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伯夷列傳

第 一. 伯夷列傳(백이열전)

덕치/이두진 2021. 7. 14. 17:28

           史記 列傳

 

   第 一.   伯夷列傳(백이열전)

 

 夫學者載籍極博, 猶考信於六藝.  詩書雖缺, 然虞夏之文可知也.

 (부학자재적극박, 유고신어육예.  시서수결, 연우하지문가지야.)


 [대체로 학자들이 기록한 책은 매우 많으나 믿을 만한 것은

 ​육예(육경:시경,서경,예기,약경,역경,춘추)에서 찾을 수 있다.
 시경과 서경에도 없어진 곳이 있기는 하나, 우나라와 하나라 때의 일은 알 수 있다. ]

 

堯將遜位, 讓於虞舜, 舜禹之閒, 岳牧咸薦, 乃試之於位, 典職數十年, 功用既興,

然後授政.

 (요장손위, 양어우순,  순우지한, 악목함천, 내시지어위, 전직수십년, 공용기흥, 연후수정.)


 ['요'(堯)임금은 자리를 양보하려고 하여 '순'(舜)에게 군주자리를 물려 주었다. 

 '순'과 '우' 사이에 사악(사방 제후들의 우두머리)과 열두 주의 목(각 주의 행정 장관)들이 다 함께

 '우'를 추천 하였으므로 시험 삼아 벼슬을 주고 수십 년 동안 정치를 맡겨 공적이 이루어진 다음에

 정치를 맡겼다.]

 

 示天下重器, 王者大統, 傳天下若斯之難也.  

 而說者曰 :「堯讓天下於許由, 許由不受, 恥之逃隱.  及夏之時, 有卞隨, 務光者.」

 此何以稱焉 ?

 (시천하중기, 왕자대통, 전천하약사지난야. 

 이설자왈요양천하어허유, 허유불수, 치지도은.  급하지시, 유변수, 무광자.  차하이칭언 ?)


 [천하는 소중한 그릇이고 왕은 가장 높은 통치자이므로 천하를 전해주는 일이

 이처럼 어려움을 보여 주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이르기를 :  "'요'임금이 '허유'에게 천하를 물려주려고 하자,
 '허유'는 받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말을 들은 것을 부끄러워하며 달아나 숨어 버렸다.
 하나라 때에는 '변수'와 '무광' 같은 인물이 있었다.

 이러한 사람들은 무엇때문에 세상 사람들의 추앙을 받을까 ?" ]
 
 太史公曰 : 余登箕山, 其上蓋有許由冢云. 

 孔子序列古之仁聖賢人, 如吳太伯, 伯夷之倫, 詳矣.

 余以所聞由, 光義至高, 其文辭不少槪見, 何哉 ?

 (태사공왈 : 여등기산, 기상개유허유총운.  공자서열고지인성현인, 여오태백, 백이지륜, 상의. 

 여이소문유, 광의지고, 기문사불소개견, 하재 ?)


 [태사공이 말하기를 : "내가 "기산"에 올랐을 때, 그 위에 아마도 '허유'의 무덤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공자는 옛 인연, 성인, 현인들을 차례로 열거하면서 '오태백'、'백이' 같은 사람을 

 자세히 언급하고 있다. 나는 '허유'와 '무광'이 절개와 의리가 몹시 고결한 인물이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시경>과 <서경>에 적힌 기사에는 그들에 대해 조그만 것도 나타나 있지 않으니,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 ]

 

 孔子曰 :「伯夷 , 叔齊, 不念舊惡, 怨是用希.」  「求仁得仁, 又何怨乎 ?」  

 余悲伯夷之意,  睹軼詩可異焉.

 (공자왈 : 「백이、숙제,  불념구오, 원시용희. 」  「구인득인, 우하원호 ?」  

 여비백이지의,  도질시가이언.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백이', '숙제'는 남의 지난날의 잘못을 기억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기에 남으로부터 원망 받는 일이 드물었다."라고 했고,
 "그들이 어진 것을 구함으로 해서 어진 것을 얻었는데, 구태어 원망할 필요가 있겠는가 ?"했다.
 그러나 나는 '백이'의  마음이 비통하다고 생각하게 된 이유는

 일시(시경에 실려 있지 않은 시 : 채미 )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


 其傳曰 : 伯夷、叔齊,  孤竹君之二子也.  父欲立叔齊, 及父卒, 叔齊讓伯夷. 

