진나라를 위해 위나라로 들어가자,위왕은 '장의'를 재상으로 삼았다. 

 '서수'는 그 일이 자기에게 불리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사람을 시켜 한나라 '공숙'에게

 말하게 하기를 : " '장의'는 이미 진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연횡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위나라가 한나라의 "남양"을 공격하면 진나라는 한나라의 "삼천"을 공격하면

 한나라는 반드시 망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魏王所以貴張子者, 欲得韓地也.  且韓之南陽已擧矣, 子何不少委焉以爲衍功. 

 則秦魏之交可錯矣, 然則魏必圖秦而弃儀, 收韓而相衍. 」
 (위왕소이귀장자자, 욕득한지야.  차한지남양이거의, 자하불소위언이위연공. 

 즉진위지교가착의, 연즉위필도진이기의, 수한이상연. 」


 [위왕이 '장의'를 귀하게 여기는 이유는 한나라 땅을 얻고 싶어서입니다. 

 이제 한나라의 "남양"은 곧 침략을 받을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대는 어찌하여 국사를 조금이나마 이 '공손연'에게 맡겨 공을 세울 기회를 주지 않습니까 ?

 제 말대로 한다면 진나라와 위나라가 서로 연횡을 맺는 일을 그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위나라는 필시 '장의'를 버리고 한나라와 친해 질 것이며,

 이 '연'은 위나라의 재상이 될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公叔以為便, 因委之犀首以爲功.  果相魏, 張儀去.  義渠君朝於魏. 

 犀首聞張儀復相秦, 害之, 犀首乃謂義渠曰 :「 道遠不得復過, 請謁事情曰, 中國無事,

 秦得燒掇焚杅君之國, 有事, 秦將輕使重幣事君之國. 」  
 (공숙이위편, 인위지서수이위공.  과상위, 장의거.  의거군조어위. 

 서수문장의복상진, 해지, 서수내위의거군왈 :「 도원불득부과, 청알사정왈, 중국무사,

 진득소철분우군지국, 유사, 진장경사중폐사군지국. 」


 [ '공숙'은 '서수'의 말이 옳다고 생각해서 "남양"의 땅을 그에게 맡겨 공을 세우도록 했다.

 '서수'는 결국 위나라의 재상이 되고 '장의'는 위나라를 떠나 진나라로 돌아왔다.
 "의거"(서융의 일족)의 군주가 조현을 올리기 위해 위나라에 들어왔다.

 마침 '장의'가 진나라의 재상 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들은 '서수'는 자기에게 해가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의거"의 군주를 만나 말하기를 : " 군주님의 나라는 이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다시 오기 힘들 것 같으니,

 청컨대 중원의 정세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중원의 제후국들이 진나라를 정벌하는 일이

 없다면 진나라는 분명 군주님의 나라를 파괴하고 집들을 불사를 것입니다.
 그러나 중원의 제후국들이 진나라를 정벌하게 된다면 진나라는 빠르게 막대한 예물과 함께

 사자를 보내 군주님을 달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其後五國伐秦.  會陳軫謂秦王曰 : 「 義渠君者, 蠻夷之賢君也, 不如賂之以撫其志. 」 

 秦王曰 : 「 善. 」  乃以文繡千純, 婦女百人遺義渠君.
 (기후오국벌진.  회진진위진왕왈 : 「 의거군자, 만이지현군야, 불여뢰지이무기지. 」 

 진왕왈 : 「 선. 」  내이문수천치, 부녀백인유의거군. )


 [그 후 다섯 나라가 합종을 맺고 진나라를 공격했다. 

 때마침 '진진'이 진왕에게 말하기를 : "의거"의 군주는 오랑캐 나라의 현명한 군주이므로,
 뇌물을 보내어 달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진왕은 말하기를 : "좋소." 하며.  "의거"의 군주에게 수 놓은 채색비단 천 필과 미녀 백명을 보냈다.]

 

 義渠君致羣臣而謀曰 : 「 此公孫衍所謂邪 ? 」  乃起兵襲秦, 大敗秦人李伯之下. 

 張儀已卒之後, 犀首入相秦.  嘗佩五國之相印, 爲約長.
 (의거군치군신이모왈 : 「 차공손연소위야 ? 」  내기병습진, 대패진인이백지하. 

