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經 (시경) 아(雅)

大雅. 生民之什(생민지십) 제6편 공류6장(公劉六章)

덕치/이두진 2024. 1. 2. 20:21

 

大雅. 生民之什(생민지십) 제6편 공류6장(公劉六章)

篤公劉, 匪居匪康, 迺埸迺疆, 迺積迺倉.

迺裹餱糧, 于橐于囊, 思輯用光. 弓矢斯張, 干戈戚揚, 爰方啟行.

篤公劉, 于胥斯原, 既庶既繁, 既順迺宣, 而無永歎.

陟則在巘, 復降在原. 何以舟之, 維玉及瑤, 鞞琫容刀.

篤公劉, 逝彼百泉, 瞻彼溥原. 迺陟南岡, 乃覯于京.

京師之野, 于時處處, 于時廬旅, 于時言言, 于時語語.

篤公劉, 于京斯依. 蹌蹌濟濟, 俾筵俾几. 既登乃依.

乃造其曹, 執豕于牢, 酌之用匏. 食之飲之, 君之宗之.

篤公劉, 既溥既長, 既景迺岡, 相其陰陽, 觀其流泉, 其軍三單.

度其隰原, 徹田為糧. 度其夕陽, 豳居允荒.

篤公劉, 于豳斯館. 涉渭為亂, 取厲取鍛. 止基迺理, 爰眾爰有.

夾其皇㵎, 遡其過㵎. 止旅迺密, 芮鞫之即.

1장. 篤公劉ㅣ匪居匪康하고 迺埸迺疆하여 迺積迺倉하도다.

迺裹餱糧하여 于橐于囊하고 思輯用光하도다.

弓矢斯張하며 干戈戚揚하여 爰方啟行하도다.

독공류ㅣ비거비강하고 내역내강하여 내적내창하도다.

내과후량하여 우탁우낭하고 사집용광하도다.

궁시사장하며 간과척양하여 원방계행하도다. 賦也라

진실하고 후덕하신 공유께서, 편안함과 향락을 도모하지 않으시고,

밭두둑을 개간하고 토지의 경계를 구분하여, 창고 안에 많은 식량을 쌓아 놓았도다.

마른 식량을 싸서 멀리 갈 것을 준비하여, 큰 자루와 작은 자루를 가득 채우고,

모두가 단결하여 영광이 오래가도록 하도다.

활과 화살통을 어깨에 메었으며, 방패, 창, 도끼, 큰 도끼를 집어 들고,

이에 비로소 앞장서서 길을 떠났도다.

賦也라. 篤은 厚也라. 公劉는 后稷之曾孫也니 事見豳風하니라.

居는 安이오 康은 寧也라. 埸疆은 田畔也라. 積은 露積也라. 餱는 食이오 糧은 糗也라.

無底曰橐이오 有底曰囊이라. 輯은 和요 戚은 斧요 揚은 鉞이오 方은 始也라.

舊說에 召康公이 以成王將涖政할새 當戒以民事라. 故로 詠公劉之事以告之라.

曰厚哉라. 公劉之於民也여 其在西戎에 不敢寧居하야 治其田疇하고 實其倉廩하니

旣富且强이라. 於是에 裹其餱糧하고 思以輯和其民人하야 而光顯其國家라.

然後에 以其弓矢斧鉞之備로 爰始啓行하야 而遷都於豳焉하니 蓋亦不出其封內也라.

부이다. 독은 후함이다. 공류는 후직의 증손이니 일이 빈풍에 보인다.

거는 편안함이요, 강은 편안함이다. 역과 강은 밭두둑이다. 적은 노적이다.

후는 밥이고, 양은 마른밥이다. 밑이 없는 것을 탁(전대)이라 하고 밑이 있는 것을

낭(자루)이라 한다. 집은 화함이요, 척은 도끼 모양의 무기요, 양은 큰 도끼요,

방은 비로소이다. 옛 말에 소강공이 성왕이 장차 정치에 임하려 할 때에 마땅히

농사로써 경계하였다. 그러므로 공류의 일을 읊어서 고하였다.

가로대 후덕하도다. 공류가 백성들을 대함이여. 그 서융에 계실 적에 감히 편안히

거하지 아니하여 그 밭두둑을 다스리고 그 곳집을 채우니 이미 부유하고 또 강하였다.

