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列傳
第六. 伍子胥列傳(오자서열전)
伍子胥者, 楚人也, 名員. 員父曰伍奢, 員兄曰伍尙.
其先曰伍擧, 以直諫事楚莊王, 有顯, 故其後世有名於楚.
(오자서자, 초인야, 명원. 원부왈오사, 원형왈오상.
기선왈오거, 이직간사초장왕, 유현, 고기후세유명어초.)
['오자서'는 초나라 사람이고 이름은 '원'이다. '오원'의 아버지는 '오사'이고, '오원'의 형은 '오상'이다.
그의 선조은 '오거'인데, 초나라 '장왕'을 섬기고 바른 말을 잘하며 공을 세워 대부의 벼슬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후손들도 초나라에서 유명해졌다.]
楚平王有太子名曰建, 使伍奢爲太傅, 費無忌爲少傅. 無忌不忠於太子建.
平王使無忌爲太子取婦於秦, 秦女好.
(초평왕유태자명왈건, 사오사위태부, 비무기위소부. 무기불충어태자건.
평왕사무기위태자취부어진, 진여호.)
[초나라 '평왕'에게 '건'이라는 태자가 있었다. '평왕'은 '오사'를 태부로 삼고 '비무기'를 태자의 소부로 삼았다.
'비무기'는 태자 '건'을 정성스럽게 모시지 않았다.
'평왕'은 '비무기'로 하여금 태자의 부인을 진나라에서 골라오게 하였다.
'비무기'가 사자로 진나라에 가서 '진녀'를 보니 너무 아름다웠다.]
無忌馳歸報平王曰:「秦女絶美, 王可自取, 而更爲太子取婦.」 平王遂自取秦女而絶愛幸之,
生子軫. 更爲太子取婦. 無忌旣以秦女自媚於平王, 因去太子而事平王.
(무기치귀보평왕왈 : 「진여절미, 왕가자취, 이갱위태자취부.」 평왕수자취진여이절애행지,
생자진. 갱위태자취부. 무기기이진여자미어평왕, 인거태자이사평왕.)
['비무기'는 달려와 '평왕'에게 보고하기를 : “ '진녀'는 천하절색이라, 대왕께서 취하시고,
태자를 위해서는 다른 여인을 구해 부인으로 삼으면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평왕'은 결국 '진녀'를 자기가 취하여 매우 사랑하며 소중하게 여겨 아들 '진'을 낳았다.
그리고 다시 태자를 위해 며느리를 골랐다. '진녀'를 '평왕'에게 바친 '비무기'는 '평왕'의 총애를 받아
태자 곁을 떠나 '평왕'을 측근에서 모셨다.]
恐一旦平王卒而太子立, 殺己, 乃因讒太子建. 建母, 蔡女也, 無寵於平王.
平王稍益疏建,使建守城父,備邊兵.
(공일단평왕졸이태자입, 살기, 내인참태자건. 건모, 채여야, 무총어평왕.
평왕초익소건, 사건수성보, 비변병.)
['비무기'는 어느 날 갑자기 '평왕'이 죽고 태자가 왕위에 오르면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두려워하여
태자 '건'을 중상모략하기 시작하였다. '건'의 어머니는 채나라 여자로 처음에는 '평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진녀'가 '진'을 낳고 부터는 채녀와 멀어지고 태자 '건'과 와도 점점 소원하게 되었다.
이윽고 태자 '건'을 "성보"로 보내 변방을 지키도록 하였다.]
頃之, 無忌又日夜言太子短於王曰:「太子以秦女之故, 不能無怨望, 願王少自備也.
自太子居城父, 將兵, 外交諸侯, 且欲入爲亂矣. 」 平王乃召其太傅伍奢考問之.
(경지, 무기우일야언태자단어왕왈 : 「태자이진여지고, 불능무원망, 원왕소자비야.
자태자거성보, 장병, 외교제후, 차욕입위란의. 」 평왕내소기태부오사고문지.)
[얼마가 지난 뒤 '비무기'는 또 밤낮으로 시간만 있으면 태자의 단점을 '평왕'에게 고하기를 :
“태자는 '진녀'의 일을 알게 되면 원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스스로 대비하셔야 합니다.
태자가 '성보'에 살면서부터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밖으로 이웃나라의 제후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이유는;
장차 난을 일으켜 이곳으로 진격하기 위해서입니다. ”라고 하자.
'평왕'은 즉시 태부 '오사'를 불러 태자가 반란을 획책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물었다.]
伍奢知無忌讒太子於平王, 因曰:「王獨奈何以讒賊小臣疏骨肉之親乎?」
無忌曰:「王今不制, 其事成矣. 王且見禽. 」 於是平王怒, 囚伍奢.
(오사지무기참태자어평왕, 인왈 : 「왕독내하이참적소신소골육지친호?」
무기왈 : 「왕금불제, 기사성의. 왕차견금. 」 어시평왕노, 수오사.)
['오사'는 '비무기'가 태자를 헐뜯는 사실을 알고 '평왕'에게 고하기를 : “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남을 헐뜯는
소인배의 참소하는 말만을 들으시고 골육인 자식까지 의심하여 멀리하려고 하십니까 ? "라고 간하자.
'비무기'가 이 말을 전해 듣고 말하기를 : " 대왕이시여 지금 당장 태자를 제압하지 못해 반란이 일어난다면
대왕께서 장차 감금당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평왕'은 노하여, '비무기'의 말대로 '오사'를 옥에 가두었다.]
而使城父司馬奮揚往殺太子. 行未至, 奮揚使人先告太子:「太子急去, 不然將誅. 」太子建亡奔宋.
(이사성보사마분양왕살태자. 행미지, 분양사인선고태자 : 「태자급거, 불연장주. 」 태자건망분송.)
[그리고 성보의 사마인 '분양'에게 태자를 잡아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군사를 이끌고 출동한 '분양'은 그의 부대가 태자가 있는 곳에 당도하기 전에 먼저 몰래 사람을 보내
"태자께서는 급히 달아나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자.
태자는 '분양'의 통고를 받고 그 즉시 송나라로 달아났다.]
無忌言於平王曰:「伍奢有二子, 皆賢, 不誅且爲楚憂. 可以其父質而召之, 不然且爲楚患. 」
王使使謂伍奢曰:「 能致汝二子則生. 不能則死. 」
(무기언어평왕왈 : 「오사유이자, 개현, 불주차위초우. 가이기부질이소지, 불연차위초환. 」
왕사사위오사왈:「 능치여이자즉생. 불능즉사. 」)
[태자가 나라 밖으로 달아났다는 소식을 들은 '비무기'가 '평왕'에게 말하기를 : " 지금 옥에 갇힌 '오사'에게는
아들 둘이 있습니다. 모두가 현명하여 죽이지 않는다면 장차 초나라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 아비를 인질로 삼아 그들을 부르십시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장차 초나라에 재난을 몰고 올 것입니다."하자,
'평왕'은 옥중의 '오사'에게 사람을 보내어 말하기를 : " 그대가 두 아들을 이곳으로 불러 올 수 있다면 살겠지만,
불러 올 수 없다면 죽음을 면치 못하리라 ! "라고 하였다.]
伍奢曰:「 尙爲人仁, 呼必來. 員爲人剛戾忍訽, 能成大事, 彼見來之幷禽, 其勢必不來. 」
王不聽, 使人召二子曰:「來, 吾生汝父;不來, 今殺奢也. 」 伍尙欲往.
(오사왈 : 「 상위인인, 호필래. 원위인강려인구, 능성대사, 피견래지병금, 기세필불래. 」
왕불청, 사인소이자왈 : 「래, 오생여부;불래, 금살사야. 」 오상욕왕.)
[오사가 듣고 말하기를 : “ 큰 아이 '상'은 마음이 어질어서 부르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아이 '원'은 매우 고집이 세고 참을성이 많아, 능히 큰일을 이룰 수 있는 성격이라 내가 부른다고 해도
도성에 들어오면 사로잡혀 같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틀림없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평왕'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사람을 "성보"에 보내 두 아들을 불러들이게 하려고 말하기를 :
"너희들이 오면 내가 너희 아비를 살려주고, 오지 않으면 당장 너의 아비 오사를 죽이겠다. "라고 전했다.
