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經 (시경) 아(雅)

大雅. 文王之什(문왕지십) 제3편 면9장(緜九章)

덕치/이두진 2023. 12. 13. 18:26

 

 大雅. 文王之什(문왕지십) 제3편 면9장(緜九章)

 

 

 

  緜緜瓜瓞.  民之初生, 自土沮漆.  古公亶父, 陶復陶穴, 未有家室.

 

  古公亶父, 來朝走馬.  率西水滸, 至于岐下.  爰及姜女, 聿來胥宇.

 

  周原膴膴, 菫茶如飴.  爰始爰謀, 爰契我龜.  曰止曰時, 築室于茲.

 

  迺慰迺止, 迺左迺右, 迺疆迺理, 迺宣迺畝, 自西徂東, 周爰執事.

 

  乃召司空, 乃召司徒, 俾立室家.  其繩則直, 縮版以載, 作廟翼翼.

 

  捄之陾陾, 度之薨薨, 築之登登, 削屢馮馮, 百堵皆興, 鼛鼓弗勝.

 

  迺立臯門, 臯門有伉.  迺立應門, 應門將將.  迺立冢土, 戎醜攸行.

 

  肆不殄厥慍, 亦不隕厥問.  柞棫拔矣, 行道兌矣.  混夷駾矣維, 其喙矣.

 

  虞芮質厥成, 文王蹶厥生. 

  予曰有疏附, 予曰有先後, 予曰有奔奏, 予曰有禦侮.

 

 

1장. 緜緜瓜瓞이로다.  民之初生은 自土沮漆이로다.  

       古公亶父는 陶復陶穴하여 未有家室하도다.

 

        면면과질이로다.  민지초생은 자토저칠이로다.

        고공단보는 도복도혈하여 미유가실하도다. 比也 라

 

        오이 덩굴이 끊임없이 이어짐이로다. 

        주나라 백성이 처음 살았던 곳은, 본래 저수와 칠수 주변의 땅이로다.

        태왕 고공단보는 이곳으로 와서,

        흙으로 쌓거나 아궁이 같은 토굴을 파게 하였으니

        아직 집을 짓거나 대들보를 세우지 못해서였도다.

 

 比也라. 綿綿은 不絶貌라. 大曰瓜요 小曰瓞이니 瓜之近本初生者는 常小하고 

 其蔓不絶이라가 至末而後大也라. 民은 周人也라. 自는 從이오 土는 地也라.

 沮漆은 二水名이니 在豳地라.古公은 號也오 亶父는 名也라.

 或曰字也니 後乃追稱大王焉이라. 陶는 窯竈也오 復은 重窯也오 穴은 土室也라.

 家는 門內之通名也라. 豳地近西戎而苦寒이라. 故로 其俗이 如此라.

 此亦周公이 戒成王之詩라. 追述大王이 始遷岐周하야 以開王業하고

 而文王이 因之하야 以受天命也라.

 此는 其首章이니 言瓜之先小後大하야 以比周人이 始生於漆沮之上이러니

 而古公之時에 居於窰竈土室之中하야 其國이 甚小러니 至文王而後大也라.

 

 비교한 시이다. 면면은 끊어지지지 않은 모양이다.

 큰 것을 과라 하고 작은 것을 질이라 하니,

 오이 덩굴이 뿌리에 가까워 처음 나올 때에는 항상 작고 그 덩굴이 끊어지지 않다가 

 끝에 이른 뒤에 커진다. 민은 주나라 사람이다. 자는 부터이고, 토는 땅이다. 

 저와 칠은 두 물의 이름이니 빈땅에 있었다. 고공은 호이고, 단보는 이름이다.

 혹자는 자라고 하니, 뒤에 태왕이라고 추칭하였다. 

 도는 기와 구들 부엌이요, 복은 이중 구들이요, 혈은 토실이다.

 가는 문 안을 통칭하여 이름이다. 빈땅은 서융과 가까워 추위에 괴로하였다.

 그러므로 그 풍속이 이와 같았다. 이 또한 주공이 성왕을 경계한 詩이다.

 태왕이 처음에 기주로 옮겨서 왕업을 열고, 문왕이 인하여 천명을 받음을 추술한

 것이다. 이는 그 머리장이니 오이 덩굴이 처음에는 작다가 나중에는 커짐을 말하여,

 주나라 사람이 처음에는 칠수와 저수 가에서 살더니  고공의 때에 기와를 구워

 부엌 만들고 토실 가운데에 거처하여 그 나라가 매우 작았었는데

 문왕에 이른 뒤에 커졌음을 비교한 것이다.

