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本紀(사기본기)/8. 高朝本紀

第 八. 高祖本紀(고조본기)

덕치/이두진 2021. 6. 27. 10:00

                 

               史記 本紀 

 

 

     第 八.  高祖本紀(고조본기)

 

 

高祖, 沛豐邑中陽裏人, 姓劉氏, 字季.

父曰太公, 母曰劉媼. 其先劉媼嘗息大澤之陂, 夢與神遇.
(고조, 패풍읍중양리인, 성유씨, 자계. 

부왈태공, 모왈유온. 기선유온상식대택지피, 몽여신우.) 

 

[고조 '유방'은 패현 풍읍 중양리 사람으로, 성은 '유'이고 자는 '계'이다.  

 부친은 '태공'이고 모친은 '유온'이다.
 일찍이 '유온'이 큰 연못가에서 쉬고 있다가 잠이 들어 꿈속에서 神을 만났다.]
          

是時雷電晦冥, 太公往視, 則見蛟龍於其上. 已而有身, 遂產高祖.
(시시뇌전회명, 태공왕시, 즉견교룡어기상.  이이유신, 수산고조.)


[그때 뇌성벽력이 치고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여 어두워졌고,  

'태공'이 가서 보니 교룡이 '유온'의 배 위에 있었다.
곧이어 '유온'의 몸에 태기가 있어 마침내 애를 낳으니 이가 바로 '고조'이다.]

 

高祖為人, 隆準而龍顏, 美須髯, 左股有七十二黑子. 仁而愛人, 喜施, 意豁如也.       
(고조위인, 융준이용안, 미수염, 좌고유칠십이흑자. 인이애인, 희시, 의활여야.)

['고조'의 사람됨은 콧날이 높고 이마가 평평하여 용의 얼굴을 닮았으며,  

멋진 콧수염과 구레나룻을 하고 있었다. 왼쪽 넓적다리에는 72개의 검은 반점이 있었다.  

인자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베풀기를 좋아했으며 마음은 활달하고 호방했다.]
         

常有大度, 不事家人生產作業. 及壯, 試為吏, 為泗水亭長, 廷中吏無所不狎侮, 好酒及色.
(상유대도, 불사가인생산작업.  급장, 시위리, 위사수정장, 정중리무소불압모, 호주급색.)

[항상 큰 도량을 지니고 있었고, 일반가정에서 하는 노동일은 하지 않았다.  

장성하여서는 시험을 거쳐 관리가 되어  "사수"의 정장이 되었고 관아의 모든 관리들을 함부로 대하며 무시하였으며

술 마시기를 좋아하고 여색을 밝혔다.]  
         

常從王媼,武負貰酒, 醉臥, 武負,王媼見其上常有龍, 怪之.

高祖每酤留飲, 酒讎數倍. 及見怪, 歲竟, 此兩家常折券棄責.
(상종왕온,무부세주, 취와, 무부,왕온견기상상유용, 괴지. 

고조매고유음, 주수수배. 급견괴, 세경, 차양가상절권기책.)

[항상 '왕온'과 '무부'의 집에 가서 외상술을 마시다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자곤 했다,

그럴 때마다 항상 '고조'의 몸에 용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두 사람은 놀라곤 했다.

'고조'가 그 두 사람의 집을 번갈아 다니며 술을 마실 때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 매상은 몇배나 많이 올랐다.

두 사람이 고조의 기이한 모습을 본 후로는 연말이 되면 그의 외상장부를 찢어 버리곤 했다.]

 

高祖常繇咸陽, 縱觀, 觀秦皇帝, 喟然太息曰:“嗟乎, 大丈夫當如此也!”

(고조상요함양, 종관, 관진황제, 위연태식왈 : "차호, 대장부당여차야 ! ")

['고조'가 "함양"에서 요역을 하고 있을 때, 한번은 황제의 행차를 볼 수 있는 허락을 받고  

'진시황'의 행차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 행차를 보고 크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 

"슬프도다, 대장부라면 마땅히 저래야 하지 않겠는가 ! "]

 

單父人呂公善沛令避, 仇從之客, 因家沛焉. 沛中豪桀吏聞令有重客, 皆往賀.
(단보인여공선패령피, 구종지객, 인가패언.  패중호걸이문령유중객, 개왕하.)
         

