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孫子吳起列傳

第 五. 孫子吳起列傳(손자오기열전)

덕치/이두진 2021. 7. 14. 18:09

 

            史記 列傳

 

  ​第 五.  孫子吳起列傳(손자오기열전)

 ​孫子武者, 齊人也.  以兵法見於吳王闔廬. 

 闔廬曰 : 「子之十三篇, 吾盡觀之矣, 可以小試勒兵乎 ? 」  對曰 : 「 可. 」
 
(손자무자, 제인야.  이병법현어오왕합려. 

 합려왈 : 「자지십삼편, 오진관지의, 가이소시륵병호 ? 」  대왈 : 「 가. 」)


 [손자 '무'라는 사람은 제나라 사람이다. 

 병법으로 이름이 알려졌기 때문에 오나라 왕 '합려'에게 초빙되었다.
 '합려'가 말하기를 :  “그대가 지은 병법 13편을 내가 모두 읽어보았소, 

 적은 군사로 훈련해 보일 수 있겠소 ? ”하자,

 '손무'가 대답하기를 : “ 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闔廬曰 : 「可試以婦人乎 ?」  曰:「 可. 」 於是許之, 出宮中美女, 得百八十人. 

 孫子分爲二隊, 以王之寵姬二人各爲隊長, 皆令持戟.
 
(합려왈 : 「가시이부인호 ? 」  왈 : 「가. 」  어시허지, 출궁중미녀, 득백팔십인. 

 손자분위이대, 이왕지총희이인각위대장, 개령지극.)


 ['합려'가 묻기를 :  “ 그러면 부녀자라도 가능하겠소 ? ”라고 하니, 

 '손무'가 대답하기를 : “가능합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합려'는 '손무'에게 궁중의 미녀 중 모두 180명을 주어 그의 용병술을

 시험해 보도록 허락했다  '손무'는 그들을 두개 편대로 나누어 '합려'가 사랑하는

 총희 두 사람을 각 편대의 대장으로 삼고 모두에게 창을 들게 하였다. ]

 

 令之曰 : 「 汝知而心與左右手背乎?」  婦人曰:「 知之. 」 

 孫子曰 : 「前, 則視心; 左, 視左手; 右, 視右手; 後, 卽視背. 」  婦人曰:「 諾. 」
 
(령지왈 : 「 여지이심여좌우수배호?」  부인왈 : 「 지지. 」 

 손자왈 : 「전, 즉시심; 좌, 시좌수; 우, 시우수; 후, 즉시배. 」  부인왈 : 「 낙. 」)


 [그리고 명령을 내리기를 : " 너희들은 가슴, 왼손, 오른손, 뒤를 알고 있는가 ? ”하자.  

 궁녀들이 말하기를 : " 알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손자'가 말하기를 : " 앞이라고 하면 가슴을 살피고 ; 좌라고 하면 왼쪽을 살피고 ;

 우라고 하면 오른쪽을 살피고 ; 뒤라고 하면 뒷쪽을 살핀다. ”라고 하니
 궁녀들이 말하기를 :  “ 알았습니다 ” 라고 하였다. ]

 

 約束旣布, 乃設鈇鉞, 卽三令五申之.  於是鼓之右, 婦人大笑.  

 孫子曰:「約束不明, 申令不熟, 將之罪也. 」  復三令五申而鼓之左, 婦人復大笑.
 
(약속기포, 내설부월, 즉삼령오신지.  어시고지우, 부인대소. 

 손자왈 : 「약속불명, 신령불숙, 장지죄야. 」  복삼령오신이고지좌, 부인복대소. )


 [이렇게 자기의 말을 군령으로 선포하고 '손자'는 부월을 설치했다. 

 곧이어 자기의 군령에 대하여 세 번을 명령하고(三令) 다섯 번을 거듭(五申)하여 

 궁녀들에게 설명했다. 이에 북을 치며 “우로”하고 구령을 내렸지만 궁녀들은 크게

 웃어대기만 했다.  '손자'가 말하기를 : " 군령이 분명하지 못하고, 명령 전달이

 충분치 못한 것은 대장의 죄이다.”라고 하고, 다시 군령에 대해 여러 차례 반복해서

 설명한 다음에 큰 북을 울리고 “좌로”라고 구령을 내렸지만,

 궁녀들은 여전히 크게 웃기만 할뿐이었다.]

 

 孫子曰:「約束不明, 申令不熟, 將之罪也;旣已明而不如法者, 吏士之罪也. 」 

 乃欲斬左右隊長.  吳王從臺上觀, 見且斬愛姬, 大駭.
 
(손자왈 : 「약속불명, 신령불숙, 장지죄야;기이명이불여법자, 리사지죄야. 」 

 내욕참좌우대장.  오왕종대상관, 견차참애희, 대해.)


 ['손자'가 말하기를 :  “군령이 분명치 못하고 전달이 불충분한 것은 장수의 죄이다 ;
 그러나 군령이 이미 분명히 전달되었는데도 병졸들이 규정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곧 군리와 군사들의 잘못이다.”라고 했다.  손자가 말을 마치고 즉시

 오왕의 애첩인 두 대장을 끌어내어 참수하려고 했다. 궁녀들을 훈련시키는 모습을

 관병대에서 참관하던 오왕 '합려'는 두 애첩이 끌려 나가 참수 당하려는 모습을 보고

 크게 놀랐다.]

 

 趣使使下令曰:「 寡人已知將軍能用兵矣,  寡人非此二姬, 食不甘味, 願勿斬也. 」 

 孫子曰:「 臣旣已受命爲將, 將在軍, 命有所不受. 」 
 
(취사사하령왈 : 「 과인이지장군능용병의,  과인비차이희, 식불감미, 원물참야. 」 

 손자왈 : 「신기이수명위장, 장재군, 군명유소불수. 」)

 
 [오왕은 황급히 전령을 '손자'에게 보내 명령을 내리기를 : “ 과인은 이미 장군이

 용병을 잘 할 수 있음을 알았소, 과인에게 그 두 애첩이 없다면 음식을 먹어도

 맛을 알 수 없을 정도이니, 부디 용서해 주기를 바라오.”라고 하였다.

 '손자'는 말하기를 : “신은 이미 임금의 명을 받아 장수가 되었습니다, 

장수가 군영에 있을 때는 비록 임금의 명이라도 받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하였다.]

 

 遂斬隊長二人以徇, 用其次爲隊長, 於是復鼓之. 

 婦人左右前後跪起皆中規矩繩墨, 無敢出聲. 
 
(수참대장이인이순, 용기차위대장, 어시복고지. 

 부인좌우전후궤기개중규구승묵, 무감출성.)