'오상'이 초왕의 부름에 응하려고 하자.]
員曰:「 楚之召我兄弟, 非欲以生我父也, 恐有脫者後生患, 故以父爲質, 詐召二子.
二子到, 則父子俱死. 何益父之死 ? 往而令讎不得報耳.
不如奔他國, 借力以雪父之恥, 俱滅, 無爲也. 」
伍尙曰:「我知往終不能全父命. 然恨父召我以求生而不往, 後不能雪恥, 終爲天下笑耳. 」
(원왈 : 「 초지소아형제, 비욕이생아부야, 공유탈자후생환, 고이부위질, 사소이자.
이자도, 즉부자구사. 하익부지사 ? 왕이령수불득보이.
불여분타국, 차력이설부지치, 구멸, 무위야. 」
오상왈:「아지왕종불능전부명. 연한부소아이구생이불왕, 후불능설치, 종위천하소이. 」)
['오원'이 말하기를 : " 초나라에서 우리 형제를 부르는 까닭은 아버지를 살려주려고 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들 중 누구 한 사람이 초나라를 빠져나가 후에 근심거리가 되는 경우를 두려워하여
아버지를 인질로 삼아 우리 두 사람을 유인하여 죽이기 위해 거짓으로 부른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님이 계신 곳에 간다면 우리 세 부자는 모두 한꺼번에 죽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어찌 아버님께서 몸을 보전하는데 도움이 되겠습니까 ?
우리가 간다면 모두 함께 죽게 되어 원수도 갚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차라리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가, 힘을 빌려 아버지의 수모를 설욕하는 것만 못합니다.
우리 세 부자가 모두 함께 죽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 "라고 하자,
'오상'이 말하기를 : " 내가 간다고 해도 아버님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버지가 우리를 불러 목숨을 구하려 하는데도 가지 않고, 훗날에도 원수를 갚을 수 없게 되면,
결국은 세상의 웃음거리가 될 뿐이다. "라고 하였다.]
謂員:「 可去矣! 汝能報殺父之讎, 我將歸死. 」 尙旣就執, 使者捕伍胥.
伍胥貫弓執矢嚮使者, 使者不敢進, 伍胥遂亡. 聞太子建之在宋, 往從之.
(위원:「 가거의! 여능보살부지수, 아장귀사. 」 상기취집, 사자포오서.
오서관궁집시향사자, 사자불감진, 오서수망. 문태자건지재송, 왕종지.)
[이어 '원'에게 말하기를 : "너는 달아나거라. 너는 능히 아버님의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버님의 곁으로 가서 같이 죽겠다 ! "하고. '오상'이 이윽고 제 발로 걸어 나가 잡히자,
초왕이 보낸 사람이 '오자서'마저 붙잡으려 하였다. 그러나 오원이 활시위를 당겨 사자에게 활을 겨누자,
사자는 감히 다가오지를 못했다. '오자서'는 그 틈을 이용해 달아났다.
먼저 달아난 태자 '건'이 송나라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으로 가서 그를 따랐다.]
奢聞子胥之亡也, 曰:「 楚國君臣且苦兵矣. 」 伍尙至楚, 楚幷殺奢與尙也.
伍胥旣至宋, 宋有華氏之亂, 乃與太子建俱奔於鄭. 鄭人甚善之.
(사문자서지망야, 왈:「 초국군신차고병의. 」 오상지초, 초병살사여상야.
오서기지송, 송유화씨지란, 내여태자건구분어정. 정인심선지.)
[한편 감옥에 갇혀 있던 '오사'는 '자서'가 다른 나라로 달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말하기를 :
" 초나라의 왕과 신하들은 장차 그로 인하여 병란에 시달림을 받게 되겠구나. "라고 하였다.
이윽고 '오상'이 초나라에 당도하자, 초왕은 '오사'와 '오상' 두 사람을 함께 죽였다.
'오자서'가 송나라에 머물고 있던 중에 그 나라에서 화씨들이 난을 일으켰다.
이에 '오자서'와 태자'건'은 난을 피해 정나라로 달아났다.
정나라 사람들은 '오자서' 일행을 기쁜 마음으로 잘 대접해주었다.]
太子建又適晉, 晉頃公曰:「太子旣善鄭, 鄭信太子. 太子能爲我內應, 而我攻其外, 滅鄭必矣.
滅鄭而封太子. 」 太子乃還鄭.
(태자건우적진, 진경공왈:「태자기선정, 정신태자. 태자능위아내응, 이아공기외, 멸정필의.
멸정이봉태자. 」 태자내환정.)
[태자'건'이 진나라에 가서 군사를 빌려 초나라를 공격하려고 했다.
진의 '경공'이 태자'건'에게 말하기를 : " 태자는 정나라와 친한 사이여서 태자를 매우 신임하고 있소.
태자가 안에서 내응하고 우리는 밖에서 공격하면 정나라를 필시 멸할 수 있소.
정나라를 멸망시키면 태자를 그곳의 군주로 봉하여 주리다.”라고 하자. 태자는 다시 정나라로 되돌아왔다.]
事未會, 會自私欲殺其從者, 從者知其謀, 乃告之於鄭. 鄭定公與子産誅殺太子建.
建有子名勝. 伍胥懼, 乃與勝俱奔吳.
(사미회, 회자사욕살기종자, 종자지기모, 내고지어정. 정정공여자산주살태자건.
건유자명승. 오서구, 내여승구분오.)
[그러나 좋은 기회가 채 오기도 전에 사사로운 일로 그의 시종 중에 한 사람이 잘못을 저질러 그를 죽이려고 하자,
태자의 음모를 알고 있었던 시종이 정나라 조정에 그 일을 고발해 버렸다.
정나라 '정공'은 재상인 '자산'에게 명해 태자 '건'을 주살시키고 말았다.
태자'건'에게는 아들이 있었는데 이름이 '승'이었다.
'오자서'는 화가 자기에게 까지 미칠까 두려워하여 '승'을 데리고 오나라로 달아났다.]
到昭關, 昭關欲執之. 伍胥遂與勝獨身步走, 幾不得脫. 追者在後.
至江, 江上有一漁父乘船, 知伍胥之急, 乃渡伍胥.
(도소관, 소관욕집지. 오서수여승독신보주, 기불득탈. 추자재후.
지강, 강상유일어부승선, 지오서지급, 내도오서.)
[국경인 "소관"에 도착하자, "소관"을 지키던 초나라 군사들이 '오자서' 일행을 잡기 위해 삼엄하게 지키고
있었다. '오자서'는 하는 수 없이 '승'과 헤어져 홀로 "소관"을 넘어 달아났으나 추격하던 초나라 군사들에게
거의 잡힐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초나라 군사들의 추격을 받으며 '오자서'는 "강수"에 당도하자 강위에는
때마침 배를 띄우던 한 어부가 '오자서'가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알고, '오자서'를 태워 강을 건너게 해주었다.]
伍胥旣渡, 解其劍曰:「此劍直百金, 以與父. 」
父曰:「楚國之法, 得伍胥者賜粟五萬石, 爵執珪, 豈徒百金劍邪!」 不受.
(오서기도, 해기검왈:「차검직백금, 이여부. 」
부왈:「초국지법, 득오서자사속오만석, 작집규, 개도백금검사!」 불수.)
['오자서'가 이윽고 강을 건너 위급을 면하자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풀어 어부에 주면서 말하기를 :
“이 칼은 백 금의 값어치를 가지고 있으니, 목숨을 구해주신 고마움의 표시로 드립니다 ”라고 하자,
어부가 말하기를 : " 초나라의 법에 '오자서'를 잡아다 바친 자에게는 곡식 오만석과 집규(봉국의 군주)의 작위를
준다 했는데 어찌 백금밖에 나가지 않는 칼을 탐내겠소 ? "라고 하며, '오자서'가 주는 칼을 받지 않았다.]
伍胥未至吳而疾, 止中道, 乞食. 至於吳, 吳王僚方用事, 公子光爲將. 伍胥乃因公子光以求見吳王.
(오서미지오이질, 지중도, 걸식. 지어오, 오왕료방용사, 공자광위장. 오서내인공자광이구현오왕.)
['오자서'는 미처 오나라에 도착하기도 전에 병이 들어 중도에 걸식을 하였다.
