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本紀(사기본기)/3. 殷本紀

第 三. 殷本紀(은본기)

덕치/이두진 2021. 6. 26. 23:47

 

           史記 本紀

 

 

    第 三.  殷本紀(은본기)  

 

 

殷契, 母曰簡狄, 有娀氏之女, 為帝嚳次妃. 三人行浴, 見玄鳥墮其卵, 簡狄取吞之, 因孕生契.

契長而佐禹治水有功. 帝舜乃命契曰:「百姓不親, 五品不訓, 汝為司徒而敬敷五教, 五教在寬.」

封于商, 賜姓子氏. 契興於唐, 虞, 大禹之際, 功業著於百姓, 百姓以平.

(은설. 모왈간적, 유융씨지녀, 위제곡차비. 삼인행욕, 견현조타기란, 간적취탄지, 인잉생설.  

설장이좌우치수유공. 제순내명설왈 : 「백성불친, 오품불훈, 여위사도이경부오교, 오교재관.

봉우상, 사성자씨. 설흥어당, 우, 대우지제, 공업저어백성, 백성이평.)

                     

[은나라의 시조인 '설'의 모친은 '간적'이라고 말하며 유융씨의 딸이며'제곡'의 둘째 부인이다.

'간적'등 세사람이 같이 목욕할 때 제비(태양새)가 그 알을 떨어뜨리는 것을 보고 '간적'이 그것을 취해 삼켰는데

이로인해 아이를 잉태하여 '설'을 낳았다. '설'이 자라서 하나라 '禹'의 치수사업을 도와 공이 있어

'제순'이 이에 '설'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 「백성들이 서로 사이좋지 않고 오품이 가르쳐지지 않았으니

그대는 사도가 되어 오교를 훈계하고 펼쳐라. 오교는 관에 있다."라고 하며

"商"을 봉지로 내리고 자씨 성(姓)을 주었다. 
'설'이 "당요","우순","대우"의 시기에 흥하여 백성들을 위한 공업이 두드러져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였다.]

 

契卒, 子昭明立. 昭明卒, 子相土立. 相土卒, 子昌若立. 昌若卒, 子曹圉立.

曹圉卒, 子冥立.  冥卒, 子振立.  振卒, 子微立.

微卒, 子報丁立.  報丁卒, 子報乙立.  報乙卒, 子報丙立.  報丙卒, 子主壬立.

主壬卒, 子主癸立.  主癸卒, 子天乙立, 是為成湯. 

成湯, 自契至湯八遷.  湯始居亳, 從先王居, 作帝誥.       * 亳(땅이름:박).

(설졸, 자소명립. 소명졸,  자상토입.  상토졸, 자창약립.  창약졸, 자조어립.  

조어졸, 자명입.   명졸, 자진입.  진졸, 자미립.
미졸, 자보정립. 보정졸, 자보을입.  보을졸,  자보병립.  보병졸, 자주임립.   

주임졸, 자주계립.  주계졸, 자천을입, 시위성탕.

성탕, 자설지탕팔천. 탕시거박, 종선왕거, 작제고.)
          

['설'이 죽자 아들 '소명'이 이었고 '소명'이 죽자, 아들 '상토'가 이었고 '상토'가 죽자, 아들 '창약'이 이었고,

'창약'이 죽자  아들 '조어'가 이었다. '조어'가 죽자 아들 '명'이 이었고 '명'이 죽자 '진'이 이었으며,

'진'이 죽자 아들 '미'가 이었고 '미'가 죽자 아들 '보정'이 이었다. '보정'이 죽자 아들 '보을'이 이었으며 ,

'보을'이 죽자 아들 '보병'이 잇고, '보병'이 죽자 아들 '주임'이 이었다. '주임'이 죽자 아들 '주계'가 이었다.

'주계'가 죽자 아들 '천을'이 이었으니 이가 바로 '성탕'이다.

'성탕'의 시기, '설'때부터 '탕'에 이르기까지 여덟 번을 옮기어었다.

'탕'은 "박"에서 시작하였으니 선왕의 거주지를 따라 쫓아 옮긴 것이며 ‘제고’를 지었다.]

※ '탕' : 중국 은(殷) 나라 제1대 왕. 하(夏) 나라의 걸(桀)이 학정을 하자

이윤(伊尹) 등의 도움을 받아 걸을 격파하고  은 나라를 세웠는데,  

유교에서 주 나라 무왕(武王)이 은 나라 주(紂)를 토벌한 일과 함께 정당한 혁명의 전형(典型)으로 평가됨.

 

湯征諸侯.  葛伯不祀, 湯始伐之.  湯曰:「予有言:人視水見形, 視民知治不.」
伊尹曰:「明哉!言能聽, 道乃進.  君國子民, 為善者皆在王官.  勉哉, 勉哉 !」

湯曰:「汝不能敬命, 予大罰殛之, 無有攸赦.」 作湯征.            * 攸(바:유).

(탕징제후. 갈백줄사, 탕시벌지.  탕왈 : 「여유언 : 인시수견형, 시민지치불.」
이윤왈 : 「명재 ! 언능청, 도내진. 군국자민, 위선자개재왕궁.   면재, 면재 ! 」
탕왈 : "여불능경명, 여대죄극지, 무유유사." 작탕징.)
          

['탕'은 제후들을 불렀다. '갈백'이 제사를 지내지 않자 '탕'은 그를 먼저 벌하였다.
'탕'이 말하기를 : 「나에게 잠언이 존재하니, : 사람이 물로서 조사하여 봄으로써 형상의 크기를 드러낼 수 있듯이,

백성을 살펴보면 다스려짐의 여부가 훤히 드러난다 」라고 하니, 

'이윤'이 말하기를 : 「밝으시도다!  남의 말을 능히 듣는다면 다스리는 도리가 더 좋아질 것입니다.

군주가 백성을 아들처럼 세운다면 어진이가 모두 왕궁에 있을 것입니다. 근면하십시오. 근면하십시오! 」라 하였다.

'탕'이 말하기를 : 「너희들이 능히 천명을 공경하지 않으면 나는 큰벌로 사형에 처하여 

용서하는 일이 있지 아니할 것이다 」라며  ‘탕징'’을 지었다.]
※ '이윤' ; 중국 은(殷) 나라의 재상. 탕(湯) 임금을 도와 천하를 평정하는 데 공헌함.

'태갑'(太甲)이 탕왕의 법을 어기자 추방하고  직접 정치를 하다가 '태갑'이 과오를 뉘우치자 정권을 되돌려 주었다.

 

伊尹名阿衡.  阿衡欲奸湯而無由, 乃為有莘氏媵臣, 負鼎俎, 以滋味說湯, 致于王道.

或曰, 伊尹處士, 湯使人聘迎之, 五反然後肯往從湯, 言素王及九主之事.  湯舉任以國政.

伊尹去湯適夏.  既醜有夏, 復歸于亳.  入自北門, 遇女鳩,女房, 作女鳩女房.          

(이윤명아형. 아형욕간탕이무유, 내위유신씨잉신, 부정조, 이자미설탕, 치우왕도.