 ['손자'가 말을 마치고 오왕의 두 애첩을 참수형에 처해 그 목을 장대에 달아

 군사들에게 보였다. 이어서 임금이 그 다음으로 사랑하는 궁녀 두명을 뽑아

 대장으로 세웠다. 이에 다시 북을 울리고 구령을 내렸다. 

 그러자 궁녀들은 모두 좌로, 우로, 앞으로, 뒤로 등의 구령이나 꿇어앉거나

 일어서거나 모두 기율을 지켜 구령대로 따르며, 감히 다른 소리를 내지 못했다.]
 
 於是孫子使使報王曰:「兵旣整齊, 王可試下觀之, 唯王所欲用之, 雖赴水火猶可也. 」 

 吳王曰:「 將軍罷休就舍, 寡人不願下觀.」
 
(어시손자사사보왕왈 : 「병기정제, 왕가시하관지, 유왕소욕용지, 수부수화유가야. 」 

 오왕왈 : 「 장군파휴취사, 과인불원하관.」)

 
 [궁녀들이 구령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손자'는 비로소 오왕에게 전령을 보내어

 이르기를 :  “군사들이 이미 정비되었으니, 왕께서는 내려 오셔서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왕께서 그들을 부리고 싶다면 물속이건, 불구덩이 속이건 가리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왕은 말하기를 :  “장군은 훈련을 끝내고 숙사에 돌아가 쉬도록 하시오,

 과인은 내려가 군사를 부리고 싶지 않소.”라고 하였다.]

 

 孫子曰 : 「王徒好其言, 不能用其實. 」  於是闔廬知孫子能用兵, 卒以爲將. 

 西破彊楚, 入郢, 北威齊晉, 顯名諸侯, 孫子與有力焉.
 
(손자왈 : 「왕도호기언, 불능용기실. 」  어시합려지손자능용병, 졸이위장. 

 서파강초, 입영, 북위제진, 현명제후, 손자여유력언.)


 [이때 '손자'가 이르기를 :  “왕께서는 단지 제 병법의 이론만을 좋아하실 뿐이지, 

 병법을 실제로 사용하지는 못하실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합려'는 '손자'가 용병에 뛰어난 것을 인정하고 마침내는 그를 대장군으로

 등용하였다. 그 뒤 오나라가 서쪽으로 강대국인 초나라를 격파하고 수도인 "영도"를

 점령하였고, 북쪽으로는 제나라와 진나라에 위세를 떨치고,

 제후들 사이에서 그 이름을 크게 드러낸 일은 모두 손자의 능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孫武旣死, 後百餘歲有孫臏.  臏生阿鄄之閒, 臏亦孫武之後世子孫也. 

 孫臏嘗與龐涓俱學兵法, 龐涓旣事魏, 得爲惠王將軍. 
 
(손무기사, 후백여세유손빈.  빈생아견지한, 빈역손무지후세자손야. 

 손빈상여방연구학병법, 방연기사위, 득위혜왕장군.)

 
 ['손무'가 이미 죽고 백 년쯤 지나 '손빈'이 나타났다. 

 '손빈'은 제나라의 "아읍"과 "견읍"이라는 두 고을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손빈'은 '손무'의 후손이다. 일찍이 '방연'과 함께 '귀곡'선생 밑에서 병법을

공부하였고, 먼저 공부를 마친 '방연'은 위나라에 들어가 '혜왕' 밑에서 장군을

 지내게 되었다.]

 

 而自以爲能不及孫臏, 乃陰使召孫臏.  臏至, 龐涓恐其賢於己, 疾之,

 則以法刑斷其兩足而黥之, 欲隱勿見.  齊使者如梁, 孫臏以刑徒陰見, 說齊使. 
 
(이자이위능불급손빈, 내음사소손빈.  빈지, 방연공기현어기, 질지,

 즉이법형단기양족이경지, 욕은물현.  제사자여량, 손빈이형도음견, 설제사.)

 
 [그러나 스스로 자기의 능력이 '손빈'을 당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으므로

 아무도 몰래 사람을 보내 '손빈'을 위나라로 불러들였다. '손빈'이 도착하자,

 '방연'은 그의 재능이 자기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서 그를 법에 저촉했다는 누명을 씌워 그의 양다리를 자르고

 얼굴에 글씨를 새기는 묵형을 가한 다음에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 두었다.

 그 뒤 제나라 사신이 위나라 수도 "대량"을 방문하자, '손빈'은 형을 받은 죄인의

 신분이므로 제나라 사자를 비밀리에 찾아가 만나서 자기의 처지를 호소했다.  
 '손빈'은 창피를 무릅쓰고서 비밀리에 그를 만나 제나라 사신을 설득했다.]

 

 齊使以爲奇, 竊載與之齊.  齊將田忌善而客待之.  忌數與齊諸公子馳逐重射. 

 孫子見其馬足不甚相遠, 馬有上中下輩.
 
(제사이위기, 절재여지제.  제장전기선이객대지.  기수여제제공자치축중사. 

 손자견기마족불심상원, 마유상중하배.)


 [제 나라 사신은 '손빈'이 기인이라 여기고 몰래 자기의 수레에 숨겨

 제 나라로 데리고 갔다. 제 나라에 간 '손빈'은 곧 장군 '전기'로 부터 인정을 받아

 그의 빈객으로 머물렸다. 

 '전기'는 여러 공자들과 함께 많은 재물을 걸고 말달리기와 활쏘기를 즐겼다.
 '손빈'은 그 내기를 구경하다가 말들이 달리는 속도는 비슷하여 크게 차이는

 나지 않으나 그래도 상, 중, 하로 구분이 되어 있음을 알았다.]

 

 於是孫子謂田忌曰 : 「君弟重射, 臣能令君勝.」 田忌信然之, 與王及諸公子逐射千金.

 及臨質, 孫子曰 : 「今以君之下駟與彼上駟, 取君上駟與彼中駟, 取君中駟與彼下駟.」
 
(어시손자위전기왈 : 「군제중사, 신능령군승.」  전기신연지, 여왕급제공자축사천금. 

 급임질, 손자왈 : 「금이군지하사여피상사, 취군상사여피중사, 취군중사여피하사.」)


 [이에 '손빈'은 '전기'에게 말하기를 : “ 임금의 아우가 활쏘기를 중히 여기니

 내가 장군을 이기게 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다.  '전기'는 그를 그러하리라 믿고

 왕과 공자들에게 다시 천 금을 건 내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그리하여 다시 경기를 시작하자,  '손빈'이 말하기를 : “ 지금 장군의 제일 느린

 하등 수레를 상대방의 가장 빠른 상등 수레와 달리게 하고, 장군의 상등 수레는

 상대방의 중등 수레와 달리게 하고, 장군의 중등 수레는 상대방의 하등 수레와 

 달리게 하십시오.”라고 하였다.]  

 

 旣馳三輩畢, 而田忌一不勝而再勝, 卒得王千金. 

