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本紀(사기본기)/6. 秦始皇本紀

第 六. 秦始皇本紀(진시황본기)

덕치/이두진 2021. 6. 27. 09:09

 

              史記 本紀

 

 

     第 六. 秦始皇本紀(진시황본기)

 

秦始皇帝者, 秦莊襄王子也.  莊襄王爲秦質子於趙, 見呂不韋姬, 悅而取之, 生始皇. 

以秦昭王四十八年正月生於邯鄲 .

(진시황제자, 진장양왕자야.  장양왕위진질자어조, 견여불위희, 열이취지, 생시황.
이진소왕사십팔년정월생어한단. )

 

['진시황'은 진나라 '장양왕'의 아들이다. '장양왕'이 인질로 趙나라에 있을 때

'여불위'의 애첩 '조희'를 보고 반하여 취하였다, 이어 시황을 낳았다.
진시황은 진소왕 48년(기원전 259년) 정월에 趙나라 수도 "한단"에서 태어났다. ]      
            

及生, 名爲政, 姓趙氏.  年十三歲, 莊襄王死, 政代立爲秦王.
(급생, 명위정, 성조씨.  년십삼세, 장양왕사, 정대립위진왕. ) 

[태어남과 더불어 이름을 '정', 성은 '조'라고 하였다.  

시황이 13살이 되었을  때 '장양왕'이 죽고 '정'이 진왕의 자리에 올랐다. ]
           

當是之時, 秦地已幷巴, 蜀, 漢中, 越宛有, 置南郡矣 ; 

北收上郡以東, 有河東, 太原, 上黨郡 ; 東至滎陽, 滅二周, 置三川郡 . 
(당시지시, 진지이병파, 촉, 한중, 월완유영, 치남군의 ;
수상군이동, 유하동, 태원, 상당군 ; 동지형양, 멸이주, 치삼천군. )  

[당시에 진나라는 이미 파, 촉, 한중의 땅을 병합한 상태였고, "완"을 넘어가 "영"을 점령하여 남군을 설치하였다 ;
북쪽으로는 "상군", 그 동쪽에는 "하동", "태원", "상당" 을 점령하여 군현을 두었으며, 

동쪽으로는 "형양"에 이르러  "이주" 를 멸하고 "삼천군"을 두었다. ] 
            

呂不韋相, 封十萬戶, 號曰文信侯.  招致賓客游士, 欲以幷天下. 李斯爲舍人

(여불위상, 봉십만호, 호왈문신후.  초치빈객유사, 욕이병천하.  이사위사인. )  

['여불위'를 상국으로 삼고, 십만의 호에 봉한 후에 '문신후'라 불렸다. 

'시황'은 세상의 빈객과 유설가들을 불러 모아 천하를 병합하려고 하였다.

그 중에 '이사'를 발탁하여 사인으로 삼았다. ] 
           

蒙驁, 王齮, 麃公等爲將軍. 王少年, 初卽位, 委國事大臣.
(몽오, 왕의, 표공등위장군.  왕소년, 초즉위, 위국사대신) .

['몽오', '왕의', '표공' 등은 장군으로 삼았다. 

'시황'이 즉위할 때 나이가 너무 어려 모든 국사를 대신들에게 위임하였다. ]

  

晉陽反, 元年, 將軍蒙驁擊定之.  二年, 麃公將卒攻券, 斬首三萬.
(진양반, 원년, 장군몽오격정지.  이년, 표공장졸공권, 참수삼만. ) 

['시황' 원년(기원전 246년)에 '진양'이 반란을 일으키자 장군 '몽오'를 보내 평정하였다.  
'시황' 2년에 '포공'을 장군으로 삼아 '권'을 공격하여 위(魏)군 3만여 명의 목을 베었다. ]
         

三年, 蒙驁攻韓, 取十三城.  王齮死.  十月, 將軍蒙驁攻魏氏暢, 有詭.  歲大饑 .
(삼년, 몽오공한, 취십삼성.  왕의사.  시월, 장군몽오공위씨창, 유궤.  세대기. )   

['시황' 삼년에 '몽오'가 한나라를 공격하여 13개의 성을 점령하였다. '왕의'가 죽었다. 
10월에 장군 '몽오'가 魏나라의 "창'과 "유궤"를 공격하였다. 그 해에 엄청난 기근이 들었다. ] 
         

四年, 拔暢, 有詭. 三月, 軍罷. 秦質子歸自趙, 趙太子出歸國. 

十月庚寅, 蝗蟲從東方來, 蔽天. 天下疫. 百姓內粟千石, 拜爵一級.
(사년, 발창, 유궤. 삼월, 군파. 진질자귀자조, 조태자출귀국.
시월경인, 황충종동방래, 폐천. 천하역. 백성내숙천석, 배작일급. )

['시황' 4년에 "창"과 "유궤"를 함락시켰다. 3월에 군사를 철수시켰다. 

秦나라의 인질이 趙나라로 돌아오고 인질로 와 있던 趙나라의 태자가 자기나라로 돌아갔다. 

10월 경인날에 메뚜기 떼들이 동쪽으로부터 날아와 하늘을 뒤 덮었다.
천하에 전염병이 돌았다. 좁쌀 천 섬을 바친 백성들에게는 한 등급씩 작호를 내렸다. ] 
          

五年, 將軍驁攻魏, 定酸棗, 燕, 虛, 長平, 雍丘, 山陽城, 皆拔之, 取二十城.   初置東郡. 冬雷. 
(오년, 장군오공위, 정산조, 연, 허, 장평, 웅구, 산양성, 개발지, 취이십성. 초치동부.  동뢰. )

['시황' 5년(기원전 242년)에 장군 '몽오'가 위나라를 공격하여 "산조", "연", "허", "장평", "웅구", "산양성"등을

모두 함락시키고 20여 개의 성을 차지하여 그곳에다 처음으로 동군를 설치하였다. 

그해 겨울에 큰 벼락이 떨어졌다] .
          

六年, 韓,魏,趙,衛,楚共擊秦, 取壽陵.  秦出兵, 五國兵罷. 

拔衛, 迫東郡, 其君角率其支屬從居野王, 阻其山以保魏之河內.
(육년, 한,위,조,위,초공격진, 취수능.  진출병, 오국병파.

발위, 방동군, 기군각솔기지속종거야왕, 조기산이보위지하내. )

['시황' 6년에 한, 위, 조, 위, 초가 힘을 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하여 "수릉"을 점령하였다.

진나라가 군사를 출병시키자  다섯 나라의 군사들이 물러갔다.
이어 衛나라의 도성을 함락시키고 동군으로 도망친 '衛군'의 뒤를 추격하였다,

'衛군'은 그의 종족들을 이끌고 "야왕"으로 달아나 그곳의 험한 산세에 의지하여 魏나라의 "하내" 땅을 차지하였다. ] 
          

七年, 彗星先出東方, 見北方, 五月見西方. 將軍驁死. 以攻龍, 孤, 慶都, 還兵攻汲. 

彗星復見西方十六日. 夏太后死.
(칠년, 혜성선출동방, 견북방, 오월견서방. 장군오사. 이공용, 고, 경도, 환병공급.
혜성복견서방십육일. 하태후사) .

['시황' 7년에 혜성이 동쪽에서 나타나더니 다시 북쪽에서 보였으며, 5월에는 다시 서쪽에서 나타났다.

장군 '몽오'가 죽었다.  "용", "고", "경도"를 공격하던 군사를 이동시켜 "급"을 공격하게 하였다.   

혜성이 다시 서쪽에서 나타나 16일 동안 보였다. '하'태후가 죽었다.]
          

八年, 王弟長安君成蟜將軍擊趙, 反, 死屯留, 軍吏皆斬死, 遷其民於臨洮, 將軍壁死, 
卒屯留, 蒲鶴反, 戮其尸.  河魚大上, 輕車重馬東就食.
(팔년, 왕제장안군성교장군격조, 반, 사둔유, 군사개참사, 천기민어임도, 장군벽사,  

졸둔유, 포학반, 육기사.  하어대상, 경거중마동취식. )

['시황' 8년에 동생 장안군 '성교'가 趙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출병하였으나 오히려 반란을 일으켰다,

토벌군을 보내자 '성교'는 "둔유"에서 전사하고 그를 따르던 군사들을 모두 참수하고  

그곳의 백성들은 모두 "임도"로 옮겨 살게 하였다,   

'성교'군의 장수인 '벽'이 죽자, "둔유"에서 병졸로 있던 '포학'이 다시 반란을 일으켰으나 싸움중에 죽었다. 
하수가 넘쳐 많은 물고기들이 육지로 올라오자 사람들이 수레를 끌고와 잡아서 싣고 갔다. ]

  

嫪毐封爲長信侯.  予之山陽地, 令毐居之. 宮室車馬衣服苑囿馳獵恣毐.   

事無小大皆決於毐. 又以河西太原郡更爲毐國.
(노애봉위장신후.  여지산양지, 영애거지. 궁실거마의복원유치렵자애.  

사무소대개결어애. 우이하서태원군경위애국. )

['노애'를 장신후로 봉하고 "산양"의 땅을 봉지로 주고 그 곳에 머물며 살게 하였다. 

궁실, 거마, 의복, 원유(궐 안에있는 동산) 사냥터 등 모두 '노애'가 제멋대로 행하였다. 

나라의 모든 대소사는 '노애'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었다. 또 강 서쪽의 "태원군"을 '노애'의 봉지로 주었다. ] 
            

九年, 彗星見, 或竟天. 攻魏垣, 蒲陽.  四月, 上宿雍.  己酉, 王冠, 帶劍. 
(구년, 혜성견, 혹경천.  공위원, 포양.  사월, 상숙옹.  기유, 왕관, 대검. )

['시황' 9년에 혜성이 나타났으며 그 중에는 하늘을 가로질러 사라진 것도 있었다.    

위나라의 "원"과 "포양"을 공격하였다.  4월에 진왕이 "옹성"으로 나가 유숙하였다.  

기유일에 진왕이 20세가 되어 성년식을 치르고 허리에 보검을 차고 다녔다. ]
           

長信侯毐作亂而覺, 矯王御璽及太侯璽以發縣卒及衛卒, 官騎, 戎翟君公, 舍人, 將欲攻蘄年宮爲亂.
(장신후애작난이각. 교왕어새급태후새이발현졸급위졸, 관기, 융적군공, 사인, 장욕공기년궁난. ) 

         
[장신후 '노애'가 역모를 꾀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되자, 진왕의 옥새와 태후의 인장을 훔쳐 도성의 경비군과

왕의 호위군, 기마병을 출동시키고 융족의 수장들과 그의 가신들을 데리고, 기년궁을 습격하여 반란을 일으켰다. ] 
           

王知之, 令相國昌平君, 昌文君發卒攻毐, 戰咸陽, 斬首數百, 皆拜爵,  

及宦者皆在戰中, 亦拜爵一級. 毐等敗走.
(왕지지, 영상국창평군, 창문군발졸공애, 전함양, 참수수백, 개배작,

급환자개재전중, 역배작일급.  애등패주. ) 

['시황'은 반란이 일어난 것을 알자, '창평군'과 '창문군'에게 명하여 반란을 진압하도록 하였다. 

"함양성" 안에서 싸움이 벌어져 쌍방간에 수백명이 죽었다, '진왕'이 반란군을 진압하였던 신하들에게는 

모두 작위를 내리고, 환관들도 나가 싸움을 거들도록 하여 그들에게도 한 급씩의 품위를 올려주었다.   

'노애' 등은 싸움에 패하여 달아났다.]  
           

卽令國中 : 有生得毐, 賜錢百萬 ; 殺之, 五十萬.  盡得毐等.   

衛尉竭, 內史肆, 佐弋竭, 中大夫令齊等二十人皆梟首.
(즉령국중 : 유생득애, 사전백만 ; 살지, 오십만.  진득애등.  

위위갈, 내사사, 좌익갈, 중대부령제등이십인개효수) .

['진왕'이 전국에 포고령을 내려 '노애'를 생포하여 오는 자에게는 상금으로 백만 전을 주고,

죽여서 시체를 가져오는 자에게는 오십만 전을 주겠다고 하였다.  

'노애' 등의 일당이 모두 잡혀서 함양으로 압송되어 왔다. 

위위 '갈', 내사 '사', 좌익 '갈', 중대부 '영제' 등 20여명 모두 참수하고 그 목은 효수하게 하였다] .
           

車裂以徇, 滅其宗. 及其舍人, 輕者爲鬼薪. 及奪爵遷蜀四千餘家, 家房陵. (四) [是]月寒凍, 有死者.

(거열이순, 멸기종. 급기사인, 경자위귀신. 급탈작천촉사천여가, 가방릉. (사) [시] 월한동, 유사자) .

['노애'는 거열형(다섯마리의 말에 사지를 묶어 찢어 죽임)에 처하고 그 종족들은 멸문지화 당하였다.  

그 가신들과 죄가 경미한 자들은 귀신형(나무를 구하여 바치는 노역)에 처해졌다.
또 4천여 명의 관직을 박탈하고 그들의 가족과 함께 "촉군"의  "방릉현"으로 옮겨가 
살게 하였다.  

그 달에 혹한이 와서 얼어 죽은 사람이 생겼다. ]
           

楊端和攻衍氏.  彗星見西方, 又見北方, 從斗以南八十日.         
(양단화공연씨.  혜성견서방, 우견북방, 종두이남팔십일. ) 


['양단화'가 '연씨'를 침공하여 점령하였다.  혜성이 서쪽 하늘에 나타났다가 또 북쪽에 나타났는데   

북두칠성을 따라 80일 동안 남쪽에 머물렀다. ] 
           

十年, 相國呂不韋坐嫪毐免.  桓齮爲將軍.  齊, 趙來置酒 .
(십년, 상국여불위좌노애면.  환의위장군.  제, 조래치주. ) 


['시황' 10년에 상국 '여불위'가 '노애'의 반란에 연루되어 면직되었으며 '환의'가 장군이 되었다.   

제, 조나라가 술을 싣고 왔다. ] 
           

齊人茅焦說秦王曰 : "秦方以天下爲事, 而大王有遷母太后之名, 恐諸侯聞之, 由此倍秦也 . "  
(제인모초설진왕왈 : "진방이천하위사, 이대왕유천모태후지명, 공제후문지, 유차배진야. ") 

[제나라 사람 '모초'가 진왕에게 말하기를 ; "진나라가 바야흐로 천하를 도모하려는 순간에 있는데

대왕께서 모태후를  "옹성"의 별궁으로 보내어 살게 하셨으니 천하에 제후들이 알게 되면

모두 진나라에 등을 돌릴까 걱정이 됩니다"라고 하였다. ] 
           

秦王乃迎太後於雍而入咸陽, 復居甘泉宮.
(진왕내영태후어옹이입함양, 복거감천궁. )

[진왕이 이내 태후를 "옹성"에서 "함양"으로 모셔와 "감천궁"에 살게 하였다. ]  

 

大索, 逐客, 李斯上書說, 乃止逐客令.  李斯因說秦王, 請先取韓以恐他國, 於是使斯下韓.   

韓王患之. 與韓非謀弱秦 . 
(대색, 축객, 이사상서설, 내지축객령.  이사인설진왕, 청선취한이공타국, 어시사사하한.

한왕환지. 여한비모약진. )

[진왕이 타국 출신의 빈객들을 색출하여 쫓아내려 하자, '이사'가 상소를 올리니 진왕이 축객령을 취소하였다.

'이사'가 진왕에게 말하기를 먼저 한나라를 공격하여 취하면 다른 나라들이 두려워 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자 진왕이 '이사'에게 군사를 주어 한나라를 공격하도록 하였다. 

한왕이 두려워하여 '한비자'와 함께 진나라의 공세를 늦추기 위한 계획을 논의 하였다. ] 
           

大梁人尉繚來, 說秦王曰 : "以秦之彊, 諸侯譬如郡縣之君, 臣但恐諸侯合從, 翕而出不意, 此乃智伯,

夫差, 湣王之所以亡也. 願大王毋愛財物, 賂其豪臣, 以亂其謀, 不過亡三十萬金, 則諸侯可盡. "
(대량인위료래, 설진왕왈 : "이진지강, 제후피여군현지군, 신단공제후합종, 흡이불출의, 차내지백,  

부차, 민왕지소이망야.  원대왕모애재물, 뇌기호신, 이난기모, 불과망삼십만금, 즉제후가진. ) 

["대량" 사람 '위료'가 와서 진왕에게 말하기를 : "진나라의 국세가 강하므로 다른 제후국들의 왕은 마치 진나라

군, 현의 군주와 같이 되어 버렸습니다,  신은 제후들이 합종하여 힘을 합한 다음 불시에 진나라를 공격하게

될 것을 근심하는 바입니다, 이것은 곧 '지백'. '부차', '민왕'이 망한 원인인 것입니다.
원컨대 대왕께서는 재물을 아끼지 마시고 제후국의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어 그들의 지모를 어지럽게 하는데

불과 30만 금이면 족하니 그들을 모두 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  
          

秦王從其計, 見尉繚亢禮, 衣服食飮與繚同. 
(진왕종기계, 견위료항례, 의복식음여료동. ) 

[진왕이 '위료'의 계책을 따르고 그를 접견할 때는 대등한 예절로 대하고 

'위료'의 의복과 음식도 자기의 것과 같이 하였다.]
           

繚曰 : "秦王爲人, 蜂準, 長目, 摯鳥膺, 豺聲, 少恩而虎狼心, 居約易出人下, 得志亦輕人. 

我布衣, 然見我常身自下我.  誠使秦王得志於天下, 天下皆爲虜矣, 不可與久游. "            

(료왈 : "진왕위인, 봉준, 장목, 지조응, 시성, 소은이호랑심, 거약역출인하, 득지역경식인 .
아포의, 연견아상신자하아.  성사진왕득지어천하, 천하개위로의, 불가여구유. ") 

['위료'가 말하기를 : "진왕이란 사람은 얼굴이 우뚝선 콧날에, 가로 길게 찢어진 눈, 사나운 짐승같은 가슴,

승냥이 같이 쉰 목소리와 은혜를 베푸는데 인색하고 호랑이와 이리 같은 흉악한 마음을 감추고 있으면서  

자기가 어려울 때는 밑의 사람일지라도 몸을 굽히나 일단 자기의 뜻을 얻게 되면 쉽게 그 사람을 잡아먹는다. 

'진왕'이 지금은 나와 같이 평민의 복장을 하고 나를 대할 때는 항상 나에게 몸을 낮추고 있으나 진왕이 장차 천하를

얻게 되면 천하는 모두 진왕의 노획물이 되어 그와는 결코 오랫동안 같이 지낼 수 없을 것이다. " 라고 하였다.] 
           

乃亡去.  秦王覺, 固止, 以爲秦國尉, 卒用其計策.  而李斯用事. 
(내망거.  진왕각, 고지, 이위진국위, 졸용기계책.  이이사용사) .

['위료'는 즉시 진나라에서 도망치려고 하였다. 진왕이 알고서 간청하며 머물게 하고 진나라의 국위로 삼아

결국은 '위료'의 계책을 채용하였다. 그러나 실제적인 계책의 시행은 '이사'로 하여금 행하게 하였다. ] 
 
十一年, 王翦, 桓齮, 楊端和攻鄴, 取九城. 王翦攻閼與, 橑楊, 皆幷爲一軍.   

(십일년, 왕전, 환의, 양단화공업, 취구성.  왕전공연여, 료양, 개병위일군. 
翦將十八日, 軍歸斗食以下, 什推二人從軍取鄴安陽, 桓齮將.          

전장십팔일, 군귀두식이하, 십추이인군취업안양, 환의장. ) 

['시황' 11년, '왕전', '환의', '양단화'가 魏나라의 수도 "업"을 공격하면서 9개의 성을 빼앗았다.

'왕전'이 "연여", "료양"을 공격하고 한 군대로 병합하였다.   

'왕전'이 18일간 군사를 통솔하였는데 군사중 봉록이 두식 이하의 군사는 집으로 돌려 보내고,
10명중 2명을 선발하여 종군하도록 하였고 "업", "안양"을 빼앗아 '환의'가 군사를 통솔하였다. ]

          

十二年, 文信侯不韋死, 竊葬.  其舍人臨者, 晉人也逐出之 ; 秦人六百石以上奪爵, 遷 ; 

五百石以下不臨, 遷, 勿奪爵.  自今以來, 操國事不道如嫪毐, 不韋者籍其門, 視此.

秋, 復嫪毐舍人遷蜀者.  當是之時, 天下大旱, 六月至八月乃雨.
(십이년, 문신후불위사, 적장.  기사인임자, 진인야축출지 ; 진인육백석이상탈작, 천 ;

오백석이하불임, 천, 물탈작.  자금이래, 조국사불도여노애, 불위자적기문, 시차.  

추, 복노애사인천촉자.  당시지시, 천하대한, 육월지팔월내우) .


['시황' 12년, 문신후 '여불위'가 죽자 몰래 매장하였다. 그의 가신으로 장례식에 참가한 사람중 晉나라 사람은

국경으로 축출하였고, 秦나라 사람으로 봉록이 600석 이상인 자는 관직을 삭탈하여 "방릉"으로 옮기게 하였으며,

봉록이 500석 이하로 장례식에 참가하지 않은 사람은 옮기게만 하고 관직은 삭탈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국사를 처리할 때 '노애', '여불위'처럼 정도를 따르지 않는 자는 일족을 관노로 삼는 예를 만들었다.
가을에는 "蜀"으로 옮긴 노애의 가신들에게 부세와 요역을 면해 주었다.

당시 천하에 큰 가뭄이 들었는데  6월에 시작된 것이 8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비가 내렸다. ]

  

十三年, 桓齮攻趙平陽, 殺趙將扈輒, 斬首十萬. 王之河南.  正月, 彗星見東方.  十月, 桓齮攻趙. 
(십삼년, 환의공조평양, 살조장호첩, 참수십만. 왕지하남.  정월, 혜성견동방.  시월, 환의공조. ) 

['시황' 13년, '환의'가 조(趙)나라 "평양"을 공격하여 趙나라 장군 '호첩'을 죽이고 10만명의 목을 베었다.  

진왕이 하남으로  행차하였다. 정월에 혜성이 동쪽에 나타났다, 10월에 '환의'가 趙나라를 공격하였다. ] 
          

十四年, 攻趙軍於平陽, 取宜安, 破之, 殺其將軍. 桓齮定平陽, 武城.   

韓非使秦, 秦用李斯謀, 留非, 非死雲陽.  韓王請爲臣 。
(십사년, 공조군어평양, 취의안, 파지, 살기장군. 환의정평양, 무성.  

한비사진, 진용이사모, 유비, 비사운양. 한왕청위신. ) 

['시황' 14년, "평양"에서 "趙"군을 공격하여 "의안"을 빼앗았으며 趙군을 격파하고 趙의 장군을 죽였다.  '

환의'가 "평양", "무성"을 평정하였다. '한비'가 진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자,  진나라에서는 '이사'의 계책으로 

'한비'를 억류하였고 '한비'는 "운양"에서 죽었다.  韓왕이 신하가 되기를  청하였다. ]

 

十五年, 大興兵, 一軍至鄴, 一軍至太原, 取狼孟. 

十六年九月, 發卒受地韓南陽假守騰. 初令男子書年. 魏獻地於秦, 秦置麗邑.    
(십오년, 대흥병, 일군지업, 일군지태원, 취낭맹. 

십육년구월, 발졸수지한남양가수등, 초령남자서년. 위헌지어진, 진치여읍. )           

['시황' 15년, 군사를 크게 일으켜서 한 군대는 "업"에 도착하고, 

또 한 군대는 "태원"에 도착하여 "낭맹"을 빼앗았다.   

'시황' 16년 9월에 군사를 일으켜서 韓나라 "남양"땅을 인수하고 '등'을 대리 태수로 삼았다.  

음으로 남자의 나이를 등록하도록 명을 내렸다. 魏나라가 진나라에 땅을 헌납하자, 

진나라는 "여읍"을 설치하였다. ] 
           

十七年, 內史騰攻韓, 得韓王安, 盡納其地, 以其地爲郡, 命曰潁川.  地動. 華陽太后卒. 民大饑.

(십칠년, 내사등공한, 득한왕안, 진납기지, 이기지위군, 명왈영천. 지동. 화양태후졸. 민대기. ) 

['시황' 17년, 내사 '등'이 韓나라를 침공하여 한왕 '안'을 사로잡았으며 그 영토를 모두 몰수하여 군으로하고, 

"영천"이라  부르게 하였다.  또 지진이 있었으며, '화양'태후가 세상을 떠났고, 백성들이 큰 기근을 겪었다. ]  

  

十八年, 大興兵攻趙, 王翦將上地, 下井陘, 端和將河內, 羌瘣伐趙, 端和圍邯鄲城.  
(십팔년, 대흥병공조, 왕전장상지, 하정형, 단화장하내, 강외벌조, 단화위한단성) .

['시황' 18년, 진나라는 군사를 크게 일으켜 조나라를 공격하였는데 '왕전'이 "상지"의 군사를 이끌고 "정형"을

공격하였고, '양단화'가 하내의 군사를 거느렸으며, '강외'가 조나라를 토벌하고 '양단화'가 "한단성"을 포위하였다.] 
           

十九年, 王翦, 羌瘣盡定取趙地東陽, 得趙王. 引兵欲攻燕, 屯中山. 

秦王之邯鄲, 諸嘗與王生趙時母家有仇怨, 皆阬之.  秦王還, 從太原, 上郡歸. 始皇帝母太后崩.   

趙公子嘉率其宗數百人之代, 自立爲代王, 東與燕合兵, 軍上谷. 大饑.
(십구년, 왕전, 강외진정취조지동양, 득조왕. 인병욕공연, 둔중산.   

진왕지한단, 제상여왕생조시모가유구원, 개갱지.  진왕환, 종태원, 상군귀. 시황제모태후붕.

조공자가솔기종수백인지대, 자립위대왕, 동여연합병, 군상곡. 대기. ) 

['시황' 19년, '왕전', '강외'가 조나라 땅인 "동양"을 평정하여 취하고 조왕 '천'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군사를 이끌고 燕나라를 공격하기 위하여 "중산"에 주둔하였다.  

진왕은 "한단"으로 가서 예전에 자신이 조나라에서 태어났을 때 외가와 원한이 있던 사람들을 모두 생매장시켰다.

진왕은 "태원", "상군"을 거쳐서 진으로 돌아왔다. 시황제의 모태후가 죽었다. 

조나라 공자 '가'는 종족 수백명을 이끌고 "대"로 가더니 스스로 대왕에 올랐으며,

동쪽으로 연나라와 합병하여 군사를 "상곡"에 주둔시켰다. 그해 큰 기근이 있었다. ]


二十年, 燕太子丹患秦兵之國, 恐, 使荊軻刺秦王.  秦王覺之, 體解軻以徇, 而使王翦, 辛勝攻燕. 

燕, 代發兵擊秦軍, 秦軍破燕易水之西.
(이십년, 연태자단환진병지국, 공, 사형가자진왕.  진왕각지, 체해가이순, 이사왕전, 신승공연.   

연, 대발병격진군, 진군파연역수지서. ) 

['시황' 20년, 연나라 태자 '단'은 진나라의 군사들이 연나라를 침략해 올 것을 근심하여 두려운 나머지 

자객 '형가'를 시켜서 진왕을 척살케 하였다. 진왕이 그 사실을 알고 '형가'의 사지를 찢어 백성들에게 보이고

'왕전' '신승'으로 하여금 연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연나라와 대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진군을 공격했으나 진군이 "역수"서쪽에서 연나라를 격파하였다. ] 
          

二十一年, 王賁攻 (蓟) [荊]. 乃益發卒詣王翦軍, 遂破燕太子軍, 取燕蓟城, 得太子丹之首.
燕王東收遼東而王之. 王翦謝病老歸. 新鄭反. 昌平君從於郢. 大雨雪, 深二尺五寸.

(이십일년, 왕분공 (계) [형] . 내익발졸예왕전군, 수파연태자군, 취연계성, 득태자단지수.
연왕동수료동이왕지.  왕전사병노귀.  신정반,  창평군종어영.  대우설, 심이척오촌. ) 

['시황'21년,'왕분'이 연나라를 공격하였다. 진왕은 군사를 증원하여 '왕전'의 군대가 마침내 연나라 태자의 군대를

격파하고 "계성"을 점령하여 태자 '단'의 목을 얻었다.  '연왕'이 동쪽으로 "요동"을 점령하고 그 곳의 왕이 되었다.

'왕전'이 늙고 병든 것을 핑계로 관직을 사임하고 귀향하였다. "신정"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창평군'을 "영"으로 옮겨 살게 하였다. 이때에 많은 비와 폭설이 내렸는데 높이가 두 자 다섯 치나 되었다. ]  

 

二十二年, 王賁攻魏, 引河溝灌大梁, 大梁城壞, 其王請降, 盡取其地.
(이십이년, 왕분공위, 인하구권대량, 대량성괴, 기왕청항, 진취기지. )

['시황' 22년, '왕분'이 위나라를 공격하면서 "하구"의 물을 끌어다가 "대량"으로 흘러가게 하여 

"대량성"이 파괴되었다. 그러자 위왕이 항복을 요청하므로 그 땅을 모두 빼앗았다. ]  

 

二十三年, 秦王復召王翦, 彊起之, 使將擊荊. 取秦以南之平輿, 虜荊王. 秦王游至郢陳.

荊將項燕立昌平君爲荊王. 反秦於淮南.
(이십삼년, 진왕복소왕전, 강기지, 사장격형. 취진이남지평여, 노형왕. 진왕유지영진.

형장항연립창평군위형왕. 반진어회남. ) 

['시황' 23년, 진왕이 '왕전'을 다시 불러 강제로 기용하였고 그를 시켜 초나라를 공격하게 하여

秦의 남쪽 "평여"를 점령하고, '형왕'을 사로잡았다. 진왕이 "영도"와 "진현"까지 행차하였다.

초나라 장수 '항연'이 '창평군'을 옹립하여 초왕으로 삼았고, "회하"의 남쪽에서 진나라에 반기를 들었다.] 
           

二十四年, 王翦, 蒙武攻荊, 破荊君, 昌平君死, 項燕遂自殺.
(이십사년, 왕전, 몽무공형, 파형군, 창평군사, 항연수자살. ) 

['시황' 24년, '왕전', '몽무'가 초나라를 공격하여 초군을 무찌르고, '창평군'이 죽자 '항연'도 자살하였다.]

 

二十五年, 大興兵, 使王賁將, 攻燕遼東, 得燕王喜. 還攻代, 虜代王嘉.  

王翦遂定荊江南地 ; 降越君, 置會稽郡. 五月, 天下大酺.
(이십오년, 대흥병, 사왕분장, 공연요동, 득연왕희. 환공대, 노대왕가.  

왕전수정형강남지 ; 항월군, 치회계군. 오월, 천하대포. ) 

['시황' 25년, 진왕은 크게 군사를 일으켜서 '왕분'으로 하여금 거느리게 하고 연나라의 "요동"을 공격하여

연왕 '희'를 사로잡았다. 돌아오는 중에 代나라를 공격하여 代왕 '가'를 사로잡았다.   

