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經 (시경) 풍(風,國風)

國風. 진풍(秦風) 6편 황조3장(黃鳥三章)

덕치/이두진 2021. 6. 21. 17:13

 

  國風. 진풍(秦風) 6편 황조3장(黃鳥三章)

 

 

  交交黃鳥, 止于棘.  誰從穆公, 子車奄息.  維此奄息, 百夫之特.

  臨其穴, 惴惴其慄.  彼蒼者天, 殲我良人.  如可贖兮, 人百其身.

 

  交交黃鳥, 止于桑.  誰從穆公, 子車仲行.  維此仲行, 百夫之防.

  臨其穴, 惴惴其慄.  彼蒼者天, 殲我良人.  如可贖兮, 人百其身.

 

  交交黃鳥, 止于楚.  誰從穆公, 子車鍼虎.  維此鍼虎, 百夫之禦.

  臨其穴, 惴惴其慄.  彼蒼者天, 殲我良人.  如可贖兮, 人百其身.

 

 

1장. 交交黃鳥여 止于棘이로다.  誰從穆公고 子車奄息이로다.

        維此奄息이여 百夫之特이로다.  臨其穴하여 惴惴其慄이로다.

        彼蒼者天이여 殲我良人이로다.  如可贖兮인댄 人百其身이로다.

 

        교교황조여 지우극이로다.  수종목공고 자거엄식이로다.

        유차엄식이여 백부지특이로다.  임기혈하여 췌췌기율이로다.

        피창자천이여 섬아양인이로다.  여가속혜인댄 인백기신이로다. 興也라

 

        이리저리 나는 꾀꼬리여 멧대추나무에 내려앉았도다.

        누가 목공을 따라 죽는가? 자거 엄식이로다.

        오직 이 엄식이야말로 백 사람 가운데 뛰어난 자로다.

        그가 무덤에 다다랐을 때 두려워하며 벌벌 떨도다.

        저 푸른 하늘이여 우리 어진 이를 죽이도다.

        만약 바꿀 수만 있다면 사람마다 그 몸을 백 번이라도 바치리라.

 

興也라. 交交는 飛而往來之.從穆公은 從死也라. 子車는 氏요 奄息은 名이라.

特은 傑出之稱이라. 穴은 壙也라. 惴惴는 懼貌라.

慄은 懼요 殲은 盡이오 良은 善이오 贖은 貿也라. 

秦穆公이 卒에 以子車氏之三子로 爲殉하니 皆秦之良也라.

國人이 哀之하여 爲之賦黃鳥하니 事見春秋傳하니 卽此詩也라.

言交交黃鳥는 則止于棘矣라.  誰從穆公고 則子車奄息也라하니

蓋以所見으로 起興也라. 臨穴而惴惴는 蓋生納之壙中也라.

三子는 皆國之良이어늘 而一旦殺之하니 若可貿以他人인댄

則人皆願百其身以易之矣리라.

 

흥이다. 교교는 날아서 왔다 갔다 하는 모양이다. 목공을 따름은 따라 죽음이다. 

자거는 성이고, 엄식은 이름이다. 특은 걸출함을 일컬음이다.

혈은 무덤이다. 췌췌는 두려워하는 모양이다. 

율은 두려움이고, 섬은 다함(죽임)이고, 량은 착함이고, 속은 바꿈이다. 

진 목공이 죽음에 자거씨의 세 아들을 따라 죽게(殉葬) 하니,

모두 진나라의 어진이였다. 나라 사람이 슬퍼하여 그들을 위하여 황조시를 읊으니

그 일이 춘추전에 보이니 곧 이 시이다. 

말하기를, ‘이리저리 나는 꾀꼬리는 대추나무에 내려앉네 누가 목공을 따르는고?

자거엄식이라.’ 하니 본 일로써 흥을 일으킨 것이다.

무덤에 다다라 벌벌 떤다한 것은 산채로 구덩이 속에 들여 넣었기 때문이다. 

세 아들은 다 나라의 어진 이이거늘 하루아침에 죽이니, 만약 다른 사람과 바꿀 수

있었다면 사람들이 모두 그 몸을 백 번이라도 바꾸기를 원하였을 것이다.

 

   

2장. 交交黃鳥여 止于桑이로다.  誰從穆公고 子車仲行이로다.

        維此仲行이여 百夫之防이로다.  臨其穴하여 惴惴其慄이로다.

        蒼者天이여 殲我良人이로다.  如可贖兮인댄 人百其身이로다.

 

        교교황조여 지우상이로다. 수종목공고 자거중항이로다.

        유차중항이여 백부지방이로다.  임기혈하여 췌췌기율이로다.

        피창자천이여 섬아양인이로다.  여가속혜인댄 인백기신이로다. 興也라

 

        이리저리 나는 꾀꼬리여 뽕나무에 내려앉았도다. 

        누가 목공을 따라 죽는가? 자거 중항이로다.

        오직 이 중항이야말로 백 명이라도 당해 낼 만하도다. 

        그가 무덤에 다다랐을 때 두려워하며 벌벌 떨도다.

        저 푸른 하늘이여 우리 어진 이를 죽이도다.

        만약 바꿀 수만 있다면 사람마다 그 몸을 백 번이라도 바치리라.

 

興也라. 防은 當也니 言一人可以當百夫也라.

흥이다. 방은 당해냄이니 한 사람이 백 명을 당해냄(一當百)을 말한다.

