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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五十九. 循吏列傳(순리열전)

第 五十九. 循吏列傳(순리열전) ​ ​ 太史公曰 法令所以導民也,刑罰所以禁姦也. 文武不備,良民懼然身修者,官未曾亂也. 奉職循理,亦可以為治,何必威嚴哉? [태사공이 말한다. 법령은 백성들을 이끌기 위한 것이고 형벌은 백성들이 간악해지는 것을 금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고 법령과 형벌이 갖춰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선량한 백성들은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몸을 스스로 갈고 닦기 때문에 몸가짐이 단정한 관리들은 기강을 문란하게 무너뜨리지 않는 법이다. 직분에 충실하고 도리에 따르는 것도 또한 다스림의 수단으로 삼을 수 있는데 어찌 반드시 엄한 형벌과 법만 내세워서야 되겠는가? ] 孫叔敖者,楚之處士也. 虞丘相進之於楚莊王,以自代也. 三月為楚相,施教導民,上下和合,世俗盛美,政緩禁止,吏無姦邪,盜賊不起. ​秋冬則勸民山採,..

59.循吏列傳 2024.01.04

大雅. 生民之什(생민지십) 제7편 형작삼장(泂酌三章)

大雅. 生民之什(생민지십) 제7편 형작삼장(泂酌三章) ​ ​ 泂酌彼行潦, 挹彼注茲, 可以餴饎. 豈弟君子, 民之父母. ​ 泂酌彼行潦, 挹彼注茲, 可以濯罍. 豈弟君子, 民之攸歸. ​ 洞酌彼行潦, 挹彼注茲, 可以濯溉. 豈弟君子, 民之攸塈. ​ ​ ​ 1장. 泂酌彼行潦하여 挹彼注茲하니 可以餴饎로다. 豈弟君子여 民之父母하도다. ​ 형작피행료하여 읍피주자하니 가이분치로다. 개제군자여 민지부모하도다. 興也라 ​ 저 멀리 길가의 웅덩이에 고인 물을 떠서, 그 뜬 물을 항아리에 가득 담았으니, 선밥도 찌고 술밥도 찔 수 있도다. 인품과 덕성이 고상한 군자여, 백성들이 부모같이 따르고 좋아하도다. ​ 興也라. 泂은 遠也라. 行潦는 流潦也라. 餴은 烝米一熟而以水沃之하야 乃再烝也라. 饎는 酒食也라. 君子는 指王也라. 舊說에 ..

第 五十八. 淮南衡山列傳(회남 형산열전) ​

​ 第 五十八. 淮南衡山列傳(회남 형산열전) ​ ​ ​淮南厲王長者,高祖少子也,其母故趙王張敖美人. 高祖八年,從東垣過趙,趙王獻之美人. 厲王母得幸焉,有身. 趙王敖弗敢內宮,為筑外宮而捨之. 及貫高等謀反柏人事發覺,并逮治王,盡收捕王母兄弟美人,系之河內. [회남려왕(淮南厲王) 유장(劉長)은 한고조 유방의 작은 아들이다. 그 모친은 조왕 장오(張敖)의 미인(美人)이었다. 고조 8년(기원전 199년), 동원으로 나아가 조(趙)나라 땅을 지나가게 된 고조에게 조왕이 미인을 바쳤다. 려왕(厲王)의 모친이 고조의 총애를 입어 임신을 하자, 조왕 장오(張敖)는 감히 미인을 궁궐로 들이지 못하고 그녀를 위해 외궁을 짓고 그곳에 기거하게 했다. 이윽고 관고(貫高) 등이 모반해 박인(柏人)에서 고조를 살해할 사건이 발각되어 조왕도 체포..

大雅. 生民之什(생민지십) 제6편 공류6장(公劉六章)

大雅. 生民之什(생민지십) 제6편 공류6장(公劉六章) ​ ​ 篤公劉, 匪居匪康, 迺埸迺疆, 迺積迺倉. 迺裹餱糧, 于橐于囊, 思輯用光. 弓矢斯張, 干戈戚揚, 爰方啟行. ​ 篤公劉, 于胥斯原, 既庶既繁, 既順迺宣, 而無永歎. 陟則在巘, 復降在原. 何以舟之, 維玉及瑤, 鞞琫容刀. ​ 篤公劉, 逝彼百泉, 瞻彼溥原. 迺陟南岡, 乃覯于京. 京師之野, 于時處處, 于時廬旅, 于時言言, 于時語語. ​ 篤公劉, 于京斯依. 蹌蹌濟濟, 俾筵俾几. 既登乃依. 乃造其曹, 執豕于牢, 酌之用匏. 食之飲之, 君之宗之. ​ 篤公劉, 既溥既長, 既景迺岡, 相其陰陽, 觀其流泉, 其軍三單. 度其隰原, 徹田為糧. 度其夕陽, 豳居允荒. ​ 篤公劉, 于豳斯館. 涉渭為亂, 取厲取鍛. 止基迺理, 爰眾爰有. 夾其皇㵎, 遡其過㵎. 止旅迺密, 芮鞫之即. ..

第 五十七. 司馬相如列傳(사마상여열전)

第 五十七. 司馬相如列傳(사마상여열전) ​ ​ ​司馬相如者,蜀郡成都人也,字長卿. 少時好讀書,學擊劍,故其親名之曰犬子. 相如既學,慕藺相如之為人,更名相如. 以貲為郎,事孝景帝,為武騎常侍,非其好也. [사마상여는 촉군(蜀郡) 성도(成都) 사람으로 자는 장경(長卿)이다. 어렸을 때부터 독서를 좋아하고 검술을 배웠음으로 그의 부모는 그의 이름을 견자(犬子)라고 지었다. 공부를 마친 상여는 전국 때 명재상 인상여의 사람됨을 흠모하여 이름을 상여로 바꾸었다. 재물을 바쳐 랑(郞)이 되어 효경제(孝景帝)를 모시다가 직책이 무기상시로 올랐으나 상여는 그 직책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 會景帝不好辭賦,是時梁孝王來朝,從游說之士齊人鄒陽、淮陰枚乘、 吳莊忌夫子之徒,相如見而說之,因病免,客游梁. 梁孝王令與諸生同舍,相如得與諸生游士居數歲,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