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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의 아버지,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1832-1883)
1832년 1월 23일에 파리에서 태어났다. 사법관의 아들로 부친이 화가지망을 허락해 주지 않자,
17세에 견습선원이 되어 남미로 항해하였다가 해군병학교 시험에 낙방하고 화가로 입신하였다.
1850~1856 년, 토마 쿠튀르의 화숙에서 배웠으나
그의 화풍은 오히려 일찌기 루브르 박물관에서 스페인 회화에 친숙해진 데서 형성되었다.
그사이 자주 이탈리아 ∙ 독일 ∙ 네덜란드 ∙ 벨기에로 여행하였다.
1859년부터 살롱에 출품하여 낙선되는 일이 많았으나
고티에 (Theophile Gautier, 1811~1872)나 보들레르로부터 주목을 받게 된다.
1863년의 낙선자전에 『풀밭 위의 점심식사』(파리, 인상파미술관)를,
1865년의 살롱에 『올랭피아』를 출품해서 세상의 비난을 받지만,
색면의 밝음을 강조한 혁신적인 표현은 피사로, 모네, 시슬레 등 젊은 화가들을 끌어들이고,
카페 게르부아의 회합으로 발전, 거기서부터 인상파(⇒인상주의)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마네는 직접 참가하지는 않고, 살롱에 계속 출품했다.
1866년 『피리부는 소년』(인상파미술관) 의 낙선(落選)했으나 에밀 졸라가 옹호하였다.
이후 파리의 시민생활을 제재로하여 깔끔한 화풍으로 근대적 감각에 넘친 작품을 제작하였다.
어디까지나 눈에 보이는 현실을 그리면서 평면적인 화면구성을 많이 썼고,
때로는 생략적인 묘사법을 살리어 밝고 신선한 색채로 화면을 통일해서
시각의 자율성과 순수성을 추구하며 근대회화의 가장 중요한 선구자의 한사람이 되었다.
1883년 4월 30일 파리에서 사망하였다.
주요작품
풀밭 위의 점심식사(1863, 인상파미술관)
올랭피아(1865, 파리 루브르미술관)
피리부는 소년(1866, 인상파미술관)
막시밀리안 황제의 처형(1867, 만하임 시립미술관)
발코니(1868, 인상파미술관)
나나(1877, 함부르크 미술관)
바르콘(1868)
폴리 베르제르의 바에서(1882, 런던 코톨드 미술연구소)
에두아르 마네 (Edouard Manet)
티치아노가 그린 '우르비노의 비너스'
Angélina 1865 Oil on canvas Musée d'Orsay, Paris, France
DETAIL of hand
빅토린이란 여인을 모델로 한 올랭피아는 그녀의 신분이 창녀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게 만든다,
그녀의 거창한 이름 (당시 창녀들은 문학적 이름을 많이 따서 사용했다),
최소한의 옷차림 (손은 음부를 가리고 있지만, 오히려 그로서 시선을 그쪽으로 끌어 당긴다)을 보아 창녀가 분명한데, 아프리카 출신의 흑인 하녀가 고객이 보낸 꽃다발을 들고 서 있고,
침대발치에는 검은 고양이가 올라 앉아 있다.
마네는 현대생활에서 얻는 소재를 전통적인 거푸집속에 집어넣어 새롭게 주조해 낸다.
Nana 1877 Oil on canvas 154 × 115 cm
책 읽는 여인> 1878-79
Plum, 73,6 × 50,2 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DC, 1878
Portrait of & Eacute;milie Ambre in the role of Carmen (1880)Edouard Manet
75 x 95 cm Oil on canvas Philadelphia Museum of Art (Philadelphia, Pennsylvania, United States)
Portrait of Madame Manet Holding a Ewer
Woman Pouring Water (다른 제목: Study of Suzanne Leenhoff) / Edouard ManetOil on canvas 56 x 47.2 cm. Ordrupgaardsamlingen, Copenhagen
아버지, 오귀스트의 정부이자 마네 자신의 아내인 쉬잔 렌호프...
