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經 (시경) 풍(風,國風)

國風. 회풍(檜風) 2편 소관3장(素冠三章)

덕치/이두진 2021. 7. 8. 16:38

 

國風. 회풍(檜風) 2편 소관3장(素冠三章)

 

庶見素冠兮, 棘人欒欒兮, 勞心慱慱兮. 

 

庶見素衣兮, 我心傷悲兮, 聊與子同歸兮.

 

庶見素鞸兮, 我心蘊結兮, 聊與子如一兮. 

 

 

1장. 庶見素冠兮아 棘人欒欒兮로니 勞心慱慱兮호라.

 

        서견소관혜아 극인난난혜로니 노심단단혜호라. 賦也라

 

        바라건대 흰 갓을 쓴 검소한 사람아, 거상중에 있는 사람의 수척함을 보랴. 

        애쓰며 괴로워하는 마음이 걱정스럽도다. 

 

賦也라. 庶는 幸也라. 縞冠素紕는 旣祥之冠也니 黑經白緯曰縞요 緣邊曰紕라.

棘은 急也니 喪事에 欲其總總爾니 哀遽之狀也라. 欒欒은 瘠貌요 慱慱은 憂勞之貌라. 

祥冠은 祥則冠之요 禫則除之라. 今人이 皆不能行三年之喪矣니 安得見此服乎아.

當時賢者 庶幾見之하야 至於憂勞也라.

 

부이다. 서는 ‘다행히(행여)’라. 흰 갓에 흰 테두리한 것은 이미 대상을 다하고

쓴 갓이니, 검은 날줄에 흰 씨줄을 한 것을 호[縞冠]라 하고,

가장자리에 선을 두른 것을 비[素紕]라 하니라. 

극은 급함이니 상사에 그 총총히(바삐하는 모습) 하고자 하니 슬프고 급한 모양이라. 

난난은 수척한 모양이고, 단단은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모양이라. 

상관은 대상을 지내면 갓으로 쓰고 담제 때는 벗느니라.  지금 사람이 모두 능히

삼년의 상을 행하지 못하니 어찌 이러한 상복입은 자를 볼 수 있으랴. 

당시에 어진 자가 거의(겨우) 보게 되어 근심하고 괴로운 데에 이르렀느니라.

 

  예전에 사람이 죽으면 상을 치르는데 이에는 喪禮가 있다. 

     상례를 初終之禮(初는 돌아가심에 斂하는 것이고, 終은 장사지내는 것) 

     혹은 상장례(喪葬禮)라고도 하는데 특히 부모의 3년상은 졸곡(卒哭) 

     → 소상[小祥, 사람이 죽은 지 1년 만에 지내는 제사로, 돌아가신 부모님을 이렇게 모실 수 있기에 

     더 이상은 喪이라 하지 않고, 상서롭다는 祥이라는 표현을 씀]

     → 대상[大祥, 사람이 죽은 지 2년만에 지내는 제사] 

     → 담제[禫祭, 혼령을 편안히 모신다하여 담제라고 함. 

     대상을 지낸 다음다음 달 하순의 丁日이나 亥日에 지내는 제사.

    초상(初喪)으로부터 27개월 만에 지내나, 아버지가 생존한 모상(母喪)이나

    처상(妻喪)일 때에는 초상으로부터 15개월 만에 지냄]

     → 길제[吉祭, 죽은 이를 저 세상에서 편하게 계시도록 다 해드렸다는 의미에서

    ‘길할 吉’자를 씀. 吉祭는 禫祭를 지낸 다음 달에 지내는 제사로 정일(丁日)이나

    해일(亥日)로 날을 잡아 지내는데,  만약 담제를 음력으로 2(卯月) ·5(午月) ·

    8(酉月) ·11월(子月)에 지냈으면 반드시 그 달 안으로 지내야 하며, 

    역시 정일이나 해일에 지낸다. 상주는 길제를 지낸 다음날부터 소복(素服)을 벗고, 

    평상복을 입을 수 있음]로 상례를 마친다. 상복은 염을 하고 난 뒤에는 건을 쓰고

    상복을 입다가 大祥을 지내면 상복을 벗고 흰 갓과 흰 두루마기로 素服을 입는다.

    위 시에서 흰 갓을 썼다고 했으니 大祥의 기간이 지났음을 알 수 있다. 

    예법은 이렇지만 당시 사회가 도통 이 예법을 지키지 않았다. 

    위 시는 初終禮의 기간 동안에 제대로 된 상제(喪祭 곧 喪主)를 볼 수 없었는데 

    흰 갓을 쓴 사람을 겨우 얻어 보았으니 시인의 마음이 더욱 슬퍼지며,

    세상을 한탄하며 읊은 것이다.

 

 

2장. 庶見素衣兮아 我心傷悲兮로니 聊與子同歸兮호리라.

 

        서견소의혜아 아심상비혜로니 료여자동귀혜호리라. 賦也라

 

        바라건대 흰 옷을 입은 검소한 사람아, 내 마음은 시름에 잠겨 슬프노니 

        어떻게든 그대에게 돌아가 함께 그 뜻을 이루리라.