'왕전'은 드디어 초나라의 강남지역을 평정하여 월나라의 군주를 항복시키고 그곳에 "회계군"을 설치하였다. 

5월, 천하에 큰 연회가 베풀어졌다.]

 

二十六年, 齊王建興其相後勝發兵守其西界, 不通秦.  秦使將軍王賁從燕南攻齊, 得齊王建.
(이십육년, 제왕건흥기상후승발병수기서계, 불통진. 진사장군왕분종연남공제, 득제왕건. )

['시황 26년, 제나라왕 '전건'과 그의 상국 '후승'이 군사를 일으켜서 서쪽 변경을 지키며, 진나라와 왕래하지 않았다.

진왕은 장군 '왕분'을 시켜서 연나라로부터 남쪽으로 제나라를 공격하여, 齊나라왕 '전건'을 사로잡았다. ]  

 

秦王初兵天下, 令丞相,   御史曰 :  " 異日韓王納地效璽, 請爲藩臣, 已而倍約, 與趙,魏合從畔秦,  

故興兵誅之, 虜其王.  寡人以爲善, 庶幾息兵革. 趙王使其相李牧來約盟, 故歸其質子. 

已而倍盟, 反我太原, 故興兵誅之, 得其王.  趙公子嘉乃自立爲代王, 故擧兵擊滅之. 
(진왕초병천하, 령승상,   어사왈 : "이일한왕납지효새, 청위번신, 이이배약, 여조,위합종반진,  

고흥병주지, 로기왕.  과인이위선, 서기식병혁. 조왕사기상이목래약맹, 고귀기질자.  

이이배맹, 반아태원, 고흥병주지, 득기왕.  조공자가내자립위대왕, 고거병격멸지.           

[진왕이 이제서야 천하를 통일하자, 승상및 어사에게 이렇게 명하였다 : 

" 예전에 韓王은 영토를 헌납하고 옥새를 받치면서 번신(왕실을 지키는 중신)이 되기를 간청하였으나 얼마되지 않아

약속을 배신하고 趙, 魏나라와 함께 연합하여 秦나라를 배반하였기에 군사를 일으켜서 그들을 베어버리고

韓王을 사로잡았소.  과인은 이 일을 잘했다고 여기며 전쟁이 멈추기를 바랬으나  

후 조왕이 승상 '이목'을 사신으로 보내와 맹약하였으므로 그의 질자(볼모)를 돌려보냈거늘

얼마 후에 맹약을 위배하고 "태원"에서 우리 진나라에 모반하였기에 군사를 일으켜서 토벌하고 그 왕을 사로잡았던

것이오.  그러자 조나라 공자인 '가'가 스스로 代王에 올랐으므로 또 군사를 일으켜서 그들을 격멸하였소. 
          

魏王始約服入秦, 已而與韓, 趙謀襲秦, 秦兵吏誅, 遂破之.  荊王獻靑陽以西, 已而畔約, 擊我南郡,

故發兵誅, 得其王, 遂定其荊地.  燕王昏亂, 其太子丹乃陰令荊軻爲賊, 兵吏誅, 滅其國.
(위왕시약복입진, 이이여한,조모습진, 진병이주, 수파지.  형왕헌청양이서, 이이반약, 격아남군,

고발병주, 득기왕, 수정기형지. 연왕혼난, 기태자단내음령형가위적, 병리주, 멸기국.

[魏王이 처음에는 秦에 복종하기로 약속했으나 얼마 안되어 韓, 趙나라와 함께 진을 습격할 것을 도모하였기에 

진의 군사들이 그들을 토벌하였으며, '형왕'이 "청양"의 서쪽 땅을 헌납하였으나 얼마 안되어 맹약을 배신하고

진의 남군을 공격하였기에 군사를 일으켜서 토벌하고 형왕을 사로잡아 드디어 그 형지를 평정했던 것이며,

연왕이 혼미하여 태자 '단'이 몰래 '형가'를 자객으로 삼아 나를 죽이도록 하였기에 군사를 보내어

아전들을 베어 버리고 연나라를 멸망시킨 것이었소.

齊王用后勝計, 絶秦使, 欲爲亂, 兵吏誅, 虜其王, 平齊地.  寡人以眇眇之身, 興兵誅暴亂,

賴宗廟之靈, 六王咸伏其辜, 天下大定.  今名號不更, 無以稱成功, 傳後世. 其議帝號. "
(제왕용후승계, 절진사, 요위난, 병리주, 로기왕, 평제지.  과인이묘묘지신, 흥병주폭란,

뢰종묘지령, 육왕함족기고, 천하대정.  금명호불편, 무이칭성공, 전후세.  기의제호. " )

[제왕이 '후승'의 계책을 사용하여 진나라와 왕래를 끊고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였기에,

병사들과 벼슬아치들을 베어버리고 제왕을 사로잡아 제나라 땅을 평정한 것이오. 

과인이 보잘것없는 몸으로 군사를 일으켜서 난폭한 반란을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은

조상의 혼령이 돌보았기 때문이며, 6국의 왕들이 모두 처벌당하자 천하가 크게 안정되었으니

이제 호칭을 바꾸지 않는다면 그동안 이루어 놓은 공적을 드러낼 수 없고 후세에 전할 수도 없을 것이오.   

그대들은 황제의 호칭을 논하도록 하시오. "라소 하였다. ] 
                       

丞相綰, 御史大夫劫, 廷尉斯等皆曰 : 

昔者五帝地方千里, 其外侯服夷服諸侯或朝或否, 天子不能制.   

今陛下興義兵, 誅殘賊, 平定天下, 海內爲郡縣, 法令由一通, 自上古以來未嘗有, 五帝所不及. 
(승상관, 어사대부겁, 정위사등개왈 :   

" 석자오제지방천리, 기외후복이복제후혹조혹부, 천자불능제. 

금폐하흥의병, 주잔적, 평정천하, 해내위군현, 법렬유일통, 자상고이래미상유, 오제소불급.

 

[그러자 승상'왕관', 아사대부'풍겁', 정위'이사' 등이 모두 아뢰기를 : 

" 옛날에 오제 때에는 땅이 사방 천리에 지나지 않았고 그 바깥에는 '후복', '이복' 등의 제후가 있었는데  

그들이 어떤 때에는 조정에 들고 어떤 때에는 조정에 들지 않아, 천자는 그들을 제압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의로운 군사를 일으켜 잔적을 토벌하시고 천하를 평정하여 전국에 군현을 설치하고,  

법령을 하나로 통일시켰으니 상고 이래로 아직 없었던 일이니 오제도 이에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臣等謹與博士議曰 : '古有天皇, 有地皇, 有泰皇, 泰皇最貴' .  臣等昧死上尊號, 王爲'泰皇'. 

命爲,'制', 令爲'詔' 天子自稱曰'朕' ".
(신등근여박사의왈 : '고유천황, 유지황, 유태황, 태황최귀'. 신등매사상존호, 왕위'태황'.

명위'제', 령위'조' 천자자칭왈'짐' " ).

[신들이 삼가 박사들과 함께 논의하기를 : '고대에는 천황, 지황, 태황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 태황이 가장 존귀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들이 황공하옵게도 존호를 올리나니, 왕을 '태황'이라고 하고,  

을 '제'라고 하고, 영을 '조'라고 하며, 천자가 스스로를 칭할 때는 '짐'이라고 하십시요 "라고 하였다. ] 
            

王曰 : "去'泰', 著'皇', 采上古'帝'位號, 號曰'皇帝'. 他如議".  制曰 : "可".  追尊莊襄王爲太上皇.
(왕왈 : "거'태', 저'황', 채상고'제'위호, 호왈'황제'. 타여의"   제왈 : "가" .  추존장양왕위태상황. )   

[그러자 진왕이 말하기를 : " '태'자를 없애고 '황'자를 취하고, 상고시대의 '제'라는 호칭을 채택하여 

'황제'라고 칭할 것이며 다른 것은 그대들이 논의한 대로 하라 "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좋다"라고 하였다. '장양왕'을 태상황 이라고 추존하였다. ] 
            

制曰 : " 朕聞太古有號毋謚, 中古有號, 死而以行爲謐.  如此, 則子議父, 臣議君也,  

甚無謂, 朕弗取焉.  自今已來, 除謚法. 朕爲始皇帝. 後世以計數, 二世三世至于萬世, 傳之無窮 ".
(제왈 : "짐문태고유호무익, 중고유호, 사이이행위밀.  여차. 즉자의부, 신의군야,  

심무위, 짐불취언.  자금이래, 제익법.  짐위시황제.  후세이계수, 이세삼세지우만세, 전지무궁. " ) 


[또 이렇게 분부하였다 : "짐이 듣건대 태고에는 호는 있었으나 시호는 없었으며, 중고에는 호가 있었고

죽은 후에 생전의 사적에 따라서 시호를 정하였다고 하오, 그렇다면 이것은 자식이 아비를 논의하고,

신하가 군주를 논의하는 것과 같은데 이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니 짐은 이러한 제도를 택하지 않겠소.

그래서 지금부터는 시호를 추서하는 법을 폐지하며 짐은 최초의 황제가 되었기에 시황제라고 칭하고,  

후세에는 수를 세어서 이세, 삼세라고 하여 만세에 이르기까지 길이 전하여지도록 하시오. "라고 하였다. ]

 

始皇推終始五德之傳, 以爲周得火德, 秦代周德, 從所不勝. 方今水德之始, 改年始, 朝賀皆自十月朔.

(시황추종시오덕지전, 이위주득화덕, 진대주덕, 종소불승.  방금수덕디시, 개년시, 조하개자시월삭. ) 

[시황제는 오덕(虞는 土德, 夏는 木德, 殷은 金德, 周는 火德, 秦은 水德)이 끝과 시작이 반복하는 순서를 고찰하여 

주나라는 화덕을 얻었는데 진나라가 주나라를 대신하였으니 주나라의 화덕이 이기지 못하는 

진나라의 수덕을 따라야 한다고 여겼다. 그리하여 이제는 수덕의 시작이니 일 년의 시작을 바꾸고,  

조정의 하례식도 모두 10월 초하루에 거행하였다. ] 
            

衣服旌旌節旗皆上黑.  數以六爲紀, 符,法冠皆六寸, 而輿六尺, 六尺爲步, 乘六馬.   

更名河曰德水, 以爲水德之始.  剛毅戾深, 事皆決於法, 刻削毋仁恩和義, 然後合五德之水. 

於是急法, 久者不赦.
(의복정정절기개상흑.  수이육위기, 부, 법관개육촌, 이여육척, 육척위보, 승육마.   

경명하왈덕수, 이위수덕지시.  강의려심, 사개결어법, 각삭무인은화의, 연후합오덕지수.   

어시급법, 구자불사. ) 

[의복, 깃발, 부절의 색은 모두 검은색을 숭상하였다. 수는 6을 기초로 하였으니 부절, 법관을 모두 6치로 규정하고

가마의 너비도 6자로 정하였으며 6자를 1보라 하고 수레 한 대를 6마리의 말이 끌게 하였다.

황하를 덕수라고 개명하여 수덕의 시작을 나타내었다. 강직하여 굽힘이 없고 매우 거칠며

모든 일을 법에 의해서 결정하고 각박하게 인의, 인덕, 우호따위가 없어야 오덕의 명수에 부합된다고 여겼다.

그래서 법령을 엄하게 하여 법을 어긴 자는 오랫동안 죄를 용서받지 못하였다. ]

           

丞相綰等言 : " 諸侯初破, 燕,齊,荊地遠, 不爲置王, 毋以填之.  請立諸子, 唯上幸許. "  

始皇下其議於群臣, 群臣皆以爲便.
(승상관등언 : "제후초파, 연,제,형지원, 불위치왕, 무이전지. 청립제자, 유강행허. "  

시황하기의어군신, 군신개이위편. ) 

[승상 '왕관' 등이 말하기를 : "제후들은 이제 막 격파했지만 연, 제, 초나라 땅이 너무 멀어서 왕을 두지 않으면

그들을 제압할 수 없사옵니다, 청하옵나니 황자들을 왕으로 세울 것을 윤허하여 주옵소서. "하였다.

시황제가 군신들에게 이 의견을 상의하도록 하자. 군신들이 모두 그렇게 하는 것이 편하다고 여겼다.]   
            

廷尉李斯議曰 : " 周文武所封子弟同姓甚衆, 然後屬疎遠, 相攻擊如仇讎, 諸侯更相誅伐, 

周天子弗能禁止. 今海內賴陛下神靈一通, 皆爲郡縣, 諸子功臣以公賦稅重賞賜之, 深足易制.   

天下無異意, 則安寧之術也. 置諸侯不便. "             
(정위이사의왈 : " 주문무소봉자제동성심중, 연후속소원, 상공격여구수, 제후경상주벌,   

주천자불능금지. 금해내뢰폐하신령일통, 개위군현, 제자공신이공부세중상사지, 심족이제.  

천하무이의, 즉안녕지술야. 치제후불편. " ) 

[정위 '이사'가 이의를 제기하기를 : " 주나라의 '문왕', '무왕'은 많은 자제들과 일족을 왕으로 봉했지만  

후손들이 점차 소원해지고 멀어져 서로 원수처럼 공격하였고 심지어 제후들끼리 서로 죽이고 정벌하였음에 

周의 천자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이제 천하가 폐하의 신령에 의하여 통일되어 모두 군,현이 되었으니,

황자나 공신들에게 국가의 부세로써 후한 상을  내리신다면 그들을 다스리시기에 매우 쉬울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천하에 다른 마음이 없을 것이며, 이것이 바로 천하를 안녕하게 하는 책략이오니, 

제후를 설치하는 것은 편치 않습니다. "라고 하였다. ]  
            

始皇曰 : "天下共苦戰鬬不休, 以有侯王. 賴宗廟, 天下初定, 又復立國, 是樹兵也,   

而求其寧息, 豈不難哉 ! 廷尉議是. "  
(시황왈 : "천하공고전투불휴, 이유후왕. 뢰종묘, 천하초정, 우복립국, 시수병야,  

이구기녕식, 기불난재 ! 정위의시. ") 

[진시황이 말하기를 : "전쟁이 멈추지 않아 천하가 모두 고통받고 있는데 이는 제후왕이 있기 때문이다.  

선조의 신령에 의지하여 이제야 천하를 평정하였는데, 또 다시 제후국을 세운다면 다시 전쟁을 조장하는 것이니

안녕과 휴식을 구하는 것이 어찌 어렵지 아니하겠는가 ! 정위의 의견이 바람직 하도다. "라고 하였다. ]

 

分天下以爲三十六郡, 郡置守,尉,監.  更名民曰"黔首". 大酺.  收天下兵, 聚之咸梁, 銷以爲鐘鐻,

金人十二, 重各千石, 置廷宮中. 一法度衡石丈尺.  車同軌. 書同文字.

(분천하이위삼십육군, 군치수,위,감.  경명민왈"검수". 대포.  수천하병, 취지함양, 소이위종거,

금인십이, 중각천석, 치정궁중. 일법도형석장척.  거동궤. 서동문자. )

[천하를 36개 군으로 나누어 군마다 수, 위, 감을 두었다. 백성을 일컫는 말을 바꾸어 "검수"라고 하고

큰 연회를 베풀었다.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서 "함양"에 모아 놓고 그것을 녹여서 종거(종을 매다는 틀)와 

12개의 동인상을 만들었는데 무게가 각각 1,000석으로 모두 궁전 안에 놓아두었다.

법률과 도량형을 통일하고 수레의 바퀴폭을 통일했으며 문자의 서체도 통일하였다. ]   

       

地東至海暨朝鮮, 西至臨洮, 羌中, 南至北向戶, 北據河爲塞, 兵陰山至遼東.   

徙天下豪富於咸陽十二萬戶.  諸廟及章臺, 上林皆在渭南, 秦每破諸候, 寫放其宮室,

作之咸陽北阪上, 南臨渭, 自雍門以東至涇,渭, 殿屋複道周閣相屬.
(지동지해기조선, 서지임조, 강중, 남지북향호, 북거하위색, 병음산지요동.   

사천하호부어함양십이만호.  제묘급장대, 상림개재위남, 진매파제후, 사방기궁실,

작지함양북판상, 남임위, 자웅문이동지경,위, 전옥복도주각상속. )         

[영토가 동쪽으로는 동해, "조선"에까지 이르고, 서쪽으로는 "임조", "강중"에까지 이르며,   

남쪽으로는 "북향호"에까지 이르며, 북쪽으로는 황하를 근거지로 하여 요새를 쌓아서 "음산"을 끼고  

"요동"에까지 이르게 하였다. 전국의 부호 12만 호를 "함양"으로 이주하게 하였다.] 
            

諸廟及章臺, 上林皆在渭南, 秦每破諸候, 寫放其宮室, 作之咸陽北阪上, 南臨渭,  

自雍門以東至涇,渭, 殿屋複道周閣相屬.  所得諸侯美人鐘鼓, 以充入之.  

(제묘급장대, 상림개재위남, 진매파제후, 사방기궁실, 작지함양북판상, 남임위,   

자웅문이동지경,위, 전옥복도주각상속.  소득제후미인종고, 이충입지. ) 

[조상의 묘인 "장대궁", "상림원"이 모두 "위수"의 남쪽 언덕에 있었다,

이것들은 진나라가 제후들을 평정할 때마다 그 나라의 궁실을 모방하여 "함양"의 북쪽 산기슭에 지은 것인데,

남쪽으로는 위수가 흐르고 "옹문" 동쪽에서 "경수","위수" 까지 이르며 궁전 사이의 구름다리와 주각이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제후들에게서 빼앗은 미인을 비롯해 종과 북이 이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

 

二十七年, 始皇巡隴西, 北地, 出雞頭山, 過回中.  焉作信宮渭南, 已更命信宮爲極廟, 象天極. 

自極廟道通酈山, 作甘泉前殿, 筑甬道, 自咸陽屬之.   是歲, 賜爵一級. 治馳道.
(이십칠년, 시황순롱서, 북지, 출계두산, 롸회중.  언작신궁위남, 이경명신궁위극묘, 상천극. 

자극묘도통역산, 작감천전전, 축용도, 자함양속지.   시세, 사작일급. 치치도. )           

[시황 27년, 진시황은 "롱서", "북지"를 순시하고 "계두산"을 지나서 "회중궁"을 경유하였다.  

위수 남쪽에 신궁을 지었으며 얼마후에 신궁을 극묘라고 개명하여 북극성을 상징하였다.  

극묘에서 "역산"까지 길을 뚫고 감천궁의 전전을 지었으며 용도를 수축하여 "함양"까지 통하게 하였다.   

이 해에 작위를 한 등급씩 하사하였고, 치도를 수축하였다. ]          

 

二十八年, 是皇東行郡縣, 上鄒嶧山.   立石, 與魯諸儒生議, 刻石頌秦德, 議封禪望祭山川之事.  

乃遂上泰山, 立石, 封, 祠祀. 下, 風雨暴至, 休於樹下, 因封其樹爲五大夫.   

禪梁父. 刻所立石, 其辭曰 :         
(이십팔년, 시황동행군현, 상추역산.  입석, 여로제유생의, 각석송진덕, 의봉선망제산천지사. 

내수상태산, 입석, 봉, 사사. 하, 풍우폭지, 휴어수하, 인봉기수위오대부.  선량부. 각소입석, 기사왈 : )  

['시황' 28년, 진시황이 동쪽으로 군현을 시찰하던 중에 "추역산"에 올라서 비석을 세우고 노나라의 유생들과 

상의하여 진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을 세겼으며 봉선과 여러 산천에 대한 망제의 일을 논의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태산"에 올라서 비석을 세우고 토단을 쌓아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제사를 마치고 산을 내려 오던중에 갑자기 바람이 불고 세찬 비가 내려 나무 아래서 잠시 쉬었는데

이 일로 인하여 그 나무를 '오대부'로 봉하였다.

"양보산"에서 땅에 제사를 지내고 비석을 세워서 글을 새겼는데 그 비문은 다음과 같다 :


皇帝臨位, 作制明法, 臣下修飭.  二十有六年, 初幷天下, 罔不. 親巡遠方黎民, 登兹泰山, 周覽東極.

(황제임위, 작제명법, 신하수칙. 이십유육년, 초병천하, 망불빈복.  친순원방여민, 등자태산, 주람동극. 

[황제께서 제위에 오르시어 밝은 법도를 만드시니, 신하들은 몸을 닦고 의로운 일에 힘쓰며, 

26년에 처음으로 천하를  통일하시니 신하로써 존경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황제께서 친히 먼 지방의 백성들에게까지 순무하여 이 태산에 올라 동쪽 끝을 바라보았다.   
            

從臣思跡, 本原事業, 祗誦功德.  治道運行, 諸産得宜, 皆有法式.  大義休明, 垂于後世, 順承勿革.

(종신사적, 본원사업, 지송공덕.  치도운행, 제산득의, 개유법식.  대의휴명, 수우후세, 순승물혁.

[따르던 신하들이 지나간 발자취를 회상하며 사업의 근원을 생각하면서 황제의 공덕을 찬송하였다.   

치국의 도가 행하여지자,  모든 일들에 법식이 생기며 대의가 명확히 드러나서 후세에 널리 전해지며  

영원히 계승되어 변함이 없으리라.
 

皇帝躬圣, 旣平天下, 不懈於治. 夙興夜寐, 建設長利, 專隆教誨.  訓經宣達, 遠近畢理, 咸承圣志.  

貴賤分明, 南女禮順, 愼遵職事, 昭隔內外, 靡不淸净, 施于後嗣.化及無窮, 遵奉遺詔, 永承重戒.

(황제궁성, 기평천하, 불해어치. 숙흥야매, 건설장리, 전륭교회. 훈경선달, 원근필리, 함승성지.  

귀천분명, 남녀예순, 신준직사, 소격내외, 미불청정, 시우후사. 화급무궁, 준봉유조, 영승중계. )      

[황제께서 몸소 정사를 베푸시어 이미 천하를 평정하고 천하를 다스림에 게을리하지 않으시니,  

아침 일찍 일어나시고 밤늦게 주무시면서 백성들을 위하여 항상 이익이 되도록 하시며   

백성들에 대한 가르침과 깨우침에 전념하셨다.   

경전을 두루 가르치시니 원근이 모두 다스려지고 백성들이 모두 황제의 성스러운 뜻을 받들었다.

귀천이 분명하게 나뉘고 남녀가 예의에 순종하며 자신의 직분을 신중하게 준수하였으며,

안과 밖이 명확히 구분되어 깨끗하지 않음이 없으며 어진 베품이 후세에까지 이어져 교화의 미침이 무궁하리라,

황제의 유조를 받들어 엄중한 훈계를 영원히 계승할지어다. ]

 
於是乃幷勃海以東, 過黃,腄, 窮成山, 登之罘, 立石頌秦德焉而去.  

(어시내병발해이동, 과황,수, 궁성산, 등지부, 입석송진덕언이거. ) 


[그리고 나서 "발해"를 끼고 동쪽으로 향하여 "황현", "추현"을 지나 "성산"에 다달아 "지부산"에 올라, 

비석을 세우고 진의 공덕을 칭송한 후 떠났다. ]

南登瑯邪, 大樂之, 留三月. 乃徙黔首三萬戶瑯邪臺下, 復十二歲.   

作瑯邪臺, 立石刻, 頌秦德, 明得意.  
(남등랑야, 대악지, 유삼월. 내사검수삼만호랑야대하, 복십이세.   

랑야대, 입석각, 송진덕, 명득의. ) 


[진시황이 남쪽으로 "랑야산"에 올라서 매우 즐거워하며 3개월을 머물렀다

이때 검수(백성) 3만 호를 "랑야산" 아래로 이주시키고 그들에게 12년간의 부세와 요역을 면제시켜 주었다. 

"랑야대"를 지어서 비석을 세우고 비문을 세겨서 진의 공덕을 칭송하며 자신의 뜻을 명백하게 나타냈다. ]

曰 : 維二十八年, 皇帝作始.  端平法度, 萬物之紀.  以明人事, 合同父子.

圣智仁義, 顯白道理.  東憮東土, 以省卒士. 事已大畢, 乃臨于海. 皇帝之功, 勸勞本事.

上農除末, 黔首是富.  普天之下, 摶心揖志.  器械一量, 同書文字.  日月所照, 丹輿所載. 

皆終其命, 莫不得意.  應時動事, 是維皇帝.  匡飭異俗, 陵水經地.  憂恤黔首, 朝夕不懈 .

(왈 : 유이십팔년, 황제작시.  단평법도, 만물지기.  이명인사, 합동부자.   

성지인의, 현백도리.  동무동토, 이성졸사.  사이대필, 내임우해. 황제지공, 권로본사.

상농제말, 검수시부.  보천지하, 단심집지. 기계일량, 동서문자.  일월소조, 단여소재.

개종기명, 막불득의.  응시동사, 시유황제.  광칙이속, 능수경지. 우휼검수, 조석불해. ) 

 

[28년에 황제께서 처음으로 즉위하자, 법도를 바로잡아 만물의 기준으로 삼고, 인사를 밝히시니 부자간이 화목하고,

뛰어난 지혜와 인의로써 모든 도리를 분명히 드러내셨다, 또한 동쪽 땅을 순무하시고 군사들을 보살피셨다.  

큰 일이 다 끝나자 해안지역까지 왕림하셨다. 황제의 공적은 근본적인 대사를 부지런히 힘쓰신 것이며, 

농업을 숭상하고  상업을 억제하여 백성들을 풍요롭게 하니, 천하의 백성들이 마음을 하나로 뭉치고 뜻을 모았다. 

각종기물의 도량을 통일하고 문자의 서체를 통일하였다.  

무릇 해와 달이 비추는 곳과 배와 수레가 다니는 곳은 어디나 황제의 명이 행하여지니 뜻을 얻지 못하는 자가 없었다. 

사시의 변화에 따라서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은 오직 황제이시니, 다른 풍속을 바로잡고자 산을 넘고

물을 건너 오셨으니 백성들을 규휼이 여겨 아침이나 저녁이나 게으름피지 않으셨다. ] 

 

疑定法, 咸知所辟.  方伯分職, 諸治經易.  擧錯必當, 莫不如畵.  皇帝之明, 臨察四方. 

尊卑貴賤, 不踰次行.  瑯邪不容, 皆務貞良.  細大盡力, 莫敢怠荒.  遠邇辟隱, 專務肅莊.

端直敦忠, 事業有常.  皇帝之德, 存定四極.  誅亂除害, 興利致福.  節事以時, 諸産繁殖. 

黔首安寧, 不用兵革.  六親相保, 終無寇賊.  驩欣奉敎, 盡知法式 .     

(제의정법, 함지소피. 방백분직, 제치경이. 거착필당, 막불여화. 황제지명, 임찰서방.

존비귀천, 불유차행.  량야불용, 개무정량. 세대진력, 막감태황. 원이피은, 전무숙장. 

단직돈충, 사업유상.  황제지덕, 존정사극.  주난제해, 흥리치복.  절사이시, 제산번식.

검수안녕, 불용병혁. 육친상보, 종무구적.  환흔봉교, 진지법식. )

 

[의혹을 제거하고 법령을 제정하니, 백성들이 모두 법으로 금지한 일을 피할줄 알게되었다,

지방 관리 들의 직무가 나뉘어져 모든 정무의 시행이 용이해지고 모든 조치가 타당하여 바르지 않은 것이 없었다,

황제께서 명철하심으로 사방을 두루 살피시니 존귀한 사람이나 비천한 사람이나 모두 자신의 분수를 지킬 수 있었다. 

간교함이나 사악함을 용납하지 않고 모두 충정과 선량함을 힘써 구하였으며, 크고 작은 일을 막론하고 힘을 다하여

감히 태만하거나 소홀함이 없으며, 멀거나 가깝거나 혹은 숨어 사는 사람일지라도 오로지 엄숙과 장중함에 힘썼다.

정직하고 충성되어야만 하는 일이 꾸준히 지속될 수 있었다, 황제의 덕이 사방의 끝까지 안정시켰다. 

난리를 일으킨 자들을 주살하여 해악을 제거하고 이로움을 일으켜서 복을 이루셨다.

농절기에는 일을 줄여 주니, 모든 산업이 번성하였으며 백성들이 평안해지니 무기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고,

육친이 서로 의지하며 보살피니, 마침내 도적이 없어졌다,

백성들이 모두 교화를 기쁘게 받들며 법령과 제도를 다 알게 되었다. ] 

六合之內, 皇帝之土.  西涉流沙, 南盡北戶.  東有東海, 北過大夏.  人跡所之, 無不臣者. 

功蓋五帝, 澤及牛馬.  莫不受德, 各安其宇. 維秦王兼有天下, 立名爲皇帝, 乃憮東土, 至于瑯邪. 

列侯武城侯王離, 列侯通武侯王賁, 倫侯建成侯趙亥, 倫侯昌武侯成, 倫侯武信侯馮毋擇,

丞相隗林, 丞相王绾, 卿李斯, 卿王戊, 五大夫趙嬰, 五大夫楊樛從, 與議於海上.   

(육합지내, 황제지토. 서섭유사, 남진북호. 동유동해, 북과대하. 인적소지, 무불신자.  

공개오제, 택급우마, 막불수덕, 각안기우. 유진왕겸유천하, 입명위황제, 내무동토, 지우랑야. 

열후무성후왕리, 열후통무후왕분, 윤후건성후조해, 윤후창무후성, 윤후무신후풍무택,

승상외림, 승상왕관, 경이사, 경왕무, 오대부조영, 오대부양규종, 여의어해상. )

 

[천지와 사방안에 있는 것이 모두 황제의 영토이니 서쪽으로 "유사"를 건너고, 남쪽으로 "북호"까지 다다르며,

동쪽으로는 동해를 포함하고, 북쪽으로는 "대하"를 지나서 사람이 이르는 곳에는 신하가 아닌 자가 없었고, 

황제의 공적은 오제보다 월등하였고, 은덕은 소와 말에게까지 미쳤으며,   

은덕을 받지 않은 자가 없어 각자 편안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진왕이 천하를 통일하여 이름을 황제라 정하고 동쪽 영토를 순무하여 "랑야"에 이르렀다. 

열후인 무성후 '왕리', 통무후 '왕분', 윤후인 건성후 '조해', 창무후 '성', 무신후 '풍무택', 승상인 '외림', '왕관' 

'경인' '이사', '왕무', 오대부인 '부조영', '양규종'이 황제를 수행하며 해상에서 황제의 공덕을 함께 의논하였다.]

曰 : " 古之帝者, 地不過千里, 諸侯各守其封域, 或朝或否, 相侵暴亂, 殘伐不止, 猶刻金石,

以自爲紀.  古之五帝三王, 知敎不同, 法度不明, 假威鬼神, 以欺遠方, 實不稱名, 故不久長.

身未歿, 諸侯倍叛, 法令不行.  今皇帝幷一海內, 以爲郡縣, 天下和平. 

昭明宗廟, 體道行德, 尊號大成. 群臣相與誦皇帝功德, 刻于金石, 以爲表經. "

(왈 : "고지제자, 지부과천리, 제후각수기봉역, 혹조혹부, 상침폭란, 잔벌불지,   

유각금석, 이자위기.  고지오제삼왕, 지교부동, 법도불명, 가위귀신, 이기원방, 실불칭명, 고불구장.