이윽고 오나라에 도착하니 오왕 '요'가 왕의 자리에 오른지 얼마 되지 않았고,
공자 '광'이 오나라의 병권을 담당하고 있었다. '오자서'는 공자 '광'의 천거로 오왕을 알현할 수 있었다.]
久之, 楚平王以其邊邑鍾離與吳邊邑卑梁氏俱蠶, 兩女子爭桑相攻, 乃大怒, 至於兩國擧兵相伐.
吳使公子光伐楚, 拔其鍾離、居巢而歸.
(구지, 초평왕이기변읍종리여오변읍비량지구잠, 양녀자쟁상상공, 내대노, 지어양국거병상벌.
오사공자광벌초, 발기종리、거소이귀.)
[그리고 얼마 후에 초나라의 변읍인 "종리"와 오나라의 변읍 "비량지"여인들이 누에를 기르기 위해 뽕나무를
서로 차지하려고 다투더니, 이윽고 두 고을 사람들이 모두 일어나 번갈아 가며 공격하는 일이 일어나자,
이 소식을 들은 초평왕은 크게 분노했다. 마침내 두 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오나라가 공자 '광'을 대장으로 삼아 초나라의 변경을 공격하여 "종리"와 "거소"를 함락시킨 다음 돌아왔다.]
伍子胥說吳王僚曰:「 楚可破也. 願復遣公子光. 」
公子光謂吳王曰:「 彼伍胥父兄?戮於楚, 而勸王伐楚者, 欲以自報其?耳. 伐楚未可破也. 」
(오자서설오왕료왈:「 초가파야. 원복견공자광. 」
공자광위오왕왈:「 피오서부형위륙어초, 이권왕벌초자, 욕이자보기수이. 벌초미가파야. 」)
['오자서'가 '료왕'에게 설득하기를 : " 지금의 승세를 타고 군사를 계속 진격시키면 초나라를 격파할 수 있습니다.
다시 공자 '광'을 파견하기를 원합니다.” 라고 하자.
공자 '광'이 이 말을 듣고 '료왕'에게 말하기를 : " 저 '오자서'가 대왕께 초나라를 정벌하라고 권하는 것은
초왕에게 죽임을 당한 부친과 형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입니다.
지금 우리가 초나라를 공격하더라도 아직 이긴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伍胥知公子光有內志, 欲殺王而自立, 未可說以外事,
乃進專諸於公子光, 退而與太子建之子勝耕於野.
(오서지공자광유내지, 욕살왕이자입, 미가설이외사,
내진전제어공자광, 퇴이여태자건지자승경어야.)
['오자서'는 그 말을 듣고 공자 '광'의 속셈을 알아차렸다, 공자 '광'은 왕을 살해하고 자기가 왕이 되고
싶어하기 때문에, 지금은 외부 문제로 료왕을 설득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전저'라는 인물을
공자 '광'에게 천거하고 자신은 물러나 태자 '건'의 아들' 승'과 함께 초야에 묻혀 농사를 짓고 살았다.]
五年而楚平王卒. 初, 平王所奪太子建秦女生子軫, 及平王卒, 軫竟立爲後, 是爲昭王.
吳王僚因楚喪, 使二公子將兵往襲楚.
(오년이초평왕졸. 초, 평왕소탈태자건진녀생자진, 급평왕졸, 진경입위후, 시위소왕.
오왕료인초상, 사이공자장병왕습초.)
[5년 후 초나라 '평왕'이 죽었다. 옛날에 '평왕'은 '태자 '건'을 폐하고 '진녀'가 낳은 '진'을 태자로 세웠었다.
이윽고 '평왕'이 죽자 '진'이 그 뒤를 이어 초왕의 자리에 올랐으니 이가 바로 초 '소왕'이다.
오왕 '료'는 초나라에 국상이 난 틈을 이용하여 자기의 두 아들('촉용', '개여')에게 군사를 이끌고 가서
초나라를 기습 공격하게 하였다.]
楚發兵絶吳兵之後, 不得歸. 吳國內空, 而公子光, 乃令專諸襲刺吳王僚, 而自立, 是爲吳王闔廬.
闔廬旣立, 得志, 乃召伍員以爲行人, 而與謀國事.
(초발병절오병지후, 불득귀. 오국내공, 이공자광, 내령전제습자오왕료, 이자입, 시위오왕합려.
합려기입, 득지, 내소오원이위행인, 이여모국사.)
[초나라는 즉각 응전해 올 뿐만 아니라 오나라 군대의 퇴로를 차단하여 되돌아갈 수 없게 하였다.
한편 오나라의 국내가 텅 비게 되자, 공자 '광'은 '전저'에게 오왕 '료'를 습격하여 칼로 찔러 죽이게 하고
스스로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오왕 '합려'이다.
'합려'는 오왕의 자리를 차지하여 그가 품고 있던 뜻을 이루게 되자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던
'오자서'를 불러들여 행인에 임명하고 그와 함께 국사를 의논했다.]
楚誅其大臣郤宛、伯州犁, 伯州犁之孫伯嚭亡奔吳, 吳亦以嚭爲大夫.
前王僚所遣二公子將兵伐楚者, 道絶不得歸. 後聞闔廬弑王僚自立, 遂以其兵降楚, 楚封之於舒.
(초주기대신극완、백주리, 백주리지손백비망분오, 오역이비위대부.
전왕료소견이공자장병벌초자, 도절불득귀. 후문합려시왕료자입, 수이기병강초, 초봉지어서.)
[때마침 초나라에서는 간신 '비무기'의 참소를 받고 대신 '극완'과 '백주리'의 일족이 주살되었으며
'백주리'의 손자인 '백비'가 오나라로 망명해 오자, 오왕 '합려'는 '백비'에게 대부의 직을 주었다.
앞서 오왕 '료'의 명령에 따라 초나라로 쳐들어갔다가 퇴로가 끊기어 돌아올 수 없었던 두 공자는
그 뒤 '합려'가 부왕인 '료'를 죽이고 임금이 되었다는 말을 듣자, 결국 귀국하지 못하고 초나라에 투항하였고,
초나라는 두 공자를 "서" 땅에 봉지를 주었다.]
闔廬立三年, 乃興師與伍胥、伯嚭伐楚, 拔舒, 遂禽故吳反二將軍.
因欲至郢, 將軍孫武曰:「民勞, 未可, 且待之. 」 乃歸.
(합려입삼년, 내흥사여오서、백비벌초, 발서, 수금고오반이장군.
인욕지영, 장군손무왈:「민로, 미가, 차대지. 」 내귀.)
['합려'는 즉위한 지 3년 되는 해에 군사를 대대적으로 일으켜 '오자서'와 '백비'는 함께 초나라를 정벌하여
"서"를 빼앗고, 예전에 오나라를 배반하고 초나라에 항복했던 두 공자를 사로잡아 죽였다.
'합려'가 승세를 타고 초나라의 도읍지인 "영도"로 진격하려 했으나,
장군 '손무'(손자)가 말하기를 : “ 백성들의 고달픔이 너무도 커서 아직 초나라의 "영성"을 공격할 시기가
아닙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며 기회를 기다려야 합니다. "라고 하자.
'합려'는 '손무'의 말을 듣고 군사를 이끌고 본국으로 되돌아왔다.]
四年, 吳伐楚, 取六與灊. 五年, 伐越, 敗之. 六年, 楚昭王使公子囊瓦將兵伐吳.
吳使伍員迎擊, 大破楚軍於豫章, 取楚之居巢.
(사년, 오벌초, 취육여첨. 오년, 벌월, 패지. 육년, 초소왕사공자낭와장병벌오.
오사오원영격, 대파초군어예장, 취초지거소.)
['합려' 4년( BC 551 ) 오나라가 다시 군사를 일으켜 초나라를 공격하여 "육"과 "첨"을 점령했다.
'합려' 5년, 월나라를 공격하여 월군을 패주시켰다.
합려 6년, 초나라에서 '소왕'의 명을 받은 공자 '낭와'가 군사를 거느리고 오나라를 침공해 왔으므로,
'합려'는 '오자서'에게 맞서 싸우게 하여 "예장"에서 초나라 군사를 크게 격파하고 초나라의 "거소"를 빼앗았다.]
