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田擔列傳

第 三十四. 田擔列傳(전담열전)

덕치/이두진 2023. 9. 11. 18:41

                史記 列傳

 

      第 三十四.  田擔列傳(전담열전) 

田儋者,狄人也,故齊王田氏族也.  儋從弟田榮,榮弟田橫,皆豪,宗彊,能得人.

陳涉之初起王楚也,使周市略定魏地,北至狄,狄城守.

[전담은 적현(狄縣) 출신이다. 옛날 제나라 왕족 전씨의 후예다.

전담과 사촌동생 전영과 전영의 동생 전횡은 모두 호걸들로 강대한 종족들의 세력으로 인해

사람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었다.
진섭이 처음에 일어나 초나라 정권을 세우고 스스로 왕이 되어 주불(周巿)을 시켜

위나라 땅을 평정하고 북쪽으로 나아가게 했다.

주불이 적현(狄縣)에 이르렀으나 진나라의 적현 수령이 항복하지 않고 굳게 지켰다.] 

 

田儋詳為縛其奴,從少年之廷,欲謁殺奴.

見狄令, 因擊殺令, 而召豪吏子弟曰:「諸侯皆反秦自立, 齊, 古之建國, 儋, 田氏, 當王.」 

遂自立為齊王,發兵以擊周市.  周市軍還去,田儋因率兵東略定齊地.

​[전담이 그의 노복 한 명을 일부러 붙잡아 포승으로 묶은 다음 소년들과 함께 적현의 관아 뜰로

나아가 그의 노복을 죽여야 겠다고 하면서 현령의 접견을 청했다.

이윽고 적현의 현령이 밖으로나 나오자 전담이 재빨리 달려들어 그를 살해하고

현의 호족과 관리 및 자제들을 불러 말하기를 : 
" 제후들이 모두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자립했다. 제나라는 옛날에 건국한 제후국으로써

이 담은 제나라의 왕족인 전씨임으로 내가 마땅히 제나라의 왕이 되어야하겠다."라고 하며. 
이어서 그는 스스로 제왕의 자리에 올라 현의 군사를 이끌고 나아가 주불의 군사를 공격했다.  

주불의 군사는 물러가자. 전담은 군사들을 이끌고 동쪽으로 나아가 제나라 땅을 평정했다.]

  

秦將章邯圍魏王咎於臨濟,急.  魏王請救於齊,齊王田儋將兵救魏.

章邯夜銜枚擊,大破齊、魏軍,殺田儋於臨濟下. 儋弟田榮收儋餘兵東走東阿.  

田榮之走東阿,章邯追圍之.  項梁聞田榮之急,乃引兵擊破章邯軍東阿下.

​[진나라 장수 장한이 위왕 구(咎)를 임제(臨濟)에서 포위하여 급공을 가했다.

위왕이 제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자, 전담이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출전했다.

장한이 밤중에 군사들에게 함매(銜枚)를 물려 기습하여 제와 위 연합군을 대파하고

전담을 임제에서 살해했다. 전담의 동생 전영이 잔병을 수습하여 동아(東阿)로 달아났다.
제왕 전담이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제나라 사람들은 그 즉시 옛날 제왕 왕건(王建)의 동생

전가를 왕으로, 전각을 상국으로, 전간(田間)을 대장으로 삼아 제후들의 군사에 대항했다.
동아로 달아난 전영을 장한이 그 뒤를 추격하여 포위했다. 전영이 위급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항량은 곧바로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동아에서 장한의 군대를 격파했다.]

 

章邯走而西,項梁因追之.  而田榮怒齊之立假,乃引兵歸,擊逐齊王假.  假亡走楚. 

齊相角亡走趙;角弟田閒前求救趙,因留不敢歸.  田榮乃立田儋子市為齊王.

榮相之, 田橫為將, 平齊地.  項梁既追章邯, 章邯兵益盛,

項梁使使告趙、齊, 發兵共擊章邯.