기신미몰, 제후배반, 법령불행. 금황제병일해내, 이위군현, 천하화평.

소명종묘, 체도행덕, 존호대성. 군신상여송황제공덕, 각우금석, 이위표경. " )

 

[이르기를 "고대 제왕들은 영토가 사방 천리에 불과했지만 제후들이 각기 자기 봉토만을 지키면서 누구는 입조하고  

누구는 입조를 하지 않으며, 서로 침략하여 폭란을 일삼으며 잔인한 정벌을 그치지 않았음에도 금석에 글을 세겨

스스로를 기념하였다. 고대의 오제와 삼왕은 지식과 가르침이 같지 않고 법도가 분명하지 않아

귀신의 위력을 빌려 먼 지방까지 속였으며, 사실 이름이 서로 부합되지 않았던 까닭에 오래가지 못하였다. 

그들이 죽기도 전에 제후들이 배반하여 법령이 행해지지 않았다. 이제 황제가 천하를 통일하여 군현을 설치하니

천하가 화평해지고 종묘를 밝히고 도의를 구현하며 덕을 실행하여 시황제라는 존호를 완비하였다.   

군신들은 서로 황제의 공덕을 외워서 금석에 새겨 본보기로 삼고자 함이다. "라고 하였다. ] 

旣已, 齊人徐市等上書, 言海中有三神山, 名曰篷萊, 方丈, 瀛州, 僊人居之. 

請得齋戒, 與童男女求之. 於是遣徐市發童男女數千人, 入海求僊人.

始皇還, 過彭城, 齋戒禱祠, 欲出周鼎泗水. 使千人沒水求之, 弗得. 乃西南渡淮水, 之衡山, 南郡.

(기이. 제인서불등상서, 언해유중삼신산, 명왈봉래, 방장, 영주, 선인거지.  

청득재계, 여동남녀구지. 어시견서불발동남녀수천인, 입해구선인.

시황환, 과팽성, 재계도사, 욕출주정사수.  사천인몰수구지, 불득.  내서남도회수, 지형산, 남군. )

  
[일을 마치자, 제나라 사람 '서불'등이 상서하여 말하기를 바다 가운데 세 개의 신산이 있는데, 

"봉래산", "방장산", "영주산"이라 하며 거기에는 신선들이 살고 있습니다.  

청하옵건대 재계하고 나서 어린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를 데리고 신선을 찾아 나서게 하옵소서. 라고 하자

'서불'을 보내서 수천명의 사내아이와 계집아이를 선발하여 바다로 가서 신선을 찾도록 하였다.

진시황이 돌아오면서 "팽성"을 지날 때 재계하고 사당에서 기도한 후 "사수"에 빠진 주정을 꺼내기 위해 

천여 명을 보내 물속에 들어가서 정을 찾도록 하였으나 손에 넣지 못하였다.   

이에 서남쪽으로 "회하"를 건너 "형산", "남군"으로 갔다.] 

 

浮江, 之湘山祠 .  逢大風, 幾不得渡.  上問博士曰 : " 湘君神 " ?

博士對曰 : " 聞之, 堯女, 舜之妻, 而葬此. "     

於是始皇大怒, 使形徒三千人皆伐湘山樹, 赭其山.  上自南郡由武關歸. 

(부강, 지강산사.  봉대풍, 기불득도.  상문박사왈 : "상군신" ? 

박사대왈 : " 문지, 요녀, 순지처, 이장차. "   

어시시황대노, 사형도삼천인개벌상산수, 자기산.  상자남군무관귀. )

 

[장강의 물줄기를 타고 "상산사"에 이르렀으나 마침 큰 바람을 만나서 하마터면 강을 건너지 못할 뻔하였다.

진시황이 박사들에게 묻기를 : "'상군'은 어떤 신인가 ? 라고 하자.

박사가 대답하기를 : "요임금의 여식으로 순임금의 아내가 되었는데 죽어서 이곳에 묻혔다고 들었습니다 " 

라고 하였다. 그러자 진시황이 크게 화를내며 복역하고 있는 죄수 3,000명을 보내 "상산"의 나무들을 모두 베게하여, 

그 산을 붉은 벌거숭이로 만들었다. 그리고 시황제는 남군으로부터 "무관"을 거쳐서 도성으로 돌아왔다. ]

 

二十九年, 始皇東游.  之陽武博狼沙中, 爲盜所驚.  求弗得, 乃令天下大索十日.
(이십구년, 시황동유.  지양무박랑사중, 위도소경.  구불득, 내령천하대색십일. ) 


[시황 29년, 시황제가 동쪽으로 행차하였다. 시황제가 "양무현 박랑사"에 이르렀을 때 강도 때문에 몹시 놀랐다. 

강도를 잡으려고 했으나 잡지 못하자, 10일간 대규모로 전국을 수색하도록 명령하였다. ]  

 

登之罘, 刻石.  其辭曰 : 維二十九年, 時在中春, 陽和方起. 皇帝東游, 巡登之罘, 臨照于海. 

從臣嘉觀, 原念休烈, 追誦本始.  大圣作治, 建定法度, 顯箸綱紀. 外敎諸侯, 光施文惠, 明以義理.

​六國回辟, 貪戾無厭, 虐殺不已.  皇帝哀衆, 遂發討師, 奮揚武德. 義誅信行, 威燀旁達,

莫不賓服. 烹滅彊暴, 振救黔首, 周定四極.  普施明法, 經緯天下, 永爲儀則. 大矣哉 !

于縣之中, 承順圣意. 群臣誦功, 請刻于石, 表垂于常式. 

(등지부, 각석. 기사왈 : 유이십구년, 시재중춘, 양화방기. 황제동유, 순등지부, 임조우해.

종신가관, 원념휴열, 추송본시.  대성작치, 건정법도, 현저강기. 외교제후, 광시문혜, 명이의리.

육국회피, 탐려무염, 학살불이.  황제애중, 수발토사, 분양무덕, 의주신행, 위천방달, 막불빈복.

팽멸강폭, 진구검수, 주정사극.  시보명법, 경위천하, 영위의즉. 대의재 ! 우현지중, 승순성의.

군신송공, 청각우석, 표수우상식. )

 

["지부산"에 올라 글을 세긴 비석을 세웠다. 그 비문은 다음과 같다 : 

29년 봄, 바야흐로 따뜻한 기운이 일어나는 때에 황제께서 동쪽으로 행차하시어 "지부산"에 올라서서 대해를 바라

보셨다. 황제를 따르던 신하들이 경치를 찬양하며 황제의 위대한 업적을 생각하고 창업의 공적을 칭송하였다. 

위대한 성군께서 치도를 만드시고 법도를 제정하여 기강을 분명히 밝히셨으며 대외적으로 제후들을 교화하고 은혜를

베푸시어 대의와 도리를 밝히셨다. 육국의 군주들이 사악하고 탐욕스러워서 만족할줄 모르니 학살이 멈추지 않았다.

황제께서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마침내 군사를 일으켜 토벌하시고 무덕을 널리 떨치셨다.

정의에 의하여 주살하고 신의에 맞게 행동하시니 황제의 위엄이 먼 지방까지 도달하니 

신하로써 조현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강폭함을 소멸시키고 백성들을 구제하시어 천하를 두루 안정되게 하셨다. 

분명한 법도를 널리 베푸시어 천하를 다스리시니 영원토록 법칙이 되었다. 위대하도다 !

천하의 백성들이 황제의 성스러운 뜻을 이어받아 순종하도다. 군신들이 황제의 공덕을 외우며

비석에 그 공덕을 세겨 영원히 변하지 않는 표상으로 하여 후세에 전해지도록 간청하였다. ]

其東觀曰 : 二十九年, 皇帝春游, 覽省遠方. 逮于海隅, 遂登之罘, 昭臨朝陽.  

觀望廣麗, 從臣咸念, 原道至明.  圣法初興, 淸理疆內, 外誅暴彊. 武威旁暢, 振動四極, 禽滅六王.

闡幷天下, 甾害絶息, 永偃戎兵. 皇帝明德, 經理于內, 視聽不怠.  作立大義, 昭設備器, 咸有章旗.

職臣遵分, 各知所行, 無事嫌疑. 黔首改化, 遠邇同度, 臨古絶尤.  常職旣定, 後嗣循業, 長承圣治.

群臣嘉德, 祗誦圣烈, 請刻之罘. 旋, 遂之琅邪, 道上黨入.
(기동관왈 : 이십구년, 황제춘유, 람성원방. 체우해우, 수등지부, 소임조양. 

관망광려, 종신함념, 원도지명.  성법초흥, 청리강내, 외주폭강. 무위방창, 진동사극, 금위육왕.

천병천하, 재해절식, 영언융병. 황제명덕, 경리우내, 시청불태.  작입대의, 소설비기, 함유장기. 

직신준분, 각지소행, 무사혐의. 검수개화, 원이동도, 임고절우.  상직기정, 후사순업, 장승성치. 

군신가덕, 지송성열, 청각지부. 선, 수지랑야, 도상당입. ) 

 

[동관에 비문을 세겨 말하기를 : 29년 황제가 봄에 행차하시어 먼 지방까지 시찰하시었다.

바다의 한 구석에 이르러서 마침내 지부에 올라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셨다.

광활하고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면서 신하들이 모두 황제의 공적을 생각하며 그 치도가 지극히 밝았음을  

회상하였다. 황제께서 성스러운 법을 처음 시행하시어 안으로는 국내를 깨끗히 정리하시고 밖으로는 난폭한 자들을 

주살하셨다. 무력의 위세를 떨치시어 사방을 진동시키고 6나라의 왕들을 사로잡아 멸하였으며, 천하를 통일하여,

재해를 멈추게하고 전쟁을 영원히 중지시키셨다. 황제께서 덕을 밝히시어 천하를 다스리고 보고 듣고 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시며 대의를 세우시고, 각종 기물을  설치하시며 모든 신분의 등급을 깃발로 구분하였다.  

신하들은 자신의 직분을 준수하며 각자 행하여야 할바를 알아서 함으로써 꺼리고 싫어하는 일이 없어졌다.

백성들이 풍습을 개량하고 멀고 가까움의 구분없이 모두 법도를 같게하니 늙도록 죄를 짓지 않았다.   

일상적인 직무가 이미  정해지니 후손들은 일을 이어가 오래도록 이 성스러운 다스림을 계승토록 할지어다. 

군신들이 황제의 덕을 기리며 성스러운 업적을 칭송하며 "지부"에 비석을 새기기를 간청하였다.

​얼마후, "랑야"에 갔다가 "상당"을 거쳐서 도성으로 돌아왔다. ]

 

三十年, 無事.
(삼십년, 무사. )


[시황 30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三十一年十二月, 更名臘 曰 " 嘉平 ".  賜黔首裏六石米, 二羊.

始皇爲微行咸陽, 與武士四人俱, 夜出逢盜蘭池, 見窘, 武士擊殺盜, 關中大索二十日.  米石千六百.
(삼십일년십이월, 경명랍 왈 " 가평 ".  사검수리육석미, 이양.

시황위미행함양, 여무사사인구, 야출봉도난지, 견군, 무사격살도, 관중대색이십일.  미석천육백. )

 

[시황 31년 12월, "납월"을 "가평"이라고 개명하였다. 백성들에게 각 리마다 쌀 여섯 섬과 양 두 마리씩을 하사하였다.

진시황이 "함양"을 미행하려고 무사 4명과 함께 한 밤중에 궁궐을 나왔다가 "난지"에서 도적을 만나서 

위험하게 되었으나 무사들이 도적을 죽여버렸다, 이로 인해 대규모로 "관중"을 20일간이나 수색하였다.  

이해 쌀 한섬이 1,600전 이나 하였다. ]

三十二年, 始皇之碣石, 使燕人盧生求羨門,高誓.  刻碣石門.  壞城郭, 決通隄防. 

其辭曰 : 遂興師旅, 誅戮無道, 爲逆滅息.  武殄暴逆, 文復無罪, 庶心咸服.  惠論功勞, 賞及牛馬,

恩肥土域. 皇帝奮威, 德幷諸侯, 初一泰平.  墮壞城郭, 決通川防, 夷去險阻. 

地勢旣定, 黎庶無繇, 天下咸憮. 男樂其疇, 女修其業, 事各有序.  惠被諸産, 久幷來田, 莫不安所. 

群臣誦烈, 請刻此石, 垂著儀矩. 因使韓終, 侯公, 石生求僊人不死之藥.  始皇巡北邊,從上郡入. 

燕人盧生使入海還,以鬼神事,因奏錄圖書,曰 “ 亡秦者胡也. ” 

始皇乃使將軍蒙恬發兵三十萬人北擊胡,略取河南地.

(삼십이년, 시황지갈석, 사연인노생구선문,고서.  각갈석문. .괴성곽, 결통제방. 

기사왈 : 수흥사여, 주육무도, 위역멸식.  무진폭역, 문복무죄, 서심함복.  혜론공노, 상급우마,

은비토역. 황제분위, 덕병제후, 초일태평.  타괴성곽, 결통천방, 이거험조. 

지세기정, 여서무요, 천하함무. 남낙기주, 녀수기업, 사각유서.  혜피제산, 구병래전, 막불안소. 

군신송열, 청각차석, 수저의구. 인사한종, 후공, 석생구선인불사지락.  시황순북변, 종상군입.    

연인노생사입해원,  이귀신사, 인진록도서, 왈 " 망진자호야 ".  

시황내사장군몽염발병삼십만인북격호, 략취하남지. )

 

[시황 32년, 진시황이 "갈석산"에 가서 연나라 사람 '노생'을 시켜 선문과 고서를 찾게 하였다.

"갈석산"의 산문에 비문을 새겼다. 성곽을 허물고 제방을 파서 그 비문에 다음과 같이 써넣었다.

황제께서 군사를 일으켜 무도한 자들을 주살하시고, 반역을 멸하였으며 무력으로 난폭하고 반역하는 자들을 멸하고,

법령으로 죄없는 자들을 보호해 주시니 백성들의 마음이 모두 황제께 복종하게 되었다,
공로를 헤아려 소나 말에게까지 상을 내리니 황제의 은혜로 전국이 비옥하게 되었다.

황제께서 위업을 떨치시어 덕으로 제후들을 병합하여 처음으로 통일하여 천하를 태평하게 하셨다.

성곽을 허물고 하천을 파서 서로 통하게하여 험난한 지형을 제거하시고, 지형의 형태가 이미 평탄해져 백성들의

요역이 없어지니 천하가 더욱 불어났다. 남자는 밭에서 경작하는 것을 즐거워하였고 여자는 집안일에 힘썼으며

일에는 각기 순서가 있었다. 황제의 은혜가 모든 생산에 까지 미치고 오랜동안 서로 협력하여 밭을 경작하니

편안한 생활을 누리지 않은 자가 없었다. 군신들이 황제의 위대한 업적을 칭송하며 비석에 새겨서

영원히 본보기가 되기를 간청하였다.

이에 '한종', '후공', '석생'을 시켜서 신선들의 장생불사 약을 구하도록 하였다. 

진시황이 북쪽 변경을 순무하면서 "상군"을 지나 도성 "함양"으로 돌아왔다.  

연나라 사람 '노생'이 바다에서 돌아와 귀신에 관한 일로 인하여 진의 서책에 기록하기를 

"진나라를 망하게 할 자는 '호'이다. "라고 쓰여 있었다.  

진시황은 이에 장군 '몽염'으로 하여금 군사 30만 명을 일으켜 북쪽으로 '호'인을 공격하여 하남지역을 점령하였다.]

 

十三年,發諸嘗逋亡人、贅婿、賈人略取陸梁地,為桂林,象郡,南海,以適遣戍.  西北斥逐匈奴.

自榆中并河以東,屬之陰山,以為 (三) [四] 十四縣,城河上為塞.

又使蒙恬渡河取斑闕, (陶) [陽] 山、北假中, 筑亭障以逐戎人.  徙謫,實之初縣.  明星出西方.

(삼십삼년, 발제상포망인, 췌서, 고인략취육량지,  위계림, 상군,남해, 이적견수.  서북척축흉노.

자유중병하이동, 소지음산, 이위 (삼) [사] 십사현, 성하상위색.

요사몽염도하취반궐, (도) [양] 산, 북가중, 축정장이축융인.  사적 , 실지초현. 명성출서방.)

 

[시황 33년, 병역이나 노역을 피해서 도망간 사람, 집이 가난하여 데릴사위로 들어간 사람, 

장사하는 사람들을 징발하여  "육량" 지역을 공격하여 취하고 "계림", "상군", "남해" 등에 군현을 설치하고,

죄를 지어 유배된 사람들을 보내서 지키도록 하였다. 또한 서북쪽의 흉노를 쫓아버렸다.

"유중"으로 부터 황하를 따라서 동쪽으로 "음산"에 이르기까지 (3) [4] 14개현을 설치하였고, 

황하 연변에 성곽을 쌓아서 요새로 삼았다. 또 '몽염'으로 하여금 황하를 건너 "반궐", 

"(도)[양]산", "북가" 일대를 빼앗게 하였고 요새를 쌓아서 오랑캐들을 몰아내었다. 

귀양보낸 사람들을 이주시켜서 새로 설치한 현에 충실하게 하였다. 밝은 별이(혜성?) 서쪽에 나타났다. ]

 

三十四年,適治獄吏不直者,筑長城及南越地. 始皇置酒咸陽宮,博士七十人前為壽. 

仆射周青臣進頌曰:“他時秦地不過千里,賴陛下神靈明圣,平定海內,放逐蠻夷, 日月所照.

莫不賓服.  以諸侯為郡縣,人人自安樂,無戰爭之患,傳之萬世. 自上古不及陛下威德. ”

始皇悅.  博士齊人淳于越進曰:“ 臣聞殷周之王千餘歲,封子弟功臣,自為枝輔. 

今陛下有海內,而子弟為匹夫,卒有田常,六卿之臣,無輔拂,何以相救哉?  

事不師古而能長久者,非所聞也.   今青臣又面諛以重陛下之過,非忠臣. ” 始皇下其議.

丞相李斯曰:“ 五帝不相復, 三代不相襲, 各以治, 非其相反, 時變異也.   

今陛下創大業, 建萬世之功, 固非愚儒所知.  且越言乃三代之事, 何足法也? 

異時諸侯并爭, 厚招游學.  今天下已定, 法令出一, 百姓當家則力農工, 士則學習法令辟禁.

今諸生不師今而學古, 以非當世, 惑亂黔首. 丞相臣斯昧死言:古者天下散亂,莫之能一,

是以諸侯并作, 語皆道古以害今, 飾虛言以亂實, 人善其所私學, 以非上之所建立. 

今皇帝并有天下, 別黑白而定一尊.  私學而相與非法教, 人聞令下, 則各以其學議之,  

入則心非, 出則巷議, 夸主以為名, 異取以為高, 率群下以造謗.

如此弗禁, 則主勢降乎上, 黨與成乎下.  禁之便.  臣請史官非秦記皆燒之.   

非博士官所職, 天下敢有藏詩· 書· 百家語者, 悉詣守· 尉雜燒之.  有敢偶語詩書者棄市.

以古非今者族.  吏見知不舉者與同罪.   令下三十日不燒, 黥為城旦. 

所不去者, 醫藥卜筮種樹之書.  若欲有學法令, 以吏為師. ”  制曰:“ 可. ”

(삼십사년, 적치옥사불직자, 축장성급남월지. 시황치주함양궁 , 박사칠십인전위수. 

복야주청신진송왈 : "타시진지불과천리, 뢰폐하신령명성, 평정해내, 방축만이, 일월소조.

막불빈복. 이제후위군현 , 인인자안락 , 무전쟁지환 , 전지만세. 자상고불급폐하위덕."

 시황열 . 박사제인순우월진왈 : "신문은주지왕천여세 , 봉자제공신 , 자위지보. 

금폐하유해내 , 이자제위필부 , 졸유전상,육경지신 , 무보불 , 하이상구재 ? 

사불사고이능장구자, 비소문야. 금청신우면유이중폐하지과, 비충신. " 시황하기의.

승상이사왈 : " 오제불상복, 삼대불상습, 각이치, 비기상반, 시변이야.   

금폐하창대업, 건만세지공, 고비우유소지.  차월언내삼대지사, 하족법야 ?

이시제후병쟁, 후초유학.  금천하이정, 법령출일, 백성당가즉역농공, 사즉학습법령벽금. 

제생불사금이학고, 이비당세, 혹란검수. 승상신사매사언 : 고자천하산란, 막지능일,

시이제후병작, 어개도고이해금,  식허언이난실, 인선기소사학, 이비상지소건립.

금황제병유천하, 별흑백이정일존.  사학이상여비법교, 인문령하, 즉각이기학의지,  

입즉심비, 출즉항의, 과주이위명, 이취이위고, 솔군하이조방.

여차불금, 즉주세강호상, 당여성호하.  금지편, 신청사관비진기개소지.   

비박사관소직, 천하감유장시· · 백가어자, 실예수, 위잡소지.   유감우어시서자기시.

이고비금자족.  리견지불거자여동죄.  금하삼십일불소, 경위성단.  소불거자, 의약복서종수지서.  

약욕유학법령, 이리위사. "  제왈 : " 가. " )

 

[시황 34년, 시황제는 부정을 저지른 관리들을 귀양보내 장성을 쌓거나 남월지역을 지키도록 하였다.

시황제가 "함양궁"에서 주연을 베풀자 박사 70명이 앞으로 나와서 축수를 올렸다. 

복야 '주청신'이 나아가 찬양하기를 : "이전에 "진"땅은 사방 천리에 불과 하였으나 폐하의 신통하고  

영묘함을 거룩하게 밝힘에 의지하여 천하를 평정하고 오랑캐를 몰아내니 해와 달이 비추는 곳이면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제후국을 군현으로 삼으시니 사람마다 안락함을 누리고  

전쟁으로 인한 근심이 사라져 그 공적을 자손 대대로 전하게 되었습니다.

상고 이래의 군주들도 폐하의 위엄과 덕망에는 미치치 못하였습니다 "라고 하였다.

시황제는 기뻐하였다 . 제나라 사람인 박사 '순우월'이 나아가 말하기를 : "신이 듣기에는 "은", "주"의 왕조가

천여 년간 지속되면서 자제와 공신들을 봉하여 왕실을 보위하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제 폐하께서 천하를 소유하셨지만 자제분들께서는 오히려 평민으로 계시는데, 만약 '전상'이나 '육경'같은

신하들이 갑자기 나타나 폐하를 보필할 자가 없으니 어떻게 구원할 수가 있겠습니까 ? 

옛 사람을 본받지 않고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는 일은 이제껏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주청신'이 면전에서 아부하며 폐하의 과실을 가중시키려고 하니 그는 충성스러운 신하가 아닙니다."하였다.

승상 '이사'가 말하기를 : " 오제의 다스림에 서로 되풀이 됨이 없었고, 삼대에 이르기까지 작위의 세습이 없었으며,

각자의 방식대로 다스렸으니, 그것은 서로 반대가 아니라, 시대가 다르게 변하였기 때문입니다. 

지금 폐하께서 큰 공업을 이루셨으며, 오랜 세월 동안 빛날 공적을 세우셨으니,

이는 굳이 우직한 학자들만이 알고 있는 바가 아닐 것입니다. 

또한 '우순월'이 언급한 것은 삼대의 일이니, 어찌 법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하겠습니까 ?

시대가 변하여 제후들은 경쟁하며 유세가와 학자들을 초빙하여 정성껏 우대하고 있습니다.  

지금 천하는 이미 안정되고, 법령이 한가지로 통일되어 백성들은 그 집안마다 농사와 공업에 힘쓰고 있으며, 

선비들은 학문을 익혀 법령과 규칙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 유생들이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고 옛 것을 따르고 있는 것은 세상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들을 현혹시키는 일입니다. 승상의 임무를 맡고 있는 신이 죽기를 무릅쓰고 말씀드리자면 :

옛날부터 천하가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울 때 하나가 될 수 없었으므로 제후들이 모두 일어났으며, 유생들은 전부

옛 것만을 말하면서 지금의 해로움에 대해서는 거짓말로 포장하여 사실을 혼란스럽게 여기게 하였으며,
사람들은 자기가 배운 것만 옳다고 여김으로써 나라에서 정해 놓은 법령과 규칙을 비방하고 있습니다.

이제 황제 폐하께서 천하를 합병하시어, 흑과 백을 구별하는 것은 존엄하신 한 분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사사로이 배운 학문을 가지고 폐하의 법령과 교화를 비방하게 되면, 백성들이 이를 듣고 
 

각자 그들이 사사로이 배운 학문으로 의논할 것이며, 입신을 하여서는 마음으로 비방하며,  

물러나서는 길거리에서 자기의 의견을 공론화시켜 군주에게 자신을 과장하여 이름을 알리려 하며,
억지 주장을 펴서 자신을 높이고 무리들을 거느리면서 조정을 비방하는 말만 만들어 낼 뿐입니다.

이같은 일들을 지금 막지 않는다면, 위로는 폐하의 위세가 떨어지고, 아래로는 붕당이 형성될 것입니다.   

그래서 금지시키는 편이 낳을 것입니다. 신이 청하옵건데 사관이 작성하지 않은 진나라 기록은 모두 불태워야

할 것입니다. 박사관이 직무로 소장한 것 이외의 천하에 감추어진 시, 서, 제자백가의 책들은 남김없이

군수나 군위에게 제출하여 소각시키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감히 시, 서를 두 사람이 마주 상대하여 이야기한다면

그 자들을 사형에 처하여 길바닥에 버려 백성들이 보게 해야 합니다.

옛날의 일을 가지고 지금의 일을 비방하는 자는 멸족을 시키고, 그일을 알면서도 들추어 내지 않는 관리는 같은 죄로

다스리기 바랍니다. 나라에 령을 내려 30일이 지났음에도 시, 서를 불태우지 않은 사람은,  

먹물로 죄명을 찍어 북방의 변경으로 유배를 보내 성벽을 쌓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의술과 약품에 관한 서적, 점술에 관한 서적, 식물을 가꾸고 심는데 관한 서적은 없애지 않아도 
될 것입니다.

만약 법령에 관한 학문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관리들을 본받으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라고 하자. 

황제가 말하기를 : " 그렇게 하라. "라고 하였다.]

 

 

三十五年, 除道, 道九原抵雲陽, 塹山堙谷, 直通之.  於是始皇以為咸陽人多, 先王之宮廷小,  

' 吾聞周文王都豐, 武王都鎬, 豐鎬之閒, 帝王之都也. '乃營作朝宮渭南上林苑中. 先作前殿阿房,

東西五百步, 南北五十丈, 上可以坐萬人, 下可以建五丈旗.  周馳為閣道, 自殿下直抵南山.

表南山之顛以為闕.  為復道, 自阿房渡渭, 屬之咸陽, 以象天極閣道絕漢抵營室也.   

阿房宮未成;成, 欲更擇令名名之.  作宮阿房, 故天下謂之阿房宮.

隱宮徒刑者七十餘萬人, 乃分作阿房宮, 或作麗山. 發北山石槨, 乃寫蜀· 荊地材皆至.

關中計宮三百, 關外四百餘.  於是立石東海上朐界中, 以為秦東門.   

因徙三萬家麗邑, 五萬家雲陽, 皆復不事十歲.

(삼십오년, 제도, 도구원저운양, 참산인곡, 직통지.  어시시황이위함양인다, 선왕지궁정소,

'오문주문왕도풍, 무왕도호, 풍호지간, 제왕지도야. ' 내영작조궁위남상림원중. 선작전전아방,

동서오백보, 남북오십장, 상가이좌만인, 하가이건오장기. 주치위각도, 자전하직저남산.

표남산지전이위궐.  위부도, 자아방도위, 속지함양, 이상천극각도절한저영실야. 

아방궁미성 : 성, 욕경택령명명지.  작궁아방, 고천하위지아방궁.

은궁도형자칠십여만인, 내분작아방궁, 혹작여산.  발북두석곽, 내사촉· 형지재개지.

관중계궁삼백, 관외사백여.  어시입석동해상구계중, 이위진동문. 

인사삼만가여읍, 오만가운양, 개복불사십세. )

 

[시황 35년, 천하의 도로를 재정비하고, "구원"에서 "운양"에 이르는 도로를 건설하면서,

산을 깎아서 구덩이를 메우고 골짜기를 막아 막힘이 없이 바로 통하였다.
그리고 나서 '시황'은 "함양"에는 인구도 많고, 선왕때 지은 궁궐이 너무 작다고 생각하여 말하기를

' 내가 듣기로 주'문왕'은 도읍을 "풍읍"에 건설하고, '무왕'은 도읍을 "호경"에 건설하였으니, 

"풍읍"과 "호경" 사이는 제왕의 도읍지라고 하였다. 이에 위수 남쪽의 "상림원" 중앙에 궁궐을 짓게 하였다. 

그리고 먼저 아방에 궁전의 중심건축물인 대전을 건축하였는데 동서의 거리가 5백 보(650m정도)이며, 

남북의 거리가 5십장(115m 정도)으로 위에는 만명이 앉을 수 있고, 아래에는 5장(약 2.5m)높이의 깃발을

세울 수 있었다. 사방으로 구름다리를 만들어 궁궐에서 "남산"으로 곧바로 다다를 수 있도록 하였다.

'남산"의 정상에 망루를 세워 표시하였다.  다시 길을 만들어 아방의 대전에서 위수를 건너 "함양"의 궁궐까지

연결하였으며, 천체의 운행 형상을 본떠서 유성이 북두칠성의 축을 이루는 "각도성"에서 나와 막힘이 없이

은하수를 건너 "영실성"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상징하게 하였다.

아방궁이 아직 완성되지 아니하여, 완성이 되면 좋은 이름을 택하여 이름을 지으려고 하였다.

또한 아방에 궁궐을 짓는다 하여 세상 사람들은 소위 아방궁이라 부르게 되었다. 

궁형과 도형의 죄를 지은 죄수 70여 만명을 몰래 끌고와서, 일부는 아방궁 건설에 투입하고,

그렇지 않으면 "여산"에 있는 '시황' 자신의 능묘를 축조하게 하였다. 
"북산"에서 돌을 가져와 관을 담는 궤를 만들고, "촉" 과 "형" 땅에서 목재를 가져와 사용하였다.

관중에 3백 개의 궁실이 꾸며져 있고, 관외에는 4백 여개의 궁실이 있다. 

그리고 동해의 "구산" 경계지역에 표석을 세워 진나라의 동문으로 삼았다.
3만 가구를 "여읍"으로 이주시키고, 5만 가구를 "운양"으로 이주시켜, 모두 10년간 노역을 면제해 주었다. ]

 

盧生說始皇曰:“ 臣等求芝奇藥僊者常弗遇, 類物有害之者.   

方中, 人主時為微行以辟惡鬼, 惡鬼辟, 真人至.  人主所居而人臣知之, 則害於神.

真人者, 入水不濡, 入火不爇, 陵雲氣, 與天地久長.   

今上治天下, 未能恬倓.  願上所居宮毋令人知, 然後不死之藥殆可得也. ”

於是始皇曰:“ 吾慕真人, 自謂真人, 不稱朕. ”   

乃令咸陽之放二百里內宮觀二百七十復道容道相連, 帷帳鐘鼓美人充之, 各案署不移徙. 