九年, 吳王闔廬謂子胥、孫武曰:「始子言郢未可入, 今果何如?」
二子對曰:「楚將囊瓦貪, 而唐、蔡皆怨之. 王必欲大伐之, 必先得唐、蔡乃可. 」
(구년, 오왕합려위자서、손무왈:「시자언영미가입, 금과하여?」
이자대왈:「초장낭와탐, 이당、채개원지. 왕필욕대벌지, 필선득당、채내가. 」)
[합려 9년, 드디어 오왕 '합려'는 '오자서'와 '손무'를 불러 묻기를 :
“ 예전에 그대들은 아직 초나라 "영도"에 쳐들어갈 시기가 아니라고 했는데 지금은 과연 어떻소.”라고 하자.
두 사람이 대답하기를 : “ 초나라 장군 '양와'는 탐욕스러워서 초의 속국인 "당"과 "채" 두 나라의 원한을
사고 있습니다. 대왕께서 대규모로 초나라를 정벌하고자 하신다면 먼저 당나라와 채나라를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십시오 그러면 가능합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闔廬聽之, 悉興師與唐、蔡伐楚, 與楚夾漢水而陳.
吳王之弟夫槪將兵請從, 王不聽, 遂以其屬五千人擊楚將子常. 子常敗走, 奔鄭.
(합려청지, 실흥사여당、채벌초, 여초협한수이진.
오왕지제부개장병청종, 왕불청, 수이기속오천인격초장자상. 자상패주, 분정.)
['합려'는 그 말을 받아들이고 대군을 징발하여 당과 채 두 나라 군사들과 함께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동했다.
세 나라의 군사들이 "한수"를 앞에 두고 진영을 세웠다.
이때 오왕의 동생 '부개'가 선봉을 서려 했으나 왕이 들어주지 아니하자,
자기가 데려온 5천의 군사를 이끌고 '자상'이 이끌던 초군의 진지를 기습했다.
싸움에 패한 '자상'은 패전의 죄를 추궁당할까 두려워하여 정나라로 도망쳤다.]
於是吳乘勝而前, 五戰, 遂至郢. 己卯, 楚昭王出奔. 庚辰, 吳王入郢.
昭王出亡, 入雲夢, 盜擊王, 王走鄖.
(어시오승승이전, 오전, 수지영. 기묘, 초소왕출분. 경진, 오왕입영.
소왕출망, 입운몽, 도격왕, 왕주운.)
[이에 오나라는 승세를 몰아 진격을 시작한지 다섯 번 싸운 끝에 마침내 초나라의 서울 "영도"에 도달하였다.
기묘일에 초'소왕'이 "영도"를 버리고 달아났다. 그 이튼날 경진일에 오왕 '합려'가 "영도"에 입성했다.
소왕은 "영도"를 탈출하여 "운몽"으로 갔으나, 도적들이 '소왕'의 일행을 습격하자 다시 "운" 땅으로 몸을 피했다.]
鄖公弟懷曰:「 平王殺我父, 我殺其子, 不亦可乎!」
鄖公恐其弟殺王, 與王奔隨. 吳兵圍隨, 謂隨人曰:「 周之子孫在漢川者, 楚盡滅之. 」
(운공제회왈:「 평왕살아부, 아살기자, 불역가호!」
운공공기제살왕, 여왕분수. 오병위수, 위수인왈:「 주지자손재한천자, 초진멸지.」)
['운공'의 동생 '회'가 말하기를 : “초'평왕'이 우리 아버지를 죽였으니 내가 그의 자식을 죽여도 옳지 않겠는가 ! ”
라고 하자. '운공'은 자기 아우가 '소왕'을 죽일 것을 염려하여 소왕과 함께 수나라로 달아났다.
그러자 '소왕'을 추격하던 오나라 군사는 수나라를 포위하고, 수나라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
“ 한천 주변에 있는 주나라의 자손들을 초나라가 모두 멸망시켰다.” 라고 하였다.]
隨人欲殺王, 王子綦匿王, 己自爲王以當之. 隨人卜與王於吳, 不吉, 乃謝吳不與王.
始伍員與申包胥爲交, 員之亡也, 謂包胥曰:「 我必覆楚. 」 包胥曰:「 我必存之. 」
(수인욕살왕, 왕자기닉왕, 기자위왕이당지. 수인복여왕어오, 불길, 내사오불여왕.
시오원여신포서위교, 원지망야, 위포서왈:「 아필복초. 」 포서왈:「 아필존지. 」)
[수나라 사람들이 '소왕'을 죽이려 하자, 왕자 '기'는 왕을 숨겨 둔 채 자기가 '소왕'을 대신하여 죽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수나라 사람들이 '소왕'을 오나라로 넘겨주는 문제에 대하여 점을 쳐 본 결과 점패가 불길하게 나왔기
때문에 오나라의 청을 거절하고 '소왕'을 넘겨 주지 않았다.
일찍부터 '신포서'와 '오자서'는 초나라에 같이 있을 때 친교가 있었으나,
'오자서'가 초나라에서 도망칠 때 도중에 우연히 '신포서'를 만나 말하기를 :
" 나는 후에 다시 돌아와 반드시 초나라를 엎어버리고야 말겠네. ”라고 하자.
'신포서'는 말하기를 : “ 나는 반드시 초나라를 보살피겠네. ”라고 하였다.]
及吳兵入郢, 伍子胥求昭王. 旣不得, 乃掘楚平王墓, 出其尸, 鞭之三百, 然後已.
(급오병입영, 오자서구소왕. 기불득, 내굴초평왕묘, 출기시, 편지삼백, 연후이.)
[이윽고 오나라 군사를 이끌고 "영도"에 입성한 '오자서'가 초'소왕'을 찾았다.
그를 찾지 못하자, 초'평왕'의 묘에서 그 시신을 꺼내어 3백 번이나 채찍으로 내리친 뒤에야 그만두었다.]
申包胥亡於山中, 使人謂子胥曰:「子之報讎, 其以甚乎! 吾聞之, 人衆者勝天, 天定亦能破人.
今子故平王之臣, 親北面而事之, 今至於僇死人, 此豈其無天道之極乎!」
(신포서망어산중, 사인위자서왈:「자지보수, 기이심호! 오문지, 인중자승천, 천정역능파인.
금자고평왕지신, 친북면이사지, 금지어륙사인, 차개기무천도지극호!」)
[이때 산속으로 피난을 갔던 신포서는 '오자서'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
" 아들이 비록 그 부친의 원수를 갚는다고는 하나 그 정도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
내가 듣기로 사람이 많으면 일시적으로 하늘을 이길 수 있다고 하나 일단 하늘의 뜻이 정해지면 사람을 파멸시킬
수 있다네. 지금 그대는 옛날 평왕의 신하로써 친히 북면하여 받들었으면서 지금 그 시신을 욕보이고 있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으니 어찌 이보다 더 천도에 어긋날 일을 행할 수 있단 말인가 ? "라고 하였다.]
伍子胥曰:「 爲我謝申包胥曰, 吾日暮塗遠, 吾故倒行而逆施之. 」
於是申包胥走秦告急, 求救於秦, 秦不許. 包胥立於秦廷, 晝夜哭, 七日七夜不絶其聲.
(오자서왈:「 위아사신포서왈, 오일모도원, 오고도행이역시지. 」
어시신포서주진고급, 구구어진. 진불허. 포서입어진정, 주야곡, 칠일칠야불절기성.)
['오자서'는 사자에게 말하기를 : “부디 나를 대신해서 '신포서'에게 잘 일러주게,
내가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어 어쩔 수 없이 하늘의 뜻에 반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네."라고 하였다
'신포서'는 산중에서 나와 진나라로 달려가 초나라의 위급함을 말하고 진나라에 구원을 청했으나
진나라에서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자 '신포서'는 진나라 대궐 앞 뜰에 엎드려 밤낮으로 통곡하기를
이레 낮 밤동안 그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秦哀公憐之, 曰:「楚雖無道, 有臣若是, 可無存乎!」 乃遣車五百乘救楚擊吳.
六月, 敗吳兵於稷. 會吳王久留楚求昭王, 而闔廬弟夫槪乃亡歸, 自立爲王.
(진애공련지, 왈:「초수무도, 유신약시, 가무존호!」 내견거오백승구초격오.