 

 

2장. 古公亶父는 來朝走馬하도다.  率西水滸하여 至于岐下하도다. 

       爰及姜女하여 聿來胥宇하도다.

 

        고공단보는 내조주마하도다.  솔서수호하여 지우기하하도다.

        원급강녀하여 율래서우하도다. 賦也라

 

        태왕 고공단보는 이곳으로 와서, 어느 날 이른 아침 말을 타고 달렸도다.

        강둑을 따라 곧장 서쪽으로 향하여, 기산의 산기슭에 아래에 이르렀도다.

        마침내 강씨의 딸과 혼인하여, 함께 산수와 집터를 살펴 보았도다. 

 

 賦也라. 朝는 早也라. 走馬는 避狄難也.라 滸는 水厓也니 漆沮之側也라. 

 岐下는 岐山之下也라. 姜女는 大王妃也라. 胥는 相이오 宇는 宅也라.

 孟子曰大王居邠하실새 狄人侵之어늘 事之以皮幣珠玉犬馬라도 而不得免하니

 乃屬其耆老而告之曰狄人之所欲者는 吾土地也니 吾는 聞之也호니

 君子는 不以其所以養人者로 害人이라하니 二三子는 何患乎無君이오

 我將去之라하고 去邠踰梁山하야 邑于岐山之下하야 居焉하신대 邠人이 曰仁人也라.

 不可失也라하고 從之者 如歸市하더라.

 

 부이다. 조는 아침이다. 주마는 적인의 난을 피해 온 것이다.

 호는 물가니 칠수와 저수의 옆이다.

 기사는 기산 아래이다. 강녀는 태왕 비이다. 서는 봄이요, 우는 집이다. 

 맹자 가라사대 (梁惠王章句下 제15장 제1절) : " 태왕이 빈땅에 거처하실 때

 적인이 침략하거늘 가죽과 폐백과 주옥과 개와 말로 섬겨도 침략을 면치 못하니

 이에 노약자들을 모아놓고 말하기를 :  ' 적인이 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토지니,

 내 듣자하니 군자는 그 사람을 기르는 바로써 사람을 해치지 않는다하니

 여러분은 어찌 인군 없음을 염려하리오. 내 장차 이곳을 떠나겠다.'하고

 빈땅을 떠나 양산을 넘어 기산 아래 도읍을 정해 거주하셨으니 빈 사람들이

 말하기를 : ' 어진 사람이다. 놓쳐서는 아니된다.'하고,

 따르는 자가 저자에 돌아가는 것과 같았다."하였다.

 

 

3장. 周原膴膴하니 菫茶如飴로다.  爰始爰謀하며 爰契我龜로다. 

       曰止曰時하여 築室于茲하도다.

 

        주원무무하니 근도여이로다.  원시원모하며 원계아귀로다.

        왈지왈시하여 축실우자하도다. 賦也라

 

        주나라 들판의 토지는 참으로 비옥하니, 쓴 채소도 마치 엿처럼 달도다.

        이에 도읍 건설의 계획과 논의를 시작하며,

        이에 거북 껍질에 새겨진 점괴를 보도다.

        이에 머무를만하고 이에 좋다 하여,  이곳에 집을 지으라하도다.

 

※ 菫 : 오두(烏頭, 미나리아재비과에 딸린 개싹눈바곳, 이삭바곳,

           참줄바곳 따위를 일컫는 말. 

           附子와 비슷하며 맛은 辛甘하다.

           川烏, 奚毒이라고도 함) 근 荼 : 씀바귀 도 飴 : 엿 이.

 

 賦也라. 周는 地名이니 在岐山之南하니라. 廣平曰原이라. 膴膴는 肥美貌라.

 菫은 烏頭也오 荼는 苦菜니蓼屬也라. 飴는 餳也라. 

 契는 所以然火而灼龜者也니 儀禮에 所謂楚焞이 是也라.

 或曰以刀로 刻龜甲欲鑽之處也라.  言周原土地之美 雖物之苦者라도 亦甘하니

 於是에 大王이 始與豳人之從己者로 謀居之하고

 又契龜而卜之하야 旣得吉兆하고 乃告其民曰可以止於是而築室矣라하시니라.

