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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雅. 文王之什(문왕지십) 제3편 면9장(緜九章)

大雅. 文王之什(문왕지십) 제3편 면9장(緜九章) 緜緜瓜瓞. 民之初生, 自土沮漆. 古公亶父, 陶復陶穴, 未有家室. 古公亶父, 來朝走馬. 率西水滸, 至于岐下. 爰及姜女, 聿來胥宇. 周原膴膴, 菫茶如飴. 爰始爰謀, 爰契我龜. 曰止曰時, 築室于茲. 迺慰迺止, 迺左迺右, 迺疆迺理, 迺宣迺畝, 自西徂東, 周爰執事. 乃召司空, 乃召司徒, 俾立室家. 其繩則直, 縮版以載, 作廟翼翼. 捄之陾陾, 度之薨薨, 築之登登, 削屢馮馮, 百堵皆興, 鼛鼓弗勝. 迺立臯門, 臯門有伉. 迺立應門, 應門將將. 迺立冢土, 戎醜攸行. 肆不殄厥慍, 亦不隕厥問. 柞棫拔矣, 行道兌矣. 混夷駾矣維, 其喙矣. 虞芮質厥成, 文王蹶厥生. 予曰有疏附, 予曰有先後, 予曰有奔奏, 予曰有禦侮. 1장. 緜緜瓜瓞이로다. 民之初生은 自土沮漆이로다. 古公亶父는 陶復陶穴..

第 五十三. 南越列傳(남월열전)

第 五十三. 南越列傳(남월열전) ​ ​ ​南越王尉佗者,真定人也,姓趙氏. 秦時已并天下,略定楊越,置桂林、 南海、象郡,以謫徙民,與越雜處十三歲. 佗,秦時用為南海龍川令. [남월왕 위타는 진정(真定)1) 사람이다. 성은 조(趙)다. 진나라가 천하를 병탄할 때 양월(楊越)2)을 공략하여 평정하고 계림군(桂林郡), 남해군(南海郡), 상군(象郡)을 설치한 후에 죄를 지은 백성들을 이주시켜 ​월인들과 섞여 살게 하기를 13년이 되었다. 위타는 진나라 때 남해군 관하 용천(龍川)3)의 현령(縣令)이었다.] 至二世時, 南海尉任囂病且死, 召龍川令趙佗語曰:「聞陳勝等作亂, 秦為無道, 天下苦之,項羽、劉季、陳勝、吳廣等州郡各共興軍聚眾,虎爭天下. 中國擾亂,未知所安,豪傑畔秦相立. 南海僻遠,吾恐盜兵侵地至此,吾欲興兵絕新道,自備,待諸侯變,會病甚..

53.南越列傳 2023.12.13

大雅. 文王之什(문왕지십) 제2편 대명8장(大明八章)

大雅. 文王之什(문왕지십) 제2편 대명8장(大明八章) 明明在下, 赫赫在上. 天難忱斯, 不易維王. 天位殷適, 使不挾四方. 摯仲氏任, 自彼殷商, 來嫁于周, 曰嬪于京. 乃及王季, 維德之行. 大任有身, 生此文王. 維此文王, 小心翼翼. 昭事上帝, 聿懷多福. 厥德不回, 以受方國. 天監在下, 有命既集. 文王初載, 天作之合. 在洽之陽, 在渭之涘. 文王嘉止, 大邦有子. 大邦有子, 俔天之妹. 文定厥祥, 親迎于渭. 造舟為梁, 不顧其光. 有命自天, 命此文王. 于周于京, 纘女維莘. 長子維行, 篤生武王. 保右命爾, 燮伐大商. 殷商之旅, 其會如林. 矢于牧野, 維予侯興. 上帝臨女, 無貳爾心. 牧野洋, 車煌煌, 駟騵彭彭. 維師尚父, 時維鷹揚, 涼彼武王, 肆伐大商. 會朝清明. 1장. 明明在下하면 赫赫在上하도다. 天難忱斯하니 不易維王이로..