 伯夷曰:「父命也 .」 遂逃去.

 (기전왈 :  백이、숙제,  고죽군지이자야.  부욕입숙제, 급부졸,  숙제양백이. 

 백이왈 : 「부명야. 」 수도거. )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렇게 적혀 있다 : '백이'와 '숙제'는 고죽국 왕의 두 아들이다.

 고죽국 왕이 '숙제'를 그 후계로 세우려고 하다가 미처 행하지 못하고 죽었다.
 '숙제'가 왕위를 '백이'에게 양보하려고 하자 ‘부왕의 명이었다.’라고 말하면서 달아나 버렸다. ]

 

 叔齊亦不肯立而逃之.  國人立其中子.  於是伯夷、叔齊聞西伯昌善養老, 盍往歸焉.

 (숙제역불긍입이도지.  국인입기중자.  어시백이、숙제문서백창선양노합왕귀언.)


 ['숙제'도 역시 왕위에 오르는 것을 달갑게 생각하지 않고 나라 밖으로 달아났다.

 고죽국의 사람들이 할 수 없이 중자(둘째 아들)를 왕으로 세웠다. '백이', '숙제'는 '서백창'이

 노인들을 잘 공경한다는 소문을 듣고 주나라로 달려가 귀의하려고 했다.]

 

及至,  西伯卒,  武王載木主,  號爲文王, 東伐紂.  伯夷、叔齊叩馬而諫曰 :

「父死不葬,  爰及干戈, 可謂孝乎? 以臣弑君, 可謂仁乎?」左右欲兵之.

 (급지, 서백졸,  무왕재목주,  호위문왕, 동벌주.  백이、숙제고마이간왈 :

 「부사불장, 원급간과, 가위효호 ?  이신시군,  가위인호 ? 」 좌우욕병지.)


 [그런데 그들이 주나라에 이르렀을 때 서백창은 이미 죽고 없었다.

 그의 아들 '무왕'은 선왕의 시호를 '문왕'이라고 일컬으며 나무로 만든 아버지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동쪽으로 은나라 주왕을 치러 했다. '백이'와 '숙제'는 무왕의 말고삐를 붙잡고 간언하기를 :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장례도 치르지 않고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일으키니

 이것을 하늘의 도리에 따른 효라 할 수 있습니까 ? 
 더욱이 신하된 자가 자신의 군주를 살해하려고 하는 행위를 인의라고 할 수 있습니까 ?"」
 그러자 (무왕 곁에) 있던 신하들이 그들의 목을 베려고 하였다.]


 太公曰:「此義人也. 」  扶而去之. 

 武王已平殷亂, 天下宗周, 而伯夷、叔齊恥之, 義不食周粟, 隱於首陽山, 采薇而食之.

 (태공왈 : 「차의인야. 」  부이거지. 

 무왕이평은란, 천하종주, 이백이、숙제치지, 의불식주속, 은어수양산, 채미이식지. )


 [이 때 '태공'(제나라의 시조인 여상)이 말하기를 : " 저 사람들은 의인이다 ! "라고 하자, 

 '상보'가 사람을 시켜 '백이'와 '숙제'를 부축하여 돌아가도록 하였다.
 이윽고 '무왕'이 상나라 '주왕'의 폭정을 평정하자 천하 제후들은 주나라를 종주국으로 삼았다. 

 그러나 '백이'와 '숙제'는 주나라의 백성이 된 것을 치욕으로 여기고 지조를 지켜

 주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겠다고 하면서 수양산에 은거하여 산나물(고사리)을 뜯어먹으며

 배를 채워 연명했다.]

