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樂毅列傳

第 二十. 樂毅列傳 (악의열전)

덕치/이두진 2021. 8. 3. 18:14

 

              史記 列傳

 

      第 二十. 樂毅列傳 (악의열전) 

 ​樂毅者, 其先祖曰樂羊.  樂羊爲魏文侯將, 伐取中山, 魏文侯封樂羊以靈壽. 

 (악의자, 기선조왈악양.  악양위위문후장, 벌취중산, 위문후봉악양이령수. )

 

 ['악의'의 그 선조는 위나라의 장수 '악양'이다.  '악양'은 위문후의 장수가 되어 "중산"을 정벌하였다.  
 위문후는 그 공으로 '악양'에게 중산국의 "영수"를 봉지로 하사하였다. 
  
 

  

 樂羊死, 葬於靈壽, 其後子孫因家焉. 中山復國, 至趙武靈王時復滅中山, 而樂氏後有樂毅.  

 (악양사, 장어령수, 기후자손인가언.  중산복국, 지조무령왕시복멸중산, 이악씨후유악의. )

 ['악양'이 죽자 그 시신은 "영수"에 묻었으며, 그후부터 그 자손들은 "영수"에 살게 되었다. 
 후에 중산국은 나라를 재건하였으나 조나라 '무령왕'에 의해 재차 멸망당했으며, 

 그후 악씨들의 후손에 '악의'라는 사람이 있었다. ]   

  

 樂毅賢, 好兵, 趙人舉之.  及武靈王有沙丘之亂, 乃去趙適魏.   

 聞燕昭王以子之之亂而齊大敗燕, 燕昭王怨齊, 未嘗一日而忘報齊也. 
 
(악의현, 호병, 조인거지.  급무령왕유사구지란, 내거조적위. 
 

 문연소왕이자지지란이제대패연, 연소왕원제, 미상일일이망보제야. ) 


 ['악의'는 어질면서도 전쟁을 좋아하였으며 조나라 사람들이 천거하여 등용되었다.  
 

 조'무령왕'이 ˝사구의 난˝으로 인해 굶어 죽자 그는 조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들어갔다. 
 이때 연'소왕'이 들은 바로는 예전 선왕 '쾌'가 어리석어 재상 '자지'에게 국정를 일임하자 
 

 나라는 크게 혼란스러웠고, 이 틈을 타서 제나라 '민왕'이 쳐들어와 연나라 군사를 크게 무찌르고 

 연왕'쾌'를 죽였으며 재상 '자지'의 시신으로 젓을 담갔다. 
 이 일에 대해 연'소왕'은 원한을 품고 제나라에 대해 원수 갚을 생각을 한시도 잊지 않고 있었다. ]
 

 

 燕國小, 辟遠, 力不能制, 於是屈身下士, 先禮郭隗以招賢者. 

 樂毅於是爲魏昭王使於燕, 燕王以客禮待之.  樂毅辭讓, 遂委質爲臣, 燕昭王以爲亞卿, 久之.
 
(연국소, 벽원, 역불능제, 어시굴신하사, 선례곽외이초현자.
 

 악의어시위위소왕사어연, 연왕이객례대지.  악의사양, 수위질위신, 연소왕이위아경, 구지. ) 


 [그러나 연나라는 소국이며 중원과는 멀리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제나라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이 없었으므로

 연소왕은 몸을 굽혀 선비들을 대했으며 우선 고령의 대신 '곽외'를 예로써 대하며  

 천하의 어진 사람들을 초빙했다. 이때 '악의'는 위'소왕'에 의해 사자의 임무를 띠고 연나라에 가게 되었고, 
 연왕은 '악의'를 손님의 예를 다해 깍듯이 귀빈으로 대접하였다.  
 

 '악의'는 한사코 사양하며 연나라의 신하가 되고자 하였으며,
 연소왕은 '악의'를 상경 다음의 직책인 아경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많은 세월이 지났다. ]
  
 當是時, 齊湣王彊, 南敗楚相唐眛於重丘, 西摧三晉於觀津, 遂與三晉擊秦, 
 

 助趙滅中山, 破宋, 廣地千餘里.  與秦昭王爭重爲帝, 已而復歸之, 諸侯皆欲背秦而服於齊.
 
(당시시, 제민왕강, 남패초상당매어중구, 서최삼진어관진, 수여삼진격진, 
 

 조조멸중산, 파송, 광지천여리.  여진소왕쟁중위제, 이이복귀지, 제후개욕배진이복어제. ) 


 [이때 천하의 정세는 제'민왕'이 다스리던 제나라가 강대하여 남쪽으로는 초나라 재상 '당매'의 군사를
 

 "중구"에서 격파했고, 서쪽으로는 삼진의 군사를 "관진"에서 물리쳤으며, 마침내 삼진과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하였고, 다시 조나라가 중산국을 정벌하는데 지원군을 보내 도왔으며,
 송나라를 무찌르고 제나라의 영토를 천여 리나 넓혔다.  
 

 '민왕'은 서제로 진'소양왕'은 동제로 세력을 다투며 황제의 제호를 칭하다가, 
 두달만에 제왕의 칭호를 진나라에 돌려주고 옛날처럼 왕이라 칭하자, 
 

 제후들이 모두 진나라에 등을 돌리고 제나라를 따르고자 하였다. ] 

   

 湣王自矜, 百姓弗堪.  於是燕昭王問伐齊之事.   

 樂毅對曰:「 齊, 霸國之餘業也, 地大人眾, 未易獨攻也. 王必欲伐之, 莫如與趙及楚· 魏. 」  
 
(민왕자긍, 백성불감.  어시연소왕문벌제지사.    
 