 

   

3장. 交交黃鳥여 止于楚로다. 誰從穆公고 子車鍼虎로다.

        維此鍼虎여 百夫之禦로다.  臨其穴하여 惴惴其慄이로다.

        彼蒼者天이여 殲我良人이로다.  如可贖兮인댄 人百其身이로다.

 

        교교황조여 지우초로다. 수종목공고 자거겸호로다.

        유차겸호여 백부지어로다.  임기혈하여 췌췌기율이로다.

        피창자천이여 섬아양인이로다.  여가속혜인댄 인백기신이로다. 興也라

 

        이리저리 나는 꾀꼬리여 사시나무에 내려앉았도다.

        누가 목공을 따라 죽는가? 자거 겸호로다. 

        오직 이 겸호야말로 백 명이라도 막아 낼 만하도다.

        그가 무덤에 다다랐을 때 두려워하며 벌벌 떨도다.

        저 푸른 하늘이여 우리 어진 이를 죽이도다.

        만약 바꿀 수만 있다면 사람마다 그 몸을 백 번이라도 바치리로다.

   

興也라. 禦는 猶當也라.

흥이다. 어는 당해냄과 같다.

 

黃鳥三章이니 章十二句라.

 

春秋傳에 曰君子曰秦穆公之不爲盟主也 宜哉인저 死而棄民이로다.

    先王은 違世에 猶貽之法이어늘 而況奪之善人乎아 今縱無法하여 以遺後嗣하고

    而又收其良以死하니 難以在上矣라. 君子 是以로 知秦之不復東征也라하니라.

    愚按穆公於此에 其罪不可逃矣라. 但或以爲穆公遺命如此어늘

    而三子自殺以從이라하니 則三子 亦不得爲無罪어니와 今觀臨穴惴慄之言하면

    則是康公從父之亂命하여 迫而納之於壙하니 其罪有所歸矣라.

    又按史記컨대 秦武公卒에 初以人從死하여 死者 六十六人이러니 至穆公하여

    遂用百七十七人하여 而三良與焉하니 蓋其初에 特出於戎狄之俗이어늘

    而無明王賢伯이 以討其罪라. 於是에 習以爲常하니 則雖以穆公之賢으로도

    而不免이라. 論其事者 亦徒閔三良之不幸하고 而歎秦之衰요.

    至於王政不綱하여 諸侯擅命하여 殺人不忌 至於如此하야는 則莫知其爲非也하니

    嗚呼라. 俗之弊也 久矣로다.

    其後始皇之葬에 後宮을 皆令從死하고 工匠을 生閉墓中하니 尙何怪哉리오.

 

『춘추좌전』(文公六年편)에 “군자가 이르기를, 진목공이 맹주가 되지 못한 것이

당연하도다. 죽으면서도 백성을 버리도다. 선왕은 세상을 떠남에 오히려

법을 남겼는데 하물며 선한 사람을 빼앗음에랴.”라고 하였다. 

이제 무법한 짓을 멋대로 하여 후사에게 물려주고 또 어진 이를 거두어 죽게 하니,

위(임금자리)에 있기가 어렵다. 군자가 이로써 진나라가 다시는 동쪽으로 정벌하지

못할 것을 알았다. 내가 살펴보건대, 목공은 이에 그 죄를 피할 수 없다.

어떤 이는 ‘목공이 명을 남김이 이와 같은데, 삼자(車氏의 세 아들)가 스스로 죽어서

따랐다.’고 하니, 삼자 또한 죄가 없다고 할 수 없거니와 ‘무덤에 다다라 벌벌 떤다.’고

한 것을 본다면 이것은 (목공의 뒤를 이은) 강공이 아비의 난명을 따라서 핍박하여

구덩이에 들어가게 했으니 그 죄를 돌릴 데가 있다. 

또한 『사기』를 살펴보건대, 진무공이 죽음에 처음으로 사람을 따라죽게 하여

죽은 자가 66명 이있는데, 목공에 이르러서는 드디어 177명을 써서 3인의 어진 이가

함께 했다 하니, 대개 그 처음에는 다만 이것이 융적의 풍속에서 나온 것이거늘

밝은 인군과 어진 방백들이 그 죄를 토죄한 이가 없었다. 

이에 익혀서 상례로 삼았으니, 비록 어진 목공으로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그 일을 논한 자가 또한 한갓 세 어진 이의 불행함만을 불쌍히 여기고,

진나라의 쇠함을 탄식하였고, 왕정의 기강이 서지 못함에 이르러

제후들이 명을 제멋대로 하여 이처럼 사람 죽임을 꺼려하지 않게 되어서는 

그 그릇됨을 알지 못했으니, 아아, 풍속의 폐단이 오래되었도다. 

그 후에 시황의 장례에 후궁들을 모두 따라 죽게 하고,

공장들을 산채로 무덤에 가두었으니 오히려 어찌 괴이하겠는가?

 

   

『毛詩序』

黃鳥는 徒閔三良之不幸하고 而歎秦之衰요.

國人이 刺穆公以人從死하여 而作是詩也니라.

황조는 세 어진 이의 불행함을 불쌍히 여기고, 

진나라의 쇠함을 탄식하며 백성들이 목공이 죽으면서 

사람들을 따라 죽게 함을 풍자하여 이 詩를 지은 것이다.

 

 

原 文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文 飜譯者    德庤 / 李 斗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