 

 及餓且死, 作歌.  其辭曰:「登彼西山兮, 采其薇矣.  以暴易暴兮, 不知其非矣. 

 神農、虞、夏忽焉沒兮,  我安適歸矣 ? 于嗟徂兮, 命之衰矣 ! 」

 (급아차사, 작가.  기사왈 : 「등피서산혜, 채기미의.  이폭역폭혜, 불지기비의. 

 신농、우、하홀언몰혜, 아안적귀의 ?  우차조혜, 명지쇠의 ! 」 )


 [이윽고 그들은 꿂주려서 죽을 지경에 이르러 노래를 지었는데,  그 가사는 이러했다.
 " 저 서산에 올라 고사리를 뜯어 먹자꾸나. 포악으로 포악을 바꾸었건만 그것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모르는구나 ! . '신농'、'우순'、하우의 시대는 홀연히 지나갔으니 우리는 장차 어디에

 의지해야 한단 말인가 ? 아아 ! 이제는 죽음뿐이구나, 쇠잔한 우리의 운명이여 ! "]

 

 遂餓死於首陽山.  由此觀之, 怨邪非邪 ?  或曰:「天道無親, 常與善人. 」 

 若伯夷、叔齊, 可謂善人者非邪 ?  積仁絜行如此而餓死 !

 (수아사어수양산.  유차관지, 원사비사 ?  혹왈 : 「천도무친, 상여선인. 」  

 약백이、숙제, 가위선인자비사 ?  적인혈행여차이아사 ! )


 [마침내 두 사람은 수양산에서 굶어죽고 말았다. 

 이 노래로 미루어 본다면 두 사람은 원망하는 마음을 노래했는가 ? 

 아니면 원망하지 않는 마음을 노래했는가 ?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  "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움이 없어 늘 착한 사람들 편이다."

 그렇다면 '백이'와 '숙제'와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
 그러나 그들은 이처럼 어진 덕망을 쌓고 행실을 깨끗하게 했어도 굶어 죽지 않았는가 ? ]

 

 且七十子之徒, 仲尼獨薦顏淵爲好學.  然回也屢空,  糟糠不厭, 而卒蚤夭.

 (차칠십자지도,  중니독천안연위호학.  연회야루공,  조강불염,  이졸조요.  )


 [또한 공자는 제자 일흔 명 중에서 유독 '안연'만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안연'은 늘 가난해서 술지게미와 쌀겨 같은 거친 음식조차 배불리 먹지 못하고,

 끝내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말았다. ]

 

 天之報施善人, 其何如哉 ? 

 盜蹠日殺不辜, 肝人之肉, 暴戾恣睢, 聚黨數千人橫行天下, 竟以壽終.

 (천지보시선인, 기하여재 ?  

 도척일살불고, 간인지육, 폭려자휴, 취당수천인횡행천하, 경이수종. )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복을 내려 준다면 어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

 춘추시대 말기에 나타난 도적 '도척'('유하혜'의 아우 )은 날마다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그 간을 꺼내어 회쳐서 먹으며 잔인한 짓을 하며 수천 명의 무리를 모아 제멋대로 

 천하를 돌아다녔지만 끝내 하늘에서 내려준 자신의 수명을 다 누리고 죽었다. ]

 

 是遵何德哉 ?  此其尤大彰明較著者也.  

 若至近世, 操行不軌, 專犯忌諱,  而終身逸樂, 富厚累世不絕.

 (시준하덕재 ?   차기우대창명교저자야.  

 약지근세,  조행불궤,  전범기휘,  이종신일락,  부후루세불절. )


 [이는 도대체 '도척'이 어떠한 덕행에 의한 것인가 ?  선한 사람이 비참하게 죽고,

 악인들이 천수를 누리다 죽은 일들은 하늘에 도가 없다는 지극히 크고 뚜렷한 사례들이다.
 근자에 들어서서 하는 일이 올바르지 않고 법령이 금지하는 일만을 일삼으면서도

 그 몸은 종신토록 인생을 즐기며 부귀와 영화를 대대로 이어 끊어지지 않게 하는 사람이 있다. ]

 

 或擇地而蹈之,  時然後出言,  行不由徑,  非公正不發憤,  而遇禍災者,  不可勝數也.  

