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日者列傳

第 六十七. 日者列傳(일자열전)

덕치/이두진 2024. 1. 14. 18:18

 

         第 六十七.  日者列傳(일자열전)  

 
自古受命而王,王者之興何嘗不以卜筮決於天命哉!其於周尤甚,及秦可見.
代王之入,任於卜者.  太卜之起,由漢興而有. 
[예로부터 천명을 받은 자만이 왕이 되었지만, 왕자(王者)가 일어날 때 일찍이
복서(卜筮)로써 천명을 판단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그런 일은 주(周)나라 때 특히 성했고, 진(秦)나라에 이르러서도 볼 수가 있다.  
대왕이 한(漢)나라의 제위에 오를 때에도 복자(卜者)의 판단에 의해서 결정했다.  
태복(太卜)은 한나라가 일어났을 때부터 있었다.]

司馬季主者,楚人也. 卜於長安東市.  宋忠為中大夫,賈誼為博士,同日俱出洗沐,
相從論議,誦易先王聖人之道術,究遍人情,相視而嘆.
賈誼曰:「吾聞古之聖人,不居朝廷,必在卜醫之中. 
今吾已見三公九卿朝士大夫,皆可知矣.  試之卜數中以觀采.」
[사마계주는 초(楚)나라 사람이다. 그는 장안의 동시(東市)에서 점을 치고 있었다.
송충은 중대부였고, 또 가의는 박사(博士)였다. 송충과 가의는 같은 날 휴가를 나왔다.  
함께 걸으면서 담론하는 사이에 『역경(易經)』이 선왕과 성인(聖人)의 도술(道術)로서
두루 세상 물정에 통해 있는 것을 말하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탄식했다.
가의가 말하기를 : “ 제가 듣기로는 옛날 성인은 조정에 있지 않으면 점쟁이나 의원
중에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제가 삼공과 구경을 비롯해 조정의 사대부들을 보건대,
모두 성인이 아님이 분명합니다. 한번 시험삼아 복자 중에서 찾아보아
그 풍채를 살펴봅시다.”라고 하였다.] 

二人即同輿而之市,游於卜肆中.  天新雨, 道少人, 司馬季主閒坐, 弟子三四人侍,
方辯天地之道, 日月之運,  陰陽吉凶之本.  二大夫再拜謁. 
司馬季主視其狀貌, 如類有知者, 即禮之, 使弟子延之坐.  
坐定,司馬季主復理前語,分別天地之終始,日月星辰之紀,差次仁義之際,
列吉凶之符,語數千言,莫不順理. 
[두 사람은 즉시 수레를 함께 타고 시장으로 가서 점집을 찾았다.
마침 하늘에서 비가 내려 길에 사람이 적었다.  
사마계주는 한가롭게 자리에 앉아 있었고, 서너 명의 제자가 옆에서 모시고 있었다.
마침 천지의 도와 일월의 운행, 음양길흉의 근본에 대해서 논하고 있는 중이었다.
두 대부가 재배를 하자, 사마계주는 두 사람의 용모와 태도에서 학식이 있는
사람들인 것을 알고 정중하게 답례한 뒤 제자로 하여금 안내해 자리에 앉게 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사마계주는 지금까지 하고 있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는 천지의 처음과 끝, 일월성신의 운행규칙을 밝히고 인의(仁義)의 단계를
순서에 따라서 질서 있게 길흉의 징험을 열거하고 있었는데, 
그 말이 수천 마디에 이르렀지만 모두가 이치에 벗어난 것은 한마디도 없었다.]