 악의대왈 : 「 제, 패국지여업야, 지대인중, 미이독공야.  왕필욕벌지, 막여여조급초· 위. 」 ) 


 ['민왕'은 자기가 모든 공을 세운 것처럼 기고만장해 하자, 백성들은 그의 정치를 견뎌낼 수 없었다. 
 이에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 연'소왕'이 '악의'에게 제나라를 정벌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악의'가 대답하기를 : " 제나라는 대대로 패업을 이루어 무시하지 못할 여력을 갖고 있으며, 
 

 땅은 넓고 백성들은 많아 연나라 혼자 공격해서 쉽게 이길 수 없는 나라입니다. 대왕께서 만일 제나라를  

 기필코 정벌하려고 하신다면 조나라, 초나라, 위나라와 연합하셔야만 합니다 "라고 하였다. ]    

 

 於是使樂毅約趙惠文王, 別使連楚· 魏, 令趙嚪說秦以伐齊之利.   

 諸侯害齊湣王之驕暴, 皆爭合從與燕伐齊.  
 
(어시사악의약조혜문왕, 별사연초· 위, 령조담설진이벌제지리.  
 

 제후해제민왕지교폭, 개쟁합종여연벌제. )   


 [그래서 '연왕'은 '악의'를 사자로 삼아 조'혜문왕'에게 보내고, 초, 위나라에는 별도의 사자를 보냈으며, 
 '악의'는 조나라를 통해 진나라에 제나라를 공격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을 설득하게 하였다. 
 제후들은 제'민왕'의 교만하고 포악한 행동에 위협을 느끼고 있었으므로, 
 

 모두 앞다투어 연나라와 합종하여 제나라를 정벌하려고 하였다. ] 

   

 樂毅還報, 燕昭王悉起兵, 使樂毅爲上將軍, 趙惠文王以相國印授樂毅.   

 樂毅於是并護趙· 楚· 韓· 魏· 燕之兵以伐齊, 破之濟西. 
 
(악의환보, 연소왕실기병, 사악의위상장군, 조혜문왕이상국인수락의.
 

 악의어시병호조· 초· 한· 위· 연지병이벌제, 파지제서. )  

 
 ['악의'는 돌아와 연'소왕'에게 보고하자,  연'소왕'은 '악의'를 상장군에게 임명하고 연나라의 모든 

 군사들을 동원하였으며, 조'혜문왕'도 '악의'에게 재상의 인장을 보내 조군을 '악의'의 지휘 하에 두었다.

 '악의'는 조, 초, 한, 위, 연 오국의 병사를 이끌고 제나라를 공격하여,  

 제나라 군사들을 "제수"의 서쪽에서 격파하였다. ] 

   

 諸侯兵罷歸, 而燕軍樂毅獨追, 至于臨菑.  齊湣王之敗濟西, 亡走, 保於莒.   

 樂毅獨留徇齊, 齊皆城守.  樂毅攻入臨菑, 盡取齊寶財物祭器輸之燕.  
 
(제후병파귀, 이연군락의독추, 지우임치.  제민왕지패제서, 망주, 보어거.  
 

 악의독류순제, 제개성수.  악의공입임치, 진취제보재물제기수지연. ) 

 [제후국의 군사들은 각기 자기 나라로 돌아갔으나,

 '악의'는 연나라를 군사를 이끌고 제나라 군대의 뒤를 추격하여 제나라의 도성인 "임치"에 이르렀다. 
 제'민왕'은 "제수" 서쪽의 싸움에서 패하고 도망쳐 "거성"으로 들어갔다.  '악의'는 연나라 군사들만으로
 

 제나라에 머물면서 군령을 내려 항복을 권하였으나 제나라의 모든 성들은 항복하지 않고 굳게 지켰다.   

 '악의'는 "임치"를 공격하여 입성한 후 제나라의 보물과 재물 및 제기들을 탈취하여 연나라로 보냈다. ]   

   

 燕昭王大說, 親至濟上勞軍, 行賞饗士, 封樂毅於昌國, 號爲昌國君.   

 於是燕昭王收齊鹵獲以歸, 而使樂毅復以兵平齊城之不下者.
 
(연소왕대열, 친지제상로군, 행상향사, 봉악의어창국, 호위창국군.  
 

 어시연소왕수제로획이귀, 이사악의부이병평제성지불하자. )   


 [연'소왕'은 크게 기뻐하며 친히 "제수" 강변까지 나와 연나라 군사들에 대한 논공행상을 하고 
 

 음식을 준비하여 배불리 먹였으며, '악의'에게 "창국"의 봉지를 하사하고, '창국군'이라는 봉호를 내렸다. 

 그리고 연'소왕'은 제나라의 노획물을 모두 거두어 연나라로 돌아가며,
 '악의'에게 다시 제나라의 항복하지 않은 성들을 모두 평정하라는 명을 내렸다. ]
 

  

 樂毅留徇齊五歲, 下齊七十餘城, 皆爲郡縣以屬燕, 唯獨莒· 即墨未服.   

 會燕昭王死, 子立爲燕惠王. 惠王自爲太子時嘗不快於樂毅, 及即位, 齊之田單聞之, 乃縱反閒於燕.

 (악의유순제오세, 하제칠십여성, 개위군현이속연, 유독거· 즉묵미복.   

 회연소왕사, 자입위연혜왕.  혜왕자위태자시상불쾌어악의, 급즉위, 제지전단문지, 내종반간어연. )   


 ['악의'가 5년 동안 제나라 땅을 순행하면서 70여 개 성을 점령하고 군현으로 만들어 연나라에 복속시켰으나

 오직 "거성"과 "즉묵성"만은 함락시키지 못했다. 
 그때 연나라에서는 '소왕'이 죽고 그 아들 '혜왕'이 새로 연나라 왕의 자리에 올랐다. 
 