 余甚惑焉,  儻所謂天道,  是邪非邪 ?

 (혹택지이도지,  시연후출언,  행불유경,  비공정불발분,  이우화재자,  불가승수야. 

 여심혹언,  당소위천도,  시사비사 ? )


 [그런가 하면 걸음 한 번 내딛는 데도 항상 조심해서 마른 땅만을 가려서 딛고,

 자기의 생각을 말할 때는 몇 번이고 생각한 다음에 행하며, 길을 갈 때는 지름길이나 좁은 길을

 택하지 않으며, 공명정대하지 않은 일에는 결코 힘써 행하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화를 입게 되는 경우가 말할 수 없이 많이 있는 것은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 

 이런 사실들이 나를 매우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에 이러한 것이 하늘의 도리라고 한다면 

 옳은 것인가 ? 옳지 않은 것인가 ? ]

 

 子曰 「道不同 不相爲謀 」,  亦各從其志也.   故曰 「富貴如可求,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 」 「 歲寒,  然後知松柏之後凋 」 

 (자왈 「도불동 불상위모」,  역각종기지야.  고왈 「부귀여가구,  수집편지사, 

 오역위지.  여불가구,  종오소호」.  「세한,  연후지송백지후조」.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길이 다르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 

 이것은 사람은 제각기 자기의 뜻에 따라 행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말씀하시기를 : "부귀가 찾아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면 비록 그것을 얻기 위한 일들이

 채찍을 들고 행하는 천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나는 그 일을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찾아서 얻을 수 없다고 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일을 쫓을 것이다 ".  
 또한 "추운 계절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법이다. "라고 하였다. ]

 

 舉世混濁,  清士乃見.   豈以其重若彼,  其輕若此哉 ? 「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

 (거세혼탁,  청사내견.  개이기중약피,  기경약차재 ?   「군자질몰세이명불칭언. 」)


 [온 세상이 혼탁해졌을 때야 청렴한 선비들이 드러나는 것이다. 

 어찌하여 세속 사람들은 그토록 부귀한 사람을 중시하고, 깨끗하고 맑은 사람을 하찮게 여길까 ?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군자는 죽은 뒤에 자기 이름이 칭송되지 않는 것을 

 가장 마음 아파한다."라고 하였다.]

 

 賈子曰:「貪夫徇財,  烈士徇名,  夸者死權,  眾庶馮生. 」  「 同明相照,  同類相求. 」  

「雲從龍,  風從虎,  聖人作而萬物睹. 」

 (가자왈 : 「탐부순재,  열사순명,  과자사권,  중서풍생. 」   「동명상조,  동류상구. 」  

「운종룡,  풍종호,  성인작이만물도. 」)


 ['가의'가 말하기를 :  "탐욕스러운 사람은 재물 때문에 목숨을 잃고, 열사는 이름을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치며, 뽐내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권세 때문에 죽고, 

 서민은 그날 그날의 삶에 매달린다."라고 하였다.
 또한 《역경》에서는 "같은 종류의 빛은 서로 비추어 주고, 같은 종류의 물건은 서로 어울린다."
 "구름은 용을 따라 다니고 바람은 범을 따라 일어난다.

 이처럼 성인이 나타나면 세상 만물이 모두 뚜렷이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 ]

 

 伯夷、叔齊雖賢,  得夫子而名益彰.   顏淵雖篤學,  附驥尾而行益顯.  

 巖穴之士,  趣舍有時若此,  類名堙滅而不稱,  悲夫!

 (백이、숙제수현,  득부자이명익창.  안연수독학,  부기미이행익현. 