유월, 패오병어직. 회오왕구류초구소왕, 이합려제부개내망귀, 자립위왕.)
[진'애공'은 그를 딱하게 여겨 말하기를 : " 초나라가 비록 무도하다고는 하지만 이와 같은 충신이 있으니
어찌 멸망 할 수 있겠는가 ! "라고 하며. 비로소 병거 오백승을 내주며 초나라를 구하기 위해 오나라를 공격했다.
유월, 진나라 군사는 "직" 땅에서 오나라 군사와 싸워 이겼다.
그때 오왕 '합려'는 초'소왕'을 사로잡기 위해 오랫동안 "영도"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 틈을 타서 동생 '부개'가 몰래 도망쳐 오나라에 들어가 스스로 오왕의 자리에 올랐다.]
闔廬聞之, 乃釋楚而歸, 擊其弟夫槪. 夫槪敗走, 遂奔楚. 楚昭王見吳有內亂, 乃復入郢.
封夫槪於堂谿, 爲堂谿氏. 楚復與吳戰, 敗吳, 吳王乃歸.
(합려문지, 내석초이귀, 격기제부개. 부개패주, 수분초. 초소왕견오유내란, 내복입영.
봉부개어당계, 위당계씨. 초복여오전, 패오, 오왕내귀.)
['합려'는 그 소식을 듣자, 즉시 초나라를 내버리고 귀국해 자기 동생인 '부개'를 공격하였다.
'부개'는 싸움에 패하고 쫓기다 초나라로 달아났다.
초나라 '소왕'은 오나라에 내분이 있음을 보고 "영도"로 다시 들어왔다. '부개'를 당계에 봉하고 '당계'씨로 삼았다.
초나라는 다시 오나라와 싸워 물리치자 '합려'는 다시 오나라로 돌아갔다.]
後二歲, 闔廬使太子夫差將兵伐楚, 取番. 楚懼吳復大來, 乃去郢, 徙於鄀.
當是時, 吳以伍子胥、孫武之謀, 西破彊楚, 北威齊晉, 南服越人.
(후이세, 합려사태자부차장병벌초, 취번. 초구오복대래, 내거영, 사어약.
당시시, 오이오자서、손무지모, 서파강초, 북위제진, 남복월인.)
[그로부터 2년 뒤, '합려'는 태자 '부차'에게 군사를 주어 초나라를 정벌하게 하여 초나라의 "파" 땅을 빼앗았다.
초나라는 오나라가 다시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올까봐 두려워하여 도읍을 "영도"에서 "약"으로 옮겼다.
이때에 오나라는 '오자서'와 '손무'의 계책에 힘입어 강력한 초나라를 공격하여 그 도성을 점령했고,
다시 북쪽의 제나라와 진나라에 위세를 떨쳤으며, 남쪽의 월나라를 굴복시켰다.]
其後四年, 孔子相魯.
(기후사년, 공자상노.)
[그후 4년( BC 500년 ), '공자'가 노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後五年, 伐越. 越王勾踐迎擊, 敗吳於姑蘇, 傷闔廬指, 軍卻.
闔廬病創將死, 謂太子夫差曰 :「 爾忘勾踐殺爾父乎?」 夫差對曰 :「 不敢忘. 」是夕. 闔廬死.
(후오년, 벌월. 월왕구천영격, 패오어고소, 상합려지, 군각.
합려병창장사, 위태자부차왈:「 이망구천살이부호?」 부차대왈:「 불감망. 」 시석. 합려사.)
[그리고 다시 5년 후, 오나라가 월나라를 정벌하였으나 월나라 왕 '구천'이 오나라 군사를 맞아 싸워
"고소"에서 오나라 군사를 물리쳤다. 이때 '합려'는 싸움 중에 손가락에 부상을 입고 회군했다.
'합려'가 귀환하고 싸움 중에 입은 손가락 부상이 도져 장차 죽게 되자 태자 '부차'를 불러 말하기를 :
" 너는 '구천'이 아비를 죽인 것을 잊을 수 있겠느냐 ? ”라고 하자.
'부차'가 말하기를 : “제가 어찌 아버님의 원수를 감히 잊을 수 있겠습니까 ? ”라고 하였다.
이날 저녁 '합려'는 죽었다.]
夫差旣立爲王, 以伯嚭爲太宰, 習戰射. 二年後伐越, 敗越於夫湫.
越王勾踐乃以餘兵五千人棲於會稽之上, 使大夫種厚幣遺吳太宰嚭以請和. 求委國爲臣妾.
(부차기입위왕, 이백비위태재, 습전사. 이년후벌월, 패월어부추.
월왕구천내이여병오천인서어회계지상, 사대부종후폐유오태재비이청화. 구위국위신첩.)
['부차'가 오왕의 자리에 오르자, '백비'를 태제로 임명하여 군사들의 활쏘기와 싸움 연습을 담당하게 하였다.
2년 뒤에 오왕 부차가 이끄는 오군이 월나라를 공격하여 "부초산"에서 월나라를 물리쳤다.
월왕 '구천'은 이에 남은 군사 5천 여명을 "회계산" 위에 머무르게 하고
대부 '문종'을 시켜 많은 뇌물을 가져가 태재 '백비'에게 바치고 강화를 청했다.
이때 '구천'은 나라를 맡기는 동시에 '부차'의 신하가 되겠다고 하였다.]
吳王將許之. 伍子胥諫曰:「越王爲人能辛苦. 今王不滅, 後必悔之. 」
吳王不聽, 用太宰嚭計, 與越平.
(오왕장허지. 오자서간왈:「월왕위인능신고. 금왕불멸, 후필회지. 」
오왕불청, 용태재비계, 여월평.)
[백비'의 보고를 받은 오왕 '부차'가 월왕 '구천'의 항복을 받아드리려고 하였다.
'오자서'가 간언하기를 : “월왕은 고통을 잘 견디는 사람입니다.
지금 대왕께서 그를 없애버리지 않는다면 뒷날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오왕은 '오자서'의 간언을 듣지 않고 태재 '백비'의 계략을 들어 월나라와 화평하였다.]
其後五年, 而吳王聞齊景公死而大臣爭寵, 新君弱, 乃興師北伐齊.
(기후오년, 이오왕문제경공사이대신쟁총, 신군약, 내흥사북벌제.)
[그로부터 5년 뒤, 오왕 '부차'는 제나라에 '경공'이 죽어 대신들이 서로 권력을 다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새 임금은 아직 나이가 어려 유약하다는 소식을 듣고, 군사를 일으켜 북쪽으로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伍子胥諫曰:「 勾踐食不重味, 弔死問疾, 且欲有所用之也. 此人不死, 必爲吳患.
今吳之有越, 猶人之有腹心疾也. 而王不先越而乃務齊, 不亦謬乎!」
(오자서간왈:「 구천식불중미, 조사문질, 차욕유소용지야. 차인불사, 필위오환.
금오지유월, 유인지유복심질야. 이왕불선월이내무제, 불역류호!」)
[오자서가 또 다시 간언하기를 : “'구천'은 맛있는 음식을 먹지 않으며 백성들 중 초상이 난 집은 조문을 가고,
병이 든 사람들에게는 문안을 다녀 백성들의 인심을 모으고 있는 중입니다.
'구천'의 행위들은 후에 소용이 있어서 입니다. 그를 죽이지 않으면 반드시 오나라의 우환거리가 될 것입니다.
지금 오나라에 있어서 월나라는 흡사 사람의 뱃속에 병이 든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는 급한 월나라를 제쳐놓고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시니
어찌 그것이 옳은 일이라고 하겠습니까 "라고 하였다.]
吳王不聽, 伐齊, 大敗齊師於艾陵, 遂威鄒魯之君以歸. 益疏子胥之謀.
(오왕불청, 벌제, 대패제사어애릉, 수위추로지군이귀. 익소자서지모.)
[그러나 오왕은 '오자서'의 말을 듣지 않고, 제나라를 정벌하여 "애능"에서 제나라 군사를 크게 물리치고
추나라와 노나라 군주에게 위엄을 떨치고 돌아갔다.
왕은 그 뒤로 점점 더 '오자서'의 계책을 멀리하여 사이가 멀어지게 되었다.]
其後四年, 吳王將北伐齊, 越王勾踐用子貢之謀, 乃率其衆以助吳, 而重寶以獻遺太宰嚭.