 或曰時는 謂土功之時也라.

 

 부라. 주는 지명이니 기산 남쪽에 있다. 넓고 평평한 것을 원이라 한다.

 무무는 기름지고 아름다운 모양이다. 근은 오두이고, 도는 쓴나물이니 쑥에 속한다.

 이는 조청이다. 계는 불을 붙여서 거북이를 지지는 것이니

 『의례』(士喪禮편)에 초돈이라 이른 것이 이것이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칼로 거북 껍질에 뚫고자 하는 곳을 새기는 것이라 한다.

 주나라 들판의 토지는 아름다움이 비록 물건이 쓴 것이라도 또한 달게 하니

 이에 태왕이 비로소 자기를 따라온 빈 사람들과 더불어 거처할 궁리를 내고

 또 거북을 지져서 점을 쳐 이미 길한 징조를 얻고 이에 그 백성들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  " 이 곳에 머물러 집을 지으라 하셨다."하였다.

 어떤 이는 말하기를 : ' 시는 토공(집터를 닦는 일)하는 때를 이른다.'라고 한다.

    

 

4장. 迺慰迺止하고 迺左迺右하며 迺疆迺理하며 迺宣迺畝하니

       自西徂東하여 周爰執事하도다.

 

        내위내지하고 내좌내우하며 내강내리하며 내선내묘하니

        자서조동하여 주원집사하도다. 賦也라

 

        이에 이곳에 나라가 자리 잡게 되었고,

        이에 좌우 사방에서 일을 바쁘게 하였으며,

        이에 경계를 확장하여 정리하였고,

        이에 도랑을 흐르게 하고 황무지를 개간하였으니,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이르게 하여, 철저하게 이 모든 일을 집행하였도다.

 

 賦也라. 慰는 安이오 止는 居也라. 左右는 東西列之也라.

 疆은 謂畫其大界요 理는 謂別其條理也라.

 宣은 布散而居也니 或曰導其溝洫也이라. 畝는 治其田疇也라.

 自西徂東은 自西水滸而徂東也라. 周는 徧也니 言靡事不爲也라.

 

 부이다. 위는 편안함이요, 지는 거처하는 것이다. 좌우는 동서로 벌림이다.

 강은 그 큰 경계를 긋는 것이요, 리는 그 조리를 분별함을 이른 것이다.

 선은 널리 흩어져 거처함이니 어떤 이는 도랑을 내는 것이라 말한다.

 묘는 밭두둑을 다스림이다. 자서조동은 서쪽 물가로부터 동쪽으로 간 것이다.

 주는 두루함이니 일마다 하지 않음이 없음이다.

 

 

5장. 乃召司空하고 乃召司徒하여 俾立室家하도다. 

       其繩則直하고 縮版以載하니 作廟翼翼하도다.

 

        내소사공하고 내소사도하여 비립실가하도다.

        기승즉직하고 축판이재하니 작묘익익하도다. 賦也라

 

        이에 사공을 불러 공정을 정하고, 다시 사도를 불러 노역을 정하여,

        가옥과 궁실을 세우게 하도다.

        먹줄을 곧게 당기고, 널빤지를 단단히 묶어 달구질하니,

        사당을 짓는 움직임이 질서정연하도다. 

 

 賦也라. 司空은 掌營國邑이오 司徒는 掌徒役之事라.

 繩은 所以爲直이니 凡營度位處에 皆先以繩으로 正之하고 旣正則束版而築也라.

 縮은 束也라. 載는 上下相承也니 言以索束版하야 投土築訖이면 則升下而上하야

 以相承載也라. 君子 將營宮室할새 宗廟爲先이오 廐庫爲次요 居室爲後라

 翼翼은 嚴正也라.

 

 부이다. 사공은 나라 읍 경영을 맡고, 사도는 도역하는 일을 맡음이다. 

 승은 곧게 하는 것이니 무릇 신위 둘 곳을 경영하고 헤아림에 모두 먼저 먹줄로

 바로 잡아 놓고, 이미 바로 되면 판자를 묶어 흙을 쌓는다. 축은 묶음이다.

 재는 위 아래로 서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니 새끼줄로 판자를 묶어

 흙을 던져서 쌓기를 마치면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서 서로 잇대어 놓는다.

 군자가 장차 궁실을 경영하는데 종묘를 먼저 짓고, 마구간과 창고를 다음에 짓고,

 거처하는 집을 나중에 짓는다. 익익은 엄정함이다.

