老子《道德經》(노자)

老子(道德經)

덕치/이두진 2020. 1. 9. 17:28



 

                                    老子(道德經)  

  

 

序 文


노자 《도덕경》의 성립과 그 저자에 대해 학자들은 많은 의문을 제기해 왔다. 
학자에 따라서는 노자를 춘추시대가 아닌 전국시대의 저서로 단정하고 있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한나라 초기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오늘날에 와서 이 문제의 진위를 제대로 파악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 저서가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자 사상의 핵심은 道와 무위자연 사상이다. 

노자가 태어난 곳은 초나라 고현 여향 곡인리다.  이름은 이(耳)고 자는 담(聃)이며 성은 이씨다.  
주나라 황실의 도서관에서 장서를 관리하는 직책을 맡았다. 

공자가 주나라에 가서 노자에게 禮를 묻자, 노자는 공자에게 깊은 충고를 해주었다. 


그 내용은 공자가 추구하는 道란 이미 죽은 옛사람들의 말로 껍질에 불과하다는 것과  

겉으로 자신의 명성을 드러내려고 하지 말고 자중하라는 것이었다. 
공자는 노자를 깊이를 알 수 없는 영물인 용에 비유했다.  

노자는 도덕을 수양하는 데 있어 스스로 숨기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도록 하는 데 힘썼다.
주나라에 오랫동안 살다가 주나라가 점차 쇠퇴해가는 것을 보고 마침내 떠났다. 
함곡관에 이르자 관령으로 있는 윤희가 말하기를 :

"그대는 장차 숨으려고 하니 억지로라도 나를 위해 책을 지어 주십시오."라고 하자.
이에 노자는 상· 하편의 책을 지었는데 道와 德의 의미를 5천여 자의 글을 써 주고 그곳을 떠났다.    

그가 죽은 곳은 아무도 알지 못한다. 

 

《도덕경》이 가장 널리 보급된 것은 진나라 왕필(226~249년)이 주(註)를 단 <노자도덕경>본이다.
그리고 한나라시대의 것으로 하상공(河上公)이 주를 달았다는 도덕진경(道德眞經)이 널리 알려져 있다.
현재 통용본인 왕필본은 크게 상편과 하편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상편 37장은 도경(道經)으로  

주로 형이상학적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하편 44장은 덕경(德經)으로 인간 윤리에 관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러나 도경과 덕경이 확연하게 분리된 것이 아니고 상. 하편에 다 함께 총 81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체 한자수가 5000자로 되어 있다. 

 


BC 4세기부터 한나라 초기에 이르기까지의 도가사상을 모아 기록한 것으로 보여지며

춘추전국시대에 원본 《노자》가 있었던 모양이나, 현행본의 성립은 한나라 초기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노자 사상의 핵심은 道와 무위자연 사상이 형이상적인 道의 존재를 설파하는 데 있고,  

道가 일면적· 상대적인 도에 불과함을 논파하고, 항구 불변적이고 절대적인 새로운 道를 제창한다.  

노자라는 책은 한 사람의 단일한 저작이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편집된 책이라는 주장도 있다.
따라서 노자 책의 형성시기도 수많은 견해들이 있어왔는데, 늦어도 춘추말기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늦어도 노자에 등장하는 개념어들의 분석을 통해 어떤 이들은 장자(莊子)보다 늦게 형성되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런  과정에서 최근 20세기말에 새로운 <노자>판본들이 발견되었다.   

즉 <백서본>과 <곽점본(죽간본, 초간본)>이 그것이다.


이 판본들의 발견으로, 우선 <백서본>은 첫째 현재 통행본 (왕필본) 이전의 <노자>는 '도덕경'이 아니라,

'덕도경'의 형식이었을 수도 있으며,  둘째 현재와 같은 81장으로 분장되지 않았으며,
셋째 현재 통행본의 몇몇 낱말은 황제나 조상의 이름을 직접 쓰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수정되었으며, 
등장하는 수많은 허사(也)로 판단할 때 늦어도 전국시대 중기에 현재 통행본과 같은 내용과 분량의 <노자>가

분명히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곽점본(죽간본)은 첫째 늦어도 공자 이전 혹은 동시대에 <노자>의 원저자가 있었으며,
둘째 이 원본 <노자>는 소박하지만 통행본이 지니고 있는 道에 대한 형이상학적 개념을 대로 묘사하고 있었으나

다른 학파와의 대결의식은 없었다
셋째 <백서본>과 비교해서 판단해 볼 때, 백가쟁명의 전국시대에 춘추시대의 원본 <노자>가 가필하거나  

혹은 주요 용어를 바꾸어 다른 학파를 비판하는 체계로 개작된 판본이 출현했는데,  

이것이 바로 현행 분량의 <백서본>과 통행본의 저본이 되었다는 것이다.
백서본의 형성시기는 황노학이 한창 번성하던 시절이었으므로

《노자도덕경》이 가장 중요한 경전이었을 것이고, 일종의 국가 경영지침서 역활을 하였을 것이다. 

노자의 道는 천지보다도 앞서고, 만물을 생성하는 근원적 존재이며,  

천지간의 모든 현상의 배후에서 이를 성립시키는 이법이다.
다시 말하면, 대자연의 영위를 지탱하게 하는 것이 道이며, 그 道의 작용을 德이라 하였다. 
노자의 논법에는, ‘道는 언제나 무위하면서도 무위함이 아니다’ ‘대공(大功)은 졸(拙)함과 같다’  

‘그 몸을 뒤로 하여 몸을 앞세운다’와 같은 역설이 많은 점이 두드러진다.



 

                           上 篇 ( 道 經 )  .

 

 

 第一章.   ( 말로 표현할 수 있는 道는 불변의 道가 아니다. )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無名天地之始;有名萬物之母.  故常無欲, 以觀其妙;

 常有欲, 以觀其徼.  此兩者, 同出而異名,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무명천지지시 ; 유명만물지모.  고상무욕, 이관기묘 ;  

 상유욕, 이관기요.  차량자, 동출이이명,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
              

 [道라 말할 수 있는 道는 불변의 道가 아니다.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언제나 불변의 이름이 아니다. 

 이름이 없는 것은 천지의 시원이고, 이름이 있는 것은 만물의 어머니이다. 

 그러므로 항상 욕심 없이 미묘한 본체를 살피고 항상 욕심이 있는 것으로 그 순환하는 현상을 살핀다. 
 이 둘은 같이 나와 이름을 달리하며 둘 다 현묘한 것이다.  

 신비하고도 신비하여 모든 오묘한 이치가 나오는 문인 것이다. ]


노자는 道는 무한하므로 인간의 유한한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고 이름지을 수도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것은 만물의 본체로서 현상의 배후에 스며 있는 어떤 불가사의한 힘이다. 
 道는 볼 수도, 들을 수도, 만질 수도 없으므로 인간의 감각기관으로는 지각이 불가능하다. 

 그것은 오직 인간의 직관과 신비한 체험에 의해 체득되는 것이다.
 道는 천지 만물을 생성, 발전, 소멸시키는 위대한 힘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절대적이요, 무차별적 세계이다.
 의도적인 노력 없이 저절로 그렇게 되도록 한다는 무위자연이란 표현은 道의 작용을 잘 설명하고 있다.
 道가 만물을 생성하게 하는 것은 창조적이라기 보다는 유출적인 현상이다.
 즉 우주 만물은 道에서 나와서 道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그 속에서는 자연과 인간, 선과 악, 미와 추, 너와 나의 이분법적 발상은 지양되고 있는 것이다.
 道의 세계를 직관함으로써 우리는 모든 대립과 갈등의 상대적 가치판단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것이다. 〕   

 

 

 第二章.  ( 聖人은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다. )

             

 天下皆知美之為美, 斯惡已.  皆知善之為善, 斯不善已.   

 (천하개지미지위미, 사악이.  개지선지위선, 사불선이.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是以聖人處無為之事, 行不言之教;萬物作焉而不辭, 生而不有.   

 (시이성인처무위지사, 행불언지교 ; 만물작언이불사, 생이불유. 

 為而不恃, 功成而弗居.  夫唯弗居, 是以不去.
 (위이부시, 공성이불거.  부유불거, 시이불거. )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아름답다 하니 아름다운 줄 알지만 이는 추한 것이 있기 때문이고, 
 모두 선하다고 하니 선한 줄 알지만 이는 선하지 않은 것이 있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서로 상대적으로 낳은 것이고,  

 어렵고 쉬운 것은 서로 상대적으로 이루어 지며, 길고 짧은 것은 형태를 드러내어 서로 비교되기 때문이며, 

 높고 낮은 것이 서로 기울어지고, 음과 성은 서로가 있어야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앞이 있어야 뒤가 따르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작위함이 없이 일을 처리하고, 말하지 않고 가르침을 행해 준다 ;
 천지 자연은 만물을 활동하도록 하고도 노고를 사양하지 아니하며,  

 만물을 생육하도록 하고도 소유하지 않도록 한다.
 행하고도 자랑하지 않고, 공을 이루어도 자기의 공로를 자처하지 않도록 해 준다.

 그러기 때문에 공은 그에게서 떠나가지 않도록 해 준다. ] 

 

〔세상 사람들은 겉모양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을 아름다움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모든 사람들은 겉으로 착하게 보이는 것을 선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것을 반드시 착하다고 볼 수 없다. 

 그러므로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상대적으로 일어나고, 어려운 것과 쉬운 것은 서로 상대적으로 이루어지며,
 긴 것과 짧은 것은 상대적으로 비교가 되고, 높은 것과 낮은 것은 서로 상대적으로 기울어지 것이 보이며,
 나오는 소리와 들리는 소리는 서로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앞과 뒤는 상대적으로 따라 다니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무위적으로 일을 하면서도 말없는 행동으로 가르침을 펼치는 것이다 ;
 자연은 천지 만물의 온갖 작용이 어떻게 운행되고 있는지는 말로 설명할 수 없으며,  

 자연은 온갖 만물을 낳으면서도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게 한다.
 자연은 온갖 만물을 보살펴 주면서도 그 베푼 결과에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자연은 결실을 맺더라도 그 공의 결과에 머물지 않는다.
 이렇듯 자연의 무위적인 흐름처럼 대체로 성인은 어느 곳에든 머물지 않기 때문에 

 ​그 무엇도 거두어 들일 것이 없다. 〕 

            
         

​ 第三章.  ( 무위로 실천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일이 없다. ) 

             

 不尚賢, 使民不爭;不貴難得之貨, 使民不為盜;不見可欲, 使民心不亂.
 (불상현, 사민부쟁. 불귀난득지화, 사민불위도 ; 불견가욕, 사민심불란.
 是以聖人之治,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強其骨.   

 (시이성인지치, 허기심, 실기복, 약기지, 강기골.  

 常使民無知無欲.  使夫1知者不敢為也.  為無為, 則無不治.
 (상사민무지무욕.  사부지자불감위야.  위무위, 즉무불치. )
 ( 1. 夫 : 原錯為「天」.  據河上公本、《馬王堆老子乙》改. ) 

             

 [현능한 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다투고 경쟁하는 일이 없게 되고 ;
 얻기 어려운 재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둑질하는 일이 없게 되고;
 무엇이든 해보겠다는 야욕을 보여 주지 않으면 백성들의 마음이 어지러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백성들의 마음에 아무런 욕심이 없게 하고 배를 든든하도록 채워 주며,
 밖으로 향하는 마음의 움직임을 약하게 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골격을 튼튼하게 해 준다. 
 항상 백성들은 알고자 하는 것도 없고 욕심도 없다.   

 안다고 하는 자라 할지라도 감히 함부로 나서지 못할 것이다. 
 무위의 다스림으로 다스린다면 다스려지지 않는 일이 없을 것이다. ]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특정한 사상이념이나 종교등을 숭상하지 않는다면,  

 백성들 간에 파벌이 갈라져 발생하는 다툼은 없을 것이다 ;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귀한 재물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백성들도 물욕에 눈이 어두워 도둑질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큰일을 도모하려는 계획을 보여 주지 않는다면, 백성들의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의 다스림은 자신의 탐욕스러운 마음을 깨끗이 비워서 나라의 경제를 풍족하게 가꾸며,
 큰일을 도모하려는 의지를 스스로 억제한다면 국가기강과 국력은 튼튼하게 다져질 것이다.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알려고 하는것도, 바라는 것도 없을 것이다.
 대체로 백성들이 순수해지면 조금 안다고 하는 자라도 감히 함부로 나서서 수작을 부리지 못할 것이다.
 무위적인 다스림을 본보기로 삼는다면 이세상에 다스리지 못할 것이 없을 것이다. 〕 

 

 

 第四章.  ( 道는 우주보다 먼저 존재했다. )

             

 道沖而用之或不盈.  淵兮似萬物之宗.  挫其銳, 解其紛, 和其光, 同其塵.  

 (도충이용지혹불영.  연혜사만물지종.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湛兮似或存.  吾不知誰之子, 象帝之先.
 (담혜사혹존.  오불지수지자, 상제지선. ) 

             

 [道는 비어 있으나 아무리 사용해도 늘 가득 차 있고 넘치지 않도록 해 준다. 

 깊고 넓어서 만물의 근본인 것 같다.  날카로운 것을 무디게 하고, 복잡한 것을 풀며,   

 빛을 부드럽게 하여, 티끌에도 뒤섞이건만 맑고 고요함이 늘 그대로 있는 것 같다.
 나는 그 道가 누구의 자식인지 알 수 없으나, 아마 우주를 주재하는 상제보다도 먼저 있었던 것 같다. ] 

              

〔道의 참모습은 맑고 깊어서 그 존재를 인식하기란 쉽지 않다.  

 그것은 초월적 내재 자로서 만물을 넘어서 그 안에 있는 그 무엇이다.
 道는 모든 물건이 들어 갈 수 있는 빈 용기이다.   

 물건의 근원을 소급하면 그것이 다 道에서 흘러 나옴(유출)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조화의 근원으로 극에 달하면 원점으로 되돌아간다(극즉반).
 道의 움직임을 지각하지 못하며 신비스럽기만 하다.   

 그것을 우리는 나온 곳을 알 수 없는 불가사의한 실체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러므로 道는 천지를 주재하는 상제보다 먼저 있었다. 〕 

 

 

 第五章.   ( 텅빔과 움직임. )

             

 天地不仁, 以萬物為芻狗;聖人不仁, 以百姓為芻狗.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천지지간, 기유탁약호 ?   

 虛而不屈, 動而愈出.  多言數窮, 不如守中.
 (허이불굴, 동이유출.  다언수궁, 불여수중. ) 

             

 [천지는 어질지 아니하여 만물을 짚으로 엮은 강아지를 보듯이 무심하게 바라 볼 뿐이다. 
 聖人도 어질지 아니하면 백성들을 짚으로 만든 강아지와 같이 여기게 될 것이다.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아서 비어 있으니 힘이 끝이 없고 움직일수록 힘이 더욱 커질 것이다.
 말이 많으면 이치에 곤궁하게 되니 가만히 있는 것만 못하다. ]  

              

〔자연은 보편적이어서, 마치 사람들이 짚으로 엮은 개를 보듯이 만물을 무관심하게 대한다.
 聖人도 어질지 아니하면, 백성들을 짚으로 만든 강아지 대하듯 간섭하여 말하지 않는다.
 천지간 자연의 움직임은, 마치 풀무의 바람에 따라 움직이는 것과 같다.
 텅빈 공간 속은 전혀 변함이 없는데, 움직임은 고요함으로부터 점점 더 빠져 나온다.
 말을 많이 하면 궁지에 몰려 본래의 내 모습을 잃어 버리게 되니, 침묵을 지키고 있는것 만 못하다. 〕 

 

 

 第六章.  ( 道는 만물의 근본이다. )

             

 谷神不死, 是謂玄牝.  玄牝之門, 是謂天地根.  綿綿若存, 用之不勤.
 (곡신불사, 시위현빈.  현빈지문, 시위천지근.  면면약존, 용지불근. ) 

             

 [道는 텅 빈 산골짜기의 신과 같고 그 신은 결코 죽지 않으며, 이를 일러 현빈이라 한다.
 현빈의 문은 천지의 근본이다.  그 뿌리는 끊임없이 존재하는 것 같고  

 천지만물이 아무리 써도 지쳐 없어지지 않는다. ]
             
〔노자는 道를 골짜기의 신으로 신격화하여 그것은 항상 비어 있고 아래에 있으므로  

 모든 물이 모여들 수 있고 또 흘러나올 수 있는 곳이다. 
 이것이 마치 道가 만물을 유출시키고 있는 것과 같다.  현빈은 신비한 암컷이란 뜻이다.
 인류는 농경 생활을 시작하고부터 풍년과 다수확의 상징으로 여성의 다산 능력을 칭송하게 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 가운데 여성의 풍만한 몸매를 표현한 토용의 숭배 사상도 이것과 연관되어 있다.
 노자 또한 만물을 생성하는 道의 위대한 작용을 모성의 생식력에 비유하고 있다. 〕 

 

 

 第七章.  ( 사심을 버리고 자신을 완성시켜 나간다. )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者, 以其不自生, 故能長生.   

 (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이기불자생, 고능장생.  

 是以聖人後其身而身先;外其身而身存.  非以其無私耶? 故能成其私.
 (시이성인후기신이신선 ; 외기신이신존.  비이기무사야 ?  고능성기사. ) 

 

 [하늘은 영원하고 땅은 오래다.  천지가 영원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자신이 살려고 애쓰지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능히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다.  聖人은 자신을 뒤에 머물게 함으로 앞서고 ;  

 자신의 이익을 떠나 잊으므로 실은 자신이 거기에 존재하도록 될 것이다.
 그것은 사사로운 욕심이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   

 그러므로 사심이 없기 때문에 자신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 ] 

              

〔하늘은 늘 그러하고 땅은 오랫동안 변함이 없다.  이처럼 천지가 늘 변함없이 오래가는 까닭은  

 '나' 라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그러므로 늘 변함없이 있을 수가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聖人은 그 자신이 뒤쪽으로 물러난다는 것은 내면적으로는 가장 앞서서 이전에 있는 원초근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며 ; 그 자신을 외부적 객관 대상으로 지켜 보는 것은 내면의 주시자로서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곧 사사로이 나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   

 이렇게 하면 개인적인 나를 완성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즉 무아로서 무위적인 삶을 사는 것이다. 〕 

 

 

 第八章.  ( 물처럼 말없이 남을 이롭게하고, 고요하게 있으며, 마음을 비워서, 다투지 않아야 한다. )

              

 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상선약수.  수선이만물이부쟁, 처중인지소오, 고기어도.   

 居善地, 心善淵, 與善仁, 言善信, 正善治, 事善能, 動善時.  夫唯不爭, 故無尤.
 (거선지, 심선연, 여선인, 언선신, 정선치, 사선능, 동선시.  부유부쟁, 고무우. ) 

             

 [최상의 善은 물과 같은 것이다. 물은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다투는 일이 없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위치해 있어, 그러므로 물은 道에 거의 가까운 것이다.   

 사는 곳으로는 땅 위가 좋고, 마음은 못처럼 깊은 것이 좋고, 사귀는 데는 어진 것을 좋다고 하고,  

 말은 믿음이 있어야 좋고, 정치나 법률은 세상이 잘 다스려지는 것이 좋고, 
 일을 처리하는 데는 능숙한 것이 좋고, 행동은 적당한 시기를 아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다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잘못됨이 없는 것이다.  물은 이에 제일 가깝다. ] 

              

〔가장 순수한 善은 물과 같다.  물의 훌륭한 작용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며,
 물은 뭇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무르기에 도인에 거의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도인은 속세에 머물러 살면서도 깊고 고요한 마음을 지니고 있으므로   

 저절로 사람들에게 어진 사랑이 베풀어 지는 것이며,
 도인은 성실하고 믿음성 있는 말만 하므로 나라의 다스림이 저절로 올바르게 세워지는 것이며,
 일이 저절로 잘 될 수가 있는 것은 도인이 때를 잘 맞추어 움직이기 때문이며,
 대체로 聖人은 오로지 다투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아무런 허물도 없는 것이다. 〕
              

 

 第九章.  ( 공을 이루었으면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 

 

 持而盈之, 不如其已;揣而銳之, 不可長保.   

 (지이영지, 불여기이 ; 추이예지, 불가장보.   

 金玉滿堂, 莫之能守;富貴而驕, 自遺其咎.  功遂身退天之道.
 (금옥만당, 막지능수 ; 부귀이교, 자유기구.  공수신퇴천지도. ) 

             

 [가득 차 있는 상태를 무리해서 계속 채우려 하면 이를 그만두는 것보다 못하며 ;  

 불리고 두들겨서 날카롭게 만든 칼은 오래 보전하지 못한다.
 금은 보화를 집안에 가득 쌓아 둔다고 해도 이를 지키지 못하며 ;  

 부귀하여 교만해지면 스스로 그 허물을 남긴다. 공을 이루었으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다. ] 

              

〔충분히 지니고 있으면서도 가득 채우려는 것은 그만두는 것 만 못하며 ;  

 인위적으로 약삭빠르게 얻은 체험이나 능력은 오래 유지될 수가 없다.
 외부적인 재물이나 정신적인 체험, 능력, 지식은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는 없어질 것이며 ;
 부귀하여 교만해진 자신의 겉모습에 현혹되면 스스로 자기의 허물을 자각하지 못한다.
 공을 이루고 결실을 얻었으면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이다. 〕 


 

 第十章.  ( 낳고 기르되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

             

 載營魄抱一, 能無離乎?  專氣致柔, 能嬰兒乎?  滌除玄覽, 能無疵乎?  愛民治國, 能無知乎?
 (재영백포일, 능무리호 ?  전기치유, 능영아호 ?  척제현람, 능무자호 ?  애민치국, 능무지호 ?
 天門開闔, 能為雌乎?  明白四達, 能無爲乎?   

 (천문개합, 능무자호 ?  명백사달, 능무위호 ? 

 生之· 畜之, 生而不有, 為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생지· 축지,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시위현덕. ) 

 

 [하늘의 기운과 땅의 기운을 한 몸에 안고 떨어지지 아니한다면. 능히 분리됨이 없을 수 있겠는가 ? 
 정기를 오로지하고 유연한 자세를 이루면 능히 갓난 아기처럼 될 수 있겠는가 ?   

 마음속을 깨끗이 씻어 능히 흠이 없게 할 수 있겠는가 ?
 백성을 아끼고 나라를 다스림에 능히 지혜롭지 아니할 수 있겠는가 ?  

 하늘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데 능히 여성으로 머물 수 있겠는가 ? 
 밝고 또 밝아 사방을 비추면서 능히 무지할 수 있겠는가 ?  길은 생겨나고 德은 쌓아가니,  

 낳으면서도 낳은 것을 가지지 아니하고,  지으면서도 지은 것에 기대지 아니하고,

 자라게 하면서도 자란 것을 지배하지 아니하면, 이를 그윽한 德스러움이라고 한다. ] 

              

〔우주적 보편의식 안에 잠기어 세상과 일체가 된 상태에서 그곳으로부터 벗어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백성의 기운을 오로지 부드럽게하여 어린아이처럼 고요한 무지상태로 있을 수가 있겠는가 ?
 백성을 돌보고 나라를 다스리는 입장에 놓여 진다면,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일할 수가 있겠는가 ?
 지혜의 눈이 열려서 신통력이 나타나도 그것에 이끌려 약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
 마음이 깨끗해지고 의식범위가 넓어져 지식이 사방으로 통달하여도

 고집을 부리지 않고 무위로써 지낼 수가 있겠는가 ?
 의식은 온갖 만물을 낳고 기르는데 만물을 낳으면서도 소유하지 아니하며,  

 만물을 보살피면서도 그 베품의 결과를 기대하지 않으며, 만물의 근원이면서도 지배하려고 하지 아니하니, 

 이것을 일컬어 천지의 깊고 묘한 도리라고 하는 것이다. 〕 

 

 

 第十一章.  ( 有의 유익함은 無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

               

 三十輻, 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  埏埴以為器, 當其無, 有器之用.  

 (삼십폭, 공일곡, 당기무, 유거지용.  연식이위기. 당기무, 유기지용. 

 鑿戶牖以為室, 當其無, 有室之用.  故有之以為利, 無之以為用.
 (착호유이위실, 당기무, 유실지용.  고유지이위이. 무지이위용. ) 

 

 [서른개의 바큇살이 한 바퀴통에 꽂혀 있으나, 바퀴통 복판이 비어 있기 때문에 수레의 효용이 있는 것이다.
 찰흙을 빚어서 옹기그릇을 만들며, 그 한가운데를 비게 해야 그릇으로서의 쓸모가 있다. 
 문과 창을 뚫어서 방을 만들지만, 그 방안이 비어 있어야 방으로서의 쓸모가 있다. 
 그러므로 모양이 있는 것이(有) 쓸모가 있는 것은, 모양이 없는 것이(無) 그 뒷받침을 하기 때문이다. ] 

                

〔시간의 흐름은 의식중심부의 시간 없음(無)으로 인해서 시간이 흐를 수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육체를 가지고 살아 나갈 수 있는 것은 육체속에 깃든 無로 인해서 살아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따로 떨어져 고립된 개인(有)은 텅빔의 창문(無)을 뚫어서 전체의 텅빔과 일체가 되어야  

 전인적인 인간으로써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시간의 흐름도 없고, 모양도 없고 크기도 없고, 속성도 없는 상태를 無라고 하며,
 時, 空, 人 또는 天, 地, 人은 모두 無의 작용에 의해서 나타난다. 〕
    


 第十二章.  ( 배를 채울 뿐 겉치레는 하지 않는다. ) 

 

 五色令人目盲;五音令人耳聾;五味令人口爽;馳騁田獵, 令人心發狂;難得之貨, 令人行妨. 

 (오색령인목맹 ; 오음령인이롱 ; 오미령인구상 ; 치빙전엽, 영인심발광 ; 난득지화, 영인행방.

 是以聖人為腹不為目, 故去彼取此.
 (시이성인위복불위목, 고거피취차. ) 

               

 [오색(청, 황, 적, 백, 흑)의 찬란한 빛은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 

 오음(궁, 상, 각, 치, 우)의 아름다운 소리는 사람의 귀를 먹게 하고 ; 
 오미(신맛, 단맛, 쓴맛, 매운맛, 짠맛)의 좋은 맛은 사람의 입을 상하게 하며 ;  

 말을 타고 달리며 짐승을 사냥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고 ;
 얻기 어려운 재물은 사람의 행실을 나쁘게 만든다.   

