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表(사기 표) /1. 三代世表

1. 三代世表

덕치/이두진 2021. 6. 27. 14:00

 

          記   

 

 

   1. 三代世表 (삼대세표)

 

太史公曰:五帝、三代之記,尚矣。自殷以前諸侯不可得而譜,周以來乃頗可著.
孔子因史文次春秋,紀元年,正時日月,蓋其詳哉。
至於序尚書則略,無年月;或頗有,然多闕,不可錄。故疑則傳疑,蓋其慎也。


【 태사공(太史公)은 말한다.
오제(五帝)와 삼대(三代)의 사적의 기록은 아주 오래되어 자세히 알기 어렵다.
은(殷)나라 이전 제후국의 사적은 자료를 구했으나 보첩(譜諜)으로 편집할 수가 없었고,
주(周)나라 이래로 와서야 다소 저술이 가능했다.

공자(孔子)는 역사서를 근거로 삼아 『춘추(春秋)』를 연대별로 편찬했는데,
이것은 노나라 은공(隱公)의 즉위 원년을 비롯해 사시(四時)와 일월(日月)이 정확하게 적혀 있어 참으로 상세하다.
그러나 『상서(尙書)』를 편찬할 때에는 오히려 연월(年月)을 간략하게 만들었다.
어떤 부분은 다소 연월이 있는가 하면, 많은 부분은 누락되어 기록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의문이 있는 부분은 의문을 남긴 채 전했는데, 이 또한 참으로 신중히 했다. 】

余讀諜記,黃帝以來皆有年數。稽其歷譜諜終始五德之傳,古文咸不同,乖異。

夫子之弗論次其年月,豈虛哉!於是以五帝系諜、尚書集世紀黃帝以來訖共和為世表。


[내가 『첩기(諜記)』를 읽어보니, 황제(黃帝) 이래는 모두 연대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한 역대 보첩과 5덕(五德)에 따라 계승되었던 것을 앞뒤로 고증해보니,

고문의 기록이 모두 일치하지 않고 괴리되거나 차이가 있었다.
공자가 그 연월의 차례를 논하지 않았는데, 어찌 이유 없이 그랬겠는가!
그래서 나는 『5제 계첩(五帝系諜)』과 『상서』에 기록된 황제 이래 공화(共和) 시기까지의 기록을 집성해

「세표(世表)」를 지었다. ]

 

 帝王世國號      顓頊屬         黼屬        堯屬       舜屬        夏屬         殷屬         周屬 
 黃帝號有熊  黃帝生昌意  黃帝生玄囂  黃帝生玄囂  黃帝生昌意  黃帝生昌意  黃帝生玄囂  黃帝生玄囂
 帝顓頊,
 黃帝孫。
 起黃帝,
 ​至顓頊三世,
 〔號高陽〕。
 昌意生顓頊.
 為高陽氏.
 玄囂生蟜極  玄囂生蟜極  昌意生顓頊.
 顓頊生窮蟬.
 昌意生顓頊  玄囂生蟜極。
​ 蟜極生高辛. 

 玄囂生蟜極.
 蟜極生高辛.
 帝黼,
 黃帝曾孫。
 起黃帝,
 至帝黼四世。
 號高辛。





 蟜極生高辛,
 為帝黼。
 ​
蟜極生高辛.
高辛生放勛.
 窮蟬生敬康.
 敬康生句望

 高辛生党.  高辛生后稷,
 為周祖。
 帝堯. 起黃帝.
 至黼子五世。
 號唐。


 放勛為堯。  句望生蟜牛。
 蟜牛生瞽叟。

  镌為殷祖。  后稷生不窋. 
 帝舜,
黃帝玄孫之玄孫. 號虞。



 瞽叟生重華,
 是為帝舜。
  顓頊生鯀。
 鯀生文命。
   鯀生文命。   不窋生鞠。
 帝禹,
 黃帝耳孫,
 號夏。




  文命,
 是為禹。
 昭明生相土。  鞠生公劉。
 帝啟, 伐有扈.
作甘誓。





 相土生昌若。  公劉生慶節。
 帝太康 . 