 

 

6장. 捄之陾陾하고 度之薨薨하며 築之登登하고 削屢馮馮하며 

       百堵皆興하니 鼛鼓弗勝하도다.

 

        구지잉잉하고 탁지훙훙하며 축지등등하고 삭루빙빙하여 

        백도개흥하니 고고불승하도다. 賦也라

 

        광주리에 흙을 담아 담 쌓는 소리 잉잉나고,

        흙이 담긴 광주리 담틀 위로 던지는 소리 횡횡나며,

        담틀속의 흙을 다지는 소리 등등나고,

        담장의 튀어나온 곳을 깍는 소리 빙빙나며,

        백여 개의 담들이 일시에 이루어지니, 사람들의 환호가 북 소리보다 크도다.

 

 賦也라. 捄는 盛土於器也라. 陾陾은 衆也라. 度은 投土於版也라. 薨薨은 衆聲也라.

 登登은 相應聲이라. 削屢는 墻成而削治重複也라. 馮馮은 墻堅聲이라.

 五版爲堵라. 興은 起也라. 此는 言治宮室也라. 鼛鼓는 長一丈二尺이니 以鼓役事라.

 弗勝者는 言其樂事勸功하야 鼓不能止也라.

 

 부이다. 구는 흙을 그릇에 담는 것이다. 웅웅은 많음이다.

 탁은 흙을 판자에 던지는 것이다.

 훙훙은 여러 소리이다. 등등은 서로 응하는 소리이다. 

 삭루는 담을 쳐놓고 중복된 곳을 깎아서 다듬는 것이다.

 빙빙은 담을 견고하게 하는 소리이다.

 다섯 판자가 담이 된다. 흥은 일어남이다. 이것은 궁실의 다스림을 말한 것이다.

 고고는 길이가 한 길 두 자니 역사를 하는데 북을 두드리는 것이다.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은 백성들이 그 일을 즐거워하고 공사를 권장하여

 북 두드리는 것을 그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7장. 迺立臯門하니 臯門有伉하도다.  迺立應門하니 應門將將하도다. 

       迺立冢土하니 戎醜攸行하도다.

 

        내립고문하니 고문유항하도다.  내립응문하니 응문장장하도다.

        내립총토하니 융추유행하도다. 賦也라

 

        이에 성곽의 문을 세우니, 성곽 문이 높이 솟아 하늘로 들어가도다.

        이에 왕궁 문을 세우니, 정문의 웅장한 기세가 성대하도다.

        이에 사직을 크게 세우니, 마침내 오랑캐의 무리로부터 침략을 방비하였도다.

 

 賦也라. 傳曰王之郭門曰臯門이라. 伉은 高貌라.

 王之正門曰應門이라. 將將은 嚴正也라.

 大王之時에 未有制度하야 特作二門하야 其名如此러니 及周有天下하야

 遂尊以爲天子之門하고 而諸侯不得立焉하니라.

 冢土는 大社也니 亦大王所立이러니 而後에 因以爲天子之制也라.

 戎醜는 大衆也라. 起大事, 動大衆엔 必有事乎社而後出하니 謂之宜라.

 

 부이다. 전에 이르기를 : " 왕의 성문을 고문이라 한다."하였다. 항은 높은 모양이다.

 왕의 정문을 말하기를 응문이라 한다. 장장은 엄정함이다.

 태왕의 때에 아직 제도가 있지 아니하여 특별히 두 문을 지어서 그 이름이

 이와 같더니 주나라가 천하를 둠에 이르러서 드디어 높여서 천자의 문을 삼았고,

 제후는 세우지 못하게 되었다. 총토는 태사이니 또한 태왕이 세운 것인데

 뒤에 인하여 천자의 제도로 삼았다. 융추는 대중이다.

 대사를 일으키고 대중을 움직일 때에는 반드시 사에 제사한 뒤에 나가니

 ‘의제(宜祭)’라 이른다.

 

 

8장. 肆不殄厥慍하나 亦不隕厥問하도다.  柞棫拔矣하고 行道兌矣하도다. 

       混夷駾矣하여 維其喙矣하도다.

 

        사부진궐온하나 역불운궐문하도다.  작역발의하고 행도태의하도다.