 於是忌進孫子於威王, 威王問兵法, 遂以爲師.  其後魏伐趙, 趙急, 請救於齊.
 
(기치삼배필, 이전기일불승이재승, 졸득왕천금. 

 어시기진손자어위왕, 위왕문병법, 수이위사. 기후위벌조, 조급, 청구어제.)


 [세 등급의 말이 출전하여 시합이 끝나자, '전기'는 한 번은 지고, 두 번은 이겨

 결국 제왕과의 내기에서 천금을 따게 되었다. 이 일로 '손빈'의 재능을 더욱 신임한

 '전기'는 마침내 위왕에게 '손빈'을 천거했다. '위왕'이 '손빈'과 병법에 관한 문답을

 가진 뒤로는 그를 스승으로 삼았다. 그리고 얼마 있다가 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자, 조나라는 위급해져 제나라에 구원을 청했다.]

 

 齊威王欲將孫臏, 臏辭謝曰 :「 刑餘之人不可. 」 

 於是乃以田忌爲將, 而孫子爲師, 居輜車中, 坐爲計謀.  田忌欲引兵之趙.
 
(제위왕욕장손빈, 빈사사왈 : 「 형여지인불가. 」 

 어시내이전기위장, 이손자위사, 거치거중, 좌위계모.  전기욕인병지조.)


 [제나라 '위왕'은 '손빈'을 장군으로 삼아 조나라를 구원하려 했으나 '손빈'은 사양하며

 아뢰기를 : “ 저는 형벌을 받은 몸이라 장수가 될 수 없는 사람입니다. ”라고 하니
 이에 '위왕'은 '전기'를 대장군으로 삼되 '손빈'은 군사로 삼아 휘장을 둘러 친 수레에

 들어 앉아 작전 지휘를 하도록 하였다. 

 '전기'가 군대를 이끌고 조나라로 달려가 구원하려고 하였다.]

 

 孫子曰 : 「夫解雜亂紛糾者不控捲, 救鬪者不搏撠, 批亢擣虛, 形格勢禁, 則自爲解耳. 

 今梁趙相攻, 輕兵銳卒必竭於外, 老弱罷於內.

 君不若引兵疾走大梁, 據其街路, 衝其方虛, 彼必釋趙而自救. 

 是我一擧解趙之圍而收獘於魏也.」 田忌從之, 魏果去邯鄲, 與齊戰於桂陵, 大破梁軍.
 (손자왈 : 「 부해잡란분규자불공권, 구투자불박극, 비항도허, 형격세금, 즉자위해이. 

 금량조상공, 경병예졸필갈어외, 노약파어내.

 군불약인병질주대량, 거기가로, 충기방허, 피필석조이자구. 

 시아일거해조지위이수폐어위야. 」 전기종지, 위과거한단, 여제전어계릉, 대파량군.)


 [손빈이 말하기를 : “ 무릇 얽히고 설킨 실타래를 풀려면 잡아당기거나 두들겨서는

 안 되는 법이며, 싸우는 사람을 말리기 위해서는 그 사람 사이에 들어가 마구잡이로

 주먹을 휘둘러서는 안되며, 적의 강한 곳은 피하고 약한 곳을 공격하면

 형세가 변하여 자연히 풀리게 될 것입니다. 지금 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하고

 있으니, 위나라의 날렵하고 정예스러운 병사들은 필시 나라 밖에서 피로에 지쳐 

 기진맥진해 있을 것이며, 위나라에는 노약자들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장군께서 만약 군사를 이끌고 위나라 도읍지인 "대량"으로 달려가 그 요로를

 점령하고 허약한 곳을 공격한다면 조나라를 공격하고 있던 위나라 군사들은 필시

 자기네의 도성을 구하기 위해 조나라에 대한 포위를 풀고 위나라로 달려올 것입니다.

 이야말로 우리가 한번 움직여 조나라의 포위를 풀고 동시에 위나라를 피폐하게

 만드는 작전인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전기'가 '손빈'의 계책을 따르자, 

 위나라 군사는 조나라 도읍지인 "한단"에 대한 포위망을 풀고 위나라로 달려오다

 "계릉"에서 제군을 만나 싸웠으나, '전기'가 이끌던 제나라 군대에게

 '방연'의 위나라 군대는 크게 패하였다.]

 

 後十三歲, 魏與趙攻韓, 韓告急於齊.  齊使田忌將而往, 直走大梁. 

 魏將龐涓聞之, 去韓而歸, 齊軍旣已過而西矣.
 
(후십삼세, 위여조공한, 한고급어제.  제사전기장이왕, 직주대량. 

 위장방연문지, 거한이귀, 제군기이과이서의.)

 
 ["계릉" 전투 13년 뒤,  위나라는 조나라와 더불어 한나라를 공격하였고, 

 한나라는 위급한 사정을 제나라에 알리고 구원요청을 하였다. 

 제나라는 '전기'를 대장으로 임명하여 한나라를 구원하도록 하였고, '전기'는 또다시

 한나라로 직접 달려가지 않고 위나라의 도읍지 "대량"으로 진격하였다.

 위나라 대장 '방연'은 급보를 받고 즉시 한나라에 대한 포위망을 풀고 귀로에

 올랐으나, 그때 이미 제나라 군사들은 국경을 넘어 서쪽으로 진격하고 있었다.]

 

 孫子謂田忌曰 : 「 彼三晉之兵素悍勇而輕齊, 齊號爲怯, 善戰者因其勢而利導之.

 兵法, 百里而趣利者蹶上將, 五十里而趣利者軍半至. 

 使齊軍入魏地爲十萬竈, 明日爲五萬竈, 又明日爲三萬竈. 」

 (손자위전기왈 : 「 피삼진지병소한용이경제, 제호위겁, 선전자인기세이리도지.

 병법, 백리이취리자궐상장, 오십리이취리자군반지. 

 사제군입위지위십만조, 명일위오만조, 우명일위삼만조. 」)


 ['손빈'은 '전기'에게 말하기를 : “ 저들 삼진의 군사들은 평소에 자기들이 스스로

 용기가 있다고 자부하며 제나라를 군사들을 얕보고 있으며,

 심지어는 제나라 군사를 겁쟁이라고 부르는 실정입니다. 전쟁을 잘하는 사람은

 그 주어진 형세를 잘 이용하여 자기에게 유리하도록 이끌어 나가는 것입니다.

 병법에는 ‘승리에 취해 백리를 급히 앞서 나간 군대는 그 상장군을 잃게 되고,  

 50리를 앞서 나가는 군대는 그 군사들 중 반 밖에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제나라 군대가 위나라 땅에 들어섰을 때 10만개의 아궁이를 만들고,

 다음 날은 5만 개로, 또 그 다음 날은 3만개를 만들며 후퇴하시기 바랍니다.”하였다.]

