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

♠ 거울 / 이상

덕치/이두진 2020. 1. 5. 14:38


거울 

             - 이상 - 

 

 

 

      거울 속에는 소리가 없소

      저렇게까지 조용한 세상은 참 없을 것이요.

 

      거울 속에도 내게 귀가 있소.

      내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딱한귀가 두 개나 있소.

 

      거울 속의 나는 왼손잡이요.

      내 악수를 받을 줄 모르는 --- 악수를 모르는 왼손잡이요.

 

      거울 때문에 거울속의 나를 만져보지를 못하는구료마는

      거울이 아니었던들 내가 어찌 거울속의

      나를 만나 보기만이라도 했겠소.

 

      나는 지금 거울을 안가졌소마는 거울 속에는

      늘 거울 속의 내가 있소.

      잘은 모르지만 외로된 사업에 골몰할게요.

 

      거울속의 나는 참 나와는 반대요마는 또 꽤 닮았소

 

 

 

 

      나는 거울속의 나를 근심하고 진찰할 수 없으니 퍽 섭섭하오.

 

        -<카톨릭청년>(1933)-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작품은 현실적 자아(거울 밖의 나)와

내면적 자아(거울 속의 나)와의 분열 및 단절을 다루고 있다.

이 두 자아는 '거울'이라는 사물을 통해 서로 맞부딪힌다.

두 자아는 아주 닮았지만

왼쪽과 오른쪽이 뒤바뀌었으니 곧 서로 반대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닮음과 불일치가 이 작품의 표면적 의미를 이룬다.

그리고 이와 같은 내용은 시인이 느꼈던 자아의 분열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이 시에서 거울은 현실 속의 자아인 '나'가 현실을 초월한

또 하나의 자아인 '나'를 보게 해주는 매개체이다.

그러나 '나'가 거울을 보는 순간, 인간 본연의 순수 의식에

눈을 떠서 자아의 참모습을 발견하게 되나,

그 모습이 절망적이라는 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소리가없소', '만져보지를못하는구료', '근심하고

진찰할수없으니' 등의 시구에는 두 자아의 모순과 대립을 통해

순수 자아를 상실한 현대인의 비극과 아픔이 담겨져 있다.

인간은 때때로 '참 나'가 아닌 '거짓 나'의 탈을 쓰고 삶을

영위해야만 한다. 이러한 이중적 삶은 필연적으로 정신적 고통을

수반하게 되며, 그러한 고통이 이 시에서는

자학적으로 그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