 그런 까닭에 성인은 배만 채울 뿐 눈을 즐겁게 하지 않으며, 그리하여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 ] 

                

〔외면에 나타난 현란한 색채와 아름다운 모양에만 몰입하게 되면 자기내면을 자각하는 마음의 눈은 멀며 ;
 온갖 아름다운 음악소리는 사람에게 내면으로 향한 귀를 먹게 하며 ; 

 온갖 맛있는 음식만을 선호하면 미각의 예민함이 둔화되며 ; 
 모든 취미생활은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고, 그 재미에 푹 빠져서 자신을 잃어 버릴 정도로 미치게 하며 ;
 귀한 재화에 대한 탐욕은 무위적인 삶의 길을 가기 위한 올바른 행실을 방해한다.
 그런 까닭에 聖人은 의식내면을 지향하지 외부의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지 않으므로,  

 감각적인 쾌락을 버리고 의식내면을 취한다. 〕 

 

 

  第十三章.  ( 육체와 동일시된 나를 버리고 세상과 하나가 되라. )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何謂寵辱若驚 ?  寵為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是謂寵辱若驚.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하위총욕약경 ?  총위하, 득지약경, 실지약경, 시위총욕약경. 

 何謂貴大患若身?  吾所以有大患者, 為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하위귀대환약신 ?  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급오무신, 오유하환 ? 

 故貴以身為天下, 若可寄天下;愛以身為天下, 若可託天下.
 (고귀이신위천하, 약가기천하 ; 애이신위천하, 약가탁천하. ) 

               

 [총애와 수모도 놀라는 일을 당하는 것과 같이하고,  

 큰 근심을 귀하게 여기기를 자기 몸을 귀하게 여기는 것과 같이 한다.
 어찌해야 총애와 수모에 놀라는 것 같다고 하는가 ?  이것은 사랑 받는 것은 위에서 아래로 행하여지므로,
 얻어도 잃어도 조심하며 놀랍게 여기라는 것이니, 이래서 총애와 수모에 놀라는 것 같다고 하는 것이다. 
 어찌해야  큰 근심을 귀하게 여기기를 자기  몸같이 한다고 하는가 ?  

 이것은 나에게 큰 근심이 있음은 나의 몸이 있기 때문이니, 내 몸이 없으면 내게 어찌 근심이 있겠는가 ?  

 그러므로 내 몸을 소중히 여기듯이 천하를 소중히 여긴다면 천하를 맡길 수 있고 ;
 내 몸을 사랑하듯이 천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천하를 부탁할 수 있는 것이다. ] 

 

 [사람들은 총애와 수모를 당하면 놀라서 마음에 충격을 받는것 같은데,  
 이러한 마음에 나타난 대부분의 근심과 고뇌를 마치 자기자신처럼 동일시하여 소중하게 여기는 것 같다.
 어찌하여 사람들은 총애나 수모를 당하면 놀래서 마음의 충격을 받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일까 ?
 총애를 받는 것은 언젠가는 시간이 지나면 잃을 수 밖에 없어서, 상대적으로 아래로 낮아진다는 것이며, 
 얻는다 해도 언젠가는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마음에 충격을 받는 것과 같고,
 잃었을 때도 지위가 낮아지므로 실망감 때문에 마음에 충격을 받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총애와 수모를 접할 때에는 마음에 충격을 받는 듯 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어찌하여 사람들은 대부분의 고뇌를 자기자신처럼 소중하게 여긴다고 말하는 것인가 ?
 내가 큰 고뇌를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는 까닭은 육체와 동일시된 자신을 나로 여기기 때문이며,
 내가 육체가 없는 상태에 이른다면 나에게 어찌 근심이 있을 수 있겠는가 ?
 그러므로 자신을 귀하게 여기는 것처럼 세상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마치 자기가 세상을 떠맡은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겠다 ; 자신을 아끼는 것처럼 세상을 사랑한다면  

 마치 자신이 세상에 떠맡겨져 하나가 된 것과 같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第十四章.  ( 道는 보고, 듣고, 만질 수 없는 것이다. )

               

 視之不見, 名曰夷;聽之不聞, 名曰希;搏之不得, 名曰微.  此三者不可致詰, 故混而為一.         

 (시지불견, 명왈이 ; 청지불문, 명왈희 ; 박지불득, 명왈미.  차삼자불가치힐, 고혼이위일.

 其上不皦, 其下不昧.  繩繩不可名, 復歸於無物.   是謂無狀之狀, 無物之象, 是謂惚恍.   

 (기상불교, 기하불매.  승승불가명, 복귀어무물.  시위무상지상, 무물지상, 시위홀황. 

 迎之不見其首, 隨之不見其後.  執古之道, 以御今之有.  能知古始, 是謂道紀.
 (영지불견기수, 수지불견기후.  집고지도, 이어금지유.  능지고시, 시위도기. ) 

 

 [눈을 크게 뜨고 살펴 보아도 평평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이(夷)라고 하고 ; 
 귀를 기울인 다음에 들으려 해도 아무 것도 들리지 않기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희(希)라고 하고 ; 
 손으로 잡으려 해도 아무 것도 잡히지 않기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미(微)라고 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 말로는 道의 정체를 제대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 세 가지 말을 섞어서 하나가 된다. 그 위 부분은 분명하지 않고, 그 아랫 부분도 어둡지 않다.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이름 붙일 수가 없고, 물질 세계를 초월한 곳으로 되돌아가 있다.
 이것을 모양 없는 모양, 물질의 차원을 초월한 형상이라 하며, 이를 흐릿하고 멍한 정신상태라고 한다. 

 앞에서 본다고 그 머리가 보일 리 없고 뒤에서 본다고 그 꼬리가 보일 리 없는 것이다.  

 태고 때부터 진리를 꼭 잡고 삼라만상을 주재하고 있다. 
 역사와 시간의 첫 근원을 알 수 있는 것, 그것을 도의 본질이라고 한다. ] 

                

〔내면을 향해 이것을 보려 해도 보이지 않으며 평평하여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이름을 이(夷)라고 부르며 ; 
 내면의 귀로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으며 뚜렷하지 않고 어슴푸레하며 때문에 이름을 희(希)라고 부르며 ;
 마음의 느낌으로 이것을 찾으려 해도 얻을 수가 없으며 너무나 미세하기 때문에 이름을 미(微)라고 부른다.
 의식적으로 보는것, 듣는 것, 체험하는 것은 이치를 따져 물을 수가 없는데,    

 왜냐하면 모두가 뒤섞여진 일체이기 때문이다.
 그것의 위에 있는 마음은 무지(無知)이며, 그것의 밑에 있는 본체는 진지(眞知)이다.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돌아가므로 무엇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가 없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되돌아 간다.
 이와 같이 순수한 존재의식 상태는 아무런 경계와 형상이 없는 모양이며,  

 아무것도 없는 상태를 일러 아득하고 멍한 정신상태라 말한다.
 그 존재의식의 빈 상태에 처음 들어서면 그 시초가 어딘지 알 수 없으며,  

 그 안에 들어가서도 존재의식을 분별하지 못해 처음과 끝이 없어진다.
 태고적부터 지금 현재 있는 그대로 머물러 집중함으로써 태초의 시간의 근원을 깨달을 수가 있으니,  

 이를 일러 道의 실마리라고 한다. 〕 


 
 第十五章.  ( 참된 사람은 가득 채우려 하지 않는다. ) 

                

 古之善為士者, 微妙玄通, 深不可識.  夫唯不可識, 故強為之容.
 (고지선위사자, 미묘현통, 심불가식.  부유불가식, 고강위지용.
 豫兮若冬涉川;猶兮若畏四鄰;儼兮其若容;渙兮若冰之將釋;敦兮其若樸; 

 (예혜약동섭천 ; 유혜약외사린 ; 엄혜기약용 ; 환혜약빙지장석 ; 돈혜기약박 ;

 曠兮其若谷;混兮其若濁;孰能濁以靜之徐清?  孰能安以久動之徐生?   

 (광혜기약곡 ; 혼혜기약탁 ; 숙능탁이정지서청 ?  숙능안이동지서생 ? 
 保此道者, 不欲盈.  夫唯不盈, 故能蔽不新成.
 (보차도자, 불욕영.  부유불영, 고능폐불신성. ) 

                

 [예로부터 道를 닦은 훌륭한 선비는 미묘하고 현통하여 그 깊이를 헤아려 알 수가 없었다. 
 대체로 깊이를 헤아려 알 수 없기에 모습을 억지로 형용해 보았다.   

 그 신중한 모습은 추운 겨울에 찬 냇물을 건너가는 것과 같고 ;
 조심하는 모습은 주위를 둘러싼 적을 두려워하는 것과 같고 ;   

 엄숙해서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은 손님의 당당한 모습과 같고 ;
 부드럽게 막힘이 없는 것은 봄바람에 녹는 어름과 같고 ; 

 꾸밈이 없는 것은 마치 산에서 갓 베어낸 통나무와 같고 ;
 구애받지 않는 마음은 텅 비어 있는 골짜기와 같고 ;  

 세상과 한데 섞여 있는 모습은 마치 흐려진 물과도 같고 ;
 흐린 물을 흐린 채 그대로 두어 서서히 가라앉아 맑아지게 하는 그런 무위의 일을 그 누가 하겠는가 ? 
 산골짜기처럼 조용한 가운데 움직임이 있어 풀과 나무가 서서히 자라고 있듯이, 그런 무위의 것을 누가 하겠는가 ? 
 이 무위의 도를 몸에 품고 있는 사람은 보름달처럼 가득 차기를 바라지 않는다. 
 대체로 그렇게 차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옷이 낡으면 새 것을 만들어 입듯이  변화 속에 다함이 없는 것이다. ] 

                

〔가장 오래된 내면의 본바탕에 이른 도인은 미세하고 신묘한 기운이 온 우주에 두루 미쳐

 그 심오한 내면속을 헤아리기는 어렵다.
 대체로 절대의 본체를 깨달은 도인의 내면은 미묘하고 깊어서 드러나지 않아 알 수가 없겠지만 

 억지로 그 모양을 표현해 본다.
 깊은 삼매로부터 나오기 직전에는, 머뭇거리는 것이 마치 겨울철에 개울을 건너는 듯 망서리는 것 같고 ;
 삼매로부터 나오는 순간에는,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마치 사방의 적을 두려워하는 것 같고 ; 
 삼매로부터 나온 직후에는, 근엄하기가 마치 손님처럼 무게가 있어 보이는 것 같고 ;
 의식이 세상으로 펼쳐지니, 흩어져 퍼지는 것이 마치 얼음이 녹아서 풀어지는 것 같고 ;
 마음이 있는 그대로 거짓없이 반응하니, 꾸밈없이 순박하기가 마치 산에서 갓 베어낸 통나무처럼 도탑고 ;
 '나' 라는 자존심을 버리니, 텅 비워진 것이 마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낮은 골짜기와도 같고 ;
 마음은 하는 일마다 그것과 혼연일체가 되니, 뒤섞여 있는 것이 마치 혼탁해 보이는 것과 같다.
 누가 이 혼탁한 세속생활 속에서 고요함과 더불어 있는 것을 능숙하게 익혀서

 세속생활의 혼탁함을 서서히 맑아지게 할 수 있겠는가 ?
 누가 이 고요함에 안정된 수행생활 속에서 지속적인 활동을 더불어 하는 것을 능숙하게 해서  

 고요함에 경직된 의식이 서서히 생기를 얻도록 할 수 있겠는가 ?
 이 道를 지닌 사람은 가득 채우려 하지 않는다.  대체로 오로지 가득 채우려 하지 않으므로, 
 이것으로 충분히 갈음할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새롭게 이룰 것이 없다. 〕  

 

 

  第十六章.  ( 자신 본래의 참모습으로 돌아가라. ) 

 

 致虛極, 守靜篤.  萬物並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치허극, 수정독.  만물병작, 오이관부.  부물운운, 각복귀기근.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不知常, 妄作凶.  

 (귀근왈정, 시위복명.  복명왈상, 지상왈명.  불지상, 망작흉. 
 知常容, 容乃公, 公乃王, 王乃天, 天乃道, 道乃久, 沒身不殆. 

 (지상용, 용내공, 공내왕, 왕내천. 천내도, 도내구, 몰신불태. ) 

                

 [허를 이루기를 지극히 하고, 정을 지키기를 두터이 한다.  만물이 함께 일어나는데,  

 나는 그것이 도에 복귀함을 안다.  대체로 만물은 무성하지만 각각 그 근원에 돌아간다.   

 근원에 돌아가는 것을 정이라고 하고, 이것을 명(命)에 돌아간다고 한다.
 명에 돌아가는 것을 상이라고 하고, 상을 아는 것을 명(明)이라  한다.   

 상을 알지 못하면 망령되어 화를 자초한다.
 상을 알면 관용하고, 관용하면 곧 공평해지며, 공평하면 왕이고, 왕이 되면 곧 하늘이고, 하늘이 되면 곧 道이다. 

 ​道가 되면 곧 영원하니, 몸이 끝날 때까지도 위태롭지 않다. ] 

                

〔마음이 텅 빈 극치에 이르고 참답게 무위의 고요함을 지키게 되면,  

 만물의 온갖 움직임이 다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대체로 만물이 갖가지 모습으로 움직인 다음에 있지만 저마다 자신의 뿌리로 돌아가고 있다. 
 뿌리로 돌아가 있는 것을 고요, 무위의 고요함(靜)이라 말하고, 이것을 천명으로  돌아가는 것 즉 복명이라 한다.
 천명으로 돌아가는 것을 영구 불변의 법칙이라고 말하며,  

 이 불변의 법칙에 통달하는 것을 명찰, 즉 절대의 지혜이다. 
 이 영구 불변의 법칙을 알지 못하고 경거망동하면  불행을 불러들이게 되는 것이다. 
 이  영원불변의 이법을 깨달으면 누구에게나 너그럽게 되고, 너그럽게 되면 공평무사하게 되며, 

 공평무사하게 되면 왕자의 德을 갖추게 되고, 왕자의 德을 갖추면 하늘과 같이 광대해지며, 

 하늘처럼 넓고 커지면 무위의 道와 하나가 되고, 무위의 道와 하나가 되면 영원불멸이 될 것이다.  

 이 영원한 道를 간직하면 죽을 때까지 결코 위태로움이 없을 것이다. 〕 

              

 

  第十七章.  ( 최상의 道는 자연 그대로 있는 것이다. )

                

 太上, 下知有之;其次, 親而譽之;其次, 畏之;其次, 侮之.  

 (태상, 하지유지 ; 기차, 친이예지 ; 기차, 외지 ; 기차, 모지.    

 信不足焉, 有不信焉.  悠兮, 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신부족언, 유불신언.  유혜, 기귀언.  공성사수, 백성개위아자연. ) 

               

 [가장 훌륭한  군주는 道에 순응하여 인위적인 행위를 삼가므로 백성들이 그의 존재만을 알 뿐 감사할 줄 모른다.
 그 다음의 군주는 무위로써 다스릴 재능이 없으므로 인의의 방도로써 힘써 백성들에게 덕정을 베푼다.  

 따라서 백성들이 그를 믿고 따르게 된다.  그 다음 수준의 군주는 법과 형벌로써 세상을 다스린다. 

 권위와 위신으로 통치하는 경우이다. 백성들이 전전긍긍하며 그를 두려워한다
 최하의 군주는 법과 형벌의 공정한 집행으로 공권력의 위신을 유지할 만한 능력도 없는 인물이며

 백성들이 그를 믿지 못하고 업신여기는 것은 당연하다.
 군주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자신이 한 말에 대해서는 신의와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최상의 군주는 말없이 무위로써 공을 이루고 일을 성취한다.
 백성들은 그의 공덕으로 태평성대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며    

 그들은 자기가 잘한 덕분에 일이 저절로 이렇게 잘 되었다고만 생각한다. ] 

                

〔道와 일체가 되었던 태고시대에는 사람들이 그것이 있음을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道에서 떨어진 후에는 그것과 친해지고자 신으로써 칭송하며 공경하였다.
 그후 세월이 흘러 道에서 더 멀어지자 사람들은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후 더 긴 세월이 흘러 그것을 완전히 잊어버려서 道를 업신여기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다.
 道를 업신여기게 됨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에 믿음이라는 것이 사라져 버리고 불신만 남게 되었다.
 道를 두려워 함으로서 사람들은 요리조리 눈치만 보며 겉치레 말만 귀이 여기게 되었다.
 道와 가까이 친해지기 위해 공경하고 칭송하며 기리는 것을 사람들은 세속적인 성공과 자기사업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만 이용하게 되었다.  道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던 태고시절에는 

 모든 사람들이 한결같이 이르기를 '나는 스스로 있는 그대로 일 뿐이다 '라고 여겼다. 〕
  


  第十八章.  ( 지혜가 있으므로 속임이 있게 되었다. )

               

 (故)大道廢, 有仁義;智慧出, 有大偽;六親不和, 有孝慈;國家昏亂, 有忠臣.
 (대도폐, 유인의 ; 지혜출, 유대위 ; 육친불화, 유효자 ; 국가혼란, 유충신. ) 

               

 [그러므로 무위자연의 큰 道가 없어지자, 인이니 의니 하는 것을 강조하게 되었고 ;  

 인간의 지혜가 발달하면서, 큰 거짓도 생기게 되었으며 ; 
 가족간에 화목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자, 효도니 자애니 하는 것이 생기게 되고 ;  

 나라의 질서가 문란해지자, 충신이 나타나게 되었다. ] 

                

〔그러므로 무위자연적인 道의 질서가 무너져서 어쩔 수 없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 있는 仁義라는 도덕적 규율을 억지로 만들어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밖에 없으며 ;   

 道의 절대본체를 아는 순수한 존재의식이 사라지자, 無知라는 큰 거짓이 생겼으며 ;
 전체를 하나로 여기는 무위자연적인 道에서는 인의적으로 만든 효도나 자애를 억지로 지킬 수 있도록 한  

 규제와 규율이 필요없으며 ; 있는 그대로의 무위자연적이며 전체가 하나로 된 道의 상태에서는  

 모든것이 저절로 조화롭게 펼쳐 나간다. 〕 

 

 

  第十九章.  ( 순박한 마음으로 욕망을 버려라. )

              

 絕聖棄智, 民利百倍;絕仁棄義, 民復孝慈;絕巧棄利, 盜賊無有. 

 (절성기지, 민리백배 ; 절인기의, 민복효자 ; 절교기리, 도적무유. 

 此三者以為文不足.  故令有所屬:見素抱樸, 少私寡欲.

 (차삼자이위문불족.  고령유소속 : 견소포박, 소사과욕. ) 

 

 [아주 능숙한 재주를 끊어 없애고 지혜를 버리면 백성의 이익은 백 배가 되고 ; 
 인을 끊고 의를 버리면 백성들은 본래의 효도와 사랑으로 되돌아 갈 것이고 ;  

 기교를 끊고 이익을 포기하면 도둑은 없어질 것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 , 즉 탁월한 재주와 지혜, 어짊과  올바름, 기교와 이익을 아주 포기해 버리면  

 문화의 혜택이 모자라 백성들이 의지할 곳을 모를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에게 돌아갈 곳을 마련하기 위하여 갓 베어 낸 원목 같은 소박함을 보여 주어서 

 거기에 귀속시키면 사심과 욕구가 줄어들게 될 것이다. ] 

               

〔관념적인 지식을 끊고 분별적인 논쟁을 버리면 사람들에게 백배나 이로움을 주게되고 ;
 거짓을 끊고 잔꾀를 버리면 사람들은 어린아이처럼 순진함을 회복하게 되며 ;
 사람들을 매혹할 수 있는 것들을 없애고 이익을 취할 만한 것들을 제거하면 도둑은 없어 질 것이다. 
 이 세가지의 내용만 가지고 직접 실천하기에는 부족하며 이것을 실행하기 위하여 함께 주의를 

 기울여야 할 마음자세가 있으니, 내면의 본바탕을 지켜보고 꾸밈없이 순박한 마음을 품도록 하고,    

 사사로운 나를 미약하게 함으로써 바라고자 하는 욕망을 줄어 들게 하는 것이다. 〕
       
        

 ​第二十章.  ( 학문을 끊으면 근심이 사라진다. )

               

 絕學無憂, 唯之與阿, 相去幾何 ?  善之與惡, 相去若何 ?  人之所畏, 不可不畏.     
 (절학무우, 유지여아, 상거기하 ?  선지여악, 상거약하 ?  인지소외, 불가불외. 
 荒兮其未央哉! 衆人熙熙, 如享太牢, 如春登臺.  

 (황혜기미앙재 !  중인희희, 여형태뢰, 여춘등대. 

 我獨怕兮其未兆;如嬰兒之未孩;儽儽兮若無所歸.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아독박혜기미조 ; 여영아지미해 ; 내래혜약무소귀.  중인개유여, 이아독약유.
 我愚人之心也哉! 沌沌兮, 俗人昭昭, 我獨昏昏.  俗人察察, 我獨悶悶. 
 (아우인지심야재 !  돈돈혜, 속인소소, 아독혼혼.  속인찰찰, 아독민민. 
 澹兮其若海, 飂兮若無止, 衆人皆有以, 而我獨頑似鄙.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담혜기약해, 요혜약무지, 중인개유이, 이아독완사비. 아독이어인, 이귀식모. ) 

                

 [학문이란 것을 없애 버리면 인간에게 근심은 사라질 것이다.  
 예 ! 하고 공손하게 대답하는 것과 응 ! 하고 교만하게 응대하는 것과는 얼마나 차이가 나는 것일까 ?  

 좋으니 나쁘니 하는 것이 얼마나 차이가 있는가 ?  
 남들이 두려워하는 대상을 나 역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세상 사람들과 멀고도 멀어 그 끝을 모르겠노라 !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쾌활하게 웃으면서 마치 잘 차린 상을 받은 손님 같고,   

 봄날의 누대에 올라 전망을 즐기는 구경꾼 같다. 나만은  홀로 담담하고 고요하게 있으니 ;  

 그 욕심이  없는 모습이 마치 아직 웃을 줄도 모르는 갓난아이 같구나 ;
 초라하고 고달퍼서 돌아갈 곳 조차 없는 사람  같구나. 세상 사람들은 욕심과 희망에 들떠 있지만,  

 나 홀로 만사를 다 상실한 것 같구나.  나의 마음은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으니 어리석은 것인가 !  

 분별도 판단도 그저 혼돈스럽기만 하구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영악하고 빈틈이 없건만,  

 나만 홀로 멍청하고 어둡기만 하구나,  세상 사람들은 모두 바쁘게 돌아 다니면서 이것 저것 살피며      

 분별을 잘하는데,  나만 홀로 세상 물정에 어두운 것이 우둔하기만 하구나.
 바다처럼 출렁대며 흔들리면서 소리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같이 그침을 모르겠노라.      

 세상 사람들은 다 유능하고 쓸모가 있으나, 나만 홀로 고집만 세고 촌티가 나는구나. 

 그러나 나만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먹이고 입히고 길러준 어머니의 道를 귀하게 여기노라. ] 

 

〔학문을 끊어서 망상이 사라지면,  '네'하는 긍정과 '아니오'하는 부정의 상대적인 두가지 다른 견해는  

 서로 그 차이가 없어져서 가까워 질 수가 있는 것이고,
 아름다움과 추악함이라는 상대적인 두가지 다른 개념도 서로 그 차이가 없어져서 같은 하나로 될 수 있다. 
 이 하나가 되는 것을 사람들이 꺼려 하는데 이는 모든 이에게 두려움이 없도록 사람들을 인도하기가  

 불가능한 것 같다.  애매모호 하지만 이 아래 글들은 궁극적인 도인의 경지에서 비롯된 체험은 아니다.
 자신은 마음이 내면 속에 들어가 있어 흐릿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한데,  

 밖의 세상 사람들은 여러가지 대상에 사로잡혀 즐거워하고
 떠들썩하게 잔치를 벌리는 것 처럼 마음들이 밖으로만 향해 들떠 있다.
 나는 내면속에 홀로 머물면서 아무런 생각이나 느낌도 느끼지 못하고,  

 마치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 아이처럼 아직 웃을 줄도 모른다.
 나는 내면 깊은 곳에 완전히 잠겨 있어 꼼짝할 수가 없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여유있게 사는 것 같은데 

 나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이탈되고 버려져서 바램이나 욕구를 잃어 버렸다. 
 나는 아무런 욕망도 없고 바라는 대상도 없으니 사람으로써 바보 천치가 된 것이 아닌가 ! 

 판단을 하는데 여러가지가 뒤섞여 혼란스럽다.
 세상 사람들의 표정은 활기있고 밝아 보이는데 나만 홀로 어두운 내면속에서 아무것도 모른채 잠겨 있다. 
 세상 사람들은 온갖 대상들을 바쁘게 쫓아 다니느라고 이것저것 똘똘하게 살피며 분별을 잘하는데, 
 나만 혼자 내면속에서 전체가 하나로 되어 세상의 경계들이 없어진 어둠의 상태에서 멍청하게    

 분별력조차 없이 앉아 있다.  내면의식은 넓고 여유가 있는것이 마치 무한한 바다속과 같고,  

 중심의식 자체는 하나의 단일 파동상태이므로 끊임없이 돌도 돌면서 멈추지 않는다.
 사람들은 현실생활에서 대상을 상대로 삶을 유지하며 바쁘게 움직이지만,   

 내면세계에 머물고 있는 나는 물질적인 밖의 세상에서는 거의 쓸모없이 천하게 보이지만,   

 모든것이 정신적으로 충족되어 충만한 마음을 갖고 있음으로 정신적 부자라고는 말할 수 있다. 
 사람들은 이원적인 대상들과 외면적인 물질, 쾌락, 욕망등에 의존해서 삶을 유지해 가고 있지만,
 나는 그와 달리 내면으로 들어가서 일원적인 道의 절대 근원만을 소중하게 여긴다. 〕 

 

 

 第二十一章.  ( 道는 만물의 실체요, 그 작용과 현상으로 구체화된 것이 德이다. )

                  

 孔德之容, 唯道是從.  道之為物, 唯恍唯惚.  忽兮恍兮, 其中有象;恍兮忽兮, 其中有物.       

 (공덕지용, 유도시종.  도지위물, 유황유홀.  홀혜황혜, 기중유상 ; 황혜홀혜, 기중유물. 

 窈兮冥兮, 其中有精;其精甚真, 其中有信.   

 (요혜명혜, 기중유정 ; 기정심진, 기중유신.
 自古及今, 其名不去, 以閱衆甫(父).  吾何以知衆甫之狀哉?  以此.
 (자고급금, 기명불거, 이열중보.  오하이지중보지상재 ?  이차. ) 

 

 [큰 德의 형상은 오직 道에서 나올 뿐이다.  道라는 것은 그저 어두워 잘 분간할 수 없고  

 그 형태를 포착할 수도 없는 것이다.  볼 수도  잡을 수도 없는 그 속에서 사물의 본바탕이 있고 ;  

 포착할 수도 살펴볼 수도 없는  불가사의한 그 곳에 사물의 형상이 들어 있다. 
 道는 아득하고 신비스러우며 어둡기만 하지만 그 안에는 정기가 스며 있고 ;  

 그 정기는 매우  순수하고 그 속에는 믿음성이 들어 있다. 
 아주 옛날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은 사라지는 법이 없으며, 

 그 불멸의 道로부터 만물의 조상은 생성과 소멸을 거듭하게 된다. 
 내가 어떻게 만물의 조상 때의 상황을 알 수 있겠는가 ?   