혹왈, 이윤처사, 탕사인빙영지, 오반연후긍왕종탕, 언소왕급구주지사.  탕거임이국정. 

이윤거탕적하. 기추유하, 복귀우박. 입자북문, 우여구,녀방, 작녀구여방.)
          

['이윤'은 이름이 '아형'이다. '아형'은 '탕'을 만나고자 하였으나 인연이 없었다.

이에 솥과 도마를 둘러메고 유신씨의 잉신(시집온 여자측에서 데려온 측근)이 되었고

왕도에 이르는 방법을 '탕'에게 음식의 맛있는 맛을 더 좋게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혹은 '이윤'이 선비로 있을 때 '탕'이 사람을 보내어 찾아서 맞이하였는데 다섯 번을 거절한 연후에야 

'탕'을 옳게 여기고 쫓아 가서 '소왕'과 "구주"의 일에 대해서 말하였다고 한다. 

'탕'이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국정을 맡겼다. 

'이윤'은 '탕'을 떠나 하나라에 이르렀다가 이미 하나라가 타락하여 있어 "박"으로 복귀하였다.

북문으로 들어와 '여구'와 '여방'을 우연히 만나고 ‘여구여방’을 지었다.]

 

湯出, 見野張網四面, 祝曰:「自天下四方皆入吾網.”  湯曰:“嘻, 盡之矣!」 

乃去其三面, 祝曰:「欲左, 左.  欲右, 右.  不用命, 乃入吾網.」 諸侯聞之,

曰:「湯德至矣, 及禽獸.」          

(탕출, 견야장강사면, 사왈 : 「자천하사방개입오강." 탕왈 : "의, 진지의 ! 」
내거기삼면, 사왈 : "욕좌, 좌.  욕우, 우.  불용명, 내입오강."  제후문지,  

왈 : "탕덕지의, 급금수."
          

['탕'이 나갔다가 야외에서 사면에 그물을 넓게 치고 제사를 지내며 말하기를 :  

" 천하사방의 모든 것이 내 그물에 들어오기를" 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탕'은 말하기를 : "아, 다 잡을려고 하다니!"라고 하며 이내 그 삼면에 거하면서 축원하여 :
"왼쪽으로 가고자하면 왼쪽으로, 오른쪽으로 가자 하면 오른쪽으로,  

이 명을 들어주지 않으려면 이럴 때는 나의 그물로 들어오도록"이라고 말하였다.  

제후들이 그것을 듣고 말하기를 : " '탕'의 덕은 금수에게까지 미치는구나." 라고 하였다.]

 

當是時, 夏桀為虐政淫荒而, 諸侯昆吾氏為亂.

湯乃興師率諸侯伊, 尹從湯湯, 自把鉞以伐昆吾遂, 伐桀.         

(당시시, 하걸위학정음황이, 제후곤오씨위난.  

탕내흥사솔제후이, 윤종탕탕, 자파월이벌곤오수, 벌걸.)
        

[당시에 하 '걸왕'은 정사를 모질게 하고 거칠고 음란하여서 제후 '곤오씨'가 반란을 일으켰다.

'탕'이 군사를 일으켜 제후를 거느리니 '이윤'도 '탕'을 따랐다.

'탕'은 스스로 도끼를 잡고 '곤오'를 베고 '걸'까지 정벌을 성취하고자 하였다.]


湯曰:「格女眾庶, 來, 女悉聽朕言.  匪台小子敢行舉亂, 有夏多罪, 予維聞女眾言, 夏氏有罪. 

予畏上帝, 不敢不正.  今夏多罪, 天命殛之.  今女有眾, 女曰:『我君不恤我眾, 捨我嗇事而割政』

女其曰:『有罪, 其柰何』?  夏王率止眾力, 率奪夏國.  眾有率怠不和,

曰:『是日何時喪?予與女皆亡』!夏德若茲, 今朕必往.

爾尚及予一人致天之罰, 予其大理女.  女毋不信朕, 不食言.  女不從誓言, 予則帑僇女, 無有攸赦. 」

以告令師, 作湯誓.  於是湯曰 : 「吾甚武」, 號曰武王.    

(탕왈 : 「격녀중서 ,래, 여실청짐언,  

비태 소자감행거난, 유하다죄, 여유문여중언, 하씨유죄.  여외상제, 불감부정.
금하다죄, 천명극지.  금여유중, 여왈 : 『아군불휼아중, 사아색 사이할정』.  

여기왈 : 『유죄, 기내하』 ?  하왕솔지중력, 솔탈하국.  중유솔태불화,  

왈 : 『시일하시상 ? 여여여개망』 ! 하덕약자, 금짐필왕.
이상급여일인치천지벌, 여기대리녀.  여무불신짐, 불식언. 여불종서언, 여즉탕육녀, 무유유사. 」             
이고령사, 작탕서.  어시탕왈 : 「오심무」, 호왈무왕. )
         

['탕'은 말하기를 :「너희 무리들이여, 이리와서 그대들 모두 나의 말을 들으시오.

나처럼 작은 자가 감히 난을 일으키려고 행하는 것은 아니요.  "夏"가 너무 많은 죄가 있기 때문이요. 

나는 그대들의 말을 들은 바 있지만 '하씨'는 죄가 있고 나는 上帝를 두려워하여 감히 바로 잡지 않을 수 없소. 

지금 夏는 많은 죄를 지어 하늘이 멸망시키도록 명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

" 우리 군주가 긍휼히 여기지 않아 우리 무리는 우리자신을 바쳐 나랏일을 아끼고자 임금(걸왕)을 해치우려한다" 하고

그대들중 누구는 " 죄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되오" 라고 말합니다.  

하왕'은 백성들의 힘을 멈추도록 이끌었고 나라의 재물을 약탈하도록 이끌었고  

많은 이들이 나태해지고 화목하지 않도록 이끌었습니다. 

또 말하기를 : "저 태양은 언제 죽으려나?  차라리 나는 너희와 더불어 함께 망하리라!  라고 말할 정도로

하나라의 덕이 이와같은 정도가 더욱 심하니 이제 나는 기필코 치러 가야 합니다.

나 한 사람이 하늘의 벌을 내리도록 오히려 그대들이 도와준다면 나는 그대들을 크게 다스리겠소.

내 말은 믿어도 좋습니다. 나는 식언을 하지 않습니다. 그대들이 맹세한 말을 쫓지 않는다면

그대들의 처자를 욕보이고  노비로 삼아 용서하지 않을 것이요." 라고 군대에 령을 내려 고하고 ‘탕서'를 지었다. 

이에 '탕'이 말하기를 : " 나는 심히 용맹하다" 라고 하여 부르기를 ‘무왕'’이라 하였다.]

 

桀敗於有娀之虛, 桀奔於鳴條, 夏師敗績.  湯遂伐三嵕, 俘厥寶玉, 義伯,仲伯作典寶.

湯既勝夏, 欲遷其社, 不可, 作夏社.  伊尹報.  於是諸侯畢服, 湯乃踐天子位, 平定海內.
(걸패어유융지허, 걸분어명조, 하사패적. 탕수벌삼종, 부궐보옥, 의백,중백작전보.   