["단보" 사람 '여공'이 "패현"의 현령과 친하였기 때문에 그 원수를 피해 와서 

그의 손님이 되어 머물다가 결국은 가족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패현"의 호걸과 관리들은 현령이 그를 손님으로 극진히 대하는 모습을 보고 모두 와서 축하를 하였다.]
          

蕭何為主吏, 主進, 令諸大夫曰:“進不滿千錢, 坐之堂下。”
(소하위주리, 주진, 령제대부왈 : "진불만천금, 좌지당하. ")
         

["패현"의 주리로 있던 '소하'는 들어오는 돈과 재물을 관리하고 있었다.  

'소하'가 현의 여러 유력자들에게 말하기를 :

"가져온 돈이 천 전 이하인 사람은 대청 아래에 앉으시오 "라고 하였다.]
          

高祖為亭長, 素易諸吏, 乃紿為謁曰"賀錢萬”, 實不持一錢. 謁入, 呂公大驚, 起, 迎之門.
(고조위정장, 소이제리, 내태위알왈"하전만", 실불지일전.  알입, 여공대경, 기, 영지문.)
         

[정장(향촌의 장)이었던 '고조'는 평소 관아의 뭇 아전들을 업신여겼으므로,

거짓으로 이름첩에 "하례금 만전"이라고 써넣었으나, 사실은 한푼도 지니고 있지 않았다.

이름첩을 살펴본 '여공'은 '고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 얼른 일어나 문 앞까지 나가 맞이하였다.]
          

呂公者, 好相人, 見高祖狀貌, 因重敬之, 引入坐.  

蕭何曰:“劉季固多大言, 少成事. ”  高祖因狎侮諸客, 遂坐上坐, 無所詘.
(여공자, 호상인, 견고조상모, 인중경지, 인입좌.    

소하왈 : "유계고다대언, 소성사. "  고조인압모제객, 수좌상좌, 무소굴.)
         

['여공'은 관상 보기를 좋아하였다,  '고조'의 용모와 관상을 살펴본 '여공'은 더욱 극진히 대하며  안내하여

좌석에 앉게 하였다. '소하'가 말하기를 : "'유계'는 원래 큰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이루어지는 일은 적습니다 "

라고 하였다.  '고조'는 여러 손님들을 무시하며 마침내 자리에 가서는 상좌에 앉아 결코 양보하는 기색이 없었다.]
          

酒闌, 呂公因目固留高祖. 高祖竟酒, 後.

呂公曰:“臣少好相人, 相人多矣, 無如季相, 願季自愛. 臣有息女, 願為季箕帚妾.”
(주란, 여공인목고유고조. 고조경주, 후.   

여공왈 : "신소호상인, 상인다의, 무여계상, 원계자애.  신유식녀, 원위계산추첩. " )

[술자리가 끝나갈 즈음, '여공'은 '고조'에게 눈짓을 하여 뒤에 남아 있도록 하였다.

마침내 술자리가 끝난후 '여공'이 말하기를 : "저는 어려서부터 남의 관상보기를 좋아 하였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많은 사람의 관상을 보았지만, 당신과 같은 상을 본 적이 없습니다, 원컨대 자중자애 하시기 바랍니다.

마침 저에게 여식이 있으니 데려가 집안 청소나 하는 첩으로 받아 주십시요."라고 하였다. ]
          

酒罷, 呂媼怒呂公曰:“公始常欲奇此女, 與貴人. 沛令善公, 求之不與, 何自妄許與劉季?.

(주파, 여온노여공왈 : "공시상욕기차녀, 여귀인.  패령선공, 구지불여, 하자망허여유계 ? " )
         

[술자리가 끝나고, 여공의 부인이 화를 내며 여공에게 말하기를 : "당신은 매일 우리 딸이 뛰어난 애라고 하면서

귀인에게 시집 보내겠다고 하고는, 당신과 사이가 좋은 "패현"의 현령과의 혼사는 마다하고 

어찌하여 '유계' 같은 자에게 딸아이를 주기로 허락 하셨습니까 ? "라고 하자]
          

呂公曰:“此非兒女子所知也. ” 卒與劉季。呂公女乃呂后也, 生孝惠帝、魯元公主。
(여공왈 : "차비아녀자소지야. " 졸여유계.  여공녀내여후야, 생효혜제, 노원공주.)
         

['여공'이 말하기를 : "이 일은 아녀자가 상관할 일이 아니오. " '여공'은 결국 그의 딸을 '유계'에게 시집보냈다.

'여공'의 딸이 후에 '여태후'로 효혜제와 노원공주를 낳았다.]
    