이에 그 마른밥과 식량을 싸고 그 백성과 벼슬하는 사람을

화하게 할 것을 계속 생각하여 그 국가를 빛낼 것을 생각하였다.

그러한 뒤에 그 궁시와 부월을 갖춤으로써 이에 비로소 길을 떠나서

도읍을 빈땅으로 옮기니 대개 또한 그 경계 내에서는 벗어나지 아니한 것이다.

2장. 篤公劉ㅣ于胥斯原하니 既庶既繁하고 既順迺宣하며 而無永歎하도다.

陟則在巘하고 復降在原하도다. 何以舟之인고 維玉及瑤하고 鞞琫容刀로다.

독공류ㅣ 우서사원하니 기서기번하고 기순내선하며 이무영탄하도다.

척즉재헌하고 부강재원하도다. 하이주지인고 유옥급요하고 병봉용도로다. 賦也라

진실하고 후덕하신 공유께서, 넓고 넓은 빈 땅을 살펴보고 계획을 세우니,

이미 많은 무리가 뒤를 따르고, 이미 마음으로 귀의하여 순종하며 즐거워하며

길게 탄식함도 없고 근심함도 없도다.

산 봉우리에 올라 먼 곳까지 바라보고, 다시 아래 평원을 자세히 살펴보도다.

무엇을 그의 허리에 찼는가? 아름다운 구슬과 여러가지 옥을 묶어 놓은 띠를 찼고,

칼집 입구의 옥으로 장식한 모양이 빛나도다.

賦也라. 胥는 相也라. 庶繁는 謂居之者衆也라.

順은 安이오 宣은 徧也니 言居之徧也라. 無永嘆은 得其所하야 不思舊也라.

巘은 山頂也라. 舟는 帶也라. 鞞은 刀鞘也오 琫은 刀上飾也라.

容刀는 容飾之刀也니 或曰容刀는 如言容臭니 謂鞞琫之中에 容此刀耳라.

言公劉至豳하야 欲相土以居할새 而帶此劒佩하야 以上下於山原也라.

東萊呂氏曰以如是之佩服으로 而親如是之勞苦하니 斯其所以爲厚於民也歟인저.

부이다. 서는 보는 것이다. 서와 번은 거처하는 자가 많음을 말한다.

순은 편안함이고, 선은 두루이니 거함을 두루함을 말한 것이다.

무영탄은 그 거처할 곳을 얻어 옛날을 생각지 아니한 것이다.

(편안한 곳을 얻지 못하면 왜 이곳에 왔는고하면서 옛날을 생각하며

탄식하게 되는데 그렇지 않다는 뜻). 헌은 산마루이다. 주는 허리에 차는 띠이다.

비은 칼집이요, 봉은 칼 위를 꾸밈이다. 용도는 장식한 칼이니,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 " 용도는 용취(향기 나는 것을 담음)라는 말과 같으니

칼과 장식한 가운데에 이 칼을 담는 것을 말한 것이다."하였다.

공유가 빈 땅에 이르러 토지의 상을 보고서 거처하고자 할 때에 허리띠에

이 칼을 차고서 산과 언덕을 오르내림을 말한 것이다.

동래여씨가 말하기를 : " 이와 같은 패물과 복식으로써 이와 같은 노고를

친히 하였으니 이것이 그 백성을 후덕하게 한 이유일 것이다."하였다.

3장. 篤公劉ㅣ逝彼百泉하여 瞻彼溥原하도다. 迺陟南岡하니 乃覯于京이로다.

京師之野하니 于時處處하며 于時廬旅하고 于時言言하니 于時語語하도다.

독공류ㅣ서피백천하여 첨피부원하도다. 내척남강하니 내구우경이로다.

경사지야하니 우시처처하며 우시려려하고 우시언언하니 우시어어하도다. 賦也라

진실하고 후덕하신 공유께서, 많은 물이 솟아나는 골짜기에 도착하여

저 광활한 평원을 보았도다.

남쪽의 높은 산등성이에 올라 보니,

도읍지로 손색없는 아름다운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도다.

도읍지로 삼을 주변 들판이 비옥하니, 이곳에 도읍을 세우면 아름다울 것이며,

이곳에 집을 많이 지어 무리들을 머물게 하고, 기쁜 얼굴로 말하고 웃으니,

이에 웃고 말함에 즐거움이 많도다.

賦也라. 溥는 大요 覯는 見也라. 京은 高丘也라. 師는 衆也라. 京師는 高山而衆居也라.