 이는 앞에서 언급한 道를 통하여 알 수 있게 된 것이다. ] 

 

〔德이란 道의 본체에서 나온 의식으로 미세한 중심의식이 되어 오직 道만을 바르게 쫓아가야 한다.
 道로부터 나오는 모양이나 형상들은 항상 부질없이 수시로 변하고, 있다가 없어지고,  

 고정된 정체성이 없어서 애매모호하며,
 어슴프레하고 모호한 의식속에서 나타나는 심상들은 의식의 환상일 뿐이며 ; 
 모호하고 어슴프레한 의식안에 삼라만상의 물체들이 비쳐져 보이는 것이다.
 고요하고 깊은 어둠의 내면속에 전혀 움직임없는 순수한 정기 또는 바탕이 한결같이 존재하며 ; 
 변화되고 움직이는 의식의 너머에 있는 변함없는 순수한 본질, 그 자체가 바로 우리들의 참된 본성이며, 

 그 안에 진리의 명확함과 불변의 진리에 대한 믿음이 있다.
 헤아릴 수 조차 없는 옛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그대로 존재하면서 모든 만물이 생주이멸하는 의식을  

 지켜보고 의식의 근원을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그 道라는 이름이 없어질 수가 없다.  

 따라서 내가 어떻게 만물의 근원인 의식이 그렇게 생겨 나오는 것을 알겠는가 ?
 단지 道의 본체가 바탕에서 만물을 생성하는 의식자체를 저절로 주시하는 작용 때문에  

 이러한 만물의 근원작용을 알고 있을 뿐이다. 〕 


 

 第二十二章.  ( 굽은 나무는 베어지지 않는다. )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弊則新, 少則得, 多則惑.  是以聖人抱一為天下式.   

 (곡즉전, 왕즉직, 와즉영, 폐즉신, 소즉득, 다즉혹.  시이성인포일위천하식. 

 不自見, 故明;不自是, 故彰;不自伐, 故有功;不自矜, 故長.   

 (불자견, 고명 ; 불자시, 고창 ; 불자벌, 고유공 ; 불자긍, 고장.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부유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  고지소위곡즉전자, 기허언재 !  성전이귀지. ) 

 

 [굽은 나무는 탄력성이 있어 도리어 안전할 수 있고, 구부리는 것은 장차 곧게 펴기 위함이며. 
 움푹 패인 웅덩이는 물이 가득 찰 수 있고, 옷은 낡아 해어져야만 다시 새 옷을 입게 되며,  
 욕심이 적으면 마음의 만족을 얻을 수 있고,  

 너무 많으면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을지 결심이 서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무위 자연의 성인은 다만 道만을 지키고 있으므로 이 세상의 규범이 된다.
 무위 자연의 성인은 자기를 내세우는 일이 없기 때문에 그의 존재가 뚜렷해지고,  

 자신을 옳다 하지 않기에 그 좋은 것이 세상에 나타난다. 
 자기의 공로를 자랑하지 않기에 더 큰 공을 이룰 수 있고, 자신의 자만심을 버리기 때문에

 존경을 받게 되는 것이다.  聖人은 절대로 남과 다투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에 그를 적으로 대하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옛 사람이 말하거늘 굽은 나무는 안전하다고 했는데,  어찌 그말이 빈말일 수 있겠는가 !   

 진실로 온전한 것은 道로 귀의하는 것이다. ] 
                   

〔일반적인 측면에서 일원적인 道, 즉 쓸모없이 보이는 도인의 무위적인 道는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으며,
 굽은 것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곧게 펴질 수가 있으므로, 굽음과 곧음은 각각 하나의 변화의 모양일 뿐이며,
 움푹 패인 빈 웅덩이는 언제든지 물이 채워질 수 있으므로, 이원적인 겉모양은 언제든지 상대적인  

 다른 형태로 변할 수 있으며, 낡은 것은 이미 변화된 상태지만 다시 새롭게 변할 수 있으며,  

 적은 것은 변하여 많아지므로 모자란 것을 더 얻게 되며,
 지나치게 과다한 소유는 그것에 대한 집착이 생겨서 마음을 흐리게 한다.  
 그러므로 겉으로 나타난 현상들은 이렇게 변함으로 聖人은 항상 전체가 하나인 道라는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나가는 기본법도로 정한다.
 자기의 존재를 억지로 나타내 보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밝게 드러나 보이며 ;
 침묵이 道와 진리에 대한 가장 가까운 표현인데 자기의 견해가 바르다고 내세우지 않음으로  

 그 견해가 오히려 더 드러나 보이며 ; 자선을 베풀면서 베푼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자선이라  

 말할 수 있듯이, 자기의 공을 자랑하지 않고 겸손하기에 그 공의 가치가 더 드러나 보이며 ;
 자기의 존재, 사사로운 자아, 소유나 공에 대하여 무관심하기 때문에 오히려 참자신을 오래 보존할 수 있다.
 聖人은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고, 견해도 주장하지 않으며, 공을 자랑하지도 않고,  

 자만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것과 다툴 일이 없으므로 세상에 다툼을 유발할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굽은 것이 온전하게 보존되는 것이라는 말이, 어찌 빈말일 수 있겠는가 !   
 자기를 온전하게 영원이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道를 추구하여 道의 본체에 귀의하는 것이다. 〕
         


  第二十三章.  ( 道는 있는 그대로 일체가 되는 것이다. )

                  

 希言自然, 故飄風不終朝, 驟雨不終日.  孰為此者?  天地.  天地尚不能久, 而況於人乎?   

 (희언자연, 고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  숙위차자 ?  천지.  천지상불능구, 이황어인호 ? 

 故從事於道者, 道者, 同於道; 德者, 同於德;失者, 同於失.   

 (고종사어도자, 도자, 동어도 ; 덕자, 동어덕 ; 실자, 동어실. 

 同於道者, 道亦樂得之;同於德者, 德亦樂得之;同於失者, 失亦樂得之.  信不足焉, 有不信焉.
 (동어도자, 도역락득지 ; 동어덕자, 덕역락득지 ; 동어실자, 실역락득지.  신부족언, 유불신언. )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는 말은 자연의 무언의 말이다.     

 그러므로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못하고 소나기도 온종일 내리지 못한다. 
 회오리바람을 불게 하고 소나기를 내리게 하는 것은 누구의 조화인가 ?  그것은 천지가 하는 일이다. 
 하물며 인간이 자연의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어찌할 수 있겠는가 ? 
 그러므로 무위자연 그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道일 경우에는 그 道와 하나가 되고 ; 
 德에 따라 행위 하는 이는 德과 일치되고 ; 실덕에 따라 행위 하는 이는 실덕과 하나가 된다.  
 道와 하나 되면, 道 또한 그를 얻어 기뻐할 것이며 ; 德과 하나 되면, 德 또한 그를 얻어 기뻐할 것이며 ; 
 실덕과 하나 되면, 또한 그를 얻는 것을 기뻐할 것이다. 

 나에게 믿음이 부족하다면 남도 나를 믿지 아니 할 것이다. ] 

 

〔자연의 모든 변화와 움직임이 없어지는 것은 저절로 그렇게 되는 것이다.  

 자연의 변화도 아침을 넘기지 못하고 일시적인 움직임일 뿐이다.  누가 이렇게 변화시키는가 ? 

 즉 그 움직임을 주도하는 주체는 없고, 저절로 그렇게 말이 없는 침묵속으로 사라진다.
 하늘과 땅이 쉬지 않고 변하는 현상은, 변하지 않는 道안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하물며 사람은 자연스럽게 道와 함께 살아야지 억지로 도를 취득할 수 있겠는가 ?
 그러므로 평상시에 일하는 것이 道라고 하는 것이며,  그 일상적인 일 자체가 道로써 하나가 되는 것이며 ;
 일상적인 일을 하는 자가 순수의식을 지닌 덕인이면, 일상적인 일이 의식으로써 일체가 되는 것이며 ;
 일상적으로 일하는것 자체를 잃어 버린다는 것은, 일하는 것을 잃어버림과 동시에 자아를 잃어 버리는  

 것이 되는 것이다.  道와 함께하는 사람은 道 역시 그와 함께 하기를 즐겁게 여기며 ;  

 德과 함께하는 사람은 德 역시 그와 함께 하기를 즐겁게 여기고 ;
 잃어버림을  함께하는 사람은 그 잃어버림 역시 그와 함께 하기를 즐겁게 여긴다.
 일상적인 일을 하는 것과 보편적인 의식이 일체가 된 사람은, 道 역시도 의식과 일체가 된 것이며,
 자신을 잃어버리고 일에 몰두하여 그일과 하나가 된다는 것이 바로 道인 것이다.
 무위자연의 명백한 증명이 결여된 말은 그 누구로부터도 신용을 얻지 못할 것이다. 〕 

 

 

 

 第二十四章.  ( 자신을 드러내는 자는 밝지 못하다. )

                  

 企者不立;跨者不行;自見者不明;自是者不彰;自伐者無功;自矜者不長.   

 (기자불립 ; 과자불행 ; 자견자불명 ; 자시자불창 ; 자벌자무공 ; 자긍자부장. 

 其在道也,  曰:餘食贅行.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기재도야, 왈 : 여식췌행.  물혹악지, 고유도자불처. ) 

                   

 [발돋움하는 자는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 크게 가랑이를 벌리고 걸으면 제대로 걸을 수가 없으며 ;
 자신을 나타내 보이려고 애쓰는 자는 밝을 수가 없고 ; 

 자신의 견해만을 옳다고 주장하는 자는 드러날 수가 없으며 ; 자신의 공을 자랑하는 자는 공적이 없으며 ; 

 자신이 잘났다고 뽐내는 자는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  이것을 道의 차원에서 보면,  

 이런 것들은 무위의 道에 있어서 먹다 남은 음식처럼, 하지 않아도 좋을 쓸데없는 행동이다.  

 만물인 자연은 모두 이런 것들을 싫어하며,  道를 터득한 자는 이와 같은 일은 하지 않는다. ]
                  
〔억지로 자신을 내세우려고 의도하는 행동은 오래 견뎌내지 못하고 ; 

 억지로 일으키는 과욕적인 행동은 오래 가지 못하며 ;
 자신의 존재를 억지로 돋보이게 하려는 자는 오히려 드러나지 못하게 되고 ;  

 자신의 견해가 옳다고 내세우는 자는 오히려 그 견해가 밝게 돋보이지 못하며 ;
 자기의 공적을 억지로 부풀려 떠벌리고 다니는 자는 실제로 공적이 별로 없다는 것이고 ;
 기회만 있으면 제 잘난 척 만하며 자기자랑을 늘어놓는 자는 지배자가 될 수 없다.
 이러한 행위들을 자연적인 道의 차원에서 보자면 버리는 음식찌꺼기처럼 쓸모없고 불필요한  

 군더더기 행동이므로, 의도적인 자기자랑이나 인의적인 행위는 道의 자연적인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第二十五章.  ( 道의 본 모습은 자연이다. )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周行而不殆, 可以為天下母.
 

 (유물혼성, 선천지생.  적혜요혜, 독립불개, 주행이불태, 가이위천하모.

 吾不知其名, 字之曰道, 強為之名曰大.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故道大, 天大, 地大, 王亦大.   

 (오부지기명, 자지왈도, 강위지명왈대. 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고도대, 천대, 지대, 왕역대.

 域中有四大, 而王居其一焉.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역중유사대, 이왕거기일언.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 

                  

 [혼돈 상태에서 성립된 그 무엇이 천지가 생기기 이전부터 존재해 있었다. 

 그것은 고요하고 소리도 없고 형체도 없이 텅 비었으며,
 어느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홀로 서 있으나 항상 변하지 않으며,  

 어디에나 가지 않는 데가 없으나 결코 파괴되거나 손상될 위험은 없으므로,
 그것은 천하 만물의  어머니가 될 수 있다. 나는 실상 그 이름을 알지 못하며, 편의상 이름 지어 道라 하고,  

 억지로 큰 것이라 이름짓기도 한다. 
 이것은 무한정 크기 때문에 어디에나 퍼져 나가며, 어디에나 퍼져 나가기 때문에 멀리까지 가고,  

 멀리까지 갔다가 그것은 다시 원위치로 되돌아온다.
 그러므로 道는 큰 것이라 불리지만 큰 것으로는,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제왕도 또한 크다.  
 이 세상에는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왕이 그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왕은 인류의 지배자로서 땅의 참모습을 본받고, 땅은 하늘의 참모습을 본받으며,  

 하늘은 다시 道의 참모습을 본받는다. 
 그리고 道의 본 모습은 자연이기 때문에 道는 자연의 법도를 본받는다. ] 

                  

〔모든것이 하나로 합쳐져 모양없이 잠재되어 있는 것이 있으니 이는 천지를 생기게 한 근원이다.
 소리도 없고 모양도 없는 텅빈 침묵의 공간이며, 절대본체는 모든 움직이는 것들과는 별도로 떨어져 있어서 

 변함이 없으며, 절대본체 자체는 그 작용이 전체에 두루 펼쳐져 있지만  본체특성이 없어진다던가  

 무엇인가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이것이 바로 세상이 생긴 근원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이 생긴 근원은 본래 이름이 없어서, 그 바탕근원에 道라는 글자를 붙혀서 부르고,
 억지로 그 특성을 말한다면 무한하다고 할 수 있다.   

 그 무한하게 큰 것은 끝이 없이 나아가며, 끝없이 나아가다 보면 아득하게 멀어지고,
 아득하게 멀어진다는 것은 되돌아와서 시작점과 끝점이 연결되어 되풀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道가 큰 만큼,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왕 역시 크므로 왕은 道의 무위자연적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네 가지 큰 것이 있는데, 왕도 그 중에 하나를 차지하니 왕이란 존재가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왕이 나라를 다스리는 기본 지침은 무위자연의 법칙에 의거하여 땅의 참모습을 본받고, 

 땅은 하늘의 참모습을 본받고, 하늘은 다시 道의 참모습을 본받으며,  

 그 道의 본 모습은 자연이기 때문에 道의 인식을 통해 무위자연의 위대한 섭리에 합일할 수 있는 것이다.〕 

  

 

  第二十六章.  ( 경박함과 조급함은 근본에서 벗어난 것이다. )
 

 重為輕根, 靜為躁君.  是以聖人終日行不離輜重.  雖有榮觀, 燕處超然. 

 (중위경근, 정위조군.  시이성인종일행불리치중, 수유영관, 연처초연.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輕則失本, 躁則失君.
 (내하만승지주, 이이신경천하 ?  경즉실본, 조즉실군. )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근본이 되고, 고요한 것은 시끄럽고 조급한 것의 으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무위의 聖人은 종일 길을 가도 짐을 몸에서 버리지 않고

 아무리 화려하고 볼만한 구경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초연히 있으면서 설레거나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어찌 만승의 제왕이 된 자가 천하 백성들 위에서 자신의 몸을 가볍게 다룰 수 있겠는가 ?   
 경솔하게 행동하면 자신의 근본을 잃게 되고, 조급히 움직이면 군주의 지위를 잃게 될 것이다. ] 

                   

〔내면의 무거움에 주의가 고정된 사람은 근본이 충실한 실속있는 사람이며, 
 외면의 움직임에만 가볍게 따라다니는 사람은 내면의 뿌리에서 중심이 멀어져 있어서 

 속이 비어 있어 믿을 수 없으며, 성급하거나 가벼이 움직인다는 것은 침착하지 못한다는 것이요, 

 그것은 그의 마음이 무엇에 현혹되어 있기 때문이다.
 聖人은 하루종일 일상생활을 하더라도 내면의 깊은 중심의 신중함을 벗어나지 않는다.
 聖人은 항상 내면의 중심에 편안히 머물러 있어서 그러한 대상적인 영예나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이 내면에 중심을 잡고 머물러 있다.
 천하를 휘어잡은 대국의 왕이 가볍게 처신하면 천하도 그에 따라 천박하게 변하므로  

 왕은 모든 행동에 있어서 신중을 기해야 한다.
 경박스런 언행은 자기 중심을 잃어버리는 행위와 같으며, 조급하게 서두르며 참견을 많이 하면  

 지도자의 원래 본분을 잃어 버리는 것이다. 〕 

 

 

  第二十七章.  ( 자연 그대로 참되게 행하면 흔적이 남지 않는다. )
                
 善行無轍迹, 善言無瑕讁;善數不用籌策;善閉無關楗而不可開, 善結無繩約而不可解. 
 

 (선행무철적, 선언무하적 ; 선수불용주책 ; 선폐무관건이불가개, 선결무승약이불가해.

 是以聖人常善救人, 故無棄人;常善救物, 故無棄物.  是謂襲明. 

 (시이성인상선구인, 고무기인 ; 상선구물, 고무기물. 시위습명. 

 故善人者, 不善人之師;不善人者, 善人之資.  不貴其師, 不愛其資, 雖智大迷, 是謂要妙. 
 (고선인자, 불선인지사 ; 불선인자, 선인지자.  불귀기사, 불애기자, 수지대미, 시위요묘. ) 

                   

 [아주 훌륭한 행위에는 흔적이 남지 않고,  道에 맞는 좋은 말에는 흠이 없으며 ;  

 계산을 능숙하게 잘하면 산가지가 필요 없으며 ; 잘 닫은 문은 빗장을 걸지 않아도 열리지 않고,    

 매듭으로 잘 엮어 놓으면 구태여 밧줄로 묶지 않아도 풀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무위의 聖人은 사람을 구제하여 쓰지 않기 때문에 어떤 사람도 버리는 일이 없고 ;  

 항상 물건을 유용하게 쓰되 어떤 물건도 버리는 일이 없다. 
 이것을 외면에 드러나지 않은 밝은 지혜라고 한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은 선하지 못한 사람의 스승이 되고 ; 선하지 못한 사람의 경계와 교훈이 된다.
 스승을 귀히 여길 줄 모르거나, 그 경계와 교훈이 되는 사람을 사랑한 줄 모르면, 

 비록 지혜가 있다고 하더라도 크게 우매한 것과 같다. 이것을 道의 오묘한 작용이라고 하는 것이다.] 

 

〔자연 그대로 참되게 행하는 것은 흔적이 남지 않고, 즉 의도적인 행동이 아니라면 흔적이 남지 않으며,
 의도적으로 어떤 목적성이 없이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조화롭게 맞추어 가며 전체의 입장에서 하는 말은 

 주변의 어떤 것과도 부딪침이 있을 수 없으며 ; 계산을 하더라도 지성으로 분별하며 이것 저것 따지는  

 논리적인 두뇌를 쓰지 않고 무위적인 직관력으로 부딪치는 상황에 저절로 맞추어 반응하며 ;
 외부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방어기제가 내면에 저절로 확보되어 있어 구태여 외부의 영향을 막는  

 규제나 경계심이 필요 없으며, 인의적으로 강제적인 법규정을 만들어서 그것을 지키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연의 법칙에 모두가 순응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같이 聖人은 하찮게 보이는 사물일지라도 모든것이 자기의 보편의식 그자체의 한부분이므로 

 어떤것도 소홀하게 다루지 아니하며, 모든 사람과 사물은 나자신이므로 전체 道의 무위자연적인 입장에서 

 나와 동일한 하나라고 여기며 차별화를 두지 않는 것이며, 있는 그대로 무위자연으로 행하여    

 전체가 하나라는 일체감이 되는 상태가 道의 밝은 빛 속에서 깨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도를 깨친 선인이나 도를 깨치지 못한 불선인이나 모두 평등하게 나름대로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보편의식 속에 있는 선인의 자비적인 마음인 것이다.
 깨달음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갖추고 있다 하더라도 자연스러운 일체감이 없이 분별심이 남아 있다면,
 아직도 궁극적인 道에 이르지 못한 무지상태이므로, 

 ​이것이 이른바 도에서 가장 중요하고 미묘한 문제라는 것이다. 〕
                   


  第二十八章.  ( 외면을 알고, 내면에 머물면 천하의 모범이 된다. )

                  

 知其雄, 守其雌, 為天下谿.  為天下谿, 常德不離, 復歸於嬰兒.  知其白, 守其黑, 為天下式.  

 (지기웅, 수기자, 위천하계.  위천하계, 상덕불리, 복귀어영아.  지기백, 수기흑, 위천하식. 

 為天下式, 常德不忒, 復歸於無極.  知其榮, 守其辱, 為天下谷.     

 (위천하식, 상덕불특, 복귀어무극.  지기영, 수기욕, 위천하곡. 

 為天下谷, 常德乃足, 復歸於樸.  樸散則為器, 聖人用之, 則為官長, 故大制不割.
 (위천하곡, 상덕내족, 복귀어박.  박산즉위기. 성인용지, 즉위관장, 고대제불할. ) 

                   

 [수컷의 억셈과 능동적인 힘을 발휘할 줄 알면서도 암컷의 유순함을 지킨다면, 

 모든 물줄기가 모여드는 계곡과 같이 천하의 인심은 그에게로 쏠리게 될 것이다.
 천하의 물줄기가 모여드는 골짜기와 같이 된다면 德은 언제나 그의 곁을 떠나지 않게 될 것이고, 

 그는 순수한 아이의 상태로 되돌아 가게 될 것이다.
 흰빛처럼 세상에 빛나는 존재가 되는 길을 알면서도 남의 눈에 드러나지 않은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면, 

 그는 천하의 모범이 될 것이다.  천하의 모범이 되면 德은 언제나 그에게서 차질을 보이지 않을 것이며, 

 무한한 도의 경지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세상의 영예를 누릴 방도를 알면서도 참고 욕된 위치를 지킬 수 있다면, 

 세상의 모든 물이 흘러드는 골짜기처럼 세상의 인심은 그에게로 귀속하게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물이 흘러드는 골짜기처럼 된다면 덕은 언제나 넉넉한 것이고,  

 아직 다듬지 않은 통나무처럼 도의 꾸밈없는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을 것이다.
 갓 베어 낸 통나무가 다시 쪼개지고 다듬어지면 여러 가지의 기물이 나오는 것처럼 道의 상태가 표출되면  

 인재가 나오게 된다.  따라서 聖人은 그들을 발탁하여 관리의 우두머리가 되게 한다.   

 그러므로 聖人은 다스릴 때 큰 원칙만을 지키고 자질구레하게 세분하지는 않는다. ] 

 

〔욕망을 위한 추구, 적극적인 행동, 대상에 대한 집착, 자만심, 자기과시등의 마음이 외부의 대상을 향해  

 움직이는 것을 자각하고, 마음의 움직임을 잘 알아서 수동적인 자세를 지키면서 무위적인 道에 안주하여, 
 인의적이거나 의도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시냇물이 저절로 흘러가듯이, 

 무위로써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시냇물은 어떤 것에도 방해를 받지 않으며 자연적인 작용으로 보편성을 벗어나지 않고  

 수동성을 지키고 있으므로 德인 순수의식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상태는 마치 어떠한 것에도  

 물들지 않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 의식같이 순진 무구한 마음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의식이 밝게 깨어 있는 상태를 아는 자는 의식이 밝게 깨어 있기 이전부터 지켜보고 있는 자이며,  
 바로 깊은 내면속의 밑바탕에 무지인 흑이므로, 이렇게 내면에 머물러 지키고 있으면

 이 세상 전체의 기준  또는 모범적인 법도가 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최상의 법도가 되면,

 항상 순수하고 두루 펼쳐진 보편의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므로 결국 道의 본체인 무극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고 일시적인 영화로움이 꿈과 같다고 스스로 깨닫게 되어, 모든 사람들이 꺼려하는 이름없고

 비천한 낮은 곳에 머물면서, 어떤 차별이나 분별력 없이 너그럽게 수용하는 자연의 골짜기와 같은  

 순수한 마음상태가 될 것이다. 분별이나 차별을 하지 않는 모든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을 갖게 되면,  

 집착이나 욕심이 없어져 저절로 너그럽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충만해지며,
 그렇게 자비로운 마음이 충만하면 원래 본성인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의식상태를 회복하게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세속적 야망과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보편의식은 널리 퍼져서 각각의 사람에게 나눠지게 되어

 사람들마다 적재적소에서 재능을 발휘하게 된다면, 聖人은 모두가 평등하고 순수한 보편의식을

 모범으로 삼아서 나라를 다스리는 제도로 활용하여 으뜸가는 규범으로 삼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체가 하나라는 보편적 입장에서 크게 다스리는 제도는 개별적인 경계로서 따로 분별하여  

 규제하는 것은 없다. 〕 

 

  

 第二十九章.  ( 세상은 신비로운 그릇과 같아 강제적으로 다스릴 수 없다. )
 
 將欲取天下而為之, 吾見其不得已.  天下神器, 不可為也.  為者敗之, 執者失之.  
 

 (장욕취천하이위지, 오견기부득이.  천하신기, 불가위야.  위자패지, 집자실지. 

 故物或行或隨;或歔或吹;或強或羸;或挫或隳.  是以聖人去甚, 去奢, 去泰.
 (고물혹행혹수 ; 혹허혹취 ; 혹강혹리 ; 혹좌혹휴.  시이성인거심, 거사, 거태. )   
                    

 [장차 천하를 차지하고자 인위적인 노력을 한다면, 그것은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것이란 걸 나는 안다.  
 천하는 신이 만들어 놓은 오묘한 그릇과 같아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이것을 억지로 잘 해보려고 하는 자는 실패할 것이며, 인위적으로 붙잡으려는 자는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만물은 앞서 가기도 하고,  또 어떤 것은 뒤에 쳐져서 따르기도 하며 ; 
 어떤 것은 미약하게 드러나지 못할 수도 있고 ; 과장되게 드러날 수도 있으며 ; 어떤 것은 강해지기도 하고, 

 어떤 것은 약해지기도 하며 ; 어떤 것은 꺽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무너지기도 한다.
 그러므로 聖人은 지나친 것을 버리고, 사치와 허영심을 버리고, 교만함을 버린다. ] 

                    

〔자신이 다른 사람과 차별화 될 수 있는 어떤 초능력을 얻고자 하는 환상을 가지고 구도행각을 한다면 

 오히려 자기의 심령만 해치게 될 것이다.  천하는 자연 그 자체이며 신이 만든 신비한 도구 같아서, 

 인간은 자연에 의해서 운행되는 세상을 억지로 제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마치 자기 개인의 소유로 착각하여 행동한다면, 결국 다스리는 일마저 잃어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과 자연은 다채롭게 변화하며 움직임으로 인위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으며,  

 그 변함없는 것이 바로 道의 본체 바탕이다.  聖人은 이 道를 기준으로 삼아 모든것에 평등하게 대한다.
 이와같이 聖人이 지나침을 버린다는 것은 과도하게 자기주장과 개인적인 의지를 내세워 자기 의도대로    

 추진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며, 사치함을 버린다는 것은, 자신을 위해 물질적인 낭비와 불필요한  

 자기과시욕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성인의 절제된 행동자세를 보여주는 것이며,
 교만함을 버린다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교만은 개인의 잘못된 착각에서 나오는 비도덕성이며

 배타적인 자세이므로, 자신의 존재를 크게 내세우지 않는 聖人의 기본적인 보편적 자세를 나타내는 것이다. 〕 

  

 

  第 三十章.  ( 무력으로 천하를 얻으려는 것은 道에 벗어나는 것이다. )
         
 以道佐人主者, 不以兵強天下.  其事好還.  師之所處,荊棘生焉.
 

