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經 (시경) 풍(風,國風)

國風. 秦風(진풍) 9편 위양2장(渭陽二章)

덕치/이두진 2021. 6. 21. 17:19

 

  國風. 秦風(진풍) 9편 위양2장(渭陽二章)

 

 

  我送舅氏, 曰至渭陽.  何以贈之, 路車乘黃.

 

  我送舅氏, 悠悠我思.  何以贈之, 瓊瑰玉佩.

 

 

1장. 我送舅氏하여 曰至渭陽호라. 何以贈之오 路車乘黃이로다.

 

        아송구씨하여 왈지위양호라. 하이증지오 노거승황이로다. 賦也라

 

        내가 외삼촌을 전송하려고 위수 북쪽(함양)에 이르렀노라. 

        어떤 선물을 그 분께 드릴까?

        큰 수레(제후가 타는 수레)와 네 필의 누런 말을 드리리라.

 

賦也라. 舅氏는 秦康公之舅니 晉公子重耳也라.

出亡在外러니 穆公이 召而納之하니, 時에 康公爲太子하여 送之渭陽而作此詩라.

渭는 水名이라. 秦이 時都雍하니 至渭陽者는 蓋東行하여 送之於咸陽之地也라.

路車는 諸侯之車也요, 乘黃은 四馬皆黃也라.

 

부이다. 구씨는 秦나라 강공의 외삼촌이니 晉나라 공자인 중이라.

망명하여 외국에 있더니 목공이 불러들이니, 그때에 강공이 태자가 되어

위수 남쪽에 보내는데 이 시를 지음이라. 위는 물 이름이라. 

진나라가 당시에 옹주에 도읍하니 위양에 이른다는 것은 대개 동쪽으로 가서

함양 땅에 전송한다는 것이라. 

노거는 제후의 수레이고, 승황은 네 마리 말이 다 누르니라.

 

※ 훗날 晉文公이 되는 重耳가 아버지가 죽어 조문객을 받을 때에

    외삼촌 犯이 다음과 같이 충고해주는데 『대학』 治國平天下章에 전해진다.

    “舅犯이 曰亡人은 無以爲寶요 仁親을 以爲寶라하니라.

    (외삼촌 범이 이르기를, “망명한 사람은 보배로 삼을 것이 없고

    어버이 사랑함을 보배로 삼는다.”고 하니라.)”

 

   

2장. 我送舅氏하니 悠悠我思로다. 何以贈之오 瓊瑰玉佩로다.

 

        아송구씨하니 유유아사로다. 하이증지오 경괴옥패로다. 賦也라

 

        내가 외삼촌을 전송하려 하니 온갖 생각이 다 떠오르도다. 

        어떤 선물을 그 분께 드릴까? 아름다운 옥돌과 패옥을 드리리라.

 

賦也라. 悠悠는 長也라. 序에 以爲時에 康公之母穆姬已卒이라.

故로 康公이 送其舅而念母之不見也라.

或이 曰穆姬之卒은 不可考나 此는 但別其舅而懷思耳라. 瓊瑰는 石而次玉이라.

 

부이다. 유유는 길음이다. 序에 이르기를, “이때에 강공의 어미인 목희가

이미 죽었으므로 강공이 그 외삼촌을 보내면서 어머니를 뵙지 못함을 생각했다.

(어머니가 계시지 않으므로 외삼촌 뵙기를 마치 어머니를 뵙듯이 했다.).”고 하니라. 

혹자는 “목희의 죽음은 상고할 수 없으나 이는 다만 그 외삼촌과 이별하고

리워하는 생각이라.”고 함이라. 경괴는 돌이면서 옥 다음가는 것이라.

 

※ 按春秋傳컨대 晉獻公이 烝於齊姜하여 生秦穆夫人太子申生하고 娶犬戎胡姬하여

    生重耳하고 小戎子生夷吾하고 驪姬生奚齊하고 其娣生卓子러니

    驪姬 譖申生하여 申生이 自殺하고 又譖二公子하여 二公子 皆出奔이라.

