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本紀(사기본기)/12. 孝武帝本紀

第 十二. 孝武本紀(효무본기)

덕치/이두진 2021. 6. 27. 12:05

 

           史記 本紀 

 

 

   第 十二.  孝武本紀(효무본기) 

孝武皇帝者, 孝景中子也.  母曰王太后.  孝景四年, 以皇子為膠東王.   

孝景七年, 栗太子廢為臨江王, 以膠東王為太子. 

(효무황제자, 효경중자야.  모왈왕태후.  효경사년, 이황자위교동왕.   

효경칠년, 율태자폐위임강왕, 이교동왕위태자.) 

 

[효무황제는 효경황제의 열번째 아들이며, 그의 어머니는 왕태후라고 불렸다.   

효경제 4년, 황자의 신분으로 교동왕에 봉해졌다.
효경제 7년, 율태자가 폐위되어 임강왕으로 봉해지자, 교동왕이 태자의 자리에 올랐다.]

孝景十六年崩, 太子即位, 為孝武皇帝. 孝武皇帝初即位, 尤敬鬼神之祀. 

(효경십육년붕, 태자즉위, 위효무황제. 효무황제초즉위, 우경귀신지사.) 

 

[효경제가 즉위한 지 16년 만에 서거하자, 태자가 제위에 올라, 효무황제가 되었다.   

효무황제는 제위에 오르자 마자, 더욱 공경히 귀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元年, 漢興已六十餘歲矣, 天下乂安, 薦紳之屬皆望天子封禪改正度也.
(원년, 한흥이육십여세의, 천하예안, 천신지속개망천자봉선개정도야.)


[효무제 원​년, 한나라가 일어난 지 60여 년이 흘러 천하는 안정되고 편안하였으며,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모두 천자가 봉선을 거행하고 역법, 복색 등의 제도를 고칠 것을 희망했다.] 

而上鄉儒術, 招賢良, 趙綰、王臧等以文學為公卿, 欲議古立明堂城南, 以朝諸侯.   

草巡狩封禪改歷服色事未就.  會竇太后治黃老言, 不好儒術, 使人微得趙綰等姦利事,  

召案綰、臧, 綰、臧自殺, 諸所興為者皆廢.
(이상향유술, 초현량, 조관、왕장등이문학위공경, 욕의고립명당성남, 이조제후.  
 

초순수봉선개력복면사미취.  회두태후치황노언, 불호유술, 사인미득조관등간리사,  

소안관、장, 관、장자살, 제소흥위자개폐.) 

 

['무제'는 유가학설을 편애하여 전국 각지의 현량들을 불러들였는데, '조관'、'왕장' 등이 문장에 박학다식했기 때문에

공경대신에 임명되었으며, 그들은 옛날과 같이 성의 남쪽에 명당을 건립해 제후들이 조회할 때 사용할 것을 건의했다.

그러나 순수, 봉선, 역법, 의복의 색깔, 제도의 개정 등 그들이 초안한 여러 법안들은 실시되지 못했다.  

두태후는 황로의 학설을 숭상하고 유가 학설을 싫어했기에 몰래 사람을 시켜서 '조관'、'왕장'이 간사한 방법으로

이익을 취한 일이 있음을 알아내고는 그들을 불러 심문하자, '조관'、'왕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으므로,

그들이 실시하려던 일들이 모두 폐기되었다.]

后六年, 竇太后崩. 其明年, 上徵文學之士公孫弘等. 明年, 上初至雍, 郊見五畤. 

后常三歲一郊. 是時上求神君, 捨之上林中蹄氏觀.
(후육년, 두태후붕.  기명년, 상징문학지사공손홍등.  명년, 상초지옹, 교견오치.  
 

후상삼세일교.  시시상구신군, 사지상림중제씨관.)


[그후 6년 '두태후'가 세상을 떠났다.  그 이듬해에 '무제'는 문학지사인 '공손홍' 등의 인재를 불러들였다.
다음해, '무제'는 처음으로 "옹현"에 이르러 제사터인 오치에서 천지신명께 교사를 거행하였다.  
 

그 후로 3년마다 한 차례씩 교사를 거행하게 했다.
이때 '무제'는 제사를 주관할 신군을 한 사람 구하여, 그를 상림원에 있는 제씨관에 머물게 하였다.]

神君者, 長陵女子, 以子死悲哀, 故見神於先後宛若.  宛若祠之其室, 民多往祠.   

平原君往祠, 其后子孫以尊顯.  及武帝即位, 則厚禮置祠之內中, 聞其言, 不見其人云.
(신군자, 장릉여자, 이자사비애, 고견신어선후완약.  완약사지기실, 민다왕사.  
 

평원군왕사, 기후자손이존현.  급무제즉위, 즉후례치사지내중, 문기언, 불견기인운.)


[신군은 "장릉"에 살던 어떤 여자로, 자식이 요절하자 슬퍼하다가 따라 죽었고, 
 

죽은 후에 그녀의 동서인 '완약'의 몸에 신령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에 '완약'은 그녀를 자기 집에 모시고 제사를 지냈는데, 백성들도 많이 와서 제사를 지냈다.  
'평원군'도 그 곳에서 제사를 지내자, 후에 '평원군'의 자손들은 지위가 높아지고 이름이 드러나게 되었다. 
 

무제가 즉위하자, 성대한 예로써 궁내에 그녀를 모셔서 제사지냈는데,

그녀의 말소리는 들렸으나,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是時而李少君亦以祠灶、谷道、卻老方見上, 上尊之. 少君者, 故深澤侯入以主方.   

匿其年及所生長, 常自謂七十, 能使物, 卻老. 其游以方遍諸侯.  無妻子.
(시시이이소군역이사조、곡도、각로방견상, 상존지.  소군자, 고심택후입이주방.  
 

익기년급소생장, 상자위칠십, 능사물, 각로. 기유이방편제후. 무처자.)


[이때 '이소군'도 부엌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사조、곡식을 먹지 않아도 되는 곡도、불로장생하는 각로술로써

천자를 알현하자, 천자는 그를 매우 정중하게 대접했다. '이소군'은 이미 세상을 떠난 '심택후'의 추천으로 입조해

천자의 방술과 의약에 대한 일을 주관하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출생, 나이, 성장 과정을 속였으며,

항상 자신의 나이가 70세이고 귀신을 부리고 약물을 사용함에 능숙하다고 했으며, 
노화를 방지하고 불로장생할 수 있는 방술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와 같은 방술로써 세상을 주유해 각국의 제후들을 두루 만났다. 그에게는 아내와 자식이 없었다.] 

人聞其能使物及不死, 更饋遺之, 常餘金錢帛衣食.  人皆以為不治產業而饒給, 又不知其何所人,  

愈信, 爭事之.  少君資好方, 善為巧發奇中.  嘗從武安侯飲, 坐中有年九十餘老人,  

少君乃言與其大父游射處, 老人為兒時從其大父行, 識其處, 一坐盡驚.
(인문기능사물급불사, 경궤유지,  상여금전백의식.  인개이위불치산업이요급, 우불지기하소인, 
 

유신, 쟁사지.  소군자호방, 선위교발기중.  상종무안후음, 좌중유년구십여노인,  

소군내언여기대부유사처, 노인위아시종기대부행, 식기처, 일좌진경.)


[사람들은 그가 귀신을 부릴 수 있고 불로장생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너도나도 그에게 재물을 가져다 
주었으므로,

그는 항상 수많은 금전, 비단, 옷과 음식이 남아 돌았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가 생업에 종사하지 않으면서도

부유한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고, 또한 그가 어디 출신인지도 모르면서 더욱 믿고 앞다투어 섬겼다. 

'이소군'은 천성이 방술을 좋아하였고, 교묘한 말을 잘 하였는데 신기하게도 정확히 알아맞혔다. 

그는 일찍이 무안후 '전분'을 따라 잔치에 참석했었는데, 자리한 사람중에 90세 노인이 있었다.
'이소군'은 자신이 그 노인의 조부와 함께 사냥했던 장소를 이야기하자,

그 노인은 어렸을 때 조부를 따라 갔었기 때문에 그 장소를 알고 있었으므로, 그 장소가 맞다고 하자,

손님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少君見上, 上有故銅器, 問少君.  少君曰:“ 此器齊桓公十年陳於柏寢. ”   

已而案其刻, 果齊桓公器.  一宮盡駭, 以少君為神, 數百歲人也.
(소군현상, 상유고동기, 문소군.  소군왈 : " 차기제환공십년진어백침. "  
 

이이안기각, 과제환공기.  일궁진해, 이소군위신, 수백세인야.)


['이소군'이 '무제'를 배알했을 때 '무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구리 그릇에 대해서 물었다.
'이소군'이 대답하기를 : " 이 구리 그릇은 '제환공' 10년에 백침대에 있던 것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에 '무제'는 사람을 시켜서 동기에 새겨진 글자를 검사하자, 과연 그것은 '제환공' 때의 동기로 밝혀졌다. 
그러자 온 궁중 안의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고, '이소군'은 신과 같은 사람이며, 
 

그의 나이는 수백 살이나 되었다고 여겼다.]

少君言於上曰:“ 祠灶則致物, 致物而丹沙可化為黃金, 黃金成以為飲食器則益壽,  

益壽而海中蓬萊僊者可見, 見之以封禪則不死, 黃帝是也.  

臣嘗游海上, 見安期生, 食臣棗, 大如瓜. 安期生僊者, 通蓬萊中, 合則見人, 不合則隱. ”
(소군언어상왈 : " 사조즉치물, 치물이단사가화위황금, 황금성이위음식기즉익수, 
 

익수이해중봉래선자가견, 견지이봉선즉불사, 황제시야. 

신상유해상, 견안기생, 식신조, 대여과. 안기생선자, 통봉래중, 합즉견인, 불합즉은. " )


['이소군'이 '무제'에게 아뢰기를 : “ 부엌신에게 제사 지내면 신령한 물건을 얻을 수 있고, 
 

신령한 물건을 얻으면 단사를 이용해 황금을 제련할 수 있으며, 

황금을 제련한 후에 그것으로 음식 담는 릇을 만들어서 사용하면 장수할 수 있습니다. 

장수하게 되면 바다 가운데 떠있는 봉래산의 선인을 만날 수 있으며, 

선인을 만나서 산천에 제사를 지내면 불로장생할 수 있으므로 황제께서도 이와 같이 하셨습니다. 

신이 이전에 바닷가를 거닐다가 '안기생'을 만났으며, 그가 신에게 대추를 먹으라고 주었는데,

그 대추의 크기가 참외만큼 컸습니다. '안기생'은 선인이어서 봉래산을 왕래할 수 있는데,

천자께서 와 마음이 통하면 그가 모습을 나타낼 것이지만, 통하지 않으면 숨어 버릴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於是天子始親祠灶, 而遣方士入海求蓬萊安期生之屬, 而事化丹沙諸藥齊為黃金矣. 

居久之, 李少君病死. 天子以為化去不死也, 而使黃錘史寬舒受其方.   

求蓬萊安期生莫能得, 而海上燕齊怪迂之方士多相效, 更言神事矣.
(어시천자시친사조, 이견방사입해구봉래안기생지속, 이사화단사제약제위황금의. 
 

거구지, 이소군병사. 천자이위화거불사야, 이사황추사관서수기방.   

구봉래안기생막능득, 이해상연제괴우지방사다상효, 경언신사의.)


[그러자 '무제'는 몸소 부엌신에 제사 지내기 시작하였고, 방사를 파견해 바다로 들어가서 '안기생'과 같은

선인을 찾게 하였으며, 동시에 단사 등 각종 약물을 사용해 황금을 만들게 하였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이소군'이 병들어 죽자.  '무제'는 그가 신선이 되어 승천한 것이지 결코 죽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므로, '무제'는 "황현", "추현"의 사관인 '관서'로 하여금 '이소군'의 방술을 계승하게 하였다. 

그리고 봉래 선인 '안기생'을 찾도록 명령했으나 결국 찾아내지 못했다. 
이후로 연나라, 제나라 등 바닷가 주변에 사는 괴상하고 우매한 수많은 방사들이 '이소군'을 모방하였고, 
 

계속해서 신선에 대한 일들이 전해져 왔다.] 

亳人薄誘忌奏祠泰一方, 曰:“ 天神貴者泰一, 泰一佐曰五. 

古者天子以春秋祭泰一東南郊, 用太牢具.  七日, 為壇開八通之鬼道. ”
(박인박유기주사태일방, 왈 : " 천신귀자태일, 태일좌왈오제.  고자천자이춘추제태일동남교, 
 

용태뢰구, 칠일, 위단개팔통지귀도. " )


["박현" 사람 '박유기'가 천지의 세 신 가운데 하나인 태일신에게 제사 지내는 예의에 대해서

'무제'에게 아뢰기를 : “ 천신 중에서 가장 존귀한 분은 태일신이며, 태일을 보좌하는 것이 오제입니다.   

옛날에 천자는 매년 봄, 가을에 "장안" 동남쪽 교외에서 태일신에게 제사 지냈으며 

제물로는 소를 통째로 사용하였습니다. 7일 동안 제사를 지냈는데 제단을 만들고 팔방으로 통하는 귀도를 만들어서

귀신이 왕래하게 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다. ]

於是天子令太祝立其祠長安東南郊, 常奉祠如忌方.  其后人有上書, 言 “ 古者天子三年一用太牢具祠神三一:

天一, 地一, 泰一 ”.  天子許之, 令太祝領祠之忌泰一壇上, 如其方.
(어시천자령태축기사장안동남교, 상봉사여기방.  기후인유상서, 언 " 고자천자삼년일용
태뢰구사신삼일 :

천일, 지일, 태일 ".  천자허지, 영태축령사지기태일단상, 여기방.)


[이리하여 '무제'는 제사를 주관하는 태축에게 명해 "장안" 동남쪽 교외에 태일신의 사당을 건립하게 하고,

항상 '박유기'가 말한 방식에 따라 제사 지내게 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글을 올려 아뢰기를 : “ 옛날에 천자는 3년에 한 번씩 태뢰로 세 신에게 제사 지냈으니 :

천일신, 지일신, 태일신입니다. "라고 하였다.  '무제'는 이를 윤허하고, 

'박유기'의 건의에 따라서 건립한 태일신의 제단에서 그가 상소한 방식에 따라서 제사 지내라고 태축에게 명하였다.] 

后人復有上書, 言 “ 古者天子常以春秋解祠, 祠黃帝用一梟破鏡;冥羊用羊;祠馬行用一青牡馬; 

泰一 · 皋山山君· 地長用牛;武夷君用乾魚;陰陽使者以一牛 ”.
(후인부유상서, 언 " 고자천자상이춘추해사, 사황제용일효파경 ; 명양용양 ; 사마행용일청모마 ; 
 

태일 · 고산산군· 지장용우 ; 무이군용건어 ; 음양사자이일우 ".)


[그 후에 어떤 사람이 다시 글을 올려 아뢰기를 : “ 옛날 천자는 항상 봄, 가을에 재앙이 일어나지 않게 
기원하는

제사를 지냈는데, 황제에게 제사 지낼 때는 어미를 잡아먹는다는 효조와 아비를 잡아먹는다는 악수를 사용하고,

명양신에 제사 지낼 때는 양을 ; 마행신에 제사 지낼 때는 푸른 빛의 숫말 한필을 ;  

태일신, 고산산군, 지장신에게 제사 지낼 때는 소를 사용하고 ; 무이군에게 제사 지낼 때는 건어물을 사용하고 ; 

음양사자에게 제사 지낼 때는 소 한 마리를 사용했습니다. ”라고 하였다. ] 

令祠官領之如其方, 而祠於忌泰一壇旁.  其后, 天子苑有白鹿, 以其皮為幣, 以發瑞應, 造白金焉.
(영사관령지여기방, 이사어기태일단방.  기후, 천자원유백록, 이기피위폐, 이발서응, 조백금언.)


[이에 '무제'는 사관에게 그의 말한 방식대로 제사 지내되, '박유기'가 건의한 태일단 옆에서 제사를 
지내라고 명했다.

그 후 '무제'의 궁궐 안에 있는 동산에 흰 사슴이 나타나자, 사슴의 가죽으로 화폐를 만들었고,

이것이 상서로운 조짐임을 선양하려고, 백금으로 화폐를 만들었다. ]

其明年, 郊雍, 獲一角獸, 若麃然.  有司曰:“ 陛下肅祗郊祀, 上帝報享, 錫一角獸, 蓋麟云. ”    

於是以薦五畤, 畤加一牛以燎.  賜諸侯白金, 以風符應合于天地.
(기명년, 교옹, 획일각수, 약포연.  유사왈: " 폐하숙지교사, 상제보향, 석일각수, 개린운. "   
 

어시이천오치, 치가일우이료.  사제후백금, 이풍부응합우천지.)


