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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화감상 Raffaello Sanzio(라파엘로 산치오) / 보르고 화재의 방(Stanza dell' Incendio di Borgo)

덕치/이두진 2020. 1. 25.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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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파엘로 산치오(산티)


라파엘로는 북부 이탈리아 공국 움브리아 우르비노 공작의 궁정화가 조반니 산티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고 11세 때 아버지마저 잃어 사제(司祭)인 숙부 밑에서 자랐다.
문화의 중심지였던 우르비노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받은 문화적 혜택과 매력적인 그의 성품 덕분에
라파엘로는 쉽게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시인이며 화가였던 아버지에게서 그림을 배우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동향인인 T.비테에게서 배웠고
움브리아파의 지도자인 피에트로 페루지노(Pietro Peruggino)의 그림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다.


1500년 P.페루지노가 완성한 페루지아 어음교환소의 벽화 중 우의상(寓意像)은 당시 17세, 조수로서 그린 것이다.
1504년 예술의 중심지인 피렌체로 옮겨 예술적 전통에 고취되면서 F.바르톨로메오의 장대한 화면구성과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명암법과 바르톨로메오, 미켈란젤로의 조형법도 단시일에 익혀
페루지노의 영향을 탈피하고 피렌체파(派)의 화풍으로 발전하였다.
1508년 로마로 건너갔으며 1509년 로마교황 율리우스 2세를 위하여
바티칸궁전 내부에 있는 스탄체(Stanze) 서명실(署名室)의 벽화를 그렸다.


1511∼1514년에 제작한 바티칸궁전의 스탄차 데 엘리오도로의 벽화 《헬리오도로스의 추방》 《볼세나의 미사》
《성 베드로의 해방》 《로마에서 격퇴당하는 아틸라》 등에 나타나 있는데,
빛과 그늘을 양괴적(量塊的)으로 대치시킨 명암효과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활기를 띠었다.
1514∼1517년 바티칸궁전의 스탄차델 인첸디오의 벽화장식에도 종사하였으며,
1515년부터는 고대유적 발굴의 감독관이 되었다. 《산시스토의 성모》(드레스덴)는 이 무렵의 걸작으로
아카데믹한 형식주의가 싹트고 있으며 《산타 체칠리아》(볼로냐)에서 그 경향이 더욱 뚜렷하다.


1518년의 《레오 10세의 초상》에서는 군상(群像)을 훌륭한 솜씨로 처리하여 뛰어난 초상화가임을 증명하였다.
만년에 심혈을 기울인 《그리스도의 변용》(바티칸)을 완성하지 못한 채 37세로 요절하였으나,
천상의 신비스러운 광휘와 지상의 소란을 대조시켜 S자형의 분방한 구도로 동적 표현을 시도한 이 작품은
이미 고전양식을 해체한 것으로 바로크양식의 싹이 엿보인다.
라파엘로는 살아 있는 동안 예술가로서의 최고의 영예를 누렸다.



♤ 주요 작품


P.페루지노의 조수로 페루지아 어음교환소 벽화 중 우의상을 그림(1500)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1502~1503경)
초원의 성모(1506)
브리지워터의 성모(1507)
로마교황 율리우스 2세를 위해 바티칸궁전 내부 스탄체 서명실에 벽화를 그림(1509)
아테네학당(1511)
바티칸궁전 스탄차델 인첸디오의 벽화장식 작업(1514)
레오 10세의 초상(1518)

 

                            라파엘로 / 보르고 화재의 방(Stanza dell' Incendio di Borgo)



 ▲  '오스티아의 전투(Battle of Ostia)',

849년에 일어났던 '오스티아의 전투(Battle of Ostia)'는 '사라센(Saracens)'의 무리에 대항하는

'레오 4세(Pope Leo IV)'의 군대를 나타낸 것이다. 교황 군대의 기적적인 승리를 축하하는 모습을 표현하고 있으며

또한 이교도에 대항하는 '십자군(Crusade)'을 '교황 레오10세(Pope Leo X )'가 용기를 북돋아 주고 있다.

 

  

  ▲  '보르고 화재(Incendio di Borgo)'-보르고 화재의 방(Stanza dell'Incendio di Borgo)'

'교황연대표(Liber Pontificalis)'에 있는 '보르고의 화재(Fire in the Borgo)'에서 이 방의 이름이 붙여졌다.

847년 '성 베드로 대성당(Bascilica di San Pietro)' 앞의 어느 근처에서 화재가 발생하였다.

교황 레오 4세(Leo IV)'는 '로지아( Loggia of the Blessings)'에서 장엄미사를 거행하며 간절히 기도하였다.

이에 기적적으로 불을 진화하여 '성 베드로 대성당(Bascilica di San Pietro)'과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다.

 

 

  ▲  '샤를마뉴 대제의 대관(Crowning of Charlemagne)'

'샤를마뉴 대제의 대관(Crowning of Charlemagne)'은 800년,

크리스마스 날 밤에 '성 베드로 대성당(Bascilica di San Pietro)'에서 거행되었다.

이로서 신성로마제국(Holy Roman Empire)'이 탄생하게 된다.

이 프레스코는 1515년에 프랑크 왕국(Kingdom of France)'와 '교황청(Holy See)'간에 이루어진

협약과 매우 흡사하다. '레오3세(Leo III )'는 '레오 10세(Leo X)'의 모습을 하고 있고,

'카를마뉴 대제( Charlemagne)'는 '프랑소아 1세(Francis I)'가 그 모습을 하고 있다.  