탕기승하, 욕천기사, 불가, 작하사.  이윤보.  어시제후필복, 탕내천천자위, 평정해내.)
         

['걸'이 '유융'의 "허"에서 패하여 "명조"로 피하자 夏의 군대는 패적(자기 나라에 패전)하였다. 
'탕'은 삼종을 정벌하는데 이르러 그 보옥을 획득하게 되자,  '의백', '중백'이 ‘전보典寶’를 지었다.

'탕'은 이미 夏에 승리하여 그 사직을 옮기고자 하였으나 하지 못하게 되어 ‘하사’를 지었다.

'이윤'이 알리자 제후들이 옷을 입는 것을 마치고 '탕'은 천자의 제위를 밟으니 "해내"를 평정하게 되었다.]

 

湯歸至于泰卷陶, 中壘作誥.  既絀夏命, 還亳, 作湯誥 :
「 維三月, 王自至於東郊.  告諸侯群后:『毋不有功於民, 勤力乃事.  予乃大罰殛女毋, 予怨.』

曰:『古禹,皋陶久勞于外, 其有功乎民, 民乃有安.

東為江, 北為濟, 西為河, 南為淮, 四瀆已修, 萬民乃有居.

后稷降播, 農殖百谷.  三公咸有功于民, 故後有立.

昔蚩尤與其大夫作亂百姓, 帝乃弗予, 有狀。先王言不可不勉.』   

曰:『不道, 毋之在國, 女毋我怨.』 」  以令諸侯。伊尹作咸有一德, 咎單作明居. 

(탕귀지우태권도, 중루작고. 기출하명, 환박,  작탕고 :

「 유삼월, 왕자지어동교.  고제후군후 : 『무불유공어민, 근력내사.  여내대벌극여무, 여원.』

 왈 : 『고우,고요구로우외, 기유공호민, 민내유안.  

 동위강; 북위제, 서위하, 남위회, 사독이수, 만민내유거.
 후직항파, 농식백곡.  삼공함유공우민, 고후유립.    

 석치우흥기대부작난백성, 제내불여, 유상.  선왕언불가불면.』 
 왈 : 『불도, 무지재국, 여무아원.』 」  이령제후.  이윤작함유일덕,  구단작명거.)
         

['탕'은 귀환하여 "태권도"에 이르자 '중루'가 ‘고’를 지었다. 이미 夏의 명을 폐지하고 "박"에 돌아와 탕고를 지었다.

 「유삼월 왕이 스스로 "동교"에 이르러 제후들에게 고하니 『백성들에게 공로가 있지 않거나 부지런히

이 일에 힘쓰거나 하지 아니하면 내가 그대들를 크게 벌하여 죽일 것이니 나를 원망하지 말라』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옛날, '우'와 '고요'는 밖에서 오랫동안 노력하며 백성들에게 공이 있어 백성들이 편안하였다. 

동으로는 강, 북으로는 제, 서로는 하, 남으로는 회의 사독을  대단히 잘 다스려 만민이 살수있게 하였고

'후직'은 씨를 뿌리게 하여 농민이 백곡을  경작하게 하였다.

삼공은 모두 백성들에게 공이 있어 그런 연유로 후에 위에 오르게 되었다. 
옛날, '치우'와 그 대부가 백성들에게 난을 일으켰으나 하늘이 손으로 도와주지 아니하였다.

선왕의 말씀을 힘써 따르지 아니함은 옳지 못하다』라고 하였다.

또 이르기를 『도리가 있지 않으면 나라가 있지 못하게 할 것이니 그대들은 나를   원망하지 말라 』라고 하였다. 」

이에 제후들이 령을 받았다. 
'이윤'은 ‘함유일덕(임금과 신하가 다 한가지 덕이 있음)’을 지었고 '구단'은 ‘명거’를 지었다.]

※ '후직' ; 중국 주(周) 왕조의 전설적 시조. 성은 희(姬)이고 이름은 기(棄).  

농경신(農耕神)으로, 제곡(帝嚳)의 아내가 된 강원(姜嫄)이 거인의 발자국을 밟고 잉태하여 낳았다고 함.

후에 요제(堯帝)의 농관(農官)이 됨.

 

湯乃改正朔, 易服色, 上白, 朝會以晝.
(탕내개정삭, 역복색, 상백, 조회이주.)
          

[탕이 달력을 바꾸고, 복장의 색을 바꾸어 백색을 숭상했으며 조회를 낮에 열었다. ]

 

湯崩, 太子太丁未立而卒, 於是乃立太丁之弟外丙, 是為帝外丙.

帝外丙即位三年, 崩, 立外丙之弟中壬, 是為帝中壬. 

帝中壬即位四年, 崩, 伊尹乃立太丁之子太甲.  太甲, 成湯適長孫也, 是為帝太甲.

帝太甲元年, 伊尹作伊訓, 作肆命, 作徂后.         

 

(탕붕, 태자태정미립이졸, 어시내입태정지제외병, 시위제외병.  

제외내즉위삼년, 붕, 입외병지제중임, 시위제중임.
제중임즉위사년, 붕, 이윤내입태정지자태갑.  태갑, 성탕적장손야, 시위제태갑.  

제태갑원원, 이윤작이훈,  작사명, 작조후.)
          

['탕'이 붕어하자 태자 '태정'이 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어서 이에 '태정'의 동생 '외병'이 제위에 올라

제(帝) '외병'이 되었다. 제 '외병'이 즉위 3년에 죽어 '외병'의 동생 '중임'이 제위에 올라 제(帝) '중임'이 되었다.

제 '중임'이 즉위하여 사년만에 죽자  '이윤'은 이에 '태정'의 아들 '태갑'을 세웠다.

'태갑'은 '성탕'의 적장손으로 제(帝) '태갑'이 되었다.  

제 '태갑' 원년 '이윤'은 ‘윤훈’을 짓고 ‘사명’과 ‘조후’를 등용하였다.]
★ '태갑' ; 중국 은(殷) 나라의 제왕. 탕(湯)의 손자이며, 태정(太丁)의 아들로,  

     중임(中壬)을 이어 즉위하여 3년 동안 포학하고  방탕하였으므로 이윤(伊尹)에게 추방되었다가,

      3년 뒤 개과천선하고 다시 복귀하여 선정을 베풀었다고 함.

 

帝太甲既立三年, 不明, 暴虐, 不遵湯法, 亂德, 於是伊尹放之於桐宮.

三年, 伊尹攝行政當國, 以朝諸侯.
(제태갑기입삼년, 불명, 폭학, 불준탕법, 난덕, 어시이윤방지어동궁.  

삼년, 이윤섭행정당국, 이조제후.)
          

[제 '태갑'은 즉위한지 3년이 되어도 똑똑하지 못하고 난폭하고 잔인하고 '탕'의 법을 준수하지 아니하여

덕정을 어지럽히자  이에 '이윤'은 동궁으로 내쳤다. 3년간 '이윤'은 나라를 섭정하였고 제후의 조회를 받았다.]

 

帝太甲居桐宮三年, 悔過自責, 反善, 於是伊尹乃迎帝太甲而授之政.

