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本紀(사기본기)/7. 項羽本紀

第 七. 項羽本紀(항우본기)

덕치/이두진 2021. 6. 27. 09:35

 

            史記 本紀

 

 

     第 七. 項羽本紀(항우본기)

 

  

項籍者, 下相人也, 字羽.  初起時, 年二十四. 其季父項梁, 梁父即楚將項燕, 為秦將王翦所戮者也.

項氏世世為楚將, 封於項, 故姓項氏.
(항적자, 하상인야, 자우.  초기시, 년이십사.  기계부항량, 량부즉초장항연, 위진장왕전소육자야.

항씨세세위초장, 봉어항, 고성항씨.)


['항적'은 "하상" 사람으로 자는 '우'라고 하며 처음 군대를 일으켰을 때의 나이가 24세였다. 

그의 막내 삼촌은 '항량'이며 '항량'의 부친은 초나라의 장수 '항연'으로 진나라 장수 '왕전'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다. 항씨는 대대로 초의 장수로서 항의 제후로 봉해졌으므로 성을 항씨로 하였던 것이다. ] 

項籍少時, 學書不成, 去學劍, 又不成.  項梁怒之.   

籍曰:“ 書足以記名姓而已.  劍一人敵, 不足學, 學萬人敵. ”    
(항적소시, 학서불성 , 거학검 , 우불성.  항량노지.  
 

적왈 : "서족이기명성이이.  검일인적 , 부족학 , 학만인적. ")   

      
['항적'은 어렸을때 글을 다 배우지 못한채 포기하고 검술을 배웠지만 이 또한 다 마치지 못하였다. 
 

'항량'이 화를 내자. '항적'이 말하기를 : " 글은 이름을 적는 것으로 족할 따름이며,

검은 한 사람만을 대적할 뿐이므로 배울 만하지 못하니, 만인을 대적하는 일을 배우겠습니다"라고 하였다. ] 

於是項梁乃教籍兵法, 籍大喜, 略知其意, 又不肯竟學.   

項梁嘗有櫟陽逮, 乃請蘄獄掾曹咎書抵櫟陽獄掾司馬欣, 以故事得已.
(어시항량내교적병법, 적대희, 략지기의, 우불긍경학.  
 

항량상유역양체, 내청기옥연조구서저역양옥연사마흔, 이고사득이. )


[이에 '항량'은 '항적'에게 병법을 가르치니 '항적'은 매우 기뻐하면서도 대략 그 뜻만 알고는 
또 끝까지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항량'은 일찍이 "역양현"의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는데 "기현"의 옥연 '조구'로  하여금

"역양"의 옥연 '사마흔'에게 서신을 보내도록 부탁함으로써 사건을 무사히 마무리할 수가 있었다. ]  

項梁殺人, 與籍避仇於吳中.  吳中賢士大夫皆出項梁下.   

每吳中有大繇役及喪, 項梁常為主辦, 陰以兵法部勒賓客及子弟, 以是知其能.  

(항량살인, 여적피구어오중. 오중현사대부개출항량하.   

매오중유대요역급상, 항량상위주반, 음이병법부늑빈객급자제, 이시지기능. )

['항량'이 사람을 죽이고 '항적'과 함께 원수를 피해서 "오중"으로 갔는데 "오중"의 어진 인재들은

모두 '항량'의 아래에서나왔다.  "오중"에 요역과 상사가 있을 때마다 '항량'이 늘 주관하여 일 처리를 하였는데

은밀히 병법을 사용해서 빈객과 젊은이들을 배치하고 지휘하여 이때에 그들의 재능을 알아두었다. ] 

秦始皇帝游會稽, 渡浙江, 梁與籍俱觀.  籍曰:“ 彼可取而代也.  ”   

梁掩其口, 曰:“ 毋妄言, 族矣!”  梁以此奇籍. 

籍長八尺餘, 力能扛鼎, 才氣過人, 雖吳中子弟皆已憚籍矣.  

(진시황제유회계, 도절강, 량여적구관.  적왈 : " 피가치이대야. " 

량엄기구, 왈 : " 무망언, 족의 ! " 량이차기적.

​적장팔척여, 역능강정 , 재기과인 , 수오중자제개이탄적의.)

[진시황이 "회계산"을 유람하고 "절강"을 건너는데 '항량'과 '항적'이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항적'이 말하기를 : "저 사람의 자리를 내가 대신할 수 있으리라"라고 하니 
'항량'이 그 입을 막으며 말하기를 : "경망스러운 말을 하지 말아라, 삼족이 멸하게된다 ! "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일로 '항량'은 '항적'을 범상치 않은 재목이라고 여겼다. '항적'은 키가 8척이 넘고,

힘은 큰 무쇠 솥을 들어올릴 만했으며 재치가 넘쳐서 "오중"의 자제들 조차도 이미 모두 '항적'을 어려워하고 있었다.] 

 

秦二世元年七月, 陳涉等起大澤中.  其九月, 會稽守通謂梁曰:" 江西皆反此, 亦天亡秦之時也.  
吾聞先即制人, 後則為人所制.  吾欲發兵, 使公及桓楚將. ”  是時桓楚亡在澤中. 
(진이세원년칠월, 진섭등기대택중.  기구월 , 회계수통위량왈 : " 강서개반, 차역천망진지시야. 
오문선즉제인, 후즉위인소제.  오욕발병 , 사공급환초장. " 시시환초망재택중. )


[진 이세 원년 7월 '진섭'등이 "택중"에서 크게 군사를 일으켰다. 
그해 9월 "회계"의 군수 '은통'이 '항량'에게 이르기를 : "강서 지역은 모두가 반란을 꾀했으니 
 

이는 또한 하늘이 진나라를 멸망시키려는 때가 온 것이라고 할수있소. 내가 들으니 먼저하면 남을 제압하고,

나중에 하면 남에게 제압 당한다고 하니.  내가 군사를 일으켜 그대와 '환초'를 장수로 삼고자 하오 "라고 하였다. 

이때 '환초'는 "택중"에 도망와 있던 중이었다. ]

 

梁曰:“ 桓楚亡, 人莫知其處獨, 籍知之耳. ”  梁乃出, 誡籍持劍居外待.   

復入, 與守坐, 曰:“ 請召籍, 使受命召桓楚. ”
(량왈 : "환초망, 인막지기처 , 독적지지이."   량내출 , 계적특검거외대.  
 

량복입 , 여수좌 ,  왈 : "청소적, 수명소환초. " )

            
['항량'이 말하기를 : "'환초'는 도망가서 그가 있는 곳을 아는 자가 없는데 오직 '항적'만이 그곳을 알고 
있습니다. "

라고 하고는,  즉시 밖으로 나와 '항적'에게 검을 가지고 처소 밖에서 기다리도록 지시하였다. 
'항량'은 다시 들어와 군수와 대좌하여 말하기를 :

"청컨대 '항적'을 부르시어 '환초'를 부르라는 명을 받들도록 하십시오" 라고 하였다. ]  

守曰:“ 諾. ”  梁召籍入.  須臾, 梁眴籍曰:“ 可行矣!”  於是籍遂拔劍斬守頭.    

項梁持守頭, 佩其印綬.  門下大驚,擾亂,籍所擊殺數十百人. 一府中皆慴伏,莫敢起.   

梁乃召故所知豪吏,諭以所為起大事,遂舉吳中兵. 

(수왈 : "락." 량소적입.  수유 , 량순적왈 : "가행의 ! " 어시적수발검참수두.   

항량지수두, 패기인수.  문하대경, 우난, 적소격살수십백인.   일부중개습복, 막감기.   

량급소고소지호리, 유이소위기대사, 수거오중병. )


[군수가 : "좋소."라고 하니 '항량'이 '항적'을 불러들였다.  잠시후 '항량'이 '항적'에게 눈짓으로 이르기를 :

"때가 되었다 ! "라고 하자,  '항적'은 마침내 검을 뽑아서 군수의 목을 베어버렸다. 

'항량'이 군수의 머리를 들고 그의 인수를 허리에 찼다.  군수의 부하들은 크게 놀라서 어지럽게 우왕좌왕 하는데

'항적'이 쳐죽인  사람의 수가 거의 백명에 가까웠다. 이리하여 모든 벼슬아치들은 놀라서 땅에 엎드리고는

감히 일어나지  못하였다. '항량'은 이에 이전에 알던 세력있는 관리들을 불러서 대사를 일으킨 바를 설명하고서는

마침내 "오중"에서 군대를 일으켰다. ] 

使人收下縣,得精兵八千人.  梁部署吳中豪傑為校尉, 候, 司馬。有一人不得用,自言於梁.

梁曰:“ 前時某喪使公主某事,不能辦,以此不任用公. ”  眾乃皆伏.   

於是梁為會稽守,籍為裨將,徇下縣.
(사인수하현, 듣정병팔천인.  량부서오중호걸위교위, 후, 사마.  유일인불득용, 자신어량.

량왈 : " 전시모상사공주모사, 불능판, 이차불임용공."  중내개복. 

어시량위회계수, 적위비장, 순하현.)

 

[그리고는 아랫사람을 보내 관할 현을 접수하고 정예군 8,000명을 얻었다.  '항량'은 "오중"의 호걸들을 

각각 교위, 후, 사마등의 직위에 임명하였다. 그때 등용되지 못한 한 사람이 그 이유를 '항량'에게 물었다.

'항량'이 말하기를 : "이전에 그대에게 어떤 사람의 喪에 관한일을 맡겨 보았는데, 그때 일을 잘 처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대를 임용하지 않았노라. "라고 하니, 모든 사람들이 이에 탄복하였다.   

이때 '항량'은 군수가 되고 '항적'은 부장이되어 관할 현들을 다스렸다. ]

廣陵人召平於是為陳王徇廣陵,未能下.    

聞陳王敗走,秦兵又且至,乃渡江矯陳王命,拜梁為楚王上柱國. 

(광릉인소평어시위진왕순광릉, 미능하.   문진왕패주, 진구우차지, 내도강교진왕명, 배량위초왕상주국. )

[이때 "광릉" 사람 '소평'이 진왕을 위해 "광릉"을 빼앗으려 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다가 

진왕이 이미 패주하고 또한 秦군이 장차 자기를 공격해올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강을 건너서 陳왕의 명을 사칭하여

'항량'을 초왕 상주국으로 봉하였다. ]

 

曰:“江東已定,急引兵西擊秦.” 項梁乃以八千人渡江而西.  聞陳嬰已下東陽,使使欲與連和俱西.
陳嬰者, 故東陽令史, 居縣中, 素信謹,稱為長者. 東陽少年殺其令, 相聚數千人, 欲置長, 無適用,乃請陳嬰.  嬰謝不能,遂彊立嬰為長,縣中從者得二萬人. 少年欲立嬰便為王,異軍蒼頭特起.

(왈 : "강동이정, 급인병서격진. "항량내이팔천인도강이서. 문진영이하동양 , 사사욕여연화구서.

진영자, 고동양영사 , 거현중 , 소신근 , 칭위장자. 동양소년살기령 , 상취수천인 , 욕치장 , 무적용 ,  

내청진영.  영사불능, 수강입영위장 , 현중종자득이만인, 소년욕입영편위왕 , 이군창두특기. )


[그리고 말하기를 : "강동은 이미 평정되었으니 급히 군대를 이끌고 강서로 가서 秦나라를 쳐라"라고 하였다.

'항량'은 이에 8,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다. 그런데 '진영'이 이미 "동양"을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고는 사신을 보내 연합하여 함께 서쪽으로 진격하려고 하였다.   

'진영'은 본래 "동양"의 영사로 현에 살았는데 평소에 신의가있고 근엄하여 '장자'로 칭하여졌다.   

"동양현"의 젊은이들이 현령을 죽이고 수천명이 서로 모여서 수장을 모시고자 하였으나 마땅한 사람이 없자,

이에 '진영'에게 청하였다.  '진영'은 사양하였으나 사람들은 결국 억지로 '진영'을 수장으로 삼으니,  

현에서 그를 따르는 자가 20,000명이 되었다. 또 젊은이들은 '진영'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여 따로 푸른 모자를 써서

창두군이라고 이름하여, 다른 군대와 구별함으로써 특별히 궐기한 뜻을 나타내었다. ]

 

陳嬰母謂嬰曰 :“自我為汝家婦, 未嘗聞汝先古之有貴者. 今暴得大名, 不祥. 

不如有所屬, 事成猶得封侯, 事敗易以亡, 非世所指名也. ”
(진영모위영왈 :"자아위여가귀, 미상문여선고지유귀자.  금폭득대명, 불상.   

불여유소속, 사성유득봉후, 사패역이망, 비세소지명야. " )


['진영'의 모친이 말하기를 : "내가 너희 가문으로 시집 온 이래 지금까지 너의 조상 중에 귀하게 된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하였다, 그런데 지금 갑자기 네가 왕명을 얻는다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차라리 남의 밑에 있는 것이 낫다.  그러다가 거사가 성공하면 侯에 봉해질 수 있고, 또 거사가 실패했을 경우라도

쉽게 화를  면할 수 있으니, 이는 네가 세상 사람들이 지목하는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다. ]

 

嬰乃不敢為王.  謂其軍吏曰:“ 項氏世世將家,有名於楚.  今欲舉大事,將非其人,不可. 

我倚名族,亡秦必矣. ”  於是眾從其言,以兵屬項梁.  項梁渡淮,黥布· 蒲將軍亦以兵屬焉. 

凡六七萬人,軍下邳. 當是時,秦嘉已立景駒為楚王,軍彭城東,欲距項梁.

項梁謂軍吏曰:“ 陳王先首事, 戰不利, 未聞所在. 今秦嘉倍陳王而立景駒, 逆無道.” 乃進兵擊秦嘉.
(영내불감위왕. 위기군사왈 : " 항씨세세장가, 유명어초.  금욕거대사, 장비기인, 불가. 

아의명족, 망진필의. " 어시중종기언, 이병속항량. 항량도회, 경포· 포장군역이병속언.

범육칠만인, 군하비. 당시시, 진가이입경구위초왕, 군팽성동, 욕거항량.

​항량위군리왈 :"진왕선수사, 전불리, 미문소재.  금진가배진왕이입경구, 역무도. "  내진병격진가.)


['진영'은 이에 감히 왕이 되지 못하고 그 문관에게 말하기를 : " 항씨는 대대로 장수의 집안이며

초나라에서도 명망이 자자하오. 그러니 지금 대사를 일으키고자 함에 그 사람이 아니면 안 될 것이오,   

우리들이 이름있는 그 집안에 의탁하면, 秦나라의 멸망은 틀림없을 것이오 "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여러 군사들이 그의 말을 따라서 자신들의 병사를 데리고 '항량'의 휘하에 들어갔다.
'항량'이 "회수"를 건너자, '경포', '포장군' 또한 군대를 이끌고 휘하에 들어오니 무릇 6,7만의 군대가 
"하비"에 진을

쳤다. 이때 '진가'가 이미 '경구'를 초왕으로 세우고 "팽성" 동쪽에 진을 치고는 '항량'의 군대를 막으려고 하였다.

'항량'이 군관에게 말하기를 : "陳왕이 제일 먼저 봉기하였으나 전세가 불리하여 지금은 행방조차  알 길이 없다. 

그런데 지금 '진가'가 陳왕을 배반하고 '경구'를 왕으로 세웠으니 이는 대역무도한 일이다 " 라고 하고는,

즉시 진군하여 '진가'를 공격하였다.]

 

秦嘉軍敗走,追之至胡陵. 嘉還戰一日,嘉死,軍降. 景駒走死梁地. 

項梁已并秦嘉軍,軍胡陵,將引軍而西.  章邯軍至栗,項梁使別將朱雞石· 餘樊君與戰. 

餘樊君死.   朱雞石軍敗,亡走胡陵. 項梁乃引兵入薛,誅雞石.
(진가군패주, 추지지호릉.  가환전일일 , 가사 , 군항. 경구주사량지.  
 

항량이병진가군 , 군호릉 , 장인군이서.  장함군지율, 항량사별장주계석, 여번군여전.   

여번군사. 주계석군패 , 망주호릉. 항량내인병입설 , 주계석. )


[이에 '진가'의 군대가 패주하자 '항량'은 그들을 "호릉"까지 추격하였다.  
반격하던 '진가'가 하루만에  전사하자,

그의 군대는 항복하였고 '경구'는 도망가다 결국 '항량'의 지역에서 죽었다.   

'항량'은 얼마후 '진가'의 군대를 합병하고 나서 "호릉'에 진을 치게 한후 장수들과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격하려고 하였다. '장한'의 군대가 "율현"에 이르니 '항량'은 별장 '주계석'과 '여번군'으로 하여금 맞서서

싸우도록 하였으나 '여번군'은 전사하고 '주계석'의 군대는 패하여 "호릉"으로 도주하니 

'항량'은 이에 군사를 이끌고 "설현"에 진입하여 '주계석"을 주살하였다. ]

項梁前使項羽別攻襄城, 襄城堅守不下.  已拔, 皆阬之.  還報項梁.   

項梁聞陳王定死, 召諸別將會薛計事.  此時沛公亦起沛, 往焉.
(항량전사항우별공양성, 양성견수불하. 이발, 개갱지.  환보항량.  
 

항량문진왕정사, 소제별장회설계사.  차시패공역기패, 왕언. )


['항량'은 먼저 '항우'에게 별도로 "양성"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양성'은 수비가 견고하여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항우'는 결국 성을 함락시키고 나서 모두 산 채로 땅에 묻어버리고 돌아와서 '항량'에게 보고하였다.  

'항량'은 陳왕이 확실히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여러 제후와 별장들을 "설현"에 불러 모아서 대사를 의논하였다. 

이때에 "패현"에서 군사를 일으킨 '패공'(유방) 역시 참석하였다. ]

 

居鄛人范增,年七十,素居家,好奇計,往說項梁曰:“ 陳勝敗碧當.  夫秦滅六國,楚最無罪.

自懷王入秦不反,楚人憐之至今,故楚南公 曰‘楚雖三戶,亡秦必楚’也. 今陳勝首事,不立楚 

而自立,其勢不長.  今君起江東,楚蜂午之將皆爭附君者,以君世世楚將,為能復立楚之後也. "
(거소인범증, 년칠십, 소거가, 호기계, 왕설항량왈 : " 진승패벽당.  부진멸육국, 초최무죄.
 

자회왕입진불반, 초인린지지금, 고초남공 왈'초수삼호, 망진필초'야.   금진승수사, 불입초후이자립,  

기세불장.  금군기강동, 초봉오지장개쟁부군자 , 이군세세초장, 위능복립초지후야. " )


["거소" 사람 '범증'은 나이가 70세로 평소에는 집에서 지내며 기묘한 계책을 구상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그가 '항량'을 찾아가 유세하기를 : "'진승'의 패배는 본래 당연한 것이었고.  진나라가 육국을 멸하는데

그 중 초나라가 가장 무고하게 당하였습니다. '회왕'이 진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오지 못하신 이후 초나라 사람들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회왕'을 가련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런 연유로 초'남공'이 말하기를 '초나라에 비록 세 집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진을 멸망시킬 나라는 초나라 뿐'입니다.
그런데 지금 '진승'이 제일 먼저 봉기하여 초나라의 후예를 세우지 않고 스스로 왕이 되었으니,
 

그 세력이 오래가지 못합니다.  지금 그대가 강동에서 군사를 일으키시니 벌떼같이 일어난 초의 장수들이  

모두 앞다투어 그대에게 귀의하는 것은 그대가 대대로 초나라의 장수로서, 
다시 초나라의 후손을 왕으로 세울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다.]

 

於是項梁然其言,乃求楚懷王孫心民閒,為人牧羊,立以為楚懷王,從民所望也.

陳嬰為楚上柱國,封五縣,與懷王都盱臺.  項梁自號為武信君.
(어시항량연기언, 내구초회왕손심민한위인목양, 입이위초회왕, 종민소망야. 
 

진영위초상주국, 봉오현, 여회왕도우대.   항량자호위무신군. )


[이리하여 '항량'은 그 말이 그럴듯하다고 여기고는 민간에서 남의 양치기 노릇을하던 회왕의 손자를 찾아서

왕으로 세우고 초 '회왕'이라고 하니, 이는 백성이 바라던 바를 따른 것이었다.  