 장의이졸지후, 서수입상진.  상패오국지상인, 위약장. )


 ["의거"의 군주는 신하들을 불러서 계책에 대해 말하기를 : " 이것이야말로 전에 '공손연'이 예언했던

 바가 아닌가 ? "라고 하며.  즉시 군사를 일으켜 진나라를 기습하여 진군을 '이백'의 성 아래에서

 크게 무찔렀다.  '장의'가 죽은 후, '서수'는 진나라에 들어가 재상이 되었다.
 일찍이 그는 다섯 나라 재상의 인수를 차고 합종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

 


 太史公曰 : 「 三晉多權變之士.  夫言從衡彊秦者, 大抵皆三晉之人也.  夫張儀之行事甚於蘇秦,

 然世惡蘇秦者, 以其先死, 而儀振暴其短以扶其說, 成其衡道.  要之, 此兩人眞傾危之士哉. 」
 
(태사공왈 : 「 삼진다권변지사.  부언종횡강진자, 대저개삼진지인야.  부장의지행사심어소진,

 연세오소진자, 이기선사, 이의진폭기단이부기세, 성기횡도. 요지, 차양인진경위지사재. 」 )


 
[태사공이 말하기를 : " 삼진(한, 조, 위)에는 권무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유세가가 많았다. 
 무릇 합종이나 연횡을 부르짖어 진나라를 강하게 만든 인물들은 모두 삼진 출신이었다. 

 대체로 '장의'가 행한 일들은 '소진'이 행한 것보다 더 심하였으나,  세상 사람들이 '소진'을 더

 싫어한 이유는 그가 먼저 죽었기 때문에 '장의'가 '소진'의 단점을 선전하고 폭로하여

 자기의 유세를 유리하게 하여 연횡을 이루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이 두 사람은 진실로 나라를 위험에 빠뜨린 위험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 

 

 

【 각주 】

1) 장의(張儀) : 당시 초나라의 재상은 소양(昭陽)이다. 초회왕(楚懷王) 때 주국(柱國)을 역임했다.  

    회왕6년 기원전 323년 군사를 이끌고 위(魏)를 공격하여 8개의 고을을 점령했다.  

    승세를 타고 군사를 돌려 제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자 제왕(齊王)이 두려워했다.  

    제왕은 진진(秦軫)을 보내 유세하게 하여 그로 하여금 군사를 거두어 돌아가게 하였다.  

2) 명첩(名帖) : 중국 고대의 명함의 일종으로 관리나 지체가 높은 사람의 접견을 청할 때 사용하는 명패다.

3) 저(苴) : 촉족(蜀族)의 한 지파가 새운 나라로 지금의 사천성 가맹(葭萌)에 있었다.  

    일설에는 파군(巴郡)이라는 설도 있다.  

4) 십곡(什谷) : 지금의 하남성 공현(鞏縣) 동북에 있는 계곡명이다.

5) 둔류(屯留) : 지금의 산서성 둔류현 남쪽에 옛 고성이 남아있다.  

    산서와 산동을 가르는 태항산맥 위로 나있던 양장판(羊腸阪)의 길목을 막을 수 있었던 전략상의 요충지다.  

5) 구정(九鼎) : 중국(中國)의 우왕(禹王) 때에 구주(九州)에서 금을 모아 만든 솥.  

    하(夏)ㆍ은(殷) 이래(以來)로 천자(天子)에게 전(傳)하여 오는 보물(寶物)임  

6) 양장판(羊腸坂) : 태항산맥 능선 위로 난 도로 이름이다. 3 곳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첫 번째 길은 산서성  

    진성현(晉城縣) 남쪽에 나 있고, 두 번째 길은 호관현(壺關縣) 동남이고, 세 째번 길은 평순현(平順縣) 동남으로     

    양장색(羊腸塞)이라는 별명을 갖오 있다. 전국시대에 지칭하는 양장판이라는 함은 첫 번째의 진성현에 나 있는  

    길을 지칭했다. 손자오기열전에 ‘ 하걸(河桀)의 나라는 왼쪽에서 하수(河水)와 제원(濟源)을 끼고 있고,  

    오른 쪽으로는 태주(泰州)와 화주(華州)를, 남쪽으로는 이궐(伊闕), 북쪽으로 양장(羊腸)에 이르렀다.  

7) 의양(宜陽) : 전국(戰國) 때 한나라가 신정성(新鄭城)으로 천도하기 전의 도성(都城)으로 한(韓)나라의 중요한  

    요충지다. 진혜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진무왕이 주나라의 구정을 엿보기 위해 감무(甘茂)에게 명하여 의양성을     

    점령하도록 했다. 감무가 이 성을 함락시키기 위해 공격했으나 오랫동안 성공하지 못하자 진무왕은 철수명령을    

    내렸다. 이에 감무는 식양(息壤)에서의 약속을 상기시킴으로써 증원군을 얻어 결국은 의양성을 함락시켜  

    진무왕이 수레를 타고 주나라에 들어가 구정을 엿보게 한 고사가 있다.(감무열전 참조).  