行所幸, 有言其處者, 罪死.  始皇帝幸梁山宮, 從山上見丞相車騎眾, 弗善也.  

中人或告丞相, 丞相後損車騎. 

(노생설시황왈 : " 신등구지기약선자상불우, 류물유해지자. 

방중, 인주시위미행이피악귀, 악귀피, 진인지.  인주소거이인신지지, 즉해어신. 

진인자, 입수불유, 입화불설, 능운기, 여천지구장. 

금상치천하, 미능념담.  원상소거궁무령인지, 연후불사지약태가득야. "

어시시황왈 : " 오모진인, 자위진인, 불칭짐. " 

내령함양지방이백리내궁관이백칠십복도용도상운, 유장종고미인충지, 각안서불이사.

행소행, 유언기처자, 죄사.  시황제행양산궁, 종산상견승상거기중, 불선야.  중인혹고승상, 승상후손거기.)

 

['노생'이 '시황'에게 설명하기를 : " 신 등이 지초(불로초)와 신선을 구하러 돌아 다녔으나,

아직 만나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마도 우리 일을 방해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황제께서 때때로 미행하시어 악귀를 제거하시면, 악귀가 제거되고 나면 진인이 찾아 올 것입니다. 
황제께서 거주하시는 곳을 백성과 신하들이 알게 된다면, 신선이 오는 것을 방해하게 될 것입니다. 

진인은 물속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구덩이 속으로 들어가도 불에 타지 않으며,

구름과 바람을 타고 다니며 천지와 함께 오래 나아가는 것입니다.
지금 황제께서 천하를 다스린다고 하지만 아직은 평온하고 고요하다 할 수 없습니다. 
바라옵건데 황제께서 머무시는 궁궐을 백성들이 알지 못하게 하시고,

그런 연후에 죽지 않는 약초를 구하신다면 반드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시황'이 말하기를 : " 내가 진인을 흠모하고 있으므로, 내 자신을 진인이라 알리고 짐이라 칭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함양" 주위에 령을 내걸어 2백리 안에 있는 궁실과 누각 270개에 통로와 구름다리를

서로 연결하여, 휘장과 장막으로 가리고 그안에 종과 북을 설치하였으며 아름답게 생긴 여자들로 가득 채우고

모든 사람들을 각자의 부서에 고정으로 배치하여 다른 곳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였다.

황제가 행차하여 머무는데 그 거처를 말하는 자가 있으면 죄를 물어 사형에 처하였다. 

'시황'이 순행하여 양산궁에 머물 때, 산에 올라 아래를 바라보는데 마침 승상 '이사'가 기병의 호위 속에

많은 수레와 종복을 거느리고 행차하는 광경을 보고 매우 불쾌하게 생각하였다. 
'시황'의 곁에 있던 어떤 사람이 승상 '이사'에게 이 사실을 알리자,

'이사'는 그 후로 행차할 때 수레와 기병을 대폭 줄였다.]

 

始皇怒曰:“ 此中人泄吾語. ”  案問莫服.  當是時, 詔捕諸時在旁者, 皆殺之. 

自是後莫知行之所在. 聽事, 群臣受決事, 悉於咸陽宮.

侯生盧生相與謀曰:“ 始皇為人, 天性剛戾自用, 起諸侯, 并天下, 意得欲從, 以為自古莫及己.   

專任獄吏, 獄吏得親幸.  博士雖七十人, 特備員弗用. 丞相諸大臣皆受成事, 倚辨於上.

上樂以刑殺為委, 天下畏罪持祿, 莫敢盡忠.  上不聞過而日驕, 下懾伏謾欺以取容.   

秦法, 不得兼方不驗, 輒死. 然候星氣者至三百人, 皆良士, 畏忌諱諛, 不敢端言其果. 

天下之事無小大皆決於上, 上至以衡石量書, 日夜有呈, 不中呈不得休息.   

貪於權勢至如此, 未可為求僊藥. ”  於是乃亡去.

(시황노왈 : " 차중인설오어. "  안문막복.  당시시, 조포제시재방자, 개살지. 

자시후막지행지소재.  청사, 군신수결사, 실어함양궁.

후생노생상여모왈 : " 시황위인, 천성강려자용, 기제후, 병천하, 의득욕종, 이위자고막급기. 

전임옥리, 옥리득친행.  박사수칠십인, 특비원불용. 승상제대신개수성사, 의변어상.

상락이형살위위, 천하외죄지록, 막감진충.  상불문과이일교, 하섭복만기이취용.

진법, 부득겸방불험, 첩사. 연후성기자지삼백인, 개량사, 외기휘유, 불감단언기과.

천하지사무소대개결어상, 상지이형석량서, 일야유정, 부중정부득휴식. 

탐어권세지여차, 미가위구선약. "  어시내망거. )

 

[이 소식을 듣고 '시황'이 화를 내며 말하기를 : " 이는 내 주위에 있던 자가 누설한 것이다. "라고 하며. 

모두 불러 심문하였으나 아무도 승복하지 않았다. 그러자 '시황'은 산에 올랐을 때 곁에 있던 자들을 모두 붙잡아

전부 죽여버렸다. 이 일이 있은 후로 '시황'이 순행을 나가면 있는 곳을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국가 대사를 결정할 때에는 군신들이 '시황'의 결심을 받들어 행하였고, 업무는 함양궁에서 처리되었다.

'후생'과 '노생'이 서로 상의하여 말하기를 : " '시황'이란 인물은 천성적으로 강경하고 포악하여 자신만을 앞세우며, 

자기가 제후의 신분에서 일어나 천하를 병합하고 자신의 뜻을 이루었다고 생각하여 마음대로 행동하며

아무도 자기보다 뛰어난 자가 없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옥리에게만 일을 맡기므로 옥리는 더욱 가까워져

총애를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박사들이 비록 70명이 있다 한들 아무도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승상과 대신들은 모두 이미 결정된 일만을 전달받아 수행하며, 모든 일은 황제의 뜻에 따라 행하여 지고 있습니다. 

황제는 형벌내리기를 즐겨하여 살인으로써 자신의 위엄을 갖추고 있으며, 세상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녹봉 챙기기에만 급급하며 감히 충성을 다하여 바른 말을 하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황제는 자신의 과오에 관한 말을 듣지 않고 날이 갈수록 교만해지니, 백성들은 해를 입지 않을까 두려움에 떨며

서로 속이고 헐뜯으며 손쉽게 가지려고만 합니다.  진나라 법에는 한사람이 두가지 방술을 쓰지 못하게 되어 있으며

방술을 행하였다가 효험이 없으면 오로지 죽음 뿐입니다.
그러나 기후와 별자리와 기상의 변화를 살펴 길흉을 점칠 수 있는 자는 3백 명으로 모두 훌륭한 방사이지만,

만일의 실수를 두려워하며 황제가 싫어하는 바를 꺼리고 아첨에만 급급하여 감히 황제의 잘못에 대해

바른 말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크고 작은 일들이 모두 황제의 결정에 달려 있으므로, 황제는 읽어야 할

각종 서적과 문건을 저울에 달아, 밤낮으로 한도를 정하여 그 한도에 미치지 못하면 휴식을 취하지도 않습니다. 

권세를 탐하기가 이와 같으니 그를 위해 선약을 구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라고 하면서,

이들은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쳐 버렸다. ]  

           

始皇聞亡, 乃大怒曰:“ 吾前收天下書不中用者盡去之.  悉召文學方術士甚眾, 欲以興太平,  

方士欲練以求奇藥.  今聞韓眾去不報, 徐市等費以巨萬計, 終不得藥, 徒姦利相告日聞.   

徐市等費以巨萬計, 終不得藥, 徒姦利相告日聞.  盧生等吾尊賜之甚厚, 今乃誹謗我, 以重吾不德也. 

諸生在咸陽者, 吾使人廉問, 或為訞言以亂黔首. ” 於是使御史悉案問諸生, 諸生傳相告引,

乃自除犯禁者四百六十餘人, 皆阬之咸陽, 使天下知之, 以懲後.  益發謫徙邊. 

(시황문망, 내대노왈 : " 오전수천하서부중용자진거지.  실소문학방술사심중, 욕이흥태평,

방사욕련이구기약.  금문한중거불보, 서불등비이거만계, 종부득약, 도간리상고일문. 

서불등비이거만계, 종부득약, 도간리상고일문.  노생등오존사지심후, 금내비방아, 이중오부덕야. 

제생재함양자, 오사인염문, 혹위요언이난검수. " 어시사어사실안문제생, 제생전상고인,

내자제범금자사백육십여인, 개갱지함양, 사천하지지, 이징후. 익발적사변. )

['시황'은 이들이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화를 내며 말하기를 : " 내가 이전에 천하의 쓸모없는 책들을

거두어 들여 전부 없애버렸다.  그리고 문학가와 방술사를 모두 불러 들여 두터이 대우해 준 것은

세상이 평안하기를 바랐기 때문이었으며, 방사들을 훈련시켜 효험이 있는 신기한 약을 구해 오도록 하였다.

지금 '한중'이 가더니 보고를 한 적이 없다고 들었다. '서불' 등은 많은 돈을 낭비하고도 끝내 선약을 얻지 못하였으며,

무리를 지어 간사한 방법으로 서로 이익만 챙긴다는 보고가 날마다 들려온다.  '노생' 등은 내가 소중히 생각하여

후하게 대우를 해 주었건만 지금은 오히려 나를 비방하고, 나의 부덕을 크게 떠들고 다닌다. 
"함양"에 살고 있는 여러 유생들에 관하여 내가 사람을 시켜 몰래 알아보니,

어떤 자는 요사스러운 말로 백성들의 생각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시황'은 어사로 하여금 여러 유생들을 조사하고 문초를 하게 하자,

유생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고자질하며 끌어 들여, '시황'이 직접 정한 법령을 어긴 자들이 460여 명에 달하였으며,

'시황'은 명을 내려 이들을 모두 "함양"에 구덩이를 파고 생매장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 후세에 본보기로 삼으려

하였다. 귀양 길에 있는 죄수들을 더 많이 보충하여 변방으로 보내 그곳을 지키게 하였다. ] 

           

始皇長子扶蘇諫曰:“ 天下初定, 遠方黔首未集, 諸生皆誦法孔子, 今上皆重法繩之, 臣恐天下不安. 

唯上察之. ”  始皇怒, 使扶蘇北監蒙恬於上郡.  
(시황장자부소간왈 : " 천하초정, 원방검수미집, 제생개송법공자, 금상개중법승지, 신공천하불안. 

유상찰지. "  시황노, 사부소북감몽염어상군. ) 


['시황'의 장자인 '부소'가 간하여 말하기를 : " 천하는 안정되기 시작하였지만 먼 변방지역의 백성들은

아직 편안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있으며, 유생들은 모두 '공자'의 법도를 칭송하고 있는데,

지금 황제께서 모두 중법으로 제재를 하시니, 소자는 천하가 안정되지 못할까 염려됩니다. 
오로지 황제께서는 이점을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시황'은 격노하며 '부소'를 북쪽 변방의 "상군"에서 장성 축조에 힘쓰고 있는 '몽염'에게 보내 감독 일을 하게 하였다.]

 

三十六年, 熒惑守心.  有墜星下東郡, 至地為石, 黔首或刻其石曰 “ 始皇帝死而地分. ”

始皇聞之, 遣御史逐問, 莫服, 盡取石旁居人誅之, 因燔銷其石.   

始皇不樂, 使博士為僊真人詩, 及行所游天下, 傳令樂人歌弦之.

 (삼십육년, 형혹수심.  유추성하동군, 지지위석, 검수혹각기석왈 " 시황제사이지분. "

시황문지, 견어사축문, 막복, 진취석방거인주지, 인번소기석. 

시황불락, 사박사위선진인시, 급행소유천하, 전령악인가현지. )

[시황 36년, 형혹성(화성)이 심성(전갈자리)을 지켰다. 유성이 "동군"에 떨어졌으며, 땅에 닿자 돌이 되었으며, 

어떤 사람이 그 돌을 주워 글을 새겼는데 " 시황제가 죽고 천하가 나누어진다 " 라고 써 있었다.

'시황'이 소식을 듣고, 어사로 하여금 글을 쓴 사람을 추적하여 잡아 들이라고 하였으나

아무도 인정을 하지 않으므로, 돌을 떨어진 주변에 살고 있는 백성들을 모두 죽이고, 그 돌은 불태워 부셔버렸다.  

'시황'은 그래도 마음이 편치 아니하여 박사들로 하여금 선진인시를 짓게 하여,
세상을 순행하며 머물 때마다 악공들에게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게 하였다. ] 

秋, 使者從關東夜過華陰平舒道, 有人持璧遮使者曰:“ 為吾遺滈池君. ”

因言曰:“ 今年祖龍死. ”  使者問其故, 因忽不見, 置其璧去.  使者奉璧具以聞.    

始皇默然良久, 曰:“ 山鬼固不過知一歲事也. ”

退言曰:“ 祖龍者, 人之先也. ”  使御府視璧, 乃二十八年行渡江所沈璧也.   

於是始皇卜之, 卦得游徙吉.  遷北河榆中三萬家.  拜爵一級.

(추, 사자종관동야과화음평서도, 유인지벽차사자왈 : " 위오유호지군. "

인언왈 : " 금년조룡사. "  사자문기고, 인홀불견, 치기벽거.  사자봉벽구이문. 

시황묵연량구, 왈 : " 산귀고불가지일세사야. "

퇴언왈 : " 조룡자, 인지선야. "  사어부시벽, 내이십팔년행도강소침벽야. 

어시시황복지, 괘득유사길.  천북하유중삼만가.  배작일급. )

[시황 36년 가을, '시황'의 사신이 "관동"에서 밤에 "화음" 지역 "평서"의 길을 지나가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고이 간직하고 있던 옥벽을 사신에게 주면서 말하기를 : " 나를 대신해서 이 옥벽을 '호지군'에게

전해 주시오. "라고 하였다. 그리고 말하기를 : " 금년에 조룡(시황)이 죽게 될 것이오. "라고 하였다. 

사신이 그 까닭을 물으려 하자, 그사람은 홀연히 사라지고 벽옥만 남아 있었다.

사신은 옥벽을 가지고 "함양"으로 돌아와서 '시황'에게 보고하였다. '시황'은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비로소 말하기를 :

" 산속에 사는 귀신은 원래 1년 앞의 일도 알지 못하는데 어찌 내년의 일까지 알 수 있겠는가 ?" "라고 하였다.

그리고 퇴청하면서 말하기를 : " 조룡이란 인간의 조상을 말하는 것이다. "라고 하며, 

옥벽을 어부(황제의 물품을 수장하던 곳)로 보내 조사하게 하였는데, 그것은 8년 전 강을 건널 때

수신에게 제사 지내고 강물에 던져 버린 그 옥벽이었다. 그래서 '시황'은 신하들에게 점을 치게 하였는데, 
점괘에 순수를 다니는 것이 길하다고 나왔다.  또 백성을 이주시켜야 재앙을 피할 수 있다고 하여

"북하"와 "유중"에 3만 가구를 옮겨 살게 하였다.  그리고 이주하는 가구에는 작위를 한 등급씩 올려 주었다. ] 


三十七年十月癸丑, 始皇出游.  左丞相斯從, 右丞相去疾守.  少子胡亥愛慕請從, 上許之.

十一月, 行至雲夢, 望祀虞舜於九疑山.  浮江下, 觀籍柯, 渡海渚.  過丹陽, 至錢唐. 

臨浙江, 水波惡, 乃西百二十里從狹中渡. 上會稽, 祭大禹, 望于南海, 而立石刻頌秦德. 

(삼십칠년시월계축, 시황출유.  좌승상사종, 우승상거질수.  소자호해애모청종, 상허지.

십일월, 행지운몽, 망사우순어구의산. 부강하, 관적가, 도해자. 과단양, 지전당. 

임절강, 수파악, 내서백이십리종협중도. 상회계, 재대우, 망우남해, 이입석각송진덕. )

[시황 37년 10월 계축일, '시황'이 순수에 나섰다.  좌승상 '이사'가 수행하였으며, 우승상 '풍거질'은

도성 "함양"을 지키게 하였다.  작은아들 '호해'가 따라가기를 간절히 청하자, '시황'은 이를 허락하였다.

11월, '시황'의 순수 행열이 "운몽"에 이르러,  '순'임금이 묻혀있는 "구의산"을 바라보며 음식을 차리고  

불을 피워 제사를 올렸다.  "부강"을 떠내려 오면서 "적가"의 경치를 구경하며 "해저"를 건넜다. 

"단양"을 지나 "전당"에 이르렀다.  "절강"에 다다르자, 파도가 거세져 건너지 못하고 서쪽으로 120리를 더 나아가

강폭이 좁아지는 곳에서 건넜다.  "회계산"에 올라 '우'임금에게 제사를 지내고, 남해가 바라보이는 곳에,

비석을 세워 진나라의 덕을 찬양하는 글을 세겼다. ]

           

其文曰: 皇帝休烈, 平一宇內, 德惠修長.  三十有七年, 親巡天下, 周覽遠方.   

遂登會稽, 宣省習俗, 黔首齋莊.  群臣誦功, 本原事跡, 追首高明. 秦圣臨國, 始定刑名, 顯陳舊章.

初平法式, 審別職任, 以立恒常.  六王專倍, 貪戾傲猛, 率眾自彊. 暴虐恣行, 負力而驕, 數動甲兵.

陰通閒使, 以事合從, 行為辟方.   內飾詐謀, 外來侵邊, 遂起禍殃. 義威誅之, 殄熄暴悖, 亂賊滅亡.

圣德廣密, 六合之中, 被澤無疆.  皇帝并宇, 兼聽萬事, 遠近畢清. 運理群物, 考驗事實, 各載其名.

貴賤并通, 善否陳前, 靡有隱情.  飾省宣義, 有子而嫁, 倍死不貞. 防隔內外, 禁止淫泆, 男女絜誠.

夫為寄豭, 殺之無罪, 男秉義程.  妻為逃嫁, 子不得母, 咸化廉清. 大治濯俗, 天下承風, 蒙被休經. 

從臣誦烈, 請刻此石, 光垂休銘. 皆遵度軌, 和安敦勉, 莫不順令.  黔首修絜, 人樂同則, 嘉保太平.

後敬奉法, 常治無極, 輿舟不傾.

(기문왈 : 황제휴열, 평일우내, 덕혜수장.  삼십유칠년, 친순천하, 주람원방. 

수등회계, 선성습속, 검수재장.  군신송공, 본원사적, 추수고명. 진성임국, 시정형명, 현진구장.  

초평법식, 신별직임, 이립항상.  육왕전패, 탐려오맹, 솔중자강.  포학자행, 부력이교, 수동갑병. 

음통간사, 이사합종, 행위벽방.  내식사모, 외래침변, 수기화앙. 의위주지, 진식포패, 난적멸망.

성덕광밀, 육합지중, 피택무강.  황제병우, 겸청만사, 원근필청. 운리군물, 고험사실, 각재기명.   

귀천병통, 선부진전, 미유은정.  식성선의, 유자이가, 배사부정. 방격내외, 금지음일, 남녀결성.

부위기가, 살지무죄, 남병의정.  처위도가, 자불득모, 함화염청. 대치탁속, 천하승풍, 몽피휴경.

개준도궤, 화안돈면, 막불순령.  검수수결, 인락동칙, 가보태평. 후경봉법, 상치무극, 여주불경.

종신송열, 청각차석, 광수휴명. )

 

[그 비문은 다음과 같다 : 황제의 훌륭한 공덕으로, 천하를 하나로 평정하였으며,

그 베푼 은덕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즉위 37년에 몸소 천하를 순수하시어, 먼 지방까지 두루 돌아보셨다. 

마침내 "회계산"에 오르시어, 그곳의 풍속과 습관을 고찰하시니, 백성들이 정중히 공경하였다.

추종하는 신하들이 그 공덕을 노래하고, 이루어 놓은 치적을 근본으로 삼아, 높고 밝은 공덕을 사모하였다.
진나라에 성군이 임하시어, 처음으로 형벌의 명칭을 정하고, 옛날의 낡고 오래된 법령과 규칙을

명백하게 조사하였다. 처음으로 법도와 양식을 공평하게 행하고, 맡은바 임무를 엄격하게 구분하여,

오래도록 변치 않는 초석을 세우셨다. 여섯 나라 왕들이 제멋대로 권세를 농단하여, 탐욕스럽고 포악하며 오만하여

잔혹하게 무리를 거느리고 스스로 강해지려고 하였다.  또한 포악하고 방자한 행동을 하면서 무력에 의지하여

교만하게 수시로 군사들을 동원하였다. 몰래 첩자를 보내 서로 합종을 도모하고 그릇된 행동을 일삼았다.

안으로는 사악한 음모를 감추고, 겉으로는 변경을 침범하여 마침내 재앙을 일으켰다. 정의로운 위엄으로써

그들을 죽이고, 난폭하고 어그러진 것들을 모두 없애 버렸으며, 반란을 일으킨 역적들을 멸망시켰다. 

성스러운 덕은 넓고 깊어서 6국에 살던 백성들은 황제가 베푸는 은혜를 끝이 없이 받았다.  

황제께서 천하를 하나로 병합하시고, 세상의 모든 일을 듣고 다스리시니,

먼 곳이나 가까운 곳이나 모두 고요하게 되었다.  만물을 관리하는 일을 궁리하시고,

사실을 검증하는 일을 깊이 관찰하여, 각각의 이름을 등재하셨다.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의 뜻을 아우르고

통하게 하여 선한 것과 선하지 않은 것을 미리 조사하게 하시니, 아무리 작은 일도 숨길 수가 없었다.

잘못을 깨닫게 하고 의로움을 널리 알리어, 자식이 있는데도 두번 시집 가는 것은, 죽은 남편을 배신하는 부정한

짓이라고 하셨다. 아내와 남편을 구별하여 예로 대하게 하며, 음란하고 간사한 짓을 금지시킴으로써,

남녀 모두 순결해지고 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게 되었다. 부인이 있으면서 다른 여자와 간통을 하면

남자를 죽여도 죄가 되지 않게 하니, 남자는 마땅히 지켜야 할 도덕 규범을 준수하게 되었다. 

아내가 몰래 도망가 다른 남자의 부인이 되면, 자식들이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게 하니,

모두 교화되어 정숙하고 깨끗하게 되었다. 
큰 다스림으로 풍속을 밝고 깨끗하게 하니, 천하 백성들은 교화를 이어 받아 훌륭한 풍속의 은혜를 입게 되었다. 

백성들은 모두 법도와 규범을 지키고, 화목하고 평안하고 돈독함에 힘써서, 명령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없게 하였다.

백성들은 도덕과 품행을 바르게 닦아 깨끗해져서 사람마다 법칙을 편안한 마음으로 지킴으로써,

태평성대를 기리며 보존하였다. 후세의 사람들이 법을 정중히 받들고, 끝이 없는 영원한 다스림으로 인해,

수레와 배가 기울어지지 않듯이 나라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게 되었다.

황제를 추종하는 신하들이 공덕을 찬양하며 노래부르고, 글로써 이 비석에 세길 것을 청하여,

그 영광을 후세들이 기리며 명심하기를 바라노라 ! " ] 


還過吳, 從江乘渡.  并海上, 北至瑯邪.  方士徐市等入海求神藥, 數歲不得, 費多, 恐譴,

乃詐曰: “ 蓬萊藥可得, 然常為大鮫魚所苦, 故不得至, 願請善射與俱, 見則以連弩射之. ”

始皇夢與海神戰, 如人狀.   問占夢, 博士曰:“ 水神不可見, 以大魚蛟龍為候. 今上禱祠備近,

而有此惡神, 當除去, 而善神可致. ” 乃令入海者齎捕巨魚具, 而自以連弩候大魚出射之. 

自瑯邪北至榮成山, 弗見. 至之罘, 見巨魚, 射殺一魚.  遂并海西.

至平原津而病.  始皇惡言死, 群臣莫敢言死事.  上病益甚, 乃為璽書賜公子扶蘇曰: 

“ 與喪會咸陽而葬. ”  書已封, 在中車府令趙高行符璽事所, 未授使者.

(환과오, 종강승도.  병해상, 북지낭야.  방사서불등입해구신약, 수세부득, 비다, 공견,

내사왈 : 봉래약가득, 연상위대교어소고, 고불득지, 원청선사여구, 견즉이연노사지. "

시황몽여해신전, 여인장.  문점몽, 박사왈 : " 수신불가견, 이대어교룡위후. 금상도사비근,

이유파악신, 당제거, 이선신가치. "  내령입해자재포거어구, 이자이연노후대어출사지. 

자낭야북지영성산, 불견. 지부, 견거어, 사살일어.  수병해서.

지평원진이병.  시황오언사, 군신막감언사사.  상병익심, 내위새서사공자부소왈 :

" 여상회함양이장. "  서이봉, 재중거부령조고행부새사소, 미수사자. )

 

[시황제는 돌아오는 길에 "오" 땅을 지나 "강승현"에서 강을 건넜다. 해안가를 따라 뱃길을 이용하여 북쪽으로 올라가

"낭야"에 이르렀다.  방사 '서불' 등은 신약을 구하기 위해 바다로 나갔으나 몇 년이 지나도 구하지 못하고,

비용만 많이 쓰게 되자, 질책이 두려운 나머지 이에 거짓말 하기를 : " 동방의 "봉래산"에 가면 신약을 구할 수 있으나,

항상 커다란 상어가 길을 막고 있어 지나가는데 애로사항이 있어 그리하여 얻지 못하였으니, 원하옵건데 활을 잘 쏘는 궁사를 보내시어, 상어가 나타나면 화살을 연속으로 발사하는 연노로 상어를 잡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다.

'시황'은 지난 밤에 해신과 싸우는 꿈을 꾸었는데, 해신의 형상이 마치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점을 쳐서 해몽에 대해 묻자, 박사가 말하기를 : " 물속의 귀신은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그 조짐이 큰 물고기나

교룡으로 나타납니다. 지금 황제께서 경건한 마음을 갖추고 제사를 올리셨으나, 이와같이 사악한 귀신이 나타났으니,

마땅히 쫒아내야만 신선을 맞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러자 '시황'은 바다에 들어가는 자에게 큰 고기를 잡는 기기를 갖추게 하고, 상어가 나타날 조짐이 보이면 연노를

쏘아 잡기 위해 몸소 바다로 나아갔다.  "낭야"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영성산"에 이르는 동안 상어는 보이지 않았다.

비로소 "지부산"에 이르렀을 때 큰 물고기를 발견하여 연노를 쏘아 죽였다.

그리고 마침내 바다를 따라 서쪽으로 나아갔다. '시황'이 "평원진"에 이르자 병이 들었다. 

'시황'은 죽는다는 말을 싫어하였으므로 신하들은 감히 아무도 죽음에 대해 언급하지 못하였다. 

 "시황'의 병세가 더욱 깊어지자, 옥새를 낙인한 편지를 써서 공자 '부소'에게 이르기를 :

"함양"으로 돌아와 장례에 참석하라. "라고 하였다.  편지는 밀봉을 하였으나,

중거부령 '조고'에게 맡기면서 그 내용대로 시행하도록 하였지만 사자에게는 아직 전달되지 않았다. ]    

           

七月丙寅, 始皇崩於沙丘平臺.  丞相斯為上崩在外, 恐諸公子及天下有變, 乃祕之, 不發喪.

棺載辒涼車中, 故幸宦者參乘, 所至上食. 百官奏事如故, 宦者輒從辒涼車中可其奏事.

獨子胡亥· 趙高及所幸宦者五六人知上死. 趙高故嘗教胡亥書及獄律令法事, 胡亥私幸之.

高乃與公子胡亥· 丞相斯陰謀破去始皇所封書賜公子扶蘇者, 而更詐為丞相斯受始皇遺詔沙丘,

立子胡亥為太子.  更為書賜公子扶蘇· 蒙恬, 數以罪, 其賜死. 語具在李斯傳中.

(칠월병인, 시황붕어사구평대.  승상사위상붕재외, 공제공자급천하유변, 내비지, 불발상. 

관재온량거중, 고행환자참승, 소지상식. 백관주사여고, 환자첩종온량거중가기주사. 

독자호해· 조고급소행환자오륙인지상사. 조고고상교호해서급옥율령법사, 호해행지.

고내여공자호해· 승상사음모파거시황소봉서사공자부소자, 이경사위승상사수시황유조사구,

입자호해위태자.  경위서사공자부소· 몽염, 수이죄, 기사사. 어구재이사전중. )

 

[7월 병인일에 '시황'은 하북지역의 "사구평"에서 숨을 거두었다. 승상 '이사'는 황제가 죽은 것을 외지에 알리게 되면,

'시황'의 여러 공자들과 천하의 제후들이 변란을 일으킬까 염려되어 이를 비밀에 부치고 초상난 것을 

발표하지 않았다.  '시황'의 관은 시신의 부패를 막기위해 온량거에 싣고, 예전에 황제의 총애를 받던 환관들이 수레에

올라 수레가 도착하는 곳마다 황제에게 음식을 올리게 하였다. 모든 신하들은 예전과 같이 나랏일을 아뢰었으며,

환관은 항상 온량거 안에 있으면서 보고된 일들을 처리하였다. 

황제의 죽음은 오직 아들 '호해'와 '조고'와 '시황'의 총애를 받았던 환관 대여섯명 만이 알고 있었다. 

'조고'는 옛날 '호해'에게 글과 옥사에 관한 형법과 일반 법률을 가르친 적이 있었으므로 '호해'는 사사로이 '조고'에게

은총을 베풀었다. '조고'는 이런 이유로 공자 '호해', 승상 '이사'와 함께 비밀리에 모의하여 '시황'이 장자 '부소'에게

하사한 밀봉된 유서를 뜯어, 승상 '이사'가 '시황'으로 부터 "사구"에서 유언을 받았다고 위조하여 '호해'를 태자로

옹립하였다. 그리고 다시 유서를 거짓으로 만들어 '부소'와 '몽염'에게 전해 주고,

죄를 일일이 나열하여 자살하라는 명을 내렸다.  이런 내용은 모두 〈이사열전〉에 기록되어 있다. ]

行, 遂從井陘抵九原.  會暑, 上辒車臭, 乃詔從官令車載一石鮑魚, 以亂其臭.

行從直道至咸陽, 發喪. 太子胡亥襲位, 為二世皇帝.  九月, 葬始皇酈山.  始皇初即位, 穿治酈山,

及并天下, 天下徒送詣七十餘萬人, 穿三泉, 下銅而致槨, 宮觀百官奇器珍怪徙臧滿之.

令匠作機弩矢, 有所穿近者輒射之.  以水銀為百川江河大海, 機相灌輸, 上具天文, 下具地理.   

以人魚膏為燭, 度不滅者久之.

(행, 수종정형저구원. 회서, 상온거취, 내조종관령거재일석포어, 이란기취.

행종직도지함양, 발상.  태자호해습위, 위이세황제.  구월, 장시황역산. 시황초즉위, 천치역산,

급병천하, 천하도송예칠십여만인, 천삼천, 하동이치곽, 궁관백관기기진괴사장만지.