'진영'은 초나라의 상주국이 되어 5개의 현을 식읍으로 받고 회왕과 더불어 "우대"에 도읍하였으며,  

'항량'은 스스로 무신군이라고 하였다. ]

 

 

居數月,引兵攻亢父, 與齊田榮,司馬龍且軍救東阿, 大破秦軍於東阿.  田榮即引兵歸, 逐其王假.   

假亡走楚.  假相田角亡走趙.  角弟田閒故齊將,居趙不敢歸.  田榮立田儋子市為齊王.   

項梁已破東阿下軍,遂追秦軍.   數使使趣齊兵,欲與俱西.

田榮曰:“楚殺田假, 趙殺田角, 田閒, 乃發兵.”  項梁曰:“田假為與國之王, 窮來從我, 不忍殺之. ”
(거수월, 인병공항보, 여제전영, 사마용저군구동하, 대파진군어동하.  전영즉인병귀, 축기왕가.  
 

가망주초.  가상전각망주조.  각제전간고제장, 거조불감귀.   전영립전담자불위제왕.   

항량이파동하하군, 수추진군.   수사사취제병, 욕여구서.

​전영왈 : "초살전가, 조살전각,전간, 내발병. "  항량왈 : "전가위여국지왕 , 궁래종아 , 불인살지. ")


[수개월 후 '항량'은 군사를 이끌고 "항보"를 공격하고 제나라의 '전영', '사마용저'의 군대와 함께 "동하"를 구원하여,

동하에서  秦나라 군대를 대파하였다. '전영'은 즉시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서 제나라 왕인 '전가'를 쫓아내니,

'전가'는 초나라로 달아났고 '전가'의 상국인 '전각'은 조나라로 도망하였다.  

'전각'의 동생 '전간'은 원래 제나라 장수였으나 조나라에 머물며 감히 돌아가지 못하였다.   

'전영'은 '전담'의 아들 '전불'을 제나라 왕으로 세웠다. 
'항량'이 "동하" 일대에 진을 치고 있던 秦軍을 무찌르고 나서, 후퇴하는 진군을 추격하며 
제나라 군대에 수차례

사자를 보내서 함께 서쪽으로 진격할 것을 재촉하였다.

'전영'이 말하기를 : "초나라가 '전가'를 죽이고 조나라가 '전각', '전간'을 죽인다면 군대를 보내겠다 "라고 하자. 

'항량'이 말하기를 : "'전가'는 동맹국의 왕이었다,  이제 신세가 곤궁에 빠져 내게 몸을  의탁하였으니

차마 죽이지 못하겠다 "라고 하였다. ]

 

 

趙亦不殺田角,田閒以市於齊.  齊遂不肯發兵助楚.  項梁使沛公及項羽別攻城陽,屠之.    

西破秦軍濮陽東,秦兵收入濮陽.   

沛公· 項羽乃攻定陶. 定陶未下, 去,西略地至雝丘,大破秦軍,斬李由. 還攻外黃,外黃未下. 
(조역불살전각, 전간이불어제.  제수불긍발병조초.  항량사패공급항우별공성양, 도지.  
 

서파진군복양동, 진병수입복양.   

패공, 항우내공정도.  정도미하, 거, 서략지지옹구, 대파진군, 참이유.  환공외황, 외황미하.)

 
[조나라 역시 '전각'과 '전간'을 죽이는 것으로써 제나라와 흥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러자 제나라도 끝내 군사를 보내서 초나라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 
'항량'은 '패공'과 '항우'로 하여금 별도로 "성양"을 공격하여 전멸시키고 서쪽으로 진격하여 "복양"의 
동쪽에서

진군을 격파하니 진군은 "복양"으로 철수하였다.  이에 '패공'과 '항우'가 "정도"를 공격하였으나

"정도"를 함락시키지 못하자 그곳을 버리고 서쪽을 공격하여 "옹구"에 이르러  진군을 대파하고
'이유'의 목을 베어버렸다.  돌아오는 길에 "외황"을 공격하였으나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

 

項梁起東阿,西, (北) [比] 至定陶,再破秦軍,項羽等又斬李由,益輕秦,有驕色.           

宋義乃諫項梁曰:“戰勝而將驕卒惰者敗.  今卒少惰矣,秦兵日益,臣為君畏之. ”    

項梁弗聽.  乃使宋義使於齊.  道遇齊使者高陵君顯,曰:“ 公將見武信君乎?”   

曰:“ 然. ”   曰:“臣論武信君軍必敗.   公徐行即免死,疾行則及禍. ”
(항량기동하, 서, (북) [비] 지정도, 재파진격, 항우등우참이유, 익경진, 유교색.

송의내간항량왈 : "전승이장교졸타자패.  금졸소타의, 진병일익, 신위군외지. "   

항량불청.  내사송의사어제.  도우제사자고릉군현, 왈 : " 공장견무신군호 ? "   

왈 : " 연. "   왈 : "신론무신군군필패. 공서행즉면사, 질행즉급화. " )

['항량'은 "동하"에서 출발하여 서쪽으로 "정도"에 이를 때까지 두 차례나 진군을 무찌른 데다 '항우'등이

또 '이유' 의 목을 베자, 진나라를 경시하며 교만한 기색을 드러내었다.

'송의'가 '항량'에게 간하기를 : "전쟁에서 이겼다고 장수가 교만해지거나 병사들이 나태해진다면 패하고 말것입니다.

지금 병사들이 다소 나태해지고 있고, 진의 병가들은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신은 그것이 두렵습니다 "라고 말했으나,

'항량'은 듣지 않았다.  그리고는 '송의'를 제나라에 사신으로 보냈다. '송의'는 사신으로 가는 도중에

제나라의 사신인 고릉군 '현'을 만나서 '송의'가 묻기를 : "공께서는 무신군을 만나시려는 것입니까 ? " 라고 하니, 
그는 "그렇소이다. "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송의'가 : "신이 보기에는 무신군의 군대는 반드시 패할 것이니,

공께서 천천히 가시면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것이나, 서둘러 가신다면 화를 입게 되실 겁니다 "라고 하였다.]  

           

秦果悉起兵益章邯,擊楚軍, 大破之定陶,項梁死. 沛公, 項羽去外黃攻陳留,陳留堅守不能下. 

沛公, 項羽相與謀曰:“ 今項梁軍破,士卒恐. ” 乃與呂臣軍俱引兵而東.   

呂臣軍彭城東,項羽軍彭城西,沛公軍碭.
(진과실기병익장한, 격초군 , 대파지정도 , 항량사.  패공, 항우거외황공진유 , 진유견수불능하.

패공, 항우상여모왈 : "금항량군파, 사졸공. "  내여여신군구인병이동.   

여신군팽성동 , 항우군팽성서 , 패공군탕. )  

 

[진나라는 과연 모든 군사를 일으켜서 '장한'을 지원하여 초군을 공격해 "정도"에서 크게 무찌르고 '장량'을 죽였다.

'패공'과 '항우'는 "외황"을 버리고 "진류"를 공격하였으나 "진류"의 수비가 견고하여 함락시킬 수 없었다.

'패공'과 '항우'가 서로 모의하여 : "지금 '항량'의 군대가 대파되어 군사들이 두려움에 떨고있다 "라고 하며
'여신'의 군대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이동하여 '여신'의 군사들은 "팽성" 동쪽에 주둔시키고, 
'항우'의 군대는 "팽성" 서쪽에 주둔하고, '패공'의 군대는 "탕"에 주둔하였다. ]

 

章邯已破項梁軍,則以為楚地兵不足憂,乃渡河擊趙, 大破之.  當此時, 趙歇為王, 陳餘為將,  

張耳為相, 皆走入鉅鹿城.  章邯令王離, 涉閒圍鉅鹿, 章邯軍其南, 筑甬道而輸之粟.   

陳餘為將, 將卒數萬人而軍鉅鹿之北, 此所謂河北之軍也.
(장한이파항량군, 즉이위초지병불족우 , 내도하격조, 대파지.  당시시, 조헐위왕, 진여위장, 
 

장이위상, 개주입거록성.  장함령왕리,섭간위거록, 장함군기남, 축용도이수지속.   

진여위장, 장졸수만인이군거록지북, 차소위하북지군야. )


['장함'이 '장량'의 군대를 무찌른후 초나라의 군대는 걱정할 것이 없다고 여기고 "황하"를 건너서 
조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이때 조나라는 '헐'이 왕이었고 '진여'가 장수로, '장이'가 재상으로 있었는데 모두 "거록"으로

도망쳐버렸다. '장한'은 '왕리'와 '섭간'으로 하여금 "거록"을 포위하게 하고 자신은 그 남쪽에 진을 치고는

길을 닦아 군량을 조달하였다.  조나라 장수 '진여'는 군사 수만명을 거느리고 "거록" 북쪽에 진을 치고 있었으니

이들이 소위 하북군이었다. ] 

  

楚兵已破於定陶, 懷王恐, 從盱臺之彭城, 并項羽, 呂臣軍自將之.  

以呂臣為司徒, 以其父呂青為令尹.  以沛公為碭郡長, 封為武安侯, 將碭郡兵.
初,宋義所遇齊使者高陵君顯在楚軍,  見楚王曰:“宋義論武信君之軍必敗, 居數日, 軍果敗.

兵未戰而先見敗徵, 此可謂知兵矣. ”

(초병이파어정도, 회왕공, 종우이지팽성, 병항우, 여신군자장지.   

이여신위사도, 이기부여청위영윤.  이패공위탕군장, 봉위무안후, 장탕군병.

 

초, 송의소우제사자고릉군현재초군,  견초왕왈 : "송의논무신군지군필패, 거수일, 군과패.   

병미전이선견패징, 차가위지병의, ")  

 

[초군이"정도"에서 패한후 '회왕'은 두려워서 "우이"를 떠나 "팽성"으로 가서 '항우'와' 여신'의 군대를 병합하여

친히 통솔하였다. 그리고 '여신'을 사도로 삼고, 그의 부친 '여청'을 영윤으로 삼았다. 
'패공'을 "탕군"의 군장으로 삼고 무안후에 봉하여 탕군의 군대를 거느리게 하였다.

이전에 '송의'가 만났던 제나라 사신인 고릉군 '현'이 초나라 군중에 있을때 초왕을 만나서 말하기를 : 
'송의'는 무신군의 군대가 반드시 패할 것이라고 하였는데 며칠후 과연 패하고 말았습니다. 
 

군대가 아직 싸우기도 전에 미리 그 패배의 조짐을 알고 있었으니 이는 가히 병법을 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王召宋義與計事而大說之, 因置以為上將軍, 項羽為魯公, 為次將, 范增為末將, 救趙.   

諸別將皆屬宋義, 號為卿子冠軍.  行至安陽,留四十六日不進.   

項羽曰:“吾聞秦軍圍趙王鉅鹿, 疾引兵渡河, 楚擊其外, 趙應其內, 破秦軍必矣. ”
(왕소송의여계사이대설지, 인치이위상장군, 항우위노공, 위차장, 범증위말장, 구조. 

제별장개속송의, 호위경자관군.  행지안양, 유사십육일줄진.

항우왈 : "오문진군위조왕거록, 질인병도하, 초격기외, 조응기내, 파진군필의. " )


[왕이 '송의'를 불러 함께 대사를 논의하고는 매우 기뻐하며 그를 상장군으로 삼았으며, 
 

'항우'는 노공에 봉해져서 차장이 되었고, '범증'은 말장이 되어서 조나라를 구원하기로 하였다.   

여러 제후와 별장들이 모두 '송의'의 휘하에 속하게 되니 '송의'는'경자관군'이라고 불려졌다.   

군대가 "안양"에 온지 46일 동안 머물며 전진하지 않았다.  이에 '항우'가 말하기를 : "내가 듣기로는 진군이 조왕을

"거록"에서 포위하고 있다고 하니 서둘러 군사를 이끌고 황하를 건너서 초나라는 그 바깥을 공격하고

조나라는 안에서 호응한다면 진군을 반드시 무찌를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宋義曰:“不然.  夫搏牛之虻不可以破蟣虱.  今秦攻趙, 戰勝則兵罷, 我承其敝;不勝,  

則我引兵鼓行而西, 必舉秦矣.  故不如先鬬秦趙.  夫被堅執銳, 義不如公;坐而運策, 公不如義.”

因下令軍中曰: “猛如虎, 很如羊, 貪如狼, 彊不可使者, 皆斬之. ”            

乃遣其子宋襄相齊, 身送之至無鹽, 飲酒高會.  天寒大雨,士卒凍饑.                        

(송의왈 : "불연. 부박우지맹불가이파시슬.  금진공조, 전승즉병파, 아승기폐 ; 불승,   

즉아인병고행이서, 필거진의.  고불여선투진조.  부피견집태, 의불여공 ; 좌이운책, 공불여의. "

인하령군중왈 : "맹여호, 흔여양, 탐여랑, 강불가사자, 개참지, "   

내견기자송양상제, 신송지지무염, 음주고회.  천한대우, 사졸동기. 

            

[그러자 '송의'가 말하기를 : "그렇지 아니하오. " 대체로 보아서 소를 물어 뜯는 등에(虻)가 이(虱)를  

죽일 수는 없는 것이오.  지금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는데, 이 전쟁에서 승리한다고 해도 병사들은 피로에

지칠것이니, 우리는 그 피곤한 틈을 이용할 것이오 ; 진이 승리하지 못할 경우,

우리가 군사를 이끌고 북을 치며 전진하여 서쪽을 공격한다면 반드시 진나라를 물리칠수 있을 것이오.
그러므로 먼저 진나라와 조나라의 싸움에 관여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대체로 갑옷과 무기로 무장한채 실전에서는 내가 그대 보다 못하지만 ; 

앉아서 책략을 부리는 일에서는 그대가 나보다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군중에 령을내려 : "사납기가 호랑이 같거나, 양처럼 다투거나, 탐욕스럽기가 승냥이 같거나,  

고집이 세어 부릴 수 없는 자는 모두 목을 벨것이다 "하였다. 이에 그의 아들 "송양'을 제나라로 보내

제왕을 돕게 하려는데 몸소 "무염"까지 전송하고는 성대한 주연을 베풀었다.   

날씨가 춥고 비가 거세어 병사들은 추위와 허기에 지쳐갔다.​]

 

項羽曰:“將戮力而攻秦, 久留不行.  今歲饑民貧, 士卒食芋菽, 軍無見糧 , 乃飲酒高會,   

不引兵渡河因趙食, 與趙并力攻秦, 乃曰‘承其敝’.  不引兵渡河因趙食, 與趙并力攻秦,  

乃曰‘承其敝’. 夫以秦之彊, 攻新造之趙 , 其勢必舉趙.  趙舉而秦彊, 何敝之承!且國兵新破,  

王坐不安席, 埽境內而專屬於將軍, 國家安危, 在此一舉. 今不恤士卒而徇其私, 非社稷之臣. ”
(항우왈 :  "장육역이공진, 구유불행.  금세기민빈, 사졸식우숙, 군무견량, 내음주고회, 
 

불인병도하인조식, 여조병력공진, 내왈'승기폐'.  불인병도하인조식, 여조병력공진,  

내왈'승기폐'. 부이진지강, 공신조지조, 기세필거조.  조거이진강, 하폐지승 ! 차국병신파,  

왕좌불안석, 소경내이전속어장군, 국가안위, 재차일거. 금불휼사졸이순기사, 비사직지신." )


[그러자 '항우'가 말하기를 : "장수들은 죽을 힘을 다해 진나라를 공격해야 하거늘 오랫동안 머물며 움직이지 않더니,

지금은 흉년이 들어서 백성들은 빈곤하고 병사들은 토란과 콩으로 끼니를 때우며 군영에는 군량미를 볼 수가

없는데 자기들은 성대한 연회를 열어서 술이나 마시기만 할 뿐,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너가 조나라의 군량을 먹으며

조나라와 함께 힘을 합쳐서 진나라를 공격하지 않으면서, 말로만'그들이 지친 틈을 이용하리라 '라고만 하고있다. 

대체로 보아 진나라의 강대함으로, 지금 새로 일어난 조나라를 공격한다면 그 형세로 보아 조나라를 반드시

함락시킬것이 분명한데, 조나라가 함락되고 진나라가 강해진 뒤에 무슨 지친 틈을 이용하겠다는 것인가 ! 

또 우리 군대가 패전에서 새로 일어난 터이라, 왕께서 좌불안석 하시어 온 나라의 병사들을 전부 모아,

오로지 상장군의 휘하에 속하게 하셨으니 국가의 안위는 이 거사에 달려 있다. 
지금 병사들을 돌보지 아니하고 그 사사로움만 따르니 사직을 보존하려는 신하가 아니다. "라고 하였다. ]

 

項羽晨朝上將軍宋義, 即其帳中斬宋義頭, 出令軍中曰:“ 宋義與齊謀反楚, 楚王陰令羽誅之. "

當是時,諸將皆慴服,莫敢枝梧.   皆曰:“ 首立楚者, 將軍家也.  今將軍誅亂 "  乃相與共立羽為假上將軍. 

使人追宋義子, 及之齊, 殺之.   使桓楚報命於懷王.  懷王因使項羽為上將軍, 當陽君· 蒲將軍皆屬項羽.
(항우신조상장군송의, 즉기장중참송의두, 출령군중왈 : "송의여제모반초, 초왕음령우주지. "
 

당시시, 제장개습복, 막감기오.  개왈 : "수립초자, 장군가야. 금장군주난. "  내상여공립우위가상장군.  

사인추송의자, 급지제, 살지.  사환초보명어회왕.  회왕인사항우위상장군, 당양군· 포장군개속항우. )

[그리하여 '항우'는 아침 일찍 상장군 '송의'의 막사를 찾아가 즉시 그 자리에서 '송의'의 머리를 베고 나서,

군중에 령을 내리기를 : "'송의'는 제나라와 더불어 초나라를 배반할 모의를 꾸미고 있었으므로,  

초왕께서 은밀히 나에게 '송의'를 주살토록 하셨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당시 여러 장수들은 모두 두려워서 복종하며 감히 저항하지 못하였다. 
모두 말하기를 : "초나라를 세운 것은 장군의 집안이시더니 지금 장군께서는 난신을 주살하였습니다 "

라고 하였다. 이에 서로들 '항우'를 임시 상장군으로 하였다. 

또한 사람을 보내서 '송의'의 아들을 제나라까지 추격하여 죽여버렸다. 

그리고는 '환초'를 보내어 '회왕'에게 보고하게 하자,
회왕은 '항우'를 상장군으로 삼고 '당양군', '포장군'을 '항우'의 휘하에 배속시켜 버렸다. ]

項羽已殺卿子冠軍,威震楚國, 名聞諸侯.  乃遣當陽君, 蒲將軍將卒二萬渡河, 救鉅鹿.   戰少利, 陳餘復請兵. 

項羽乃悉引兵渡河, 皆沈船, 破釜甑, 燒廬舍, 持三日糧, 以示士卒必死, 無一還心.  
(항우이살경자관군, 위진초국, 명문제후.  내견당양군, 포장군장졸이만도하, 구거록.  
전소리,  진여복청병.  

항우내실인병도하, 개심선, 파부증, 소려사, 지삼일량, 이시사졸필사, 무일환심. )


['항우'가 경자관군 '송의'를 죽인후 그의 위엄이 초나라를 진동시키고 명성은 제후들에게 전하여졌다.  
이에 '당양군'과 '포장군'으로 하여금 병사 2만을 이끌고 장하를 건너서 "거록"을 구원하게 하였으나, 
싸움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는데 '진여'로 부터 다시 지원 요청이 들어왔다.
이에 '항우'가 군사를 이끌고 황하를 건너서는 배를 모두 가라앉히고 솥과 시루등을 모두 깨뜨리고

막사를 불로 태운뒤  3일 분의 식량만 휴대함으로써 병사들에게 필사적으로 싸워 추호도 살아서 돌아갈

마음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었다. ] 

 

於是至則圍王離, 與秦軍遇, 九戰, 絕其甬道, 大破之, 殺蘇角, 虜王離.  涉閒不降楚, 自燒殺.   

當是時, 楚兵冠諸侯.  諸侯軍救鉅鹿下者十餘壁, 莫敢縱兵. 及楚擊秦, 諸將皆從壁上觀.   

楚戰士無不一以當十, 楚兵呼聲動天, 諸侯軍無不人人惴恐.
(어시지즉위왕리, 여진군우, 구전, 절기용도, 대파지, 살소각, 노왕리.  섭관불항초, 자소살.  
 

당시시, 초병관제후.  제후군구거록하자십여벽, 막감종병. 급초격진, 제장개종벽상관.   