董氏曰所謂京師者는 蓋起於此하니 其後世에 因以所都爲京師也라. 時는 是也라.

處處는 居室也라. 廬는 寄也오 旅는 賓旅也라. 直言曰言이오 論難曰語라.

此章은 言營度邑居也라. 自下觀之면 則往百泉而望廣原이오 自上觀之면

則陟南岡而覯于京이라. 於是에 爲之居室하고 於是에 廬其賓旅하고

於是에 言其所言하고 於是에 語其所語하니 無不於斯焉이라.

부이다. 부는 큼이요, 구는 만나 보는 것이다. 경은 높은 언덕이다. 사는 무리이다.

경사는 높은 산이면서 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동씨가 말하기를 : " 이른바 경사라는 것은 대개 여기에서 일어나니

그 후세에 인하여 도읍한 곳이 경사가 되었다. 시는 이곳이다.

처처는 집에 거처함이다. 려는 붙여 살게 하는 것이요,

려는 손으로 따라온 나그네이다. 곧은 말을 언이라 하고 논란함을 어라 한다.

이 장은 읍거(도읍하여 거처함)를 경영하고 헤아림을 말한 것이다.

아래로부터 보면 백천에 가서 너른 언덕을 바라보는 것이고,

위로부터 보면 남강에 올라가서 경구를 본 것이다.

이곳에 살 집을 짓고, 이곳에 나그네들을 임시로 거처하게 하며,

이에 그 말한 바를 말하고 이에 논란한 바를 논란하여

(『중용』6장에 “舜이 好問而好察邇言하샤대 隱惡而揚善하시며 執其兩端하샤

用其中於民하시니”라고 하였듯이 언로를 막지 않고 백성들이 생각하고

말한 바를 함께 생각하고 말하며 논란거리는 함께 논란하여 좋은 방안을 찾아

시행하였기에) 이에 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4장. 篤公劉ㅣ于京斯依하도다. 蹌蹌濟濟하며 俾筵俾几하도다. 既登乃依하도다.

乃造其曹하며 執豕于牢하고 酌之用匏하도다. 食之飲之하여 君之宗之하도다.

독공류ㅣ우경사의하도다. 창창제제하고 비연비궤하도다. 기등내의하도다.

내조기조하고 집시우뢰하여 작지용포하도다. 사지음지하고 군지종지하도다. 賦也라

진실하고 후덕하신 공유께서, 도읍에서 이에 편안하도다.

신하들은 예법에 맞게 행동하고 위엄이 있으며,

연회를 열어 대자리를 펴고 안석을 놓게 하도다.

이윽고 손님과 주인은 차례대로 안석에 올라 궤에 의지하도다.

이에 그 무리들이 신에게 제사를 올려 도와줄 것을 바라며,

우리에서 돼지를 잡아 안주를 만들고,

또 바가지로 맛좋은 술을 따라 마시는도다.

배불리 밥을 먹고 기분 좋게 술에 취하여, 공유를 인군으로 모시고 종주로 삼는도다.

賦也라. 依는 安也라. 蹌蹌濟濟는 群臣有威儀貌라.

俾는 使也니 使人爲之設筵几也라.

登은 登筵也오 依는 依几也라. 曹는 群牧之處也라.

以豕爲殽하고 用匏爲爵을 儉以質也라.

宗은 尊也며 主也니 嫡子孫이 主祭祀而族人尊之하야 以爲主也라.

此章은 言宮室旣成而落之할새 旣以飮食로 勞其群臣하고 而又爲之君하며

爲之宗焉이라.

東萊呂氏曰旣饗燕而定經制하야 以整屬其民하야 上則皆統於君하고

下則各統於宗이라.

蓋古者에 建國立宗에 其事相須하니 楚執戎蠻子而致邑立宗하야

以誘其遺民이 卽其事也라.

부이다. 의는 편안함이다. 창창제제는 여러 신하가 위의가 있는 모양이다.

비는 부림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자리와 궤를 펼치게 함이다.

등은 자리에 오름이요, 의는 궤에 의지함이다. 조는 여러 가축을 기르는 곳이다.

돼지로써 안주를 만들고, 바가지를 사용하여 술잔을 만드는 것은

검소함으로써 질박함이다. 종은 높이고 주인이니 적자손이 제사를 주관하니

족인이 높여서 주인으로 삼는 것이다.