 '혜왕'은 태자 시절부터 '악의'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내 연나라에 태자가 왕위를 물려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제나라의 장수 '전단'이 반간계를 쓰기 위해  

 첩자를 연나라로 보내며 다음과 같은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 

   

 曰:「 齊城不下者兩城耳.  然所以不早拔者, 聞樂毅與燕新王有隙, 欲連兵且留齊, 

 南面而王齊.  齊之所患, 唯恐他將之來. 」 
 
(왈 : 「 제성불하자양성이.  연소이불조발자, 문악의여연신왕유극, 욕연병차류제, 
 

 남면이왕제.  제지소환, 유공타장지래. 」 ) 

 ​[이르기를 : " 제나라의 성읍 가운데 점령하지 못한 두 곳이 있다. 

 아직 함락시키지 못한 이유는 '악의'가 연나라의 새로운 왕과 사이가 좋지 않아서 
 군사를 계속 거느린 체 제나라에 머물면서 남면하여 제나라 왕이 되려고 하기 때문이다.  
 

 제나라의 걱정은 오로지 '악의'를 대신해서 다른 장수가 오는 경우이다. " 라고 하였다.] 

   

 於是燕惠王固已疑樂毅, 得齊反閒, 乃使騎劫代將, 而召樂毅. 樂毅知燕惠王之不善代之, 畏誅, 

 遂西降趙.  趙封樂毅於觀津, 號曰望諸君.  尊寵樂毅以警動於燕· 齊.
 
(어시연혜왕고이의악의, 득제반간, 내사기겁대장, 이소악의.  악의지연혜왕지불선대지, 외주,
 

 수서항조.  조봉악의어관진, 호왈망제군.  존총악의이경동어연· 제. )   


 [마침 연'혜왕'은 그 소문을 듣고 '악의'를 굳게 의심한 나머지 제나라의 반간계에 걸려 들어 

 '기겁'을 보내 대장의 직을 대신하게 하고 '악의'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악의'는 연왕이 자기를 좋지 않은 감정으로 대장의 직에서 파면시킨 것을 알고 있으므로  

 연나라로 돌아가면 주살될 것이 두려워, 마침내 서쪽의 조나라에 투항하였다.
 조나라는 '악의'에게 "관진"을 봉지로 하사하고 '망제군'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조나라는 '악의'를 높이 받들고 후대하는 한편 연나라와 제나라를 압박하였다. ]
   
 齊田單後與騎劫戰, 果設詐誑燕軍, 遂破騎劫於即墨下, 
 

 而轉戰逐燕, 北至河上, 盡復得齊城, 而迎襄王於莒, 入于臨菑.
 
(제전단후여기겁전, 과설사광연군, 수파기겁어즉묵하,
 

 이전전축연, 북지하상, 진복득제성, 이영양왕어거, 입우임치. )   


 [제나라 장수 '전단'은 후에 '악의'가 파면 당한것을 알고 '기겁'의 군대와 전투를 벌였으며,  
 

 그 결과 연나라 군사들을 속여 함정에 빠뜨려 마침내 '기겁'의 군대를 "즉묵성" 밑에서 크게 물리치고,   

 계속해서 전투를 벌려 연나라 군사들을 북쪽의 황하까지 몰아내고 제나라의 모든 땅을 수복하였으며 
 이어서 "거성"에서 제'민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제'양왕'을 맞이하여 "임치"로 입성하였다. ]
 

   

 燕惠王後悔使騎劫代樂毅, 以故破軍亡將失齊;又怨樂毅之降趙, 恐趙用樂毅而乘燕之獘以伐燕.  
 
(연혜왕후회사기겁대악의, 이고파군망장실제 ; 우원악의지항조, 공조용락의이승연지폐이벌연. )   


 [연'혜왕'은 나중에 '악의'를 쫓아내고 '기겁'을 대신 대장으로 삼아 싸움에서 지고 장수를 죽게 만들어  
 

 결국 제나라의 땅을 모두 잃어버린 일을 후회하였으며 ; 또한 연'혜왕'은 본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조나라에 항복한 '악의'를 원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조나라가 '악의'를 이용하여 연나라가

 제나라와의 오랜 싸움으로 피폐해진 틈을 타서 공격해 오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 

   

 燕惠王乃使人讓樂毅, 且謝之曰:「 先王舉國而委將軍, 將軍爲燕破齊, 報先王之讎,  

 天下莫不震動, 寡人豈敢一日而忘將軍之功哉! 會先王棄群臣, 寡人新即位, 左右誤寡人. 

 寡人之使騎劫代將軍, 爲將軍久暴露於外, 故召將軍且休, 計事.  將軍過聽, 以與寡人有隙,

 遂捐燕歸趙.  將軍自爲計則可矣, 而亦何以報先王之所以遇將軍之意乎 ? 」

 (연혜왕내사인양악의, 차사지왈 : 「 선왕거국이위장군, 장군위연파제, 보선왕지수,

 천하막불진동, 과인개감일일이망장군지공재 !  회선왕기군신, 과인신즉위, 좌우오과인.  

 과인지사기겁대장군, 위장군구폭로어외, 고소장군차휴, 계사.  장군과청, 이여과인유극,  

 수연연귀조.  장군자위계즉가의, 이역하이보선왕지소이우장군지의호 ? 」) 

 

 [연'혜왕'은 즉시 사자를 보내 '악의'를 책망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사죄의 말을 전하기를 : 

  " 선왕께서는 이 연나라의 모든 것을 장군에게 맡기셨고, 장군은 연나라를 위해 제나라를 무찌르고  

 선왕의 원수를 갚았을때 천하에 장군의 공이 퍼져 나가지 않은 곳이 없었는데, 
 과인이 어찌 감히 단 하루라도 장군이 이룬 공을 잊을 수 있었겠소 !
   때마침 선왕께서 군신들을  

 멀리한 채 돌아가시고, 과인이 새로 즉위하자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과인을 그르치게 만들었소.