宋忠、賈誼瞿然而悟,獵纓正襟危坐,曰:「吾望先生之狀,聽先生之辭,
小子竊觀於世,未嘗見也.  今何居之卑,何行之汙?」 
司馬季主捧腹大笑曰:「觀大夫類有道術者,今何言之陋也,何辭之野也!
今夫子所賢者何也? 所高者誰也?今何以卑汙長者?」
[송충과 가의는 문득 깨달은 바가 있어서 옷매무새를 바로 한 다음 단정히 앉아서 
말하기를 : “ 선생의 모습을 뵈옵고 또 선생의 말씀을 들었는데
우리가 가만히 세상을 보니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 어째서 이렇게 낮은 처지에 계시면서 천한 일을 하고 계십니까?” 하자.
사마계주는 배를 싸안고 크게 웃으면서 말하기를 : “보아하니 공들은 도덕과 학문이
있는 분들 같은데, 지금 어찌 이렇게 식견이 고루하고 천박하며, 그 말이 어찌 이렇게
촌스러운 것이오 ? 지금 공들이 어질다고 하는 것은 어떤 것이며, 높다고 여기는
사람은 누구요? 지금 무엇으로 나를 낮고 비천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오?”하였다.] 

二君曰:「尊官厚祿,世之所高也,賢才處之.  今所處非其地,故謂之卑. 
言不信,行不驗,取不當,故謂之汙.  夫卜筮者,世俗之所賤簡也. 
世皆言曰:『夫卜者多言誇嚴以得人情,虛高人祿命以說人志,擅言禍災以傷人心,
矯言鬼神以盡人財,厚求拜謝以私於己.』 此吾之所恥,故謂之卑汙也.」
[두 사람은 말하기를 : “ 높은 벼슬과 후한 봉록은 세상 사람들이 높이는 것이니,
재능이 뛰어난 자가 그런 지위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선생께서는 그런 지위에
계시지 아니하므로 비천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점쟁이가 하는 말은 미덥지 못하고
행하는 행동은 본받을 것이 없으며, 또 부당한 사례를 취함으로써 천하다고 말한
것입니다. 대체로 점이라는 것은 세상에서 천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점치는 자는 말이 많고, 과장하며 허탄해 사람의
마음을 맞추고, 허황되게 사람의 운명을 과대하게 꾸며서 사람의 마음을 들뜨게 하고,
제 마음대로 환난이 있다고 늘어 놓아서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귀신을 빙자해 남의 재물을 뜯어내고, 후한 사례를 요구해 자신의 이익을 채우고 있다’
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우리들이 부끄러워하는 바이고,
그래서 낮고 비천하다고 한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司馬季主曰:「公且安坐. 公見夫被髪童子乎?日月照之則行,不照則止,
問之日月疵瑕吉凶,則不能理.  由是觀之,能知別賢與不肖者寡矣.  
賢之行也,直道以正諫,三諫不聽則退.
其譽人也不望其報,惡人也不顧其怨,以便國家利眾為務.  
故官非其任不處也,祿非其功不受也;見人不正, 雖貴不敬也;
見人有污, 雖尊不下也;得不為喜, 去不為恨;非其罪也, 雖累辱而不愧也.
[사마계주는 말하기를 : “공들은 편안히 앉아 우선 제 말을 들어보십시오.
그대들은 저 더벅머리 아이들을 보았소?  
해와 달이 그들을 비추면 밖에 나가고, 비추지 않으면 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 일식이나 월식 또는 길흉에 대해서 물으면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것으로써도 알 수 있듯이,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를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흔치 않습니다. 어진 자가 하는 일은 바른 도를 따라
바른 말로써 세 번 의견을 간해도 듣지 않을 때에는 물러나는 것입니다.  
남을 칭찬할 때에는 그 보상을 바라지 않고, 남을 미워할 경우에도 원망을 살 것을
염두에 두지 않습니다. 또한 나라에 편리하고 백성들에 이익이 되는 것에 힘씁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직이 적임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봉록은 자기의 공로에 알맞지 않다고 생각되면 받지 않습니다.  
남의 부정을 보면 비록 그가 높은 지위에 있더라도 공경하지 않으며,
남의 더러운 행위가 있으면 ​아무리 존귀한 자라도 몸을 굽히지 않습니다.
얻어도 기뻐하지 않고, 떠나도 원통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지은 죄가 아니면 치욕을 당해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今公所謂賢者,皆可為羞矣.  卑疵而前,孅趨而言;相引以勢,相導以利;
比周賓正,以求尊譽,以受公奉;事私利,枉主法,獵農民;
以官為威,以法為機,求利逆暴:譬無異於操白刃劫人者也.  
初試官時,倍力為巧詐,飾虛功執空文以罔主上,用居上為右;
試官不讓賢陳功,見偽增實,以無為有,以少為多,以求便勢尊位; 
食飲驅馳,從姬歌兒,不顧於親,犯法害民,虛公家:此夫為盜不操矛弧者也,
攻而不用弦刃者也,欺父母未有罪而弒君未伐者也.  何以為高賢才乎? 
[지금 공들이 말한 소위 현자들이란 모두가 부끄러워해야 할 자들 뿐입니다.
그들은 자기 몸을 지나치게 낮추어서 나가고, 너무 겸손하게 말하고,
권세로 서로 끌어 들이고, 이익을 미끼로 서로를 이끌고, 패거리를 만들어서
올바른 사람을 배척해 영예를 추구하고, 나라의 봉록을 받으면서도 사사로운 이익만
추구하며 법을 왜곡해서 농민들로부터 무거운 세금을 거두어들입니다.
또 관직을 위세를 부리는 수단으로 삼고,  
법을 사람을 해치는 도구로 삼아 이익을 쫓아 포악한 짓을 합니다.  
이들을 비유하자면 칼을 빼들고 사람을 위협하는 강도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처음 벼슬에 임명되었을 때에는 교묘하게 거짓으로 실력을 두 배로 보여주며,
있지도 않은 공적을 말하고, 있지도 않은 일을 서류로 꾸며서 임금의 눈을 속이려
하고 있습니다. 남의 위에 있는 것을 좋은 것으로 여겨 벼슬에 임명될 때에는
어진 이에게 양보하지 않습니다. 공적을 늘어놓는 데 거짓을 보고하기도 하며,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하고, 적은 것을 많은 것으로 하여 자기에게 유리한 권세와
높은 자리를 구합니다. 그리고 술과 음식으로 수레와 말을 타고 놀러 돌아다니며,
미녀와 가동(歌童)을 기르되 부모는 돌보지 않고, 법을 어겨서 백성들을 해롭게 하고,
나라를 텅비게 만듭니다. 이는 도둑질​을 하되 창이나 활을 가지지 않은 것일 뿐이며,
칼과 화살을 쓰지 않고 공격하는 것일 뿐입니다.
부모를 속이는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고, 주군을 시해하고도 벌을 받지 않습니다.   
무엇으로 그 자들을 높고 어진 재능을 가진 자들이라고 평가하는 것입니까?