太宰嚭旣數受越賂, 其愛信越殊甚, 日夜爲言於吳王. 吳王信用嚭之計.
(기후사년, 오왕장북벌제, 월왕구천용자공지모, 내솔기중이조오, 이중보이헌유태재비.
태재비기수수월뢰, 기애신월수심, 일야위언어오왕. 오왕신용비지계.)
[그로부터 4년 후, 오왕이 다시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자,
월왕 '구천'이 공자의 제자 '자공'의 계책에 따라 군사를 이끌고 가서 오나라를 돕는다 하고
다시 많은 뇌물을 태재 '백비'에게 바쳐 환심을 샀다.
'백비'는 그 전에도 이미 많은 뇌물을 받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월나라를 지극히 좋아하며 신임했다.
그는 매일 밤낮으로 오왕에게 '구천'의 충성심을 이야기했다. 오왕은 '백비'의 말을 믿고 따랐다.]
伍子胥諫曰:「 夫越, 腹心之病, 今信其浮辭詐僞而貪齊. 破齊, 譬猶石田, 無所用之.
且盤庚之誥曰:『 有顚越不恭, 劓殄滅之, 俾無遺育, 無使易種于玆邑. 』
此商之所以興. 願王釋齊而先越;若不然, 後將悔之無及. 」 而吳王不聽, 使子胥於齊.
(오자서간왈:「 부월, 복심지병, 금신기부사사위이탐제. 파제, 비유석전, 무소용지.
차반경지고왈:『 유전월불공, 의진멸지, 비무유육, 무사역종우자읍. 』
차상지소이흥. 원왕석제이선월;약불연, 후장회지무급. 」 이오왕불청, 사자서어제.)
[오자서가 간언하기를 : “ 무릇 월나라는 오나라에 있어서 뱃속에 든 병과 같은데,
지금 월나라의 근거 없는 말과 거짓을 믿고 제나라를 탐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제나라를 공격하여 비록 그 땅을 얻는다 해도 그곳은 자갈밭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무짝에도 쓸모없습니다.
또 《서경》〈상서, 반경 中〉편에 이르기를 : ' 불선하고 무도한 사람으로서 분수를 넘어 공손하지 않은 자와,
잠시 만남에 간악한 짓을 하는 자가 있으면, 나는 이들의 코를 베고 다 죽여 자손도 남기지 않음으로써,
종족을 이 새 도읍에 옮겨가지 못하게 할 것이요. '라고 하였으니, 이것이 상나라가 흥한 이유입니다.
원컨대 제나라를 정벌하는 대신 월나라를 멸하시기 바랍니다 ;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시면 나중에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왕'은 '오자서'의 간언을 듣지 않고 그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子胥臨行, 謂其子曰:「吾數諫王, 王不用, 吾今見吳之亡矣. 汝與吳俱亡, 無益也. 」
乃屬其子於齊鮑牧, 而還報吳.
(자서임행, 위기자왈:「오수간왕, 왕불용, 오금견오지망의. 여여오구망, 무익야. 」
내속기자어제포목, 이환보오.)
['오자서'가 제나라로 출발하기 전에 그의 아들에게 말하기를 : “ 내가 여러 번 대왕께 간언했으나
대왕이 들어주지 않는구나. 나는 머지 않아 오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겠지만,
너까지 오나라와 함께 죽는 것은 무익한 일이다.”라고 하였다.
'오자서'는 그의 아들을 제나라로 데려가 제나라 대부 '포목'에게 부탁하고 혼자 돌아와 오왕에게
사신으로 간 일의 결과에 대해 보고 하였다.]
吳太宰嚭旣與子胥有隙, 因讒曰:「子胥爲人剛暴, 少恩, 猜賊, 其怨望恐爲深禍也.
前日王欲伐齊, 子胥以爲不可, 王卒伐之而有大功. 子胥恥其計謀不用, 乃反怨望.
而今王又復伐齊, 子胥專愎彊諫, 沮毁用事, 徒幸吳之敗以自勝其計謀耳.
今王自行, 悉國中武力以伐齊, 而子胥諫不用, 因輟謝, 詳病不行. 王不可不備, 此起禍不難.
且嚭使人微伺之, 其使於齊也, 乃屬其子於齊之鮑氏.
夫爲人臣, 內不得意, 外倚諸侯, 自以爲先王之謀臣, 今不見用, 常鞅鞅怨望. 願王早圖之. 」
(오태재비기여자서유극, 인참왈:「자서위인강폭, 소은, 시적, 기원망공위심화야.
전일왕욕벌제, 자서이위불가, 왕졸벌지이유대공. 자서치기계모불용, 내반원망.
이금왕우부벌제, 자서전퍅강간, 저훼용사, 도행오지패이자승기계모이.
금왕자행, 실국중무력이벌제, 이자서간불용, 인철사, 상병불행. 왕불가불비, 차기화불난.
차비사인미사지, 기사어제야, 내속기자어제지포씨.
부위인신, 내불득의, 외의제후, 자이위선왕지모신, 금불견용, 상앙앙원망. 원왕조도지. 」)
[오나라 태재 '백비'와 '오자서' 간에 틈이 생겨 이로 인해 '백비'가 참소하기를 :
" '자서'라는 사람은 고집이 세고 사나워 은혜를 베푸는데 인색하며, 시기하고 해치려는 마음이 있어,
자기 말을 물리친 대왕께 대해서도 원망이 깊어 큰 화를 불러 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예전에 대왕께서 제나라를 정벌한다고 할 때 '자서'는 불가하다고 하며 극력 반대했으나 대왕께서는 결국 큰 공을
이루셨습니다. 이때 '자서'는 자기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다가 이제는 오히려
대왕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다시 제나라를 정벌하려 하시는데,
'자서'가 또다시 제 멋대로 고집을 부려 극력 반대하며 간언하여 일을 도모하는 것을 막아 훼손하고,
오로지 오나라의 군사들이 싸움에 패해서 자기의 주장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지금 대왕께서 제나라를 정벌하기 위해서 오나라의 모든 군사들을 이끌고 정벌 하려는데도 불구하고
'자서'는 자기의 간언이 용납되지 않는다고 물러가 병을 핑계로 출정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대왕께서는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하셔야만 합니다.
'오자서'의 행위를 미루어 볼 때 앞으로 일어날 화를 예측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제가 사람을 시켜 '오자서'의 행적을 살펴본 바에 의하면 예전에 그가 제나라에 사자로 갈 때 아들을 대동하였는데
그는 아들을 제나라의 포씨 집에 맡겨 놓고 자기 혼자만 돌아왔다고 합니다.
무릇 신하된 자가 나라 안에서 뜻을 얻지 못했다 해서 다른 나라 제후에게 의지하는 행위는 심히 잘못된 일입니다.
옛날 선왕 때부터 모략에 능한 신하로 오나라를 받들던 자가 지금은 자기의 의견이 쓰이지 않는다고 해서
매일 원망만 하고 있습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하루라도 빨리 그를 도모해야 합니다. ”라고 하였다.]
吳王曰:「微子之言, 吾亦疑之. 」 乃使使賜伍子胥屬鏤之劍, 曰:「 子以此死. 」
(오왕왈:「미자지언, 오역의지. 」 내사사사오자서속루지검, 왈:「 자이차사. 」)
[오왕 '부차'가 말하기를 : " 그대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 역시 그를 의심하고 있었소. "라고 하면서.
사람을 시켜 '오자서'에게 촉루검을 보내면서 이르기를 : "그대는 이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기 바란다."하였다.]
伍子胥仰天歎曰:「 嗟乎! 讒臣嚭爲亂矣, 王乃反誅我. 我令若父霸.
自若未立時, 諸公子爭立, 我以死爭之於先王.
幾不得立, 若旣得立, 欲分吳國予我, 我顧不敢望也. 然今若聽諛臣言以殺長者. 」
(오자서앙천탄왈:「 차호! 참신비위란의, 왕내반주아. 아령약부패.
자약미입시, 제공자쟁입, 아이사쟁지어선왕.