 과인이 '기겁'으로 하여금 장군의 자리를 대신하게 했던 것은 그대가 오랫동안 전쟁터를 돌며  

 비바람과 이슬을 맞으며 고생한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하여 잠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며 후일을 도모하기 

 위함이었소.  그러나 장군은 나의 뜻을 무시하여 과인과의 사이에 틈이 벌어지고 마침내 장군은 연나라를  

 버리고 조나라에 의탁하였소.  장군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위한 계책으로는 좋을지는 모르겠으나,   

 선왕께서 장군이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보살펴 준 은혜를 어떻게 보답하려 하시오 ? "라고 하였다. ]  

 

 樂毅報遺燕惠王書曰: 臣不佞, 不能奉承王命, 以順左右之心, 恐傷先王之明, 有害足下之義,  

 故遁逃走趙.  今足下使人數之以罪, 臣恐侍御者不察先王之所以畜幸臣之理, 又不白臣之所以事先王之心,  

 故敢以書對.  臣聞賢聖之君不以祿私親, 其功多者賞之, 其能當者處之.   

 (악의보유연혜왕서왈 : 신불녕, 불능봉승왕명, 이순좌우지심, 공상선왕지명, 유해족하지의, 

 고둔도주조.  금족하사인수지이죄, 신공시어자불찰선왕지소이축행신지리, 우불백신지소이사선왕지심, 

 고감이서대.  신문현성지군불이록사친, 기공다자상지, 기능당자처지. 

   
 ['악의'는 연'혜왕'이 보낸 서신을 읽고 나서 답장하기를 : " 신은 재주가 없어, 왕의 좌우에 있던 신하들의
 

 뜻에 따라 왕명을 받들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선왕의 영명하신 뜻을 해치고 족하의 도의를 그르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몸을 숨겨 여기 조나라로 도망쳐 왔습니다. 

 지금 족하께서는 사람을 보내서 신이 지은 죄를 열거하며 책망하셨지만, 신이 두렵게 생각하는 것은 

 대왕을 곁에서 모시고 있는 자들이 아직도 선왕께서 신을 받아들여 총애한 까닭을 살피지 못하고,   

 또한 신이 선왕을 모셨던 본래의 마음을 명백히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되어,  

 그래서 신은 감히 서면으로나마 대왕께 올립니다.  

 신은 듣기로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는 가까운 측근이라고 해서 복록을 내리지 않고,  

 공이 많은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자리를 주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察能而授官者, 成功之君也;論行而結交者, 立名之士也. 臣竊觀先王之舉也, 見有高世主之心,    

 故假節於魏, 以身得察於燕.  先王過舉, 廁之賓客之中, 立之群臣之上, 不謀父兄, 以爲亞卿. 

 臣竊不自知, 自以爲奉令承教, 可幸無罪, 故受令而不辭.   

 先王命之曰:「 我有積怨深怒於齊, 不量輕弱, 而欲以齊爲事. 」

 (고찰능이수관자, 성공지군야 ; 논행이결교자, 입명지사야.  신절관선왕지거야, 견유고세주지심,

  고가절어위, 이신득찰어연.  선왕과거, 측지빈객지중, 입지군신지상, 불모부형, 이위아경. 

 신절불자지, 자이위봉령승교, 가행무죄, 고수령이불사.   

 선왕명지왈 : 「 아유적원심노어제, 불량경약, 이욕이제위사. 」 )


 [그러므로 사람의 재능을 살펴 관직을 주어야만 성공하는 군주가 되며 ;  

 그 행적을 논하여 친구를 사귀어야 명성을 세울 수 있는 선비가 되는 법입니다. 

 신이 가만히 살펴보건대 선왕께서 인재를 등용하시던 방법이 세상의 군주들과는 다른 높은 식견을 갖고  

 있었으며, 선왕께서는 위나라 사신의 부절을 빌려 연나라로 들어간 신의 재능을 알아보셨습니다.   

 선왕께서는 신을 과분하게 대접하여 이름 높은 빈객들 가운데에 끼게 하시고, 
 다른 신하들의 위에 세워 놓으셨으며, 또한 왕실의 종친들과 상의도 없이 신을 아경으로 삼으셨습니다.  

 신은 마음속으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명령을 따라 가르침을 받들게 되면  

 다행히 죄는 짓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사양하지 않고 명령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선왕께서는 신에게 명하시기를 : " 나는 제나라에 대해 깊은 원한을 품고 있어, 우리 연나라의 국력이  

 가볍고 약함에 개의치 않고, 제나라를 도모하는 일이 과인의 과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소. "라고 하자.

 

 臣曰:「 夫齊, 霸國之餘業而最勝之遺事也.  練於兵甲, 習於戰攻. 王若欲伐之, 必與天下圖之.    

 與天下圖之, 莫若結於趙. 且又淮北· 宋地, 楚· 魏之所欲也, 趙若許而約四國攻之, 齊可大破也.」 

 (신왈 : 「 부제, 패국지여업이최승지유사야.  연어병갑, 습어전공.  왕약욕벌지, 필여천하도지.   

 여천하도지, 막약결어조.  차우회북· 송지, 초· 위지소욕야, 조약허이약사국공지, 제가대파야. 」   


 [신이 대답하기를 : " 대체로 제나라는 일찍이 천하를 제패한 업적이 있으며 전쟁에서 승리한 경험이  
 

 많은 나라입니다. 병사와 무기가 잘 갖추어져 있고 싸움을 하여 공을 세우는데 능숙합니다.   

