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本紀(사기본기)/4. 周本紀

第 四. 周本紀(주본기)

덕치/이두진 2021. 6. 26. 23:56

 

             史記 本紀    

 

 

     第 四.  周本紀(주본기) 

 

周后稷, 名棄.  其母有邰氏女, 曰姜原.  姜原為帝嚳元妃. 

姜原出野, 見巨人跡, 心忻然說, 欲踐之, 踐之而身動如孕者.
(주후직, 명기.  기모유태씨녀, 왈강원.  강원위제곡원비. 
강원출야, 견거인적, 심흔연설, 욕천지, 천여이신동여잉자. ) 

 

["주"의 시조 '후직'은 이름이 '기'이다. 그의 모친은 '유태씨'의 딸로 '강원'이라고 불렸는데,

'강원'은 '제곡'의 정비였다. '강원'이 들에 나가서 거인의 발자국을 보았는데, 갑자기 마음이 즐거워지며

그것을 밟고 싶어졌다, 그가 발자국을 밟으니 마치 아기를 가진듯 배 안이 꿈틀거렸다. ]
 

居期而生子, 以為不祥, 棄之隘巷, 馬牛過者皆辟不踐;徙置之林中, 適會山林多人, 遷之; 

而棄渠中冰上, 飛鳥以其翼覆薦之.  姜原以為神, 遂收養長之.  初欲棄之, 因名曰棄.
(거기이생자, 이위불상, 기지애항, 마우과자개피불천 ; 사치지림중, 적회산림다인, 천지 ;
이기거중빙상, 비조이기익부천지.  강원이위신, 수수양장지. 초욕기지, 인명왈기.)


[시간이 지나 아들을 낳았는데 불길하게 생각되어 비좁은 골목길에 버렸으나 말이나 소가 지나가면서  

모두 피하고 밟지않았다 ;  다시 아이를 수풀 속에 옮겨놓으니, 마침 산속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다시 장소를 옮겨서 도랑의 얼음 위에 버렸으나 날짐승들이 날개로 아이를 덮고 깃을 깔아주었다.

그러자 '강원'은 신기하게 여겨 아이를 데려다가 잘 키웠다. 

처음에 아이를 버리려고 생각하였으므로 '기'라고 불렀다.]

 

棄為兒時, 屹如巨人之志.  其游戲, 好種樹麻,菽,麻,菽美.

及為成人, 遂好耕農, 相地之宜, 宜谷者稼穡焉, 民皆法則之.
(기위아시, 흘여거인지지.  기유희, 호종수마,숙,마,숙미. 
급위성인, 수호경넝, 상지지의, 의곡자가색언, 민개법즉지.


['기'는 어린시절 출중하여 큰 인물의 기개가 있는듯 하였다.
그는 물놀이를 하면서도 삼과 콩을 잘 심었는데 그가 심은 삼과 콩은 모두 잘 자랐다.
성인이 되자 더욱 농경에 힘써 토지의 특성을 살펴서 곡식을 심어야 할 곳에 농사를 지으니 

백성은 모두 본받았다. ]           

 

帝堯聞之, 舉棄為農師, 天下得其利, 有功. 

帝舜曰:“棄, 黎民始饑, 爾后稷播時百谷.” 封棄於邰, 號曰后稷, 別姓姬氏.
[제요문지, 거기위농사, 천하득기리, 유공.  

제순왈 : "기, 여민시기, 이후직파시백곡."  봉기어태, 호왈후직, 별성희씨.)


['요'임금이 소문을 듣고 '기'를 농사로 등용하자,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유익한 공을 세웠다.
'순'임금이 말하기를 : "'기'여 백성들이 굶주림에 처해 있으니 그대 '후직'은  곡식의 씨를 때맞추어  

파종하시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기'를 '태'에 봉하고 '후직'이라 칭했으며 따로 '희씨'성을 하사하였다.] 

 

后稷卒, 子不窋立.  不窋末年, 夏后氏政衰, 去稷不務, 不窋以失其官而奔戎狄之閒. 

不窋卒, 子鞠立.  鞠卒, 子公劉立.
(후직졸, 자불줄입.  불줄말년, 하후씨정쇠, 거직불무, 불줄이실기관이분융적지간.  

불줄졸, 자국립.  국졸, 자공유립. ) 

 

['후직'이 사망하자 아들 '부줄'이 이어받았다. '부줄'의 임기 말년에 하후씨의 정치가 쇠락해지자,

농관 직을 폐지하고 농사에 힘쓰지 않았으므로 '부줄'은 관직을 잃고 융적의 지역으로 달아났다.

'부줄'이 죽자 아들 '국'이 섰고, '국'이 죽자, 아들 '공류'가 그 자리를 맡았다. ]
            

公劉雖在戎狄之閒, 復修后稷之業, 務耕種, 行地宜, 自漆,沮度渭, 取材用, 行者有資,  

居者有畜積, 民賴其慶.  百姓懷之, 多徙而保歸焉. 

周道之興自此始, 故詩人歌樂思其德.  公劉卒, 子慶節立, 國於豳.       * 豳(나라이름: 빈). 

(공유수재융적지간, 복수후직지업, 무경종, 행지의, 자칠,저도위, 취재용, 행자유자,
거자유축적, 민뢰기경.  백성회지, 다사이보귀언.
도지흥자차치, 고시인가락사기덕.  공유졸, 자경절입, 국어빈.)


['공류'는 비록 융적의 지역에 살았지만 '후직'의 사업을 다시 익혀서 농경에 힘쓰고 사방으로 다니며  

토지의  특성을 살폈으며 "칠수, "저수"로 부터 "위수"를 건너서 목재를 채취하여 사용하였다,

그러자 떠돌아 다니는 사람에게도  재물이 있게 되었고 자기 고향에 머무는 사람에게는 재물이 쌓였으므로 

백성들은 '공류' 덕택에 잘 지내게 되었다. 백성들이 그를 그리워하여 많은 사람들이 옮겨와서 귀순하였다. 

주나라의 도는 이때부터 흥성하기 시작하여 시인들은  노래를 지어서 그의 덕을 사모하였다.

'공류'가 죽자 아들 '경절'이 뒤를 이어 도읍을 "빈"에 정하였다.]
 
慶節卒, 子皇仆立.  皇仆卒, 子差弗立.  差弗卒, 子毀隃立.  毀隃卒, 子公非立.

公非卒, 子高圉立. 高圉卒, 子亞圉立.  亞圉卒, 子公叔祖類立. 

公叔祖類卒, 子古公亶父立.  古公亶父復修后稷, 公劉之業, 積德行義, 國人皆戴之.
(경절졸, 자황복립.  황부졸, 자차불입.  차불졸, 자훼유립.  훼유졸, 자공비립. 
공비졸, 자고어립,   고어졸, 자아어립.  아어졸, 자공숙조류입.            

공숙조류졸, 자고공단주립. 고공단보복수후직,공류지업, 적덕행의, 국인개대지.)


['경절'이 죽고 아들 '황복'이 즉위하였다. '황복'이 죽고 아들 '차불'이 즉위하였고.
'차불'이 죽자 아들 '훼유'가 즉위하였으며, '훼유'가 죽자 아들 '공비'가 즉위하였다.
'공비'가 죽자 아들 '고어'가 즉위하였으며. '고어'가 죽자 아들 '아어'가 즉위하였다.
'아어'가 죽자 아들 '공숙조류'가 즉위하였으며. '공숙조류'가 죽자 아들 '고공단보'가 즉위하였다. 

'고공단보'가 '후직'과 '공류'의 사업을 다시 익히고 덕을 쌓고 의를 행하자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그를 받들었다.]
            

薰育戎狄攻之, 欲得財物, 予之.  已復攻, 欲得地與民.  民皆怒, 欲戰. 

古公曰:“有民立君, 將以利之.  今戎狄所為攻戰, 以吾地與民.  民之在我, 與其在彼, 何異.

民欲以我故戰, 殺人父子而君之, 予不忍為.”
(훈육융적공지. 욕득재물, 여지. 이부공, 욕득지여민.  민개노, 욕전.    

고공왈 : "유민입군, 장이리지. 금융적소위공전, 이오지여민.  민지재아, 여기재피, 하이. 
민욕이아고전, 살인부자이군지, 여불인위." )


[훈육 융적이 '고공단보'를 공격하여 재물을 요구하자 그들에게 재물을 내주었다.

이후 다시 공격하여 땅과 백성을 요구하자 백성들은 모두 분개하여 싸우고자 하였다.

그러자 '고공단보'가 말하기를 : "백성이 군주를 옹립하는 것은 자신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오.

지금 융적이 우리를 공격하는 까닭은 우리의 땅과 백성 때문이오.
백성이 나에게 속하든 그들에게 속하든 무슨 차이가 있겠소 ? 
백성들이 나를 위해서 싸우고자 한다면 이는 그들의 아버지와 아들을 죽여가며 그들의 군주가 되는 것이니, 

나는 차마 그렇게는 하지 못하겠소 "라고 하였다.] 
            

乃與私屬遂去豳, 度漆,沮, 踰梁山, 止於岐下.  豳人舉國扶老攜弱盡, 復歸古公於岐下. 

及他旁國聞古公仁, 亦多歸之.  於是古公乃貶戎狄之俗, 而營筑城郭室屋, 而邑別居之.

作五官有司。民皆歌樂之, 頌其德.
(내여사속수거빈, 도칠,저, 유량산, 지어기하. 빈인거국부로휴약진, 복귀고공어기하.
급타방국문고공인, 역다귀지.  어시고공내폄융적지속, 이영축성곽실옥, 이읍별거지.  
작오관유사.  민개가락지, 송기덕.)


[이에 사병들을 거느리고 "빈"을 떠나서 "칠수", "저수"를 건너고 "양산"을 넘어 "기산"아래에 정착하였다. 

"빈"에 있던 사람들은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이를 이끌고 다시 "기산"아래 '고공단보'에게 귀순하였다.

그 이웃나라의 사람들도 '고공단보'가 인자하다는 소문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귀순하였다.

이때 '고공단보'는 융적의 풍속을 개량하고 성곽과 가옥을 건축하고 읍을 나누어 그들을 살게 하였으며

오관유사를  설치하였다.그러자 백성들은 모두 노래하며 그 덕을 칭송하였다.]

 

古公有長子曰太伯, 次曰虞仲.  太姜生少子季歷, 季歷娶太任, 皆賢婦人, 生昌, 有圣瑞.
古公曰:“我世當有興者, 其在昌乎?”

長子太伯,虞仲知古公欲立季歷以傳昌, 乃二人亡如荊蠻, 文身斷髪, 以讓季歷.
(고공유장자왈태백, 차왈우중. 태강생소자계력, 계력취태임, 개현부인, 생창, 유성서.
고공왈 : "아세당유흥자, 기재창호 ? "
장자태백,우중지고공욕입계력이전창, 내이인망여형만, 무신단발, 이양계력.)


['고공단보'에게는 장남인 '태백'과 차남인 '우중'이 있었다.  그의 아내 '태강'이 낳은 막내아들 '계력'은 

'태임'을 아내로 맞이하였는데 '태강'과 '태임'은 모두 어진 부인이었으며 '태임'이 '창'을 낳았을때

성스러운 길조가 있었다. '고공단보'가 말하기를 : "나의 시대에 큰 사업을 일으킬 사람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말은 '창'에게 해당되는 것이아니겠는가 ? "라고 하였다.
장자 '태백'과 '우중'은 '고공단보'가 '계력'을 옹립하여 '창'에게 왕위를 계승시키려는 것을 알고는 둘이서

"형만"으로 달아나 문신을 하고 머리털을 자르고서 왕위를 '계력'에게 양보하였다.]

 

古公卒, 季歷立, 是為公季.  公季修古公遺道, 篤於行義, 諸侯順之. 

公季卒, 子昌立, 是為西伯.  西伯曰文王, 遵后稷,公劉之業, 則古公, 公季之法,

篤仁, 敬老, 慈少.  禮下賢者, 日中不暇食以待士, 士以此多歸之.
(고공졸, 계력입, 시위공계.  공계수고공유도, 독어행의, 제후순지.

공계졸, 자창립, 시위서백.  서백왈문왕, 준후직,공류지업, 즉고공, 공계지법,  

독인, 경노, 자소.   예하현자, 일중불가식이대사, 사이차다귀지. )


['고공단보'가 죽고 '계력'이 즉위 하였는데 그가 바로 '공계'이다.
'공계'는 '고공단보'가 남긴 정도를 잘 닦고 성실하게  의를 행하였으므로 제후들이 그에게 순종하였다.

'공계'가 죽자 아들 '창'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서백'이다. '서백'은 후에 '문왕'이라 불렸으며,

'후직'과 '공류'의 사업을 따르고 '고공단보'와 '공계'의 법도를 본받아 오로지 어진 정치를 행하고

늙은이를 공경하며 어린이를 사랑하였다. 그가 어진 사람에게는 예의와 겸손으로 대하고 하루종일

재주있는 선비를 접대하기에 식사할 겨를도 없었으므로 재사들은 대부분 '서백'에게 몰려 들었다.] 

伯夷,叔齊在孤竹, 聞西伯善養老, 盍往歸之. 太顛, 閎夭, 散宜生, 鬻子, 辛甲大夫之徒皆往歸之. 

崇侯虎譖西伯於殷紂曰:“西伯積善累德, 諸侯皆向之, 將不利於帝.”  帝紂乃囚西伯於羑里. 

(백이,숙제재고죽, 문서백선양노, 합왕귀지.  태전, 굉요, 산의생, 육자,신갑대부지도개왕귀지.

숭후호참서백어은주왈 : "서백적선루덕, 제후개향지, 장불리어제."  제주내수서백어유리.)   

['백이'와 '숙제'도 "고죽"에서 '서백'이 노인을 우대한다는 소문을 듣고 가서 '서백'을 따랐다.
'태전', '굉요', '산의생', '육자', '신갑'대부 등이 모두 가서 그를 따랐다.

'숭후호'는 은나라 '주'에게 '서백'을 모함하기를 : "'서백'이 선과 덕을 쌓으므로 제후들이 모두 그에게 기울어지니

장차 임금께 불리할 것입니다 "라고 하자.'주'는 마침내 서백을 유리에 가두었다.] 

   

閎夭之徒患之.  乃求有莘氏美女, 驪戎之文馬, 有熊九駟, 他奇怪物, 因殷嬖臣費仲而獻之紂. 

紂大說, 曰:“此一物足以釋西伯, 況其多乎 !”  乃赦西伯, 賜之弓矢斧鉞, 使西伯得征伐. 

曰:“譖西伯者, 崇侯虎也.” 西伯乃獻洛西之地, 以請紂去炮格之刑.  紂許之.
(굉요지도환지.  내구유신씨미녀, 여융지문마, 유웅구사, 타기괴물, 인은폐신비중이헌지주. 
주대열, 왈 : "차일물족이석서백, 황기다호 !"  내사서백, 사지궁시부월, 사서백득정벌, 
왈 : "참서백자, 숭의호야." 서백내헌락서지지, 이청주거포격지형.  주허지.)
 

 

['굉요'등이 이 일을 걱정하여 '유신씨'의 미녀, '여융'의 문마, '유웅'의 구사, 등 다른 여러 특산물들과 함께

'주'의 총애를 받는 '비중'을 통하여 '주'에게 바쳤다.             
'주'가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 " 이 한가지 물건만으로도 '서백'을 석방시키기에 충분한데 
하물며 이토록 많다니!"

"라고 하였다. 이에 '서백'을 사면시키고 그에게 궁시(활과 화살)와 부월(작은 도끼와 큰 도끼)을 하사하여  

'서백'에게 주변 제후국을 정벌할 수 있는 권한을 주었다.  

그리고 말하기를 : "'서백'을 비방한 자는 '승후호'이다" 라고 하였다.

'서백'이 "낙하" 서쪽의 땅을 바치며 '주'에게 포격형을 없애자고 청원을 하자 '주'는 그것을 허락하였다.]

西伯陰行善, 諸侯皆來決平.  於是虞,芮之人有獄不能決, 乃如周. 入界, 耕者皆讓畔, 民俗皆讓長.  

虞,芮之人未見西伯, 皆慚, 相謂曰:“吾所爭, 周人所恥, 何往為, 只取辱耳.” 遂還, 俱讓而去.

諸侯聞之, 曰“西伯蓋受命之君”.
(서백음행선, 제후개래결평. 어시우,예지인유옥불능결, 내여주. 입계, 경자개양반, 민속개양장.

우,예지인미견서백, 개참, 상위왈 : " 오소쟁, 주인소치, 하왕위, 지취욕이." 수환, 구양이거.
제후문지, 왈"서백개수명지군.")

 

['서백'이 남몰래 착한일을 행함으로 제후들은 모두 그에게 와서 공평한 판결을 청하였다.

이때 "우"와 "예"의 사람들에게 송사가 있었는데 양자가 해결하지 못하자 주나라로 찾아갔다.

그들이 주나라 경계에 들어서서 보니 농부들은 서로 밭의 경계를 양보하고,  

백성들의 풍속은 모두 연장자에게 양보하는 것이었다.

"우","예"의 사람들은 '서백'을 만나기도 전에 부끄러워하며 서로 말하기를 :
"우리처럼 싸우는 것은 주나라 사람들이 부끄러워하는 바이니, 가서 무엇하겠는가 ? 
부끄럽게만 될텐데 "라며 그냥 되돌아가서 서로 양보하고 헤어졌다. 
제후들이 이 소문을 듣고 말하기를 "'서백'은 아마도 천명을 받은 군주인가 보다"라고 하였다.]

明年, 伐犬戎.  明年, 伐密須.  明年敗, 耆國.  殷之祖伊聞之, 懼, 以告帝紂.

紂曰:“不有天命乎? 是何能為!”   明年, 伐邘.  明年, 伐崇侯虎. 

而作豐邑, 自岐下而徙都豐.  明年, 西伯崩, 太子發立, 是為武王.      * 邘(땅이름:우).
(명년, 벌견융. 명년, 벌밀수.   명년패, 기국.  은지조이문지, 구, 이고제주. 

주왈 : "불유천명호 ? 시하능위 ! "  명년, 벌우. 명년, 벌숭후호.
이작풍읍, 자기하이사도풍.   명년, 서백붕, 태자발입, 시위무왕.)


[이듬해 '서백'은 "견융"을 정벌하고, 그 다음해 "밀수"를 정벌하였다.

다음해에는 "기국"을 쳐서 무찔렀다. 은의 '조이'가 이러한 소식을 듣자 두려워 '주'에게 고하였다.  

'주'가 말하기를 : "내게 천명이 있지 않은가 ?  그가 무엇을 할수 있겠는가 !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다.
다음해 '서백'은 "우"를 정벌하였다.  그 다음해에는 '숭후호'를 정벌하고 "풍읍"을 건설하여 "기산" 아래에서

이곳으로 천도하였다.  다음해 '서백'이 사망하고 태자 '발'이 즉위하였으니 이가 바로 '무왕'이다.] 

 

西伯蓋即位五十年.  其囚羑里, 蓋益易之八卦為六十四卦. 

詩人道西伯, 蓋受命之年稱王而斷虞芮之訟.

後十年而崩, 謚為文王.  改法度, 制正朔矣.  追尊古公為太王, 公季為王季:蓋王瑞自太王.

(서백개즉위오십년. 기수유리, 개익역지팔괴위육십사괘.  

시인도서백, 개수명지년칭왕이단우예지송.

후십년이붕, 익위문왕. 개법도, 제정삭의.  추존고공위태왕, 공계위왕계 : 개왕서자태왕흥. )

 

['서백'은 50년간 왕위에 있었다. 아마도 그가 유리에 갇혀 있을때「역경」의 8괘를 더하여 64괘를 만든 것 같다. 

