戰國策(전국책) 17

戰國策 楚策

楚 策 [序文] 초나라는 춘추전국시대 전 기간에 걸쳐 흔히 비하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형(荊)나라로 별칭되었다. 이는 초나라가 비록 열국 중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니고 있었으나 작위가 겨우 자작(子爵)에 불과한데도 ​멋대로 칭왕한데 따른 멸시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었다. 초나라의 성씨는 미성(芈姓)이다. 전욱의 후손 중려(重黎)가 제곡(帝嚳) 때 화정관(火正官)이 되어 축융(祝融)으로 불렸다. 중려가 죽은 뒤 그의 동생 오회(吳回)가 계속해 축융을 지냈고, 그 후손 육종(陸終), 육(六), 계련(季蓮)을 거쳐 육웅(鬻熊) 때 주문왕에게 귀의해 주무왕을 도와 묘족(苗族)을 격파했다. 이에 웅(熊)을 성으로 삼은 뒤 주성왕 때 육웅의 증손인 웅역(熊繹)이 자작에 봉해져 단양(丹陽: 호북성 자귀현)에 도읍하게..

戰國策 齊策 2

齊策 2 齊策 四 . ​ ​ 齊人有馮諼者,貧乏不能自存,使人屬孟嘗君,願寄食門下. 孟嘗君曰:「客何好?」 曰:「客無好也.」 曰:「客何能?」 曰:「客無能也.」 孟嘗君笑而受之曰:「諾.」 左右以君賤之也,食以草具. 居有頃,倚柱彈其劍,歌曰:「長鋏歸來乎!食無魚.」 左右以告. ​孟嘗君曰:「食之,比門下之客.」 居有頃,復彈其鋏,歌曰:「長鋏歸來乎!出無車.」 左右皆笑之,以告. 孟嘗君曰:「為之駕,比門下之車客.」 於是乘其車,揭其劍,過其友曰:「孟嘗君客我.」 [제나라에 풍훤(馮諼)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워낙 가난하여 자립할 수가 없어서 사람을 맹상군에게 보내 자신을 식객으로 받아줄 것을 부탁하게 하였다. 그러자 맹상군이 그 자에게 묻기를 : “그 객은 무엇을 좋아하오.”라고 하자. 그 자가 대답하기를 : “ 좋아하는 것이 없는 듯..

戰國策 齊策 1

齊策 1 ​ ​ ​【 序文 】 ​ 제나라는 원래 강성(姜姓)의 나라이다. 주문왕이 태공망 강상(姜尙: 呂尙, 子牙)을 봉한 곳으로 춘추시대에 가장 먼저 세력을 키웠다. 제환공 때 관중을 등용해 첫 패국(覇國)이 되었다. 이때 진여공(陳厲公) 약(躍)의 아들 진완(陳完)이 제나라로 도망해 성을 전성(田姓)으로 바꾸고 제환공을 섬겼다. 주안왕(周安王) 14년(기원전 388), 제나라의 국상 전화(田和)가 군주인 제강공(齊康公)을 바닷가로 쫓아 버렸다. 주안왕 16년(기원전 386), 주왕실이 전화를 제후로 봉했다. 이는 한, 위, 조 3가(三家)가 진(晉)나라를 분할하여 제후로 봉해진 지 불과 17년 만에 일어난 일로 주왕실이 하극상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를 계기로 전국시대가 본격화되었다고 해도 과언..