高祖為亭長時, 常告歸之田。呂后與兩子居田中耨, 有一老父過請飲, 呂后因餔之.
(고조위정장시, 상고귀지전. 여후여양자거전중누, 유일노부과청음, 여후인포지 )
         

['고조'가 정장으로 있을 때 항상 휴가를 청하여 집에 와 있곤 하였다.

어느날 '여후'가 두 아이들을 데리고 밭에 나가 김을 메고 있는데 길을 가던 노인 한 사람이 물 마시기를 청하여

여후는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주어 요기를 시켰다.]
          

老父相呂后曰:"夫人天下貴人.”  令相兩子, 見孝惠,

曰:"夫人所以貴者, 乃此男也.” 相魯元, 亦皆貴.
(노부상여후왈 : "부인천하귀인." 영상양자, 견효혜,

왈 : "부인소이귀자, 내차남야."  상노원, 역개귀.)
          

[노인이 '여후'의 얼굴을 살펴보더니 말하기를 : "부인은 천하에 귀한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여후'가 아이들을 불러 관상을 보게 하였는데, '효혜'의 상을 보고 말하기를 :

"부인이 귀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 사내 아이 때문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 노인은 '노원'공주의 상을 보더니 역시 귀한 상이라고 하였다.]
          

老父已去, 高祖適從旁舍來, 呂后具言客有過, 相我子母皆大貴.

高祖問,曰:“未遠.”  乃追及, 問老父.
(노부이거, 고조적종방사래, 여후구언객유과, 상아자모개대귀.   

고조문, 왈 : "미원."   내추급, 문노부.)
          

[노인이 간 후에 '고조'가 행랑채에서 나오자 '여후'가 지나가던 사람이 자기와 아이들의 관상을 보더니

모두 귀하게 될 상이라고 했던 일을 말하였다.  

'고조'가 그 노인이 어디 있느냐고 묻자 '여후'는 아직 멀리 가지 못하였을 거라고 말하였다.
'고조'는 바로 그 노인의 뒤를 쫓아가 불러 세우고는 자기의 관상은 어떠하냐고 물었다.]
          

老父曰:“鄉者夫人嬰兒皆似君, 君相貴不可言.”

高祖乃謝曰:“誠如父言, 不敢忘德.” 及高祖貴, 遂不知老父處.
(노부왈 : "향자부인영아개이군, 군상귀불가인."  

고조내사왈 : "성여부언, 불감망덕." 내고조귀, 수불지노부처.)
          

[노인이 대답하길 : "지금 당신의 얼굴을 보니 부인과 자녀들의 상이 모두 비슷합니다.

당신의 관상은 귀하기가 이를 데 없습니다 "라고 말을 하자.

'고조'가 이에 감사하다고 하며 말하기를 :

"진실로 제가 노인장의 말대로 그리 된다면 이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고조가 귀하게 되어 그 노인을 찾았으나 그때는 행방이 묘연해 찾을 수가 없었다.]

 

高祖為亭長, 乃以竹皮為冠, 令求盜之薛治之, 時時冠之, 及貴常冠, 所謂“劉氏冠”乃是也。 

高祖以亭長為縣送徒酈山, 徒多道亡.

自度比至皆亡之, 到豐西澤中, 止飲, 夜乃解縱所送徒.
(고조위정장, 내이죽피위관, 영구도지설치지, 시시관지, 내귀상관, 소위"유씨관"내시야.

고조이정장위현송도여산, 도다도망.

자도비지개망지, 도풍서택중, 지음, 야내해종소송도.)

 

['고조'가 정장이 되자 대나무 껍질로 관을 만들었다, '구도'를 "설"에 보내 다스리게 하였고,

'고조'는 이 죽관을 출타할 때마다  항상 머리에 쓰고 다녔으며, 후에 황제가 되었을 때도 계속 썼으므로

소위 "유씨관"이 바로 이것이다

'고조'가 정장의 신분으로 "패현"의 형도(벌을 받는 무리)들을 "여산"의 진시황릉 노역장에 보내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중간에 많은 형도들이 도망치자 '고조'는 마음속으로 자기가 "여산"에 도착할 쯤이면

모두 도망가고 한 사람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고는, 그들의 행렬이 "풍읍"의 서쪽 "택중"에 도달하자,

행진을 멈추고 술을 마시다가 밤이 되자, 형도들을 풀어 주었다.]
          

曰:“公等皆去, 吾亦從此逝矣!”