 

 龐涓行三日, 大喜曰 :「 我固知齊軍怯, 入吾地三日, 士卒亡者過半矣. 」 

 乃弃其步軍, 與其輕銳倍日幷行逐之.  孫子度其行, 暮當至馬陵. 
 
(방연행삼일, 대희왈 : 「 아고지제군겁, 입오지삼일, 사졸망자과반의. 」 

 내기기보군, 여기경예배일병행축지.  손자탁기행, 모당지마릉.)


 ['방연'이 제나라 군대의 뒤를 추격하여 3일이 되는 날, 제나라 군대의 숙영지를

 살펴보고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 “ 나는 처음부터 제나라 군사들은 모두

 겁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이 우리 땅을 침입한 3일 동안 도망친 군사들이

 절반이 넘는구나.”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곧 보병은 따로 떼어놓은 채로 날렵하고

 정예부대의 병사들만을 이끌고 행군 속도를 종전에 비해 2배로 빨리 하여

제군의 뒤를 추격하였다.  '손빈'은 위나라 군사의 속도를 계산해 본 결과

 저녁 무렵이면 "마릉"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 짐작하였다.]

 

 馬陵道陜, 而旁多阻隘, 可伏兵.  乃斫大樹白而書之曰 「 龐涓死于此樹之下. 」 

 於是令齊軍善射者萬弩, 夾道而伏, 期曰 「 暮見火擧而俱發. 」
 
(마릉도합, 이방다조애, 가복병.  내작대수백이서지왈 「 방연사우차수지하. 」 

 어시령제군선사자만노, 협도이복, 기왈 「 모견화거이구발. 」)

 ["마릉"은 길이 좁고 양쪽에는 험한 산이 솟아 있어 군사들을 매복시키기에 알맞은

 곳이었다. '손빈'은 길 옆에 있는 큰 나무의 껍질을 벗긴 후 그 흰 부분에다 써놓기를  

 ​“방연은 이 나무 밑에서 죽으리라 ” 이어서 그는 제나라 군사들 중 활에 능숙한

 만 명의 군사를 뽑아 길 양쪽에 매복시키며 명령하기를 : "날이 저물어 이곳에 불빛이

 보이면 일제히 그곳을 향해 집중적으로 활을 쏘아라 "라고 하였다.]
 
 龐涓果夜至所木下, 見白書, 乃鑽火燭之.  讀其書未畢, 齊軍萬弩俱發, 魏軍大亂相失.
 
(방연과야지소목하, 견백서, 내찬화촉지.  독기서미필, 제군만노구발, 위군대란상실.)

 
 ['방연'은 과연 날이 저문 뒤에야 그 나무 밑에 이르렀고, 나무의 흰 부분에 씌어진

 글씨를 읽기 위해 불을 밝혀 그것을 비쳐 보고자 하였다. '방연'이 나무에 씌어진

 글을 미처 다 읽기도 전에 제나라 군사들 만 명이 일제히 불빛을 향해 활을 쏘았다.

 위나라 군사들은 혼란에 빠져 서로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였다.]
 
 龐涓自知智窮兵敗, 乃自剄曰 : 「 遂成豎子之名!」 

 齊因乘勝盡破其軍, 虜魏太子申以歸.  孫臏以此名顯天下, 世傳其兵法.
 
(방연자지지궁병패, 내자경왈 : 「 수성수자지명!」 

 제인승승진파기군, 노위태자신이귀.  손빈이차명현천하, 세전기병법.)


 ['방연'은 자기의 지혜가 부족하여 어쩔 수 없이 싸움에서 패하였음을 알고

 스스로 목을 찔러 죽으면서 말하기를 : “ 마침내 미천한 놈의 이름을 떨치게 만들어

 주었구나. ”라고 하였다.  제나라 군대는 "마릉" 전투에서의 승세를 몰아

 위나라 군대를 전멸시키고 태자 '신'을 포로로 잡아 개선하였다.

 '손빈'은 이 싸움의 승리로 천하에 이름을 떨쳤고, 

 그의 병법이 후세에 전해지게 되었다.] 
 

 

 吳起者, 衛人也, 好用兵.  嘗學於曾子, 事魯君. 

 齊人攻魯, 魯欲將吳起, 吳起取齊女爲妻, 而魯疑之. 

 吳起於是欲就名, 遂殺其妻, 以明不與齊也.
 
(오기자, 위인야, 호용병.  상학어증자, 사로군. 

 제인공노, 노욕장오기, 오기취제녀위처, 이노의지. 

 오기어시욕취명, 수살기처, 이명불여제야.)


 ['오기'는 위나라 사람으로 병사의 일을 즐겨했다. '오기'는 일찍이 '공자'의 제자

 '증자'에게서 학문을 배우고 노나라 임금을 섬겼다. 그때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하자, 노나라에서는 '오기'를 대장으로 기용하려 했으나

 '오기'가 제나라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므로 '노후'는 의심을 품고 주저하였다. 

 그러자 '오기'는 공명심에 불탄 나머지 마침내 자기 아내를 죽여,

 자기와 제나라는 관련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魯卒以爲將, 將而攻齊, 大破之.  魯人或惡吳起曰 : 「起之爲人, 猜忍人也. 

 其少時, 家累千金, 游仕不遂, 遂破其家, 鄕黨笑之, 吳起殺其謗己者三十餘人,

 而東出衛郭門.

 與其母訣, 齧臂而盟曰 『起不爲卿相, 不復入衛』 遂事曾子. 居頃之, 其母死, 起終不歸. 

 曾子薄之, 而與起絶.  起乃之魯, 學兵法以事魯君, 魯君疑之, 起殺妻以求將.

 夫魯小國, 而有戰勝之名, 則諸侯圖魯矣.  且魯衛兄弟之國也, 而君用起, 則是弃衛. 」 

 魯君疑之, 謝吳起.  吳起於是聞魏文侯賢, 欲事之.
 
(노졸이위장, 장이공제, 대파지.  노인혹오오기왈 : 「기지위인, 시인인야. 

 기소시, 가루천금, 유사불수, 수파기가, 향당소지, 오기살기방기자삼십여인,

 이동출위곽문.

 여기모결, 설비이맹왈 『기불위경상, 불복입위』 수사증자.  거경지, 기모사, 기종불귀. 

 증자박지, 이여기절.  기내지노, 학병법이사노군, 노군의지, 기살처이구장.
 부로소국, 이유전승지명, 즉제후도노의.  차노위형제지국야, 이군용기, 칙시기위. 」 

 노군의지, 사오기.  오기어시문위문후현, 욕사지.)


