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經 (시경) 아(雅)

小雅. 彤弓之什(동궁지십) 제10편 학명2장(鶴鳴二章)

덕치/이두진 2023. 11. 3. 18:21

 

 小雅. 彤弓之什(동궁지십) 제10편 학명2장(鶴鳴二章)

 

 

  鶴鳴于九皋, 聲聞于野.  魚潛在淵, 或在于渚.

  樂彼之園, 爰有樹檀, 其下維蘀.  它山之石, 可以為錯.

 

  鶴鳴于九皋, 聲聞于天.  魚在于渚, 或潛在淵.  

  樂彼之園, 爰有樹檀, 其下維穀.  它山之石, 可以攻玉.

 

 

 

  1장. 鶴鳴于九皋어든 聲聞于野니라.  魚潛在淵하나 或在于渚니라.

         樂彼之園에 爰有樹檀하니 其下維蘀이니라.  

        它山之石이 可以為錯이니라. 

 

         학명우구고어든 성문우야니라.  어잠재연하나 혹재우저니라.

         낙피지원에 원유수단하니 기하유탁이니라.

         타산지석이 가이위착이니라. 比也라

 

         선학이 깊고 굽이진 늪에서 울거든, 소리가 사방 들판에까지 들리느니라.

         깊은 연못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다가, 때론 떠올라 물가에서 놀기도 하느니라.

         편안한 저 동산 안에 박달나무가 자라고 있으니, 그 아래에는 나뭇잎이 떨어져 있도다.

         다른 산에 있는 돌도 가히 숫돌이 될 수 있느니라.

 

 比也라. 鶴은 鳥名이니 長頸竦身高脚하고 項赤身白하며 頸尾黑이오

 其鳴이 高亮하야 聞八九里라.

 臯는 澤中水니 溢出所爲坎하야 從外數至九니 喩深遠也라. 蘀은 落也라. 錯은 礪石也라.

 此詩之作은 不可知其所由라. 然이나 必陳善納誨之辭也라. 

 蓋鶴鳴于九臯而聲聞于野는 言誠之不可揜也오, 魚潛在淵而或在于渚는 言理之無定在也오, 

 園有樹檀而其下維蘀은 言愛當知其惡也오, 他山之石而可以爲錯은 言憎當知其善也라.

 由是四者하야 引而伸之하야 觸類而長之면 天下之理, 其庶幾乎진저.

 

 비교한 시이다. 학은 새 이름이니, 목은 길고 몸은 솟고 다리가 높고, 벼슬이 붉고 몸은 희며, 

 목과 꼬리가 검고, 그 소리가 높고 청량하여 8, 9리에까지 들린다. 

 고는 연못 속의 물이니 넘쳐 나와서 구덩이가 되어 밖을 따라서 수가 아홉에 이르니 

 깊고 멂을 비유한 것이다.  탁은 떨어짐이다. 착은 숫돌이다. 

 이 시를 지은 것은 그 연유를 알지 못하겠다. 그러나 반드시 선을 베풀고 가르침을

 받아들이라는 말이다.  대개 학은 아홉 굽이진 늪에서 우는데 소리가 들판까지

 들린다는 것은 정성을 가히 가리지 못한다는 것

 (『중용』 제16장에 “詩曰 神之格思를 不可度思온 矧可射思아 夫微之顯이니 誠之不可揜이

 如此夫인저”하였다. 

 ‘시경에 이르기를 신이 이르는 것을 가히 헤아리지 못하는데 하물며 가히 싫어하랴. 

 대저 미미한 것이 나타나니 정성을 가히 가리지 못함이 이와 같은저’)을 말함이고, 

 물고기가 잠겨 연못에 있고 혹 물가에 있다는 것은 이치가 정해진 것이 없음을 말함이고, 

 동산에 박달나무를 심었는데 그 아래에 낙엽이 떨어져 있다는 것은 

 사랑에는 마땅히 그 미워함이 있음을 알아야 함을 말함이고 

 다른 산의 돌이 숫돌이 될 수 있음은 미워하는데도 마땅히 그 선함을 알아야 함을 말함이다

 (『대학』 수신제가장을 보면 ‘好而知其惡하며 惡而知其美者, 天下에 鮮矣니라’, 

 곧 ‘좋아하되 그 악함을 알며, 미워하되 그 아름다움을 아는 자 천하에 드묾이다’ 하였다).