        곤이태의하여 유기훼의하도다. 賦也라

 

        그리하여 오랑캐에 대한 근심을 끊어내지는 못하였으나,

        자신의 명성을 실추하지 아니하였도다. 

        떡갈나무와 두릅나무를 모두 뽑아버리고, 교통하는 도로를 곧게 하여 넓혔도다.

        오랑캐들은 달아나 다시 쳐들어오지 못하고,

        피폐해져 세력을 떨치지 못하였도다.

 

 賦也라. 肆는 故今也니 猶言遂也니 承上起下之辭라.

 殄은 絶이오 慍은 怒요 隕은 墜也라.

 問은 聞으로 通하니 謂聲譽也라. 柞은 櫟也니 枝長葉盛하고 叢生有刺라.

 棫은 白桵也니 小木이오 亦叢生有刺라. 拔는 挺拔而上하야 不拳曲蒙密也라.

 兌는 通也니 始通道於柞棫之間也라. 駾는 突이오 喙는 息也라.

 言大王이 雖不能殄絶混夷之慍怒나 亦不隕墜己之聲聞이라.

 蓋雖聖賢이라도 不能必人之不怒己요, 但不廢其自修之實耳라.

 然이나 大王이 始至此岐下之時에는 林木深阻하고 人物鮮少러니, 至於其後하야는

 生齒漸繁하고 歸附日衆하니 則木拔道通하야 昆夷畏之而奔突竄伏하야,

 維其喙息而已라. 言德盛而混夷自服也니 蓋已爲文王之時矣라.

 

 부이다. 사는 ‘그러므로 이제’라는 뜻이고 ‘드디어’란 말과 같으니

 위를 잇고 아래를 일으키는 말이다. 진은 끊음이요, 온은 성냄이요,

 운은 떨어짐이다. 문은 소문과 통하니 명성을 말한다.

 작은 떡갈나무이니 가지가 길며 잎이 무성하고 떨기로 나며 가시가 있다.

 역은 두릅나무이니 나무가 작고, 또한 떨기로 나며 가시가 있다.

 패는 쭉 뻗어 올라가서 구부러지거나 덮이고 빽빽하지 않은 것이다.

 태는 통함이니 비로소 갈참나무와 두릅나무 사이로 길을 통함이다.

 태는 숨음이요, 훼는 숨쉼이다. 태왕이 비록 능히 곤이의 성냄을 완전히 끊지는

 못했으나 또한 자기의 명성을 실추하지 아니하였다.

 대개 비록 성현이라도 능히 반드시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 성내지 않게는 못하고,

 다만 스스로 닦음의 실제만을 폐하지 않게 한다.

 그러나 태왕이 처음 기산 아래에 이르렀을 때에는 숲과 나무가 깊이 막혀 있고,

 사람은 적더니 그 뒤에 이르러서는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귀순하는 자들이 날로 많아지니 나무를 쳐서 길을 통하게 하니 

 곤이가 두려워하여 도망쳐서 엎드려 오직 그 숨만 쉴 뿐이다.

 덕이 성하여 곤이가 스스로 복종하니 이는 이미 문왕의 때가 되었음을 말한 것이다.

 

 

9장. 虞芮質厥成하며 文王蹶厥生하도다.  

       予曰有疏附하고 予曰有先後하고 予曰有奔奏하고 予曰有禦侮하도다.

 

        우예질궐성하며 문왕궤궐생하도다.

        여왈유소부하고 여왈유선후하고 여왈유분주하고 여왈유어모하도다. 賦也라

 

        우와 예가 분쟁을 바루거늘 문왕이 그 흥기함을 움직이시니

        나는 가로대 소부하는 이가 있으며, 나는 가로대 선후할 이가 있으며,

        나는 가로대 분주할 이가 있으며, 나는 가로대 엄모하는 이가 있다 하노라.

 

 賦也라. 虞芮는 二國名이라. 質은 正이오 成은 平也라.

 傳曰虞芮之君이 相與爭田하야 久而不平이라가 乃相與朝周할새 入其境하니 

 則耕者 讓畔하고 行者 讓路하며 入其邑하니 男女異路하고 斑白이 不提挈하며

 入其朝하니 士 讓爲大夫하고 大夫ㅣ 讓爲卿이어늘

 二國之君이 感而相謂曰我等은 小人이라.

 不可以履君子之境이라하고 乃相讓以其所爭田하야 爲閒田而退하니

 天下聞之하고 而歸者 四十餘國이러라. 