[장한이 서쪽으로 도주하자 항량이 그 뒤를 추격했다.  

그리고 전영은 제나라 사람들이 전가를 왕으로 세운 것에 화가 나서 바로 병사를 이끌고

되돌아와서 제왕 전가를 내쫓았다. 전가는 초나라로 달아나고, 전각은 조나라로 달아났다.

전각의 동생 전간은 그 전에 구원군을 청하기 위해 조나라로 갔다가 감히 귀국하지 못하고

그곳에 계속 머물렀다. 전영이 즉시 전담의 아들 전불을 제왕으로 삼고 자신은 상국이 되고

전횡을 장군으로 삼아 제나라를 평정했다.
항량이 장한의 뒤를 추격했으나 장한은 지원군을 얻어 군세가 성하게 되었다.

항량이 사자를 조나라와 제나라에 보내 힘을 합쳐 장한을 공격하려고 했다.]

 

田榮曰:「使楚殺田假,趙殺田角、田閒,閒肯出兵.」

楚懷王曰:「田假與國之王,窮而歸我,殺之不義.」 趙亦不殺田角、田閒以市於齊.

齊曰:「蝮螫手則斬手, 螫足則斬足.  何者?為害於身也.  今田假、田角、田閒於楚、趙,

非直手足戚也,何故不殺?且秦復得志於天下,則齮龁用事者墳墓矣.」

[전영이 말하기를 : " 초나라가 전가를 죽이고 조나라가 전각과 전간을 죽이면

우리는 바로 출병하겠다."라고 하자. 
초회왕이 듣고 말하기를 : " 전가는 우리의 동맹국 왕으로써 처지가 곤궁하게 되어 몸을

의탁해 온 그를 죽이는 것은 의가 아니다."라고 하며, 

조나라 역시 전각과 전간을 죽이면서까지 제나라와 거래하려 하지 않았다.

제나라가 말하기를 : " 독사에게 손을 물었다면 손을 잘라야하고 다리를 물렸다면

다리를 잘라야한다. 어째서인가? 그대로 놔두면 그것으로 인해 목숨을 잃기 때문이다.

지금 전가, 전각, 전간에 대해 초와 조와 두 나라는 모두 그들이 수족과 같은 존재는

아니라고 하면서 어째서 그들을 죽이지 않는단 말인가? 

만일 진나라가 다시 천하를 얻어 정시킨다면 지금 진나라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자들은 

모두 무덤으로 보내져 묻히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楚、趙不聽,齊亦怒,終不肯出兵.  章邯果敗殺項梁,破楚兵,楚兵東走,

而章邯渡河圍趙於鉅鹿.  項羽往救趙,由此怨田榮.  項羽既存趙,降章邯等,

西屠咸陽,滅秦而立侯王也,乃徙齊王田市更王膠東,治即墨. 

齊將田都從共救趙,因入關,故立都為齊王,治臨淄. 

[초나라와 조나라는 제나라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제나라 역시 노하여 끝까지 군사를 보내지 않았다.  

장한은 예상대로 항량을 죽이고 초나라 군사를 격파했다.

싸움에 패한 초나라 군사들은 동쪽으로 도주했다.  

그러자 장한은 하수를 건너 조나라를 거록(鉅鹿)에서 포위했다.

항우()가 가서 조나라를 구했는데 이 때문에 전영을 원망하게 되었다.

항우는 조나라를 구하고 나서 장한 등의 진나라 장수와 군사들의 항복을 받아

서쪽으로 진격하여 함양을 파괴하고 진나라를 멸한 항우는 부하 장수들을 제후왕으로 봉했다.

그때 제왕 전불을 교동왕으로 바꾸고, 치소를 즉묵(卽墨)으로 옮기도록 하였다.