시인들은 '서백'이 천명을 받아 왕으로 칭해진 때는 바로 "우"와 "예"의 송사를 해결한 해라고 말하였다.

그후 10년이 지나서 그가 붕어하자 시호를 '문왕'이라고 하였다.

'서백'은 법도를 개정하고 정삭(정월 초하루)을 제정하였다.그는 '고공단보'를 추존하여 '태왕'이라 하였고 

'공계'를 높여 '왕계'라고 하였는데 : 이는 대개 周의 왕업이 조부인 '고공단보'로부터 흥했기 때문이다. ] 

武王即位, 太公望為師, 周公旦為輔, 召公,畢公之徒左右王, 師修文王緒業.

九年,武王上祭于畢.  東觀兵, 至于盟津.  為文王木主, 載以車, 中軍.

武王自稱太子發, 言奉文王以伐, 不敢自專.  乃告司馬,司徒,司空,諸節:“齊栗, 信哉! 

予無知, 以先祖有德臣, 小子受先功, 畢立賞罰, 以定其功.”
(무왕즉위, 태공망위사, 주공단위보, 소공,필공지도좌우왕, 사수문왕서업.

구년, 무왕상제우필.  동관병, 지우맹진.   위문왕목주, 재이거, 중군. 
무왕자칭태자발, 언봉문왕이벌, 불감자전.   내고사마,사도,사공,제절 : "제율, 신재 !
여무지, 이선조유덕신, 소자수선공, 필입상벌, 이정기공.")

['무왕'이 즉위하자 '태공망'을 스승으로 삼고 '주공'을 보로 임명하였으며,

'소공'과 '필공'은 왕을 보좌하며 '문왕'의 위업을 배우고 확대하게 하였다.]

9년, '무왕'이 "필"에서 제사를 지내고 동쪽으로 가서 군대를 사열하고 "맹진"에 이르렀다.   

그는 '문왕'의 목주를 만들어 중군의 수레에 실었다. '무왕'은 자신을 태자 '발'이라 칭하고서
'문왕'의 명을 받들어 정벌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감히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았다.

'무왕'은 '사마','사도','사공','제절'에게 : "우리 모두 정중하고 조심스럽게 일 합시다.

성실하게 노력합시다 !  나는 무지하지만 선조께서 덕이 있으시어 미천한 이몸이 선조의 공적을 받았소.   

상벌제도를 바르게 세워 공적을 보장하겠소. "라고 말하였다.] 


遂興師.  師尚父號曰:“總爾眾庶, 與爾舟楫, 後至者斬.”  

武王渡河, 中流, 白魚躍入王舟中, 武王俯取以祭.

(수흥사.  사상보호왈 : "총이중서, 여이주즙, 후지자참." 

무왕도하, 중류, 백어약입왕주중, 무왕부취이제. ) 

 

[드디어 군사를 일으켰는데, 군사인 '상보'가 호령하기를 : 그대들의 사병을 모아 배를 띄어 출동하시오,

나중에 도착하는 자는 목을 벨 것이오."라고 하였다. '무왕'이 강을 건너서 중류에 이르자,

흰 물고기가 왕의 배로 튀어 오르자, '무왕'은 몸을 굽혀서 집어 들어 제사를 올렸다. 


既渡, 有火自上復于下, 至于王屋, 流為烏, 其色赤, 其聲魄云. 

是時, 諸侯不期而會盟津者八百諸侯. 諸侯皆曰:“紂可伐矣.”  

” 武王曰:“女未知天命, 未可也.” 乃還師歸.
(기도, 유화자상부우하, 지우왕옥, 류이아, 기색적, 기성백운. 

시시, 제후불기이회맹진자팔백제후.  제후새왈 : " 주가벌의. "

무왕왈 : "여미여천명, 미가야." 내환사귀. )


[강을 이미 다 건너자 불덩이가 하늘에서 떨어지더니 왕이 머무는 지붕에 이르렀을때 까마귀로 변했는데

이것들은 붉은 색이었고 까악 까악하고 울었다. 이때 기일을 정하지 않았어도 "맹진"에 모인 제후는 800명 이었다. 

제후들이 모두 : "'주'는 정벌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했으나,

'무왕'은 : "그대들은 아직 천명을 모르니 정벌할 수 없소 "라고 말하고는, 병사를 이끌고 되돌아갔다.]

 

居二年, 聞紂昏亂暴虐滋甚, 殺王子比干, 囚箕子.  太師疵, 少師彊抱其樂器而奔周. 
於是武王遍告諸侯曰:“殷有重罪, 不可以不畢伐.”

乃遵文王, 遂率戎車三百乘, 虎賁三千人, 甲士四萬五千人, 以東伐紂.
(거이년, 문주혼란폭학자심, 살왕자비간, 수기자. 태사자, 소사강포기악기이분주.
어시무왕편고제후왈 : "은유중죄, 불가이불필벌."  

내준문왕, 수송융거삼백승, 호분삼천인, 갑사사만오천인, 이동벌주.)

[2년이 지나자, '주'는 혼란스러움과 포악함이 더욱 심해져서 왕자 '비간'을 죽이고 '기자'를 감금했다는 

소문이 들렸다. 그러자 태사 '자'와 소사 '강'은 은나라의 악기를 품고 주나라로 달아났다.  

'무왕'은 제후들에게 말하기를 : ""은"의 죄가 무거우니 이제는 어서 정벌하지 않을 수가 없소이다" 라고 하였다. 

이에 '문왕'이 남긴 뜻을 받들어 융거 300대와 용사 3,000명, 갑사 45,000명을 이끌고 동쪽으로 가서

'주'를 정벌하였다.] 
            

十一年十二月戊午, 師畢渡盟津, 諸侯咸會.  曰:“孳孳無怠!” 武王乃作太誓, 告于眾庶:
“今殷王紂乃用其婦人之言, 自絕于天, 毀壞其三正, 離逖其王父母弟, 乃斷棄其先祖之樂,  

乃為淫聲, 用變亂正聲, 怡說婦人.  故今予發維共行天罰.  勉哉夫子, 不可再, 不可三!”
(십일년십이월무오, 사필도맹진, 제후함회. 왈 : " 자자무태 ! " 무왕내작태서, 고우중서 :
"금은왕주내용기부인지언, 자절우천, 훼괴기삼정, 이적기왕부모제, 내단기기선조지락,

내위음성, 용변난정성, 이열부인.  고금여발유공행천벌. 면재부자, 불가재, 불가삼 ! ")


[11년 12월 무오일, 군사들이 "맹진"을 넘자, 제후들이 전부 모였다.  

이때 '무왕'이 말하기를: " 부지런히 힘쓰고 게으름 피우지 말라 ! "
'무왕'은 이내 「태서」를 지어 많은 병사들에게 말하기를 : 지금 은나라의 왕 '주'는 단지 자기 부인의 말만 듣고

스스로 천명을 끊었으며 삼정을 훼손하고 왕과 부모와 형제를 멀리했으며, 마침내 선조의 음악을 저버리고 

음란한 노래를 만들어 올바른 소리를 어지럽혀 자기 부인만 기쁘게 하였소.

그리하여 나 '발'은 삼가 천벌을 집행하려 하오. 그대들이여 노력합시다,  

두번, 세번 다시 행하지 않도록 ! "라고 하였다.] 

 

二月甲子昧爽, 武王朝至于商郊牧野, 乃誓.  武王左杖黃鉞, 右秉白旄, 以麾.

曰:“遠矣西土之人!”    武王曰:“嗟!我有國冢君, 司徒, 司馬, 司空, 亞旅, 師氏,  

千夫長, 百夫長, 及庸, 蜀, 羌, 髳, 微, 纑, 彭, 濮人, 稱爾戈, 比爾干, 立爾矛, 予其誓.” 
(이월갑자매상, 무왕조지우상교목야, 내서. 무왕좌장황월, 우병백모,  이휘.   

왈 : "원이서토지인 ! "  무왕왈 : "차 ! 아유국총군, 사도, 사마, 사공, 아여, 사씨,
천부장, 백부장,  급용, 촉, 강, 몽. 미, 노, 팽, 복인, 칭이과, 비이간, 입이모, 여기서." ) 


[2월 갑자일 먼동이 틀 무렵, '무왕'은 아침 일찍 상나라 교외의 "목야"에 이르러 맹서하였다.

'무왕'은 왼손에 황색 도끼를 잡고 오른손에는 백색의 깃대를 들고 휘두르며 말하기를 :  

"멀리서 와 주었소, 서토의 사람들이여 ! "  "자 ! 나의 제후들이여 !사도''사마''사공''아여''사씨' '천부장' '백부장',

그리고 "용""촉""강""몽""미""노""팽""복"의 사람들이여 그대들의 창을 높이 들고 방패를 옆으로 견주고

창을 치켜드시오,  내가 맹서 하겠소 "라고 하였다.]
            

王曰:「古人有言 『牝雞無晨.  牝雞之晨, 惟家之索』.                   * 牝(암컷:빈).
今殷王紂維婦人言是用, 自棄其先祖肆祀不答, 昏棄其家國, 遺其王父母弟不用,
乃維四方之多罪逋逃是崇是長, 是信是使, 俾暴虐于百姓, 以姦軌于商國.  今予發維共行天之罰.

(왕왈 : "고인유언 '빈계무신. 빈계지신, 유가지색' .
금은왕주유부인언시용, 자기기선조사사부답, 혼기기가국, 유기왕부모제불용,
내유사방지다죄포도시숭시장, 시신시사, 비폭학우백성, 이간궤우상국.  금여발유공행천지벌.

 

['무왕'이 말하기를 : "옛말에 '암탉은 새벽에 울지 않으니, 암탉이 새벽에 울면 집안이 망한다'라고 하였소,

지금 은왕 '주'는 오직 부인의 말만 듣고 스스로 선조께 지내는 제사를 그만두고 나라를 어지럽혔소,

또한 친족을 등용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죄가 많아 도망쳐온 사람들을 존중하고 신임하여 등용하니,

그들은 백성들을 포악하게 대하고 상나라에서 온갖 악행을 다 저질렀소,

지금 나 '발'은 오직 하늘의 징벌을 그대들과 함께 행하겠소.

日之事, 不過六步七步, 乃止齊焉, 夫子勉哉! 不過於四伐五伐六伐七伐, 乃止齊焉,  勉哉夫子!  

尚桓桓, 如虎如羆, 如豺如離, 于商郊, 不御克奔, 以役西土, 勉哉夫子!

爾所不勉, 其于爾身有戮.」 誓已, 諸侯兵會者車四千乘, 陳師牧野.

(금일지사, 불과육보칠보, 내지제언, 부자면재 !  불과어사벌오벌육벌칠벌, 내지제언, 면재부자! 

상환환, 여호여비, 여시여리, 우상교, 불어극분, 이역서토, 면재부자 !

이소불면, 기우이신유육. 서이, 제후병회자거사천승, 진사목야.)

 

[오늘 싸움에서는 여섯, 일곱 걸음을  나가면 곧 멈추어 대열을 맞추어야 하오,  

대들은 이 군령을 지키도록 노력하시오 !  

네 번, 다섯 번, 여섯 번, 일곱 번, 공격하고 곧 멈추어 맞추어야 하오, 이 명령을 지키도록 노력하시오 !  

더욱이 굳세기가 호랑이 같고, 곰 같고, 승냥이 같고 교룡(이무기)같아야 하오,

상나라의 교외에서 투항하는 자는 거절하거나 죽이지 말고, 그들로 하여금 "서토"를 위해서 힘쓰게 하시오, 

노력해 주시오 ! 그대들이 힘쓰지 않는다면 그대들이 살육당할 것이오 "라고 하였다.

선서가 끝나자, 집결한 제후들은 전거가 4,000대 였고, 그들의 군사들은 "목야"에 진을 쳤다.]   

 

帝紂聞武王來, 亦發兵七十萬人距武王.  武王使師尚父與百夫致師, 以大卒馳帝紂師.

紂師雖眾, 皆無戰之心, 心欲武王亟入. 紂師皆倒兵以戰, 以開武王.

武王馳之, 紂兵皆崩畔紂.  紂走, 反入登于鹿臺之上, 蒙衣其殊玉, 自燔于火而死.
(제주문무왕래, 역발병칠십만인거무왕, 무왕사사상보여백부치사, 이대졸치제주사.   

주사수중, 개무전지심, 심욕무왕극입.  주사개도병이전, 이개무왕.   

무왕치지, 주병개븡반주.  주주, 반입등우녹대지상, 몽의기수옥, 자번우화이사.)

 

['주'는 '무왕'이 왔다는 소문을 듣고, 역시 70만 명의 군사를 파견하여 '무왕'에 대항하게 하였다.

'무왕'은 '사상보'에게 100명의 장정들을 이끌고 가서 싸움을 걸게 하고 본대를 '주'의 진영으로 돌격하게 하였다.

'주'의 군대는 비록 수는 많았지만 모두 싸울 마음이 없었으며, '무왕'이 빨리 쳐들어오기를 바라고 있었다.

'주'의 군사들은 모두 싸움에서 뒤로 물러서 '무왕'의 군대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무왕'이 돌격하자 '주'의 병사들은 '주'를 배반하였다. '주'는 도망쳐 "녹대" 위에 올라 보석이 박힌 옷을 

뒤집어 쓰고 불 속으로 뛰어들어 타 죽었다.] 


武王持大白旗以麾諸侯, 諸侯畢拜武王, 武王乃揖諸侯, 諸侯畢從. 武王至商國, 商國百姓咸待於郊.

於是武王使群臣告語商百姓曰:“上天降休!” 商人皆再拜稽首, 武王亦答拜。   

遂入, 至紂死所。武王自射之, 三發而後下車, 以輕劍擊之, 以黃鉞斬紂頭, 縣大白之旗。
(무왕지대백기이휘제후, 제후필배무왕. 무왕내읍제후, 제후필종.  무왕지상국, 상국백성함지어교.

어시무왕사군신고어상백성왈 : "상천강휴 ! " 상인개재배계수, 무왕역답배.
수입, 지주사소.  무왕자사지, 삼발이후하거, 이경검격지, 이황월참주두, 현대백지기. )
 

 

['무왕'이 커다란 백기를 들고 제후들을 지휘하니 제후들은 '무왕'에게  절을 하였고 '무왕'이 제후들에게 읍을 하자,

모두 그를 따랐다. '무왕'이 상나라의 도성에 이르자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어 '무왕'은 군신들로 하여금 "상"의 백성들에게 : "하늘이 휴식을 내려 주었도다 ! "라고 말하게 하였다.

상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재배하며 머리를 땅에 조아리자 '무왕' 역시 답례하였다.

'무왕'은 성으로 들어가서 '주'가 죽은 장소에 이르러 직접 죽은 '주'의 시신을 향해 화살 세발을 쏜 후, 

마차에서 내려서 경검으로 시신을 찌르고 황색 도끼로 머리를 베어 커다란 백기에 매달았다. ]
 

已而至紂之嬖妾二女, 二女皆經自殺.

武王又射三發, 擊以劍, 斬以玄鉞, 縣其頭小白之旗.  武王已乃出復軍.
(이이지주지폐첩이녀, 이녀개경자살.  

무왕우사삼발, 격이검, 참이현월, 현기두소백지기. 무왕이내출부군.)


[또 '주'의 애첩인 두 여자를 찾아가니 그녀들은 이미 목을 매어 자살한 뒤였다.  

'무왕'은 또 화살 세발을 쏘고, 검으로 찌르고, 검은 도끼로 목을 베어 작은 백기에 매달았다.  

그리고서 '무왕'은 성을 나와 군중으로 돌아갔다.] 

 

其明日, 除道, 修社及商紂宮.  及期, 百夫荷罕旗以先驅.

武王弟叔振鐸奉陳常車, 周公旦把大鉞, 畢公把小鉞, 以夾武王.
(기명일, 제도, 수사급상주궁. 급기, 백부하한기이선구.  

무왕제숙진탁봉진상거,  주공단파대월, 필공파소월, 이래무왕.)

 

[이튿날, '무왕'은 도로를 정비하고 상나라의 사당과 '주'궁을 수리하게 하였다.

마침내 때가 되자 100명의 용사들이 기를 들고 앞서서 나갔고, '무왕'의 동생 '숙진탁'은 의장용 상거를 늘어 세우고,

'주공단'은 큰 도끼를 쥐고 '필공'은 작은 도끼를 쥐고서 '무왕'의 좌우에 섰다.]
 

散宜生,太顛, 閎夭皆執劍以衛武王.  既入, 立于社南大卒之左, 左右畢從.

毛叔鄭奉明水, 衛康叔封布茲, 召公奭贊采, 師尚父牽牲.

(산의생, 태전,굉요개집검이위무왕.  기입, 입우사남대졸지좌, 좌우필종.
모숙정봉명수, 위경숙봉포자, 소공석찬채, 사상보견생. )


['산의생', '태전', '굉요'는 모두 검을 들고 '무왕'을 호위하였다.

'무왕'이 성에 들어가서 사당 남쪽, 대 부대의 좌측에 서니 좌우 모두 그 뒤를 따랐다.

'모숙정'은 명수를 받쳐들고, '위강숙'은 자리를 깔았고, '소공석'은 예물을 드렸고,

'사상보'는 제물로 쓸 가축을 끌고 왔다.]
         

尹佚筴祝曰 :“殷之末孫季紂, 殄廢先王明德, 侮蔑神祇不祀, 昏暴商邑百姓, 其章顯聞于天皇上帝 ".

於是武王再拜稽首, 曰:“膺更大命, 革殷, 受天明命.” 武王又再拜稽首, 乃出.    膺(가슴:응). 
(윤일협축왈 :"은지말손계주, 진폐선왕명덕, 모멸신기불사, 혼폭상읍뱃성, 기장현문우천황상제 ".   

어시무왕재배계수, 왈 : "응경대명, 혁은, 수천명명." 무왕우재배걔수, 내출. ) 

 

['윤일'이 축객들 틈에 끼어서 말하기를 : "은의 마지막 자손 '주'는 선왕의 밝은 덕을 모조리 없애버리고  

신령을 모욕하여 제사를 지내지 않았으며 "상"의 백성을 혼미하고 난폭하게 다루었으니  

그 죄악을 상제께 명백히 알리나이다"라고 하였다.
'무왕'은 다시 재배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기를 :"신은 왕조를 바꾸라는 중대한 천명을 받아 은나라를

무너뜨렸으니 하늘의 영명하신 명을 받겠나이다 "라고 하고는, 마침내 떠났다.] 

 

封商紂子祿父殷之餘民.  武王為殷初定未集, 乃使其弟管叔鮮, 蔡叔度相祿父治殷.

已而命召公釋箕子之囚.  命畢公釋百姓之囚, 表商容之閭.
(봉상주자녹보은지여민. 무왕위은초정미집, 내사기제관숙선, 채숙탁상녹보치은.  

이이명소공석기자지수.   명필공석백성지수, 표상용지여. ) 

 

['무왕'은 상나라 '주'의 아들 '녹보'에게 "은"의 남은 백성을 붙혀 주었다.

또 '무왕'은 "은"이 막 평정되어 아직 안정되지 못하였으므로 자신의 동생 '관숙선'과 '채숙탁'에게 '녹보'를 도와서

은나라를 다스리게 하였다. 이어 '소공'에게 '기자'를 석방하도록 명하고,  

'필공'에게 감옥에 갇혀있는 백성들을 석방시키도록 명하였으며, '상용'이 살던 마을을 표창하였다. ] 
 

命南宮括散鹿臺之財, 發鉅橋之粟, 以振貧弱萌隸. 命南宮括,史佚展九鼎保玉. 命閎夭封比干之墓.

命宗祝享祠于軍.  乃罷兵西歸.  行狩, 記政事, 作武成.  封諸侯, 班賜宗彝, 作分殷之器物. 