帝太甲修德, 諸侯咸歸殷, 百姓以寧.  伊尹嘉之, 乃作太甲訓三篇, 褒帝太甲, 稱太宗.
(제태갑거동궁삼년, 회과자책, 반선, 어시이윤내영제태갑이수지정.

​제태갑수덕, 제후함귀은, 백성이녕. 이윤가지, 내작태갑훈삼편, 포제태갑, 칭태종.)
          

[제 '태갑'은 동궁에 삼년간 기거하면서 자책하며 과오를 뉘우치고 반대로 선하게 되자  

이에 '이윤'은 제 '태갑'을 맞이하였고  정사를 넘겨주었다.

제 '태갑'이 덕정으로 다스리니 제후들이 모두 "은"에 돌아오고 백성들이 편안해졌다. 
'이윤'이 기뻐하며 태갑훈삼편을 지어 제 '태갑'을 기리고 '태종太宗'이라 칭하였다.]

 

太宗崩, 子沃丁立.  帝沃丁之時, 伊尹卒.  既葬伊尹於亳, 咎單遂訓伊尹事, 作沃丁.
(태종붕, 자옥정립. 제옥정지시, 이윤졸.  기장이윤어박, 구단수훈이윤사, 작옥정.)
          

['태종'이 붕어하고 아들 '옥정'이 제위에 올랐다. 제 '옥정'의 시대에 '이윤'이 사망하자 "박"에 '이윤'을

바로 장사지내도록 하였고 '구단'은 '이윤'의 업적을 가르치고  따르게 하고자 ‘옥정'을 지었다.]

 

沃丁崩弟, 太庚立, 是為帝太庚.  帝太庚崩, 子帝小甲立.

帝小甲崩, 弟雍己立, 是為帝雍己.  殷道衰, 諸侯或不至.
(옥정붕제, 태경립, 시위제태경. 제태경붕, 자제소갑립.  

제소갑붕, 제옹기립,  시위제옹기.  은도쇠, 제후혹불지.)
          

['옥정'이 죽고 동생 태강이 제위에 올라 제 '태강'이 되었다. 제 '태강'이 죽고 아들 帝 '소갑'이 제위에 올랐다.

제 '소갑'이 죽자 동생 '옹기'가 제위에 올라 제 '옹기'가 되었다.

은 나라를 다스리는 도가 쇠약해지자 제후들이 언제나 따르지 않았다.]

 

帝雍己崩, 弟太戊立, 是為帝太戊.  帝太戊立伊陟為相.

亳有祥桑谷共生於朝, 一暮大拱.  帝太戊懼, 問伊陟.

伊陟曰:“臣聞妖不勝德, 帝之政其有闕與?

帝其修德.” 太戊從之, 而祥桑枯死而去。伊陟贊言于巫咸.

巫咸治王家有成, 作咸艾, 作太戊.  帝太戊贊伊陟于廟, 言弗臣, 伊陟讓, 作原命.

殷復興, 諸侯歸之, 故稱中宗.

(제옹기붕, 제태무립, 시위제태무.  제태무립이척위상.  

박유상상곡공생어조, 일막대공.  제태무구, 문이척.
이척왈 : "신문요불승덕, 제지정기유궐여 ?  

제기수덕." 태무종지, 이상상고사이거.  이척찬언우무함.
무함치왕가유성, 작함애, 작태무.  제태무찬이척우묘, 언불신, 이척양, 작원명.  

은부흥, 제후귀지, 고칭중종.) 

          

[제 '웅기'가 죽고 동생 '태무'가 제위에 올라 제 '태무'가 되었다. 제 '태무'는 '이척'을 재상으로 삼았다.

"박"은 조정에서 뽕나무와 곡식이 함께 자라며 하루밤에 크게 공생는 재앙이 있어서 제 '태무'가 두려워하며

'이척'에게 물으니 '이척'이 말하기를 : "신이 듣기를 요괴는 덕치를 이기지 못한다고 하는데

제(帝)의 정치는 덕이 조정과 함께 하는지요? 제는 그 덕을 닦으십시요 "라고 하였다.

'태무'가 이를 따르니 재앙의 징조인 뽕나무가 고사하여 사라져버렸다. 
'이척'이 '무함'에게 말하여 정사를 돕게하니 '무함'은 왕가의 다스림을 휼룡히 하고 '함애'와 '태무'를 숭상하였다. 

제 '태무'는 '이척'에게 왕가의 사당을 뵐 권한을 주려하자, 그 말씀은 신하로서 떨어버려야 한다며 

'이척'은 사양하고 '원명原命'을 지어 올렸다.  

은(殷)은 다시 부흥하여 제후들이 돌아왔고 그리하여 '중종'이라 칭하게 되었다.]

 

中宗崩, 子帝中丁立.  帝中丁遷于隞.  河亶甲居相. 祖乙遷于邢.

帝中丁崩,  弟外壬立, 是為帝外壬. 仲丁書闕不具.

帝外壬崩, 弟河亶甲立, 是為帝河亶甲. 河亶甲時, 殷復衰.
(중종붕, 자제중정립. 제중정천우오. 하단갑거상.  조을천우경.  

제중정붕,  제외임립, 시위제외임. 중정서궐불구.
제외임붕, 제하단갑립, 시위제하단갑.  하단갑시, 은부쇠.)
          

['중종'이 죽자 아들 제 '중정'이 제위에 올랐고 '중정'은 "오"땅으로 천도하였다.   

'하단갑'때에 "상"으로 옮겨 거하였고 '조을'은 "형"으로 천도하였다. 

제 '중정'이 죽자 동생 '외임'이 제위에 올라 제 '외임'이 되었다. 중정서는 온전하지 못하고 훼손되어 있다.  

제 '외임'이 죽고 동생 '하단갑'이 제위에 올라 제 '하단갑'이다. 
'하단갑'의 통치시에 은(殷)은 다시 나라가 쇠약해졌다.]

 

河亶甲崩, 子帝祖乙立. 帝祖乙立, 殷復興. 巫賢任職.
(하단갑붕, 자제조을입. 제조을입, 은부흥.   무현임직.)

['하단갑'이 죽고 아들 제 '조을'이 제위에 오르며 "은"은 다시 부흥하였고 '무현'에게 조정의 직무를 맡기었다.]

 

祖乙崩, 子帝祖辛立. 帝祖辛崩, 弟沃甲立, 是為帝沃甲.

帝沃甲崩, 立沃甲兄祖辛之子祖丁, 是為帝祖丁.  帝祖丁崩, 立弟沃甲之子南庚, 是為帝南庚.

帝南庚崩, 立帝祖丁之子陽甲, 是為帝陽甲. 帝陽甲之時, 殷衰. 

(조을붕, 자제조신립. 제조신붕, 제옥갑립, 시위제옥갑.   

제옥갑붕, 입옥갑형조신지자조정, 시위제조정.  제조정붕, 입제옥갑지자남경, 시위제남경. 

제남경붕, 입제조정지자양갑, 시위제양갑.  제양갑지시, 은쇠.)
          

['조을'이 죽고 아들 '조신'이 제위에 오르며 제 '조신'이 죽은후 동생 '옥갑'이 제위에 올라 바로 제 '옥갑'이 되었다.  
제 '옥갑'이 죽자 '옥갑'의 형 '조신'의 아들 '조정'이 제위에 오르니 바로 제 '조정'이다.