 昌若生曹圉.
曹圉生冥.
 慶節生皇僕.
皇僕生差弗.
 帝仲康,
太康弟.





 冥生振.  差弗生毀渝.
毀渝生公非.
 帝相。




 振生微.
微生報丁.
 公非生高圉.
高圉生亞圉.
 帝少康.




 報丁生報乙.
報乙生報丙.
 亞圉生公祖類
 帝予.




 報丙生主壬.
主壬生主癸.
 公祖類生.
太王亶父.
 帝槐.




 主癸生天乙,
是為殷湯.
 亶父生季歷.
季歷生文王昌.
益易卦.
 帝芒.





 文王昌生武王發.
 帝泄.






 帝不降. 






 帝扃不降弟.






 帝廑.






 帝孔甲,
不降子.
好鬼神,
淫亂不好德,二龍去.








 

 帝皋. 






 帝發.






 帝履癸,
是為桀.
從禹至桀
十七世.
從黃帝至桀
二十世.







 殷湯代夏氏.
從黃帝至湯
十七世.







 帝外丙,
湯太子.
太丁蚤卒,
故立次弟外丙.








 帝仲壬,
外丙弟.







 帝太甲,
故太子太丁子.
淫,伊尹放之桐宮. 三年,
悔過自責,伊尹乃迎之復位.








 帝沃丁.
伊尹卒.







 帝太庚,
沃丁弟.







 帝小甲,
太庚弟.
殷道衰,

諸侯或不至.








 帝雍己,
小甲弟.







 帝太戊,
雍己弟.
以桑穀生,

稱中宗.








 帝中丁.






 帝外壬,
 中丁弟.







 帝河亶甲,
 外壬弟.







 帝祖乙.






 帝祖辛.






 帝沃甲,
 祖辛弟.







 帝祖丁,
 祖辛子.







 帝南庚,
 沃甲子.







 帝陽甲,
 祖丁子.







 帝盤庚,
 陽甲弟.
 徙河南.








 帝小辛,
 盤庚弟.







 帝小乙,
 小辛弟.







 帝武丁.
 雉升鼎耳雊.
 得傅說.

 稱高宗.








 帝祖庚.






 帝甲, 祖庚弟.
 淫.







 帝廩辛.






 帝庚丁,
 廩辛弟.
 殷徙河北.









 帝武乙.
 慢神震死.







 帝太丁.






 帝乙. 殷益衰.






 帝辛, 是為紂.
 弒. 從湯至紂
 二十九世.
 從黃帝至紂
 四十六世. 







 周武王代殷.
 從黃帝至武王
 十九世.







 

 成王誦. 魯周公旦
武王弟.
初封.
齊太公尚
文王,
武王師.
初封.
晉唐叔虞
​武王子.
初封.
 秦惡來,
助紂.
父飛廉,
有力.
 楚熊繹.
繹父鬻熊
, 事文王
​初封.
宋微子啟紂庶兄.
初封.
衛康叔,
武王弟.
初封.
陳胡公滿
舜之後.
初封.
蔡叔度,
武王弟.
初封
曹叔振鐸
武王弟.
初封.
燕召公奭
周同姓.
初封.
康王釗,
刑錯.
四十餘年
魯公伯禽 丁公呂伋  晉侯燮.  女防.  熊乂.  微仲,
 啟弟.

 康伯.  申公.  蔡仲.

 九世至
 惠侯.
昭王瑕南
​巡不返.
不赴,
諱之. 
 考公.  乙公.  武侯.  旁皋.  熊黮.  宋公.  孝伯.  相公.  蔡伯.  太伯.

穆王滿.
作甫刑.
荒服不至
 煬公,
 考公弟.
 癸公.  成侯.  大几.  熊勝.  丁公.  嗣伯.  孝公.  宮侯.  仲君.