徒中壯士願從者十餘人.  高祖被酒, 夜徑澤中, 令一人行前.
(왈 : "공등개거, 오역종차서의 ! "  

도중장사원종자십여인. 고조피주, 야경택중, 영일인행전.)
         

[그리고 말하기를 : "그대들은 모두 가고 싶은 대로 가도 좋다, 나 역시 여기서 떠날 것이다 ! "  

형도들중 10여 명의 장사들이 '고조'의 뒤를 따르기를 원하였다.'

고조'가 술이 취한 상태에서 야밤에 "택중"으로 가는 지름길을 찾기 위해 한 사람을 앞으로 보내 길을 찾게 하였다.]
          

行前者還報曰:“前有大蛇當徑, 願還.”  高祖醉,曰:“壯士行, 何畏!” 

乃前, 拔劍擊斬蛇。蛇遂分為兩, 徑開。
(행전자환보자 : "전유대사당경, 원황."  고조취, 왈 : " 장사행, 하외 ! "   

내전, 발검격참사.  사수분위량, 경개.)
         

[그 사람이 돌아와 보고하기를 : "앞에 큰 뱀이 길을 막고 누워 있어 돌아가야 될 것 같습니다 "라고 하자, 

술에 취한 '고조'가  말하기를 : "장사가 길을 가는데 무엇이 두렵단 말인가 ! "라고 하고는 이에 앞서더니,

칼을 뽑아 그 뱀을 내리쳤다. 그 뱀은 두 동강이 나고 길이 뚫리게 되었다.]
          

行數里, 醉, 因臥. 後人來至蛇所, 有一老嫗夜哭. 人問何哭, 嫗曰:“人殺吾子, 故哭之.”

人曰:“嫗子何為見殺?”  嫗曰:“吾, 白帝子也, 化為蛇, 當道, 今為赤帝子斬之, 故哭.”
(행수리,취, 인와.  후인래지사소, 유일노구야곡.   인간하곡, 구왈 " "인살오자, 고곡지."

인왈 : "구자하위견살 ? " 구왈 : "오, 백제자야, 화위사, 당도, 금위적제자참지, 고곡.")
         

[일행이 몇 리를 더 가다가 취기가 오른 '고조'는 땅에 누워 잠이 들었다.

뒤를 따르던 사람들이 뱀을 죽인 장소에 이르자 한 노파가 밤에 소리 높여 슬피 울고 있었다.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울고 있느냐고 묻자,

노파가 말하기를 : "어떤 사람에게 살해된 내 아들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다시 묻기를 : "노파의 아들이 무엇 때문에 살해 되었단 말이오 ? " 라고 하자, 

노파가 말하기를 : "내 아들은 바로 '백제'의 아들이오, 뱀으로 변하여 길을 가고 있는데

'적제'의 아들에게 참변을 당한 것이오, 그리하여 우는 것이오 "라고 하였다.]

          

人乃以嫗為不誠, 欲告之, 嫗因忽不見. 後人至, 高祖覺.

後人告高祖, 高祖乃心獨喜, 自負. 諸從者日益畏之.
(인내이구위불성, 욕고지, 구인홀불견. 후인지, 고조각.    

후인고고조, 고조내심독희, 자부.  제종자일익외지.)
         

[사람들은 그 노파가 놀리는 것으로 생각하여 혼내주려고 하자 그 노파는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그들이 '고조'가 있는 곳에 당도하였을 때 '고조'는 술에서 깨어 있었다.

사람들은 자기들이 본 일들을 모두 '고조'에게 이야기 하였고,  

그 말을 들은 '고조'는 마음속으로 매우 즐거워하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고조'를 따르던 사람들은 더욱 두려워하게 되었다.]

 

秦始皇帝常曰“東南有天子氣”, 於是因東游以厭之. 高祖即自疑, 亡匿, 隱於芒,碭山澤巖石之閒.
(진시황제상왈"동남유천자기", 어시인동유이염지. 고조즉자의, 망닉, 은어망, 탕산택암석지간.)
         

[진시황이 항상 말하기를 "동남쪽에 천자의 기운이 있다"라고 하면서 동쪽으로 순수하여 그 기운을 누르려고 하였다.

'고조'는 즉시 스스로 의심함을 느끼고, 숨을 곳을 찾아 도망쳐 탕산(碭山) 사이인

망(芒)· 탕(碭)의 소택지의 석굴 사이에 몸을 숨겼다.]
          