기불득입, 약기득입, 욕분오국여아, 아고불감망야. 연금약청유신언이살장자. 」)
[오자서는 하늘을 우러러 보며 탄식하기를 : “ 아, 슬프도다 ! 참소를 잘하는 신하 '백비'가 나라를 어지럽히려
하고 있거늘, 대왕이 도리어 충신인 나를 죽이려 하는구나. 나는 그대의 아버지를 패자로 만들었으며,
그대가 태자가 되기 전에 여러 공자들이 태자가 되려고 경쟁을 할 때 내가 죽을 각오로 선왕에게 간하였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찌 그대가 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겠는가 ?
그대가 왕이 된 후에도 오나라를 나누어 나에게 주려고 한 것을 내가 감히 받을 수 없다고 사양했다.
그런데 지금 아첨하는 신하의 말만 듣고 어른을 죽이려 하는가 ? ”라고 하였다.]
乃告其舍人曰:「 必樹吾墓上以梓, 令可以爲器;而抉吾眼縣吳東門之上, 以觀越寇之入滅吳也.」
(내고기사인왈:「 필수오묘상이재, 령가이위기;이결오안현오동문지상, 이관월구지입멸오야. 」)
[오자서는 자기의 집사람들에게 말하기를 : " 반드시 나의 무덤 위에 가래나무를 심어
오왕을 위한 관을 삼게 하라 ;그리고 나의 두 눈을 뽑아 오나라의 동문 위에 걸어 놓으라,
나는 죽어서라도 월나라가 쳐들어와 오나라가 망하는 모습을 보리라. "라고 하였다.]
乃自剄死. 吳王聞之大怒, 乃取子胥尸盛以鴟夷革, 浮之江中.
吳人憐之, 爲立祠於江上, 因命曰胥山.
(내자경사. 오왕문지대노, 내취자서시성이치이혁, 부지강중.
오인련지, 위입사어강상, 인명왈서산.)
[그리고 '오자서'는 촉루검으로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오왕'은 '오자서'의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그의 시신을 끌어내다가 말가죽으로 만든 자루에 넣어 강물에 띄워 버렸다.
오나라 사람들이 이를 가엾게 여겨 강가에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내 주었다.
사람들은 그 사당이 있는 산의 이름을 "서산"이라 불렀다.]
吳王旣誅伍子胥, 遂伐齊. 齊鮑氏殺其君悼公而立陽生. 吳王欲討其賊, 不勝而去.
其後二年, 吳王召魯衛之君會之橐皐.
(오왕기주오자서, 수벌제. 제포씨살기군도공이입양생. 오왕욕토기적, 불승이거.
기후이년, 오왕소로위지군회지탁고.)
[오왕은 '오자서'를 죽이고 제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하였다.
그때 제나라의 포씨들은 그 군주인 '도공'을 시해하고 '양생'을 새로운 군주로 세웠다.
오왕이 찬탈의 죄를 묻는다는 명분으로 토벌하기 위해 출정했으나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고 회군했다.
그로부터 2년 후에 오왕이 노나라와 위나라의 군주를 "탁고"의 땅으로 불러 회맹을 가졌다.]
其明年, 因北大會諸侯於黃池, 以令周室. 越王勾踐襲殺吳太子, 破吳兵.
吳王聞之, 乃歸, 使使厚幣與越平.
(기명년, 인북대회제후어황지, 이령주실. 월왕구천습살오태자, 파오병.
오왕문지, 내귀, 사사후폐여월평.)
[그 이듬해에 북쪽의 "황지"에 제후들을 대거 모이게 하여 주왕실의 령을 전했다.
월왕 '구천'이 비어 있는 오나라를 습격하여 오나라의 군사들을 크게 격파하고 태자를 죽였다.
오왕은 이 소식을 듣고 되돌아가서 사신을 시켜 후한 폐물을 바치고 월나라와 화친을 맺었다.]
後九年, 越王勾踐遂滅吳, 殺王夫差;而誅太宰嚭, 以不忠於其君, 而外受重賂, 與己比周也.
(후구년, 월왕구천수멸오, 살왕부차;이주태재비, 이불충어기군, 이외수중뢰, 여기비주야.)
[그로부터 9년 뒤, 월왕 '구천'이 오나라를 멸망시키고 왕 '부차'를 죽였다 ;
또 자기 군주에게 불충하고, 외부의 적으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아 내통했다는 죄를 물어 '백비'를 주살하였다.]
伍子胥初所與俱亡, 故楚太子建之子勝者, 在於吳. 吳王夫差之時, 楚惠王欲召勝歸楚.
葉公諫曰:「 勝好勇而陰求死士, 殆有私乎!」
(오자서초소여구망, 고초태자건지자승자, 재어오. 오왕부차지시, 초혜왕욕소승귀초.
섭공간왈:「 승호용이음구사사, 태유사호!」)
['오자서'가 처음 초나라로 도망쳐 올 때 데리고 온 태자 '건'의 아들 '승'도 오나라에 살고 있었다.
오왕 '부차' 때 초나라 '혜왕'이 '승'을 초나라로 되돌아오게 하려 하였다.
'섭공'이 간언하기를 : " 승은 용맹함을 좋아하여 남몰래 결사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아마도 위태로운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 일 것입니다 ! "라고 하였다.]
惠王不聽. 遂召勝, 使居楚之邊邑鄢, 號爲白公. 白公歸楚三年, 而吳誅子胥.
(혜왕불청. 수소승, 사거초지변읍언, 호위백공. 백공귀초삼년, 이오주자서.)
[그러나 혜왕은 듣지 않았다. 마침내 '승'을 불러들여 초나라 변경인 "언"에 머물러 살게 하고 '백공'이라 불렀다.
'백공'이 초나라로 돌아온 지 3년 되던 해에 오나라는 '오자서'를 죽였다.]
白公勝旣歸楚, 怨鄭之殺其父, 乃陰養死士求報鄭. 歸楚五年, 請伐鄭, 楚令尹子西許之.
兵未發而晉伐鄭, 鄭請救於楚. 楚使子西往救, 與盟而還.
(백공승기귀초, 원정지살기부, 내음양사사구보정. 귀초오년, 청벌정, 초령윤자서허지.
병미발이진벌정, 정청구어초. 초사자서왕구, 여맹이환.)
[백공 '승'이 초나라로 돌아온 뒤로부터 정나라가 자기의 부친 태자 '건'을 살해한 것에 원한을 품고,
아무도 몰래 비밀 결사대를 양성하여 정나라에 원수를 갚으려고 했다.
초나라에 돌아온 지 5년이 지나자 백공 '승'은 당시 영윤인 '자서'에게 정나라를 정벌하여 부친의 원수를 갚겠다고
청하자 '자서'가 허락했다. 백공 '승'이 군사를 미처 출병도 하기 전에 진나라가 정나라를 공격했다.
이에 정나라는 초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초나라는 '자서'로 하여금 정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
'자서'는 정나라를 구한 후 진나라와 동맹을 맺고 돌아왔다.]
白公勝怒曰 :「 非鄭之仇, 乃子西也. 」 勝自礪劍, 人問曰:「 何以爲?」
勝曰:「 欲以殺子西. 」 子西聞之, 笑曰:「 勝如卵耳, 何能爲也. 」
(백공승노왈:「 비정지구, 내자서야. 」 승자려검, 인문왈:「 하이위?」
승왈:「 욕이살자서. 」 자서문지, 소왈:「 승여란이, 하능위야. 」)
[백공 '승'은 화를 내며 말하기를 : “ 이제 나의 원수는 정나라가 아니라, '자서'이다. "라고 하며.
'승'이 몸소 칼을 갈자, 어떤 사람이 묻기를 : " 어찌하여 몸소 칼을 갈고 계십니까 ? "라고 하자.
'승'이 말하기를 : " '자서'를 죽이기 위해서요. "라고 하였다.
'자서'가 이 말을 전해 듣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 " '승'은 마치 계란과 같을 뿐인데,
무엇을 할 수 있겠다는 것인가 ? ”라고 하였다.]
其後四歲, 白公勝與石乞襲殺楚令尹子西、司馬子綦於朝. 石乞曰:「 不殺王, 不可. 」
乃劫之王如高府. 石乞從者屈固, 負楚惠王亡走昭夫人之宮.
(기후사세, 백공승여석걸습살초영윤자서、사마자기어조. 석걸왈 : 「 불살왕, 불가. 」
내겁지왕여고부. 석걸종자굴고, 부초혜왕망주소부인지궁.)
