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世家(사기세가) 30

第 二十. 楚元王世家(초원왕세가)

史記 世家 第 二十. 楚元王世家(초원왕세가) ​楚元王劉交者, 高祖之同母少弟也, 字游. 高祖兄弟四人, 長兄伯, 伯蚤卒. 始高祖微時, 嘗辟事, 時時與賓客過巨嫂食. 嫂厭叔,叔與客來,嫂詳為羹盡,櫟釜,賓客以故去. 已而視釜中尚有羹,高祖由此怨其嫂. 及高祖為帝,封昆弟,而伯子獨不得封. 太上皇以為言,高祖曰:「某非忘封之也,為其母不長者耳.」 於是乃封其子信為羹頡侯. 而王次兄仲於代. [초원왕(楚元王) 유교(劉交)는 한고조(漢高祖)의 친동생으로 자는 유(游)이다. 한고조의 형제는 네 명이었는데, 맏형은 유백(劉伯)으로 요절했다. 당초 고조가 미천한 신분일 때, 일이 잘못되어 피해 살아야 했기에 때때로 손님들과 큰형수의 집에서 밥을 먹었다. 형수는 고조를 싫어해, 그가 손님들과 함께 오면 거짓으로 밥과 국을 다 먹은 체했으며, 주걱..

第 十九. 外戚世家

史記 世家 ​第 十九. 外戚世家(외척세가) ​ ​ ​自古受命帝王及繼體守文之君,非獨內德茂也,蓋亦有外戚之助焉. 夏之興也以涂山,而桀之放也以末喜. 殷之興也以有娀,紂之殺也嬖妲己. ​周之興也以姜原及大任,而幽王之禽也淫於褒姒. [예로부터 천명을 받은 개국 군주(君主)들과 선제(先帝)의 뒤를 이어받고 성법(成法)을 계승한 군주들은 단지 그 개인의 품덕(品德)이 고상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한 외척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夏)나라가 흥기한 것은 도산씨(塗山氏)가 있었기 때문이며, 걸(桀)이 유배된 것은 말희(末喜)가 있었기 때문이다. 은왕조가 흥기한 것은 유융씨(有娀氏)가 있었기 때문이며, 주왕이 주살당한 것은 달기(妲己)를 총애했기 때문이다. 주(周)나라가 흥기한 것은 강원(姜原)과 대임(大任)이 있었기 ..

第 十八. 陳涉世家

史記 世家 第 十八. 陳涉世家(진섭세가) 陳勝者,陽城人也,字涉. 吳廣者,陽夏人也,字叔. 陳涉少時,嘗與人傭耕,輟耕之壟上,悵恨久之,曰:「茍富貴,無相忘.」 庸者笑而應曰:「若為庸耕,何富貴也?」陳涉太息曰:「嗟乎,燕雀安知鴻鵠之志哉!」 [진승(陳勝)은 양성(陽城) 사람으로 자(字)는 섭(涉)이다. 오광(吳廣)은 양하(陽夏) 사람으로 자는 숙(叔)이다. 진섭(陳涉)은 젊었을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머슴살이를 했다. 밭갈이를 멈추고 밭두둑에서 일손을 멈추고 휴식을 취했는데, 그는 불평과 원망을 하며 말하기를 : “만약 부귀하게 된다면 모두 서로를 잊지 맙시다”하였다. 머슴들은 비웃으며 말하기를 : “당신은 고용당해 머슴살이를 하는 주제에 어떻게 부귀를 누릴 수 있겠소?”하자, 진섭은 크게 탄식하며 말하기를 : “오호! ..