大雅. 文王之什(문왕지십) 제1편 문왕7장(文王七章)

大雅. 文王之什(문왕지십) 제1편 문왕7장(文王七章) 文王在上, 於昭于天. 周雖舊邦, 其命維新. 有周不顯, 帝命不時. 文王陟降, 在帝左右. 亹亹文王, 令聞不已. 陳錫哉周, 侯文王孫子. 文王孫子, 本支百世. 凡周之士, 不顯亦世. 世之不顯, 厥猶翼翼. 思皇多士, 生此王國. 王國克生, 維周之楨. 濟濟多士, 文王以寧.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假哉天命, 有商孫子. 商之孫子, 其麗不億. 上帝既命, 侯于周服. 侯服于周, 天命靡常. 殷士膚敏, 祼將于京. 厥作祼將, 常服黼冔. 王之藎臣, 無念爾祖. 無念爾祖, 聿脩厥德. 永言配命, 自求多福.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宜鑒于殷, 駿命不易. 命之不易, 無遏爾躬. 宣昭義問, 有虞殷自天. 上天之載, 無聲無臭. 儀刑文王, 萬邦作孚. 1장. 文王在上하니 於昭于天이로다. 周雖舊邦이나 其..

第 五十二. 平津侯主父列傳 (평진후 주보열전)

第 五十二. 平津侯主父列傳 (평진후 주보열전) ​ ​ ​丞相公孫弘者,齊菑川國薛縣人也,字季. 少時為薛獄吏,有罪,免. 家貧,牧豕海上. 年四十餘,乃學春秋雜說. 養後母孝謹. ​[승상 공손홍은 제(齊) 지방의 치천국(菑川國) 설현(薛縣) 출신으로 자(字)는 계(季)이다. ​젊었을 때 설현의 옥리가 되었으나 죄를 지어 면직되었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해변에서 돼지를 키우며 살았다. 그의 나이 40에 이르기까지 춘추와 여러 학설을 공부하며 효심을 다해 계모를 봉양했다.] 建元元年,天子初即位,招賢良文學之士. 是時弘年六十,徵以賢良為博士. 使匈奴,還報,不合上意,上怒,以為不能,弘乃病免歸. ​[건원(建元) 원년, 천자가 새로 즉위하여 천하에 현량과 문학으로 이름난 선비들을 초빙했다. 이때 공손홍은 나이가 이미 60에 이르렀..

第 五十一. 衛將軍驃騎列傳(위장군 표기열전)

​ 第 五十一. 衛將軍驃騎列傳(위장군 표기열전) 大將軍衛青者, 平陽人也. 其父鄭季, 為吏. 給事平陽侯家, 與侯妾衛媼通, 生青. 青同母兄衛長子,而姊衛子夫自平陽公主家得幸天子,故冒姓為衛氏. 字仲卿. 長子更字長君. 長君母號為衛媼. 媼長女衛孺, 次女少兒, 次女即子夫. 後子夫男弟步、廣皆冒衛氏. [대장군 위청은 평양(平陽)1) 사람이다. 그의 부친 정계(鄭季)는 관리가 되어 평양후2) 조수의 집안을 돌보다가 조수의 첩실 위온(衛媼)과 간통하여 아들 청(靑)을 낳았다. 위청의 동복형제로는 형인 위장자(衛長子)와 동생인 위자부(衛子夫)가 있었다. 위자부는 평양공주를 모시다가 훌륭한 가무(歌舞)로 황제의 총애를 얻었기에 위청도 위(衛)를 성으로 삼았다. 위청은 자를 중경(仲卿)이라고 하였다. 위장자(衛長子)의 자는 장군(..

小雅. 都人士之什(도인사지십) 제10편 하초불황4장(何草不黃四章)

小雅. 都人士之什(도인사지십) 제10편 하초불황4장(何草不黃四章) 何草不黃, 何日不行. 何人不將, 經營四方. 何草不玄, 何人不矜. 哀我征夫, 獨為匪民. 匪兕匪虎, 率彼曠野. 哀我征夫, 朝夕不暇. 有芃者狐, 率彼幽草. 有棧之車, 行彼周道. 1장. 何草不黃이며 何日不行이리오. 何人不將하며 經營四方하도다. 하초불황이며 하일불행이리오. 하인부장하며 경영사방하도다. 興也라 어떤 풀인들 누렇게 시들지 아니하겠으며, 어떤 날인들 바쁘게 달아나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인들 어찌 출정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종사하러 사방으로 가야 하는도다. 興也라 草衰則黃이라. 將은 亦行也라. 周室將亡에 征役不息하야 行者苦之라. 故로 作此詩라. 言何草而不黃이며 何日而不行이며 何人而不將하야 以經營於四方也哉리오. 흥이다. 풀이 쇠하면 누래진..