[그 이듬해, '무제'가 "옹현"에서 교사를 거행하다가 뿔이 하나 달린 들짐승을 포획했는데, 

그 모양이 마치 고라니 같았다.  제사를 주관하는 관리가 말하기를 : “ 폐하께서 장엄하고도 공경스럽게 

제사를 지내시니 상제께서 보답의 표시로 뿔이 하나 달린 이 짐승을 내려주셨는데, 

아마도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기린이 아닐까 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그것을 오치에 바치고  각 제사터마다 소 한 마리씩을 태워서 하늘에 제사 지냈다. 

또 '무제'는 제후들에게 백금을 하사함으로써, 이러한 상서로운 징조는 '무제'의 정치가 하늘의 뜻에

부합했기 때문임을 암시하였다. ] 

於是濟北王以為天子且封禪, 乃上書獻泰山及其旁邑.  天子受之, 更以他縣償之. 

常山王有罪, 遷, 天子封其弟於真定, 以續先王祀, 而以常山為郡. 然後五岳皆在天子之郡.
(어시제북왕이위천자차봉선, 내상서헌태산급기방읍.  천자수지, 경이타현상지.

상산왕유죄, 천, 천자봉기제어진정, 이속선왕사, 이이상산위군. 연후오악개재천자지군.)


[이때 제북왕은 '무제'가 봉선을 거행할 것임을 알고 태산 및 그 주변의 성읍을 헌납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무제'는 이를 받아들였고, 그에게는 다시 다른 현을 상으로 주었다. 
상산왕이 죄를 짓자 추방시켰고,

'무제'는 상산왕의 동생을 "진정"의 왕으로 봉해 계속 선왕의 종묘에 제사 받들게 하였고, 

상산국을 군으로 귀속시켰다.  이때부터 나라의 큰 제사를 지내던 곳은 모두 '무제'의 직할지 안에 들게 되었다.]

其明年, 齊人少翁以鬼神方見上.  上有所幸王夫人, 夫人卒, 少翁以方術蓋夜致王夫人及朝鬼之貌云, 天子自帷中望見焉. 

於是乃拜少翁為文成將軍, 賞賜甚多, 以客禮禮之.
(기명년, 제인소옹이귀신방견상.  상유소행왕부인, 부인졸, 소옹이방술개야치왕부인급조귀지모운,
천자자유중망견언. 

어시내배소옹위문성장군, 상사심다, 이객예례지.)

  

[그 다음해, 제나라 사람 '소옹'이 귀신을 불러들이는 방술로 '무제'를 알현했다. 

'무제'에게는 총애하는 왕부인이 있었는데 그녀가 죽자,

'소옹'은 방술을 사용해 밤에 왕부인과 부엌신의 형상을 불러와서 '무제'는 장막을 통해서 그녀를 만나 보았다. 

그리하여 '소옹'은 문성장군에 봉해졌고 많은 재물을 하사받았으며, 

'무제'는 빈객을 접대하는 예우로써 그를 대했다. ]

文成言曰:" 上即欲與神通, 宮室被服不象神, 神物不至. ”  乃作畫雲氣車, 及各以勝日駕車辟惡鬼. 

又作甘泉宮, 中為臺室, 畫天、地、泰一諸神, 而置祭具以致天神.
(문성언왈 : " 상즉욕여신통, 궁실피복불상신, 신물불지. " 내작화운기거, 급각이승일가거벽악귀.  
 

우작감천궁, 중위대실, 화천、지、태일제신, 이치제구이치천신.)


[문성장군이 아뢰기를 : “ 천자께서 신선과 교류하고 싶다고 하셔도, 궁실과 의복이 신선이 사용하는 것과 
다르다면,

신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자,  이에 '무제'는 구름무늬를 그린 수레를 만들고,  

5행에서 말하는 상극의 도리에 따라 각기 그날에 맞는 길한 색깔의 신령한 수레를 골라 타 악귀를 쫓았다. 
또 감천궁을 지어서 그안에 대실을 설치하고, 천신, 지신, 태일신의 형상을 그려 넣고, 
 

제사에 쓰이는 여러 가지 기구를 설치해 천신을 불러들이고자 하였다.] 

居歲餘, 其方益衰, 神不至.  乃為帛書以飯牛, 詳弗知也, 言此牛福中有奇.   

殺而視之, 得書, 書言其怪, 天子疑之.  有識其手書, 問之人, 果偽書. 於是誅文成將軍而隱之.   

其后則又作柏梁、銅柱、承露僊人掌之屬矣.
(거세여, 기방익쇠, 신불지.  내위백서이반우, 상불지야, 언차우복중유기.  
 

살이시지, 득서, 서언기괴, 천자의지.  유식기수서, 문지인, 과위서. 어시주문성장군이은지.   

기후즉우작백량、동주、승로선인장지속의.)

[한 해가 지나자, 문성장군의 방술은 갈수록 영험이 떨어졌고 신선은 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비단 위에 글을 쓴 다음 이것을 소에게 먹인 후, 

모른 체하며 이 소의 뱃속에 기이한 물건이 들어 있다고 말했다.   

이에 '무제'가 소를 죽여 살펴보니 과연 비단에 쓰인 글이 들어 있었는데, 

그 글의 내용이 매우 기괴해 '무제'는 이 일을 의심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들 중에 '소옹'의 필적을 아는 이가 있어서 그에게 물으니, 과연 가짜 글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살해되었고 이 일은 비밀에 부쳐졌다. 

그 뒤에 '무제'는 다시 백량대와 동주와 이슬을 받는 승로반을 등을 만들어 불로 장생할 수 있는 일을 행하였다.]

文成死明年, 天子病鼎湖甚, 巫醫無所不致, (至)不愈.   

游水發根乃言曰:“上郡有巫, 病而鬼下之. ”  上召置祠之甘泉.  及病, 使人問神君. 

(문성사명년, 천자병정호심, 무의무소불치, (지)불유.   

유수발근내언왈 : " 상군유무, 병이귀하지. "  상소치사지감천.  급병, 사인문신군.)

  
[문성장군 '소옹'이 죽은 이듬해, '무제'는 "정호"에서 중병을 얻었는데, 무의들이 각종의 방술을 
다 써보았지만

병은 호전되지 않았다. "유수"에 사는 '발근'이라는 사람이 말하기를 : “  

"상군"에 무당이 살고 있는데, 자신이 병을 앓으면서 귀신을 자기 몸으로 강림하게 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자.
'무제'는 그를 불러와서 감천궁에서 제사 지내게 했다. 

이윽고 무당이 병이 나자, '무제'는 사람을 보내 그를 통해서 신군에게 물어 보게 하였다. ] 

神君言曰:“ 天子毋憂病.  病少愈, 彊與我會甘泉. ”  於是病愈, 遂幸甘泉, 病良已.   

大赦天下,置壽宮神君。
(군신언왈 " 천자무우병.  병소유, 강여아회감천. "  어시병유, 수행감천, 병량이.  
 

대사천하, 치수궁신군.)

 

[그러자 신군이 말하기를 : " 천자의 병은 그리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병세가 조금 나아지거든 억지로라도 감천궁으로 오셔서 저를 만나면 됩니다. ”라고 하였다.
그 후 '무제'의 병이 호전되어 감천궁으로 행차하자 병이 깨끗히 낫게 되었다.  
 

이에 '무제'는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리고, 수궁을 지어서 신군을 받들어 모셨다.] 

           

神君最貴者太一, 其佐曰大禁、司命之屬, 皆從之.  非可得見, 聞其音, 與人言等.   

時去時來, 來則風肅然也.  居室帷中.  時晝言, 然常以夜.  天子祓, 然後入.
(신군최귀자태일, 기좌왈대금、사명지속, 개종지.  비가득견, 문기음, 여인언등.  
 

시거시래, 래즉풍숙연야.  거실유중.  시화언, 연상이야.  천자불, 연후입.)


[신군 중에서 제일 높은 신은 태일신이며, 그를 보좌하는 '대금'、'사명'과 같은 무리들은 모두 태일신을 
따랐다. 

그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고, 단지 그들이 말하는 소리만 들을 수 있었는데, 마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같았다. 

때때로 그들은 왔다 갔다 했는데, 올 때에는 고요하고 엄숙한 바람소리가 났다.  

들은 실내의 장막 속에 살았고, 어떤 때는 낮에 이야기할 때도 있었지만 보통 밤에 이야기를 했다.   

'무제'는 악을 제거하고 복을 비는 제사를 지낸 후에서야 비로소 수궁에 들어가곤 했다.] 

因巫為主人, 關飲食.  所欲者言行下.  又置壽宮、北宮, 張羽旗, 設供具, 以禮神君.
(인무위주인, 관음식.  소욕자언행하.  우치수궁、북궁, 장우기, 설공구, 이례신군. )
[신과 천자는 무당을 주인으로 여기며 음식을 얻을 수 있었다. 신들이 하고자 하는 말은 무당을 통해서 
전달되었다. 

또한 수궁과 북궁을 축조하였고 깃털로 장식한 깃발을 세웠으며,  

제사에 사용되는 각종의 기구를 진열해 신군에게 예의를 표했다. ]

神君所言, 上使人受書其言, 命之曰 “ 畫法 ”.  其所語, 世俗之所知也, 毋絕殊者, 而天子獨喜.   

其事祕, 世莫知也.  其后三年, 有司言元宜以天瑞命, 不宜以一二數.   

一元曰建元, 二元以長星曰元光, 三元以郊得一角獸曰元狩云.
(신군소언, 상사인수서기언, 명지왈 " 화법 ".  기소어, 세욕지소지야, 무절수자, 이천자독희.  
 

기사비, 세막지야.  기후삼년, 유사언원의이천서명, 불의이일이수.   

일원왈건원, 이원이장성왈원광, 삼원이교득일각수왈원수운.)


[신군이 한 말은 '무제'가 사람을 보내어 받아 적게 했는데, 이것을 일컬어서 " 화법 "이라고 하였다.  
 

이런 말들은 일반인들도 알 수 있는 것이었고, 특별히 심오한 내용도 없었지만, '무제'는 이를 보며 혼자 즐거워했다.

이러한 일들은 비밀리에 이루어져 세상 사람들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뒤, 담당 관리들이 말하기를 기원은 마땅히 하늘이 내려준 길조로 이름을 지어야지,  

1, 2라는 숫자를 사용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따라서 첫 번째 연호는 ‘건원’이라고 하고,  

두 번째 연호는 혜성이 나타났으므로 ‘원광’이라고 하고,
세 번째 연호는 제사 지낼 때 뿔이 하나 있는 짐승을 잡았으므로 ‘원수’라고 칭할 것을 건의했다.]
 

其明年冬,天子郊雍,議曰:“今上帝朕親郊,而後土毋祀,則禮不答也.”

有司與太史公、祠官寬舒等議:“ 天地牲角繭栗.  今陛下親祀后土, 后土宜於澤中圜丘為五壇,

壇一黃犢太牢具, 已祠盡瘞, 而從祠衣上黃. ”
於是天子遂東, 始立后土祠汾陰脽上, 如寬舒等議. 上親望拜, 如上帝禮. 禮畢, 天子遂至滎陽而還.
(기명년동, 천자교옹, 의왈 : " 금상제짐친교, 이후토무사, 즉례부답야. " 

유사여태사공、사관관서등의 : " 천지생각견속.  금폐하친사후토, 후토의어택중원구위오단,

단일황독태뢰구, 이사진예, 이종사의상황. "

​어시천자수동, 시립후토사분음수상, 여관서등의.  상친망배, 여상제례.  예필, 천자수지형양이환.) 


[그 이듬해 겨울, '무제'가 "옹현"에서 제사 지내면서 대신들과 의논하여 말하기를 : " 오늘 상제에게 짐이 

직접 제사 지냈으나, 후토에게는 제사 지내지 않았으니, 이러한 예절은 완전한 것이 아니오.”라고 하자.

담당 관리와 태사공, 사관인 관서 등이 의논해 아뢰기를 : " 천지신께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가축은 

뿔이 누에고치나 밤같이 작은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 친히 후토께 제사 지내시려면 연못 가운데 있는

구릉에 원형 제단 다섯 채를 만들고, 각 제단마다 누렁 새끼 송아지 한 마리씩을 희생으로 갖추고.
제사가 끝난 후에는 제사 때의 희생을 전부 땅에 묻어야 하며,

제사 지내는 사람들은 모두 황색의 옷을 입어야만 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무제'는 곧 동쪽으로 가서 분음수 위에 후토의 제단을 건립했는데, 그 양식은 '관서' 등의 의견에 따랐다. 

'무제'는 친히 지신을 바라보며 절을 올렸는데, 이는 하늘에 제사 지내던 예의와 똑같이 하였다.   

제사가 끝나자, '무제'는 마침내 "형양"을 거쳐 "장안"으로 돌아왔다.] 

過雒陽, 下詔曰:“ 三代邈絕, 遠矣難存.  其以三十里地封周后為周子南君, 以奉先王祀焉. "   

是歲, 天子始巡郡縣, 侵尋於泰山矣.
(과낙양, 하조왈 : " 삼대막절, 원의난존.  기이삼십리지봉주후위주자남군, 이봉선왕사언. "  
 

시세, 천자시순군현, 침심어태산의.)


['무제'는 "낙양"을 지나면서 조서를 내리기를 : “ 삼대가 끊어진지 오래되어 그 후대를 보존하기 어렵도다. 
 

사방 30 리의 땅에 주왕조의 후예인 '주자남군'을 봉해 그곳에서 선왕들의 제사를 받들어 모시도록 하라.”라고 명했다.

이해에 '무제'는 각 군현을 순수하기 시작해, 점차 태산 가까이까지 이르렀다.]

其春, 樂成侯上書言欒大.  欒大, 膠東宮人, 故嘗與文成將軍同師, 已而為膠東王尚方.   

而樂成侯姊為康王后, 毋子.  康王死, 他姬子立為王.
(기춘, 낙성후상서언난대.  난대, 교동궁인, 고상여문성장군동사, 이이위교동왕상방.  
 

이낙성후자위강왕후, 무자.  강왕사, 타희자립위왕.)


[그해 봄, '낙성후'가 글을 올려서 '난대'를 언급하였다. 

'난대'는 교동왕의 궁인으로, 옛날 문성장군과 같은 스승 밑에서 공부하였는데, 곧 교동왕의 약제사가 되었다. 

낙성후의 누이는 "교동" 강왕의 왕후가 되었으나 아들이 없었다. 

강왕이 세상을 떠나자 다른 첩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였다. ]

而康后有淫行, 與王不相中(得), 相危以法.  康后聞文成已死, 而欲自媚於上,  

乃遣欒大因樂成侯求見言方.  天子既誅文成, 后悔恨其早死, 惜其方不盡, 及見欒大, 大悅.   

大為人長美, 言多方略, 而敢為大言, 處之不疑.
(이강후유음행, 여왕불상중(득), 상위이법.  강후문문성이사, 이욕자미어상, 
 

내견난대인낙성후구현언방.  천자기주문성, 후회한기조사, 석기방불진, 급견난대, 대열.   

대위인장미, 언다방략, 이산위대언, 처지불의.)


[그런데 강왕의 왕후는 음란한 행동을 하였으므로 새 왕과 서로 뜻이 맞지 않아, 법령으로 서로를 위태롭게 하였다. 

강왕의 왕후는 문성장군 '소옹'이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듣고서, '무제'의 환심을 끌고 싶어서, 
'난대'를 보내 자신의 오라버니 '낙성후'의 천거로 '무제'를 알현하고 방술을 이야기하게 하였다. 
 

'무제'는 그렇지 않아도 문성장군을 주살한 후 너무 빨리 죽였다고 후회하고 있었고,

그의 방술을 완전히 전수받지 못했음을 애석해하고 있었는데, 그러한 때에 '난대'를 보자 '무제'는 매우 기뻐하였다.

'난대'는 키도 크고 잘 생겼으며, 수많은 방술과 책략을 이야기했으며, 
또한 감히 큰소리를 치면서도 전혀 두려워하거나 주저함이 없었다. ]

大言曰:“ 臣嘗往來海中, 見安期、羨門之屬.  顧以為臣賤, 不信臣.   

又以為康王諸侯耳, 不足予方.  臣數言康王, 康王又不用臣.  臣之師曰:‘ 黃金可成, 而河決可塞,  

不死之藥可得, 僊人可致也. ’ 臣恐效文成, 則方士皆掩口, 惡敢言方哉!”   

(대언왈 : " 신상왕래해중, 견안기、선문지속.  원이위신천, 불신신.   