 이 네 가지로 말미암아 이끌어 펴서 무리와 접촉하여 키워나가면 천하의 이치가

 거의 이루어질저! 

 (『주역』 계사상전 제9장에서 인용한 말로 “八卦而小成하야 引而伸之하며 觸類而長之하면

 天下之能事, 畢矣리니” 

 곧 ‘팔괘가 작게 이루어서 이끌어서 펼치며 무리를 접촉하여 키워나가면 천하의 능한 일이

 다하리니’라 하였다.)

 

 ※ 九臯(구고)

 九臯에 대하여 朱子는 "臯는 澤中水니 溢出所爲坎하야 從外數至九니 喩深遠也라"고

 풀이하였고, 

 송나라 때의 복씨는 “연못의 굽이진 것을 고라 하는데 『초사』의 주에 보인다

 (濮氏曰澤曲曰皐이니 見楚辭註라)"고 하였으나 두 설명 모두 九에 대한 숫자의 해설이

 명확히 나타나지 않고,  『석문』에서는 한시를 인용하여 구고는 아홉 굽이진 연못이라

 (釋文曰漢詩에 云九皐는 九折之澤이라)고 하였다. 

 위의 세 설명을 종합해 볼 때 ‘九臯는 아홉 굽이진 늪’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2장. 鶴鳴于九皋어든 聲聞于天이니라.  魚在于渚하나 或潛在淵이니라.  

        樂彼之園에 爰有樹檀하니 其下維穀이니라.  

        它山之石이 可以攻玉이니라.

 

         학명우구고어든 성문우천이니라.  어재우저하나 혹잠재연이니라.

         낙피지원에 원유수단하니 기하유곡이니라.

         타산지석이 가이공옥이니라. 比也라

 

         선학이 깊고 굽이진 늪에서 울거든, 소리가 하늘까지 들리느니라.

         물고기가 물가에서 놀기도 하나, 때론 깊은 연못 속에서 헤엄치기도 하느니라.

         편안한 저 동산 안에 박달나무가 자라고 있으니, 그 아래에 닥나무도 자라고 있느니라.

          다른 산에 있는 돌로도 가히 옥을 다듬을 수 있느니라.

 

 比也라. 榖은 一名楮니 惡木也라. 攻은 錯也라.

 程子曰 玉之溫潤은 天下之至美也오, 石之麤厲는 天下之至惡也라.

 然이나 兩玉相磨는 不可以成器요 以石磨之然後에 玉之爲器, 得以成焉하니 

 猶君子之與小人處也에 橫逆侵加然後에 修省畏避하고 動心忍性하야 

 增益預防而義理生焉하며 道德成焉하니 吾聞諸邵子云이라. 

 

 비이다. 곡은 일명 닥나무니 나쁜 나무이다. 공은 다듬는 것이다.  

 정자가 말하기를 : " 옥이 온화하고 윤택함은 천하의 지극한 아름다움이고, 

 돌의 추하고 거칠음은 천하의 지극히 나쁜 것이다.

 그러나 두 옥을 서로 갈면 그릇을 만들지 못하고 돌로써 갈은 연후에 옥의 그릇이 되나니,

 군자가 소인과 더불어 처신함에 횡역(횡포)이 침노하여 더해진 연후에

 (곧 惡이 있기에 善이 善인지를 알지, 惡이 없으면 善이 善인지를 잘 모른다는 뜻, 

 그러므로 악을 보고 군자는) 몸을 닦고 살피고 두려워하여 피하고, 마음을 움직이고

 성품을 참아서 더욱더 예방하여 의리가 생겨나며 도덕이 이루어짐과 같다."라고 

 내가 저 소강절 선생에게서 들었다. 

 

 鶴鳴二章 章九句라

 

 彤弓之什 十篇 四十章 二百五十九句

 동궁지십 10편 40장 259구

 

 疑脫兩句이니 當爲二百六十一句라

 아마도 두 구절이 없어진 듯하니 마땅히 261구가 되어야 하니라.

 

 

  『毛詩序』

 鶴鳴은 誨宣王也라.

 학명은 선왕을 교도(敎導)한 詩이다.

 

 

 原 文 【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   筆寫本 】

 

 

 原 文   飜 譯 者        德庤 / 李   斗 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