呂后與人俱求, 常得之. 高祖怪問之.

呂后曰:“季所居上常有雲氣, 故從往常得季.” 高祖心喜.  沛中子弟或聞之, 多欲附者矣.
(여후여인구구, 상득지. 고조괴문지.  

여후왈 : "계소거상상유운기, 고종왕상득계." 고조심희. 패중자제혹문지, 다욕부자의.)
         

['여후'가 사람들을 데리고 '고조'를 찾아 나설 때마다 항상 쉽게 찾아 내었다.

고조가 기이하게 여겨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묻자. '여후'가 말하기를 : "당신이 머무는 곳 위에는

항상 운기가 서려있어 이렇게 쉽게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하였다.
'고조'는 속으로 매우 기뻐하였으며, 이 말을 전해들은 "패현"의 많은 자제들이 '고조'를 따르려고 하였다.]

 

秦二世元年秋, 陳勝等起蘄, 至陳而王, 號為“張楚”. 諸郡縣皆多殺其長吏以應陳涉.

沛令恐, 欲以沛應涉.
(진이세원년추, 진승등기기, 지진이왕, 호위"장초".  제군현개다살기장리이응진섭.

패령공, 욕이패응섭.)
         

[진나라 이세황제 원년 가을, '진승'등이 "기현"에서 궐기하여 "진성"으로 들어가 왕이 되어 나라 이름을

"장초"라고 하였다. 주위의 여러 군현들의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 그 수령들을 죽이고 '진섭'의 거사에 호응하였다.

이를 두려워 한 패현의 현령은 그 고을을 바쳐 '진섭'의 거사에 호응하려고 했다.] 
          

掾, 主吏蕭何, 曹參乃曰:“君為秦吏, 今欲背之, 率沛子弟, 恐不聽.

願君召諸亡在外者, 可得數百人, 因劫眾, 眾不敢不聽.”
(연, 주리소하, 조참내왈 : "군위진리, 금욕배지, 솔패자제, 공불청.  

원군소제망재외자, 가득수백인, 인겁중 , 중불감불청.")
         

[이에 주리'소하'와 옥리'조참'이 말하기를 : "군이 진나라 관리로서 지금 배반하고자 "패성"의 자제들을 거느리나 

두렵지만 들을 수 없습니다. 원컨대 군은 도망가서 밖에 있는 여러 제후들을 부르면 수 백인을 얻을 수 있으며

진승군을 힘으로써 겁을 주면 저들은 감히 듣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乃令樊噲召劉季。劉季之眾已數十百人矣.

於是樊噲從劉季來. 沛令後悔, 恐其有變, 乃閉城城守, 欲誅蕭,曹. 蕭,曹恐, 踰城保劉季.
(내령번쾌소유계. 유계지중이수십백인의.

어시번쾌종유계래. 패령후회, 공가유변, 내폐성성수, 욕주소,조.  소, 조공, 유성보유계.)
 

['번쾌'로 하여금 '유계'를 부르게 하였다. '유계'를 따르는 무리는 이미 수십 백인이었다.]

 

이에 '번쾌'를 따라 '유계'가 왔다. 패현의 현령은 나중에 후회를 하더라도, 지금 변란이 생길까 두려워

성문을 걸어 닫고 성을 지켰다, 이어서 현령이 '소하'와 '조참'을  죽이려 하자,

두 사람은 두려워서 성벽을 넘어 '유계'에게 몸을 의탁하였다.]

劉季乃書帛射城上, 謂沛父老曰:" 天下苦秦久矣。今父老雖為沛令守, 諸侯并起, 今屠沛.

沛今共誅令, 擇子弟可立者立之, 以應諸侯, 則家室完。不然, 父子俱屠, 無為也。” 

(유계내서백사성상, 위패공노왈 : " 천하고진구의.  금부노수위패령수, 제후병기, 금도패.
 패금공주령, 택자제가입자입지, 이응제후, 즉가실완.  불연, 부자구도, 무위야.")
         

['유계'가 이에 비단에 글을 적어 화살에 메달아 성안으로 날려 보내며 "패현"의 부로(어른)들에게 말하기를 :

" 천하가 진나라의 폭정에 신음한지가 이미 오래 되었소. 지금 "패현"의 부로인 여러분들이 현령을 위해

성을 지키고 있으나 이미 일제히 거사를 일으킨 제후들이 패현을 도륙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오.