영장작기노시, 유소천근자첩사지.  이수은위백천강하대해, 기상관수, 상구천문, 하구지리. 

이어인고위촉, 도불멸자구지. )

 

['시황'의 운구 행열이 마침내 하북의 "정형"을 거쳐 "구원"에 이르렀다.
마침 계절이 여름이라 황제의 온량거에서 악취가 진동하자, 

수행하는 관리들을 불러 비린내 나는 절인 고기 한 섬을 싣게 하여 악취를 분별하지 못하게 하였다.

'시황'의 운구 행열이 곧은 길을 따라 "함양"에 도착하여 '시황'의 초상을 공표하였다. 

태자 '호해'는 제위를 물려 받아 이세 황제가 되었다.

9월에 '시황'을 "역산"에 장사지냈다. '시황'이 처음 즉위하여 "역산"을 가로지르는 공사를 하여 다스렸고,

마침내 천하를 병합하여, 천하의 일꾼 70여 만명을 보내 그곳에 머물면서 땅을 깊이 파게 하고,

구리를 녹여 틈새를 메우고 외관을 설치하여, 궁궐의 모든 벼슬아치들의 모형을 흙으로 만들어 세워 놓고

기이한 기물과 진귀하고 괴이한 물건을 옮겨 가득 채워 놓았다. 장인들에게 령을 내려 쇠뇌와 화살을 만들게 하여

자기의 무덤에 접근하려는 자가 있으면 화살이 자동으로 발사되도록 만들었다. 

수은을 부어 온갖 개울과 강과 하천과 넓은 바다의 모습을 만들고 기계를 설치하여 수은이 흐르게 하였으며,

위로는 하늘의 모양인 천문을 만들었고, 아래로는 천하의 지리를 본떠 만들었다. 

고기의 기름으로 사람 형상의 양초를 만들어, 오랫동안 꺼지지 않게 하였다. ]

 

二世曰:“ 先帝后宮非有子者, 出焉不宜. ”  皆令從死, 死者甚眾.  葬既已下, 或言工匠為機,  

臧皆知之, 臧重即泄.  大事畢, 已臧, 閉中羨, 下外羨門, 盡閉工匠臧者, 無復出者. 樹草木以象山.

(이세왈 : " 선제후궁비유자자, 출언불의, "  개령종사, 사자심중.  장기이하, 혹언공장위기,

장개지지, 장중즉설.  대사필, 이장, 폐중선, 하외선문, 진폐공장장자, 무복출자. 수초목이상산. )

[이세 황제가 말하기를 : " 선황의 후궁들을 자식이 없다고 궁궐 밖으로 내보내는 것은 마땅치 않다. "라고 하며, 

그들을 모두 순장하도록 명령을 내리니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시황'의 장례 행사가 모두 끝나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공인과 장인들은 무덤안에 설치된 기계와 숨겨진 보물에 대해 모두 알고 있으므로,

그들은 숨겨진 보물들이 있는 곳을 누설할 것이라고 하였다.

장례가 모두 마무리 되고 보물들도 이미 매장 절차가 끝나자, 묘로 통하는 길의 가운데 문을 폐쇄하고 묘로 통하는

바깥 문을 내려서 공인들과 장인들을  모두 나오지 못하게 가두어 아무도 묘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었다. 

또 묘지 바깥에는 풀과 나무를 심어서 마치 산과 비슷하게 하였다. ]

 

二世皇帝元年, 年二十一.  趙高為郎中令, 任用事.  二世下詔, 增始皇寢廟犧牲及山川百祀之禮.   

令群臣議尊始皇廟. 群臣皆頓首言曰:“ 古者天子七廟, 諸侯五, 大夫三, 雖萬世世不軼毀. 

今始皇為極廟, 四海之內皆獻貢職, 增犧牲, 禮咸備, 毋以加.  先王廟或在西雍, 或在咸陽.

天子儀當獨奉酌祠始皇廟. 自襄公已下軼毀.  所置凡七廟.  群臣以禮進祠, 以尊始皇廟為帝者祖廟. 

皇帝復自稱‘朕’. ”

(이세황제원년, 년이십일.  조고위낭중령, 임용사.  이세하조, 증시황침묘희생급산천백사지례. 

령군신의존시황묘. 군신개돈수언왈 : " 고자천자칠묘, 제후오, 대부삼, 수만세세불일훼.  금시황위극묘,

사해지내개헌공직, 증희생. 예함비, 무이가.  선왕묘혹재서옹, 혹재함양.

천자의당독봉작사시황묘.  자양공이하불일훼.  소치범칠묘.  군신이례진사, 이존시황묘위제자조묘. 

황제부자칭짐. " )

 

[이세 황제 원년, 황제의 나이가 21살 되었다.  '조고'를 낭중령으로 임명하고 그에게 모든 일을 맡겼다.
이세 황제는 조칙을 내려 '시황'의 침전에 제사를 지낼 때 희생의 숫자를 늘리고 산천에 드리는 제사와 

모든 제사에 쓰이는 예물들의 숫자와 양을 늘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군신들에게 '시황'의 사당을 높이 받드는 일에 대해 의논하게 하였다.

군신들이 모두 머리숙여 이세 황제에게 아뢰기를 : " 옛날에 천자는 7묘, 제후는 5묘, 대부는 3묘를 두어 아무리

오랜 세월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제 '시황'의 사당을 지극한 마음으로 받들고 온 세상의 모든

백성들이 헌상한 물건들을 공물로 바쳐, 희생을 늘리고, 예를 모두 갖추어 더 이상 높이 받들 수는 없을 것입니다. 

선왕의 사당이 어떤 것은 서쪽의 "옹성"에 있고, 어떤 것은 "함양"에 있습니다. 

천자께서는 마땅히 법도에 따라 '시황'의 사당에 제사를 지내고 잔에 술을 따라 바쳐야 할 것입니다. 

'양공' 때부터 이미 많은 사당들이 훼손되어 없어졌습니다. 일곱 분의 조상들을 모실 사당을 설치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군신들은 예절을 더하여 제사를 지내고, '시황'의 사당을 높여 제왕의 시초인 만큼 조상의 사당으로

받드시기 바랍니다. 또한 황제께서는 선황의 예에 따라 짐이라 칭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二世與趙高謀曰:“ 朕年少, 初即位, 黔首未集附.  先帝巡行郡縣, 以示彊, 威服海內.   

今晏然不巡行, 即見弱, 毋以臣畜天下. ”  春, 二世東行郡縣, 李斯從.    
(이세여조고모왈 : " 짐년소, 초즉위, 검수미집부.  선제순행군현, 이시강, 위복해내. 

금안연불순행, 즉견약, 무이신축천하. "   춘, 이세동행군현, 이사종. )

 

[이세 황제는 '조고'와 상의하고 말하기를 : " 짐은 나이도 어리고, 이제 막 즉위하여 백성들이 아직 가까이 모이지

않고 있습니다. 선제께서는 천하의 군, 현을 순행하시어, 그 강함을 보이셨으며 위엄으로써 나라 안의 백성들을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편안한 마음으로 순행을 나가지 않으므로써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신하들과 이 세상을 다스릴 수 없을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봄에 이세 황제는 동쪽으로 순행을 나가 군, 현을 둘러 보았으며 승상 '이사'가 수행하였다. ] 

           

到碣石, 并海, 南至會稽, 而盡刻始皇所立刻石, 石旁著大臣從者名, 以章先帝成功盛德焉:

皇帝曰:“ 金石刻盡始皇帝所為也.  今襲號而金石刻辭不稱始皇帝, 其於久遠也如後嗣為之者,  

不稱成功盛德. ”  丞相臣斯· 臣去疾· 御史大夫臣德昧死言:“ 臣請具刻詔書刻石, 因明白矣. 

臣昧死請. ”  制曰:“ 可. ”   遂至遼東而還.  於是二世乃遵用趙高, 申法令.

(도갈석, 병해, 남지회계. 이진각시황소립각석, 석방저대신종자명, 이장선제성공성덕언 :

황제왈 : " 금석각진시황제소위야.  금습호이금석각사불칭시황제. 기어구원야여후사위지자,

불칭성공성덕. " 승상신사· 신거질· 어사대부신덕매사언 : " 신청구각조서각석, 인명백의. 

신매사청. "  제왈 : " 가. "   수지요동이환.  어시이세내준용조고, 신법령. )


[이세 황제의 행열이 "갈석산"에 도착하여, 해안을 끼고 남쪽으로 내려가 "회계"에 이르러 '시황'이 세운 비석에

모두 글씨를 새기고, 비석 옆에 수행한 대신들의 이름을 적어, 선제께서 이루어 놓으신 공업과 성덕을 본보기로 하여

다음과 같은 비문을 새겼다. 이세 황제께서 말씀하셨다 : " 금석에 새겨 놓은 공덕은 모두 '시황제'께서 하신 일이다.

지금 나는 황제의 칭호를 이어 받아 사용하고 있으므로 비석에 '시황제'로 부르지 않고 황제로만 알려진다면,

오랜 세월이 지나 후손들에게 마치 내가 한 일처럼 알려져 '시황제'께서 이룩하신 공업과 성덕을 밝힐 수가 없을

것이다. "  좌승상 '이사', 우승상 '풍거질', 어사대부 '덕'이 죽음을 무릅쓰고 말하기를 : " 신 들이 청하오니

황제의 조서를 상세히 이 비석에 새겨 분명하게 해 주십시오. 신 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간청드립니다. "라고 하자.

이세 황제가 말하기를 : " 그렇게 하도록 하겠소. "라고 하였다. 

이세 황제는 마침내 "요동"을 순행하고 "함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이세 황제는 '조고'를 낭중령에 임명하고 법령을 공표하였다. ] 

 

乃陰與趙高謀曰:“ 大臣不服, 官吏尚彊, 及諸公子必與我爭, 為之柰何? ”

高曰:“ 臣固願言而未敢也.  先帝之大臣, 皆天下累世名貴人也, 積功勞世以相傳久矣.   

今高素小賤, 陛下幸稱舉, 令在上位, 管中事.  大臣鞅鞅, 特以貌從臣, 其心實不服.

今上出, 不因此時案郡縣守尉有罪者誅之, 上以振威天下, 下以除去上生平所不可者.

今時不師文而決於武力, 願陛下遂從時毋疑, 即群臣不及謀.   

明主收舉餘民, 賤者貴之, 貧者富之, 遠者近之, 則上下集而國安矣. ”

(내음여조고모왈 : " 대시불복, 관리상강, 급제공자필여아쟁, 위지내하 ? "

고왈 : " 신고원언이미감야.  선제지대신, 개천하루세명귀인야, 적공로세이상전구의.   

금고소소천, 폐하행칭거, 령재상위, 관중사.  대신앙앙, 특이모종신, 기심실불복.

금상출, 불인차시안군현수위유죄자주지, 상이진위천하, 하이제거상생평소불가자.

금시불사문이결어무력, 원폐하수종시모의, 즉군신불급모.   

명주수거여민, 천자귀지, 빈자부지, 원자근지, 즉상하집이국안의. " )


[또 '조고'를 몰래 불러 말하기를  : " 지금 대신들은 복종을 하지 않고 있으며, 관리들 또한 완강하며, 

공자들은 모두 힘을 합쳐 틀림없이 나와 제위를 놓고 다투려 할 것인데 이를 어찌해야 합니까 " 하자.

'조고'가 대답하기를 : " 신은 오래 전부터 이 일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하였으나 감히 하지 못하였습니다.
선황 때의 대신들은 모두 여러 대를 거쳐오는 동안 명성이 자자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이며,  

세상에 쌓은 공로가 오래도록 전해져온 사람들입니다. 지금 부족하고 미천한 소신을 폐하께서 총애하시어

높은 직위에 올려 놓으시고, 나라 일을 주관하게 하셨습니다. 이 일로 대신들은 불만과 원망을 하면서도  

외견상으로는 신을 따르는듯 하지만, 그 마음속은 사실 복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폐하께서 순행을 나가시어,

이 기회에 나라의 경계를 짓고 군, 현의 군수와 군위들 가운데 죄가 있는 자들을 처형하신다면, 

위로는 폐하의 위엄이 천하에 진동할 것이며, 아래로는 폐하께서 평소에 못마땅하게 여긴 자들을 제거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예의와 법도를 모범으로 삼을 때가 아니라, 무력으로 결말을 지어야 하니,

원컨데 폐하께서는 머뭇거리지 마시고 즉시 시세를 따르신다면, 군신들도 계책을 마련할 시간이 없을 것입니다.   

총명한 임금은 비록 없어진 나라에 남아 있는 백성일지라도 거두어 들여 세력을 키우며,

미천한 사람도 귀하게 여기고,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들며, 멀리하던 사람도 가깝게 대한다면,  

윗사람과 아랫사람을 모두 결집시켜 나라를 평안하게 합니다. " ]

世曰:“ 善. ”  乃行誅大臣及諸公子, 以罪過連逮少近官三郎, 無得立者, 而六公子戮死於杜.   

公子將閭昆弟三人囚於內宮, 議其罪獨後. 二世使使令將閭曰:“ 公子不臣, 罪當死, 吏致法焉. ” 

(이세왈 : " 선. "  내행주대신급제공자, 이죄과연체소근관삼랑, 무득입자, 이육공자륙사어두.   

공자장려곤제삼인수어내궁, 의기죄독후. 이세사사령장려왈 : " 공자불신, 죄당사, 이치법언. " )

 

[이세 황제가 말하기를 : " 좋습니다. "라고 하며.  이에 대신과 여러 공자들을 처형하고,  

지난날의 잘못도 연관지어 잡아들이며 나이가 어리거나 가깝게 지내거나 직책이 낮은 삼랑에 이르기까지  

그 죄목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사람이 없었으며, 여섯 명의 공자를 "두현"에서 처형하였다.
'장려'를 비롯한 공자 3명을 내궁에 가두고 그들의 죄를 나중에 가리려고 하였다.

이세는 사자로 하여금 '장려'에게 보내 말하기를 : " 공자는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않고,  

마땅히 죽을 죄를 지었으므로 형리를 보내 법을 집행하겠노라. "하였다. ] 

 

將閭曰:“ 闕廷之禮, 吾未嘗敢不從賓贊也;廊廟之位, 吾未嘗敢失節也;

受命應對, 吾未嘗敢失辭也.  何謂不臣?  願聞罪而死. ”

使者曰:“ 臣不得與謀, 奉書從事. ”  將閭乃仰天大呼天者三, 曰:“ 天乎! 吾無罪!”

昆弟三人皆流涕拔劍自殺.  宗室振恐.  群臣諫者以為誹謗, 大吏持祿取容, 黔首振恐.

(장려왈 : " 궐정지례, 오미상감부종빈찬야 ; 랑묘지위, 오미상감실절야 ;  

수명응대, 오미상감실사야.  하위불신 ?  원문죄이사. "

사자왈 : "신부득여모, 봉서종사. "  장려내앙천대호천자삼, 왈 : " 천호 !  오무죄 ! "

곤제삼인개류체발검자살.  종실진공.  군신간자이위비방, 대리지록취용, 검수진공. )

 

['장려'가 말하기를 : " 대궐의 예절에서 나는 아직까지 빈찬의 분부를 따르지 않은 적이 없었고 ;  

조정에 서 있을 때도 나는 아직까지 예절을 잃어본 적이 없었다 ;
또한 황제로부터 명을 받았을 때도 나는 아직까지 한번도 거절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찌하여 신하의 도리를 다하지 않았다고 하는가 ? 

원컨데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죽어야 하는지 듣고 싶다. "라고 하였다.

​사자가 대답하기를 : " 신은 이 계획에 대해 아는 바가 없고, 적혀 있는 기록을 받들어 일을 할 뿐입니다. "라고 하자.

'장려'는 이에 머리를 들어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세 번을 외쳤다 : " 하늘이시여 ! 나는 죄가 없나이다 ! "하였다.

'장려'등 3인의 공자는 이세의 계략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며 검을 뽑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왕실의 종친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신들은 간언을 하다가 비방한다는 명목으로 처벌받을 것이 두려워 조심하였고, 

지위가 높은 관리들은 녹봉을 보존하기 위해 몸을 사리기에만 급급하였으며, 백성들은 두려움에 몸서리를 쳤다. ]

 

四月, 二世還至咸陽, 曰:“ 先帝為咸陽朝廷小, 故營阿房宮為室堂.   

未就, 會上崩, 罷其作者, 復土酈山.  酈山事大畢, 今釋阿房宮弗就, 則是章先帝舉事過也. ”

復作阿房宮.  外撫四夷, 如始皇計.  盡徵其材士五萬人為屯衛咸陽, 令教射究馬禽獸.

當食者多, 度不足, 下調郡縣轉輸菽粟芻稿, 皆令自齎糧食, 咸陽三百里內不得食其谷. 用法益刻深.
(사월, 이세환지함양, 왈 : " 선제위함양조정소, 고영아방궁위실당.  
 

미취, 회상붕, 파기작자, 복토여산.  여산사대필, 금석아방궁불취, 즉시장선제거사과야. "

​부작아방궁.  외무사이, 여시황계.  진징기재사오만인위둔위함양, 령교사구마금수.

당식자다, 도부족, 하조군현전수숙조추고, 개령자재양식, 함양삼백리내부득식기곡. 용법익각심. )

[4월, 이세 황제가 순행을 마치고 "함양"으로 돌아와 말하기를 : " 선제께서 "함양"의 궁전이 좁아서 아방궁의 실당을

축조하게 하셨다. 그러나 아방궁이 미처 완공되기도 전에 숨을 거두시어 공사가 중단되어 인력과 장비는 "여산"의

묘지 공사에 투입되었다. "여산"의 묘지 조성이 훌륭하게 마무리 되었는데, 이제 아방궁 공사를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선제의 큰 뜻을 드러내는데 잘못을 저지르는 일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방궁 공사는 다시 시작되었다. 대외적으로 변방의 오랑캐들을 위로하면서 '시황'의 계책을 따르게 하였다.

체격이 건장한 병사 5만 명을 징집하여 "함양"을 지키게 하고, 그들로 하여금 활쏘기를 가르치고 말과 짐승을

다루게 하였다. 도성 안에 먹어야 할 사람은 많은데 식량을 운반할 사람이 부족하자, 군· 현에 조서를 내려

콩· 조·  꼴· 볏집등을 실어 나르게 하면서, 여기에 동원된 인부들은 식량을 직접 가져와서 해결하였으며,

"함양"을 중심으로 3백리 안에서는 그 곡식을 먹지 못하게 하였다. 법을 시행하는데 더욱 각박하고 가혹해졌다. ] 

 

七月, 戍卒陳勝等反故荊地, 為 “ 張楚. ”  勝自立為楚王, 居陳, 遣諸將徇地.

山東郡縣少年苦秦吏, 皆殺其守尉令丞反, 以應陳涉, 相立為侯王, 合從西鄉, 名為伐秦,  

不可勝數也.  謁者使東方來, 以反者聞二世.  二世怒, 下吏.

後使者至, 上問, 對曰:“ 群盜, 郡守尉方逐捕, 今盡得, 不足憂. ” 上悅.   

武臣自立為趙王, 魏咎為魏王, 田儋為齊王.  沛公起沛.  項梁舉兵會稽郡.

(칠월, 수졸진승등반고형지, 위 "장초. "  승자립위초왕, 거진, 견제장순지.

산동군현소년고진리, 개살기수위령승반, 이응진섭, 상립위후왕, 합종서향, 명의벌진,  

불가승수야.  알자사동방래, 이반자문이세.  이세노, 하리.

후사자지. 상문, 대왈 : " 군도, 군수위방축포, 금진득, 부족우. "  상열.  

무신자립위조왕, 위구위위왕, 전담위제왕.  패공기패.  항량거병회계군. )

 

[7월, 초나라 변경을 지키던 병사 '진승'이 '오광'등과 함께 "형"땅에서 반란을 일으키고, 국호를 "장초"라 하였다.

'진승'은 스스로 초왕의 지위에 올라 초나라 말기의 도읍이었던 "진성"을 점령하여 장수들을 거느리고 제후들을

내쫓았다. "산동"에서도 군· 현에 살던 젊은이들이 진나라 관리들의 괴롭힘에 참다 못해 군수, 군위, 현령, 현승등을

모두 죽이고 반란을 일으켜 '진승'의 무리에 가담하였으며 서로 제후와 왕으로 자처하며,

서로 동맹을 맺어 서쪽으로 진격하면서, 진나라를 정벌한다는 명분으로 삼았는데, 그 수가 너무 많아 셀 수가 없었다.

동방으로 갔던 사자가 돌아와 알현을 요청하여 반란에 대해 이세 황제에게 보고하였다.   

이세 황제는 격노하여 그 관리을 처형하였다. 나중에 또 사자가 도착하니, 이세 황제가 묻자, 사자가 대답하기를 :

" 도둑의 무리를 군수와 군위가 잡거나 쫓아내서, 지금은 없으므로 염려하실 것이 없습니다. "하자.

이세 황제는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하였다. 조나라에 파견된 '무신'은 스스로 조왕이 되었고,

위나라로 파견된 '주시'는 위의 왕족인 '영릉군'을  옹립하여 '위왕'으로 삼았으며,

'전담'은 동생 '전영'· '전횡'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제나라의 왕이 되었다.
패공 '유방'도 "패현"에서 봉기하였다. '항량'도 "회계군"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

 

二年冬, 陳涉所遣周章等將西至戲, 兵數十萬.  二世大驚, 與群臣謀曰:“ 柰何? ”

少府章邯曰:“ 盜已至, 眾彊, 今發近縣不及矣.  酈山徒多, 請赦之, 授兵以擊之. ”   

二世乃大赦天下, 使章邯將, 擊破周章軍而走, 遂殺章曹陽.

二世益遣長史司馬欣· 董翳佐章邯擊盜, 殺陳勝城父, 破項梁定陶, 滅魏咎臨濟.   

楚地盜名將已死, 章邯乃北渡河.  擊趙王歇等於鉅鹿.
(이년동, 진섭소견주장등장서지희, 병수십만.  이세대경, 여군신모왈 : " 내하 ? "

소부장한왈 : " 도이지, 중강, 금발근현불급의.  여산도다, 청사지, 수병이격지. "   

이세내대사천하, 사장한장, 격파주장군이주, 수살장조양.

이세익견장사사마흔· 동예좌장한격도, 살진승성보, 파항량정도, 멸위구임제.   

초지도명장이사, 장한내북도하.  격조왕헐등어거록.

[이세 황제 2년 겨울, '진승'(진섭)은 '주장'(주문)등으로 하여금 서쪽의 "함곡관"을 지나 "희수"에 이르게 하였는데, 

병사의 수가 10만 명에 달하였다.  이세 황제는 크게 놀라 군신들을 불러 모아 상의하고 나서 

말하기를 : "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 "라고 하자.

소부의 직책에 있던 '장한'이 말하기를 : " 도적들이 이미 이곳에 도착하였으며, 그들은 매우 강하여 지금 가까운

군현의 군사들을 징발하여 싸우기에는 늦었습니다.  "여산"에서 노역을 하고 있는 죄수들이 많으니 그들을 사면하고

훈련시켜 병사로 만들어 도적들을 공격하면 될 것입니다. "라고 하자. 이세 황제는 즉시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리고

'장한'에게 부대를 편성해 이끌게 하여, '주장'이 이끄는 농민군을 무찌르고 '함곡관' 밖으로 몰아내자,

'주장'은 "조양"으로 퇴각하여 3개월 동안 진군에 맞섰지만, 결국은 '진승'의 본대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해 패배하여

"민지"에서 자살하였다. 이세 황제는 장사 '사마흔'과 '동예'를 파견하여 '장한'을 도와 도적들을 공격하자,  

'진승'은 패하여 "성보"로 물러났고, 이곳에서 마부인 '장고'에게 살해되었다.
또 '장한'은 "정도"에서 '항량'의 군대를 기습 공격하여 크게 무찔렀으며, '항량'은 이 전투에서 전사하였고, 

"임제"에서 위왕 '위구'를 멸하였다. 초나라 땅에서 도적으로 명성을 떨친 '진승'이 죽자, 

'장한'은 즉시 북쪽의 하수를 건넜다. 또 조나라를 공격하여 조군을 격퇴시키자, 조왕 '헐'은 "거록"으로 물러났다. ] 

趙高說二世曰:“ 先帝臨制天下久, 故群臣不敢為非, 進邪說.   

今陛下富於春秋, 初即位, 柰何與公卿廷決事? 事即有誤, 示群臣短也.  天子稱朕, 固不聞聲. ”

於是二世常居禁中, 與高決諸事.  其後公卿希得朝見, 盜賊益多, 而關中卒發東擊盜者毋已.   

右丞相去疾· 左丞相斯· 將軍馮劫進諫曰: “ 關東群盜并起, 秦發兵誅擊, 所殺亡甚眾, 然猶不止.   

盜多, 皆以戌漕轉作事苦, 賦稅大也. 請且止阿房宮作者, 減省四邊戍轉. ” 

(조고열이세왈 : " 선제임제천하구, 고군신불감위비, 진사설. 

금폐하부어춘추, 초즉위, 내하여공경정결사 ?  사즉유오, 시군신단야.  천자칭짐, 고불문성. "

어시이세상거금중, 여고결제사.  기후공경희득조현, 도적익다, 이관중졸발동격도자무이. 

우승상거질· 좌승상사· 장군풍겁진간왈 : " 관동군도병기, 진발병주격, 소살망심중, 연유불지.

도다, 개이술조전작사고, 부세대야. 청차지아방궁작자, 감생사변수전. ")

['조고'가 기뻐하며 이세 황제에게 말하기를 : " 선제께서 법도를 제정하시어 천하를 다스린지가 오래 되었으므로

군신들이 감히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고, 간사한 말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나이도 어리시고,

즉위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공경들과 조정에서 대사를 결정하실 수 있겠습니까 ?  

대사를 결정함에 있어 잘못이 생긴다면, 이는 군신들에게 약점을 드러내 보이는 것입니다.  

천자가 짐이라 칭하는 것은, 처음부터 목소리를 신하들이 알아 듣지 못하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이세 황제는 항상 궁중에 머물면서 모든 대사를 '조고'와 함께 결정하였다. 

그 후로 공경 대부들은 조정에 나가 이세 황제를 알현하기가 어렵게 되자, 도적들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많아지고,

관중에서 군사들을 징발하여 도적들을 소탕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우승상 '풍거질' 좌승상 '이사' 대장군 '풍겁'이 조정에 나아가 간언하기를 : "관동"에 도적의 무리가 동시에 일어나자,

나라에서 군사를 동원하여 그들을 공격하여 살해하니, 그 숫자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도적들이 많이 늘어 나는 이유는 모두 변방의 수비와 물자의 수송과 요역의 고통과

과중한 부세 때문입니다. 청하옵건대 아방궁 건립을 중단하시고 농민에 대한 부세를 낮추어줄 것과

변방의 수비와 물자의 수송과 요역의 고통을 줄여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

           

二世曰:“ 吾聞之韓子曰: ‘ 堯舜采椽不刮, 茅茨不翦, 飯土塯, 啜土形, 雖監門之養, 不觳於此.   

禹鑿龍門, 通大夏, 決河亭水, 放之海.  身自持筑臿, 脛毋毛, 臣虜之勞不烈於此矣. ’

凡所為貴有天下者, 得肆意極欲, 主重明法, 下不敢為非, 以制御海內矣.  夫虞· 夏之主, 貴為天子,

親處窮苦之實, 以徇百姓, 尚何於法? 朕尊萬乘, 毋其實, 吾欲造千乘之駕, 萬乘之屬, 充吾號名.

且先帝起諸侯, 兼天下, 天下已定, 外攘四夷以安邊竟, 作宮室以章得意, 而君觀先帝功業有緒.

今朕即位二年之閒, 群盜并起, 君不能禁, 又欲罷先帝之所為, 是上毋以報先帝, 次不為朕盡忠力,  

何以在位?” 下去疾· 斯· 劫吏, 案責他罪. 去疾· 劫曰:“ 將相不辱. ” 自殺.  斯卒囚, 就五刑.

(이세왈 : " 오문지한자왈 : ' 요순채록불괄, 모자부전, 반사류, 철토형, 수감문지양, 불곡어차. 

우착용문, 통대하, 결하정수, 방지해.  신자지축삽, 경무모, 신로지로불열어차의. ' 

범소위귀유천하자, 득사의극욕, 주중명법, 하불감위비, 이제어해내의.  부우· 하지주, 귀위천자,

친처궁고지실, 이순백성, 상하어법 ? 짐존만승, 무기실, 오욕조천승지가, 만승지속, 충오호명.

차선제기제후, 겸천하, 천하이정, 외양사이이안변경, 작궁실이장득의, 이군관선제공업유서.

금짐즉위이년지간, 군도병기, 군불능금, 우욕파선제지소위, 시상무이보선제, 차불위짐진충력,

하이재위 ? "  하거질· 사· 겁리, 안책타죄.  거질· 겁왈 : " 장상불욕. " 자살.  사졸수, 취오형. )

 

[이세 황제가 말하기를 : "내가 듣기로 '한비자'가 말하기를 '요· 순임금은 참나무를 깍지도 않고 서까래를 만들었으며,

띠로 지붕을 이으면서 처마 끝을 잘라내지 않았으며, 흙으로 빚은 뚝배기에 식사를 하고, 흙으로 빚은 그릇에

물을 담아 마시며 지냈으니, 아무리 문지기의 생활이 힘들다 해도 이처럼 궁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우임금은 "용문"에 물길을 뚫어, 큰물을 다른 곳으로 소통시키고, 황하의 물을 고루 나누어 흐르게 하였으며,

홍수를 바다로 흘려 보내 수해를 방지하였다. 자신이 몸소 가래를 손에 잡고 둑을 쌓으면서 정강이의 털이 없어지는 

줄도 몰랐으니, 신하들과 노복들의 수고로움도 이보다 더 심하지는 않았다. '라고 하였소.

천하를 소유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자기가 하고 싶을 것을 마음껏 다 할 수 있어서인데,

군주가 법을 엄중하게 밝혀두어, 백성들이 감히 비난하지 못하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써 온 세상의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오.  대체로 우나라의 '순'임금이나 하나라의 '우'임금은, 천자라는 귀한 몸이 되었으나,

정작 자신들은 더 할 수 없는 괴로움 실제로 겪으면서도 백성들을 위해 헌신하였으니,

그들에게서 무엇을 본받을 수 있겠는가 ? 비록 짐은 천자의 지위에 올랐으나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니,
나는 천승의 어가를 만들어 만승의 병사를 거느림으로써 나의 평판에 걸맞게 하려고 하오.

더욱이 선제께서는 제후의 신분에서 시작하여 천하를 아우르고 천하를 이미 평정하셨으며,

밖으로는 변방의 오랑캐들을 내쫓아 마침내 국경 지역을 안정시키고, 궁실을 새로 지어 뜻을 이루었음을

본보기로 보이셨으니, 그대들도 선제께서 이루신 공업을 찾아 살펴 보아야 할 것이오.  