 암혈지사,  취사유시약차,  류명인멸이불칭,  비부 !  )


 ['백이'와 숙제는 비록 어진 사람이기는 하지만 '공자'의 칭송이 있고 나서부터 그 명성이 더욱더

 빛나게 되었다.  '안연'은 학문을 매우 즐겨하기는 하였지만 '공자'라는 천리마의 꼬리에

 붙여져서야 비로소 그의 덕행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산으로 들어가 굴속에 숨어 사는 선비들은 일정한 때를 보아 나아가고 물러나는데,

 이러한 사람들의 명성이 묻혀 세상에 일컬어지지 않는다면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 ]

 

 閭巷之人,  欲砥行立名者,  非附青雲之士,  惡能施于後世哉 ?

 (여항지인,  욕지행입명자,  비부청운지사,  오능시우후세재 ?  )


 [시골에 묻혀 살면서 덕행을 연마하여 명성을 세우려고 하는 사람으로써,

 덕행과 지위가 높은 선비에 부합되지 못한다면 어찌 이름을 후세에까지 남길 수 있겠는가 ? ] 

 

 

【 주석 】 

1) 육경(六經) : 공자가 편찬한 시경(詩經), 서경(書經), 예경(禮經), 악경(樂經), 춘추(春秋),

    역경(易經)을 말한다.이중 악경은 일실 되었고, 서경은 진시황의 분서갱유 때 없어진 것을

    후세 사람들이 다시 편집한 것이다.  

2) 진시황의 분서 갱유 때 시경과 서경의 일부가 없어진 것을 말하며,

    <상서(尙書)>의 <요전(堯典)>, <순전(舜典)>,  <대우모(大禹謨)> 편에 선양에 대한

    상세한 기사가 있다. 요(堯)는 당(唐), 순(舜)은 우(虞), 우(禹)는 하(夏)로 통칭된다.  

3) 사악(四嶽) : 요(堯) 임금 때 사방의 제후들이 거느리고 있던 관리들을 관장하던 벼슬의 명칭.  

    태악(太岳)이라고도 한다.  

4) 12목(牧) : 요임금이 전국을 12주로 나누고 그 지방장관을 목(牧)이라고 불렀다.  

    이어서 하나라를 세운 우임금이 구주(九州)로 다시 나누었다.  

5) 허유(許由) : 요임금 때 은자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요임금이 그에게 임금의 자리를

    선양하려고 하자 받지 않고  영수(穎水) 북쪽의 기산(箕山)으로 달아나 숨어버렸다.

    그 뒤 다시 요임금이 불러 구주의 장을 맡기려고 했으나  

    그 말은 들은 허유는 자기 귀가 더렵혀졌다고 영수의 물가로 달려가 그 귀를 씻었다고 했다.  

    허유의 이야기는 <장자(莊子)>의 <소요유(逍遙遊)>, <서무귀(徐無鬼)>, <양왕(襄王)> 등의

    편에 수록되어 있다.  

6) 변수(卞隨)와 무광(務光) : 상나라 때의 은자들이다. 하걸(夏桀)을 멸한 상탕(商湯)이

    임금의 자리를 이 두 사람에게 물려주려고 하자, 이 두 사람은 이를 치욕으로 생각하고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말았다.  출전 : <장자(莊子)> <양왕(襄王)> 편  

7) 기산(箕山) : 지금의 하남성 등봉시(登封市) 동남쪽에 있는 산 이름이다.

    하본기(夏本紀)에 ‘익(益)이 우임금의 아들 계(啓)에게 제(帝)의 자리를 선양하고

    기산(箕山)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라는 기사가 있다.  

8) 논어 공야장 편에 나오는 문구로 원문은 ‘ 不念舊惡(불념구악) 怨是用希(원시용희)’이다.

9) 논어 述而(술이) 편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 求仁得仁(구인득인), 又何怨乎(우하원호)?’이다

10) 일시(軼詩) : 본문 아래에 나오는 <채미(采薇)>라는 시를 가리킨다.

      일(軼)은 잃어버렸다는 일(佚)과 통한다. 즉 백이가 수양산에 들어가 불렀다는

      채미라는 시는 시경에 수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일시라고 부른 것이다.  

11) 공자는 논어에서 백이가 자기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했으나

      사마천은 <采薇(채미)>라는 시에는 세상을 원망하는 뚯이 있다고 생각했다.  