제 '조정'이 죽고 동생 '옥갑'의 아들 '남경'이 제위에 올라 바로 제 '남경'이 되었다.

帝 '남경'이 죽자 제 '조정'의 아들 '양갑'이 제위에 올라  제 '양갑'이 되었다.  

제 '양갑'의 시기에 殷은 나라가 쇠약해진다.]

 

自中丁以來, 廢適而更立諸弟子, 弟子或爭相代立, 比九世亂, 於是諸侯莫朝.
(자중정이래, 폐적이경립제제자, 제자혹쟁상대립, 비구세난, 어시제후막조.)
          

['중정'이래로부터 적자계승제는 폐지되고 다시 형제와 형제의 아들로의 상속제가  확립되었다.

동생의 아들들이 혹은  서로 제위를 다투어 대립하니 조회하는 제후들이 없을 정도로 9세를 거쳐 혼란하였다.]

 

帝陽甲崩, 弟盤庚立, 是為帝盤庚.

帝盤庚之時, 殷已都河北, 盤庚渡河南, 復居成湯之故居, 乃五遷, 無定處. 

殷民咨胥皆怨, 不欲徙.  盤庚乃告諭諸侯大臣曰:

“昔高后成湯與爾之先祖俱定天下, 法則可修. 捨而弗勉, 何以成德!”

乃遂涉河南, 治亳, 行湯之政, 然後百姓由寧, 殷道復興. 諸侯來朝, 以其遵成湯之德也.          

(제양갑붕, 제반경립, 시위제반경.

제반경지시, 은이도하북, 반경도하남, 복거성탕지고거, 내오천, 무정처.
은민자서개원, 불욕사. 반경내고유제후대신왈 :

"석고후성탕여이지선조구정천하,  법즉가수,  사이불면, 하이성덕 ! "
내수섭하남, 치박, 행탕지정, 연후백성유녕, 은도부흥.  제후래조, 이기준성탕지덕야.)
         

[제 '양갑'이 죽고 동생 '반경'이 제위에 오르니 바로 제 '반경'이다. 

제 '반경'의 통치시기에 殷은 "하수"의 북쪽 도읍을 버리는데 '반경'은 남쪽으로 하수를 건너 '성탕'의 옛 거처로

다시 옮겨와 거하였으며 이는 다섯 번째 도읍을 옮긴 것으로  거처가 정해진 곳이 없어 殷의 백성들은 탄식하며

모두 다 원망하며 옮기고자 하지 않았다.  '반경'은 이에 제후와 대신들에게 고하여 깨우치며 말하기를 :

"옛날 고후 '성탕'은 그대들의 선조와 더불어 천하를 평정하고 그분들의 법도와 규칙은 가히 훌륭하였소.

이를 포기해버리고 권하지 않는다면 어찌 덕정을 이룰 수 있겠소!"라고 하였다.
이에 하수를 건너 남쪽에 이르러 "박"을 다스리며 '탕'의 정치를 행하니 자연히 백성들이 편안해져 따르게 되어

은도(殷道)가 다시 흥하였지고  제후들이 조회하니 그것은 '성탕'의 덕을 따른 덕분이다.]

 

帝盤庚崩, 弟小辛立, 是為帝小辛.  帝小辛立, 殷復衰.

百姓思盤庚, 乃作盤庚三篇.  帝小辛崩, 弟小乙立, 是為帝小乙.
(제반경붕, 제소신립, 시위제소신. 제소신립, 은부쇠.   

백성사반경, 내작반경삼편.  제소신붕, 제소을립. 시위제소을.)
          

[제 '반경'이 죽고 동생 '소신'이 제위에 오르니 바로 제 '소신'이며 殷은 다시 쇠약해진다.

백성들이 '반경'을 사모하여 이에 「반경삼편을」 지었다.  

제 '소신'이 죽고 동생 '소을'이 제위에 오르니 바로 帝 '소을'이다.]

 

帝小乙崩, 子帝武丁立.  帝武丁即位, 思復興殷, 而未得其佐.

三年不言, 政事決定於冢宰, 以觀國風.
(제소을붕, 자제무정립. 제무정즉위, 사부흥은, 이미득기좌.   

삼년불신, 정사결정어총재, 이관국풍.
武丁夜夢得圣人, 名曰說.  以夢所見視群臣百吏, 皆非也.

於是乃使百工營求之野, 得說於傅險中.

무정야몽득성인, 명왈열.  이몽소견시군신백이, 개비야.   

어시내사백공영구지야, 득설어전험중.
是時說為胥靡, 筑於傅險.  見於武丁, 武丁曰是也.

得而與之語, 果圣人, 舉以為相, 殷國大治.  故遂以傅險姓之, 號曰傅說.
시시설위서미, 축어전험.  견어무정, 무정왈시야.   

득이여지어, 과성인, 거이위상, 은국대치.   고수이전험성지, 호왈부열.)
         

[제 '소을'이 붕하고 아들 帝 '무정'이 섰다. 帝 '무정'은 즉위 하자 "은"을 부흥하고자  

마음먹고 그를 보좌할 자를 얻고자  하였으나 그러지 못하였다.

삼년동안 호령하지 않고 나라의 풍속을 살펴보고자 정사는 '총재'에게 결정하게 하였다.  

'무정'이 한밤에 꿈에서 성인을 얻었는데 이름은 '열'이라고 하였다.

꿈에서 본 바로서 대신들과 관리들의 무리를  살펴보았으나 모두 아니었다.

이에, 곧 '백공'으로 하여금 백성들 안에서 구하도록 꾀하였는데 "부험"에서 '열'을 얻었다.
바로 이때 '열'은 서미(죄인)가 되어 "부험"에서 축성을 하고 있었다.  

'무정'에게 그를 보이니 '무정'이 그가 맞다라고 하여 만나서 더불어 말을 나누어 보니 과연 성인이었다.

그를 조정에 들여서 재상으로 삼으니 은나라가 크게 다스려져 지명 "부험"에서 성을 가져와서 

부르기를 '부열'이라고 하였다.]
※ '부열' ; 중국 은나라 고종(高宗) 때의 명재상.  

     부암(傅巖)에서 노역을 하다가 재상으로 등용되어 중흥(中興)의 대업을 이룸.

 

帝武丁祭成湯, 明日, 有飛雉登鼎耳而呴, 武丁懼.  祖己曰:“王勿憂, 先修政事.” 
(제무정제성탕, 명일, 유비치등정이이구, 무정구. 조기왈 : "왕물우, 선수정사."
祖己乃訓王曰:“唯天監下典厥義, 降年有永有不永, 非天夭民, 中絕其命.

民有不若德, 不聽罪, 天既附命正厥德, 乃曰其奈何.
조기내훈왕왈 : "유천감하전궐의, 항년유영유불영, 비천요민, 중절기명.   