 [노나라는 결국 '오기'를 장군에 임명했고 오기는 장군이 되어 제나라를 공격하여

 크게 이겼다.  '오기'의 그러한 행위를 싫어한 어떤 노나라 사람이 말하기를 :

 “'오기'란 사람은 시기심이 강하고 잔인합니다. 그는 젊었을 때 수천금이나 되는

 가산을 털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벼슬을 구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은 그 집안이 망했습니다. '오기'의 고향 사람들이 그의 행위에 대해 비웃자,

 '오기'는 자기를 비방한 사람 30여 명을 죽이고 위나라 도성의 동쪽으로 난 곽문을

 통하여 도망쳤습니다. 그때 '오기'는 어머니와 이별하며 자기 팔을 물어뜯으며

 맹세하기를  ‘저 '오기'는 대신이나 재상이 되기 전에는 위나라 땅을 밟지 않겠습니다.

 ’하고는 노나라로 도망쳐 '증자'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증자'를 모시던 중에

 그 어머니가 돌아가셨어도 '오기'는 끝내 위나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증자'는 '오기'를 괘씸하게 여겨 박절하게 대하며 사제지간의 정을 끊었습니다. 

 '증자'에게서 파문을 당한 '오기'는 노나라에 와서,

 병법을 배우고 노나라 임금을 섬겼으나, 

 노나라 임금이 그를 의심하니 자기 아내를 죽이면서까지 장군 자리를 구하였습니다.

 무릇 노나라 같은 작은 나라가 제나라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명성을 얻게는

 되었지만, 히려 그 때문에 제후들이 노나라를 엿보게 만들었습니다.
 더군다나 노나라와 위나라는 형제의 나라이므로, 임금께서 그 위나라에서 도망쳐

 온 '오기'를 중용한다는 것은 위나라와의 친교를 끝맺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노나라 임금은 심중에 의혹이 생겨 '오기'를 내쳤다.

 '오기'는 찾아갈 곳을 궁리하다가 '위문후'가 어질다는 소식을 듣고 가서

 벼슬을 구하려고 하였다.]

 
 文侯問李克曰 : 「 吳起何如人哉 ?」 

 李克曰 : 「 起貪而好色,  然用兵司馬穰苴不能過也. 」

 於是魏文侯以爲將, 擊秦, 拔五城.  起之爲將, 與士卒最下者同衣食.
 
(문후문이극왈 : 「 오기하여인재 ?」 

 이극왈 : 「 기탐이호색,  연용병사마양저불능과야. 」 

 어시위문후이위장, 격진, 발오성.  기지위장, 여사졸최하자동의식.)


 ['문후'는 중신인 '이극'을 불러 묻기를 : “'오기'는 어떤 사람입니까 ? ”라고 하니,
 '이극'이 대답하기를 : “ '오기'는 탐욕스럽고 여자를 좋아하기는 하나,

 군사를 부리는 재주에 있어서는 '사마양저'도 그를 따르지 못할 정도입니다. ”하였다.
 그리하여 '문후'는 '오기'를 대장에 임명하고 진나라를 공격하여 다섯 개의 성을

 함락시켰다.  '오기'는 대장이 되었어도 가장 신분이 낮은 군졸들과 동일하게

 옷을 입고 음식을 먹었다.]

 

 臥不設席, 行不騎乘, 親裹贏糧, 與士卒分勞苦.  卒有病疽者, 起爲吮之. 

 卒母聞而哭之, 人曰 : 「 子卒也, 而將軍自吮其疽, 何哭爲 ?」
 
(와불설석, 행불기승, 친과영량, 여사졸분로고.  졸유병저자, 기위연지. 

 졸모문이곡지, 인왈 : 「 자졸야, 이장군자연기저, 하곡위?」)

 [누울 때도 자리를 까는 법이 없었으며  행군할 때도 수레에 타지 않았으며, 

 또한 자기가 먹을 양식은 자기가 가지고 다니는 등 사졸들과 노고를 나누었다.
 언젠가 병졸들 가운데 종기를 앓는 사람이 생기자 '오기'는 그를 위하여 고름을

 입으로 빨아 내뱉었다. 병졸의 어머니는 그 소문을 듣고 소리 내어 우니,
 어떤 사람이 묻기를 : “ 당신 아들은 병졸에 지나지 않는데 장군께서 친절하게도

 종기를 입으로 빨아 주기까지 하지 않았소, 그런데 어찌 우는 것입니까 ? ”라고 하자,]

 
 母曰 : 「 非然也.  往年吳公吮其父, 其父戰不旋踵, 遂死於敵. 

 吳公今又吮其子, 妾不知其死所矣.  是以哭之. 」
 
(모왈 : 「 비연야.  왕년오공연기부, 기부전불선종, 수사어적. 

 오공금우연기자, 첩불지기사소의.  시이곡지. 」)


 [그 어머니는 말하기를 :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난날에도 '오기' 장군께서

 그 애 아버지의 고름을 빨아준 적이 있었습니다. 그 아비는 감격한 나머지 끝가지

 도망하지 않고 열심히 싸우다가 결국 적군의 손에 죽고 말았습니다.
 '오기' 장군께서 지금 또 자식의 종기를 빨아 주셨으니, 나는 그 아이가 죽는 곳이 

 어디인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슬피 우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文侯以吳起善用兵, 廉平, 盡能得士心, 乃以爲西河守, 以拒秦韓.

 魏文侯旣卒, 起事其子武侯.

 武侯浮西河而下, 中流, 顧而謂吳起曰 : 「美哉乎山河之固, 此魏國之寶也 !」
 
(문후이오기선용병, 염평, 진능득사심, 내이위서하수, 이거진한. 

 위문후기졸, 기사기자무후. 

 무후부서하이하, 중류, 고이위오기왈 : 「미재호산하지고, 차위국지보야 ! 」)

 
 ['문후'는 '오기'가 용병술에 뛰어날 뿐 아니라, 청렴하고 공평무사하여 사졸들의

 신망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서하" 태수로 임명하여 진나라와 한나라의 공격을 막게 하였다. 

 위 '문후'가 죽자, '오기'는 계속해서 '문후'의 아들 '무후'를 섬겼다. 
 '무후'는 배를 하수에 띄우고 '오기'와 함께 물길을 따라 내려가다 중간 지점에

 다다르자, 주위를 돌아보며 '오기'에게 말하기를 :

 “ 참으로 아름답도다, 견고한 산하여, 이 위나라의 보배로다 ! ”하였다.]

 

 起對曰 : 「 在德不在險.  昔三苗氏左洞庭, 右彭蠡, 德義不修, 禹滅之. 

 夏桀之居, 左河濟, 右泰華, 伊闕在其南, 羊腸在其北, 修政不仁, 湯放之.

 殷紂之國, 左孟門, 右太行, 常山在其北, 大河經其南, 修政不德, 武王殺之. 