    한나라는 건국에서 진나라에 망할 때까지 그 도성을 평양성(平陽城 ; 지금의 산서성 임분시(臨汾市)) →  

    의양성(宜陽城) → 신정성(新鄭城)으로 옮겼다.  

8) 상군(上郡) : 섬서성과 산서성을 가르는 황하의 서쪽 지역으로 황하와 낙수 사이에 위나라가 설치한 군현.

9) 섬(陝) : 지금의 하남성 섬현을 말한다. 서주 초기에 주공(周公)과 소공(召公)이 어린 성왕(成王)을 대신하여 

    섭정을 행할 때 섬(陝)을 기준으로 서쪽은 주공이 동쪽은 소공이 맡아서 다스리다가 성왕이 장성하자  

    통치권을 돌려주었다. 이 일로 인해 섬서(陝西)라는 지명의 기원이 되었다.  

10) 교상(嚙桑) : 설상(齧桑)이라고도 하며 전국 때 위(魏)나라 령으로 지금의 강소성 패현(沛縣) 부근이다.

11) 곡옥(曲沃) : 원래 춘추 때 당진국이 발흥했던 곳으로 지금의 산서성 문희현(聞喜縣)에 있었으나  

      전국시대에 이르러 하남성 섬현(陝縣) 서남의 위(魏)나라 령의 고을을 칭했다.  

12) 평주(平周) : 지금의 산서성 개휴현(介休縣) 서쪽의 전국 때 위(魏)나라 고을이다.

13) 원수(洹水) : 지금의 하남성 동북쪽 임현(林縣)의 융려산(隆慮山)에서 발원하여 동쪽으로 흘러  

      안양시(安陽市)를 지나 내황현(內黃縣) 북쪽에서 황하에 유입되었던 하천을 말한다. 지금의 안양하(安陽河)에       해당한다. 소진(蘇秦)이 조숙후에게 제후들과 원수(洹水)에서 만나 합종을 행해야 한다고 유세했다.  

14) 진진(陳軫) : 전국 때 유세가(游說家). 초나라 하읍(夏邑 : 지금의 하남성 상구시(商邱市) 동남) 사람.  

      처음에는 장의(張儀)와 함께 진혜왕(秦惠王) 밑에서 벼슬하면서 두 사람이 서로 총애를 다투었다.  

      후에 진혜왕이 장의를 총애하여 상국으로 명하자 초나라로 달아났다. 그러나 초나라에서 중용 되지 못하고  

      다시 예전처럼 초나라의 사자로 진나라에 파견되었다. 한(韓)과 위(魏)나라가 서로 싸우며 몇 년이 가도록  

      멈추지 않아 진혜왕이 진진에게 계책을 물었다. 진진은 대답하기를 한나라와 위나라가 오래 동안 싸우게 

       되면 큰나라는 상처를 입을 것이며 작은나라는 망하게 될 것인바 그 때에 가서 군사를 내어 

       상처를 입은 나라를  정벌하면 일거에 두 나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진혜왕이 진진의 말을 따라 후에 큰 전공을 얻을 수 있었다.  

15) 상용(上庸) : 지금의 호북성 죽산현 서남의 전국 때 초나라의 고을로 원래 용(庸)이라는 제후국이었으나 

      초나라가 멸하고 그 땅에 상용현을 설치했다.  

16) 소진이 죽은 해는 제민왕(齊湣王) 말년의 일로 기원전 285년 직전이고 장의가 초나라에 들어가 상오(商於)의  

      땅으로 속여 초제(楚齊)간의 합종을 깬 결과 진초(秦楚) 간에 단수(丹水)와 남전(藍田)의 싸움이 일어난 해는  

      기원전 312년의 일이다. 소진은 기원전 300년에 죽은 장의보다 15년 가까이 더 살다가 죽었다.  

      이 부분은 사마천의 잘못이다.  

17) 상산(常山) : 지금의 하북성 당현(唐縣)에 있는 산으로 원래는 항산(恒山)이었으나  

      서한의 3대 황제 문제(文帝)의 이름인 항(恒)을 휘(諱)하여 상산(常山)으로 개명했다.  