제나라 출신 전도(田都)가 항우를 따라 종군하여 조나라를 구하고 다시 관중으로 들어가

공을 세웠다고 생각하여 전도를 제왕으로 봉하고 임치를 도읍으로 정하여

백성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故齊王建孫田安, 項羽方渡河救趙, 田安下濟北數城, 引兵降項羽, 項羽立田安為濟北王,

治博陽.   田榮以負項梁不肯出兵助楚、趙攻秦,故不得王;趙將陳餘亦失職,不得王:

二人俱怨項王.  頊王既歸, 諸侯各就國, 田榮使人將兵助陳餘, 令反趙地,

而榮亦發兵以距擊田都, 田都亡走楚.  田榮留齊王市,無令之膠東.

[그리고 옛날 제왕 왕건의 손자 전안(田安)은 항우가 막 황하를 건너 조를 구원했을 때 

제수() 북쪽의 몇 개의 성을 무찌른 뒤 군사를 이끌고 와서 항우에게 항복했다. 

우는 전안을 제북왕에 봉하고 박양()에 도읍하게 했다. 전영은 항량의 청을 거절하고 

진나라를 공격하던 초와 조를 군사를 보내 돕지 않았다고 해서 왕에 책봉되지 않았다.

조나라 장수 진여(陳餘)도 역시 제후왕에 봉해지지 않았음으로 두 사람은 함께 항우를

원망하게 되었다. 항우가 동쪽으로 돌아가자 제후왕들은 각기 자기의 봉국으로 돌아가자,

영이 군사를 보내 진여를 도와 조나라에서 반기를 들도록 하고 전영 자신도 역시 군사를 내어

전도를 공격했다. 전도는 초나라로 도망쳤다.  전영은 다시 제왕 전불을 억류시켜 머물게 하고

교동왕으로 봉한 항우의 명을 받들지 말도록 했다.]

 

市之左右曰:「項王彊暴,而王當之膠東,不就國,必危.」市懼,乃亡就國.

田榮怒,追擊殺齊王市於即墨,還攻殺濟北王安.  於是田榮乃自立為齊王,盡并三齊之地.

項王聞之, 大怒, 乃北伐齊.  齊王田榮兵敗, 走平原,平原人殺榮.

項王遂燒夷齊城郭, 所過者盡屠之. 齊人相聚畔之.

전불의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말하기를 : " 강포한 항왕이 왕을 교동에 봉했는데

만일 봉국에 부임하지 않으면 필시 목숨이 위태롭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자. 

전불은 항우의 후환을 두려워하여 도망쳐 교동의 봉국에 부임했다. 전영이 노하여

그 뒤를 추격하여 제왕 전불을 즉묵에서 죽이고 다시 돌아와 제북왕 전안을 공격하여 죽였다.  

그래서 전영은 즉시 스스로 제왕의 자리에 올라 삼제의 땅을 병탄했다.
항왕이 듣고 대노하여 북쪽으로 진격하여 제나라 정벌전에 나섰다.

제왕 전영이 항우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평원(平原)으로 도망쳤으나 평원의 현지인들에 의해

살해되고 말았다. 항우는 제나라 땅의 성곽을 모두 불태우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두 도륙했다.

제나라 사람들은 서로 모여 항우에게 반발하였다.] 

 

榮弟橫,收齊散兵,得數萬人,反擊項羽於城陽.  而漢王率諸侯敗楚,入彭城.
項羽聞之,乃醳齊而歸,擊漢於彭城,因連與漢戰,相距滎陽.

以故田橫復得收齊城邑,立田榮子廣為齊王,而橫相之,專國政,政無巨細皆斷於相. 

橫定齊三年, 漢王使酈生往說下齊王廣及其相國橫. 橫以為然, 解其歷下軍.

漢將韓信引兵且東擊齊.

[전영의 동생 전횡이 제나라의 패잔병들을 수습해 몇 만 명의 군사를 얻어 성양에서 주둔하며

항우에 대항했다.  그때 마침 한왕이 제후들을 이끌고 초나라 군사를 물리치고 팽성에 입성했다.

항우는 이 소식을 듣고 바로 제나라를 포기하고 귀국해 팽성에서 한()나라를 공격했다.