小雅. 都人士之什(도인사지십) 제9편 초지화3장(苕之華三章)

小雅. 都人士之什(도인사지십) 제9편 초지화3장(苕之華三章) 苕之華, 芸其黃矣. 心之憂矣, 維其傷矣. 苕之華, 其葉青青. 知我如此, 不如無生. 牂羊墳首, 三星在罶. 人可以食, 鮮可以飽. 1장. 苕之華여 芸其黃矣로다. 心之憂矣하고 維其傷矣하도다. 초지화여 운기황의로다. 심지우의하고 유기상의하도다. 比也라 능소화가 피었으나, 그 색이 누렇고 진하도다 마음이 실로 근심스럽고, 아프며 슬프도다. 比也라. 苕는 陵苕也니 本草에 云卽今之紫葳라하니 蔓生이오, 附於喬木之上하며 其華黃赤色이니 亦名凌霄라. 詩人이 自以身逢周室之衰하야 如苕附物而生하니 雖榮不久라. 故로 以爲比하고 而自言其心之憂傷也라. 비이다. 초는 능초니 『본초강목』에 이르기를 " 곧 지금의 자위이다." 하였으니 덩굴로 나고 교목에 붙어서 올라가며 그 꽃이 ..

第 五十. 匈奴列傳(흉노열전)

第 五十. 匈奴列傳(흉노열전) ​ ​ 匈奴,其先祖夏后氏之苗裔也,曰淳維. 唐虞以上有山戎、獫狁、葷粥,居于北蠻,隨畜牧而轉移. [흉노의 선조는 하후씨(夏後氏)의 후예로 순유(淳維)1)라고 한다. 당요(唐堯)와 우순(虞舜) 이후에는 산융(山戎)、험윤(獫狁)、훈육(葷粥)2)으로 불리며 북쪽의 미개척지에서 목축을 하며 이리저리 옮겨 살았다.] 其畜之所多則馬、牛、羊,其奇畜則橐駞、驢、驘、駃騠、騊駼、騨騱. 逐水草遷徙,毋城郭常處耕田之業,然亦各有分地. 毋文書,以言語為約束. 兒能騎羊,引弓射鳥鼠;少長則射狐兔:用為食. 士力能毋弓,盡為甲騎. [그들이 기르는 가축은 주로 말, 소, 양이고 진기한 가축으로는 낙타, 나귀, 노새, 결제(駃騠)· 도도(騊駼)· 탄해(驒騱) 3) 등이다. 물과 풀을 쫓아 옮겨 다니며 성곽과 일정한 거처가 없..

50.匈奴列傳 2023.12.10

第 四十九. 李將軍列傳(이장군열전)

第 四十九. 李將軍列傳(이장군열전) ​ ​ ​李將軍廣者,隴西成紀人也. 其先曰李信,秦時為將,逐得燕太子丹者也. 故槐裏,徙成紀. 廣家世世受射. [장군 이광은 농서군(隴西郡) 성기현(成紀縣)1) 사람이다. 그의 선조는 이신(李信)인데, 전대의 왕조인 진(秦)나라 때의 장군으로 연나라의 태자 단(丹)을 추격하여 사로잡은 인물이었다. 그의 고향은 원래 괴리현이었으나, 성기현으로 이사하였다. 이광(李廣)의 가문은 대대로 활쏘는 일을 가업으로 삼아 전수했다.] 孝文帝十四年,匈奴大入蕭關,而廣以良家子從軍擊胡,用善騎射, 殺首虜多,為漢中郎. 廣從弟李蔡亦為郎,皆為武騎常侍, 秩八百石, 嘗從行,有所衝陷折關及格猛獸, 而文帝曰:「惜乎,子不遇時!如令子當高帝時,萬戶侯豈足道哉!」 及孝景初立,廣為隴西都尉,徙為騎郎將. [효문제 14년(기원전 ..

49.李將軍列傳 2023.12.10