18) 성고(成皐) : 지금의 하남성 형양시(滎陽市) 서쪽의 사수진(汜水鎭)으로 춘추 때 제읍(制邑),  

      호뢰(虎牢) 등으로 불리웠던 한나라의 동쪽 변경을 지키던 전략상의 요충지다.  

19) 문산(汶山) : 지금의 민산(岷山)으로 감숙성(甘肅省)과 사천성을 가르는 산으로 민강(岷江)의 발원지이다.

20) 한관(扞關) : 지금의 사천성 봉절현(奉節縣) 동쪽에 있던 관으로 초나라의 서쪽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이다.

21) 집규(執珪) : 춘추전국시대 때 초나라 작위(爵位) 등급의 하나. 지위는 봉국의 군주에 해당한 고위직이었다.

22) 양진(陽晋) : 지금의 산동성 운성(鄆城) 서쪽으로 전국 때 위(衛)나라 땅으로 후에 제(齊)나라에 속했다가  

      다시 조(趙)나라가 점령했다. 위(魏), 제(齊), 초(楚), 조(趙) 등의 경계가 접하고 있는 지역으로  

      당시 전략적인 요충지였다.  

23) 사상(泗上) 12제후국 : 노나라 지방을 남북으로 흐르던 사수(泗水) 강변에 소재하고 있던 12개의  

      소 제후국들인 노(魯), 송(宋), 거(莒), 추(鄒), 담(郯), 비(費), 비(邳), 설(薛), 등(滕), 예(郳), 임(任), 위(衛)등.

24) 장의가 초나라에 들어가 초회왕(楚懷王)에게 친진정책을 권유했던 시기는 초회왕 18년 기원전 311년이다.  

      그 해에 진나라에 혜문왕이 죽고 무왕이 즉위하자 장의는 진나라를 떠나 위(魏)나라에 들어가 

       상국이 되었다가  2년 후인 기원전 309년에 그곳에서 죽었다. 

       그러나 소진(蘇秦)이 제나라에 들어가 연나라를 위해 활동하던 중  

      제나라 대신들이 보낸 자객이 살해되어 그 죄상이 발각된 해는 제민왕 17년 기원전 284년의 일이다.  

      이 기사는 기원전 309년에 죽은 장의가 25년 후에 일어날 일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된다.  

      참고로 장의의 권유에 따라 친진정책을 채택한 초회왕은 기원전 299년 진소왕과의 회맹을 위해  

      진나라에 들어갔다가 억류되어 결국은 귀국하지 못하고 그곳에서 죽고 말았다.  

25) 탕목읍(湯沐邑) : 원래는 고대에 제후들이 천자를 조현할 때 영지의 일부를 하사하여 그곳에서 나오는 부세로  

      제후들이 조현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충당토록 한 것을 의미했으나 한나라 이후 황제, 황후, 공주 등의  

      사유토지를 지칭했다.  

26) 시도(厮徒) : 잡일에 종사하는 군사

27) 부양(負養) : 군수품의 져나르는 잡부

28) 요정(徼亭) : 국경 지역에 설치한 역참

29) 호분(虎賁) : 호랑이처럼 용맹스러운 군사라는 뜻으로 중국 고대에 있어서 왕이나 군주의 근위병을 말한다.

30) 맹분(孟賁) : 전국 때 진무왕의 호위 무사였던 맹열(孟說)을 말했다. 태어날 때부터 용력이 있어 평소에

      산 소의 뿔을 뽑았다고 했다. 그는 오획(烏獲)과 함께 용력으로 제후들 사이에 이름이 있었다.  

      진나라 왕으로 즉위한 진무왕이 용사들을 좋아한다는 소식을 듣고 각지의 용사들을 이끌고 진나라로 들어가        높은 벼슬을 받았다. 무왕 4년 기원전 307년 무왕이 주나라에 들어가 구정 들기 시합을 맹열과 하다가  

      다리가 부러져 죽었다. 이에 그 죄를 추궁 받아 살해되고 그 종족은 멸족되었다.  

31) 오획(烏獲)/ 전국 때 진나라의 역사로 진무왕의 호위무사다. 그의 힘은 능히 정을 들 수 있었다.  

      힘이 장사인 진무왕이 힘겨루기를 좋아하여 그는 임비(任鄙), 맹열 등과 함께 진나라의 높은 관리가 되었다. 

32) 천균(千鈞) : 일 균은 삼십 근을 말하며 춘추전국 때 한 근은 356그램임.  