민유불약청, 불청죄, 천기부명정궐덕, 내왈기내하.
鳴呼!王嗣敬民, 罔非天繼, 常祀毋禮于棄道.” 武丁修政行德, 天下咸驩, 殷道復興.
명호 ! 왕사경민, 망비천계, 상사무례우기도." 무정수정행덕, 천하함환, 은도부흥.)
         

[帝 '무정'이 '성탕'에게 제사한 다음날에 꿩이 날라와서 솥 손잡이에 앉아 울어 '무정'이 두려워하였다.  

'조기'가 말하기를 : "왕은 두려워 하지 마시고 먼저 정사를 바르게 다스리십시요 "라고 하였다. 

'조기'가 이어 왕에게 인도하며 말하기를 : "오직 하늘은 아래를 살필때 그것이 義인지를 법으로 하며

강년(하늘이 내린 수명)은 길기도 짧기도 하지만 하늘은 그 백성을 요절하게 꺾지 않으며

그 수명을 줄이는 것은 백성이 덕을 쫓지 아니하고 죄를 듣지 아니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하늘은 이미 붙여준 명을 그의 德으로서 바로잡으며 이에 이르러서야 그는 어찌할꼬 어찌하나하고 하는 것입니다. 

탄식하며 부르노니 왕이 백성을 공경하는 것이 하늘을 받드는 것이요, 법으로 하늘의 뜻을  받드는 것이 아니니 

제사란 그 도리를 돌보지 않는 경우에야 예가 아닌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무정'은 덕을 수행하여 정사를 바로하니 천하가 기쁨으로 충만하고 殷의 道理가 부흥하였다.]

 

帝武丁崩, 子帝祖庚立.  祖己嘉武丁之以祥雉為德, 立其廟為高宗, 遂作高宗肜日及訓.  
(제무정붕, 자제조경립. 조기가무정지이상치위덕, 입기묘위고종, 수작고종융일급훈.)
          

[帝 '무정'이 죽고 아들 帝 '조경'이 제위에 올라서니 '조기'가 '무정'이 꿩의 징조로서 덕치를 한 것을 아름다워 하여

그 사당에 서서 '고종'이라 하고「고종융일(高宗肜日)」을 지어 가르침을 전하게 하고자 하였다.]

 

帝祖庚崩, 弟祖甲立, 是為帝甲.  帝甲淫亂, 殷復衰.
(제조경붕, 제조갑립, 시위제갑.  제갑음란, 은부쇠.)
          

[帝 '조경'이 죽자 동생 '조갑'이 제위에 오르니 '제갑'이라하였다. 

'제갑'은 정사가 음란하고 어지러워 "殷"이 다시 쇠약해졌다.]

 

帝甲崩, 子帝廩辛立.  帝廩辛崩, 弟庚丁立, 是為帝庚丁.  帝庚丁崩, 子帝武乙立.

殷復去亳, 徙河北.                                                       * 廪(곳집:름).
(제갑붕, 자제름신립. 제름신붕, 제경정립, 시위제경정.  제경정붕, 자제무을립.  

은부거박, 사하북.)
          

['제갑'이 죽고 아들 帝 '름신'이 제위에 올랐고 帝 '름신'이 죽자, 동생 '경정'이 제위에 올라 帝 '경정'이 되었고,  

帝 '경정'이 죽자, 아들 帝 '무을'이 제위에 올랐다. 殷은 다시 "박"을 잃어버리고 "하수" 이북으로 옮겨갔다.]

 

帝武乙無道, 為偶人, 謂之天神.  與之博, 令人為行.  天神不勝, 乃僇辱之.

為革囊, 盛血, 卬而射之, 命曰 “射天”                                         *囊(주머니:낭).
(제무을무도, 위우인, 위지천신. 흥지박, 영인위행.   천신불승, 내륙욕지.   

위혁낭, 성혈, 앙이사지, 명왈"사천"

武乙獵於河渭之閒, 暴雷, 武乙震死。子帝太丁立。帝太丁崩, 子帝乙立。帝乙立, 殷益衰。
무을엽어하위지간, 폭뢰, 무을진사.  자제태정립.  제태정붕,  자제을립. 제을립, 은익쇠.)
         

[帝 '무을'이 무도하여 우인(인형)을 천신이라 말하고 더불어 도박을 하며 사람들에게 이를 하게 하면서

천신이 이기지  못하면 이에 대하여 죽여 욕보이고서 가죽주머니에 그 피를 담아 올려놓고 화살로 쏘면서"사천"이라

부르게 명하였다.  '무을'이 "하수"와 "위수"사이에서 수렵할 때 사납게 천둥이 쳐 '무을'이 벼락에 맞아 죽었다. 

아들 帝 '태정'이 제위에 올랐고 帝 '태정'의 사후에는 그 아들 '제을'이 제위에 올랐다. 

'제을'이 제위에 오른 후 殷은 더욱 나라가 쇠약해졌다.]

※ '제을' ; 중국 은(殷) 나라의 제29대 왕. 주(紂)의 아버지이자, 태정(太丁)의 아들.

 

帝乙長子曰微子啟, 啟母賤, 不得嗣.  少子辛, 辛母正后, 辛為嗣.

帝乙崩, 子辛立, 是為帝辛, 天下謂之紂.           
(제을장자왈미자계, 계모천, 불득사. 소자신, 신모정후, 신위사.   

제을붕, 자신립, 시위제신, 천하위지주.)        
          

['제을'의 장자는 '미자' '계'라고 하는데 '계'의 모친은 신분이 천하여 제위를 이을 수 없었고

작은 아들 '신'은 모친이 정비였기 때문에 '신'이 후계자가 되었다.

'제을'이 죽자 아들 신이 위에 올라 제신이 되었으니 천하에서 이르기를 '주'라고 하였다.]

 

帝紂資辨捷疾, 聞見甚敏;材力過人, 手格猛獸;知足以距諫, 言足以飾非;

矜人臣以能. 高天下以聲, 以為皆出己之下.

(제주자변첩질, 문견심민 ; 재력과인, 수격맹수 ; 지족이거간, 언족이식비 ;  

긍인신이능. 고천하이성, 이위개출기지하.
好酒淫樂, 嬖於婦人.  愛妲己, 妲己之言是從. 於是使師涓作新淫聲, 北里之舞, 靡靡之樂.
호주음락, 폐어귀인.  애달기, 달기지언시종. 어시사사연작신음성, 북리지무, 미미지락.
厚賦稅以實鹿臺之錢, 而盈鉅橋之粟.  益收狗馬奇物, 充仞宮室.

益廣沙丘苑臺, 多取野獸蜚鳥置其中.
후부세이실녹대지전, 이영거교지속.  익수구마기물, 충인궁실.   

익광사구원대, 다취야수비조치기중.

慢於鬼神. 大聚樂戲於沙丘, 以酒為池, 縣肉為林, 使男女裸相逐其閒, 為長夜之飲.
만어귀신.  대취락희어사구, 이주위지, 弦육위림, 사남녀나상축기한, 위장야지음.)
         

[帝'주'의 자질은 분별력이 아주 빠르고 보고 듣는 것이 심히 민첩하였고  

재능과 힘이 일반인보다 뛰어나고 맨손으로  맹수와  대적하였다.   