恭王伊扈   幽公.  哀公.  厲侯.  大駱.  熊煬.  湣公,
 丁公弟.
 疌伯.  慎公.  厲侯.  宮伯.

 懿王堅.
周道衰,
詩人作刺
 魏公.  胡公.  靖侯.  非子.  熊渠.  煬公,
 湣公弟.
 靖伯.  幽公.  武侯.  孝伯. 

孝王方,
懿王弟.
 厲公.  獻公.
 弒胡公.


 秦侯.  熊無康.  厲公.  貞伯.  釐公.

 夷伯.

夷王燮,
懿王子.
 獻公,
 厲公弟.
 武公.

 公伯.  熊鷙紅.  釐公.  頃侯.







厲王胡.
以惡聞過亂, 出奔,
遂死於彘
 真公



 秦仲.  熊延,
 紅弟.
 釐侯.









共和,
二伯行政
 武公,
 真公弟.






 熊勇.











 

張夫子問褚先生曰:「詩言契、后稷皆無父而生.

今案諸傳記咸言有父,父皆黃帝子也,得無與詩謬秋?」

[장부자가 저선생(褚先生)에게 묻기를 : “ 『시경(詩經)』에서는 설(契)과 후직(后稷)은 모두 부친 없이

태어났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전기(傳記)를 살펴보면, 모두 그들에게는 부친이 있었고,

그들의 부친은 바로 황제(黃帝)의 자손이라 말합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시경』의 기록과 설마 서로 위배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 ”라고 하자. ]

 

褚先生曰:「 不然。詩言契生於卵,后稷人跡者,欲見其有天命精誠之意耳。

鬼神不能自成, 須人而生, 柰何無父而生乎! 一言有父, 一言無父, 信以傳信, 疑以傳疑, 故兩言之.

堯知契、稷皆賢人,天之所生,故封之契七十里,後十餘世至湯,王天下。
堯知后稷子孫之後王也,故益封之百里,其後世且千歲,至文王而有天下。

詩傳曰:『湯之先為契,無父而生. 契母與姊妹浴於玄丘水,有燕銜卵墮之,契母得,故含之,

誤吞之,即生契。契生而賢,堯立為司徒,姓之曰子氏。子者茲;茲,益大也。
詩人美而頌之曰「殷社芒芒,天命玄鳥,降而生商」。商者質,殷號也。

文王之先為后稷,后稷亦無父而生。
后稷母為姜嫄,出見大人蹟而履踐之,知於身,則生后稷。

姜嫄以為無父,賤而棄之道中,牛羊避不踐也。

抱之山中,山者養之。又捐之大澤,鳥覆席食之。姜嫄怪之,於是知其天子,乃取長之。

堯知其賢才,立以為大農,姓之曰姬氏。姬者,本也。
詩人美而頌之曰「厥初生民」,深修益成,而道后稷之始也。』

孔子曰:『昔者堯命契為子氏,為有湯也。命后稷為姬氏,為有文王也。
大王命季歷,明天瑞也。太伯之吳,遂生源也。』天命難言,非聖人莫能見。

舜、禹、契、后稷皆黃帝子孫也。
黃帝策天命而治天下,德澤深後世,故其子孫皆復立為天子,是天之報有德也。

人不知,以為閒從布衣匹夫起耳。夫布衣匹夫安能無故而起王天下乎?其有天命然。」


【저선생이 말하기를 : “ 그렇지 않습니다. 설이 알에서 출생했고, 후직이 사람의 발자국에서 출생했다고 했는데,
이것은 그들이 천명의 정성을 구현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귀(鬼)와 신(神)은 스스로 형성할 수 없으며,
반드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인즉, 어찌 설과 후직이 부친 없이 태어났겠습니까?
하나는 그들에게 부친이 있었다는 학설이고, 또 하나는 그들에게 부친이 없었다는 학설입니다.
믿음은 믿음을 전하고, 의심은 의심을 전해, 이렇게 두 가지 학설을 낳았던 것입니다.
당요(唐堯)는 설과 후직이 모두 현명한 사람으로서 하늘이 그들을 보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설에게 70 리의 봉토(封土)를 주었는데, 설은 그 후 10여 대를 거쳐 탕(湯)에 이르렀고,