 由此觀之, 在德不在險.  若君不修德, 舟中之人盡爲敵國也. 」

 (기대왈 : 「 재덕불재험.  석삼묘씨좌동정, 우팽려, 덕의불수, 우멸지. 

 하걸지거, 좌하제, 우태화, 이궐재기남, 양장재기북, 수정불인, 탕방지.

 은주지국, 좌맹문, 우태행, 상산재기북, 대하경기남, 수정불덕, 무왕살지. 

 유차관지, 재덕불재험.  약군불수덕, 주중지인진위적국야. 」)


 ['오기'가 답하기를 : “ 나라의 보배는 임금의 덕에 있는 것이지 험고한 산하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옛날 삼묘씨가 세운 나라는 동정호를 왼쪽에 끼고 팽려호를

 오른 쪽에 두었으나 德으로써 정치를 하지 않고 義를 닦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라를 세운 '우'임금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라의 '걸왕'이 도읍한 곳은 하수와 제수를 왼쪽에 끼고 태산과 화산을 오른쪽에

 두었으며, "이궐"(용문)이 그 남쪽에 있고, "양장"이 그 북쪽에 있었으나,

 정사가 어질지 못한 나머지 상나라 '탕왕'에게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은나라 '주왕'은 맹문산을 왼쪽으로 하고, 태행산을 오른쪽으로 하고,

 상산이 그 북쪽에 있고, 하수가 그 남쪽으로 지나고 있었지만, '주왕'이 덕으로써

 정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주나라 '무왕'에 의해 목숨을 잃은 것입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볼 때 나라를 다스리는데 중요한 것은 임금의 덕에 있는 것이지  

 지형의 험난함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주군께서도 덕과 신의로 정치를 행하지

 않는다면, 이 배 안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적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武侯曰 : 「 善. 」  卽封吳起爲西河守, 甚有聲名.  魏置相, 相田文. 

 吳起不悅, 謂田文曰 : 「 請與子論功, 可乎 ?」  田文曰 : 「 可. 」
 
(무후왈 : 「 선. 」  즉봉오기위서하수, 심유성명.  위치상, 상전문. 

 오기불열, 위전문왈 : 「 청여자논공, 가호 ?」  전문왈 : 「 가. 」)


 ['무후'는 말하기를 : " 과연 옳은 말이오.“라고 하고는, '오기'에게 계속 "서하" 태수를

 맡기자, 이로부터 '오기'의 명성은 더욱 높아갔다. 

 위나라에서는 새로 재상의 직책을 설치해 '전문'을 임명하였다. 

 '오기'는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전문'에게 찾아가 말하기를 : “당신과 함께 누가 더

 높은 공을 세웠는지에 대해 토론해 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습니까 ? ”라고 하니

 '전문'이 말하기를 : “좋습니다. ”라고 하였다.]

 

 起曰 : 「 將三軍, 使士卒樂死, 敵國不敢謀, 子孰與起?」  文曰 : 「 不如子. 」 

 起曰 : 「 治百官, 親萬民, 實府庫, 子孰與起?」  文曰 : 「 不如子. 」
 
(기왈 : 「 장삼군, 사사졸락사, 적국불감모, 자숙여기?」  문왈 : 「 불여자. 」  

 기왈 : 「 치백관, 친만민, 실부고, 자숙여기?」  문왈 : 「 불여자. 」)


 ['오기'가 묻기를 : “ 삼군의 대장군이 되어 사졸들로 하여금 싸움에 임해 즐거운

 마음으로 죽기를 불사하게 만들어 적국이 우리 위나라를 넘볼 수 없게 하는 점에서

 당신과 나 둘 중에 어느 쪽이 공이 높다 생각하십니까 ? ”하자,

 '전문'이 대답하기를 :  “나의 공이 그대보다 높지 못합니다 ” 라고 하였다.
 '오기'가 또 묻기를 : “ 백관을 다스리고 백성들과 친근하게 지내며, 나라의 재정을

 튼튼히 하는 점에서 그대와 나 둘 중에 누가 더 공이 높다고 생각하십니까 ? ”하자. 
 '전문'이 대답하기를 :  “나의 공이 그대보다 높지 못합니다 ”라고 하였다.]

 

 起曰 : 「 守西河而秦兵不敢東鄕, 韓趙賓從, 子孰與起 ?」  文曰:「 不如子. 」 

 起曰:「 此三者, 子皆出吾下, 而位加吾上, 何也 ?」
 
(기왈 : 「 수서하이진병불감동향, 한조빈종, 자숙여기 ?」  문왈:「 불여자. 」 

 기왈:「 차삼자, 자개출오하, 이위가오상, 하야 ?」)

 
 ['오기'가 묻기를 : “서하를 굳게 지켜 진나라 군사가 감히 동쪽을 향해 우리 위나라를

 칠 생각을 못하게 하고, 한· 조 두 나라가 사신을 우리 위나라에 보내 복종을 하게

 만든 것은 그대와 나 둘 중 누가 더 공이 높다고 생각하십니까 ? "라고 하자. 
 '전문'이 대답하기를 : “ 나의 공이 그대보다 높지 못합니다 ”라고 하였다. 
 '오기'가 묻기를 : “이 세가지 점에서 당신은 나보다 못한데 지위는 나보다 높으니 

 무슨 까닭입니까 ? ”라고 하자.]

 

 文曰 : 「主少國疑, 大臣未附, 百姓不信, 方是之時, 屬之於子乎? 屬之於我乎?」 

 起黙然良久曰:「屬之子矣.」 文曰:「此乃吾所以居子之上也. 」

 吳起乃自知弗如田文.
 
(문왈 : 「주소국의, 대신미부, 백성불신, 방시지시, 촉지어자호? 촉지어아호?」 

 기묵연량구왈:「촉지자의.」  문왈:「차내오소이거자지상야. 」

 오기내자지불여전문.)


 ['전문'이 대답하기를 : “ 지금은 임금님께서 아직 나이가 어려서 민심이 매우

 불안하고, 대신들은 아직 왕에게 심복하지 않으며, 백성들도 왕을 신뢰하지 못합니다
 바로 이러한 어려운 때에 재상의 자리를 당신에게 맡길까요 ?  나에게 맡길까요 ? ” 

 '오기'는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 “ 당신에게 맡기겠지요 ”라고 하였다.
 '전문'이 말하기를 : “ 이것이 내가 당신보다 윗자리에 앉게 된 까닭입니다 ”하였다. 

 '오기'는 비로소 자기의 재능이 '전문'보다 못하다는 것을 알고 승복하였다.]