간언이 필요치 않을 정도로 지혜가 충분하였고 언변은 거짓을 덮어 가릴 정도여서 자신의 능력을 가지고

다른 사람과 신하들을 불쌍히 여기며 모두 자신의 아래임을 드러내서 이름을 천하에 높이고자 하였다.

술과 음악을 지나치게  좋아하고 애첩 '달기'를 사랑하여 '달기'의 말은 옳다고 쫒아서 '사연'에게는

새로이 "북리"의 춤과 미미의 음악같은 음란한 소리를 만들게 하였다.

세금을 두텁게 부과하여 녹대를 돈으로 가득 채우고 거교를 오곡으로 가득 채웠다.

더하여 개와 말과  기이한 물품을 거두어 궁실을 채웠다.

모래 언덕과 정원의 무대를 더 넓히고 야수와 비조를 많이 취하여 그곳에 풀어두고  귀신도 능멸하였다.

술로 연못을 만들고 고기를 매달아 숲을 만들고 사구에 크게 희롱하는 음악을 연주하

그 사이에서 남녀가 벌거벗고 쫓게 하며 긴 밤내내 음주를 하며 놀았다. ]
※ '주' ; 중국 은(殷) 나라의 마지막 왕. 제을(帝乙)의 아들로, 달기(妲己) 등의 미인과 음란 방탕한 생활을 즐기고,

    비간(比干) 등의 충신을 내치는 등 포악한 정치를 일삼다가 인심을 잃어 주(周) 나라의 무왕(武王)에게 멸망당함.

 

百姓怨望而諸侯有畔者, 於是紂乃重刑辟, 有炮格之法.  以西伯昌,九侯,鄂侯為三公.

九侯有好女, 入之紂.  九侯女不喜淫, 紂怒, 殺之, 而醢九侯.  鄂侯爭之彊, 辨之疾, 并脯鄂侯.

(백성원망이제후유반자, 어시주내중형피, 유포격지법. 이서백창,구후,악후위삼공.  

구후유호녀, 입지주.  구후녀불희음, 주노, 살지, 이해구후.  악후쟁지강, 변지질, 병포악후.
西伯昌聞之, 竊嘆.  崇侯虎知之, 以告紂, 紂囚西伯羑里.

西伯之臣閎夭之徒, 求美女奇物善馬以獻紂, 紂乃赦西伯. 
서백창문지, 절탄.  숭후호지지, 이고주, 주수서백유리.   

서백지신굉요지도, 구미인기물선마이헌주, 주내사서백.)
          

[백성들이 원망하고 제후들중 배반하는 자가 있자 '주'는 포격의 법이라는 중형을 만들고

'서백창', '구후', '악후'를 삼공으로  삼았다.  '구후'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어 '주'에게 들여보냈다.

'구후'의 딸은 음란함을 좋아하지 않아 '주'가 노하여 죽이고 '구후'에게 해의 형벌을 내렸다.

'악후'가 그 잘못을 밝히며 강하게 언쟁하자 '악후'도 역시 포를 떠 죽였다. '서백창'이 이를 듣고 몰래 탄식하였다.

숭후 '호'가 이를 알고 '주'에게 고하여 '주'는 '서백창'을 "유리"에 가두었다.

'서백창'의 신하 '굉요'의 무리가  미녀와 기물과 좋은 말을 구하여 '주'에게 바치자,

'주'가 이에 '서백창'을 사면하였다. ]
          

西伯出而獻洛西之地, 以請除炮格之刑.

紂乃許之, 賜弓矢斧鉞, 使得征伐, 為西伯.  而用費中為政.

(서백출이헌락서지지, 이청제포격지형. 

주내허지, 사궁시부월, 사득정벌, 위서백. 이용비중위정.     
費中善諛, 好利, 殷人弗親.  紂又用惡來.  惡來善毀讒, 諸侯以此益疏.    * 讒(참소할:참).
비중선유, 호리, 은인불친.  주우용오래.  오래선훼참, 제후이차익소.)
          

['서백창'은 감옥에서 나와 "락서"의 땅을 바치고 포격의 형을 버릴 것을 청하였다. '주'가 이에 허락하였고

궁시(활과 화살), 부월(작은 도끼와 큰 도끼)을 주어 '서백창'으로 하여금 주변을 정벌할 권한을 갖게 하고

그리고 '비중'을 등용하여 정사를  돌보게 하였다.

'비중'은 아첨을 많이 하고 이권을 좋아하여 은나라 사람들이 좋아하지 아니하였다. 

'주'는 또한 '악래'를 등용하였는데 '악래'는 비방과 참소를 좋아하여 이로써 제후들이 더욱 멀어졌다.]
      

西伯歸, 乃陰修德行善, 諸侯多叛紂而往歸西伯.  西伯滋大, 紂由是稍失權重.  王子比干諫, 弗聽.

(서백귀, 내음수덕행선, 제후다반주이왕귀서백. 서백자대,  주유시초실권중.  왕자비간간, 불청. 
商容賢者, 百姓愛之, 紂廢之.  及西伯伐饑國, 滅之, 紂之臣祖伊聞之而咎周, 恐, 奔告紂曰:
상용현자, 백성애지, 주폐지.  급서백벌기국, 멸지, 주지신조이문지이구주, 공, 분고주왈 :
“天既訖我殷命, 假人元龜, 無敢知吉, 非先王不相我後人, 維王淫虐用自絕,

故天棄我, 不有安食, 不虞知天性, 不迪率典.
"천기흘아은명, 가인원구, 무감지길, 비선왕불상아후인, 유왕음학용자절,  

고천기아, 불유안식, 불우지천성, 불적솔전. 
今我民罔不欲喪, 曰‘天曷不降威, 大命胡不至’? 今王其柰何?”  
금아민강불욕상, 왈'천갈불항위, 대명호불지' ?  금왕기내하 ?" )
          

['서백창'이 돌아와 이때 덕을 닦고 선을 행하자 많은 제후들이 '주'를 배반하고 '서백'에게 가서 귀의하였다.

'서백'은 크게 번성하고 '주'는 이로 말미암아 점차 실권하게 되었다. 왕자 '비간'이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상용'은 현자여서 백성들이 그를 친밀하게 따랐으나 '주'는 그를 쓰지 않았다. 
'서백'이 "기국"을 정벌하여 멸망시킴에 이르자 '주'의 신하인 '조이'가 이를 듣고 '구주'를 책망하고

두렵게 여기어 달아나서 '주'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 "하늘이 이미 우리 殷의 운수를 그치게 하여

가령 사람이 기운을 모아 귀갑을 태우는 점으로 보아도  감히 길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선왕이 등지고 우리 후인들을 돕지 아니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왕이 음란하고 잔인함에  힘써 스스로 끊으니

그런 연유로 하늘이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니 편안히 식사하지 못하고 있으며 하늘의 뜻을 헤아리지도 알지도

못하겠고 법을 따르며 나아가지도 못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백성 중 멸망하기를 바라지 않는 이가 없어서 
『하늘天은 어찌 형벌을 내리지 않으며 대명은 멀리있어 이르지 않는 것인가? 』라고 말하니 
이제 왕께서는 그것을 어찌 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紂曰:“我生不有命在天乎!” 