(명남궁괄산녹대지재, 발거교지속, 이진빈약맹례. 명남궁괄,사일전구정보옥. 명굉요봉비간지묘.   

명종축향사우군.  내파병서귀.   행수, 기정사,  작무성. 봉제후, 반사종이, 작분은지기물.)


['남궁괄'에게 "녹대"의 재물과 "거교"의 곡식을 풀어서 가난하고 약한 백성들을 구제하도록 명하였고,  

'남궁괄'과 '사일'에게 구정과 보옥을 전시하도록 명하였으며, '굉요'에게 '비간'의 묘에 봉분을 하도록 명하였다.

'종축'에게는 군영에서 향사 하도록 명하였다.  마침내 전쟁이 끝나고 "서토"로 철수하였다.  

길을 따라서 순수하며 정사를 기록하여 「무성」을 지었다.

제후를 봉하고 종이(제향에 쓰는 술그릇)를 골고루 나누어 하사하고 「분은지기물」을 지었다.]
            

武王追思先圣王, 乃褒封神農之後於焦, 黃帝之後於祝, 帝堯之後於薊, 帝舜之後於陳, 

大禹之後於杞.  於是封功臣謀士, 而師尚父為首封.  封尚父於營丘, 曰齊.  

封弟周公旦於曲阜, 曰魯.  封召公奭於燕.  封弟叔鮮於管, 弟叔度於蔡.  餘各以次受封.  
(무왕추사선성왕, 내포봉신농지후어초, 황제지후어축, 제요지후어계, 제순지후어진,   

대우지후어기.   어시봉공신모사, 이사상보위수봉.  봉상보어영구, 왈제.
봉제주공단어곡부, 왈노.  봉소공석어연.   봉제숙선어관, 제숙도어채.  여명이차수봉.)


['무왕'은 선대 '성왕'을 추념하여, 마침내 '신농'의 후손을 "초"에, '황제'의 후손을 "축"에, 

'요'임금의 후손을,"계"에, '순'임금의 후손을 "진"에, '우'의 후손을 "기"에 각각 포상하여 봉하였다.  

또한 공신, 모사를 봉했는데 '사상보'가 가장 먼저 봉해졌다.
'사상보'를 "영구"에 봉하고 "제"라고 하였으며, 동생 '주공단'을 "곡부"에 봉하고 "노"라고 하였다.   

소공 '석'을 "연"에 봉했으며 동생 '숙선'을 "관"에 봉하고, 동생 '숙탁'을 "채"에 봉하였다.  

나머지도 차례에 따라서 봉해졌다.] 


武王徵九牧之君, 登豳之阜, 以望商邑. 武王至于周, 自夜不寐. 周公旦即王所, 曰:“曷為不寐?” 

王曰:"告女:維天不饗殷, 自發未生於今六十年, 麋鹿在牧, 蜚鴻滿野。天不享殷, 乃今有成. 
維天建殷, 其登名民三百六十夫, 不顯亦不賓滅, 以至今。我未定天保, 何暇寐!”
(무왕징구목지군, 등빈지부, 이망상읍. 무왕지우주, 자야불매. 주공단즉왕소, 왈 : "갈위불매 ?"

왕왈 : "고녀 : 유천하향은, 자발미생어금육십년, 미록재목, 비홍만야. 천하향은, 내금유성.
유천건은, 기등명민삼백육십부, 불현역불빈멸, 이지금.  아미정천보, 하가매 ! ")

 

['무왕'은 9목의 군주를 소집하고 "빈"의 언덕에 올라 상나라 도읍을 바라보았다.

'무왕'은 주나라에 돌아와서도 밤늦도록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주공 '단'이 왕의 처소에 와서 묻기를 : "어찌하여 잠들지 못하십니까 ? "라고 하였다.]

'무왕'이 대답하기를 : "그대에게 말하겠소 : 하늘이 은나라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은나라를 버리셨으며,

나 '발'이 태어나기 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60년간, 고라니와 사슴이 들에 있고, 쌕새기가 들판에 가득하였소. 

하늘이 은나라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어 마침내 내가 오늘날과 같은 성공을 있게 하였소.

은나라가 하늘의 명을 받아 막 건립되었을때 등용된 현인이 360명이었으나 그 업적은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았고 

또한 없어지지도 않은 채 오늘에 이르렀소. 하늘이 주나라를 보우하시는지 아닌지 아직 확신할 수 없는데, 

어찌 잠 잘 겨를이 있겠소 ! "라고 하였다.] 

王曰:"定天保, 依天室, 悉求夫惡, 貶從殷王受.  日夜勞來定我西土, 我維顯服, 及德方明.   

自洛汭延于伊汭, 居易毋固, 其有夏之居. 我南望三涂, 北望岳鄙, 顧詹有河, 粵詹雒,伊, 毋遠天室.”

(왕왈 : "정천보, 의천실, 실구부악, 폄종은왕수,  일야노래정아서토, 아유현복, 급덕방명. 

자락예연우이예, 거역무고, 기유하지거. 아남망삼도, 북망악비, 고첨유하, 월첨낙,이, 무원천실.")  

 

['무왕'이 계속하여 말하기를 : "하늘이 반드시 주나라를 보우하여 천하의 사람들이 천실을 따르게 하리라, 

은왕 '주'를 정벌했듯이 모든 악인을 찾아내어 벌할 것이오. 밤낮으로 노력하여 나의 서쪽 땅을 안정시키고

일을 공정히 처리하여 그 덕을 사방에 비추겠소. "낙수"에서 "이수"까지는 지세가 평탄하고 험하지 않아  

하나라가 정착한 곳이오, 남으로 "삼도"를 바라보고 북으로 "악" 주변을 바라보며 황하를 살펴보고

다시 "낙수"와 "이수" 지역을 바라보니 모두 도읍을 세울만한 좋은 곳이라 멀리 내버려만 둘 수가 없소 "]

營周居于雒邑而後去.  縱馬於華山之陽, 放牛於桃林之虛;偃干戈, 振兵釋旅:示天下不復用也.

武王已克殷, 後二年, 問箕子殷所以亡. 箕子不忍言殷惡, 以存亡國宜告. 武王亦醜, 故問以天道.

(영주거우낙읍이후거. 종마어화산지양, 방우어도림지허 ; 언간과, 진병석여 : 시천하불복용야.

무왕이극은, 후이년, 문기자은소이망. 기자불인언은악, 이존망국의고. 무왕역추, 고문이천도.)


[이에 '무왕'은 "낙읍"에 周나라의 도읍을 세운후 떠났다.

"화산"의 남쪽에 말을 방목하고 "도림'의 들판에 소를 방목하며 무기와 병사를 거두어들이고 군대를 해산하여 : 

다시는 무기와 병사를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온 천하에 알렸다.

'무왕'은 은나라를 점령한 2년 후에 '기자'에게 은나라가 망한 이유를 물었다.  

'기자'는 차마 은나라의 죄악을 낱낱히 말하지 못해 그저 국가 존망의 도리를 고했고,  

'무왕' 역시 난처하여 화제를 돌려서 천도에 대해서 물었다.]

 

武王病.  天下未集, 群公懼, 穆卜, 周公乃祓齋, 自為質, 欲代武王, 武王有瘳.

後而崩, 太子誦代立, 是為成王.                                *祓(푸닥거리할:불).
(무왕병. 천하미집, 군공구, 목복, 주공내불재, 자위질. 욕대무왕, 무왕유추.   

후이붕, 태자송대립, 시위성왕.) 

                                 * 瘳(나을:추).
['무왕'이 병이 들었다. 천하가 아직 안정되지 않아 모든 대신들이 두려운 나머지 경건히 점을 쳤다,  

'주공'이 이에 목욕재계를 하고 자신이 '무왕' 대신 죽거나 병들겠다고 제사를 드리며 빌자, '무왕'의 병세가

잠시 호전되었다. 그후 '무왕'이 붕어하고 태자 '송'이 대를 이어서 즉위했으니, 그가 바로 '성왕'이다.] 

成王少, 周初定天下, 周公恐諸侯畔周, 公乃攝行政當國.

管叔, 蔡叔群弟疑周公, 與武庚作亂, 畔周.  周公奉成王命, 伐誅武庚,管叔,放蔡叔. 

以微子開代殷后, 國於宋.  頗收殷餘民, 以封武王少弟封為衛康叔.
(성왕소, 주초정천하, 주공공제후반주, 공내섭행정당국.   

관숙, 채숙군제의주공, 여무강작난, 반주.  주공봉성왕명, 벌주무경,관숙,방채숙.
이미자개대은후, 국어송.  파수은여민, 이봉무왕소제봉위위강숙.)


['성왕'이 나이가 어리고 주나라가 막 천하를 평정하였으므로 '성왕'의 삼촌인 '주공'은 여러 제후들의 반란을

염려하여 어린 '성왕'을 대신하여 섭정하므로써 국정을 주관하였다. 

'주공'의 두 동생인 '관숙'과 '채숙'은 '주공'의 뜻을 의심하여 '무경'과 반란을 일으켜 周를 배반하였다. 

'주공'은 '성왕'의 명을 받들어 '무경'과 '관숙'을 죽이고 '채숙'을 귀양보냈다.  

그리고 '미자개'에게는 殷나라의 후대를 계승하게 하여 "송"지역에 국가를 세웠다.  

또 殷나라에 남은 백성을 모아 '무왕'의 막내동생에게 의탁시키고 그를 '위강숙'에 봉하였다.]

晉唐叔得嘉谷, 獻之成王, 成王以歸周公于兵所.  周公受禾東土, 魯天子之命.
初, 管, 蔡畔周, 周公討之, 三年而畢定, 故初作大誥, 次作微子之命, 次歸禾, 次嘉禾,

次康誥酒誥梓材, 其事在周公之篇. 周公行政七年, 成王長, 周公反政成王, 北面就群臣之位. 

(진당숙득가곡, 헌지성왕, 성왕이귀주공우병소. 주공수화동토, 노천자지명.
초, 관,채반주, 주공토지, 삼년이필정, 고초작대고, 차작미자지명, 차귀화, 차가화,  

차강고주고재재, 기사재주공지편. 주공행정칠년, 성왕장, 주공반정성왕, 북면취군신지위. ) 

 

['진당숙'이 상서로운 곡물을 얻어서 그것을 '성왕'에게 바치자, '성왕'은 그것을 병영에 있는 '주공'에게 보냈다. 

'주공'은 동쪽 땅에서 곡물을 받고 천자의 명령을 선포하였다.  

예전에 '관숙'과 '채숙'이 周를 배반하여 '주공'이 그들을 징벌한지 3년이 지나자 완전히 안정되었으므로 

처음에 '대고'를 짓고, 다음에 '미자지명'을 짓고, 그 다음 '귀화'를 짓고, 그 다음 '가화', 그 다음 '강고', '주고',

'자개'를 지었다. 지나온 여러가지 사건들이 모두 '주공'의 이런 문장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주공'이 정무를 집행한지 7년, '성왕'이 성장하자 '주공'은 정권을 '성왕'에게 돌려주고 신하의 자리로 물러나

'성왕'을 섬겼다.]

成王在豐, 使召公復營洛邑, 如武王之意.  周公復卜申視, 卒營筑, 居九鼎焉.

曰:“此天下之中, 四方入貢道里均.” 作召誥,洛誥. 成王既遷殷遺民, 周公以王命告, 作多士,無佚.
(성왕재풍, 사소공부영낙읍, 여무왕지의. 주공부복신시, 졸영축, 거구정언.  

왈 : "차천하지중, 사방입공도리균." 작소고,낙고.  성왕기천은유민, 주공이왕명고, 작다사, 무일. ) 

 

['성왕'은 "풍읍"에 머무르며, '소공'으로 하여금 다시 "낙읍"을 건설하여 '무왕'의 뜻을 계승하게 하였다. 

'주공'은 다시 점을 치고 실제 조사를 마친후 마침내 건설을 완공하고서 구정을 그곳에 안치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 " 이곳이 천하의 중심으로서 사방에서 공물을 바치러 오는 거리가 모두 같다 "라고 하며

「소고」, 「낙고」를 지었다. '성왕'은 殷의 유민을 그곳으로 이주 시키자,  

'주공'은 '성왕'의 명을 고려하여 「다사」,「무일」을 지었다.   

 

召公為保, 周公為師, 東伐淮夷, 殘奄, 遷其君薄泵.  成王自奄歸, 在宗周, 作多方. 

既絀殷命, 襲淮夷, 歸在豐, 作周官.  興正禮樂, 度制於是改, 而民和睦, 頌聲興.  

成王既伐東夷, 息慎來賀, 王賜榮伯作賄息慎之命.                  

(소공위보, 주공위사, 동벌회이, 잔엄, 천기군박빙.  성왕자엄귀, 재종주, 작다방.   

기출은명, 습회이, 귀재풍, 작주관.  흥정예악, 도제어시개, 이민화목, 송성흥.   

성왕기벌동이, 식신래가. 왕사영백작회식신지명. )


['소공'을 삼공 중의 태보에 임명하고 '주공'은 군사에 임명되어 동으로 "회이"를 정벌하고 "엄"을 멸한 후  

그 군주를 "박고"로 이주 시켰다. '성왕'이 "엄"에서 돌아와 "종주"에서「다방」을 지었다.  

'성왕'은 殷의 잔여세력을 소멸시키고 "회이"를 습격한 후 "풍읍"으로 돌아와 「주관」을 지었다. 
이로부터 예의와 음악이 바로잡히고 흥성해졌으며 법령제도를 바르게 개혁하였으므로 백성은 화목하였고  

칭송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왕'이 "동이"를 정벌하여 "식신족"이와서 조현하자,

왕은 '영백'에게 「회식신지명」을 짓게 하였다.] 

成王將崩, 懼太子釗之不任, 乃命召公,畢公率諸侯以相太子而立之.    

成王既崩, 二公率諸侯, 以太子釗見於先王廟, 申告以文王, 武王之所以為王業之不易,  

務在節儉, 毋多欲, 以篤信臨之, 作顧命.  太子釗遂立, 是為康王.
(성왕장붕, 구태자교지불임, 내명소공,필공송제후이상태자이입지.
성왕기붕, 이공솔제후, 이태자교견어선왕묘, 신고이문왕, 무왕지소이위왕업지불역,

무재절검, 무다욕, 이독신임지, 작고명.  태자쇠수립, 시위강왕. ) 

 

['성왕'은 임종할 때 태자 '교'가 제왕의 임무를 제대로 완수하지 못할까 걱정하여

'소공'과 '필공'에게 제후를 거느리고 태자를 보좌하여 왕위에 옹립할 것을 명하였다. 

'성왕'이 세상을 떠나자, '소공'과 '필공'은 제후를 거느리고 태자 '교'를 인도하여 선왕의 묘에 참배하게 하고

'문왕'과 '무왕'이 왕업을 어렵게 이루었음을 거듭 고하여 근검절약에 힘쓰고 탐욕을 부리지 말며

돈독한 믿음으로 천하를 통치하게 하고는「고명」을 지었다.  태자 '교'가 즉위하니 이가 바로 '강왕'이다. ) 

 

康王即位, 遍告諸侯, 宣告以文武之業以申之, 作《康誥》.
故成康之際, 天下安寧, 刑錯四十餘年不用.  康王命作策畢公分居里, 成周郊, 作《畢命》.
(강왕즉위, 편고제후, 선고이문왕지업이신지, 작《강고》.
고성강지제, 천하안녕, 형착사십여년불용. 
강왕명작책필공분거리, 성주교, 작《필명》)

 

['강왕'은 즉위하여 '문왕'과 '무왕'의 위업을 제후들에게 두루 알리고 그들에게 애써 줄것을 선포하고서

《강고》를 지었다. 이에 '성왕'과 '강왕'의 시대에는 천하가 안정되어 형벌을 40여 년간 쓰이지 않았다.  

'강왕'은 왕의 명령인 책명을 짓는 필공에게 백성 일부를 교외로 옮기어 "성주"의 변경이 되게 하고는  

《필명》을 지었다.] 

康王卒, 子昭王瑕立.  昭王之時, 王道微缺.  昭王南巡狩不返, 卒於江上. 

其卒不赴告, 諱之也.  立昭王子滿, 是為穆王.  穆王即位, 春秋已五十矣. 

王道衰微, 穆王閔文武之道缺, 乃命伯臩申誡太仆國之政, 作臩命.  復寧. 

(강왕졸, 자소왕하립. 소왕지시, 왕도미결.  소왕남순수불반, 졸어강상.   

기졸불부고, 휘지야.  입소왕자만, 시위목왕.  목왕즉위, 춘추이오십의. 
왕도쇠미, 목왕민문무지도결, 내명백광신계태복국지정, 작광명.  부녕.)


['강왕'이 세상을 떠나자 아들 소왕 '하'가 즉위하였다. '소왕'때에는 왕도가 점차 쇠약해졌다. 

'소왕'은 남쪽으로 순수했다가 돌아오지 못하고 강 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죽었어도 부고를 내지 않았으니 이것은 이일을 숨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소왕'의 아들 '만'이 즉위하니 그가 바로 '목왕'이다. '목왕'은 왕이 되긴 하였으나 이미 50세였다.  

왕도가 쇠해지자 '목왕'은 '문왕'과 '무왕'의 도가 쇠약해진 것을 근심하여 이에 '백광'을 태복에 임명하고, 

그에게 국정을 살피도록 거듭 경계하고는「광명」을 지었다. 그러자 천하가 다시 편안하게 되었다.] 

穆王將征犬戎, 祭公謀父諫曰:“ 不可. 先王燿德不觀兵. 夫兵戢而時動, 動則威, 觀則玩,

玩則無震. 是故周文公之頌曰:‘載戢干戈, 載櫜弓矢, 我求懿德, 肆于時夏, 允王保之.’

先王之於民也, 茂正其德而厚其性, 阜其財求而利其器用, 明利害之鄉, 以文修之, 

使之務利而辟害, 懷德而畏威, 故能保世以滋大.        

(목왕장정견융, 제공모보간왈 : "불가.  선왕요덕불관병. 부병집이시동, 동즉위, 관즉완,

완즉무진. 시고주문공지송왈 : '재집간과, 재고궁시, 아구의덕, 사우시하, 윤왕보지.'

선왕지어민야, 무정기덕이후기성, 부기재구이리기기용, 명리해지향, 이문수지,

사지무리이피해, 회덕이외위, 고능보세이자대.)

  

['목왕'이 견융을 정벌하려고 하자, 제공 '모보'가 간하기를 : "아니 되옵니다.

'선왕'께서는 덕을 밝혔을 뿐 무력을 과시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체로 병력이란 보통때는 신중하게 보유하고 있다가 세력이 강해지면 움직이는 것으로 무력을 과시하면

장난이 되고, 장난으로 무력을 사용하면 위엄이 없어집니다.  
그러므로 周 '문공'의 노래에도 : ' 창과 방패를 거두어 들이고 활과 화살을 자루에 넣었네,

아름다운 덕을 닦아서 夏나라가 방자한 행동을 할때에 내가 왕도로써 천하를 구하고 보존하리라' 라고 하였습니다.

선왕께서는 백성에게 덕을 바르게 하고 성정을 두텁게 하도록 힘쓰시고, 그들의 재물을 풍성하게 하고,

기물을 편리하게 이용토록 하였으며 백성들이 이로움과 해로움의 소재를 분명히 알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교육으로 그들을 수양하게 하고 이익을 도모하고 손해를 피하게 하여덕행을 사모하고 형벌을 두려워하게

하였습니다. 때문에 선왕께서는 대대로 천하를 보전하여 날로 강대해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昔我先王世后稷以服事虞,夏. 及夏之衰也, 棄稷不務, 我先王不窋用失其官, 而自竄於戎狄之閒. 

不敢怠業, 時序其德, 遵修其緒, 修其訓典, 朝夕恪勤, 守以敦篤, 奉以忠信.  奕世載德, 不忝前人.