 

 

  ▲  레오 3세의 결백의 증명(Justification of Leo III)'

'샤를마뉴 대제의 대관식(Crowning of Charlemagne)' 전날에 있었던 '레오 3세의 선서(The Oath of Leo III)'에

관한 에피소드를 나타낸 것이다. 799년 4월 전임 교황 하드리아노 1세(Pope Hadrian I)'의 조카와

로마 교회 관료들에 의해 귀족들의 소요가 일어나자 '레오 3세( Leo III)'는 '파더보른(Paderborn)'으로 피신하였다.

그러자 '샤를마뉴(Charlemagne)'는 정보원들을 파견하여 사태를 수습하게 하였으나 실패하자

800년 11월 자신이 친히 군대를 이끌고 로마에 입성하여 소요를 진압시키고 '레오 3세(Leo III)'를 권좌에 복귀시켰다. '샤를마뉴(Charlemagne)'가 로마와 프랑크의 고관들을 불러 회합을 열자

'레오 3세((Leo III)'는 거기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하고 12월 23일 공적으로 결백함을 증명하였다.

 

 

  ▲  천정화 프레스코(Ceiling Fresco)

천정의 그림은 1508년 교황의 의뢰를 받고, '페루지노(Perugino)'라 불렸던

'피에트로 반누치(Pietro Vannucci)'가 그렸다.

프레스코는 '교황 율리우스 2세(Pope Julius II)' 당시 교황청(Holy See)' '최고 재판소( highest court)',

"세그나튜라 그라티아에 엣 유스티티아에(Segnatura Gratiae et Iustitiae)"의 회의장이었다.

교황 주제의 회의가 열리던 방으로서의 기능을 살리기 위한 '도상학(Iconographic)'적인 의도이다.

이러한 의도로 '페루지오(Perugino)'는 4개의 원형양각(Medallions)'에,

'가장 성스러운 삼위일체(Most Holy Trinity), 천사와 케룹들(Cherubs)'사이에 두고

권좌에 앉으신 창조주(Creator enthroned among angels and cherubs)',

"정의의 태양(Sol Lustitiae)"으로서의 그리스도(Christ as Sol Lustitiae)',

'마귀로 부터 유혹을 받으시는 그리스도 (Christ tempted by the devil)',

그리고 '자비와 정의 사이에 그리스도(Christ between Mercy and Justice)'를 표현하였다.

 


 ▲ '천사와 케룹들(Cherubs)'을 사이에 두고 '권좌에 앉으신 창조주(Creator enthroned among angels and cherubs)'

'교황 레오 3세(Pope Leo III)'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제로 한 '샤를마뉴 대제의 대관(Crowning of Charlemagne)'과 '레오 3세의 결백의 증명(Justification of Leo III)', 그리고 '교황 레오 4세(Pope Leo IV)'와 관련된

'보르고의 화재(Fire in Borgo)'와 '오스티아의 전투(Battle of Ostia)'를 그려 놓았다.

 

 

  ▲ 천정 프레스코(Ceiling Fresco)', '가장 성스러운 삼위일체(Most Holy Trinity)'

작업은 1514년에서 1517년 사이에 완성되었다. 프레스코의 그림은, 같은 이름을 가진 2명의 이전 교황들,

'교황 레오 3세(Pope Leo III)'와 교황 '레오 4세(Pope Leo IV)'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들,

'교황연대표(Liber Pontificalis)'로 서술되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통하여

교황 레오 10세(Pope Leo X)'의 정치적 포부를 표현하였다.

 

 

  "정의의 태양(Sol Lustitiae)"으로서의 그리스도(Christ as Sol Lustitiae)'와

'마귀로 부터 유혹을 받으시는 그리스도 (Christ tempted by the devil)'.

'교황 레오 10세(Pope Leo X)' 시절에 이 방은 연회장으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이 방의 프레스코는 '라파엘(Raphael)'에게 작업을 의뢰하였고,

그는 이 방의 작업을 자신의 '라파엘파(Raphael School)'의 제자들에게 진행시킨다.

이 모든 에피소드들 속에 교황의 모습은, 통치자로서의 교황 '레오 10세(Leo X)'의 모습으로 표현하였다.

교회를 수호하였던 6명의 황제와 국왕들은 벽화들 기단부에 단색 모노크롬으로 묘사하였다..

 

 

 '자비와 정의 사이의 그리스도(Christ between Mercy and Justice)'

 

 

 

Beethoven's Silence - Ernesto Cortazar



바티칸시티(Vatican City)/ 바티칸 박물관 (Musei Vaticani) NO.13

라파엘로의 방(Stanz di Raffaello) 

-보르고 화재의 방(Stanza dell' Incendio di Borgo)-

 

 

 

'보르고 화재의 방(Stanza dell'Incendio di Borgo)'은 '교황 율리우스 2세(Pope Julius II)' 때에

교황청(Holy See) '최고 재판소( highest court)'의 회의장으로 사용되던 방으로

이 방의 이름은 교황청(Holy See)', 최고 재판소( highest court)'이며,

"세그나튜라 그라티아에 옛 유스티티아에(Segnatura Gratiae et Iustitiae)"의 교황 주재 회의가 열리던 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