祖伊反, 曰:“紂不可諫矣.” 西伯既卒, 周武王之東伐, 至盟津, 諸侯叛殷會周者八百.
(주왈 : "아생불유명재천호 !"   

조이반, 왈 : "주불가간의."  서백기졸, 주무왕지동벌, 지맹진, 제후반은회주자팔백.
諸侯皆曰:“紂可伐矣.” 武王曰:“爾未知天命.” 乃復歸.
제후개왈 : "주가벌의." 무왕왈 : "이미지천명." 내복귀.)
         

['주'가 말하기를 : "내가 태어남이 하늘이 살피는 명이 있다는 것이 아니오!」하고 대답했다.
'조이'가 되돌아 말하기를 : "'주'는 간언하기 불가하구나"하였다.

'서백'이 이미 죽은 후에 周 '무왕'이 동쪽을 정벌하여 "맹진"에 이르니 殷을 배반하고 周에 모인 제후들이

팔백이나 되었다.  제후들이 모두 말하기를 : "'주'를 정벌함이 옳다 "라고 하였다.

'무왕'은 말하기를 : "너희는 천명을 알지 못한다 "라고 말하고 이에 다시 돌아갔다.]
※ '비간' ; 중국 은나라 주왕의 숙부. 주왕에게 선정을 베풀 것을 충간하다가 극형을 당함.

 

紂愈淫亂不止。微子數諫不聽, 乃與大師,少師謀, 遂去.

比干曰:“為人臣者, 不得不以死爭.” 乃彊諫紂.
(주유음란불지. 미자수간불청, 내여대사,소사모, 수거.    

비간왈 : "위인신자, 부듣불이사쟁," 내강간주.
紂怒曰:“吾聞圣人心有七竅.” 剖比干, 觀其心.  箕子懼, 乃詳狂為奴, 紂又囚之.

殷之大師,少師乃持其祭樂器奔周.                            *竅(구멍:규).
주노왈 : "오문성인심유칠규." 부비간, 관기심.  기자구, 내상광위노, 주우수지.   

은지대사,소사네지기제악기분주.)
         

['주'가 음란함이 더하여 멈추지 아니하자 '미자'가 수차례 간언하였으나 듣지않자  

이에 대사, 소사와 더불어 논하더니  떠나버리기에 이르렀다. '비간'이 말하기를 :

"신하라는 자가 되어서 죽더라도 간언하지 못하겠느냐 "라며 강하게 '주'에게 간언하였다.  

'주'가 노하여 말하기를 : "나는 성인의 심장은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고 들었다 "라며 

'비간'을  칼로 갈라서 그 심장을 보았다. '기자'가 두려워하여 이에 거짓으로 미친 듯하며 노비가 되고자 하였으나

'주'는 또한 죄수로 그를 가두었다. 殷의 대사,소사는 殷의 제기(祭器)와 악기(樂器)를 가지고 周로 달아났다.]
          

周武王於是遂率諸侯伐紂.  紂亦發兵距之牧野.

甲子日, 紂兵敗.  紂走入, 登鹿臺, 衣其寶玉衣, 赴火而死.      * 赴(다다를:부).
(주무왕어시수솔제후벌주.  주역발병거지목야.  

갑자일, 주병패.   주주입, 등녹대, 의기보옥의, 부화이사.
周武王遂斬紂頭, 縣之[大]白旗.  殺妲己, 釋箕子之囚, 封比干之墓, 表商容之閭.

封紂子武庚, 祿父, 以續殷祀, 令修行盤庚之政.
주무왕수참주두, 현지[대]백기.  살달기, 석기자지수, 봉비간지묘, 표상용지려.

봉주자무경, 녹부, 이속은사, 영수행반경지정.
於是周武王為天子.  其後世貶帝號, 號為王.  而封殷后為諸侯, 屬周.    * 貶(낮출:폄).
어시주무왕위천자.  기후세폄제호, 호위왕.  이봉은후위제후, 속주. )
         

[周'무왕'은 이에 따라 제후들을 거느리고 '주'를 정벌하기에 이르렀다. 

'주(紂)도 역시 병력을 일으켜 "목야"에 도달하였으나  갑자일에 '주'의 군대는 패하였고

'주'는 달아나 도성에 들어가  "녹대"에 올라 그 보옥으로 된 옷을 입고 불에 뛰어들어 죽었다.

주무왕은 주의 머리를 베어 백기에 매달았고  '달기'도 살해하였다.  

갇혀있던 '기자'도 풀어주고 '비간'의 묘를 크게 봉분해주고 '상용'의 마을 이문에 표를 내리고 

殷의 제사를 잇도록 '주'의 아들 '무경', '녹부'를 봉하여 '반경'의 정사를 행하도록 령을  내렸다. 

殷의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으며 이로서 周武王은 천자가 되었다.

그 후세는 제호를 낮추어 왕으로 부르게 하여서 殷의 후예는 제후로 봉하고 周에 귀속시켰다.

※ '미자' ; 중국 은(殷) 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의 서형(庶兄).  

     주나라 '성왕'이 '무경'의 난을 평정한 뒤 송(宋)나라에 봉하고  

     은나라의 제사를 맡김. '기자'·'비간'과 함께 은나라의 3인(仁)으로 일컬어짐.
※ '기자' ; 고조선시대 전설상으로 전하는 기자 조선의 시조. 은나라의 현인으로,  

     주나라에 의해  은 나라가 망하자 조선에 기자 조선을 건국하였다고 함.

 

周武王崩, 武庚與管叔,蔡叔作亂, 成王命周公誅之, 而立微子於宋, 以續殷后焉.
(주무왕붕, 무경여관숙,채숙작난, 성왕명주공주지, 이립미자어송, 이속은후언.)
          

[周'武王'이 죽자 '무경'과 더불어 '관숙', '채숙'이 반란을 일으켜 '성왕'은 '주공'에게 명하여 토벌하였고

"송"에는 '미자'를 세우고 殷의 후사를 이로써 잇게 하였다.]

 

   

太史公曰:余以頌次契之事, 自成湯以來, 采於書詩.

(태사공왈 : 여이송차설지사, 자성탕이래, 채어서시.
契為子姓, 其後分封, 以國為姓, 有殷氏, 來氏, 宋氏, 空桐氏, 稚氏, 北殷氏, 目夷氏.
설위자성, 기후분봉, 이국위성, 유은씨, 래씨, 송씨, 공동씨, 치씨, 북은씨, 목이씨.
孔子曰, 殷路車為善, 而色尚白.
공자왈, 은로거위선, 이색상백.)
         

['태사공'은 말하기를 : ‘송’에 의거하여 '설'의 사적을 순서대로 정리하였고   

'성탕'이래로 부터는 ‘書' 와' 詩’에서 채택하였다. 
'설'의 성은 자씨였으나 그 이후에 분봉을 받으면서 각기 자기 나라의 이름을 성으로 하여

'은'씨、'래'씨、'송'씨、'공동'씨、'치'씨、'북은'씨、'목이'씨가 존재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 "은나라의 도로와 수레는 훌륭하며 색은 흰색을 숭상한다"라고 하셨다.]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