至于文王,武王, 昭前之光明而加之以慈和, 事神保民, 無不欣喜. 商王帝辛大惡于民, 庶民不忍,

訢載武王, 以致戎于商牧. 是故先王非務武也, 勸恤民隱而除其害也.
(석아선왕세후직이복사우,하. 급하지쇠야. 기직불무, 아선왕불줄용실기관, 이자찬어융적지간.

불감태업, 시서기덕, 준수기서, 수기훈전, 조석각근, 수이돈독, 봉이충신.  혁세재덕, 불첨전인.

지우문왕, 무왕, 소전지광명이가지이자화, 사신보민, 무불흔희. 상왕제신대악우민, 서민불인,

흔재무왕, 이치융우상목. 시고선왕비무무야, 권휼민은이제기해야.)

[예전에 우리 선왕께서 대대로 후직을 맡아 "우", "하"에 종사했습니다. 하나라가 쇠하자 후직 벼슬을 없애고

농업에 힘쓰지 않으니 우리의 선왕 '부줄'은 관직을 잃고 스스로 융적이 사는 곳으로 숨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은 감히 농업에 태만하지 않고 늘 덕행을 지니며 사업을 계속하였습니다,

또한 자신을 교화하는 법도를 다스려서 조석으로 삼가 애쓰고 돈독하게 지켰으며 충성과 믿음으로써  

이 모든 것을 받들어 실행하였습니다. 후세에도 이러한 덕이 계승되 선대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문왕', '무왕'에 이르러 전대의 광명을 밝히고 자애와 화목을 더하여 신을 섬기고 백성을 보호하니 

신과 백성들은 모두 기쁘기 그지없었습니다. 상왕 '신'이 백성에게 큰 죄를 지어 백성들이 참을 수 없었으므로 

모두 기뻐하며 '무왕'을 추대하였고 때문에 '무왕'이 상나라의 교외에서 '상왕'과 전투를 한 것입니다. 

고로 이는 선왕께서 무력에 힘쓴 것이 아니라, 백성의 고통을 불쌍히 여겨 무력으로 해로움을 제거한 것입니다.]  

夫先王之制, 邦內甸服, 邦外侯服, 侯衛賓服, 夷蠻要服, 戎翟荒服. 

甸服者祭, 侯服者祀, 賓服者享, 要服者貢, 荒服者王.  日祭, 月祀, 時享, 歲貢, 終王.

先王之順祀也, 有不祭則修意, 有不祀則修言, 有不享則修文, 有不貢則修名,

有不王則修德, 序成而有不至則修刑.  於是有刑不祭, 伐不祀, 征不享, 讓不貢, 告不王.
(부선왕지제, 방내전복, 방외후복, 후위빈복, 이만요복, 융적황복.  

전복자제, 후복자사, 빈복자향, 요복자공, 황복자왕.   일제, 월사, 시향, 세공, 종왕. 

선왕지순사야, 유불제즉수의, 유불사즉수언, 유불향즉수문, 유불공즉수명,

유불왕즉수덕, 유불왕즉수덕, 서엉이유불지즉수형. 어시유형불제, 벌불사, 정불향, 양불공, 고불왕.)

 

[무릇 선왕의 제도에는 방내를 전복이라고 하고, 방외를 후복이라고 하며,

제후국 바깥의 위성국을 빈복이라고 하였고, 오랑캐와 야만인이 거주하는 지역을 요복이라고 하며,

융적이 사는 지역을 황복이라고 하였습니다.
전복의 국가는 祭하고, 후복의 국가는 祀하며, 빈복의 국가는 享하고, 요복의 국가는 貢하며,

황복의 국가는 신하로서 왕으로 받들어야 합니다. 날마다 祭하고, 달마다 祀하고, 계절마다 享하고, 

해마다 貢하며 종신토록 周왕조를 받들어야 합니다.  
선왕께서는 이상의 제사제도를 행할때 祭에 참가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자신의 뜻을 살피고,

祀에 참가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자신의 말을 살피며, 享을 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자신의 학문을 살피고,  

貢을 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자신의 명분을 살피며, 자신을 왕으로 받들지 않는 국가가 있으면 

자신의 덕을 수양하곤 하였습니다. 앞에서 말한대로 자신이 반성하고 점검해도 제사, 조공등을

행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그제서야 형벌을 사용했습니다. 이에 祭하지 않으면 법에 따라서 징벌하고, 

祀하지 않는 자에게는 군대를 파견해 토벌하며, 享하지 않는 자는 정벌하라고 명하고,

貢하지 않는 자는 꾸짖으며, 왕으로 받들지 않으면 타일러 깨우쳐 주었습니다 

於是有刑罰之辟, 有攻伐之兵, 有征討之備,  有威讓之命, 有文告之辭.
布令陳辭而有不至, 則增修於德, 無勤民於遠.  是以近無不聽, 遠無不服.

今自大畢, 伯士之終也, 犬戎氏以其職來王, 天子曰 : ‘予必以不享征之, 且觀之兵’, 

無乃廢先王之訓, 而王幾頓乎?   吾聞犬戎樹敦, 率舊德而守終純固, 其有以御我矣. ” 
(어시유형벌지벽, 유공벌지병, 유정토지비,
  유위양지명, 유문고지사.
포령진사이유불지, 즉증수어덕, 무근민어원.  시이근무불청, 원무불복.

금자대필, 백사지종야, 경융씨이기직래왕, 천자왈 : '여필이불향정지, 차관지병',   

무내폐선와지훈, 이왕기돈호 ?   오문견융수돈, 솔구덕이수종순고, 기유이어아의. ")

[이리하여 형벌의 법이 있고, 공벌하는 군대가 있으며, 정벌하는 기관이 있고, 위엄있게 나무라는 명령이 있으며,

권고하는 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명령하고 권고해도 오지 않으면 더욱 자신의 덕을 수양해야 하며,

백성을 원정에 동원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어야 가까운 곳에서 왕의 명을  듣지 않는 자 없고,

멀리서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견융족은 '대필'과 '백사'가 귀순한 후부터

자신들의 직무에 따라서 왕으로 받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천자께서 :'나는 불향의 죄목으로써 그들을 정벌하겠다, 또한 그들에게 무력을 보여주리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선왕의 훈계를 져버리고 제도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신이 듣기에는 견융족이 도타운 기풍을 세우고, 선조께서 물려주신 덕을 따르고 시종여일 수고한다고 하니, 

그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를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王遂征之, 得四白狼四白鹿以歸.  自是荒服者不至.

諸侯有不睦者, 甫侯言於王, 作修刑辟.  王曰:"吁, 來!有國有土, 告汝祥刑.
在今爾安百姓, 何擇非其人, 何敬非其刑, 何居非其宜與?兩造具備, 師聽五辭. 

(왕수정지, 득사백랑사백녹이귀.  자시황복자불지.

제후유불목자, 보후언어왕, 작수형벽. 왕왈 : "우, 래 ! 유국유토, 고여상형.
재금이안백성, 하택비기인, 하경비기형, 하거비기의여 ? 양조구비, 사청오사.

 

[그러나 '목왕'은  결국 그들을 정벌하여 흰 이리 네 마리와 흰 사슴 네 마리를 가지고 돌아왔다.

이로부터 황복 지역의 국가는 오지 않았다.

제후 가운데 따르지 않는 자들이 있어서 '보후'가 왕께 말하자 '목왕'은 형법을 제정하였다.

왕이 말하기를 : "자, 와서 들으시오 ! 나라가 있고 땅이 있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에게 형법을 자세히 고하노라.

지금 그대들이 백성을 편안하게 하고자 하는 데에서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인재가 아니겠는가?,

무엇을 삼가 받들것인가, 형법이 아니겠는가 ?  어떻게 처리할 것이가, 법을 올바르게 집행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원고와 피고가 오면 옥관은 다섯가지 방법을 통해서 사건을 심리하시오.

五辭簡信, 正於五刑.  五刑不簡, 正於五罰.  五罰不服, 正於五過.

五過之疵, 官獄內獄, 閱實其罪, 惟鈞其過.  五刑之疑有赦, 五罰之疑有赦, 其審克之.

簡信有眾, 惟訊有稽.  無簡不疑, 共嚴天威.  黥辟疑赦, 其罰百率, 閱實其罪. 

劓辟疑赦, 其罰倍灑, 閱實其罪.  臏辟疑赦, 其罰倍差, 閱實其罪.

(오사간신, 정어오형.  오형불간, 정어오벌.   오벌불복, 정어오과. 

오과지자, 관옥내옥, 열실기죄, 유균기과.  오형지의유사, 오벌지의유사, 기심극지.

간신유중, 유신유계.  무간불의, 공엄천위.  경벽의사, 기벌백솔, 열실기죄.  

의벽의사, 기벌배리, 열실기죄.   빈벽의사, 기벌배차, 열실기죄.)


[다섯가지 방법에서 조사하고 확인한 것이 믿을 만하면 오형에 따라서 판결하고,  

오형을 판단할 근거가 부족하면 오벌에 따라 처벌하시오,  

오벌로 판결한 것에 불복하면 오과를 적용하시오, 그런데 오과의 단점은 관옥과 내옥인 경우이오,  

이런 경우에는 관리의 죄가 범죄자와 같으므로 사실 증명을 조사하고 확인하여 처벌하시오,  

오형을 적용하는데 문제가 있으면 사면하고, 오벌을 적용함도 의문점이 있으면 사면할 것이며,

면밀히 살펴서 알맞게 판결하시오. 조사가 정확해야 백성의 신임을 얻을 수 있고, 심문할 때는 근거가 있어야 하오, 

조사가 확실하지 못한 사안은 의심스러운 대로 처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모두들 하늘의 위엄을 엄숙히 공경해야 하오. 경형(죄명을 신체에 써 넣는 형벌)의 죄를 지었으나

의문점이 있으면 사면하고, 100전의 벌금에 처하며 그 죄를 소상히 조사하시오.    

의형(코를 베는 형벌)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으나 의심이 가면 사면하고, 

벌금 200전을 부과하고 그죄를 소상히 조사하시오.    

 빈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으나 의심이 가면 사면하고 벌금은 배(400)로하고 그 죄를 철저히 조사하시오. 

 

宮辟疑赦, 其罰五百率, 閱實其罪.  大辟疑赦, 其罰千率, 閱實其罪.     * 臏(종지뼈:빈).
墨罰之屬千, 劓罰之屬千, 臏罰之屬五百, 宮罰之屬三百, 大辟之罰其屬二百: 

五刑之屬三千.” 命曰甫刑.
(궁벽의사, 기벌오백솔, 열실시죄. 대벽의사, 기벌천솔, 열실기죄.       

묵벌지속천, 의벌지속천, 빈벌지속오백, 궁벌지속감백, 대벽지벌기속이백 : 오형지속삼천." 명왈보형.)


[궁형(자손을 끊어 버릴 의도에서 남자는 그 불알을 까고 여자는 그 음부를 유폐하는 형벌)에 해당하는 죄이나

미심쩍으면 사면하고, 벌금 500전을 부과하고 그 죄를 소상히 살피시오.

대벽(사형)의 죄를 지었으나 의심스러우면 사면하고 벌금 1,000전에 그 죄를 명백히 조사하시오.
묵형(경형)에 해당하는 법 조항은 1,000가지이고, 의형은 1,000가지, 빈형의 종류는 500가지이고,  

궁형의 종류는 300가지 이며, 대벽형의 종류는 200가지요 :  

이에 오형에 속하는 법 조항은 모두 3,000가지요 "라고 하였다. 이에 보형 이라고 명했다.]  

穆王立五十五年, 崩, 子共王繄扈立.  共王游於涇上, 密康公從, 有三女奔之.  
其母曰:“必致之王. 夫獸三為群, 人三為眾, 女三為粲. 王田不取群, 公行不下眾, 王御不參一族. 

夫粲, 美之物也.  眾以美物歸女, 而何德以堪之? 王猶不堪, 況爾之小醜乎!小醜備物, 終必亡.” 

康公不獻, 一年, 共王滅密.  共王崩, 子懿王艱立。懿王之時, 王室遂衰, 詩人作刺.       

(목왕입오십오년, 붕, 자공왕예호립. 송왕유어경상, 밀강공종, 유감여분지.

기모왈 : "필치지왕.  부수삼위군, 인삼위중, 여삼위찬.  왕전불취군, 공행불하중, 왕어불참일족.  

부찬, 미지물야.  중이미물귀녀, 이하덕이감지 ? 왕유불감, 황이지소추호 ! 소추비물, 종필망."
강공불헌, 일년, 공왕멸밀.  공왕붕, 자의왕간립.  의왕지시, 왕실수쇠, 시인작체.)

 

['목왕'이 제위 55년에 붕어하자, 아들 공왕 '예호'가 즉위하였다.

'공왕'이 경수 근처에서 노닐때 '밀강공'이 수행하였는데 그에게 세 여자가 의탁해 왔다. 

그러자 그의 모친이 말하기를 : "반드시 왕께 여자들을 바치게나. 짐승이 세 마리면 群이되고,  

사람이 셋이면 衆이되고, 여자가 셋이면 찬이 되는 것이다.   

왕이 사냥을 할 때에도 많은 짐승을 잡아서는 안되고, 제후가 행차할 때도 사람들에게 수레에서 내려 

경의를 표하게 할 수는 없으며, 왕이 비빈을 맞이할 때에도 한 집안에서 세 여자를 취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세 명의 여자는 모두 미인들이며, 사람들이 이 미인들을 자네에게 바쳤는데, 자네는 무슨 덕으로  감당하겠나 ?  

왕도 감당하기 어렵거늘 하물며 자네같은 소인이야 어떻겠나 ?   

소인배가 재물을 지니면 결국 반드시 망하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밀강공'은 왕에게 여자를 헌상하지 않았고 1년후에 '공왕'은 '밀강공'을 죽였다.

'공왕'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 의왕 '간'이 즉위하였다. '의왕'때 왕실은 점차 쇠약해졌으며, 

시인들이 비방하는 시를 짓기 시작하였다.] 

懿王崩, 共王弟辟方立, 是為孝王.  孝王崩, 諸侯復立懿王太子燮, 是為夷王.

夷王崩, 子厲王胡立.  厲王即位三十年, 好利, 近榮夷公.
(의왕붕, 공왕제벽방립, 시위효왕. 효왕붕, 제후복립의왕패자섭, 시위이왕.

이왕붕, 자여왕호립. 여왕즉의삼십년, 호리, 근영이공. )


['의왕'이 붕어하고 '공왕'의 동생 '벽방'이 즉위하니 이가 바로 '효왕'이다. 

'효왕'이 세상을 떠나자 제후들이 다시 '의왕'의 태자 '섭'을 옹립하였는데, 이가 바로 '이왕'이다.

'이왕'이 붕어하고 아들 려왕 '호'가 즉위하였다.

'려왕'은 30년간 재위하면서 이익을 탐하고 '영이공'을 가까히 하였다.]

 

大夫芮良夫諫厲王曰:“王室其將卑乎?夫榮公好專利而不知大難.

夫利, 百物之所生也, 天地之所載也, 而有專之, 其害多矣.  天地百物皆將取焉, 何可專也? 

所怒甚多, 不備大難.  以是教王, 王其能久乎? 夫王人者, 將導利而布之上下者也. 

使神人百物無不得極, 猶日怵惕懼怨之來也.

(대부예량부간여왕왈 : "왕실기장비호 ? 부영공호전리이불여대난. 

부리, 백물지소생야, 천지지소재야, 이유전지, 기해다의.  천지백물개장취언, 하가전야 ?   

소노심다, 불비대난.   이시교왕, 왕기능구호 ? 부왕인자, 장도리이포지상하자야. 
사신인백물무불득극,  유일출척구원지래야.

 

[그러자 대부 '예량부"가 '려왕'께 간하기를 : "왕실이 쇠약해지려고 하지 않습니까 ?   

'영이공'은 이익을 독점하는 것은 좋아 하면서도 큰 재앙은 알지 못합니다.

무릇 이익이란 만물에서 생기는 것이며 천지가 소유한 것으로 그것을 독점하게 되면 해가 많아집니다.   

천지 만물은 모든사람이 같이 써야 하거늘 어찌 한사람이 독점할 수 있겠습니까 ?   

이익을 독점하면 많은  백성들의 분노를 초래할 것이며 그렇게 되면 큰 재앙에 대비할 수 없습니다.

그가 이러한 것으로 천자를 인도하니 천자께서 오래도록 아무 일 없이 잘 지내실 수 있겠습니까 ?   

무릇 다른 사람에게 왕 노릇을 하는 자는 이익을 장려하고 개발하여 위 아래 모든 사람에게 공평히 분배해야 합니다. 

신과 사람 그리고 만물이 각기 적당함을 얻게 하시고 백성들이 원망할까 날마다 근심하고 두려워하셔야 합니다.  

故《頌》曰 ‘思文后稷, 克配彼天, 立我蒸民, 莫匪爾極’.  大雅曰 ‘陳錫載周’.

是不布利而懼難乎, 故能載周以至于今.  今王學專利, 其可乎?匹夫專利, 猶謂之盜,

王而行之, 其歸鮮矣.  榮公若用, 周必敗也. ” 厲王不聽, 卒以榮公為卿士, 用事.
(
고《송》왈 '사문후직, 극배피천, 입아증민, 막비이극'.  대아왈 '진석재주'.  

시불포리이구난호, 고능재주이지우금.  금왕학전리, 기가호 ? 필부전리, 유위지도, 왕이행지.  

기귀선의.  영공약용, 주필패야. "   여왕불청, 졸이영공위경사, 용사.


[그런 까닭으로 《송》에 이르기를 '문덕이 있으신 '후직'이시어, 저 하늘과 짝이 되실 만하네,

우리 백성들이 스스로 잘 살 수 있게 해주시니, 백성들 모두 그분을 본받네'라고 했으며.

《대아》에서는 '두루 복을 내리사 周 천하가 되었도다'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이익을 고루 나누어주고 환난을 두려워한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

그러므로 周나라가 오늘까지 이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천자께서 재물을 독점하는 것을 배우시는 것이 옳은 일이겠습니까 ?

필부가 이익을 독점해도 도적이라고 하거늘 왕이면서 이익을 챙기신다면 천자를 따르는 사람들도 

드물게 될 것입니다. '영이공'을 등용하신다면 주나라는 반드시 멸망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나 '려왕'은 듣지 않고 마침내 '영이공'을 경사로 임용하여 국사를 주관하게 하였다.]

王行暴虐侈傲, 國人謗王.  召公諫曰:“民不堪命矣.”  王怒, 得衛巫, 使監謗者, 以告則殺之.

其謗鮮矣, 諸侯不朝.  三十四年, 王益嚴, 國人莫敢言道, 路以目. 

厲王喜, 告召公曰:“吾能弭謗矣, 乃不敢言."
(왕행폭학치오, 국인방왕. 소공간왈 : "민불감명의."  왕노, 득위무, 사감방자, 이고즉살지.   

기방선의, 제후불조.  삼십사년, 왕익엄, 국인막감언도, 로이목.   

려왕희, 고소공왈 : "오능미방의, 내불감언." )   

    
[왕이 포악하고 사치하며 교만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왕을 비방하였다.  

그러자 '소공'이 간하기를 : " 백성들은 포악한 명령을  견디지 못합니다 "라고 하였다.

왕은 노하여 위나라 무당을 불러서 비방하는 자들을 감시하게 하고 무당이 보고하면 그들을 죽였다.  

이에 비방하는 사람이 점차 줄었고 제후들은 조회하러 오지 않았다. 

34년, 왕이 더욱 엄하게 단속하자 백성들은 감히 말하지 못하고 길에서 만나면 눈짓으로 뜻을 교환하였다. 