「盜賊發不能禁,夷貊不服不能攝,姦邪起不能塞,官秏亂不能治,四時不和不能調,
歲穀不孰不能適.  才賢不為,是不忠也;才不賢而託官位,利上奉,妨賢者處,
是竊位也;有人者進,有財者禮,是偽也.  子獨不見鴟梟之與鳳皇翔乎?
蘭芷芎藭棄於廣野,蒿蕭成林,使君子退而不顯眾,公等是也.
[도둑이 창궐해도 막지 못하고, 오랑캐가 복종하지 않아도 누를 수가 없고,
간악한 자가 일어나도 막을 수가 없고, 관리가 부패하고 타락해도 다스리지 못하고,
사계절의 기후가 불순해도 조절할 수 없고, 농사가 흉년이라도 이를 다스리지
못합니다. 능력이 있으면서도 이를 행하지 않는 것은 충성스럽다 할 수가 없습니다.
재주도 능력도 없으면서 벼슬자리에 앉아 나라의 봉록을 탐하면서 어진 이가 관직에
진출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은 벼슬을 도둑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리를 많이 거느리고 있는 자를 출세시키고, 재물이 있는 자를 우대하는 것은 
위선입니다. 그대들은 올빼미와 봉황이 함께 하늘을 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
난(蘭), 지(芷), 궁(芎), 궁(藭)이 넓은 들에서 버림을 받고, 호(蒿)나 소(蕭)와 같은
잡초가 숲처럼 무성해 있소. 훌륭한 군자가 몸을 피해서 이 세상에 나타나지
못하게 만드는 자들이 바로 그대들과 같은 자들입니다.