 

 田文旣死, 公叔爲相, 尙魏公主, 而害吳起.  公叔之僕曰:「 起易去也. 」  公叔曰:「 柰何 ?」
 
(전문기사, 공숙위상, 상위공주, 이해오기.  공숙지복왈 : 「 기이거야. 」  공숙왈:「 내하 ?」)

 
 [이윽고 '전문'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위나라 재상이 된 '공숙'은 위나라 공주를 아내로

 맞이 하여 위세를 떨치고, '오기'가 자기의 자리를 노리고 있다고 생각한 '공숙'은

 '오기'를 해치려 하였다.  때마침 '공숙'의 하인이 진언하기를 :

 “ '오기'를  이 나라에서 떠나게 만드는 일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하니,  

 '공숙'이 묻기를 : “ 어떻게 말이냐 ? ”라고 하자.
 
 其僕曰:「 吳起爲人節廉而自喜名也,  君因先與武侯言曰:

『 夫吳起賢人也, 而侯之國小, 又與彊秦壤界, 臣竊恐起之無留心也. 』 

 武侯卽曰 : 『 柰何 ? 』

 君因謂武侯曰 : 『 試延以公主, 起有留心則必受之.  無留心則必辭矣.  以此卜之. 』 

 君因召吳起而與歸, 卽令公主怒而輕君.  吳起見公主之賤君也, 則必辭. 」

 (기복왈 : 「 오기위인절렴이자희명야, 군인선여무후언왈:

『 부오기현인야, 이후지국소, 우여강진양계, 신절공기지무류심야. 』 

 무후즉왈 : 『 내하 ? 』

 군인위무후왈 : 『 시연이공주, 기유류심즉필수지.  무류심칙필사의.  이차복지. 』 

 군인소오기이여귀, 즉령공주노이경군.  오기견공주지천군야, 즉필사. 」)

 [그 하인이 말하기를 : “'오기'란 사람은 절개가 굳고 청렴하지만 유명해지는 것을

 좋아하므로, 상공께서 먼저 임금님께 말씀드리기를 : ‘무릇 '오기'는 현인입니다.

 그런데 우리 위나라는 영토가 작고, 강국인 진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

 신은 그가 과연 우리 위나라에 오래 머물지 의심스럽습니다. ’라고 하면, 

 '무후'께서는 즉시 :  ‘어떻게 하면 그를 머물게 할 수 있겠는가 ? ’하고 물을 것입니다.

 상공께서는 '무후'님께 이렇게 말씀드리십시요 :  ‘시험삼아 공주를 '오기'에게

 시집보내면 어떻겠습니까?  '오기'가 머무를 생각이 있으면 반드시 받아들일 것이고, 

 머물 생각이 없으면 반드시 사양할 것이니, 이것으로 그의 마음을 떠보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오기'를 집으로 초대하여 함께 댁으로 가신 뒤에

 공주로 하여금 성난 얼굴로 상공을 푸대접하는 태도를 보이도록 하십시오.

 '오기'는 공주가 상공를 푸대접하는 태도를 보면 반드시 사양할 것입니다. ”하였다.]

 

 於是吳起見公主之賤魏相, 果辭魏武侯.  武侯疑之而弗信也. 

 吳起懼得罪, 遂去, 卽之楚.  楚悼王素聞起賢, 至則相楚.
 
(어시오기견공주지천위상, 과사위무후.  무후의지이불신야. 

 오기구득죄, 수거, 즉지초.  초도왕소문기현, 지즉상초.)

 
 [이리하여 '오기'는 '공숙'의 집에 초대되어 공주가 '공숙'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과연 위무후의 혼인 요청을 사양하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무후'는 '오기'를 의심하여 그를 신임하지 않게 되었다. 

 '오기'는 죄를 얻게 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마침내 위나라를 떠나 초나라로

 갔다. 초도왕은 평소에 '오기'가 현인이라는 소리를 들었으므로

 '오기'가 초나라에 당도하자, 즉시 재상으로 임명하였다.]
 
 明法審令, 捐不急之官, 廢公族疏遠者, 以撫養戰鬪之士. 

 要在彊兵, 破馳說之言從橫者. 

 於是南平百越 ; 北幷陳蔡, 卻三晉 ; 西伐秦.  諸侯患楚之彊.
 
(명법심령, 연불급지관, 폐공족소원자, 이무양전투지사. 

 요재강병, 파치세지언종횡자. 

 어시남평백월 ; 북병진채, 각삼진 ; 서벌진.  제후환초지강.)


 ['오기'는 초나라의 법령을 정비하여 밝게 빛내고 불요불급한 관직을 없앴으며,

 왕족들 중에서도 먼 공족들의 봉록을 폐지시켰으며, 그로 생긴 비용은 전사들을

 양성하는데 썼다.  그는 강병책을 적극 추진해 합종이니 연횡이니 하는 유세객의

 주장을 무시해 버렸다. 이리하여 '오기'의 개혁에 힘입어 초나라는 남쪽으로

 "백월"을 평정하고 ; 북으로는 진(陳)나라와 채나라를 병합하고 삼진(晋)의 공격을

 막아냈으며 ; 서쪽으로는 강력한 진나라를 정벌하여 열국의 제후들은 초나라의

 강성함을 근심하였다.]

 

 故楚之貴戚盡欲害吳起.  及悼王死, 宗室大臣作亂而攻吳起, 吳起走之王尸而伏之. 

 擊起之徒因射刺吳起, 幷中悼王.  

 悼王旣葬, 太子立, 乃使令尹盡誅射吳起而幷中王尸者. 坐射起而夷宗死者七十餘家. 
 (고초지귀척진욕해오기.  급도왕사, 종실대신작란이공오기, 오기주지왕시이복지. 

 격기지도인사자오기, 병중도왕.

 도왕기장, 태자입, 내사령윤진주사오기이병중왕시자. 좌사기이이종사자칠십여가.)

 
 ['오기'의 개혁정책으로 권리가 박탈된 초나라의 귀척들은 '오기'를 해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마침내 초도왕이 죽자 종실과 대신들이 난을 일으켜 일제히

 '오기'를 공격하였다.

 '오기'는 쫓기다가 초도왕의 영구를 모신 방으로 가서 시신 위에 엎드렸다. 
 '오기'를 쫓던 무리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활을 마구 쏘아 그를 죽이면서 많은 화살이

 '도왕'의 시신까지 꿰뚫었다. '도왕'의 장례식이 끝나고,

 태자가 그 뒤를 이어 초왕의 자리에 앉자, 영윤에게 명을 내려 '오기'를 죽이면서

 부왕의 시신에까지 화살을 쏘아 댄 자들을 색출하여 모두 죽이도록 하였다.

 이로 인해 멸족의 화를 입은 집은 70여 세대나 되었다.]


 太史公曰 :

 世俗所稱師旅, 皆道孫子十三篇, 吳起兵法, 世多有, 故弗論, 論其行事所施設者.

 語曰 :「 能行之者未必能言, 能言之者未必能行. 」 

 孫子籌策龐涓明矣, 然不能蚤救患於被刑. 