우이위강왕제후이, 부좃여방.  신수언강왕, 강왕우불용신.  신지사왈 : ' 황금가성, 이하결가색,  

불사지약가득, 선인가치야. ' 신공효문성, 즉방사개엄구, 오감어방재 ! " )


['난대'는 '무제'에게 허풍을 치며 말하기를 : “ 신은 일찍이 바다를 왕래하며 '안기생', '선문고'의 무리들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의 신분이 미천하다고 생각했는지 신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강왕은 제후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그에게 방술을 전수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이 여러 차례 이러한 사정을 강왕에게 아뢰었으나 강왕은 신을 중용하지 않았습니다.  

신의 스승이 말하기를 ‘ 황금은 만들 수 있고, 황하의 터진 둑도 막을 수 있으며, 불사약도 구할 수 있고,  

신선도 불러올 수 있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신도 문성장군처럼 될것 같아 두려우며,  

그렇게 방사들의 입을 틀어막는다면, 어찌 감히 방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 ”라고 하였다. ] 

曰:“ 文成食馬肝死耳.  子誠能修其方, 我何愛乎!”              

大曰:“  臣師非有求人, 人者求之.  陛下必欲致之, 則貴其使者, 令有親屬, 以客禮待之,  勿卑, 使各佩其信印,

乃可使通言於神人.  神人尚肯邪不邪. 致尊其使, 然後可致也. ”   於是上使先驗小方, 鬬旗, 旗自相觸擊.
(상왈 : " 문성식마간사이.  자성능수기방, 아하애호 ! "

대왈 : " 신사비유구인, 인자구지.  폐하필욕치지, 즉귀기사자, 영유친속, 이객예대지,  물비, 사각패기신인,

내가사통언어신인.  신인상긍야불야. 치존기사, 연후가치야. "   어시상사선험소방, 투기, 기자상촉격. )


['무제'가 말하기를 : “ 문성장군은 말의 간을 잘못 먹어서 죽은 것일 뿐이오. 

대가 만약 문성장군의 방술을 연구하여 정리해낸다면, 내 어찌 재물을 아까워하겠소  !”라고 하자.

그러자 '난대'가 아뢰기를 : “ 신의 스승은 다른 사람을 찾아가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를 찾아옵니다.  
폐하께서 꼭 신선을 불러오고 싶으시다면 반드시 신선의 사자를 존중해 주셔야만 하며, 
 

사자가 친족을 거느릴 수 있게 해주시고, 그를 빈객의 예우로 대해 주면서 업신여기지 마시고,  

또한 그에게 각종 신인을 차게 해야만 비로소 그가 신선과 소통하며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신선이 만나줄 지는 아직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선의 사자를 존중한 뒤에야 신선을 불러올 수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무제'는 작은 방술이라도 좋으니 한번 영험을 보여 달라고 하였다. 

'난대'가 바둑돌을 바둑판 위에 놓자 바둑돌들이 서로 부딪쳤다. ] 

是時上方憂河決, 而黃金不就, 乃拜大為五利將軍.   

居月餘, 得四金印, 佩天士將軍、地土將軍、大通將軍、天道將軍印.
(시시상방우하결, 이황금불취, 내배대위오리장군.  
 

거월여, 득사금인, 패천사장군、지토장군、대통장군、천도장군인.)


[이때 '무제'는 황하의 범람을 걱정하고 있었고, 황금 또한 제조해 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난대'를 곧 오리장군에 임명하였다.  한 달 남짓 지나자, '난대'는 4개의 황금 인장을 얻어서,

천사장군、지사장군、대통장군、천도장군 등의 인신을 차게 되었다.] 

制詔御史:“ 昔禹疏九江, 決四瀆.  閒者河溢皋陸, 隄繇不息.  朕臨天下二十有八年,  

天若遺朕士而大通焉.  乾稱‘ 蜚龍 ’, ‘鴻漸于般’, 意庶幾與焉. 其以二千戶封地士將軍大為樂通侯. ”

賜列侯甲第, 僮千人. 乘輿斥車馬帷帳器物以充其家.
(제조어사 : " 석우소구강, 결사독.  간자하일고륙, 제요불식.  짐임천하이십유팔년, 
 

천약유짐사이대통언.  건칭'비룡', 홍점우반', 의서기여언. 기이이천호봉지사장군대위낙통우. "   

사열후갑제, 동천인. 승여척거마유장기물이충기가.)

 
['무제'는 또 어사에게 다음과 같은 조칙을 내렸다 : " 옛날 하나라 우임금은 구강을 소통시켰고, 
 

사독(동서남북 네 강)을 개통시켜서 흐르게 했다. 근래에 황하에 홍수가 나서 높은 지대까지 물에 잠겼으며,

제방을 쌓느라 노역이 쉴 새 없었다.  짐이 천하를 다스린 지 28년이나 되었으니, 
만약 하늘이 짐에게 방사를 보내주신다면 '난대'는 하늘의 뜻에 통할 수 있을 것이다.
 

《역경》〈건괘〉에 '비룡이 하늘에서 노닐며 자유자재로 솟아오르고,

큰 기러기가 물가 둑을 따라서 날아가듯 일사천리라네. ’라고 하였는데, 아마도 이것은 '난대'를 칭하는 말일 것이다.

지사장군 '난대'에게 2천 호의 땅을 봉지로 주어 낙통후에 봉하노라. ”라고 하였다.
또한 '난대'에게 열후의 작위와 크고 넓게 아주 잘 지은 집에, 1천 명의 노복을 하사하였다.   
'무제'가 사용하지 않는 거마와 궁중의 기물들을 모두 '난대'에게 주어서 그의 집안을 가득 채웠다. ]

又以衛長公主妻之, 齎金萬斤, 更名其邑曰當利公主.  天子親如五利之第.   

使者存問所給, 連屬於道.  自大主將相以下, 皆置酒其家, 獻遺之.
(우이위장공주처지, 재금만근, 경명기읍왈당리공주.  천자친여오리지제.  
 

사자존문소급, 연속어도.  자대주장상이하, 개치주기가, 헌유지.)


[또한 '무제'는 위장공주를 그에게 시집보내고 황금 1만 근을 주었으며,

아울러 그녀의 봉지를 당리공주로 바꾸어 부르게 하였다. '무제'는 친히 오리장군의 집을 방문하였다. 

그러자 대신들은 사자를 보내 위문하거나 그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공급하는 행렬이 길게 이어졌다. 

'무제'의 고모인 대장공주로부터 조정의 장상 이하의 모든 벼슬아치들은 그의 집에서 주연을 베푸는 등

정성을 다 바쳤다.]

於是天子又刻玉印曰 " 天道將軍 ”, 使使衣羽衣, 夜立白茅上, 五利將軍亦衣羽衣, 立白茅上受印,  

以示弗臣也.  而佩 " 天道 ”者, 且為天子道天神也.  於是五利常夜祠其家, 欲以下神.   

(어시천자우각옥인왈 " 천도장군 ", 사사의우의, 야립백모상, 오리장군역의우의, 입백모상수인,  

이시불신야.  이패 " 천도 "자, 차위천자도천신야. 어시오리상야사기가, 욕이하신.) 

  

[그리고 '무제'는 또 ‘천도장군’이라는 옥도장을 새겨서 우의를 입은 사자를 보내어

밤에 백모 위에서 옥도장을 받도록 했고, 오리 장군 '난대' 역시 우의를 입고 백모 위에서 옥인을 받았으니,  

이는 오리 장군이 황제의 신하가 아님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천도’라는 옥도장을 차고 다니는 자는 천자를 대신해서 천신의 왕림을 인도하는 임무를 맡은 사람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때부터 '난대'는 밤마다 자기 집에서 제사를 지내며 신선이 내려오기를 기원하였다.]

神未至而百鬼集矣, 然頗能使之. 其后治裝行, 東入海, 求其師云.
大見數月, 佩六印, 貴振天下, 而海上燕齊之閒, 莫不搤捥而自言有禁方, 能神僊矣.
(신미지이백귀집의, 연파능사지. 기후치장행, 동입해, 구기사운.
 

대견수월, 패육인, 귀진천하, 이해상연제지간, 막불액완이자언유금방, 능신선의.) 

 

[그러나 결국 신령은 오지 않고 온갖 잡귀가 다 모였지만, 그는 그들을 부릴 수가 있었다.  

그 후로 '난대'는 짐보따리를 꾸려 떠날 채비를 하고, 동해로 가서 그의 스승을 만나겠다고 말했다.  

난대는 '무제'를 만난 지 몇 달 만에 여섯 개의 인장을 차고, 부귀와 명성을 천하에 떨치자,  

바닷가와 인접해 있는 연나라와 제나라의 방사들은 자기들에게도 신선을 불러올 수 있는 방술이 있는데, 

'난대'처럼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한다고 모두들 억울해 하였다.]

其夏六月中, 汾陰巫錦為民祠魏脽后土營旁, 見地如鉤狀, 掊視得鼎.   

鼎大異於眾鼎, 鏤毋款識, 怪之, 言吏.  吏告河東太守勝, 勝以聞.
(기하유월중, 분음무금위민사위수후토영방, 견지여구상, 부시득정. 

정대이어중정, 문루무관식, 괴지, 언리.  이고하동태수승, 승이문.)


[이해 여름 6월 중순, "분음"의 무당인 '금'이 위수의 후토 사당 옆에서 제사를 지낼 때,

땅에 고리 모양 같은 것을 보고 흙을 파보았다가 정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정은 다른 정과는 달리 매우 컸으며, 꽃무늬만 조각되어 있고 문자는 새겨져 있지 않았다. 

무당은 이상히 여겨서 그 지방의 관리에게 이를 말하였다.
관리는 "하동" 태수 '승'에게 알렸고, '승'은 다시 이 일을 위에 보고했다.]

天子使使驗問巫錦得鼎無姦詐, 乃以禮祠, 迎鼎至甘泉, 從行, 上薦之. 至中山晏, 溫, 有黃雲蓋焉. 

有麃過, 上自射之, 因以祭雲. 至長安, 公卿大夫皆議請尊寶鼎.
(천자사사험문무금득정무간사, 내이예사, 영정지감천, 종행, 상천지.  지중산안, 온, 유황운개언.  
 

유포과, 상자사지, 인이제운.  지장안, 공경대부개의청존보정.) 

  
['무제'는 사자를 보내 무당인 '금'을 심문해 정을 얻은 일이 간사하게 꾸며낸 이야기가 아님을 알고는, 
 

이에 예의를 갖추어 천지에 제사 지내고, 정을 감천궁으로 맞아들여서 '무제'는 백관이 수행하는 가운데  

직접 하늘에 제사 지냈다.  정을 영접하는 무리들이 "중산"에 이르렀을 때, 날씨는 화창하고 따뜻했으며, 

하늘에는 누런 구름이 떠 있었다. 

마침 고라니 한 마리가 지나가자, 천자는 몸소 활을 쏘아 잡아서 그것으로 제사 지냈다. 

"장안"에 이르자 공경대부들은 모두 보정을 우러러 받들 것을 의논해 '무제'에게 요청하였다. ]

天子曰:" 閒者河溢, 歲數不登, 故巡祭后土, 祈為百姓育谷.  今年豐廡未有報, 鼎曷為出哉?” 

有司皆曰:“ 聞昔大帝興神鼎一, 一者一統, 天地萬物所系終也.  黃帝作寶鼎三, 象天地人也.   

禹收九牧之金, 鑄九鼎, 皆嘗鬺烹上帝鬼神. 遭圣則興, 遷于夏商. 

周德衰, 宋之社亡, 鼎乃淪伏而不見. 頌云‘ 自堂徂基, 自羊徂牛;鼐鼎及鼒, 不虞不驁, 胡考之休 ’. 

今鼎至甘泉, 光潤龍變, 承休無疆. 合茲中山, 有黃白雲降蓋, 若獸為符, 路弓乘矢, 集獲壇下,

報祠大饗. 惟受命而帝者心知其意而合德焉.  鼎宜見於祖禰, 藏於帝廷, 以合明應. ” 

制曰:" 可. ”  入海求蓬萊者, 言蓬萊不遠, 而不能至者, 殆不見其氣.  上乃遣望氣佐侯其氣雲.

(천자왈 : " 간자하일, 세수부등, 고순제후토, 기위백성육곡.  금년풍무미유보, 정갈위출재 ? "

유사개왈 : " 문석대제흥신정일, 일도일통, 천지만물소계종야.  황제작보정삼, 상천지인야.   

우수구목지금, 주구정, 개상상팽상제귀신.  조성즉흥, 천우하상.

주덕쇠, 송지사망, 정내륜복이불견.  송운' 자당조기, 자양조우 ; 내정급자, 불우불오, 호고지휴 '.

금정지감천, 광윤용변, 승휴무강. 합자중산, 유황백운강개, 약수위부, 노궁승시, 집획단하,

보사대향. 유수명이제자심지기의이합덕언.  정의견어조니, 장어제정, 이합명응. "
제왈: " 가. "  입해구봉래자, 언봉래불원, 이불능지자, 태불견기기.  상내견망기좌후기기운.)

['무제'가 묻기를 : “ 근래 황하가 범람하고 흉년이 여러 해 계속되었소.

그래서 내가 순수를 나와 후토에 제사 지내고 백성들이 곡식을 기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소.

그런데 올해 풍작이 들었음에도 아직 신께 감사하는 제사를 올리지도 못했는데,

이 정은 어찌하여 나온 것이오 ? ”라고 하자, 

제사를 담당하는 관리들이 말하기를 : " 옛날 대제께서 신정을 하나 만들었는데, 하나는 통일이란 뜻이며,

신정은 천지 만물의 귀결이라고 들었습니다.  또한 우리의 시조이신 황제께서는 보정 세 개를 만들어  

천, 지, 인을 각각 상징하셨습니다.  하나라 우임금께서는 9주의 쇠붙이를 모아 아홉 개의 정을 만들어, 
모두 가을 제사때 제물로 삶아 하늘의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사용했습니다. 
 

성인을 만나면 정이 출현하였는데, 이것이 하나라와 상나라에 전해졌습니다. 

주나라의 덕이 쇠하고 송나라의 사직이 황폐해지자, 정은 땅 속에 묻혀서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시경》 〈주송편,  사의〉에서 ‘본채에서 문 밖 택지까지 가며 제기를 살펴보고,  

양부터 소까지 모든 제물을 살펴보니 ; 큰 정과 작은 정 모두 청결하구나,  

시끄러이 떠들거나 오만하지 않으며 엄숙히 장수와 복을 구하네 ! ’라고 했습니다.
지금 보정이 감천궁에 도착했는데, 보정의 광채와 윤이 나는 것이 마치 용이 노닐듯 변화무쌍하고, 
 

복과 은혜를 이어 받음이 끝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지난번 "중산"에서 짐승 모양을 한 황백색의 구름이 어가 덮개로 내려온 길조와 부합하며,  

폐하께서 커다란 활의 화살 네 발을 쏘아서 고라니를 잡으셨으니,

이 모든 길조가 제단 아래 강림해 함께 모여 천지 귀신께 보답하는 성대한 제사가 된 것입니다. 

오직 하늘의 명을 이어받은 제왕만이 하늘의 뜻을 알 수 있고 하늘의 덕행에 부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정은 마땅히 조상의 묘당에 바쳐야 하며, 감천궁에 있는 천자의 전정에 소중히 모셔서 

신명의 상서로운 징조에 부응해야 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무제'가 말하기를 : " 허락 하노라. "라고 하였다.  바다로 가서 봉래선도를 찾던 사람들이 돌아와서

봉래선경은 결코 멀리 있는 것도 아닌데, 그곳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은 그 상서로운 기운을 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라고 하자, '무제'는 곧 그 기운을 잘 보는 방사를 파견해 그 기운을 관찰하게 하였다. ] 

其秋, 上幸雍, 且郊.  或曰 “ 五帝, 泰一之佐也.  宜立泰一而上親郊之 ”.    

上疑未定.  齊人公孫卿曰:" 今年得寶鼎, 其冬辛巳朔旦冬至, 與黃帝時等. ”
(기추, 상행옹, 차교.  혹왈" 로제, 태일지좌야.  의립태일이상친교지 ".  
 

상의미정.  제인공손경왈 : " 금년득보정, 기동신사삭단동지, 여황제시등. " )

 

[그해 가을, '무제'는 "옹현"에 행차하여 교사를 거행하려고 하였다.   

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  “ 오제는 태일신의 보좌입니다. 마땅히 태일신의 제단을 세워서,

천자께서 친히 교사를 거행하셔야 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무제'는 주저하며 결정하지 못했다.   

제나라 사람 '공손경'이 말하기를 : “ 올해 보정을 얻었는데, 올해 동짓달 초하루 신사일은 동지가 되는 날이니,

황제가 보정을 얻은 때와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

 

卿有札書曰:" 黃帝得寶鼎宛(侯)[朐], 問於鬼臾區.   

