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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려군 - 夜來香(야래향), 月亮代表我的心(월량대표아적심)

덕치/이두진 2020. 1. 7.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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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려군 - 夜來香(야래향), 月亮代表我的心(월량대표아적심)



중국인들 마음속에 영원한 연인으로 자리하고 있는 가수 등려군(鄧麗君), 등려군의 본명은 등려운이다.

대만 Taipai시의 금보산(金寶山)Group이 운영하는 금보산생명례의(金寶山生命禮儀-금보산공원묘지)에 있는 

등려군의 묘지에는 그녀의 본명인 등려운이라는 이름과 사진이 선명하게 묘비명으로 적혀있다.

1995년 5월 8일 홍콩과 대만, 그리고 중국을 비롯한 중국인들이 살고 있는 여러 나라의 신문과 뉴스에서는 

대대적으로 속보를 전했다. 중국인들 마음속에 영원한 연인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만 같았던 

가수 등려군(鄧麗君)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프랑스인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던 태국의 한 호텔에서 사망한 그녀는 당시 42세의 나이였고,

사인은 호흡곤란이었다고 전해지며, 우리나라에서도 외신을 통해 보도되었다.

그녀의 시신은 전 중국어권 사람들의 애도 속에 금보산 한구석에 영원히 안치되었다.

중국어권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등소평의 이름은 몰라도 등려군의 노래를 모르면 중국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젊은 여인이 시집을 갈 때 등려군의 노래가 들어 있는 Cassette Tape이 결혼 필수품으로 유행할 정도였다.

그러한 연유로 등려군의 시신은 수정관에 안치되어서 한동안 그녀를 기리는 팬들에게 공개되었다.

일본과 대만, 홍콩, 동남아 각지에서 그녀를 기리는 사람들이 그녀의 묘지를 참배했고 

그 행렬은 365일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중국어권에서, 죽은 자는 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여론이 워낙 높아서 수정관 위에 대리석을 덮어,

현재는 등려군의 시신을 볼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기일에는 대리석 뚜껑을 열어 그녀의 모습을 일반에 공개한다.

금보산사업집단(金寶山事業集團)의 총재가 등려군의 열렬한 팬이다. 등려군이 죽자, 

총재는 그녀에게 무상으로 묘지를 주고 싶었지만, 대만의 국내법상 묘지를 기증할 수 없어서 

등려군재단에 묘지 1NT$에 기증하고 묘비석도 1NT$에 기증을 했다.

그후 등려군의 묘지 주변을 구입하려는 외국인과 중국어권의 사람들의 문의가 빗발쳤으나,

가장 전망이 좋은 등려군의 묘지 주변은 이미 매각이 된 후였다. 그들이 등려군 묘지 주위의 땅을 사려는 

진정한 이유는 죽어서라도 등려군의 옆에 누울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녀는 죽을 때까지 처녀의 신분이었다.

등려군은 살아 생전에 군인들을 좋아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바쁜 일정 중에도 군인들을 위한 행사가 있으면 

빠지지 않고 참석했고, 그러한 이유로 젊은 남녀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혹자들은 그렇게 이야기한다.

한국노래는 가슴으로 들어야 하고 중국노래는 운율로 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등려군의 노래는 가사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야래향(夜來香)이라는 꽃을 노래한 '야래향'은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워지는 노래이다.

이 노래의 내용은 밤에만 향기를 더하는 야래향의 특징에 노래말을 붙였다.

'남풍이 불어와 시원하고 밤새들이 처량하게 지저귀고 월하의 꽃들은 잠들었는데 오로지 야래향만이 

향기를 뿜고 있다.'라는 가사 내용이다. 이 노래는 등려군 자신도 몹시 좋아했던 노래이다.

 

등려군(鄧麗君)의 데뷔와 활동

1953년 1월 29일 대만 출생으로 16세(70년)때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 대만의 인기 드라마인 <정정(晶晶)>의 주제곡 "아일견니취소(我一見니就笑)"를 부르면서

바로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맑고 고운 미성이 매력적이었다.
그 후 약 5년 동안 홍콩과 대만, 싱가폴, 말레이시아 등지에서 활동을 하며 독보적으로 인기가수의 자리를 지켰다.
특히 홍콩과 대만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나 드라마의 주제곡을 많이 불렀으며 이 드라마나 영화가 상영되는 

곳마다 등려군의 노래는 사랑을 받았다.