(이도좌인주자, 불이병강천하. 기사호환.  사지소처, 형극생언.

 大軍之後, 必有凶年.  善有果而已, 不敢以取強.  果而勿矜, 果而勿伐, 果而勿驕.   

 (대군지후, 필유흉년.  선자과이이, 불감이취강.  과이물긍, 과이물벌, 과이물교.

 果而不得已, 果而勿強.  物壯則老, 是謂不道, 不道早已.
 (과이부득이, 과이물강.  물장즉로, 시위부도, 부도조이. ) 

                   

 [道로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은, 무력으로 나라를 다스려서는 안된다.   

 그러한 일에는 반드시 응보가 따르기 마련이다. 
 군대가 주둔한 곳에는 가시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큰 전쟁이 있은 후에는 반드시 흉년이 들게 된다. 
 정치를 잘하는 사람이 이루어 놓은 결과를 보면, 감히 그 이상의 것을 취하여 강대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전쟁의 목적을 이루더라도 우쭐대지 말며, 전쟁의 목적을 이루더라도 자랑하는 태도를 갖지 아니하고, 
 전쟁의 목적을 이루더라도 공을 내세워 교만해지지 말아야 한다.  
 무력을 쓰는 일은 만부득이한 경우에 한할 것이며 목적만 달성하면 강한 체 말고 겸허해야 한다. 
 만물은 장성하면 반드시 쇠퇴하기 마련이니 강성한 것에 집착하는 것은 道에 벗어나는 것이며, 

 道에 벗어나는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 ] 

 

〔무위자연의 道를 기본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은 무력으로 강압하여 나라를 다스려서는 안된다.
 무력을 강제로 사용하면 그 댓가를 반드시 치루게 된다.
 전쟁을 한번 치르고 난 지역은 가시덤불과 잡목만 무성히 자라 토지가 황폐해지고, 
 농토는 황무지가 되어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에 흉년이 들 수 밖에 없다.
 道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은 어쩔 수 없이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하였다고 해서 그것을 빌미로 천하를 무력으로 제압하려 하지 않는다.
 국가의 위기를 극복하고 나서 그 기회를 이용하여 자기 세력을 넓힌다든가,  

 권력을 강화하여 국민들을 압박한다든가, 권력을 이용하여 교만한 행동을 하는 짓은     

 道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임금은 결코 하지 않는다.  무력을 사용하여 천하를 지배하더라도   

 그 힘은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약해져 쇠락할 수 밖에 없는 자연현상의 생주이멸 작용의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일시적인 현상이며, 그 일시적인 변화는 道가 아니기 때문에 결코 오래가지 못하므로  

 항상 道의 견지를 잃어서는 안된다. 〕
                  
 
 

  第三十一章.  ( 전쟁의 승리를 엄숙한 장례의식과 같이 예를 지켜 치루어야 한다. ) 

 

 夫佳兵者, 不祥之器, 物或惡之, 故有道者不處.  君子居則貴左, 用兵則貴右.
 (부가병자, 불상지기, 물혹악지, 고유도자불처.  군자거즉귀좌, 용병즉귀우. 
 兵者不祥之器, 非君子之器, 不得已而用之, 恬淡為上.  勝而不美, 而美之者, 是樂殺人. 

  (병자불상지기, 비군자지기, 부득이이용지, 염담위상.  승이불미, 이미지자, 시락살인.

 夫樂殺人者, 則不可以得志於天下矣.  吉事尚左, 凶事尚右.         

  (부락살인자, 즉불가이득지어천하의.  길사상좌, 흉사상우. 

 偏將軍居左, 上將軍居右, 言以喪禮處之.  殺人之衆, 以哀悲泣之, 戰勝以喪禮處之.
 (편장군거좌, 상장군거우, 언이상례처지.  살인지중, 이애비읍지, 전승이상례처지. ) 

 

 [대체로 무기라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것으로, 세상 사람들은 언제나 그것을 싫어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道를 아는 사람은 무기의 사용을 꺼려하는 것이다.. 
 군자가 자연에 따라 일할 때는 왼쪽을 귀히 여기지만, 

 어쩔 수 없이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할 때면 오른쪽을 귀하게 여긴다. 
 무기라는 것은 상서롭지 못한 것이므로 군자가 가까이 할 물건이 못되며, 

 어쩔 수 없이 무기를 쓰게 될 때에는 담담한 마음을 지니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리고 싸워서 이기더라도 잘 하였다고 기뻐해서는 안되며, 전투에 이긴 것을 잘 하였다고 기뻐한다면 

 그것은 곧 사람 죽이는 것을 즐긴다는 것이다. 

 무릇 사람 죽이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천하의 뜻을 이룰 수 없는 것이다.  

 좋은 일에는 왼쪽을 높이고, 흉한 일에는 오른쪽을 높인다. 
 직접 병사를 지휘하는 장군은 왼쪽에 자리하고, 전군을 통솔하는 장군은 오른쪽에 자리한다.    

 이는 장례의 예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람을 많이 죽게 하였으므로   

 그 일로 슬퍼하여 눈물 흘리고 싸움에 이겼을지라도 장례식의 예로써 이에 대처한다는 것이다. ] 

                   

〔무릇 전쟁을 좋아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상서롭지 못한 일이므로 모두들 싫어하며    

 道를 수행하는 사람은 군대에 머물지 않는다. 문무백관들이 대전에 입조하였을 때

 평상시에는 왼쪽 상석에 가장 높은 문인을 앉히고 오른쪽에는 무인을 앉히지만,   
 국가 환란이나 전쟁시에는 오른쪽을 상석으로 하여 직책이 높은 장군을 순서대로 자리를 한다.
 병기는 상서롭지 못한 도구이므로 도인이 사용하는 수단이 될 수 없으며,     

 어쩔 수 없이 사용하게 된다면 속전속결을 최우선으로 한다.
 또한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경사스럽게 여기지 말 것이며, 만약 경사스럽게 여긴다면,  

 이는 살인을 즐기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대체로 살인을 즐기는 자는 천하의 민심을 얻을 수 없다.
 길하고 경사스러울 때에는 임금의 왼쪽에 자리잡는 것이 지위를 가장 높여 주는 것이며, 
 나쁜 일이거나 죽음을 애도하는 경우에는 임금의 오른쪽에 자리하는 것이 가장 높이 대우 받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시에는 전군을 통솔하는 장군을 오른쪽에 배치하고 부장을 왼쪽에 앉히는 것은, 
 전쟁으로 죽은 영혼들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평시와 다르게 오른쪽을 예우하는 것이다.
 그리고 임금은 전승기념식에서 여러 장수들과 함께 전쟁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슬픈 눈물을 흘리며 애도하는 것으로 죽은 영혼을 위한 상례를 치루는 것이다. 〕 

 

 

  第三十二章.  ( 도는 한결같이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이다. )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도상무명.  박수소, 천하막능신야.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빈.

 天地相合, 以降甘露, 民莫之令而自均. 

 (천지상합, 이강감로, 민막지령이자균. 

 始制有名, 名亦既有, 夫亦將知止, 知止所以不殆.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與江海.

 (시제유명, 명역기유, 부역장지지, 지지가이불태.  비도지재천하, 유천곡지어강해. ) 

                   

 [道는 영원하며 이름이 없다. 道는 손대지 않은 통나무처럼 그대로인 것이며, 

 그것이 아무리 작다고 해도 천하의 그 누구도 감히 신하로 부리지 못한다. 
 군왕이 만일 이러한 道를 따라 지킬 수 있다면, 천하 만물은 장차 저절로 찾아와 따르게 될 것이다.
 다음에 천지가 서로 화합하여 단이슬을 내릴 것이며,  백성들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자연히 평등하게

 다스려질 것이다. 통나무가 잘리고 다듬어져서 많은 기구들이 생기듯 이것저것 분별하는  

 이름을 가진 제도가 생겨나면 이름을 가진 것의 한계를 알게 될 것이다.
 그러니 만족할 줄 알고 그쳐야 할 시점에서는 그쳐야 하며,  

 만족과 그침을 알면 결코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비유하자면 道가 천하에 머물러 있는 것은, 

 산골짜기의 개울이 시내가 되어 자연히 강과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것과 같다. ] 

                   

〔道는 형상이 없어 볼 수가 없다. 그것은 또한 소리가 없어 들을 수가 없고, 형체가 없어 잡을 수도 없다. 
 그러한 道를 우리는 딱 무엇이라고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감각 기관의 지각을 거부하고 있는 그것은 만물의 배후에 스며 있는 형이상학적 실체이다.
 그것을 없다고 말한다면 논리적인 모순에 빠지게 된다. 

 왜냐하면 만물은 道에 의하여 생성되고 유출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각할 수 없는 세계와 감각할 수 있는 세계는 근원적으로 한 뿌리에서 나온 것이다.
 道는 산에서 갓 베어낸 통나무와 같이 인위적인 요소가 없는 순수하며 소박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적은 존재로 생각한다면 크나 큰 오산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것을 지배하거나 예속시킬 수 없는 것이다. 

 이 세상의 임금이 道를 체득하여 무위자연의 다스림을 베풀 수 있다면 천하의 만백성이 그의 德을 사모하여  

 다투어 모여들 것이다.  천지, 음양은 서로 화합하고 친화하여 단이슬을 내릴 것이며 

 만백성은 위에서 지시를 하지 않아도 저절로 잘 다스려 질 것이다. 
 원목이 잘라지고 다듬어지면 우리가 일상생활에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그릇이 만들어진다.
 道에 의해 생성된 만물도 자신의 이름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유한성에 대한 지각도 지닐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의 한계성, 유한성에 대한 깨우침은 만족과 그침을 알게 해준다. 

 만족과 그침을 모르는 인생은 스스로 파멸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道가 천하에 머물러 있는 것은 강과 바다의 시냇물과 계곡 물의 관계와 같다고 말할 수 있겠다.    

 시냇물과 계곡 물은 저절로 강과 바다로 흘러드는 것이다.  
 무위자연의 정치에는 천하 만민이 스스로 몰려와 제도를 마련하지 않아도 태평성대를 이룰 수 있다. 〕 


 
  第三十三章.  ( 자신을 이기는 사람이 참으로 강한 사람이다. ) 

                   

 知人者智, 自知者明.  勝人者有力, 自勝者強.  知足者富.  強行者有志. 

 (지인자지, 자지자명.  승인자유력, 자승자강.  지족자부.  강행자유지.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부실기소자구.  사이불망자수. ) 

                   

 [다른 사람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며, 자신을 아는 사람은 더욱 현명한 사람이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 있는 사람이지만,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더욱 강한 사람이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유한 사람이지만,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은 뜻이 있는 사람이다. 
 자기의 분수를 아는 사람은 그 지위를 오래 지속할 수 있고,  

 죽을 힘을 다하여 생명의 길을 찾는 사람은 장수할 수 있을 것이다. ] 

 

〔남을 안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안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남을 이긴다는 것은 유능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을 이긴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즉 자신의 지나친 욕망, 나태해지는 마음, 비겁함 등의 인간적 약점이란 타고난 성격이므로  

 그것을 극복하기란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만족할 줄 알면 언제나 넉넉한 것이다.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자기 스스로 만족할 줄 모르면 그의 마음은 언제나 결핍으로  

 가난을 느낄 것이다.  절대 빈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의 만족감이란 정신적 요소에 속하는 것이다.
 우리가 道를 체득하여 욕망의 겉치레에 끌려들지 않는다면 그의 마음은 언제나 만족과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근면 역행하는 사람은 뜻이 있는 사람이다.
 또한 사람은 분수와 본분을 지켜 자기가 있어야 할 마땅한 자리를 잃지 않으면 장구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을 긍정하며 열심히 살아간다면, 정신적으로는 그런 사람의 삶이 오래 사는 것이 된다. 
 道의 영위함을 체득하여 道와 하나가 되는 정신적 바탕을 갖는다면  

 그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의 장수가 될 것이다. 〕 

  

 

 第三十四章.  ( 道는 스스로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 

                   

 大道汎兮, 其可左右.  萬物恃之而生而不辭, 功成不名有.  衣養萬物而不為主, 常無欲, 可名於小; 

 (대도범혜, 기가좌우.  만물시지이생이불사, 공성불명유.  의양만물이불위주, 상무욕, 가명어소 ;

 萬物歸焉, 而不為主, 可名為大.  以其終不自為大, 故能成其大.
 (만물귀언, 이불위주, 가명위대.  이기종불자위대, 고능성기대. )
 
 [큰 道는 흘러 넘치는 물처럼 좌우 어느 곳에나 이를 수 있다.  만물은 道에 의지하여 생겨나지만,  

 道는 아무 말없이 묵묵하게 있을 뿐이며  공을 이룩하고도 그 명성을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만물은 옷처럼 감싸고 길러 내지만 주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며, 
 항상 욕심이 없고 아무 것도 바라지 않으므로 작은 존재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만 ; 
 세상 만물이 그 품에 돌아와 안기어도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으므로 크다고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道는 자신을 스스로 크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기에, 그러므로 능히 그 큰 것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 

                   

〔道는 모든 것의 바탕이 되므로 전체에 골고루 편재되어 있으며,  

 상 하 좌 우 전 후 어느 곳이든 道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道는 온갖 만물을 낳아 주고 길러 주고 보살펴 주지만 생색을 내지 않으며,  

 그것을 자신의 공덕으로 생각하거나 자랑할 줄도 모른다.
 만물을 보살피고 길러주지만 스스로 나타나지 않으므로 만물의 주인이면서도 주인 노릇을 하지 않으며,
 항상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는 의지나 바라는 것이 없기 때문에 밖으로 드러나는 것이 없어서          

 미세하게 작은 것이라고 부를 수도 있으며 ;
 만물을 떠 맡고 있지만 주인 노릇을 하지 않는 것은 가히 무한하게 큰 작용이라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끝까지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드러내지 않으므로 그 자체가 위대한 작용이기 때문에 

 저절로 전체적인 무위작용이 크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
          


  第三十五章.  ( 道는 끝이 없는 무한한 기능이 있다. ) 

 

 執大象, 天下往.  往而不害, 安平大.  樂與餌, 過客止.   

 (집대상, 천하왕.  왕이불해, 안평태.  낙여이, 과객지.  

 道之出口, 淡乎其無味,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既.
 (도지출구, 담호기무미, 시지부족견, 청지부족문, 용지부족기. ) 

 

 [큰 형상을 붙잡고 세상으로 나아가면  세상 어디를 가도 해롭지 않고 마음이 편안하고 태평하다. 
 즐거운 음악과 좋은 음식이 있는 곳에서는 지나가던 나그네도 걸음을 멈추게 된다. 
 무위의 진리는 그것을 입밖에 내더라도 담담하여 세속적인 맛이 없으며, 눈 여겨 보려고 해도 볼 수가 없고,
 귀 기울여 들어 보려고 해도 들을 수가 없으며, 그것은 무궁무진하여 아무리 써도 없어질 수가 없다. ] 

 

〔진실한 도인은 깊은 내면과 하나가 되어 우주와 일체가 된 사람이므로, 

 내면과 외면의 구분이 사라져서 모든것을 평등하게 보고, 전체를 하나라고 보며,  

 자아적인 개체의식이 없어서 무위자연의 움직임과 하나가 된 상태이다.
 그러므로 속세로 나와서 평범한 생활을 하여도 욕망이나 집착에서 벗어나 있으므로 바라는 것도 없고      

 억지로 구할 것도 없으니, 마음이 편안하고 태평스러울 수밖에 없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락과 음식같은 외부 감각자극의 유혹에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도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아무 속성도 특징도 없이 평범하며 또 재미가 없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며, 道는 감각의식으로 감지되는 의식의 대상이 아니므로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으며, 
 道의 작용이 우주전체에 끊임없이 나오고 사라져도 道의 작용은 줄지도 늘지도 않고 그대로 유지된다. 〕 

 

 

  第三十六章.  ( 부드럽고 약한것도, 억세고 강한것을 이길 수 있다. )

                  

 將欲歙之, 必固張之;將欲弱之, 必固強之;將欲廢之, 必固興之;將欲奪之, 必固與之.
 (장욕흡지, 필고장지 ; 장욕약지, 필고강지 ; 장욕폐지, 필고흥지 ; 장욕탈지, 필고요지. 
 是謂微明.  柔弱勝剛強.  魚不可脫於淵, 國之利器, 不可以示人.
 (시위미명.  유약승강강.  어불가탈어연, 국지이기, 불가이시인. ) 

 

 [장차 상대를 움츠리게 하려면, 반드시 먼저 펼칠 수 있게 해 주고 ; 

 장차 상대를 약화시키려면, 반드시 먼저 강하게 해 주며 ;
 장차 상대를 없애버릴 생각이면,  반드시 먼저 흥성하게 해 주고 ; 

 장차 상대를 빼앗으려면, 반드시 먼저 주어야 한다. 이것을 드러나지 않은 깊은 지혜라고 한다. 

 부드럽고 약한 것이 억세고 강한 것을 이기게 될 것이다.
 물고기가 연못 밖에서 살 수 없듯이 국가를 다스리는 이 수단을 누구에게도 보여서는 안 될 것이다. ] 

 

〔어떤 자연현상이 갑자기 변화하기 직전에는 겉으로 보이지 않지만, 

 보이지 않는 내부에서는 서서히 변화의 징후가 나타나며, 이런 미세한 징후를 사전에 알아 차릴 수 있는  

 예지 능력이 있다면 나라를 지키는 지혜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약해지려고 하는 것은 그 약함을 숨기기 위하여 더욱 기세가 강해져 보이는 징조가 나타나며 ;
 상대를 없애려 한다면 반드시 먼저 흥성하게 하라는 것은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한 위장술이며,

 ​자연스러운 자기보호본능이라 할 수 있고 ;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유인한 뒤에 경계가 풀린 틈을 이용하여 공격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다. 
 이렇게 미묘한 변화를 감지해 내는 예지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예민한 관찰력으로 강하고 억센 것을  

 힘들이지 않고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미묘한 지혜를 이용하여 남을 정복하려는 행동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그런 잔꾀를 안쓰는 것만 못하며 역으로 당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나라를 유지하는데

 유익한 전략정보는 사람들에게 절대로 공개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만일 이런 유익한 정보가 일반에 공개된다면 제대로 상황을 판단하지도 않고 남을 해치거나  

 자기 이익을 위해서 활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다가 남에게 역이용 당할 수도 있으므로 

 철저한 보안이 필요한 것이다. 〕 

 

 

  第三十七章.  ( 자연에 맡기면 저절로 바르게 된다. ) 

                   

 道常無為而無不為.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化.  化而欲作, 吾將鎮之以無名之樸.  

 (도상무위이무불위.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화.  화이욕작, 오장진지이무명지박.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무명지박, 부역장무욕.  불욕이정, 천하장자정. ) 

                  

 [道는 항상 하는 바가 없으나 하지 못하는 바도 없다. 
 만일 군주가 자연의 道를 능히 지킬 수 있다면 천하 만물은 장차 제 스스로 길러지고 번성하게 될 것이다.
 저절로 생성하고 발전하도록 만물에 맡기지 않고 인간들이 조작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러한 짓을 못하도록 자연의 德으로 진정시키리라. 
 이름 없는 道는 바로 자연 그 자체로서 아무런 욕망도 없게 마련이다.
 만물이 욕심을 내지 않은 고요한 상태로 있게 되면 천하는 저절로 안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 ] 

                   

〔道는 언제나 자연스러울 뿐 무엇을 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으나 하지 못하는 일도 없다.  
 그러므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우주의 변화를 관장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 세상의 임금이 이 道를 체득하여 무위자연의 이치로 만백성에 임한다면  

 이 세상은 저절로 잘 다스려져 번성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 만백성이 무위의 다스림에 만족치 못하고 작위와 욕망으로 자기 확장을 꾀한다면 

 결국은 분쟁과 다툼으로 평화와 번영을 누릴 수 없을 것이다.
 대체로 사람은 욕망에 사로잡히면 안정을 얻지 못하고 쉽게 흥분하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겉치레적이고 외부 지향적인 욕망의 구속에서 벗어나 자기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원점으로  

 복귀하여야 하는 것이다. 욕심을 버리면 마음의 안정을 얻어 고요히 정지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천하 만민이 이와 같은 상태에 있게 되면 임금의 무작위의 다스림도 효능을 보게 되어 

 그들의 생업은 저절로 안정되는 것이다. 〕 

 

 

 

 

               下 篇 ( 德 經 )  

 

 第三十八章.  ( 최상의 德은 德을 의식하지 않는 무위이다. ) 

 

 上德不德, 是以有德;下德不失德, 是以無德.  上德無為而無以為;下德為之而有以為. 

 (상덕부덕, 시이유덕 ; 하덕불실덕, 시이무덕.  상덕무위이무이위 ; 하덕위지이유이위.  

 上仁為之而無以為;上義為之而有以為.  上禮為之而莫之應, 則攘臂而扔之.
 (
상인위지이유이위 ;  상의위지이유이위.  상례위지이막지응, 양비이잉지. 
 故失道而後德, 失德而後仁, 失仁而後義, 失義而後禮.  夫禮者, 忠信之薄, 而亂之首.
 
(고실도이후덕, 실덕이후인, 실인이후의, 실의이후례.  부례자, 충신지박, 이란지수.
 前識者, 道之華, 而愚之始.  是以大丈夫處其厚, 不居其薄;處其實, 不居其華.  故去彼取此.
 
(전식자, 도지화, 이우지시.  시이대장부처기후, 불거기박 ; 처기실, 불거기화.  고거피취차. )
 

               

 [최상의 德은 스스로는 德이 있다고 의식하지 않으므로 실제로는 德이 있는 것이다 ; 
 낮은 德은 덕을 잃지 않으려는 집착에서 벗어나지 못하므로 실제로는 德이 없는 것이다. 
 최상의 德은 무위이며 자연에 맡길 뿐 작위함이 없다. 낮은 德은 유위이며 인위적으로 일을 처리하므로

 작위함이 있는 것이다.  최상의 인은 무위이며 남에게 인을 강요하지 않는다 ; 

 최상의 의는 유위이며 의도적으로 의를 행하면서 남에게도 의를 행하도록 강요한다.
 최상의 예는 유위이며 예법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팔을 잡고 억지로 끌어당겨 예법을 강요한다. 
 그러므로 무위자연의 道가 사라지면 무위자연의 德이 나타나고,

 무위자연의 德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인의 도덕이 나타나게 되고,
 인위적인 인의 도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의의 도덕이 나타나게 되고,

 인위적인 의의 도덕이 사라지면, 인위적인 예의 도덕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대체로 예의 도덕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참다운 마음이 엷어진 것이며
세상이 어지럽게 되는 시발점인 것이다. 
 세상의 일을 미리 내다보는 지식이란 道의 알맹이 없는 겉치레와 같은 것이며

 세상을 어리석고 못나게 만드는 시초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다운 사람은 두터운 쪽을 선택하고 엷은 것을 포기하며,

 알맹이 있는 곳에 머물고 겉치레 쪽에 있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예와 지를 버리고 道를 택하는 것이다. ]

               

〔德이 높다는 것은 道의 절대바탕에 머문 것이므로 모든 행위와 개념을 초월해 있기 때문에

 德이라는 말조차 필요없는 것이다. 
 德이 낮아지면 그 德을 회복하기 위해서 실질적인 德의 품성을 잃어버리고

 德이라는 말과 개념만 앞세우기 때문에 오히려 德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德이 높은 사람은 어떠한 행위도 인위적으로 하지 않으므로 남에게 강제로 德을 행하라고 강요하지 않지만 ;
 德이 낮은 사람은 인위적으로 일을 처리하므로 자신의 낮은 德을 높이 보이려고 온갖 수단을 모두 동원한다.

 어짐을 높이 내세우는 자는 자신은 어진 품성을 가지고 있어도 남에게 어진 행위를 하라고 강요하지 않지만;

 의로움을 높이 내세우는 자는 의도적으로 의로운 행위를 하면서 남에게도 의로운 행위를 하도록 강요한다.
 예절을 높이 내세우는 자는 자신이 의도적으로 예절 행위를 하면서 남들이 자기를 따라 오지 않으면

 강제로 규제를 만들어서 예절을 지키게 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자연적으로 있는 그대로의 본성을 해치는 행위이기 때문에 道를 잃어 버렸다고 하는 것이고

 절대바탕에 무위적으로 머물고 있는 道를 잃어 버리고 나서 신과 인간의 중간 매개의식인 德을 숭상하게

 되었으며, 그 德을 잃어 버리고 나서 이원화적인 인간 마음의 어짐을 중시하게 되었고,

 너그럽고 어진 마음을 잃어 버리고 나서, 올바름이라는 기준을 만들어서 義라는 개념을 중요시 하게 되었으며, 

 그 인간성의 기준이 되는 義마저 잃어버리자, 禮라는 행동규율을 만들어 강제로 예절을 지키도록 하게 하였다.
 대체로 禮라는 규율과 지침서를 만들게 된 것은 사람간의 정성과 믿음이 엷어져서 사회질서가
어지러워진 것이

 원인이며, 그 사회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사회규율로써 예절이 만들어진 것이다.
 앞에서 알려진 것들은 仁, 義, 禮의 개념을 말하는 것이며,

 道라는 이름으로 겉치장한 말 뿐으로 어리석음의 시작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진리를 아는 사람은 말없이 내면에 있으면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道의 본체에 머물지,
 겉으로 드러난 일시적인 행위로써 나타내지는 엷은것에 머물지 않으며 ;

 道의 실제에 머무르지 일시적인 겉치장에 머물지 않는다.
 그러므로 진실되게 덕을 실천하는 사람은 외면적인 행동과 이론적인 겉치레의 말은 하지 않고,

 말없이 깊은 내면속에 있는 道의 본체에 머문다는 것이다. 〕

 

 

  第三十九章.  ( 높아 지려고 한다면 반드시 낮은 것을 바탕으로 삼아야 한다. )

  

 昔之得一者:天得一以清;地得一以寧;神得一以靈;谷得一以盈;萬物得一以生; 

 (석지득일자 ; 천득일이청 ; 지득일이녕 ; 신득일이령 ; 곡득일이영 ; 만물득일이생 ;

 侯王得一以為天下貞.  其致之, 天無以清, 將恐裂;地無以寧, 將恐發;
 (왕득일이위천하정.  기치지, 천무이청, 장공렬 ; 지무이녕, 장공발 ; 
 

 神無以靈, 將恐歇;谷無以盈, 將恐竭; 萬物無以生, 將恐滅;侯王無以貴高, 將恐蹶.
 (신무이령, 장공헐 ; 곡무이영, 장공갈 ;
만물무이생, 장공멸 ; 후왕무이귀고, 장공궐.
 