區對曰:‘ 黃帝得寶鼎神筴, 是歲己酉朔旦冬至, 得天之紀, 終而復始 '.   

於是黃帝迎日推筴, 后率二十歲得朔旦冬至, 凡二十推, 三百八十年. 黃帝僊登于天. ”  
(경유찰서왈 : " 황제득보정완(후)[구], 문어귀유구.  
 

구대왈 : ' 황제득보정신책, 시세기유삭단동지, 득천지기, 종이부시 '.   

어시황제영일추책, 후솔이십세득삭단동지, 범이십추, 삼백팔십년. 황제선등우천. " )

[그런데 '공손경'이 가지고 있던 목간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 " 황제가 "완구"에서 보정을  얻은 후에

'귀유구'에게 이 일을 물었더니,  '귀유구'가 대답하기를 ‘ 황제께서 보정과 신책을 얻으셨을 때,

이해 음력 초하루인 기유일 동지에 해당되니, 이는 하늘의 벼리를 얻은 것이며, 끝났다가 다시 시작을 계속

반복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황제는 맞이할 날을 책력에 근거해 역법을 추산해 보니,

이후 20년마다 음력 11월 초하루 동지에 해당되었으며, 역법을 20여 차례나 추산하니 380년이 되었다.   

황제는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 ]

 

卿因所忠欲奏之.  所忠視其書不經, 疑其妄書, 謝曰:" 寶鼎事已決矣, 尚何以為!”   

卿因嬖人奏之. 上大說, 召問卿.  對曰:" 受此書申功, 申功已死. " 上曰:" 申功何人也? "  

(경인소충욕주지.  소충시기서불경, 의기망서, 사왈 : " 보정사이결의, 상하이위 ! "   

경인폐인주지.  상대열, 소문경.  대왈 : " 수차서신공, 신공이사. 상왈 : " 신공하인야 ? ")

 

['공손경'이 '소충'을 통해서 이 일을 '무제'에게 아뢰려고 하였다. 

그러나 '소충'은 목간에 적힌 글이 정도에 어긋나고 망령된 글이라고 의심하여 거절하며 말하기를 :

“ 보정의 일은 이미 결정된 것인데 그 말을 아뢰어 어쩌겠단 말이오 ! "라고 하자, 

'공손경'은 '무제'가 총애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 일을 보고하였다. 

그러자 '무제'는 매우 기뻐하며 즉시 '공손경'을 불러 이에 대해서 물었다.  

'공손경'이 대답하여 아뢰기를 : “ 신은 이 글을 방사인 '신공'에게서 받았는데, 신공은 이미 죽었습니다. ” 고 하였다.

그러자 '무제'가 묻기를 : “신공은 어떤 사람이오 ? ”라고 하자. 

卿曰:" 申功, 齊人也.  與安期生通, 受黃帝言, 無書, 獨有此鼎書.  曰‘ 漢興復當黃帝之時.   

漢之圣者在高祖之孫且曾孫也. 寶鼎出而與神通, 封禪. 封禪七十二王, 唯黃帝得上泰山封 ’.

申功曰:' 漢主亦當上封, 上封則能僊登天矣.  黃帝時萬諸侯, 而神靈之封居七千.

天下名山八, 而三在蠻夷,  五在中國.  中國華山、首山、太室、泰山、東萊, 此五山黃帝之所常遊, 與神會.

黃帝且戰且學僊. 患百姓非其道, 乃斷斬非鬼神者. 百餘歲然後得與神通.

黃帝郊雍上帝, 宿三月.  鬼臾區號大鴻, 死葬雍, 故鴻冢是也.  其後於黃帝接萬靈明廷.

明廷者, 甘泉也.  所謂寒門者, 谷口也.  黃帝采首山銅, 鑄鼎荊山下.

鼎既成, 有龍垂胡髯下迎黃帝.  黃帝上騎, 群臣后宮從上龍七十餘人, 乃上去.

餘小臣不得上, 乃悉持龍髯, 龍髯拔, 墮黃帝之弓.  百姓仰望黃帝既上天, 乃抱其弓與龍胡髯號.

故後世因名其處曰鼎湖, 其弓曰烏號. ’ ”
(경왈 : " 신공, 제인야.  여안기생통, 수황제언, 무서, 독유차정서.  왈' 한흥복당황제지시.  
 

한지성자재고조지손차증손야. 보정출이여신통, 봉선. 봉선칠십이왕, 유황제득상태산봉 '.

신공왈 : ' 한주역당상봉, 상봉즉능선등천의.  황제시만제후, 이신령지봉거칠천. 

천하명산팔, 이삼재만이, 오재중국.  중국화산、수산、태실、태산、동래, 차오산황제지소상유, 여신회.

황제차전차학선. 환백성비기도, 내단참비귀신자. 백여세연후득여신통.

​황제교옹상제, 숙삼월.  귀유구호대홍, 사장옹, 고홍총시야.  기후어황제접만령명정. 

명정자, 감천야.  소위한문자, 곡구야.  황제채수산동, 주정형산하.

​정기성, 유용수호염하영황제.  황제상기, 군신후궁종상용칠십여인, 내상거. 

여소신부득상, 내실지용염, 용염발, 타황제지궁.  백성앙망황제기상천, 내포기궁여용호염호.

고후세인명기처왈정호, 기궁왈오호. ' " )

['공손경'이 대답하기를 : " 신공은 제나라 사람입니다. '안기생'과 왕래했고 황제의 말을 이어받았는데, 
 

다른 글은 남기지 않았고, 오직 이 정에만 글을 새겼을 뿐입니다.  

거기에 이르기를 ‘ 한나라가 다시 흥성할 시기는 황제가 정을 얻은 때에 해당된다. 

한나라의 성인은 고조의 손자이거나 증손자일 것이다. 보정이 출현한 것은 신과 통한 것이니 봉선을 거행해야 한다. 

72명의 왕이 봉선을 거행했는데, 유일하게 황제만이 태산에 올라가서 하늘에 제사 지냈다. ’라고 쓰여 있습니다. 

또 '신공'이 말하기를 ‘ 한나라의 군주 또한 태산에 올라 상제께 제사를 지내야 한다.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 신선이 되어 하늘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황제 시대에는 제후국이 만 개나 되었는데,

그 중에 봉선을 지내는 나라는 7천 개였다. 천하에 명산이 여덟 개인데, 셋은 오랑캐의 땅에 있고,

다섯은 중원에 있다. 중원에 있는 "화산"、"수산"、"태실산"、"태산"、"동래산",

이 다섯 개의 명산은 모두 황제가 자주 유람하며 신선과 만나던 곳이다. 

황제는 한편으로는 전쟁을 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신선술을 배웠다.   

백성들이 자신이 배우는 신선술을 걱정하자, 이에 귀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죽여 버렸다. 
이렇게 1백여 년이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신선과 소통할 수 있었다. 

황제는 "옹"에서 상제께 제사 지내느라 3개월간 머물렀다.  '귀유구'는 별호가 대홍이며,  

죽은 후에 "옹" 땅에 장사 지냈으므로 홍총이 곧 그의 묘이다. 이후 황제는 또 명정(임금이 있는 조정)에서

수많은 신선들을 만났는데, 명정은 지금의 감천궁이며, 이른바 "한문"이라는 곳은 지금의 "곡구"이다. 

황제는 "수산"에서 구리를 채취해 "형산" 아래에서 정을 주조했다. 

정을 완성하자, 하늘에서 긴 수염이 달린 용 한 마리가 내려와서 황제를 영접하였다.
황제가 용의 등에 올라 타자 여러 신하와 후궁 70여 명도 따라서 용의 등에 탔고, 용은 하늘로 올라갔다. 
그러나 지위가 낮은 신하들은 올라가지 못하게 되자, 모두 용의 수염을 잡아당겨서 용의 수염은 뽑혀 
떨어졌으며,

황제가 가지고 있던 활도 떨어졌다.  백성들은 황제가 이미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보고,

그의 활과 용의 수염을 끌어안고 대성통곡 하였다. 

그래서 후세에 이 사실에 근거해 이 지방을 "정호"라고 칭했고, 그 활을 오호라 했다. ’라고 새겨 있었습니다. ” ) 

           

於是天子曰:" 嗟乎!吾誠得如黃帝, 吾視去妻子如脫屣耳. "  乃拜卿為郎, 東使候神於太室.

上遂郊雍, 至隴西, 西登空桐, 幸甘泉.  令祠官寬舒等具泰一祠壇, 壇放薄忌泰一壇, 壇三垓.

五帝壇環居其下, 各如其方, 黃帝西南, 除八通鬼道. 
(
어시천자왈 : " 차호 !  오성득여황제, 오시거처자여탈사이. "  내배경위랑, 동사후신어태실.

상수교옹, 지롱서, 서등공동, 행감천.  영사관관서등구태일사단, 단방박기태일단, 단삼해.

오제단환거기하, 각여기방, 황제서남, 제팔통귀도.)


[그러자 이 말을 들은 '무제'는 말하기를 :  " 아 ! 내가 진실로 황제처럼 된다면,

나는 해진 짚신 버리듯 처자와 헤어지리라 ! ”라고 하였다. 

이에 '공손경'을 낭관에 임명하고, 그를 동쪽 "태실산"에 보내어  신선을 맞이하게 하였다.

'무제'는 "옹현"에서 교사를 거행하고, "농서"에 이르자, 서쪽 "공동산"에 오른 뒤 감천궁으로 돌아왔다.  

그는 제사를 관장하는 관리인 '관서' 등에게 태일신의 제단을 지으라고 명령했는데,

'박유기'가 말한 태일단의 양식에 따라서 짓고 단의 계단은 3층으로 하게 했다.

제단은 태일단 아래에 빙 둘러서 각기 오제에 해당하는 방위에 두었고, 황제의 제단은 서남쪽에 두고,

귀신이 왕래할 수 있는 길을 여덟 갈래 만들었다.] 

泰一所用, 如雍一畤物, 而加醴棗脯之屬, 殺一牦牛以為俎豆牢具. 而五帝獨有俎豆醴進.   

其下四方地, 為餟食群神從者及北斗云. 已祠, 胙餘皆燎之.  其牛色白, 鹿居其中, 彘在鹿中, 水而洎之. 

祭日以牛, 祭月以羊彘特. 泰一祝宰則衣紫及繡. 五帝各如其色, 日赤, 月白. 

(태일소용, 여옹일치물, 이가례조포지속, 살일모우이위조두뢰구. 이오제독유조두례진.

기하사방지, 위체식군신종자급북두운. 이사, 조여개료지.  기우색백, 녹거기중, 체재녹중, 수이계지. 

제일이우, 제월이양체특.  태일축재즉의자급수. 오제각여기색, 일적, 월백.)

 

 [태일신에게 제사 지낼 때 사용하는 제물은 "옹현"의 제사터에 올리는 것과 같게 하고,

그 외에 감주, 대추와 마른 고기 등의 제수용품과 들소 한 마리를 잡아서 제물로 쓰게 했다. 

그러나 오제의 제사에는 단지 희생과 감주만 바치게 했다. 

제단 아래 사방의 땅에는, 오제를 보좌하는 여러 신들과 북두칠성의 신위를 늘어 놓고 각각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그리고 제사가 끝난 후 남은 음식들은 모두 태워버리도록 하였다.

오제와 오제를 보좌하는 여러 신들의 제사에 쓰이는 소는 흰색을 바쳤는데,

사슴을 소의 뱃속에 넣고 사슴의 뱃속에는 돼지를 넣어 물이 스며들게 했다. 

또한 태양에 제사 지낼 때는 소를 사용했고, 달에 제사 지낼 때는 양이나 돼지 한 마리를 사용했다. 

태일신에게 제사 지내는 관리는 수놓은 자색 옷을 입었고, 

오제에 제사 지낼때에는 각기 오제에 해당하는 색과 사제들에게도 그 색의 옷을 입게 하였고,  

태양에 제사 지낼 때는 붉은 옷을 입게 하였고, 달에 제사 지낼 때에는 흰 옷을 입게 하였다.] 

    

十一月辛已朔旦冬至, 昧爽, 天子始郊拜泰一.  朝朝日, 夕夕月, 則揖;而見泰一如雍禮.

其贊饗曰:" 天始以寶鼎神筴授皇帝, 朔而又朔, 終而復始, 皇帝敬拜見焉. ”  而衣上黃.

其祠列火滿壇, 壇旁烹炊具.  有司云 " 祠上有光焉 ”. 

公卿言 " 皇帝始郊見泰一雲陽, 有司奉瑄玉嘉牲薦饗.  是夜有美光, 及晝, 黃氣上屬天. "
(십일월신이삭단동지, 매상, 천자시교배태일.  조조일, 석석월, 즉읍 ; 이견태일여옹례.

기찬향왈 : " 천시이보정신협수황제, 삭이우삭, 종이부시, 황제경배견언. "  이의상황.

기사열화만단, 단방팽취구.  유사운 " 사상유광언 ".  

​공경언" 황제시교견태일운양, 유사봉선옥가생천향.  시야유미광, 급주, 황기상속천. " )


[11월 신사일 초하루 아침 동지였는데, 먼동이 틀 무렵 '무제'는 교외에서 태일신에 제사 지내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태양을 향해, 저녁에는 달을 향해 읍례를 행했으며,

태일신에게 제사 지낼 때는 "옹현"에서 교제를 지내는 방법과 같이 하였다.

제사를 지내며 고하기를 : “ 하늘이 처음으로 보정과 신책을 황제에게 내리시고, 초하루가 지나고 나면  

다시 초하루가 되듯이, 끝이 나면 다시 시작하게 하시니, 황제는 공경하게 제사 드리옵니다. ”라고 하였다. 
제사 때의 의복은 전부 황색을 입었다. 

제사를 올릴때 제단에는 횃불을 가득 켜놓고, 제단 옆에는 불을 피워 삶을 수 있는 그릇들을 놓았다.   

제사를 관장하는 관리가 이르기를 : “ 제단 위에서 눈부신 광채가 나옵니다. ”라고 하자.

공경대신들이 말하기를 :  “ 황제께서 예전 운양궁에서 태일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시작할 때,  

담당 관리는 선옥과 훌륭한 가축을 제물로 공손하게 바쳤습니다. 
그러자 그날 밤 하늘에는 아름다운 광채가 나타나서 다음날 낮까지 계속되었으며, 
 

황색의 구름은 하늘 끝까지 이어져 올라갔습니다.”라고 하였다. ]

太史公, 祠官寬舒等曰:" 神靈之休, 祐福兆祥, 宜因此地光域立泰畤壇以明應.   

令太祝領, (祀)[秋]及臘閒祠.  三歲天子一郊見. "
(태사공, 사관관서등왈 : " 신령지휴, 우복조상, 의인차지광혹립태치단이명응.  
 

영태축령, (사)[비]급랍간사.  삼세천자일교견. " )


[태사공과 사관 '관서' 등이 아뢰기를 : “ 신령스러운 기상은 신이 복을 내리는 상서로운 징조이므로, 
 

마땅히 광채가 난 지역에 태일신의 제단을 세워 하늘의 감응에 보답해야 합니다.   

폐하께서는 태축에게 명령을 내리시어 가을과 섣달 사이에 제사를 거행하라고 하십시오. 
그리고 3년마다 한번씩 폐하께서 직접 교사를 지내십시오. ”라고 하였다.]

其秋, 為伐南越, 告禱泰一, 以牡荊畫幡日月北斗登龍, 以象天一三星, 為泰一鋒, 名曰“ 靈旗 ”.   

為兵禱, 則太史奉以指所伐國.  而五利將軍使不敢入海, 之泰山祠.

上使人微隨驗, 實無所見.  五利妄言見其師, 其方盡, 多不讎.  上乃誅五利.
(기추, 위벌남월, 고도태일, 이모형화번일월북두등용, 이상천일삼성, 위태일봉, 명왈" 영기 ".  
 

위병도, 즉태사봉이지소벌국.  이오리장군사불감입해, 지태산사.

상사인미수험, 관무소견. 오리망언견기사, 기방진, 다불수. 상내주오리.)

 

[이해 가을, "남월"을 토벌하기 위해서 태일신에게 제사를 지내 알렸는데,

그 제사에서는 떨기나무로 깃대를 만들고 깃발에는 해, 달, 북두칠성과 비룡을 그려서 천일삼성을 상징했으며,

태일신에게 제사 지낼 때에는 이것을 제일 앞에 두는 깃발로 지정해 신령한 깃발인 “영기”라고 불렀다. 
전쟁에 관련해 기도 드릴 때에는 태사가 이 깃발을 잡고서 정벌하고자 하는 나라를 가리켰다. 
 