이로 인해 한나라와의 전투가 잇따라 벌어졌고, 형양()에서 서로 대치하기에 이르렀다.  

이 기회를 틈타 전횡은 항우에게 점령당했던 제나라의 땅을 모두 수복하고

전영의 아들 전광을 제왕으로 세우고 자신은 상국이 되어 제나라의 국정을 도맡았는데, 

크고 작은 국정 모두를 왕과 의논하지 않고 자기 혼자 결정했다. 

전횡이 제나라를 평정하고 3년 뒤에 한왕이 역생(酈生)을 사자로 보내 

제왕 전광과 상국 전힁에게 유세하도록 하자

전횡이 역생의 말에 동의하고 역하(曆下)에 포진하고 있던 제군의 수비를 해산시켰다.

그때는 한나라 장수 한신이 군사를 이끌고 동쪽으로 진군하여 제나라를 공격하려던 순간이었다.]

 

齊初使華無傷、田解軍於歷下以距漢,漢使至,乃罷守戰備,縱酒,且遣使與漢平.

漢將韓信已平趙、燕,用蒯通計,度平原,襲破齊歷下軍,因入臨淄.

齊王廣、相橫怒,以酈生賣己,而亨酈生.  齊王廣東走高密,相橫走博(陽),

守相田光走城陽,將軍田既軍於膠東. 

[제나라는 처음에 화무상(華無傷)과 전해(田解)를 시켜 역하에서 한군을 막도록 했다.  

이윽고 한나라 사자가 제나라에 당도하자, 역하의 수비군의 경계를 풀고 주연을 배풀어 

한나라와 강화를 맺도록 하고 제나라에서도 강화사절을 한나라에 보내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한나라 장수 한신은 이미 조와 연을 평정하고 이어서 괴통(蒯通)의 계책을 받아들여

하수를 도하하여 평원을 도하하여 역하의 제군을 기습해서 격파하고 승세를 타고 임치에

입성했다.  제왕 전광과 상국 전횡이 노하여 역생이 자기를 속였다고 생각하고 팽살시켰다.  

제왕 전광은 동쪽 고밀로 달아나고, 상국 전횡은 박양으로, 수비 책임자 전광은 성양으로,

장군 전기(田旣)는 교동(膠東)으로 각각 흩어져 후일을 도모했다.]

 

楚使龍且救齊,齊王與合軍高密.  漢將韓信與曹參破殺龍且,虜齊王廣.

漢將灌嬰追得齊守相田光. 至博(陽),而橫聞齊王死,自立為齊王,還擊嬰,

嬰敗橫之軍於嬴下.  田橫亡走梁,歸彭越.  彭越是時居梁地,中立,且為漢,且為楚. 

韓信已殺龍且, 因令曹參進兵破殺田既於膠東, 使灌嬰破殺齊將田吸於千乘.

韓信遂平齊, 乞自立為齊假王, 漢因而立之.

[초나라가 장군 용저(龍且)를 시켜 제나라를 구원하도록 했다.

용저는 고밀의 제왕 군사들과 합쳐 유수(濰水)에서 한군과 회전했다.  

한나라 장수 한신과 조참은 용저를 죽이고 제왕 전광을 사로잡았다.

또 관영(灌嬰)은 제나라 수비군 대장 전광(田光)을 추격하여 사로잡았다.

박양에 있던 전횡은 제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스스로 제왕의 자리에 올라 

관영의 한군을 공격했다. 관영은 전횡의 군사를 영(嬴)에서 격파했다.

전횡은 도망쳐 양나라로 들어가 팽월에 의탁했다.  팽월은 그때 양나라에 있으면서

중립을 지키며 한나라 편에 설지 초나라 편에 설지 망설이고 있었다.  

용저를 죽이고 초제연합군을 격파한 한신의 령을 받은 조참은 진군하여 교동에서

전기를 죽이고 제군을 무찔렀다.  또한 관영은 제장 전흡(田吸)을 천승에서 살해했다.