이 장은 궁실을 이미 다 짓고 낙성식을 할 때에 이미 음식으로써

그 여러 신하들을 위로하고 또 인군으로 삼고 종주로 삼음을 말함이다.

동래여씨가 말하기를 : " 이미 향연을 베풀고 법과 제도를 정하여

그 백성을 정돈하고 귀속시켜서 위로는 모두가 인군에게 통솔시키고,

아래로는 각각 종에 통솔되게 하였다.

대개 옛적에 나라를 세우고 종을 세움에 그 일이 서로를 기다렸으니

초나라가 융만자를 잡고는 읍을 이루고 종을 세워 그 유민을 유도한 것

(『춘추좌전』哀公 4년)이 바로 그러한 일이다.

5장. 篤公劉既溥既長하고 既景迺岡하며 相其陰陽하고 觀其流泉하여

其軍三單하도다.

度其隰原하고 徹田為糧하도다. 度其夕陽하니 豳居允荒이로다.

독공류ㅣ기부기장하고 기영내강하며 상기음양하고 관기류천하여 기군삼단하도다.

탁기습원하고 철전위량하도다. 탁기석양하니 빈거윤황이로다. 賦也라

진실하고 후덕하신 공유께서, 이윽고 넓고 긴 땅의 경계를 다스리고,

이윽고 산등성이에 올라 상황을 살펴가며,

산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한 바퀴를 측량하고,

물의 근원과 흐름을 확실히 관찰하여, 그 군대를 나누어 삼군으로 하도다.

낮고 습한 땅을 조사하여 도랑을 깊게 팠고,

황무지를 개간하여 식량을 장만하였도다.

다시 서산에 이르러 자세히 살펴보니,

빈 땅이 넓고 크며 거주하는 이들이 진실로 많도다.

賦也라. 溥는 廣也라. 言其芟夷墾辟하야 土地旣廣而且長也라.

景은 考日景以正四方也라. 岡은 登高以望也라.

相은 視也니 陰陽向背寒暖之宜也라. 流泉은 水泉灌漑之利也라. 三單은 未詳이라.

徹은 通也라. 一井之田이 九百畝니 八家는 皆私百畝하고 同養公田하야

耕則通力而作하고 收則計畝而分也라. 周之徹法은 自此始하니 其後周公이

蓋因而修之耳라. 山西曰夕陽이라. 允은 信이오 荒은 大也라.

此는 言辨土宜하야 以授所徙之民하며 定其軍賦와 與其稅法하고 又度山西之田하야

以廣之而豳人之居於此益大矣라.

부이다. 부는 넓음이다. 그 잡초를 제거하고 땅을 개간하여 토지가 이미 넓어지고

또 길게 뻗어졌느니라.

(廬陵羅氏曰東西爲廣이오 南北爲長이다 : 여릉나씨가 말하기를 :

" 동서는 광이 되고, 남북은 장이 된다. 곧 땅이 동서와 남북으로 매우 넓어졌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함). 영은 해 그림자를 살펴서 사방을 바로함이다

(孔氏曰民居田畝할새 或南或北하니 皆須正其方面이라. 故로 以日景으로 定之라 :

백성이 농사짓는 밭가에 집을 지어 살 때에 혹 남쪽으로 하고

혹 북쪽으로 하니 모두 모름지기 그 향하는 쪽을 바루는데 해 그림자로써 정하였다).

강은 높은 곳에 올라가서 바라봄이다.

상은 봄이니 음양의 향배는 춥고 따뜻함의 마땅함이라

(孔氏曰山南爲陽이오 山北爲陰이며 廣谷大川에 有寒有暖이 不同하니 所宜則異라.

故로 相之也라 : 공씨가 말하기를 : " 산의 남쪽은 양이 되고 산의 북쪽은 음이 되며

넓은 골짝과 큰 내에는 추운 데가 있고 따뜻한 데가 있는 것이 같지 아니하니

마땅한 곳은 곧 다르다. 그러므로 상을 보는 것이다).

유천은 술이 샘에서 흘러나와 물대는 이로움이다. 삼단은 자세하지 못하다.

철은 통함이다. 일정의 논은 구백묘니, 여덟 집은 모두 사전 백묘로 하고

함께 공전을 지어 밭가는 데에는 힘을 다하여 짓고 거두어서는 이랑을 계산하여

나누는 것이다. 주나라의 철법은 이로부터 시작했으니

그 후에 주공이 대개 말미암아 수정했을 뿐이다.