    獻公이 卒에 奚齊卓子 繼立이라가 皆爲大夫里克所弑한대 秦穆公이 納夷吾하니 

    是爲惠公이라. 卒하니 子圉立하니 是爲懷公이라.

    立之明年에 秦穆公이 又召重耳而納之하니 是爲文公이라.

    王氏曰至渭陽者는 送之遠也요 悠悠我思者는 思之長也요

    路車乘黃瓊瑰玉佩者는 贈之厚也라.

    廣漢張氏曰康公이 爲太子하여 送舅氏할새 而念母之不見하니

    是固良心也로되 而卒不能自克於令狐之役하여 怨欲이 害乎良心也하니

    使康公으로 知循是心하여 養其端而充之런들 則怨欲可消矣리라.

 

『춘추좌전』(莊公二十八年편)을 상고하건대, (晉)헌공이 제나라 강씨와 붙어

(秦)목공의 부인과 태자 신생을 낳고, 견융의 호희에게 장가들어 중이를 낳고,

소융자는 이오를 낳고, 여희는 해제를 낳고, 그 여희의 동생은 탁자를 낳더니,

여희가 신생을 참소하여 신생이 자살했고, 또 두 공자(중니와 이오)를 참소하여 

두 공자가 다 망명했느니라. 헌공이 죽음에 해제와 탁자가 이어서 왕위에 올랐다가  

대부 이극이 죽인 바가 되었는데, (秦)목공이 이오를 불러들이니 이가 혜공이 되니라. 

(혜공이) 죽음에 자어를 세우니 이가 회공이 되니라. 

회공을 세운 다음 해에 (秦)목공이 또 중이를 불러들이니 이가 (晉)문공이 되니라. 

왕씨는 “위수 남쪽에 이르렀다는 것은 멀리 보내는 것이고, 아득한 내 생각이라는

것은 생각을 오래 하는 것이고, 노거승황과 경괴옥패는 줌의 후함이라.”고 하니라.

광한 장씨는 “강공이 태자가 되어서 외삼촌을 보낼 때에 어머니를 보지 못함을

생각했으니 이는 진실로 양심이로되, 마침내 능히 스스로 영호의 싸움

(기원전 636년 晉懷公1년에 秦穆公과 싸워 영호를 취함)을 이기지 못하여 

원망과 욕심이 양심을 해쳤으니(기원전 620년 秦康公1년에 晉靈公과 싸워

武城을 취해 영호의 전쟁을 보복했다.), 

강공으로 하여금 이 마음(양심)을 따라 그 단서를 길러 채우게 할 줄을

알게 하였더라면 곧 원망과 욕심이 가히 사라졌을 것이라.”고 하니라.

 

渭陽二章에 章은 四句라.

   

 

『毛詩序』

渭陽은 康公이 念母也라. 康公之母는 晉獻公之女라.

文公이 遭驪姬之難하여 未反而秦姬卒하니라.

穆公이 納文公하니 康公이 時爲太子하여

贈送文公于渭之陽할새 念母之不見也하여 我見舅氏하니 如母存焉이라.

及其卽位하여 思而作是詩也하노라.

위양은 강공이 어머니를 생각한 것이다.

강공의 어머니 진희는 진(晉)나라 헌공의 딸이다.

문공이 려희의 난을 만나 진(晉)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진희가 죽었다.

그후 진(秦)나라 목공이 진(晉)나라 문공을 모국으로 들여보내니

이때 강공은 진(秦)나라 태자였는데 문공을 위수의 북쪽에서 전송하면서 

어머니를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였는데 내가 외숙을 보니

어머니가 생존해 계신 듯 했었다고 하였다.

강공이 즉위하게 되자, 이를 생각하여 이 詩를 지었다.

 

 

原 文 .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