여러분들은 지금 모두 힘을 합쳐 현령을 죽이고, 그 자제들중 한 사람을 택하여 수장으로 만든 다음

제후들에게 호응한다면 그대들의 집안은 안전하게 보존할 수 있을 것이오,

그렇지 않고 패현을 지키려고만 한다면, 父子가 모두 도륙당해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될 것이오 "라고 하였다.
          

父老乃率子弟共殺沛令, 開城門迎劉季, 欲以為沛令.

劉季曰:“天下方擾, 諸侯并起, 今置將不善, 壹敗涂地.

吾非敢自愛, 恐能薄, 不能完父兄子弟. 此大事, 願更相推擇可者.”
(부로내솔자제공살패령, 개성문영유계, 욕이위패령.

유계왈 : "천하방요, 제후병기, 금치장불선, 일패도지.   

오비감자애, 공능박, 불능완부형자제.  차대사, 원경상추택하자. ") 


[이에 "패현"의 부로들이 그 자제들을 이끌어 현령을 죽이고,

성문을 열어 '유계'를 맞아들이고 새 현령으로 세우려고 하였다.
그러자 '유계'가 말하기를 : "바야흐로 천하대란이 일어나 제후들이 모두 궐기하였는데 

지금 이런 혼란한 시기에 유능하지 못한 사람을 장수로 세운다면 한번의 싸움에 모든것이 허사가 될 것입니다.

내가 감히 내 자신을 아껴서가 아니라 내 능력이 부족하여 부형들과 자제들의 목숨을 온전히

보존시키지 못할 것이 걱정되어 능히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워낙 큰 일이라 원컨대 다시 서로 상의하여 다른 사람은 뽑으시길 바랍니다 "]
          

蕭,曹等皆文吏, 自愛, 恐事不就, 後秦種族其家, 盡讓劉季.

​諸父老皆曰:“平生所聞劉季諸珍怪, 當貴, 且卜筮之, 莫如劉季最吉。”      * 筮(점:서).

(소,조등개문리, 자애, 공사불취, 후진종기기가, 진양유계.

제부로개왈 : "평생소문유계제진괴, 당귀, 차복서지, 막여유계최길. ")
         

['소하', '조참'등은 모두 문관들이고, 자기 자신을 아끼기 때문에, 만일 일이 실패하였을 경우,

나중에 진나라가 그 종족들을 멸족시키지나 않을까 걱정하여 모든 것을 '유계'에게 양보하였다.

여러 부로들이 모두 입을 모아 말하기를 : "평소에 우리가 듣기에 당신에게는 여러 가지 진기한 일이

많이 일어나 귀하게 될 신분이며 점을 친 결과 당신보다 점괴가 더 좋게 나온 사람이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於是劉季數讓. 眾莫敢為, 乃立季為沛公. 祠黃帝, 祭蚩尤於沛庭, 而釁鼓旗, 幟皆赤.

由所殺蛇白帝子, 殺者赤帝子, 故上赤.             * 釁(피칠할:흔).     幟(깃발:치).

於是少年豪吏如蕭,曹,樊噲等皆為收沛子弟二三千人, 攻胡陵,方與, 還守豐.

(어시유계수양, 중막삼위, 내립계위패공.  사황제, 제치우어패정, 이흔고기, 치개적.

유소살사백제자, 살자적제자, 고상적.  

어시소년호리여소,조,번쾌등개위수패자제이삼천인, 공호능, 방여, 환수풍.) 

[그래도 '유계'가 계속 사양하였으나 감히 수장이 되려고 나서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결국은 '유계'가 추대되어 '패공'이라 칭하게 되었다.  

"패현"의 관아 뜰에 사당을 세우고 '황제'와 '치우'에게 제사를 지낸 다음 북과 깃발에 피 칠을 하였으며,

그리하여 '패공'을 나타내는 깃발은 모두 적색으로 삼았다.
이는 예전에 '유계'가 죽인 뱀이 백제의 아들이고, 그 뱀을 죽인 자기는 적제의 아들임을 나타내 적색을 숭상한

것이다. 이윽고 '소하', '조참', '번쾌'와 같은 젊고 뛰어난 지방 관리들이 "패현"의 자제 2 ~ 3천 명을 이끌고,  

"호릉", "방여"를 공격하고 다시 돌아와 "풍읍"을 지켰다.]

 

秦二世二年, 陳涉之將周章軍西至戲而還。燕,趙,齊,魏皆自立為王. 項氏起吳.