지금 짐이 제위에 오른지 2년이 되었으며, 도적의 무리들이 여기 저기에서 일어나도 그대들은 막아내지 못하면서, 

한편으론 선제께서 벌여 놓은 사업을 중단시키려고 하니, 이것은 위로는 선제의 공덕에 보답하지 못하는 것이고,

아래로 짐에게 온 힘을 다해 충성하지 않는 것인데, 어찌하여 그대들은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오 ? "라고 하였다.

이에 '풍거질'· '이사'· '풍겁'을 형리에게 보내 그들의 죄를 심문하였다. 
'풍거질'· '풍겁'이 말하기를 : " 장수와 재상은 욕됨을 당하지 않는다. "라고 하며, 자살하였다. 
'이사'는 옥에 갇혔다가 고문 끝에 아들 '이유'와 반란을 꾀하였다는 자백을 하고 오형 중에 사형당하였다. ]

 

三年, 章邯等將其卒圍鉅鹿, 楚上將軍項羽將楚卒往救鉅鹿. 

冬, 趙高為丞相, 竟案李斯殺之.  夏, 章邯等戰數卻, 二世使人讓邯, 邯恐, 使長史欣請事. 

趙高弗見, 又弗信.  欣恐, 亡去, 高使人捕追不及.  欣見邯曰:“ 趙高用事於中, 將軍有功亦誅,  無功亦誅. ” 

項羽急擊秦軍, 虜王離, 邯等遂以兵降諸侯.

(삼년, 장한등장기졸위거록, 초상장군항우장초졸왕구거록. 

동, 조고위승상, 경안이사살지. 하, 장한등전수각, 이세사인양한, 한공, 사장사흔정사.

조고불견, 우불신.  흔공, 망거, 고사인포추불급.  흔견한왈 : " 조고용사어중, 장군유공역주,

무공역주. "  항우급격진군, 로왕리, 한등수이병항제후.)

[이세 황제 3년, '장한'등 장수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거록"을 포위하자,

초나라의 상장군 '항우'가 군사를 이끌고 "거록"을 구원하러 갔다. 

그해 겨울 '조고'는 승상이 되었고, 마침내 '이사'의 죄를 논하여 처형하였다. 

여름, '장한' 등이 전쟁에서 수차례 퇴각하자, 이세 황제는 사자를 보내 책망하였고, 

'장한'은 두려운 나머지, 장사 '사마흔'으로 하여금 이곳의 사정을 보고하게 하고 지원군을 요청하였다.

그러나 조정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조고'는 만나 주지도 않고 서신 한장 써 주지 않았다. 

'사마흔'은 두려워서 도망치자, '조고'는 군사들로 하여금 '사마흔'을 추격하여 잡아 들이도록 하였으나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사마흔'은 '장한'을 만나 말하기를 : " '조고'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므로,

장군께서 공을 세운다고 해도 죽일 것이며, 공을 세우지 못해도 죽일 것입니다. "하였다.
'항우'가 진군을 "거록"에서 세차게 공격하여 '왕리'를 사로잡자,

'장한' 등은 마침내 병사를 이끌고 '항우'에게 투항하였다. ]

 

八月己亥, 趙高欲為亂, 恐群臣不聽, 乃先設驗, 持鹿獻於二世, 曰:“ 馬也. ”   

二世笑曰:“ 丞相誤邪? 謂鹿為馬. ”  問左右, 左右或默, 或言馬以阿順趙高.

或言鹿, 高因陰中諸言鹿者以法.  後群臣皆畏高.
(팔월기해, 조고욕위난, 공군신불청, 내선설험, 지록헌어이세, 왈 : " 마야. " 

이세소왈 : " 승상오사 ?  위록위마. "  문좌우, 좌우혹묵, 혹언마이아순조고.

혹언록, 고인음중제언록자이법.  후군신개외고.)


[8월 기해일, '조고'는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였으나 군신들이 말을 듣지 않을 것을 염려하여 우선 그들의 마음을

시험해 보기로 하고, 이세 황제에게 사슴 한 마리를 바치며 말하기를 : " 이것은 말입니다. "라고 하자.  
이세황제가 웃으며 말하기를 : "승상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오 ? 어찌하여 사슴을 말이라고 하시오."라고 하였다.

이세 황제가 측근들에게 묻자, 측근들 중에 어떤 사람은 아무 말 못하고, 어떤 사람들은 '조고'의 비위를 맞추어

말이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사슴이라고 하자, '조고'는 그들을 몰래 기억해 두었다가

이런저런 죄를 뒤집어 씌워서 죽이거나 추방해 버렸다. 그 후로 군신들은 모두 '조고'를 두려워하게 되었다. ] 

高前數言 “ 關東盜毋能為也. ”  及項羽虜秦將王離等鉅鹿下而前, 章邯等軍數卻, 上書請益助,  

燕· 趙· 齊· 楚· 韓· 魏皆立為王, 自關以東, 大氐盡畔秦吏應諸侯, 諸侯咸率其眾西鄉. 

沛公將數萬人已屠武關, 使人私於高, 高恐二世怒, 誅及其身, 乃謝病不朝見.
(고전수언 " 관동도무능위야.  "  급항우로진장왕리등거록하이전, 장한등군수각, 상서청익조,

연· 조· 제· 초· 한· 위개립위왕, 자관이동.  대저진반진리응제후, 제후함솔기중서향.

패공장수만인이도무관, 사인사어고, 고공이세노, 주급기신, 내사병불조현. ) 


['조고'가 이전에 여러차례 말하기를 " 관동의 도적들은 아무 일도 하려고 하지 않는다. "라고 하였다.

마침내 '항우'가 진나라 장수 '왕리'등을 "거록"에서 사로잡고 계속 진격하자, '장한' 등의 군대는 몇 차례 퇴각하면서

상서를 올려 지원군의 도움을 요청하였으며, 연· 조· 제· 초· 한· 위나라는 모두 왕으로 자립하였으며,

"함곡관" 동쪽에서 부터 진나라의 모든 관리들은 진나라를 배반하고 제후에게 순응하였으며, 제후들은 그 무리들을

이끌고 서쪽으로 향하였다. 패공 '유방'은 수만 명의 무리를 이끌고 "함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무관"을 점령하고,

비밀리에 '조고'에게 사람을 보내 연락을 취하자, '조고'는 이세 황제가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을 죽일 것이라는

두려운 생각에 병을 핑계로 조정에 나가지 않고 집안에 숨어 버렸다. ]

二世夢白虎齧其左驂馬, 殺之, 心不樂, 怪問占夢.   

卜曰:“ 涇水為祟. ”  二世乃齋於望夷宮, 欲祠涇, 沈四白馬.  使使責讓高以盜賊事. 

高懼, 乃陰與其婿咸陽令閻樂· 其弟趙成謀曰: “上不聽諫, 今事急, 欲歸禍於吾宗.   

吾欲易置上, 更立公子嬰.  子嬰仁儉, 百姓皆載其言. ”
(이세몽백호설기좌참마, 살지, 심불락, 괴문점몽. 

복왈 : " 경수위수. "  이세내재어망이궁, 욕사경, 침사백마.  사사책양고이도적사.

고구, 내음여기서함양령염락· 기제조성모왈 : " 상불청간, 금사급, 욕귀화어오종. 

오욕역치상, 경립공자영.  자영인검, 백성개대기언. ") 

[이세 황제는 밤에 잠을 자다가 자기의 좌참마를 물어뜯는 백호를 죽이는 꿈을 꾸고 나서 마음이 매우 불쾌하고

괴이한 생각이 들어 점을 쳐서 해몽을 하게 하였다.
점괘에 이르기를 : " 경수의 흐린 물로 인하여 재앙이 일어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세 황제는 이에 망이궁에서 목욕재계하고 경수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 백마 4마리를 물에 빠트렸다. 

그리고 사자를 '조고'에게 보내 도적들이 "무관"을 점령한 일에 대해 책망하며 꾸짖었다.

'조고'는 두려워서 아무도 몰래 함양령의 직위에 있는 사위 '염락'과 동생 '조성'을 불러 모의하며 말하기를 :

" 황제는 나의 간언을 듣지 않다가 지금 일이 급하게 되자, 모든 화를 우리 집안에 뒤집어 씌우려고 하고 있다. 

내가 황제를 바꿔 세우려고 공자 '영'을 옹립하려 한다. 

공자 '영'은 어질고 검소하여 백성들이 모두 그의 말을 떠받들 것이다. ”라고 하였다. ]

使郎中令為內應, 詐為有大賊, 令樂召吏發卒, 追劫樂母置高舍.   

遣樂將吏卒千餘人至望夷宮殿門, 縛衛令仆射, 曰:“ 賊入此, 何不止? ”

衛令曰:“ 周廬設卒甚謹, 安得賊敢入宮?”  樂遂斬衛令, 直將吏入, 行射, 郎宦者大驚, 或走或格, 格者輒死, 死者數十人.  郎中令與樂俱入, 射上幄坐幃. 二世怒, 召左右, 左右皆惶擾不鬬. 

旁有宦者一人, 侍不敢去.  二世入內, 謂曰:“ 公何不蚤告我? 乃至於此!”  

宦者曰:“ 臣不敢言, 故得全. 使臣蚤言, 皆已誅, 安得至今?”   

閻樂前即二世數曰:“ 足下驕恣, 誅殺無道, 天下共畔足下, 足下其自為計. ”
(사낭중령위내응, 사위유대적, 령악소리발졸, 추겁락모치고사. 

견락장리졸천여인지망이궁전문, 박위령복야, 왈 : " 적입차, 하불지 ? "

위령왈 : " 주려설졸심근, 안득적감입궁 ? "  락수참위령, 직장리입, 행사, 낭환자대경, 혹주혹격,

격자첩사, 사자수십인.  낭중령여락구입, 사상악좌위. 이세노, 소좌우, 좌우개황요불투.

방유환자일인, 시불감거.  이세입내, 위왈 : " 공하불조고고아 ?  내지어차 ! "

환자왈 : " 신불감언, 고득전. 사신조언, 개이주, 안득지금 ? "

염락전즉이세수왈 : " 족불교자, 주살무도, 천하공반족하, 족하기자위계. " ) 

['조고'는 랑중령으로 하여금 안에서 호응하도록 하고, 거짓으로 수많은 도적이 쳐들어 왔다고 하면서 '염락'으로

하여금 관리들과 군사들을 출동시키게 하는 한편, '염락'의 모친을 자기의 집에 머물게 하여 볼모로 삼았다. 

'염락'이 관리와 군사 천여 명을 이끌고 망이궁의 궁문으로 쳐들어가서 위령과 복야를 포박하고 말하기를 :

“ 도적이 쳐들어 왔다는데 어찌하여 막지 않는가 ? ”라고 하자.  

위령이 말하기를 : " 궁궐을 경비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 경비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데 어찌 감히 도적들이

궁궐 안으로 들어 올 수 있단 말이오? ”라고 하자. '염락'은 즉시 위령의 목을 베고 군사들을 궁궐 안으로 들어가게

하였으며, 군사들이 활을 쏘며 쳐들어가자 랑관들과 환관들이 크게 놀라 어떤 자는 달아나고 어떤 자들은 맨몸으로

대항하였으며, 대항하는 자들은 모두 '염락'이 거느린 군사들에게 목숨을 잃어 죽은 자들이 수십 명에 달했다.

낭중령과 '염락'이 일제히 황제가 기거하는 방으로 들어가 악좌와 휘장에 활을 쏘았다. 

이세 황제는 노하여 측근들을 불렀으나, 측근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두려워하여 대항해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곁에는 환관 한 사람만이 곁에서 모시면서 감히 달아나지 못했다. 
이세 황제는 안으로 들어가 곁에 남아있던 환관을 향해서 말하기를 : " 그대는 어찌하여 나에게 일찍 고하지 않고

일이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하였는가 ? ”라고 하자.

환관이 대답하기를 : " 신이 감히 말씀을 드리지 못한 것은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신이 일찍이 이 일에 대해 말씀 드렸다면, 모두 이미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인데 어찌 제가 지금까지 

살아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 ”라고 하였다.  '염락'이 이세 황제의 앞에 서서 그의 죄를 나열하며 말하기를 :

" 그대는 교만한 마음으로 자기 멋대로 정사를 처리했으며 무도하게 수많은 사람을 죽여,

천하가 모두 그대에게 반기를 들었으니 그대는 이제 스스로 알아서 목숨을 끊기를 바랍니다. ”라고 하자. ]

           

二世曰:“ 丞相可得見否? ”  樂曰:“ 不可. ”  二世曰:“ 吾願得一郡為王. ”  弗許.   

又曰:“ 願為萬戶侯. ”  弗許.  曰:“ 願與妻子為黔首, 比諸公子. ”  

閻樂曰:“ 臣受命於丞相, 為天下誅足下, 足下雖多言, 臣不敢報. ”   麾其兵進.  二世自殺.

閻樂歸報趙高, 趙高乃悉召諸大臣公子, 告以誅二世之狀. 

曰:“ 秦故王國, 始皇君天下, 故稱帝.  今六國復自立, 秦地益小, 乃以空名為帝, 不可.   

宜為王如故, 便. ”  立二世之兄子公子嬰為秦王. 

(이세왈 : " 승상가득견부 ?  락왈 : "  불가. "  이세왈 : " 오원득일군위왕. "  불허. 

우왈 : " 원위만호후. "  불허.   왈 : " 원여처자위검수, 비제공자. "

염락왈 : " 신수명어승상, 위천하주족하, 족하수다언, 신불감보. "  휘기병진.  이세자살

염락귀보조고, 조고내실소제대신공자, 고이주이세지상.

왈 : " 진고왕국, 시황군천하, 고칭제.  금육국복자립, 진지익소, 내이공명위제, 불가.   

의위왕여고, 편. "  입이세지형자공자영위진왕.)


[이세 황제가 말하기를 : " 승상을 한번 만나 볼 수 있겠는가 ? ”라고 하자.  

'염락'이 말하기를 : “ 그럴 수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이세 황제가 말하기를 :  “ 내가 원컨대 이 나라의 한 개 군을 얻어 군왕으로 물러 앉고자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는가 ? ”라고 하자.  '염락'은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다시 이세 황제가 말하기를 : " 그렇다면 만호후는 어떠한가 ? ”라고 하자.  '염락'은 허락하지 않았다.

이세 황제가 말하기를 : “ 원컨대 처자를 데리고 여러 공자들처럼 일반 백성으로 살고 싶다. ”라고 하자. 

'염락'이 말하기를 : “ 신은 승상으로부터 천하를 위해 그대를 죽이라는 명을 받았을 뿐입니다. 

그대가 비록 많은 말을 한다 할지라도 신은 감히 승상에게 돌아가 그대의 죽음을 보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라고 하였다.  '염락'이 손을 휘저어 군사들을 안으로 들어오게 하여 이세 황제를 죽이라고 하자. 

이세 황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염락'이 돌아와 이세 황제의 죽음을 '조고'에게 보고하자, 

'조고'는 즉시 여러 대신들과 공자들을 불러 이세 황제의 죄를 물어 주살했다고 알렸다.

그리고 말하기를 : "우리 진나라는 원래 왕의 나라였는데 시황께서 천하의 군주가 되어 제라고 칭한 것이오.

이제 나머지 여섯 나라가 모두 일어나 자립했으니 진나라의 땅은 갈수록 좁아져, 이제 실제와 들어맞지 않는

황제의 호칭은 옳지 않은 것이오. 마땅히 옛날로 돌아가 왕이라 칭해야 편할 것이오. ”라고 하였다. 

'조고'는 이세의 형 '부소'의 아들 '자영'을 진왕으로 옹립하였다. ]

 

以黔首葬二世杜南宜春苑中.  令子嬰齋, 當廟見, 受王璽.   

齋五日, 子嬰與其子二人謀曰:“ 丞相高殺二世望夷宮, 恐群臣誅之, 乃詳以義立我.

我聞趙高乃與楚約, 滅秦宗室而王關中.  今使我齋見廟, 此欲因廟中殺我.   

我稱病不行, 丞相必自來, 來則殺之. ” 

 (이검수장이세두남의춘원중.  령자영재, 당묘견, 수왕새. 

재오일, 자영여기자이인모왈 : " 승상고살이세망이궁, 공군신주지, 내양이의입아.

아문조고내여초약, 멸진종실이왕관중.  금사아재견묘, 차욕인묘중살아. 

아칭병불행, 승상필자래, 래즉살지. " ) 


[이세의 장례는 일반 백성들처럼 평민장으로 치르고 "두남"의 의춘원에 장사지냈다.  

'자영'은 재궁으로 들어가 목욕재계를 한 후 사당에 모신 조상님들을 뵙고 왕의 상징인 옥새를 받았다. 

그리고 종묘에서 5일 동안의 목욕재계가 끝나자, '자영'은 두 아들을 불러 놓고 계책에 대해 말하기를 : 
" 승상 '조고'는 망이궁에서 이세 황제를 살해하였으며, 군신들이 자기를 죽일까봐 두려워서,

거짓으로 의로운 척하며 나를 옹립하였다. 내가 듣기로 '조고'는 초와 협약을 맺고,

자기가 진나라 종친을 멸하고 관중의 왕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 나로 하여금 목욕재계하고 사당에 모신 조상님들을 뵙게 하는 것은 나를 종묘 안에서 죽이려 하기 때문이다. 

내가 병을 핑계로 가지 않는다면, 승상은 틀림없이 몸소 이곳으로 올 것이니,

오는 즉시 죽여 버리도록 해라."라고 하였다. )

 

高使人請子嬰數輩, 子嬰不行, 高果自往, 曰:“ 宗廟重事, 王柰何不行?”   

子嬰遂刺殺高於齋宮, 三族高家以徇咸陽.  
(고사인청자영수배, 자영불행, 고과자왕, 왈 : " 종묘중사, 왕내하불행 ? " 

자영수자살고어재궁, 삼족고가이순함양. )


['조고'는 여러 차례 사람을 보내 '자영'을 오도록 하였으나 '자영'이 가지 않자,

'조고'는 과연 '자영'에게 몸소 찾아와 말하기를 : " 종묘사직의 일이 중요한 이때에 왕께서는 어찌하여 행차를

하지 않으십니까 ? 라고 하자. '자영'은 마침내 환관 '한담' 등을 시켜 '조고'와 그 가신들을 재궁에서 척살하였으며,

삼족을 멸하고 이사실을 "함양"의 대중들에게 널리 알렸다. ] 

子嬰為秦王四十六日, 楚將沛公破秦軍入武關, 遂至霸上, 使人約降子嬰.   

子嬰即系頸以組, 白馬素車, 奉天子璽符, 降軹道旁.  沛公遂入咸陽, 封宮室府庫, 還軍霸上.
(자영위진왕사십육일, 초장패공파진군입무성, 수지패상, 사인약항자영. 

자영즉계경이조, 백마소거, 봉천자새부, 항지도방.  패공수입함양, 봉궁실부고, 환군패상. )


['자영'이 진왕에 즉위한지 46일 만에, 초나라 장수 패공(유방)은 진군을 무찌르고 "무관"에 입성하여

마침내 "패상"에 머물면서 사자로 하여금 '자영'에게 항복을 요구하였다. 

'자영'은 즉시 목에 사대를 묶어 매고 백마가 이끄는 수레에 오른 다음 천자의 상징이 옥새와 부절을

공손히 두손으로 받쳐 들고, '유방'의 군대가 숙영하고 있는 "지도"까지 직접 찾아가 항복하였다.

'패공'은 마침내 '자영'의 항복을 받아들이고 "함양"에 입성하여 궁실의 귀중한 서류와 재화를 보관한

창고를 봉인하고, 다시 "패상"으로 군대를 철수하였다. ] 

居月餘, 諸侯兵至, 項籍為從長, 殺子嬰及秦諸公子宗族.   

遂屠咸陽, 燒其宮室, 虜其子女, 收其珍寶貨財, 諸侯共分之. 

(거월여, 제후병지, 항적위종장, 살자영급진제공자종족. 

수도함양, 소기궁실, 로기자녀, 수기진보화재, 제후공분지. )

 

["패상"에서 한 달 정도 머물자, 제후들이 군대를 이끌고 도착하였으며,

'항적'은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어 '자영'을 비롯하여 진나라 공자및 왕족들을 처형하였다. 

"함양"을 도륙하고 궁실을 불태웠으며, 그 자식들을 포로로 잡고,

궁실의 귀중한 서류와 재화를 보관한 창고를 털어 제후들과 나누어 가졌다. ]

滅秦之後, 各分其地為三, 名曰雍王· 塞王· 翟王, 號曰三秦.   

項羽為西楚霸王, 主命分天下王諸侯, 秦竟滅矣.  後五年, 天下定於漢.
(멸진지후, 각분기지위삼, 명왈옹왕· 새왕· 적왕, 호왈삼진. 

항우위서초패왕, 주명분천하왕제후, 진경멸의.  후오년, 천하정어한. )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나서, 그 땅을 각각 삼등분하여 '장한'을 '옹왕'으로, '사마흔'을 '새왕'으로,

'동예'를 '적왕'이라 이름하고 삼진이라 불렀다. 

'항우'는 서초패왕이 되어 천하의 왕과 제후들 위에 군림하면서 명을 주관하니 마침내 진나라는 멸망하였다. 

5년 뒤에 천하는 한나라 '유방'에 의해 평정되었다. ]   

 

 

太史公曰:秦之先伯翳, 嘗有勳於唐虞之際, 受土賜姓. 及殷夏之閒微散. 至周之衰, 秦興, 邑于西垂.
(태사공왈 : 진지선백예, 상유훈어당우지제, 수토사성.  급은하지간미산.  지주지쇠, 진흥, 읍우서수.

[태사공이 말하기를 : 진나라의 조상은 '백예'이며, 이전 '당요'와 '우순' 때에 공적을 쌓아 봉지와 성씨를 하사받았다.

은나라와 하나라에 이르러 그 후손들의 세력이 쇠미하여 사방으로 흩어져 살았다. 

주나라에 이르러 세력이 쇠해지자, 진나라가 일어나 도읍을 "서수"에 정하였다. 

自繆公以來, 稍蠶食諸侯, 竟成始皇.  始皇自以為功過五帝, 地廣三王, 而羞與之侔.   

善哉乎賈生推言之也!曰:秦并兼諸侯山東三十餘郡, 繕津關, 據險塞, 修甲兵而守之.
(자목공이래, 초잠식제후, 경성시황.  시황자이위공과오제, 지광삼왕, 이수여지모. 

선재호가생추언지야 ! 왈 : 진병겸제후산동삼십여군, 선진관, 거험새, 수갑병이수지.  

['목공' 시대부터 서서히 제후들의 땅을 먹어 들어가 마침내 '시황'에 이르러 천하 통일의 뜻을 이루었다.
'시황'은 자신의 공적이 오제에 버금가며, 영토는 삼왕 때보다 넓힘으로써 그들과 같이 취급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였다. 훗날 '가생'이 추거한 말은 참으로 훌륭하지 아니한가 ! 

'가생'이 이르기를 : 진나라는 제후들이 소유한 "산동"지역의 30여 개의 군을 합병하여, 나루터와 관문을 보수하고,

험준한 요새를 근거로 하여,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들을 훈련시켜 영토를 지키게 하였다.

然陳涉以戍卒散亂之眾數百, 奮臂大呼, 不用弓戟之兵, 鉏櫌白梃, 望屋而食, 橫行天下. 

秦人阻險不守, 關梁不闔, 長戟不刺, 彊弩不射. 楚師深入, 戰於鴻門, 曾無藩籬之艱.    

(연진섭이수졸산란지중수백, 분비대호, 불용궁극지병, 서우백정, 망옥이식, 횡행천하.

진인조험불수, 관량불합, 장극불자, 강노불사. 초사심입, 전어홍문, 증무번리지간.


[그러나 '진섭'이 어수선하게 흩어져 변경을 지키는 병사들 수백 명을 모집한 가운데 팔뚝을 걷어붙이며  

큰 소리로 외치기를 우리는 활과 삼지창을 든 병사를 부리지 못하고, 겨우 호미와 곰방메와 몽둥이로 무장하고 

사람이 사는 집만 보이면 달려가 밥을 얻어 먹으면서도 천하를 종횡으로 누비며 활보하였다.  

진나라는 험준한 요새에 의지하면서도 방어를 하지 못하고, 관문을 왕래하는 교량이 있어도 문을 닫지 못하고,

긴 삼지창이 있어도 찔러 죽이지 못하고, 강력한 쇠뇌가 있어도 쏘지 못하였다.

초나라의 군사들이 깊이 침입하여 "홍문"에서 전투를 벌일 때, 울타리와 같은 방어막은 이미 없었다. 

於是山東大擾, 諸侯并起, 豪俊相立.  秦使章邯將而東征, 章邯因以三軍之眾要市於外, 以謀其上.   

群臣之不信, 可見於此矣. 子嬰立遂, 不寤. 
(어시산동대요, 제후병기, 호준상립.  진사장한장이동정, 장한수이삼군지중요시어외, 이모기상.

군신지불신, 가견어차의. 자영입수, 불오.

[이때 "산동"에서 커다란 소요가 일어나자, 제후들이 일제히 일어났으며, 호걸, 준걸들은 서로 왕으로 즉위하였다.  

진나라는 '장한'으로 하여금 동쪽으로 출병하여 그들을 정벌토록 하자,

'장한'은 자기를 따르는 삼군의 병력을 안 밖으로 한데 모아 그 임금을 도모하려 하였다.
그러나 신하들이 믿지 못하여 이 일을 지켜 볼 수밖에 없었다. 

'자영'이 마침내 진왕에 즉위하였으나, 그도 결국 깨닫지 못하였다.]

 

藉使子嬰有庸主之材, 僅得中佐, 山東雖亂, 秦之地可全而有, 宗廟之祀未當絕也.

秦地被山帶河以為固, 四塞之國也.  自繆公以來, 至於秦王, 二十餘君, 常為諸侯雄.  豈世世賢哉? 

其勢居然也.  且天下嘗同心并力而攻秦矣.
(자사자영유용주지재, 근득중좌, 산동수난, 진지지가전이유, 종묘지사미당절야.

진지피산대하이위고, 사색지국야.  자목공이래, 지어진왕, 이십여군, 상위제후웅. 기세세현재 ? 

기세거연야.  차천하상동심병력이공진의.

[가령 '자영'이 범상한 군주의 재능을 갖추었고, 중급 정도의 보좌를 할 수 있는 참모만이라도 옆에 있었다면,

비록 "산동" 지역에서 난이 발생한들 진나라의 영토는 온전히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며,

종묘의 제사도 당연히 끊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진나라의 영토는 산으로 둘러 쌓여 있고 강을 띠처럼 두르고 있어,

사방이 요새인 나라이다. '목공' 시대부터 진왕까지 20여 명의 군주가 항상 제후들 가운데 으뜸이었다. 

어찌 그들이 대대로 현명하였기 때문이겠는가 ?  그것은 기세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천하의 제후들이 이전에 힘과 마음을 합하여 진나라를 공격하였었다.

當此之世, 賢智并列, 良將行其師, 賢相通其謀, 然困於阻險而不能進, 秦乃延入戰而為之開關,  

百萬之徒逃北而遂壞.  豈勇力智慧不足哉? 形不利, 勢不便也. 

秦小邑并大城, 守險塞而軍, 高壘毋戰, 閉關據阨, 荷戟而守之.  諸侯起於匹夫, 以利合,  

非有素王之行也. 其交未親, 其下未附, 名為亡秦, 其實利之也. 彼見秦阻之難犯也, 必退師.

安土息民, 以待其敝, 收弱扶罷, 以令大國之君, 不患不得意於海內.   

貴為天子, 富有天下, 而身為禽者, 其救敗非也.

(당차지세, 현지병열, 량장행기사, 현상통기모, 연곤어조험이불능진, 진내연입전이위지개관,

백만지지도배이수괴.  기용역지혜부족재 ? 형불리, 세불편야. 

진소읍병대성, 수험색이군, 고루무전, 폐관거액, 하극이수지.  제후기어필부, 이리합,

비유소왕지행야. 기교미친, 기하미부, 명위망진, 기실리지야. 피견진조지난범야, 필퇴사.

안토식민, 이대기폐, 수약부파, 이령대국지군,  불환부득의어해내. 

귀위천자, 부유천하, 이신위금자, 기구패비야.

 

[당시에 천하의 어진 사람들과 지혜로운 사람들이 줄지어 늘어섰으며, 훌륭한 장수들은 그들의 군대를 지휘하였고,

현명한 재상들은 자기들의 계책을 서로 상의하여 진나라를 도모하려 하였으나,

진나라의 험준한 지형 때문에 더 이상 진격할 수 없게 되자, 진나라는 이에 제후들을 진나라 영토로 끌어들인 다음

관문을 열고 공격하여, "산동"의 백만 대군은 패하여 달아나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이것이 어찌 뛰어난 역량과 지혜가 부족해서 이었겠는가 ? 이것은 지형이 불리하고 기세가 불편하기 때문이었다. 

진나라는 작은 고을을 통합하여 큰 성을 만들었고, 지형이 험준한 요새에 군사를 주둔시켜 방어하였으며,

보루를 높이 쌓고 나가 싸우지 아니하였으며, 관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험준한 지형에 의지하여 창을 어깨에 메고

방어만 하면 되었다. 제후들은 평범한 한 사람의 사내로 일어나, 이로움을 취하기 위해 연합한 것이지,

제왕의 덕을 갖춘 사람의 행한 바를 따르려고 일어났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의 교류가 아직 밀접한 상태가 아니였고, 그들의 아랫사람들도 아직 지시에 따르지 않았으며,

오직 진나라를 멸망시킨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는 자신들의 실리를 얻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진나라의 험준한 지형을 보고 쉽게 침범할 수 없음을 알았다면 반드시 군사들을 퇴각시켰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진나라는 백성들을 고향 땅에서 편안하게 휴식시키고, "산동"의 제후들이 지칠 때까지 기다리면서,

약자를 도와주고 강자들의 약탈을 그만두게 하며, 대국의 군주로써 법령을 세운다면,

세상에서 바라던 바를 이루지 못할 것이라는 근심 걱정은 없어질 것이다.

몸은 천자처럼 귀하게 되고, 부는 천하를 소유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그 몸이 사로잡히는 신세가 된 것은, 그들 스스로 망국을 구제해 보려는 책략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秦王足己不問, 遂過而不變.  二世受之, 因而不改, 暴虐以重禍.  子嬰孤立無親, 危弱無輔.   

三主惑而終身不悟, 亡, 不亦宜乎?  當此時也, 世非無深慮知化之士也,  

然所以不敢盡忠拂過者, 秦俗多忌諱之禁, 忠言未卒於口而身為戮沒矣.
(진왕족기불문, 수과이불변.  이세수지, 인이불개, 포학이동화.  자영고립무친, 위약무보. 

삼주혹이종신불오, 망, 불역의호 ?  당차시야, 세비무심려지화지사야,

연소이불감진충불과자, 진속다기휘지금, 충언미졸어구이신위륙몰의. 

[진시황제는 자신이 이룩한 공적에 만족하여 다른 사람에게는 묻지도 않고 끝내 자기의 잘못을 고치려 하지 않았다.

