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 衛 策
【 序文 】
송나라는 미자계(微子: ‘미’는 국호, ‘자’는 작위였으나 성씨가 됨, 계는 이름)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은왕조 제을(帝乙)의 장자로 주왕(紂王)의 서형(庶兄)이었다. 주공이 주성왕의 명을 받아 무경(武庚)과
관숙(管叔)을 죽이고 채숙(蔡叔)을 추방하면서 미자계로 하여금 은왕조의 후사를 잇게 하면서 송(宋) 땅에 봉했다.
영역은 지금의 하남성 동남부와 산동성 일부, 강소성 일부, 안휘성 일부에 걸쳐 있었다.
도읍은 수양( 睢陽: 하남성 상구시 서남쪽)이었다. 양관(楊寬)은 「전국사」에서 전국시대 초기인 송소공(宋昭公)이나 송도공(宋悼公) 때 팽성(彭城: 강소성 서주시)으로 천도했을 공산이 크다는 의문을 제기한 바 있다.
주난왕 29년(기원전 286), 송왕 언(偃)이 제민왕에게 토벌됨에 따라 멸망하고 말았다.
위(衛)나라는 희성으로 후작이었다. 주무왕이 동복동생인 강숙(康叔) 봉(封)을 봉하면서 시작되었다.
강역은 지금의 하남성과 산동성 북부에 걸쳐 있었다. 도읍은 원래 조가(朝歌: 하남성 기현 북쪽)였으나
위문공(衛文公: 기원전 659 ~ 635) 때 초구(楚丘: 하남성 활현 동쪽)으로 옮겼다.
위성공(衛成公: 기원전 634 ~ 600) 때 제구(帝丘: 하남성 복양현 서남쪽)으로 옮긴데 이어
위원군(衛元君: 기원전 252 ~ 230) 때 다시 야왕(野王: 하남성 심양현)으로 천도했다.
진2세 원년(기원전 209), 위군(衛君) 각(角) 때 폐서인(廢庶人)이 되었다.
宋衛策
齊攻宋, 宋使臧子索救於荊. 荊王大說, 許救甚勸. 臧子憂而反. 其御曰:「索救而得, 有憂色何也.」
臧子曰:「宋小而齊大. 夫救於小宋而惡於大齊,此王之所憂也;而荊王說甚,必以堅我.
我堅而齊弊. 荊之利也.」臧子乃歸. 齊王果攻, 拔宋五城, 而荊王不至. 公輸般為楚設機,將以攻宋.
[주신정왕 3년(기원전 318), 제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하자, 송나라가 장자(臧子)를 초나라로 보내 구원을 청했다.
초회왕이 크게 기뻐하는 표정으로 이를 허락하며 적극 싸움에 나설 것을 권했다.
이에 장자가 귀국하면서 크게 걱정스런 표정을 짓자, 어자(御者: 시종)가 의아해 하며 묻기를 :
“구원 요청이 성사되었는데 어찌하여 근심스런 표정을 짓고 있습니까?라고 하자.
장자가 대답하기를 : “송나라는 소국이지만 제나라는 대국이오. 무릇 소국인 송나라를 도와 대국인 제나라와 사이가
나빠지는 것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바요. 형왕(초회왕)이 크게 기뻐한 것은 우리의 결전 의지를 굳히기 위한 것이오.
우리가 굳게 수비하여 두 나라가 모두 지치게 되면 이는 초나라의 이익이 될 것이오.”라고 하였다.
과연 제나라 군사가 송나라의 5개 성읍을 공략했으나 초왕 군대의 지원병은 오지 않았다.
공수반(公輸般: 기계를 잘 만드는 善工에 대한 통칭으로 말 감정가의 백낙, 병을 잘 고치는 편작과 마찬가지로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은 아님)이 초나라를 위해 군사무기를 만든 뒤 이를 이용해 송나라를 공격하고자 했다.