초전사무불일이당십, 초병호성동천, 제후군무불인인췌공. )


[이리하여 "거록"에 도착하자마자 "왕리"를 포위하고 진의 군사와 수차례 접전하여 그들의 용도를 끊어서 

크게 무찔렀으며, '소각'을 죽이고 '왕리'를 포로로 하였다. '섭간'은 초나라에 항복하지 않고 분신자살 하였다.

이때에 초나라 군대는 제후군 가운데 으뜸이었다.   

"거록"을 구하고자 온 제후군이 10여 진영이었으나 감히 함부로 군대를 움직이지 못하였다. 
초군이 진군을 공격할때에도 여러 장수들은 모두 자신의 진영에서 관망하고 있을 뿐이었다.
초나라 군사는 한명이 열 명을 대적할 정도로 용감했으며 초군의 함성은 천지를 진동시켰으니, 
 

제후군들은 모두 두려워 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 

            

於是已破秦軍, 項羽召見諸侯將, 入轅門, 無不膝行而前, 莫敢仰視.   

項羽由是始為諸侯上將軍, 諸侯皆屬焉.

章邯軍棘原, 項羽軍漳南, 相持未戰.  秦軍數卻, 二世使人讓章邯.  章邯恐, 使長史欣請事. 

(어시이파진군, 항우소견제후장, 입원문, 무불슬행이전, 막감앙시.   

항우유시시위제후상장군, 제후개속언.

장한군극원, 항우군장남, 상지미전.  진군수각, 이세사인양장한.  장한공, 사장사흔청사.)    

     
[이에 진군을 무찌르고 난 후 '항우'가 제후군의 장수들을 진영으로 불러 들이자 모두 무릎걸음으로 
나오며

감히 고개를 들어 쳐다보지 못하였다. '항우'는 이때부터 비로소 제후군의 상장군이 되니

제후들이 모두 그의 휘하에 소속되었다.

'장한'은 군대를 "극원"에 주둔시키고 '항우'는 "장하" 남쪽에 주둔시켜 서로 대치한 채로 싸우지 않았다. 
그런데 진군이 여러차례 물러나자 '이세'황제는 사람을 보내 '장한'을 꾸짖었다. 
 

'장한'은 두려운 나머지 장사 '사마흔'을 보내 알현을 청하게 하였다. ] 

 

至咸陽, 留司馬門三日, 趙高不見, 有不信之心.

長史欣恐, 還走其軍, 不敢出故道, 趙高果使人追之, 不及.

欣至軍, 報曰:“ 趙高用事於中, 下無可為者. 今戰能勝, 高必疾妒吾功;

戰不能勝, 不免於死.  願將軍孰計之. ”   
(지함양, 유사마문삼일, 조고불견, 유불신지심. 

장사흔공, 환주기군, 불감출고도, 조고과사인추지, 불급.

흔지군, 보왈 : "조고용사어중, 하무가위자.  금전능승, 고필질투오공 ;

전불능승, 불면어사. 원장군숙계지. ")

 

[그가 "함양"에 이르러 사마문에 3일을 머물렀으나 '조고'는 만나주지 않으며 불신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다. 
장사 '사마흔'은 두려워서 자신의 부대로 돌아가면서도 감히 왔던 길로 가지 못하였는데,  

과연 '조고'가 사람을 보내서 그를 추격하였으나 미처 따라잡지 못하였다. '사마흔'이 부대로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

"'조고'가 궁중안에서 정권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었으며, 그 아래에는 제대로 일을 할 만한 자가 없습니다. 

금 전쟁에서 이기면 '조고'는 반드시 우리의 공로를 질투할 것이며, 

전쟁에 져도 죽음을 면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원컨대 장군께서는 심사숙고 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陳餘亦遺章邯書曰:“白起為秦將, 南征鄢郢, 北阬馬服, 攻城略地, 不可勝計, 而竟賜死.    

蒙恬為秦將, 北逐戎人, 開榆中地數千里, 竟斬陽周.  何者? 

功多, 秦不能盡封, 因以法誅之. 今將軍為秦將三歲矣, 所亡失以十萬數, 而諸侯并起滋益多.
彼趙高素諛日久, 今事急, 亦恐二世誅之, 故欲以法誅將軍以塞責, 使人更代將軍以脫其禍.  
 

夫將軍居外久, 多內卻, 有功亦誅, 無功亦誅.  且天之亡秦, 無愚智皆知之.  今將軍內不能直諫,  

外為亡國將, 孤特獨立而欲常存, 豈不哀哉! 將軍何不還兵與諸侯為從, 約共攻秦, 分王其地,  南面稱孤;

此孰與身伏鈇質, 妻子為僇乎?” 章邯狐疑, 陰使候始成使項羽, 欲約. 
(진여역유장한서왈 : "백기위진장, 남정언영, 북갱마복, 공성략지, 불가승계, 이경사사.  
 

몽염위진장, 북축융인, 개유중지수천리, 경참양주.  하자 ?  

공다, 진불능진봉, 인이법주지. 금장군위진장삼세의, 소망실이십만수, 이제후병기자익다.  

피조고색유일구, 금사급, 역공이세주지, 고욕이법주장군이색책, 사인경대장군이탈기화.   

부장군거외구, 다내각, 유공역주, 무공역주.  차천지망진, 무우지개지지. 금장군내불능직간,  

외위망국장, 고특독립이욕상존, 기불애재 ! 장군하불환병여제후위종, 약공공진, 분왕기지,  남면칭고 ; 

차숙여신복부질, 처자위육호 ? " 장한고의, 음사후시성사항우, 욕약. )


['진여'도 역시 '장한'에게 서신을 보내어 말하기를 : "'백기'는 진나라 장수가 되어 남으로 "언영"을 
정벌하고

북으로 '마복'을 땅에 묻었으며, 성을 공격하여 땅을 빼앗은 것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도 마침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몽염'도 진나라 장수로서 북쪽으로 오랑캐를 쫓아내고 "유중"지역 수천리를 개척하였으나

마침내는 "양주"에서 참살 당했으니 이것은 어찌 된 까닭입니까 ?    

공이 너무 많아서 진나라가 모두 봉록을 줄수없기 때문에 법을 구실로 그들을 죽인 것입니다.
지금 장군께서 진나라의 장수가 되신지 3년이며, 잃은 병력이 10만을 헤아리고, 또한 봉기하는 제후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 '조고'는 평소 아첨만을 일삼은 지가 이미 오래되었는데 지금 일이 다급해지고 

또 이세가 자신을 죽일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법을 빌미로 장군을 주살함으로써 자신에 대한 책망을 틀어막고,

사람을 보내어 장군을 대신하게 함으로 그 화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체로 장군께서는 밖에서 머문지가 오래되니 조정과의 틈이 벌어져서 공이 있다고 해도 죽임을 당할것이요,

공이 없다고 해도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또 하늘이 진나라를 멸망시키려 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자나 

지혜로운 자를 막론하고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장군께서 안으로는 직간할 수 없고

또 밖으로는 망국의 장수로서 홀로 외로이 서서 오래도록 버티려고 하시니 어찌 슬프지 않겠습니까 !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병사를 돌리어 제후들과 연합하여 함께 진나라를 공격할 것을 맹약하고 그 땅을 나누어 가진뒤

왕이 되려고 하지 않으십니까 ; 이렇게 자신의 몸은 작두 위에 엎드리게 되고 처자를 욕보이게 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 "라고 하자, '장한'은 주저하며 '항우'에게 후시성을 보내어 협약하고자 하였다. ]  

            

約未成, 項羽使蒲將軍日夜引兵度三戶, 軍漳南, 與秦戰, 再破之. 項羽悉引兵擊秦軍汙水上, 大破之.
章邯使人見項羽, 欲約.  項羽召軍吏謀曰:“ 糧少, 欲聽其約. ”  
 

軍吏皆曰:“ 善.” 項羽乃與期洹水南殷虛上.  已盟,章邯見項羽而流涕, 為言趙高.   

項羽乃立章邯為雍王, 置楚軍中. 使長史欣為上將軍, 將秦軍為前行.
(약미성, 항우사포장군일야인병도삼호, 군장남, 여진전, 재파지.  항우실인병격진군오수상, 대파지.

장한사인견항우, 욕약. 항우소군리모왈 : " 량소, 욕청기약. "    

군리개왈 : " 선. " 항우내여기원수남은허상.  이맹, 장한견항우이류체, 위언조고. 

항우내립장함위옹왕, 치초군중. 사장사흔위상장군, 장진군위전행. )

 

[협약이 아직 이루어지기전, '항우'가 '포장군'으로 하여 주야로 병사를 이끌고 "삼호"를 건너서 "장하" 남쪽에

주둔하게 하고는 진나라와 전투를 벌여 다시 그들을 무찌르게 하였다.  

'항우'도 모든 군사를 이끌고 "오수"에서 진군을 공격하여 크게 무찔렀다.

'장한'이 '항우'에게 사람을 보내어 협약하고자 하니. '항우'가 군리를 불러서 모의하기를 :  

"군량이 적으니 그 협약에 따르리라. "라고 하자.  군리들이 모두 말하기를 :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항우'는 이에 "원수"의 남쪽 "은허"에서 만날 것을 약조하였다.  협약을 하고 난 뒤 '장한'은 '항우'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조고의 여러 악행을 말하였다.  '항우'는 이에 '장한'을 '옹왕'으로 세워서 초나라 군중에 있게 하고,

장사 '사마흔'을 상장군으로 임명하여 진군을 공격하는데 선봉에 서게 하였다. ]  

到新安.  諸侯吏卒異時故繇使屯戍過秦中, 秦中吏卒遇之多無狀, 及秦軍降諸侯,   

諸侯吏卒乘勝多奴虜使之, 輕折辱秦吏卒.  秦吏卒多竊言曰:“章將軍等詐吾屬降諸侯,

今能入關破秦, 大善 : 即不能, 諸侯虜吾屬而東, 秦必盡誅吾父母妻子. ”

(도신안. 제후리졸이시고요사둔수과진중, 진중리졸우지다무상, 급진군항제후,  

제후리졸승승다노로사지, 경절욕진리졸. 진사졸다절언왈 : "장장군등사오속항제후,

금능입관파진, 대선 ; 즉불능, 제후로오속이동, 진필진주로부모처자. ")


[초군의 군대가 "신안"에 이르렀을때.  제후군의 아전과 병사들이 예전에 요역과 변경수비에 동원되어 
진나라를

날 때에 진나라의 병사들이 그들을 무례하게 대하였다, 그런데 지금 진군이 제후군에 항복하자. 제후군의

병사들은 승세를 이용하여 그들을 노예처럼 부리고 진나라의 병사들을 걸핏하면 학대하고 모욕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자 진나라 아전들과 병사들이 수근거리기를 : "'장' 장군등이 우리를 속여 제후들에게 투항하도록 했는데

지금 만일 관내에 들어가서 진나라를 무찌른다면 아주 좋은일이나 ;  

만일 그러하지 못한다면 제후군들은 우리를 포로로 하여 동쪽으로 물러날 것이니, 

진나라는 우리의 부모와 처자를 모두 죽일 것은 분명한 일이다. "라고 하였다.]  

諸侯微聞其計, 以告項羽. 項羽乃召黥布,蒲將軍計曰:“ 秦吏卒尚眾, 其心不服, 至關中不聽,  

事必危, 不如擊殺之, 而獨與章邯,長史欣,都尉翳入秦. ” 於是楚軍夜擊阬秦卒二十餘萬人新安城南.
(제후미문기계, 이고항우. 항우내소경포,포장군계왈 : " 진리졸상중, 기심불복, 지관중불청, 
 

사필위, 불여격살지, 이독여장한,장사흔,도위예입진. "  어시초군야격갱진졸이십여만인신안성남. )


[제후군의 장수가 몰래 그 말을 듣고 '항우'에게 보고하였다.  '항우'는 이에 '경포'와 '포장군'을 불러서 
 

계책을 말하기를 : " 진나라의 아전과 병사들이 아직도 그 수가 많은데다 그들이 마음으로 복종한 것이 아니니

"관중"에 도착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않는다면 이는 틀림없이 일이 위태롭게 될 것이므로, 그들을 죽이고,

'장한', 장사'사마흔', 도위'동예' 만을 데리고 진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나으리라 "라고 하였다. ]  

이리하여 초군은 진군을 습격하여 진나라 병사 20여만 명을 "신안성" 남쪽에 생매장 하였다. ]

行略定秦地.  函谷關有兵守關, 不得入.  又聞沛公已破咸陽, 項羽大怒, 使當陽君等擊關.   

項羽遂入, 至于戲西.  沛公軍霸上, 未得與項羽相見. 沛公左司馬曹無傷使人言於項羽曰: 

“ 沛公欲王關中, 使子嬰為相, 珍寶盡有之. ”
(행략정진지. 함곡관유병수관, 불득입.  우문패공이파함양, 항우대노, 사당양군등격관.  
 

항우수입, 지우희서.  패공군패상, 미득여항우상견. 패공좌사마조무상사인언어항우왈 :  

" 패공욕왕관중, 사자영위상, 진보진유지. " )


['항우'는 진나라 땅을 침략하여 평정시키려고 "함곡관"에 도착하였으나 관을 지키는 병사들이 관을 
사수하고 있어

들어갈 수 없었다.  또 '패공'이 이미 "함양"을 함락시켰다는 소식을 듣자 노발대발하며 '당양군'을 보내

"함곡관"을 공격하도록 하였다. '항우'가 마침내 관내로 들어가서 "희수" 서쪽에 이르렀다. 

이때 '패공'은 "패상"에 주둔하고 있어서, 아직 '항우'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패공'의 좌사마 '조무상'이 사람을 시켜서 '항우'에게 : "패공이 "관중"의 왕이 되고 '자영'을 재상으로 삼아

진귀한 보물을 모두 차지하려고 한다. "라고 하였다. ] 

項羽大怒, 曰:“ 旦日饗士卒, 為擊破沛公軍!”  當是時, 項羽兵四十萬, 在新豐鴻門, 沛公兵十萬, 在霸上.  

范增說項羽曰:“ 沛公居山東時, 貪於財貨, 好美姬.   今入關, 財物無所取, 婦女無所幸, 此其志不在小. 

吾令人望其氣, 皆為龍虎, 成五采, 此天子氣也。急擊勿失. ”
(항우대노, 왈 : "단일향사졸, 위격파패공군 ! "  당시시, 항우병사십만, 재신풍홍문, 패공병십만,
재패상.  

범증설항우왈 : "패공거산동시, 탐어재화, 호미희. 금입관, 재물무소취, 부녀무소행,  차기지불재소.  

오령인망기기, 개위용호, 성오채, 차천자기야. 급격물실. " )


[이에 "항우'가 크게 노하여 말하기를 : "내일 아침 병사들을 잘 먹이고 '패공'의 군대를 쳐 부수리라 ! "라고 하였다.  

이때 '항우'의 병사는 40만명 으로 신풍의 "홍문"에 있었고, '패공'의 병사는 10만명 으로 "패상"에 있었다. 

'범증'이 '항우'에게 말하기를 : "'패공'이 "산동"에 있을때 재화를 탐하고 미색을 좋아하였는데.

지금 관내에 들어가서는 재물을 취하지 아니하고 부녀자도 가까이하지 않으니 이는 그 뜻이 작은데 있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사람을 시켜 그 기를 살펴보게 하였더니, 모두 용과 범의 기세로서 오색 찬란하니,

이는 천자의 기세 입니다. 서둘러 공격하시어 기회를 잃지 마시옵소서 "라고 하였다. ] 

楚左尹項伯者, 項羽季父也, 素善留侯張良.  張良是時從沛公, 項伯乃夜馳之沛公軍, 私見張良,  具告以事, 欲呼張良與俱去.

曰:“毋從俱死也. ”   張良曰:“臣為韓王送沛公, 沛公今事有急, 亡去不義.不可不語. ” 良乃入, 具告沛公. 

(초좌윤항백자, 항우계부야, 소선유후장량.  장량시시종패공, 항백내야치지패공군, 사견장량, 구고이사, 욕호장량여구거.

왈 : "무종구사지. "   장량왈 : "신위한왕송패공, 패공금사유급, 망거불의, 불가불어." 량내입, 구고패공. )


[초나라의 좌윤 '항백'은 '항우'의 막내 삼촌으로 평소에 유후 '장량'과 친하였다.  
 

'장량'은 이때 '패공'을 따르고 있었다. 이에 '항백'은 야밤에 '패공'의 군영으로 달려가서 은밀히 '장량'을 만나

모든 일을 상세히 알리고 함께 가자고 하며. 말하기를 : "'패공'을 따라 죽지 마십시오."라고 하자. 

'장량'이 말하기를 : "신은 韓왕을 위해서 '패공'을 따르고 있는데 '패공'이 지금 위태로운 처지에 있다고 하여

도망가는 것은 의롭지 못한 일이니, 이 사실을 '패공'께 아뢰지 않을 수 없군요. "라고 하고는, 

'장량'은 들어가서 '패공'에게 모두 고하였다. ] 

            

沛公大驚, 曰:“ 為之柰何?”  張良曰:“ 誰為大王為此計者?”   

曰:“ 鯫生說我曰‘距關, 毋內諸侯, 秦地可盡王也’.  故聽之. ”
(패공대경,왈 : "위지내하 ?"  장량왈 : "수위대왕위차계자 ? "  
 

왈 : " 추생설아왈'거관, 무내제후, 진지가진왕야' . 고청지. ")

['패공'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 "이를 어떻게 해야 좋은가 ? 라고 하자,   

'장량'이 말하기를 : " 누가 대왕께 그러한 계책을 말했나이까 ? 라고 하니,
'패공'이 말하기를 : "어떤 서생이 나에게 "함곡관"을 막고서 제후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진나라의 넓은 영토에서 왕 노릇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권하기에 그 말을 따랐소 "라고 하였다. ]
  

            

良曰:“ 料大王士卒足以當項王乎? ”  沛公默然, 曰:“ 固不如也, 且為之柰何?”   

張良曰:“ 請往謂項伯, 言沛公不敢背項王也. ”

沛公曰:“君安與項伯有故?”  張良曰:“秦時與臣游, 項伯殺人, 臣活之.  今事有急, 故幸來告良. ”

沛公曰 : “ 孰與君少長?”  良曰:“ 長於臣."   沛公曰 : “ 君為我呼入, 吾得兄事之. "   

張良出, 要項伯. 項伯即入見沛公.
(량왈 : " 료대왕사졸족이당항왕호 ? "  패공묵연, 왈 : " 고불여야, 차위지내하 ? " 

장량왈 : " 청왕위항백, 언패공불감배항왕야. " 

패공왈 : "군안여항백유고 ?"  장량왈 : "진시여신유, 항백살인, 신활지.  금사유급, 고행래고량."   

패공왈 : "숙여군소장 ?" 량왈 : "장어신."  패공왈 : "군위아호입, 오득형사지, "   

장량출, 요항백. 항백즉입견패공. )


['장량'이 말하기를 : " 대왕의 병사들이 '항왕'을 당해 낼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 라고 하자,  
'패공'이 잠자코 있다 말하기를 : "물론 할 수 없지요, 장차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 ? "라고 하니,  

'장량'이 말하기를 : "청컨대 '항백'에게 '패공'께서는 감히 '항왕'을 배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십시오. "하였다.

'패공'이 말하기를 : "그대는 어떻게 '항백'과 친분을 맺게 되었소 ? "라고 하자. 
'장량'이 말하기를 : "신이 진나라에 있을 적에 그와 더불어 어울렸는데 '항백'이 사람을 죽여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신이 살려 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위급한 일이 생기자 다행스럽게도 찾아와서 제게 알려 주었습니다 "  

'패공이 : "두 사람 중 누가 연장자요 ? 라고 묻자, '장량'이 : "'항백'의 나이가 신보다 많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자 '패공'이 말하기를 : "그대가 '항백'을 불러 주시오, 내가 그를 형으로 대우할 것이오 "라고 하였다.
이에 '장량'이 나가서 '항백'을 불러 들이니 '항백'은 즉시 들어와서 '패공'을 알현하였다. ]

 

沛公奉卮酒為壽, 約為婚姻, 曰:“吾入關, 秋豪不敢有所近, 籍吏民, 封府庫, 而待將軍. 
所以遣將守關者, 備他盜之出入與非常也.  日夜望將軍至, 豈敢反乎! 願伯具言臣之不敢倍德也.”  項伯許諾.
   