 대왕께서 만약에  제나라를 정벌하시려면 반드시 천하의 제후국들과 힘을 합쳐야만 합니다. 
 천하의 제후국들과 함께 일을 도모하는 데에는 먼저 조나라와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그리고 초나라와 위나라는 "회수" 북쪽과 송나라의 땅을 탐내고 있으므로 
 만일 조나라가 우리와의 동맹을 승낙하고 초나라와 위나라를 참전시켜 그 결과 네 나라가 함께 공격한다면,
 

 제나라를 크게 무찌를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先王以爲然, 具符節南使臣於趙.  顧反命, 起兵擊齊.  以天之道, 先王之靈,  

 河北之地隨先王而舉之濟上.  濟上之軍受命擊齊, 大敗齊人.  輕卒銳兵, 長驅至國. 
 
(선왕이위연, 구부절남사신어조.  고반명, 기병격제.  이천지도, 선왕지령, 
 

 하북지지수선왕이거지제상.  제상지군수명격제, 대패제인.  경졸예병, 장구지국.  

 
 [선왕께서 신의 말이 옳다고 생각하시어, 신에게 부절을 주어 남쪽의 조나라에 사신으로 보내셨습니다.
 신이 조나라에서 돌아와 복명하자 드디어 군사를 일으켜 신으로 하여금 제나라를 공격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늘의 도리와 선왕의 신령함에 힘입어, 하수 이북에 있던 조나라와 위나라가 선왕의 뒤를 따라
 

 "제수" 강변에 집결하였습니다.  그리고 "제수" 강변에서 연합군 모두와 함께 선왕의 명을 받들어  

 제나라를 공격하여 그 군사들을 크게 무찔렀습니다. 연합군 가운데 동작이 날쌔고 정예한 군사들을  

 이끌고 거침없이 진격하여 이윽고 제나라의 도성인 "임치"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齊王遁而走莒, 僅以身免;珠玉財寶車甲珍器盡收入于燕. 齊器設於寧臺, 大呂陳於元英, 

 故鼎反乎磿室, 薊丘之植植於汶篁, 自五伯已來, 功未有及先王者也. 

 (제왕둔이주거, 근이신면 ; 주옥재보거갑진기진수입우연. 제기설어녕대, 대려진어원영, 

 고정반호력실, 계구지식식어문황, 자오백이래, 공미유급선왕자야. 


 [제나라 왕은 달아나 "거성"으로 들어가 겨우 죽음만 면했음을 다행스럽게 생각하였으며 ;  
 

 선왕께서는 "임치성" 안에 있던 제나라의 주옥, 재보, 병거, 무기 및 진기한 물건들을 모두 연나라에  

 들여 보냈습니다.  제나라에서 가져온 기물들을 영대에 진열하고,  

 대려라는 제나라의 유명한 종은 "원영궁" 궁문 앞에 달아 놓았으며, 
 또한 옛날 제나라가 빼앗아 간 정(鼎)은 찾아와 궁궐의 역실에 두고,
 

 "계성"의 언덕에는 "문수" 강변에 서식하는 문황이라는 대나무를 옮겨 심을 수 있었으며,
 오백(오패) 이래로 지금까지 선왕보다 더 큰 공업을 이룬 군주는 없었습니다.
 

 

 先王以爲慊於志, 故裂地而封之, 使得比小國諸侯.  臣竊不自知, 自以爲奉命承教, 可幸無罪,  

 是以受命不辭.  臣聞賢聖之君, 功立而不廢, 故著於春秋;蚤知之士, 名成而不毀, 故稱於後世.  
 (선왕이위겸어지, 고열지이봉지, 사득비소국제후.  신절불자지, 자이위봉명승교, 가행무죄,
 

 시이수명불사.  신문현성지군, 공입이불폐, 고저어춘추 ; 조지지사, 명성이불훼, 고칭어후세. 


 [선왕께서는 이에 뜻을 이루었다고 만족하시어 나라의 땅을 떼어 신에게 그곳의 봉지를 하사하시고 
 

 작은 나라의 제후들과 함께 설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신은 마음속으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으나, 명령을 따라 가르침을 받들게 되면  

 다행히 죄는 짓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여 사양하지 않고 명령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신이 듣기로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는 공을 세우게 되면 없어지지 않고 《춘추》에 그 행적이 오르게 되고 ;
 선견지명이 있는 선비가 공명을 이루게 되면 그 명성이 훼손되지 않고 
 

 후세 사람들의 칭송을 받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若先王之報怨雪恥, 夷萬乘之彊國, 收八百歲之蓄積, 及至棄群臣之日, 餘教未衰, 執政任事之臣,  

 脩法令, 慎庶孽, 施及乎萌隸, 皆可以教後世.  臣聞之, 善作者不必善成, 善始者不必善終.
 
(약선왕지보원설치, 이만승지강국, 수팔백세지축적, 급지기군신지일, 여교미쇠, 집정임사지신, 
 

 수법령, 신서얼, 시급호맹례, 개가이교후세.  신문지, 선작자불필선성, 선시자불필선종.  


 [선왕께서는 원한과 치욕을 보복으로 씻어 내셨으며, 만승지국의 강대한 제나라를 평정하고, 
 

 제나라의 8백 년 동안 축적한 보물과 제기를 거두어 들이고,
 또한 선왕께서 죽음에 이르셨음에도 생전에 남기신 가르침이 결코 쇠하지 않았으며, 
 

 정사를 담당한 신하들에게 지시하여 법령을 정비하고, 왕실 종친의 적자와 서자를 신중하게 구분하였으며, 

 그 가르침을 서민에서 종에게까지 고루 미치게 하여 후세의 교훈이 되게 한 것은 모두 선왕의 덕망 

 때문이었습니다. 신이 듣기에 일을 잘 꾸민다고 해서 반드시 일을 잘 성사시키는 것이 아니고,  

 시작이 훌륭하다고 해서 반드시 일을 잘 끝맺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昔伍子胥說聽於闔閭, 而吳王遠跡至郢;夫差弗是也, 賜之鴟夷而浮之江. 
 
(석오자서설청어합려, 이오왕원적지영 ; 부차불시야, 사지치이이부지강. 