第 十七. 孔子世家

史記 世家 〈 만년의 공자 〉 第 十七. 孔子世家(공자세가) ​孔子生魯昌平鄉陬邑. 其先宋人也, 曰孔防叔. 防叔生伯夏, 伯夏生叔梁紇. 紇與顏氏女野合而生孔子, 禱於尼丘得孔子. 魯襄公二十二年而孔子生. 生而首上圩頂,故因名曰丘云. 字仲尼,姓孔氏. [공자(孔子)는 노나라 창평향(昌平鄕) 추읍(陬邑)에서 태어났다. 그의 선조는 송나라 사람으로 공방숙(孔防叔)이다. 방숙은 백하(伯夏)를 낳았고 백하는 숙양흘(叔梁紇)을 낳았다. 흘은 안씨(顔氏)와 야합(野合)해 공자를 낳았는데, 이구(尼丘)에서 기도를 한 뒤, 공자를 얻게 되었다. 노양공(魯襄公) 22년에 공자가 태어났다. 그가 태어났을 때 머리 중간이 움푹 패어 있었기 때문에 구(丘)라고 이름했다. 자는 중니(仲尼)이고 성은 공씨이다.] 丘生而叔梁紇死,葬於防山. 防山..

第 十六. 田敬 仲完世家

史記 世家 第 十六. 田敬仲完世家(전경중완세가) 陳完者,陳厲公他之子也. 完生,周太史過陳,陳厲公使卜完,卦得觀之否: 「是為觀國之光,利用賓于王. 此其代陳有國乎?不在此而在異國乎? 非此其身也,在其子孫. 若在異國,必姜姓. 姜姓,四嶽之後. 物莫能兩大,陳衰,此其昌乎?」 ​厲公者,陳文公少子也,其母蔡女. 文公卒,厲公兄鮑立,是為桓公. [진완(陳完)은 진려공(陳厲公) 타(他)의 아들이다. 완이 태어났을 때, 마침 주나라 태사가 진(陳)나라를 지나갔다. 진려공이 그로 하여금 완의 점을 치게 해, “관(觀)” 괘에서 “비(否)”괘로 넘어가는 점괘를 얻었다. 괘의 대의는 다음과 같았다. “이것은 나라의 빛을 보고서, 왕의 중신(重臣)으로 쓰임이 적합한 괘입니다. 이는 그의 대에 진씨가 나라를 가지는 것인가, 아니면 이곳이 아닌 다..

第 十五. 韓世家

史記 世家 第 十五. 韓世家(한세가) ​ ​ ​韓之先與周同姓,姓姬氏. 其後苗裔事晉,得封於韓原,曰韓武子. 武子後三世有韓厥,從封姓為韓氏. [한(韓)나라의 조상은 주(周) 왕조와 동성인 희씨(姬氏)이다. 후에 그 후예들이 진(晉)나라를 섬겨서, 한원(韓原)에서 봉토를 받아 한무자(韓武子)라 했다. 한무자의 3대 후손 중에 한궐(韓厥)이 있었는데, 그는 봉토의 이름을 좇아서 한씨(韓氏)라 했다.] 韓厥,晉景公之三年,晉司寇屠岸賈將作亂,誅靈公之賊趙盾. 趙盾已死矣,欲誅其子趙朔. 韓厥止賈,賈不聽. 厥告趙朔令亡. 朔曰:「子必能不絕趙祀,死不恨矣.」韓厥許之. 及賈誅趙氏, 厥稱疾不出. 程嬰、公孫杵臼之藏趙孤趙武也, 厥知之. [한궐은 진경공(晉景公) 3년, 진나라의 사구(司寇) 도안고(屠岸賈)가 난을 일으켜서, 진영공(晉靈公)의..

第 十四. 魏世家

史記 世家 第 十四. 魏世家(위세가) ​ ​ ​魏之先,畢公高之後也. 畢公高與周同姓. 武王之伐紂,而高封於畢,於是為畢姓. 其後絕封,為庶人,或在中國,或在夷狄. 其苗裔曰畢萬,事晉獻公. [위(魏)나라의 선조는 필공(畢公) 희고(姬高)의 후손이다. 필공 희고와 주(周)나라의 왕족은 성이 같았다. 주무왕(周武王)이 상(商)나라의 주(紂)를 정벌하고, 희고를 필(畢)에 봉한 까닭에 성을 필로 썼다. 그의 후손은 관직에 오르지 못하고 평민이 되어 어떤 이는 중원에 살았고, 어떤 이는 변방 오랑캐 땅에 살았다. 그의 후손 중에 필만(畢萬)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진헌공(晉獻公)을 섬겨 벼슬을 했다.] ​ 獻公之十六年, 趙夙為御, 畢萬為右, 以伐霍、耿、魏,滅之. 以耿封趙夙,以魏封畢萬,為大夫. 卜偃曰:「畢萬之後必大矣,萬,..