 吳起說武侯以形勢不如德, 然行之於楚, 以刻暴少恩亡其軀.  悲夫 !

 

 (태사공왈 : 세속소칭사려, 개도손자십삼편, 오기병법, 세다유, 고불논, 논기행사소시설자.

 어왈 : 「 능행지자미필능언, 능언지자미필능행. 」 

 손자주책방연명의, 연불능조구환어피형. 

 오기설무후이형세불여덕, 연행지어초, 이각폭소은망기구.  비부 ! )


 ['태사공'은 말하기를 : 

 “ 세상에서 군사의 일을 논하는 사람들은 모두 《손자 병법》 13편과《오기 병법》을

 말한다.  이 두 저서는 세상에 많이 알려져 있음으로 그 내용은 논하지 않고 다만

 그들의 사적과 정책에 대해서만 논한다.

 옛말에 이르기를 : " 실천을 잘 하는 사람이 반드시 말도 잘 하는 것은 아니며,

 말을 잘하는 자가 반드시 실천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라고 하였다.
 '손빈'은 '방연'을 계략으로 함정에 빠뜨리는 데에는 그렇게 밝았지만,

 그에 앞서 자기에게 닥쳐올 환난과 형벌은 방지하지 못했다.
 '오기'는 '무후'에게 지형이나 지세의 험준한 것이 덕을 닦는 것만 못하다고

 설명하였지만, 자신이 초나라에서 행한 정치는 각박하고 몰인정하였으며,
 또한 은혜를 베푸는데 인색하여 그 몸을 망친 것이다.  참으로 가엾지 아니한가 ! ] 

 

【 각주 】 

1) 아읍(阿邑) : 지금의 산동성 양곡현(陽谷縣) 아성진(阿城鎭)을 말한다.

2) 견읍(甄邑) : 지금의 산동성 견성현(鄄城縣) 서북.

3) 손무(孫武)가 활약했던 시기는 오왕 합려(閤閭) 때이다.

    오왕 합려는 기원전 513년에 즉위하여 496년에 죽은 사람이고

    손빈이 활약했던 시기는 전국 때의 제위왕(齊威王) 때다. 

    제위왕은 기원전 356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319년에 죽었다.  

4) 전기(田忌) : 전국(戰國) 시대 때 제나라 장수. 사서(史書)에는 전기(田期)

    혹은 전기사(田期思)라고도 했으며 서주(徐州 : 지금의 산동성 등주시)에 봉해져

    서주기자(徐州期子)라고 불리웠다.  

    제위왕(齊威王)26년 (기원전 353년) 손빈과 함께 위(魏)나라의 공격으로부터

    조(趙)나라를 구원하고 계릉(桂陵: 지금의 하남성 장원현(長垣縣) 서북) 에서

    위나라 군사들을 크게 무찔렀다.  

    제선왕(齊宣王) 2년 (기원전 341년) 전영(田嬰), 전반(田盼), 손빈(孫臏)과 함께  

    마릉(馬陵: 지금의 하남성 범현(范縣) 서남)에서 위나라 군사를 다시 대파하고

    위나라의 태자 신(申)과 장수 방연(龐涓)을 포로로 하였다.

    후에 제나라의 상국(相國) 추기(騶忌)의 참소로 초나라로 도망쳤다. 

    초나라는 전기를 강남(江南)에 봉했다. 

5) 계릉(桂陵) ; 일명 계양(桂陽)이라고도 하며 그 위치는 두 가지 설이 있다.  

    ①죽서기년 : 양혜왕(梁惠王) 17년(기원전 354년) 조의

    ‘齊田期伐我東鄙, 戰于桂陽, 我師敗蒲,  亦曰桂陵. 濮渠又東逕蒲城’

    포성(蒲城)은 지금의 하남성 장원현(長垣縣)을 말한다.   

   ②사기정의 : 산동성 하택현(荷澤縣) 동북. 지금은 죽서기년의 설을 따른다. 

   1)삼묘씨(三苗氏)/ 장강(長江), 회수(淮水) 및 형주(荊州) 일대에 분포되어 살던

    고대의 소수민족 이름.  <오제본기> 순임금 조에 삼묘씨가 삼위(三危)로 옮겨가

    서융(西戎)이 되었다고 했다.  

   2)팽려호(彭蠡湖)/ 지금의 강서성의 파양호(鄱陽湖)를 말한다.3)

   이궐(伊闕)/이궐새(伊闕塞)를 말함. 지금의 하남성 낙양의 남쪽에 있으며

   두 산봉우리가 이수(易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어 마치 궁궐과 같이

   보인다고 해서 이궐이라 했다.

   기원전 293년 진나라의 백기(白起)가 한위(韓魏) 두 나라의 연합군을 이 곳에서

   격파하고 그 군사 24만을 참수했다. 후에 용문(龍門)이라고 했으며  

   유명한 용문석굴(龍門石窟)이 있는 곳이다. 

   4)양장(羊腸) : 태항산(太行山 : 지금의 하북성과 산서성의 경계를 이루는 산맥의

   이름으로 옛날부터 태항산 서쪽은 산서, 동쪽은 산동이라 칭했다.)에 있는 산길로

   양의 창자처럼 꼬불꼬불한 길이라고 해서 양장판(羊腸坂)이라 칭했다. 

   5)맹문산(孟門山)/지금의 하남성 휘현 서쪽의 십자령(十字嶺)을 말함.  

6) 상산(常山) : 항산(恒山)의 별명. 중국 오악(五嶽) 중 북악. 한문제(漢文帝)의

    이름이 유항(劉恒)이었던 관계로 그 이름을 휘(諱)하여 상산이라 개칭한 것이다.

    지금의 하북성 곡양현(曲陽縣) 서북과 산서성과의 접경지대에 걸쳐 있다.7)

    초도왕(楚悼王)/ 전국 때 초나라 군주로 기원전 401년에 즉위하여 기원전 381년에

    죽었다. 그의 집정 기간 중에 오기(吳起)를 재상으로 기용하여 초나라의 내정을  

    개혁하고 법령을 밝혀 군대의 전투력을 높였다. 수구세력인 공실귀족의 발호를

    억압하여 초나라 왕실의 위엄을 높였다. 대외적으로는 남쪽으로 백월(百越)을

    평정하고 북쪽으로는 진(陳)과 채(蔡) 두 나라를 복속했으며 서쪽으로는

    진(秦)나라를 정벌하여 국세가 크게 일신되었다. 21년을 재위하다가 죽었을 때  

    옛날 오기로 하여금 탄압 받았던 공실의 귀족들이 그 틈을 타서 난을 일으켜

    오기를 활로 쏘아 죽임으로써 초나라의 개혁은 중단되었다.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