마침내 천하에 군림하게 되었습니다.
당요는 후직의 자손이 앞으로 제왕의 업을 성취할 것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후직의 봉토를 1백 리까지 늘려주었더니,
그의 후손이 천 년에 걸쳐 내려오다가 주 문왕(周文王)에 이르러 비로소 천하를 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경』에서 이르기를, ‘탕의 선조는 설이나, 설은 부친 없이 태어났다.
설의 모친이 그녀의 자매들과 함께 현구수(玄丘水)에서 목욕을 하는데,

제비 한 마리가 입에 알을 품고 떨어져 내려왔다. 설의 모친은 알을 얻어 입에 물고 있다가 삼켜 설을 낳게 되었다.

설은 매우 현량해, 요는 그를 사도(司徒)로 임명하고 자(子)라는 성을 주었다.
자는 바로 자(玆)를 가리키며, 날로 강대함을 뜻한다. 시인은 그를 찬미하고 칭송하기를, 은(殷)의 땅은 매우 넓구나!
하늘이 현조(玄鳥)를 내려 보내 상(商)을 이루었도다라 했다. 상은 바로 질(質)을 가리키며, 질은 은의 미칭이다.
주 문왕의 선조는 후직인데, 후직도 부친 없이 태어났다. 후직의 모친 강원(姜嫄)은 문밖에 나가

거인의 발자국을 보았는데, 발자국을 밟자 산기를 느끼고 후직을 낳게 되었다.

강원은 아들에게 아버지가 없다고 여기고 그를 경시해 길가에 버렸으나 소와 양들이 모두 그를 밟지 않고 피했다.
그래서 산 속에 버렸지만 산 속에 살던 사람이 그를 길렀다. 이에 다시 큰 못에 던졌더니,

새들이 덮고 받쳐 들며 키웠다. 강원은 매우 이상히 여기고, 이 상황으로 보아 그가 하늘의 아들이라고 판단해

데려와 양육했다. 당요는 그가 현재(賢才)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를 대농(大農)에 임명하고, 희(姬)라는 성을 주었다. 희는 즉 본(本)을 뜻한다.
시인은 그를 찬미하고 칭송해 말하기를, 그 처음은 백성 이래에 있었도다라고 하며,
충분히 수련하고 날로 성취했던 후직의 시작을 칭찬했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공자는 말하기를, ‘이전에 당요가 설을 자씨라고 명한 것은 탕이 있었기 때문이며,

후직을 희씨라고 명한 것은 문왕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왕(大王)은 은의 계력(季歷)을 자신의 계승자로 명해 하늘에서 내린 상서로움을 표명했다.
태백(太伯)이 오(吳)에 이르자, 주 문왕과 주 무왕(周武王)이 천하를 얻어

주 왕조를 대대로 잇는 근원이 생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늘의 뜻은 알기 어려운 것이지만, 성인이 알지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

순(舜), 우(禹), 설, 후직 모두는 황제(黃帝)의 자손입니다.
황제가 하늘의 명을 받고 천하를 다스렸는데, 그의 덕이 깊어 멀리 후세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자손이 천자로 세워진 것은 하늘이 덕 있는 자에게 보답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이 도리를 모르고 제왕이 모두 보통 사람에게서 생긴 것으로 여기는데,

보통 사람이 어찌 까닭 없이 흥기해 천하를 군림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은 모두 하늘의 뜻을 얻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

 

「黃帝後世何王天下之久遠邪?」
曰:「傳云天下之君王為萬夫之黔首請贖民之命者帝,有福萬世. 黃帝是也.

五政明則修禮義,因天時舉兵征伐而利者王,有福千世。

蜀王,黃帝後世也,至今在漢西南五千里,常來朝降,輸獻於漢,

非以其先之有德,澤流後世邪?行道德豈可以忽秋哉!人君王者舉而觀之。

漢大將軍霍子孟名光者,亦黃帝後世也。此可為博聞遠見者言,固難為淺聞者說也。何以言之?