第 十三. 趙世家

史記 世家 第 十三. 趙世家(조세가) ​ ​ ​趙氏之先,與秦共祖. 至中衍,為帝大戊御. 其後世蜚廉有子二人, 而命其一子曰惡來,事紂,為周所殺,其後為秦. 惡來弟曰季勝,其後為趙. [조씨(趙氏)의 선대(先代)는 진(秦)나라와 조상이 같다. 중연에 이르러 은(殷)나라 대무(大戊)의 마부가 되었다. 그의 후예 비렴(蜚廉)은 두 아들을 두었는데 그중 한 아들의 이름을 오래(惡來)라고 지었다. 오래는 주왕(紂王)을 섬기다가 주(周)나라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했으니, 그 후 손이 바로 진나라의 선조가 되었다. 오래의 동생은 이름이 계승(季勝)이었는데, 그의 후손은 조(趙)나라의 선조가 되었다.] 季勝生孟增. 孟增幸於周成王,是為宅皋狼. 皋狼生衡父,衡父生造父. 造父幸於周繆王. 造父取驥之乘匹,與桃林盜驪、驊騮、綠耳,獻之繆王. ​繆王..

第 十二. 鄭世家

史記 世家 第 十二. 鄭世家(정세가) 鄭桓公友者, 周厲王少子而宣王庶弟也. 宣王立二十二年, 友初封于鄭. 封三十三歲, 百姓皆便愛之. 幽王以為司徒. 和集周民,周民皆說,河雒之閒,人便思之. 為司徒一歲,幽王以褒后故,王室治多邪,諸侯或畔之. [정환공(鄭桓公) 희우(姬友)는 주려왕(周厲王)의 작은아들이고, 주선왕(周宣王)의 서제(庶弟)이다. 주선왕이 왕위에 오른 지 22년 만에 희우는 비로소 정에 봉지를 받았다. 희우가 봉지를 받은 33년 동안 백성들은 모두 그를 좋아했다. 주유왕(周幽王)이 그를 사도(司徒)에 임명했다. 그는 주 왕실의 직할지 백성들을 잘 다스렸기 때문에 백성들은 모두 기뻐했고, 황하(黃河), 낙하(雒河) 일대의 사람들은 모두 그를 사모했다. ​ ​그가 사도로 지내는 1년 동안에 유왕이 포사(褒姒)를 ..

第 十一. 越王句踐世家

第 十一. 越王句踐世家(월왕구천세가) ​ ​ ​越王句踐,其先禹之苗裔,而夏后帝少康之庶子也. 封於會稽,以奉守禹之祀. 文身斷發,披草萊而邑焉. 後二十餘世,至於允常. 允常之時,與吳王闔廬戰而相怨伐. 允常卒, 子句踐立,是為越王. [월왕 구천의 조상은, 하후(夏后) 임금의 후예이며, 소강(少康)의 서자로서 우(禹)임금의 자손이다. 그의 선조는 회계(會稽) 땅에 봉해졌고, 우임금의 제사를 모셨다. 그들은 몸에 문신을 하고 머리를 짧게 잘랐으며, 초목을 제거하고 황무지를 개척해 도읍을 건설했다. 이때로부터 20여 대가 흘러 윤상(允常)의 시대에 이르렀다. 윤상이 왕으로 있을 때, 오왕(吳王) 합려(闔廬)와 싸우게 되니 그들은 서로 미워해 공격했다. 윤상이 죽고 아들 구천이 즉위하니, 그가 곧 월왕이다.] 元年,吳王闔廬聞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