이때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곡으로
<해구비처(海鷗飛處)>의 주제곡 "해운(海韻)" "천언만어(千言萬 語)",

<채운비(彩雲飛)>의 주제곡 "아전능이개니(我眞能離開니)" 등을 들 수 있다.

 


♤ 화려한 일본 진출

 

그러다가 1974년 2월 21일에는 일본 음반사와 계약을 맺고 일본 무대에 진출하게 된다.
이 때는 등려군이라는 한자 이름보다는 Teresa Teng이라는 영문 이름을 주로 사용했다.
그녀는 "정인적관회(情人的關懷)"를 일본어로 불러 1974년 일본에서 新人가수상을 수상했으며
이 곡이 수록되어 있는 음반이 일본에서만 70만장이 팔렸다.
대만인으로서 일본에서 이렇게 성공을 한 예는 없었다.

철저하게 일본어를 익혀 일본가수로 활동하면서 등려군은 지명도가 더욱 높아져 서양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등려군의 대표 곡인 "재견아적애인(再見我 的愛人)" 역시 이때 일본에서 불렀던 곡이다.

 


다시 미국으로

 

1979년까지 일본시장에서 중심적으로 활동하던 등려군은 같은 해 2월 뜻하지 않은 사건을 당해 

미국으로 떠나게 된다. 일본 입국증인 비자에 문제가 생겨 구류를 당하면서 실의에 빠진 등려군은 

재충전을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전문적으로 영어를 배우게 된다.

다시 활동을 시작한 등려군은 2년이라는 공백기간과는 관계없이 또 다시 많은 사랑을 받게 된다.


등려군의 1980年代

 

70년대에 이어 80년대 후반까지 계속해서 신곡을 발표하며 활동을 하던 등려군은

1983년 라스베가스에서 처음으로 콘서트를 열었고 1985년에는 대만을 시작으로

데뷔 15주년 기념 동남아 순회공연을 갖기도 했다.
크고 작은 공연을 수없이 가졌고 음반 판매량은 집계가 불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고 한다.

특히 외국 문화가 개방되지 않던 중국에 등려군의 노래가 암암리에 소개되었을 당시에 중국 대륙의 젊은이들은

외국에서 유행하는 유행가를 처음으로 접하게 되면서 정신적인 자극을 받았다.
군가나 사상가만이 대중적으로 불려지던 70, 80년대 중국에서 등려군의 노래가 신선하게 다가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현대 중국에서 록음악을 구사하는 젊은이들이건, 발라드 노래를 부르는 가수건,  
대부분이 등려군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은 과장된 것이 아니다.


등려군의 1990年代와 사망

 

1994년 일본 NHK에서는 등려군 데뷔 20주년을 기념하는 특집쇼를 만들기도 했으며, 

이때 25주년 기념쇼를 약속하기도 했다.
등려군은 1995년 구정 설을 고향인 대만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남자 친구와 3개월간 여행을 떠났다.

1995년 5월 8일, 홍콩과 대만, 그리고 중국을 비롯해 중국인들이 살고 있는 여러 나라의 신문과 뉴스에서는 

대대적으로 속보를 전했다. 중국인들 마음 속에 영원한 연인으로 자리하고 있을 것만 같았던 

가수 등려군(鄧麗君)이 갑자기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프랑스인 남자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던 태국의 한 호텔에서 사망한 그녀는 당시 42세의 나이였고,

사인은 호흡곤란이었다고 전해지며 우리나라에서도 외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
이 소식으로 중국 일대는 눈물바다를 이루었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장례식도 치러졌다.
1969년에 데뷔해 90년대까지 꾸준히 활동을 해온 등려군은 왕정문을 비롯해 현재 활동하고 있는
홍콩과 대만, 중국의 많은 가수들에게 대대적으로 음악적인 영향을 주었을 뿐 아니라,
중국인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그녀의 노래가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받았으며
세상을 떠난 후 수년이 지난 지금도 그 사랑에는 변함이 없다.


등려군의 음악

 

그녀의 노래는 후배가수들에 의해 계속해서 리메이크 되고 있어 우리에게 이미 낯익은 곡들 도 있다.
관숙이가 부르는 영화 <타락천사(墮落天使)>의 주제곡 "망기타(忘記他)"의 원곡을 부른 가수가 등려군이고
왕정문이 리메이크한 "단원인장구(但願人長久)"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는 주윤발과 오천련이 주연을 맡은 <화기소림(花旗小林)>의 주제곡
"월량대표아적심(月亮代表我的心)"을 통해 등려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사실 이미 그녀의 몇 몇 곡들은 귀에 익다.
특히 화교 출신 가수 주현미가 자주 불렀고 한국어 버전으로도 번안되어 있는

"야래향(夜來香)"의 원곡을 부른 주인공이 바로 등려군이다.