Woman with Parrot 캔버스에 유화 Height: 185.1 cm. Width: 128.6 cm.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마네와 모리조가 만난 것은 1868년이다. Salon de Paris에서 서로를 알게 된 이후, 두 사람은 연인으로서, 가족으로서, 그리고 친구로서 오랜 인연을 이어가며 살았다.그러면서 마네는 여러 점의 모리조가 들어있는 그림과 초상화를 남겼다.
베르뜨 모리조는 어릴 때부터 그림을 좋아하여 코로의 지도를 받았으나,
1874년, 마네의 동생 우젠(Eugene)과 결혼하였으며,
집 안팎의 가정적 정경이나 정물화를 자유롭고 경쾌한 필치로 그려 섬세하고 감미로운 감각을 나타내었다.
에바 곤잘레스의 초상 Portrait of Eva Gonzales
모델 에바는 파리 명문의 딸이다. 이 여인은 나중에 유명한 판화가 게라르와 결혼, 규수 화가로 활약한다.
당시 프랑스 문예가 협회 회장이었던 소설가 엠마뮤엘 곤잘레스의 딸인 에바는 그림을 배우기 위해
1869년 2월부터 마네의 아틀리에의 내제자 (內弟子)로 들어간다.
이 그림은 에바가 '40회 이상 포즈를 취했다.'고 불평한 난 산 중의 난산 작품인데,
은백색의 복장, 백장미, 깨끗한 살결, 그림 속의 하얀 꽃 등 백색에 의한 바리에이션이 아름다우며,
이러한 백색의 반복을 검은머리, 검은 눈동자, 검은 띠 등으로 조여 매 화면을 짜임새 있게 조화시켰다.
1869년 3월에 시작하여 다음해 살롱 마감일인 3월 12일에야 완성시킨 이 작품은 살롱에서 악의에 찬 혹평을 받았으며, 이후 에바에게 기증되었다.
Jeanne - Spring (1881)
Edouard Manet51 x 73 cm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Young Woman among the flowers
Portrait of Émilie Ambre in the role of Carmen 1880. Edouard Manet 75 x 95 cm
마네나 드가가 끝내 인상파에 동조하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에 여체(女?)가 있다.
이 그림에서 보는 곡선의 아름다움과 육감적인 유방과 풍만한 육체는 한마디로 관능의 화신이다.
마네는 인간이 지닌 다양한 선(線), 그 선의 아름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화가이다.
1878년 파리는 만국 박람회로 떠들썩했고, 마네는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 파티를 열었는데
이들은 자작시에 자작곡을 붙여 소리 높이 합창했다.
이 무렵 마네는 소품을 그리는 기분으로 이 그림을 제작했는데,
화면 전체가 막 피어나는 꽃처럼 청색과 자색으로 꾸며졌고,
이 감미로운 분위기 속에서 솟아오른 듯한 여체가 스커트를 걷어올린 채 스타킹의 끈을 매고 있다.
우아한 곡선, 돋보이는 유방 등이 기조색(基調色)의 보호를 받아 비속하지 않은 관능미를 표출시킨 이색적인 작품이다.
마네는 1870년대 말에 이자벨 르모니에의 초상화를 6점 그렸는데 이 그림을 포함한 5점은 암스테르담가(街)의 아틀리에에서 제작했다. 이자벨 양은 대보석상의 딸이며, 출판업을 하는 미술품 수장가 샤르팡티에의 의매(義妹)로, 마네는 이 모델이 마음에 들었던지 1점의 좌상을 뺀 5점의 초상화는 모두 무릎 근처까지 그린 4분의 3입상이다.