한신이 제나라를 평정하자 스스로 제왕의 대리에 올려달라고 한왕에게 청하자,

한왕은 그를 대리가 아닌 제왕으로 세웠다.]

 

後歲餘, 漢滅項籍, 漢王立為皇帝, 以彭越為梁王. 田橫懼誅, 而與其徒屬五百餘人入海,

居島中.  高帝聞之, 以為田橫兄弟本定齊, 齊人賢者多附焉, 今在海中不收, 後恐為亂,

乃使使赦田橫罪而召之.  田橫因謝曰:「臣亨陛下之使酈生, 今聞其弟酈商為漢將而賢,

臣恐懼,不敢奉詔,請為庶人,守海島中.」

[그리고 일 년 후, 한나라가 항적을 멸하고 한왕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팽월을 양왕으로 봉했다.  

전횡은 한왕에 의해 살해 될 것이 두려워 부하 5백여 명과 함께 바다로 나아가 섬에서 살았다.  

고조가 듣고 원래 전횡 형제들은 제나라 본토인으로써 제나라 출신의 현능한 자들이

모두 그들을 따랐기 때문에 지금 섬에 은신하고 있는 자들을 거두지 않는다면

후에 환란의 원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사자를 보내 전횡의 죄를 사면한다고 통지하고

불러오도록 시켰다. 전횡이 고조의 부름을 사양하며 말하기를 : " 신은 폐하의 사자 역생을

팽살시켰습니다. 지금 들으니 한나라 장수 역상은 역생의 동생으로써 현능하다고 합니다. 

신은 역상(酈商)을 보기가 매우 두렵습니다. 폐하의 조명을 받들 수 없으니 

청컨대 서인이 되어 이 섬을 지키며 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使還報,高皇帝乃詔衛尉酈商曰:「齊王田橫即至,人馬從者敢動搖者致族夷!」
乃復使使持節具告以詔商狀, 曰:「田橫來, 大者王, 小者乃侯耳;不來, 且舉兵加誅焉.」 

田橫乃與其客二人乘傳詣雒陽. 未至三十里, 至尸鄉廄置,

橫謝使者曰 : 「人臣見天子當洗沐.」止留.

[사자가 돌아와 보고하자, 고황제는 즉시 위위(衛尉) 역상을 불러 조서를 내리기를 :
" 이곳에 당도하게 될 제왕 전횡을 보고 인마를 끌고와 소란을 피우는 자가 있다면 

그들을 모두 멸족형에 처하도록 하라!"라고 하고,  

다시 사자에게 부절을 주어 역상에게 내린 조칙의 내용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황제의 명을 전하기를 : " 전횡이 오게 되면 크게는 왕으로, 작게는 후에 봉할 것이나, 

오지 않는다면 군사를 보내 모두 주살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전횡과 그의 빈객 두 사람이 조칙을 받들어 낙양을 향해 출발했다.  

이윽고 전횡의 일행이 낙양 30리 못 되는 시향(屍鄕)이라는 곳의 역참에 당도하자.

전힁이 사자에게 말하기를 : " 신하된 자가 천자를 알현하는데 당연히 깨끗히

목욕은 해야지요."라고 하자.  사자는 가는 길을 멈추고 머물렀다.]

 

謂其客曰:「橫始與漢王俱南面稱孤,今漢王為天子,而橫乃為亡虜而北面事之,

其恥固已甚矣.  且吾亨人之兄,與其弟并肩而事其主,縱彼畏天子之詔,不敢動我,

我獨不愧於心乎? 且陛下所以欲見我者,不過欲一見吾面貌耳.  

今陛下在洛陽,今斬吾頭,馳三十里閒,形容尚未能敗,猶可觀也.」

遂自剄,令客奉其頭,從使者馳奏之高帝.

​[전횡이 빈객들에게 말하기를 : " 이 횡이 처음에 한왕과 함께 남면하여 왕(孤)라고 칭했소. 