故貴以賤為本, 高以下為基.  是以侯王自稱孤· 寡· 不穀.  此非以賤為本耶?  非乎?

 (고귀이천위본, 고이하위기.  시이후왕자칭고· 과· 불곡.  차비이천위본야 ?  비호 ? 

 故致數譽無譽.  不欲琭琭如玉, 珞珞如石. 

 (고치수예무예.  불욕녹녹여옥, 낙낙여석. ) 
                  
 
[태초에 하나를 얻은 것이 있으니 ; 하늘이 그 하나를 얻음으로 맑아지게 되었고 ;
 

 땅이 그 하나를 얻음으로 편안하게 되었으며 ; 신은 그 하나를 얻음으로 영험스럽게 되었고 ;

 골짜기는 그 하나를 얻음으로 가득 차게 되었으며 ; 만물이 그 하나를 얻음으로 생장하게 되었고 ;

 임금은 그 하나를 얻음으로 천하 세상을 바르게 다스리게 되었다.  
 그러나 그 하나를 버리면 달라진다. 이렇게 되게 만든 것이 곧 그 하나이다. 
 맑지 못한 것은 하늘이 아니라고 하면, 장차 하늘이 무너지지 않을까 두려워 할 것이며 ; 
 편안하지 못한 것은 땅이 아니라고 하면, 장차 땅이 치솟아 오르지 않을까 두려워 할 것이며 ; 
 영험하지 못한 것은 신이 아니라고 하면, 장차 신의 영험함이 그치지 않을까 두려워 할 것이며 ; 
 가득 채우지 못하면 샘물이 아니다라고 하면, 장차 샘물이 마르지 않을까 두려워 할 것이며 ;  
 만물을 생장시키지 못하면, 장차 멸망하지 않을까 두려워 할 것이며 ;  
 고귀한 성품을 지니지 않고서는 후왕이 될 자격이 없다고 하면,

 장차 후왕이 권좌에서 물러나지 않을까 두려워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귀한 것은 천한 것을 근본으로 하고,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밑바탕으로 한다.  
 그래서 임금은 스스로 외롭다· 덕이 부족하다· 선하지 못하다, 하며 낮추어 말한다.
 이것이 바로 천한 것을 근본으로 삼는 것이 아니겠는가 ?  정말 그렇지 아니한가 ? 
 그러므로 최고의 명예에 이르는 것은 명예를 얻지 않는 것이다.  
 찬란하게 빛나는 옥같이 되기를 바라지 말고, 돌처럼 천하여 드러나지 않게 하라. ]
 

                 

〔하나 즉 道는 천지 만물의 생성과 소멸의 근원이며 그것과 필적하게나 비교될 대상이 없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절대성과 항존성을 지닌 형이상학적 실체이다. 

 道는 짝없이 독립해 있는 영구 불멸의 존재이기도 하다.
 道는 천지 만물의 시원이며 그것에 필적할 만한 것이 없는 유일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하나인 것이다.
 그것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므로 언제나 변함이 없으며, 어디에나 있다.

 道는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법칙이기도 하다.
 태양과 지구의 운행, 동식물의 생장, 춘하추동의 교체, 신의 영험스러움은 다 道의 이법에서 나온 것이다.
 만일 道의 이법이 없다면 태양과 지구가 제위치를 지키는 것도, 동식물이 나고 자라는 것도,

 봄과 여름의 바뀜도, 신의 영험스러움도 존속할 수 없을 것이다.
 만백성의 으뜸인 임금은 道의 이법을 다스림의 근본으로 해야 한다. 

 임금의 道가 이법에서 벗어나고자 하면 이미 그의 몰락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귀한 것도 알고 보면 천한 것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높은 것은 낮은 것을 밑바탕으로 해야만 능히 그 높이를 이룰 수 있다.
 진실로 높은 것과 존귀한 것은 언제나 교만을 모르고 스스로를 낮추어 아래에 처하기를 싫어하지 않는다.
 백성들의 생사여탈권을 쥔 군주가 자신을 지칭하는 '나'라는 뜻의 말을 고니, 과인이니, 불곡이니 하는

 표현으로 낮추어 일컫는 것은 존귀함은 비천함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 아닐까. 

 군주의 존귀한 지위도 아래에 미천한 만백성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

 

 

  第四十章.  ( 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 道의 움직임이다. )

                 

 反者道之動;弱者道之用.  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
 
(반자도지동, 약자도지용.  천하만물생어유, 유생어무. )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道의 움직임이며, 부드럽고 약하다는 것이 道의 작용이다. 
 세상의 만물은 천지음양의 기운인 유에서 나오고, 유는 형체가 없는 道인 무에서 나오고 있다. ]

                 

〔道는 우주의 삼라만상에 골고루 스며 있고 가지 않는 곳이 없으나 언제나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道의 작용은 무리가 없고 위력적인 힘도 구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것은 부드럽고 약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도 무리한 짓을 하면 자신의 몰락을 재촉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물은 부드럽고 수동적이나 강하고 억센 것을 능히 제압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道의 작용하는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우주의 삼라만상은 다 有에서 나온다.  
 이 有는 無의 작용에 의하여 구체화되고 현상화된 것이다. 그리고 이 무는 곧 道로서 모든 존재의 근원이다.
 그것은 형상이 없으므로 우리의 감각 기관에 의해 지각될 수 없다. 

 또한 논리적 사고에 의해 인식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그러므로 道란 모든 만물이 생겨난 근원인 내면 속의 바탕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

 

 

  第四十一章.  ( 道는 내면의식과 일체가 되어야 이룰 수 있다. ) 

                 

 上士聞道, 勤而行之;中士聞道, 若存若亡;下士聞道, 大笑之.  不笑不足以為道. 

 (상사문도, 근이행지 ; 중사문도, 약존약망 ; 하사문도, 대소지.  불소부족이위도.
 
故建言有之:明道若昧;進道若退;夷道若纇;上德若谷;太白若辱;廣德若不足;建德若偷; 

 (고건언유지 : 명도약매 : 진도약퇴 ; 이도약뢰 ; 상덕약곡 ; 태백약욕 ; 광덕약부족 ; 건덕약투 ; 
 質真若渝;大方無隅;大器晚成;大音希聲;大(天)象無形;道隱無名.  夫唯道善貸且成.
 
(질진약투 ; 대방무우 ; 대기만성 ; 대음희성 ; 대(천)상무형 ; 도은무명.  부유도선대차성. )
 

                 

 [뛰어난 사람은 道를 들으면 힘써 그것을 실천하며 ; 보통 사람은 道를 들으면 반신반의하며 ;

 수준이 낮은 사람은 道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 
 수준이 낮은 사람이 비웃음을 살 정도가 아니라면 참다운 진리라고는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부터 전해 오는 격언에 이런 말이 있다. 

 참으로 밝은 道는 얼른 보기에 어두운 것 같고 ; 앞으로 나아가는 道는 마치 뒤로 물러나는 것처럼 보이며 ;

 평평하고 일정한 道는 마치 울퉁불퉁 치우쳐 있는 것 같고 ;
 아주 높은 德은 마치 깊은 골짜기처럼 텅 비어 있는 것 같고 ; 아주 희고 깨끗한 것은 마치 더럽게 보이며 ;
 광대하게 넓은 德은 마치 모자란 듯이 보이며 ; 당당하게 내세우는 德은 마치 교활하게 보이며 ; 
 바탕이 진실한 것은 마치 변덕스럽게 보이며 ;  네모 난 것이 크면 모서리가 없는 것 같이 보이며 ;

 그릇이 크면 마치 채워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며 ; 소리가 너무 크면 도리어 그 소리가 귀에 잘 들리지 않으며 ;

 큰 형상은 도리어 그 형체를 알 수 없으며 ; 눈에 띄지 않는 道는 이름을 붙일 수가 없다. 

 대체로 道란 내면의식과 하나되어 바르게 시작하는 것이며 또한 바르게 이루는 것이다. ]

                 

〔내면의 정신적인 가치를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道에 대한 가르침을 들으면

 즉시 배운대로 믿음을 가지고 부지런히 실천하며 ;
 보통 수준의 사람은 道에 대한 가르침을 들으면 道를 긍정하는 것 같기도 하고,

 道는 없는 것이라고 무시해 버리는 것 같기도 하며, 수준이 낮은 사람은 쾌락과 물질적인 욕망에만 관심을 가질뿐,  

 道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으므로 道를 들으면 크게 비웃는다. 
 외면에 나타난 물질적인 현상만 진실된 것이라고 믿는 수준 낮은 사람들이 비웃지 않고 긍정을 나타낸다면

 그것은 진실한 道가 아니다.  그러므로 옛부터 내려온 격언이나 선인들의 말씀을 보면 :  
 道는 모든것의 근원이며 무지의 어둠을 벗어난 밝음이지만,

 무지의 입장에서 보는 道는 지식의 너머에 있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어두움인 것이며 ;
 道, 즉 근원을 향해서 깊이 들어가는 것은 마치 道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며 ;
 道는 본래 전체가 평평하게 같은 하나이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마치 온갖 경계가 있는 것처럼 각각 따로 떨어져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며 ;
 아주 높은 德은 큰 포용력을 지니고 있으므로, 넓은 자비심과 드러나지 않는 보편적인 마음은

 가장 낮은곳에 자리하고 있는 산골짜기처럼 드러나지 않으며 ;
 지극히 순수한 도인은 그 마음과 행동이 경계가 없어 자유롭기 때문에,

 속세인이 볼 때에는 그 순수함을 알아 보지 못하고 불순하게 볼 수가 있으며 ; 
 경계없는 보편적인 德은 모든 곳에 광범위하게 펼쳐져 있지만,

 이원적이며 상대적인 관점에서는 마치 무엇인가 모자라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며 ;
 보편적인 도덕성의 실천을 당당하게 내세우는 사람은,

 德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관점에서는 마치 제 잘난척하며 교활해 보이기도 하며 ;
 道의 본체인 절대바탕은 움직임이 전혀 없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한 속세인에게는 마치 그것이 변하여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며 ;
 사람이 보고 아는 것은 어떤 조건화된 한계의 범주안에 있어서,

 무한하게 큰 것은 인간의 감각기능으로는 감지가 되지 않으므로 없는 것처럼 여겨지며 ;
 무한하게 큰 그릇은 그 속을 완전하게 다 채울 수가 없으며 ; 
 귀의 수용능력을 초과하는 큰소리나 진동수가 높은 초음파 소리는 사람의 귀로도 들리지 않으며 ; 
 하늘은 모양이 없으므로 그 크기 또한 알 수 없는 무한 그 자체이며 ;
 道는 일원적인 절대본체이기 때문에 이름을 붙히는 순간 관념적인 道가 되어

 이원적인 개념으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에 실재하는 道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다.
 대체로 道는 무한하게 크기 때문에 알 수도 없고, 눈에 보이지도 않으므로

 처음부터 의식과 하나가 되어야 하며, 결국은 하나로 완성되는 것이다. 〕
               


 第四十二章.  ( 아집과 욕망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은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 )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為和.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만물부음이포양, 충기이위화.     

 人之所惡, 唯孤· 寡· 不穀, 而王公以為稱.
 
(인지소오, 유고· 과· 불곡, 이왕공이위칭. 
 故物或損之而益, 或益之而損.  人之所教, 我亦教之.  強梁者不得其死, 吾將以為教父.
 (고물혹손지이익, 혹익지이손.  인지소교, 아역교지.  강량자불득기사, 오장이위교부. ) 

                 

 [道가 하나의 기운을 낳고, 하나의 기운이 나뉘어 음과 양 두 기운을 낳으며,

 음과 양 두 기운이 합하여 제 삼의 기운이 되었고, 그 세 기운에서 만물이 생겼다. 

 만물은 음의 기운을 등에 지고 양의 기운을 앞에 안아 충화의 기운에 의해 조화를 이루어 가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으로 외롭다느니 부족하다느니 선하지 못하다느니 하는 말이 있는데,

 임금은 이런 말을 자신들의 호칭으로 쓰고 있다.
 그러므로 사물은 손해를 보는 것이 도리어 이익이 되는 수가 있고,

 그 이익이 되는 것에 도리어 손해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남들이 가르쳐 준 것을 나 또한 가르치려고 한다. 

 성질이 강포하고 사나운 자는 제 명대로 살지 못한다. 나는 이것을 가르침의 교훈으로 삼으려 한다. ]

                 

〔道는 만물의 원리로서 하나의 기운을 낳고 이 하나의 기운은 음과 양의 두 기운으로 분화되며, 
 이 음과 양의 두 기운이 친화하고 화합하여 충화의 새로운 기운을 낳게 되는 것이다. 
 천하 만물은 음양의 두 기운과 충화의 기운으로 생성되고 화육되며 번성하게 되는 것이다.
 道의 이법을 올바르게 깨달은 이는 자신의 몸가짐을 온화하고 겸손하게 가지며 친화와 화합으로 시종일관 한다. 
 그러므로 만인 중 지존의 위치에 있는 임금은 자신의 호칭으로 고니, 과인이니, 불곡이니 하며

 세상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표현을 쓰고 있는 것이다.
 겸손함과 온후함은 남과 더불어 화락하게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 보면 손실이 이익이 되고, 이익이 도리어 손실이 되는 경우가 많다. 
 자연의 섭리란 흘러 넘치는 것은 덜어내고, 빈 것은 채워 주며 강한 자는 억제하고, 약한 자는 부축해준다.
 자연의 섭리에는 조화와 균형이 있다.  천도(자연의 섭리)는 인생의 위대한 스승인 것이다. 
 사람들은 약한 것보다는 강한 것이 좋다고 생각하며, 부드러운 것보다는 억센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약한 것에서 도리어 강함을 보아야 하며, 부드러운 것은 능히 억센 것을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억세고 사나운 사람은 천수를 누리지 못한다. 나는 이 말을 나의 가르침의 근본으로 삼고자 한다. 〕

 

 

  第四十三章.  ( 무위가 인위적인 것보다 유익하다. )

                 

 天下之至柔, 馳騁天下之至堅.  無有入無間, 吾是以知無為之有益. 

 (천하지지유, 치빙천하지지견.  무유입무간, 오시이지무위지유익.    

 不言之教, 無為之益, 天下希及之.
 
(불언지교, 무위지익, 천하희급지. ) 

                 

 [이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것이, 세상에서 제일 강하고 단단한 것을 향하여 달려간다. 
 형체가 없으므로 틈이 없는 곳도 마음대로 스며들며, 

 나는 이것으로 무위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하다는 것을 안다.  
 말 없는 가르침으로 억지로 행하는 바 없이 무위로써 이 세상에 유익함을 주는 것,

 이를 행 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주 드물 것이다. ]

                 

〔물은 일정한 형체가 없이 부드럽지만 단단한 모든 땅을 적시며 흘러 다니고, 
 공기 또한 눈에 보이지 않고 형체가 없지만, 공기가 가지고 있는 바람과 온도와 습도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생물체의 생존을 좌우한다.  
 나는 이것으로써 있는 그대로의 자연이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함을 주고 있음을 알고 있다.
 강제적으로 이론적인 개념을 내세우며 말로 가르치지 않고, 자연과 하나로 어울려서 말 없는 실천으로

 가르쳐 주는데, 세상에는 이런 무위적인 가르침을 펼칠 수 있는 무위도인은 극히 드물다. 〕

 

 

  第四十四章.  ( 만족할 줄 알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

                  

 名與身孰親 ?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是故甚愛必大費;多藏必厚亡. 

 (명여신숙친 ?  신여화숙다 ?  득여망숙병 ?  시고심애필대비 ; 다장필후망.     

 知足不辱, 知止不殆, 可以長久.
 (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 

                 

 [명예와 생명 중 어느 쪽이 더 절실한가 ?  생명과 재물 중에 어느 쪽이 더 소중한가 ? 

 얻는 것과 잃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괴로운가 ? 그러므로 재물을 지나치게 아까워하면 반드시 많이 쓰게 되고 ;

 재물을 지나치게 많이 쌓아 두면 반드시 크게 잃게 된다. 
 만족할 줄 알면 부끄러운 변을 당하는 일이 없고, 적당히 그칠 줄 알면 위험한 꼴을 당하지 않아,

 오래도록 편안히 있을 수 있는 것이다. ]

                 

〔명예는 자기가 살아서 숨쉬고 활동할 때에만 유효한 것이고,

 목숨이 끊어진다면 명예가 있던 없던 자신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
 목숨보다 재물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마 없겠지만,

 재물에 대한 애착심이 강한 사람은 숨이 끊어져 가는 순간에도 집착을 버리지 못한다. 
 명예와 재물을 얻는 것과 생명을 잃는 것 중에, 바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자신의 생명과 바꿀 수 있겠는가 ?
 그러나 명예나 재물에 너무 집착하면, 경미한 모욕이나 불명예에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여

 목숨조차 포기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재물도 너무 많이 쌓아 두면, 잃을 때 당연히 많이 잃게 되므로

 항상 적정선을 정하여 가급적 그 범위 내에서 오차를 줄여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상황에 만족할 줄 알면 욕심도 사라져 결코 무리한 행동을 하지 않음으로 해서

 남에게 모욕을 당할 일도 없을 것이며, 무엇인가 얻을려는 행위를 그만두면

 그 행위로 인한 위험은 피할 수 있으므로 오래도록 편안히 지낼 수 있는 것이다. 〕

 

 

  第四十五章.  ( 맑고 깨끗하면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다. )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대성약결, 기용불폐.  대영약충, 기용불궁.  대직약굴, 대교약졸, 대변약눌.     

 躁勝寒靜勝熱.  清靜為天下正.
 (조승한정승열.  청정위천하정. )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은 오히려 모자란 듯이 보이지만, 그 쓰임은 아무리 써도 문제될 것이 없다.
 완전히 가득 차 있는 것은 오히려 비어 있는 듯 보이나, 그 쓰임은 아무리 써도 끝이 없는 것이다. 
 완벽하게 곧은 것은 오히려 굽은 것처럼 보이고, 완전하게 이루어진 것은 어딘가 서툴러 보이며, 
 완벽하게 잘 하는 말은 어눌한 것처럼 들린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가만히 있으면 더위를 이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맑고 깨끗하면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다. ]

                 

〔완전하게 이루어진 궁극적인 道는 우리의 인식 범위를 초월해 있는 상태이므로

 오히려 불합리한 결함이 있어 보이는 것 같지만 그것은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 작용하는 道의 자연원리는 아무런 문제없이 전체적으로 조화있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道는 충만되어 있는데 우리들의 불완전한 의식으로 인식 될 때는 마치 아무것도 없는 텅 빈것 같이 보이지만 

 그 활용적인 측면에서는 무궁무진한 다양성으로 끝이 없이 생성되고 소멸하는 것이다.
 道 자체는 곧은 것이므로 항상 그대로 있지만 사람의 의식자체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를 올바르게 보지 못하며, 지극히 미세하고 오묘한 것들이 오히려 거칠어 보이는 것은,

 마치 순수한 햇빛이 어두워 보이는 것과 같으며,
 물이 흐르듯한 거침없는 웅변술은 오히려 더듬거리는 것처럼 들린다.
 부지런히 움직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가만히 있으면 더위를 이기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맑고 깨끗하면 천하를 안정시킬 수 있다. 〕

 

 

 第四十六章.  ( 만족할 줄 알면 부족함이 없다. )

                 

 天下有道, 卻走馬以糞.  天下無道, 戎馬生於郊. 

 (천하유도, 각주마이분.   천하무도, 융마생어교.    

 禍莫大於不知足;咎莫大於欲得.  故知足之足, 常足矣.
 
(화막대어불지족 ; 구막대어욕득.  고지족지족, 상족의. ) 

                 

 [천하에 道가 행하여지면 경주마나 군마도 거름을 나르는 농마로  쓰이게 된다.  
 천하에 道가 행하여지지 않으면 농마도 징발되어 병마가 될 것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은 없고 ; 얻으려고만 하는 욕심보다 더 큰 잘못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있는 그대로에 만족할 줄 알면 언제나 넉넉한 것이다. ]

                 

〔이 세상에 道가 펼쳐지면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시대가 되어 천리마와 같은 훌륭한 군마도

 거름을 나르며 농사일을 돕는 말로 쓰인다.
 세상에 道가 사라지면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 때문에 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며

 모든 말들은 징발되어 마굿간의 부족으로 새끼들이 들판에서 태어난다. 
 바라는 바가 이루어졌음에도 만족할 줄 모른다면 더욱 큰 재앙을 불러 올 것이며 ;
 욕망이 생겨나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죄가 없으며, 허물 중에는 욕망을 채우는 것보다 더 큰 허물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넉넉함을 안다면 욕망이 사라져 평온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항상 전체적인 충만감을 지니며 자기의 삶을 평안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

 

 

  第四十七章.  ( 참다운 지식은 힘쓰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루어진다. )

                 

 不出戶知天下;不闚牖見天道. 其出彌遠, 其知彌少. 是以聖人, 不行而知, 不見而名, 不為而成.
 
(불출호지천하 ; 불규유, 견천도.  기출미원, 기지미소.  시이성인, 불행이지. 불견이명, 불위이성. )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 수 있으며 ; 창밖을 내다보지 않아도 하늘의 이치를 알 수 있다.
 멀리 나가면 나갈수록 아는 것은 더욱 더 적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행하지 않고도 알 수 있으며, 눈으로 보지 않고도 저절로 소식을 들으며 ;

 억지로 이루려고 힘쓰지 않아도 이루게 될 것이다. ]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천하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의 어떤 사건이나 일반적인 사물,

 운행상태 같은 하나의 대상적인 사건이나 사물의 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전체 세상에 일어나는 근본원리를 깨치는 것이며 ;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의 운행상태를 알기 위하여 굳이 창문을 통해서 하늘을 내다 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외부의 대상세계(육체, 마음)로 향하면 향할수록 자기의 참본성에 대한 내면의 자각은

 점점 더 적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聖人은 세상에 나타난 모든것이 나오는 근본바탕에 안주해 있으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저절로 알 수 있으며,
 聖人은 자기의 깨달은 증거를 억지로 보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 소식을 보고, 듣게 되며,
 또한 聖人은 무엇인가를 성취하려고 의도적으로 애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즉 노자의〈무위자연의 道〉인 것이다. 〕

 

 

 第四十八章.  ( 세상은 언제나 무위로써만 얻을 수 있다. )

                  

 為學日益, 為道日損.  損之又損, 以至於無為.  無為而無不為.   

 (위학일익, 위도일손.  손지우손, 이지어무위.  무위이무불위. 

 取天下常以無事, 及其有事, 不足以取天下.
 
(취천하상이무사, 급기유사, 부족이취천하. ) 

                 

〔학문은 배우면 나날이 지식이 늘어 나지만, 道는 닦으면 나날이 지식을 덜어내는 것이다.
 지식을 완전히 덜어내면 무위의 경지에 이른다. 

 무위의 경지에 이르면 행하지 않아도 모든 일은 저절로 잘 이루어지는 것이다.
 세상은 언제나 무위로써만 얻게 될 것이다. 할일이 있으면 그 일 때문에 천하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

                 

〔모든 학문적 지식과 분별적 지성은 결국 자기의 정체성을 강화하는 일이므로

 배우면 배울수록 지식이 더해 지지만  道를 닦는다는 것은 육체가 나라는 생각을 덜어내고,

 그 존재의식의 뿌리인 나라는 생각이 나온 원인 자체를 없애는 것이다.
 마음의 욕망과 집착, 학문으로 얻은 지식을 덜어내고, 또 덜어내면 결국은' 내가 없는' 즉 무위에 도달하는 것이다.  
 무위란 삼라만상이 나타나기 이전의 원초적인 절대본체의 바탕이므로,

 모든 것이 나온 그 근원이 되면 불가능이란 없는 것이다.
 천하(道)를 취하려고 한다면 항상 아무 할일이 없어야 하는데,

 만약 할일이 있다면 그일 때문에 천하와 하나가 되지 못해 얻을 수 없는 것이다.   
 道의 측면에서 보면 무엇인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은 전체와 하나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므로

 道를 완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第四十九章.  ( 성인은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

                  

 聖人無常心, 以百姓心為心.  善者, 吾善之;不善者, 吾亦善之;德善. 

 (성인무상심, 이백성심위심.  선자, 오신지 ; 불신자, 오역신지 ; 덕신.    

 信者, 吾信之;不信者, 吾亦信之;德信.
 
(신자, 오신지 ; 불신자, 오역선지 ; 덕선.
 聖人在天下, 歙歙為天下渾其心, 百姓皆注其耳目, 聖人皆孩之.
 
(성인재천하, 흡흡위천하혼기심, 백성개주기이목, 성인개해지. ) 

                 

 [聖人은 일정하게 고정된 마음이 없으므로, 모든 백성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聖人은 선한 사람에게 선하게 대하고 ; 선하지 못한 사람도 선하게 대한다 ; 이것은 聖人의 德이 선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믿는 사람에게 믿음으로 대하고 ; 자기를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역시 믿음으로 대한다 ; 
 이것은 聖人의 德이 믿음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聖人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자신의 집착과 고정관념을 버리고 오직 온 백성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삼는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두 성인의 말과 행동을 보고 들으며 뒤따라가니,

 聖人은 모든 백성들을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이 되도록 만든다. ]

                 

聖人에게는 사사로운 이기적인 마음이 없기 때문에 아집과 편견을 일찌감치 극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 만백성의 보편적인 마음과 자기의 마음을 하나로 동화시킨다. 
 聖人은 선한 사람도 선하지 못한 사람도 다 선의로 차별 없이 대우하므로 聖人은 道를 체득한 사람이다. 
 道의 초월적인 입장에서 보면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은 인간의 상대적 가치 판단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道와 하나가 된 성인이 임금이 되어 이 세상을 다스릴 때 자신의 마음을 비운 상태에서

 이 세상의 만백성의 마음과 혼연일체가 된다. 聖人은 선한 사람도 선하지 못한 사람도,

 신의가 있는 사람도 신의가 없는 사람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德을 만백성에게 골고루 베풀어 주는 것이다. 
 백성들은 자연히 성인의 거동에 관심을 쏟게 되며,  

 聖人은 천하 만백성을 무지 무욕상태의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마음이 되도록 만든다. 〕
                   


 第五十章.  ( 사람의 태어남도 죽음도 다 하늘이 주신 것이다. )

                 

 出生入死.  生之徒, 十有三;死之徒, 十有三;人之生, 動之死地, 十有三.  夫何故?  