墨子聞之,百舍重繭,往見公輸般,謂之曰:「吾自宋聞子. 吾欲藉子殺王.」
公輸般曰:「吾義固不殺王.」 墨子曰:「聞公為云梯,將以攻宋. 宋何罪之有?
義不殺王而攻國,是不殺少而殺眾. 敢問攻宋何義也?」 公輸般服焉,請見之王.
[묵자(墨子)가 이 얘기를 듣고 백사중견(百舍重繭: 삼천 리를 걷는 강행군으로 발에 겹겹이 굳은살이 박힘)하여
공수반을 찾아와서는 말하기를 : “나는 송나라에 있으면서 그대가 무기를 잘 만든다는 얘기를 들었소.
이제 그대의 힘을 빌어 왕을 죽이고자 하오.”라고 하자. 공수반이 말하기를 : “나는 도의상 결코 왕을 죽이는데
도움을 줄 수 없소.”라고 하였다. 그러자 묵자가 말하기를 : “내가 듣건대 당신이 공성용 사다리를 만들어
장차 송나라를 공격한다고 하오. 도대체 송나라에 무슨 죄가 있다는 것이오. 도의상 왕을 죽일 수 없다고 하면서
송나라를 공격하면 단지 몇 명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을 죽이게 되오.
감히 묻건대 송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도의요.”라고 하였다.
공수반이 감복하자, 묵자는 초왕에게 소개해 줄 것을 청했다.]
墨子見楚王曰:「今有人於此, 舍其文軒, 鄰有弊輿而欲竊之;舍其錦繡, 鄰有短褐而欲竊之;
舍其梁肉, 鄰有糟糠而欲竊之. 此為何若人也?」王曰:「必為有竊疾矣. 」
墨子曰:「荊之地方五千里, 宋方五百里, 此猶文軒之與弊輿也. 荊有云夢, 犀兕麋鹿盈之,
江· 漢魚鱉黿鼉為天下饒, 宋所謂無雉兔鮒魚者也, 此由七梁肉之與糟糠也. 荊有長松、文梓、
楩、楠、豫樟,宋無長木,此猶錦繡之與短褐也. 惡以王吏之攻宋,為與此同類也.」
王曰:「善哉!請無攻宋.」
[이어 묵자는 초왕을 배견하는 자리에서 묻기를 : “지금 여기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자신의 화려한 무늬로 치장한
수레를 버려둔 채 이웃의 낡은 수레를 훔치려 하고, 자신의 비단 옷을 버려둔 채 이웃의 거친 베옷을 훔치려 하고,
자신의 좋은 곡식과 고기를 버려둔 채 이웃의 지게미와 쌀겨를 훔치려 합니다. 이런 사람은 어떤 종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라고 하자. 초왕이 대답하기를 : “틀림없이 도벽이 있는 사람일 것이오.”라고 하였다.
그러자 묵자가 말하기를 : “초나라는 땅이 사방 5천 리나 되지만 송나라는 겨우 사방 5백 리에 불과합니다.
이는 화려한 마차와 낡은 마차를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초나라는 운몽(雲夢)과 같은 큰 소택에 무소, 외뿔소,
사슴, 고라니 등이 가득 차 있고, 장강과 한수에는 물고기, 자라, 거북, 악어 등이 천하에서 가장 많이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송나라는 그 흔한 꿩과 토끼, 붕어조차도 없는 나라입니다. 이는 좋은 음식과 쌀겨를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초나라에는 장송(長松), 문재(결이 고운 개오동나무), 편(녹나무와 유사한 남방의 교목), 남(楠: 녹나무),
예장(녹나무의 일종인 樟木)과 같은 재목이 많으나 송나라에는 재목이 될 만한 큰 나무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는 비단 옷과 거친 베옷을 비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저는 대왕의 신하인 공수반이 송나라를 공격하려 하는 것은
바로 ‘문헌’과 ‘양육’, ‘금수’를 버려둔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