「述而不作, 君子義也.  今夫卜者, 必法天地, 象四時, 順於仁義, 分策定卦, 旋式正棋,
然後言天地之利害, 事之成敗.  昔先王之定國家,必先龜策日月,而後乃敢代;
正時日,乃后入家;產子必先占吉凶,后乃有之.  
自伏羲作八卦,周文王演三百八十四爻而天下治.
越王句踐放文王八卦以破敵國,霸天下.  由是言之,卜筮有何負哉!
[‘ 옛일을 전할 뿐 새로 만들어내지는 않는다’라는 것은 군자의 의리입니다.  
지금 점쟁이들은 반드시 천지를 따르고 사계절을 본뜨며, 인의에 순응해 책(策)을
나누어 괘(卦)를 정하고, 식(式)을 굴려서 기(棋)를 바르게 하고,
그런 뒤에 천지의 이해(利害)와 일의 성패를 말합니다.  
옛날 선왕께서 나라를 정할 때에 반드시 먼저 일월을 점치고 감히 하늘을 대신해
천하를 다스리셨고,  길한 날짜를 택한 다음 집(궁궐)으로 들어가셨습니다.
또한 집에 자식을 낳게 되면 먼저 길흉을 점친 다음 그 아이를 자식으로 양육했던
것입니다. 복희씨(伏羲氏)가 “팔괘(八卦)”를 만들고, 주문왕이 이것을 부연해
“384효(爻)”를 만드니 천하는 바로 다스려졌습니다. 월왕 구천은 문왕의 “팔괘”를
본뜸으로 적국을 격파해 천하의 패권을 잡게 되었습니다.  
이런 점으로 보면 복서(卜筮)가 사람을 배신한 것이 무엇이 있다는 것입니까? 

 「且夫卜筮者,埽除設坐,正其冠帶,然後乃言事,此有禮也. 
言而鬼神或以饗,忠臣以事其上,孝子以養其親,慈父以畜其子,此有德者也.  
而以義置數十百錢,病者或以愈,且死或以生, 患或以免,事或以成,
嫁子娶婦或以養生:此之為德,豈直數十百錢哉! 
此夫老子所謂『上德不德,是以有德』. 今夫卜筮者利大而謝少, 老子之云豈異於是乎? 
[그리고 복자는 깨끗이 쓸고 자리를 정한 다음 의관을 바르게 한 연후에 비로소
일의 길흉과 성패를 말하니, 이는 예의를 갖춘 것입니다.
점의 결과를 말하면 귀신도 향응하게 할 수 있고, 충신은 그 임금을 섬기게 되고,  
효자는 그 어버이를 받들게 되고, 어버이는 그 자식을 양육하게 됩니다.
이는 덕을 베푸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을 부탁하는 사람은 의무로 수십 전에서
1백전까지 주며, 그 덕택으로 아픈 사람은 병이 낫는 수도 있고, 죽어가던 자가
살아나기도 하며, 환난을 면하는 사람도 있고, 사업에 성공하는 사람도 있으며,  
자식을 시집보내기도 하며, 혹은 며느리를 맞아오기도 해 자식을 양육합니다. 
이것의 은덕이 어찌 수십 전이나 1백전 가치만 하겠습니까 ?  
이는 저 노자(老子)가 말한 소위 ‘최상의 덕은 얼른 보아 덕 같지 않지만,
실상은 덕이 있는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지금 점쟁이들이 베푼 이익은 큰데도
자기가 받는 사례는 적습니다. 노자가 한 말이 이와 무엇이 다릅니까?

