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經 (시경) 풍(風,國風)

國風. 정풍(鄭風) 17편 자금3장(子衿三章)

덕치/이두진 2021. 6. 20. 15:37

 

 國風. 정풍(鄭風) 17편 자금3장(子衿三章)

 

 

  青青子衿, 悠悠我心.  縱我不往, 子寧不嗣音.

 

  青青子佩, 悠悠我思.  縱我不往, 子寧不來.

 

  挑兮達兮, 在城闕兮.  一日不見, 如三月兮.

 

 

1장. 靑靑子衿이여 悠悠我心이로다. 縱我不往이나 子寧不嗣音고.

 

       청청자금이여 유유아심이로다 종아불왕이나 자녕불사음고. 賦也라

 

       푸르름에 물든 그대의 옷깃이여 내 마음은 기나긴 기다림이로다.

       비록 내가 가지 못하나 그대는 어이하여 소식을 전하지 않는고?

 

賦也라 靑靑은 純緣之色이니 具父母면 衣純以靑이라. 子는 男子也라. 衿은 領也라. 

悠悠는 思之長也라. 我는 女子自我也라. 嗣音은 繼續其聲問也라. 此亦淫奔之詩라.

 

부이다. 청청은 옷깃에 선을 두르는 순수한 색이니,

부모가 다 살아계시면 옷에 푸른빛으로 선을 두름이라.

자는 남자라. 금은 옷깃이라. 유유는 생각함이 길음이라. 아는 여자 스스로이라.

사음은 그 소식을 계속하여 물음이라. 이 또한 음분한 시라.

 

※ 毛傳에서 靑衿은 공부하는 남자가 입는 옷이라(學子之服也) 했다. 

윗글에 연유하여 예로부터 儒生을 가리킬 때 靑衿이라 했다.  정나라 때

학교가 있다가 폐지된 사실은 『춘추좌전』 襄公31년 편에 그 내용이 보인다.

鄭人游于鄕校하여 以論執政이라가 然明이 謂子產曰毀鄕校何如오. 子產曰何爲오 

夫人朝夕退而游焉하여 以議執政之善否한대 其所善者는 吾則行之요

其所惡者는 吾則改之하니 是吾師也라.

若之何毀之리오 我聞忠善以損怨이오 不聞作威以防怨이니 豈不遽止리오.

然이나 猶防川大決이면 所犯 傷人必多하여 吾不克救也니

不如小決使道하고 不如吾聞而藥之也니라.

然明曰蔑也今而後에야 知吾子之信可事也오 小人實不才라.

若果行此면 其鄭國實賴之러니 豈唯二三臣이리오

仲尼聞是語也曰以是觀之컨대 人謂子產不仁이라도 吾不信也리라.

 

정나라 사람들이 향교에서 노닐면서 정사와 관련하여 논하다가 연명이 자산에게 

“향교를 폐함이 어떠합니까?”하고 물었다.  자산은 “무엇을 위하려는고?

무릇 사람들이 아침저녁으로 물러나와 노닐면서 정사의 선함 여부를 의논하는데, 

그 선한 바라고 하면 나는 곧 행하고 그 악한 바라고 하면 나는 고치니 

이것이 나의 스승일진대 어찌 헐어내려는가? 나는 忠과 善이 원망을 덜어낸다는

말을 들었지 위엄을 지어 원망을 막는다는 말을 듣지 못했으니, 

그 갑자기 그만두게 하지 못할 것이오. 그러나 마치 하천을 막았다가 크게 트면

덮치는 바가 사람들을 다치게 함이 틀림없이 많아 내 능히 구하지 못하니 조금 터서

물길을 내는 것만 같지 못하고, 내가 듣고 약으로 삼는 것만 같지 못하오.”라고 했다. 

연명이 말하기를, “멸은 이제야 그대를 믿고 가히 섬겨야 함을 알았소. 