戰國策 秦策 2

秦策2 秦策 三 . 薛公為魏謂魏冉曰:「文聞秦王欲一呂禮收齊,以濟天下,君必輕矣. 齊、秦相聚以臨三晉,禮必並相之,是君收齊以重呂禮也. 齊免於天下之兵,其讎君必深. 君不如勸秦王令弊邑卒攻齊之事. 齊破,文請以所得封君齊破晉強,秦王畏晉之強也, 必重君以取晉. 齊異晉弊邑,而不能支秦,晉必重君以事秦. 是君破齊以為功,操晉以為重也. 破齊定封,而秦、晉皆重君;若齊不破,呂禮復用,子必大窮矣」 [설공(薛公) 맹상군(孟嘗君)이 위나라를 위해 진나라 상국 위염(魏冉 : 穰侯)에게 말하기를 : “ 제가 듣건대 진왕이 여례(呂禮: 본래 진나라 장수로 후에 제나라의 상국이 됨)를 통해 제나라와 연합한 뒤 천하를 정복하려 한다고 하는데 그리되면 그대의 위치는 필시 낮아질 것입니다. 제, 진 두 나라가 뭉쳐 3진(三晋)을 압박하면 여례를 양국의 상국으로 ..

戰國策 秦策 1

秦策 ​ 【 序文 】 ​진나라는 원래 전욱(顓頊)의 후예가 세운 나라이다. 순임금 때 조수(鳥獸)를 관리하는 직책을 맡다가 공을 세워 영(嬴)이라는 성을 하사받았다. 이후 비렴(蜚廉), 여방(女防)을 거쳐 비자(非子)에 이르렀을 때 주효왕(周孝王)이 그에게 말을 길러 바치도록 했다. 비자가 견위(汧渭: 섬서성 농현과 미현 일대) 근처에서 말을 길러 크게 번식시키자 주효왕이 이를 크게 칭송하고 부용국(附庸國)으로 삼아 진(秦: 감숙성 천수현)에 도읍하게 하였다. 이에 진영(秦嬴)으로 불리게 되었다. 진장공(秦莊公)을 거쳐 진양공(秦襄公: 기원전 777~766)에 이르렀을 때 주유왕(周幽王)이 포사(褒姒)로 인해 견융의 침입으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진양공이 견융을 막아내고 주왕실의 천도를 돕는 공을..

戰國策 東周策

東周策 秦興師臨周而求九鼎, 周君患之, 以告顏率. 顏率曰:「 大王勿憂,臣請東借救於齊. 」 (진흥사임주이구구정, 주군환지, 이고안솔. 안솔왈 : 「 대왕물우, 신청동차구어제. 」) ​ [진나라는 군대를 일으켜 주나라에게 천자의 보기인 구정을 내놓으라고 강요하자, 주나라 군주는 이를 크게 염려하여 '안솔'에게 토로하였다. '안솔'이 말하기를 " 대왕께서는 근심하실 것이 없습니다, 청하옵건데 소신을 동쪽 제나라로 보내 구원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해주시시 바랍니다. "라고 하였다. ] 顏率至齊, 謂齊王曰:「 夫秦之為無道也, 欲興兵臨周而求九鼎, 周之君臣, 內自盡計, 與秦, 不若歸之大國. 夫存危國, 美名也;得九鼎, 厚寶也. 願大王圖之. 」 (안솔지제, 위제왕왈 : 「 부진지위무도야, 욕흥병임주이구구정, 주지군신, 내자..

戰國策

戰 國 策 【 序文 】 《전국책(戰國策)》은 주(周) 정정왕(貞定王) 57년(기원전 454)으로부터 진시황 37년(기원전 210)에 이르기까지 약 240년 동안의 정치, 사회와 책사언행(策士言行)을 기록한 역사책이다. 그 작자는 알 수 없으나, 서주(西周), 동주(東周)를 비롯하여 진(秦), 초(楚), 제(齊), 위(魏), 연(燕), 한(韓), 송(宋), 위(衛), 중산(中山)등의 12국책(十二國策)으로 나누어 모두 33권이다. 책명을 『국책(國策)』, 『국사(國事)』, 『단장(短長)』, 『사어(事語)』, 『장서(長書)』라고 하기도 한다. 중국 전한 시대의 유향(劉向)이 전국시대(기원전 475 ~ 222)의 수많은 제후국 전략가들의 정치, 군사, 외교 등 책략을 모아 집록한 자료를 《전국책》이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