그러자 '려왕'이 기뻐하며 '소공'에게 말하기를 : "내가 비방하는 것을 그치게 하였소,  

아무도 말하지 않게 되었소 "라고 하였다.]

召公曰:“是鄣之也.  防民之口甚, 於防水.  水壅而潰, 傷人必多, 民亦如之. 

是故為水者決之使導, 為民者宣之使言.  故天子聽政, 使公卿至於列士獻詩, 瞽獻曲, 史獻書,  

師箴, 瞍賦, 矇誦, 百工諫,庶人傳語, 近臣盡規, 親戚補察, 瞽史教誨, 耆艾修之而, 後王斟酌焉是, 

以事行而不悖. 民之有口也, 猶土之有山川也, 財用於是乎出:猶其有原隰衍沃也, 衣食於是乎生. 

口之宣言也, 善敗於是乎興.   行善而備敗, 所以產財用衣食者也. 

夫民慮之於心而宣之於口, 成而行之. 若壅其口, 其與能幾何?” 王不聽. 

(소공왈 : "시장지야.  방민지구심, 어방수.  수옹이궤, 상인필다, 민역여지.    

시고위수자결지사도, 위민자선지사언. 고천자청정, 사공경지어열사헌시, 고헌곡, 사헌서, 사잠, 수부,

몽송, 백공간, 서인전어, 근신진규, 친척보찰, 고사교회, 기애수지이, 후왕짐작언시, 이사행이불패.         
민지유구야, 유토지유산천야, 재용어시호출 : 유기유원습연옥야, 의식어시호생.   

구지성언야, 선패어시호흥.   행선이비패, 소이산재용의식자야.
부민여지어심이선지어구, 성이행지. 약웅기구, 기여능기하 ?"  왕불청.)


[그러자 '소공'이 말하기를 : "이는 말을 하지 못하게 억지로 막은 것입니다.

백성의 입을 막는 것은 물을 막는 것보다 더욱 심각합니다. 물이 막혔다가 터지면 피해자가 반드시 많은 것처럼,

백성들 또한 마찬가지 입니다. 때문에 물을 다스리는 자는 수로를 열어서 물이 흐르게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그들을 이끌어서 말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천자는 정무를  처리할때 공경에서 일반 관원에 이르기까지 시를 바치게 하고, 악관은 악곡을 바치게 하고,

사관에게는 역사서를 바치게 하고, 악사는 잠언을 바치게, 수는 시편을 낭송하게 하고, 몽은 음악없이 시를 읊게 하며,

백관은 간언하게 하고, 백성은 간접적으로 왕에게 의견을 전달하며 좌우 시종은 간언을 살피는 책임을 다하게 하고,

친척은 왕의 과실을 보안하고 살피게하며 악사와 사관은 악곡과 사실로써 천자를 바르게 인도하고  

늙은 신하에게는 이 모든 것을 정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후에 왕이 이들을 헤아려보고 선택하면 정치는 잘 행해지고 사리에 위배되지 않는 것입니다.   

 백성에게 입이 있는 것은 대지에 산천이 있어서 여기에서 재물이 나오는 것과 같고,

 대지에 평야, 습지, 옥토가 있어서 입을 것과 먹을 것이 여기서 나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백성들이 마음껏 말하게 하면 정치를 잘하고 못함이 다 반영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은 밀고 나가고  잘못된 일을 방지하는 것은 대지에서 재물과 의식을 생산하는 것과 같습니다.   

 무릇 백성이 속으로 생각하여 입으로 말하는 것은 속으로 많이 생각한 후에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입을 막는다면 찬동하는 자가 몇이나 있겠습니까 ?" 라고 하였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於是國莫敢出言, 三年, 乃相與畔, 襲厲王.  厲王出奔於彘.

厲王太子靜匿召公之家, 國人聞之, 乃圍之.  召公曰:“昔吾驟諫王, 王不從, 以及此難也. 

今殺王太子, 王其以我為讎而懟怒乎? 夫事君者, 險而不讎懟, 怨而不怒, 況事王乎!”

乃以其子代王太子, 太子竟得脫. 

(어시국막감출언, 삼년, 내상여반, 습려왕. 려왕출분어체.

려왕태자정닉소공지가, 국인문지, 내위지. 소공왈 : "석오취간왕, 왕불종, 이급차난야. 

금살왕태자, 왕기이아위수이대노호 ? 부사군자, 험이불수대, 원이불노, 황사왕호 ! "

내이기자대왕태자, 태자경득탈. ) 

 

[이리하여 나라에는 감히 정치에 대하여 말하는 자가 없었고,  3년이 지나자 마침내 백성들은 서로 연합하여

난을 일으켜서 '려왕'을 습격 하였다. '려왕'은 "체"로 달아났다.

'려왕'의 태자 '정'이 '소공'의 집에 숨었는데 백성들이 그 소문을 듣고 마침내 그 집을 포위하였다.   

러자 '소공'이 말하기를 : " 예전에 내가 누차 왕께 간하였지만 왕이 따르지 아니하여 이같은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소.  지금 태자를 죽인다면 왕은 나를 원수로 생각하여 화내고 원망할 것이 아니겠소 ?

무릇 군주를 모시는 사람은 위험에 처해도 군주를 원망하지 않으며 군주가 자신을 책망해도 노하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천자를 섬김에 어찌 소홀함이 있으랴 !"라고 하며, 이에 그는 자신의 아들에게 태자를 대신하게 하여,

결국 태자는 달아날 수 있었다.]

召公, 周公二相行政, 號曰 “共和”.  共和十四年, 厲王死于彘.

太子靜長於召公家, 二相乃共立之為王, 是為宣王. 

宣王即位, 二相輔之, 修政, 法文,武,成,康之遺風, 諸侯復宗周.  十二年, 魯武公來朝.
(소공, 주공이상행정, 호왈 "공화". 공화십사년, 려왕사우체.   

태자정장어소공가, 이상내공립지위왕, 시위선왕.
선왕즉위, 이상보지, 수정, 법문,무,성,강지유풍, 제후부종주.  십이년, 노무공래조.)


['소공' '주공'이 두 정승이 함께 정무를 관리한 것을 "공화"라고 부른다.

공화 14년, '려왕'은 "체"에서 세상을 떠났다.  태자 '정'이 '소공'의 집에서 장성하자  

'소공'과 '주공'이 그를 왕으로 옹립하니 그가 바로 '선왕'이다.

'선왕'이 즉위하고 그들이 왕을 보좌하여 정사를 돌보고 '문왕','무왕','성왕','강왕'의 유풍을 본받자, 

제후들이 다시 주나라를 섬겼다.  2년, 노 "무공'이 와서 조현하였다.] 

宣王不修籍於千畝, 虢文公諫曰不可, 王弗聽.  三十九年, 戰于千畝, 王師敗績于姜氏之戎.

宣王既亡南國之師, 乃料民於太原.  仲山甫諫曰:“民不可料也.” 宣王不聽, 卒料民.      
(선왕불수적어천묘, 괵문공간왈불가, 왕불청. 삼십구년, 전우천묘, 왕사패적우강씨지융. 

선왕기망남국지사, 내요민어태원. 중산보간왈 : "민불가요야." 선왕불청, 졸요민.)


['선왕'이 "천묘"의 적전을 돌보지 않자,"괵" '문공'이 안된다고 간하였으나, 왕은 듣지 않았다.
39년 "천묘"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왕의 군대는 강씨라는 오랑캐에게 대패하였다. 

'선왕'이 "남국"에서 군대를 잃자 마침내 "태원"에서 징병을 위해 인구 조사를 하였다.

'중산보'가 간하기를 : "인구 조사를 하지 마십시요"라고 했으나 '선왕'은 듣지 않고 인구 조사를 하였다.]

四十六年, 宣王崩, 子幽王宮湦立.  幽王二年, 西周三川皆震.  伯陽甫曰:“周將亡矣. 夫天地之氣, 

不失其序;若過其序, 民亂之也.   陽伏而不能出, 陰迫而不能蒸, 於是有地震.   

(사십육년, 선왕붕, 자유왕궁생립. 유왕이년, 서주삼천개진.  백양보왈 : "주장망의. 부천지지기,

부실기서 ; 약과기서, 민란지야. 양복이불능출, 음박이불능증, 어시유지진.  

 

[46년 '선왕'이 붕어하고 아들 유왕 '궁생'이 즉위하였다.

'유왕' 2년, 서주의 도성과 부근의 "삼천"유역에 지진이 발생하였다.

'백양보'가 아뢰기를 : "주나라는 장차 망할 것입니다. 무릇 천지의 기운은 그 질서를 잃지 않아야 하는데,

만약 그 질서를 잃었다면 이는 사람이 어지럽힌 것입니다.  

양기가 아래로 숨어 나올 수 없고, 음기가 눌러 양기가 올라 올 수 없으면 지진이 발생하게 됩니다.  

今三川實震, 是陽失其所而填陰也.  陽失而在陰, 原必塞;原塞, 國必亡.

夫水土演而民用也.  土無所演, 民乏財用, 不亡何待!昔伊,洛竭而夏亡, 河竭而商亡.

今周德若二代之季矣, 其川原又塞, 塞必竭.  夫國必依山川, 山崩川竭, 亡國之徵也.
川竭必山崩.  若國亡不過十年, 數之紀也.  天之所棄, 不過其紀. ” 是歲也, 三川竭, 岐山崩.
          

(금삼천실진, 시양실기소이전음야.  양실이재음, 원필색 ; 원색, 국필망.  

부수토연이민용야. 토무소연, 민핍재용, 불망하대 ! 석이,낙갈이하망, 하갈이상망.  

금주덕약이대지계의, 기삼원우색, 색필갈.   부국필의산천, 산붕천갈, 망국지징야.
천갈필산붕.  약국망불과십년, 수지기야.  천지소기, 불과기기. "  시세야, 삼천갈, 기산붕.

 

[지금 "삼천" 지역에 지진이 일어난 것은 양기가 그 자리를 잃고 음기에 눌린 것입니다.   

양기가 자리를 잃고 음기 아래 있으면 수원은 반드시 막히게 되며 ; 수원이 막히면 나라는 반드시 망하게 됩니다.

무릇 물이 잘 흐르고 땅이 윤택해야 백성들에게 소용있는 것입니다.

땅이 윤택하지 않으면 백성들이 재물을 사용하는데 궁핍하게 되니 어찌 망하지 않겠습니까 !  

예전에 "이수"와 "낙수"가 고갈되어 하나라가 망했고 황하가 고갈되어 상나라가 망했습니다.  

지금 주나라의 덕도 하나라나 상나라의 말기와 같아 그 하류의 수원이 다시 막혔고, 막혀버렸으니, 

이제 반드시 고갈될 것입니다. 무릇 나라는 반드시 산천에 의지하는 것이니,

산이 붕괴되고 하천이 고갈되는 것은 망국의 징조입니다. 하천이 고갈되면 반드시 산이 무너집니다.

만약 나라가 망한다면 10년을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10 이 숫자의 한 단원인 수의 법칙 때문이지요,   

그래서 하늘이 저버리시면 10년을 넘기지 못하게 됩니다 "라고 하였다. 
이해에 "삼천"이 말랐고 급기야 "기산"이 붕괴되기에 이르렀다.]

 

三年, 幽王嬖愛褒姒.  褒姒生子伯服, 幽王欲廢太子.  太子母申侯女, 而為后.

後幽王得褒姒, 愛之, 欲廢申后, 并去太子宜臼, 以褒姒為后, 以伯服為太子.   

周太史伯陽讀史記曰:“ 周亡矣. ” 

(삼년, 유왕폐애포사.  포사생자백복, 유왕욕폐태자.  태자모신후녀, 이위후.

후유왕득포사, 애지, 욕폐신후, 병거태자의구, 이포사위후, 이백복위태자.   

주태사백양독사기왈 : " 주망의. " )

['유왕' 3년, 유왕은 '포사'를 총애하였다. '포사'가 아들 '백복'을 낳으니 '유왕'은 태자 '의구'를 폐위시키려고

하였다.  태자의 어머니는 '신후'의 딸이었으며 왕후였다. 나중에 '유왕'은 포인이 바친 '포사'를 얻어 사랑에 빠지자,

왕비인 '신후'를 폐위시키고  태자 '의구'를 쫒아내고 나서 '포사'를 왕후로 삼고, '백복'을 태자로 삼았다. 

주나라 태사 '백양'이 기록된 문서들을 읽고 나서 말하기를 : " 주나라는 머지않아 망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 

昔自夏后氏之衰也, 有二神龍止於夏帝庭而言曰:“ 余, 褒之二君. ”

夏帝卜殺之與去之與止之, 莫吉.  卜請其漦而藏之, 乃吉. 

於是布幣而策告之, 龍亡而漦在, 櫝而去之.  夏亡, 傳此器殷.   殷亡, 又傳此器周.   

比三代, 莫敢發之, 至厲王之末, 發而觀之.  漦流于庭, 不可除.

(석자하후씨지쇠야, 유이신용지어하제정이언왈 : " 여, 포지이군. "  

하제복살지여거지여지지, 막길.  복청기시이장지, 내길.

어시포폐이책고지, 용망이시재, 독이거지.  하망, 전차기은.  은망, 우전차기주.   

비삼대, 막감발지, 지려왕지말, 발이관지.  시류우정, 불가제. )
 

[옛날에 '하후씨'가 쇠약하였을때, 두 마리의 신령스러운 용이 하임금의 정원에 머물며 말하기를 :

 " 우리는 포나라의 두 임금이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하나라의 임금이 점을 쳐 보았더니  

그 두마리의 용을 죽이거나 내쫓거나 머물게 하여도 모두 불길하다는 점괘가 나왔다.
점을 다시 요청하자  이번에는 용의 입에서 나오는 침을 간직하면 비로소 길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폐백을 차려 놓고 점대에 글을 적어 용에게 기원하자, 용은 달아나고 침만 남아 있어 함속에 거두어 들였다.

하나라가 망하자, 이 함은 은나라에 전해졌다.  은나라가 망하자, 이 함은 또 주나라에 전해졌다. 

하, 은, 주 삼대에 걸쳐 아무도 감히 이 함을 열어 보지 못하다가, '려왕' 말기에 이 함을 열어 보았다. 

그러자 침이 정원으로 흘러 제거할 수가 없었다. ]  

           

厲王使婦人裸而譟之.  漦化為玄黿, 以入王后宮.   

后宮之童妾既齔而遭之, 既笄而孕, 無夫而生子, 懼而棄之.
(려왕사부인라이조지.  시화위현원, 이입왕후궁.  
 

후궁지동첩기친이조지, 기계이잉, 무부이생자, 구이기지. )


['려왕'이 부녀자들로 하여금 알몸에 큰 소리로 떠들게 하였다.  그러자 침이 검은 자라로 변하더니 
 

궁녀들이 머무는 후궁으로 들어갔다. 마침 후궁에 있던 나이 어린 궁녀와 자라가 마주쳤으며,  

그녀가 만 15세 성년이 되자 아이를 잉태하였는데 아비도 없는 아이가 태어나자 두려워서 아이를 버렸다. ]   

宣王之時童女謠曰:“ 厭弧箕服, 實亡周國. ”  於是宣王聞之, 有夫婦賣是器者, 宣王使執而戮之.

逃於道, 而見鄉者后宮童妾所棄妖子出於路者, 聞其夜啼, 哀而收之, 夫婦遂亡, 奔於褒.

褒人有罪, 請入童妾所棄女子者於王以贖罪.  棄女子出於褒, 是為褒姒.
(선왕지시동녀요왈 : " 염호기복, 실망주국. "  어시선왕문지, 유부부매시기자, 선왕사집이륙지.

도어도, 이견향자후궁동첩소기요자출어로자, 문기야제, 애이수지, 부부수망, 분어포.

포인유죄, 청입동첩소기여자자어왕이속죄.  기여자출어포, 시위포사.)


['선왕'때 계집아이들이 노래 부르기를 : " 뽕나무로 만든 활과 콩대로 만든 화살통이 주나라를 망하게 
하리라. "

라고 하였다.  마침 '선왕'이 이 노래를 들었을때 활과 화살통을 파는 부부가 있었으니 

'선왕'은 사람을 시켜 그들을 잡아서 죽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도망가다가 후궁의 어린 계집이 버린

아릿따운 아이가 길가에 있는 것을 발견하였는데 한밤중에 아이 우는 소리를 듣자, 

마음이 아파 아이를 거두어 들인 후 부부는 마침내 도망쳐 포나라로 왔다. 포나라 사람에게 죄를 짓게 되자,

어린 계집이 버렸던 여자 아이를 유왕에게 바치면서 대신 속죄해 줄 것을 청하였다. 

버려진 여자 아이는 포나라에서 자라났으므로 '포사'라고 하였다. ]

 

當幽王三年, 王之后宮見而愛之, 生子伯服, 竟廢申后及太子, 以褒姒為后, 伯服為太子.   

太史伯陽曰:“ 禍成矣, 無可奈何!” 褒姒不好笑, 幽王欲其笑萬方, 故不笑. 

幽王為烽燧大鼓, 有寇至則舉烽火.  諸侯悉至, 至而無寇, 褒姒乃大笑.  幽王說之, 為數舉烽火. 

其後不信, 諸侯益亦不至.
(당유왕삼년, 왕지후궁견이애지, 생자백복, 경폐신후급태자, 이포사위후, 백복위태자.  
 

태사백양왈 : " 화성의, 무가내하 ! " 포사불호소, 유왕욕기소만방, 고불소. 

유왕위봉수대고, 유구지즉거봉화. 제후실지, 지이무적, 포사내대소.  유왕열지, 위수거봉화. 

기후불신, 제후익역불지. )


[당시 '유왕' 3년, 왕이 후궁에 갔다가 그녀를 보고 총애하였으며, 아들 '백복'을 낳자,
 

마침내 '신후'와 태자를 폐위시키고 '포사'를 왕후에 '백복'을 태자로 삼았다.
태사 '백양'이 말하기를 : " 재앙이 일어나게 생겼으나,  어찌할 방법이 없구나 ! "라고 하였다.

'포사'의 웃는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았기에 '유왕'은 그녀를 웃기기 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였으나 

웃길 수가 없었다. '유왕'은 봉화와 큰 북을 설치하여 적이 공격해 오면 낮에는 연기를,

밤에는 횃불로  신호를 보내도록 하였다. 한번은 실수로 "여산"에 봉화가 오르자,

사방 제후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구원하러 왔다가 적군이 보이지 않자 '포사'는 그제서야 크게 웃었다. 

'유왕'은 기뻐하며 '포사'를 웃기기 위해 수 차례 거짓 봉화를 올렸다

그 후 외적이 정말로 침입하여 봉화를 올렸으나, 제후들이 거짓 봉화인줄 알고 오지 않았다. ] 

     

幽王以虢石父為卿, 用事, 國人皆怨.  石父為人佞巧善諛好利, 王用之.  又廢申后, 去太子也.

申侯怒, 與繒· 西夷犬戎攻幽王. 幽王舉烽火徵兵, 兵莫至. 遂殺幽王驪山下, 虜褒姒, 盡取周賂而去.

於是諸侯乃即申侯而共立故幽王太子宜臼, 是為平王, 以奉周祀.

(유왕이괵석보위경, 용사, 국인개원.  석보위인녕교선유호리, 왕용지.  우폐신후, 거태자야.

신후노, 여증· 서이견융공유왕.  유왕거봉화징병, 병막지. 수살유왕여산하, 로포사, 진취주뢰이거.

어시제후내즉신후이공립고유왕태저의구, 시위평왕, 이봉주사. )

['유왕'은 봉화로 장난질을 제의한 간신 '괵석보'에게 경의 직책을 주어 정사를 돌보게 하자, 

백성들이 모두 원망하였다. '석보'란 사람은 아첨을 잘하고 간사하며 교묘한 수단으로  실리를 추구하였음에도 

'유왕'이 그를 중용하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왕후인 '신후'를 폐위시키고, 태자 '의구'를 이유도 없이

평민으로 강등시켜 내쫓았다. '신후'는 분노하며 '증', '서이', '견융'을 끌어 들여 '유왕'을 공격하였다.   