謂沛公曰:“ 旦日不可不蚤自來謝項王. ”   沛公曰:“ 諾.” 

(패공봉치주위수, 약위혼인, 왈 : "오입관, 추호불감유소근, 적리민, 봉부고, 이대장군. 
소이견장수관자, 비타도지출입여비상야.  일야망장군지, 기감반호 !  원백구언신지불감배덕야." 
항백허락. 

위패공왈 : " 단일불가불조자래사항왕. "  패공왈 : "락." )

             

['패공'은 술잔을 들어 축수하고 혼인관계를 약조하며 말하기를 : "나는 "관중"에 들어온 뒤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감히 가까히 하지 아니하였고 아전과 백성들의 호적을 정리하고 창고를 잘 관리하며 항장군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장수를 보내어 관중을 지키게 한 것은 다른 도적들의 출입과 의외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밤낮으로 장군이 오시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어찌 감히 반역을 하겠습니까 !  
원컨대 당신께서 신이 감히 배은망덕하지 않다는 것을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라고 하자.
 '항백'이 허락 하였다. 

'항백'이 '패공'에게 말하기를 : "내일 아침 일찍 오셔서 '항왕'께 사죄하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라고 하니.

'패공'은 : "좋습니다"라고 하였다.]

 

於是項伯復夜去, 至軍中, 具以沛公言報項王.   

因言曰:“ 沛公不先破關中, 公豈敢入乎? 今人有大功而擊之, 不義也, 不如因善遇之.” 項王許諾.
(어시항백복야거, 지군중, 구이패공언보항왕. 
 

인언왈 : "패공불선파관중, 공기감입호 ? 금인유대공이격지, 불의야, 불여인선우지." 항왕허락. )


[
이리하여 '항백'은 그날 밤으로 오던 길을 되돌아가 군영에 이르러 '패공'의 말을 낱낱이 '항왕'에게 보고하였다. 

이어서 말하기를 : "'패공'이 먼저 "관중"을 쳐부수지 않았다면 공이 어찌 감히 들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 

지금 그가 큰 공이 있음에도 그를 공격하려 하신다면 이는 의롭지 못한 일이니 잘 우대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

라고 하자,  항왕이 허락하였다. ] 

 
沛公旦日從百餘騎來見項王, 至鴻門, 謝曰:“ 臣與將軍戮力而攻秦, 將軍戰河北, 臣戰河南, 
 

然不自意能先入關破秦, 得復見將軍於此.  今者有小人之言, 令將軍與臣有卻.

項王曰:“此沛公左司馬曹無傷言之;不然,籍何以至此.”  項王即日因留沛公與飲.

項王,項伯東向坐. 亞父南向坐. 亞父者, 范增也. 沛公北向坐, 張良西向侍.   

范增數目項王, 舉所佩玉珪以示之者三, 項王默然不應.
(패공단일종백여기래견항왕, 지홍문, 사왈 : "신여장군육력이공진, 장군전하북, 신전하남,

연불자의능선입관파진, 득복견장군어차.  금자유소인지언, 령장군여신유각. "

항왕왈 :"차패공좌사마조무상언지 ; 불연, 적하이지차. "  항왕즉일인유패공여음.  

항왕, 항백동향좌. 아부남향좌. 아부자, 범증야. 패공북향좌, 장량서향시.   

범증수목항왕, 거소패옥규이시지자삼, 항우묵연불응.)

 

['패공'은 다음날 아침 일찍 100여 기를 이끌고 '항왕'을 만나러 와서 홍문에 이르러 사죄하며 말하기를 :

"신은 장군과 더불어 죽을 힘을 다해서 진나라를 공격했으며, 장군께서는 "하북"에서 전투를 하시고,  

신은 "하남"에서 전투를 하였던 것이온데 본의 아니게 먼저 "관중"에 진입하여 진나라를 무찌르고 이곳에서 다시

장군을 뵈올 수 있게 되었으나, 지금 소인배들의 말에 의해 장군과 신 사이에 틈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라고 하자.

이에 '항우'가 말하기를 : "이는 '패공'의 좌사마인 '조무상'이 말한 것이오 ; 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무엇 때문에

이렇게 했겠소." 라고 하며. '항왕'은 그날 함께 술을 마시기 위하여 '패공'을 머물도록 하였다. 

'항왕'과 '항백'은 동쪽을 향해 앉고, '아부'는 남쪽을 향해 앉았는데 '아부'가 바로 '범증'이다.   

'패공'은 북쪽을 향해 앉고 '장량'은 서쪽을 향해 자리를 마련하였다.
'범증'이 '항왕'에게 수 차례 눈짓을 하며 차고 있던 옥규(제후 인증 패찰)를 들어서 암시한 것이 세 차례, 

그러나 '항왕'은 묵묵히 지켜만 볼 뿐 응답이 없었다.

 

范增起, 出召項莊, 謂曰:“ 君王為人不忍, 若入前為壽, 壽畢, 請以劍舞, 因擊沛公於坐,  殺之.   

不者, 若屬皆且為所虜. ”  莊則入為壽, 壽畢, 曰:“ 君王與沛公飲, 軍中無以為樂, 請以劍舞.”  

(범증기, 출소항장, 위왈 : "군왕위인불인, 약입전위수, 수필, 청이검무, 인격패공어좌, 살지.   

불자, 약속개차위소로. "   장즉입위수, 수필, 왈 : " 군왕여패공음, 군중무이위락, 청이검무. " )

['범증'이 일어나서 밖으로 나와 '항장'을 불러 말하기를 : " 군왕의 사람됨이 모질지 못하므로, 
그대가 들어가서 축수를 올리고 축수가 끝나면 검무를 출것을 청하시오, 그러다 기회를 보아서

'패공'을 앉은 자리에서 죽여 버리시오.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은 앞으로 모두 그의 포로가 될 것이오 "라고 하였다.   

'항장'이 즉시 들어가 서 축수를 올리고 축수가 끝난뒤 말하기를 : "군왕과 패공께서 주연을 여시는데  

군중에 흥을 돋을 만한 것이 없으므로 검무를 추고자 합니다. "라고 하였다. ]

項王曰:“ 諾.”  項莊拔劍起舞, 項伯亦拔劍起舞, 常以身翼蔽沛公, 莊不得擊.   

於是張良至軍門, 見樊噲.   樊噲曰:“今日之事何如?”  

良曰:" 甚急.  今者項莊拔劍舞, 其意常在沛公也.”   噲曰:“ 此迫矣, 臣請入, 與之同命. ”
(항왕왈 : "락." 항장발검기무, 항백역발검기무, 상이신익폐패공, 장불득격.  
 

어시장량지군문, 견번쾌.  번쾌왈 : " 금일지사여하 ? "  

량왈 : " 심급. 금자항장발검무, 기의상재패공야."    쾌왈 : " 차추의, 신청입, 여지동명. " )


['항왕'이 : "좋다."라고 하니. '항장'이 검을 뽑아서 춤을 추자, '항백' 또한 검을 뽑아 들고 일어나서 
춤을 추며 

몸으로 '패공'을 감싸주니 '항장'이 '패공'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이때 '장량'이 군문에 갔다가 '번쾌'를 만났다.  '번쾌'가 : "오늘 일이 어떠합니까 ? "라고 묻자.   

'장량'이 말하기를 : "매우 위급하오.  지금 '항장'이 검을 뽑아 들고 춤을 추는데, 

이는 오로지 '패공'을 해치는 데에 그 뜻이 있음이오. "라고 말하자.  '번쾌'가 말하기를 : "이는 급박한 일입니다, 

신이 들어가기를 청하여 '패공'과 함께 생사를 같이 해야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 

 

噲即帶劍擁盾入軍門.  交戟之衛士欲止不內, 樊噲側其盾以撞, 衛士仆地, 噲遂入, 披帷西向立,  

瞋目視項王, 頭髪上指, 目眥盡裂.
(쾌즉대검옹순입군문.  교극지위사욕지불내, 번괘측기순이당, 위사부지, 쾌수입, 피유서향입, 
 

진목시항왕, 두발상지, 목개진열. ) 

['번쾌'는 즉시 검을 차고 방패를 들고는 군문으로 들어갔다. 보초를 서는 위사가 막으며 들여보내지 않으려하자, 

'번쾌'가  방패를 비껴서 치니 위사들이 땅바닥에 쓰러졌다, 
'번쾌'가 마침내 들어가서 장막을 들치고 서쪽을 향해 서서 눈을 부릅뜨고 '항왕'을 노려 보았는데 
 

머리카락은 위로 곤두서고, 눈꼬리는 찢어질 대로 찢어져 있었다. ]

 

項王按劍而跽曰:“ 客何為者? ”  張良曰:“ 沛公之參乘樊噲者也. ”   

項王曰:" 壯士, 賜之卮酒. ” 則與斗卮酒.  噲拜謝, 起, 立而飲之. 

項王曰:" 賜之彘肩. ”  則與一生彘肩.   樊噲覆其盾於地, 加彘肩上, 拔劍切而啗之.  

(항왕안검이기왈 : " 객하위자 ? "   장량왈 : "패공지참승번쾌자야. "   

항왕왈 : " 장사, 사지치주. "  즉여두치주.  쾌배사, 기, 입이음지.

항왕왈 : "사지체견."  즉여일생체견.  번쾌복기순어지, 가체견상, 발검절이담지.)

['항왕'이 검에 기대어 무릎을 세워 앉고 말하기를 : "그대는 무엇하는 자인가 ? "   

'장량'이 말하기를 : "'패공'의 참승 '번쾌'라는 자입니다 "라고 하자.
'항왕'이 말하기를 : "장사로다, 그에게 술 한잔을 내리라"라고 하니,  즉시 큰(말) 잔에 술이 주어졌다. 
 

'번쾌'는 감사의 절을 하고 일어나 선 채로 마셔버렸다.

'항왕'이 말하기를 : "그에게 돼지 다리를 주어라 "라고 하자.즉 시 익히지 않은 돼지 다리 하나를 주었다. 
'번쾌'는 방패를 땅에 엎어놓고 그 위에 돼지 다리를 올려놓고 검으로 잘라 먹었다.
]

 

項王曰:“ 壯士, 能復飲乎? ”  樊噲曰:“ 臣死且不避, 卮酒安足辭! 夫秦王有虎狼之心, 

殺人如不能舉, 刑人如恐不勝, 天下皆叛之.  懷王與諸將約 曰‘先破秦入咸陽者王之’.   

今沛公先破秦入咸陽, 豪毛不敢有所近, 封閉宮室, 還軍霸上, 以待大王來.

故遣將守關者, 備他盜出入與非常也. 勞苦而功高如此, 未有封侯之賞, 而聽細說, 欲誅有功之人.   

此亡秦之續耳, 竊為大王不取也. "
(항왕왈: "장사, 능복음호 ?" 번쾌왈 :  "신사차불피, 치주안족사 ! 
 부진왕유호랑지심, 

살인여불능거, 형인여공불승, 천하개반지.  회왕여제장약왈'선파진입함양자왕지'.   

금패공선파진입함양, 호모불감유소근, 봉폐궁실, 환군패상, 이지대왕래.   

고견장수관자, 비타도출입여비상야. 노고이공고여차, 미유봉후지상, 이청세설, 욕주유공지인.   

차망진지속이, 절위대왕불취야." )


['항왕'이 말하기를 : " 장사로다, 더 마실수 있겠는가 ? "라고 하니,
'번쾌'가 : " 신은 죽음도 피하지 않는 사람인데 그깢 술 한잔을 어찌 사양할 수 있겠나이까 !
무릇 '진왕'에게 범과 이리같은 음흉한 마음이 있어, 다 죽이지 못할것이 우려되는 듯 사람을 죽이고, 
만들어 놓은 형벌을 다 사용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듯 사람에게 형벌을 내리니 천하가 모두 등을 돌렸습니다.

그리하여 '회왕'께서 여러 장수들에게 약조하시기를 '먼저 진나라를 무찌르고 "함양"에 들어가는 자를 왕으로

세우리라'라고 하셨는데, 지금 '패공'께서는 먼저 진나라를 무찌르고 "함양"에 진입하셨으되 터럭만한 작은 물건도

감히 가까이 취하신 바 없으며, 궁실을 잠그고 다시 "패상"으로 돌아와서 대왕께서 오시기만을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그리하여 일부러 장수들을 보내어 "관중"을 지키도록 한 이유는 다른 도적들의 출입과 위급한 경우에 대처하기

위함이었으며, 애써 수고를 하고 공로 또한 이처럼 많은데 봉후의 상은 내리지 못할 망정 소인배의 가벼운 말만

들으시고 공이 있는 사람을 죽이려 하시니, 이는 멸망한 진나라의 뒤를 잇는 꼴이 될 뿐입니다. 

대왕을 위하여 제 나름대로 생각하건대 그 같은 일을 하지 않으심이 옳을 듯합니다 "라고 하였다. ]

 

項王未有以應, 曰:“ 坐.”  樊噲從良坐.  坐須臾, 沛公起如廁, 因招樊噲出.
沛公已出, 項王使都尉陳平召沛公.  沛公曰:“ 今者出, 未辭也, 為之柰何?”

樊噲曰:“ 大行不顧細謹,大禮不辭小讓. 如今人方為刀俎, 我為魚肉, 何辭為.”   

於是遂去. 乃令張良留謝.  
(항왕미유이응, 왈 : " 좌. "  번쾌종량좌.  좌수유, 패공기여측, 인초번쾌출.

패공이출, 항왕사도위진평소패공. 패공왈 : "금자출, 미사야, 위지내하 ? "  

'번쾌'왈 : "대행불고세근, 대례불사소양. 여금인방위도조, 아위어육, 하사위."   

어시수거. 내령장량유사. )   

 

['항왕'은 이에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말하기를 : "앉으라."라고 하니, '번쾌'는 '장량'을 따라서 앉았다.

'번쾌'가 앉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패공'이 일어나서 측간을 가면서 '번쾌'를 밖으로 불러 내었다.

'패공'이 나간뒤 '항왕'은 도위 '진평'으로 하여금 '패공'을 불러 오도록 하였다.   
'패공'이 말하기를 : "지금 하직인사도 하지 않고 나왔으니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소 ? "라고 하자, 
 

'번쾌'가 말하기를 : " 큰 일을 할때에는 작은일 따윈 돌아볼 필요가 없고, 큰 예절을 행함에는 작은 허물을

사양치 않는 것입니다.  지금 저들이 칼과 도마가 되고 우리는 그위에 놓인 생선과 고기가 된 이 마당에  

무슨 인사를 하려 하십니까 "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마침내 그곳을 떠나며 '장량'으로 하여금 남아서 사죄하도록 하였다
.] 

 

良問曰:“ 大王來何操? ” 

曰:“ 我持白璧一雙, 欲獻項王, 玉斗一雙, 欲與亞父, 會其怒, 不敢獻.  公為我獻之 ”. 

張良曰:“謹諾.”   當是時, 項王軍在鴻門下, 沛公軍在霸上, 相去四十里.

(량문왈 : " 대왕래하조 ? "

왈 : "아지백벽일상, 욕헌항왕, 옥두일쌍, 요여아부, 회기노, 불감헌.  공위아헌지 ".  

장량왈 : " 근락. "   당시시, 항왕군재홍문하, 패공군재패상, 상거사십리. )

['장량'이 묻기를 ; " 대왕께서 오실때 어떠한 선물을 가지고 오셨습니까 ? "라고 하자.]

'패공'이 말하기를 : "백색 둥근 옥 한 쌍은 '항왕'께 바치려고 하였으며,  

옥두 한 쌍은 '아부'에게 주고자 하였는데 그 노한 모습을 대하고는 감히 바치지 못하였소.  

러니 공께서 나를 대신해 바쳐 주시오"라고 하였다.   

'장량' 말하기를 : "삼가 받들겠나이다"라고 하였다.  이때에 '항왕'의 군대는 "홍문" 아래에 있었고, 
'패공'의 군대는 "패상"에 있었으니 서로의 떨어진 거리는 불과 40리 였다. ]

 

沛公則置車騎, 脫身獨騎, 與樊噲· 夏侯嬰· 靳彊· 紀信等四人持劍盾步走, 從酈山下, 道芷陽閒行.
沛公謂張良曰:“從此道至吾軍, 不過二十里耳。度我至軍中, 公乃入.”  

沛公已去, 閒至軍中, 張良入謝,曰 : “沛公不勝桮杓, 不能辭. 謹使臣良奉白璧一雙,  

再拜獻大王足下;玉斗一雙, 再拜奉大將軍足下. ”
(패공즉치거기, 탈신독기, 여번쾌· 하후영· 근강· 기신등사인지검순보주, 종여산하, 도지양간행.

패공위장량왈 : "종차도지오군, 불과이십리이.  도아지군중, 공내입."   

패공이거, 간지군중, 장량입사, 왈 : " 패공불승배작, 불능사. 근사신랑봉백벽일쌍,  

재배헌대왕족하 ; 옥두일쌍, 재배봉대장군족하." ) 

['패공'은 수레와 말을 버려둔 채 몸만 빠져나와서 홀로 말에 오르고 '번쾌', '하후영', '근강', '기신'등 

네 사람은 검과 방패를 들고 걸어서 "여산"을 내려와 "지산"의 샛길을 이용하였다.

이전에 '패공'이 '장량'에게 이르기를 : "이 길을 통해서 우리 군영까지는 불과 20리에 지나지 않으니,  
내가 군영에 이르렀다고 생각되거든 공께서는 곧 들어가시오."라고 하였다. 
'패공'이 나간뒤 샛길을 통해서 군영에 이르렀을 쯤 '장량'이 들어가 '항우'에게 사죄하며 말하기를 : 
 

"'패공'께서 술을 이기지 못하여 하직인사를 올릴 수가 없었습니다. 
삼가 신 '장량'으로 하여금 백벽 한 쌍을 대왕 족하께 재배의 예를 올리며 바치게 하고,

옥두 한 쌍은 대장군 족하께 재배의 예를 올리며 바치게 하였나이다."라고 하였다.]

 

項王曰:“沛公安在?”  良曰:“聞大王有意督過之, 脫身獨去, 已至軍矣.” 項王則受璧, 置之坐上.

亞父受玉斗, 置之地, 拔劍撞而破之, 曰:" 唉!豎子不足與謀. 奪項王天下者, 必沛公也,  

吾屬今為之虜矣. ”   沛公至軍, 立誅殺曹無傷.
(항왕왈 : "패공안재 ?"  량왈 : "문대왕유의독과지, 탈신독거, 이지군의." 항왕즉수벽, 치지좌상.  
 

아부수옥두, 치지지, 발검당이파지, 왈 : "희 ! 수자부족여모. 탈항왕천하자, 필패공야,  

오속금위지로의. " 패공지군, 입주살조무상. )

['항왕'이 묻기를 : "'패공'은 어디에 계신가 ? "라고 하자, 
'장량'이 대답하길 : "대왕께서 몹시 질책하려는 마음이 있으시다는 말을 듣고 홀로 빠져 나갔으며, 
 

이미 그의 군영에 당도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항왕'은 백벽을 받아서 앉은 자리 위에 두었다.   

그러나 '아부'는 옥두를 땅 바닥에 놓고는 검을 뽑아 깨뜨리며 말하기를 : "

에이 ! 어린 아이와는 함께 대사를 도모 할 수가 없구나, '항왕'의 천하를 빼앗을 자는 반드시 '패공'일 것이며,

우리들은 이제 그의 포로가 될 것이다 "라고 하였다. '패공'은 진영에 도착하자, 즉시 '조무상'을 베어 죽여버렸다. ]

 

居數日, 項羽引兵西屠咸陽, 殺秦降王子嬰, 燒秦宮室, 火三月不滅;收其貨寶婦女而東.

人或說項王曰:“ 關中阻山河四塞, 地肥饒, 可都以霸.” 項王見秦宮皆以燒殘破, 又心懷思欲東歸.

曰:“ 富貴不歸故鄉, 如衣繡夜行, 誰知之者!”   

說者曰:“人言楚人沐猴而冠耳, 果然. ”   項王聞之, 烹說者. 
(거수일, 항우인병서도함양, 살진항왕자영, 소진궁실, 화삼월불멸 ; 수기화보부녀이동.

인혹설항왕왈 : "관중조산하사색, 지비요, 가도이패." 항왕견진궁개이소잔파, 우심회사욕동귀.

왈 : "부귀불귀고향, 여의수야행, 수지지자 ! "   

설자왈 : " 인언초인목후이관이, 과연."  항우문지, 팽설자.)