      즉 일균은 약 10키로에 해당하니 천균이라 함은 10톤의 무게를 말한다.  

33) 장의가 모셨던 진혜왕의 재위기간은 기원전 337-311년이고 당시 같은 기간에 재위했던 제나라의 군주는  

      제위왕(전356-320)과 제선왕(전319-301)이다. 제민왕은 기원전 300년에 즉위해서 284년에 죽었음으로  

      진혜왕이 죽은 지 10년이 지나서였다. 당시 장의가 유세했던 제나라 군주는 제민왕이 아니라  

      제선왕이라고 해야 한다..  

34) 민지회맹(澠池會盟) : 진소왕과 조효문왕이 기원전 279년에 지금의 하남성 민지에서 회동한 일을 말한다. 

      장의는 진무왕 2년 기원전 309년에 죽었다. 이는 장의가 30년 후의 일을 이야기하고 있음이다.  

35) 백마진(白馬津) : 지금의 한남성 활현(滑縣) 동북에 있었던 중국 고대에 황하를 도하할 수 있었던  

      나루터가 있었던 곳이다.  

36) 주무왕(周武王)이 은주왕(殷紂王)을 정벌할 때 제후와 그 군사들을 목야(牧野)의 뜰에 모아 놓고  

      서약(誓約)한 날이 갑자(甲子)일이다. 장의가 조왕에게 조나라를 정벌하는 것을 주무왕이 은주왕을 정벌한  

      것으로 비유해서 그 정벌일을 갑자일로 말한 것이다.  

37) 오도(午道) : 종횡으로 교차하는 간선도로로 조와 제 두 나라의 접경지대에 있었다.

38) 조무령왕(趙武靈王: 재위 전 325-299)의 부왕인 조숙후(趙肅侯)를 칭한다.  

      주현왕(周顯王) 20년 기원전 349년에 즉위하여 326년에 죽은 전국 때 조나라의 군주다. 성후(成侯)가 죽자  

      공자 설(紲)과 후계를 놓고 싸워 이겨 조나라 군주 자리에 올랐다. 재위 기간 중 제(齊)와 위(魏) 두 나라와  

      빈번하게 전쟁을 일으키고, 다시 북쪽의 운중(雲中)에서부터 대(代)까지 장성을 축조했다.  

39) 봉양군(奉陽君) : 태어난 해는 알 수 업고 기원전 334년에 죽은 조나라의 대신이다. 이름은 성(成)이다.   

      조숙후(趙肅侯 : 재위 기원전 349-326)의 동생으로 그 밑에서 상국이 되어 봉양군으로 봉해졌다.  

      재임시 현자를 질시하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렀다. 

       조나라에 유세 온 소진을 배척하여 그로 하여금 연나라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그가 죽고 나서야 소진은 다시 조나라에 와서 유세를 행하여 조숙후로부터 신임을 받아  

      합종책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후에 무령왕을 사구궁에서 아사케 만든 이태(李兌)의 봉호이기도 하다.  

40) 연소왕(燕昭王) : 기원전 314년에 재위에 올라 279년에 죽은 전국 때 연나라의 군주다.  

      이름은 평(平) 혹은 직(職)이다. 연왕 쾌(噲)의 서자로 주난왕(周赧王) 원년에 상국 자지(子之)에 의해  

      연왕 쾌가 피살되자 소왕은 란을 피해 산으로 달아나 피신 중에 주난왕 4년(전314) 연나라 국인들에 의해  

      연왕에 옹립되었다. 일설에는 조무령왕(趙武靈王)에 의해 연왕의 자리에 올랐다고 했다. 즉위 초에 황금대를        지어 천하에 현인을 구하자 위인(魏人) 악의(樂毅), 제인(齊人) 추연(鄒衍), 조인(趙人) 극신(劇辛) 등 일시에  

      천하의 인재들이 모여들었다. 현인과 선비들을 예로써 대하고 백성들의 집에 문상을 하고 고아들을 돌보아  

      백성들과 고락을 같이 했다. 이에 시간이 지나자 연나라의 국세가 신장되었다.  