 
 [옛날 '오자서'가 '합려'를 설득하자, '합려'가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는 멀리 떨어져 있던

 초나라의 도읍  "영"을 점령하여 공적을 이룰 수 있었으나 ; 그의 아들 '부차'는 '오자서'의 말이 옳지 않다고 

 하여, 그에게 죽음까지 내리고 그의 시신을 말가죽 자루에 넣어 강물에 던져버렸습니다. 

   

 吳王不寤先論之可以立功, 故沈子胥而不悔;子胥不蚤見主之不同量, 是以至於入江而不化.
 
(오왕불오선논지거이입공, 고침자서이불회 ; 자서불조견주지불동량, 시이지어입강이불화. 


 [오왕 '부차'는 '오자서'가 건의한 의견을 받아들일 경우 공을 세울 수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그를 죽여 그 시신을 강물에 던져버리고도 후회하지 않았으며 ;
 '오자서'도 두 군주의 기량이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시신이 
강물에 던져지게 됨에도

 자기의 의견을 바꾸지 않았던 것입니다.  

 

 夫免身立功, 以明先王之跡, 臣之上計也.  離毀辱之誹謗, 墮先王之名, 臣之所大恐也. 

 臨不測之罪, 以幸爲利, 義之所不敢出也.  臣聞古之君子, 交絕不出惡聲;忠臣去國, 不絜其名.
 
(부면신입공, 이명선왕지적, 신지상계야.  이훼욕지비방, 타선왕지명, 신지소대공야.  
 

 임불측지죄, 이행위리, 의지소불감출야.  신문고지군자, 교절불출악성 ; 충신거국, 불결기명. 

 
 [무릇 신이 생각하기에는 죽음을 면하고 공을 세울 수 있는 방법은 선왕의 공적을 밝히는 일만이
 

 최상의 계책인것 같습니다.  신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받고 참소를 당하여 선왕의 명성을 떨어트리는

 행위야말로 신이 가장 두려워했던 일이었습니다. 
 예측하지 못했던 죄를 지은 신이 조나라를 도와 연나라를 공격함으로써 어부지리를 얻는 행위는, 
 

 도의상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신이 듣기에 옛날 군자는 절교를 하더라도 상대의 단점을 말하지 않고 ;

 충신은 그 나라를 떠나더라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臣雖不佞, 數奉教於君子矣.  恐侍御者之親左右之說, 不察疏遠之行,  

 故敢獻書以聞, 唯君王之留意焉. 」
 
(신수불녕, 삭봉교어군자의.  공시어자지친좌우지설, 불찰소원지행, 
 

 고감헌서이문, 유군왕지류의언. 」 )  


 [신은 비록 재능은 없으나 자주 군자의 가르침을 받들어왔습니다. 

 ​다만 대왕께서 주위의 시종과 측근들의 말을 듣고 신을 멀리 내치신 결과 신이 행한 행동을 살피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감히 글로 써서 바치오니, 바라건대 군왕께서는 신의 뜻을 헤아려 주시옵소서 "하였다.]  

   

 於是燕王復以樂毅子樂閒, 爲昌國君;而樂毅往來復通燕, 燕· 趙以爲客卿.  樂毅卒於趙.
 
(어시연왕부이악의자악간, 위창국군 ; 이악의왕래부통연, 연· 조이위객경.  악의졸어조. )   


 [이에 연'혜왕'은 '악의'의 답장을 받아 보고 '악의'의 아들 '악간'을 불러 '악의'가 갖고 있었던 
 

 '창국군'에 다시 봉했다.  그 후로는 '악의'는 다시 연나라에 왕래를 하게 되었고, 

 연나라와 조나라는 동시에 그를 객경에 임명했다.  '악의'는 조나라에서 죽었다. ] 

   

 樂閒居燕三十餘年, 燕王喜用其相栗腹之計, 欲攻趙, 而問昌國君樂閒. 

 樂閒曰:「 趙, 四戰之國也, 其民習兵, 伐之不可. 」 
 
(악간거연삼십여년, 연왕희용기상율복지계, 욕공조, 이문창국군악간.
 

 악간왈 : 「 조, 사전지국야, 기민습병, 벌지불가. 」 ) 


 ['악간'이 연나라에서 살게 된지 30년이 되는 해에 연왕 '희'가 그 재상 '율복'의 계책에 따라 
 

 조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악간'을 불러 의견을 물었다. 
 '악간'이 말하기를 : " 조나라는 사방의 적과 싸움을 하여 그 백성들은 싸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조나라를 결코 정벌하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燕王不聽, 遂伐趙.  趙使廉頗擊之, 大破栗腹之軍於鄗, 禽栗腹· 樂乘. 

 樂乘者, 樂閒之宗也.  於是樂閒奔趙, 趙遂圍燕.  燕重割地以與趙和, 趙乃解而去.
 (연왕불청, 수벌조.  조사염파격지, 대파율복지군어호, 금율복· 악승.  
 

 악승자, 악간지종야.  어시악간분조, 조수위연.  연중할지이여조화, 조내해이거. )   


 [연왕은 '악간'을 말을 듣지 않고 '율복'을 대장으로 삼아 조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조나라는 장군 '염파'를 내보내 연나라 군대와 전투를 벌였고, '염파'는 연나라 군사를 "호" 땅에서  

 크게 무찌르고 그 장수 '율복'과 '악승'을 사로잡았다.  '악승'은 '악간'의 일족이었다. 
 '악간'은 연좌되어 받게 될 죄를 두려워하여 조나라로 달아났으며,
 

 조나라는 마침내 '염파'와 '악간' 및 '악승'을 장수로 삼아 연나라를 포위하였다. 
 연나라는 땅을 떼어 조나라에 바치고 화친을 맺자, 조나라는 포위를 풀고 물러갔다. ]
 

 

 燕王恨不用樂閒, 樂閒既在趙, 乃遺樂閒書曰:「 紂之時, 箕子不用, 犯諫不怠, 以冀其聽; 

 商容不達, 身祇辱焉, 以冀其變.  及民志不入, 獄囚自出, 然後二子退隱. 