이세 '호해'도 부왕의 피를 이어 받았으나 고치지 않고 난폭하며 잔악하여 화를 가중시켰다. 
'자영'은 고립되어 가까이하는 사람이 없었으므로, 위태롭거나 연약해도 주위에 보좌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세 사람의 군주가 미혹속에서 죽을 때까지 깨닫지 못하여 진나라가 멸망한 것이니,

이 또한 마땅한 일이 아니겠는가 ?  그 당시에 세상에는 깊은 생각과 지혜를 본받을 만한 선비가 없었던 것도 아닌데,

진왕들에게 충성된 마음을 다하여 감히 왕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이는 진나라의 풍속에 너무나 많은 금기사항이 있어, 충언을 하였다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신은 형벌을 받아

목숨을 잃는 경우가 많이 있었다. 

故使天下之士, 傾耳而聽, 重足而立, 拑口而不言.  是以三主失道, 忠臣不敢諫, 智士不敢謀,  

天下已亂, 姦不上聞, 豈不哀哉!  先王知雍蔽之傷國也, 故置公卿大夫士, 以飾法設刑, 而天下治.

其彊也, 禁暴誅亂而天下服. 其弱也, 五伯征而諸侯從. 其削也, 內守外附而社稷存. 

故秦之盛也, 繁法嚴刑而天下振;及其衰也, 百姓怨望而海內畔矣.
(고사천하지사, 경이이청, 중주이립, 겸구이불언.  시이삼주실도, 충신불감간, 지사불감모,

천하이난, 간불상문, 기불애재 !  선왕지옹폐지상국야, 고치공경대부사, 이식법설형, 이천하치.

기강야, 금폭주난이천하복. 기약야, 오백정이제후종. 기삭야, 내수외부이사직존. 

고진지성야, 번법엄형이천하진 ; 급기쇠야, 백성원망이해내반의.

[고로 천하의 선비들은 귀 기울여 듣기만 하고, 지나칠 정도로 조심스럽게 서서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진나라의 세 왕이 도리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여도, 비록 충절을 다하는 신하일지라도 감히 간언을 

하지 못하였고, 지혜가 있는 선비일지라도 감히 계책을 내지 못하였으며, 천하에 난이 일어 났건만,

간사한 무리들이 임금에게 아뢰지 않았으니,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   

선왕들은 임금과 백성들의 사이가 가로 막혀 소원해지면 나라가 망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경대부와

선비를 두었으며,법령을 손질하고 형벌을 설치하여 천하를 다스렸다. 

나라가 강할 때에는 제후들의 난폭 한 행동을 제지하고 난을 일으킨 자를 죽여서 천하를 복종시켰다.
나라가 약할 때에는 오패가 천자를 등에 업고 제후들 정벌에 나서자 제후들이 따르게 되었다.

영토를 다른 나라에 빼앗겼을 때에는 관문 안의 수비를 강화하면서 외부적으로 주변 제후국에 의탁하여 사직을

보존하였다. 진나라의 세력이 왕성해지자 복잡한 법령과 혹독한 형벌로 세상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으니 ; 

마침내 나라가 쇠약해지는 원인이 되었으며, 백성들은 복잡한 법령과 혹독한 형벌을 원망하며

나라 안에서 반기를 들게 되었다.

故周五序得其道, 而千餘歲不絕.  秦本末并失, 故不長久.  由此觀之, 安危之統相去遠矣.   

野諺曰 “ 前事之不忘, 後事之師也. ”  是以君子為國, 觀之上古, 驗之當世, 參以人事, 察盛衰之理,

審權勢之宜, 去就有序, 變化有時, 故曠日長久而社稷安矣.
(고주오서득기도, 이천여세불절.  진본말병실, 고불장구.  유차관지, 안위지통상거원의. 

야언왈 " 전사지불망, 후사지사야. "  시이군자위국, 관지상고, 험지당세, 참이인사, 찰성쇠지리,

심권세지의, 거취유서, 변화유시, 고광일장구이사직안의.

[옛날 주나라는 작위를 다섯 등급으로 나누어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으로 삼았기 때문에 천년을 넘게 망하지 않을 수

있었다. 진나라는 그런 중요한 부분과 중요하지 않는 부분을 모두 잃어버렸기 때문에 오래 가지 못하고 망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살펴보면, 안정과 위태로움의 실마리는 서로 거리가 멀어 많은 차이가 드러난다. 

속담에 이르기를  "지난 날의 일을 잊지 않고 경험으로 삼는다면, 훗날의 일은 이를 기준으로 삼고 따라도 좋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래서 군자가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는, 상고시대의 일을 잘 살펴,

그 당시의 상황을 검증해 보고, 백성들의 일에 참여하여, 흥망성쇠의 이치를 관찰하며,

권세의 적합성을 세심하게 살펴서, 물러서거나 나아가는 것에 순서를 두고, 변화는 때를 따르기 때문에,

오랜 세월이 지나도 사직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 

秦孝公據殽函之固, 擁雍州之地, 君臣固守而窺周室, 有席卷天下, 包舉宇內, 囊括四海之意,  并吞八荒之心. 

當是時, 商君佐之, 內立法度, 務耕織, 修守戰之備, 外連衡而鬬諸侯,  於是秦人拱手而取西河之外.
(진효공거효함지고, 옹옹주지지, 군신고수이규주실, 유석권천하, 포거우내, 낭괄사해지의, 병탄팔황지심. 

당시시, 상군좌지, 내립법도, 무경직, 수수전지비, 외연횡이투제후, 어시진인공수이취서하지외.

 

[진나라 '효공'은 "효산"과 "함곡관"의 견고함에 의지하여 "옹주"의 땅을 에워싸고, 군신이 한마음으로

변경의 수비를 견고히 하면서 주왕실을 엿보며, 천하를 차지하여 세력의 범위를 넓혀 온 세상을 손아귀에 넣고,

다시 세상의 뜻을 자루속에 쓸어 담아 세상의 마음을 집어 삼키려 하고 있었다. 

이 당시에 '상군'은 '효공'을 보좌하여 안으로는 법도를 세워 농사짓는 일과 길쌈하는 일에 힘쓰면서,

전쟁이 일어나면 나라를 방어하는 훈련을 하였으며, 밖으로는 연횡책을 써서 제후들로 하여금 서로 싸우게 하니,

이에 진나라는 가만히 팔짱을 끼고서도 "서하" 밖의 땅을 차지하였다.

孝公既沒, 惠王· 武王蒙故業, 因遺冊, 南兼漢中, 西舉巴· 蜀, 東割膏腴之地, 收要害之郡.

諸侯恐懼, 會盟而謀弱秦, 不愛珍器重寶肥美之地, 以致天下之士, 合從締交, 相與為一.   

當是時, 齊有孟嘗, 趙有平原, 楚有春申, 魏有信陵.

(효공기몰, 혜왕· 무왕몽고업, 인유책, 남겸한중, 서거파· 촉, 동할고유지지, 수요해지군.

제후공구, 회맹이모약진, 불애진기중보비미지지, 이치천하지사, 합종체교, 상여위일. 

당시시, 제유맹상, 조유평원, 초유춘신, 위유신릉.

['효공'이 이윽고 죽자, '혜왕'과 '무왕'은 '효공'의 업적을 이어 받아, 그의 정책에 따라 남쪽의 "한중"을 집어 삼키고,

서쪽으로 "파", "촉"을 취하였으며 동쪽으로는 기름진 땅을 나누어 가짐으로써, 적을 막기에는 편리하고

적이 쳐들어오기에는 불리한 지세가 험한 곳을 군으로 받아들였다. 

그러자 제후들은 몹시 두려움을 느끼고 서로 회맹하여 진나라를 약하게 만들 방법을 모의하여,

진귀한 그릇과 귀중한 보물과 기름진 땅을 아끼지 않고 천하의 선비들을 불러 들여서 합종을 맺어 

교제를 시작하여 서로 더불어 하나가 되었다.

이때 제나라에는 '맹상군', 조나라에는 '평원군', 초나라에는 '춘신군', 위나라에는 '신릉군'이 있었다. ]

此四君者, 皆明知而忠信, 寬厚而愛人, 尊賢重士, 約從離衡, 并韓· 魏· 燕· 楚· 齊· 趙· 宋· 衛·  中山之眾. 

於是六國之士有寧越· 徐尚· 蘇秦· 杜赫之屬為之謀, 齊明· 周最· 陳軫· 昭滑· 樓緩·  

翟景· 蘇厲· 樂毅之徒通其意, 吳起· 孫臏· 帶佗· 兒良· 王廖· 田忌· 廉頗· 趙奢之朋制其兵.   

常以十倍之地, 百萬之眾, 叩關而攻秦.
(차사군자, 개명지이충신, 관후이애인, 존현중사, 약종이횡, 병한· 위· 연· 초· 제· 조· 송· 위· 중산지중. 

어시육국지사유녕월· 서상· 소진· 두혁지속위지모, 제명· 주최· 진진· 소활· 누원·

적경· 소려· 악의지도통기의, 오기· 손빈· 대타· 아량· 왕료· 전기· 염파· 조사지붕제기병.

상이십배지지, 백만지중, 고관이공진.

[이들 4군자는 모두 똑똑하고 지혜로우며 충성심과 신의가 있으면서, 너그럽고 후덕하여 백성들을 친근하게 대했고,

어진 사람들을 존중하고 선비들을 소중히 여겼으며, 이들은 합종을 맺고 진나라의 연횡책을 분산시키기 위해

한· 위· 연· 초· 제· 조· 송· 위· 중산의 백성들을 병합하였다.

이 여섯 나라에는 '영월', '서상', '소진', '두혁'과 같은 선비들이 계책을 세우고, '제명', '주최', '진진', '소활',

'누원', '적경', '소려', '악의' 등이 여러나라에 이같은 뜻을 전달하였으며,

'오기', '손빈', '대타', '아량', '왕료', '전기', '염파', '조사' 등은 그들의 군대를 재정비하였다.
언제나 진나라 10배의 영토와 100만의 많은 병력을 이끌고 "함곡관"을 탐색하며 진나라를 공격하였다. ]

秦人開關延敵, 九國之師逡巡遁逃而不敢進.  秦無亡矢遺鏃之費, 而天下諸侯已困矣.   

於是從散約解, 爭割地而奉秦.  秦有餘力而制其敝, 追亡逐北, 伏尸百萬, 流血漂鹵.

因利乘便, 宰割天下, 分裂河山, 彊國請服, 弱國入朝.  延及孝文王· 莊襄王, 享國日淺, 國家無事.
(진인개관연적, 구국지사준순둔도이불감진.  진무망시유족지비, 이천하제후이곤의. 

어시종산약해, 쟁할지이봉진.  진유여력이제기폐, 추망축배, 복시백만, 유혈표로.

인리승편, 재할천하, 분열하산, 강국청복, 약국입조.  연급효문왕· 장양왕, 향국일천, 국가무사.

[진나라는 관문을 열고 적을 끌어들이려는 작전을 펼치자, 아홉 나라의 군대는 감히 전진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도망쳐 버렸다. 진나라는 화살을 잃어버리거나 화살촉을 낭비하지도 않고 천하 제후들을 곤경에 빠뜨렸다. 

이로 인해 합종의 맹약은 깨져 버리고 제후들은 앞 다투어 자신들의 영토를 분할하여 진나라에 바치면서 상국으로

떠받들었다. 진나라는 남아 있는 힘으로 피폐해진 제후국들을 공격하여 도망가는 자들을 끝까지 추격하자,

항복한 자와 쓰러져 죽은 군사의 시체가 100만에 달하였으며, 흐르는 핏물은 강을 이루어 큰 방패가 둥둥 떠 다녔다.

이로써 진나라는 이익에 따라 편리한대로 천하를 제멋대로 나누고, 강과 산을 찢어 갈라 놓으므로써,
강대한 제후국들은 진나라에 투항하여 복종하기를 요청하였고, 미약한 제후국들은 진나라의 신하가 되어 조현하였다.

진나라는 '효문왕'과 '장양왕'에 이르러 재위 기간이 매우 짧았으며, 나라 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及至秦王, 續六世之餘烈, 振長策而御宇內, 吞二周而亡諸侯, 履至尊而制六合, 執棰拊以鞭笞天下, 威振四海. 

南取百越之地, 以為桂林· 象郡, 百越之君俛首系頸, 委命下吏.   

乃使蒙恬北筑長城而守藩籬, 卻匈奴七百餘里, 胡人不敢南下而牧馬, 士不敢彎弓而報怨.
(급지진왕, 속육세지여열, 진장책이어우내, 탄이주이망제후, 이지존이제육합, 집추부이편태천하, 위진사해. 

남취백월지지, 이위계림· 상군, 백월지군부수계경, 위명하리.

내사몽염북축장성이수번리, 각흉노칠백여리, 호인불감남하이목마, 사불감만궁이보원.

 

[마침내 진시왕에 이르러 6대(효공· 혜문왕· 무왕· 소양왕· 효문왕· 장양왕)가 남긴 빛나는 공적을 이어 받아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좋은 계책으로 백성들을 구휼하였고, 동, 서주를 집어 삼키고 제후들을 멸망시켰으며,

황제의 보좌에 올라 천지 사방을 지배하게 되었으며, 마치 긴 채찍을 휘둘러 말을 몰듯이 각 제후국들을 하나하나

제압함으로써 그 위세를 세상에 진동시켰다. 남쪽의 "백월" 땅을 빼앗아 차지하고 그곳에 "계림군"과 "상군"을

설치하자, "백월"의 임금은 머리를 숙이고 목에 밧줄을 맨 채, 진나라의 하급 관리의 손에 자신의 목숨을 내맡기는

신세가 되었다. 또한 '몽염'을 파견하여 북쪽 변방에 장성을 쌓아 변방의 경계를 강화하였고,

흉노를 7백 리 밖으로 내쫓아 감히 남쪽으로 내려와 말을 기르지 못하도록 했다. 

이 때문에 멸망한 여섯 제후국의 백성들이 활시위를 당겨 진나라에 원수를 갚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 

於是廢先王之道, 焚百家之言, 以愚黔首.  墮名城, 殺豪俊, 收天下之兵聚之咸陽, 銷鋒鑄鐻,  以為金人十二, 以弱黔首之民. 

然後斬華為城, 因河為津, 據億丈之城, 臨不測之谿以為固.   

良將勁弩守要害之處, 信臣精卒陳利兵而誰何, 天下以定.

秦王之心, 自以為關中之固, 金城千里, 子孫帝王萬世之業也.  秦王既沒, 餘威振於殊俗. 
(어시폐선왕지도, 분백사지언, 이우검수.  휴명성, 살호준, 수천하지병취지함양, 소봉주거, 이위금인십이, 이약검수지민.

연후참화위성, 인화위진, 거억장지성, 임불측지계이위고.

량장경노수요해지처, 신신정졸진이병이수하, 천하이정. 

진왕지심, 자이위관중지고, 금성천리, 자손제왕만세지업야.  진왕기몰, 여위진어수속.

 
[이에 진시황은 선왕 때의 제도를 폐지하고, 제자백가의 서적을 불태워 백성들을 우매하게 만들어 버렸다. 
또 이름난 성들을 허물어뜨리고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인물들을 살해했으며, 천하의 병기를 모두 진나라의 

도읍지인 "함양"으로 거두어 들여 창끝과 화살촉을 불에 녹여 악기인 편경과 황금 동상 12개를 주조함으로써

천하 백성들의 힘은 크게 약화되었다.  그리고 나서 많은 인력을 동원하여 화려한 성루를 축조하고,

황하의 물줄기를 끌어 해자를 만들었으며, 까마득히 높은 그 성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면,
계곡의 깊이를 다 헤아릴 수 없는 방어 시설로 성루를 굳건히 지켰다.

훌륭한 장수를 파견하여 강력한 쇠뇌를 요해처에 설치하여 지키게 하고, 신뢰할 만한 신하와 정예의 병사들에게

예리한 병기로 무장시켰으니 어느 누가 나설 수 있었겠는가 ? 이 때문에 천하는 안정된 듯 보였다.

진시황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관중"의 수비를 견고히 하는 것이, 천리나 되는 성을 굳게 방비하는 것과 같이 여겨, 

자자손손 대대로 영구히 제왕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위업이라고 확신하였다. 진시황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가 남긴 법령과 제도 그리고 업적은 습관이나 풍속 등이 다른 먼 나라에까지 위세를 떨쳤다. ]

   

陳涉, 罋牖繩樞之子, 甿隸之人, 而遷徙之徒, 才能不及中人, 非有仲尼· 墨翟之賢, 陶朱· 猗頓之富,

躡足行伍之閒, 而倔起什伯之中, 率罷散之卒, 將數百之眾, 而轉攻秦.    

斬木為兵, 揭竿為旗, 天下雲集響應, 贏糧而景從, 山東豪俊遂并起而亡秦族矣.
(진섭, 옹유승추지자, 맹례지인, 이천사지도, 재능불급중인, 비유중니· 묵적지현, 도주· 의돈지부,

섭족행오지간, 이굴기십백지중, 솔파산지졸, 장수백지중, 이전공진.

참목위병, 게간위기, 천하운집향응, 영량이경종, 산동호준수병기이망진족의.

['진섭'은 깨진 항아리의 주둥이로 들창을 대신하고, 새끼줄을 엮어 문을 삼을 만큼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었으며, 

먼 변방을 지키는 병사로 징발되어 나간 한낱 보잘것없는 백성에 불과했다. 재능은 보통 사람에 미치지 못하였고, 

'공자'나 '묵적'과 같은 현명함도 없었으며, '도주'와 '의돈' 같이 부유하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행군하는 대열에 가담하였으며 거사를 일으켰다. 

필부로서 입신 출세한 '진섭'은 군역과 노역에 지칠대로 지쳐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군사 수백 명을 끌어 모아

지휘하면서 진나라를 공격하였다.  그들은 나무를 베어 무기로 삼고 대나무 장대를 높이 세워 깃발을 달았으나,

세상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진섭'의 무리에 동참하였고, 자신들이 먹을 식량을 등에 짊어진 채 그림자처럼

뒤를 따르자, "산동"의 호걸들이 동시에 봉기하여 진나라의 황족을 멸망시켰다.]

且夫天下非小弱也, 雍州之地, 殽函之固自若也.   

陳涉之位, 非尊於齊· 楚· 燕· 趙· 韓· 魏· 宋· 衛· 中山之君;鉏櫌棘矜, 非錟於句戟長鎩也; 

適戍之眾, 非抗於九國之師;深謀遠慮, 行軍用兵之道, 非及鄉時之士也.
(차부천하비소약야, 옹주지지, 효함지고자약야. 

진섭지위, 비존어제· 초· 연· 조· 한· 위· 송· 위· 중산지군 ; 서우극근, 비담어구극장쇄야 ;

적수지중, 비항어구국지사 ; 심모원려, 행군용병지도, 비급향시지사야.

 

[대체로 진나라가 통일한 천하는 결코 약하거나 작지 않았고, "옹주"의 땅과 천혜의 요새인

"효산"과 "함곡관"의 견고함은 예전 그대로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진섭'의 지위는 제· 초· 연· 조· 한· 위(魏)· 송· 위(衛)나라· 중산 등 각국의 제후들보다 존귀하지 않았다 ; 

'진섭'의 무리가 무기로 삼은 호미와 곤방메와 창과 창자루는 제후국 연합군의 갈고리창이나 긴 창보다

예리하지 않았다 ; 또한 변방의 수졸로 유배당한 오합지졸들을 끌어 모아 이루어진 '진섭'의 무리는

예전 아홉 나라들의 연합군보다 강대하지도 않았다 ;  그렇다고 깊은 꾀와 먼 장래를 내다보는 생각이 원대하거나

행군과 용병술도 예전 여섯 제후국들의 모사들에 미치지 못하였다.

然而成敗異變, 功業相反也.  試使山東之國與陳涉度長絜大, 比權量力, 則不可同年而語矣.   

然秦以區區之地, 千乘之權, 招八州而朝同列, 百有餘年矣.  然後以六合為家, 殽函為宮,  

一夫作難而七廟墮, 身死人手, 為天下笑者, 何也? 仁義不施而攻守之勢異也.
(연이성패이변, 공업상반야.  시사산동지국여진섭도장혈대, 비권량력, 즉불가동년이어의.   

연진이구구지지, 천승지권, 초팔주이조동열, 백유여년의.  연후이육합위가, 효함위궁,

일부작난이칠묘타, 신사인수, 위천하소자, 하야 ? 인의불시이공수지세이야.


[그러나 양쪽의 승리와 패배는 뒤바뀌었고, 그 공로와 업적도 정반대가 되었다. 

시험삼아 "산동"의 지역의 여러 제후들과 '진섭'의 장점과 단점 그리고 권력 및 위세를 비교해 본다면

도저히 같다고 할 수 없으며 세월도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그런데 진나라는 제각기 다른 땅과 제후의 권력을 차지했고, 8주의 제후들을 불러들여 같은 반열에서

진나라에 조현하러 오도록 한 것이 이미 백여 년이나 되었다.  그리고 나서 천지 사방을 집으로 삼고,

"효산"과 "함곡관"을 궁궐로 삼았던 것인데, '진섭'이라는 일개 필부가 반란을 일으키자, 

칠묘가 무너지고 황제가 남의 손에 살해당하는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으니, 그 까닭은 무엇인가 ?
그것은 仁과 義로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이며 또한 천하를 무력으로 공격해 정복하는 형세와

이것을 지키는 형세가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

秦并海內, 兼諸侯, 南面稱帝, 以養四海, 天下之士斐然鄉風, 若是者何也? 曰:近古之無王者久矣. 

周室卑微, 五霸既歿, 令不行於天下, 是以諸侯力政, 彊侵弱, 眾暴寡, 兵革不休, 士民罷敝.

(진병해내, 겸제후, 남면칭제, 이양사해, 천하지사비연향풍, 약시자하야 ?  왈 : 근고지무왕자구의.

주실비미, 오패기몰, 령불행어천하, 어시제후력정, 강침약, 중폭과, 병혁불휴, 사민피폐.

 

[진나라가 온 천하를 아우르고 제후국을 합병해 황제가 됨을 칭함으로써 온 천하를 다스리게 되자,

이에 세상의 선비들은 바람을 향하듯 앞다투어 찾아와 모두 진나라 왕조에 몸을 숙이고 복종했다. 

이같은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  말하자면 : 과히 멀지 않은 예전부터 천하를 다스리는 제왕이 사라진 것이 

너무 오래도록 지속되어 왔기 때문이다. 주왕실이 쇠퇴해 미약해지고 춘추시대 제후국들을 다스린 다섯 패자가 

사라진 다음, 세상에서 천자의 명령은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였으므로, 이 때문에 제후들은 서로 무력을 동원해 

정벌하게 되었고, 강대국이 약소국을 침략하고, 대국이 소국을 공격하는 정복과 정벌 전쟁이 끊이질 않아 

군사들과 백성들은 지치고 피폐해졌다.

今秦南面而王天下, 是上有天子也.  既元元之民冀得安其性命, 莫不虛心而仰上,  

當此之時, 守威定功, 安危之本在於此矣.
(금진남면이왕천하, 시상유천자야.  기원원지민기득안기성명, 막불허심이앙상,

당차지시, 수위정공, 안위지본재어차의.

[그런데 지금 진나라가 황제라 칭하고 천하에 황제 노릇을 하자, 이것은 위로 천하를 안정시킬 천자가 출현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제후들의 정복과 정벌에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선량한 백성들은 아무런 근심 없이

평안히 살 수 있기를 애타게 갈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심으로 황제를 믿어 복종하지 않는 백성은 아무도 없었다.

이때 진나라는 황제의 권위를 지키고 공로와 업적을 다졌어야 했으며, 진나라가 안정을 누리느냐,

아니면 위험을 초래하느냐의 관건은 바로 여기 있었던 것이다. ] 

秦王懷貪鄙之心, 行自奮之智, 不信功臣, 不親士民, 廢王道, 立私權, 禁文書而酷刑法,  

先詐力而後仁義, 以暴虐為天下始.  夫并兼者高詐力, 安定者貴順權, 此言取與守不同術也.   

秦離戰國而王天下, 其道不易, 其政不改, 是其所以取之守之者無異也.
(진왕회탐비지심, 행자분지지, 불신공신, 불친사민, 폐왕도, 입사권, 금문서이혹형법,

선사력이후인의, 이포학위천하시.  부병겸자고사력, 안정자귀순권, 차언취여수불동술야.

진리전국이왕천하, 기도불역, 기정불개, 시기소이취지수지자무이야.

[진시황은 탐욕스럽고 비루하고 천박한 마음만을 품고 오로지 자신의 지략과 명성을 널리 알리는데만 급급하여,

공신들을 신뢰하지 않고 선비와 백성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으며 왕도정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황제 자신의 권위만을

내세워 시(詩)와 서(書) 그리고 고적을 일체 금지시키고, 잔혹한 형벌과 법령만을 적용해 나라를 다스렸으며,

또 속임수와 권력만을 앞세우고 인의와 도덕을 돌아보지도 않고, 난폭함을 천하를 다스리는 시작으로 삼았다. 

대체로 다른 나라를 빼앗아 합병시킨 자는 기만적인 속임수와 무력을 높이 평가하고,

천하를 통일하고 안정시킨 자는 민심과 변화한 시대 흐름에 따르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이것은 천하를 쟁취하는 것과 지키는 것은 법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진시황은 전국시대를 거쳐 천하의 왕으로 군림하면서도 그 법도를 바꾸지 않았으며, 그의 노선과 정책은 

개정되지 않았으니 이것은 천하를 쟁취하는 것과 지키는 방법을 다르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한다. 

孤獨而有之, 故其亡可立而待.  借使秦王計上世之事, 并殷周之跡, 以制御其政,  

後雖有淫驕之主而未有傾危之患也.  故三王之建天下, 名號顯美, 功業長久.
(고독이유지, 고기망가립이대.  차사진왕계상세지사, 병은주지적, 이제어기정,

후수유음교지주이미유경위지환야.  고삼왕지건천하, 명호현미, 공업장구.


[이로 인해 스스로 고립되어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궁지에 빠져 천하를 거느리고 다스렸으며,

진시황의 죽음 이후, 진나라는 쉽게 멸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만약 진시황이 오제(五帝)의 옛 일을 헤아려 살피고, 은나라와 주나라가 걸어온 발자취를 더듬어 나라와 백성을

다스리는 정책에 반영했다면, 비록 그가 죽고 난 이후 교만하고 무도한 황제가 나와 나라가 생사존망의 갈림길에

놓였다고 해도 그토록 쉽게 멸망하는 최악의 재난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라의 우왕· 상나라의 탕왕· 주나라의 문왕과 무왕은 나라를 세우고 어진 정치로 나라와 백성을

다스렸기 때문에, 그 이름은 빛나고 위대한 공로와 업적은 영원토록 이어질 수 있었다. ] 

今秦二世立, 天下莫不引領而觀其政夫.   夫寒者利裋褐而饑者甘糟糠, 天下之嗷嗷, 新主之資也.   

此言勞民之易為仁也.  鄉使二世有庸主之行, 而任忠賢, 臣主一心而憂海內之患, 縞素而正先帝之過,

裂地分民以封功臣之後, 建國立君以禮天下, 虛囹圉而免刑戮, 除去收帑汙穢之罪, 使各反其鄉里,

發倉廩, 散財幣, 以振孤獨窮困之士, 輕賦少事, 以佐百姓之急, 約法省刑以持其後,  

使天下之人皆得自新, 更節修行, 各慎其身, 塞萬民之望, 而以威德與天下, 天下集矣.

(금진이세립, 천하막불인령이관기정부.  부한자리수갈이기자감조강, 천하지오오, 신주지자야. 

차신로민지이위인야.  향사이세유용주지행, 이임충현, 신주일심이우해내지환, 호소이정선제지과,

열지분민이봉공신지후, 건국입군이례천하, 허령어이면형륙, 제거수탕오예지죄, 사각반기향리,

발창름, 산재폐, 이진고독궁인지사, 경부소사, 이좌백성지급, 약법성형이지기후,

사천하지인개득자신, 경절수행, 각신기신, 색만민지망, 이이위덕여천하, 천하집의.

[이제 2세 황제 '호해'가 진시황의 뒤를 이어 황제의 자리에 오르자, 세상의 모든 백성들은 목을 길게 늘여 빼고,

그의 정치에 기대를 걸었다. 권력이 바뀌면, 추위에 떨던 사람은 거친 베옷을 걸치고 있어도 따뜻함을 느끼고,

굶주렸던 자는 보잘것없는 술지게미와 쌀겨를 먹고도 달게 여기게 마련이다. 
마치 배고픈 어린아이가 보채듯이 천하의 백성들이 선정을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는, 새로이 황제의 자리에 오른

제왕은 정책을 펴 나가기가 매우 쉬운 법이다. 이것은 피로와 굶주림에 지칠 대로 지친 백성들에게는 

조그마한 선정도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만일 2세 황제가 평범한 군주가 베푼 정도의 덕행만 베풀고,

충신과 어진 사람을 믿고 일을 맡기고, 임금과 신하가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천하의 근심을 걱정하고,

하얀 상복을 입고 있는 동안 선제인 진시황의 잘못과 실책을 바로잡아 토지와 백성을 공신들의 후예들에게 분봉하여

제후국과 왕을 세워 천하의 어진 사람들을 예로써 대접하고, 죄지은 사람들을 사면하여 감옥을 비우고 사형을

면해주며, 죄를 지으면 아내와 자식까지 연좌하여 처벌하는 제도를 없애 죄인들을 모두 고향으로 되돌려 보내며,

창고를 열어 재물을 나누어 외롭고 곤궁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구해주고, 나라의 부세와 요역을 줄여 백성들을

위급한 재앙으로부터 구하고,법률을 간략하게 하고 형벌을 줄여 백성들이 후손을  보존할 수 있도록 하고,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고 새로이 출발할 기회를 주고,  

가짐을 단정히 하고 언행을 살펴 스스로 근신하도록 하고, 천하의 모든 백성들의 소망을 채워 주는 방법으로

황제의 위엄과 덕망을 세웠다면, 천하와 만백성이 모두 그를 따랐을 것이다.  

即四海之內, 皆讙各自安樂其處, 唯恐有變, 雖有狡猾之民, 無離上之心, 則不軌之臣無以飾其智,  而暴亂之姦止矣. 

二世不行此術, 而重之以無道, 壞宗廟與民, 更始作阿房宮, 繁刑嚴誅,  

吏治刻深, 賞罰不當, 賦斂無度, 天下多事, 吏弗能紀百姓困窮而主弗收恤.
(즉사해지내, 개환각자안락기처, 유공유변, 수유교활지민, 무리상지심, 즉불궤지신무이식기지, 이폭란지간지의. 

이세불행차술, 이중지이무도, 괴종묘여민, 경시작아방궁, 번형엄주,

이치각심, 상벌부당, 부렴무도, 천하다사, 이불능기백성곤궁이주불수휼.

[천하와 만백성은 각자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고 평안히 생업을 닦으며 혹시나 변란이 일어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면, 비록 교활한 사람이 반란이 일으켜 조정을 배반했다고 해도 백성들은 군중 심리에 휩쓸려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며, 법도를 어기고 반란을 일으킨 신하 역시 자신의 간교하고 기만적인 속임수를 은폐할

방법을 찾지 못하고, 포악하고 어지러운 간사한 계책도 종식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2세 황제는 이와 같은 방법을 채택하지 않고 오히려 진시황보다 더욱 포악무도하게 굴며 종묘를 훼손하고

백성들을 학대했으며, 다시 아방궁을 축조하고 형벌을 번잡하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잔혹한 처형을 일삼았다.