 (출생입사.  생지도, 십유삼 ; 사지도, 십유삼 ; 인지생, 동지사지, 십유삼.  부하고 ?  

 以其生, 生之厚.   蓋聞善攝生者, 陸行不遇兕虎, 入軍不被甲兵;
 (이기생, 생지후.  개문선섭생자, 육행불우시호, 입군불피갑병 ;
 兕無所投其角, 虎無所措其爪, 兵無所容其刃.  夫何故?  以其無死地.
 (시무소투기각, 호무소조기조, 병무소용기인.  부하고 ?  이기무사지. ) 

                 

 [사람이 태어난다는 것은 곧 죽음으로 들어간다는 것이다.  
 사람중에 그나마 그 수명을 다하고 사는 사람이 열 명중에 세 명쯤 있고 ; 

 태어나기는 하였지만 제대로 살아보지 못한 생명이 열 명중에 세 명쯤 있으며 ;
 제대로 살 수 있는데도 공연히 움직여 죽음으로 가는 사람도 열 명중에 세 명쯤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  그것은 생에 대한 애착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들리는 소문에 자신을 잘 다스리며 살아가는 사람은 육지에서 코뿔소나 호랑이를 만나도 피하지 않고,
 전쟁에 임하더라도 갑옷과 병기를 착용하지 않으며 ; 코뿔소도 그런 사람에게는 뿔로 찌르지 못하고,
 호랑이도 발톱으로 할퀴지 못하며, 창칼도 찌르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

 그런 사람에게는 죽음이 없기 때문이다. ]

                 

〔육체의 태어남은 죽음을 함께 동반하기 때문에 자기자신을 육체라고 하면 자기는 출생과 동시에

 죽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태어난 생명중에 3할은 제 수명을 다하고 죽으며 ;

 어렵게 태어나기는 하였으나 제대로 삶을 유지하지 못하고 중간에 죽어버린 생명이 3할이며 ;
 나머지 3할도 곧 죽어야 할 육체를 자기자신으로 동일시 하였으니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이다.
 자기가 태어났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이 세상 보통사람들은 죽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삶을 살고 있는데

 이는 왜 그러한 것인가 ?  이것은 진실한 자기의 본성을 잃어 버리고 환상의 육체를 자신으로 동일시하며

 살아가므로 본래의 나는 죽은 삶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육체를 자기자신으로 여기는 것에서 벗어난 사람,

 즉 도인은 목숨에 대한 어떠한 집착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숲속이나 산속에서 코뿔소나 호랑이와 마주쳐도 무서워하지 않는 것은

 육체를 자신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육체의 죽음과 위험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도인은 몸이 없기 때문에 잃어 버릴 것도 없고 보호해야 할 것도 없이 자유롭기에

 전쟁터에서도 갑옷과 무기가 필요 없으며, 도인에게는 육체가 없으므로 코뿔소가 뿔로 들이받을 곳이 없으며, 
 도인에게는 육체가 없고 전체가 하나로 동화되어 있으므로 호랑이도 발톱으로 할킬 곳이 없으며, 
 도인에게는 모양도 없고 어떤 속성도 없으므로 어떤 공격도 먹혀 들지 않는 것이다.  
 도인에게 이러한 현상들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  그것은 태어난 육체는 죽음이 있지만,

 도인은 자기육체와 동일시 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이 없는 것이다. 〕

 

 

 第五十一章.  ( 道는 德을 낳고 德은 만물을 기른다. )

                  

 道生之, 德畜之, 物形之, 勢成之.  是以萬物, 莫不尊道而貴德. 

 (도생지, 덕축지. 물형지, 세성지.  시이만물, 막부존도이귀덕.    

 道之尊, 德之貴, 夫莫之命而常自然. 

 (도지존, 덕지귀, 부막지명이상자연. 
 故道生之, 德畜之;長之育之;亭之毒之;養之覆之. 生而不有, 為而不恃, 長而不宰, 是謂玄德.
 
(고도생지, 덕축지 ; 장지육지 ; 정지독지 ; 양지복지. 생이불유, 위이불시, 장이부재, 시위원덕. ) 

                 

 [道는 德을 낳고, 德은 만물을 기르며, 물체마다 형태를 이루게 하며, 환경에 따라 그들을 성장시킨다. 
 만물은 어느 것이나 道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 없고, 그 德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없는 것이다. 
 道를 존경하는 것과 德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저절로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道에서 태어나고 德이 그를 기르고 ; 생장시키고 육성시키며 ; 안정시키고 돈독하게 하고

 키워 주고 감싸준다. 道는 만물을 낳지만 소유하려 하지 않고, 만들었지만 자랑하지 않으며,

 길러내면서 지배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을 현묘한 德이라고 한다. ]

                 

〔절대바탕인 道가 이원화된 현상세계에 비치는 상태가 바로 보편적 존재의식인 德이며,

 德이 만물을 길러주는 것이다.

 만물은 어떤 개별적인 존재로써 모양이 형성되며 德에 의지하여 성숙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만물은 자기가 나온 근원인 道를 공경하고, 자기를 길러주는 德을 소중하게 따르는 것이다.
 道를 존중하고 德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사람들이 道와 德을 인위적인 숭배대상으로 정해서

 숭상하는 것이 아니고 항상 있는 그대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道는 만물을 낳아 주고, 길러 주고, 성장시켜 주고, 이루어지게 하고, 만사형통하게 하고,

 병을 고쳐 주고, 먹여 주고, 보살펴 준다.
 만물을 낳지만 그 낳은 것에 대하여 자기것이라고 집착하지 않고, 만물을 만들었지만

 내가 만들었다고 자랑하지 아니하며, 만물을 길러내면서도 결코 지배하려 하지 않으니,

 이것을 내면에 숨어서 알 수 없는 순수한 보편적의식, 즉 현덕이라고 한다. 〕  

 

 

 第五十二章.  ( 道는 만물의 근원적 지혜이며 영구 불변의 실재이다. )

                 

 天下有始, 以為天下母.  既得1其母, 以2知其子, 既知其子, 復守其母, 沒身3不殆.
 
(천하유시, 이위천하모.  기득기모, 복지기자, 기지기자, 부수기모, 몰신불태.
 塞其兌, 閉其門, 終身不勤.  開其兌, 濟其事, 終身不救.  見小曰明, 守柔曰強.   

 (새기태, 폐기문, 종신불근.  개기태, 제기사, 종신불구.  견소왈명, 수유왈강. 

 用其光, 復歸其明, 無遺身殃;是為習常.
 (용기광, 복귀기명, 무유신앙 ; 시위습상. ) 

 (1. 得 : 原錯為「知」.據《古逸叢書》本、馬王堆本改.  2. 以 : 原錯為「復」.  3. 身 : 原錯為「其」.)

                 

 [천하에는 시초가 있으니, 그것을 천하의 어머니라고 한다.

 이미 모체를 알았으니 돌이켜 그 자식을 알 수 있는 것이며,
 이미 자식을 알고 돌이켜 그 어머니를 지키면 몸이 다할 때까지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욕망이 일어나는 구멍을 막고 물욕이 들어오는 문을 닫으면 몸이 다할 때까지 근심이 없을 것이다.
 욕망의 구멍을 열고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목숨이 다할 때까지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작은 것을 잘 볼 수 있는 것이 밝은 것이요, 부드럽고 약한 것을 잘 지키는 것이 강한 것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빛을 이용하여 밝음의 본바탕인 道로 되돌아가게 한다면

 자신의 몸에 재앙이 닥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것을 道의 영원함을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

                 

〔道는 천하만물의 시초요, 천하가 나온 근원이다. 

 그 근원은 이미 이전부터 계속 있어 왔던 것이며 그 자식인 천하는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다.
 道를 체득한 사람은 사물의 지엽적인 것과 피상적인 것에 구애받지 않을 것이며,

 道에 어긋나는 무리한 행위를 하여 몸을 망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가 모든 욕망이 일어나는 자기 내부의 구멍을 막아 버리고 바깥에서 들어오는

 물욕과 쾌락의 문을 닫아 버린다면 마음의 안정을 얻어 목숨이 다할 때까지 고달프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쾌락에 이끌려 다니면서 욕망을 충족시키려고 한다면 몸이 죽을 때까지 순탄치 못할 것이다.
 미세한 것을 볼 수 있어야 밝은 지혜라고 말할 수 있고, 부드러움을 지킬 수 있어야 강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道는 스스로 강한 체 하지도 않고 무리한 힘을 구사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부드럽고 약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천하의 그 무엇도 그것을 지배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道는 진실로 강한 것이다.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슬기로움으로 만물의 본바탕인 道에 되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의 몸에 재앙을 끼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道는 만물의 근원적 지혜요, 영구 불변의 실재이다.

 사람은 모름지기 이와 같은 道의 근원적 지혜와 영구 불변성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

 

 

 第五十三章.  ( 大道는 평탄한데 사람들은 위험한 지름길을 좋아한다. )

                  

 使我介然有知, 行於大道, 唯施是畏.  大道甚夷, 而民好徑.   

 (사아개연유지, 행어대도, 유시시외.  대도심이, 이민호경.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服文綵, 帶利劍, 厭飲食, 財貨有餘;是謂盜夸. 非道也哉!
 
(조심제, 전심무, 창심허 ; 복문채, 대리검, 염음식, 재화유여 ; 시위도과. 비도야재 ! ) 

                 

 [만약 나에게 조그마한 지혜라도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게 된다면,

 큰길로 향해 가도록 하겠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베푸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큰 길은 지극히 평탄한데 백성들은 위험한 지름길을 좋아한다. 

 궁궐은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는데 백성들의 논밭에는 풀이 무성하고, 창고는 텅 비어 있으나 ; 
 왕과 대신들은 오색으로 수놓은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허리에는 날카로운 칼을 차고 있으며,

 맛있는 음식도 싫증을 내며, 재물은 남아돈다. 이것은 도둑들의 사치이다. 어찌 道라고 할 수 있겠는가 ! ]

                 

〔나에게 큰 道를 행할 만한 지혜가 있다면, 내면의 道를 추구하고 德을 베풀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베푸는 것을 두려워한다.
 무위자연의 道는 지극히 안전하고 평탄한데 일반 백성들은 사악하고 신속한 지름길만을 가고자 한다. 
 더구나 위정자들이 자신들의 이기적 욕심만을 채우기 위해서 속임수와 착취로써 백성을 대한다면

 이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이다.  궁궐은 지나치게 깨끗히 단장되어 있지만,

 백성들의 논밭은 전쟁과 부역으로 풀만이 무성하며, 곳간은 완전히 텅텅 비어 있는데도 ;
 왕과 귀족대신들은 호화로운 궁궐에서 화려한 비단옷을 입고, 칼을 차고 으시대고 다니면서,

 고급 요리에도 싫증을 낼 정도의 사치를 부리는데, 오히려 그들의 재물은 넘쳐나고 있으니 ;

 이것은 남의 재물을 약탈하여 잘사는 도둑의 소행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것은 道와 거리가 먼 것임은 두말 할 것도 없는 것이 아닌가 ! 〕

 

 

 第五十四章.  ( 道의 위대한 공덕으로 이 세상의 일을 알 수 있다. )

                 

 善建者不拔, 善抱者不脫, 子孫以祭祀不輟.  修之於身, 其德乃真;修之於家, 其德乃餘; 

 (선건자불발, 선포자불탈, 자손이제사불철.  수지어신, 기덕내진 ; 수지어가, 기덕내여 ; 

 修之於鄉, 其德乃長;修之於國, 其德乃豐;修之於天下, 其德乃普.
 
(수지어향, 기덕내장 ; 수지어국, 기덕내풍 ; 수지어천하, 기덕내보.
 故以身觀身, 以家觀家, 以鄉觀鄉, 以國觀國, 以天下觀天下.  吾何以知天下然哉? 以此.
 (고이신관신, 이가관가, 이향관향, 이국관국, 이천하관천하.  오하이지천하연재 ?  이차. ) 

                 

 [단단하게 세운 것은 쉽게 뽑히는 일이 없고, 제대로 안은 것은 벗어나는 일이 없다. 
 이렇게 道를 자손에게 전하여 제대로 잘 지키면 집안이 번창하여 제사가 그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이러한 道로써 자신의 몸과 마음을 닦으면, 그 德은 참된 것이 되고 ; 

 이러한 道로써 집안을 다스리면, 그 德은 여유가 있어 넉넉하게 될 것이며 ;

 이러한 道로써 마을을 다스리면, 그 德으로 마을은 크게 성장할 것이고 ; 

 이러한 道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그 德은 나라 전체를 풍요롭게 할 것이며 ;
 이러한 道로써 천하를 다스리면, 그 德은 천하에 넓게 퍼져 나갈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집안사람으로써 자기 집안을 지켜보며, 

 마을사람로써 자기마을을 지켜보고, 한 나라의 국민으로써 자기나라를 지켜보며, 

 내가 천하와 일체가 되어 천하를 지켜본다.  천하가 처음부터 그러한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 

 바로 이렇게 道의 위대한 공덕에 의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道의 바탕에서 잘 세워진 것은 쉽게 뽑히지 않고, 道에 안정되어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로 道로부터 이탈하지 않으며,
 도가의 무위자연철학을 이어 받아 계승함으로 끊어지지 않고 계속 보존되는 것이다.
 한 사람으로써 몸과 마음을 닦으면, 그 공덕으로 진리를 깨친 참사람이 되고 ; 

 한 가정의 모두가 道를 닦으면, 그 공덕으로 가정이 행복하며 각자의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
 한 마을 전체가 道를 닦으면, 그 평화로운 기운의 공덕으로 마을이 크게 발전하고 ;
 한 국가 전체가 道를 닦으면, 그 공덕으로 그 나라 전체가 풍요롭게 되고 ;  
 전체 세상사람들이 전부 道를 닦으면, 온 세상이 널리 그 공덕으로 펼쳐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道를 닦으면 자신을 되돌아 봄으로써 항상 바르게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게 되며, 
 가정의 일원으로서 가정과 자기를 동일시하여 가정과 내가 일체가 되어 스스로 되돌아 보며,
 마을의 한사람으로써 자기 자신을 자각하는 것처럼 마을을 지켜보며, 
 한나라의 국민으로써 자기를 지켜보는 것처럼 나라를 지켜보며,
 전체세상과 일체가 되어 나자신을 지켜보듯이 천하를 지켜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道를 닦으면 천하가 스스로를 지켜보는 자각을 한다는 것을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
 그것은 위에서 말한 道의 위대한 공덕으로 이 세상의 일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第五十五章.  ( 道와 德은 어린아이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같다. )

                 

 含德之厚, 比於赤子.  蜂蠆虺蛇不螫, 猛獸不據, 攫鳥不搏.  骨弱筋柔而握固.  

 (함덕지후, 비어적자.  봉채훼사불석, 맹수불거, 확조불박.  골약근유이악고.  

 未知牝牡之合而全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嗄, 和之至也. 
 (미지빈모지합이전작, 정지지야.  종일호이불사, 화지지야.   
 知和曰常, 知常曰明.  益生曰祥, 心使氣曰強.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지화왈상, 지상왈명, 익생왈상.  심사기왈강.  물장즉노, 위지부도, 부도조이. ) 

                 

 [德을 두터이 품은 사람을 비유한다면 어린아이 같다. 

 벌이나 전갈도 쏘지 못하고 살무사나 독사도 물지 않으며, 맹수도 덤비지 못하고 사나운 날짐승도 덮치지 못한다. 

 뼈는 약하고 살은 부드럽지만 손아귀의 잡는 힘이 단단하다.
 남녀 교합에 대해서는 아직 모르지만 고추가 뻣뻣이 서는 것은 정기가 몸속에 꽉 찼기 때문이다. 
 종일을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생기작용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조화를 아는 것을 변함이 없는 道라 하고, 변함없는 道를 아는 것을 밝은 지혜라 한다.  
 무리하게 생명을 연장하려는 것은 불길한 징조이며, 마음이 기분에 따라 움직이면 자만심이 강해진다.
 만물의 기세가 너무 왕성하면 곧 쇠퇴하게 되고, 이것은 영원히 변치 않는 道가 아니며,

 자연의 道가 아닌 것은 일찍 끝나는 것이다. ]

                 

〔德을 두텁게 품고 있는 사람은 바로 궁극의 절대바탕에 이른 도인이며,

 도인은 자기자신조차 모르는 무지상태의 간난아이와 같다.
 따라서 자연의 일부인 독충이나 야생짐승들도 전체의식을 가지고 있는 간난아기는 해치지 않는 것이다.
 간난아기는 뼈가 약하고 근육이 부드럽지만 의도적으로 손아귀의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중에 자연적으로 힘이 생기는 것이디. 또한 간난아기는 남녀의 성교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데도

 고추가 바짝 서는 것은 자연의 정기가 무심의 道와 일체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 간난아기는 하루종일 울어도 목이 쉬지 않는것은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의식의 순수작용이므로

 신체 기관이 손상되는 일이 없다.  따라서 궁극의 절대바탕에 이른 도인도 간난아이와 같이

 전체 순수한 생기작용과 일체가 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절대바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아는 것이 바로 밝음, 즉 깨달음의 지혜라고 한다. 
 그러나 이기적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항상 희노애락과 생노병사의 고통 속에서 헤어나질 못하므로

 이것은 큰 재앙인 것이며, 마음이 그 기분이나 외부 대상을 쫏아 다니며 욕망에 끌려서 움직인다면,

 그 개체적인 자만심은 더욱 강하게 굳어지는 것이다.  만물은 장성하면 강하고 튼튼해지다가,

 곧 노쇠하여 사라지게 되는데, 이것은 변화하기 때문에 道가 아닌 것이다.
 道는 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라지지도 않고, 모양도 속성도 없으므로,

 자연의 道가 아닌 것은 일찍 끝나는 것이다. 〕 

 

 

 第五十六章.  ( 道를 아는 사람은 道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

                 

 知者不言, 言者不知.  塞其兑, 閉其門, 挫其銳, 解其分, 和其光, 同其塵, 是謂玄同.
 
(지자불언, 언자부지.  색기태, 폐기문, 좌기예, 해기분, 화기광, 동기진, 시위현동, 
 故不可得而親, 不可得而踈;不可得而利, 不可得而害;不可得而貴, 不可得而賤.  故為天下貴.
 
(고불가득이친, 불가득이소, 불가득이리, 불가득이해 ; 불가득이귀, 불가득이천.  고위천하귀. )

                 

 [도를 아는 사람은 도를 말하지 않고, 도를 말하는 사람은 도를 알지 못한다.  
 욕망의 구멍을 막고, 유혹의 문을 닫으며, 예리함은 무디게 하고, 복잡함은 풀어 없애며,

 빛을 부드럽게 하여, 티끌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이것을 심묘한 도의 본체와 하나가 된 상태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묘한 도의 본체와 하나가 된 사람은 남들이 친근하게 대할 수도 없으며,

 소홀히 여길 수도 없고, 얻어서 이롭다 여길 수도 없으며, 해롭다 여길 수도 없고 ;

 얻어서 귀하다고 여길 수도 없으며, 얻어서 천하다고 여길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
 

〔道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므로 말이나 개념으로 나타낼 수가 없다.

 그래서 道의 바탕에 안정되게 머물러 있는 사람은 道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道에 대해서 여러가지로 아는 척하며 말하는 사람들은 실질적으로 道가 무엇인지를 모른다.
 쾌락의 유혹으로부터 자기자신을 지키며, 외부대상의 유혹으로부터 자기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외부로 향하는 마음의 문을 닫고, 온갖 경계들을 개별적으로 분별하는 날카로운 분별의식으로

 모든 현상을 갈라서 구분하고 분별하며, 온갖 인연과 습관으로부터 얽혀 있던 속박에서 풀려나고,

 자기 자신이 의식의 빛과 하나가 되면, 아주 미세한 티끌과 같아서 없는 것과 같으므로,

 이것을 道의 바탕과 일체가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은 이원화 상태에서 어떤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도인을 사귈 수가 없고 ;
 이로움과 해로움이라는 이해타산의 관계가 통하지 않으며 ; 귀하고, 천하고하는 이원적인 분별과는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이원적인 상대성의 가치기준으로는 판단할 수가 없는 것이 도인이므로,

 도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하다는 것이다. 〕 
                   

 

 第五十七章.  ( 나라를 다스리는 데는 청정무위로 해야 하니 억지로 일삼지 말라. )

                   

 以正治國, 以奇用兵, 以無事取天下.  吾何以知其然哉? 以此:天下多忌諱, 而民彌貧; 

 (이정치국, 이기용병, 이무사취천하.  오하이지기연재 ?  이차 ; 천하다기휘, 이민미빈 ;

 民多利器, 國家滋昏;人多伎巧, 奇物滋起;法令滋彰, 盜賊多有.
 
(민다리기, 국가자혼 ; 인다기교, 기물자기 ; 법령자창, 도적다유.
 故聖人云:我無為, 而民自化;我好靜, 而民自正;我無事, 而民自富;我無欲, 而民自樸.
 (고성인운 : 아무위, 이민자화 ; 아호정, 이민자정 ; 아무사, 이민자부 ; 아무욕, 이민자박. ) 

                 

 [바른 법으로써 나라를 다스리기도 하고, 임기응변의 술책으로 군사를 부리기도 하지만,

 천하는 억지로 일을 만들지 않으므로 취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떻게 그렇다는 것을 알겠는가 ?  이것은 바로 다음에 열거하는 것으로 아는 것이다.
 세상에 규제하는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백성들은 두루 가난해지고 ;

 백성들이 예리한 무기를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나라는 더욱 더 혼란에 빠지게 되며 ;
 사람들이 기교를 많이 부릴수록 기이한 물건이 더 많이 나오고 ;

 법령이 반포되면 반포될수록 도둑은 더욱 더 많이 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이 이르기를 내가 무위하니, 백성들도 스스로 무위로 변하고 ;

 내가 고요히 있는 것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바르게 될 것이며 ;
 내가 무위무사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풍족해 지고 ; 내가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 백성들이 저절로 순박해질 것이다.]

                 

〔나라를 다스리는데는 바른 법을 만들어서 그 법을 기준으로 다스리며,

 군사를 다룰 때는 그때 그때 상황변화에 따라 임기웅변의 책략을 쓰며,
 의도적으로 무슨일을 만들어내거나 인의적으로 규제를 하지 않으므로써 천하를 얻을 수가 있는 것이다.
 대체로 규제법률과 금기사항이 많으면 일반백성들은 불편하기 마련이고,

 이로인해 백성들은 벌금과 세금등으로 가난에 빠지며 ;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집집마다 예리한 무기를 많이 비축하면 할수록 나라는 점점 더 혼란에 빠지게 되고 ;
 백성들의 기교가 발달되어 교묘한 솜씨로 만든 물건이 생겨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되지 못한다.
 그리고 나라의 새 법령이 반포되면 백성들의 간사한 지혜도 늘어 지능적인 범죄는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옛날의 성인들이 강조하기를 가장 이상적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법은 "나"

 즉 왕 스스로가 깨달은 聖人이 되어, 무위자연의 흐름에 따라서 인의적으로 일을 만들지 않고.

 저절로 자연과 조화되도록 있는 그대로를 지키면, 백성들도 저절로 따라서 함께 무위적이며,

 있는 그대로 평안의 삶을 살아가며, 왕 자신이 물질적인 욕망이 없으니, 
 그 밑의 신하들과 백성들도 왕을 본 받아서 물질적 욕망을 추구하지 않고 순박한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
 

 ​第五十八章.  ( 聖人은 함부로 지혜를 드러내지 않는다. )

                 

 其政悶悶, 其民淳淳;其政察察, 其民缺缺.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孰知其極?
 (기정민민, 기민순순 ; 기정찰찰, 기민결결.  화혜복지소의, 복혜화지소복.  숙지기극 ?
 其無正.  正復為奇, 善復為妖.  人之迷, 其日固久.   

 (기무정.  정복위기, 선복위요.  인지미, 기일고구. 

 是以聖人方而不割, 廉而不劌, 直而不肆, 光而不燿.
 
(시이성인방이불할, 염이불귀, 직이불사, 광이불요. )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어둡고 총명하지 아니하면, 백성들은 무리로 떼 지어서 모이게 되고,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지나치게 빈틈없이 세밀하면 그 나라는 갈갈이 나눠지게 되는 것이다. 
 화는 복이 의지해 있는 곳이고, 복은 화가 바탕에 깔려 있는 곳인데, 누가 이 움직임의 끝머리를 알겠는가 ?

 이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다. 바른 것이 기이하게 변해서 돌아오고, 선한 것이 요사스럽게 변해서 돌아온다.
 사람들이 이 변화하는 겉모습에만 미혹되어 있는 것이 이미 오랫동안 굳어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자신이 방정하다고 해서 남도 그러기를 강요하지 않으며, 자신이 청렴하다고 해서

 그것으로 남을 비난하지는 않으며, 자신이 곧다고 해서 그것으로 남 앞에 멋대로 나서지 않으며,

 진리의 빛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함부로 비추려 하지는 않는다. ]

                 

〔그 정치가 무엇을 하겠다고 내세우는 바가 없이 흐릿하고 또 총명함이 없다면,

 백성들도 경쟁 의식을 모르고 순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치가 모든 것을 분명하게 살피고 까다롭게 군다면,

 백성들도 약삭빠르게 되어 경쟁의식에 의한 욕구불만도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무사무위의 정치가 최상의 정치인 것이다. 사람이 살다보면 모든 일이 잘 풀리는 순탄한 경우도 있고, 

 또 역경 속에서 악전고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화와 복은 돌고 도는 순환 관계에 있다.  그러므로 아무도 그 결말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선이니 악이니, 바르다, 바르지 못하다 하는 것은 모두 상대적인 가치판단에 불과한 것이다. 
 어제의 선이 오늘은 악이 될 수도 있고, 오늘의 올바름이 내일에는 부정한 것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세상 사람들이 이와 같은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어리둥절 헤매고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聖人은 자신의 방형 모서리로 남을 해치려고 하지 않으며, 자신의 청렴결백으로 남을 비난하지 않으며, 

 자신이 곧다고 해서 그것으로 남 앞에 멋대로 나서지 않으며,

 자신의 빛나는 지혜를 함부로 과시하려 하지도 않는다. 〕

 

 

 第五十九章.  ( 정치는 무위자연의 道를 기본바탕으로 해야 한다. )

                 

 治人事天莫若嗇.  夫唯嗇是謂早服;早服謂之重積德;重積德則無不克;無不克則莫知其極;
 (치인사천막약색.  부유색시이조복 ; 조복위지중적덕 ; 중적덕즉무불극 ; 무불극즉막지기극 ;
 莫知其極可以有國;有國之母可以長久;是謂深根固柢, 長生久視之道.
 