[며칠 후 '항우'는 군대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격하여 "함양"을 점령하고, 항복한 진나라 삼세황제 '자영'을 죽이고,

진나라의 궁실을 불태웠는데 3개월 동안을 타고도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금은보화와 부녀자들을 거두어

동쪽으로 이동하였다.   어떤 사람이 '항왕'에게 권하기를 : "관중"은 사방이 산과 강으로 막혀있고

토지가 비옥하니 도읍으로 삼기에 으뜸입니다."라고 하였으나  

'항왕'은 진나라의 궁실이 이미 불에 타버렸고, 또 마음속으로 고향이 그리워서 동쪽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항왕'이 말하기를 : "부귀한 후에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 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으니, 

누가 그것을 알아 주리오 !"라고 하였다. 
그러자 '항왕'에게 권고했던 사람이 말하기를 : "사람들이 말하기를 초나라의 사람은 옷은 훌륭하나

마음은 사람답지 못하다고 하더니만, 과연 그렇구나 "라고 하니, '항왕이 그 말을 듣고는 그 사람을 팽살하였다. ]

項王使人致命懷王.  懷王曰:“如約.” 乃尊懷王為義帝.  項王欲自王, 先王諸將相.   

謂曰:" 天下初發難時, 假立諸侯後以伐秦.  然身被堅執銳首事, 暴露於野三年,

滅秦定天下者, 皆將相諸君與籍之力也.  義帝雖無功, 故當分其地而王之. ”
(항왕사인치명회왕.  회왕왈 : "여약."  내존회왕위의제.  항우욕자왕, 선왕제장상. 

위왈 : "천하초발난시, 가입제후후이벌진.  연신피견집예수사, 폭로어야삼년, 멸진정천하자,  

개장상제군여적지력야.  의제수무공, 고당분기지이왕지. ")

['항왕'이 사람을 보내 '회왕'에게 죽을 지경에 놓여있다고 하니, '회왕'이 : "약조대로 하라" 라고 하였다. 
이에 '회왕'을 높여 의제라고 하였고, '항왕'은 스스로 왕이 되고자 하여 우선 여러 장수들을 왕으로 삼았다. 

그리고 말하기를 : "천하에 처음으로 난이 일어났을때, 임시로 제후들을 세운후 진나라를 토벌하였으며.   

그러한 연후에 갑옷을 입고 날카로운 무기를 잡고 먼저 거사하여 이슬을 맞아가며 들판에서 지내기를 3년 만에

진나라를 멸하고 천하를 평정한 것은 모두 여러 장수및 제후들과 나의 힘이오,  
그러나 의제께서는 비록 공은 없으시나 그 땅을 나누어 왕이 되게 함이 마땅할 것이오 "라고 하였다. ]

 

諸將皆曰:" 善. ”  乃分天下, 立諸將為侯王.  項王, 范增疑沛公之有天下, 業已講解, 又惡負約,  

恐諸侯叛之, 乃陰謀曰:"巴, 蜀道險, 秦之遷人皆居蜀. "  

乃曰:" 巴, 蜀亦關中地也. ”   故立沛公為漢王, 王巴, 蜀, 漢中, 都南鄭. 

而三分關中, 王秦降將以距塞漢王.  項王乃立章邯為雍王, 王咸陽以西, 都廢丘.   

長史欣者, 故為櫟陽獄掾, 嘗有德於項梁;都尉董翳者, 本勸章邯降楚.

(제장개왈 : "선." 내분천하, 입제장위후왕.  항왕, 범증의패공지유천하, 업이강해, 우악부약,

공제후반지, 내음모왈 : " 파, 촉도험, 진지천입개거촉. "  

내왈 : " 파, 촉역관중지야. "   고립패공위한왕, 왕파, 촉, 한중, 도남정.

이삼분관중, 왕진항장이거색한왕. 항왕내립장한위옹왕, 왕함양이서, 도폐구.   

장사흔자, 고위역양옥연, 상유덕어항량 ; 도위동예자, 본권장한항초.)

 

[그러자 여러 장수들이 모두 : " 옳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천하를 나누어 여러 장수들에게

제후와 왕으로 세우지만, '항왕'과 '범증'은 '패공'이 천하를 차지할까 의심스러워 이미 강해하였고,   

또 약조를 어기는 것이 꺼림칙하고 제후들이 자기들을 배반할것이 두려워서, 
은밀히 모의하기를 : "파, 촉은 길이 험하고 진나라에서 옮겨간 사람들이 모두 촉에 살고있다."라고 하고,
이어 말하기를 : "파, 촉 역시 "관중" 땅이다." 그러므로 '패공'을 한왕으로 세워서,
 파, 촉, 한중의 왕으로 봉하고

"남정"에 도읍을 정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관중"을 3등분하여 항복한 진나라 장수들을 왕으로 삼아서 한왕을 견제하게 하였으며,
'항왕'은 '장한'을 '옹왕'으로 삼아서 "함양" 서쪽의 왕으로 봉하고 "폐구"에 도읍하도록 하였다. 
장사 '사마흔'은 본래 "역양"의 옥연이었던 자로 일찍이 '항량'에게 덕을 베푼적이 있었고 ; 
도위 '동예'는 본래 '장한'에게 초나라에 투항할 것을 권유하였던 자이다. ]
 

 

故立司馬欣為塞王, 王咸陽以東至河, 都櫟陽;立董翳為翟王, 王上郡, 都高奴.   

徙魏王豹為西魏王, 王河東, 都平陽.  瑕丘申陽者, 張耳嬖臣也, 先下河南 (郡), 迎楚河上,  

故立申陽為河南王, 都雒陽. 韓王成因故都, 都陽翟.
(고립사마흔위새왕, 왕함양이동지하, 도역양 ; 입동예위적왕, 왕상군, 도고노.  
 

사위왕표위서위왕, 왕하동, 도평양.  하구신양자, 장이폐신야, 선하하남 (군) , 영초하상,  

고립싱양위하남왕, 도낙양. 한왕성인고도, 도양적. )    

         

[그리하여 '사마흔'을 '새왕'으로 세워 "함양"의 동쪽에서 황하에 이르는 지역을 봉지로주고

"역양"을 도읍으로 하게 하였으며 ; '동예'를 '적왕'으로 세워서 "상군"의 왕으로 삼았으며 "고노"에 도읍토록 하였다.

그리고 위왕 '표'를 서위왕으로 바꾸고 "하동"의 왕으로 봉하고 "평양"에 도읍하도록 하였다.   

"하구"의 '신양'은 '장이'가 아끼는 신하로서 그는 먼저 "하남"을 함락시키고 황하변에서 초군을 맞아들였으므로 

'신양'을  하남왕으로 세우고 "낙양"에 도읍하도록 하였다. 

한왕 '성'은 옛 도읍을 그대로 하여 "양적"에 도읍하게 하였다.

 

趙將司馬卬定河內, 數有功, 故立卬為殷王, 王河內, 都朝歌.  徙趙王歇為代王.  趙相張耳素賢,  

又從入關, 故立耳為常山王, 王趙地, 都襄國. 當陽君黥布為楚將, 常冠軍, 故立布為九江王, 都六.

鄱君吳芮率百越佐諸侯, 又從入關, 故立芮為衡山王, 都邾.   

義帝柱國共敖將兵擊南郡, 功多, 因立敖為臨江王, 都江陵.

徙燕王韓廣為遼東王.  燕將臧荼從楚救趙, 因從入關, 故立荼為燕王, 都薊.   

徙齊王田市為膠東王.  齊將田都從共救趙, 因從入關, 故立都為齊王, 都臨菑.

(조장사마앙정하내, 수유공, 고입앙위은왕, 왕하내, 도조가.  사조왕헐위대왕.  조상장이소현,

우종입관, 고립이위상산왕, 왕조지, 도양국. 당양군경포위초장, 상관군, 고립포위구강왕, 육도.

파군오예솔백월좌제후, 우종입관, 고립예위형산왕, 도주.   

의제주국공오장병격남군, 공다, 인립오위임강왕, 도강릉.

사연왕한광위요동왕.  연장장도종초구조, 인종입관, 고립도위연왕, 도계.   

사제왕전불위교동왕.  제장전도종공구조, 인종입관, 고립도위제왕, 도임치.)

 

[조나라 장수 '사마앙'은 하내의 평정에 여러차례 공이 있으므로 '앙'을 은왕으로 세워서 "하내"의 왕으로 하고,

"조가'에 도읍하게 하였고, 조왕 '헐'은 대왕으로 하였다.   

조나라 재상 '장이'는 평소 어질고, 또 "관중"에 진입할때 함께 하였으므로

'장이'를 '상산왕'으로 세워 조나라 의 왕으로 하고 "양국"에 도읍하게 하였다.  
당양군 '경포'는 초나라의 장수로서 군영에서 항상 뛰어난 활약을 하였으므로

'경포'를 '구강왕'에 세우고 "육"을 도읍으로 하게 하였다.

파군 '오예'는 백월을 이끌고 제후군을 도왔으며, 또 "관중"에 진입할때 함께 따랐으므로  

'오예'를 '형산왕'에 세우고  "주"를 도읍으로 하게 하였다. 
'의제'의 주국 '공오'는 병사를 이끌고 남군을 공격할때 공이 많았으므로,  
 

'공오'를 '임강왕'에 세우고 "강릉"에 도읍하게 하였다.

연왕 '한광'을 요동왕으로 옮기게 하고. 연나라 장수 '장도'는 초군을 따라서 조나라를 도와 "관중"에 진입할 때

함께  따랐으므로 '장도'를 연왕으로 세우고 "계"에 도읍하게 하였다.   

제왕 '전불'을 교동왕으로 옮기게 하고, 제나라 장수 '전도'는 제후군을 따라서 함께 조나라를 구원하고
"관중"에 진입할때 따랐으므로 '전도'를 제왕으로 세우고 "임치"에 도읍하게 하였다.]

 

故秦所滅齊王建孫田安, 項羽方渡河救趙, 田安下濟北數城, 引其兵降項羽, 故立安為濟北王,  

都博陽.   田榮者, 數負項梁, 又不肯將兵從楚擊秦, 以故不封.

成安君陳餘棄將印去, 不從入關, 然素聞其賢, 有功於趙, 聞其在南皮, 故因環封三縣.

番君將梅鋗功多, 故封十萬戶侯. 項王自立為西楚霸王, 王九郡, 都彭城.

(고진소멸제왕건손전안, 항우방도하구조, 전안하제북수성, 인기병항항우, 고립안위제북왕, 

도박양.  전영자, 수부항량, 우불긍장병종초격진, 이고불봉.

성안군진여기장인거, 불종입관, 연소문기현, 유공어조, 문기재남피, 고인환봉삼현.  

파군장매현공다, 고봉십만호후. 항왕자립위서초패왕, 왕구군, 도팽성.)

 

[이미 진나라에 멸망 당한 제왕 '전건'의 손자 '전안'은 '항우'가 막 황하를 건너서 조나라를 구원할 때에

"제북"의 여러 성을 함락시킨 뒤 그 병사를 이끌고 '항우'에게 투항하였으므로

'전안'을 제북왕으로 세우고 "박양"에 도읍하게 하였다.

'전영'은 여러 번 '장량'을 배반하고 또 군사를 이끌고 초군을 따라서 진나라를 치려고 하지 않았으므로

봉지를 주지 않았다.  성안군 '진여'는 장수의 도장을 버리고 "관중"에 진입할때 따르지 않았지만

평소에 어질다는 명성이 있었으며 조나라에 대해서도 공이 있었으므로,

그가 "남피"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부근의 세 현을 봉지로 주었다. 

그리고 파군의 장수 '매현'은 공이 많으므로 10만 호의 후에 봉하였다. 
'항우'는 스스로 왕위에 올라서 '서초패왕'이라고 하고 9군의 왕으로 "팽성"에 도읍을 정했다. ]

漢之元年四月, 諸侯罷戲下, 各就國.  項王出之國, 使人徙義帝,  

曰:“ 古之帝者地方千里, 必居上游. ”  乃使使徙義帝長沙郴縣.

趣義帝行, 其群臣稍稍背叛之, 乃陰令衡山· 臨江王擊殺之江中.   韓王成無軍功, 項王不使之國,

與俱至彭城, 廢以為侯, 已又殺之. 臧荼之國, 因逐韓廣之遼東, 廣弗聽, 荼擊殺廣無終.
(한지원년사월, 제후파희하, 각취국.  항왕출지국, 사인사의제,  

왈 : " 고지제자지방천리, 필거상유."  내사사사의제장사침현.

취의제행, 기군신초초배반지, 내음령형산· 임강왕격살지강중.  한왕성무군공, 항왕불사지국,  

여구지팽성, 폐이위후, 이우살지. 장도지국, 인축한광지요동, 광불청, 도격살광무종. )

[한 원년 4월, 제후들이 휘하의 군대를 "희수"아래에서 해산시키고 각자 자신의 봉국으로 갔다.  

항왕도 "관중"에서 나와 "팽성"으로 가는 도중에 사자를 보내어 '의제'를 천도하게 하며 말하기를 : 

“ 옛 제왕은 영토가 사방천리로, 반드시 강의 상류에 거주하였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항우'는 사자로 하여금 '의제'를 "장사"의 "침현"으로 옮기도록 하였다.

'의제'의 행차를 재촉하니, '의제'의 여러 신하들이 점차 의제를 배반했다. 
또 몰래 형산왕 '오예'와 임강왕 '공오'에게 명을 내려 '의제'를 장강 가운데에서 죽이도록 하였다. 

한왕 '성'이 진나라를 멸하는데 아무런 전공이 없었다고 생각한 '항왕'은 그가 봉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한 뒤

함께 "팽성"으로 가서 왕을 폐하고 후로 강등시켰다가 얼마 후에 그를 죽였다.   

'장도'는 자신의 봉국으로 가서 '한광'을 "요동"으로 쫓아내려고 했으나 '한광'이 듣지 않자,
"무종"에서 '한광'을 격살하고는 그 땅을 빼앗아서 자신의 봉지로 삼았다. ]

田榮聞項羽徙齊王市膠東, 而立齊將田都為齊王, 乃大怒, 不肯遣齊王之膠東, 因以齊反, 迎擊田都.  田都走楚. 

齊王市畏項王, 乃亡之膠東就國.  田榮怒, 追擊殺之即墨.

榮因自立為齊王, 而西殺擊濟北王田安, 并王三齊.  榮與彭越將軍印, 令反梁地.
(전영문항우사제왕불교동, 이립제장전도위제왕, 내대노, 불긍견제왕지요동, 인이제반, 영격전도.  전도주초. 

제왕불외항왕, 내망지교동취국.  전영노, 추격살지즉묵.

영인자립위제왕, 이서살격제북왕전안, 병왕삼제.  영여팽월장군인, 영반량지.)  


['전영'은 '항우'가 제나라 왕 '전불'을 "교동"으로 옮기게 하고 제나라 장수 '전도'를 제왕으로 세웠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노했다.  그리하여 그는 '전불'을 "교동"으로 보내지 않고 제나라 영토를 근거지로 해 반란을 일으키고

'전도'를 맞아 공격하였다. '전도'는 초나라로 도주하였다. 

제왕 '전불'은 '항왕'이 두려워서 "교동"으로 도망쳐서 왕위에 오르려고 하였다.  

그러자 '전영'이 노하여 그를 추격해 "즉묵"에서 죽였다.

그런 뒤 '전영'은 스스로 제왕에 즉위해 서쪽으로 제북왕 '전안'을 공격해 그를 죽이고,

삼제(三齊)를 모두 자신의 영토로 삼았다. 

'전영'은 '팽월'에게 장수의 인장을 주고 양나라 땅에서 초나라에 반기를 들게 하였다.] 

陳餘陰使張同· 夏說說齊王田榮曰:“ 項羽為天下宰, 不平.  今盡王故王於醜地,

而王其群臣諸將善地, 逐其故主趙王, 乃北居代, 餘以為不可.  聞大王起兵, 且不聽不義,

願大王資餘兵, 請以擊常山, 以復趙王, 請以國為捍蔽. ”   齊王許之, 因遣兵之趙.

(진여음사장동· 하열설제왕전영왈 : " 항우위천하재, 불평.  금진왕고왕어추지,  

이왕기군신제장선지, 축기고주조왕, 내북거대, 여이위불가.  문대왕기병, 차불청불의,  

원대왕자여병, 청이격상산, 이복조왕, 청이국위한폐. " 제왕허지, 인견병지조. )


['진여'는 몰래 '장동'과 '하열'을 보내 자기의 말을 제왕 '전영'에게 말하기를 : " 천하를 주재하고 있는 '항우'는

공평하지 못합니다. 지금 본래 제후왕이었던 사람들을 나쁜 땅으로 옮기게 하고, 자기의 여러 신하들과 장수들은

좋은 땅을 주었으며, 원래의 군주인 조나라 왕을 쫓아내어 북쪽의 험지인 "대" 땅에 거하게 하였으니,

저는 그럴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듣건대 대왕께서 군대를 일으키시고 또한 불의를 따르지 않는다고 하시니,

원컨대 대왕께서 저에게 군사를 지원해주시어 "상산"을 공격하게 해 조왕의 원래 영지를 회복하게 하시고

조나라를 제나라의 변경을 지키는 방어막으로 삼으시기를 청합니다. ”라고 하자, 
제왕 '전영'은 '진여'의 청을 허락하고 '진여'를 돕기 위해 군사를 조나라로 파견하였다.]

          

陳餘悉發三縣兵, 與齊并力擊常山, 大破之.  張耳走歸漢.  陳餘迎故趙王歇於代, 反之趙. 

趙王因立陳餘為代王. 是時, 漢還定三秦.  項羽聞漢王皆已并關中, 且東, 齊· 趙叛之:大怒. 

乃以故吳令鄭昌為韓王, 以距漢.  令蕭公角等擊彭越.  彭越敗蕭公角等.
(진여실발삼현병, 여제병력격상산, 대파지.  장이주귀한.  진여영고조왕헐어대, 반지조.

조왕인입진여위대왕. 시시, 한환정삼진.  항우문한왕개이병관중, 차동, 제· 조반지 : 대노.   

내이고오령정창위한왕, 이거한.  영소공각등격팽월.  팽월패소공각등.)


['진여'는 3개 현의 군사를 모두 징발해 제나라 군대와 더불어 힘을 합쳐서 "상산"을 공격해 크게 무찔렀다. 

'장이'는 도망쳐서 한나라로 돌아갔다. '진여'는 원래의 조왕 '헐'을 "대" 땅에서 맞이해 조나라로 돌아가게 하니,

이에 조왕은 '진여'를 대왕으로 여겼다. 이때 한왕 '유방'은 "관중"에서 회군해 삼진을 평정했다. 

'항우'는 한왕이 이미 관중을 모두 겸병하고 동쪽으로 진격하려고 하며, 제나라와 조나라가 그를 배반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노했다.  이에 옛 오령 '정창'을 한왕으로 삼아 한나라 군대를 견제하게 하였다.
'소공각' 등으로 하여금 '팽월'을 공격하게 했다.  그러나 '팽월'은 '소공각' 등을 패퇴시켰다.] 

漢使張良徇韓, 乃遺項王書曰:“ 漢王失職, 欲得關中, 如約即止, 不敢東. ”
又以齊· 梁反書遺項王曰:“ 齊欲與趙并滅楚. ”  楚以此故無西意, 而北擊齊.  徵兵九江王布. 

布稱疾不往, 使將將數千人行.  項王由此怨布也.
(한사장량순한, 내유항왕서왈 : " 한왕실직, 욕득관중, 여약즉지, 불감동. "

우이제· 량반서유항왕왈 : " 제욕여조병멸초. "  초이차고무서의, 이북격제.  징병구강왕포.   

포칭질불왕, 사장장수천인행.  항왕유차원포야. ) 


[한왕은 '장량'으로 하여금 한(韓)나라를 순시하게 하고, 항왕에게 서신을 보내 이르기를 : “ 한왕은 직위를 잃었으니

약조대로 "관중"을 얻을 수 있다면 즉시 멈추어 동쪽으로 진격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또 한왕 '유방'은 제나라와 조나라의 반란을 알리는 서신을 항왕에게 보내어 말하기를 :  

“ 제나라가 조나라와 더불어 초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라고 했다. 
이때문에 초나라는 서쪽을 치려던 생각을 없애고 북으로 제나라를 공격했다.  항왕은 구강왕 '경포'에게서 군사의

징발을 명하였으나, '경포'는 병을 핑계로 나가지 않고 부하 장수로 하여금 수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행동하게 했다.

