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오면
- 심 훈 -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三角山)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漢江)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鐘路)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그 날이 오면>(1930)-
♤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에서는 먼저 '그 날'을 기다리는 화자의 격앙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그 날'에 대한 강렬한 염원이 불가능한 사실조차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게 하고 있고,
비논리적인 상황 설정도 서슴지 않고 있다.
즉, '그 날'에 대한 화자의 열망 내지 신념은 상식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라, 절대적인 그 자체이다.
작품에서 말하는 '그 날'은 바로 조국 광복의 날을 말한다.
작품의 전 내용은 그 날이 왔을 때 폭발하듯 터져 나올 환희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그 날이 오면 삼각산이 일어나 춤을 추고, 한강물이 기쁨으로 용솟음칠 것이고,
화자는 그 기쁜 소식을 알리기 위해 새가 되어 머리로 종을 들이받다가 죽어도 좋다고 한다.
또한 '그 날'이 오면 넓은 대로에서 기쁨으로 뒹굴어도 볼 것이고,
광복의 행렬에 앞장 설 북을 만들기 위해 몸의 가죽이라도 벗기겠노라고 말하고 있다.
극한적이면서도 전율감을 느끼게 하는 표현이 서슴없이 등장하고 있다.
시적 미숙함으로 간주할 수도 있겠지만,
민족의 해방을 향한 뜨거운 갈망이 불길처럼 솟아오르는 느낌을 전해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당대인들에게 이보다 더 확실하게 다가서는 시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억누를 수 없는 힘으로 분출되는 화자의 부르짖음은 당대인들에게 조국 광복의 당위성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며,
따라서 이 작품은 암담한 현실에 눈 감지 않는 시 정신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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