(막지기극가이유국 ; 유국지모가이장구 ; 시위심근고저, 장생구시지도. )

                 

 [사람을 다스리고 하늘을 섬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소중하게 아끼는 것이다. 
 대체로 소중하게 아끼기만 해도, 이것으로써 도에 입문한 것이다 ; 
 일찍이 道에 입문한다는 것은, 계속적으로 德을 쌓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인데 ;

 계속적으로 德을 쌓고 나면 이루어내지 못할 일이 없으며 ;
 이루어내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은 곧 그 한계를 모를 정도로 무한한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
 그 한계를 모르는 무한한 道의 능력으로 나라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것이며 ; 
 나라를 유지하는 기본모체(道)가 있으면, 그 나라가 오랫동안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 
 이를테면, 道로써 나라의 뿌리를 깊게 하고, 그 바탕을 단단하게 다지라고 말하는 것이며, 
 그 나라를 장구하게 유지할 수가 있고, 오랫동안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이 道라는 것이다.]
 
〔백성을 다스릴 때는 자만심을 버리고 백성과 일체가 되고, 하늘을 섬길 때, 즉 道를 숭상할 때는

 작은 나를 버리고 하늘과 하나가 되는 것이 가장 소중하게 아끼는 것이다.
 道에 입문하였다는 것은 보편적이고 순수한 마음이 되도록 수양을 했다는 것이고 ;
 순수하고 보편적인 마음으로 묵묵히 德을 쌓았다면, 이 세상에서 이루어내지 못할 일이 없으며 ;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은 그 능력이 현상적으로 나타나지 않으므로 지성의 기능으로는

 한계를 알 수 없으며 무한한 것이다 ;
 한계를 알 수 없는 道의 무한한 능력이 있어야지 나라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오랫동안 유지시킬 수가 있다 ;
 나라를 유지하기 위한 근본바탕을 확고하게 지탱하고 있어야, 그것에 의지해서 나라가 영원히 이어져 나갈 수 있다 ; 

그러므로 이 道로써 나라의 기본 이념으로 삼아서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도록 깊히 뿌리를 내리고,

 그 道의 바탕을 단단하게 굳혀야 하며, 道로써 나라의 기본 이념을 삼으면 변함없고 영원하며

 자연적으로 있는 것이 道이므로, 그 나라도 도와 함께 저절로 영원히 유지될 수가 있다. 〕
 


 第六十章.  ( 무위자연적인 道로써 세상을 자연스럽게 다스린다. )

                 

 治大國若烹小鮮.  以道蒞天下, 其鬼不神;非其鬼不神, 其神不傷人; 

 (치대국약팽소선.  이도리천하, 기귀불신 ; 비기귀불신, 기신불상인 ;

 非其神不傷人, 聖人亦不傷人.  夫兩不相傷, 故德交歸焉.
 
(비기신불상인, 성인역불상인.  부양불상상, 고덕교귀언. )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생선을 삶는 일과 같다.

 무위자연의 道로써 이 세상을 다스리면 귀신도 자신의 신령한 힘을 나타내지 못한다. 
 귀신이 신통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신통력이 사람을 해치지 못하는 것이다. 
 귀신의 힘이 사람을 해치지 못할 뿐 아니라,  聖人도 역시 사람을 해치지 못한다.

 대체로 귀신과 聖人이 서로 해치지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道의 작용인 德이 번갈아서 돌아가는 것이다. )

                 

〔나라를 다스릴 때 지나치게 인의적인 법으로 간섭과 규제와 금지 위주의 행정력으로

 백성의 생활에 압박을 가한다면, 그들은 불안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더구나 위정자가 쓸모없는 공명심에서 백성들을 노력동원등에 투입하게 한다면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이에 반하여 자연적인 무사무위의 道로써 백성들에게 임한다면 그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종사하게 된다. 
 원래 백성들은 생존의 근거가 재난이나 착취 등으로 위협을 받게 되면 귀신의 힘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나 안정과 만족한 생활에서는 백성들은 귀신의 존재를 잊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신도 자신의 신령과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道와 일체가 된 일원화 세상 안에서는 귀신의 신통력 조차 모두가 일체이므로 해칠 대상조차 없는 것이다. 
 무위자연의 道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만물을 길러 주고 덮어 주고 감싸 주지만, 
 이원적이고 상대적인 개념인 귀신과 聖人도 일원적인 道 안에서는 다른사람에게 영향을 줄 수가 없으므로 
 귀신도 聖人도 백성들에게 해악을 끼칠 수 없게 되면,

 오직 道의 작용인 보편적인 德만이 전체에 되돌아 온다는 것이다.

 

 

 第六十一章.  ( 위대한 道의 참모습은 겸허한 자세이다. )

                   

 大國者下流, 天下之交, 天下之牝.  牝常以靜勝牡, 以靜為下. 

 (대국자하류, 천하지교, 천하지빈.  빈상이정승모, 이정위하. 

 故大國以下小國, 則取小國;小國以下大國, 則取大國.  故或下以取, 或下而取.  
 
(고대국이하소국, 즉취소국 ; 소국이하대국, 즉취대국.  고혹하이취, 혹하이취.  
 大國不過欲兼畜人, 小國不過欲入事人.  夫兩者各得其所欲, 大者宜為下.
 
(대국불과욕겸축인, 소국불과욕입사인.  부량자각득기소욕, 대자의위하. ) 

                 

 [큰 나라는 강물의 하류와 같아서, 천하 사람들이 모여 들어 교류가 이루어지니, 큰 나라는 천하의 암컷인 것이다. 
 암컷은 언제나 고요하게 수동적 자세로써 수컷을 이기면서도 오히려 수컷의 아래에 있다.
 그러므로 큰 나라가 겸허한 태도로써 작은 나라를 대한다면 작은 나라는 큰 나라에 의존하게 되고 ; 
 작은 나라도 겸허한 태도로써 큰 나라를 대한다면 큰 나라에 의해서 부담없이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혹 자신을 낮춤으로써 남을 받아들일 수도 있고,

 혹 자신을 낮춤으로서 남에게 받아들여지게 할 수도 있는 것이다. 
 큰 나라는 다른 나라를 부리기 위해서 강제로 합병하려고 과욕을 부려서는 안되고, 
 작은 나라는 다른 나라의 일에 무리하게 개입하려는 욕심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이다.
 대체로 양쪽이 각기 원하는 바를 얻을려고 한다면, 마땅히 큰 것이 아래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

                 

〔대국은 자신을 낮추어서 마치 모든 지류가 모여드는 큰 강의 하류처럼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낮추어 천하를 받아 들인다면, 천하의 모든 사람이 저절로 모여들고,

 서로간 교제가 이루어지니, 천하를 품에 안는 암컷과 같다.
 암컷은 언제나 고요함과 수동성을 지니고 있으며, 고요하다는 것은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는 것이요,

 욕심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를 동요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겸허하다는 것은 안으로는 남의 위에 있을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으나,
 밖으로는 언제나 부드러운 태도로써 수컷을 이긴다. 

 그것은 언제나 약함과 수동적인 자세로써 강하고 능동적인 수컷을 이겨내는 것이다.  
 큰 나라는 작은 나라를 힘으로 쉽게 제압할 수 있다. 

 그러나 무력에 의한 정복이란 사람의 마음을 복종시킬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큰 나라가 먼저 겸허한 자세로 작은 나라를 대하게 되면,

 작은 나라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복종심으로 큰 나라에 의존하려 한다. 
 작은 나라는 자신의 실력과 분수를 알고 있으므로 큰 나라를 섬겨 자신의 위상을 보호받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천하에는 분쟁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강과 바다는 낮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능히 이 세상의 모든 물줄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

 

 

 第六十二章.  ( 道는 만물의 깊은 내면과 같다. )

                 

 道者萬物之奧.  善人之寶, 不善人之所保.  美言可以市, 尊行可以加人.  人之不善, 何棄之有?
 (도자만물지오.  선인지보, 불선인지소보.  미언가이시, 존행가이가인.  인지불선, 하기지유 ?
 故立天子, 置三公, 雖有拱璧以先駟馬, 不如坐進此道.  古之所以貴此道者何? 

 (고립천자, 치삼공, 수유공벽이선사마, 불여좌진차도.  고지소이귀차도자하 ?

 不曰:以求得, 有罪以免耶?  故為天下貴.
 
(불왈 : 이구득, 유죄이면야 ?  고위천하귀. )

                 

 [道는 만물의 깊은 내면과 같다. 道는 착한 사람에게 보물이지만, 착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보호되는 곳이다.

 道에서 나온 아름다운 말은 어떤 보물보다도 소중한 것이며, 道에서 나온 기품 있는 행위는

 남들이 우러러보는 존귀한 것이다. 착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해서 어찌 버릴 수 있단 말인가 ?
 그러므로 천자를 옹립하고 삼공을 임명했을 때, 비록 아름드리 구슬은 안고 남보다 먼저 사두마차로 달려와서

 그것을 바치는 것보다 차라리 가만히 앉아 이 道를 진상하는 것만 못한 것이다. 

 옛날부터 사람들이 이 道를 소중하게 여긴 까닭은 무엇인가 ?
 道는 구하려고 애쓴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죄가 있는데 면제해 줄 수 있겠는가 ? 道는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

                 

〔道는 만물을 길러 주고 감싸주는 오묘한 존재이다. 그것의 작용은 신비하고 불가사의하다.

 그러므로 道는 착한 사람을 비호한다.  그러나 과거에 지은 착하지 못한 사람도 비호한다. 

 시비와 선악을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모두 인간적 차원에서의 구분이다. 
 그것은 결국은 개개인의 주관적 판단 기준에 의하여 구분되고 선택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세계에 있어서의 모든 가치판단이란 동전의 양면처럼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다. 

 절대 선이니 절대 악이니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道는 상대적 가치판단의 세계를 초월하여 근원적 시점에서 만사를 차별과 편견 없이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道를 우리는 함부로 값을 매길 수는 없을 것이다. 

 만일 천하를 다스리는 천자와 삼공에게 이 무위자연의 道를 알게 해 준다면,  
 그것은 사두마차를 몰고와서 아름드리 구슬을 안겨 주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귀한 선물이 될 것이다.  

 道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관건이다. 
 道에 의존하면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할 수 있고, 죄가 있더라도 사면 받을 수 있는 것이다. 
 道는 이 세상 만물을 감싸 주고 길러 주는 자애로운 어머니와 같은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

 

 

 第六十三章.  ( 聖人은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미연에 방지한다. )

                 

 為無為, 事無事, 味無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위무위, 사무사, 미무미.  대소다소, 보원이덕.

 圖難於其易, 為大於其細;天下難事, 必作於易, 天下大事, 必作於細.
 
(도난어기이, 위대어기세 ; 천하난사, 필작어이, 천하대사, 필작어세.
 是以聖人終不為大, 故能成其大.  夫輕諾必寡信, 多易必多難.  是以聖人猶難之, 故終無難矣.
 
(시이성인종불위대, 고능성기대.  부경낙필과신, 다이필다난.  시이성인유난지. 고종무난의. ) 

                 

 [하지 않는 것(무위)을 행하고, 일없는 것(무사)을 일삼으며, 맛없는 것(무미)을 맛본다.
 작은 것을 크게 여기고 적은 것을 많게 여기며, 원한이 있으면 덕으로 갚는다. 
 어려운 일을 하려면 쉬운 것부터 하고, 큰일은 미세한 것부터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데서 일어나고, 세상의 큰일은 언제나 미세한 일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결국 큰일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큰 것을 이룰 수가 있는 것이다 
 대체로 가볍게 나오는 대답은 반드시 믿음이 적은 것이며,

 쉬운 것이 많으면 반드시 어려운 것이 많게 되어 있다. 
 이리하여 성인은 어렵다고 여기므로 그런 까닭에 결국은 어려움이 없는 것이다. ]

                 

〔道에 순응하여 의도적인 행위 없이 다스리며, 道에 순응하여 무위자연의 다스림을 행하기 때문에

 별다르게 할 일이 없으며, 맛없는 것을 맛본다는 것은 道를 체득한다는 것이다. 

 크든 작든 많든 적든, 무슨 일이든지 원한은 德으로 갚는다. 
 (為無為, 事無事, 味無味.)이 말을 보통사람의 마음인 이원화의 상대적인 분별심으로

 아주 쉽게 알 수 있다고 여긴다면, 더욱 어려움(무지)에 빠지게 된다.
 어려운 일을 하려면 처음에는 쉬운 것부터 하고, 큰일은 아주 작은 일부터 하는 것이다.
 세상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이며, 세상의 큰일은 미세한 일부터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聖人은 일부로 애쓰지 않아도 오히려 큰일이 저절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대체로 지나가는 투로 가볍게 대답하는 말은 별로 믿음이 가지 않으며,

 너무 쉬운 것은 반드시 어려움에 부닥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聖人은 세상의 모든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 손쓰기에 어려운 일을 당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

 

 

 第六十四章.  ( 천리의 먼길도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 )

                 

 其安易持, 其未兆易謀.  其脆易泮, 其微易散.  為之於未有, 治之於未亂.  

 (기안이지, 기미조이모.  기취이반, 기미이산.  위지어미유, 치지어미란.

 合抱之木, 生於毫末;九層之臺, 起於累土;千里之行, 始於足下.  為者敗之, 執者失之.   

 (합포지목, 생어호말 ; 구층지대, 기어누토 ; 천리지행, 시어족하.  위자패지, 집자실지.  
 是以聖人無為故無敗;無執故無失.  民之從事, 常於幾成而敗之.  慎終如始, 則無敗事, 
 (시이성인무위고무패 ; 무집고무실.  민지종사, 상어기성이패지.  신종여시, 즉무패사, 
 是以聖人欲不欲, 不貴難得之貨;學不學, 復衆人之所過, 以輔萬物之自然, 而不敢為.
 (시이성인욕불욕, 불귀난득지화 ; 교불교, 복중인지소과, 이보만물지자연, 이불감위. )

 

 [안정된 것은 유지하기가 쉽고, 아직 징조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처리하기 쉽다. 
 그 약한 것은 녹이기 쉬우며, 그 미세한 것은 흩뜨리기 쉽다.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을 때 해야하고, 마음의 다스림은 생각이 아직 어지럽게 움직이기 이전에 해야 한다. 

 한아름 되는 나무도 작은 씨앗에서 자란 것이고 ; 9층의 누대도 한 삼태기 흙에서부터 지어지며 ;
 천리의 길도 발밑의 한 걸음에서 시작된다. 억지로 행하려는 자는 실패하게 되고,

 꽉 붙잡으려고 하는 자는 놓친다. 그러므로 성인은 억지로 행하지 않으므로 실패하지 않으며,

 억지로 붙잡으려고 하지 않으므로 놓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일을 할 때에  항상 거의 성사가 될 무렵에 실패하고 만다. 

 처음 시도할 때처럼 마지막도 조심하게 되면 곧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聖人은 세상 사람들이 바라지 않는 것을 바라고, 손에 넣기 어려운 보물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으며 ;  
 가르침 아닌 가르침으로 사람들이 지나쳐 버리는 자기 허물을 돌이켜 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렇게 성인은 만물 스스로가 있는 그대로 되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며, 인위적으로 행하지는 않는다. ]

                 

〔마음이 안정되어, 평온함이 유지되면, 생각이 아직 일어나기 이전에 평온함이 꾀해져야 하는 것이다.
 마음이 가볍게 들떠서 평온함이 갈라지게 되면 생각이 미세하게 일어나 평온함이 흩터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수행은 생각이 아직 일어나지 않을 때부터 해야 하고.

 마음의 다스림은 생각이 아직 어지럽게 움직이기 이전에 해야 한다. 
 아름드리 나무도 털끝같은 새싹부터 자란 것이고 ;

 아홉 층 누대도 한 삼태기 흙에서부터 지어지며 백길 높은 곳도 발 밑의 땅 바닥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道를 억지로 수행하려는 자는 실패하게 되고, 道를 억지로 붙잡으려고 하는 자는 道와 더 멀어지게 된다.  
 聖人은 억지로 행하지 않으므로 실패하지도 않고. 억지로  붙잡으려고 하지 않으므로 놓치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일을 할 때에 항상 거의 다 성취한 상태에서 실패를 한다. 

 따라서 처음 시도할 때처럼 마지막도 조심하게 되면 곧 실패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성인은 무욕을 바라므로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말없는 가르침으로 사람들이 지나쳐 버리는 자기 허물을 돌이켜 보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이렇게 聖人은 만물 스스로가 있는 그대로 되도록 도와줄 수 있을 뿐이며,

 억지로 의지를 내세워서 행하려고 하지 않는다. 〕

 

 

 第六十五章.  ( 그윽한 德은 깊고 먼데까지 미친다. )

                 

 古之善為道者, 非以明民, 將以愚之.  民之難治, 以其智多.  

 (고지선위도자, 비이명민, 장이우지.  민지난치, 이기지다.   

 故以智治國, 國之賊;不以智治國, 國之福.
 (고이지치국, 국지적 ; 불이지치국, 국지복.
 知此兩者亦?式.  常知?式, 是謂玄德.  玄德深矣, 遠矣, 與物反矣, 然後乃至大順.
 
(지차양자역계식.  상지계식, 시위원덕.  원덕심의, 원의, 여물반의, 연후내지대순. ) 

                 

 [옛날 무위자연의 道를 잘 행한 사람은 백성을 밝고 지혜로운 사람으로 만들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어리석고 순박하게 만들려고 하였다. 
 백성들을 제대로 잘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들이 지혜가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해치는 적이요 ;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않는 것은 나라의 복이다. 
 이 두가지를 아는 사람은 또한 한결같은 원리를 알게 된다. 
 언제나 이와 같은 원리를 아는 것을 그윽한 德이라고 한다.  그윽한 德은 깊고 먼데까지 미친다. 
 그것을 지닌 사람을 만물과 더불어 道에 복귀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완전무결한 道와 하나가 되는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옛날에 그윽한 덕은 깊고 먼데까지 미친다.  道를 체득한 이는 지혜로써 정치를 하지는 않았다.  
 그것으로 다스리면 백성들도 순박함을 잃어버리고 교활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혜로써 다스리는 것은 나라에 해로움만 끼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반하여 무위무사의 정치는 백성들을 어리석고 순박하게 만들어 나라를 복되게 한다. 

 지혜란 인간의 정신적, 물리적 욕망을 자극하게 된다.  
 그것의 충족을 위해서는 서로 싸우고, 속이고 빼앗는 등 인간은 구제 불능의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와 같이 혼란에서 구제 받고자 한다면 태고의 순박함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순박함이야말로 참되고 순수한 道의 본모습인 것이다.
 道의 신비하고 불가사의한 德을 알고 만물과 더불어 참된 근원인 道에 복귀한다면,

 그것이 완전무결한 道의 작용에 순응하는 길이다. 〕

 

 

 第六十六章.  ( 자신을 낮추면 다툴 일이 없다. )

                  

 江海所以能為百谷王者, 以其善下之, 故能為百谷王. 

 (강해소이능위백곡왕자, 이기선하지, 고능위백곡왕. 

 是以聖人欲上民, 必以言下之;欲先民, 必以身後之.
 (시이성인욕상민, 필이언하지 ; 욕선민, 필이신후지.
 是以聖人處上而民不重, 處前而民不害.  是以天下樂推而不厭.  以其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시이성인처상이민부중, 처전이민불해.  시이천하낙추이불염.  이기부쟁, 고천하막능여지쟁. ) 

                 

 [강과 바다가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까닭은, 그것이 가장 낮은 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골짜기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道를 체득한 성인이 백성의 위에 서기를 바란다면, 반드시 겸손한 말로 자신을 낮추고 ;

 백성의 앞에 서고자 한다면 반드시 몸을 백성의 뒤에 두어야 한다. 
 그래서 성인이 위에 있어도 백성들은 부담감을 느끼지 않으며, 앞에 있어도 방해된다고 여기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백성들이 그를 추대하기를 즐거워하며 싫어하지 않는다.    
 聖人은 누구하고도 싸우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므로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그와 다툴 수가 없는 것이다.]

                 

〔강과 바다는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모든 시냇물이 모여들 듯이,

 聖人도 자신을 낮추기 때문에 만물을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聖人은 재능있는 사람이 앞에 있으면 자신은 뒤로 물러서 주기 때문에,

 그 재능있는 사람은 지위가 높아져도 성인의 물러섬을 본받아서, 
 오히려 일반 백성들에게 겸손한 말로 자신을 낮추고 공손하게 대하며 ; 
 그 재능있는 백성이 지위가 높게 되더라도 일반 백성들이 우대해야 할 부담감을 갖지 않기 때문에,
 그 재능있는 백성이 앞장서 나서더라도 일반 백성들은 꺼려하거나 시기하지 않는다. 

 백성들의 마음이 곧 하늘의 마음이라 하였다.
 천하 만민이 떠받드는 이는 진정한 의미의 왕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도량이 넓고 포용력이 있는 그는 도무지 이 세상의 그 누구와도 다툴 줄 모른다. 
 그렇게 처신하는 그에게는 적개심을 품고 맞서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

 
  

 第六十七章.  ( 자애와 검약과 겸양을 소중히 간직하라. )

                 

 天下皆謂我道大, 似不肖.  夫唯大, 故似不肖.  若肖久矣.  其細也夫! 我有三寶, 持而保之.  

 (천하개위아도대, 사불초.  부유대, 고사불초.  약초구의.  기세야부 !  아유삼보, 지이보지.   

 一曰慈, 二曰儉, 三曰不敢為天下先.   慈故能勇;儉故能廣;不敢為天下先, 故能成器長. 

 (일왈자, 이왈검, 삼왈불감위천하선.  자고능용 ; 검고능광 ; 불감위천하선, 고능성기장. 

 今舍慈且勇;舍儉且廣;舍後且先;死矣! 夫慈以戰則勝, 以守則固.  天將救之, 以慈衛之.
 
(금사자차용 ; 사검차광 ; 사후차선 ; 사의 !  부자이전즉승, 이수즉고.  천장구지, 이자위지. ) 

 

 [세상 사람들은 자신의 道는 크기는 하지만 어리석게 보인다고 말한다. 

 그것은 다만 크기 때문에 어리석게 보이는 것이다. 
 만일 어리석게 보이지 않았다면 이미 잘고 보잘 것 없는 것이 된지 오래였을 것이다.  
 나에게는 세 가지 보물이 있으니 그것을 지니고 귀중하게 여기고 있다. 

 첫째는 자애, 둘째는 검약, 셋째는 감히 천하의 앞에 나서지 않는 겸양이다. 
 자애롭기 때문에 용감할 수 있고 ; 검약하기 때문에 널리 베풀 수 있으며 ;

 남의 앞에 서지 않기 때문에 기량 있는 자들의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자애를 버리고 용기만을 취하려고 하고 ; 검소한 것은 버리고 널리 쓰려고만 하며 ;

 남의 뒤에 서려고 하지 않고 앞에만 나서려고 하는데 ; 그것은 죽음을 향해서 가는 것이다. 

 자애로움을 지니고 싸우면 이길 수 있고, 자애로움을 지니고 지키면 견고한 것이다. 
 하늘이 장차 그를 건져내고자 할 때에는 자애로써 그를 지켜 주는 것이다. ]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를 위대하다고 말하지만, 위대함이란 사라지지 않는 것이다. 
 대체로 누구든지 자기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여긴다면, 그 때문에 능히 위대해질 수가 있다.
 만약 사라지는 것이라면, 오래된 것일지라도 하찮고 작은 것일 뿐이다. 

 나에게는 항상 세가지 보배가 있으니, 그것을 귀중하게 지니고 있다.
 첫째는 사랑이고, 둘째는 검소함이며, 셋째는 감히 세상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대체로 사랑은 용기를 북돗을 수 있기 때문이며, 검소함은 넓게 펼칠 수가 있기 때문이고,

 함부로 세상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음은 道의 완숙한 경지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사랑은 버리고 만일 용기만 부린다던가 ; 검소함을 버리고 만일 넓게 펼치려고만 한다든가 ;

 뒤에 서는 겸양함은 버리고 만일 앞서려고만 한다면, 
 곧 道는 죽은 것이다.  대저 사랑으로 전쟁에 임하면 곧 승리하며,  사랑으로 지키고 있으면 튼튼하니,  
 하늘이 장차 그를 구원하기 위하여 마치 사랑으로써 에워싸는 것과 같은 것이다. 〕

 

 

 第六十八章.  ( 인재를 잘 쓰려면 상대방에게 내 몸을 낮추어야 한다. )

                   

 善為士者, 不武;善戰者, 不怒;善勝敵者, 不與;善用人者, 為之下. 

 (선위사자, 불무 ; 선전자, 불노 ; 선승적자, 불여 ; 선용인자, 위지하.  

 是謂不爭之德, 是謂用人之力, 是謂配天古之極.
 
(시위부쟁지덕, 시위용인지력, 시위배천고지극. ) 

                 

 [훌륭한 무사는 힘으로 상대와 겨루지 않으며 ;  싸움을 잘하는 자는 화내어 흥분하지 않으며 ;  
 적을 잘 이기는 자는 적과 서로 맞부딪치지 않는 것이며 ; 사람을 가장 잘 쓰는 자는 상대방에게 내 몸을 낮춘다.  
 이것을 다투지 않는 德이라 하고, 이것을 남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라 하며,

 이것은 하늘의 이치에 따르는 오래된 지극한 道이다. ]

                 

〔절대바탕에 안정된 도인의 순수한 마음은 무력을 쓰지 않으며 ; 
 적에 대하여 분노를 일으킨다면 눈앞에 당장 닥친 것만을 성급하게 대면하게 되므로

 시야가 좁아지고 자칫 적의 속임수에 말려 들 수가 있으며 ;
 선한 마음으로 적을 이긴다는 것은 적과 직접 맞부딪쳐서 싸우지 않고서 지혜로서 적을 굴복시키는 것이며 ;
 인재를 쓸 때는 자기 자신을 그 사람 아래로 낮추어 재능있는 사람이 자유롭게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한다.
 이렇게 적을 만들지 않고, 다투지 않으면서 선한 마음으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바로 德이며,
 자기를 낮출 수 있는 포용력과 선한 지혜를 지니고 있는 것이 인재를 잘 쓸 수 있는 능력이며,
 이것이야 말로 가장 깊은 道의 궁극적인 바탕에 이른 것이다. 〕 


 

 第六十九章.  ( 전쟁의 주동자가 되지 말고 피동자가 되라. )

                 

 用兵有言:吾不敢為主, 而為客;不敢進寸, 而退尺.  是謂行無行;攘無臂;扔無敵;執無兵.   

 (용병유언 : 오불감위주, 이위객 ; 불감진촌, 이퇴척.  시위행무행 ; 양무비 ; 잉무적 ; 집무병.

 禍莫大於輕敵, 輕敵幾喪吾寶.  故抗兵相加, 哀者勝矣.
 
