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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화감상 Leon Floretin Bonnat (레옹 보나 : 1833~1922) 인물화

덕치/이두진 2020. 1. 25.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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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on Floretin Bonnat  (레옹 보나)


본명은 레옹 조제프 플로랑틴 보나(Léon Joseph Florentin Bonnat).
1833년 프랑스 바욘에서 태어났다.
1846년 그의 나이 13세 때 가족과 함께 스페인 마드리드로 가서 1853년 20세까지 살았다.
마드리드의 아카데미에 입학해 마드라조(Madrazo)에게 미술수업을 받았으며,
벨라스케스와 리베라, 그 밖의 스페인 대가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1854년 고향 바욘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파리에 있는 레옹 코니에(Leon Cogniet)의 아틀리에에서
4년 동안 공부하며 살롱전에 세 차례 출품해 모두 입선했다.
그는 1857년 로마대상에 참여해 2등상을 받았다. 1등에게 주어지는 정부 지원의 해외 유학의 꿈이 좌절되었지만,
그의 재능을 높이 산 심사위원들의 추천으로 로마에 있는 프랑스 아카데미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로마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보나는 프랑스 문화·예술계의 영향력 있는 인사들과 아카데미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1867년 레종 도뇌르 훈장을 받았고, 2년 뒤 36세의 나이로 살롱전의 심사위원이 되었다.
1888년 그의 나이 55세 때 에콜 데 보자르의 교수가 되었다.
카유보트, 브라크, 에이킨스, 뒤피, 툴루즈 로트레크 등 인상주의 화가들이 그의 가르침을 받았다.
보나는 섬세하고 생동감 있는 초상화로 유명하다.
1870년대부터 초상화에 전념했다. 당대의 유명 인사들이 기꺼이 그의 캔버스 앞에서 모델이 되어 주었다.
또한 그는 대가들의 작품과 당대의 가치 있는 작품들을 수집했다.
그리고 고향 바욘에 그의 이름을 딴 미술관을 세우고 수집한 작품들과 자신의 그림을 전시했다.
1905년 72세의 나이에 에콜 데 보자르의 교장이 되었으며, 8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주요 작품
《화가의 어린 여동생 The Little Sister of the Artist》(1850),
《처음 다가온 슬픔 The First Mourning》(1860),
《빅토르 위고의 초상 Portrait of Victor Hugo》(1879),
《마담 파스카 Madame Pasca》(1885) 등이 있다.

​                                     Leon Floretin Bonnat  (레옹 보나)


빅토르 위고의 초상화   Portrait of Victor Hugo

 

위고는 사랑하는 아내가 자신의 친구와 바람을 피우는 바람에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던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일로 위고 자신도 다른 여배우와 바람을 피우기도 했지요.

나중에는 딸과 사위가 세느강에서 빠져 죽는 사고로 한동안 글 쓰는 것을 포기 한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뛰고 머리가 아파’  혹시 그렇게 말씀 하시는 건 아니죠?






알렉상드르 뒤마 ( 뒤마)     Alexandre Dumas Fils

 

일렉상드르 뒤마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같아서 아버지는 대 뒤마, 아들은 소 뒤마라고 불리죠.

이름의 끝에 아버지는 pre가 붙고 아들은 fils를 붙입니다.

아들은 몬데크리스트 백작을 쓴 아버지와 창녀 사이에서 태어난 사생아였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아들이 쓴 소설 춘희의 주인공도 창녀였습니다.

 

1870년 대부터 보나는 확실하게 초상화에 전념합니다. 뒤마 같은 유명인들이 그의 모델이었는데 섬세한 묘사로 유명했습니다.

초상화를 완성하기 위해서 모델은 50번 넘게 앉았다 일어 나기를 반복 했다고 하니까

시키는 화가나 모델이나 대단했습니다. 마침내 1888, 55세의 보나는 에콜 드 보자르의 교수가 됩니다.

제자들을 보면 훗날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화가들이 많습니다.

얼추 훑어봐도 카유보트, 토마스 에킨스, 로트렉, 스피어스눈에 보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