秦泗川監平將兵圍豐, 二日, 出與戰, 破之.
(진이세이년, 진섭지장주장군서지희이환. 연,조,제,위개자립위왕.  항씨기오.   

진사천감평장병위풍, 이일, 출여전, 파지.)
         

[진 이세황제 이년, '진섭'의 부하 장수 '주장'이 서쪽의 "희수"에 당도했다가 다시 돌아왔다.
당시 연, 조, 제, 위의 나라로 진격하여 평정한 '진섭'의 수장들은 모두 자립하여 왕이 되었다. 

이때 남쪽의 "오현"에서도 항씨(항량, 항우)가 일어났다.  

진나라 "사천"에서 장수 '감평'이 군사를 이끌고 "풍읍"을 포위하였으나,

이틀후 '패공'이 성안의 군사를 이끌고 출전하여 진군을 무찔렀다.]
          

命雍齒守豐, 引兵之薛. 泗州守壯敗於薛, 走至戚, 沛公左司馬得泗川守壯, 殺之.

沛公還軍亢父, 至方與, (周市來攻方與) 未戰. 陳王使魏人周市略地.

(명옹치수풍, 인병지설. 사주수장패어설, 주지촉, 패공좌사마득사천수장, 살지.

패공환군항보, 지방여, (주불래공방여) 미전. 진왕사위인주불략지.)
         

[이어 '옹치'에게 명하여 "풍읍"을 지키게하고 자기는 군사를 이끌고 "설"을 공격하기 위해 출전하였다.

"사주"의 태수 '장'이 "설현"에서 '패공'과의 싸움에 지고 "촉읍"으로 달아났고,

'패공'의 좌사마 '조무상'이 "사천"을 지키고 있던 '장'을 잡아 죽였다.
'패공'이 군사를 이끌고 "항보"를 거쳐 "방여"에 이르렀으나 ('주불'이 "방여"를 공격하러 올 때까지) 

한번도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다. '진승'이 위나라 사람 '주불'을 시켜 옛 위나라 땅을 공략하려고 하였다.]
          

周市使人謂雍齒曰:“豐, 故梁徙也. 今魏地已定者數十城.

齒今下魏, 魏以齒為侯守豐. 不下, 且屠豐.”
(주불사인위옹치왈 : "풍, 고량사야. 금위지이정자수십성.  

치금하위,  위이치위후수풍.  불하, 차도풍. ")
         

['주불'이 사자를 보내 '옹치'에게 말하기를 : "풍읍"은 옛날에 위나라가 천도한 곳이다.

지금 위나라 지역의 수 십개의 성은 이미 평정되었다. 그대가 지금 위나라에 항복한다면

위나라는 그대를 제후로 봉해 "풍읍'을 맡길 것이다. 그러나 항복하지 않을 경우,

"풍읍"은 도륙되어 한 사람도 살아 남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雍齒雅不欲屬沛公, 及魏招之, 即反為魏守豐. 沛公引兵攻豐, 不能取. 沛公病, 還之沛.

沛公怨雍齒與豐子弟叛之, 聞東陽甯君, 秦嘉立景駒為假王, 在留, 乃往從之, 欲請兵以攻豐.

(옹치아불욕속패공, 급위초지, 즉반위위수풍. 패공인병공풍, 불능취.  패공병, 환지패.

패공원옹치여풍자제반지, 문동양녕군, 진가립구위가왕, 재유, 내왕종지, 욕청병이공풍.)

 

['옹치'는 원래 '패공'의 밑에 있는것을 원치 않았으므로 위나라가 항복을 권유해 오자,

즉시 '패공'을 배반하고 "풍읍"을 위나라에 바쳐 버렸다. '패공'이 병사를 이끌고 "풍읍"을 공격하였으나

취할 수 없었다.  그때 '패공'은 병이 들어서 "패현'으로 돌아왔다.
'패공'은 "옹치"와 "풍읍"의 자제들이 배반한 것에 대해 매우 원통해 하였으나,  

동양 사람인 '녕군'과 '진가'가 '경구'를 임시 왕으로 세우고 "유현"에 주둔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내 달려가 군사를 지원받아 "풍읍"을 공격하려고 하였다.]
          

是時秦將章邯從陳, 別將司馬夷將兵北定楚地, 屠相, 至碭. 東陽甯君,沛公引兵西, 與戰蕭西, 不利.
(시시진장장한종진, 별장사마이장병북정초지, 도상, 지탕. 동양녕군,패공인병서, 여전소서, 불리.)
         