 故紂負桀暴之累, 二子不失忠聖之名.  何者? 其憂患之盡矣.  今寡人雖愚, 不若紂之暴也; 

 燕民雖亂, 不若殷 民之甚也.  室有語, 不相盡, 以告鄰里.  二者, 寡人不爲君取也. 」

 (연왕한불용악간, 악간기재조, 내유악간서왈 : 「 주지시, 기자불용, 범간불태, 이기기청 ;

  상용불달, 신지욕언, 이기기변.   급민지불입, 옥수자출, 연후이자퇴은. 

 고주부걸폭지루, 이자불실충성지명.  하자 ?  기우환지진의.  금과인수우, 불약주지폭야, ; 

 연민수란, 불약은민지심야.  실유어, 불상진, 이고린리.  이자, 과인불위군취야. 」 ) 

 

 [연왕은 '악간'의 의견을 듣지 않고 조나라를 공격한 일을 후회했으나 

 '악간'은 이미 조나라로 가 버린 뒤였으므로 연왕이 '악간'에게 편지를 써서 이르기를 : 
 " 은나라 때 '주왕'이 '기자'의 간함을 듣지 않았으나 '기자'는 계속해서 간하기를 멈추지 않으며 
 

 자기의 말을 들어주기를 원했소.  '상용'은 그 말이 '주왕'에게 통하지 않고 그 몸은 추방되어 

 다만 욕됨을 입었지만 '주왕'의 마음이 변하기를 바랐소.  상나라 백성들의 마음이 떠나고  

 감옥에 갇힌 죄수들이 스스로 탈출할 때가 되어서야 두 사람은 조정에서 물라나와 몸을 숨겼소.   

 그렇기 때문에 '주왕'은 포학한 임금이라는 허물을 썼지만 '기자'와 '상용' 두 사람은 충성스럽고 어진  

 이름을 잃지 않게 되었소.  무슨 까닭이겠소 ?  그 두 사람은 끝까지 나라의 일을 걱정했기 때문이오.   

 지금 과인이 비록 어리석은 군주라 하나 주왕과 같은 폭군은 아니라고 생각하오 ;
 연나라 백성들이 비록 어지럽지만 은나라 백성들처럼 심하지는 않다고 생각하오. 
 

 집안에서의 할 말을 다하지 못하고 그것을 이웃집에 고하는 행위는 잘못된 일이오. 
 그대가 자기의 의견을 계속 주장하여 나를 설득하지도 않고, 과인을 배신하고 조나라로 가버린 일은  
 

 결코 그대를 위해서도 취할 바가 아닌 것이오 "라고 하였다. ] 

 

 樂閒· 樂乘怨燕不聽其計, 二人卒留趙.  趙封樂乘爲武襄君.   

 其明年, 樂乘· 廉頗爲趙圍燕, 燕重禮以和, 乃解. 
 
(악간· 악승원연불청기계, 이인졸류조.  조봉악승위무양군.  
 

 기명년, 악승· 염파위조위연, 연중례이화, 내해.)

   
 ['악간'과 '악승'은 연왕이 자기들의 계책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에 원망을 하며   
 

 두 사람 모두가 연나라에 돌아가지 않고 조나라에 머물렀다. 조나라는 '악승'을 '무양군'에 봉했다.   

 그 다음 해에 '악승'과 '염파'는 조나라의 장수가 되어 연나라의 도성을 포위하자, 
 연나라는 많은 예물을 바치고 강화를 맺었으며, 즉시 화해하였다. ]
 

   

 後五歲, 趙孝成王卒.  襄王使樂乘代廉頗.  廉頗攻樂乘, 樂乘走, 廉頗亡入魏.   

 其後十六年而秦滅趙.  其後二十餘年, 高帝過趙, 問:「 樂毅有後世乎 ? 」
 
(후오세, 조효성왕졸.  양왕사악승대염파.  염파공악승, 악승주, 염파망입위.  
 

 기후십육년이진멸조.  기후이십여년, 고제과조, 문 : 「 악의유후세호 ? 」  )   


 [5년 후 조'효성왕'이 죽었다.  '양왕'은 '염파'를 대신해서 '악승'을 대장으로 임명하였다.  
 '염파'는 불복하고 '악승'을 공격하자, '악승'은 도망가고 '염파'는 조나라를 떠나 위나라로 망명했다. 
 

 그후 16년 후에 진나라는 조나라를 멸하였다.  그후 20여년 후에 한고조 '유방'이 조나라를 지나갈 때   

 주위의 측근들에게 묻기를 : " '악의'의 후손들은 있는가 ? "라고 하자. ] 

   

 對曰:「 有樂叔. 」  高帝封之樂卿, 號曰華成君.  華成君, 樂毅之孫也. 
 (대왈 : 「 유락숙. 」  고제봉지악경, 호왈화성군.  화성군, 악의지손야. )   


 [측근들이 대답하기를 : " '악숙'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고조'는 '악숙'을 악경에 봉하고 '화성군'이라는 봉호를 내렸다.  화성군 '악숙'은 '악의'의 손자다. ]
 
 而樂氏之族有樂瑕公· 樂臣公, 趙且爲秦所滅, 亡之齊高密.  
 

 樂臣公善修黃帝· 老子之言, 顯聞於齊, 稱賢師.
 
(이악씨지족유악하공· 악신공, 조차위진소멸, 망지제고밀.  
 