이 일로 인해서 항왕은 '경포'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

 

漢之二年冬, 項羽遂北至城陽, 田榮亦將兵會戰.  田榮不勝, 走至平原, 平原民殺之. 

遂北燒夷齊城郭室屋, 皆阬田榮降卒, 系虜其老弱婦女.  徇齊至北海, 多所殘滅.

齊人相聚而叛之. 於是田榮弟田橫收齊亡卒得數萬人, 反城陽. 項王因留, 連戰未能下.
(한지이년동, 항우수북지성양, 전영역장병회전.  전영불승, 주지평원, 평원민살지.   

수북소이제성곽실옥, 개갱전영항지, 개로기노약부녀.  순제지북해, 다소잔멸.   

제인상취이반지.  어시전영제전횡수제망졸득수만인, 반성양.   항왕인유, 연전미능하. )


[한 2년 겨울, '항우'가 마침내 북으로 "성양"에 이르자, '전영' 역시 제나라 군대를 이끌고 나와 큰 전투를 벌였다. 

'전영'이 이기지 못하고 "평원"으로 달아나자,  "평원"의 백성들이 그를 죽여 버렸다.   

항우는 마침내 북진해 제나라 성곽과 집들을 불살라 없애버리고, 

항복한 '전영'의 군졸들은 구덩이를 파서 생매장하였으며, 노약자와 부녀자들은 밧줄로 묶어서 포로로 삼았다. 

'항우'는 계속 북진하여 제나라의 "북해"에 이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많은 고을을 파괴하였다. 
이에 초군의 만행에 분개한 제나라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였다.   

이때 '전영'의 동생 '전횡'이 제나라의 살아 남은 병졸 수만 명을 거두어서 "성양"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항왕이 남아서 여러 차례 싸움을 벌였으나 함락시킬 수가 없었다. ] 

 

春, 漢王部五諸侯兵, 凡五十六萬人, 東伐楚. 

項王聞之, 即令諸將擊齊, 而自以精兵三萬人南從魯出胡陵.
(춘, 한왕부오제후병, 범오십육만인, 동벌초. 

항왕문지, 즉령제장격제, 이자이정병삼만인남종노출호릉.)


[봄에 한왕이 다섯 제후들의 군사 56만 명을 모두 이끌고 동쪽으로 초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공격하였다.  
항왕이 이 소식을 듣고서 즉시 여러 장수들로 하여금 제나라를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정예군 3만을  이끌고 남쪽으로 내려와 "노현"을 지나 "호릉"으로 나왔다.

四月, 漢皆已入彭城, 收其貨寶美人, 日置酒高會.  項王乃西從蕭, 晨擊漢軍而東, 至彭城, 日中, 大破漢軍. 

漢軍皆走, 相隨入谷· 泗水, 殺漢卒十餘萬人. 漢卒皆南走山, 楚又追擊至靈壁東睢水上. 
(사월, 한개이입팽성, 수기화보미인, 일치주고회.  항왕내서종소, 신격한군이동, 지팽성, 일중,  대파한군. 

한군개주, 상수입곡· 사수, 살한졸십여만인.  한졸개남주산, 초우추격지령벽동수수상. )


[4월, 한왕이 이미 "팽성"에 들어가서 그 재화와 보물 그리고 미녀들을 차지하고 날마다 성대히 연회를 베풀었다.  

이때 항왕은 새벽에 서쪽의 "소현"에서부터  한군을 공격하여 동쪽으로 진격해 "팽성"에 이르더니,

정오 무렵 한군을 대파시켰다.  한군은 모두 도망치다가 "곡수"와 "사수"로 들어갔으며, 

'항우'는 여기서 한나라 병사 10만여 명을 죽였다. 

한나라 병사들이 모두 남쪽의 산으로 도망치자, 초군은 또 추격해 "영벽"의 동쪽 "수수"에까지 이르렀다. 

漢軍卻, 為楚所擠, 多殺, 漢卒十餘萬人皆入睢水, 睢水為之不流.  圍漢王三匝. 
於是大風從西北而起, 折木發屋, 揚沙石, 窈冥晝晦, 逢迎楚軍.  楚軍大亂, 壞散,

而漢王乃得與數十騎遁去, 欲過沛, 收家室而西;楚亦使人追之沛, 取漢王家:

家皆亡, 不與漢王相見. 漢王道逢得孝惠· 魯元, 乃載行.
(한군각, 위초소제, 다살, 한졸십여만인개입수수, 수수위지불류.  위한왕삼잡.

어시대풍종서북이기, 절목발옥, 양사석, 요명주회, 봉영초군.  초군대란, 괴산,  

이한왕내득여수십기둔거, 욕과패, 수가실이서 ; 초역사인추지패, 취한왕가 :  

가개망, 불여한왕상견. 한왕도봉득효혜· 노원, 내재행.)

[한군이 퇴각해 초군에 밀리게 되자, 많은 병사들이 죽임을 당했는데, 한나라 병졸 10만이 모두 "수수"에 뛰어들어

"수수"가 이로 인해서 흐르지 않을 정도였다. 이윽고 초군은 한왕의 군대를 겹겹이 포위하였다. 

이때 큰 바람이 서북쪽에서부터 일어나 나무를 부러뜨리고 집을 무너뜨리며, 모래와 돌을 날리니,  

사방이 칠흑처럼 어두워지며, 바람이 초군을 향해서 불어 닥치기 시작했다.   

초군은 큰 혼란에 빠져 전열이 무너지자, 한왕은 이에 수십 명의 기병과 함께 도망칠 수 있었다.   

그리고는 "패현"을 거쳐서 가족들을 데리고 서쪽으로 가고자 했으며 ; 초군도 사람을 보내어 패현까지 추격해

한왕의 가족들을 잡도록 했다.  한왕의 가족들은 모두 도망해 한왕과 만날 수가 없었다.   

한왕은 도중에 '효혜'와 '노원'을 만나 이들을 수레에 태우고 길을 재촉했다. ]

 

楚騎追漢王, 漢王急, 推墮孝惠· 魯元車下, 滕公常下收載之.  如是者三. 

曰:“ 雖急不可以驅, 柰何棄之? ”  於是遂得脫.  求太公· 呂后不相遇.

審食其從太公· 呂后閒行, 求漢王, 反遇楚軍. 楚軍遂與歸, 報項王, 項王常置軍中.
(초기추한왕, 한왕급, 추타효혜· 노원거하, 등공상하수재지.  여시자삼.   

왈 : " 수급불가이구, 내하기지 ? "  어시수득탈.  구태공· 여후불상우.   

심이기종태공· 여후한행, 구한왕, 반우초군. 초군수여귀, 보항왕, 항왕상치군중. )


[초군의 기병이 한왕을 쫓아오자, 한왕은 다급한 나머지 '효혜'와 '노원'을 수레 아래로 밀쳐 떨어뜨렸으나,

등공 '하우영'이 매번 내려가서 수레에 태웠다.  이렇게 하기가 세 차례나 되었다.   

'하우영'이 한왕에게 말하기를 : " 비록 사태가 다급하다고 하지만 말을 빨리 몰수가 없는데,  

어찌하여 두 아이를 버리려고 하십니까 ? ”라고 하였다. 마침내 기병들의 추적을 벗어날 수가 있었다.  

그러나 '태공'과 '여후'를 찾았으나 서로 만나지 못하였다.  '태공'과 '여후'를 호위했던 '심이기'는  

'태공'과 '여후'를 따라서 샛길로 가며 한왕을 찾다가 도리어 초군에게 포로가 되었고,  

초군은 마침내 그들을 데리고 돌아와서 항왕에게 보고하니 항왕은 그들을 늘 군영에 두었다. ] 

 

是時呂后兄周呂侯為漢將兵居下邑, 漢王閒往從之, 稍稍收其士. 

至滎陽, 諸敗軍皆會, 蕭何亦發關中老弱未傅悉詣滎陽, 復大振. 

楚起於彭城, 常乘勝逐北, 與漢戰滎陽南京· 索閒, 漢敗楚, 楚以故不能過滎陽而西.
(시시여후형주여후위한장병거하읍, 한왕간왕종지, 초초수기사.   

지형양, 제패군개회, 소하역발관중노약미부실예형양, 복대진.   

초기어팽성, 상승승축배, 여한전형양남경· 색간, 한패초, 초이고불능과형양이서. )


[이때 '여후'의 오빠 주여후 '여택'이 한나라를 위해 군사를 이끌고 "하읍"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한왕은 샛길을 통해서 그에게 몸을 의탁하고는 조금씩 한나라의 병사들을 모았다.   

마침내 한왕이 "형양"에 이르자 모든 패잔군들이 다 모여 들었으며, 

'소하'도 징집 장부에도 없는 "관중"의 노약자를 모두 징발해 "형양"에 이르니 한군의 위세는 다시 크게 떨치게 되었다.

초군이 "팽성"에서 기병하여 계속 승세를 몰아 달아나는 한군을 추격해, "형양" 남쪽의 "경읍"과 "색읍" 사이에서

한군과 접전을 벌였는데, 한군이 초군을 패퇴시키자, 초군은 더 이상 "형양"을 지나 서쪽으로 진격할 수 없게 되었다.]

 

項王之救彭城, 追漢王至滎陽, 田橫亦得收齊, 立田榮子廣為齊王. 

漢王之敗彭城, 諸侯皆復與楚而背漢.  漢軍滎陽, 筑甬道屬之河, 以取敖倉粟.

漢之三年, 項王數侵奪漢甬道, 漢王食乏, 恐, 請和, 割滎陽以西為漢.
(항왕지구팽성, 추한왕지형양, 전횡역득수제, 입전영자광위제왕. 

한왕지패팽성, 제후개복여초이배한.  한군형양, 축용도속지하, 이패오창속.

한지삼년, 항왕수침탈한용도, 한왕식핍, 공, 청화, 할형양이서위한. )


[항왕이 "팽성"을 구원하고, 한왕을 추격해 "형양"에 이르니, '전횡'도 이때를 이용해 제나라를 수습하고는,

'전영'의 아들 '전광'을 제왕으로 세웠다. 그런데 한왕이 "팽성"에서 패하는 모습을 본 제후들은 모두 다시  

초나라에 귀순하며 한나라를 배반했다.  한군은 "형양"에 주둔하면서 황하로 통하는 용도를 건설하여  

"오창"으로부터 식량을 실어 날랐다.  한 3년, 항왕이 여러 차례 한군의 용도를 침범해 식량을 탈취하자,

군량이 부족해진 한왕은 두려워서 강화를 요청하고 "형양" 서쪽 땅을 한나라에 떼어 주었다. ] 

 

項王欲聽之.  歷陽侯范增曰:“ 漢易與耳, 今釋弗取, 後必悔之. ”  項王乃與范增急圍滎陽. 

漢王患之, 乃用陳平計閒項王.  項王使者來, 為太牢具, 舉欲進之.

見使者, 詳驚愕曰:“ 吾以為亞父使者, 乃反項王使者. ” 更持去, 以惡食食項王使者.
(항왕욕청지.  역양후범증왈 : " 한이여이, 금석불취, 후필회지. "  항왕내여범증급위형양. 

한왕한지, 내용진평계간항왕.  항왕사자졸, 위태뢰구, 거욕진지.

견사자, 상경악왈 : " 오이위아부사자, 내반항왕사자. " 경지거, 이악식식항왕사자.)


[항왕이 한왕의 요청을 허락하려고 하자, 역양후 '범증'이 말하기를 : “ 지금이 한군을 해치우기가 쉬울 때입니다.

그런데 지금 놓아주고 취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항왕은 이에 '범증'의 말대로 강화를 포기하고 "형양"의 포위망을 압박하였다.
한왕은 이를 우려한 나머지 '범증'과 '항왕'을 이간질시키는 '진평'의 계책을 사용했다.  

항왕의 사신이 한왕의 진영에 당도하자, 태뢰의 예로 성대하게 준비한 음식상을 내놓으려고 하였으나,
항왕의 사신이 연회석에 들어서자, 거짓으로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하기를 : “나는 '아부'의 사신인 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항왕의 사신이었구나! ”라고 하고는, 성대하게 준비한 음식상을 다시 가지고 들어가게 하고,

간단하게 차린 음식상을 가져 와서 항왕의 사신을 대접했다.] 

 

使者歸報項王, 項王乃疑范增與漢有私, 稍奪之權.  范增大怒, 曰:“ 天下事大定矣, 君王自為之.  願賜骸鼻歸卒伍. ” 

項王許之.  行未至彭城, 疽發背而死.
(사자귀보항왕, 항왕내의범증여한유사, 초탈지권.  범증대노, 왈 : " 천하사대정의, 군왕자위지.  원사해비귀졸오. " 

항왕허지.  행미지팽성, 저발배이사.)

 

[사신이 돌아와서 항왕에게 보고하자, 항왕은 이로부터 '범증'과 한왕이 비밀리에 내통하고 있는 것으로 의심해

조금씩 그의 권력을 빼앗기 시작했다.  그러자 '범증'이 크게 노하여 '항우'에게 말하기를 :

“ 천하의 일이 대체로 정해졌으니, 이젠 군왕 스스로 하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컨대 이 늙은 몸을 자유롭게 해 주시어 고향 땅에 돌아가 평민으로 살게 해주십시오. ”라고 하자. 

왕이 이를 허락했다.  그러나 '범증'은 미처 "팽성"에 이르기도 전에 등에 악창이 나서 죽었다. ] 


漢將紀信說漢王曰:“ 事已急矣, 請為王誑楚為王, 王可以閒出. ” 

於是漢王夜出女子滎陽東門被甲二千人, 楚兵四面擊之.

紀信乘黃屋車, 傅左纛, 曰:“ 城中食盡, 漢王降. ”  楚軍皆呼萬歲.  漢王亦與數十騎從城西門出, 走成皋. 

項王見紀信, 問:“ 漢王安在? ” 曰:“ 漢王已出矣. ” 項王燒殺紀信.
(한장기신설한왕왈 : " 사이급의, 청위왕광초위왕, 왕가이간출. " 

어시한왕야출여자형양동문피갑이천인, 초병사면격지.

기신승황옥거, 부좌독, 왈 : " 성중식진, 한왕항. "  초군개호만세.  한왕역여수십기종성서문출,  주성고.  

항왕견기신, 문 : " 한왕안재 ? " 왈 : " 한왕이출의. " 항왕소살기신. )

[한나라 장수 '기신'이 한왕에게 말하기를 : “사태가 이미 위급해졌으니 청컨대 제가 대신 대왕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초왕을 속이고자 합니다. 그 틈을 타서 대왕께서는 초군의 포위망을 뚫고 성을 빠져 나가십시오. ”라고 했다. 

이에 한왕은 밤중에 "형양성"의 동문으로 갑옷을 입은 여자 2천 명을 내보내자, 초군이 사방에서 공격해왔다.

'기신'은 왕의 상징인 수레 왼쪽에 꿩의 꽁지로 장식한 의장기를 단 황옥거에 올라 말하기를 : 

“ 성 안에 양식이 떨어져서 한왕이 항복코자 하노라.”라고 하자,  초군이 모두 만세를 불렀다.   

한편 한왕은 수십 명의 기병과 함께 성의 서쪽 문을 빠져 나와 "성고"로 달아났다.  

항왕이 '기신'을 보고 묻기를 : “ 한왕은 어디에 있느냐 ? ”라고 하자,   

기신이 말하기를 : “ 한왕은 이미 떠나셨소. ”라고 하였다.  그러자 항왕은 '기신'을 불에 태워 죽였다. ] 

 

漢王使御史大夫周苛· 樅公· 魏豹守滎陽.  周苛· 樅公謀曰:“ 反國之王, 難與守城. ”  乃共殺魏豹.  楚下滎陽城, 生得周苛.  項王謂周苛曰:“ 為我將, 我以公為上將軍, 封三萬戶. ” 

周苛罵曰:“ 若不趣降漢, 漢今虜若, 若非漢敵也. ” 項王怒, 烹周苛, 井殺樅公.

漢王之出滎陽, 南走宛· 葉, 得九江王布, 行收兵, 復入保成皋.
(한왕사어사대부주가· 종공· 위표수형양.  주가· 종공모왈 : " 반국지왕, 난여수성. "  내공살위표.   

초하형양성, 생득주가.  항왕위주가왈 : " 위아장, 아이공위상장군, 봉삼만호. "  

주가매왈 : " 약불취항한, 한금로약, 약비한적야. " 항왕노, 팽주가, 정살종공.

한왕지출형양, 남주완· 섭, 득구강왕포, 행수병, 부입보성고. )


[한왕이 어사대부 '주가', '종공', '위표'로 하여금 "형양"을 지키게 하였다. 

그런데 '주가'와 '종공'이 모의하여 말하기를 : “나라를 배신한 적이 있는 자와는 함께 성을 지키기 어렵다. ”하며,

이에 두 사람은 '위표'를 죽여 버렸다.  초군은 "형양성"을 함락시킨 뒤 '주가'를 생포하였다.  

항왕이 '주가'에게 말하기를 : “ 나의 장수가 되어 주면 공을 상장군으로 삼고 3만 호의 제후에 봉하리라. ”라고 하니,

'주가'가 욕하며 말하기를 : “ 그대가 빨리 한나라에 항복하지 않으면, 이제 그대는 한군의 포로가 될 것이다.

그대는 한왕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라고 하자, 항왕이 노하여 '주가'를 팽살하고 아울러 '종공'도 죽였다.

한왕은 "형양성"을 나와 남쪽으로 달려 "완"과 "섭"에 가서 구강왕 '경포'를 설득하여 함께 병사를 모집해 "성고"로

다시 들어가서 수비하였다.]

 

漢之四年, 項王進兵圍成皋.  漢王逃, 獨與滕公出成皋北門, 渡河走修武, 從張耳· 韓信軍. 

諸將稍稍得出成皋, 從漢王.  楚遂拔成皋, 欲西.

漢使兵距之鞏, 令其不得西.  是時, 彭越渡河擊楚東阿, 殺楚將軍薛公.  項王乃自東擊彭越. 

漢王得淮陰侯兵, 欲渡河南.  鄭忠說漢王, 乃止壁河內.  使劉賈將兵佐彭越, 燒楚積聚.
(한지사년, 항왕진병위성고.  한왕도, 독여등공출성고북문, 도하주수무, 종장이· 한신군.   

제장초초득출성고, 종한왕.  초수발성고, 욕서.

한사병거지공, 영기부득서.  시시, 팽월도하격초동하, 살초장군설공.  항왕내자동격팽월. 

한왕득회음후병, 욕도하남.  정충설한왕, 내지벽하내.  사유가장병좌팽월, 소초적취.)

[한 4년, '항우'는 군사를 이끌고 진격하여 "성고"를 포위하였다.  한왕은 등공 '하후영'만 데리고 "성고"의 북문으로

탈출하여 황하를 건너 "수무"로 달아나 '장이'와 '한신'의 군대에 몸을 의탁했다.   

그러자 여러 장수들도 조금씩 "성고"를 빠져 나와서 한왕을 따랐다.

초군은 마침내 "성고"를 함락시키고 서쪽으로 진군하려고 했다. 한왕은 군사를 "공성"으로 보내 초군이 서쪽으로

오지 못하게 하였다.  이때에 '팽월'은 황하를 건너서 초나라의 "동아"에서 초군을 공격해 초의 장군 '설공'을 죽였다.

항왕은 즉시 직접 동쪽으로 진격해 '팽월'을 공격하였다. "무수"로 간 한왕은 '한신'의 군대를 얻어 황하를 건너

남쪽으로 진격하려고 하였다. '정충'이 한왕을 설득하여 한왕의 진격을 멈추게 하고 "하내"에 방벽을 쌓게 하였다.

또 '유가'로 하여금 군사를 거느리고 '팽월'을 도와서 초군의 진영에 쌓아 놓은 군량을 불태우도록 했다.] 

項王東擊破之, 走彭越.  漢王則引兵渡河, 復取成皋, 軍廣武, 就敖倉食. 

項王已定東海來, 西, 與漢俱臨廣武而軍, 相守數月.  當此時, 彭越數反梁地, 絕楚糧食, 項王患之.
(항왕동격파지, 주팽월.  한왕즉인병도하, 부취성고, 군광무, 취오창식.