[이때 '진승'의 군대를 추격하던 진나라 장수 '장한'의 별장 '사마이'가 별동대를 이끌고 

북쪽의 초나라 땅을 평정하여 "상현"을 도륙하고 "탕군"에 이르렀다.  

동양의 '녕군'과 '패공'은 병사를 이끌고 서쪽으로 진격하여 진군과 "소현"의 서쪽에서  전투를 벌였으나

전세가 불리하였다.] 
          

還收兵聚留, 引兵攻碭, 三日乃取碭. 因收碭兵, 得五六千人. 攻下邑, 拔之. 還軍豐.

聞項梁在薛, 從騎百餘往見之. 項梁益沛公卒五千人, 五大夫將十人. 沛公還, 引兵攻豐.
(환수병취유, 인병공탕, 삼일내취탕. 인수탕병, 득오육천인.  공하읍, 발지. 환군풍.   

문항량재설, 종기백여왕견지. 항량익패공졸오천인, 오대부장십인.  패공환, 인병공풍.)
         

[후퇴를 하여 군사를 모집한 후 "유"에서 다시 전열을 정비하고 "탕郡"을 공격하여 3일 간의 전투끝에

"탕郡"을 점령하였다. 이로써 '탕'의 병사 5 ~6천 명을 얻었다. 이어서 "하읍"을 공격하여 함락시켰고,

계속 진군하여 "풍읍" 부근에 주둔하였다. '항량'이 "설현"에 주둔하고 있다는 말을 들은 '패공'은 백 여기의

기병을 대동하고 그의 진영을 방문하였다. '항량'은 '패공'에게 군사 5천 명과 오대부 장수 10명을 지원해 주었다.

'패공'은 돌아와서 군대를 이끌고 "풍읍"을 공격하였다.]

 

從項梁月餘, 項羽已拔襄城還. 項梁盡召別將居薛.

聞陳王定死, 因立楚後懷王孫心為楚王, 治盱臺. 項梁號武信君.
(종항량월여, 항우이발양성환. 항량진소별장거설.

문진왕정사,  인입초후회왕손심위초왕, 치우대. 항량호무신군.)
         

['패공'이 '항량을 따른지 한달이 지나자 '항우'가 "양성"을 함락시키고 돌아왔다.

'항량'은 각 지역의 별장들을 "설현"으로 소집하였다. 진왕 '진승'이 확실히 죽었다는 말을 들은 '항량'은

초나라 왕족의 후예인 회왕의 손자 '웅심'을 초왕으로 세우고 도읍을 "우이"에 정하여

그곳을 다스리게 하고 '항량'은 자신을 '무신군'이라 부르게 하였다.]
          

居數月, 北攻亢父, 救東阿, 破秦軍. 齊軍歸, 楚獨追北, 使沛公,項羽別攻城陽, 屠之.

軍濮陽之東, 與秦軍戰, 破之.
(거수월, 북공항보, 구동하, 파진군.  제군귀, 초독추북, 사패공,항우별공성양, 도지.  

군복양지동, 여진군전, 파지.)
         

["설현"에 주둔한지 수 개월이 지나 초군은 북쪽의 "항보"를 공격하여 진군을 무찔렀다.  

제나라 군대는 자기나라로 복귀하자, 초군은 홀로 남은 진군을 북진하며 추격하였고,

'항량'은 '패공'과 '항우'에게 별도의 군사를 보내 "성양"을 공격하라고 명하여 "성양"을 함락시켰다. 

"복양"의 동쪽에 주둔하고 있던 '항량'은 진군과의 전투에서 크게 무찔렀다.]

 

秦軍復振, 守濮陽, 環水. 楚軍去而攻定陶, 定陶未下.

沛公與項羽西略地至雍丘之下, 與秦軍戰, 大破之, 斬李由. 還攻外黃, 外黃未下.
(진군복진, 수복양, 환수. 초군거이공정도, 정도미하.

​패공여항우서략지지옹구지하, 여진군전, 대파지, 참이유. 환공외황, 외황미하.)
          

[전열을 정비한 진군은 "복양"을 지키기 위해 물을 끌어들여 해자를 만들었다. 

초군은 "복양"에서 후퇴하여 "정도"를 공격하였으나 "정도" 역시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성양"을 함락시킨 '패공'과 '항우'는 서쪽으로 진격하여 "옹구" 아래에서 진군과 전투를 벌여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