 


등려군과 한국, 그리고 첨밀밀

 

등려군이 지난 20여 년 간 중국권 음악계의 여왕으로 자리하고 있는 동안에 우리나라에는 한 번도 소개된 적이 없었다.
그러다 진가신(陳可辛) 감독이 연출을 맡고 여명(黎明)과 장만옥 (張蔓玉)이 주인공으로 출현한

홍콩 영화 <첨밀밀(甛蜜蜜)>과 함께 등려군과 그녀의 노래는 국내에 본격적으로 상륙하기 시작했다.

<첨밀밀>에 등장하는 한 쌍의 남녀는 각각 다른 꿈을 안고 중국 대륙에서 홍콩으로 건너가게 되고
우연한 만남으로 10년 간 애틋한 사랑을 펼쳐 나간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는 언제나 등려군의 노래가 함께 한다.
영화 <첨밀밀>의 삽입곡은 모두 4곡이다.
영화 제목과 동명인 "첨밀밀"은 인도네시아 민요에 중국어 가사를 쓴 것이다.
"월량대표아적심"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영화 <화기소림>의 주제곡으로 쓰인 바 있으며
<첨밀밀>에서도 영화 배경 음악으로 줄곧 사용된다.
이외에도 "야래향" "소성 고사(小城故事)"가 있다.


등려군의 노래는 전체적으로 우리나라의 트롯 같은 인상을 준다.
게다가 일본에서 활동을 했던 등려군이기에 엥카와 같은 분위기도 있어
최근에 우리나라에 소개되고 있는 최신 중국 유행가보다 오히려 친숙하게 느껴진다.

등려군의 대표곡 "재견아적애인"에서는 등려군의 나레이션이 이렇게 흘러나온다.
"안녕! 내 사랑! 하지만 난 영원히 당신을 잊지 못할 거예요. 당신도 절 잊지 말아줘요.
어쩌면 우리 앞으로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안 그래요?"
20년 전에 등려군이 한 이 말이 이젠 그녀의 음악을 사랑하는 팬들이 되돌려 주는 말이다.
살아있는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노래로 영원히 함께 할 것이기 때문이다.

 

 

月亮代表我的心(월량대표아적심)

 

月亮代表我的心(월량대표아적심)
(달빛이 내 마음을 대신하네)

ni問我愛ni有多深(니 원 워 아이 니 요우 뚜오 셴)
당신은 내게 물었죠 당신을 얼마나 사랑 하냐고

我愛ni有幾分(워 아이 니 요우 지 펜)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我的情也眞(워 디 칭 예 졘)
내 마음은 진실하답니다

我的愛也眞(워 디 아이 예 졘)
내 사랑도 진실하답니다

月亮代表我的心 (위에 량 따이 삐아오 워 디 씬)
저 달빛이 내 마음이에요

ni問我愛ni有多深 (니 웬 워 아이 니 요우 뚜오 셴)
당신은 내게 물었죠 당신을 얼마나 사랑 하냐고

我愛ni有幾分 (워 아이 니 요우 지 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我的情不移 (워 디 칭 부 이)
내 마음은 떠나지 않아요

我的愛不變 (워 디 아이 부 삐엔)
내 사랑은 변하지 않아요

月亮代表我的心 (위에 량 따이 삐아오 워 디 씬)
저 달빛이 내 마음이에요

輕輕的一個吻 (칭 칭 디 이 꺼 웬)
부드러운 입맞춤은

已經打動我的心 (이 징 따 똥 워 디 씬)
내 마음을 울리게 하고

深深的一段情 (셴 셴 디 이 뚜안 칭)
아련한 그리움은

敎我思念到如今 (지아오 워 쓰 니엔 따오 루 진)
지금까지 당신을 그리게 하는군요

ni問我愛ni有多深 (니 웬 워 아이 니 요우 뚜오 셴)
당신은 내게 물었죠 당신을 얼마나 사랑 하냐고

我愛ni有幾分(워 아이 니 요우 지 펜)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ni去想一想 (니 취 샹 이 샹)
ni去看一看 (니 취 칸 이 칸)
머리에 그리며 바라보세요

月亮代表我的心 (위에 량 따이 삐아오 워 디 씬)
저 달빛이 내 마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