「莊子曰:『君子內無饑寒之患, 外無劫奪之憂, 居上而敬, 居下不為害, 君子之道也.』
今夫卜筮者之為業也,積之無委聚,藏之不用府庫,徙之不用輜車,負裝之不重,
止而用之無盡索之時.  持不盡索之物,游於無窮之世,雖莊氏之行未能增於是也,
子何故而云不可卜哉? 天不足西北,星辰西北移; 地不足東南,以海為池;
日中必移,月滿必虧;先王之道,乍存乍亡.  公責卜者言必信,不亦惑乎! 
[장자(莊子)도 말하기를 ‘군자는 안으로 굶주리거나 추위에 떨 염려가 없고,
밖으로는 겁탈당할 걱정이 없다. 높은 자리에서는 존경을 받고,
아랫자리에 있어도 해를 당하지 않는다. 이것이 군자의 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대개 점쟁이라는 직업은 쌓아도 모이지 않고, 간직하는 데 창고가 필요 없고,
옮기는 데 수레가 쓰이지 않으며,  짐을 꾸려서 등에 짊어져도 무겁지 않지만,
머물러 그것을 사용하게 되면 끝이 없습니다. 다함이 없는 물건을 가지고 끝이 없는
세상에서 놀게 되는 것이므로 장자가 살다간 자유로운 행동도 이보다 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두 분께서는 어째서 점을 업으로 살아가는 것이 나쁘다고 하십니까?
하늘은 서북쪽이 비어 있기 때문에 별이 서북쪽으로 옮겨가고,
땅은 동남쪽이 비어 있기에 바다로 못을 만든 것입니다.
해는 중천에 이르게 되면 반드시 이동하고, 달은 차면 반드시 이지러지게 됩니다.
선왕이 세운 진리라도 때로는 존재하고 때로는 없어지기도 합니다.
그대들이, 말하는 것은 반드시 신빙성이 있어야 한다고 복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또한 잘못된 일이 아닙니까!

「公見夫談士辯人乎?慮事定計,必是人也,然不能以一言說人主意,故言必稱先王,
語必道上古;慮事定計,飾先王之成功,語其敗害,以恐喜人主之志,以求其欲.
多言誇嚴,莫大於此矣.  然欲彊國成功,盡忠於上,非此不立.
今夫卜者,導惑教愚也.  夫愚惑之人,豈能以一言而知之哉!言不厭多.
[공들은 저 유세가들을 보았습니까? 일을 생각하고 계획을 세우는 것은 틀림없이
저들이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 한마디로 군주의 마음을 기쁘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말만 했다 하면 선왕과 상고 시대를 거론하는 것입니다. 일을 생각하고 방책을 세울
경우에는 선왕의 공적을 수식하고 또는 그 실패나 폐해를 말함으로써 군주의 마음을
두렵게도 하고 혹은 기쁘게도 해 자기의 욕망을 채우려 하는 것입니다.  
말이 많고 과장된 점에서는 이보다 더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공을 이루고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려고 한다면
이런 방법이 아니라면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점쟁이란 사람들은
미혹된 사람을 인도하고 어리석은 사람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대체로 어리석고 미혹된 사람을  어찌 말 한마디로써 알게 할 수 있습니까!
그러기에 점치는 사람은 말많은 것을 싫어하지 않는 것입니다. 

「故騏驥不能與罷驢為駟,而鳳皇不與燕雀為群,而賢者亦不與不肖者同列.
故君子處卑隱以辟眾, 自匿以辟倫, 微見德順以除群害, 以明天性, 助上養下,
多其功利, 不求尊譽. ​公之等喁喁者也,何知長者之道乎!」 
宋忠、賈誼忽而自失,芒乎無色,悵然噤口不能言.
於是攝衣而起,再拜而辭.  行洋洋也,出門僅能自上車,伏軾低頭,卒不能出氣. 
[그러므로 준마는 비루한 노새와 사두마차로 짝을 이룰 수 없고,
봉황을 제비나 참새와 함께 무리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현자 또한 불초한 자와 같은 반열에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낮고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사람들을 피하고,
스스로 몸을 숨기고 세속의 윤리를 피하고,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덕을 보이고 많은 재해를 제거시켜 사람의 천성을 밝혀주고,  
위를 돕고 아래를 길러 세상의 공리를 많이 쌓되 존경과 명예를 추구하지 않습니다.
공들은 단지 입을 벌려 떠드는 사람들이니 장자의 도리를 어떻게 안다는 말입니까?” 
송충과 가의는 망연자실해 넋을 잃고, 얼굴은 창백하고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래서 옷깃을 바로 하고 일어나서 재배하고 하직 인사를 한 후에 나왔다.
정신없이 문을 나와 간신히 수레에 올랐으나, 
수레 가로대에 엎드려 고개를 떨구고 숨도 크게 쉴 수 없었다.] 