(화막대어경적, 경적기상오보.  고항병상가, 애자승의. ) 

                 

 [군대를 다루는 일에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감히 전쟁의 주동자가 되지 아니하고, 피동자가 되겠으며 ;
 한 치 앞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한 자 뒤로 물러나겠다.
 이와 같은 것을 소위 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

 소매를 걷어붙이지 않으니 팔이 없는 듯하고 ; 치고 들어가지 않으니 적이 없는 듯하며 ;

 무기를 잡아도 잡지 않은 듯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적을 업신여기는 것보다 더 큰 화근은 없다. 

 적을 업신여기면 나의 모든 보물을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군사를 일으켜 싸우게 될 때는 남을 불쌍히 여기는 자비심을 본보기로 삼는 쪽이 이기게 된다. ]

                 

〔전쟁 도발이란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는 없다. 

 다만 상대방의 침략으로 이쪽의 자위와 방어 목적에서만이 전쟁의 정당성은 인정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못해서 싸움터에 나가는 쪽은 먼저 적의 진영으로 쳐들어가는 일이 없으며 ;

 무기를 잡아도 살상을 즐길 일이 없으므로 잡지 않는 것과 같으며 ;
 그리고 전투에 임하여 상대를 업신여기는 것은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으며 ;

 상대를 업신여기면 그에 대한 대비를 소홀히 하기 쉽기 때문이며 ; 
 함부로 전쟁을 도발하는 것은 막대한 희생을 백성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된다.
 비록 나라가 크고 강하다고는 해도 전쟁을 좋아하면 반드시 망하게 된다는 경고는 사실인 것이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상대의 침략으로 군사를 동원하여 싸우게 될 때에는

 전쟁의 참상을 애통해 하는 쪽이 이기게 되는 것이다.  지도자가 이와 같은 자애로운 마음을 보여 준다면

 그를 따르는 백성들과 병사들은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


   
 第七十章.  
( 우리는 道의 본체를 오직 알지 못할 뿐이다. )

                  

 吾言甚易知, 甚易行.  天下莫能知, 莫能行.  言有宗, 事有君.   

 (오언심이지, 심이행.  천하막능지, 막능행.  언유종, 사유군. 

 夫唯無知, 是以不我知.  知我者希,  則我者貴.  是以聖人被褐懷玉.
 
(부유무지, 시이불아지.  지아자희, 칙아자귀.  시이성인피갈회옥. ) 

                 

 [나의 말은 이해하기 매우 쉽고, 실천하기도 매우 쉽다.

 그런데도 이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능히 알지 못하고, 능히 실천하지도 못한다.

 말에는 만물의 근원이 있고, 일에는 주관하는 이가 있다. 

 대체로 사람들이 근원을 알지 못하므로 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다. 
 나를 아는 자가 드물기에 오히려 나를 모범 삼는 이는 귀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聖人은 거친 베옷을 걸치고 있지만 그의 품속에는 옥을 품고 있는 것이다.]

                 

〔나의 말은 아주 알기 쉽고, 실천하기도 쉽다. 그것은 道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저 道의 자연스러움을 본받으면 되는 것이다. 
 나의 말과 일에는 원리가 있고 근원이 있다. 그러나 원리를 알고 근원을 캐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야만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나의 道를 아는 이는 드물다. 만일 그것을 알고 본받게 된다면, 그는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聖人은 거친 베옷을 입고 일개 평범한 서민으로 살아가므로 세인들은 그의 진가를 알지 못한다. 
 이는 마치 옥에 흙이 묻어 있으므로 행인들이 그저 예사로운 돌덩이 정도로 알고 주목하지 않는 것과 같다. 
 범속한 사람들은 사물의 이면과 본질을 캐지 않고 겉모습만을 보고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보통이다.〕

 

 

 第七十一章.  ( 자신의 무지를 자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병폐가 되지 않는다. )

                  

 知不知上;不知知病.  夫唯病病, 是以不病.  聖人不病, 以其病病, 是以不病.
 
(지부지상 ;, 부지지병.  부유병병, 시이불병.  성인불병, 이기병병, 시이불병. )

                  

 [알면서도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 가장 좋다 :  모르면서 모두 아는 척 하는 것은 병이다. 
 대체로 오직 병을 병으로 안다면 병이 되지 않는다.
 聖人이 병이 없는 것은 자기의 병을 병으로 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병이 될 수 없는 것이다. ]

                  

〔알고 있으면서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훌륭한 태도이다. 

 모르면서고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여기서 안다고 하는 것은 道에 대한 인식일 것이다. 

 道란 인간의 감각 능력을 초월한 것이므로 우리의 경험 대상이 될 수 없다. 
 그것에 대한 우리의 인식도 논리를 초월한 직관일 뿐이다. 

 성인은 道의 신비성과 불가사의함을 자각하고 있는 사람이다. 
 보통 사람의 지식 세계란 형이하의 세계에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감각할 수 있고 구체화될 수 있는 상식의 세계인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상식의 세계에 만족해하며 그것을 진리인 것처럼 과신하고 있다. 
 그러나 상식의 세계, 경험의 세계를 있게 하는 것은 형이상의 세계 즉 道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道를 체득할 수 없는 사람들의 지식은 막연한 억측과 주먹구구식의 판단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개인적 편견과 기호에 좌우되는 것이기도 하다. 
 근원적인 것에 대한 자각 없이 자신의 지식 세계를 진리의 세계로 확신하는 것은 일종의 정신적인 병폐이다.

 병폐를 병폐로 알고 있으면 즉 자신의 근원적인 것에 대한 무지와 무력을 자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결코 병폐가 되지 않는다.
 聖人은 道의 신비성과 불가사의함을 깨닫고 있으므로 이와 같은 병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


 

 第七十二章.  ( 聖人은 위엄의 정치를 버리고, 무위의 정치를 그는 택한다. )

                    

 民不畏威, 則大威至.  無狎其所居, 無厭其所生.  夫唯不厭, 是以不厭.     

 (민불외위, 즉대위지.  무압기소거, 무염기소생.  부유불염, 시이불염. 

 是以聖人自知不自見;自愛不自貴.  故去彼取此.
 
(시이성인자지불자견, 자애불자귀, 고거피취차. ) 


 [백성이 군주의 위엄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나라에 큰 위세가 닥치게 된다.  
 백성들이 사는 지역을 제한하지 말고, 살고 싶은 곳으로 마음대로 옮겨다니는 것을 막지 말라.
 대체로 이와같이 오직 억압하지만 않으면, 그 때문에 백성들은 군주를 싫어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聖人은 자신을 알면서도 드러내 보이지 않고 ; 자신을 사랑하면서도 귀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력의 다스림을 버리고 무위의 다스림을 택한다. ]

                  

〔힘과 위협으로 유지되는 통치는 결코 오래 계속되지 못한다. 

 사람을 따르게 하는 것은 힘과 위협이 아니고 은혜와 덕망인 것이다. 
 백성들이 위정자의 통치권에 복종치 않으면 보다 큰 위력 즉 극형을 예사로 저지르게 된다. 
 그리고 백성들의 주거나 행동거지에 대하여 세세한 통제와 압박을 가하게 되며, 
 이렇게 되면 생활 자체가 속박이 되어 버린 백성들은 통치 질서에 대하여 도전하게 된다.
 원래 인간 불신에 의한 인간 조종술을 통치의 수단으로 삼고 있는 것이 법가의 정치철학인데,

 불신은 불신을 낳고 혼란은 더 큰 무질서를 조성하게 한다.
 聖人은 자연의 이치를 체득하고 있으나 스스로 그것을 드러내 보이거나 자랑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존귀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백성들 위에 군림하고자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위력과 형벌의 정치를 버리고 무위와 무사의 정치를 택한다. 〕
   

  
 第七十三章.  
( 道의 작용 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勇於敢則殺, 勇於不敢則活.  此兩者, 或利或害.  天之所惡, 孰知其故?  是以聖人猶難之.
 (용어감즉살, 용어불감즉활, 차양자, 혹이혹해.  천지소오, 숙지기고 ?  시이성인유난지.
 天之道, 不爭而善勝, 不言而善應, 不召而自來, 繟然而善謀.  天網恢恢, 踈而不失.
 
(천지도, 불쟁이선승, 불언이선응, 불소이자래, 천연이선모.  천망회회, 소이불실. )

                  

 [함부로 행동하는 용기는 사람을 죽이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용기는 사람은 살린다.
 이 두 가지 행위에는 이로운 점도 있고 해로운 점도 있다. 

 하늘이 싫어하는 것에 대해서는 누가 그 까닭을 알 수 있겠는가 ?
 그래서 聖人조차 오히려 어렵게 여기는 것이다. 하늘의 道 안에서는 싸우지 않아도 잘 이기며,

 말하지 않아도 잘 응답을 하고, 부르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오며, 너그럽고 자연스럽게 일을 잘 도모한다.
 하늘의 그물은 넓고 넓어서 엉성한 것같이 보이지만 죄있는 자를 놓치는 법이 없다. ]

                  

〔자기 목숨을 희생하는 과감한 용기든, 그렇지 못한 용기든 간에 개인의 의도성을 가진 개인행동은 
 그때 상황에 따라서 그 결과가 좋을 수 있고, 나쁠 수도 있으며, 이익을 볼 수 있고, 손해를 볼 수도 있다.
 하늘의 뜻이 누구에게 벌을 내리고, 누구를 용서해 주려는 지는 道를 체득한 聖人도 모르는 것이다.  

 聖人도 이와 같을진대 하물며 보통 사람들이 어찌 형벌을 함부로 집행할 수 있단 말인가 ?
 아무리 정의롭고 바람직한 행동이라고 사람들이 인정할지라도 보편적인 道의 측면에서 보면 인의적이며, 
 이원적인 것으로써 바른 것이 아니므로, 하늘의 관점에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의 이치는 억지나 인위적임 없이 만사를 저절로 잘 다스려 나가는 것이다.  
 일원적인 하늘의 道 안에 있으면 무슨 일이든 저절로 잘 되고,

 이 세상 모든 일이 그 道의 작용(하늘그물)인 의식의 움직임 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으므로,

 무위의 다스림을 행하며 죄지은 자는 하늘의 심판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다. 〕

 

 

 第七十四章.  ( 삶과 죽음은 하늘의 이치에 달려있다. )

                 

 民不畏死, 奈何以死懼之?  若使民常畏死, 而為奇者, 吾得執而殺之, 孰敢?   

 (민불외사, 내하이사구지 ?  약사민상외사, 이위기자, 오득집이살지, 숙감 ?

 常有司殺者殺.  夫司殺者, 是謂代大匠斲, 夫代大匠斲者, 希有不傷其手矣.
 
(상유사살자살.  부사살자, 시위대대장착, 부대대장착자, 희유불상기수의. ) 

                 

 [백성들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찌 죽이는 것으로 그들을 두렵게 할 수  있겠는가 ?
 만약 백성들이 항상 죽음을 두려워하며, 나쁜 일을 저지르는 자가 있어 그를 잡아 처형할 수 있다 하더라도,

 누가 그 일을 집행하겠는가 ? 사람을 죽이는 것은 그 일을 맡은 자가 하는 일이다. 

 대체로 죽이는 일을 맡은 자를 대신하여 죽이는 것은,
 경험이 부족한 사람이 노련한 목수를 대신해서 나무를 깎는 것과 같은 일이며, 
 대체로 목수를 대신하여 나무를 깎는 경험이 부족한 사람치고, 손에 상처를 입지 않는 사람은 드문 것이다.]

                 

〔반란을 일으킨 백성들이 만약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분노하고 있는 상태에서, 

 잡히기만 하면 그 즉시 처형할 것이라고 위협을 한다든가, 
 아니면 포로로 붙잡힌 몇사람을 사형시키면서 그 분노한 백성들을 위협한다해도, 
 이미 그들이 목숨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포자기의 상태에 이르게 되면 그런 죽음에 대한 협박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벌 위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늘의 이치에 따라 하는 일이다. 
 아무리 잘못을 저지른 백성이라 할지라도 백성들을 마음대로 죽인다면,

 이것은 하늘을 대신하여 사람이 사람의 운명을 끊어버린 것이므로,
 그 죽인 사람도 인과 업보의 피해를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정자가 무위자연의 道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저절로 복종하게 마련이다. 〕
                 


 第七十五章.  ( 마음을 비운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다. )

                 

 民之飢, 以其上食稅之多, 是以飢.  民之難治, 以其上之有為, 是以難治.   

 (민지기, 이기상식세지다, 시이기.  민지난치, 이기상지유위, 시이난치. 

 民之輕死, 以其求生之厚, 是以輕死.  夫唯無以生為者, 是賢於貴生.
 
(민지경사, 이기구생지후, 시이경사.  부유무이생위자, 시현어귀생. )  

                 

 [백성들이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은 세금을 지나치게 많이 거두기 때문에, 굶주림에 시달리는 것이다.

 백성들을 다스리기 어렵게 하는 것은 지배자가 인위적으로 꾀하는 일이 있기 때문이며,

 ​그래서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다.
 백성들이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지배자가 자신의 삶만을 지나치게 추구하기 때문이며,

 그래서 백성들이 죽음을 가벼이 여기는 것이다.
 대체로 삶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그 삶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보다 더욱 현명한 것이다. ]

                 

〔백성들이 굶주리게 되는 것은 위정자의 과중한 세금 징수 때문이다. 
 지배자가 의도적으로 어떤 일을 도모하게 되면 그것은 곧 백성들의 생활에 적지 않은 부담과 속박을 가져오게 한다.

 지배자가 자기만이 잘 살아보겠다고 백성들을 착취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되면 생활고에 시달리는 백성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범법자가 되는 것이다. 
 윗사람이 잘해야 아랫사람들도 잘하게 되므로 이 일에 대한 책임은 지배자에게 있는 것이다.
 지배자가 욕심을 버리고 자연의 이치에 맞는 다스림으로 나라 일에 임한다면 모든 것은 순리대로 잘 풀리게 된다. 

 사람이 삶에 애착을 느끼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지나칠 정도로 삶에만 매달린다면 그것은 오히려 삶을 헤치는 일이 될 것이다. 
 언제나 담담하게 마음을 비운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은 삶에 집착하여

 그 얽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보다 더욱 현명한 사람이다. 〕

 

 

 第七十六章.  ( 부드럽고 약한 것이, 굳고 강한 것의 위에 있다. )

                   

 人之生也柔弱, 其死也堅強.  萬物草木之生也柔脆, 其死也枯槁.    

 (인지생야유약, 기사야견강.  만물초목지생야유취, 기사야고고.

 故堅強者死之徒, 柔弱者生之徒.  是以兵強則不勝, 木強則共.  強大處下, 柔弱處上.
 (고견강자사지도, 유약자생지도.  시이병강즉불승, 목강즉공.  강대처하, 유약처상. ) 

                 

 [사람은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약하지만, 죽게 되면 단단하고 강해진다.
 만물과 초목도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게 되면 마르고 딱딱해진다.
 그러므로 굳세고 강한 것은 죽음의 부류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부류이다.
 군사도 지나치게 강하여 교만해지면 이기지 못하고, 나뭇가지도 크고 우람해지면 부러지고 만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있게 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위에 있게 되는 것이다. ]

                 

〔부드럽고 약한 것은 삶의 부류에 속하고, 굳세고 강한 것은 죽음의 부류에 속한다. 
 초목도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게 되면 마르고 딱딱해진다. 
 군대의 조직이 아주 강하고 규율이 엄격하게 묶여 있으면 싸움에서 이길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군사들이 규율이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에 단단히 묶여 있어서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변화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무도 크고 우람한 것은 재목으로서의 용도 때문에 곧 목수의 도끼에 찍혀 쓰러지게 된다. 
 강하고 거대한 것은 자연히 행동이 굼뜨고 무거우므로 아래로 쳐지게 되고, 
 연약하고 미세한 것은 가벼워서 상황변화에 재빠르게 적응할 수가 있으므로 위로 떠올라 있는 것이다.
 사람의 처세 또한 부드럽고 약한 태도가 바람직한 것이다. 〕


  

 第七十七章.  ( 하늘의 道는 남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채워주는 것이다. )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舉之;有餘者損之, 不足者補之.   

 (천지도, 기유장궁여 ?  고자억지, 하자거지 ; 유여자손지, 부족자보지. 

 天之道, 損有餘而補不足.  人之道, 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천지도, 손유여이보부족.  인지도, 즉불연, 손부족이봉유여.
 孰能有餘以奉天下, 唯有道者.  是以聖人為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숙능유여이봉천하, 유유도자.  시이성인위이불시, 공성이불처, 기불욕견현. ) 

                 

 [하늘의 道는 세게 당겼다가 쏘는 활과 같은 것인가 ?  높은 쪽은 억누르고, 낮은 쪽은 들어올려 주며 ;
 남은 부분은 덜어내어 부족한 부분에 채워 준다. 

 하늘의 道는 이와 같이 남은 것을 덜어내어 모자라는 것에 보태 주는 것이다.
 인간의 道는 이것과 달리 남은 것에 더 보태기 위하여 모자른 것에서 덜어내고 있다. 
 누가 남은 것으로 이 세상을 위해 봉사할 수 있겠는가 ? 오직 도를 체득한 聖人만이 그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聖人은 일을 하고 나서도 자부하지 않고, 공을 이루고 나서도 그것에 머무르지 않으며,

 자신의 어짊을 드러내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
    
〔하늘의 道(무위자연의 道)는 활을 세게 당겼다가 놓는 순간에 활줄의 가운데는 강한 힘으로 앞으로 밀고, 
 양쪽 끝은 반대로 들어올리는 것처럼 작용과 반작용을 균형있게 조절한다.
 하늘의 道는 넉넉한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쪽을 채워 준다. 

 그것은 언제나 만물을 평등하게 대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道(인본주의의 道)는 이것과는 다르다. 

 가난한 백성의 재물을 갖가지 명목으로 빼앗아서 지배자의 사치와 향락에 쓰이게 한다. 
 그러므로 부유한 자는 더욱 부유해지고 가난한 자는 더욱 가난해진다. 
 이와 같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자신의 남은 것을 덜어내어 천하의 만백성에게 보태어 줄 사람이 있겠는가 ?
 이 일은 오로지 聖人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聖人은 언제나 겸허하다. 
 그러므로 聖人은 행위를 하여도 스스로가 행위자라고 여기지 않으며, 결실을 이루어도 그 공에 집착하지 않으며,

 스스로 道를 깨쳤다거나 지혜가 있다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道를 터득한 그는 하늘의 섭리를 인간 사회에 실행해 보이는 것이다. 〕


   
 第七十八章. 
( 약한 것도 강한 것을 이길 수 있다. ) 

                 

 天下莫柔弱於水, 而攻堅強者莫之能勝, 其無以易之.  弱之勝強, 柔之勝剛, 天下莫不知, 莫能行.
 
(천하막유약어수, 이공견강자막지능승, 이기무이역지.  약지승강, 유지승강, 천하막부지, 막능행. 
 是以聖人云:受國之垢, 是謂社稷主;受國不祥, 是謂天下王.  正言若反.
 (시이성인운 : 수국지구, 시위사직주 ; 수국불상, 시위천하왕.  정언약반. )

                 

 [이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으나,

 단단하고 강한 것을 이기는 데 물보다 더 나은 것도 없으니, 무엇도 그 본성을 바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긴다는 것을,
 세상에 이러한 이치를 모르는 이는 없지만, 그러나 실천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聖人의 말씀에 나라를 위해서는 부끄러움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를 사직의 주인이라 했으며 ;
 나라를 위해서는 궂은 일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이를 이 세상의 임금이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바른 말도 진실과 반대인 것처럼 들릴 수가 있다. ]

                 

〔이 세상에서 물은 가장 부드럽고 약한 존재이지만,

 단단하고 강한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 또한 물 만한 것이 없다. 
 물이 이렇게 자기보다 강하고 단단한 것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은 물의 작용이 겸양함, 포용력,

 무위자연성 때문이며, 물의 자연적인 작용은 바로 부드러움과 연약함에서 나온 다는 이치를

 세상 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지만 이것을 실생활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옛聖人은 이에 대하여 말하기를 나라를 위해서 온갖 욕을 얻어 먹으며,

 또한 온갖 굳은 일을 하는 德을 가진 이가 나라의 왕이 될 수가 있는 것이 바로 이 물의 연약하고

 선한 작용과 비슷한 德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는 큰 그릇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道에서 나온 올바른 말도 언제나 세상 사람들의 상식이나 진실과는 어긋나는 것처럼 들릴 수가 있다. 〕


                 

 第七十九章.  ( 道는 항상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람과 함께 한다. )

                 

 和大怨, 必有餘怨;安可以為善?  是以聖人執左契, 而不責於人.   

 (화대원, 필유여원 ; 안가이위선 ?  시이성인집좌계, 이불책어인.   

 有德司契, 無德司徹.  天道無親, 常與善人.
 (유덕사계, 무덕사철.  천도무친, 상여선인. ) 

                 

 [큰 원한은 화해를 하여도 반드시 마음속에는 응어리가 남아 있는데 ;

 그것이 어찌 도인의 선한 마음 자세로써 옳다고 할 수 있겠는가 ?
 그러므로 聖人은 좌계(증표)를 지니고 있을 뿐, 사람들에게 억지로 지불할 것을 강요하지 않는다. 
 德있는 사람은 좌계를 지니면서 남에게 내어 주는 일을 하고,

 德없는 사람은 원망의 찌꺼기를 마음에 담아 두고 집착한다.
 하늘의 道는 德이 있던, 없던 이원적인 마음과는 가깝지 않으니,

 늘 순수한 마음을 지닌 사람만이 道와 함께 하는 것이다.


〔큰 원한은 한 번 품게 되면 화해한 다음에도 마음속에 응어리진 것이 남아 있게 된다.

 그러므로 아예 원한 관계가 성립될 소지를 없애야 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의 다툼이란 이해관계에서 생기는 것이 보통이다.  聖人은 욕심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항상 양보하고 베푼다는 마음가짐으로 남을 대한다. 그러므로 그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사람은 없는 것이다.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운 편애가 없지만 이처럼 선한 사람에게는 복을 내려 주게 되는 것이다.
 일원적인 절대본체의 道는 이원적으로 평가하여 德이 있던 없던 전혀 상관없으며,
 오로지 궁극의 절대바탕에 안정되게 머무르는 사람만이 순수한 도인인 것이다. 〕

 

 

 第八十章.  ( 절대본체의 道에 안주한 도인은 무위자연과 더불어 홀로 평안하게 살아나간다. )

                  

 小國寡民, 使有什伯之器而不用;使民重死而不遠徙.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 사민중사이불원사.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使民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사민부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락기속.

 鄰國相望, 雞犬之聲相聞, 民至老死, 不相往來.
 
(사민부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락기속.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 불상왕래. ) 

                

 [나라가 작고 백성이 적은데도, 가령 열사람 백사람 몫을 하는 편리한 도구를 쓰지 못하게 하고 ;  
 가령 죽음을 신중하게 생각하도록 하면 먼 곳으로 이사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비록 배와 수레가 있어도 탈 일이 없어지고, 갑옷과 병기가 있어도 쓸 일이 없을 것이다.  
 가령 백성들로 하여금 옛날로 돌아가 노끈의 매듭으로 셈하도록 한다면

 백성들은 먹는 것이 무엇이든 맛있게 먹을 것이고, 몸에 걸치는 것이 무엇이든 멋지다고 만족할 것이며,

 거처하는 곳이 어떠하든 편안하고 안락하게 여길 것이며,
 평범한 일상사가 어떻하든 매일 즐거운 기분으로 살아갈 것이다.

 이웃나라가 서로 보이고, 닭과 개 짓는 소리가 서로 들릴 정도로 가깝게 있어도

 백성들이 늙어서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을 것이다. ]

                

〔노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는 제후들이 서로 침략을 일삼던 정치적 혼란기였다.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사치와 향락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백성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였으며, 
 복잡하고 까다로운 행정 기구와 관료 조직으로 백성들의 생활을 억압하고 있었다. 
 그의 정치철학이 모든 인위적인 간섭을 배제하는 무위 이치를 이상으로 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시대 배경과 연관된 것이다.
 노자가 생각하고 있는 이상 국가는 작은 나라에서 적은 수의 백성들이 검소하고 안정된 생활을 한다. 
 그들은 문자를 모르고 새끼줄을 맺어 약정을 맺는 순진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사치를 모르며 편리한 기구를 사용하지도 않고,

 자신들이 사는 곳에 애착심을 가지므로 옮겨 다니고자 하지도 않는다. 
 즉 사람이 사는 기본 조건인 의, 식, 주, 오락들을 아무 조건없이 무위자연 상태의 있는 그대로 즐기고

 만족하며 산다. 그들은 닭 울음과 개 짖는 소리가 들릴 정도의 가까운 이웃나라와도

 서로 왕래가 없을 정도로 무심하고 무욕한 생활에 만족하고 있는 것이다. 〕

 

 

 第八十一章.  ( 道는 이롭기만 할 뿐, 절대로 해는 끼치지 않는다. )

                 

 信言不美, 美言不信.  善者不辯, 辯者不善.  知者不博, 博者不知.   

 (신언불미, 미언불신.  선자불변, 변자불선.  지자부박, 박자부지. 

 聖人不積, 既以為人己愈有, 既以與人己愈多.  天之道, 利而不害;聖人之道, 為而不爭.
 
(성인부적, 기이위인기유유, 기이여인기유다.  천지도, 리이불해 ; 성인지도, 위이부쟁. ) 

                 

 [믿음직한 말은 아름답게 들리지 않으며, 아름답게 꾸민 말은 믿음직한 말이 아니다. 
 착한 사람은 변명을 하지 않고, 변명을 잘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아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은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고, 모든 일을 다 안다고 하는 사람은 한 가지에도 정통하지 못하므로

 도리어 아무 것도 모른다.  聖人은 지식을 쌓아 두는 일이 없고, 

 이미 애초부터 남에게 베풀어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지식이 남보다 더욱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하늘의 道는 만물을 이롭게 하고 해롭게 하지 않으며,

 聖人의 道는 아무리 말과 논리로 논쟁해 보아야 아무 소용이 없다. ]

                 

〔노자의 말은 미사여구는 없으나 믿음성이 있다. 그러나 미사여구로 장식된 말은 믿음성이 없다. 
 착한 사람은 변론하지 않으며, 변론가는 착하지 않다. 

 道를 체득한 사람은 박식하지 않고 박식한 사람은 道를 체득하지 못한다.  聖人은 아무런 욕심이 없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 지식을 쌓아 두는 일이 없다. 그러나 그에게는 언제나 넉넉함이 있는 것이다. 
 세상의 일이란 이로움이 없으면 반드시 해로운 일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나 하늘의 道는 만물에게 이로움을 주지만 해로움을 끼치는 일은 없다. 
 聖人은 하늘의 道를 따르는 사람이다.  그는 무위로써 만사를 다스림으로 남들과 다투지 않는 것이다. 〕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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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