소인은 실로 재주가 없는지라 만약에 말씀대로 과감히 행한다면 그 정나라는 실로

힘입을 것이니 어찌 두세 신하뿐이겠습니까?”라고 했다.

중니께서 이 말을 전해 듣고, “이로써 보건대 사람들이 자산을 불인하다고 하여도

나는 믿지 않겠노라.”라고 하셨다.

 

제1장의 내용 가운데 嗣音의 嗣를 毛傳에서는 익힌다(習也)는 뜻으로 해석하여 

옛날에 시와 악을 가르침은 외우고 노래하고 현을 타고 춤을 추게 하는 것이라

(古者에 敎以詩樂은 誦之歌之絃之舞之라)고 보았다. 

毛箋에서는 嗣를 계속한다는 續으로 해석하고,

‘子寧不嗣音’을 ‘그대는 일찍이 계속하여 나에게 소식을 전하지 않는다고 하여

그 잊어버림을 꾸짖음이라(女曾不傳聲問我하여 以恩責其忘已라)고 했다. 

곧 毛詩正義에서는 학교가 폐한 뒤 학생들이 떠나 서로 소식을 전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긴 시로 보았고, 易解에서도 이를 따른다.

 

 

2장. 靑靑子佩여 悠悠我思로다. 縱我不往이나 子寧不來오.

 

       청청자패여 유유아사로다. 종아불왕이나 자녕불래오. 賦也라

 

       푸르름에 물든 그대의 패옥이여, 내 마음은 기나긴 그리움이로다.

       비록 내가 가지는 못하나 그대는 어이하여 찾아오지 않는고?

 

 賦也라 靑靑은 組綬之色이오 佩는 佩玉也라.

 부이다. 청청은 인끈의 색이고 패는 패옥이라.

 

   

3장. 挑兮達兮하니 在城闕兮로다. 一日不見이나 如三月兮로다.

 

        도혜달혜하니 재성궐혜로다. 일일불견이 여삼월혜로다. 賦也라

 

        달려와 허둥대니 성에 올라 궐을 바라보도다.

        하루를 보지 못함이 석 달과 같도다.

 

賦也라 挑는 輕儇跳躍之貌요, 達은 放恣也라.

부이다. 도는 가볍고 날래게 뛰어오르는 모양이고, 달은 방자함이라.

 

※ 毛傳에서는 “挑兮達兮 在城闕兮”와 관련해  挑達은 왕래하며 서로 보는

모양(往來相見貌)이고, 在城闕은 성위에 올라 궐을 바라본다(乘城而見闕)고 했다. 

毛箋은 다르게 해석하고 있는데, “나라가 어지러움에 사람들이 학업을 폐했으니, 

다만 높은 곳에 오르기를 좋아함은 성과 궐을 보고 살피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國亂에 人廢學業이로되 但好登高는 見於城闕하여 以候望爲樂이라).”고 있다.

毛傳에서는 一日不見 如三月兮”에 대해 예악은 하루라도 폐함은 불가하기

(禮樂 不可一日而廢)에 하루가 삼 개월 같다고 하였고,

毛箋에서는 “군자의 학문은 글로 벗을 모으고 벗으로 仁을 도우니

(『논어』 안연편 제24장. 曾子의 말) 

홀로 배우고 벗이 없다면 고루과문이 되므로 생각이 깊음이라.

(君子之學은 以文會友하고 以友輔仁하니 獨學而無友則孤陋而寡聞이라.

故로 思之甚이라)고 해석했다. 조금 차이는 있지만 모두 학교가 없어짐에

이를 애석히 여기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낸 것으로 보았다.

 

子衿三章에 章은 四句라

 

 ※  『毛詩序』

 子衿은 刺學校廢也니 亂世則學校不修焉.

 자금은 학교가 폐교됨을 풍자한 詩이니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학교가 바르게 다스려지지 않는다.

 

 

 原 文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文 飜譯者    德庤 / 李 斗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