이때 신선을 영접하기 위해서 파견된 오리장군 '난대'는 바다로 들어가지 못해 태산에 가서 제사만 지냈다.

천자가 몰래 사람을 보내어 그를 조사해 보니, 사실 그는 아무 신선도 만나지 못했다.   

그러나 오리 장군은 자신의 선사를 만났다고 거짓말을 했고, 

그의 방술을 모두 써보았지만 대부분 효험을 나타내지 못하였다. 천자는 마침내 오리 장군을 주살하였다. ] 

    

其冬, 公孫卿候神河南, 見僊人跡緱氏城上, 有物若雉, 往來城上.  天子親幸緱氏城視跡.   

問卿:" 得毋效文成、五利乎? "

卿曰:" 僊者非有求人主, 人主求之.  其道非少寬假, 神不來.  言神事, 事如迂誕, 積以歲乃可致. ” 

於是郡國各除道, 繕治宮觀名山神祠所, 以望幸矣. 

(기동, 공손경후신하남, 견선인적구씨성상, 유물약치, 왕래성상.  천자친행구씨성시적.   

문경 : " 득무효문성、오리호 ? "

경왈 : " 선도비유구인주, 인주구지. 기도비소관가, 신불래.  언신사, 사여우탄, 적이세내가치. "

어시국국각제도, 선치궁관명산신사소, 이망행의.)


[이해 겨울, '공손경'은 "하남"에서 신선을 찾다가 "구지성" 위에서 신선의 자취를 발견하였는데, 
 

그것은 꿩 같이 생겼으며 성위를 위를 왕래한 흔적으로 있었다. 
이에 '무제'는 친히 "구지성"으로 와서 그 자취를 관찰하였다.  
 

그리고 '공손경'에게 묻기를 : " 문성장군과 오리장군을 본받으려는 것은 아니겠지 ? ”라고 하자.

'공손경'은 대답하기를 : “ 신선은 사람을 찾아오지 않으므로 사람이 신선을 찾아야 합니다.   

시간을 넉넉히 두고 참고 기다리지 않는다면 신선은 오지 않을 것입니다. 신선을 찾는 일을 말씀드리자면,  

그것은 멀고도 허황된 일 같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야만 신선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리하여 각 군과 제후국들은 모두 도로를 정비하고, 궁전의 누대와 명산의 신묘를 말끔히 단장하고 
 

신선이 오기를 기다렸다.] 

其年, 既滅南越, 上有嬖臣李延年以好音見.   

上善之, 下公卿議, 曰:" 民閒祠尚有鼓舞之樂, 今郊祠而無樂, 豈稱乎? ”

公卿曰:" 古者祀天地皆有樂, 而神祇可得而禮. ”

或曰:" 泰帝使素女鼓五十弦瑟, 悲, 帝禁不止, 故破其瑟為二十五弦. ”

於是塞南越, 禱祠泰一、后土, 始用樂舞, 益召歌兒, 作二十五弦及箜篌瑟自此起.
(기년, 기멸남월, 상유폐신이연년이호음현.  
 

상선지, 하공경의, 왈 : " 민간사상유고무지악, 금교사이무악, 시칭호 ? "

공경왈 : " 고자사천지개유악, 이신기가득이례.

혹왈 : " 태제사소여고오십현슬, 비, 제금불지, 고파기슬위이십오현. "

​어시색남월, 도사태일、후토, 시용악무, 익소가아, 작이십오현급공후슬자차기.)

 

[그해, 남월을 멸망시키고, '무제'가 총애하는 신하 '이연년'은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어 '무제'를 알현하였다. 

'무제'는 그의 음악을 칭찬하고, 공경대신들에게 제사의 음악에 대해서 의논하라고 명하며 말하기를 :  

“ 민간의 제사에도 북을 치고 춤을 추는 음악이 사용되는데, 지금 조정의 교사에는 아무런 음악도 사용하지 않으니,

이 어찌 맞는 말이라고 하겠소 ? ”라고 하자.

공경대신들이 말하기를 : " 옛날 천지에 지내는 제사에는 모두 음악을 사용했으며,  

그래야만 천지신령이 제사를 흠향할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 “ 태제(복희씨)가 신녀인 '소녀'에게 50줄의 거문고를 연주하게 했는데,  

너무나 슬퍼서 연주를 그만두게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거문고를 부수고 25줄로 고치게 하였던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남월을 평정하고 태일신과 후토신에게 제사 지낼 때 처음으로 음악과 춤을 사용하였고,

아이들까지 나서서 노래를 부르니, 이때부터 25줄의 거문고와 공후를 제작하는 것이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

其來年冬, 上議曰:" 古者先振兵澤旅, 然後封禪. "   

乃遂北巡朔方, 勒兵十餘萬, 還祭黃帝冢橋山, 澤兵須如.

上曰:" 吾聞黃帝不死, 今有冢, 何也? "  或對曰:" 黃帝已僊上天, 群臣葬其衣冠. "

即至甘泉, 為且用事泰山, 先類祠泰一.  自得寶鼎, 上與公卿諸生議封禪. 

封禪用希曠絕, 莫知其儀禮, 而群儒采封禪尚書、周官、王制之望祀射牛事.
(기래년동, 상의왈 : " 고자선진병택여, 연후봉선. "  
 

내수북순삭방, 륵병십여만, 환제황제총교산, 택병수여.

상왈 : " 오문황제불사, 금유총, 하야 ? "  혹대왈 : " 황제이선상천, 군신장기의관. "

즉지감천, 위차용사태산, 선류사태일.  자득보정, 상여공경제생의봉선.

​봉선용희광절, 막지기의례, 이군유채봉선상서、주관、왕제지망사사우사.)
 
[이듬해 겨울, '무제'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기를 : “ 옛날의 제왕들은 먼저 병기를 거두어 들이고

군대를 해산시킨 후에 봉선을 거행하였소. ”라고 하였다. 그리고 병력 10만여 명을 이끌고 북쪽지방을 순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교산"에 있는 황제의 능묘에 제사 지내고, "수여"에서 군대를 해산하였다.

'무제'는 말하기를 : “ 내가 듣기로 황제는 죽지 않았다는데 여기에 무덤이 있으니 이게 어찌 된 일이오 ? ”라고 하자,

어떤 사람이 대답하기를 : “ 황제는 이미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후에 여러 신하들이 그의 의관을 여기에 묻은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무제'는 즉시 감천궁으로 돌아와서는 "태산"에서 봉선을 거행하기 위해, 먼저 태일신에게 유사를 지냈다.  

보정을 얻은 후부터 '무제'는 공경대부들 및 유생들과 봉선을 거행하는 일에 대해서 의논하였다.

봉선은 거행되는 일이 드물어서 제사가 끊긴 지 오래되었으므로 그 의례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 없었으며,

그러자 유생들은 「상서」,「주관」그리고 「왕제」에 나오는 ‘망사’와 ‘사우’ 등을 봉선에 이용하자고 건의하였다.] 

           

齊人丁公年九十餘, 曰:" 封者, 合不死之名也.  秦皇帝不得上封. 

陛下必欲上, 稍上即無風雨, 遂上封矣. "  上於是乃令諸儒習射牛, 草封禪儀.

數年, 至且行.  天子既聞公孫卿及方士之言, 黃帝以上封禪, 皆致怪物與神通,

欲放黃帝以嘗接神僊人蓬萊士, 高世比德於九皇, 而頗采儒術以文之.
(제인정공년구십여, 왈 : " 봉자, 합불사지명야.  진황제부득상봉.  
 

폐하필욕상, 초상즉무풍우, 수상봉의. "  상어시급영제유습사우, 초봉선의.

수년, 지차행.  천자기문공손경급방사지언, 황제이상봉선, 개치괴물여신통,

욕방황제이상접신선인봉래사, 고세비덕어구황, 이파채유술이문지.)

[제나라 사람 '정공'은 나이가 90여 세였는데, 그는 말하기를 : " 봉선이란 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이름과 합치합니다. 진시황은 태산에 오르고도 하늘에 봉선을 지내지 못했습니다.   

폐하께서 반드시 산 위에 오르시겠다면, 힘들어도 참으시고 조금씩 올라가신다면 
비바람은 곧 멈출 것이고 마침내 산 위에서 봉선을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무제'는 유생들에게 ‘사우’를 연습하게 명령하고 봉선의식의 초고를 작성하게 하였다.

몇 년 후 봉선을 치를 때가 임박하였다.  '무제'는 이미 '공손경'과 방사들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는데,  

황제가 봉선을 거행할 때에는 언제나 신물을 불러오고 신선들과 통하였으며,

이에 황제를 본받고 싶어서 신선, 봉래방사를 응대하고자 하였고, 세속을 벗어나 천지인 중에 인황의 다른 이름인

구황과 나란히 하고, 또 유가의 학술을 광범위하게 채용해 봉선에 대한 글을 짓게 하였다.] 

群儒既以不能辯明封禪事, 又牽拘於詩書古文而不敢騁.   

上為封祠器示群儒, 群儒或曰 " 不與古同 ”, 徐偃又曰 " 太常諸生行禮不如魯善 ”,  

周霸屬圖封事, 於是上絀偃、霸, 盡罷諸儒弗用. 

(군유기이불능변명봉선사, 이견구어시서고문이불감빙.  

상위봉사기시군유, 군유혹왈 " 불여고동 ", 서언우왈 " 태상제생행례불여노선 ",  

주패속도봉사, 어시상출언、패, 진파제유불용.)


[그러나 유생들은 봉선에 대한 일을 분명히 밝히지 못했고, 《시경》과 《서경》 같은 옛 글에 구속되어 
 

자기의 의견을 자유롭게 나타내지도 못하였다. 이에 '무제'가 봉선 때 사용하는 제기들을 유생들에게 보여주자,

유생 중 어떤 이가 말하기를 : “ 옛날의 것과 같지 않습니다. ”라고 하였고, 
'서언'이 또 말하기를 : " 태상의 제자가 행하는 예식은 옛날 노나라의 것보다 못합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주패'가 유생들을 불러 모아서 봉선에 대한 일을 논의하자, 
 

'무제'는 '서언'과 '주패'를 내쫓고 유생들을 모두 파면시킨후 이들을 등용하지 않았다.] 

三月, 遂東幸緱氏, 禮登中岳太室.  從官在山下聞若有言 " 萬歲 ”云.  問上, 上不言;問下, 下不言. 

於是以三百戶封太室奉祠, 命曰崇高邑. 東上泰山, 山之草木葉未生, 乃令人上石立之泰山顛.
(삼월, 수동행구지, 예등중악태실.  종관재산하문약유언 " 만세 "운.  문상, 상불언 : 문하, 하불언. 
 

어시이삼백호봉태실봉사, 명왈숭고읍. 동상태산, 산지초목엽미생, 내령인상석입지태산전.)


[3월, '무제'는 동쪽으로 "구지성"에 행차하여, 중악의 "태실산"에 올라서 제사를 지냈다.  
 

이때 '무제'의 시종관이 산 아래에서 마치 “ 만세 ”라고 고함치는 것 같은 소리를 듣고 산 위에 올라가서 물었더니

산 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소리를 내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산 아래에 내려가서 물으니 산 아래의 사람들도 소리치지 않았다고 대답하였다. 
 

'무제'는 이 말을 듣고서 3백 호의 봉읍을 태실산에 바치고 이로써 제사 지내게 하고, 

이 봉읍을 "숭고읍"이라고 명명하였다. 이어서 동쪽의 "태산"에 올랐는데,

산에는 아직 초목이 무성하지 않아 태산의 꼭대기에 비석을 세우라고 명하였다.]

上遂東巡海上, 行禮祠八神.  齊人之上疏言神怪奇方者以萬數, 然無驗者.   

乃益發船, 令言海中神山者數千人求蓬萊神人.   

公孫卿持節常先行候名山, 至東萊, 言夜見一人,  長數丈, 就之則不見, 見其跡甚大, 類禽獸云.
(상수동순해상, 행례사팔신.  제인지상소언신괴기방자이만수, 연무험자.  
 

내익발선, 영어해중신산자수천인구봉래선인.  

공손경지절상선행후명산, 지동래, 언야견일인, 장수장, 취지즉불견, 견기적심대, 유금수운.)


[이어 '무제'는 마침내 동쪽으로 순수해 바닷가에 이르러 8신(천주, 지주, 병주, 음주, 양주, 월주, 일주, 
4시주)에게

제사를 지냈다. 제나라 사람이 글을 올려 아뢰기를 '기괴한 방술을 이야기하는 자가 거의 만 명에 이르지만

영험한 자는 한 명도 없다.'라고 하자. '무제'는 배를 더욱 많이 내보내 바다에 신선이 있다고 말하는

수천 명에게 봉래선인을 찾으라고 명하였다.  

이에 '공손경'은 부절을 지니고 먼저 가서 명산의 신선을 기다리다가 "동래"에 이르렀을 때

어떤 사람을 보았는데 그는 키가 수십 척이나 되었고, 다가가도 보이지 않았고,

단지 그가 남긴 발자국만 볼 수 있었는데 매우 컸으며 마치 짐승의 발자국과 같았다고 말하였다.]

群臣有言見一老父牽狗, 言 “ 吾欲見巨公 ”, 已忽不見.  上既見大跡, 未信, 及群臣有言老父,  則大以為僊人也. 

宿留海上, 與方士傳車及閒使求僊人以千數.
(군신유언견일노부견구, 언 " 오욕견신공 ", 이홀불견.  상기견대적, 미신, 급군신유언노부, 
 즉대이위선인야.

숙유해상, 여방사전거급간사구선인이천수.) 


[그러자 신하 중에 어떤 이가 개를 끌고 가는 한 노인을 보았는데,

그는 말하기를 ‘나는 천자를 만나고 싶다’라고 말하고는 갑자기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고 아뢰었다. 

'무제'는 그 커다란 발자국을 보고서도 믿지 못했으나, 그 신하가 노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서야

 노인이 바로 신선임을 깊이 믿게 되었다. 그래서 바닷가에 머물며 방사들에게 역참에 있는 수레를 내주고

틈만 나면 사자를 보내 신선을 찾으라고 한 것이 수천 명이나 되었다.]

四月, 還至奉高.  上念諸儒及方士言封禪人人殊, 不經, 難施行.  天子至梁父, 禮祠地主.

乙卯, 令侍中儒者皮弁薦紳, 射牛行事.  封泰山下東方, 如郊祠泰一之禮.

封廣丈二尺, 高九尺, 其下則有玉牒書, 書祕.
(사월, 환지봉고.  상념제유급방사언봉선인인수, 불경, 난시행.  천자지양보, 예사지주.

을묘, 영시중유자피변천신, 사우행사.  봉태산하동방, 여교사태일지례.

봉광장이척, 고구척, 하기즉유옥첩서, 서비.)

[4월, "봉고현"으로 돌아왔다.  '무제'는 유생들과 방사들이 말하는 봉선의식이 사람마다 각기 다르고,  

도리에도 어긋나 시행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였다. '무제'는 "양보산"에 이르러 지신에게 제사 지냈다.

을묘일, 시중과 유생에게 사슴가죽으로 만든 관을 쓰고, 홀을 꽂은 관복을 입게 하고

'무제'가 직접 소를 활로 쏘아 맞추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무제'는 또 태산 아래의 동쪽에 제단을 설치해 태일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교외의 제사의식과 똑같이 하였다. 

그 제단은 넓이가 1장 2척이며, 높이는 9척이 되게 했으며,  

제단 아래에 옥첩서를 놓아두었는데 그 내용은 비밀로 하였다.]

禮畢, 天子獨與侍中奉車子侯上泰山, 亦有封.  其事皆禁.  明日, 下陰道.   

丙辰,禪泰山下阯東北肅然山,如祭后土禮.
(예필, 천자독여시중봉거자후상태산, 역유봉.  기사개금.  명일, 하음도.  
 

병진, 선태산하지동북숙연산, 여제후토례.)


[제례가 끝나자, '무제'는 혼자서 황제의 거마를 관리하는 '곽자후'만 데리고 태산에 올라가서 봉선을 
지냈는데,

이 일에 대해선 언급을 일절 금하게 했다. 다음날 '무제'는 산의 북쪽 길로 하산했다. 

병진일, 태산 기슭 동북방의 "숙연산"에서 지신에게 제사 지냈는데, 후토신에게 제사 지내는 의식과 똑같이 하였다.] 

天子皆親拜見, 衣上黃而盡用樂焉.  江淮閒一茅三脊為神藉.  五色土益雜封.   

縱遠方奇獸蜚禽及白雉諸物, 頗以加祠.  兕旄牛犀象之屬弗用.  皆至泰山然後去.   