항왕이정동해래, 서, 여한구임광무이군, 상수수월.  당차시, 팽월수반양지, 절초양식, 항왕환지. )

 
[그러자 항왕이 동쪽으로 공격해 그들을 무찌르자, '팽월'은 달아났다. 이 틈에 한왕은 군대를 이끌고 황하를 건너서

다시 "성고"를 탈취하고, "광무"에 주둔하면서 "오창"의 양식을 확보하였다. 

항왕은 동해를 평정하고 난 뒤, 서쪽으로 돌아와서 "광무"에 진을 치고는 한군과 수 개월 간을 대치하였다.

이때 '팽월'은 "양" 땅에서 여러차례 반란을 일으켜, 초군의 군량 수송을 끊어버리자, 항왕은 이를 매우 걱정하였다.]

 

為高俎, 置太公其上, 告漢王曰:“ 今不急下, 吾烹太公. ”

漢王曰:“ 吾與項羽俱北面受命懷王, 曰‘約為兄弟’, 吾翁即若翁, 必欲烹而翁, 則幸分我一桮羹. ” 項王怒, 欲殺之.

項伯曰:“ 天下事未可知, 且為天下者不顧家, 雖殺之無益, 只益禍耳. ” 項王從之.
(위고조, 치태공기상, 고한왕왈 : " 금불급하, 오팽태공. "

한왕왈 : " 오여항우구북면수명회왕, 왕'약위형제', 오옹즉약옹, 필욕팽이옹, 즉행분아일배갱. "  

항왕노, 욕살지.  항백왈 : " 천하사미가지, 차위천하자불고가, 수살지무익, 지익화이. "  항왕종지. )


[이에 '항우'는 큰 도마를 만들어 한왕의 부친 '태공'을 그 위에 올려 놓고 한왕에게 통고하기를 : 

“ 지금 당장 항복하지 않으면 내가 태공을 삶아 죽이겠다.”라고 했다.

그러자 한왕이 말하기를 : " 나와 '항우' 너는 예전에 북면해 회왕의 명을 받고 '형제가 되기로 약속한다. '라고 했으니,

나의 아버지가 곧 너의 아버지이거늘, 너의 아비를 반드시 삶고야 말겠다면 내게도 그 삶은 국 한 그릇을 나누어

주기 바란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항왕이 노하여 '태공'을 죽이려고 하였다.

이때 숙부인 '항백'이 말하기를 : “ 천하의 일이란 아직 알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천하를 도모하는 자는 자신의 집을

돌보지 않는 법이니, 비록 그를 죽인다고 한들 유익함이 없고, 그저 화만 더하게 될 뿐이다. ”라고 하자. 

항왕은 '항백'의 말에 따라 '태공'을 풀어 주었다. ]

楚漢久相持未決, 丁壯苦軍旅, 老弱罷轉漕.  項王謂漢王曰:“ 天下匈匈數歲者, 徒以吾兩人耳,

願與漢王挑戰決雌雄, 毋徒苦天下之民父子為也. ”
(초한구상지미결, 정장고군려, 노약파전조.  항왕위한왕왈 : " 천하흉흉수세자, 도이오병인이, 

원여한왕도전결자웅, 무도고천하지민부자위야. ")


[초군과 한군이 오랫동안 서로 대치하며 결판을 내지 못하자,

장정들은 군역에 시달리고, 노약자들은 배로 물건을 실어 나르는데 지치게 되었다.
항왕이 한왕에게 말하기를 : “ 천하가 여러 해 동안 흉흉스러웠던 것은 오로지 우리 두 사람 때문이다.  

원컨대 한왕과 내가 싸워 자웅을 가린다면, 천하의 백성들과 그 자식들이 고생할 필요가 없지 않겠는가 ? "라고 하자.

漢王笑謝曰:“ 吾寧鬬智, 不能鬬力. ”  項王令壯士出挑戰.  漢有善騎射者樓煩, 楚挑戰三合, 樓煩輒射殺之. 

項王大怒, 乃自被甲持戟挑戰. 樓煩欲射之, 項王瞋目叱之, 樓煩目不敢視, 手不敢發, 遂走還入壁, 不敢復出.  

漢王使人閒問之, 乃項王也.
(한왕소사왈 : " 오녕투지, 불능투력. "  항왕령장사출도전.  한유선기사자누번, 초도전삼합, 누번첩사살지. 

항왕대노, 내자피갑지극도전. 누번욕사지, 항왕진목질지, 누번목불감시, 수불감발, 수주환입벽, 불감부출.

한왕사인간문지, 내항왕야.)


[한왕이 웃으면서 거절하며 말하기를 : “나는 차라리 지혜로 싸울 수는 있지만, 힘으로 싸울 수는 없다. ”라고 하였다.

항왕은 군중에서 뽑은 장사로 하여금 나가서 싸움을 걸도록 했다. 한군에 말을 타고 활을 잘 쏘는 '누번'이 있었는데,

초나라 장사가 세 번이나 싸움을 걸어 오자, '누번'이 재빨리 활을 쏘아서 그를 죽였다. 

항왕이 크게 노하여 직접 갑옷을 입고 창을 집어 들고는 싸움을 걸었다. '누번'이 항왕에게 활을 쏘려고 하자, 

항왕이 눈을 부릅뜨고 꾸짖으니, '누번'은 감히 항왕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손으로 활시위를 당겨 보지도 못한체

결국 진지 속으로 도망쳐 들어가 감히 다시 나오지 못했다.

한왕은 사람을 시켜 그 장사가 누구인지 몰래 알아 보라고 하였으며, 그가 바로 항왕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

漢王大驚.  於是項王乃即漢王相與臨廣武閒而語.  漢王數之, 項王怒, 欲一戰. 

漢王不聽, 項王伏弩射中漢王.  漢王傷, 走入成皋.
(한왕대경.  어시항왕내즉한왕상여임광무간이어.  한왕수지, 항왕노, 욕일전.  

한왕불청, 항왕복노사중한왕.  한왕상, 주입성고.)


[한왕은 크게 놀랐다. 이에 항왕은 한왕의 진영에서 가까운 "광무"로 가서 서로 마주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한왕이 그의 죄목을 나열하자 항왕은 노하여 일전을 벌이고자 했으나 한왕이 응하지 않자,  

항왕은 몰래 숨겨 가지고 갔던 쇠뇌를 한왕에게 쏘았다. 한왕은 부상을 입고 달아나 "성고"로 들어갔다. ]

 

項王聞淮陰侯已舉河北, 破齊· 趙, 且欲擊楚, 乃使龍且往擊之.  淮陰侯與戰, 騎將灌嬰擊之, 大破楚軍, 殺龍且. 

韓信因自立為齊王. 項王聞龍且軍破, 則恐, 使盱臺人武涉往說淮陰侯.

淮陰侯弗聽. 是時, 彭越復反, 下梁地, 絕楚糧. 
(항왕문회음후이거하북, 파제· 조, 차욕격초, 내사용저왕격지.  회음후여전, 기장관영격지, 대파초군, 살용저. 

한신인자립위제왕. 항왕문용저군파, 즉공, 사우대인무섭왕설회음후.  

회음후불청. 시시, 팽월부반, 하양지, 절초량.)


[항왕은 회음후 '한신'이 "하북"을 점령한 후 제나라와 조나라를 무찌르고, 또 초나라를 공격하려고 한다는

소식을 듣고 '용저'를 보내 그를 공격하게 하였다. 회음후 '한신'이 '용저'와 접전을 벌이고 있을때, 

한군의 기병 장수 '관영'이 '용저'의 초군을 공격하여 대파시키고 '용저'를 죽였다.

'한신'은 이에 스스로 제왕이 되었다.  항왕은 '용저'의 군대가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워, 

"우대" 사람 '무섭'을 회음후에게 보내 설득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듣지 않았다.  

이때 '팽월'이 다시 반란을 일으켜 "양" 땅을 점령하고 초군의 군량을 나르는 도로를 끊어버렸다. ]

項王乃謂海春侯大司馬曹咎等曰:“ 謹守成皋, 則漢欲挑戰, 慎勿與戰, 毋令得東而已. 

我十五日必誅彭越, 定梁地, 復從將軍. ” 乃東, 行擊陳留· 外黃.

外黃不下, 數日, 已降, 項王怒, 悉令男子年十五已上詣城東, 欲阬之.  
(항왕내위해춘후대사마조구등왈 : " 근수성고, 즉한욕도전, 신물여전, 무령득동이이. 

아십오일필주팽월, 정양지, 부종장군. "  내동, 행격진유· 외황.

외황불하. 수일, 이항, 항왕노, 실령남자년십오이상예성동, 욕갱지. )


[항왕은 이에 해춘후 대사마 '조구'에게 당부하기를 : “ "성고"를 신중하게 지키기만 하시오.  

아무리 한군이 싸움을 걸어와도 절대로 싸우지 말고, 한군이 동쪽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기만 하시오.  

나는 15일이면 반드시 '팽월'을 주살하고 "양" 땅을 평정한 뒤 다시 장군과 합류하겠소.”라고 하고,
'항우'는 즉시 동쪽으로 나아가, "진류"와 "외황"을 공격하였다.  그러나 "외황"은 쉽게 함락되지 않다가, 

며칠이 지난 뒤에야 항복을 하자, 이에 항왕은 노하여 15세 이상의 남자들을 성의 동쪽으로 끌고 오도록 하여,

그들 모두를 생매장시키려고 하였다.]

外黃令舍人兒年十三, 往說項王曰:“ 彭越彊劫外黃, 外黃恐, 故且降, 待大王. 

大王至, 又皆阬之, 百姓豈有歸心? 從此以東, 梁地十餘城皆恐, 莫肯下矣. "

項王然其言, 乃赦外黃當阬者. 東至睢陽, 聞之皆爭下項王.
(외황령사인아년십삼, 왕설항왕왈 : " 팽성강겁외황, 외황공, 고차항, 대대왕.

대왕지, 우개갱지, 백성기유귀심 ? 종차이동, 양지십여성개공, 막긍불의. "  

항왕연기언, 내사외황당갱자. 동지수양, 문지개쟁하항왕. )


["외황" 현령의 문객중 한 사람에게 13세 된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이가  항왕을 뵙고 이르기를 :
“ '팽월'이 강압적으로 "외황"을 위협하니 "외황"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다가 우선 거짓으로 항복하고는 대왕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대왕께서 도착하셔서 또 모두 생매장시키려고 하시니 백성들이 어찌 의탁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겠습니까 ?  여기서부터 "외항"의 동쪽으로 "양" 지역의 10여개 성이 모두 두려워서 결코 항복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자, 항왕은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하여 "외황" 사람들을 생매장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사면해 주었다.  그러자 동쪽으로 "수양"에 이르기까지 그 소식을 들은 "양" 지역의 10여개 성들은 모두 다투어

항왕에게 투항하였다. ]

漢果數挑楚軍戰, 楚軍不出.  使人辱之, 五六日, 大司馬怒, 渡兵汜水.  士卒半渡, 漢擊之, 大破楚軍, 盡得楚國貨賂. 

大司馬咎, 長史翳, 塞王欣皆自剄汜水上.

大司馬咎者, 故蘄獄掾, 長史欣亦故櫟陽獄吏, 兩人嘗有德於項梁, 是以項王信任之.
(한과수도초군전, 초군불출.  사인욕지, 오륙일, 대사마노, 도병사수.  사졸반도, 한격지, 대파초군, 진득초국화뢰. 

대사마구, 장사예, 새왕흔개자경사수상.

대사마구자, 고기옥연, 장사흔역고역양옥리, 양인상유덕어항량, 어시항왕신임지.)


[한군이 과연 여러 차례 싸움을 걸어와도 초군은 나오지 않았다. 한군에서 사람을 시켜서 5-6일 동안 

초군을 욕하게 하자, 대사마 '조구'는 격분하여 병사들을 이끌고 "사수"를 건넜다.  

초군이 반쯤 건넜을때 한군이 공격해 초군을 대파시키고 초나라의 진귀한 재물을 모두 차지하였다.

대사마 '조구'와 장사 '동예', 새왕 '사마흔'은 모두 "사수"에서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대사마 '조구'는 원래 "기현"에서 옥연을 지낸 자였고, 장사 '사마흔' 또한 본래 "역양"의 옥리였는데, 

두 사람은 일찍이 '항량'에게 은덕을 베푼 적이 있어, 이 때문에 항왕의 신임이 두터웠다.]

當是時, 項王在睢陽, 聞海春侯軍敗, 則引兵還.  漢軍方圍鐘離眛於滎陽東, 項王至, 漢軍畏楚, 盡走險阻. 

是時, 漢兵盛食多, 項王兵罷食絕. 漢遣陸賈說項王, 請太公, 項王弗聽.
(당시시, 항왕재수양, 문해춘후군패, 즉인병환.  한군방위종리매어형양동, 항왕지, 한군외초,  진주험조. 

시시, 한병성식다, 항왕병파식절. 한견육가설항왕, 청태공, 항왕불청. )

 

[이때 "수양"에 있던 항왕은, 해춘후 '조구'가 한군에게 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군대를 이끌고 

초군의 진영으로 돌아왔다. 이때 한군은 "종리매"를 "형양"의 동쪽에서 포위하고 있었는데, 

항왕이 도착하자 한군은 초군을 두려워해 모두 지세가 높고 가파른 산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이때 한군은 식량이 풍부했고 항왕의 군사들은 지치고 군량마저 끊긴 상태였다. 
한왕은 '육가'를 항왕에게 보내 '태공'을 자기에게 보내 달라고 요청했으나 항왕은 듣지 않았다.

漢王復使侯公往說項王, 項王乃與漢約, 中分天下, 割鴻溝以西者為漢, 鴻溝而東者為楚. 

項王許之, 即歸漢王父母妻子.  軍皆呼萬歲.  漢王乃封侯公為平國君. 匿弗肯復見.

曰:“ 此天下辯士, 所居傾國, 故號為平國君. ” 項王已約, 乃引兵解而東歸.
(한왕부사후공왕설항왕, 항왕내여한약, 중분천하, 할홍구이서자위한, 홍구이동자위초. 

항왕허지, 즉귀한왕부모처자.  군개호만세.  한왕내봉후공위평국군. 익불긍복견.

왈 : " 차천하변사, 소거경국, 고호위평국군. " 항왕이약, 내병인해이동귀. )


[한왕이 다시 '후공'을 보내 항왕을 설득하자, 항왕은 비로소 한왕과 협약을 맺고,

이에 천하를 둘로 나누어 "홍구" 서쪽을 한나라의 영토로 하고, "홍구" 동쪽을 초나라의 영토로 하기로 하였다.  

항왕은 이를 허락하고 즉시 한왕의 부모처자를 돌려보내니, 한나라 군사들이 모두 만세를 외쳤다. 

한왕은 이에 '후공'을 평국군에 봉하였다.  그리고 그를 은둔해 살게하고 다시는 만나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하기를 : “ 그는 천하의 변사로서, 그가 거처하는 나라는 모두 망하게 될 것이므로,

그래서 내가 그를 평국군이라고 하였다. ”라고 하였다. 

한왕과 협약을 마친 항왕은 군대를 철수시켜서 동쪽의 "팽성"으로 돌아갔다. ]

漢欲西歸, 張良· 陳平說曰:“ 漢有天下太半, 而諸侯皆附之.  楚兵罷食盡, 此天亡楚之時也, 不如因其機而遂取之. 

今釋弗擊, 此所謂‘養虎自遺患’也. ” 漢王聽之.
(한욕서귀, 장량· 진평설왈 : " 한유천하태반, 이제후개부지.  초병파식진, 차천망초지시야, 불여인기기이수취지. 

금석불격, 차소위'양호자유환'야. "  한왕청지. )


[한왕이 서쪽 "장안"으로 돌아가려고 하자, '장량'과 '진평'이 말하기를: “ 한나라가 천하의 절반을 차지했고

제후들도 모두 우리에게 의탁했습니다. 그런데 초나라 군사들은 지치고 군량도 떨어졌으니, 

이는 하늘이 초나라를 망하게 하려는 때입니다. 그러니 이 기회를 틈타 탈취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지금 만일 놓아주고 공격하지 않는다면 이는 이른바 '호랑이를 길러 스스로 화를 남겨두는 것입니다'." 라고 하자. 

이에 한왕은 '장량'의 말을 따랐다. ]

漢五年, 漢王乃追項王至陽夏南, 止軍, 與淮陰侯韓信, 建成侯彭越期會而擊楚軍.  

至固陵, 而信至固陵, 而信· 越之兵不會.  楚擊漢軍, 大破之.  漢王復入壁, 深塹而自守.
(한오년, 한왕내추항왕지양하남, 지군, 여회음후한신, 건성후팽월기회이격초군.  

지고릉, 이신지고릉, 이신· 월지병불회.  초격한군, 대파지.  한왕부입벽, 심참이자수.)


[한 5년, 한왕은 마침내 항왕을 추격하여 "양하" 남쪽에 이르자, 

그곳에 진지를 구축하고 회음후 '한신', 건성후 '팽월'과 회합해 초군을 공격하기로 약조했다. 

그런데 한군이 "고릉"에 이르러도 '한신'과 '팽월'의 군대가 오지 않았다.

그 사이 초군은 한군을 공격해 크게 격파하였다. 한왕은 다시 진지로 들어가서 참호를 깊게 파고 수비만 했다.] 

謂張子房曰:“ 諸侯不從約, 為之柰何?”  對曰:“ 楚兵且破, 信· 越未有分地, 其不至固宜. 

君王能與共分天下, 今可立致也.  即不能, 事未可知也. 君王能自陳以東傅海, 盡與韓信;

睢陽以北至谷城, 以與彭越:使各自為戰, 則楚易敗也. ”
(위장자방왈 : " 제후부종약, 위지내하 ? "  대왈 : " 초병차파, 신· 월미유분지, 기불지고의. 

군왕능여공분천하, 금가립치야.  즉불능, 사미가지야. 군왕능자진이동부해, 진여한신 ; 

수양이북지곡성, 이여팽월 : 사각자위전, 즉초이패야. " )


[한왕이 장자방(장량)에게 묻기를 : “ 제후가 약조를 따르지 않으니 어찌해야 좋겠소 ? ”라고 하자.
'장자방'이 이렇게 대답하기를 : " '한신'과 '팽월'은 초군을 격파하였음에도 아직 그들에게 봉지를 나누어 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오지 않은 것입니다.  군왕께서 그들과 함께 천하를 나눈다고 하시면 지금이라도 즉시

그들을 오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고 하신다면, 앞으로 닥칠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군왕께서 "진현"의 동쪽에 붙어 있는 해안지역을 모두 '한신'에게 주시고 ; "수양" 이북에서 "곡성"까지를

'팽월'에게 주셔서 : 각자 스스로를 위해서 싸우게 한다면 초 나라를 무찌르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라고 하였다. ]

          

漢王曰:“ 善. ”  於是乃發使者告韓信· 彭越曰:“ 并力擊楚.  楚破, 自陳以東傅海與齊王, 睢陽以北至谷城與彭相國. ” 

使者至, 韓信· 彭越皆報曰:“ 請今進兵. ” 韓信乃從齊往, 劉賈軍從壽春并行, 屠城父, 至垓下.

大司馬周殷叛楚, 以舒屠六, 舉九江兵, 隨劉賈· 彭越皆會垓下, 詣項王.
(한왕왈 : " 선. "  어시내발사자고한신· 팽월야 : " 병력격초.  초파, 자진이동부해여제왕, 수양이북지곡성여팽상국. " 

사자지, 한신· 팽월개보왈 : " 청금진병. " 한신내종제왕, 유가군종수춘병행, 도성보, 지해하.

대사마주은반초, 이서도륙, 거구강병, 수유가팽월개회해하, 예항왕. )


[그러자 한왕이 대답하기를 : “ 좋소. ”라고 하였다. 이에 사신을 보내어 '한신'과 '팽월'에게 말하기를 :

“ 힘을 합쳐 초군을 공격하시오. 초군을 격파시키면 "진현"의 동쪽에 붙어 있는 해안지역을 제왕에게 줄 것이며,

"수양" 이북에서 "곡성"까지는 '팽상'의 나라가 될 것이오. ”라고 하였다. 한왕의 사신이 도착하자,

'한신'과 '팽월'은 모두 대답하기를 : “ 지금 진군하기를 청합니다.”라고 하고는, '한신'은 즉시 제(齊)에서 진군했고,
'유가'의 군대도 "수춘"에서 함께 진군해 "성보"에서 대량 학살을 자행하고 "해하"에 이르렀다.