관리를 다스릴 때도 가혹하게 대하고, 포상과 처벌도 부당하게 하고, 혹독하게 백성들로부터 부세를 거두어들였고,

천하가 온갖 나쁜 일과 혼란으로 어지러워졌으나 관리들은 이를 바로잡을 방법과 도리를 찾을 수 없었으며,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허덕이는데도, 황제는 이를 불쌍히 여겨 구제할 대책조차 마련하지 않았다.

然後姦偽并起, 而上下相遁, 蒙罪者眾, 刑戮相望於道, 而天下苦之.

自君卿以下至于眾庶, 人懷自危之心, 親處窮苦之實, 咸不安其位, 故易動也.

是以陳涉不用湯武之賢, 不藉公侯之尊, 奮臂於大澤而天下響應者, 其民危也.   

故先王見始終之變, 知存亡之機, 是以牧民之道, 務在安之而已. 

(연후간위병기, 이상하상둔, 몽죄자중, 형륙상망어도, 이천하고지. 

자군경이하지우중서, 인회자위지심, 신처궁고지실, 함불안기위, 고이동야.

시이진섭불용탕무지현, 불자공후지존, 분비어택이천하향응자, 기민위야. 

고선왕견시종지변, 지존망지기, 시이목민지도, 무재안지이이.

[그러자 간사하고 사악한 무리들이 도처에서 잇달아 봉기하였지만, 황제와 신하들은 서로 책임을 회피하기 일쑤였고,

죄를 짓는 자가 속출하여 형벌과 처형을 당한 자들이 길가 곳곳에 널려 있는 상황이 벌어졌으니,

백성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위로는 황제와 공경대부에서부터 아래로는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하나같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곤궁하고 궁핍한 상황 속에서 자신의 지위를 불안해했고 

이로 인해 반란이 일어나자 민심이 그토록 쉽게 동요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때문에 '진섭'은 상나라의 '탕왕'과 주나라 '무왕'만큼 어진 덕망과 재능을 갖추지도 않았고,

제후처럼 높고 귀한 지위에 있지 않았는데도 그가 "기현 대택향"에서 팔을 걷어붙이고 목청껏 소리를 지르자,

천하가 그에게 호응한 것은 당시 백성들이 위급함과 곤란함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옛 성왕들은 시작과 끝의 변화를 두루 살펴 생존과 멸망의 기미를 알아채고,

백성들을 다스릴 때 민심을 안정시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했던 것이다. 

天下雖有逆行之臣, 必無響應之助矣.  故曰 “ 安民可與行義, 而危民易與為非 ” 此之謂也.   

貴為天子, 富有天下, 身不免於戮殺者, 正傾非也.  是二世之過也.
(천하수유역행지신, 필무향응지조의.  고왈 " 안민가여행의, 이위민역여위비 " 차지위야. 

귀위천자, 부유천하, 신불면어육살자, 정경비야.  시이세지과야.

[천하에 비록 바른 길을 역행하는 신하가 있을지라도, 반드시 남의 주창에 따라 다른 사람이 그와 같은 행동에

호응하는 도움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 삶과 생활이 안정되면 백성들은 義를 행할 수 있지만,

삶과 생활이 불안정한 백성들은 비행을 저지를 수 있다. "라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지극히 높고 귀한 천자의 지위에 올라 세상을 소유하고서도, 육신이 살육당하는 비극적인 운명을 벗어나지 못한

이유는 잘못을 바로잡는 방법이 그릇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2세 황제 '호해'의 과오였다. ] 

襄公立, 享國十二年.  初為西畤.  葬西垂.  生文公.  

文公立, 居西垂宮.  五十年死, 葬西垂.  生靜公.  

靜公不享國而死.  生憲公.
(양공립, 향국십이년.  초위서치.  장서수.  생문공.  

문공립, 거서수궁.  오십년사, 장서수.   

생정공.   정공불향국이사. 생헌공.


['양공'은 즉위하여 12년간 재위하였다.  처음으로 서치를 지었고 "서수"에 장사지냈다. 

'양공'은 '문공'을 낳았다.  '문공'은 즉위하여 서수궁에서 거주하였다. 

재위 50년 만에 세상을 떠나자 "서수"에 장사지냈다.  '문공'은 '정공'을 낳았다.
'정공'은 즉위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으나, 그는 '헌공'을 낳았다.

憲公享國十二年, 居西新邑.  死, 葬衙.  生武公· 德公· 出子.  出子享國六年, 居西陵.   

庶長弗忌· 威累· 參父三人, 率賊賊出子鄙衍, 葬衙.  武公立.
(
헌공향국십이년, 거서신읍.  사, 장아.  생무공· 덕공· 출자.   출자향국육년, 거서능. 

서장비기· 위루· 삼보삼인, 솔적적출자비연, 장아.  무공립.


['헌공'은 12년간 재위했으며 "서신읍"에 거주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 "아현"에 장사지냈다.

그는 '무공', '덕공', '출자'를 낳았다.  '출자'는 6년간 재위했으며 "서릉"에 거주하였다. 

대서장 '불기'와 '위루', 삼보' 세 사람이 도둑의 무리를 이끌고 "비연"에서 '출자'를 시해하였다. 
이에 '출자'를 "아현"에 장사지냈다.  '무공'이 즉위하였다. 

武公享國二十年.  居平陽封宮.  葬宣陽聚東南.  三庶長伏其罪,  德公立.  德公享國二年.   

居雍大鄭宮.  生宣公· 成公· 繆公.  葬陽.  初伏, 以御蠱.
(무공향국이십년.  거평양봉궁.  장선양취동남.  삼서장복기죄, 덕공립. 

덕공향국이년.  거옹대정궁.   생선공성공목공.  장양.  초복, 이어고.


['무공'은 12년간 재위했으며 "평양"의 봉궁에 거주하였다.  그는 "선양취"의 동남쪽에 장사지냈다. 

세 명의 서장이 징벌을 받았고,  '덕공'이 즉위하였다. '덕공'은 2년간 재위했으며 "옹읍"의 대정궁에 거주하였다. 

그는 '선공'· '성공'· '목공'을 낳았다.  "양현"에 장사지냈다. 처음으로 복일을 정해 나쁜 기운을 다스렸다. 

宣公享國十二年.  居陽宮.  葬陽.  初志閏月.   成公享國四年, 居雍之宮.  葬陽.   

齊伐山戎· 孤竹.  繆公享國三十九年.  天子致霸.  葬雍.  繆公學著人.  生康公 .
(선공향국십이년.  거양궁.  장양.  초지윤월.   성공향국사년, 거옹지궁.  장양. 

제벌산융· 고죽.  목공향국삼십구년.  천자치패.  장옹.  목공학저인.  생강공. 

['선공'은 12년간 재위했으며 양궁에 거주했다.  "양현"에 장사지냈다.  처음으로 윤달을 기록했다.
'성공'은 4년간 재위했으며 "옹읍"의 궁전에 거주하였다. "양현"에 장사지냈다. 제나라가 "산융"과 "고죽"을 정벌했다.

'목공'은 39년간 재위했으며 주나라의 천자가 그를 패주로 인정하였다. 그는 "옹성"에 장사지냈다. 

'목공'은 저인에게도 배웠다. '강공'을 낳았다. 

康公享國十二年.  居雍高寢.  葬竘社.  生共公.  

共公享國五年, 居雍高寢.  葬康公南.  生桓公.  

桓公享國二十七年.  居雍太寢.  葬義裏丘北.  生景公.
(강공향국십이년.  거옹고침.  장구사.  생공공.  

공공향국오년, 거옹고침.  장강공남.  생환공. 

환공향국이십칠년.  거옹태침.  장의리구북.  생경공.


['강공'은 12년간 재위했으며, "옹읍"의 고침에 거주하였다. "구사"에 장사지냈다. 

'강공'은 '공공'을 낳았다.  '공공'은 5년간 재위했으며 "옹읍"의 고침에 거주하였다. 

'강공'이 묻힌 곳의 남쪽에 장사지냈다.  '공공'은 '환공'을 낳았다.
'환공'은 27년간 재위했으며 "옹읍"의 태침에 거주하였다.  '환공'은 "의리"의 언덕 북쪽에 묻혔다. 

'환공'은 '경공'을 낳았다.

景公享國四十年.  居雍高寢, 葬丘裏南.  生畢公.  

畢公享國三十六年.  葬車裏北.  生夷公.   

夷公不享國, 死, 葬左宮.  生惠公.
(경공향국사십년.  거옹고침, 장구이남.  생필공.  

필공향국삼십육년.  장거리북.  생이공.  

이공불향국, 사, 장좌궁.  생혜공.


['경공'은 40년간 재위했으며 "옹읍"의 고침에 거주하였으며, "구리"의 남쪽에 장사지냈다. 

'경공'은 '필공'을 낳았다.  '필공'은 36년간 재위했으며 "거리"의 북쪽에 장사지냈다. 

'필공'은 '이공'을 낳았다.  '이공'은 즉위하지 못한 채 좌궁에 묻혔다.  '이공'은 '혜공'을 낳았다. 

惠公享國十年.  葬車里康景.  生悼公.  

悼公享國十五年.  葬僖公西.  城雍.  生剌龔公.    

剌龔公享國三十四年.  葬入里.  生躁公· 懷公. 

其十年, 彗星見.
(혜공향국십년.  장거리강경.  생도공.  

도공향국십오년.  장희공서.  성옹.  생날공공.  

날공공향국삼십사년.  장입리.  생조공· 회공. 

기십년, 혜성견.


['혜공'은 10년간 재위했으며 "거리"에 장사지냈다. '혜공'은 '도공'을 낳았다.
'도공'은 재위 15년으로 '희공'을 장사지낸 서쪽, "성옹"에 장사지냈다. "옹읍"에 성을 축조했다. 

'도공'은 '자공공'을 낳았다. '자공공'은 34년간 재위했으며 "입리"에 장사지냈다. 

'자공공'은 '조공', '회공'을 낳았다. 즉위한 지 10년째 되던 해에 혜성이 나타났다. 

躁公享國十四年.  居受寢.  葬悼公南.  其元年, 彗星見.    

懷公從晉來.  享國四年.  葬櫟圉氏.  生靈公.   諸臣圍懷公, 懷公自殺.
(조공향국십사년.  거수침.  장도공남.  기원년, 혜성견.  

회공종진래.  향국사년.  장역어지.  생영공.   제신어회공, 회공자살. 
['조공'은 14년간 재위했으며 수침에 거주하였다.  '도공'을 장사지낸 남쪽에 장사지냈다. 

즉위하던 해에 혜성이 나타났다.  '회공'은 진나라에서 돌아와 즉위했다. 

4년간 재위했으며" 역" 땅의 어씨에 장사지냈다.  '영공'을 낳았다.

여러 신하들이 회공을 포위하니 '회공'은 자살했다. 

肅靈公, 昭子子也.  居涇陽.  享國十年.  葬悼公西.  生簡公.   簡公從晉來.   

享國十五年.  葬僖公西.  生惠公.  其七年.  百姓初帶劍.   
(숙영공, 소자자야.  거경양.  향국십년.  장도공서.  생간공.   간공종진래. 

향국십오년.  장희공서.  생혜공.  기칠년.  백성초대검.


['숙령공'은 '소자'의 아들이다. "경양현"에 거주하였다. 

10년간 재위했으며 도공을 장사지낸 곳의 서쪽에 장사지냈다. '숙령공'은 '간공'을 낳았다.
'간공'은 진나라에서 돌아와 즉위했다.  15년간 재위했으며 '희공'을 장사지낸 곳의 서쪽에 장사지냈다. 
'간공'은 '혜공'을 낳았다.  즉위한 지 7년째 되던 해 백관들이 처음으로 검을 차게 되었다. 

惠公享國十三年.  葬陵圉.  生出公.   出公享國二年.  出公自殺, 葬雍.   

獻公享國二十三年.  葬囂圉.  生孝公.
(혜공향국십삼년.  장능어.  생출공.   출공향국이년.  출공자살, 장옹. 

헌공향국이십삼년,  장효어.  생효공.


['혜공'은 13년간 재위했으며 "능어"에 장사지냈다.  '혜공'은 '출공'을 낳았다. 

'출공'은 재위 2년 만에 자살했으며 '옹읍"에 장사지냈다. 

'헌공'은 23년간 재위했으며 "효어"에 장사지냈다.  '헌공'은 '효공'을 낳았다. 

孝公享國二十四年.  葬弟圉.  生惠文王.  其十三年, 始都咸陽.    

惠文王享國二十七年.  葬公陵.  生悼武王.   悼武王享國四年, 葬永陵.
(효공향국이십사년.  장제어.  생혜문공.  기십삼년,  시도함양.  

혜문왕향국이십칠년.  장공릉.  생도무왕.  도무왕향국사년, 장영릉.


['효공'은 24년간 재위했으며 "제어"에 장사지냈다.  '효공'은 '혜문왕'을 낳았다. 

즉위한 지 13년째 되던 해 처음으로 "함양"에 도읍했다.

'혜문왕'은 27년간 재위했으며 "공릉"에 장사지냈다. '혜문왕'은 '도무왕'을 낳았다. 

'도무왕'은 4년간 재위했으며 "영릉"에 장사지냈다. 

昭襄王享國五十六年.  葬茝陽.  生孝文王.  

孝文王享國一年.  葬壽陵.  生莊襄王.    

莊襄王享國三年.  葬茝陽.  生始皇帝.  呂不韋相.
(소양왕향국오십육년.  장채양.  생효문왕.   효문왕향국일년.  장수능.  생장양왕.  

장양왕향국삼년.  장채양.  생시황제.  여불위상.)

 

['소양왕'은 56년간 재위했으며 "채양"에 장사지냈다.  '소양왕'은 '효문왕'을 낳았다. 

'효문왕'은 1년간 재위했으며 "수릉"에 장사지냈다. '효문왕'은 '장양왕'을 낳았다. 

'장양왕'은 3년간 재위했으며 "채양"에 장사지냈다.  '장양왕'은 '시황제'를 낳았다. 

'시황제'는 '여불위'를 상국으로 삼았다. 

獻公立七年, 初行為市.  十年, 為戶籍相伍.   孝公立十六年.  時桃李冬華.    

惠文王生十九年而立.  立二年, 初行錢.  有新生嬰兒曰 “ 秦且王. ”
(헌공립칠년, 초행위시.  십년, 위호적상오.  효공립십육년.  시도이동화.  

혜문왕생십구년이립.  입이년, 초행전.  유신생영아왈 " 진차왕. ")


['헌공' 즉위 7년에 처음으로 저잣거리가 생겼다. 10년에는 호적을 먼들고, 다섯 가구를 1조로 편성했다.
'효공' 즉위 16년에 복숭아와 오얏이 겨울에 꽃을 피웠다. '혜문왕'은 19세에 즉위했다. 

즉위한 이듬해에 처음으로 화폐를 발행했다. 
새로 태어난 갓난아기가 “ 진나라가 장차 왕노릇을 하리라. ”라고 말했다. 

悼武王生十九年而立.  立三年, 渭水赤三日.   昭襄王生十九年而立.   

立四年, 初為田開阡陌.  孝文王生五十三年而立.
(도무왕생십구년이립.  입삼년, 위수적삼일.   소양왕생십구년이립. 

입사년, 초위전개천맥.  효문왕생오십삼년이립.)


['도무왕'은 19세에 즉위했다.  즉위 3년에 "위수"의 물빛이 사흘 동안 붉게 변했다.
'소양왕'은 19세에 즉위했다.  즉위 4년에 처음으로 논밭사이에 두렁을 만들었다. 

'효문왕'은 53세에 즉위했다.

莊襄王生三十二年而立.  立二年, 取太原地.  莊襄王元年, 大赦, 修先王功臣, 施德厚骨肉,  

布惠於民.  東周與諸侯謀秦, 秦使相國不韋誅之, 盡入其國.
(장양왕생삼십이년이립.  입이년, 취태원지.  장양왕원년, 대사, 수선왕공신, 시덕후골신,

포혜어민.  동주여제후모진, 진사상국불위주지, 진입기국.)

 
['장양왕'은 32세에 즉위했다.  즉위한 이듬해에 "태원" 지역을 탈취했다. 

'장양왕' 원년에 대사면을 내리고 선왕의 공신을 표창해 덕을 베풀고, 가까운 친족을 후대하며,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었다.  동주가 제후들과 모의하여 진나라를 치려고 하자, 

진나라는 상국 여불위를 보내 동주의 천자를 살해하고 동주를 진나라에 편입시켰다.   

秦不絕其祀, 以陽人地賜周君, 奉其祭祀.   始皇享國三十七年.  葬酈邑.  生二世皇帝.   

始皇生十三年而立.  二世皇帝享國三年. 葬宜春. 趙高為丞相安武侯.  二世生十二年而立.   

右秦襄公至二世, 六百一十歲.
(진부절기사, 이양인지사주군, 봉기제사.   시황향국삼십칠년.  장역읍.  생이세황제.   

시황생십삼년이립.  이세황제향국상면. 장의춘. 조고위승상안무후. 이세생십이년이립.

우진양공지이세, 육백일십세.)

[그러나 진나라는 동주의 제사를 단절시키지는 않고, 양인의 땅을 주군에게 주어 그들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시황제'는 37년간 재위했으며 "여읍"에 장사지냈다.  '시황제'는 2세 황제를 낳았다. 

'시황제'는 13세에 즉위했다.  2세 황제는 3년간 재위했으며 "의춘"에 장사지냈다.

'조고'는 승상이 되었고 안무후에 봉해졌다. 이세는 12세에 즉위했다.
위의 일들은 진나라 '양공'에서 이세에 이르기까지 610년간의 일들이었다. ] 

孝明皇帝十七年十月十五日乙丑, 曰:周歷已移, 仁不代母.  秦直其位, 呂政殘虐.   

然以諸侯十三, 并兼天下, 極情縱欲, 養育宗親.
(효명황제십칠년시월십오일을축, 왈 : 주력이이, 인불대모.  진직기위, 여정잔학. 

연이제후십삼, 병겸천하, 극정종욕, 양육종친.

['효명황제' 17년 10월 15일 을축일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 있다. 

“ 주나라의 역수는 이미 지나갔고, 한나라의 인덕은 아직 주나라를 대신하기에 부족하므로 

진나라가 제위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진시황 '여정'은 잔혹하고 포학하였다.  
그러나 열세 살 된 제후의 몸으로 천하를 겸병해 방종되게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며 종친들을 양육했다.  

三十七年, 兵無所不加, 制作政令, 施於後王.   

蓋得圣人之威, 河神授圖, 據狼· 狐, 蹈參· 伐, 佐政驅除, 距之稱始皇.
(삼십칠년, 병무소불가, 제작정령, 시어후왕. 

개득성인지위, 하신수도, 거랑· 호, 도참· 벌, 좌정구제, 거지칭시황.

[재위 37년 동안 무력을 행사하지 않은 곳이 없었고, 정령을 만들어 후대의 제왕에게 남겨주었다. 
이는 아마도 '여정'이 성인의 위엄을 얻고, 하신으로부터 하도 받아 천랑성과 호성에 의지하고,

삼성과 벌성을 본받으니, 이 네 별이 '여정'으로 하여금 적대세력을 몰아내고

스스로 시황제라고 칭할 수 있도록 도왔던 것이다. ] 

始皇既歿, 胡亥極愚, 酈山未畢, 復作阿房, 以遂前策.   

云 “ 凡所為貴有天下者, 肆意極欲, 大臣至欲罷先君所為. ”
(시황기몰, 호해극우, 역산미필, 복작아방, 이수전책. 

운 " 범소위귀유천하자, 사의극욕, 대신지욕파선군소위. "

[진시황이 죽고 난 다음, '호해'는 너무나도 우둔해 "여산"의 축묘가 미처 끝나기도 전에 다시 아방궁을 건축해

시황제의 계획을 끝마쳤다. 그리고 이르기를 " 천하를 소유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데에 있는 것이거늘, 대신들이 선왕이 했던 사업을 폐기해 버리려고 하는구나 ."라고 하였다

誅斯· 去疾, 任用趙高痛.  哉言乎!人頭畜鳴.   

不威不伐惡, 不篤不虛亡, 距之不得留, 殘虐以促期, 雖居形便之國, 猶不得存.
(주사· 거질, 임용조고통.  재언호 ! 인두축명. 

불위불벌악, 불독불허망, 거지부득유, 잔학이촉기, 수거형편지국, 유부득존.


[그리고 '이사'와 '풍거질'을 죽이고 '조고'를 임용했으니, 실로 가슴 아픈 이야기가 아닌가 ! 

마치 사람의 머리를 가지고서 짐승 같은 소리를 질러대는 꼴이로다.
만약 그가 횡포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자신의 죄악으로 인해 정벌당하지 않았을 것이며,

죄악이 깊고 중하지 않았다면 허망하게 파멸에 이르지는 않았으리라. 
황제의 자리에 등극해 오래 머무르지도 못한 채 잔학을 일삼아 파멸을 재촉했으니,

비록 지형이 유리한 나라를 차지하고 있었다 할지라도 오히려 영토를 그대로 보존하지 못했을 것이다. ] 

子嬰度次得嗣, 冠玉冠, 佩華紱, 車黃屋, 從百司, 謁七廟.  小人乘非位, 莫不怳忽失守, 偷安日日,

獨能長念卻慮, 父子作權, 近取於戶牖之閒, 竟誅猾臣, 為君討賊.
(자영도차득사, 관옥관, 패화불, 거황옥, 종백사, 알칠묘.  소인승비위, 막불황홀실수, 투안일일,

독능장념각려, 부자작권, 근취어호유지간, 경주활신, 위군토적.

 

['자영'은 순서를 뛰어넘어 황위를 계승해, 옥관을 쓰고 화불을 차고, 황옥의 수레를 타고,

백관들을 수행하게 해 칠묘를 배알하였다. 그러나 소인배들이 높은 자리에 발탁되어,

직무는 어리둥절해 감당하지 못한 채 날마다 편안함만을 추구하였으니,

'자영'은 홀로 오래 생각하고 근심을 물리쳐서, 부자의 득실을 따져,

마침내 가깝게 자신의 집안에서 교활한 간신 '조고'를 주살함으로써 선왕을 위해 역적을 토벌했다. ]

高死之後, 賓婚未得盡相勞, 餐未及下咽, 酒未及濡脣, 楚兵已屠關中, 真人翔霸上, 素車嬰組,  

奉其符璽, 以歸帝者.   鄭伯茅旌鸞刀, 嚴王退舍.
(고사지후, 빈혼미득진상로, 찬미급하인, 주미급유순, 초병이도관중, 진인상패상, 소거영조,

봉기부새, 이귀제자.   정백모정난도, 엄왕퇴사.


['조고'가 죽은 다음, 빈객과 친지들이 미처 서로의 노고를 채 위로하지도 못하고,

잔칫상의 음식이 미처 목구멍을 내려가지도 못하고, 술이 미처 입술을 적시기도 전에,

초나라 병사들이 이미 "관중"을 도륙하고 진인 '유방'이 "패상"에 날아드니,

'자영'은 흰 수레에 인수를 메고 황제의 부절과 옥새를 받들어 새로운 천자에게 넘겨주었다. 
이는 마치 '정백'이 두 손에 모정과 난도를 받들고 투항하자, 초 '장왕'이 병졸을 90 리 뒤로 물리게 한 것과 같다.] 

河決不可復壅, 魚爛不可復全.  賈誼· 司馬遷曰:“ 向使嬰有庸主之才, 僅得中佐, 山東雖亂,  

秦之地可全而有, 宗廟之祀未當絕也. ”
(하결불가복옹, 어란불가복전.  가의· 사마천왈 : " 향사영유용주지재, 근득중좌, 산동수란,

진지지가전이유, 종묘지사미당절야. "

[강물은 일단 터져버리면 다시 막을 수 없고, 물고기는 한번 썩어버리면 다시 온전하게 회생시킬 방법이 없다. 

'가의'와 '사마천'이 말하기를 : " 만약 '자영'이 평범한 군주의 재능을 지니고, 중간 정도의 재능을 지닌채 보좌할

신하만 있었더라면, 비록 "산동"에서 반란이 일어났다고 하더라도 진나라의 국토는 온전히 보전될 수 있었을 것이며,

종묘제사 또한 결코 끊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했다. ] 

秦之積衰, 天下土崩瓦解, 雖有周旦之材, 無所復陳其巧, 而以責一日之孤, 誤哉!  

俗傳秦始皇起罪惡, 胡亥極, 得其理矣.  復責小子, 云秦地可全, 所謂不通時變者也.   

紀季以酅, 春秋不名. 吾讀秦紀, 至於子嬰車裂趙高, 未嘗不健其決, 憐其志. 嬰死生之義備矣.
(진지적쇠, 천하토붕와해, 수유지단지재, 무소복진기교, 이이책일일지고, 오재 !

속전진시황기죄악, 호해극, 득기리의.  복책소자, 운진지가전, 소위불통시변자야.

기계이휴, 춘추불명. 오독진기, 지어자영거열조고, 미상불건기결, 연기지. 영사생지의비의. )

 

[진나라는 쇠퇴한지 오래되어 천하가 흙더미 무너지듯, 기왓장 부서지듯 했으니,

설사 주공 '단'과 같은 재주가 있다고 하더라도, 더이상 그의 교묘한 지혜를 펼칠 곳이 없었을 터이니,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된 '자영'을 '가의'와 사마천'이 책망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
세간에 전하기로는 '진시황'은 죄악을 일으켰고, '호해'는 죄악이 극에 이르렀다고 하니, 이 말은 매우 일리가 있다.

그런데도 오히려 '자영'을 책망하며 진나라의 국토를 보존할 수 있었다고 운운하니,

이는 이른바 시세의 변화를 통찰하지 못한 것이다. 
기국의 '기계'가 "휴읍"을 제나라에 바친 것에 대해 《춘추》에서는 그의 이름이 지적되지 않았다. 
나는 「진시황본기」를 읽다가 '자영'이 '조고'를 거열형에 처하는 단락에 이르면

그의 결단을 칭송하고 그의 의지를 가상히 여기지 않은 적이 없었다. 

'자영'은 생사의 대의를 완벽히 갖췄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

 

 

人 物 .

 

* 莊養王(장양왕)'영자초' '영이인' 제30대 진나라 왕. 제위 3년.
* 華陽太后 "초" 나라. '성교'의 난 실패후 병사.
* 趙姬(조희)  "조" 왕비→ 태후. 노애의난 실패로 귀향. 노애의 쌍둥이 아들은 척살당함. 함양으로 환궁.
* 趙政(조정) '영정' 진시황.   여불위와 조희아들. 태자.  왕(BC 246). 황제.「만리장성」150만.

 「아방궁」70만.  「병마용」. BC 259 ~ 210. 진나라 31대 왕. 최초의황제.(제위 BC 221 ~ 210). 

  지방 순행중 "사구"에서 병사.

* 呂不韋 "조"나라 .'문신후'.우상방 →상방. BC 238년 "촉"으로 유배가던중 '영정'의 강요로 자결.
* 楚姬(초희) "초"  왕비 .병사.
* 成嶠(성교) "진"  초희아들. 반란이 실패하자 자결.
* 黎姜(여강) "조" 조정의 어릴적여친.
* 趙高(조고) 조정의 환관. 진시황 유서조작 부소를 호해로 . 반란을 일으켜 호해를 살해.

  그죄로 '자영'에게 살해된다. 
* 羋靈(미령) "초"나라  昌平君  좌상방. '성교'난에 가담 후 상방.  "초"로 도주.
* 李斯(이사) "초"나라 여불위의 천거로 등용. '조정'스승. 정위. 상방.
* 嫪毐(노애) '장신후' 조태후 내궁 대총관. BC 238년 반란실패로 일족이 멸족.
* 敏代(민대) 조나라 공주 →왕비. 노애의반란으로 함양이 일시 함락되자 왕자'부소'를 낳고 투신자살.
* 阿若(아약) 초나라 공주. 황비.
* 樊於期(번오기) "진"장군.'성교'의 반란 실패후 "연"으로 도주. 
* 7국의 멸망.
    韓,점령후 "영천군"   기원전 230년.
    趙,점령후 "한단"은 불바다. '이목'장군.  기원전 228년.
    燕,   '고도(고점리)'  '전광'  '형가'의 '영정' 암살미수. (번오기의 수급을 가져옴)  기원전 222년.
    魏, '영성'이 점령.       기원전 225년.
    楚, '미령'의 도주 빌미로 침공.    기원전 223년.
    齊,  기원 221년.
* 韓非子(한비자) "한" 공자.
* 丹子(단자) "연" 태자.
* 瀛扶蘇(영부소) 조정의 장남.'민대'가 낳은 왕자. 황태자. 분서갱유의 부당함을 간언하다 유배. 자결.
* 瀛胡亥(영호해) 조정의18남. 진 2대황제.'이세황제'
* 瀛成(영성) 황족. "위"공격 총사령관.
* 李信 "연" 침공에서 태자 목을벰. "초"공격 총사령관' 작전 실패로 목이베임.
* 王賁 "위" 정벌시 부사령관.
* 阿然(아연) '이사'의딸. 부소와 결혼.
* 淳于越(순우월) : BC 213년 봉건제 부활 주장. 불만을 품은 '이사'가 역사,의술 농경에관한 이외의

  모든책을 태우자고 주청.[분서]
* 周靑臣(주청신)  복야.  군현제 주장.
* 侯生, 盧生.  BC 212년 불로장생 약을 구해오라고 명하니 이를 비판하고 도망치자

  학자 460명을 생매장.  [갱유]
* 徐福(서복)   불로장생의 약을 구하러 소년소녀 3,000명을 데리고 왜국으로 건너가 오지않았다.

  (일본왕실의 시조라는 전설).
* 張良 한고조 유방의 공신.  항우와 유방이 만난 '홍문의 회'에서는 유방의 위기를 구하였다.  

  BC 218년 "박랑사"에서 진시황 암살음모 주도.  

 

  진()의 1급 행정구()

 구분군명()치소()현 위치구분군명()치소()현 위치

1 내사직관() 西  22 대군()  
2 롱서군(西)   23 운중군()  
3 북지군()   24 하동군() 西 
4 촉군()   25 동군()  
5 파군() 26 탕군()  
6 한중군() 西  27 상군() 西 
7 남군()   28 삼천군()  
8 동정군()
( 
  29 영천군()  
9 남양군()   30 임치군()  
10 창오군()
( 
  31 낭야군()  
11 회양군()
(西)
  32 어양군()  
12 구강군() 寿  寿 33 상곡군()  怀
13 쓰촨군()
(西)
 宿 34 우북평()  
14 설군()   35 광양군(广)
15 동해군()   36 요서군(西)  
16 회계군()   37 요동군()  
17 한단군()   38 구원군()  
18 거록군(鹿) 鹿   39 남해군() 广 广
19 태원군() 西  40 계림군() 广西 
20 상당군() 西  41 민중군()  
21 안문군() 西  42 상군() 广西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