12) 수양산(首陽山) :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하동 포판관(蒲阪關) 화산의 북쪽과

      하곡지중(河曲之中)의 설이 가장 유력하다. 지금의 산서성 영제현 남쪽의 뇌수산을 말한다.  

13) 도척(盜跖) : 장주(莊周)가 지은 장자(莊子)라는 책의 편명으로 중국 고대전설 상의 유명한

      도적 이름이다. 장주가 지어낸 이야기라고도 하고 그의 제자가 지어낸 이야기라고도 한다.

14) 원문은 ‘ 操行不軌, 專犯忌諱, 以終身逸樂, 富厚累世不絶. 或擇地而蹈之, 時然后出言,

      行不由徑, 非公正不發憤, 而遇禍災者, 不可勝數也.’다.

15) 논어 <위영공> 편에  ‘걷는 길이 서로 같지 않은 사람과는 같이 일을 도모할 수 없다.’뜻이다.

16) 원문은 執鞭之士(집편지사)로 채찍을 들고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당시 이런 직업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수레를 모는 어자(御者),

      둘째는 제왕이나 제후들이 행차할 때 채찍을 들고 그 앞길을 정리하는 사람,

      셋째는 시장의 질서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었다.

17) 논어 <술이(述而)>편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 富貴如可求,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다.

18) 논어 <자한(子罕)> 편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松柏之後凋(송백지후조)로 직역하면

      ‘ 소나무와 잣나무는 제일 나중에 시든다’ 혹은 ‘ 소나무와 잣나무는 더디 시든다.’이다.

19) 원문은 豈以其重若彼, 其輕若此哉로 해석이 분분하다.

     1. 史記索隱은 ‘ 백이가 동생에게 군주의 자리를 양보한 덕은 중한 것이나, 고사리를 캐먹다가

     굶어죽은 것은 부귀를 가볍게 여긴 것이다.’ 라고 말한 것은

      각주 14번 ‘操行不軌, 專犯忌諱, 以終身逸樂, 富厚累世不絶.  或擇地而蹈之, 時然后出言,

      行不由徑, 非公正不發憤, 而遇禍災者, 不可勝數也.’의 뜻과 통하는 말이다.

     2. 史記正義에는 ‘ 盜跖 등의 흉악한 사람이 향락을 누리다가 천수를 다해 죽은 것을

         중하게 여기고, 백이, 숙제, 허유(許由), 무광(務光) 등의 청빈한 인사들은 곤궁하게 살다가

         죽은 것은 가볍게 여긴 것이다.’라고 했다.

     3. 명청교체기의 학자 고염무(顧炎武)의 설은 ‘ 其重若彼라는 말은 속인들은 부귀를 중하게

         여기는 말이고,  其輕若此라는 말은 청렴한 선비들은 부귀를 가볍게 여기는 말이다’했다.

         고염무의 설을 취했다.

20) 논어 <위영공(衛靈公)> 20장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 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이다.

21) 가의(賈誼) : 락양(洛陽) 출신으로 기원전 200년에 낳고 기원전 168 에 죽은

      서한 초기의 정치가이자 문장가이다. 굴원의 뒤를 이은 초사의 작가이며

      33살의 젊은 나이로 요절했다. 대표작으로 진나라가 멸망한 원인을 분석한 과진론(過秦論)과

      굴원의 죽음을 애도한 조굴원부(弔屈原賦)라는 시가가 있다.

22) 원문은 ‘ 貪夫徇財, 烈士徇名, 誇者死權, 衆庶馮生’으로 가의의 복조부(鵩鳥賦)의 구절이다.

23) 주역(周易) 건괘(乾卦) 문언(文言)에 나오는 말로 원문은

       ‘ 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聖人 作而萬物睹’ 이다.

24) 원문은 ‘부기미(附驥尾)’로 천리가의 꼬리에 붙어서 천리를 간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가 공자와 같은 성인으로부터 칭송을 받음으로써

      그의 명성이 후세에 까지 떨치게 된 것을 비유한 것이다.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