居三日,宋忠見賈誼於殿門外,乃相引屏語相謂自嘆曰:「道高益安,勢高益危.
居赫赫之勢, 失身且有日矣.  夫卜而有不審,不見奪糈;為人主計而不審, 身無所處.
此相去遠矣,猶天冠地屨也.  此老子之所謂『無名者萬物之始』也.  
天地曠曠,物之熙熙,或安或危,莫知居之.  我與若,何足預彼哉!
彼久而愈安,雖曾氏之義未有以異也.」 久之,宋忠使匈奴,不至而還,抵罪. 
而賈誼為梁懷王傅,王墮馬薨,誼不食,毒恨而死.  此務華絕根者也.
[사흘 뒤에 송충과 가의가 궁궐문 밖에서 만나서는 서로 끌어당기며 속삭이다가
서로 탄식하며 말하기를 ; “도덕은 높을수록 몸은 더욱 편안하고,
권세는 높을수록 몸은 더욱 위태로워지는구나.  
혁혁한 권세의 자리에 있게 되면 언젠가는 내 몸을 망칠 날이 오게 된다.
대체로 점쟁이들은 점을 쳐서 제대로 맞히지 못한다고 해도 복채를 되돌려 받는
일이 없지만, 임금을 위해서 방책을 세울 때 제대로하지 못하면 몸 둘 곳이 없다.  
이것의 차이는 마치 머리에 쓰는 관과 발에 신는 신발만큼이나 크다.
이것이야말로 노자가 말한 " 무명(無名)은 만물의 처음이다’라는 말일 것이다.
하늘과 땅은 넓고 크며 물건은 너무 많아 안전한 곳도 있고 위험한 곳도 있는데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와 그대가 어찌 그 사람처럼 살 수 있겠는가!  
그들은 때가 지나면 지날수록 편안해질 테니, 증씨(曾氏)가 말한 본래의 삶이라는
말의 뜻도 이와 다를 것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랜 뒤에 송충은 사신이 되어
흉노(匈奴)로 가다가 도중에서 되돌아온 일 때문에 죄를 지게 되었다.  
또 가의는 양회왕의 사부(師傅)가 되었으나 왕이 말에서 떨어져 죽자,
그 일로 식음을 끊고 한스러워하다가 죽었다.  
그들은 꽃을 피우기 위해서 애쓰다가 도리어 뿌리를 끊은 것이다.] 


太史公曰:古者卜人所以不載者,多不見于篇.  及至司馬季主,余志而著之.
[태사공은 말한다. 
옛날의 점쟁이를 기록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서적들에 기록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마계주(司馬季主)의 경우는 내가 뜻이 있어 기록한다.]

褚先生曰:臣為郎時, 游觀長安中, 見卜筮之賢大夫, 觀其起居行步,
坐起自動, 誓正其衣冠而當鄉人也, 有君子之風.  
見性好解婦來卜,對之顏色嚴振,未嘗見齒而笑也.
從古以來,賢者避世,有居止舞澤者,有居民閒閉口不言,有隱居卜筮閒以全身者.
夫司馬季主者,楚賢大夫,游學長安,通易經,術黃帝、老子,博聞遠見.
觀其對二大夫貴人之談言,稱引古明王聖人道,固非淺聞小數之能.
[저선생이 말하기를 : " 신이 낭(郎)이었을 무렵 장안의 거리를 구경했습니다.
그때 복서(卜筮)를 업으로 하고 있는 훌륭한 선비를 만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가 기거하는 모습을 보면, 비록 시골 사람이 와도 의관을 정제해 대하니 
군자의 기풍이 엿보이고 상대의 성격을 보고 풀기를 잘하며, 부인들이 찾아와서
점을 칠 경우 엄숙한 얼굴로 대하고 이를 드러내 웃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예로부터 뛰어난 자가 세상을 피해 숨어서 살며 세속을 피하는 경우 잡초가
무성한 늪에 살거나 혹은 민간에 살면서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자도 있었고,
복자(卜者) 사이에서 몸을 보전하는 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사마계주는 원래 초나라 선비로서 장안에 유학하고 있었는데,  《역경》에 능통했고
황제(黃帝)와 노자(老子)의 학설을 말하며 널리 보고 아는 것이 많았습니다. 
그가 저 두 대부(大夫)에게 대답한 바를 보건대 옛적의 현명한 임금과 성인의 도를
인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천박한 견문이나 얕은 술수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다.] 