'항우'의 대사마 '주은'이 초 나라를 배반해 "서현"의 군사를 이끌고 "육현"을 도륙하였으며, 

"구강"의 병사들을 동원해, '유가'와 '팽월'을 따라 모두 "해하"에 모여, 항왕을 향해 진격했다. ]

          
項王軍壁垓下, 兵少食盡, 漢軍及諸侯兵圍之數重. 

夜聞漢軍四面皆楚歌, 項王乃大驚曰:“ 漢皆已得楚乎?  是何楚人之多也!”  項王則夜起, 飲帳中.

有美人名虞, 常幸從;駿馬名騅, 常騎之.  於是項王乃悲歌慨, 自為詩曰:

" 力拔山兮氣蓋世, 時不利兮騅不逝.  騅不逝兮可柰何, 虞兮虞兮柰若何!” 歌數闋, 美人和之. 

項王泣數行下, 左右皆泣, 莫能仰視.
(항왕군벽해하, 병소식진, 한군급제후병위지수중. 

야문한군사면개초가, 항왕내대경왈 : " 한개이득초호 ?  시하초인지다야 ! "  항왕즉야기, 음장중.

유미인명우, 상행종 ; 준마명추, 상기지.  어시항왕내비가개, 자위시왈 : 

" 역발산혜기개세, 시불리혜추불서.  추불서혜가내하, 우혜우혜내약하 ! "  가수결, 미인화지. 

항왕읍수행하, 좌우개읍, 막능앙시. )

 

[항왕의 군대는 "해하"에 보루를 구축하고 있었으나, 군사는 적고 군량은 다 떨어진 상태에서 한군과 제후군에게

여러 겹으로 포위당했다.  밤에 한군이 사방에서 모두 초나라의 노래를 부르니 항왕이 크게 놀라 말하기를 :

“ 한군이 이미 초 나라 땅을 모두 빼앗았단 말인가 ? 어찌해 초나라 사람들이 이리도 많은가 ? ”라고 하며,

항왕은 한밤중에 일어나서 장막 안에서 술을 마셨다.

항왕에게는 이름이 '우희'인 미인이 있었는데, 항왕은 그녀를 총애하여 항상 데리고 다녔다 ;  

또 오추마라는 이름의 준마가 있었는데, 그는 항상 이 말을 타고 다녔다.  

이에 항왕은 슬프고 분한 느낌이 마음속에 가득찬 심정으로 비통함을 노래하며 스스로 시를 지어 읊었다 : 
"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온 세상을 덮을 수 있지만, 시운이 불리해 오추마 또한 나가지 못하는구나.
오추마가 앞으로 나가지 않으니 이를 어찌할거나 !  우미인이여,  우미인이여, 그대를 또한 어찌할거나 ! "

항왕이 여러 차례 노래 부르니 우미인도 따라서 불렀다.  항왕의 뺨에 몇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자, 

좌우에 있던 사람들 모두 눈물을 흘리며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 ]


於是項王乃上馬騎, 麾下壯士騎從者八百餘人, 直夜潰圍南出, 馳走. 

平明, 漢軍乃覺之, 令騎將灌嬰以五千騎追之.  項王渡淮, 騎能屬者百餘人耳. 

項王至陰陵, 迷失道, 問一田父, 田父紿曰 “ 左 ”.  左, 乃陷大澤中.  以故漢追及之.

項王乃復引兵而東, 至東城, 乃有二十八騎. 漢騎追者數千人. 項王自度不得脫.
(어시항왕내상마기, 휘하장사기종자팔백여인, 직야궤위남출, 치주. 

평명, 한군내각지, 영기장관영이오천기추지.  항왕도회, 기능속자백여인이. 

항왕지음능, 미실도, 문일전부, 전부태왈 " 좌 ".  좌, 내함대택중.  이고한추급지.

항왕내부인병이동, 지동성, 내유이십팔기. 한기추자수천인. 항왕자도부득탈.)

 

[이때 항왕이 바로 말에 올라타니, 휘하 장사 중 말을 타고 따르는 자가 8백여 명이 되었으며, 

그날 밤 그들은 한군의 포위망을 뚫고 남쪽으로 나가 질주했다. 날이 밝자 한군은 비로소 항왕이 달아났음을 알고,

기병 장수 '관영'으로 하여금 5천의 기병을 이끌고 '항우'를 추격하게 하였다. 

항왕이 "회수"를 건널때 뒤따라 오는 군사는 1백여 기에 불과했다. 항왕이 "음릉"에 이르러 길을 잃어버리자,

밭을 갈고 있는 한 농부에게 물으니, 농부가 속여 말하기를 “ 왼쪽이오. ”라고 하였다. 

'항우' 일행은 왼쪽으로 가다가 큰 늪에 빠지게 되었다. 이로써 한군은 '항우' 일행을 따라 붙을 수 있었다. 

항왕은 곧 다시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나아가 "동성"에 이르니, 따르던 군사는 28기 뿐이었다. 

그러나 추격하는 한군의 기병은 수천이었다.

항왕은 스스로 생각하기를 도저히 한군의 추격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알았다.] 

謂其騎曰:“ 吾起兵至今八歲矣, 身七十餘戰, 所當者破, 所擊者服, 未嘗敗北, 遂霸有天下. 

然今卒困於此, 此天之亡我, 非戰之罪也.  今日固決死, 願為諸君快戰, 必三勝之, 為諸君潰圍,

斬將, 刈旗, 令諸君知天亡我, 非戰之罪也. ” 乃分其騎以為四隊, 四向. 漢軍圍之數重.
(위기기왈 : " 오기병지금팔세의, 신칠십여전, 소당자파, 소격자복, 미상패배, 수패유천하. 

연금졸곤어차, 차천지망아, 비전지죄야.  금일고결사, 원위제군쾌전, 필삼승지, 위제군궤위,

참장, 예기, 령제군지천망아, 비전지죄야. " 내분기기위사대, 사향. 한군위지수중. )


[이에 '항우'는 뒤따르던 기병에게 말하기를 : “ 내가 군사를 일으킨지 지금 8년이 되었으며, 몸소 70여 차례의

전투를 벌였는데, 나에게 맞선 적을 모두 격파시키고, 내가 공격한 적을 모두 굴복시켜 일찍이 패배를 몰랐으며,

마침내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결국 이곳에서 곤궁한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는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결코 내가 싸움을 잘하지 못해서 지은 죄가 아니다. 

오늘 내가 결사의 각오로 통쾌히 싸워서, 반드시 세 차례 싸워 모두 승리해, 그대들을 위해 한군의 포위망을

무너뜨려 적장의 목을 베고, 적군의 깃발을 쓰러뜨려, 그대들로 하여금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내가 싸움을 잘못한 죄가 아님을 알게 하리라. ”라고 하며, 이에 뒤따르던 기병을 4개 조로 나누어 

네 방향으로 향하게 했다. 이때 한군은 '항우'의 일행을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

項王謂其騎曰:“ 吾為公取彼一將. ”  令四面騎馳下, 期山東為三處.  於是項王大呼馳下, 漢軍皆披靡, 遂斬漢一將. 

是時, 赤泉侯為騎將, 追項王, 項王瞋目而叱之, 赤泉侯人馬俱驚, 辟易數里與其騎會為三處.

漢軍不知項王所在, 乃分軍為三, 復圍之.
(항왕위기기왈 : " 오위공취피일장. "  령사면기치하, 기산동위삼처.  어시항왕대호치하, 한군개피미, 수참한일장. 

시시, 적천후위기장, 추항왕, 항왕진목이질지, 적천후인마구경, 피역수리여기기회위삼처.

한군부지항왕소재, 내분군위삼, 부위지.)


[항왕은 그 기병들에게 말하기를 : “ 내가 그대들을 위해서 저 장수를 베리라. ”라고 하며.  

기병들에게 사방으로 말을 달려 내려가도록 하고, 산의 동쪽 세 군데에서 나누어 만날 것을 약조했다.  

그러고 난 뒤 항왕은 크게 고함을 지르며 한군을 향해 달려가니, 한군은 나무나 풀이 바람에 불려 쓰러지듯이
모두 전멸당했고, 항왕은 마침내 한나라 장수 한 명의 목을 베었다. 

이때 기병 대장이었던 적천후 '양희'가 항왕을 추격하자, 항왕이 눈을 부릅뜨고 꾸짖으니 적천후의 병사들과
말이 모두 무서워하며, 몇 리 밖으로 물러나는 사이에 항왕은 산의 동쪽 세 군데에서 그의 기병들을 만났다.
한군은 항왕의 소재를 알 길이 없자, 군사를 3개조로 나누어 초군을 다시 포위했다.]

          

項王乃馳, 復斬漢一都尉, 殺數十百人, 復聚其騎, 亡其兩騎耳. 

乃謂其騎曰:“ 何如?”  騎皆伏曰:“ 如大王言. ” 於是項王乃欲東渡烏江. 

烏江亭長檥船待, 謂項王曰:“ 江東雖小, 地方千里, 眾數十萬人, 亦足王也. 願大王急渡.  今獨臣有船, 漢軍至, 無以渡. ”

(항왕내치, 부참한일도위, 살수십백인, 부취기기, 망기양기이. 

내위기기왈 : " 하여 ? "  기개복왈 : " 여대왕언. " 어시항왕내욕동도오강. 

오강정장의선대, 위항왕왈 : " 강동수소, 지방천리, 종수십만인, 역족왕야. 원대왕급도.  금독신유선, 한군지, 무이도. ")


[이에 항왕이 말을 달려서 한나라 도위 한 명을 참살하고 1백여 명을 죽인 뒤, 다시 그의 기병들을 불러 모으자

죽은자는 단지 기병 2명에 불과하였다. 이에 항왕이 기병들에게 묻기를 : “ 내가 한 말이 어떠한가 ? ”라고 묻자, 

기병들이 모두 엎드려서 대답하기를 : “ 대왕의 말씀과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때에 항왕은 동쪽으로 "오강"을 건너려고 하였다.  "오강"의 정장이 배를 강언덕에 대고 기다리다가 

항왕에게 말하기를 : “강동이 비록 협소하지만 땅이 사방 천리요, 백성들의 수가 수십만에 이르니, 

그곳 또한 족히 왕이 되실 만한 곳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얼른 건너십시오. 

지금 이 강에는 신에게만 배가 있어, 한군이 이곳에 온다 해도 강을 건너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項王笑曰: “ 天之亡我, 我何渡為! 且籍與江東子弟八千人渡江而西, 今無一人還,

縱江東父兄憐而王我, 我何面目見之? 縱彼不言, 籍獨不愧於心乎?”

乃謂亭長曰:“ 吾知公長者.  吾騎此馬五歲, 所當無敵, 嘗一日行千里, 不忍殺之, 以賜公. ” 

乃令騎皆下馬步行, 持短兵接戰.  獨籍所殺漢軍數百人.  項王身亦被十餘創.
(항왕소왈 : "천지망아, 아하도위 !  차적여강동자제팔천인도강이서, 금무일인환, 

종강동부형연이왕아, 아하면목견지 ?  종피불언, 적독불괴어심호 ? "

내위정장왈 : " 오지공장자.  오기차마오세, 소당무적, 상일일행천리, 불인살지, 이사공. " 

내령기개하마보행, 지단병접전.  독적소살한군수백인.  항왕신역피십여창.)

 

[항왕이 웃으며 말하기를 : “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데, 내가 강을 건너서 무얼 하겠나 !  

또한 내가 강동의 자제 8천명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었는데, 지금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했거늘, 

설사 강동의 부형들이 불쌍히 여겨 나를 왕으로 삼아준다고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는가 ?
또한 그들이 아무 말 하지 않는다 해도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라고 하였다.
'항우'는 계속해서 정장에게 말하기를 : “ 나는 그대가 후덕한 사람임을 알고 있다.  

나는 5년 동안 이 말을 탔는데, 이 말에 대적할 말이 없었으며,

하루에도 천리를 달릴 수 있는 준마이기에 내 차마 이 말을 죽일 수 없어 그대에게 주겠소. ”라고 하고, 

기병들로 하여금 모두 말에서 내려 걷도록 하고, 손에 짧은 무기만을 들고 싸움을 벌여

'항우' 혼자서 죽인 한군이 수백 명이었다. 항왕 자신도 역시 10여 군데 부상을 입었다.]

顧見漢騎司馬呂馬童, 曰:“ 若非吾故人乎?”  馬童面之, 指王翳曰:“ 此項王也. ”

項王乃曰:“ 吾聞漢購我頭千金, 邑萬戶, 吾為若德. ” 乃自刎而死.

王翳取其頭, 餘騎相蹂踐爭項王, 相殺者數十人.
(고견한기사마여마동, 왈 : " 약비오고인호 " "  마동면지, 지왕예왈 : " 차항왕야. "

항왕내왈 : " 오문한구아두천금, 읍만호, 오위약덕. " 내자문이사.

왕예취기두, 여기상유천쟁항왕, 상살자수십인.)


[항왕은 한나라 기사마 '여마동'을 돌아보며 말하기를 : “ 너는 예전에 내 부하가 아니었더냐 ? ”라고 하자.
'여마동'이 항왕의 얼굴을 보더니, 옆에 있는 '왕예'에게 항왕을 가르키며 말하기를 : 

“ 저자가 바로 항왕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항왕이 말하기를 : “ 내가 들으니 한왕이 나의 머리에 천금과 만호의 봉지를 걸었다고 한다 하니, 

내 그대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겠노라. ”라고 하고는. 이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었다. '왕예'가 항왕의 머리를 취하자,

나머지 기병들이 항우의 시신을 쟁탈하기 위해 서로 짓밟으며 다투다가, 서로 죽이고 죽은 자가 수십 명이나 되었다.]

 

最其後, 郎中騎楊喜, 騎司馬呂馬童, 郎中呂勝· 楊武各得其一體.  五人共會其體, 皆是.

故分其地為五:封呂馬童為中水侯, 封王翳為杜衍侯, 封楊喜為赤泉侯, 封楊武為吳防侯, 封呂勝為涅陽侯.
(최기후, 랑중기양희, 기사마여마동, 랑중여승· 양무각득기일체.  오인공회기체, 개시.

고분기지위오 : 봉여마동위중수후, 봉왕예위두연후, 봉양희위적천후, 봉양무위오방후, 봉여승위열양후. )


[마지막에는 낭중기 '양희'와 기사마 '여마동', 낭중 '여승', '양무'가 각기 항왕의 시신 한 쪽씩을 차지했다.
다섯 사람이 모두 자신이 차지한 항왕의 시신을 맞추어보니 딱 맞았다.

이에 '항우'에게 걸었던 그 땅을 다섯으로 나누어 :'여마동'을 중수후에 봉하고, '왕예'를 두연후로 봉하고 ,

'양희'를 적천후에 봉하고, 양무를 오방후에 봉하고, '여승'을 열양후에 봉했다. ]

項王已死, 楚地皆降漢, 獨魯不下.  漢乃引天下兵欲屠之, 為其守禮義, 為主死節, 乃持項王頭視魯, 魯父兄乃降. 

始, 楚懷王初封項籍為魯公, 及其死, 魯最後下, 故以魯公禮葬項王谷城.   漢王為發哀, 泣之而去.
(항왕이사, 초지개항한, 독노불하.  한내인천하병욕도지, 위기수예의, 위주사절, 내지항왕두시노, 노부형내항. 

시, 초회왕초봉항적위노공, 급기사, 노최후하. 고이노공예장항왕곡성.  한왕위발상, 읍지이거. )


[항왕이 죽자, 초나라 모든 지역이 모두 한나라에 항복하였는데, 유독 "노현"만이 항복하지 않았다.  

이에 한왕은 천하의 병사를 이끌고 "노현"을 도륙하려고 하자, "노현" 백성들은 예와 의를 지키며 군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절개를 지키려함으로, 이에 한왕은 항왕의 머리를 가지고 가서 "노현" 백성들에게 보이자,
"노현"의 백성들이 마침내 항복하였다. 원래 초 회왕이 '항적'을 처음으로 노공에 봉했고, 마침내 그가 죽자,
"노현"이 마지막에 함락되었으므로 노공이라는 봉호에 대한 예우로 항왕을 "곡성"에 장사지냈다. 

한왕은 항왕을 위해서 발상하고 흐느껴 울면서 떠났다. ]

          

諸項氏枝屬, 漢王皆不誅.  乃封項伯為射陽侯.  桃侯· 平皋侯· 玄武侯皆項氏, 賜姓劉.
(제항씨지속, 한왕개불주.  내봉항백위사양후.  도후· 평고후· 현무후개항씨, 사성유. )

 

[여러 항씨 혈족들을 한왕은 모두 죽이지 않았다. 그리고 '항백'을 사양후에 봉하였다.  

도후·  평고후·  현무후는 모두 항씨였으나, 그들에게 유씨 성을 하사했다. ]

太史公曰:

吾聞之周生曰 “ 舜目蓋重瞳子 ”, 又聞項羽亦重瞳子, 羽豈其苗裔邪? 何興之暴也!

夫秦失其政, 陳涉首難, 豪傑蜂起, 相與并爭, 不可勝數.

然羽非有尺寸, 乘執起隴畝之中, 三年, 遂將五諸侯滅秦, 分裂天下, 而封王侯, 政由羽出,

號為 “ 霸王 ”, 位雖不終, 近古以來未嘗有也.  及羽背關懷楚, 放逐義帝而自立, 怨王侯叛己, 難矣.

自矜功伐, 奮其私智而不師古, 謂霸王之業, 欲以力征經營天下, 五年卒亡其國, 身死東城尚, 不覺寤而不自責, 過矣. 

乃引 “  天亡我, 非用兵之罪也. ”  豈不謬哉.
(태사공왈 :

오문지주생왈 " 순목개중동자 ".  우문항우역중동자, 우기기묘예야 ?  하흥지폭야 !  

부진실기정, 진섭수난, 호걸봉기, 상여병쟁, 불가승수.

연우비유척촌, 승집기롱무지중, 삼년, 수장오제후멸진, 분열천하, 이봉왕후, 정유우출,

호위 " 패왕 ", 위수불종, 근고이래미상유야.  급우배관회초, 방축의제이자립, 원왕후반기, 난의.

자긍공벌, 분기사지이불사고, 위패왕지업, 욕이역정경영천하, 오년졸망기국, 신사동성상, 불각오이불자책, 과의. 

내인 " 천망아, 비용병지죄야. "  기불유재. )

 

['태사공' 말하기를 : 내가 듣기로 '주생'의 말에 의하면 "순임금의 눈에는 아마도 눈동자가 둘일 것이다. "

라고 하였는데, 또한 '항우' 역시 눈동자가 둘이라는 말을 들었으니,  그렇다고 해서 '항우'가 어찌 순임금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  그러면 항우가 어떻게 그렇게 갑자기 일어났겠는가 ? 

대체로 진나라가 정치의 도를 잃어 버리자, '진섭'이 가장 먼저 난을 일으키고,

호걸들이 벌떼처럼 곳곳에서 일어나 서로 다툰 것이 그 수를 이루다 셀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항우'는 세력이 전혀 없었으면서도, 진나라 말기의 대세를 틈타 민간에서 흥기해 3년 만에 마침내

다섯 제후를 거느리고 진나라를 멸망시켰고, 천하를 찢고 갈라서 왕, 제후를 봉하였으며, 

모든 정령이 '항우'에게서 나왔기에 자신을 "패왕"이라고 칭했으며, 

그 왕위가 비록 끝까지 가지는 않았으나 과히 멀지 않은 예전부터 일찌기 이런 일이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항우'는 "관중"을 버리고 초나라를 그리워한 나머지, 의제를 쫓아내고 스스로 즉위 함으로써 

여러 왕과 제후들이 '항우'에게 등을 돌렸으며, 여러 왕과 제후들이 배반한 것을 원망하기에 이르자,

상황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항우는 스스로 공로를 자랑하고 자신의 사사로운 지혜만을 앞세워 옛 것을 본받지 않고,

패왕의 공업이라고 하면서 무력으로 천하를 정복하고 다스리려고 하다가 5년 만에 마침내 나라를 망치고, 

몸은 "동성"에서 죽으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 책망하지 않았으니 이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리고는 끝내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는 것이지, 결코 내가 군사를 잘 부리지 못한 죄가 아니다"라는 말로
핑계를 삼았으니 어찌 잘못된 일이 아니겠는가 ? ” ]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