산 서쪽을 석양이라 하고(廬陵羅氏曰山西는 夕始得陽이라 故로 曰夕陽이라 :

여릉나씨는 말하기를 : " 산의 서쪽은 저녁이 되어야 비로소 양을 얻는다.

그러므로 석양이다). 윤은 미더움이요 황은 큼이다.

이것은 땅의 마땅함을 분별하여 이사온 백성들을 주며 그 군부와 세법을 정하고

또 산 서쪽의 밭을 헤아려 넓혀서 빈사람들이 이에 거함이 더욱 커졌도다.

6장. 篤公劉ㅣ于豳斯館하도다. 涉渭爲亂하여 取厲取鍛하도다.

止基迺理하니 爰眾爰有하도다.

夾其皇㵎하며 遡其過㵎하도다. 止旅迺密하니 芮鞫之即하도다.

독공류ㅣ우빈사관하도다. 섭위위난하여 취려취단하도다.

지기내리하고 원중원유하도다.

협기황간하며 소기과간하도다. 지려내밀하니 예국지즉하도다. 賦也라

진실하고 후덕하신 공유께서, 빈 땅에 큰 집(궁)을 지으셨도다.

위수를 배를 타고 가로질러 건너게 하여, 숫돌과 단련된 쇠붙이를 취하였도다.

머물러 살 터전의 경계를 잘 다스리니, 이에 사람이 많아지고 재물이 풍족해지도다.

황간의 양쪽 언덕에 사람들이 모여 들며, 과간의 언덕으로까지 거슬러 올라 가도다.

정착하여 살려는 백성들이 빽빽하게 모여드니,

예수의 양쪽 언덕까지 확장해나가는도다.

賦也라. 館은 客舍也라. 亂은 舟之截流橫渡者也라.

厲는 砥요 鍛은 鐵이오 止는 居요 基는 定也라.

理는 疆理也라. 衆은 人多也라. 有는 財足也라. 遡는 鄕也라. 皇過는 二㵎.

芮는 水名이니 出吳山西北하야 東入涇하니 周禮職方에 作汭라. 鞫은 水外也라.

此章은 又總敍其始終이라. 言其始來未定居之時에 涉渭取材하야

而爲舟以來往하고 取厲取鍛하야 而成宮室하며 旣止基於此矣하고

乃疆理其田野하니 則日益繁庶富足이라.

其居有夾㵎者하며 有遡㵎者하야 其止居之衆이 日以益密하야 乃復卽芮鞫而居之하니

而豳地日以廣矣라.

부이다. 관은 객사이다. 난은 배가 흐름을 끊어서 가로질러 건너는 것이다.

려는 숫돌이요, 단은 철이요, 지는 거처함이요, 기는 정함이다.

이는 경계를 다스리는 것이다. 중은 사람이 많은 것이다.

유는 재물이 풍족한 것이다. 소는 향함이다. 황과 과는 두 시냇물의 이름이다.

예는 물 이름이니 오산 서북쪽에서 나와 동쪽에서 경수로 들어가니

『주례』직방에 ‘汭(물굽이 예)’로 지었다. 국은 물 바깥이다.

이 장은 또한 그 시작과 마침을 모두 서술한 것이다.

처음 와서 아직 거처를 정하지 않았을 때에는 위수를 건너서 재목을 취해와

배를 만들어 오고 갔고, 숫돌과 쇠를 취해 와서 궁실을 지었으며

이미 이에 터를 정해놓고 이에 그 전야의 경계를 다스리니 날로 더욱 번성해지고

재물이 풍족해졌다. 그 거처하는 곳이 시내를 끼고 돌며 시내를 거슬러 올라간 곳도

있어서 그 거처하는 무리가 날로 더욱 빽빽해져 이에 다시 예수의 물가에까지

나아가 거처하니 이로써 빈땅이 날로 광대해졌다.

公劉六章 章十句

『毛詩序』

公劉는 召康公이 戒成王也라.

成王이 將涖政한대 戒以民事하여 美公劉之厚於民하여 而獻是詩也라.

공유는 소강공이 성왕을 경계한 詩이다.

성왕이 장차 정사에 임하려 하자, 백성의 일로써 경계하여

공유가 백성들에게 후하게 대함을 아름답게 여겨 이 詩를 올린 것이다.

 

 

原 文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