유왕이 또 봉화를 올려 병력을 지원 요청하였으나 제후들은 구원병을 보내지 않았다.
서융의 군사들은 "여산" 아래로 도망친 '유왕'과 '백복'을 잡아서 죽이고, 
 

경국지색인 '포사'를 포로로 잡고, 주나라의 재물을 모두 가지고 갔다.

이로써 제후인 '신후', '노후', '허문공'은 "신국"에서 원래 '유왕'의 태자인 '의구'를 왕위에 올려놓았으니,

이가 바로 '평왕'으로, 주나라의 제사를 받들게 되었다. ] 

平王立, 東遷于雒邑, 辟戎寇.  平王之時, 周室衰微, 諸侯疆幷弱, 齊· 楚· 秦· 晉始大, 政由方伯.

四十九年, 魯隱公即位.  五十一年, 平王崩, 太子洩父蚤死, 立其子林, 是為桓王.  桓王, 平王孫也.
(평왕립, 동천우낙읍, 피융구.  평왕지시, 주실쇠미, 제후강병약, 제, 초, 진, 진시대, 정유방백.

사십구년, 노은공즉위.  오십일년, 평왕붕, 태자예보조사, 입기자림, 시위환왕.  환왕, 평왕손야.)

 

['평왕'은 즉위하여 도읍인 "호경"에 돌아와 보니 이미 폐허가 되어 있으므로 도성을 동쪽에 있는 "낙읍"으로 옮겨

서융 군사들의 침략을 피하였다. '평왕'때 주나라 왕실의 기운이 쇠퇴하여 미약해지자,  

제후국 가운데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를 어우르기 시작하여 제, 초, 진, 진(晉)나라가  비로소 강대해졌으며, 

정사는 제후들에 의해 좌지우지 되었다.

'평왕' 49년, 노나라에서는 '은공'이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 
'평왕' 51년, '평왕'이 세상을 떠났으나, 태자 '예보'가 일찍 죽었으므로 그 아들 '임'이 즉위하니, 
 

이가 바로 '환왕' 이다.  '환왕'은 '평왕'의 손자이다.] 

桓王三年, 鄭莊公朝, 桓王不禮.  五年, 鄭怨, 與魯易許田.  許田, 天子之用事太山田也.    

八年, 魯殺隱公, 立桓公.  十三年, 伐鄭, 鄭射傷桓王, 桓王去歸. 
(환왕삼년, 정장공조, 환왕불례.  오년, 정원, 여로역허전.  허전, 천자지용사태산전야.  
 

팔년, 노살은공, 입환공.  십삼년, 벌정, 정사상환왕, 환왕거귀. )


['환왕' 3년, 정나라 '장공'이 배알하였으나 '환왕'은 예우를 하지 않았다.  
'환왕' 5년, 정나라 '장공'이 원망하며 주나라 왕의 허락도 없이 노나라와 "허전"을 바꾸었다. 
 

"허전"은 천자가 태산에서 제사를 지낼때 쓰는 밭이었다.
'환왕' 8년, 노나라에서 '은공'을 죽이고, '환공'을 세웠다.  '환왕' 13년, 정나라를 정벌하였으며, 
 

정나라 사람이 활을 쏘아 '환왕'에게 상처를 입히자, '환왕'은 정나라를 버리고 돌아왔다. ] 

二十三年, 桓王崩, 子莊王佗立. 

莊王四年, 周公黑肩欲殺莊王而立王子克.  辛伯告王, 王殺周公.  王子克奔燕.

十五年, 莊王崩, 子釐王胡齊立.  釐王三年, 齊桓公始霸.  五年, 釐王崩, 子惠王閬立.
(이십삼년, 환왕붕, 자장왕타립. 

장왕사년, 주공흑견욕살장왕이입왕자극. 신백고왕, 왕살주공.  왕자극분연.

십오년, 장왕붕, 자리왕호제립.  리왕삼년, 제환공시패.  오년, 리왕붕, 자혜왕낭립.)


['환왕' 23년, '환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장왕 '타'가 즉위하였다.  
'장왕' 4년,  '주공흑견'이 '장왕'을 죽이고 왕자 '극'을 옹립하려고 하였다.
 

대부 '신백'이 '장왕'에게 고발하니 '흑견'은 살해되고 왕자 '극'은 연나라로 달아났다.

'장왕' 15년, '장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리왕 '호제'가 즉위하였다.   

'리왕' 3년, 제나라 '환공'이 처음으로 제후 연맹의 맹주가 되었다. 
'리왕' 5년, '리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혜왕 '낭'이 즉위하였다. ]
 

惠王二年.  初, 莊王嬖姬姚, 生子穨, 穨有寵.  及惠王即位, 奪其大臣園以為囿,  

故大夫邊伯等五人作亂, 謀召燕· 衛師, 伐惠王.  惠王犇溫, 已居鄭之櫟.
(혜왕삼년.  초, 장왕폐희요, 생자퇴, 퇴유총.  급혜왕즉위, 탈기대신원이위유, 
 

고대부변백등오인작난, 모소연· 위사, 벌혜왕.  혜왕분온, 이거정지력. )


['혜왕' 2년,  처음에 '장왕'이 총애하던 '희요'가 아들 '자퇴'를 낳자, '자퇴' 역시 총애를 받았다. 
마침내 '혜왕'이 즉위하여 대신들의 동산을 빼앗아 나라의 동산으로 만들자, '변백', '위국', '첨부', 
'자금', '축궤' 등

5대부가 난을 일으켜, 연나라와 위나라의 군사를 끌어들여 '혜왕'을 정벌하려고 모의하자 

혜왕은 "온"으로 달아났다가 얼마 되지 않아 정나라 "역"에 자리를 잡았다. ]

立釐王弟穨為王.  樂及徧舞, 鄭· 虢君怒.  四年, 鄭與虢君伐殺王穨, 復入惠王.  

惠王十年, 賜齊桓公為伯. 

二十五年, 惠王崩, 子襄王鄭立.  襄王母蚤死, 後母曰惠后.  惠后生叔帶, 有寵於惠王, 襄王畏之.
(입리왕제퇴위왕.  락급편무, 정· 괵군노.  사년, 정여괵군벌살왕퇴, 복입혜왕.  혜왕십년, 사제환공위백.

이십오년, 혜왕붕, 자양왕정립.  양왕모조사, 후모왕혜후.  혜후생숙대, 유총어혜왕, 양왕외지.)


[주나라는 '리왕'의 이복 동생인 '자퇴'를 왕으로 옹립하였다.  그리고 노래와 춤으로 이를 축하하자,  

정나라와 괵나라의 군주는 분노하였다. 

'혜왕' 4년, 정나라와 괵나라의 군주는 주나라를 공격하여 '자퇴'와  5대부를 살해하고, '혜왕'을 복위시켰다.

'혜왕' 10년, 종주국인 주나라 '혜왕'은 여러 제후들의 침략과 쟁탈로 혼란한 것을  제'환공'이 먼저 나서서

그들을 제압한 공로를 인정하여 백의 지위를 하사하였다.

'혜왕' 25년, '혜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양왕 '정'이 즉위하였다.  '양왕'의 모친이 일찍 죽자, 
나중에 '혜왕'이 계비로 맞은 진나라의 공녀 '진규'를 혜후라 불렀다.   

혜후가 '태숙대'를 낳아 '혜왕'의 총애를 받자, '양왕'은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三年, 叔帶與戎· 翟謀伐襄王, 襄王欲誅叔帶, 叔帶奔齊. 齊桓公使管仲平戎于周, 使隰朋平戎于晉.

王以上卿禮管仲.  管仲辭曰:“ 臣賤有司也, 有天子之二守國· 高在.  

若節春秋來承王命, 何以禮焉.  陪臣敢辭. ”
(삼년, 숙대여융· 적모벌양왕, 양왕욕주수대, 숙대분제. 제환공사관중평융우주, 사습우붕평융우진.

왕이상경예관중.  관중사왈 : " 신천유사야, 유천자지이수국· 고재.   

약절춘추래승왕명, 하이예언.  배신감사. " )

['양왕' 3년, '태숙대'가 서쪽의 융족, 북쪽의 맥적과 모의하여 '양왕'을 정벌하려 하였으므로 

'양왕'은 '태숙대'를 죽이려 하자,  '태숙대'는 제나라로 달아났다.  제나라 '환공'은 '관중'을 사신으로 보내

융족과 주나라가 화친을 맺도록 하고, 또 '습붕'을 보내 융적과 진나라가 화친하도록 하였다.

'양왕'은 '관중'을 상경의 예로 대하였다.  그러나 '관중'은 사양하며 말하기를 : "

신은 지위가 미천한 벼슬 자리에 있으며, 천자께서는 이미 '국씨', '고씨' 두 제후를 곁에 두고 계십니다. 

만약 봄철과 가을철에 그들이 왕명을 받들러 오면, 폐하께서는 그들을 어떤 예로 대하시겠습니까 ?
신은 제후를 모시는 가신으로 감히 사양하는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王曰:“ 舅氏, 余嘉乃勳, 毋逆朕命. ”  管仲卒受下卿之禮而還.   

九年, 齊桓公卒.  十二年, 叔帶復歸于周.
(왕왈 : " 구씨, 여가내훈, 무역짐명. "  관중졸수하경지례이환. 

년, 제환공졸.  십이년, 숙대복귀우주.)


['양왕'이 말하기를 : " 그대는 외숙 나라의 사신으로 나는 그대의 공적을 표창하려고 하는 것이니  

짐의 명을 거스르지 마시오. "라고 하였다. '관중'은 어쩔 수 없이 하경의 예우를 받고 제나라로 돌아왔다. 
'양왕' 9년, 제나라 '환공'이 세상을 떠났다.  '양왕' 12년, '태숙대'가 주나라로 다시 돌아왔다.]
 

十三年, 鄭伐滑, 王使游孫· 伯服請滑, 鄭人囚之.   

鄭文公怨惠王之入不與厲公爵, 又怨襄王之與衛滑, 故囚伯服.
(십삼년, 정벌활, 왕사유손· 백복청활, 정인수지.  
 

문공원혜왕지입불여려공작, 우원양왕지여위활, 고수백복.)

['양왕' 9년, 정나라가 진(晉)나라 속국인 활나라를 공격하자, '양왕'은 '유손'과 '백복'을 사신으로 보내 

활나라에 대해 공격을 중지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정나라에서는 그들을 감금시켜 버렸다.   

정'문공'은 예전에 '혜왕'이 복위한 뒤 정'려공'에게 작위를 주지 않았던 것을 원망하고 있었으며,
또 '양왕'이 활나라만 보위하는 것을 원망하였으므로 그래서 '백복'을 감금시켰던 것이었다.]
 

王怒, 將以翟伐鄭.  富辰諫曰:“ 凡我周之東徙, 晉· 鄭焉依.   

子穨之亂, 又鄭之由定, 今以小怨棄之!”  王不聽.
(왕노, 장이책벌정.  부진간왈 : "범아주지동사, 진· 정언의.  
 

자퇴지란, 우정지유정, 금이소원기지 ! "  왕불청.)


['양왕'은 분노하여 장차 책나라에 명하여 정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였다.  
 

그러자 '부진'이 간언하기를 : " 무릇 우리 주나라의 왕실을 동쪽으로 옮길때 진나라와 정나라의 힘에

많이 의존하였습니다.  '자퇴'의 반란 때에도 또한 정나라의 도움으로 평정을 하였는데,
지금 하찮은 원망 때문에 정나라를 버리려 하십니까 ! "라고 하였으나.  '양왕'은 듣지 아니하였다.]

十五年, 王降翟師以伐鄭.  王德翟人, 將以其女為后.   

富辰諫曰:“ 平· 桓· 莊· 惠皆受鄭勞, 王棄 親親翟, 不可從. ”  王不聽.
(십오년, 왕항책사이벌정.  왕덕책인, 장이기녀위후.  
 

부진간왈 : " 평· 환· 장· 혜개수전로, 왕기친친책, 불가종. "  왕불청.)


['양왕' 15년, '양왕'은 책나라에 명하여 정나라를 공격하자 정나라는 항복하였다.  
 

'양왕'은 책나라를 고맙게 생각하여 책나라 여인을 왕후로 삼고자 하였다.
'부진'이 간언하기를 : " '평왕', '환왕', '장왕', '혜왕' 모두가 정나라의 도움을 받았는데 
 

폐하께서는 가까운 정나라를 버리고 책나라와 친하려고 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라고 하였으나.  

'양왕'은 듣지 아니하였다.] 

十六年, 王絀翟后, 翟人來誅, 殺譚伯.   

富辰曰:“ 吾數諫不從,  如是不出, 王以我為懟乎?”   乃以其屬死之.
(십육년, 왕출책후, 책인래주, 살담백. 

부진왈 : " 오수간불종.  여시불출, 왕이아위대호 ? "  내이기속사지.)


['양왕' 16년, '양왕'이 책후를 쫓아내자 책나라 사람들이 쳐들어와 '담백'을 죽였다.  
 

'부진'이 말하기를 : " 내가 수 차례 간언을 하였으나 내말을 따르지 않았는데 이와같은 때에 내가 나가지 않는다면,

폐하께서는 내가 원망을 품고 있다고 여기실 것이 아니겠는가 ? "라고 하며. 

부하들을 이끌고 나가서 싸우다가 죽었다.] 

初, 惠后欲立王子帶, 故以黨開翟人, 翟人遂入周.  襄王出奔鄭, 居王于氾.   

子帶立為王, 取襄王所絀翟后與居溫.
(초, 혜후욕립왕자대, 고이당개책인, 챡인수입주.  양왕출분정, 거왕우범.  
 

자대립위왕, 취양왕소출책후여거온.)


[처음부터 혜후는 '태숙대'를 왕으로 옹립하려고 하였으므로 그래서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책나라 사람들에게 길을 열어 주었고, 책나라 사람들은 결국 주나라로 쳐들어 왔다.  

'양왕'이 정나라로 도망쳐 달아나자 정나라는 '양왕'을 "범"지역에 머물게 하였다.
'태숙대'가 왕위에 오르자, '양왕'이 내쫓았던 책후를 받아들여 "온" 땅에서 살았다.]

 

十七年, 襄王告急于晉, 晉文公納王而誅叔帶.  襄王乃賜晉文公珪鬯弓矢, 為伯, 以河內地與晉.

二十年, 晉文公召襄王, 襄王會之河陽· 踐土, 諸侯畢朝.  書諱曰 “ 天王狩于河陽. ”
(십칠년, 양왕고급우진, 진문공납왕이주숙대.  양왕내사진문공규창궁시, 위백, 이하내지여진.

이십년, 진문공소양왕, 양왕회지하양· 천토, 제후필조, 서휘왈 " 천왕수우하양. " )

['양왕' 17년, '양왕'은 진'문공'에게 위급함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자,  

진'문공'은 '양왕'의 청을 받아들여 제후들을 이끌고 와서 '태숙대'를 주살하였다.
'양왕'은 진문공에게 옥으로 만든 홀과 활, 화살, 활집을 하사하고, 백의 작위를 주었으며 
 

하내지역의 "양번", "원성" 등지를 진'문공'에게 하사하였다.

'양왕' 20년, 진'문공'이 '양왕'을 초청하자, '양왕'은 "하양", "천토"에서 진'문공'을 만났으며,  

진'문공'은 제후들을 거느리고 형식적으로 '양왕'에게 조견을 올렸다.   

기록에서는 이일을 꺼려 이르기를 : " 천자가 "하양"에 사냥을 하러 갔다. "라고 하였다.] 

二十四年, 晉文公卒.  三十一年, 秦穆公卒.  三十二年, 襄王崩, 子頃王壬臣立.  

頃王六年, 崩, 子匡王班立.  匡王六年, 崩, 弟瑜立, 是為定王.
(이십사년, 진문공졸.  삼십일년, 진목공졸.  삼십이년, 양왕붕, 자경왕임신립.  
 

경왕육년, 붕, 자광왕반립.  광왕육년, 붕, 제유립, 시위정왕.)


['양왕' 24년, 진'문공'이 죽었다.  '양왕' 31년, 진'목공'이 죽었다.  
 

'양왕' 32년, '양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경왕 '임신'이 즉위하였다.
'경왕' 6년, '경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광왕 '반'이 즉위하였다.    
'광왕' 6년, '광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우 '유'가 즉위하였다.  이 이가 바로 '정왕'이다.]

定王元年, 楚莊王伐陸渾之戎, 次洛, 使人問九鼎.  王使王孫滿應設以辭, 楚兵乃去.   

十年, 楚莊王圍鄭, 鄭伯降, 已而復之.  十六年, 楚莊王卒.
(정왕육년, 초장왕벌육혼지융, 차낙, 사인문구정.  왕사왕손만응설이사, 초병내거.  
 

십년, 초장왕위정, 정백항, 이이복지.  십육년, 초장왕졸.)


['정왕' 6년, 초'장왕'은 "육혼"의 융족을 정벌해 "낙읍"에 이르러 사람을 시켜 구정의 무게를 물어보는 등
 

천하를 도모할 뜻을 보였다.  이에 '정왕'이 사신으로 '왕손만'을 초'장왕'에게 보내 위로하면서  

“ 천하를 다스리는 사람은 덕으로 다스리는 법이지 정(鼎)에 의존하지는 않는 법이지요.
옛날 우임금은 덕이 있기에 인근 부락들에서 금은보화들을 바쳤고 우임금은 그것으로 정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다 신과 만물의 도안을 새겨, 백성들이 재앙을 입지 않도록 신들이 보호하게 했습니다. 
후에 하나라의 '걸왕'은 덕이 없기에 정이 은나라로 넘어갔고 상나라의 '주왕' 역시 폭군으로 
덕이 없기에

정이 주나라로 넘어왔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다시피, 조정이 바르면 정이 아무리 가볍다 할지라도 움직이지 않고,

조정이 어지러우면 정이 아무리 무거워도, 반드시 남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는 법입니다.

그리고 구정의 무게가 얼마인가를 묻지 않는 것이 법도입니다. ”라고 설득하자,  이에 초나라 군대가 철군했다.
'정왕' 10년, 초'장왕'이 정나라 도성 "신정성" 포위하여 밤낮으로 공격하자, 
 

정'양공'은 끝내 초나라군에게 항복하였으나 나중에 다시 되찾았다. '정왕' 16년, 초'장왕'이 죽었다.] 

二十一年, 定王崩, 子簡王夷立.  簡王十三年, 晉殺其君厲公, 迎子周於周, 立為悼公.

十四年, 簡王崩, 子靈王泄心立.  靈王二十四年, 齊崔杼弒其君莊公.   

二十七年, 靈王崩, 子景王貴立.  景王十八年, 后太子圣而蚤卒.
(이십일년, 정왕붕, 자간왕이립.  간왕십삼년, 진살기군려공, 영자주어주, 입위도공.

십사년, 간왕붕, 자영왕설심립.  영왕이십사년, 제죄저시기군장공.   

이십칠년, 영왕붕,  자경왕귀립.  경왕십팔년, 후태자골이조졸. )

['정왕' 21년, '정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간왕 '이'가 즉위하였다. 
'간왕 13년, 진나라에서 그 임금 '여공'을 죽이고, 주나라에 있던 '자주'를 영접하여 세우니, 이 이가 진'도공'이다.

'간왕 14년, '간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영왕 '설심'이 즉위하였다.   

'영왕' 24년, 제나라 '최저'가 그 임금 '장공'을 시해하였다. 
'영왕 27년, '영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경왕 '귀'가 즉위하였다.   
 