封禪祠, 其夜若有光, 晝有白雲起封中.  天子從封禪還, 坐明堂, 群臣更上壽. 
(천자개친배견, 의상황이진용악언.  강회간일모삼척위신자.  오색토익잡봉.  
 

종원방기수비금급백치제물, 파이가사.  시모우서상지속불용. 개지태산연후거.   

봉선사, 기야약유광, 주유백운기봉중.  천자종봉선환, 좌명당, 군신경상수.)

  

[이렇듯 제사를 지내는 동안 '무제'는 직접 공손히 제사 지냈으며, 황색의 옷을 입었고, 언제나 음악으로 반주를 했다.

또한 장강과, 회수 일대에서 생산되는 띠풀을 엮어서 신의 자리를 만들었고,

오색의 진흙을 사용해 제단을 단단하게 메웠다. 또 아주 먼 지방에서 바쳐온 진귀한 들짐승, 날짐승과 흰색 꿩 등의 

동물들을 놓아 주었는데, 이것은 제례의 엄숙한 분위기를 더욱 성대하고 엄중하게 거행되었다.  

그러나 시우(외뿔소), 모우(인도들소), 서우(코뿔소), 대상(코끼리) 등의 동물들은 사용하지 않았다. 
'무제' 일행은 모두 태산으로 돌아온 후에 헤어졌다. 

봉선을 거행할 때, 밤에는 하늘에 광채 같은 것이 번쩍거렸고, 낮에는 흰 구름이 제단 가운데서 솟아 올랐다.  

'무제'는 봉선을 지내고 돌아와서 명당에 앉자 여러 신하들이 '무제'에게 만수무강을 기원하였다.] 

於是制詔御史:" 朕以眇眇之身承至尊, 兢兢焉懼弗任.  維德菲薄, 不明于禮樂.   

修祀泰一, 若有象景光, 屑如有望, 依依震於怪物, 欲止不敢, 遂登封泰山, 至於梁父, 而後禪肅然.

自新,嘉與士大夫更始.   賜民百戶牛一酒十石, 加年八十孤寡布帛二匹.  復博、奉高、蛇丘、歷城, 毋出今年租稅.  

其赦天下, 如乙卯赦令.  行所過毋有復作.  事在二年前, 皆勿聽治. ”

(어시제조어사 : " 짐이묘묘지신승지존, 긍긍언구불임.  유덕비박, 불명우례악.

수사태일, 약유상경광, 설여유망, 의의진어괴물, 욕지불감, 수등봉태산, 지어양보, 이후선숙연.

자신, 가여사대부경시.  사민백호우일주십석, 가년팔십고과포백이필.  부박、봉고、사구、역성, 무출금년조세. 

기사천하, 여을묘사령.  행소과무유부작.  사재이년전, 개물청치. " )


[그때 '무제'는 어사에게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렸다 : 
" 짐은 미천한 몸으로 지존한 권위를 이어받아 

항상 언행에 조심하고 직책을 감당하지 못할까 전전긍긍하며 두려워했소. 

짐은 덕이 부족하고 예악제도에 밝지 못하오.  태일신에게 제사 지낼 때 하늘에는 상서로운 광채가

오랫동안 비쳤는데 짐은 그 기이한 광경에 몹시 놀라 중도에 제사를 멈추고 싶어도 차마 그럴 수가 없었소.
마침내 태산에 올라서 천신에 제사 지냈으며, "양보"에 도착한 후에 숙연산에서 지신에 제사 지냈소.

짐은 스스로 덕을 닦고 새사람이 되며 모든 관리들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자 하오.   

백성들에게는 백 가구당 소 한 마리와 술 10석을 내리고,

나이 80세 이상된 노인과 고아, 과부들에게는 직물 2필씩을 하사하시오. 

또 특별히 "박"、"봉고"、"사구"、"역성"등 4현에는 요역과 함께 금년 조세를 면제하시오. 

을묘년에 했던 것처럼 천하에 대사면령을 실시하시오. 짐이 순행한 지역은 복작을 집행하지 말며,

2년 전에 지은 죄에 대해서는 다시 그 죄를 묻지 말도록 하시오. "라고 하였다.]

又下詔曰:" 古者天子五載一巡狩, 用事泰山, 諸侯有朝宿地.  其令諸侯各治邸泰山下. "

天子既已封禪泰山, 無風雨菑, 而方士更言蓬萊諸神山若將可得, 於是上欣然庶幾遇之, 乃復東至海上望, 冀遇蓬萊焉. 

奉車子侯暴病, 一日死.  上乃遂去, 并海上, 北至碣石, 巡自遼西, 歷北邊至九原.

五月, 返至甘泉. 有司言寶鼎出為元鼎, 以今年為元封元年.
(우하조왈 : " 고자천자오재일순수, 용사태산, 제후유조숙지.  기령제후각지저태산하. "

천자기이봉선태산, 무풍우재, 이방사경언봉래제신산약장가득, 어시상흔연서기우지, 내복동지해상망, 기우봉래언. 

봉거자후폭병, 일일사.  상내수거, 병해상, 북지갈석, 순자요서, 역북변지구원.

오월, 반지감천. 유사언보정출위원정, 이금년위원봉원년.)


[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 " 옛날 천자는 5년에 한 번씩 순수를 실시하고 태산에 올라 천지에 제사를 
지냈으며, 

제후들은 조회할 때 머물 숙소의 건축에 참가했다고 하오.   

그러니 지금 제후들도 태산 아래에 각자가 머물 집을 짓도록 하시오. ”라고 하였다.

'무제'가 태산에서 봉선의 제사를 마칠 때까지 비와 바람의 재앙이 없었으므로,

방사들이 봉래산 등의 신산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또 아뢰자,

'무제'는 기뻐하며 어쩌면 신선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으로 믿고 다시 동쪽으로 가서 해변에 이르러 멀리 바라보면서

봉래선도를 볼 수 있기를 염원하였다. 그런데 봉거도위 '곽자후'가 갑자기 병이 나서 하루만에 죽었다.  

'무제'는 곧 그곳을 떠나 해변을 따라 북상해 "갈석"에 도착해, 다시 "요서"에서 순수를 시작해 북방 변경을 거쳐서

"구원"까지 이르렀다.

5월, 다시 감천궁으로 돌아왔다.  관원들은 보정이 출토된 그해의 연호를 원정이라고 하고,

봉선을 거행한 올해를 원봉 원년으로 해야 한다고 아뢰었다. ] 

其秋, 有星茀于東井.  后十餘日, 有星茀于三能.  望氣王朔言:" 候獨見其星出如瓠, 食頃復入焉." 

有司言曰:" 陛下建漢家封禪, 天其報德星雲. "
(기추, 유성불우동정.  후십여일, 유성불우삼능.  망기왕삭언 : " 후독견기성출여호, 식경부입언. "  
 

유사언왈 : " 폐하건한가봉선, 천기보덕성운. ")


[이해 가을, 어떤 별이 이십팔수의 스물두번째 별자리인 동정성에서 반짝거리더니, 
 

10여 일 후에 또 다른 별이 삼능성에서 빛났다. 기상을 관찰하는 '왕삭'이 말하기를 : “ 신이 혼자 하늘을 

관찰하고 있었는데, 그 별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호리병 같더니, 잠시 후 곧 사라졌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담당 관리가 아뢰기를 : “ 폐하께서 한나라 왕조의 봉선의식을 처음 시작하시니, 
 

하늘이 덕성을 나타내시어 폐하께 보답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其來年冬, 郊雍五帝, 還, 拜祝祠泰一.  贊饗曰:" 德星昭衍, 厥維休祥.  壽星仍出, 淵耀光明.   

信星昭見, 皇帝敬拜泰祝之饗. ”
(기래년동, 교옹오제, 환, 배축사태일.  찬향왈 : " 덕성소연, 궐유휴상.  수성잉출, 연요광명.  
 

신성소견, 황제경배태축지향. ")


[이듬해 겨울, '무제'는 "옹현"에서 오제에게 교사를 거행하고 돌아와서는 태일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축문을 올렸다.

제사를 지내며 고하기를 : “ 덕성이 널리 밝게 빛나는 것은 상서로운 징조입니다.   

남극성인 수성도 함께 나타나서 빛을 널리 비추었습니다.  토성인 신성도 밝게 나타났으니,  

황제는 이에 태축이 제사 지내는 모든 신령들에게 공경을 다해 절을 올립니다. ”라고 하였다.]

其春, 公孫卿言見神人東萊山, 若云 " 見天子 ”.  天子於是幸緱氏城, 拜卿為中大夫.   

遂至東萊, 宿留之數日, 毋所見, 見大人跡.  復遣方士求神怪采芝藥以千數.
(기춘, 공손경언견신인동래산, 약운 " 견천자 ".  천자어시행구지성, 배경위중대부.  
 

수지동래, 숙유지수일, 무소견, 견대인적.  부견방사구신괴채지약이수천.) 


[그해 봄, '공손경'이 "동래산"에서 신선을 보았는데 신선이 마치 " 천자를 만나고 싶다.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하였다. 이에 '무제'는 "구지성"으로 행차해 '공손경'을 중대부의 벼슬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동래"에 도착해 며칠 머물렀지만, 보이는 것은 없고, 거인의 발자국만 보았다.            

러자 '무제'는 다시 방사 수천 명을 파견해 신기한 물건을 찾고 영지선약을 캐오도록 하였다. ]

是歲旱.  於是天子既出毋名, 乃禱萬里沙, 過祠泰山.  還至瓠子, 自臨塞決河, 留二日, 沈祠而去. 

使二卿將卒塞決河, 河徙二渠, 復禹之故跡焉.
(시세한.  어시천자기출무명, 내도만리사, 과사태산.  환지호자, 자임색결하, 우이일, 침사이거.  
 

사이경장졸색결하, 하사이거, 부우지고적언.)
[그 해에 가뭄이 들었다.  이에 '무제'는 순수를 떠날 만한 명분이 없어지자, 

만리사에 비가 오도록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러 가는 도중에 태산에 들러 제사를 지냈다.

'무제'는 되돌아오면서 "호자"에 들러 몸소 황하의 터진 둑을 막았으며,

이틀을 머물면서 백마와 옥벽을 제물로 빠뜨려서 하신에게 제사 지낸 후에 그곳을 떠났다. 

'급인'과 '곽창' 두 장군에게 병사들을 거느리고 가서 황하의 터진 둑을 막게 했고,  

황하를 대하와 탑수의 두 줄기로 만들어서 바다로 흐르게 하여,

하나라 우임금이 치수하던 때와 같은 원래의 모습을 회복하였다.]

是時既滅南越, 越人勇之乃言 " 越人俗信鬼, 而其祠皆見鬼, 數有效.   

昔東甌王敬鬼, 壽至百六十歲.  後世謾怠, 故衰秏 ”.   

乃令越巫立越祝祠, 安臺無壇, 亦祠天神上帝百鬼, 而以雞卜. 上信之, 越祠雞卜始用焉.
(시시기멸남월, 월인용지내언 " 월인속신귀, 이기사개견귀, 수유효.  
 

석동구왕경귀, 수지백육십세.  후세만태, 고쇠모 ".

내령월무립월축사, 안대무단, 역사천신상제백귀, 이이계복. 상신지, 월사계복시용언.)


[당시 이미 남월은 멸망하였는데, 월나라 사람 '용지'가 진언하기를 “ 월나라 사람들은 귀신을 믿는 풍습이 있어,

제사를 지낼 때는 모두 귀신을 볼 수 있으며, 자주 효험을 봅니다. 

옛날 '동구왕'은 귀신을 공경하여 16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올수록 귀신을 업신여기고

비방하였기 때문에 그래서 쇠락하여 멸망한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무제'는 남월의 무당에게 남월식의 사당을 세워 묘대는 쌓되 제단은 쌓지 말며,

또 천신, 상제및 온갖 귀신에게 제사 지내도록 하고, 아울러 닭뼈로써 점을 치는 방법을 사용토록 하였다. 

'무제'가 이를 믿고 이와 같이 했기에, 남월식의 제사와 계복이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公孫卿曰:" 僊人可見, 而上往常遽, 以故不見.  今陛下可為觀, 如緱氏城, 置脯棗, 神人宜可致.   

且僊人好樓居. ”   於是上令長安則作蜚廉桂觀, 甘泉則作益延壽觀, 使卿持節設具而候神人,  

乃作通天臺, 置祠具其下, 將招來神僊之屬.
(공손경왈 : " 성인가견, 이상왕상거, 이고불견.  금폐하가위관, 여구지성, 치포조, 신인의가치.  
 

차선인호루거. "  어시상령장안즉작비렴계관, 감천즉작익연수관, 사경지절설구이후신인,  

내작통천대, 치사구기하, 장초래신선지속.)

[그러자 '공손경은'이 아뢰기를 : " 선인은 보실 수 있었으나, 천자께서는 항상 조급하셨기 때문에 만나지 

못하신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누대를 건립하시고, "구지성"에서 하신 것과 같이 마른 고기와 대추 등의

제물을 바치면 신선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또한 신선들은 누대에 거주하기를 좋아합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무제'는 명령을 내려 "장안"에 비렴관과 계관을 지었고, "감천"에는 익수관과 연수관을 지었고,  

'공손경'에게 부절을 지니게 하고 제사 도구를 설치하고서 신선을 기다리게 했으며, 통천대를 세우고,  

그 아래에 제물을 차려놓고 장차 신선들을 불러오게 하려고 하였다.]

於是甘泉更置前殿, 始廣諸宮室.  夏, 有芝生殿防內中.   

天子為塞河, 興通天臺, 若有光雲, 乃下詔曰:" 甘泉防生芝九莖, 赦天下, 毋有復作. ”
(어시감천경치전전, 시광제궁실.  하, 유지생전방내중.  
 

천자위색하, 흥통천대, 약유광운, 내하조왈 : " 감천방생지구경, 사천하, 무유복작. " )


[그리고 감천궁에 또 전전을 짓고, 궁실을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여름, 영지가 궁전 방 안에서 자라났다. 

'무제'가 황하의 터진 둑을 막고 통천대를 세우자, 하늘에 번쩍거리는 듯한 상서로운 구름이 나타나는것 같아서,

이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 “ 감천궁의 방 안에 영지 아홉 포기가 자라났으니, 
특별히 천하에 대사면을 실시하고 죄수들을 감옥 밖에서 노역을 시키지 말라. ”라고 하였다.]

其明年, 伐朝鮮.  夏, 旱.  公孫卿曰:" 黃帝時封則天旱, 乾封三年. ” 

乃下詔曰:" 天旱, 意乾封乎?  其令天下尊祠靈星焉. ”
(기명년, 벌조선.  하, 한.  공손경왈 : " 황제시봉즉천한, 건봉삼년. "  
 

상내하조왈 : " 천한, 의건봉호 ?  기령천하존사령성언. " )


[그 이듬해, 조선을 정벌하였다.  여름에 가뭄이 들었다.  '공손경'이 아뢰기를 : “ 황제께서 제단을 쌓을 
때마다

가뭄이 들었는데, 이렇게 3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봉토가 메말라 버렸습니다. ”라고 하자.   

이에 '무제'는 조서를 내리기를 : “ 하늘이 가뭄을 내린 것은 봉토를 메마르게 하려는 뜻이 아니겠는가 ?   

이에 특별히 명하노니 천하 백성들은 농업의 신인 영성에 경건히 제사를 지내도록 하라. ”라고 하였다.]

其明年, 上郊雍, 通回中道, 巡之.  春, 至鳴澤, 從西河歸.  其明年冬, 上巡南郡, 至江陵而東.   

登禮潛之天柱山, 號曰南岳. 浮江, 自尋陽出樅陽, 過彭蠡, 祀其名山川. 

北至瑯邪, 并海上.  四月中, 至奉高修封焉.
(기명년, 상교옹, 통회중도, 순지.  춘, 지명택, 종서하귀.  기명년동, 상순남군, 지강릉이동.  
 

등례잠지천주산, 호왈남악. 부강, 자심양출종양, 과팽려, 사기명산천. 

북지낭야, 병해상.  사월중, 지봉고수봉언.)

[그 이듬해, '무제'는 "옹현"에서 교사를 지내고, "회중"의 길을 거쳐 순수를 떠났다. 

봄에 "명택"에 이르러, 서하를 따라 "장안"으로 돌아왔다. 다음해 겨울, '무제'는 "남군"으로 순수하고,

"강릉"에 이른 후에 동쪽으로 행차했다. "잠현"의 천주산에 올라 제사 지내고, 그 산을 남악이라고 불렀다.

강에 배를 띄워 "심양"에서 "종양"으로 가는 도중에 "팽려"를 거쳐서 명산대천에 제사 지냈다.  
북쪽 "낭야"에 이르자, 다시 해안을 따라 순행하였다.  4월 중순, "봉고현"에 도착하여 봉선을 거행하였다.]