 

賦也라. 素冠則素衣矣라. 與子同歸는 愛慕之詞也라.

부라. 흰 갓 썼다면 흰 옷을 입은 것이라.

그대와 더불어 같이 돌아간다는 것은 사랑하고 사모하는 말이라.

 

※ 3년상을 다 마치고 흰 옷 입은 사람을 볼 수 있다면

그런 사람과 함께 의형제라도 맺고 함께 하리라.

 

 

3장. 庶見素鞸兮아 我心蘊結兮로니 聊與子如一兮호리라.

 

        서견소필혜아 아심온결혜로니 요여자여일혜호리라. 賦也라

 

        바라건대 흰 웃옷과 흰 아랫도리를 입은 검소한 사람아,

        내 마음에 한이 풀리지 않음이니, 

        어떻게든 그대와 함께 하나같이 행동하리라.

 

賦也라. 鞸은 蔽膝也니 以韋爲之라. 冕服謂之韍이오 其餘曰鞸이라.

鞸從裳色이니 素衣素裳이면 則素鞸矣라. 蘊結은 思之不解也라.

與子如一은 甚於同歸矣라.

 

부라. 필은 무릎을 가리는 것이니 가죽으로써 만드느니라. 

면복을 불이라 하고 그 나머지는 필이라 하니라. 

필은 치마 색을 따르니 흰 웃옷과 흰 아랫도리면 곧 흰 슬갑이라. 

온결은 생각의 풀리지 않음이라. 그대와 더불어 하나같이 함은 동귀보다 심함이라.

 

 ※  傳에 曰子夏三年之喪을 畢하고 見於夫子하야 援琴而弦할새

      衎衎而樂하고 作而曰先王制禮를 不敢不及이니이다.

      夫子曰君子也로다. 閔子騫이 三年喪을 畢하고 見於夫子하야 援琴而弦할새 

      切切而哀하고 作而曰先王制禮를 不敢過也니이다. 夫子曰君子也로다. 

      子路曰敢問何謂也잇고 夫子曰子夏는 哀已盡이어늘 能引而致之於禮라.

      故로 曰君子也오 閔子騫은 哀未盡이어늘 能自割以禮라.

      故로 曰君子也라. 하시니 夫三年之喪은 賢者之所輕이오 不肖者之所勉이라.

 

전에 가로대 자하가 삼년의 상을 마치고 부자를 뵙고서 거문고를 당겨서 탈 적에

간간히 즐거워하고, 일어나서 하는 말이 ‘선왕이 지은 예를 감히 미치지 아니하지

못하겠나이다.'  부자 가라사대 ‘군자로다.’ 민자건이 삼년상을 마치고 부자를 뵙고서

거문고를 당겨서 탈 적에 절절히 슬퍼하고 일어나 하는 말이

‘선왕이 지으신 예를 감히 지나치지 못하겠나이다.’ 부자 가라사대 ‘군자로다.’ 

자로가 말하기를 ‘감히 묻잡노니 무엇을 이르시니잇고?’ 

부자 가라사대 ‘자하는 슬픔이 이미 다했거늘 능히 이끌어서(슬픔을 연장시켜서)

예를 이루었느니라. (자하는 자신의 슬픔을 미루어 삼년상은 세상이 꼭 지키도록 해

야겠다고 생각함). 민자건은 슬픔이 아직 다하지 아니했거늘

(슬픔이 여전히 복받치고 복받치거늘) 능히 스스로 예를 쪼개냈느니라.

(선왕이 정한 법이 삼년상이기에 슬픔을 억제하며 삼년상을 마쳤다. 

계속 슬퍼만 할 수 없기에 선왕의 예에 따라 삼년상을 마쳤다).

그러므로 군자라 함은 대저 삼년의 상은 어진 자는 가볍게 여기는 것이고

(삼년상이 너무 적어 더했으면 하는 마음이고), 어질지 못한 자는 힘써야 하는

것이라(삼년상이 무겁기에 힘써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

 

 素冠三章章三句라

 

 

『毛詩序』

素冠은 刺不能三年也라.

按喪禮컨대 爲父爲君하야 斬衰三年하니라.

昔에 宰予欲短喪한대 夫子曰子生三年然後에 免於父母之懷하나니 

予也有三年之愛於其父母乎아 하시니 三年之喪은 天下通喪也라.

소관은 3년 상을 행하지 않음을 풍자한 詩이다.

상례를 상고하건대 아비를 위하고 인군을 위하여 참최삼년을 했느니라.

 (참최복을 입고 삼년상을 지낸다) 하니라. 

옛날에 재여가 삼년상을 짧게 하려 하니까 부자 가라사대 

‘자식이 나와서 3년을 지낸 뒤에야 부모의 품을 면하나니, 

여야, 삼년의 사랑을 부모에게 두었느냐’ 하시니,

삼년의 상은 천하에 통하는 상이라. 

  

 

  原 文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文 飜譯者    德庤 / 李 斗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