'경왕' 18년, 왕후와 태자가 지혜로웠으나 일찍 죽었다. ] 

     

二十年, 景王愛子朝, 欲立之, 會崩, 子丐之黨與爭立, 國人立長子猛為王, 子朝攻殺猛.   

猛為悼王.  晉人攻子朝而立丐, 是為敬王.
(이십년, 경왕애자조, 욕입지, 회붕, 자개지당여쟁립, 국인입장자맹위왕, 자조공살맹. 
 

맹위도왕.  진인공자조이립개, 시위경왕.)


['경왕' 20년, '경왕'은 아들 '조'를 아끼고 사랑하여 옹립하려고 하였지만, 공교롭게도 세상을 떠나자, 
 

왕자 '개'의 무리들과 왕위를 놓고 다투었으나,  그 나라 사람들은 '경왕'의 맏이인 '맹'을 옹립하자,  

'경왕'의 서자 '자조'가 공격해 '맹'을 죽였다. '맹'이 바로 '도왕'이다.
진(晉)나라에서 '자조'를 공격하고 '개'를 세우니, 이 이가 바로 '경왕'이다.]
 

敬王元年, 晉人入敬王, 子朝自立, 敬王不得入, 居澤.   

四年, 晉率諸侯入敬王于周, 子朝為臣, 諸侯城周.  十六年, 子朝之徒復作亂, 敬王奔于晉.
(경왕원년, 진인입경왕, 자조자립, 경왕부득입, 거택.  
 

사년, 진솔제후입경왕우주, 자조위신, 제후성주.  십육년, 자조지도부작란, 경왕분우진.)


['경왕' 원년, 진나라 사람들이 '경왕'을 주나라로 들여 보내려고 하였으나, 
 

'자조'가 다시 왕성으로 들어오자, '경왕'은 주나라에 들어오지 못하고 "택읍"에 머물렀다.
'경왕' 4년, 진나라 '경공'이 제후들의 군대를 이끌고 '경왕'을 주나라로 들여 보내고 
 

'자조'를 신하로 삼자, '자조'는 주나라의 전적을 가지고 초나라로 달아났다.
'경왕'은 진(晉)나라에 부탁해 제후들을 이끌고 주성(周城)을 쌓게 하여 왕도로 삼았다. 
 

'경왕' 16년, '자조'의 무리들이 다시 난을 일으키자, '경왕'은 진나라로 달아났다.] 

十七年, 晉定公遂入敬王于周.  三十九年, 齊田常殺其君簡公.  四十一年, 楚滅陳. 孔子卒.   

四十二年, 敬王崩, 子元王仁立. 元王八年, 崩, 子定王介立. 定王十六年, 三晉滅智伯, 分有其地.
(십칠년, 진정공수입경왕우주.  삼십구년, 제전상살기군간공.  사십일년, 초멸진. 공자졸. 사십이년, 
 

경왕붕, 자원왕인입. 원왕팔년, 붕, 자정왕개립. 정왕십육년, 삼진멸지백, 분유기지. )


['경왕' 17년, 진'정공'이 마침내 '경왕'을 주나라의 왕성으로 돌아가도록 하였다.  
 

'경왕' 39년, 제나라의 '전상'이 그 임금 '간공'을 살해하였다. '경왕' 41년, 초나라가 진나라를 멸하였다. 

'공자'가 세상을 떠났다. '경왕' 42년, '경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원왕 '인'이 즉위하였다.   

'원왕' 8년, '원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정왕 '인'이 즉위하였다. 
'정왕' 16년, 조씨, 한씨, 위씨가 지씨 가문의 수장인 '지백'을 살해하고, 
 

세 가문이 진(晋)나라의 권력과 땅을 삼등분하였다. ]  

二十八年, 定王崩, 長子去疾立, 是為哀王.  哀王立三月, 弟叔襲殺哀王而自立, 是為思王.    

思王立五月, 少弟嵬攻殺思王而自立, 是為考王.  此三王皆定王之子.
(이십팔년, 정왕붕, 장자거질립, 시위애왕.  애왕립삼월, 제숙습살애왕이자립, 시위사왕.  
 

사왕립오월, 소제외공살사왕이자립, 시위고왕.  차삼왕개정왕지자. )


['정왕' 28년, '정왕'이 세상을 떠나자, 맏아들인 '거질'이 즉위하였으니 이 이가 바로 '애왕'이다. 
'애왕'은 즉위한지 3개월 만에 동생 '숙습'에게 살해 당했으며 '숙습'은 스스로 즉위하였으니,
 

이 이가 바로 '사왕'이다. '사왕'은 즉위한지 5개월 만에 셋째 '외'의 공격을 받고 죽자,  

'외'가 스스로 즉위하였으니 이 이가 바로 '고왕'이다.  이 세 왕은 모두 '정왕'의 아들이다. ] 

     

考王十五年, 崩, 子威烈王午立.   考王封其弟于河南, 是為桓公, 以續周公之官職.  

桓公卒, 子威公代立.   威公卒, 子惠公代立, 乃封其少子於鞏以奉王, 號東周惠公. 

威烈王二十三年, 九鼎震.  命韓· 魏· 趙為諸侯.  二十四年, 崩, 子安王敎立.  是歲盜殺楚聲王. 

(고왕십오년, 붕, 자위열왕오립.  고왕봉기제우하남, 시위환공, 이속주공지관직.  

환공졸, 자위공대립.  위공졸, 자혜공대립, 내봉기소자어공이봉왕, 호동주혜공.

위열왕이십삼년, 구정진.  명한· 위· 조위제후.  이십사년, 붕, 자안왕교립.  시세도살초성왕.)


['고왕' 15년, '고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위열왕 '오'이 즉위하였다.  
 

'고왕'이 그 동생을 "하남"에 봉하니 이 이가 바로 서주의 '환공'이며, '주공'의 직무를 잇게 하였다.  

'환공'이 죽자 그 아들 '위공'이 대를 이었다.  '위공'이 죽자, 그 아들 '혜공'이 대를 이었으며,   

'소자반'을 "공"에 봉했는데, '소자반'이 '혜공'의 호를 습용하면서 동주 '혜공'이라 불렀다.

'위열왕' 23년, 구정이 크게 울렸다.  한나라, 위나라, 조나라에 명하여 제후국으로 삼았다.
'위열왕' 24년, '위열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안왕 '교'가 즉위하였다.  
 

이 해에 초'성왕'이 적도들에게 피살되었다.]  

     

安王立二十六年, 崩, 子烈王喜立.   

烈王二年, 周太史儋見秦獻公曰:“ 始周與秦國合而別, 別五百載復合, 合十七歲而霸王者出焉. ”
(안왕립이십육년, 붕, 자열왕희립.  
 

열왕이년, 주태사담견진헌공왈 : " 시주여진국합이별, 별오백재복합, 합십칠세이패왕자출언. " )


['안왕'이 즉위 26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열왕 '희'가 즉위하였다.  
 

'열왕' 2년, 주나라 태사 '담'이 진나라 '헌공'을 만난 자리에서 도참을 진언하기를 : 
“ 처음에 진나라가 주나라와 합치고, 합쳤다가 떨어졌는데, 500년 후에 다시 합치게 되고, 
 

그 때부터 17년이 경과하면 패왕이 나올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十年, 烈王崩, 弟扁立, 是為顯王.  顯王五年, 賀秦獻公, 獻公稱伯.  九年, 致文武胙於秦孝公.    

二十五年, 秦會諸侯於周.  二十六年, 周致伯於秦孝公.   三十三年, 賀秦惠王.
(십년, 열왕붕, 제편립, 시위현왕.  현왕오년, 하진헌공, 헌공칭백.   구년, 치문무조어진효공.   
 

이십오년, 진회제후어주.  이십육년, 주치백어진효공. 삼십삼년, 하진혜공. )


['열왕' 10년, '열왕'이 세상을 떠나자, 아우 '편'이 즉위하니 이 이가 바로 '현왕'이다.   
 

'현왕'은 진'헌공'을 치하하며 그에게 백의 칭호를 내렸다. 
'현왕' 9년, '현왕'은 문, 무왕에게 제사 지낸 고기를 진'효공'에게 보냈다.   
 

'현왕' 25년, 진'효공'이 제후들을 주나라로 불러 회맹하였다.  

'현왕' 26년, 주나라가 진'효공'에게 백의 칭호를 내렸다.

'현왕' 33년, 진'혜왕'을 축하하였다.] 

 

三十五年, 致文武胙於秦惠王.  四十四年, 秦惠王稱王.  其後諸侯皆為王.    

四十八年, 顯王崩, 子慎靚王定立. 慎靚王立六年, 崩, 子赧王延立. 

王赧時東西周分治.  王赧徙都西周. 

(삼십오년, 치문무조어진혜공.  사십사년, 진혜왕칭왕.  기후제후개위왕.

사십팔년, 현왕붕, 자신정왕정립.  신정왕립육년, 붕, 자난왕연립. 

왕난시동서주분치.  왕난사도서주. )

['현왕' 35년, 문, 무왕에게 제사 지낸 고기를 진'혜왕'에게 보냈다.   

'현왕' 44년, 진'혜왕'은 스스로 왕이라 칭하였다.  그 후로 제후들이 모두 왕이라 칭하였다.

'현왕' 48년, '현왕'이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신정왕 '정'이 즉위하였다.   

'신정왕'이 즉위한지 6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난왕 '연'이 즉위하였다.
'난왕' 당시 주나라는 이미 동주와 서주 두 소국으로 분열되어 다스려 지고 있었다.  
 

'난왕'은 명칭만 천자였지 사실은 서주에 붙어 사는 처지였다. ] 

 

西周武公之共太子死, 有五庶子, 毋適立.  司馬翦謂楚王曰:“ 不如以地資公子咎, 為請太子. ” 

左成曰:“ 不可.  周不聽, 是公之知困而交疏於周也.   

不如請周君孰欲立, 以微告翦, 翦請令楚資之以地. ”  果立公子咎為太子.
(서주무공지공태자사, 유오서자, 무적립.  사마전위초왕왈 : " 불여이지자공자구, 위청태자. "

좌성왈 : " 불가.  주불청, 시공지지곤이교소어주야.   

불여청주군숙욕립, 이미고전, 전청령초자지이지. " 과립공자구위태자.)

[서주는 혜공(惠公)의 맏아들인 '무공'이 다스리고 있었으나  태자 '공'은 죽었으며, 다섯 명의 서자가 있었지만,

마땅이 옹립할 자식이 없었다.
이때 '사마전'이 초왕에게 아뢰기를 : " 서주에 땅을 떼어 주고 공자 '구'를 도와서 '구'가 태자가 되도록 

청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라고 하였다.

'좌성'이 말하기를 : " 그건 안됩니다.  주나라가 청을 들어주지 않을 수 있으며,  

그리되면 공의 지혜는 곤궁에 빠지고 주나라와의 관계는 소원해 질 것입니다.
차라리 서주 왕에게 누구를 태자로 세우려 하는지 부탁을 드린 다음 '사마전'에게 자세히 알려 주면, 
 

'사마전'은 서주 왕에게 초나라가 세우려는 자에게 땅을 떼어 주어 돕겠다고 청하는 편이 낫습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과연 서주는 공자 '구'를 태자로 세웠다.]
           
八年, 秦攻宜陽, 楚救之.  而楚以周為秦故, 將伐之.  
 

蘇代為周說楚王曰:“ 何以周為秦之禍也?  言周之為秦甚於楚者, 欲令周入秦也, 故謂‘周秦’也.

周知其不可解, 必入於秦, 此為秦取周之精者也.   

為王計者, 周於秦因善之, 不於秦亦言善之, 以疏之於秦.  周絕於秦, 必入於郢矣. ” 

(팔년, 진공의양, 초구지.  이초이주위진고, 장벌지.

소대위주세초왕왈 : " 하이주위진지화야 ?  언주지위진심어초자, 욕령주입진야, 고위'주진'야.

주지기불가해, 필입어진, 차위진취주지정자야.   

위왕계자, 주어진곤선지, 불어진역언선지, 이소지어진.  주절어진, 필입어영의. " )

 

 ['난왕' 8년, 진나라가 "의양"을 공격하자, 초나라가 구원해 주었다. 

그러나 초나라는 주나라가 진나라와 친하게 지내자, 주나라를 치려고 하였다.
이에 '소대'는 주나라를 위해 초왕에게 유세하기를 : " 어찌하여 주나라와 진나라가 친선을 도모하는 것이
 

재앙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  주나라가 진나라를 위해 출병한 병력이 초나라를 위해 출병한 병력보다 많다는 것은,

주나라가 진나라로 들어가겠다는 것과 같으므로, 그래서 소위 주진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주나라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반드시 진나라로 들어갈 것이니,  

이것은 진나라가 주나라를 취하려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입니다.
제가 대왕을 위해 계책을 드린다면 주나라가 진나라에 의지하면 좋게 대해 주시고, 
 

주나라가 진나라를 위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역시 좋게 대해 주신다면 주나라와 진나라의 사이는 소원해 질 것입니다.

주나라는 진나라와 소통이 끊기면 반드시 초나라의 도읍인 "영"으로 와서 의탁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秦借道兩周之閒, 將以伐韓, 周恐借之畏於韓, 不借畏於秦.  史厭謂周君曰:“何不令人謂韓公叔曰  ‘秦之敢絕周而伐韓者, 信東周也. 公何不與周地, 發質使之楚’? 秦必疑楚不信周, 是韓不伐也.又謂秦曰‘韓彊與周地, 將以疑周於秦也, 周不敢不受’. 秦必無辭而令周不受, 是受地於韓而聽於秦 "
(진차도량주지간, 장이벌한, 주공차지외어한, 불차외어진.  사염위주군왈 : " 하불령인위한공숙왈 

'진지감절주이벌한자, 신동주야. 공하불여주지, 발질사주초' ? 진필의초불신주, 시한불벌야. 

우위진왈'한강여주지, 장이의주어진야, 주불감불수'.  진필무사이령주불수, 시수지어한이청어진. )

[진나라는 서주와 동주의 길을 몰래 빌려서 한나라를 공격하려고 하자, 
 

주나라는 길을 빌려 주려니 한나라가 두렵고, 길을 빌려 주지 않으려니 진나라가 두려웠다.

'사염'이 주나라 왕에게 아뢰기를  : " 어찌하여 한나라를 위해 '공숙'에게 사람을 보내지 않으십니까 ?
그에게 말하기를 ' 진나라가 감히 주나라를 뛰어 넘어 한나라를 공격하려는 것은 동주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는 어찌하여 주나라에 땅을 주지 않고 볼모를 초나라에 보내지 않습니까 ?  

그리하면 진나라는 반드시 초나라를 의심하여 주나라를 믿지 않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한나라는 정벌되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십시오. 

또한 진나라에게 말하기를 ' 한나라가 억지로 주나라에게 땅을 주는 것은 진나라가 주나라를 의심하게 하려는 것이니,

주나라가 땅을 받지 않을 수 없기 때문 입니다.'라고 하십시오.   

진나라는 틀림없이 할 말이 없을 것이며 주나라가 땅을 받지 말라고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러면 한나라에게는 땅을 받을 수 있고 진나라에게는 명을 들어줄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秦召西周君, 西周君惡往, 故令人謂韓王曰:“ 秦召西周君, 將以使攻王之南陽也,  

王何不出兵於南陽?  周君將以為辭於秦. 周君不入秦, 秦必不敢踰河而攻南陽矣. ”
(진소서주군, 서주군오왕, 고령인위한왕왈 : " 진소서주군, 장이사정왕지남양야, 
 

왕하불출병어남양 ?  주군장이위사어진. 주군불입진, 진필불감유하이공남양의. " )


[진나라는 서주의 왕을 불렀으나 서주의 왕은 가기를 기피하며 한나라 왕에게 사람을 보내 말하기를 : 
 

" 진나라는 서주의 왕을 부르는 것은, 앞으로 대왕의 "남양"을 공격하려는 것인데, 

대왕께서는 어찌하여 "남양"에 군대를 출병시키지 않는 것입니까 ? 

그러면 주나라 왕은 이를 구실로 진나라에 가지 않겠다고 거절할 것입니다. 주나라 왕이 진나라에 가지 않으면, 

진나라는 틀림없이 감히 황하를 건너 "남양"을 공격하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東周與西周戰, 韓救西周.  或為東周說韓王曰:“ 西周故天子之國, 多名器重寶.   

王案兵毋出, 可以德東周, 而西周之寶必可以盡矣. " 

(동주여서주전, 한구서주.  혹위동주세한왕왈 : " 서주고천자지국, 다명기중보.   

왕안병무출, 가이덕동주, 이서주지보필가이진의. )

[동주와 서주가 전쟁을 하자, 한나라는 서주를 구원하였다. 

어떤 사람이 동주를 위해 한나라 왕에게 유세하기를 : " 서주는 옛날부터 천자의 나라로 이름난 그릇과 귀중한 보물이

많이 있습니다.  대왕께서 군대를 인솔하여 출병하지 않는다면, 동주는 대왕의 은덕에 감격할 것이며, 
서주의 보물은 틀림없이 한나라가 전부 차지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王赧謂成君.  楚圍雍氏, 韓徵甲與粟於東周, 東周君恐, 召蘇代而告之.  代曰:“ 君何患於是.   

臣能使韓毋徵甲與粟於周, 又能為君得高都. ” 周君曰:“ 子茍能, 請以國聽子. ”
(왕난위성군.  초위옹지, 한징갑여속어동주, 동주군공, 소소대이고지.  대왈 : " 군하환어시.  
 

신능사한무징갑여속어주, 우능위군득고도. " 주군왈 : " 자구능, 청이국청자. ")


['난왕'은 이름만 왕일 뿐 허수아비 왕이었다.  초나라가 "옹지"를 포위하자, 
 

한나라는 동주에서 갑옷과 식량을 징발하였으며 동주의 왕은 밤잠까지 설쳐가며 두려움에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

결국 '소대'를 불러 이 일을 알렸다. '소대'가 아뢰기를 : "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이 일을 염려하십니까 ?

신이 사신으로 한나라에 가서 주나라의 갑옷과 식량을 징발하지 못하도록 하고,

또한 폐하께서는 가만히 앉아서 "고도" 땅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자. 

주나라 군왕이 말하기를 : " 그대가 진실로 그 일을 할 수만 있다면, 나라를 그대에게 맡겨 관리하도록 하겠소. "

라고 하였다. ]

代見韓相國曰:“ 楚圍雍氏, 期三月也, 今五月不能拔, 是楚病也.   

今相國乃徵甲與粟於周, 是告楚病也. ”
(대견한상국왈 : " 초위옹지, 기삼월야, 금오월불능발, 시초병야.  
 

금상국내징갑여속어주, 시고초병야. ")


['소대'는 한나라로 가서 상국 '공손치'를 만나 말하기를 : " 초나라가 "옹지"를 포위하면서 공격을 가하면
 

석 달 안에 한나라를 손에 넣을 수 있다고 하였는데 하지만 지금 다섯 달째 "옹지"를 공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초나라의 군사들이 그만큼 피로해 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 상국께서 주나라에서 갑옷과 식량을 징발하는 것은,

초나라에게 한나라가 지쳐 있음을 알려주는 것과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

韓相國曰:“ 善.  使者已行矣. ”  代曰:“ 何不與周高都?”   

