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經 (시경) 풍(風,國風)

國風. 秦風(진풍) 8편 무의3장(無衣三章)

덕치/이두진 2021. 6. 21. 17:17

 

  國風. 秦風(진풍) 8편 무의3장(無衣三章)

 

 

  豈曰無衣, 與子同袍.  王于興師, 脩我戈矛, 與子同仇.

 

  豈曰無衣, 與子同澤.  王于興師, 脩我矛戟, 與子偕作.

 

  豈曰無衣, 與子同裳.  王于興師, 脩我甲兵, 與子偕行.

 

 

1장. 豈曰無衣라 與子同袍리오.

        王于興師어시든 修我戈矛하여 與子同仇하리라.

 

        기왈무의라 여자동포리오.

        왕우흥사어시든 수아과모하여 여자동구하리라. 賦也라

 

        어찌 입을 옷이 없다고 하였는가? 그대와 함께 도포를 입고 있는데.

        왕이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한다면, 내 짧은 창과 긴 창을 정비하여,

        그대가 표적으로 삼은 적을 무찌르리라.

 

賦也라. 袍는 襺也라. 戈는 長六尺六寸이오 矛는 長二丈이라.

王于興師는 以天子之命而興師也라. 秦俗이 强悍하여 樂於戰鬪라.

故로 其人이 平居而相謂하여 曰豈以子之無衣로 而與子同袍乎리오.

蓋以王于興師則將修我戈矛而與子同仇也라하니 其懽愛之心이 足以相死如此라.

蘇氏曰秦本周地라. 故로 其民이 猶思周之盛時而稱先王焉하니라.

或曰興也니 取與子同三字로 爲義라하니 後章放此라.

 

부이다. 포는 솜옷이다. 과는 길이가 6척6촌이고 모는 길이가 두 길이다. 

왕이 군사를 일으킴은 천자의 명으로써 군사를 일으킨 것이다. 

진나라 풍속이 강하고 사나워 전투를 즐겨하였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평소 지내며 서로 일러 말하기를, ‘어찌 그대가 옷이 없다고 하여

그대와 함께 솜옷을 입으리오. 왕이 군사를 일으킨다면 장차 내 창과 창을 수선하여

그대와 함께 짝을 지어 전쟁터에 나가리라.’고 하니, 그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마음이 이와 같이 서로 죽더라도 만족하게 여긴 것이다.

소씨는 “진나라는 본래 주나라 땅이므로 그 백성이 오히려 주나라의 성할 때를

생각하면서 선왕을 칭송하였다.”고 하였다. 

혹자(馬融의 毛傳)는 “흥이니 ‘與子同’ 세 글자를 취해 뜻을 삼았다.”고 하니,

뒷장도 이와 같다.

 

   

2장. 豈曰無衣라 與子同澤이리오.

        王于興師어시든 修我矛戟하여 與子偕作하리라.

 

        기왈무의라 여자동택이리오.

        왕우흥사어시든 수아모극하여 여자해작하리라. 賦也라

 

        어찌 입을 옷이 없다고 하였는가? 그대와 함께 저 속옷을 입고 있는데

        왕이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한다면, 내 세모 창과 갈래진 창을 정비하여,

        그대와 함께 출정하리라.

   

賦也라. 澤은 裏衣也니 以其親膚하여 近於垢澤이라. 故로 謂之澤이라.

戟은 車戟也니 長丈六尺이라.

 

부이다. 택은 속옷이니 그 살에 가까워서 거의 때로 반질반질해졌으므로

택이라 한다. 극은 수레에 단 창이니 길이가 한 길 여섯 척이다.

 

 

3장. 豈曰無衣라 與子同裳이리오.

        王于興師어시든 修我甲兵하여 與子偕行하리라.

 

        기왈무의라 여자동상이리오.

        왕우흥사어시든 수아갑병하여 여자해행하리라. 賦也라

 

        어찌 입을 옷이 없다고 하였는가? 그대와 함께 저 갑옷 치마를 입고 있는데

        왕이 군사를 일으켜 전쟁을 한다면, 내 갑옷과 병기 정비하여,

        그대와 함께 적을 물리치리라.

 

賦也라. 行은 往也라.

부이다. 행은 감이다.

 

秦人之俗이 大抵尙氣槪하고 先勇力하여 忘生輕死라. 故로 其見於詩如此라.

    然이나 本其初而論之면 岐豊之地를 文王이 用之하여 以興二南之化하여 

    如彼其忠且厚也러니 秦人用之未幾에 而一變其俗이 至於如此하니

    則已悍然有招八州而朝同列之氣矣는 何哉오.

    雍州는 土厚水深하여 其民이 厚重質直하여 無鄭衛驕惰浮靡之習하니 以善導之면

    則易興起而篤於仁義요. 以猛驅之면 則其强毅果敢之資 亦足以彊兵力農하여

    而成富彊之業이니 非山東諸國所及也라.

    嗚呼라 後世에 欲爲定都立國之計者 誠不可不監乎此요

    而凡爲國者 其於導民之路에 尤不可不審其所之也니라.

 

진나라 사람들의 풍속이 대체로 기개를 숭상하고 용감함과 힘을 앞세워 살 생각을

잊고 죽음을 가벼이 여겼다. 그러므로 그 시에 나타난 것이 이와 같다.

그러나 그 처음을 근본으로 하여 논한다면 기와 풍의 땅을 문왕이 이남(주남, 소남)의

교화를 일으켜 저토록 충성스럽고 후중하였는데, 진나라 사람들이 쓴지

얼마 되지 않아 단번에 그 풍속이 변한 것이 이와 같은데 이르렀으니 

곧 이미 사납게 여덟 고을을 차지하고, 동렬(의 제후)에게 조회받으려는

기상이 있었으니 어째서인가. 옹주는 땅이 두텁고 물은 깊어서 그 백성이 후중하고

질직하여 정나라와 위나라의 교만하고 게으르고 가볍고 사치하는 습성이 없으니,

선함으로 인도하면 쉽게 흥기하여 인의에 돈독할 것이고, 사나움으로 몰아붙이면

그 강하고 굳세고 과감한 바탕이 또한 족히 군사를 강하게 하고 

농사에 힘써 부강의 업을 이룰 것이니 산동의 모든 나라가 미칠 바가 아니다. 

아아, 후세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를 세우는 계책을 하고자 하는 자가 진실로

이에 귀감을 삼지 않을 수 없고,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그 백성을 인도하는 길에

더욱 그 가야할 곳을 살피지 않을 수 없다.

 

無衣三章이니 章五句라.

 

 

『毛詩序』

無衣는 刺用兵也라. 秦人이 刺其君好攻戰하여

亟用兵하여 而不與民同欲焉하니라.

무의는 전쟁을 자주 일으켜 군사를 부림을 풍자한 詩이다.

진나라 사람들은 그 군주가 공격하며 싸우는 것을 좋아하여

자주 전쟁을 일으켰는데 이는 백성들이 원하는 것이 

아님을 풍자한 것이다.

 

 

原 文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文 飜譯者    德庤 / 李 斗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