古諸侯以國為姓。霍者, 國名也. 武王封弟叔處於霍, 後世晉獻公滅霍公, 後世為庶民, 往來居平陽.

平陽在河東,河東晉地,分為衛國。以詩言之,亦可為周世。周起后稷,后稷無父而生。

以三代世傳言之,后稷有父名高辛;高辛,黃帝曾孫。
黃帝終始傳曰:『漢興百有餘年,有人不短不長,出(自)[白]燕之鄉,持天下之政,時有嬰兒主,欲行車。』
霍將軍者,本居平陽(自)[白]燕。臣為郎時,與方士考功會旗亭下,為臣言。豈不偉哉!」


【장부자가 묻기를 : “ 황제(黃帝)의 후세가 어떻게 이토록 오래 천하를 군림할 수 있었습니까 ? ”라고 하자.
저선생이 대답하기를 : “ 『경전』에서 이르기를, 천하의 군주는 만민의 원수(元首)로서,

그들은 하늘에 백성의 생명을 연장하기를 간구하며, 왕위에 올라 그 복을 만대에 전한다고 했습니다.

황제(黃帝)는 바로 그러한 사람이었습니다. 5정(五政)을 밝히고, 예의를 닦았으며,
하늘의 기회에 따라 군사를 일으켜 정벌해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왕위에 올라 그 복을 천대에 전했습니다.
촉왕(蜀王)은 황제의 후손으로서, 지금까지 한(漢)나라의 서남쪽 5천리 밖에서 찾아와 자주 한나라 천자를 뵙고

공물을 주기적으로 바치고 있습니다.
이는 어찌 그의 조상이 덕행이 있어 그 덕이 후세까지 전해진 것이 아니겠습니까?

 도덕을 수행함에 어찌 소홀할 수 있겠습니까?
백성의 군왕은 모두 이에 유의해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한나라의 대장군(大將軍) 곽자맹(霍子孟)은 이름이 광(光)으로 역시 황제의 후손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단지 지식이 밝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사람들과 함께 말할 수 있는 것이며,

배움이 얕은 사람들과는 함께 논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왜 이렇게 말하겠습니까? 고대의 제후는 나라로서 성씨를 삼았습니다. 곽(霍)은 국가의 명칭입니다.
주 무왕이 그의 제숙(弟叔)을 곽에 봉했는데, 후세까지 이어지다가 진 헌공(晉獻公)에 의해서 곽공이 멸망했습니다.
그리하여 곽공의 후손은 평민이 되어 평양(平陽) 일대를 왕래하며 거주했습니다. 평양은 하동(河東) 지역에 있었는데,
하동은 진(晉)나라의 영토에 속해있었으나 그 후 위(衛)나라로 나뉘어졌습니다.
『시경』에 의하면, 이들 또한 주나라의 자손이며, 주나라는 후직에서 시작했고,

후직은 부친이 없이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삼대세전(三代世傳)」에 따르면, 후직에게는 고신(高辛)이라는 이름의 부친이 있었으며,

고신은 황제(黃帝)의 자손이라 했습니다.
 『황제종시전(黃帝終始傳)』에 말하기를 ‘한나라 왕조가 흥기한 지 백여 년이 되었을 때,
적당하게 키가 큰 한 사람이 백연향(白燕鄕)에서 와서 천하의 정사를 담당했다. 당시 어린 황제가 있었으나,
그는 어린 황제의 수레를 위축시켜 물러나게 했다.’라고 했습니다.

곽장군은 본래 양평에 있는 백연향에 거주했습니다.
신(臣)이 낭(郎)을 지낼 무렵, 일찍이 방사(方士)고공(考功)을 시정의 술집에서 만난 적이 있었는데,
방사가 내게 곽장군의 이러한 상황을 말해주었습니다. 어찌 그가 위대하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