及卜筮立名聲千里者,各往往而在. 
傳曰:「富為上,貴次之;既貴各各學一伎能立其身.」
黃直,大夫也;陳君夫,婦人也:以相馬立名天下. 
齊張仲、曲成侯以善擊刺學用劍,立名天下.
留長孺以相彘立名.  滎陽褚氏以相牛立名. 
能以伎能立名者甚多,皆有高世絕人之風,何可勝言.
[복서(卜筮)로써 천리에 이름을 떨친 일은 가끔 있는 일입니다.
옛글에 전하기를 ‘부(富)가 첫째, 귀(貴)가 다음이다. 이미 귀하게 되었으면,
각각 한 가지 재주를 배워서 세상에 입신하려 한다’라고 하였다.  
황직(黃直)은 대부이며, 진군부(陳君夫)는 그 부인(婦人)이었는데,  
이 두 사람은 말의 좋고 나쁜 것을 잘 감별하는 것으로 천하에 이름을 날렸습니다. 
제(齊)나라 장중(張仲)과 곡성후(曲成侯)는 검술에 뛰어나 천하에 이름을 떨쳤다.  
유장유는 돼지를 감정하는 것으로 이름이 나 있었고,
형양(滎陽)의 저씨(褚氏)는 소를 잘 감정해서 이름을 날렸다.
이렇게 재주를 가지고 이름을 날린 자가 많았는데,
이들 모두가 세상에서 높고 뛰어난 풍도가 있음을 어찌 다 말로 하겠는가?]

故曰:「非其地,樹之不生;非其意,教之不成.」
夫家之教子孫,當視其所以好,好含茍生活之道,因而成之.
故曰:「制宅命子,足以觀士;子有處所,可謂賢人.」臣為郎時,
與太卜待詔為郎者同署,言曰:「孝武帝時,聚會占家問之,某日可取婦乎?
五行家曰可,堪輿家曰不可,建除家曰不吉,叢辰家曰大凶,歷家曰小凶,
天人家曰小吉,太一家曰大吉.  辯訟不決,以狀聞. 
制曰:『避諸死忌,以五行為主.』」人取於五行者也. 
[그러므로 ‘맞는 땅이 아니면 나무를 심어도 크지 않게 되고,
그 뜻이 아니면 가르쳐도 쓸모가 없다’라고 하는데, 집에서 자손을 가르칠 경우에는
자손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가려내는 것과 같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그 생활과 맞는 것이니 그 좋아하는 것을 가르치면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집안을 세우고 자식을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사람됨을 알 수가 있다. 그 자식에게 적합한 삶을 찾아주고 있으면
그 어버이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는 것이다. 
신이 낭(郎)이었을 때 전에 태복(太卜)이었던 낭과 같은 관청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그자가 말하기를 ‘무제(武帝)께서 점쟁이들을 모아놓고,
아무 날은 며느리를 맞이해도 좋은 날인가?라고 묻자,
이에 오행가는 좋습니다라고 대답하였으나, 감여가(堪輿家)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고,  
건제가는 불길하다고 대답하였으며, 총진가(叢辰家)는 크게 흉합니다라고 대답했고,  
역가는 조금 흉합니다라고 대답하였으며, 천인가는 조금 길합니다라고 대답했고, 
태일가(太一家)는 크게 길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논쟁이 벌어져 결론이 나지 않아 사실대로 아뢰었더니 황제께서는 말하기를 :
'모든 상서롭지 못한 것을 꾀하는 데에는 오행을 주로 하라.'라고 하였다.
이는 사람이 오행에서 (생사를) 취하기 때문이다.]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