 악신공선수황제· 노자지언, 현문어제, 칭현사. )  


 [악씨의 일족 중에는 '악하공', '악신공'이 있었는데 조나라가 진나라에 의해 멸망당하자, 
 

 그들은 제나라의 "고밀"로 도망가서 살았다. 
 '악신공'은 '황제'와 '노자'의 학설을 갈고 닦음으로써 제나라에 명성이 알려졌으며,  
 

 어진 스승으로 칭송을 받았다. ] 


 

 太史公曰:始齊之蒯通及主父偃讀樂毅之報燕王書, 未嘗不廢書而泣也. 

 樂臣公學黃帝· 老子, 其本師號曰河上丈人, 不知其所出. 

 河上丈人教安期生, 安期生教毛翕公, 毛翕公教樂瑕公, 樂瑕公教樂臣公, 樂臣公教蓋公. 

 蓋公教於齊高密· 膠西, 爲曹相國師.

 (태사공왈 : 시제지괴통급주부언독악의지보연왕서, 미상불폐서이읍야. 

 악신공학황제· 노자, 기본사호왈하상장인, 불지기소출.   

 하상장인교안기생, 안기생교모흡공, 모흡공교악하공, 악하공교악신공, 악신공교개공. 

 개공교어제고밀· 교서, 위조상국사. ) 

  
 [태사공이 말하기를 :  옛날 제나라의 '괴통'('한신'의 모사)과 '주보언'(한무제때 재상)은

 '악의'가 연왕에게 쓴 서한을 읽을 때마다 그 책을 덮고 울었다고 했다. 
 '악신공'은 '황제'와 '노자'의 학설을 배웠으나, 그의 원래 스승은 '하상장인'이라고 불리던 사람이었는데

 어디 출신인지는 알 수 없다. '하상장인'이 '안기생'을 가르치고 '안기생'은 '모흡공'을 가르치고,

 '모흡공'은 악하공'을 가르치고, '악하공'은 '악신공'을 가르치고, 악신공은 다시 '개공'을 가르쳤다. 
 '개공'은 "고밀"과 "교서"에서 제자들을 모아 가르쳤으며, '개공'은 조나라 상국 '참'의 스승이다. ]

 

【 각주 】

1) 사구(沙丘)의 난 : 무령왕의 원래 태자는 조장(趙章)이었으나 작은아들 하(何)를 총애하여 장을 폐하고

    하를 세웠다. 하가 조혜문왕이다. 곧이어 무령왕 자신은 나라 밖의 일에 전념하겠다는 구실로 조왕의

    자리를 하(何)에게 넘겨주고 스스로는 주보(主父)라고 칭했다. 후에 무령왕이 마음이 바뀌어 조나라를 둘로

    나누어 장(章)을 대왕(代王)에 임명하려고 했으나 측근의 반대로 시행하지 못했다. 

    장이 그 소식을 듣고 무령왕이 혜문왕과 함께 사구(沙丘)에 있던 행궁에 행차한 틈을 이용하여 난을 일으켜 

    혜문왕을 살해하려고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장은 목숨을 구하여 무령왕의 숙소로 피했다가 조성(趙成)과 이태(李兌)에게 잡혀 살해되고

    이어서 후환을 두려워한 두 사람은 사구궁을 포위하여 무령왕을 석 달만에 굶어 죽게 만들었다.

2) 제민왕(齊湣王) : 재위 기원전 301년-284년

3) 聖賢之君不以祿私親, 其功多者賞之, 其能當者處之.  어질고 성스러운 군주는 가까운 측근이라고 해서

    복록을 내리지 않고, 공이 많은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자리를 주는 것이다.

4) 원문은 ‘이행어리(以幸漁利)’로 어부지리(漁父之利)란 말은 제나라와 싸워 피폐해진 연나라를 공격하여 개인적인

    명성을 얻는 다는 말이다. 연혜왕이 악의가 자기에게 앙심을 품고 조나라 군사를 동원하여 제나라와의 싸움에

    지친 연나라를 공격해 올 것을 걱정하여 편지를 보냈기 때문에 악의는 그럴 생각이 없다는 것을 밝혀

    연왕을 안심시킨 것이다.

5) 고밀(高密) : 지금의 산동성 고밀현(高密縣) 경내에 있었던 고을.

6) 괴통(蒯通) : 본명은 괴철(蒯徹)이다. 한초(漢楚) 분쟁시 제왕(齊王)이 된 한신(韓信)의 모사다.

    제왕이 된 한신에게 한고조를 배신하고 독립하여 천하를 삼분할 것을 권했으나 한신은 듣지 않았다.

    후에 한신은 한고조가 한왕조를 창건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지만 그의 능력을 두려워한 한고조에 의해 잡혀

    살해되었다.

7) 주보언(主父偃) : 태어난 해는 알 수 없고 기원전 126년에 죽은 서한(西漢) 때의 대신이다.

    성은 주보이고 이름은 언이다. 지금의 산동성 치박시(淄博市) 동북의 임치(臨淄) 인이다.

    종횡설, 주역, 춘추 및 백가의 학술에 밝았다. 어렸을 때 집안이 가난하여 고향을 떠나 장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장안에서 위청(衛靑)의 천거를 받아 무제에 의해 낭중의 벼슬을 얻었다. 다시 알자(謁者)로 옮기고

    후에 중대부(中大夫)가 되었다. 그가 관직에 있을 때 제후들의 세력을 약화시켜야 한다고 건의하자

    무제는 그 의견을 쫓아 <추은령(推恩令)>이라는 조서를 내려 제후들로 하여금 그 자제들에게

    소유의 봉지를 나누어 후로 봉하도록 했다. 그 후로 강력한 지방 제후국들은 분열되어 세력이 약화되었다.

    기원전 127년에 한나라의 승상이 되자 제왕을 협박하여 자살하게 만들고 제후들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로 하옥되어 멸족되었다.

 

    ​            

                                                                  악의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