지금 한왕은 천자가 되고 이 횡은 포로의 몸으로 북면하여 남을 받드는 신세가 되었으니

그런 일들은 사람된 자로써 지극히 참기 힘든 치욕이오.  하물며 지금 내가 그 형을  

팽살시키고 그 동생은 지금 여러 제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여 황제를 모시고 있는데,

지금 천자의 조칙을 두려워하여 어쩔 수 없어 감히 나를 어쩌지 못하고 있소.

그렇다고 해서 계면쩍은 내 마음이 사라지겠소? 그러나 황제폐하께서 나를 부른 것은

단지 나의 얼굴과 모습을 한 번 볼려고 해서요. 지금 폐하께서는 낙양(洛陽)에 계시니

내 머리를 베어 가지고 달려 간다면 30리 거리라 내 모습이 상하지 않아 

폐하께 보여드릴 수 있을 것이오."라고 하며. 말을 마친 전횡이 즉시 자기 목을 찔러

빈객들에게 자기의 목을 간수하여 사자와 함께 말을 달려 고제에게 바치게 하였다.]

 

高帝曰:「嗟乎,有以也夫!起自布衣,兄弟三人更王,豈不賢乎哉!」

為之流涕,而拜其二客為都尉,發卒二千人,以王者禮葬田橫.

既葬,二客穿其冢旁孔,皆自剄,下從之.  高帝聞之,乃大驚,大田橫之客皆賢.

吾聞其餘尚五百人在海中,使使召之.  至則聞田橫死,亦皆自殺. 

於是乃知田橫兄弟能得士也.

[고제가 보고 말하기를 : " 아아, 진실로 의기가 굳은 장부로다! 평민의 몸으로 삼형제가

모두 차례로 왕이 되었으니 어찌 그들이 현능한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라고 하며,  

고제가 전횡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전힁의 두 빈객을 모두 도위에 임명하고

군졸 2천 명을 선발하여 왕의 예로 전횡의 장례를 치르게 했다.  전횡의 장례가 끝나자,

두 사람의 빈객은 무덤 옆에 굴을 파더니 같이 목을 찔러 죽음으로 전횡을 따랐다. 

그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란 고제는 전힁의 빈객 대부분이 현능한 사람들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아직도 섬에는 5백 명의 빈객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고제는 사자를 보내

모두 불러오게 했다.  섬에 당도한 사자가 전횡의 죽음을 빈객들에게 전하자,

그들 역시 모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것은 전횡의 형제들이 현능한 선비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太史公曰:​

甚矣蒯通之謀,亂齊驕淮陰,其卒亡此兩人!蒯通者,善為長短說,論戰國之權變,

為八十一首.  通善齊人安期生,安期生嘗干項羽,項羽不能用其筴. 

已而項羽欲封此兩人,兩人終不肯受,亡去.

田橫之高節,賓客慕義而從橫死,豈非至賢!余因而列焉.  不無善畫者,莫能圖,何哉?  

[태사공이 말한다.
참으로 심하구나 괴통()의 계략이! 제나라를 혼란에 빠뜨렸으며

회음후를 교만하게 만들어 마침내는 그 두 사람을 망하게 만들었으니!

괴통(蒯通)은 이해득실의 변설에 능하여 전국의 권변에 관한 일을 논해 81편의 저술을 남겼다.  

괴통은 제인(齊人) 안기생과 친분이 있었다. 안기생은 일찍이 항우에게 계책을 내어

임용되기를 청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협량한 항우는 안기생의 계책을 채용할 수 없었다. 

그러함에도 항우는 이 두 사람을 봉하여 곁에 두려고 했다. 

두 사람은 항우가 내리는 봉작을 받지 않고 도망쳐 몸을 숨겼다.