 蘇氏曰虞는 在陜之平陸이오 芮는 在同之馮翊이라.

 平陸에 有閒原焉하니 則虞芮之所讓也라하니라.

 蹶生은 未詳其義나 或曰蹶는 動而疾也오 生은 猶起也라. 予는 詩人이 自予也라. 

 率下親上曰疏附요 相道前後曰先後요 喩德宣譽曰奔奏요 武臣折衝曰禦侮라.

 言混夷旣服而虞芮來質其訟之成하니 於是에 諸侯歸周者 衆하야 而文王이

 由此動其興起之勢라.  是雖其德之盛이나 然이나 亦由有此四臣之助而然이라.

 故로 各以予曰起之하니 其辭繁而不殺者는 所以深歎其得人之盛也라.

 

 부이다. 우와 예는 두 나라 이름이다. 질은 바름이요, 성은 화평함이다.

 전에 이르기를 : " 우와 예의 임금이 서로 밭을 다투어서 오래도록 화평하지 못하다가

 이에 서로 더불어 주나라에 조회를 하는데 그 국경에 들어가니 밭가는 자가 밭두둑을

 양보하고, 길을 다니는 자가 길을 양보하며, 그 읍에 들어가니 남녀가 길을 달리하고,

 오십세 이상의 사람은 짐을 끌고 다니지 아니하며,

 조정에 들어가니 사가 대부에게 양보하고, 대부는 경에게 양보하거늘,

 두 나라의 인군이 감동되어 서로 말하기를 ' 우리들은 소인이니 가히 군자의 국경을

 밟을 수 없다.'라고 하고, 이에 그 다투던 밭을 서로 사양하여 한가로운 밭을 만들고

 물러가니 천하가 듣고 돌아오는 자가 40여 나라가 되었다."하였다.

 (이에 문왕이 천하의 3분의 1을 두게 됨). 

 소씨가 말하기를 : " 우는 합주의 평륙을 끼고 있고, 예는 동주의 풍익에 같이 있다.

 평륙에 한가로운 들판이 있으니 곧 우와 예가 사양한 것이다."하였다.

 궤생은 그 뜻이 자세하지 못하나 혹자는는 말하기를 : " 궤는 움직여 빨리하고,

 생은 일어남과 같다.'하였다. 여는 시인이 스스로 자신이라고 한 것이다.

 아랫사람을 거느리고 윗사람과 친함을 일러 소부라 하고,

 앞뒤에서 서로 인도함을 선후라 하고, 덕을 깨우쳐주고 명예를 선양함을 일러

 분주라 하고, 무신이 충돌을 막는 것을 일러 어모라 한다.

 곤이가 이미 복종하고 우와 예가 와서 그 송사의 분쟁을 바로하니 이에 주나라에

 돌아온 자가 많아서 문왕이 이로 말미암아 그 흥기하는 세력을 움직였다.

 이는 비록 그 덕이 성하였으나 또한 이 네 신하의 도움으로 말미암아 그렇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각각 ‘予曰’로써 말을 일으켰으니 그 말이 번거로우면서도

 줄이지 않은 것은 그 사람을 얻음이 성대함을 깊이 탄식한 것이다.

 

  緜九章 章六句라.

 

 一章은 言在豳이오,

 二章은 言至岐요,

 三章은 言定宅이오,

 四章은 言授田居民이오, 

 五章은 言作宗廟요,

 六章은 言治宮室이오,

 七章은 言作門社요,

 八章은 言至文王而服混夷요,

 九章은 遂言文王受命之事라. 餘는 說見上篇하니라.

 

 1장은 빈땅에 있을 때를 말하였고,

 2장은 기산 아래에 이름을 말하였고,

 3장은 집터를 정함을 말하였고, 

 4장은 밭을 주어 백성이 거처함을 말하였고,

 5장은 종묘 지음을 말하였고,

 6장은 궁실을 다스림을 말하였고,

 7장은 문과 태사를 지음을 말하였고,

 8장은 문왕에 이르러 곤이를 복종 말하였고,

 9장은 마침내 문왕이 천명을 받은 일을 말하였다.

 나머지의 설명은 상편에 나타난다.

 

 

   『毛詩序』

 緜은 文王之興이 本由大王也라.

 면은 문왕의 일어남이 근본은 태왕(고공단보)으로부터 말미암았음을 읊은 詩이다.

 

 

 原 文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