韓相國大怒曰:“ 吾毋徵甲與粟於周亦已多矣, 何故與周高都也?”
(한상국왈 : " 선.  사자이행의. "  대왈 : " 하불여주고도 ? "  
 

한상국대노왈 : " 오무징갑여속어주역이다의, 하고여주고도야 ? ")


[한나라 상국 '공손치'가 말하기를 : " 좋은 생각입니다.  그러나 사신이 이미 떠났습니다. "라고 하였다.
'소대'가 말하기를 : " 어찌하여 주나라에게 "고도"를 주지 않는 것입니까 ? "라고 하자.
한나라 상국은 크게 화를내며 말하기를 : " 내가 주나라의 갑옷과 식량을 징발하지 않는 것으로도 
충분한데, 

어찌하여 뜬금없이 "고도"를 주나라에 주라는 것이오 "라고 하였다. ]

代曰:“ 與周高都, 是周折而入於韓也, 秦聞之必大怒忿周, 即不通周使, 是以獘高都得完周也.  

曷為不與?”  相國曰:“ 善. ”  果與周高都.
(대왈 : " 여주고도, 시주절이입어한야, 진문지필대노분주, 즉불통주사, 시이폐고도득완주야.  
 

갈위불여 ? "  상국왈 : " 선. "  과여주고도. )


['소대'가 말하기를 : " "고도"를 주나라에 주면, 주나라는 틀림없이 한나라에 의지할 것입니다. 
그리고 진나라가 이 사실을 알면 틀림없이 주나라와 맺은 약속의 신표인 부절까지 없애버리고 
 

주나라와의 왕래를 끊을 것입니다. 이로써 폐허가 된 "고도"를 내주고 주나라를 완전히 얻는 것입니다.  

이 일을 어찌 마다 할 수 있겠습니까 ? "라고 하자.
상국 '공손치'가 말하기를 : " 기꺼이 받아들여야지요. "라고 하며,  
 

주나라의 갑옷과 식량의 징발을 철회하고 "고도"를 주나라에 떼어 주었다. ] 

     

三十四年, 蘇厲謂周君曰:“ 秦破韓· 魏, 撲師武, 北取趙藺· 離石者, 皆白起也.

是善用兵, 又有天命.  今又將兵出塞攻梁, 梁破則周危矣. 君何不令人說白起乎?

曰‘楚有養由基者, 善射者也.  去柳葉百步而射之, 百發而百中之. 左右觀者數千人, 皆曰善射.   

有一夫立其旁, 曰 ' 善, 可教射矣 '. 養由基怒, 釋弓搤劍, 曰 '客安能教我射乎'?

客曰 '非吾能教子支左詘右也.  夫去柳葉百步而射之, 百發而百中之, 不以善息, 少焉氣衰力倦,

弓撥矢鉤, 一發不中者, 百發盡息' .今破韓· 魏, 撲師武, 北取趙藺· 離石者, 公之功多矣.   

今又將兵出塞, 過兩周, 倍韓, 攻梁, 一舉不得, 前功盡棄.  公不如稱病而無出. ”

(삼십사년, 소여위주군왈 : " 진파한· 위, 박사무, 북취조린· 이석자, 개백기야. 

시선용병, 우유천명. 금우장병출새공량, 양파즉주위의. 군하불령인설백기호?

왈'초유양유기자, 선사자야.  거유엽백보이사지, 백발이백중지. 좌우관자수천인, 개왈선사.

유일부립기방, 왈 ' 선, 가교사의 '. 양유기노, 석궁액검, 왈 '객안능교아사호 '?

객왈 '비오능교자지좌굴우야.  부거유엽백보이사지, 백발이백중지, 불이선식, 소언기쇠역권,

궁발시구, 일발불중자, 백발진식' . 금파한· 위, 박사무, 북취조린· 이석자, 공지공다의.   

금우장병출새, 과량주, 배한, 공량, 일거부득, 전공진기.  공불여칭병이무출. " )

 

['난왕' 34년, '소여'가 주나라 군왕에게 말하기를 : " 진나라가 한나라와 위나라를 무찌르고,

위나라 장수 '사무'를 공격하여, 북쪽으로 조나라 "린"과 "이석"을 취한 것은 모두 '백기'의 공로입니다.   

이것은 그가 용병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또한 하늘의 명도 있는 것입니다. 

지금 그는 또 병사들을 이끌고 "이관새"를 나와 양나라를 공격하려는데, 양나라가 무너지면 주나라가 위험합니다.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백기'에게 사람을 보내 유세하지 않으십니까 ?

'백기'에게 사람을 보내 이렇게 말하게 하십시오 '초나라에는 '양유기'라는 사람이 있는데 활을 아주 잘 쏩니다. 

백보 밖에서 활을 쏘아 버드나무의 잎을 꿰뚫었으며 백발을 쏘면 백발 모두 명중시킵니다.   

주위에서 지켜보던 수천명의 사람들이 모두 잘 쏜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옆에 서있던 한 사람이 말하기를 ' 훌륭하도다, 내가 활쏘기를 가르칠만 하도다. '
그러자 '양유기'는 화가 나서 활을 내려 놓고는 칼을 집어 들고 말하기를 '떠돌아 다니는 나그네 처지에 
 

어떻게 나에게 활쏘기를 가르칠 수 있겠는가 ?

나그네가 말하기를 '내가 그대에게 왼손으로 지탱하고 오른손으로 시위를 당기는 방법을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이

아니오.  대체로 백보 밖에서 버드나무의 잎을 쏘아 백발 백중한다 해도 잘 쏘고 나서 쉬지 않는다면,

조금 지나면 기운이 쇠해지고 체력이 지쳐서 활은 휘어지고 화살은 꼬부장해져 한발이라도 쏘아서 명중하지 못한다면

이전에 쏜 백발은 전부 쓸모없게 될 것이오 ' 지금 한나라와 위나라를 무찌르고, 위나라 장수 '사무'를 공격하여,  

북쪽으로 조나라 "린"과 "이석"을 취하였으니 그대의 공적은 대단히 크오.
그런데 지금 또 병사들을 이끌고 "이관새"를 나와서 동주와 서주를 지나 한나라를 등지고 
양나라를 공격하려고 하는데

한번 공격하여 승리하지 못하면, 이전에 세운 공적은 모두 버려질 것이오.   

그렇다면 그대는 병을 핑계로 출병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이오 "라고 시키십시오. ]

四十二年, 秦破華陽約.  馬犯謂周君曰:“ 請令梁城周. ”  乃謂梁王曰:“ 周王病若死, 

則犯必死矣. 犯請以九鼎自入於王, 王受九鼎而圖犯. ” 梁王曰:“ 善. ” 遂與之卒, 言戍周.
(사십이년, 진파화양약.  마범위주군왈 : " 청령양성주. "  내위양왕왈 : " 주왕병약사, 
 

즉범필사의. 범청이구정자입어왕, 왕수구정이도범. " 양왕왈 : " 선. " 수여지졸, 언수주.)

['난왕' 42년, 진나라는 "화양"의 조약을 깨뜨렸다.  '마범'이 주나라 '난왕'에게 말하기를 :  

" 청컨대 양나라에 령을 내려 주나라의 성을 쌓게 하십시오. "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이내 양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 " 주나라 왕이 병이 나서 돌아가시면, 이 '마범'도 반드시 죽게 될 것입니다. 

저는 구정을 대왕께 바치자고 청할 것이니, 대왕께서는 구정을 받으시면 저를 살려 주십시오. "라고 하자.
양왕이 대답하기를 : " 좋소. "라고 하였다.  그래서 양나라 왕은 군대를 보내 주나라를 지키게 하였다. ]
 


因謂秦王曰:“ 梁非戍周也, 將伐周也.  王試出兵境以觀之. ”  秦果出兵.            
又謂梁王曰:“ 周王病甚矣, 犯請后可而復之.  今王使卒之周, 諸侯皆生心, 后舉事且不信.  
 

不若令卒為周城, 以匿事端. ”  梁王曰:“ 善. ”  遂使城周.
(인위진왕왈 : " 양비수주야, 장벌주야.  왕시출병경이관지. "  진과출병.

우위양왕왈 : " 주왕병심의, 범청후가이복지.  금왕사졸지주, 제후개생심, 후거사차불신.  

불약령졸위주성, 이닉사단. "  양왕왈 : " 선."  수사성주.)

[이러한 연유로 '마범'이 진나라 왕에게 아뢰기를 : " 양나라는 주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장차 주나라를 정벌하려는 것입니다. 대왕께서는 시험삼아 군대를 국경으로 파견하여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자.  진나라는 과연 군대를 보냈다.

'마범'은 또 양나라 왕에게 말하기를 : " 주나라 왕의 병환이 위중하니, 제가 나중에 구정을 보내는 것이 가능한지

청하여 다시 답을 드리겠습니다. 지금 대왕께서 군대를 주나라에 보낸 일에 대하여 제후들이 모두 의심하고 있으므로,

나중에 무슨 일을 하더라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차라리 군대에 령을 내려 주나라 성을 쌓게 하여 이 일의 실마리를 감추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라고 하자.
양왕이 대답하기를 : " 좋소. "라고 하면서,  마침내 주나라에 성을 쌓게 하였다.]
 

四十五年, 周君之秦客謂周最曰:“ 公不若譽秦王之孝, 因以應為太后養地, 秦王必喜,  

是公有秦交.  交善, 周君必以為公功.  交惡, 勸周君入秦者必有罪矣. ”
(사십오년, 주군지진객위주최왈 : " 공불약예진왕지효, 인이응위태후양지, 진왕필희, 
 

시공유진교.  교선, 주군필이위공공.  교오, 권주군입진자필유죄의. ")

['난왕' 45년, 주나라 왕이 진나라에 갔을 때 빈객이 주나라 공자 '주최'에게 말하기를 : 

" 공께서는 진나라 왕의 효성을 찬양하여, "응읍"을 진나라 태후의 식읍으로 되게 한다면, 

진나라 왕은 반드시 기뻐할 것이고 이로써 공은 진나라와 친분을 쌓게 될 것입니다.
사이가 좋아지면 주왕은 틀림없이 공의 공적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사이가 나빠지면 주왕에게 진나라에 들어 가도록 권유한 사람은 반드시 죄가 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秦攻周, 而周聚謂秦王曰:“ 為王計者不攻周.  攻周, 實不足以利, 聲畏天下.  

天下以聲畏秦, 必東合於齊. 兵獘於周. 合天下於齊, 則秦不王矣.   

天下欲獘秦, 勸王攻周.  秦與天下獘, 則令不行矣. ” 

(진공주, 이주취위진왕왈 : " 위왕계자불공주.  공주, 실부족이리, 성외천하.   

천하이성외진, 필동합어제.  병폐어주.  합천하어제, 즉진불왕의.   

천하욕폐진, 권왕공주. 진여천하폐, 즉령불행의. " )

[진나라가 주나라를 공격하자, '주최'가 진왕에게 아뢰기를 : " 대왕을 위한 계책은 주나라를 공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실제로 이익을 챙기기에 부족하며 천하를 두렵게 한다는 소리만 들을 뿐입니다.

천하가 그 명성으로 진나라를 두렵게 여기게 되면 반드시 천하는 동쪽의 제나라와 힘을 합칠 것입니다. 

그러면 대왕의 군대는 주나라에 갇혀 버리고 말 것입니다.  

천하가 제나라와 힘을 합치면, 진나라는 왕이라 불리지도 못할 것입니다.   

천하는 진나라가 피폐해 지기를 바라기 때문에 대왕께 주나라를 공격하도록 권한 것입니다.   

진나라와 천하가 피폐해지면, 정령은 실행되지 못할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  

五十八年, 三晉距秦.  周令其相國之秦, 以秦之輕也, 還其行.

客謂相國曰:“ 秦之輕重未可知也. 秦欲知三國之情. 公不如急見秦王曰‘請為王聽東方之變’,  

秦王必重公. 重公, 是秦重周, 周以取秦也;齊重, 則固有周聚以收齊:是周常不失重國之交也. ” 

秦信周, 發兵攻三晉.
(오십팔년, 삼진거진.  주령기상국지진, 이진지경야, 환기행. 
 

객위상국왈 : " 진지경중미가지야. 진욕지삼국지정. 공불여급현진왕왈'청위왕청동방지변'.  

진왕필중공. 중공, 시진중주, 주이취진야 ; 제중, 즉고유주취이수제 : 시주상부실중국지교야. "   

진신주, 발병공삼진. )

['난왕' 58년, 한, 조, 위나라가 힘을 합쳐 진나라에 저항하였다. 

주나라는 상국으로 하여금 진나라에 가게 하였으나, 진나라에서 그를 무시하자, 그 길로 되돌아 왔다. 
빈객이 상국에게 말하기를 : " 진나라가 공을 가벼이 여기는지 중하게 여기는지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진나라는 세 나라의 정세를 알고 싶어 합니다. 공께서 서둘러 진왕을 알현하고 진왕에게 아뢰기를 

'대왕을 위해 동쪽에서 일어난 일을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진나라는 틀림없이 공을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공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진나라가 주나라를 소중히 여기는 것이니,

이는 주나라가 진나라의 환심을 얻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  

제나라가 주나라를 소중히 여기게 된 것은 이미 '주최'가 제나라에서 신임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 
이것은 주나라는 항상 강국과 친분을 잃지 않을 수 있습니다. "라고 하였다.  
 

진나라는 주나라를 믿고, 군대를 출병시켜 삼진을 공격하였다. ) 

     

五十九年, 秦取韓陽城負黍, 西周恐, 倍秦, 與諸侯約從, 將天下銳師出伊闕攻秦, 令秦無得通陽城. 

秦昭王怒, 使將軍摎攻西周. 西周君奔秦, 頓首受罪, 盡獻其邑三十六, 口三萬.   

秦受其獻, 歸其君於周.
(오십구년, 진취항양성부서, 서주공, 패진, 여제후약종, 장천하예사출이궐공진, 령진무득통양성. 
 

진소왕노, 사장군규공서주. 서주군분진, 논수수죄, 진헌기읍삼십육, 구삼만.  진수기헌, 귀기군어주. )

 

['난왕' 59년, 진나라가 한나라의 "양성", "부서"를 취하자, 서주는 두려워 하면서도 진나라와 등지고 제후들과

합종을 맺었으며, 천하의 정예부대를 "이궐"로 보내 진나라를 공격하여 진나라 군대가 "양성"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였다.  진'소왕'은 펄펄뛰며 장군 '규'를 시켜 서주를 공격하였다.   

서주의 왕은 재빨리 진나라로 가서 머리가 땅에 닿도록 조아리며 과실을 인정하고,

서주의 36개 읍과 백성 3만여 명을 헌상하였다.  진나라는 그것을 받아들이고 서주의 왕을 돌려 보냈다. ]

周君王赧卒, 周民遂東亡.  秦取九鼎寶器, 而遷西周公於憚狐.   

後七歲, 秦莊襄王滅東(西)周.  東西周皆入于秦, 周既不祀.
(주군왕난졸, 주민수동망.  진취구정보기, 이천서주공어탄호.  
 

후칠세, 진장양왕멸동(서)주.  동서주개입우진, 주기불사. )

[주나라 '난왕'이 죽자, 주나라 백성들은 마침내 동쪽으로 달아났다.  

진나라는 구정과 진귀한 기물들을 취하자,  서주는 도읍을 "탄호"로 옮겼다.
7년이 지난후, 진나라 '장양왕'은 동(서)주를 멸망시켰다. 

동주와 서주는 모두 진나라를 섬기므로써, 주나라는 더 이상 제사를 지낼 수 없게 되었다. ] 

太史公曰:學者皆稱周伐紂, 居洛邑, 綜其實不然.  武王營之, 成王使召公卜居, 居九鼎焉,

而周復都豐鎬.  至犬戎敗幽王, 周乃東徙于洛邑. 所謂周公葬於畢, 畢在鎬東南杜中. 秦滅周.

漢興九十有餘載, 天子將封泰山, 東巡狩至河南, 求周苗裔, 封其後嘉三十里地,  

號曰周子南君, 比列侯, 以奉其先祭祀.

(태사공왈 : 학자개칭주벌주, 거낙읍, 종기실불연.  무왕영지, 성왕사소공복거, 거구정언,

이주부도풍호.  지견융패유왕, 주내동사우낙읍. 소위주공장어필, 필재호동남두중. 진멸주.

한흥구십유여재, 천자장봉태산, 동순수지하남, 구주묘예, 봉기후가삼십리지,  

호왈주자남군, 비열후, 이봉기선제사. )

 

[태사공이 말하기를 : 학자들은 모두 주나라가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을 정벌하고 "낙읍"에 머물렀다고

말하지만, 종합적으로 보면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무왕'이 "낙읍"으로 갈 것을 계획하였고, 

'성왕'이 소공을 시켜 점을 보게 한 뒤에 자리를 잡고 구정을 가져다 두었으나,
주나라는 다시 "풍읍"과 "호경"에 도읍을 정하였다.  마침내 견융이 '유왕'을 무너뜨리자, 
 

주나라는 이내 동쪽의 "낙읍"으로 이사하였다. 이른바 '주공'의 장례를 "필"에서 지냈다고 하는데,  

"필"은 "호경"의 동남쪽 "두중"에 있다. 진나라가 주나라를 멸망시켰다. 

​한나라가 시작된지 90여 년이 지난뒤 천자가 "태산"에 가서 제사를 지내려고 동쪽으로 순수하다가 

"하남"에 이르렀을때, 주나라의 후손을 찾아 그 후손인 '가'에게 30리의 땅을 봉지로 주고,  

그에게 '주자남군'이라는 칭호를 내렸는데, 이는 열후와 대등한 직책이며, 

마침내 조상의 제사를 지낼 수 있게 하였다. ]  

 

 ※ 주조(周朝) 제왕 연표 

     시호(諡号)          이름           재위(在位)

     무왕(武王)          姫発           BC 1046 추정~BC 1043 추정
     성왕(成王)          姫誦           BC 1043 추정~BC 1021 추정
     강왕(康王)          姫釗           BC 1021 추정~BC 996 추정
     소왕(昭王)          姫瑕           BC 996 추정~BC 977 추정
     목왕(穆王)          姫満             BC 977 추정~BC 922 추정
     공왕(共王)          姫繄扈          BC 922 추정~BC 900 추정
     의왕(懿王)          姫囏           BC 900 추정~BC 892 추정
     효왕(孝王)          姫辟方          BC 892 추정~BC 886 추정
     이왕(夷王)          姫燮           BC 886 추정~BC 878 추정
     려왕(厲王)          姫胡           BC 878 추정~BC 842
     선왕(宣王)          姫静           BC 828~BC 782
     유왕(幽王)          姫宮涅          BC 782~BC 771
     평왕(平王)          姫宣臼          BC 771~BC 720
     환왕(桓王)          姫林           BC 720~BC 697
     장왕(荘王)          姫佗           BC 697~BC 682
     리왕(釐王)          姫胡斉          BC 682~BC 677
     혜왕(恵王)          姫閬           BC 677~BC 652
     양왕(襄王)          姫郑           BC 652~BC 619
     경왕(頃王)          姫壬臣          BC 619~BC 613
     광왕(匡王)          姫班           BC 613~BC 607
     정왕(定王)          姫瑜           BC 607~BC 586
     간왕(简王)          姫夷           BC 586~BC 572
     영왕(霊王)          姫泄心          BC 572~BC 545
     경왕(景王)          姫貴           BC 545~BC 520
     도왕(悼王)          姫猛           BC 520
     경왕(敬王)          姫匄           BC 520~BC 476
     원왕(元王)          姫仁           BC 476~BC 469
     정정왕(貞定王)       姫介           BC 469~BC 441
     애왕(哀王)          姫去疾          BC 441~BC 440
     사왕(思王)          姫叔           BC 440
     고왕(考王)          姫嵬           BC 440~BC 426
     위열왕(威烈王)       姫午           BC 426~BC 402
     안왕(安王)          姫驕           BC 401~BC 376
     열왕(烈王)          姫喜           BC 376~BC 369
     현왕(顕王)          姫扁           BC 369~BC 321
     신정왕(慎靚王)       姫定           BC 321~BC 315
     난왕(赧王)          姫延           BC 315~BC 256
     동주군(东周君)       姫傑           BC 256~BC 249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