初, 天子封泰山, 泰山東北阯古時有明堂處, 處險不敞. 上欲治明堂奉高旁, 未曉其制度.   

濟南人公玊帶上黃帝時明堂圖.  明堂圖中有一殿, 四面無壁, 以茅蓋, 通水, 圜宮垣為複道,  

上有樓, 從西南入, 命曰昆侖, 天子從之入, 以拜祠上帝焉. 於是上令奉高作明堂汶上, 如帶圖.
(초, 천자봉태산, 태산동북지고시유명당처, 처험불창.  상욕치명당봉고방, 미효기제도.  
 

제남인공옥대상황제시명당도.  명당도중유일전, 사면무벽, 이모개, 통수, 원궁원위복도,  

상유루, 종서남입, 명왈곤륜, 천자종지입, 이배사상제언. 어시상령봉고작명당문상, 여대도.)

 
[예전에 천자가 태산에서 봉선을 거행할 때, 태산 동북쪽 산기슭에 오래 전 지은 명당이 있었는데, 
 

지세가 험준하며 앞이 탁 트이지 않았다. '무제'는 "봉고현" 부근에 명당을 또 하나 짓고 싶었으나,  

그 형식과 규모를 알지 못했다. 그러자 제남 사람 '공옥대'가 황제 때 지었던 명당의 설계도를 헌납하였다.  

명당의 설계도에는 전당이 한 채 있었는데, 전당의 사방에는 벽이 없고, 지붕은 띠로 덮여 있었으며,  

사면은 물이 통하게 되어 있었고, 궁궐의 둘레에는 담장이 둘러져 있었으며, 복도를 만들었는데,  

윗길에는 서남쪽에서 전당으로 들어가는 주루가 설치되어 이것을 ‘곤륜도’라고 이름지었고, 
천자는 이 길을 따라 전당에 들어가서 상제께 제사를 올렸다. 

이에 '무제'는 "봉고현"의 문수 부근에 '공옥대'가 바친 설계도에 따라서 명당을 짓도록 명하였다.]

及五年修封, 則祠泰一、五帝於明堂上坐, 令高皇帝祠坐對之.  祠后土於下房, 以二十太牢.   

天子從昆侖道入, 始拜明堂如郊禮.  禮畢, 燎堂下.  而上又上泰山, 有祕祠其顛.   

而泰山下祠五帝, 各如其方, 黃帝并赤帝, 而有司侍祠焉. 泰山上舉火, 下悉應之. 
(급오년수봉, 즉사태일、오제어명당상좌, 영고황제사좌대지.  사후토어하방, 이이십태뢰.  
 

천자종곤륜도입, 시배명당여교례.  예필, 료당하.  이상우상태산, 유비사기전.   

이태산하사오제, 각여기방, 황제병적제, 이유사시사언. 태산상거화, 하실응지.)


[5년 후 봉선을 거행할 때, 명당의 윗자리에서는 태일신과 오제에게 제사 지내고,

고황제의 위패는 반대편에 자리하게 했다. 하방에서는 소 20마리를 제물로 후토신에게 지내도록 하였다.   

'무제'는 곤륜도를 통해 들어가서 교사를 지내는 예식에 따라 명당에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하였다. 
제사가 끝난 후 다시 당 아래에서는 섶에 불을 질러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그리고 나서 '무제'는 또 태산에 올라 정상에서 비밀리에 제사를 지냈다.  
 

태산 아래에서 오제에게 제사 지낼 때, 그들 각자에 해당하는 방위에서 제사 지냈는데,  

황제와 적제는 같은 방위에서 하고, 담당 관리들이 제사를 받들어 모셨다.   

제사 지낼 때 태산 위에서 횃불을 들면, 산 아래에서도 횃불을 들어 모두 호응하였다.]

其后二歲, 十一月甲子朔旦冬至, 推歷者以本統. 天子親至泰山, 以十一月甲子朔旦冬至日 

祠上帝明堂, 每修封禪.  其贊饗曰:" 天增授皇帝泰元神筴, 周而復始.  皇帝敬拜泰一. "   

東至海上, 考入海及方士求神者,莫驗,然益遣,冀遇之.
(기후이세, 십일월갑자삭단동지, 추역자이본통.  천자친지태산, 이십일월갑자삭단동지일
 

사상제명당, 매수봉선.  기찬향왈 : " 천증수황제태원신책, 주이복시. 황제경배태일. "   

동지해상, 고입해급방사구신자, 막험, 연익견, 기우지.) 

 

[2년 후, 11월 갑자일 초하룻날 아침이 동지였는데,

역법을 계산하는 자가 이 날을 역법주기의 기점인 본통으로 추산했다. '무제'는 몸소 태산으로 행차해,

11월 갑자일 초하루 아침 동짓날에 명당에서 하늘에 제사 지냈는데, 매 제사마다 봉선의 예의는 갖추지 않았다.  

제사에 음식을 올리고 축원하며 이르기를 : “ 하늘이 이 '무제'에게 하늘의 신책을 내려주시어, 

일월이 한 바퀴 돌면 역수는 다시금 새롭게 시작합니다. 이 '무제'는 태일신께 삼가 경배하옵니다. ”라고 하였다. 

'무제'는 동쪽으로 가서 바다에 도착한 후, 바다에 나가 신선을 만나려는 사람들과 방사들을 조사해 보니,  

효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여전히 신선을 찾으러 사람들을 늘려 파견하면서, 신선을 만나기를 기대하였다.]

 

十一月乙酉, 柏梁災. 十二月甲午朔, 上親禪高里, 祠后土. 臨渤海, 將以望祠蓬萊之屬, 冀至殊庭焉.

上還, 以柏梁災故, 朝受計甘泉.  公孫卿曰:" 黃帝就青靈臺, 十二日燒, 黃帝乃治明庭.

明庭, 甘泉也"   方士多言古帝王有都甘泉者. 其后天子又朝諸侯甘泉, 甘泉作諸侯邸.
(십일월을유, 백량재.  십이월갑오삭, 상친선고리, 사후토.  임발해, 장이망사봉래지속, 기지수정언.

상환, 이백량재고, 조수계감천.  공손경왈 : " 황제취청령대, 이십일소, 황제내치명정.

명정, 감천야. "  방사다언고제왕유도감천자. 기후천자우조제후감천, 감천작제후저.)


[11월 을유일, 백량대에 화재가 발생하였다.  12월 갑오일 초하루에 '무제'는 친히 "고리산"에서 봉선을 
지내고,

후토신에게 제사 지냈다.  이어서 발해에 도착해 봉래산의 여러 신에게 망사를 지내고,  

신선이 사는 곳에 도달할 수 있기를 기대하였다.

'무제'는 장안으로 돌아와서, 백량대에서 화재가 일어난 까닭에 대해 감천궁에서 조회하며 보고를 받았다. 
'공손경'이 말하기를 : “ 황제께서 청령대를 지으신 지 12일 만에 화재를 당하자, 다시 명정을 지으셨는데,

명정이 곧 감천궁입니다. ”라고 하였다. 

방사들도 대부분 아뢰기를 고대 제왕 가운데 "감천"에 도읍한 사람이 있었다 하였다.

 그뒤 '무제'는 감천궁에서 제후의 조회를 받고 "감천"에 제후들의 집을 지었다.] 

 

勇之乃曰:" 越俗有火災, 復起屋必以大, 用勝服之. "  於是作建章宮, 度為千門萬戶.   

前殿度高未央, 其東則鳳闕, 高二十餘丈. 其西則唐中, 數十里虎圈.
(용지내왈 : " 월속유화재, 부기옥필이대, 용승복지. "   어시작건장궁, 도위천문만호.  
 

전전도고미앙, 기동즉봉궐, 고이십여장. 기서즉당중, 수십리호권.) 

 

['용지'가 아뢰기를 : “ 월나라의 풍속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한 후에 다시 집을 지을 때는 원래의 것보다 게 지어,

집의 크기로 재앙을 제압합니다. ”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건장궁을 지었는데, 대궐의 문호가 대단히 많았다. 

그 전전은 미앙궁보다 높고 웅장했으며, 그 동쪽에는 봉궐을 세웠는데 높이가 20여 장이나 되었다.

서쪽에 당중지가 있었는데, 둘레가 수십 리나 되는 호랑이를 기르는 호권이 있었다.]

其北治大池, 漸臺高二十餘丈, 名曰泰液池, 中有蓬萊、方丈、瀛洲、壺梁, 象海中神山龜魚之屬.  

其南有玉堂、璧門、大鳥之屬. 乃立神明臺、井幹樓, 度五十餘丈, 輦道相屬焉.
(기북치대지, 점대고이십여장, 명왈태액지, 중유봉래、방장、영주、호량, 상해중신산구어지속. 
 

기남유옥당、벽문、대조지속. 내립신명대、병간루, 도오십여장, 연도상속언.)


[당중지 북쪽에는 커다란 연못을 파서 연못 안의 누대, 즉 점대를 세웠는데 그 높이가 20여 장이나 될 
도로

높았으며, 이 못의 이름을 태액지라고 하고, 연못 가운데 봉래、방장、영주、호량 등 4개의 선산을 만들었는데,

이는 바닷속에 있는 신선과 바다거북과 물고기 등의 형상을 본떠 만든 것이다.  

그 남쪽에는 옥당、벽문、대조등의 조각상을 만들어 놓았다.  또한 신명대、정간루를 세웠는데,

그 높이가 50여 장에 달했으며, 누각들 사이에 천자의 수레가 다닐 수 있도록 구름다리가 연결되어 있었다.]

夏, 漢改歷, 以正月為歲首, 而色上黃, 官名更印章以五字.  因為太初元年.  是歲, 西伐大宛.   

蝗大起.  丁夫人、雒陽虞初等以方祠詛匈奴、大宛焉.
(하, 한개역, 이정월위세수, 이색상황, 관명경인장이오자.  인위태초원년.  시세, 서벌대완.  
 

황대기.  정부인、낙양우초등이방사저흉노、대완언.)


[여름, 한나라는 역법을 바꾸어, 음력 정월을 그해의 시작으로 삼고, 색은 황색을 숭상하였으며, 
 

관명의 인장을 다섯 글자로 바꾸었다. 이 해의 연호를 태초의 원년으로 삼았다.   

이 해에 서쪽의 "대원"을 정벌하였다.  또 메뚜기 떼가 기승을 부렸다. 
정부인과 낙양 사람 '우초' 등이 방술을 사용해 흉노와 대원을 저주하는 제사를 지냈다.]

其明年, 有司言雍五畤無牢熟具, 芬芳不備. 乃命祠官進畤犢牢具, 五色食所勝, 而以木禺馬代駒焉. 

獨五帝用駒, 行親郊用駒. 及諸名山川用駒者, 悉以木禺馬代. 行過, 乃用駒. 他禮如故.
(기명년, 유사언옹오치무뢰숙구, 분방불비.  내명사관진치독뢰구, 오색식소승, 이이목우마대구언. 
 

독오제용구, 행친교용구. 급제명산천용구자, 실이목우마대. 행과, 내용구. 타례여고.)


[그 이듬해, 제사담당 관리들은 "옹현"의 오치에서 지내는 제사에는 익힌 제물과 향기 나는 제물을 

올리지 않았다고 아뢰었다. 이에 '무제'는 제사담당 관리에게 명령해 삶은 송아지를 각 제사터에 바치도록 하고,  

제물로 바치는 소의 털 색깔은 각 방위의 천제가 향용할 수 있는 오색의 것을 선택해 사용하게 했다.   

또한 제사에 사용하는 말은 나무로 만든 말(木偶馬)로 대체하게 하였다.  

그러나 오제의 제사에는 망아지를 썼으며,  '무제'가 친히 제사 지내는 교사에도 망아지를 사용하게 하였다. 

각 명산대천에 제사 지낼 때는 망아지를 모두 나무로 만든 말로 대체시켰다. 

'무제'가 순수했던 지역에서 제사 지낼 때에만 망아지를 사용하였다. 그 외의 예식은 옛 체제와 똑같이 하였다.]

其明年, 東巡海上, 考神僊之屬, 未有驗者.  方士有言 “ 黃帝時為五城十二樓, 以候神人於執期,  命曰迎年. ” 

上許作之如方, 名曰明年.  上親禮祠上帝, 衣上黃焉. 

公玊帶曰:" 黃帝時雖封泰山, 然風后、封鉅、岐伯令黃帝封東泰山, 禪凡山合符, 然後不死焉. ” 

(기명년, 동순해상, 고신선지속, 미유험자.  방사유언 " 황제시위오성십이루, 이후신인어집기,  명왈영년. " 

상허작지여방, 명왈명년, 상친예사상제, 의상황언.

공옥대왈 : " 황제시수봉태산, 연풍후、봉거、기백령황제봉동태산, 선범산합부, 연후불사언. ")

 

[그 다음해, '무제'는 동쪽으로 순수를 나가 바닷가에서 신선을 불러오는 모든 방법을 시험해 보았으나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 어떤 방사가 이르기를 “ 황제 때 5개의 성과 12개의 누대를 건립하고

집기에서 신선을 기다렸는데, 그 누대의 이름을 영년이라고 했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무제'는 그가 말한 대로 누대를 짓고 ‘명년’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무제'는 직접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며, 의복은 황색 옷을 입었다.

그러자 '공옥대'가 아뢰기를 : " 황제 때는 비록 태산에만 봉선을 지냈으나, '풍후'、'봉거'、'기백' 등이

"동태산"에서 천신에게 제사 지내고, "태산"과 인접한 "범산"에서 지신에게 제사 지낼 것을 건의하며,  

두 곳에서 얻은 부절이 서로 합치한 연후에 황제께서는 불로장생할 수 있었습니다. ”라고 하였다. ]

天子既令設祠具, 至東泰山, 東泰山卑小, 不稱其聲, 乃令祠官禮之, 而不封禪焉.   

其后令帶奉祠候神物.   夏,遂還泰山, 修五年之禮如前, 而加禪祠石閭.

石閭者,  在泰山下阯南方, 方士多言此僊人之閭也, 故上親禪焉.
(천자기령설사구, 지동태산, 동태산비소, 불칭기성, 내령사관예지, 이불봉선언.  
 

기후령대봉사후신물.  하, 수환태산, 수오년지례여전, 이가선사석려.

석려자,  재태산하지남방, 방사다언차선인지려야, 고상친선언.)


[이에 '무제'는 곧 제사를 준비하라 명령하고 "동태산"에 도착해 보니 "동태산"이 너무 작아 명성에 걸맞지 않으므로,

이에 사관에게 제사만 지내도록 하고 봉선은 거행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후 '공옥대'로 하여금 이곳에서 제사 지내며 신선을 기다리게 하였다.  

여름, 마침내 '무제'는 "태산"으로 돌아와서 관례대로 5년에 한 번 거행되는 봉선을 거행했고,  

다시 "석려산"에서 지신에게 제사지냈다. "석려산"은 태산 기슭의 남쪽에 있었는데,

방사들은 이곳이 신선이 사는 마을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무제'가 이곳에 와서 몸소 지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其后五年, 復至泰山修封, 還過祭常山.  今天子所興祠,泰一、后土,三年親郊祠,建漢家封禪, 五年一修封.  

薄忌泰一及三一、冥羊、馬行、赤星, 五, 寬舒之祠官以歲時致禮.   

凡六祠, 皆太祝領之. 至如八神諸神, 明年、凡山他名祠, 行過則祀, 去則已.
(기후오년, 부지태산수봉, 환과제상산.  금천자소흥사, 태일、후토, 삼년친교사, 건한가봉선, 
 

오년일수봉.  박기태일급삼일、명양、마행、적성, 오, 관서지사관이세시치례.   

범육사, 개태축령지. 지여팔신제신, 명년、범산타명사, 행과즉사, 거즉이.)


[5년 뒤, '무제'는 다시 "태산"에 와서 봉선의 대전을 거행하고 돌아가는 길에 "상산"에서 제사 지냈다.
지금 천자가 새로 제정한 제례는 태일사와 후토사인데, 3년마다 '무제'가 직접 교사를 지냈고, 
 

한나라 왕조에서 시작한 봉선은 5년에 한 번 거행하였다.  

'박유기'의 건의에 의해서 건립된 태일및 삼일、명양、마행、적성 등의 다섯 신사에서는 제사를 관장하는 '관서'가

매년 때를 맞추어 제사 지냈다. 이외에 앞의 다섯 신사에 후토를 합한 여섯 신사의 제사는 모두 태축이 주관하였다. 

팔신 중의 각 신선과 "명년"、"범산" 등 그 밖의 유명한 신사는 '무제'가 순수하다가 들를 때만 제사를 지냈고,

그냥 지나쳐 버리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方士所興祠, 各自主, 其人終則已, 祠官弗主.  他祠皆如其故.   