[그후 4년, 백공 '승'은 자기의 부하 '석걸'을 데리고 조정에 나가 영윤 '자서'와 사마 '자기'를 습격해 죽였다.
그때 '석걸'이 말하기를 : "왕을 죽이지 않으면,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석걸'이 '혜왕'마저 죽이려 했으나 '혜왕'은 재빨리 "고부"로 피난했다.
'석걸'을 따르던 '굴고'가 미리 이 사실을 알고 "고부"로 달려가 초'혜왕'을 등에 업고 도망쳐
'소부인'의 궁실로 들어가 숨었다.]
葉公聞白公爲亂, 率其國人攻白公. 白公之徒敗, 亡走山中, 自殺.
而虜石乞, 而問白公尸處, 不言將烹.
(섭공문백공위란, 솔기국인공백공. 백공지도패, 망주산중, 자살.
이로석걸, 이문백공시처, 불언장팽.)
['백공'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소식을 들은 '섭공'은 초나라 백성들을 이끌고 백공'을 공격하였다.
'백공'의 무리들이 패하자, '백공'은 산중으로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석걸'은 포로가 되었고, '섭공'은 '석걸'에게 '백공'의 시신을 어디에 묻었는지를 묻고,
대답하지 않으면 가마솥의 끓는 물에 삶아 죽이겠다고 위협하였다.]
石乞曰:「 事成爲卿, 不成而烹, 固其職也. 」 終不肯告其尸處. 遂烹石乞, 而求惠王復立之.
(석걸왈:「 사성위경, 불성이팽, 고기직야. 」 종불긍고기시처. 수팽석걸, 이구혜왕복입지. )
[그러자 '석걸'이 말하기를 : " 일이 성공하면 공경 대부가 되는 것이고,
성사되지 못하면 삶겨서 죽게 되는 일은 당연하다. "라고 하며. 끝내 '백공'의 시신이 있는 곳을 말하지 않았다.
'섭공'은 결국 '석걸'을 삶아 죽이고 '혜왕'을 구하여 다시 왕위에 세웠다.]
太史公曰:
怨毒之於人甚矣哉! 王者尙不能行之於臣下, 況同列乎!
向令伍子胥從奢俱死, 何異螻蟻. 棄小義, 雪大恥, 名垂於後世.
悲夫! 方子胥窘於江上, 道乞食, 志豈嘗須臾忘郢邪?
故隱忍就功名, 非烈丈夫孰能致此哉 ?
白公如不自立爲君者, 其功謀亦不可勝道者哉!
(태사공왈:
" 원독지어인심의재! 왕자상불능행지어신하, 황동열호!
향령오자서종사구사, 하이루의. 기소의, 설대치, 명수어후세.
비부! 방자서군어강상, 도걸식, 지기상수유망영야 ?
고은인취공명, 비열장부숙능치차재 ?
백공여불자입위군자, 기공모역불가승도자재!)
[태사공이 말하기를 : " 원한의 해독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은 참으로 뿌리가 깊도다 !
임금이라도 신하에게 원한을 품게 하면 안 되거늘, 하물며 같은 서열에 있는 사람에게는 말해야
무었하겠는가 ! 옛날 '오자서'가 그 부친 '오사'의 부름에 응하여 함께 죽고 말았다면,
그것은 한낱 땅강아지나 개미에 불과했을 것이다.
작은 義를 버리고 원수를 갚아 큰 치욕을 씻음으로써 그 이름을 후세에 남겼다.
참으로 슬프다 ! '오자서'가 초나라에 쫓기는 몸이 되어 강수 기슭에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을 때
거지 노릇까지 했었지만, 어찌 잠시라도 초나라의 도읍인 "영도"를 잊을 수 있었겠는가 ?
그러나 몰래 참고 견뎌 결국은 공명을 이룰 수 있었으니,
그와 같은 열혈 장부가 아니었다면 그 누가 능히 그와 같은 일을 이루어 낼 수 있었겠는가 ?
'백공'도 자신이 임금이 되려고만 하지 않았더라면 세운 공과 계책도 역시 이루 말로 표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
【 각주 】
1) 원전은 ‘其先曰伍擧’이나 <좌전(左傳) 양공(襄公) 26년>조에는
初楚伍參與蔡大師子朝友 其子伍擧與聲子相善也伍 擧娶於王子牟 王子牟爲申公而亡.
楚人曰 伍擧實送之 伍擧奔鄭 將遂奔晉라는 기사에 의하면 오거는 오삼의 아들이라고 했다.
2) 원전에는 「, 以直諫事楚庄王, 有顯...」으로 되어 있는데 초장왕(楚庄王)에게 직간한 사람은
오거의 부 오삼(伍參)이며 오거는 강왕(康王)과 영왕(靈王)을 모신 사람이다. 국어(國語)의 초어(楚語)에
영왕이 장화대(章華臺)를 완성한 후에 아름답지 않냐고 묻자 오가가 다음과 같이 간한 내용이 있다.
「군주는 신복(信服)과 은총으로서 아름다움으로 삼으며 백성들을 안락하게 다스림으로써 즐거움을 삼는다 했고,
덕음을 듣는 것을 총(聰)이라고 하고 멀리까지 왕화를 미치게 하는 것을 명(明)이라 했습니다.
토목공사를 일으켜 지은 높은 누대를 꾸미는 것을 아름답다고 하지 않으며, 금석포죽(金石匏竹)의 세상의 온갖
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을 듣는 것을 락으로 삼지 않습니다.또한 사치스럽고 음탕한 여인들을 대거 모아
그것을 즐기는 것을 명(明)이라 하지 않고 단지 맑은 것과 탁한 것을 살피는 것을 총이라 하는 것입니다. 」
3) 초평왕(楚平王) : 초평왕 앞대의 내력은 간략해서 다음과 같다.
초공왕(楚共王)은 오패(五覇) 중의 한 사람인 초장왕(楚庄王)의 아들이다. 공왕(共王)은 아들 다섯을 두었다.
장남은 웅초(熊招) 강왕(康王)이고 차남은 웅건(熊虔) 공자위(公子圍), 삼남은 공자간(公子干),
사남은 공자석(公子晳), 막내는 웅거(熊居) 공자기질(公子棄疾)이다. 강왕이 죽고 그의 어린 아들 웅원(熊員)이
뒤를 잇자 공자위가 웅원을 죽이고 스스로 초나라 왕위에 올랐다. 이가 영왕(靈王)이다.
영왕이 군사를 빈번히 동원하여 전쟁을 벌리고 토목공사를 일으켜 초나라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졌다.
영왕이 진(陳)과 채(蔡) 두 나라를 멸하여 초나라의 군현(郡縣)으로 삼고 채나라에는 자기의 막내 동생인
기질(棄疾)을 봉하고 채공(蔡公)이라 불렀다. 영왕이 동쪽의 서(徐)나라에 원정 나간 틈을 타
진(陳)과 채(蔡) 두 나라의 백성들과 군사들을 동원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영왕은 영도로 회군하던 도중에
이끌던 군사들이 흩어져 도망치는 바람에 영도를 탈환하지 못하고 죽었다. 기질(棄疾)이 초평왕이다.
4) 비무기(費无忌) : 춘추좌전(春秋左傳)에는 비무기(費無極)으로 되어있다.
5) 화씨(華氏)들의 란(亂) : 기원전 532년 송원공(宋元公) 10년에 일어난 송정변으로 원공이 당시
송나라의 권력을 독점하고 있던 화씨들을 몰아내려고 하자 화해(華亥)와 화녕(華寧) 등이 란을 일으켰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초나라로 망명했다.
6) 집규(執珪) : 춘추시대 때 초나라 작위(爵位) 등급의 하나. 지위는 봉국(封國)의 군주에 해당한 고위직이었다.
7) 종리(鍾離) : 지금의 안휘성 방부시(蚌埠市) 봉양현(鳳陽縣) 경내로서 회수(淮水)의 남안(南岸)에 있던 고을.
춘추 때 초나라 소속의 고을이다.
8) 애릉 : 지금의 산동성 치박시(淄博市) 경내 남쪽에 있는 노산(魯山) 서쪽 산록으로 제나라의 남쪽 관문을 지키는
요해지였다.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