      주난왕 31년 기원전 284년 악의를 상장군으로 삼아 5국의 연합군을 결성하여 제나라를 공격하여  

      70여 개 성과 그 도성 임치성을 점령했다. 연나라는 이로써 강국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41) 조양자(趙襄子)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425년에 죽은 춘추 말 당진국(唐晋國)의 대부로  

      영성(嬴姓) 조씨(趙氏)에 이름은 무휼(無恤)이다. 조간자(趙簡子) 조앙(趙鞅)의 아들로 당진국의 육경 중의  

      한 사람이었다. 조간자가 아들 가운데 무휼이 현명하다고 생각해서 적자이며 큰 아들인 백로(伯魯)를 폐하고        그의 후계자로 삼았다. 이윽고 조앙이 죽고 조양자가 집정하자 그는 지(智), 한(韓), 위(魏) 등의 삼가와  

      힘을 합하여 육경 중 범씨와 중항씨를 멸하고 그 땅을 나누어 가졌다. 후에 세력이 강성해진 지씨들의  

      종주 지백이 당진국의 군주 출공(出公)을 쫓아내고 의공(毅公)을 세워 정권을 멋대로 휘두르며 발호했다. 

      이어서 지백이 공개적으로 조씨들을 향해 영지의 할양을 요구하자 조양자가 거절했다.  

      이에 지백은 한(韓)과 위(魏) 두 종족과 연합하여 조씨들을 공격했다. 세가 불리했던 조양자는 지금의 산서성        태원(太原)의 진양으로 들어가 농성하며 대항했다. 지백은 분수(汾水)의 물을 막아 진양성으로 흘려보내 

      잠기게 했다. 이에 절대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조양자는 그의 가신 장맹담(張孟談)을 보내 한강자(韓康子)와  

      위환자(魏桓子)에게 당진국의 패권을 혼자 차지하려는 지백의 야욕을 설파하고 조씨들과 연합할 경우의  

      이해득실을 논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지백에게 등을 돌리게 하였다. 주정왕(周定王) 16년 기원전 453년  

      조(趙), 한(韓), 위(魏) 삼가가 지가(智家)에게 반격을 가하여 멸하고 지가의 영지와 당진국의  

      공실의 땅 전부를 삼분하여 나누어 가졌다. 이 일을 역사상 삼가분진(三家分晋)이라 한다.  

42) 구주(句注) : 산서성 대현(代縣) 서북에 있는 산이름으로 지금의 안문산(雁門山)을 말한다.

43) 마계산(摩笄山) : 지금의 하북성 탁록현(?鹿縣) 동쪽에 있던 산이름이다. 탁록은 북경시 서북 쪽에 있다.

44) 사기(史記) 조세가(趙世家) 조양자(趙襄子) 조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있다.

      <조양자의 누이는 옛날 대왕(代王)의 부인이 되었다. 양자의 그 부친의 장례를 마치고 미처 상복을 벗기도 

       전에 북쪽의 하옥산(夏屋山)에 올라 잔치를 벌리고 대왕을 초청했다. 양자(襄子)가 요리사로 하여금 

       구리로 만든  국자를 들고 대왕과 그 시종들에게 음식을 바치며 술을 따르게 했다. 

       이윽고 주연이 무르익게 되자, 양자가 아무도 몰래 이름이 락(犖)이라는 요리사로 하여금 구리로 만든 

       큰 국자로 대왕과 그 시종들을 쳐서 죽이도록 했다. 이어서 조양자는 대국(代國)의 땅을 평정하고 

       조씨들의 영토로 만들었다. 양자의 누이가 본국에 있다가 그 부군의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하늘에 호소를 하다가, 그녀의 비녀를 뾰쪽하게 갈아 찔러 죽었다.

       대나라 사람들이 이를 가엾게 여겨 그녀가 죽은 곳의 이름을 마계산(摩笄山)이라고 불렀다.>  

45) 하간(河間) : 전국 때 조나라 땅으로 지금의 하북성 헌현(獻縣), 하간(河間), 청현(靑縣), 박두(泊頭) 일대.

46) 운중(雲中) : 지금의 내몽고(內蒙古) 자치구의 탁극탁(托克托) 동북쪽의 변방도시를 말함.

47) 집규(執珪)/ 춘추전국시대 때 초나라의 군공(軍功)과 작위(爵位) 등급의 하나. 공신이 이 작위를 얻게 되면  

      집규를 들고 국군을 조현했음으로 생긴 작위다. 지위는 열후(列侯)에 다음 가는 고위직이었다.  

48) 의거(義渠) : 고대 중국의 이민족 이름으로 서융(西戎)의 일족이다. 지금의 감숙성 경양(涇陽)과  

      경수(涇水) 일대에 분포되어 살았다. 춘추 때 스스로 왕호를 칭하고 진나라와 매년 충돌하여 싸움을 벌렸다.  

      진소양왕 37년인 기원전 270년에 비로소 진나라에 의해 병합되었다.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