今上封禪, 其后十二歲而還, 遍於五岳、四瀆矣.  而方士之候祠神人, 入海求蓬萊, 終無有驗.
(방사소흥사, 각자주, 기인종즉이, 사관불주.  타사개여기고.  
 

금상봉선, 기후십이세이환, 편어오악、사독의.  사방사지후사신인, 입해구봉래, 종무유험.)

 
[방사들이 건립한 신사는 그들 각자가 제사를 주관하였고, 그들이 죽으면 바로 끝났으며, 
 

제사를 주관하는 관리가 주재하지 않았다. 그 밖의 제사는 모두 옛 형식에 따랐다. 지금 '무제'가 "태산"에서

지내기 시작한 봉선은 그 후 12년 동안 거행되었고, "오악"과 "사독"에서도 두루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한편 방사들이 신선을 맞이하는 제사를 지내며 바다로 가서 봉래선도를 찾았지만, 끝내 효험이 없었다. ]

而公孫卿之候神者, 猶以大人跡為解, 無其效.  天子益怠厭方士之怪迂語矣, 然終羈縻弗絕,  冀遇其真. 

自此之后, 方士言祠神者彌眾, 然其效可睹矣.
(이공손경지후신자, 유이대인적위해, 무기효.  천자익태염방사지괴우어의, 연종기미불절,
기우기진. 

자차지후, 방사언사신자미중, 연기효가도의.)


[또 '공손경'과 같이 신선을 기다린 자는 거인의 발자국을 보고 신선을 만날 것이라고 기다렸으나, 
 

결국 아무런 효험이 없었다. 이리하여 '무제'는 점차 방사들의 기괴한 이야기를 싫어하게 되었으나,  

그는 언제나 그들을 구슬리며 관계를 완전히 끊지는 못했으니,  

그것은 진심으로 신선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 후 방사들의 신선에 대한 담론은 갈수록 많아졌으나, 그 결과가 어떠했을 지는 눈에 보이는 듯하다. ] 


  

太史公曰:

余從巡祭天地諸神名山川而封禪焉.  入壽宮侍祠神語, 究觀方士祠官之言,  

於是退而論次自古以來用事於鬼神者, 具見其表裏.   

后有君子, 得以覽焉. 至若俎豆珪幣之詳, 獻酬之禮, 則有司存焉.
(태사공왈 :

여종순제천지제신명산천이봉선언.  입수궁시사신어, 구관방사사관지언,

어시퇴이론차자고이래용사어귀신자,구견기표리.

후유군자, 득이람언. 지약조두규폐지상, 헌수지례, 즉유사존언.)

[태사공은 말하기를 :

" 나는 천자를 따라서 순수하며 천지의 여러 신과 명산대천에 제사 지냈고,

봉선의 대전에도 참가했다. 수궁에 들어와서는 제사에 참가해 신께 올리는 축문도 듣고 방사와 사관들의 의도를

세심하게 탐구해 보았다. 그리고 물러나 자고로 귀신에게 제사 지내는 일에 대해서 순서대로 논술해

제사에 관한 겉과 속의 모든 것을 다 여기에 밝혀 놓았다. 

후세의 군자는 내 글을 통해서 그 정경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제사 지낼 때 신 앞에 놓는 나무로 만든 그릇인 조두와 신에게 바치는 귀중한 예물인 규폐에 관한 상세함이나

헌수에 관한 예법에 대해서는 담당관리들이 보존하고 있다. ”


 

★ 單 語 帳 .

 

[灶, zào]부엌 ; 조.   1. 부엌 2. 부엌 귀신 3. 조왕신(竈王神).     [부수 穴 구멍혈]
[ráo]넉넉할 ; 요.   1. 넉넉하게 하다 2. 기름지다 3. 두텁다 4. 용서하다.    [부수 食 밥식변]
[chuí ]저울추 ; 추.   1. 철퇴 2. 망치 3. 무게의 단위 4. 드리우다 5. 단련하다.     [부수 金 쇠금]
[xiāo]올빼미 ; 효, 목매달 ; 교.   1. 꼭대기 2. 영웅 3. 사납고 날쌔다 a. 목매달다.  [부수 木 나무목]  
[biāo, páo, piǎo]큰 사슴 ; 포, 김 맬 ; 표.  1. 고라니  a. 풀을 베다 b. 용감한 모양. [부수 鹿 사슴록] 
[fú]푸닥거리할 ; 불, 나라 이름 ; 폐.   1. 굿하다 2. (부정을)없애다 3. 떨다 4. 씻다. [부수 示 보일시]
[jiǎn]고치 ; 견.   1. 누에고치 2. 실 3. 솜옷 4. (발이)부르트다.     [부수 糸 실사] 
[yì]묻을 ; 예.   1. 묻다 2. 희미하다 3. 제터, 제사 지내는 곳 4. 무덤.      [부수 疒 병질엄]
[zhōu]꽁무니 ; 수.   1. 꽁무니뼈(등골뼈의 마지막 부분의 뼈) 2. 땅 이름.    [부수 月 육달월] 
[miǎo]멀 ; 막.   1. 멀다 2. 아득하다 3. 근심하다 4. 업신여기다.     [부수 辶 책받침] 
[zǐ]손위 누이 ; 자.   1. 맏누이 2. 어머니   [부수 女 계집녀] 
[xiàn, yí, yán]부러워할 ; 선, 무덤길 ; 연. 1.  탐내다 2. 사모하다 3. 풍요롭다.   [부수 羊 양양]
[shāng]삶을 ; 상.   1. 삶다 2. 익히다.     [부수 鬲 다리굽은솥력] 
[nài]가마솥 ; 내.   1. 가마솥 2. 큰 솥.    [부수 鼎 솥정]
[zī]옹달솥 ; 자.   1. 옹달솥(작고 오목한 솥) 2. 옹솥 3. 작은 솥.     [부수 鼎 솥정] 
[nǐ]아버지 사당 ; 니, 녜.   1. 사당에 모신 아버지 2. 신주(죽은 사람의 위패).      [부수 示 보일시]
[jiā, cè]낄 ; 협, 점대 ; 책.   1. 집다 2. 기뻐하다 3. 집게 a. 점대.    [부수 竹 대죽]
[rán]구레나룻 ; 염.   1. 귀밑에서 턱까지 잇따라 난 수염 2. 수염이 많은 사람.     [부수 髟 터럭발] 
[xǐ]신 ; 사, 신 ; 시.   1. 신을 끌고 바삐 나오다 2. 보잘것없는 것으로 여기다.     [부수 尸 주검시엄]
[zhuì, zhuó]군신제 ; 체.   1. 군신제(群神祭) 2. 제사 지내다.     [부수 飠 밥식변] 
[jì]물 부을 ; 계· 게· 기.   1. 물을 붓다 2. 배어들다 3. 이르다 5. 및, 과(와).    [부수 氵 삼수변] 
[wàn]팔 ; 완.    1. 팔.     [부수 扌 재방변] 
[là]섣달 ; 랍, 납향 ; 랍.   1. 납향(납일에 지내는 제사) 2. 소금에 절여서 말린 것.   [부수 月 육달월] 
[gōu]칼자루 감을 ; 구.   1. 칼머리 치장하다 2. 칼자루에 노감다 3. 산 이름.     [부수 糸 실사] 
[chù]물리칠 ; 출.   1. 물리치다 2. 꿰매다 3. 굽히다 4. 겸양하다.     [부수 糸 실사]
[dié]편지 ; 첩.   1. 서찰 2. 문서 3. 계보 4. 장부 5. 송사 6. 조회 7. 널(빤지).     [부수 片 조각편] 
[jiè, jí]깔 ; 자, 짓밟을 ; 적, 빌 ; 차, 빌릴 ; 차.   1. 깔개 2. 자리 3. 범하다(적).  [부수 艹 초두머리] 
[sì]외뿔소 ; 시.   1. 외뿔소 2. 무소(코뿔소)의 암컷.     [부수 儿 어진사람인발] 
[fú]풀 우거질 ; 불. 숨찬 모양 ; 발. 혜성 ; 패.   1. 제초하다 2. 수레포장.    [부수 艹 초두머리]
[hù, hú, hùo, gū]박 ; 호.   1. 표주박 2. 병 3. 항아리.     [부수 瓜 오이과] 
[réng]인할 ; 잉.   1. 그대로 따르다 2. 기대다 3. 슬퍼하다 4. 거듭 5. 오히려.     [부수 亻사람인변] 
[ōu]사발 ; 구.   1. 증발 3. 악기 4. 땅 이름 5. 종족 이름 6. 성의 하나.     [부수 瓦 기와와] 
[lǐ, lí, luó]좀 먹을 ; 려.  옴 ; 라.  표주박 ; 리.   1. 달팽이 5. 사람 이름 a. 소라.  [부수 虫 벌레훼]
[sù]옥 다듬는 장인 ; 숙. 구슬 ; 옥.   1. 구슬 2. 아름답다 3. 가꾸다.     [부수 玉 구슬옥] 
[niǎn]가마 ; 련.   1. 손수레 2. 연(임금이 타는 수레) 3. 끌다 4. 나르다.    [부수 車 수레거] 
[jī]굴레 ; 기. 나그네 ; 기.   1. 말고삐 2. 객지살이 3. 억류하다 4. 단속하다.  [부수 罒 그물망머리]
[mí ]고삐 ; 미.   1. 끈 2. 줄 3. 흩어지다 4. 나누다.     [부수 糸 실사] 
[chóu]갚을 ; 수, 주.   1. 보답하다 2. (잔을)돌리다, (술을)권하다 3. 변상하다.    [부수 酉 닭유]


    

※  人 物

 

漢高祖,劉邦(한고조,유방) BC 247~ 195.
漢文帝, 劉恒(유항) 태종. 전한의 5대황제(제위 BC180~157). 유방의 넷째子. 母親은 朴姬. 
賈誼(가의) : 문제 시대 청년정치가. 청춘에 요절.
孝文皇后,竇氏(효문황후,두씨) .'두운석'두의방' 유계의모친.  건원 6년 오월 정해일 사망.
漢景帝, 劉啓(한경제 유계). 6대황제(제위 BC 156~141). 14명의 아들을둠.
晁錯, 御史大父(조착 어사대부) : 경제 시대의 걸출한 정치가. 관복을 입고 "長安"의"東市"에서 요참을 당함.
阿胡兒, 匈奴小王(아호아,흉노소왕)
春陀,中常侍(춘타,중상시)
竇纓,魏其侯(두영,위기후) 두태후 의 조카. 태자옹립주청. 대장군. 태자태부.
周亞夫,將軍(주아부) '오,초'반란때 태위로 임명,병권장악.→승상. 관직박탈후 옥중에서 식음전폐후 사망.
灌夫,將軍(관부,장군) 두영의 심복. 전분의 모함으로 처형.
劉武,梁王(유무,양왕) '유계'의 친동생. 7국의난 평정. 열병으로 사망. 사후 시호인 '양효왕' 망탕산에매장.
韓安國,梁王內史(한안국,양왕내사) → 어사대부.
劉票,館陶,長公主(유표,관도,장공주) '유계'의 친누이.'아교'의 모친.
栗氏,皇妃(율씨,황비) '유영'의母
王志,美人(왕지,미인) '유체'의母. 황태후.→ 폐후.→황태후 →태황태후.
劉榮,皇太子(유영,황태자)'유계'의 장자. 황태자→임강왕, 종묘 사유지를 사용한 죄로 투옥. 옥사에서 자살.
劉遞,皇十子(유체(돼지),황십자 : 어린 한무제- 후에 '유철'로 개명). 교동왕.→태자
陳阿嬌(진아교) 장공주의딸. '한무제와 결혼.  황후, 자살.
田蚡,武安侯(전분,무안후) '한무제'의 외삼촌.  
劉戊,楚王(유무,초왕) 반란이 실패하자 자결.
陳嘉,中尉(진가,중위)
栗賁,大行令(율분,대행령)
陶靑,丞相(도청,승상)
劉鼻,吳王(유비,오왕) 반란이 실패하자 송월국 으로 도주.
應高,吳國內史(응고,오국내사)
秋香,宮女(추향,궁녀) 융경공주로 위장하여 흉노의 대도위와 결혼. 
南宮,公主(남궁,공주)'유철'의 친누이. 흉노의 '대선우'에게 출가. 이로인해 10년간 평화유지.
劉仰,膠西王(유앙,교서왕) : 반란실패후 자결.
劉遂,趙王(유수,조왕)           ‥
劉僻光,濟南王(유벽광,제남왕)   ‥
劉賢,淄川王(유현,치천왕)       ‥
劉雄渠,膠東王(유웅거,교동왕)   ‥
劉將閭,齊王(유장려,제왕)       ‥
袁盎.前吳國丞相(원앙,전오국승상) 양왕의 자객으로부터 암살당함.
劉駒,吳國太子(유구,오국태자)
蒼應,郅都(창응, 질도) 중위:'유영'자살로 관직 박탈.→"안문"태수. 
衛綰(위관) : 태자 '유철'의 태자태부.주아부 사망후 승상.
汲黯(급암) : 태자세마,
直不疑(직불의): 어사대부, 황로학 출신.
漢景帝 : 后元三年 九月甲子에  미양궁에서 붕어. 48세.

劉徹,漢武帝(유철,한무제) 전한 7대황제. 경제의 열번째子.BC (156~87). 제위 BC 144~87.
衛管.建陵侯(위관,건릉후) 전임승상.→황제태부. 개혁주장하다 해임.
直不疑(직불의) 어사대부. 개혁주장하다 위관과 동시에 해임.
竇纓,魏其侯(두영,위기후) 태자태부 →승상. 개혁실패로1년만에 해임. 景帝 밀서사건으로 요참.
田蚡,武安侯(전분,무안후) 태위.  두태후 사망후 승상.                  ‥            .
莊靑翟,武强侯(장청적,무강후) 태중대부.→어사대부.
李廣(이광) 위위.→효기장군.
程不識(정불식) 중위. → 거기장군.
許昌,栢至侯(허창,백지후) 태상윤.→승상.
石慶(석경) 낭중령
竇世國,平昌侯(두세국,평창후)
戴盼,關中侯(대반,관중후)
馮安靑,建宛侯(풍안청,건안후)
陶玉全,陵安侯(도옥전,능안후)
孫寶敬,陽明侯(손보경,양명후)
張弓,世寧侯(장궁,세녕후)
劉安(유안) 회남왕.《淮南王書》역모가 발견돼 자결.
劉陵(유릉) 회남왕 공주. 전분.곽회와 통정. 흉노와내통 혐의로 투옥후 음독자살.
劉惠,桃侯(유혜,도후)
董仲舒(동중서)  《천인삼책》전시에서 장원. 유철의국사.
寧成,中尉(영성)
趙棺(조관) 어사대부. 유철의 사부로 옥중자결.
王臧(왕장) 낭중령.       ‥                .
伊稚斜(이치사) 부친 대선우를 죽이고 대선우에오름.
中行說(중행열) 한인출신으로 흉노 대선우 책사.   
衛靑(위청) 평양공주의馬夫. 태중대부.흉노의 성지인"용성"점령.'관내후'→만호후. 하삭전투승리. 대장군.
衛子夫(위자부) 위청의누이. 딸출산후 빈비.아들출산후 황후.
郭解(곽해) 유릉공주의馬夫. 아교 생일때 한무제를 암살하려다 위청에게 살해. 
張騫(장건) '한무제'와 '위관'에게 동문수학. 서역의 대월씨국 사신.
韓焉(한언)             ‥      .
嚴助(엄조)
韓安國,韓長孺(한안국,한장유), 대사농.→장군.건원6년 민월의난 평정.→두태후 사망후 어사대부.
王恢(왕회) 대행령     →장군.   ‥     흉노의"마읍"침공 실패 책임물어 파직.옥중에서 자살.
公孫弘(공손홍), 平津侯 : 전시에서 차석→6년후 장원.  어사대부 → 승상.       
藿去病(곽거병), 驃騎將軍 :  위청의 외조카. 대장군 → 사마대장군. 24살에 막북대전에 역병으로 병사.
劉据(유거) 위자부의 아들.황태자. 황총의 무고의난 모함으로 피신중에 체포되자 자결.
司馬遷(사마천) 중서령.  부친 사마담의 유지를 받들어 《 史紀 》 완성.
劉弗陵(불릉) 한무제&구익부인 조씨의 아들로 왕태자.  8대황제
田千秋(전천추)  1년만에 파격적인 승진으로 승상.
藿光(곽광) 곽거병의아우. 대장군.
桑弘羊(상홍양) 어사대부.
金日磾(김일제) 흉노의 왕자. 한무제의 馬夫.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