이 작품은 그 가운데 <하얀 보우를 맨 이자벨>로 젊은 아가씨의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을 쫓은 듯한 얼굴의 표현에 주의력을 집중시켰으며, 의복과 손등은 경쾌하고 빠른 필촉으로 단숨에 그려 치운 흔적이 보인다. 동양적인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자벨의 얼굴 윤곽과 눈, 코, 입은 물론 안면(顔面)의 처리에 세심한 신경을 쓴 수작으로 알려졌다
DETAIL of woman DETAIL of puppy
Le serveuse de bocks (The Waitress) 1879
Chez Le Père Lathuile (1879) Edouard Manet
112 x 92 cm Oil on canvas Private collection
In the Conservatory Oil on canvas 115 × 150 cm 1879 Berlin Nationalgalerie
Oil on canvas 111.5 x 91 cm. Musee d’Orsay, Paris, France
The Balcony 발코니, 에두아르 마네, 1868년, Edouard Manet
Oil on canvas 170 x 124 cm (66 1/2 x 49 1/4 in) Musee d'Orsay, Paris, France
머리에 꽃장식을 하고 양산을 든 여인이 마네의 부인이고, 그 옆이 부인의 음악친구이며 인상파 화가인 베르뜨 모리조, 남자는 화가인 기르메, 어둠속에 있는 소년은 아들로 전해진 레옹 코에라이다. 작품속의 네 사람의 시선이 각각 다른 방향을 보고, 표정도 다르며, 대화조차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구도이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대부분이 기이한 작품이라고 생각한 그림이다.
마네는 1882년 레죵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하지만 건강이 악화되어 이듬해에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그에게 이 명예는 너무 늦은 것이었다. 마네의 말년을 장식하는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중앙의 우울한 표정을 지닌 젊은 여인과 그 옆에서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여인, 실크 모자를 쓴 남자 등의 배치가 재미있다. 우울에 젖어 있는 여인과 서로 공유하기를 꺼리는 배경의 화려함은 마네의 근대적이고 도시적인 세련된 감각을 드러낸다.
DETAIL of barmaid DETAIL of reflections
스페인 발레 (Le ballet espagnol)
1862년, 캔버스, 유채, 61x91cm, 미국 워싱턴D.C. 필립스 컬렉션 소장
1862년 8월 12일부터 11월 2일 까지 파리 포드로움 극장에서 스페인 발레단 '세빌리아의 꽃'에 의한 흥행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마네는 친구 보들레르의 권유로 구경갔다가 아주 감격했다고 한다. 그 후 마네는 단장에게 가서 공연을 쉬는 날 발레단원들이 포즈를 취해 줄 것을 부탁하고 약속을 받아낸다. 위 그림 속 배경은 친구인 화가 알프레드 스티븐스의 넓은 아틀리에이다.
좌우의 두 사람은 기타 연주자, 발레단원 중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왼쪽)이 프리마 발레리나인 롤랑 드 발랑스 그 옆에 제2 무용수가 서있고, 춤추고 있는 남녀는 캄프루비와 젊은 무희 아니타 몽테스이다.
보들레르가 마네에게 말했다. '마드리드 왕립 극장 무용단의 인기가 대단한데, 한번 구경해봐.' 마네는 1862년 8월 12일부터 11월 2일까지 무려 80일 동안 롱런한 이 '세빌리아의 꽃' 공연을 보고 감동, 이 장면을 화폭에 담기 위해 특별히 교섭, 공연이 없는 3일 동안 단원들이 포즈를 취해 주기로 약속받았다.
마네는 친구의 넓은 아틀리에를 빌려 스케치, 이 해 늦게 이 그림을 유채로 완성시켰다. 마네의 열성도 대단했지만 이 많은 사람들이 마네를 위해 사흘씩이나 포즈를 취해 준 성의도 무던하다. 친해지기 쉬운 정경을 사실적인 수법으로 그렸는데 간결, 자유로운 필촉의 리듬이 발레의 리듬과 잘 어울린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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