전횡의 높은 의기를 경모한 그의 빈객들이 따라 죽었으니 전횡을 어찌 현능하다고 하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전힁의 사적을 기록하여 열전을 지은 것이다. 천하에는 다른 사람의 사적을

묘사하는 사람이 많음에도, 전횡의 사적에 대해서 이야기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것은 무슨 이유때문인가? ]

 

秦項之際 天下交兵(진항지제 천하교병).

진항(秦項) 교체기에 천하의 영웅들이 군사를 일으켜 서로 싸워
六國樹黨 自置豪英(육국수당 자치호영).
육국에 그 뿌리를 내릴 때 전담은 스스로 영웅호걸을 자처했다.
田儋殞寇 立市相榮(전담운구 립불상영).
전담이 싸움에 죽고 전불이 뒤를 잇고 전영이 상국이 되었다.
楚封王假 齊破酈生(초봉왕가 제파역생).
서초패왕이 전가를 제왕에 봉하자 제나라는 역생을 죽였다.
兄弟更王 海島傳聲(형제갱왕 해도전성).
전영과 전횡 형제가 모두 자립하여 왕이 되어 그 명성이 전해졌다.


【 각주 】
1). 처음에 지금의 산동성 고청현(高靑縣)의 적현(狄縣)에서 진나라에 의해 멸망한 제나라의

     귀족 출신 전담(田儋)이 진나라 현령을 죽이고 사촌동생들인 전영(田榮)과 전횡(田橫)과

     함께 자립하여 제왕이 되었다. 전영과 전횡은 친형제다.
2. 전담이 진나라 토벌군 대장 장한(章邯)과의 싸움에서 지고 전사하자 제나라 사람들이

    제나라의 마지막 왕 전건(田建)의 동생 전가(田假)를 왕으로 추대하고 

    전각(田角)을 재상으로 전간(田間)을 장군으로 삼았다.
3. 전영이 전건을 공격하자 전건은 초나라 망명하고 전각은 조나라로 도망치고

    구원군을 청하기 위해 조나라에 들어가 있던 전간은 계속 그곳에 머물렀다.
4. 전건을 제왕의 자리에서 쫓아낸 전영은 전담의 아들 전불(田巿)을 왕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상국 ,동생 전횡은 장군으로 삼았다.
5. 진나라를 멸한 항우가 논공행상을 하여 제나라 지역을 삼분하여 다음과 같이 제후왕에 봉했다.  

    1) 전영이 추대한 전불(田巿)은 교동왕(膠東王)에 봉했다. 치소는 즉묵(卽墨)이다.
    2) 항우를 따라 함양에 입성한 전도(田都)를 제왕(齊王)에 봉했다. 치소는 임치(臨淄)다.
    3) 거록의 싸움 직전 제나라 지역의 군사와 함께 항우의 진영에 참가한

        왕건의 손자 전안(田安)을 제북왕(齊北王)에 봉했다. 치소는 박양(博陽)이다.

4. 이에 전영이 제왕 전도를 공격하여 쫓아내고 전불을 계속 제왕의 자리에 있게 했다.  

    항우의 보복을 두려워한 전불이 임치를 탈출하여 즉묵으로 달아나자 전영이 그 뒤를 추격하여

    죽였다. 계속해서 전안마저 공격하여 죽이고 스스로 삼제를 통합한 제왕의 자리에 올랐다.
5. 전영이 제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촐동한 항우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전사하자, 동생 전횡이

    패잔병을 수습하여 전영의 아들 전광(田廣)을 제왕으로 추대하고 자신은 재상이 되었다.
6. 고조가 보낸 유세객 역생(酈生)에게 설복되어 한나라와 화친하기로 하고 제군의 경계를 풀자  

    그 틈을 이용한 한신의 기습을 받고 전광은 한군에 의해 사로잡히고 전횡은 달아나

    스스로 제왕이 되어  초나라에 구원을 청하여 한나라에 대항했다.

    초나라의 구원군 대장 용저와 함께 한신의 한나라 군사와 고밀에서 싸웠으나

    패하고 달아나 500명의 부하들과 함께 섬으로 들어가 숨었다.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